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 00:41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
1980. 10. 16. 목새
본문 : 예레미야 2 : 1-9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원하십니다. 어떤 관계를 원하시는가? 사무적인 관계, 사무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마땅히 관련되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그런 사무적인 관련, 또 책임을 책임지신 그런 관련 또 어떤 그 노동적인 그런 관련 또 서로 주고받고 하는 여수거래적인 그런 관련, 또 지위적인 지위적으로 어떻게 높고 우리는 어떻게 낮고하는 지위적인 그런 관련 그런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우리와의 그 소년들의 우의적인 그런 관계, 또 결혼의 부부의 그 첫사랑 적인 그런 관계 그것을 원하신다고 그랬습니다.
왜? 당신은 참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지극히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아지 못하심이 없으신 지적 능력이 무한하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능력적인 그 면이 무한하고 또 소유적으로 말을 하면 영계와 우주에 있는 것이 당신의 것이 하나도 아닌 것이 없습니다.
또 당신이 이것을 만드실 때에 그렇게 힘들어 만드셨지만 뭐 그렇게 힘들지를 안했습니다. 아 우리가 볼 때에는 아 지구 땅 덩어리 이거 하나만 공중에 달려 가지고 그것이 몇 천 년 동안 제 궤도를 따라서 움직이게 한다는 이것도 우리는 참 하나님이 말씀을 해서 아지 상상 못할 일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지구와 같은 이런 것이 몇 억억 인지 모르는 인간의 두뇌로 알아낸 것만 해도 항성 하나에 유성과 위성이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치 많은데 하물며 항성의 수만 해도 십억만이나 된다고 천문학자들이 그렇게 인간이 발견한 것도 한이 없다고 할만한데 이런 것을 만드실 때에 엿새동안에 다 만드셨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엿새동안에 다 만드신 이런 능력 있는 분이십니다.
또 이 우주로서 측량 못 할 영계도 당신이 다 만드셨고 지금도 그분이 아니면 이것을 운영을 할 자가 없습니다. 인간들이 과학을 가지고 떠들어싸도 과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엿새동안 만들어 놓은 그것을 몇 천년 거쳐서 하나 그 종적을 종목만 하나 발견해도 큰 발명가라고 이렇게 떠들고 하지만은 하나님은 그런 것을 다 엿새 동안에 만드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참 우리가 그분 크다. 그분 무한하시다. 그분이 위대하시다 해도 성경을 보고 아지만 하나님이 무한하시다는 이 무한에 대해서 아 하나님은 무한하신 무한이 크신 분이라 이렇게 성경에 말해 놨으니까 우리가 무한한 무한히 크신 분이라 이렇게 하는 것뿐이지 무한히 크다는 그걸 우리가 느끼지를 못합니다.
성신의 감동이 온 것 만치 우리가 느끼게 되고 알게되지 도무지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우리는 그 종적도 느낄 수가 없고 측량할 수가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알아야 되겠고 하나님의 지으신 것과 하나님이 이것을 운영하고 계시는 섭리와 이분이 우리와의 큰 관계를 가졌으며 또 가지기를 원하시며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시는가 하는 이것이 알 것 중에 가장 급하고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를 다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늘 기도할 때에 다른 것은 다 빠질지라도 성령의 충만을 달라는 그런 것은 성도들의 대개 빠지지 아니하고 매일뿐 아니라 매번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그게 있습니다. 이렇게 크신 분이 우리를 참 상대할 때에 사업적으로 우리를 상대하려고 하면 우리는 그분을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이 엿새동안에 이 모든 것을 만드신 그분과 어떻게 우리가 어깨 겨름을 해가지고 사업적으로 사귈 수가 있겠습니까? 거치는 것뿐이지 사귀지지를 못합니다. 능력적으로 해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해도 그렇고 의무와 책임적으로 우리를 사귈려고 할려고 해도 우리는 그렇다면 그 분 앞에서 절단만 나삐리고 정죄만 받고 말지, 우리는 이 상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에게 상대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소년들의 우의, 그 소년들이 서로 좋아하는 것, 무슨 생각도 없고 판단도 없고 이렇게 좋아하다 보면은 뒤에가서 어찌되나 장래에 무슨 비판이나, 평가나 그런 것도 없고, 그저 좋다 소년들이 저거 동무는 어쩔 줄도 모르고 이 밥 먹을 줄도 모르고, 뭐 이해도 가지도 없이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사상을 초월해 가지고 비판과 평가를 초월한 서로 우정을 가지고서 우의를 가지고서 사귀기를 원합니다.
이것 모양으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오. 우리는 어떤 지극히 작은 것인데 뭣을 그 가치는 따지고 한다면 도무지 하나님을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데 이분이 아무 것도 따지지 안하고 무조건 하나님을 하나님이 우리를 좋아하심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좋아하기를 하나님 떨어지기를 싫어하고, 하나님과 만나면 어쩔 줄 모르고 하나님만을 찾고 좋아하는 소년의 우의같이 결혼의 그 첫사랑, 뭐 말로는 결혼하면은 이런저런 어떤 그런 소망과 욕망을 가진다고 하지만은 그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결혼의 첫사랑은 이런 것, 저런 것 말은 공연히 우리가 결혼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해도 그런 것보다 앞서 그저 사랑스럽고 그저 좋아하고 신부는 신랑에 대해서 이 다른걸 생각할 여지없이 좋고 사랑스럽고 고만 뭐인지도 모르게 온 마음이 그게 다 끌리고 신랑도 신부에게 끌리고 그와같은 관계 이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원합니다.
그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자격으로서는 제일 사귀기 쉽고, 가까이 하기 쉬운 면, 또 사귀기 쉽고 가까이 하기 쉬운 면이라면 이것이 가치가 적으냐 하면 서로 사귀는데는 제일 고귀한 것이요 고상한 것이요 제일 고상하고 고귀하고 제일 쉽고, 우리로서 할 수 있는 이면으로 당신이 우리를 사귀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관계를 가졌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애굽이 전부를 학살하려고 이렇게 계획을 가지고 그때 이스라엘은 뭐 부잣집에 기르는 잡아놓은 짐승처럼 그런 위치에 있었지 뭐 항거 못합니다.
언제든지 애굽이 원하는 대로 죽이려면 죽이고 살리려면 살리는 이런 위치에 있었고 이런 세력에 있었습니다. 세력차이에 있었어. 그분들이 또 이스라엘 족속은 전멸하기로 그렇게 남자를 다 죽이니까 이스라엘 종자는 전멸입니다.
여자에게는 종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로 국가적으로 확정을 지워 놓고서 하는 그건 강하고 무섭고 참 모질고 독한 그 확정도 상관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에게 부르짖고 이럴 때에 상관이 없었어 그게 세력 있다고 강팍 하다고 바로 왕이 열 번이나 강팍에 강팍을 부렸지만 강팍한 것도 상관없었어 ***** 저거 입으로 나가라고 이렇게 할 만치 했고 또 나올 때에 바다가 가로막은 것이 대군이 추격하는 것이 물 없는 것이 물이 써 죽는 지형 사람이 살지 못할뿐만 아니라 다니지도 못하는 곳 다 들어가면 빠져서 죽는 구렁텅이. 오만 참 인간으로서 도무지 통과할 수 없는 그런 것을 다 뭐인지도 모르게 어려운 줄도 못가 몰랐고 겁나지도 안했고 뭐인지도 모르게 그저 참 갓난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만 보고 좋아하고 그만 있으면 다 될 줄 알고 그 어머니는 무능해도 제일 자기 보기에 제일 능력 많고 자기에 대해서 못할 것 없는 그 분 한 분이면 그렇게 여기지는 것 같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했을 때에 어떤 길을 가도 이스라엘은 이라니까 어렵겠다 그것이 없었습니다.
홍해 바다를 처음에 건너갔던 그들이 어렵게 생각했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솜씨 구경할라 했지 그 어렵지 안했습니다. 그곳이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하나님에게 소년의 우의 결혼의 첫사랑의 이곳을 가졌을 때에 애굽이 어렵지안하고 해방됐는데 나와가지고는 또 옛날로 돌아가서 많은 사람들은 그랬지만은 하나님의 요 관계를 끊지 안하고 고대로 가진 사람들은 홍해를 앞에 두고 걱정 하나도 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솜씨를 구경하자 하면서 경사 닥친 것으로 기뻐했습니다. 그리하여 홍해를 건너고 난 다음에 하나 하나가 전부 기적이요 기사요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그들은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아서 참 아무 소견 없는 철없는 아이가 어머니 의지하듯이 하나님 한 분만을 바래보고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 솜씨대로 너희가 바래보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나 내가 너희에게 대해서 어떤 실력 어떤 사랑 어떤 책임성 어떤 신실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이것을 40년 동안이나 보여주기 위해서 못갈 길 다 인도했고 못 있은 곳 다 머물고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 다 당하게 되도 하나도 어려움이 없었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의 그 실력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할 수 있었고 은혜를 베풀 수 있었고 마음대로 인도해서 인간 마음대로 살고 있는 모든 역사 세계들이 인간들이 놀랠만한 그런 길을 통과했고, 영광스러운 일을 통과했습니다.
이와같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붙들고 역사해서 하나님 당신도 나타내 보이고, 하나님과의 소년들의 우의와 결혼의 첫사랑을 가져 관계했던 이런 관계를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 영광스러움도 하나님 백성들의 참 끝없는 그 배경이 든든한 것도 세상에 자랑하고 싶고, 나타내고 싶고 이러니까 하나님 영광스럽고 하나님을 상대한 하나님의 백성들도 영광스럽고, 어두움에 있는 세상들도 이 두 사귐과 닥치는 모든 통과 무사 통과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점점 충만해 지도록 이렇게 하려는 것이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분이 이렇게 능하신 분이 우리를 배척을 해도 우리가 달라 붙을라고 우리를 내몰라라 해도 참 이 불쌍한 그 과부가 부르짖는 것처럼, 이렇게 할터인데, 이분이 우리를 이렇게 사귀기를 원하시고 원하시고, 그때를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기억한다. 너거들을 위해서 내가 기억한다.
그때가 그립고, 그때에 참 너거들은 행복스럽고, 나는 만족히 은혜를 베풀 수 있고, 사랑을 베풀 수 있고 축복할 수 있었는데 그때가 그리워 그때를 기억하는데 너희들은 제사장도, 선지자도, 관리도, 법관도, 하나도 나를 찾는 자는 없고, 그때에 어떻게 했다는 그 찾는 자는 없고 제가 법만 가지면 안정이 되리라 저가 이렇게 저렇게 그 사람들을 설명만 시키면 선지자 노릇이 되는 것으로 제가 모든 것을 부지런히 순찰하고 통치하면 그 관리에 책임에 안보가 되리라고 제사장은 그저 자기 백성들에게 대해서 제사장으로 인정만 받는 그런 의식 생활만 하면 되리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능하신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실때에 우리에게는 평강이 있고 어려움이 없었는데, 우리에게 이렇게 평강을 주신 평강을 주셨던 평강을 주실수 있는 이 하나님 어데 가셨느냐 하나님을 찾는 일이 없고 이분이 오시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데 이 우리는 어려움을, 적은 어려움도 거머쥐고 떨고 있는 이 신세가 됐으니 인간이 통과할 수 없는 그런 처지도 아무 어려움 없이 통과케 하던 이분이 어디 계시느냐 찾는 자가 없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고요히 이분이 어떤 분인데 소년의 우의와 결혼의 첫사랑 같은 요런 방편으로 요런 성격으로 우리를 찾지 안하고 만일 품아시 권능으로 하번 찾아 보시요. 우리가 그분을 상대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그분을 상대할 만한 아무 실력이 없습니다. 참 사람들과 사람들의 차이는 차이가 많다고 해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가 하늘과 땅같은 사이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는 좁살내끼 서숙알 한 내끼의 차이도 없는 것입니다.
이래도 차이를 찾고 이 차이라도 차이가 있을 때는 서로 호흡이 통하지를 안하고 무슨 서로 같이 지낼 수가 없어서 다 불평을 가지고서 하는데 이렇게 지극히 큰 분이 나에게 이것을 원하시고 천날 만날 사귀받자 당신은 주실 것밖에 없고 우리는 받을 것 밖에 없는, 당신은 공짜배기로 주어 우리는 받아서 커질 것 밖에 없으니까 만고에 손해 없고 유익만 되고 하는 이분이 우리를 이렇게 사귀기를 원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찾아서 인생의 모든 것을 찾아서 그분들이 뭣 되던가 마지막에는 참 시체되고 비참하게 사망하는 것뿐이고 하나님 떠나 뭘 찾아봤자 유익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망령되게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가 회개를 하면서 참 하나님을 바로 찾는 우리가 되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기도회 시작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표준은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안하고 주님과 나 사이 주님과 우리 가정과 사이, 주님과 우리 교회와의 사이, 주님과 우리 하나님 백성들과의 사이가 소년들의 우의같고 결혼의 첫사랑 같은 이것이 우리에게 생겨져 다른 사람이 보고 놀래고 기압하면서 저 사람 큰일났다고 하지, 마치 만경 창파에 참 쪼그만한 나무조각 하나 거머쥐고 그 우에 올라앉아서 그우에 서서 이렇게 풍랑 울렁이는 보는 사람의 간이 달랑달랑하지 그처럼 그런데도 본인은 빠진 줄도 모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보는 자에게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와 비유컨댄 그와 같을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러기에 주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우리에게 염려가 없고 근심 없고 기쁘고 즐겁고 그분 한 분으로서 우리에게 끝이 없는 한없는 평강 이런 현실을 줘도 그 평강을 조끄만치라도 까불 수가 없고 저런 고통을 줘도 하나도 그것이 고통으로 되어 지지를 못하고 이럴 수 있는 주로 인하여 어머니의 젖가슴에 안겨있는 아이와 같은, 우리의 평강이 오는 그것이 주님과의 사귐의 관계가 바로 된 증거입니다.
또 이렇게 잘못된 자기 주관에 위안제로서만 어리석게 이렇게 된다면 그 표는 우리에게 어려움을 닥쳤을 때에 어렵게 여기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이 도로이 지내고 보니까 영광이 됐고 환영이 됐고 권위가 보여졌고 하나님과 우리는 존귀하게만 되어지는 이런 해결의 그 결과가 우리에게 보여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어야 말세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시는 것이고 이 기도회를 주시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요사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자꾸 이런데에 대해서 당신이 우리를 당신이 이렇게 두려운 분이라는 것도 알려주시고 이렇게 책임에 약속에 변치 않는 분이라는 것도 알려주시고 자꾸 이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읍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이런 하나님이신데 영광도 소유도 그 지위도 다 내놓고 사람되시기까지 우리에게 모든 걸 대신하기 위해서 다 희생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이분이십니다.
구약에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우리는 수많은 간증자들이 있습니다. 역사에 뭐 하나님으로 인해서 해결짖는 거 하나 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다 이런 관계를 가지고 다 해 나온 증거들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들은 이분 한 분으로 넉넉할 수 있는 우리들인데 우리가 이분을 찾지 않는 것은 주님이 내몰라라 하면 하지만은 서도 당신이 탕자의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거와 같이 이렇게 기다리고있는 이런 입장인데 참 우리는 반성하고 회개하는 이것만이 하나님에게서 평강을 가지기로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것을 가지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이 복수해서 마구 참 녹아서 견딜 수 없는 그런 것으로 하나님이 복수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보면 뜨겁게 사랑하시다가 안되면 뜨겁게 복수하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한 십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