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1 21:37
피-성경-성령>두 가지 은혜
1985. 2. 22. 금새
본문 : 행 10:43-48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가 가지고 된 일입니다.
베드로가 거기 가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받으신 일을 말하고 또 모든 선지자들이 다 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예언하기를 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다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예언하셨다 이렇게 말할 때에 이 말을 듣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말한 그 구약에 있는 말씀도 다 예수님을 가리켜서 한 말씀들이요, 또 구약이 가르치신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대속하시느라고 고난을 받으시고 그로 인해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다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예언을 하고 예언한 대로 사실이 성취되었다 하는 이 말을 들을 때에, 그러면, 베드로가 구약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또 자기네들이 보고들은 현재의 사실을 그들에게 전해 주고 -그러면 그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이 신약 성경입니다. 신약 성경은 이 사도들이 기록한 것이 신약 성경인데 이 신약 성경은 그들이 보고 듣고 또 성령 받아서 느끼고 깨닫고 한 것을 기록한 것이 신약 성경입니다.
그러면, 다는 말하지 못 했지만 베드로가 그들에게 전한 것은 구약을 들어서 예수님은 구약 선지자들이 이렇게 말씀해 놓은 것을 증거 했습니다. 구약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또 신약은 그때 성경은 다 기록돼 있지 안했지만 실은 베드로가 전한 것이 다 신약 성경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신약 성경에 있는고 교리와 신조를 말씀한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가지고 예수님이 대속하신 그 구주로 인해서 죄 사함 받고 구원 얻는다 하는 이 말을 할 때에 이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도 보고 우리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인 그들이 백 이십 명쯤 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가지고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신 그 성령 강림을 기다리라 해서 일백 이십 명이 기도하는 가운데에 성령의 은혜를 차차 받기 시작하고, 나중에 그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의 충만함이 다 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하나님이 부어 주신 거와 같이 이들도 성령을 부어 주셨다 이라면서 모두 놀랬습니다.
놀라면서, 그러면 성령 부어 주신 그 표가 뭐인고 그 표를 말할 때에 두 가지를 들어서 말을 했습니다.
방언의 은혜를 받았다. 방언의 은혜라는 것은 이 무슨 요새 방언이라고 그렇게 많이 말하고 있는 그런 방언 중에도 옳은 방언이 있겠지만, 방언의 은혜를 받았다.
성경대로의 방언의 은혜는 오순절에 그때 방언의 은혜가 처음으로 있었는데, 오순절 방언 은혜는 어떤 은혜인고 하니 그 한 나라 말로 할 때에 여러 각국 사람들이 들을 때에 모두 다 저거 나라 말로 들려졌습니다. 미국 사람이 영어 가지고 설교하는데 영어 하나도 모르는 한국 사람이 들을 때에 그 사람이 한국 말로 설교를 하고, 또 일본 사람이 들을 때는 일본 말로 설교를 하고, 중국 사람이 들을 때는 중국 말로 설교를 하고, 이래서 모두 놀란 것이 '아. 저 사람이 우리 나라 말을 모르는데 어떻게 저 우리 나라 말로 가지고 저렇게 능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느냐?' 그래 가지고 듣는 사람들도 다 놀래고. 또 전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그저 한 나라 말밖에 모르지만 한 나라 말로 하는데 듣는 사람들도 각각 저거 나라 말로 들었고, 또 전하는 그 사도들도 그때에 어떤 말로 전하지 못할 게 없었습니다. 그만 이 나라 사람에게는 그 나라 사람에게 또 말을 전할라 할 때 그 나라 말로 되고, 또 생전 보지 못한 그 나라 사람을 만나 가지고 말을 해도 그 나라 말을 가지고 전하고.
이래서 그때는 처음에 성령이 강림해 가지고 복음을 전할 때에는 어학이라 하는 그런 게 필요 없었습니다. 어학 공부를 안했습니다. 안 하고도 어학 공부한 사람과 같이 듣고 말할 수 있도록 되어진 그것이 방언의 은혜입니다. 방언의 은혜를 받은 걸 보고 놀랐다, 그것이 하나 증표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무슨 역사가 있는고 하니 제일 처음으로 역사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도를 받아 깨닫는 은혜가 있게 됩니다. 지금도 아주 무식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 사람 말을 들으니까 무식한 사람이 아주 그 어려운 도에 대한 말씀을 들어 깨닫고 그 사람이 성령을 받고 보니까 아주 구변 없는 사람이 구변이 있고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데 아주 능하게 전합니다.
그러면, 방언의 은혜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전하는 그 능력을 받아 가지고 다른 사람이 다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인간 말로 말하면 아주 사람에게 대해서 설득의 능력이 있다. 설득, 그 사람에게 말을 해서 알아듣도록 하는 그 설득의 능력을 받았다. 또 그 성령 받으니까 다른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 말하는 말을 아주 잘 알아듣는 은혜를 받았다.
그러면, 방언의 은혜라 하는 것은 외나 바로 그 아이들 말로 진짜라 할까 아주 그 방언의 은혜의 실상은 말을 전하는 그 능력을 받고 말을 들어 받아들이는 능력을 받는 그것을 가리켜서 방언의 은혜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새는 지금 방언의 은혜라고 온갖 노릇을 다하는데 그것도 하나의 사람에게 도를 듣게 하는 수단과 방법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도를 전할 때에 가 가지고 학생들이 모여들지 안하니까 각설이 타령을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모아 드는데 모아 드니까 또 옷을 삐뚤어지게 입고 궁둥이를 두드리고 흔들고 이래 쌓으니까 모두 구경 삼아 많은 사람들이 모아 들었는데 모아 들어 가지고 그래 그 복음을 전한 거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도 그런 방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려면 어쩌든지 방언을 해야 된다' 이라니까 모두 방언 하기 위해서 '이 방언을 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방언 할 그 욕심으로서 방언을 '방언은 자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된다. 마구 자꾸 기도해라' 이라니까 하나님 앞에 자꾸 말을 해서 기도하니까 나중에 자꾸 이래 말을 해서 더 빨리 말해라. 말을 고해라.' 이라니까 나중에 그만 혀가 안 돌아갑니다. 한참 그래 가지고 하고 나면 혀가 안 돌아가요. 혀가 안 돌아가 얼럴럴럴 럴럴럴럴 자꾸 인제 자기 속으로 마음으로는 말을 하는 데 말하는 것을 이 혀가 따라가지를 못한다 그 말이오.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 그래 이제 그래 가지고 하면 그래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참 그래 가지고 정성과 마음이 하나님에게 기울여져 가지고 바로 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고 그만 이러니까 그 사람이 방종해져 가지고 아무나따나 말해서 그만 시슬쟁이가 되고 시슬지기는 시슬 사람이 돼 버리고 아주 방종한 그런 사람도 되고 그렇게 됩니다. 그런 것은 실은 거기서 올바른 방언이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그 가치를 줄 수가 없습니다. 이래서 일만 마디 방언보다 한 댓 마디 깨닫는 것이 낫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 방언의 은혜는 좋습니다. 방언의 은혜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를 전하는 그 권능을 받은 것이 방언의 은혜요 또 다른 사람의 도를 듣든지 제가 성경을 보든지 할 때에 그 말씀 깨닫는 은혜를 가리켜서 방언의 은혜라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일학교에 학생들 가르치는 것을 보면 여러분들이 아마 그것을 여기 반사들이 많이 있으니까 느낄 것입니다. 또 여기 남여 권찰들 중간반 반사들 이런 사람들 있으니까 다 자기네들이 깨달을 것입니다. 자기가 꼭 같은 그 원고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하기 전에 자기가 며칠 동안 기도를 많이 하고 또 거기 대해서 참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고 이렇게 자기가 기도 많이 하고 은혜 받은 데 따라서 내나 그 공과를 가지고 가르치지만 자기가 기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했을 때에는 설교할 때 그 아이들이 잘 알아듣습니다. 잘 알아듣는 것을 확실히 여러분들이 볼 것입니다.
또 아무리 그 말이지만 자기 준비가 하나도 없이 꼭 그대로 녹음기에서 튼 거 모양으로 같은 말한다 할지라도 아이들이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 도를 전해서 설득시키는 능력이 없다 그거요. 설득시키는 능력이 없고, 설득시키는 능력이 또 많을 때 있고 그 많은 것이 설득시키는 능력 있는 것이 곧 성령이 저에게 임한 증거입니다.
그러면, 말은 꼭 같은 말했는데 다른 사람이 아무런 알아듣지를 못한 그것은 설득시키는 능력이 없었다는 것은 성령이 저에게 역사 하지를 안했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또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그렇게 아주 복잡한 가운데에 말씀을 가르치는데 그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 복잡한 가운데서도 낱낱이 다 들어 깨달아서 그 학생들이 아주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면 그것도 학생들이 그때 성령의 감화가 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역사는 첫째가 여기 두 가지 증거 했는데.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 성령의 권능이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읽어 깨닫게 되는 것이 성령의 능력이라. 그 성령이 저희에게 임한 증거라. 그러면 성령이 임하시니 충만하면 깨달음이 충만하고 설득시킴이 충만하고 또 성령의 은혜가 하나도 없으면 그 설득시키는 전하는 힘도 아무것도 없고 또 자기가 성경 봐야 아무 깨달아지는 것도 하나도 없다. 그럴 때는 성령의 은혜가 자기에게 없는 증거다 그것을 여기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는 뭣을 보고 그들이 '아, 이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셨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46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그들이 보니까 그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그들이 하나님을 아주 지극히 높이는 그 사람들로 변해집니다.
하나님을 높인다 말은 아, 하나님이 암만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다.
모든 것은 다 원인이 있는데 하나님이 그 원인이시다. 이러면 제일 크시고 이보다 하늘도 하나님이 그게 원인이시다. 온 우주도 하나님이 원인이시다. 하나님이시다.
얼마나 큽니까? 큰데 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 능하심, 아주 하나님의 그 두려우심, 하나님의 그 사랑하심, 하나님께 대한 깨달음이 있는 이것이 성령이 저들에게 임한 증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함을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깨달음이 점점 더해지고 또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하고 그를 위하고 섬기고, 그만 이래서 성령이 임하심의 역사는 그만 그 사람이 그전에는 자기 중심으로 또 그렇지 않으면 가족 중심으로 또 무슨 그라면 또 사회 중심으로 좀 더 하다면 민족 중심으로 애국자로서 나라 중심으로 이 또 물질 중심으로 이래 살았는데 말씀을 들으니까 차차 차차 그 사람이 하나님 중심이 돼 버려서 그만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하나님 한 분으로서 전부가 되고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서 그분의 비위를 맞추고, 마치 어떤 직장에서 참 회사에서 자기가 사장을 모시고 있든지 직장에서 상관을 모시고 있든지 한 사람이 그만 자기는 상관 중심으로서 상관의 비위를 맞출라고 상관의 뜻을 따를라고 상관의 그 의사에 같이 할라고 상관의 그 하는 모든 사무에 같이돼서 자기에게 대해서 그 상관이 만족하고 기뻐하고 또 신임하고 그 상관이 자기에게 무엇이든지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자기 한 일로써 자기 상관에게 영광이 돌아가고 칭찬이 돌아가지 자기로 인해서 자기 상관에게 욕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이렇게 말하고 자꾸 이렇게 한다 그거요. 이거 모양으로 이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모든 것보다 더 크게 여겨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자꾸 그 사람이 정신도 사상도 변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말이오. 그것을 보고 '하나님 높임을 봄일러라'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높이시는 것이 보여진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이 도리 말씀은 말하자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계약된 이 계약의 말씀인데 계약의 말씀을 깨닫는 이 깨달음이 그 성령의 능력으로 점점 확고해지고 정확해지고 충만해지지, 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높여 섬기고 그를 바라봄이 점점 충만해지지, 이라니까 그만 이 사람이 변화가 돼지고 생활이 변화된다 말이오. 이것을 보고 '아, 성령이 임하셨다' 이라면서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주면 그때는 죽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이 구원을 이방인들에게 전한다 하면 그만 죽입니다.
스데반을 사울이 왜 죽였느냐 하면 이방인들의 구원을 말한다고 죽여 버렸고, 사울을 죽이려고 해서 사울이 그때에 아라비아 가 가지고 삼 년을 피해서 숨어 있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울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도도 전하지도 못하고 죽이려고 해서 아라비아 가 가지고 삼 년 동안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유대인들이 유대 도를 전한다고 해 가지고 죽이고 이러기 때문에 유대인들하고 같이 먹으면 죽여 버립니다. 이라니까 베드로가 베드로 되고 난 다음에도 이방인하고 같이 음식을 먹다가서 유대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그만 안 먹는 척하고 슬큼 그만 피해 버렸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때에 예수 믿는 이것을 아주 여기에 대해서 핍박을 많이 했고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도는 그때 그 사람들은 이방인은 짐승같이 여겼기 때문에 짐승에게 이 존귀한 도를 전한다고 해 가지고 그냥 살려 두지를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때에 처음으로 이방인에게 세례를 유대인들만이 받는 이 세례를 그들에게 준다는 것은 바로 화약 지고 불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사형 받는 일이요.
그래도 베드로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성령을 저희들에게 부어 줘서 성령 강림하심을 받았으니 어떻게 우리가 세례를 주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이들을 인정하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줬는데 우리 인간들이 이 사람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인정치 안한다면 되겠느냐?' 하면서 그 소리를 외치면서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을 자꾸 여러 번 보는 것은 뭐 때문에 보느냐 하면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잘못으로 인해서 아담이 어째 잘못했느냐? 뱀에게 꼬여 가지고 뱀화 돼 가지고 잘못됐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뱀이 그 악령이 뱀의 모양을 입고 와서 그렇지 눈 뜨고 잘 들어.
저 뭐꼬 저 아따 물장사 며느리 말이오. 알겠오? 어? 저 모르는 가배, 저 OOO권찰님 구역인데 그러나 옛날 가난하게 살 때 물장사 했어. 그 시어머니가 그리했어. 이제 알겠어? 눈 똑 뜨고 들어. 어? 지금 남편 예수를 잘 믿을라고 시작하는데 자기가 더 잘 믿고 이래 가지고 그래야 잘되지 잘못하면 탈선돼. 어? 잘 믿으면 아주 훌륭하게 되고. 사람이 뱀과 뱀의 유혹을 인해 가지고 뱀의 유혹을 받으니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됐느냐 하면 '네가 이 선악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된다' 하나님과 같이되기를 무엇이 하나님과 같이됩니까? 하나님이 당신 중심의 하나님이신 거와 같이 하나님은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히 완전 중심이 되지 완전 중심 아니면 또 죄를 짓는 게 된다 그 말이오. 하나님 완전 중심이라야 당신 중심이라야 의가 되는 것이고, 인간들은 다 불완전하고 이렇기 때문에 완전자 하나님 중심이라야 의가 된다 그거요.
이런데 네가 이 선악과 먹으면 네 중심의 사람이 된다 말이오. 네 중심의 사람이 된다. 그라고 난 다음에 정죄받은 것이 원죄인데 원죄는 자기 중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악령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악령이요 악성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그 본성이 이 속성이 자기 중심의 속성이 된 것이 악성인 것입니다. 악습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행동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한 번 하면 그것이 한 번 했고 두 번 하면 연습했고 세 번 하면서 연습했고 익힐 습 자, 습이라 말이오. 악습이라면 악을 익혔다 한번, 두 번, 열 번, 스무 번 자꾸 익힐 습 자를 가리켜, 한 번 하니까 한 번은 익혀지지 안해요? 두 번 하면 또 두 번 익혀지지 안해요? 세 번 하면 세 번 연습이 됐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사람의 마음과 이 몸이 완전히 물들어져서 사람의 마음과 몸은 아무 색깔이 없는 백색인데 백색을 완전히 악령색, 악성색, 악습색을 들여 가지고 인간이 그만 악령적의 것이 됐고 악성적의 것이 됐고 악습적의 것이 됐습니다. 이것을 탈색을 해야 되겠는데 이 탈색하는 것은 딴것으로는 탈색을 못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로만 탈색을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비유컨대 이 등이 이 등이 깜깜한데 등이 새까만데 이 예배당도 새까맣고 등도 새까만 할 거 아니요? 새까만데 등 속에다가 조그만한 촛불을 켜 넣으니까 촛불을 켜 넣으니까 등이 빨간 불덩어리가 돼 버리오. 그렇지 안 하요? 등이 빨간 불덩어리가 돼 버립니다. 그래 불을 켜니까 그 등 안에 있는 어두움이 물러가 버리고 등 안의 어두움이 물러가 버리고 등이 그만 환하이 불덩어리가 되니까 등이 가는 데마다 환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빛이신데 주님의 피, 성령, 진리, 이 셋이 그 사람 마음에 들어오니까 불이 들어오니까 그 어두움이 녹아지고 없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셋은 옳은 것의 참의 것이기 때문에 이 거짓되고 이 모든 악하고 모든 더러운 것들이 차차차 물러가게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이것을 없애 버리는 것은 다른 것으로서는 없애 버리지를 못합니다.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만 이 세 가지로만 없애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없애 버리고 난 다음에는 뭐 하느냐? 없애 버리고 난 다음에는 이 옛사람의 그 악령과 악성 악습으로서 된 그 색깔을 없애고 나면 이제는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차차 차차 물들이게 됩니다.
물들이게 돼서 우리의 그 사람이 성령으로 물이 들었기 때문에, 성령이 물들었다 말은 성령으로 성령의 감동의 사람이 됐다 말이오. 성령으로 물들인걸, 비유라 말입니다. 물들인 거와 같이 성령의 감화의 사람이 됐고 예수님의 피의 공로의 사람이 됐고 진리화 사람이 됐기 때문에 이것은 전부 예수님의 형상화, 예수님의 인격화, 예수님의 신성화됐다 그 말이오. 이렇게 되어짐으로 우리는 악령을 이길 수 있고 또 죄를 이길 수 있고 사망을 이길 수 있고 저주를 완전히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것은 뭣을 노력하고 있느냐 하면 살다 보면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만 자기 중심으로 살았고 말하다가 보면 그만 자기도 모르게 자기 중심으로 말을 했고 또 뭣을 이렇게 경영하다 보면 그만 자기 중심으로 경영하고 자기 중심 이놈이 적입니다. 사람이 옛사람이 무엇이 옛사람이냐 하면 자기 중심의 사람이 옛사람이요, 또 그 악령의 감화 받은 것이 옛사람이요 자기가 죄지은 과거의 습관이 있어서 습성이 있어서 그 습성을 그걸 그게 옛사람이기 때문에 그걸 죽이는 것이 옛사람을 벗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옛사람을 벗고' 하는 그 말은 이 세 가지를 벗어야 우리가 새사람을 입을 수가 있지 그래 안하면 새사람 입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옛사람을 벗고' 하는 그 말은 무엇을 표시하느냐 하면 옛사람 벗는다 말은 우리 이 영육은 깨끗한 것인데, 이 영육은 더러운 것으로 이 더러운 것으로 물들이는 것처럼 이 더러운 것이 와서 물이 들면 완전히 이거 화된다. 이것을 탈색을 시키려면 탈색시키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걸 벗으려면 완전히 벗을 수가 있다. 또 피와 성령과 진리를 입으려면 완전히 입어서 피의 사람, 성령의 사람, 진리의 사람이 들어서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인 예수님과 꼭 같은 자가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악령 대신 성령이 와서 우리를 주관하심은 성경에 대한 것을 모든 걸 깨닫고 모든 만물을 다 깨닫고,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할 수 있는 다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모든 더러운 것은 없애 버리고 우리의 필요한 것을 다 설정해 주셨는데 그것을 다 자기가 가질 수가 있고 죄를 이길 수 있고 마귀를 이길 수 있고 또 새사람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하나도 해할 수 없는, 이제는 이 사람이 되면 해하지를 못해요. 해하지 못하는 것은 죽이면 죽인 것도 그 사람 위한 거, 때린 것도 그 사람 때렸으면 때린 것도 위한 거, 그 사람 뺏었으면 빼앗은 것도 위한 거, 왜? 전부 그 사람 좋게 하는 것뿐이라.
이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되어지고 모든 피조물에게 위함을 받는 것이 되고 하나님께 위함을 받는 것이 되고 이렇게 되어지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받아 가지고 피조물에게 모든 것을 다 충족하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이런 세상 이런 법 저런 법에게 제재 받는 사람이 안된다 말이오. 그 사람은 죽지를 못하는 사람이요 죽일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 말은 새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새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죽지 않는데, 새사람으로 그 사람의 영육이 새 사람된 그 새사람을 만일 죽였다고 하면 그 죽인 것이 그 사람을 없앴습니까? 그 사람의 벗어야 될 것을 새로 갈아입도록 그 피와 고기 덩어리 이거는 영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신령한 몸으로 변화 시킬라고 지금 다시 개조해 받아서 입을라고 개조해 주심을 받을라고 성화 받을라고 벗은 것이 성화 받을라고 벗은 것입니다. 그게 죽지 않습니다. 그 마음도 죽지 안하고 영도 죽지 안하고 그 몸의 기능도 죽지 안하고 다만 피와 고기 덩어리만 죽는데. 피와 고기 덩어리 이것은 그대로는 영생할 수 없기 때문에 피와 고기 덩어리 이것을 변화를 시켜 버립니다. 이 변화를 시키는 이 변화시키는 변화 받기 위해서 벗는 것이라.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는 말씀하시기를 '혈과 육은 하늘 나라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불 이 혈과 육이 썩을 것이 썩을 것이 혈과 육은 썩을 것인데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고 이 폐할 것이 폐하여지지 아니할 것을 입으리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것이라든지 죄를 이기는 것이라든지 마귀를 이기는 것이라든지 우리가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이대로 살 수 있는 이것은 이 세 가지가 들어와야 됩니다. 세 가지. 그 피의 능력, 성령의 능력, 진리의 능력 이 세 가지가 들어와야 되는데,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들어오느냐? 들어오는 것은 내가 구약 성경, 신약 성경 이 사람들 모양으로 구약 성경, 신약 성경을 자꾸 읽든지 듣든지 이래 생각하든지 하는 가운데에서 자기 속의 옛사람은 차차 녹아지고 없어지고 사라지고, 어두움이 불 들어오면 사라지는 것 모양으로 사라지고 점점 피의 사람 성령의 사람 진리의 사람이 이와 같이되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죄를 범하지 안할 수 없고 실수 없이 살 수가 있는 이런 새사람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쩌든지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들어야 됩니다. 이거 아니고는 안 됩니다. 성경 읽을 줄 모르는 분들은 기도해 가지고 한글이라도 읽도록 하고 못 읽은 사람은 못 읽으면 자꾸 이미 들은 말씀을 자꾸 외워요. 자꾸 들은 말씀을 자꾸 외우게 되면 그 사람이 얼마 안 가서 변화돼서 성령이 오게 되면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나라에도 지금은 그런 일이 별로 없을 겁니다만 옛날은 우리 한국 사람으로서는 여자로서 한글 아는 사람 많지 못했습니다. 한글 아는 사람은 아,그 사람은 글을 아는 사람이라 해 가지고 아주 유식하게 여겼습니다. 한글을 몰랐습니다. 백 명 앉혀 놔야 한글 아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그때는 천 명쯤 앉혀 놓으면 한글 아는 사람 혹 몇 사람 있을까. 양반 동네라 하는 그런 데는 또 어째 그러면. 양반 동네는 한글을 그때는 언문이라 해. 언문. 언문인데 언문은 상놈의 글이라고 우리 나라는 상놈의 글이라고 이 대국이라는 중국에서 그래 관념을 시켰는데 언문이라 해 가지고 상놈의 글이라 해 가지고 안 배웠습니다. 그 양반 촌에서는 안 배웠고 또 상놈 촌에서는 가난하기 때문에 몰랐고 이거 참 천 명 모아 놔야 한글 아는 사람 있을까 말까 그랬었습니다.
우리도 그때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 전에 지금으로부터 한 칠 팔십년 전에는 한글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모두 기도해 가지고 다 한글을 알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찬송 부른다, '그 사람도 아. 아무것이도 저 사람 아무것도 일자 무식인데 배운 데도 없는데 이 성경을 잘 본다고' 그라는 사람들 나도 많이 봤습니다. 제가 아는 대로 여기 OOO집사라 하는 그분도 그런 사람입니다. 참 둔하고 무식한데 진실 되게 기도만 하는 사람인데 그만 그 사람이 하나도 배우지 안했는데 아들한테 기역 니은 배우지 안했어. 안했는데 성경을 읽습니다. 잘 읽습니다.
그런고로, 그래 가지고도 보고 어쩌든지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이렇게 해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우리가 죄도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고 합니다.
그러면,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죄를 이기면 죄 이긴 데서 무슨 효험이 있느냐? 죄를 이기면, 죄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물질의 병, 물질의 병, 또 자기 행위병, 자기 사업병, 회사병, 직장병, 지위병, 권세병, 행복병, 기쁨병, 평안병, 이 모든 것이 죄 때문에 병들어서 죽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병들어서 죽는 것이고, 또,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어짜는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어찌됩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무엇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좋습니까? 자, 저 O장로님 말해 봐요. "네가 오늘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사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 이러니까, 그만 우리가 죄 안 지으면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완전히 치료가 다 돼 버리고, 또 말씀대로 순종하면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은 다 할 수 있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야 되고 새사람을 입어야 되겠는데, 입는 데에는 그 방편이 성경으로 통해 들어옵니다. 성경으로, 이래서, 성경으로 통해서 들어오는데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데, 들어오는 사람이 성경으로 통해 들어오는데 택함을 입지 안한 사람, 예수님의 사죄를 속죄 받지 안한 사람도 성경을 통해서 들어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피가 첫째, 둘째 말씀. 세째 성령, 이런데 요한 1서에는 기록하기를 성령의 감화 성령, 물은 말씀한 거라 말이오. 피 이렇게 내리 거석해 놓은 것은 이 거꾸로 말해 놨다 말이오. 거꾸로 말해 놓은 것은 우리와 제일 낮은 우리에게 가까운 것이 피요 가까운 피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는 피가 가깝고 그 다음에는 진리가 가깝고 그 다음에는 성령이 가까워서 이게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입는 것은 생각할 것 없이 피를 입었습니다.
입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할 일은 무슨 일인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읽든지 듣든지 해서 새김질하는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첫째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오는 것이 우리에게 성신의 감화가 옵니다. 성신의 감화. 성신의 감화가 오면 성신의 감화하고 진리하고 둘이 우리에게 뭐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너거에게 얼마나 필요하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게 되는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우리는 이제는 그냥 예수를 믿는 그런 일을 하지 말고 이제는 참으로 구체적으로 바로 믿어야 되겠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듣고 읽고 새김질해 가지고 성령 받아야 됩니다. 성령 안 받으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