2016.01.03 01:15
하나님의 사랑- 자녀됨
1989. 1. 30. 월새벽
본문: 요한일서 3장 1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여게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모르니까 자꾸 이렇게 가르치면, 요새 내 OOO집사님이 잘 안 보이는데? OOO집사님? O장로님? 집에 있습니까, OOO? 딴데? 여기 안 있습니까? 그라면 전화로도 깨워야 되지. 요새 안 나와. 안 나오는데 그 전화로도 깨워야 되지.
아무나따나 자꾸 성경을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게 아니고, 어지럽게 말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말하다가 처음에 껍데기로만 말하는 게 아니고 껍데기가 맞으면 저 안에도 맞습니다. 또 지금 맞으면 억만 년 후라도 맞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바로 알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만일 성경을 말한 것이 한 교리가 하나가 틀리면 그것으로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습니다. 정죄 안 받을라면 즉시 회개를 해서 그것을 선포를 하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거가 모르니까, 이래도 가르치고 또 저래도 가르치니까, 아무나따나 자꾸 성경은 주 대기만 하면 되는 줄로 이렇게 아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이 성경을 말하는 것은 그 말이 사실과 맞나 안 맞나 그게 문제입니다.
그 말하는 것이 성경은 다 가르치니까 사실이 그대로 뒤에 따라서 돼야 될 것 아닙니까? 앞으로 둬 그 실상과 성경 해석하는 것이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시 사람들을 아무리 설득을 시키고 이해를 시키고 감탄을 시킨다 할지라도 사실에 맞지 안하면 그거는 거짓말이요 나중에 정죄받습니다.
또 사실에 맞으면 그게 다가 아닙니다. 사실에 맞는데 그 사실에 맞는 그 사실은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인정 하나 안 하나가 문제요. 사실에는 맞아도 하나님이 인정 안 할 수 있습니다.
사실보다도 더 깊은 것 있습니다. 사실과는 맞지마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거게 무엇인가 그것이 좀 잘못된 것이 있으면, 사실은 사실이지마는 잘못된 게 있으면 뒤에 끄트머리에 가서 틀려질 것이기 때문에 무슨 동기나 목적이나 그런 것이 어느 것이라도, 아무리 그 사람이 진리를 말했다 할지라도 틀리는 것 많습니다.
진리에 맞게 그 실상에 맞게 말은 하기는 했지마는 말하는 동기가 틀릴 수도 있고 목적도 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동기차 목적이 다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아야 됩니다.
교회를 세우고 양사방 이렇게 다니는 것도 그 하는 것이 그것이 무슨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자기를 죽이기 전에는 하다 보면 나중에 가서 자기가 목적이오.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우상 만드는 것이요 자기를 자꾸 이렇게 만들어서 자기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요 자기 발판을 만드는 거라 말이오. 그리 됨으로 자기가 유명해지기 위해서, 그러니까 자기가 조금 명예에 관계가 있으면 그만 거기서 딴 불을 일으킵니다. 조금 크면 그만 그게 왕 노릇 할라고 배신을 합니다. 또 하나님이 인정만 하면 되는 것 아니오. 그뭐 틀렸다 할 수 없고 됐다 인정은 해도 당신이 기뻐하셔서 축복하셔야 비로소 그것이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이 아닌 우리 개인적으로 서로 대화할 때도 어떤 사람 말은 들어보면 저 사람은 그저 입에 발려서 그 말만 꾸며대면 그 말 꾸며대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인정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지금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그것도 생각지 않고 자꾸 말만 주 대 가지고, 거게서 말만 묘하게 주 대서 꾸며서 자꾸 하면은 되는 줄 아는 그 사람이 말을 잘 합니다. 그 사람은 입에 철철철철 합니다, 그 말이.
그 사람은 참 말 잘하는 사람은 그 사람 대해서 꼼짝 못 합니다. 왜? 그 말하는 것이 전부 사실과는 상관도 없는 것을 전부 거짓말로 꾸며대 가지고 이리 저리 마구 그때, 되는 대로 둘러대 가지고 그때에 말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하고 말을 상대하면 자연히 자기도 그런 사람되기 쉽기 때문에 말을 그만 참 중치가 막혀서 말을 못 합니다.
그런 사람 있습니다. 대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무식한 사람이 그렇습니다.
무식한 사람이 건방지기만 하면 그만 그렇습니다. 여자들 이거 테레비나 보고하는 그런, 여자들 데리고 말해 보면은 그뭐 아주 말을 묘하게 하는데 이게 말하는 것이 내가 그 실상에 맞나 안 맞나 그거는 아예 생각해 보지도 안하고 그때 그저 말만 꾸며대서 말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들려져요? 또 어떤 사람은 그 말을 하는 데에 그렇게 쉽게 말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 말을 하는데 이 말이 내가 실상과 맞아야 되겠고 또 이 말한 데는 뒤에 실상이 따라와야 되는 것인데 이 실상과 이 말이 맞나 안 맞나? 그래도 실상과 맞아야 되지 실상의 콩을 팥이라고 자꾸 주 대서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게 나중에 콩이니까 제 말한 게 전부 거짓말로 얼마 잠시 후면 돌아간다 그말이오.
일에 사실과도, 사실과도 맞지 않는 것을 대조해 보지도 안하고 말합니다.
요새 국회 청문회 하는 데 보면은 우리나라에 뭐 제일 대통령 될라고 모두 하는 그런 사람들 모두 다 이와같이 있는데, 대통령 출마하는 사람들 또 국회 출마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보면 그 중에는 말만 꾸며대지 그 말이 실상에 맞지 않는 그런 말하는 것을 들을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 자꾸 말하니까 잘한다 똑똑하다 이랍니다. 그 사람 말한 것이 하나도 실상에는 맞지 않는데. 또 그거는 사기 협잡이 가득 찼는데.
요새 보니까 권리 남용죄로도 갇히고 또 위증으로도 갇히고 모두 이라는데 국회에서 하는 것은 사진판을 내 가지고 이렇다 이렇게 사진판을 내서 이래 보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딴 사진이라 말이오. 이래도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는 아무 정죄를 받지 안하니까 눈뜬 사람 볼 때에 저거 잘못한 거는 현재에 하나도 시인하지 안하고 거기 대해서는 처리하지 안하니 남의 잘못만 처리하니까 그것도 내나 정치 보복이 아닌가? 복수 아닌가? 그 지나간 일에 복수하면 뭐할 겁니까? 지금 앞으로 잘해야 될 일이지. 참 탄식입니다. 암만 가르쳐도 사람들이 심령이 어두워 놓으니까 몰라. 말하는 것은 일과 들어맞아야, 실상과 들어맞아야 되고 실상과 말과 같은 말을 해야 되지 실상은 콩인데 그 말은 팥이라고 자꾸 이래 주 대서 막 이래 주 역설만 해서 상대방이 설득을 당하고 그런갑다 등신 같은 것이 그런갑다 이와같이 하면은 될 줄 알지마는 얼마 안 가서 그 미래는 현재로 다가옵니다. 다가오니까 헛일이라 말이오. 우리 믿는 사람은 일을 실상만 될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인정 하나 안 하나 그게 문제요.
그분이 인정을 하나 안 하나 그게 문제라.
또 그분이 인정은 하기는 해도 기뻐하지 안하기 때문에 같이 동행해 가지고 그 일을 협조해서 주장해서 일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돕는 그 도움이 없는 말 있습니다. 그러면 말하는 데에 이 일은 실상이 없는 말은 자기 아는 대로 그거 양심에 가책이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고. 실상대로 말하지. 또 실상대로 말하면서도 이라면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보기는 이런데 하나님이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거게다가 더듬어 가지고 그걸 살펴보고 이 일은 성경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인정하시지마는 하나님이 기뻐서 여게 축복을 해 주나 안 해 주나 그게 문제요 축복을 해 주나 안 해 주나? 이러니까 야만들은, 미개한 사람 말이요, 우리는 아직까지 미개한 사람들이오.
더군다나 이 청년들 청소년들은 그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들은 아무 경험과 체험이 없는, 아무 경험과 체험이 없는 신출내기들이오.
사람이 삼십대 돼서 다르고 사십대 달라. 삼십대 돼서 한 일을 사십대 돼 보면은 그거 잘못된 말 했어. 사십이 지난 사람은 그 사람의 말한 것 보고 '저거 지금 원래 저래 한다' 좀 경험 있는 사람은 그걸 인정을 안 해.
이러니까 사람이 말하면 그 말 한 것을 그냥 자기에게 보기에 틀렸으면 틀렸다, 옳으면 옳다 이렇게 하고, 또 틀렸으면 틀렸다 옳으면 옳다 하는 그것도 단번에 하는 게 아니라. '꼭 그러면 하지만 그리 안 하면 좀 두고 보자' 두고 보면 알아요.
두고 보면 좀 있어 두고 보면 알아, 그게.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말할 때는 저 사람이 동기가 어데서 지금 동기가 나와 가지고 하고 있다. 저 사람이 목적이 지금 어데 있다. 이것만큼은 좀 생각해 봐야 되고 또 겪어 봐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저 문화인들은, 여기 보면은 국제간에는 미국 사람들이 제일 말을 못합니다. 미국 정부가 제일 말 못하요. 말을 못하는 거는 왜? 그 사람들이 말하면 한번 책임이 있어. 이런 말 했다. 이러기 때문에 말을 벌로 못 하겠다 말이오. 뭐 이 소련이니 이북이니 하는 데는 말하는 거 아무 뭐 백 번이라도 변동됩니다.
그런데 요새는 지금 알쏭알쏭해서 알기 여려운 때가 왔습니다. 뭐 공산주의뿐 아니라 민주주의 가운데서도 세계가 마구 헐어 놓고 통일됩니다. 마구 헐어 놓고 서로 화합하자 화합하자 해서 이것은 세계 각국이 그렇소.
호주 같은 데서도 그러고 뭐 북미 남미에서도 그렇고 소련서도 그렇고 중공도 그렇고 이북도 그렇고 모두 다 세계가 다 다 확 헐어 놓고 지금 화합하자 하는데 이것은 참 인간 누가 만든 게 아니고 화합을 해.
이북 물건이 여기 이남에 나오지요? 이남에 나와서 시장 안 나오요? 이북 물건이 시장 안 나와요? 나오는 걸 몰라요, 모두? 안 나오는가? 신문뿐인가? 나와 있지? 나와 가지고 팔고 있어. 이북 물건 이남에 팔고 있어, 지금. 이남 물건도 이북에 가고, 중공 것도 그렇고. 소련 물건이 우리 나라에 나오고 우리 물건이 또 소련에도 갑니다.
가속도로 이렇게 모두 막힌 게 터져 나가니까 모든 사람들은 참 좋다. 이제 이거 세계가 다 화합하고 화평된다 이라는데 이라기 전에 성경은 미리 가르치고 있습니다.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어찌 된다고요? 하나돼. 하나되는데 하나되는 그 목적이 어데 있어? 어린 양으로 더불어 그거 싸우는 걸 위해서 목적을 삼고 되고 있어.
그런데 거게서 승리할 사람은, 승리할 사람이라 말은 택한 사람, 불택자를 말하는 것 아니오. 택자 가운데에서 자기 일생에 신앙 생활 준비한 그거 준비는 영 준비 하는 게 아니고 이 심신으로 돼 있는 육 준비인데, 육이 성화되나 안 되나 하는 그 준비인데 영은 변동 없이 했지마는 영의 권위는 어데 있는고 하니, 영 자체야 완전이 됐지마는 영의 권위는 그 영이 그 심신을 얼마 통치하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대통령도, 뭐 우리 나라에서는 오년 기간이라 했지요? 오 년 대통령이라면은 자체가 대통령 되는 게 문제가 아니고 대통령 권위는 어데 있는고 하니 대통령 권위는 온 국민이 백 프로를 복종하나 일 프로를 복종하나 그까짓 거 하나도 복종 안 하나 거게서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의 권위는 어데 있는가? 자기의 심신이 영에게 백 프로 복종하나 일 프로도 복종 안 하나? 그러니까 중생된 영은 있지만 중생된 영은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 영생, 하나님을 향한 영생 이 네 가지로 중생됐으니까 중생된 영의 주의와 사상과 목적과 방편과 노력은 이 네 가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이 심신은 하나도 순종 안 합니다. 이 심신은 하나도 진리에도 순종 안 하고 영감에도 순종 안 하고 사죄 칭의 화친에도 순종 안 하고 하늘나라의 소망에도 순종 안 하고 항상 땅에 있는 소망뿐이오. 이래 같이 살았지마는 마지막에 부활할 때에 보니까 그 몸을 통치한 것이 하나도 없어. 그 영은 영 혼자뿐이고 또 이 심신의 형체는 다 부활합니다. 심신의 형체하고 그 영하고 이래 놓으니까, 몸뚱이는 있어.
몸은 있지마는, 몸은 뚱뚱하게 그래 있는데 이거는 뚱뚱하게, 내가 어떤 사람 보니까 뚱뚱하게 있는데 이거는 걷지도 못하고 누웠다가 일어나지도 못해.
이러니까 옆에서 또 거들어 줘야 일어나는데 뭐 몸은 막 이렇습니다. 몸은 이런데 거들어 줘야 일어나지, 소변할 때도 또 여럿이 달라들어 가지고 해야지 몸은 뚱뚱한데 힘이 하나도 없다 말이오.
이거 모양으로, 나는 그런 걸 볼 때마다 이다음에 하늘나라 가 가지고, 우리가 부활해서 가는데 영은 속에 있습니다. 영은 속에 있지마는 몸이 말을 들어야지? 이 심신이, 마음이 말을 안 듣고 이 고기덩어리가 말을 안 듣고 이라니까, 안 듣는데 그나마 안 들으면 그게 없으면 하지마는 뚱뚱하게 크기는 큽니다. 있어도 기능이 없어.
그래 내가 오층에 올라갈 때 보면 쪼그맨한 게 말쪼그맨한 한 서너 살 먹는 그게 막 기어올라가는데 내가 못 따라가. 나는거게 따라 올라갈라면 뭐 헐떡거려 못 견디겠어. 이 몸뚱이야 얼마나 큽니까? 이렇지마는 그걸 못 당하겠다 그거야.
이것 모양으로 하늘나라 가면 이제, 부활할 때에 그 형체는 다 부활합니다.
형체는 부활하지만 속에 기능이 문제라. 실력이 문제라. 그러기 때문에 영위 권위는 뭐이냐? 자기의 심신을 통치 지배할 수 있는 그 지배권이 자기의 실력인데 지배를 다 하면 실력 있는 건데 지배는 하나도 못해. 그러니까 이것을 지금 우리가 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만 살고 말 그런 불택자 같으면 소망이 없기 때문에 뭐 이래 살아서, 민첩해 살아 가지고 대통령으로 지낸 사람이나 저 아주 수고하고 남의 종으로서 그저 죽자껏 일해 주고 밥만 얻어먹고 사는 그 어리석은 사람이나 꼭 같습니다., 실은.
이래 살았으나 저래 살았으나 같은데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는 조금 달라요.
그래 산 거는 고통이 적고 더 거석하게 산 거는 고통이 많고, 또 지옥에 가서 보니까 또 달라. 이거는 세상에서 잘 지내던 버릇이 있으니까 '야, 여봐라' 하면 전부 다 '예' 하는데 지옥 가 가지고는 그런 게 하나도 없으니까 아예 종인 줄 알고 지옥 가 가지고 밑에 천물로 있는 것과 제일 존귀한 자리 있던 것이 천물로 있는 거와 다르다 그거요. 이러니까 세상에서 잘사는 그게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세상 딱 끝나고 난 다음에는 다 같애요.
세상을 떠날 때도, 자기 애착하는 애인이 하나도 없어. 사랑하는 처자가 아무도 없고 친구도 아무도 없는 사람 있고, 그 사람은 모든 사람이 죽었을 때에 죽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어. 그게 하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죽어 놓으면 눈물을 흘리고 며칠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야단이라. 그거 좋은 것만치 불행스럽다 말이오.
이러니까 땅위에 사는 생활이 뭐 이러나 저러나 꼭 갈고 예수 믿는 사람은 소망이 있어. 영원한 소망이 있고 영원한 소망을 이루어가는 것이 이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이 중요해요. 이러니까 뭐이든지 바로 알아야 되겠다 그거요.
그러니까 좀 문화인들과 미개인들이 다른 것이 문명한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상대할 때에 그것을 상대하는 그 시간 거리가 깁니다. 미개할수록이 시간 거리가 짧습니다. 그만 한 시간에 보고 '저거는 의인이다. 저거는 죄인이다. 저거 위대하다 요렇게 아주 속단 속평을 해 버립니다.
그러나 조금 문화인들은 '좀 두고 보자 그 사람을 보면 과거에 그 사람이 얼마? 과거를, 그 사람의 과거를 한 십 년 더듬어 봅니다. 한 이십 년 더듬어 봅니다.
이십 년 더듬어 봐도, 이십 년 더듬어 봐도 흠이 없다. 오십 년 더듬어 봐도 흠이 없다. 또 그러면 앞으로 보자. 앞으로 일 년 더듬어 봤으면 인제 다 알 것 아닌가? 아직 모르겠다. 십 년이 되고 난 다음에 이제는 다 거게 대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 알 것 아닙니까? 과거 내가 한 십 년을 더듬어 봤고 그 사람 미래에 대해서도 한 십 년 동안 내가 겪어 봤고 그라니까 한 이십 년 동안을 봤지마는 그거 가지고 모르겠다. 한 사십 년이나, 그 사람의 생애에 한 사십 년이나 쭉 더듬어 보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그것이 지성인들입니다.
이래서 제가 여게 대해서 절실히 느껴진 것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공부를 보낼라면 두 군데 보내라 했어. 내가 공부하라 하는 거 어데 보내라 했지요? 하나는 어데요? 하나는 법과요. 하나는? 하나는 사학. 법과와 사학을 보내라 했어.
법과를 보내라 하는 것은, 법이라 하는 것은 그래도 사람들이 저거 양심상 지혜상 다해서 이렇게 해야 이게 바로 되겠다 하는 것으로 대개 법을 정한 거라 말이오.
그러나 법이 정해질 때에 그 권력가가, 권력가가 자기 권력을 기준해서 법을 정하는 그것은 썩은 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 법 중에는 로마 나라에서 정한 그 법이 가장 공평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나라 법도 자꾸 법이 자꾸 개헌돼 가는 거는 뭐이냐 하면은 권세 있는 사람이 저거를 표준해 가지고 저거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정했기 때문에 거게는 유리하지마는 그다음 다른 세대에 가 보니까 틀렸다 그거요. 그거 또 고쳐야 된다 그거요. 법을 자꾸 고친다는 그것은 큰 수치요.
그것이 미개인이라는 그 증거입니다. 그것보다도 이제 사학을 공부하라. 사학을 공부하라 하는 것은 천 년 동안 된 일을 경험해 볼라 하면은 그 사람이 다 경험해 봅니까? 못 보지요. 못 보지마는 천 년 동안 역사는 그래도 대략 기록돼 있기 때문에 천 년 역사를 보면은 천 년 동안 이런 일이 저런 일 되고 저런 일이 이런 일 되고 자꾸 이래 하는 그걸 한 눈에 볼 수 있다 말이오. 볼 수 있기 때문에 뭣 보고 '야 좋다' 아니라. 그다음에 보니까 나빴거든. 이러기 때문에 그런 가운데서 사람들의 이 두고 보는 견해, 견해가 넓어집니다. 견해가 넓어지고 그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학을 공부시키라 이렇게 말합니다.
법을 공부시키라 말은 그거는 그래도 이 법 저 법 법하고 주 한테 주 모아 놓으면은 모든 공평의 인간들이 찾고 있는 그 정의와 공의는 뭐이다 하는 것을 그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법을 공부하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회자가 될라 하면은 철학을 공부해야 된다' 어리석소. 철학과 기독교는 정반대입니다. 철학은 기독교와 비슷한 줄 알자마는 정반대요.
철학은 어데서부터 시발해 가지고 어데로 향해서 가는 것입니까? 철학은 자체에서 출발해 가지고 인간 속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철학입니다. 암만 돌아다녀 봤자, 인간 천 명 만 명을 더듬어 돌아봤자 그게 인간이지 인간을 탁월하는 차원은 아니라. 또 그거는 땅에서 시작해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오.
기독교는 어찌 됩니까? 기독교는 땅에서 올라가서 점점 커 올라가는 것입니까, 기독교는 하늘에서 점점 내려와서 퍼쳐가는 것입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라.
이런데 이걸 모르기 때문에 목회를 할라면 철학을 공부시켜라 이래. 도를 모르기 때문에.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소리요.
이래서 제 밑에서 하는 사람들은 아마 거의가 다 법을 하게 돼. 법을하라 하니까 '무슨 저거 정치가가 될란가?' 우리 딸들도 법을 했어. 다른 거 안 시켰어. 대학 갈 때는 꼭 법대를 보냈어. 우리 막내 딸도 이화대학에 다닐 때에 법대에 공부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성적이 좋은데 이 법대에 이렇게' 나는 목적이 법대이기 때문에.
법대면 정치 할라고? 정치 할라 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인간의 모든 공평된 공동 의사가 무엇이며 공동의 의견이 뭐인가? 모든 사람의 공동 의견을 자기가 알고 살아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자기 단독의 개인 주관만 되기 때문에 이 일이 시야가 좁고 공평되지 못한다 그말이오.
그래서 우리 OOO목사가 미국 갈 때 '나는 뭘 공부를 하랍니까? '너는 가서 사학을 해라' 이라니까, 사학 하라 하니까 '나는 조직신학을 하면 싶습니다.' '그래, 그러나 사학 하는 게 좋을 건데' 해서 보냈다 말이오. 보내니까 처음에 가서 갈 때는 사학을 시작했다 하더니만은 사학을 시작했다가 다른 과로 전과를 해 버렸어. 조직신학인가 뭐인가 이렇게 전과를 했어.
그래 그때 내 마음에 '그래 네 맘대로' 해라 그러면 나는 그만 그때, 사람을 지도하다가 안 들으면 뒤에는 말 안 합니다. 말할 필요가 없어. 나 우리 총공회 지금 이거 교역자들 지도하는 거 인제 내가 손을 뗐어. 마음대로 해라. 내가 과거에 지도한 게 잘못된 게 아니라 그대로 한 것이 그대로 하면은 거게만 복종하면 이 교회가 벌써 굉장히 커졌을 것입니다. 내가 성경대로 했지 내가 성경을 벗어나서 할라고 하지 안 했어. 그러기 때문에 나는 기독교는 독재라 말을 내가 담대히 해.
얼마 있으니까 나중에 편지가 왔어요. '다시 내가 사학으로 돌아갔습니다.
사학으로 다시 전과를 했습니다.' 내가 사학 하라고 말했는데 가 가지고 사학 시작했다가 또 조직신학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사학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아마 지금은, 내가 물어보지 안했는데 언제 한번 물어 볼라 합니다. 'O 목사, 가 가지고 내가 가기 전에 사학을 하라 했는데 그거 지금 사학 공부하고 나니까 어때? 후회가 돼, 잘됐다 싶어?' 내가 한번 물어 볼꺼요, 내가 언제. 한번 만나면.
그렇게 저거 보는 견해는 짧아. 좀 산에 높이 올라간 사람은 보는 시야가 너르기 때문에 보지마는 밑에 사람은 그걸 못 보는 거라.
이래서 사학을 공부하라 그말은 인간의 생애나 인간의 운명이나 나라의 그 운명이나 그 시대의 운명이나 그런 것을 좀 넓게 보라 그 말이오. 넓게. 넓게 길게 봐서 조그만한 토막에 빠지지 말라 그말이오.
그 저 쉰발쟁이 누가 알아요? 쉰발쟁이라는 벌거지 아는 사람 있어요, 쉰발쟁이라는 벌거지? 발이 쉰 개 라고 쉰발쟁이라. 쉰발쟁이 아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몇 없구나. 쉰발쟁이라는 벌거지가 있는데 그림자라고도 해. 이름을 그림자라고도 하고, 왜 그림자라 하느냐? 날래서 퍼뜩퍼뜩 어데로 갔는지 몰라요.
그래 그림자라 하는데 발이 쉰 개라. 발이 쉰 개인데 그놈을 잡아 가지고 발을 열 개를 떼놓습니다. 열 개 뗐거나 말았거나 상관이 없어. 스무 개를 떼 놔도 상관이 없어. 스무 개 떼놔도 걸어가기는 그대로 걸어가요.
이렇게 모든 것을, 역사를 이래 공부하면 쭉 계속해서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대에 따라서 상하지를 안해. '야, 이 데모가 오니까 천지가 데모고, 데모는 이 데모 세계가 온 세계를 점령하고 이대로 장원하겠다' 하지마는 역사를 본 사람은 바람 불 때도 있고 바람이 잘 때고 있고 소나기 올 때도 있고 가물 때도 있다.
그걸 보는 사람은 그 소나기 오는 걸 보고 '이 소나기가 천지가 되네' 그 소나기 거기에만 속해 가지고 동하고 정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를 안하고 좀 역사를 알아서 유유하게 되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길게 생각 해야 돼. 그래서 말할 때에 들어보면 '조거는 말뿐이다. 그래도 저 사람은 말과 그 실상을 맞출라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뭐 실상이야 그게 어찌 되든지 우선 빈적거려 나가서 상대방에게 설득만 시키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 상대방에게 설득시키는 것보다도 조만간에 그 사실이 나올 터이니까 사실과 내 말한 것이 틀리면 이거 탈이다 사실에 맞추어 볼라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은 상당히 그거 인격이 있는 사람이오.
그보다도 내가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나 안 맞나?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 안 맞는다 요거 보는 사람 대단히 지혜 있는 사람이오. 그러나 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그렇지 안해. 하나님의 뜻에 맞고 안 맞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좋아서 축복하나 안 하나 거게 맞출라고 애를 써.
그러기 때문에 뭐 소돔 고모라 성하고 적산, 전쟁해 가지고 뺏든 적산 그거야 뭐 아브라함이 차지하는 것이 정한 이치인데 거게 대해서 말할 게 뭐 있어? 그거 안 차지하는 그 이유가 뭐이야? 그것은 차지하는 게 이치야 맞지요. 그거 차지하면 하나님께서 잘 못했다고 정죄하겠소? 그거 당연한 이치 인데, 전쟁해 가지고 전쟁해서 이긴 자가 진 자의 재산 차지하는 거는 그거 정한 이치인데.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서 그거 축복하지 안하겠다 그말이오. 그면을 보고 산 것이 아브라함의 말한 것이요 행동한 것입니다. 길이길이 보아 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뭐 단편적이라. 저 사람은 저거는 말뿐으로 사실에도 비추어 보지 안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에는 생각지 안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은 생각지 안해. 멀건 이거 하나님 앞에 저주 하고 진노할 그걸 가지고 일시 입을 내돌려 가지고 사람을 제 사람 만들면 된다 그거요. 대개 여게 나간 사람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요 다. 이러니까 사람은 좋아하지마는 실은 보면 길게 보지를 못하는 사람들이라.
그래, 뭐 시간 많이 갔는데 '보라' 보라 하는 것은, 보라 그 말은 무슨 말이요? '보라' 살펴봐라. 심사해 봐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꾸 생각해 봐야 돼요.
보라. 뭘 보라? '아버지께서' 아버지라고,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인데, 아버지로 우리가 알고 아버지로 부르고 또 우리 아버지로 이렇게 나타나서 우리가 알고 부르고 하는 것은 언제부터 이 아버지를 알고 부릅니까? 중생됐을 때 알고 부릅니까? O집사? 중생됐을 때에 아버지로 알고 부릅니까? 봐, 저 모르니까. 좀 똑똑히 알아야지.
언제 아버지로 알고 부르는지? 여기 보자, 뭐꼬? O가? 믿기 시작한 때부터 비로소 아버지로 부르는 거라. 중생돼 가지고 믿기 시작한 때부터 아버지로 부르는 거라.
그런데 '보라 아버지께서', 그러면 지금 중생돼 가지고 아버지를 알고 난 다음에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어떠한 사랑을 주사 그러면 아버지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사가 아니오. 어떠한 사랑을 주사, 어떠한 사랑을 주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는 말입니까, 사랑의 작용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말입니까 사랑 자체를 주셨다 말입니까? 뭐이요? 사랑 자체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랑 자체를 주셨는데, 그러면 아버지는 그 후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알았지요. 알았는데 그 사랑 자체를 주셨는데 사랑 자체를 제일 처음에 주신 자체, 그 사랑 자체, 사랑 뭉텅이, 사랑 덩어리 말이요, 사랑 덩어리 사랑 본체 그것을 줬는데 제일 처음에 주신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는 제이위 성자시요. 그때부터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도성인신할 때만 독생자 주신 것 아니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어.
그라고 난 다음에 둘째 사랑 주신 것이 뭐이냐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 일에 전심전력 기울여서 이 일만 하자 하고서 하나님이 목적 정하신 일이 있는데 그 목적을 우리에게 줬어. 하나님이 전심전력 기울여서 이루시는 그것을 우리에게 렀다 말이오. 목적을 주신 것이 하나님이 둘째 사랑 주신 것이오.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걸 주신 것이 셋째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오.
또 넷째 사랑은 뭐입니까? 넷째 사랑은 뭐이요? 하나님의 예정을 우리에게 주셔.
그 예정을 줬어.
또 다섯째 사랑은? 창조를 주셨어. 창조 그거 전부 다 우리를 사랑, 우리 것이라.
전부 우리 위해서 했어. 이 사랑의 그 넓이와 깊이와 길이와 높이를 좀 해 봐야 된다 말이오. 이런 사람들이 뭐 어떤 이 세상 그 소망 속에 파묻히겠습니까? 지방 정실에 파묻히겠습니까? 혈육 정실에 파묻히겠습니까? 이러니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이 말씀을 도무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거 모두 파묻어 놓고 있습니다. 왜? 알 수가 없어요. 자기들의 주관들이 있기 때문에. 주관이요 다 매여 가지고 있고 혈육 주의요 매여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지. 껍데기를 벗어야 알지. 이러니까 이것 때문에 여게서 나간 사람들 많습니다.
내가 몇 번이나 '너는 혈육주의에 매였다' 너는 '나는 성이 뭐인데. 너거 성받이, 과거의 그 대성받이들은 참 불행스럽습니다. 대성받이는 불행스러워. 대성받이는 그 대성들 그때는 단위가, 단위가 문중 단위 라요. 김가는 김가 이가는 이가 그것이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가리켜 문중 단위라 이라는데, 그 단위로 살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언제든지 그만 김가면 김가, '우리 김가' '우리 이가 '우리 백가' 그만 그렇게 저거 단체 저거 성, 성과 본이 다 같으면 그만 그거는 하나가 돼 가지고 떨어질 줄을 모르고 그것이 저거편인 줄 압니다. 이걸 벗어나지 안하면 예수를 못 믿습니다.
그래 가지고 다, 그걸 내가 벗길라고 애를 쓰니까 목사님 정치는 나쁘다고. 왜? 혈육을 저거는 그래 가지고 혈육의 사돈 팔촌까지 막 들이 모으고 저거는 이거 또 지방 정실로 이래 가지고, 우리 교회서 저 경남, 영남회라고, 영남회라고 모여 가지고 지금도 있을 겁니다. 영남회 모일라고 나한테 얼마나 전화하고 또 통지도 오고 연락도 오고 자꾸 사람도 오고, 영남회에 이거 모여 가지고, 또 호남회를 또 모여 가지고 호남회 한다고.
그래 내가 '영남회 모이는 것도 그것도 세상 놀음이요 호남회 모이는 것도 세상 놀음이다. 그걸 벗어나지 안하면 너희들에게 구원이 가지를 못한다' 이랬는데 우리 교회서 영남회 모이는 데에는 거기 빠진 사람들이 없습니다. 호남회 모인 데서는 빠져 가지고 한 너덧 사람이 구원을 그만 실패했습니다. 요 부근에 지금 살고 있습니다.
모이니까 거게서, 모이니 영남회 호남회 모인다 해 가지고 거게서 어짜든지 좀 잘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힘을 힘입어 가지고 취직도 하고 또 그뭐 전화국에 어떤 사람이 있다고 전화국을 이용을 해서 전화 빨리 그것을 나올 수가 있고 어짜고 하는 그런 말 내가 들었어요. 누가 전화를 일찍 놓고 말리 놓고 어짜고, 지금은 그렇지만 그때는 전화를 놓기가 힘이 들었어, 조금. 시일이 걸려.
그런데 뻐뜩뻐뜩 전화 놔 주고 이라면 '그거 무슨 누구의 효력이라? 너거 호남회 효력으로 그랬구나. 그 망한다, 망해.' 그것을 너희들이 완전히 벗어서, 호남이 어데고? 국경이 없는 것인데 호남이니 영남이니 그까짓 게 뭐이고? 충청도니 서울이니 경북이니, 그런 테두리를 못 벗어나는 그자들이 어떻게 우주를 차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그라면 그 속에 파묻혀 가지고 뒈지겠느냐? 이래도 이걸 잘 안 들어.
하나님의 창조가 사랑이오. 그다음에는 무슨 사랑이요? 도성인신이 사랑이요 그다음은 무슨 사랑이요? 양성일위가 사활로 우리를 대속 하신 사랑이오.
그다음에 무슨 사랑입니까? 우리를 중생시킨 사랑이오. 중생 이게 사랑이라.
사랑으로 우리를 중생시켰어. 그다음에는 무슨 사랑이요? 우리를 예수 믿게 만든 그 믿음 주신 것이, 믿음 그게 순전히 사랑 덩어리라. 그라면 몇 가지입니까? 몇 가지요? 아홉 가지야, 아홉 가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는다 말은 하나님 아들이라 말뿐이라? 일컬음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참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 실상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 아들의 그 실상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 아들로서 부끄럽지 않는 이런 구비를 줘 가지고 이렇게 아들되게 했다.
그러면 우리의 하나님 아들 된 것이 몇 가지가, 몇 가지 사랑이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 됐소? 아홉 가지가 와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 거라. 우리의 생명은 몇가지가 우리의 생명 됐소? 네 가지가 생명 됐어.
그러면 이것을 지금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아들의 이것을 주시기 위해 가지고 그러면 종류는 몇 가지나 돼? 우주와 영계에 있는 모든 것이, 모든 존재가, 존재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되게 하기 위해서 마구 투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안 믿어. 뭐할라고 이렇게 만들까? 뭐할라고 만들까? 만드는 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위임시키시기 위해서, 위임시키기 위해서, 이걸 전부 우리 것이 돼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하라고, 그라면? 그것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거기가다 전달해 줘 가지고 그것들에게 충만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이렇게 된 하나님의 아들 된 우리들이 항상 마귀 이놈에게 유혹받아 가지고 땅의 것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게 했는고 그말이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모든 사람이 보고 인정할 만하고, 인정할 만하고 그를 가 치로 평가할 만한 그런 존재로 우리를 만들었다 그말이오.
뭘로 만들었는데 그래요? 뭘로 만들었는데? 우리를 뭘로 만들었는데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수 있는 참 실력이 있는, '그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다' 할 만한 그런 존재로 만든 거는 뭣을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어? 몇가지로 만들었어요? 저 손 들어,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로 만들었어요? 네 가지로? 아니오. 몇 가지 사랑을 줘 가지고 만들었어, 그거 이제 또 사랑을 붙여야. 몇 가지 사랑을 줘 가지고 만들었어요? 아홉 가지 사랑을 줘 가지고 만들었어. 이러니까 사랑 뭉텅이야. 이러기 때문에 사랑이 아닌 것은 다 헛일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계명 전체를 한 말로 말하면 '이제 내 계명을 지켜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했는데 그 계명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 계명이 사랑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 계명이요. 그러면 그리스도는 사랑 뭉텅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 정한 것도 사랑 뭉텅이가 목적을 정했어. 목적 그게 사랑뭉텅이라.
자꾸 기도하고 명상하고 자기가 사는 가운데서,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세상을 벗어나야 됩니다. 자기가 암만 가정이 좋지만 가정 속에 파묻혀 있는 사람은 가정이 이라면 이라고 저라면 저라는, 가정 좋게 하면 좋아하고 가정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는 그건 그런 걸 다 벗어나야. 가정도 벗어나야 되고 혈육도 벗어나고 심지어 자기 몸뚱이도 벗어나고 자기 생명도 벗어나야 됩니다.
그 몸 보고 살라 하면 헛일이라. 이제 우리가 가는 길은 몸에 배치 돼 몸을 다 버려야 될 때도 있고 생명을 버려야 될 때도 있고 그 몸과 생명보다도 그 귀하고 중요한 것이 우리 속에 든 영원한 생명인데 이것을 뭐 세상에 조금만 제 비위에만 맞지 안해도 그만 턱턱 집어던져 버려 가지고야 그게 껍데기 아닙니까, 얼마나 지금? 이래도 중생된 자, 중생된 자는 속에 있는 그 생명은, 마지막에 죽을 때는 다 그래. 이 죽을 때 가면 그때 이것도 저것도 다 던져 버리고 이제 죽을 때 되면 영생이 제일이기 때문에 그때 마지막에는 이제 돌아오요. 중생된 자들은 마지막에 죽을 때는 다 기뻐해요. 죽을 때는 다 기뻐하고 만족을 해요.
그러면 그 기뻐하고 만족하는 그것이 죽음에서도 기뻐하고 만족하는데 평소에 죽음 같은 것도 다 자기를 제재하지 못할 만치 기쁨으로써 신앙 생활 했다면 얼마나 잘 이루겠습니까? 지금 권찰회 모입니다. 또 교회 주변 청소를 계속 잘 하도록 합시다. OOO씨? 봐, 하나님의 일은 맡으면 복이 있는 거라. 저 새벽기도 잘 빼요. 이런데 보니까 이제 주변 청소하고 난 다음에 다른 날은 몰라도 꼭 월요일날 아침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맡을라 하는 거야. 주일학교 반사들이 암만 그래도 주일날 새벽에는 이게 일어나 가지고 뭐 이거 심방한다고 가고, 억지로 하나님이 복되게 만드는 거라.
하루 삼십 분 기도 잊지말고 계속하고 반사 선생님들은 꼭 공과를 외우도록, 외우는 게 제일 첫째입니다. 외우도록 하고 그대로 실천을 해 봐요. 그라면 거기서 알려지는 게 있어. 실천을 해 보면 알려지는 것이 있어.
그러고 부장 선생님들이나 반사 선생첨 보조반사 선생님들 모두 자기에게, 권찰님들이나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꼭 자기의 마음에 품어 놓고 길러야 되지, 자기 마음에 잊어버리지 안하고 마음에 품어 놓고 늘 생각하며 길러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자라지를 못해요. 지난 주간에는 단체로 기도하러 산에 간 사람들이 육백칠 명입니다. 좀 많이 늘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