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 01:01
하나님의 사랑
1981. 4. 7. 화새
본문 : 요한일서 5장 1절 - 4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3장 1절 이하에는 보면 사랑을 보였습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주신 사랑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신구약에 강령되는 중심요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하는 말씀입니다. 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사랑을 귀한 것으로 모두 다 평가하고 또 교회 안에서도 사랑을 귀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사랑은 귀한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없고 사랑은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제일 가치있는 그 속성이요. 행동인 동시에 여기에는 사이비한 잡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치있는 것마다 거기에는 사이비한 거짓뿌리들이 많이 따라드는 줄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그것은 가짜가 없습니다. 진짜도 천하게 여겨서 천대를 받는데 뭐하려고 가짜를 만들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치있는 보배로운 것일수록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 보배에 눈과 귀와 마음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이 집중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가짜를 꾸며도 효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짜를 많이 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마음을 끄는 그런 것들에게 가짜가 많지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것으로서 가짜가 많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 중에 제일 참 아름답고 귀한 계명이요, 또 세상에서도 높이 평가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한말로 말해서 사랑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고 사랑이 제일이라 이랬습니다.
이러기만치 우리는 이 사랑의 사이비한 가짜가 많다는 것을 명심치 않으면 크게 속게 됩니다. 극히 보배로운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값이 비싸기 때문에 자기가 그것을 자기 손에 넣으려고 하면 상당한 댓가를 내지 안하면 그 가치있는 보배를 넣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있는 많은 자본을 주고 그 보배를 구입했는데 그 보배가 자기로서는 진짜인 줄 알았으니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아낌없이 드려 그 보배를 찾는데 만일 그 보배가 가짜라면 자기의 모든 소유는 다 절단났습니다. 그것이 가짜를 가짜로 확인하기 전에는 그 사람은 보배를 가진 줄 알고 살림을 다 팔아서 그걸 가졌다 할지라도 자기는 그전 소유보다 더 큰 소유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매우 기쁘게 뱃심있게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뿌리였을 때에는 자기는 절단났습니다. 고만 참 기절될 것이고 그 사람은 아주 참 죽는 거와 같은 그런 마음에 고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사랑은 보배로운 것인데 이 사랑이 계명 중에 제일 높은 계명이요, 또 모든 계명은 다 이 사랑 안에 포함된 것이고 사랑 하나를 위한 계명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면 이 사람은 최고의 법을 지킨 사람이라 이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법을 다 지킨 사람이라.
이러니까 자기 자신의 자기는 사랑을 가진 사람으로 사랑을 행하는 사람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이렇게 자인이 된다면 자기 마음에 자기는 최고의 법을 지킨 사람으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갈때에 담대히 갈 것입니다. 기쁨으로 갈 것이고 담대히 갈 것이고 뭐라고 무엇이 어찌 된다 할지라도 마음에 씩씩하고 자신있는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랬는데 만일 그 사람이 거짓뿌리라면 그 사람은 참 일생동안 비교못할 그 속임을 받은 생활이라 일생이 다 헛된 것 수포로 돌아가고야 말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귀는 이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마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끼 때문에 고만 사람만 가짜 사람을 그 사람에게 인식시켜서 사람으로 인식시켜 자기의 일생을 이 가짜 사랑에다가 다 기울일 터이니까 그 사람의 일생은 마귀가 완전히 박탈을 해서 제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살아 있지마는 기본구원만 있지 완전히 껍데기를 벗겨서 완전히 거지를 만들어서 구원은 하나도 없도록 거지를 만든 이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는 가짜 사랑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 사람들을 유혹시키는 일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래서 세계는 악령이 이 가짜 사랑을 가지고 믿는 자들을 다 미혹시켜서 절단내려는 여기에서 교회는 다 마귀에게 완전히 삼켜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사랑은 희생이요 사랑은 봉사요 사랑은 관용이요 사랑은 이해요 사랑은 화목이요 사랑은 용서요 이렇게 이 사랑이 이것입니다.
이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일을 주력해서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생을 봉사로 일생을 희생으로 일생으로 화평으로 일생을 인내로 일생을 관용으로 일생을 소망으로 이렇게 지냈는데 이것이 참 사랑이 아니고 가짜 사랑이라면 그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는 도적맞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악마와 마귀는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짜 사랑을 만드는 데에 제일 주력하고 있고 진짜 사랑을 참 사랑을 이것을 혼돈시켜 가지고 이것을 부인하도록 참 사랑은 부인하고 가짜 사랑을 이것을 사람들이 인정해서 주력하도록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기에 안 믿는 사회도 이러하고 또 믿는 교회들도 이러하고 이단들도 다 이러하고 정통들도 이러해서 지금 세계가 사랑의 주력은 하고 있습니다. 이 천년성이라는 그 천년성도 거기에서 자기 살림을 다 털어바쳐 가지고 일생을 천년성 안에 있는 그 공장에 자기는 근근히 연명하고 성심성의를 다 기울여서 하는 그 모든 노력은 사랑의 노력입니다. 사랑의 노력이요 최고의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봉사의 노력의 희생의 노력이요 그것이 형제를 구원하는 노력이요.
참고 견디는 사랑이요 모두 다 그런데 왕창 속았습니다. 그것은 천년성에 들어가 가지고 사랑의 최고의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일생동안 그는 완전히 무서운 도적에게 일생을 다 빼앗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범위가 좁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금 지혜있는 사람은 아 이거는 하나의 착취다 이것은 하나의 그 (박태선)씨를 위하는 것이요 그가 하나 착취하는 것이다 하는 고 범위를 아는 사람들은 거기에 들어갔다가도 나오고 또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하지마는 그것을 분별 못하는 사람들은 다 삼키졌습니다.
서부교회도 교회가 점점 커지고 교인들도 많이 모이니까 저 목사도 (박태선)이와 같이 전부 착취해 가지고 자기 걸 만드는데 저 어리석은 것들이 꼬여 가지고 (박태선)한테 다 꼬여서 만든 것 모양으로 저렇게 착취를 당하고 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 코 묻은 돈까지 마구 훌쳐서 마구 들이니 참 저 악질이다 이래 가지고 주일학교 오는 것을 방해를 하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도 다 오해를 했지마는 그런 면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자들은 그런 것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보다도 눈이 더 멀었습니다. 소경이 더 돼버렸소. 이래서 세계에 사랑의 정의를 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모두 박사가 천도 만도 넘지마는 이 박사들이 논문낸 것은 다 인간 죽이는 논문들만 대개 냈지 이 사랑에 대한 사랑이 뭐이라 하는 그런 정의는 간단한데 내지를 못했습니다. 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또 뭐인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사랑에 대해서 늘 모두 말하고 있기를 사랑의 종류는 암컷 수컷이 서로 사랑하는 정욕의 사랑이 있다 그렇습니다.
제가 잉꼬부부라 하기 때문에 잉코가 얼마나 그 암수가 사랑하는고 하고 잉꼬를 사다가 길러봤습니다. 이거는 순전히 참 환하게 정욕의 사랑이지. 그 사랑이라는 것은 거기에 하나도 섞여있지 않는 것을 봤습니다. 알기 쉽게 또 하나는 동류의 사랑이라 합니다.
이 청소년들이 죽을동 살동 모르고 그 소년의 우의라 소년들이 서로 저거 동무끼리 사랑하는 소년의 우의 그 정리에 어른들도 자기와 행동이 같고 형편이 같고 처지가 같고 생활이 같고 모든 수준이 같고 이럴 때에 아주 살아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동무의 사랑이라 하는데 소년의 우의 그런 것도 동류의 사랑 속에 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평가적 사랑이라 하는데 말을 평가적 사랑이라 그 뭐 하나님의 사랑은 참 아무리 따져보고 따져봐도 그 사랑은 참 사랑이다 하는 것으로 평가의 사랑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에 기록해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압니다. 당시에 있는 제자들도 사랑했다는 것을 성경을 보아서 압니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를 사랑했으면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그분이 우리에게 무슨 친근히 했습니까 친절히 했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봉사했습니까 희생했습니까 무슨 관용했습니까? 녜 봉사와 희생은 했습니다. 했지마는 한 것이 주님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주님이 나를 사랑했지마는 나는 주님이 나를 사랑한 것을 내가 압니다. 나도 모든 것 다 기울려서 주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사랑했지마는 당신이 나를 사랑함으로 나에게 직접 내게 대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직접 내게 대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사랑을 이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서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 그를 사랑하고 싶지마는 당신은 나에게 직접 사랑함으로서 밥 한 숟갈이라도 떠 준 것 없습니다. 뭐 돈 한 푼도 준 것도 없습니다. 하나도 봉사한 것 없습니다. 다만 나를 사랑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날 사랑한 사랑입니다. 나 때문에 날 사랑한 게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날 사랑한 사랑인데 또 행동도 하나님 때문에 날 사랑하면서 날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하나님에게 대해서 다 했지 내게 대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이 내게 대해서 직접 물 한방울도 떠 준 일이 없습니다. 요만한 수고도 해 준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나를 사랑했고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순전히 하나님에게 대해서 한 것이지 내게 대해서 직접 한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대해서 직접 한 일을 받은 일이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 때에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셨다 하는데 뭐 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날 사랑하는 이게 사랑의 강령입니다. 사랑의 벼루줄입니다. 이것이 원 줄기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뿌럭지입니다. 뿌럭지.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랑이 나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나를 사랑했는고로 나는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시고 보호하십니다.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지마는 또 하나님 사랑하는 사랑하고 나를 또 따로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사랑했다든지 하나님을 버리고 나를 사랑했다든지 하나님을 대립적으로 나를 사랑했다든지 나를 사랑한 것이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되지 아니하는 그 사랑 가지고 날 사랑했다면 나는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유일한 원수의 미움의 대상이 되어졌을 터이니까 나는 영원히 존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랑의 뿌럭지는 이것입니다. 요새는 교회나 이방이나 모두 다 주장하는 사랑이 이 뿌리가 아닙니다. 사랑이 이 뿌리가 아닙니다. 이 뿌리가 아니고 파고 들어가면 전부 자기입니다. 파고 들어가면 자기요. 이제는 정욕 그것은 밝혀졌기 때문에 그것을 피했습니다. 동류 그것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다시 집어서 그 속에 파묻었습니다. 어떤 자는 전 인류를 위해서 어떤 자는 조그만한 부분적인 자기 나라를 위해서 더 세부적인 자기 민족을 위해서 어떤 도덕을 위해서 어떤 명예를 위해서 인간의 사상을 위해서 뿌럭지가 그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의 사랑입니다. 모래 위에 건설한 사랑입니다.
뿌럭지가 틀렸고 또 위에 자라는 가지가 틀렸습니다. 둥치와 가지 땅 위에 올라오는 줄기가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뿌럭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일을 했는데 이게 근거요 사랑의 근거요 사랑의 뿌럭지인데 이 사랑을 가지고 땅 위에 올라오는 나무 줄기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는 일은 직접 우리를 사랑하는 일은 어떻게 했는가? 우리를 사랑하는 일은 첫째가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의 지성법과 지공법을 지키는 여기에 기울였습니다. 지성법과 지공법을 지키는 여기에 기울이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 다음에는 삐뚤어진 것을 멸했습니다. 삐뚤어진 것을 멸하고 삐뚤어진 것을 용납지 안할 뿐 아니라 삐뚤어진 것을 있는대로 다 전멸을 시켰습니다. 이게 둘째 행위입니다. 무엇이든지 삐뚤어진 것, 삐뚤어진 그것을 껍데기를 멸하는 게 아니라 알맹이를 멸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는 완전히 도멸됐습니다. 죄는 완전히 도멸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랑은 그게 아닙니다. 죄를 숭상합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그가 그 도덕정치 사랑정치 인권 옹호 정치한다고 하는 사년 동안에 얼마나 부패했던지 내가 어떤 그 보도에 보니까 미국에 24초만에 살인이 하나 생깁니다.
통계가 나왔는데 이십사 초만에 살인이 하나 생기고 7초만에 강간이 하나 생깁니다. 그래도 거기에 대해서 형이 없습니다. 형이 없는 게 사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순천 사건에 있는 사람들 전부 다 특사라 해 가지고 완전히 면사됐습니다. 암만 백명 천명을 죽여도 죽인 사람을 죽인 것은 큰 죄요. 그 사람이 사람 죽인 것은 용서하는 것이 의입니다.
죄악은 점점 관영해갑니다. 공산주의 진영은 민주주의 진영보다 의가 두두룩합니다. 의가 높습니다. 공연히 거기에서 숙청 숙청한다고 해도 그 한 사람 죽는 그것도 유명해서 이름이 났지 그럼으로써 거기에서 살인이니 강도니 이런 일은 없습니다. 강간이니 이런 일도 거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보실 때에 도덕을 어느 도덕을 깨끗하게 볼런지가 문제입니다.
완전히 지금 눈이 디비져서 완전히 소경이 됐습니다. 교회 안에도 아무리 잔인무도의 행동을 해도 그것을 용서하는 것이 용서가 뭐인지도 모르고 사랑이라 관용하는 게 사랑이라. 암말도 안하고 덮어두는 것이 사랑이라. 사랑은 죄를 가루는 게 덮어두는 게 사랑이라 밝히면 사랑이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관념들이 완전히 디비졌기 때문에 그 사람의 나쁜 걸 말하면 그만 상을 찡그리며 그 뭐 상처를 말할 게 있는가 살인자를 용서했다 하면 아이구 듭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동인 동신이를 죽인 그 살인자를 신학교 보냈으니까 해와 같이 빛나는 사랑이라 하는데 하나님 앞에 가보면 뭐이 어찌 될런지 모릅니다. 그로 인해서 죄악이 도말됐는지 죄악이 숭상이 됐는지 기독자의 정신을 혼란시켰는지 기독자의 정신을 참으로 똑바로 만들었는지 가보면 놀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로 사랑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이 일생동안 하나님을 위함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한 그게 완성이 됐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위함이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함으로 위하는 그 행위를 우리에게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은 자신이 지성법과 지공법을 이행하는 그것을 첫째로 근거로 삼았습니다. 둘째는 당신이 손이 닫는대로 죄악의 근본인 미혹자인 악령으로 더불어 싸웠습니다.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서 악령은 주님을 범죄케 하려고 주님은 악령의 방편인 죄를 도말하려고 이 씨름을 해서 결국은 죄를 완전히 도말했습니다. 벌써 죄는 뿌럭지가 끊쳤습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죄악은 완전히 도말됩니다. 이 세상은 죄악이 관영해지지마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죄악과 이 세상은 완전히 불태워버리고 죄악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또 하는 일은 옳은 것, 의, 옳은 이것을 건설할라 할 때에 방해자가 많았지마는 한 방해도 낱낱이 다 싸워 당신의 전부를 기울여서 이 옳은 것을 건설하는 데에 매진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점에 대해서 사랑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보이지 안하고 요 네 가지 뿐입니다.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을 지키는 것, 죄를 도말하는 것, 의를 건설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무슨 일도 없었소. 밥 한그릇 주고 하는 그런 아부하는 그런 일이 없었소. 이것만이요.
그러므로 카터 대통령이 도덕 정치를 하려면 첫째는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을 강조해야지 그 법에 위배된 것은 다 개법을 해야지요. 거기에 위법된 것은 다 개혁을 해야지요. 모든 삐뚤어진 걸 마구 쳐야지요. 소련과 중공과 이북에 있는 삐뚤어진 건 마구 때려쳐야지. 있는 힘대로 쳐버려야지요.
이래서 옳은 것을 세워야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니까 하나님과 동행없는 사람이니까 무신론을 주장하니까 막 꺽어 죽여야지 없애야지 사람을 죽여 그 사상을 절단을 내버려야지.
이게 사랑인데 사랑은 뭐인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요새도 지금 천지를 모르고 날뛰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 사랑이라야 된다 이래서 사랑의 정치한다고 전대통령이 취임할 때에 죄수를 사만 얼만가 뭐 전부 내놨지 요새는 또 죄수들은 죄지었던 전과자라는 이름까지 완전히 삭제해서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살인 강도가 지금 신문에 안나 그렇지 마구 자꾸 들어나고 신문에 실렸습니다. 듣는대로 다 들었습니다. 거리에 지금 안심하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게 정신이 빠져있는 일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됩니다. 재가 그 여 당 자 아니요. 옳은 것이면 언제든지 찬성하고 삐뚤어지면 언제든지 말합니다. 이정권 말년에 제가 선봉으로 나서 가지고 그것을 아니라는 것을 이 신학교마다 다니면서 말했습니다. 옳으면 옳다고 말합니다. 나는 지금 대항이 와도 박정권 지지합니다. 나는 그때 그전에 없어도 그런 것 아니요. 나는 전정권도 깨끗하게 하는 지지했지마는 요새는 지금 나는 얼얼떨해서 나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나는 요새는 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러기에 그 사랑은 뭐이냐? 호주가 그 가족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사랑하는 것인가? 사랑한다면 이 네 가지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가정을 하나님을 지성법과 지공법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지공법과 지성법을 강조해야 되고 죄를 도말해야 되고 의를 유지해야 되고 하나님 모시고 사는 하나님과 동거동행을 위주로 하면 그 호주는 가정을 사랑하는 가정이요 사랑하는 호주요 가정을 참 위한 것이 되지마는 뭐 사람이니까 지공법 지성법도 성경도 죄도 무엇도 어짜든지 인간 좋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는 이 썩은 사랑 이걸 완전히 고쳐버려야 됩니다. 한국교회가 완전히 세계교회가 다 죽었다고 할만치 이거 요 면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이 면에 대해서 죽었소.
그런고로 교회가 이것을 모르는데 이러기 때문에 교회는 아무리 사람을 모략중상을 해도 그걸 말하면 듣기 싫어해요. 모략중상해도 그만 묵인이라 용서라 관용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노아때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노아 홍수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수십억이 되는 그 수를 하나님께서 당신이 죄를 도말하시니까 그게 다 도말됐고 불의를 도말하니까 그게 도말됐고 그렇게 죄와 불의 하나님의 대적 이것을 도말하실 때에 도말 당하지 아니한 사람이 여덟 식구 나머지는 싹 도말당한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바라보고 그 사랑을 의지하지 얼마든지 악을 주장하는 사랑이면 그거는 지옥 중에 상지옥이 될 터이니까 나는 그런 하나님은 믿지 않습니다. 그런 예수님 믿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노아 홍수가 하나님의 사랑의 그 성격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죄인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죄인을 의인을 만드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죄인을 의인 만드는 거 죄인을 죽기까지 미워해서 죄인을 전멸하고 그 죄인을 변화시켜 의인 만들려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란 것은 살인소요. 죄인을 죽이는 곳이 죽이는 것이 교회요 의인을 살리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죄인의 요소는 죽이고 그 사람에게 없는 의인의 요소를 심어 가지고 의인의 요소로서 그 사람을 의인으로 살려 그 사람의 옛사람은 완전히 죽어져버리고 과거에 그 사람에게 없던 참 사람이 살아난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그 결과를 보아서 아나니 그 결과에 이 네 가지가 차차 생겨지느냐 이 네 가지가 커지느냐 이 네 가지가 차차 차차 흐려지느냐 없어지느냐? 거기에서 사랑과 미움이라는 그 결과는 열매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누가 내 어제 말 들었는데 누가 어느 나라에 가 있는데 그 나라에는 상점에 매를 파는 그런 곳이 있다 이랬는데 ○○○씨 어데라 했습니까? 홍콩. 홍콩에 그런가? 홍콩에 사람 때리는 매를 파는 상점이 있는데 누가 말하기를 딴 것은 필요 없으니까 사람 때리는 매가 있으면 좀 매 좀 사 가지고 오너라 그렇게 부탁을 했다 말 들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없는 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두려움과 사랑이 겸해야 됩니다. 그 매와 보호가 함께 있어야 되지 그거 없으면 망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