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1 21:30
피난과 구원의 방편
1983. 11. 18. 금야.
본문 : 마 24:25-28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종전과 같이 삼십 분 기도 후에 일층 이충 삼층에서 남녀반 철야 기도회가 있고 또 설교 재독도 있습니다. 시간상 오전과 오후를 다 하려 하니까 그래서 오후만 한다고 합니다. 또 기도회록에 등록된 수는 삼천칠백칠 명입니다. 하루 평균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 수 칠백열 명입니다. 다 등록한 분은 자기 처소에서 기도할 줄 압니다. 기도하고 나서는 그 뒤에 올 때 언제든지 그 카드를 가지고 와 가지고 다시 도장을 찍고 가기를 부탁합니다. 또 기도록에 둥록되지 아니한 분은 일층 입구에서 둥록을 하고 있으니까 나갈 때에 다 등록하고 이 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하시기 부탁합니다.
아침에도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또 밤에도 증거할 필요로 느껴서 증거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에 내용은,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가지 말아라, 뭐 빈들판에 있다 해도 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해도 가지 마라. 아무 데 있다고 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할 구원이 어데 있다고 해도 그런 말을 듣고 동하지 말아라. 또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런 일에 대해서도 놀라지 말아라.
마치 번개가 나면 동에서 서까지 동시에 환하게 비추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전면적으로 꼭 같이 이르는 것이지 여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르고 또 저게는 하나님의 멸망이 이르고, 여기에는 또 하나님의 멸망이 이르고 저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구원과 멸망은 꼭 같이 이른다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이 꾀를 써 가지고 '어디를 가야 우리가 피난을 할까? 어디를 가야 이 모든 어려움을 면하고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사람들은 매우 궁금합니다. 요새는 하나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도 가까왔고, 모든 정 조를 봐서 종말이 가까왔다고 누구든지 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은연중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중에는 두 가지 종류로 관심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어떤고 함에 대해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무엇이 안된 것, 환난이나 무엇이나 재앙이나 그런 어려운, 어려운 환난이 오는 것을 보고 사는 사람 한 종류, 또 환난이 지나가고 평안이 오는 것을 보고 사는 한 종류 이 두 종류로 사람들은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계시록에 일곱 머리 가운데에 하나 상했다가 치료된 것 보고, 치료된 것 보고 사는 사람들은 치료된 것을 봄으로, 그것이 상할 때에는 보고 좀 겁을 내고 놀랬지마는 그것이 다 상처가 치료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안심하고 마음은 강퍅해지고 완패해지고, 그런 종류의 사람이 하나 있고, 또 한 종류는, 머리가 상했다가 나은 것은 보지 아니하고 상했던 것을 보고 삽니다. '그때에 그리 그리 해서 상할 원인이 있어 가지고 그가 상하더라' 상해 가지고 나은 것은 보지 아니하고 상한 것을 보고 사는 사람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그 관념이라는 것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세계가 기독자에게 대해서는 참 위험한 시기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야 뭐 민주주의 해 봤자 공산주의에 가서 그저 자기 사상 바꾼다 하면 될 것이고 또 별것 없이 바꿔도 될 것이고 이러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하지마는 그렇게 끝까지 마찰될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자들은 그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상이기 때문에 변동도 할 수 없고 거기에 대한 마찰을 받아야 하는 것이 기 독자들입니다.
그런데 세계의 이 정세는 참 마지막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아주 깰 수 있도록 모든 역사를 해 주십니다. 금방 보면 세계는 그만 다 적화된다, 공산주의가 다 된다, 빨갱이 나라가 다 된다, 온 세계는 적화된다 이렇게 보여졌다가 또 조금 있으면 붉은 세력은 이것은 완전히 꺾어져서 이제 힘을 쓰지 못하도록 이런 것은 다 제거되어진다 자꾸 이렇게, 엎어졌다가 뒤쳐졌다가 자꾸 이렇게 변동이 됩니다. 그저 어째 보면 어떨 때는 '이제 공산주의자는 다 절단났고 머리를 들지 못하겠으니까 우리 민주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안심된다' 이랬다가 또 얼마 며칠 동안에 '공산주의 세력이 아무래도 세계를 점령할 것은 틀립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다 세계는 적화된다.' 이래 가지고 또 믿는 사람들에게 가슴을 뜨끔하게 그렇게 합니다.
이러니까 요사이 믿는 사람들이 그저 며칠 동안 안심했다가 며칠 동안 근심했다가, 또 며칠 동안은 강대국 어디로 파난을 가 볼까 하다가 또 며칠 동안은 뭐 피난 갈 것 없이 이 나라에서 살아도 안심이고 평안이다 이라다가, 도무지 그 마음을 하나로 정할 수 없이 그렇게 자꾸 변동되는 그런 그 심리들을 가지도록 세계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세계에 움직이는 이 모든 움직임을 보고 기독자들 가운데에 두 종류가 있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두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계는 위험하다' 하는 그 위험의 두려움을 보고 사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뭐 안심이다 문제없다'하는, 평안이다 하는 그것을 보고 사는 사람도 있고 두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지금 고요히 자기를 생각해 봅시다. 나는과연 금년 일 년만 두고라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그 세력이 엎치락 뒤치락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내 마음은 그 두려움을 보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인지 아주 평안하게 됐다고 평안함을 보고 살고 있는 사람인지 자기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자기는 두려움을 보지 안하고 두려움이 있다가 잠시 후에 평안하게 그렇게 변동되는 그 평안을 보고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은 분명히 그 마음이 두려움을 없애고 평안을 보고 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두려움에 대한 준비하지 못할 것은 필연합니다. 준비하지 못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평안으로 바꾸어졌을 때에도 평안을 보고 살지 안하고 먼저 두려웠던 그 두려움을 보고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은 두려움에 대한 준비가 있을 것입니다.
두려움의 준비를 했는데 평안하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뭐 별 낭파될 일은 없지마는 평안할 줄 알고 준비 안 하고 있다가 두려움이 닥쳐오면 그 사람의 일은 낭파가 될 것입니다. 계시록에 일곱 머리 중에 하나가 상했다가 나은 그것을 멸망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좋아하고 그러니까 안심하고 상했다가 나은 그것을 위주로 그것을 따라서 간다고 했고, 성도들은 그것을 따라서 가지 안 하고 그 상하는 그것을 보고서 '저것이 지금은 어떻게 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잠시 후면 반드시 저와 같이 결말은 짓고야 만다' 하는 것을 보고, 범죄함으로 망하는 걸 보고 사는 것이 기독자요 범죄해도 망했다가 다시 그것이 도로 회복되는 걸 보고 사는 것이 불신자들입니다. 지금은 얼마 한 서너 달, 한 석 달 전에만 해도 아주 험악했고 또 며칠 전에만 해도 험악했습니다. 칼기 사건이 생겼고 또 버어마 사건이 생겼고 이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심히 적색들의 그 세력을 두려워하고 아주 겁을 먹고 염려를 한 줄 압니다.
또 그러다가 미국서 그라나다를 점령을 하고, 또 레이건 대통령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게 될 때에 모두 다 위험한 마음을 가지고 초조하게 염려를 했는데 무사히 지나가고, 또 지금은 소련의 그전 머리된 사람의 아들이 또 지금 이제 머리된 포프를 총으로 쏘아서 팔이 절단나고 또 이런 일이 있지, 또 이북에서는 김일성씨하고 김정일씨하고 그 부자간에 지금 대립이 돼 가지고서 심히 요란돼 가지고 있지, 또 중공은 은연중 미국을 옹호하고 있고 이북을 그렇게 불장난하지 말라고 제재를 하고 있지 또 이러니까 또 벌써 안심이 척 되고 '이제는 안심이다'또 이렇게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에 하나님이 당신의 하시는 일을 보여 주고 계시는 것이니까 어려움 당한 그것을 본 그 어려움이 차차 차차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왜? 주님이 이렇게 하고 계십니다.
잠깐 동안 이렇게 저렇게 늦췄다가 또 되게 조았다가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재촉해서 준비하라고 이렇게 하시는 것이지 성경에 예언한 대로 환난이 안 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제가 어제도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서 말을 했는데 그 사람 말이 한쪽은 서울서 목회하고 있고 한쪽은 또 일본 가서 목회하고 있고 또 뭐 저리 뭐 중공으로 저리 소련으로 그런 데로 가서 지금 할 계획이라던가 갔다'왔다던가 뭐 이래 하고 있는데 그 사람 말이 그렇게 말을 합디다.
이야기 하는 가운데세 '참 이거 교회는 문제는 문제입니다. 이 교회를 아무리 정화하려고 해도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가 다 그렇게 가속도로 속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 속화돼가고 있는 이 교회들을 정화할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정화가 뭐 한국 교회만 말해도 한국 교회 이 정화를 어떤 설교로 어떤 뭐 부흥사로 어떻게 해 가지고서 정화될까 하는 그런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아는 대로 저한테 말을 해 줍디다.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를 안다 하는데 나는 그분을 모르는 분인데 우연히 내려오니까, 기도회에 온다고서 밤에 내려오니까 그분이 거기에 기다리고 서서 만나 가지고 한 십오 분가량 서로, 십오 분 됐는가 십 분 넘어 됐는가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말하기를 '그래도 우리 한국에서는 부산이 그중에는 좀 제일 낫고, 제일 지금 흐려 가지고 있는 곳이 서울입니다. 뭐 서울에 이것 칠계범 음란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뭐 그만 일반화되고 말았습니다. 이걸 무엇으로써 정화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 하는 가운데에서 '참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죄악이 이렇게 관영하니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이 한국 교회나 세계 교회를 한번 불로 가지고서 연단을 해서 잡것을 제해버리는 이 일을 하시고 주님이 재림하실 것 아닌가?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이것을 한번 환난의 불을 가지고서 연단을 해야 이 잡것이 타지 그냥 뭐 설교니 뭐 복음 운동이니 뭐이니 해 봐아 그것이 내나 그것이고 그것이 자꾸 더 부패하게 만들어 버리고 이러니까 무엇 가지고서 될 만한 그런 가망성이 없습니다.' 하는데 그것이 제 생각과 꼭 동감입니다. 저도 꼭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지금 몇십 년 동안 아주 낭만 세상에서 살고 있고 아주 평안합니다. 평안하니까, 환난 없고 평안하니까 기독교에 잡된 것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뭐 이단의 종류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뭘 가지고서 정화할 수가 없다.
그분이 말하기를, 아무래도 이거는 참 기도하고 회개하고 이래야 될 터인데 여기에 와서 보니까 이 기도회를 시작하고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대단히 제가 감명이 깊었다고서 이러면서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도 생각하기를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먼데는 다 냅두고 한국 교회만 말한다 할지라도 한국 교회를 한번 깨끗하게 할라고 하면 무슨 하나님이 정화 운동을 하시지 않겠나? 또 세계 교회도 지금 가 보지는 안했지마는 멀리 들은, 멀리서 보는 것이 가깝게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 할 수도 있는데 보는 대로는 세계 교회도 하나님이 이대로의 교회로서 천국 가지는 못한다, 이대로의 교회로서는 기본구원을 얻어서 가지마는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이대로의 교회 가지고는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성경에서 얼마든지 판명을 할 수가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손해를 보시고 있을까 무슨 정화의 역사를 하지 안할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봐도 교회로서 할 수 없는 일을 이것을 보편화하고 또 그것을 자기의 출세하는 방편으로 삼아 가지고 뭐 서슴지 않게 이렇게 온 세계가 하고 있으니까 이것이 하나님 앞에 진노가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봉독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회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골방에 있다 어데 있다 해도 가지 말아라 그리스도는 구주를 가리켜 말합니다. 구주. 구원이 여기에 있다 저게 있다 하지 말아라 그러면 기독교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무슨 구원이고 하니 제사장 구원이요, 선지 구원이요, 왕의 구원입니다. 제사장 된 것만 촐촐 추려 가지고 가고, 또 선지된 것만 추려 가지고 가고, 왕된 것만 추려 가지고 가고 나머지기는 다 불로 사뤄버릴 것입니다.
이런데 이런 구원을 사람들이 바라기는 바라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법칙대로 준비는 하지 안하고 그저 이 공간 준비로, 공간 준비로 '저 자리 가면 피난할 것이다, 또 이곳에 가면 피난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나 그런 미혹을 받지 말아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여서, 주검 뜯어먹을라고서 독수 리들이 모인다. 산 것이 있는 데에는 독수리들이 그들이 달라들지를 못한다.
산 자는 달려들면은 잡혀 죽을 터이니까 달려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장사라도 죽으면 독수리들이 송장 뜯어먹을라고 옵니다. 아무리 용감 스러운 사자라도 죽은 사자에게는 그 눈도 빼먹고 또 뜯어먹으려고 독수리들이 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망하는 것과 죽는 것은 그것은 뭘 먹고 사느냐 하면은 망하는 것과 죽는 것은, 사망이라는 것은 그것은 죄를 먹고 사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사망은 왔다가는 죽임당할 터이니까 사망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의를 제일 두려워합니다. 사망은 의에게는 삼켜집니다. 사망에게 의가 가면 그만 사망은 절단나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망은 죄라야 먹고 살 수 있고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죄가 있으면 사망은 모아들고 죄가 없는 곳에는 사망은 모이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피난하는 것이라든지, 또 구원받는 것이라든지, 또 평강이라든지, 행복이라든지 그런 것은 다 빛들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에 속한 것인데 의에 속한 그것을 네가 원하거든 의를 마련해라. 또 멸망을 네가 피하려거든 뭐 이곳으로 저곳으로 갈 것이 아니라 어데 있어도 네가 멸망은 죄를 없애버리면 멸망은 네게 오지 않는다, 천인 만인이 한 구덩이에서 멸망받는 그 구덩이 속에서라도 너에게 죄가 없으면 그 멸망은 네게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구원되는 길은 과거에 어떻게 잘못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으니까 잘못된 그것을 찾아서 고치고,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그대로 인정하고 순종하면 그만 됩니다. 이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참 가난해지는 것이라든지, 고생을 당하는 것이라 든지, 형벌을 받는 것이라든지, 또 우리가 포승줄에 흘켜서 구금돼 가지고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라든지, 우리가 모든 실패를 하는 것 이라든지 하는 이런 것이 참 주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주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이런 것을 당했다고 하면 그는 희망이 있습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부활이 역사하고 부활이 역사하고 또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보수해 주시는 역사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작은 것을 들여서 큰 것을 얻고, 적은 것을 들여서 많은 것을' 얻는 그런 길이 있지마는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믿지 아니함으로, 또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또 우리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기도하지 아니함으로 그런 일을 당한다고 하면 그는 아주 멸망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동정하지 안하실 것이고 모든 피조물도 우리를 동정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죄를 지음으로 당하지 아니하고 참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당한다고 하면은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죽은 것이 살 아나는 것이요, 천한 것이 귀하게 되는 것이요, 약한 것이 강하게 되는 것이요, 지극히 작은 것 들여 가지고서 큰 것을 받는 일이기 때문에 그거는 성공이지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리 구원 얻을 길과, 복받을 길과, 모든 피난할 길을 가르쳐 주시는데 우리가 하지 안해 가지고 그렇게 멸망을 받는다고 하면 우리는 얼마나 원통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되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이 기회를 놓지 맙시다. 지금은 뭐 이렇게 저렇게 무슨 호기심 그런 것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호기심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진리를 우리가 높은 진리 묘한 진리를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그것도 지금 필요가 없는 때입니다.
뭐이냐? 지금 제일 급한 것이 뭐이냐? 자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아는 대로, 성경에, 성경이 있으니까 성경을 읽고 성경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우리가 첫째로는 인정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이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이 말씀은 변하지 안하고 요대로 다 이루어진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의심 없이 인정해야 됩니다. 의심 없이 인정해야 되지, 이것이 제일 첫째입니다. 인정하는 것.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그저, 높은 진리 깊은 진리를 우리가 자꾸 들어 가지고서 귀만 높아지고 그런, 도리어 정죄받을 그런 높은 법칙만 우 리가 자꾸 상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그 도리를 우리가 첫째 인정할 것입니다.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이 진리를 인정하도록 우리가 애를 씁 시다. '내가 이 말씀을 믿나 안 믿나? 이 말씀을 이렇다고 내가 사실 인정을 하나 안 하나? 이 말씀을 예사로 여기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죽는다고 해도 그 죽는다는 것을 죽는 것은 내비 두고서 제게. 손가락만 하나 끊어진다 해도 놀라고 야단일 터인데 하나님 말씀에 죽는다고 해도 그 죽는다는 말씀을 인정을 안 하고 있으면서, '내가 이 죽는다는 이 말씀을 인정하나? 이러면 죽는다 하는 말씀을 인정하나? 이라면 네가 피난을 한다 하는 말씀을 인정하나? 이러면 네가 환난을 당한다는 말씀을 인정하나?' 성경은 성경대로 말씀을 하든지 말든지-저 예배드리면 자꾸 꾸벅 꾸벅 조는 사람? ○○○구역에 저 뭐더라, 이름이?-성경은 성경대로 두고 자기는 자기대로 성경을 이래 귀로 듣고 지내고 지내 버리지 이 성경 말씀을 인정하려고 애를 안 씁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을 당신이 만드시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정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고, 피난을 주실 것이요, 평강을 주실 것이고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고, 인정하지 안하는 사람은 얻지 못하도록 그래 놨습니다.
뭐 천하의 진리를 자기가 혼자 다 통달하고 있다 할지라도 인정하는 그 인정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역사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정 안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어리석게 스스로 속습니다.
이러니까 첫째는 우리가 이제 말씀을 많이 배우려고 애를 쓰는 것 보다도, 교역자들도 자꾸 말씀을 많이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보다도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아는 대로 인정을 하는가 안 하는가 이것을 시험해 가지고, '내가 정말로 전능하신 아버지의 아들이라면은 전능하신 아버지 전능하신 분이 내 아버지인데 땅위에 어떤 세력 있는 자가 은다 할지라도 그 두려워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겁낼 것이 뭐 있습니까? 건을 내는 것은 전능하신 아버지를 부인하든지, 그 약속을 부인하든지, 아들된 걸 부인하든지 부인하는 증거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바게 말씀하신 이 말씀을 내가 인정하나 안 하나?' 이런 데에서 스스로 시험해 가지고 '나는 인정을 하는 자다 나는 인정을 안 하는 자다' 이래서, 안 하는 자는 멸망받을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인정하면 거기에서 딴것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인정하는 데에 제일 힘을 쓰고, 인정하게 되면 자연히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가 이 기도회를 시작했지마는 기도회에 첫 기도 제목이 뭐냐, 하면 열 가지 기본구원을 얻어 가지고 있는 자, 기본구원은 우리가 아무리 내가 부인해도 기본구원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기본구 원은 벗지 못합니다.
기본구원은 와 있는데 기본구원을 자기가 입었으니까 전지자의 아 들이요, 전능자의 아들이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의 아들이요, 주권 자의 아들이라. 이 모든 공간도 주권하시고, 생사도 주권하시고, 심리도 주권하시고 다 주권하신다 그거요.
우리는 또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회 시작하기 전에는, 기도회 시작 하기 전에는 마음에 조급해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기도회를 시작 했는데 기도회 시작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왜 소련은 자기네들끼리 똘똘 뭉쳐 단합이 되어 가지고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 브레즈네프 그 사람의 아들이 이제 그 포프, 머리 대가리 수상을 총으로 쏴 가지고서, 총으로 쏠 마음은 그것 한번 죽여보려고 척 쏘니까 팔이 하나 뭐 떨어졌다던가 어쨌다던가 그래 가지고서 죽지는 안했답니다.
하나님께서 심리를 훼딱 뒤비뜨려 버리면 전체가 변해집니다. 여러분들, 자기가 모든 사람이 나를 옹호하고 이래서 철통같이 계약했습니다. 약속했소. '이 사람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홱 변해버리면 밤사이는 냅두고 그 사람과 애기하는 가운데서 요래 마음이 딱 삐뚤어지니까 홱 뒤비져 버립니다.
인간의 심리 세계도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고, 생사 세계도, 이렇게 활동하는 움직임의 세계도, 공간 세계도, 시간 세계도 전부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는 이분이 우리의 아버지요 이분이 주님 이시니까 이분을 멸시해 놓고 뭘 지금 서둘고 뭐하러 가정겠니까? 자연히 기본구원 얻은 이 기본구원을 새김질하면 필연적으로 기도가 나옵니다. 그 기도가 옳은 기도입니다. 와 가지고서, 그냥 와 가지고서 뭐 자기 욕심대로 '뭐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뭐 잘못했습니다.' 잘못했다 소리 암만 해도 하나님이 듣기 싫다 하고 뭐 달라 해도 암만 해도 듣기 싫다 합니다. 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다 하는 것을 자기가 성경을 보아서 알고 또 배워서 알고 '이런 하나님이시니까 이 하나님을 내가 대접을 하나 안 하나, 이 하나님을 참으로 인정하나 안 하나, 이 하나님을 내가 믿나 안 믿나, 말로만 이렇지 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안하고 나는 거기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나?'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이것부터 자기가 따지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나는 이렇게 이러한 주님을, 이 전지하신 주님을, 주재이신 주님을, 조그만한 부자도 내가 두려워하고 조그만한 정권자도 두려워하면서 우주와 영계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나는 이렇게 두려워 모시지 안했습니다.' 요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 열 가지를 생각하면서 자기가 '내가 인정하나 안 하나?' 하는 것을 홀로 따지면은 거기에서 기도가 나올 것입니다.
'주여, 나는 주님을 인정치 안했습니다. 말뿐이지 참으로 인정치 안했습니다.' '인정치 안하다니? 네가 인정치 안한 것이 뭐꼬?' 이럴 때에 그저 '나는 인정치 안했습니다.' 하나님은 섭섭히 여깁니다.
'내가 아무 때 아무 때 그때 내가 주님을 전지하신 주님이요 전능하신 주님인데 내가 주님을 인정했으면 사랑하시는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품안에 있는 내가 왜 그때 비겁과 공포에 싸이며 왜 내가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걸 탐했겠습니까? 나는 그때에 주님을 인정하지 안하고 나는과연 주님을 배반한 자입니다.' 그 사실을 들어서 주님에게 말할 때에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오, 네가 그 일에 대해샤 두려워하지 말 아라. 네가 그보다 더 어둡고 그보다 더 악할 때도 내가 너를 버리지 안하고 구원하려고 애를 썼는녜 네가 이렇게 깨달으니 고맙다.' 당신의 위로가 넘치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을 생각하면 자연히 거기에서는 자복의 기도가 나오고, 감사의 기도도 나오고, 또 거기에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아뢰야 되겠다, 도고의 기도도 나오고, 또 간구의 기도도 나오고 그것이 인제 기도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믿음에서 기도가 나옵니다. 믿음에서 나오지 딴데서는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욕심에서 나오는 기도가 다 잡된 기도요, 자기의 모든 관념에서 나오는 것도 잡된 기도요, 자기 생각에서 나오는 기도도 잡된 기도요, 따 기본구원을 생각하면서, 기본구원을 자기가 생각하고 '내가 기본 구원을 얻은 자로 내가 참으로 인정하고 있느냐 내가 인정치 안하느 냐?' 안 하면 안 하는데 대해서 기도가 나올 것이고 인정하면 인정하는데 대해서 기도가 나올 것이고 이렇게 이 기본구원을 자기가 생각함으로 인정함으로 거기에서 나오는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가 나오면, 기도가 나오면 기도 가운데서 자연히 인정하고 기도할 때는 그 기도는 틀림없는 회개의 기도일 것입니다. '나는 이런 것을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가운데에 '무슨 이런 사건을 잘못했습니다. 말을 잘못했습니다. 행위를 잘못했습니다.' 녜, 그런 것도 좋습니다. 그런 걸로 자꾸 나가지마는 마지막에는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치 안한 것이 제일 마음에 아프고, 그분에게. 이 지극히 큰 은혜를 감사치 못한 이것이 제일 마음에 아프고 황송하고 이래서 전부 회개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첫째 회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대한 회개가 될 것이고, 그다음에는 둘째로는 사람에게 대한 회개가 될 것이고, 이제 그다음에 순서대로 회개가 나올 것입니다. 믿음에서 기도가 나오고, 기도에서 회개가 나오고, 하나 둘 회개를 해서 인정 하나님을 인정하므로 필연적으로 나오는 기도에서, 기도하면 점점 하나님에게 대해서 알려 주시기 때문에, 성신이 오시니까 내가 깨닫지 못한 것 자꾸 깨닫게 하시고, 생각 못 했던 것 생각하게 하시고, 주님이 노여워하시는 것을 몰랐었는데 노여워하시는 것을 알려 주시고, 자꾸 이래 기도하다 보니까 자꾸 회개가 됩니다. 기도에서 회개가 나옵니다.
기도에서 회개가 나오고 회개하니까 소망이 나옵니다. 자꾸 회개하는 데에서, 아이구 이런데 내가 믿지 안했다 이런데 내가 소망하지 안했다.' 인정하는 믿음에서 기도가 나오고, 기도에서 회개가 나오고, 회개에서 소망이 나오고, 소망이 나오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소욕이 성령의 소욕이 생겨 집니다. 성령의 소욕이 나옵니다. 성령의 소욕이 나오니까 그다음에는 필연적으로 자기가 실행하는 그 실행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실행이 나오면 그 실행하는 가운데 자기 기쁨이 나오고, 자 기에게 평강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또 담대가 나오고, 그러면 그저 주를 위해서 고난받는 것도 소원이고, 죽는 것도 소원이고, 얼마든지 그 신앙의 생활이 자꾸 강해져서 참 원하고 원하는 기쁜 소원으로서 순생도 갈망되고 순교도 갈망되고 이렇게 갈망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피난 길이요, 피난의 방법이요 또 구원의 방법이요, 또 평강의 방법이요, 축복의 방법입니다. 이것이 사는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 이 방법뿐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요걸 기억합시다. 우리는 영 마음 몸 이 세 가지가 합해서 사람인데 이 세 가지가 합해서 사람인데 이 세 가지의 행복은 하나입니다. 딴것 아닙니다. 참 행복은 하나입니다. 영이 평강을 얻을 때에 마음도 평강 얻고 몸도 평강 얻고, 또 몸이 구원을 얻을 때에 마음도 구원 얻고 영도 구원 얻고 이렇게 구원됩니다. 희로애락을 같이 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피난을 바라는 것은 영의 피 난이요 마음의 피난이요 몸의 피난이요, 평강은 영의 평강이요 기쁨이요 마음의 평강과 기쁨이요 몸의 평강과 기쁨입니다. 그러면 그에게 있는 모든 소속한 소유들도 한꺼번에 갈이 평안해집니다. 영 마음 몸 그의 소유 이 모든 것이 망하면 함께 망하고 구원되면 함께 구원됩니다. 중생된 영은 망하지는 안하지마는 망하는 거와 같은 그런 고통을 느끼는 것이, 그의 마음이 멸망으로 고통 느끼면 영도 고통 느끼고 그 몸도 고통을 느끼고 그 소유도 또 고통을 느끼고 절단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쩌든지 요 순서를 지킵시다. 첫째는 내가 아는 대로의 성경 지식, 아는 대로의 성경 지식을 요대로 인정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써야 될 것입니다. 인정하는 믿음, 인정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고, 인정하는가 안 하는가 그것을 스스로 시험해서 확정지우라 했습니다.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네가 인정을 하는지 안 하는지 네가 시험해 가지고서 확실히 결정을 지워라. '나는 요 면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다. 조금은 인정해도 전부는 인정하지 않는다.' 네가 이런 면에서 저런 면에서, 이런 일 닥칠 때에 네가 시험해 보고! 저런 일 닥칠 때에 시험해 보고-생전 와야 신사참배니 공산주의가 오면은 뻘뻘 떨고 믿음 하나도 지키지 못할 사람들은 전부 다 졸고 있다 그말이오. 창기 모양으로! 신앙 안 팔 그런, 안 팔 자신 있어? 죽인다 해도 담대히 내놓고 믿음 지킬 용기 있어요? 안 돼. 헛 풋장이라. 오늘에 두려워 떠는 자들은 그때 다 이길 것이고 오늘에 뭐 하거나 말거나 하는 그자는 창기야! 신앙 창기야! 지키려고 생각도 안 하는 자라! 옵니다! 이렇게 교회가 부패해져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다 정선하지 그대로 냅둘 것이요? 불로 사뤄서 다 잡것을 태울 것이오. 인간으로서 돼도 못한 것이 대가리 한 그걸 다 낮추어서 죽이든지 낮추츤지 할 것이오. 다 숨어 있는 보배를 다 높이 하나님이 드실 것이오.
이러니까 오늘에 하나님께서 자, 말씀해 주신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니까 이 말씀을 인정하라 인정하라, 오늘밤에도 인정하라 인정하라, 믿어라 믿어라, 틀림없이 이대로 되는 것이니까 믿어라. 전 능하신 분이 네 아버지인 것을 믿어라. 전능하신 분이 내 아버지인 것을 내가 믿으면은 바 앞에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산다고, 아버지 비위 맞추어서 아버지 뜻대로 산다고 강한 세력이 온다고 그까짓 걸 무서워할 것이 뭐입니까? 무서워하는 것은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지 않는 증거지. 그떻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은 마음의 믿음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그것을 실행해 가지고 하나님이 그다음에는 시험합니다. 시험을 치뤄 봅니다."참말로 믿나 안 믿나? 그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너는 믿는다고 하지만 요렇게 거짓부리다, 너는 요만치밖에 못 믿고 믿음이 적고 많지를 못하다, 반 가다가 반에서 그만 낙제하고 만다. 또 거기에서 연단하는 시험, 이러면 거기에서 잡탱이를 제하는 연단하는 믿음으로 지내 통과해 가지고, 그다음에는 연성하는 믿음에서 영원히 온전한 인내를 이루는 그런 자꾸 믿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앞으로 자기의 힘으로써는, 인간 요소로써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시험이 올 것입니다. 왜? 지금은 추수입니다. 지금은 추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알고 있소. 진리를 다 알고 있소.
어제도 어떤 분이 말하기를 '지금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한 뒤에 온 다고 이라는데 전파 안 된 데가 많이 있어요.' 하면서 어떤 지역을 말합디다. 지역을 말하기 때문에 '아닙니다. 그 지역은 한 때에 기독교로서 다 충만했던 곳인데 공산주의로서 소련의 혁명으로 말미암아 다 죽임당하고 그때 완전히 신앙을 자리 걷듯이 걷어 그렇지 거기에도 복음이 전파됐었습니다.' 전파 안 된 곳 없습니다.
세계에 안 된 곳이 없습니다. 됐다가 다 걷혀버렸소. 그건 된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실행을 하나님께서 내가 성경에 말했는데 네가 인정하나 안 하나, 거짓말로 아나 참말로 아나, 참으로 인정을 하나 안 하나? 그것 하나님께서 보시고, 인정하는 자를 구원하지 인정 안 하는 자가 하나님께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정을 하면 '네가 인정만 마음으로만 인정하나 네가 행하기까지 하나, 보자.
행해 봐라. 행하도록 현실 줍니다. 현실 주면 행합니다. 행하면, '네가 행하는데 하기 쉽기 때문에 하는지 어려워도 행하는지, 네가 이 행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는지?" 시험을 해서 보면은 잡탱이는 실행하다가 뚝뚝 떨어져 버리고, 시험에 다 낙제해 버리고, 그래도 잘 믿으면 '보자" 이제는 인적 요소를 다 이것을 다 없애 버리고 이제 진리와 영감의 능력으로만 믿을 수 있는 그런 어려운 도가를 어려운 불 뜨거운 불, 뜨거운 불 환난을 닥치게 떡 하면은 그때에 참 인간 요소는 다 타 버리고 신적 요소의 선물로 된 것만 남아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남아 있게 되면은 나머지기는 다 불살라지고 그것만 남아 있을 것이라.
그래 가지고 그다음에 완성이 되고 난 것이라야 이제 면류관이 있고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저렇게 아이 들고 나가는 것보다는 말이요, 좀 견디는 게 좋은데."아마 꼭 그, 귀신이 들었어, 보니까. 아이를 요래 가지고 있으면 그게 뭐 아마 다리가 아프든지 뭐 저리든지 뭐 그런 고비가 되면은 꼭 못 견뎌서 어머니가 요래 발동해 가지고 어린아이가 깨, 보니까. 마귀라는 놈이 그라는데 그걸 꼭 죽여야 육체 건강도 올 것이고 모든 것이 될 거라 복음 전도도 능력이 될 것이고.
그러니까 그걸 자기가 자기를 시험해서 자기가 자기를 연구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도 성경을 가지고 연구를 해야 되고, 하나님도 성경을 가지고 연구를 해야 되는데 그 연구하는 걸 가리켜서 신학이라 말했는데 요새는 신학이 학문 중에 하나지 하나님 연구가 신학이 아 니라고 그래 말합니다! 그게 다 마귀들이 하는 말이라, 마귀들이 하는 말! 신학은 하나님 연구하는 것이 신학이라! 신학은 하나님 연구라! 성경 가지고 하나님 연구하는 것 신학이라. 미국 아니라 세계의 신학 자가 다 말해도 그말 하는 건 틀렸어! 하나님을 연구를 하고, 그다음에는 자기가 뭐인지 자기가 자기를 이런 형편에서 연구해 보고 저런 형된 연구해 보고, 자기가 자기를 연구하고, 자기와 관련된 사람들을 연구하고, 자기가 당하는 일을 연구하고, 자 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행위를 연구하고 이래 가지고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가만히 누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지금 불시험을 가지고서 우리를 시험하려고 벌써 삼십여 년 동안을 삼십여 년 동안을 이북에서 칼을 갈도록 하고 오늘 내려온다 내일 내려온다 이래 가지고서 그저, 우리가 조금 잘 상바르면 무엇이 툭 터져 가지고서 뭐 무장간첩이 내려왔다 뭐이 내려왔다 어했다 이렇게 말햐고 또 오늘 새려온다 내일 내려온다 곧 내려온다 하고서, 조금 우리가 가도하고 힘을 쓰고 회개를 하면은 그만 그 사람들이 푹 쭈그러지고 또 우리가 기도 안 하고 있으면 또 푹 일어나고, 이것을 눈에 보는 눈이 없으면 소경입니다. 죽은 자요, 소경이요! 다른 이 다 냅두고 자기가 그럴 것이오. 다른 사람이야 아무래도 자기가 회개하고 기도하면 자기 마음에는 '뭐 공산주의 그까짓 거 오나 마나? 오면 오고 가면 가고 무슨 상관있노?' 자기 독단 평강을 줄 것이요 독단 담대를 줄 것이오.
또 독단뿐 아니라 실지로 그렇게 해 주살 것이오.
나는 그래 압니다. 우리 여기 기도회 시작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들어서 역사하시는 것을 나는 봅니다. 우리 기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점점 이제 공산주의는 내리빵수고 민주주의는 올라가도록 이래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이북에 우리가 가 가지고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참 믿음의 용기를, 참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만 생겨지면 이북에 전쟁할 필요도 없소.
저절로 남북 통일이 되고 우리가 거기 가서 복음 전할 수 있을 것이요 거기에서 구원의 운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지금 이 불을 담아 놓고서 불로 연단하려고 이와같이 있으니까 우리가 이 연단에서 통과해야 되겠고, 연성이 돼야 되것고, 시험에 합격이 돼야 되겠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구원을 얻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말이요,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 순서가 그거라. 첫째는 인정해야 돼요. 인정하는가 안 하는가 그것 시험해 가지고서, 인정해야 됩니다.
자기가 무슨 뭐 산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고 뭐 어짜고 한다 해도 벌로 하면 소용 없습니다. 산에 가서 금식기도 하고 뭐 어떻게 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연보를 하고 어떻게 하는 것보다도 내가 첫째 '성경이 가르치시는 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성경이 말한 대로 내가 인정하나 안 하나?' 인정하면은 인정하는 그 내가 변화가 될 터이니까 내가 내 행동을 봐서 인정을 내가 하나 안 하나 내가 시험해 보면 알 것이라 그말이오.
첫째는 인정하는 노력을 해서 인정을 하는 자로 살도록 노력을 하고, 인정하게-되면은, 인정하게 되면은 그분보다 두려운 분이 없고, 그분 보다 좋은 분이 없고, 그분보다 감사한 분이 없고, 그분보다 믿을 분이 없고, 그분보다 의지할 분이 없고, 그분보다 바라볼 분이 없고, 그분 하나만 사귀면 그분은 내 전부의 전부가 되는 것이니까 그분만 떠나든지 거하든지 기쁘시게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되고, 또 그분에게 기도 안 할 수가 없어.
그분에게 감사 기도도 안 할 수 없고, 인정하다 보니까 자복 기도도 안 할 수 없고, 내 사정 모든 것을 고하지 안할 수도 없고, 또 간구하지 안한 수도 없고 자연히 기도가 나온다 말이오.
이래 인정으로 나오는 필연적인 기도, 이 기도하다가 보니까 필연 적으로 나오는 회개, 회개하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나오는 소망, 이 소망과 소욕이 나오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그 실행이라는 행동이라 하는 것은, 사람이 목마른데 물이 있는 걸 알면은 물을 절로 마시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본능적으로 이거는 행하게 된다 말이오.
행하게 되고, 행하면 행함을 통해서 자기에게 필연적으로 기쁨이 나오고, 필연적으로 평강이 나오고, 필연적으로 담력이 나오고, 이제 이것이 다 필연적으로 나와서 우리의 구원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렇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인데 우리가 이 방편도 저버리고 하지도 안하고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피난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축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야 고기덩어리가 잘되는 줄 알지마는 그렇게 생각지 마십시오. 영 혼 몸, 영 마음 몸 이 세 가지, 우리 몸 밖에 있는 모든 행동, 모든 소유 이 다섯 가지, 이 다섯 가지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요. 그 영이 어떠한 것을 그 마음이 나타냅니다.
마음 보면은 그 사람 영을 알 수가 있고, 그 사람 몸을 보면은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 마음 속에 있는 근심을 몸을 보면 압니다. 그 사람 마음 속에 기쁨을 그 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몸의 그 평강과 형통을 그 사람 하는 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잘 되는지 못 되는지 그 사람의 소유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거는 하나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을 지켜서 인정하고 그럼으로써 기도하고 기도함으로 회개 나오고, 회개함으로 소망 나오고, 소망 나옴으로 소 욕이 나오고, 소욕이 나옴으로 단마음으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행동이 나오고, 행동이 나와 가지고 그러면 나오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강의 행복이 나오는 이 행복은 영 마음 몸 일 소유 이 전체가 한목 구원 얻는 것입니다. 이 요소만 구원 얻는 것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실은 기독자의 세상 생활이나 천국 생활이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는 이 길 외에는 행복 길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 방편 우리에게 주셨으니까 이 방편을 둥한히 여기지 말고 저버리지 말고 요대로 하는 사람은 피난합니다. 요대로 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기본구원 말고 건설구원을 얻습니다. 평강을 누립니다. 다른 사람은 울어도 자기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홍해 바다 건널 때에도 어떤 사람은 기쁘고 즐거웠는데 어떤 사람은 녹아서 죽을 지경이었었습니다. 왜정 말년에도 어떤 사람은 참, 뭐 신사참배 한 사람들은 평안한 줄 아요? 신사참배 한 사람들이 제일 겁나고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신사참배하고 나니까 그 사람들이 '당신들은 우리에게 복종하고 하나된 사람이니까 이제는 일본 관광도 시키고 여행도 시켜 주겠습니다.' 하고 일본까지 데리고 갔지마는 그렇지마는 그 사람들은 해방될 때까지 항상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내가 들어보니까.
왜? '이러지만 이 사람들이 일본 지금 관광 가라고 이래 하는데 가다가 죽이려고 하는가?' 이래 가지고 '죽이려고 지금 이래 꾀를 하는가 저래 하는가?' 항상 불안했대요. 그 사람들이 제일 불안했고, 그다음에 불안한 사람들은 신사참배 안 하고 감옥 생활 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저 항상 불안했어. 불안했고, 감옥 속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 죽음과 생명을 다 주님에게 다 맡겨 놓은 사람들은 그저 '살든지 죽든지 내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 사람들은 또 평강을 누렸고. 또 제일 평강을 누린 사람들은 감옥에도 들어가지 안하고 신사참배 반대하고 이래 자유로 다니며, 그 사람들이 물씬물씬해서 어떻게 신 사참배 하라고 그 교회 교인들은 하나도 데려가지도 안하고 잡아가지도 안하고 그저 신사참배 하라 하면 '못 합니다.'하면 그만 가 버리고 '못 합니다.' 하면 가 버리고 '못 합니다.' 하면 가 버리고, 그뭐 그 사람들 다루기를, 다루는 것이 어린아이 다루는 것같이 그거는 뭐 아주 명령 대로 순종하고 그렇게 시쁘게 보이게 그렇게 하고, 6·25때도 뭐 인민군이 뭐 어때? 인민군에게 대해서 하나도 겁내지 안하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지낸 사람,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겁이 나 가지고서 도망을 쳐 가지고 부산까지, 거창서 부산까지 도망쳐 온 사람들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에 기도하고, 오늘에 회개하고, 오늘에 자기가 소망 하고 오늘에 욕망을 가지고서 노력하고 하는 이것이 힘 안 들고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냥 읽고, 줄줄 읽고 이럴 것이 아니라 '내가 인정 하나 안 하나?' 인정하려 하니까 힘이 안 들지 않아. 인정하려고, 인 정하는 것 믿으려고 하는 데도 힘이 들고 또 기도하는 데도 힘이 듭니다. 회개하는 데도 힘이 듭니다.
또 소망하는 데도 힘이 듭니다. 땅의 것 욕심을, 땅의 욕심을 없애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욕심을, 성령의 소욕을 가지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 소욕을 가지면 자연히 이와 같이 해야 되겠다는 욕망이 생겨지기 때문에 단마음으로 순생 순교할 수 있는 이 마음이 생겨지는 데에는 자기 속에 있는 잡마음 원죄와 본죄를 다 제거해 버리고 이렇게 신앙으로 살려 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힘이 들지마는, 그 힘이 들지마는 앞으로 실지로 환난을 당할 때의 힘과 비교하면은 환난당할 때에 제가 녹아지고 고통당하는 그 고통의 십분지 일도 안 됩니다.
십분지 일을 오늘 당하면 그태는 기쁘고 즐거움으로 다 지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왜정 말년에도 기도의 사람들은 기쁘고 즐겁고 이기는 줄도 모르게 '그뭐 신사참배가 무슨 문제라?' 이러면서 평안하고 즐거움으로서 이겨 나왔고, 기도의 사람들은 6·25 때도 기쁘고 즐거움으로 이겨 나왔고, 오늘도 기도하는 사람은 기쁘코 즐겁고 항상 기쁨 가운데 살고, 우리 신앙, 우리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는 요 신앙에 바로 들어섰을 때에는 오늘도 기쁘고 즐겁고 평강뿐입니다. 제일 인간에게 고통 주는 것이 뭐입니까? 고통 주는 것이 제일 뭐입니까, 고통 주는 것? 마귀란 놈이 꾀워서 마귀에게 꾀 임받으면 고통입니다.
하와가 마귀에게 꾀이고 보니까 천상 천하에 인생에게 대해서는 제일 해독 많은 것이 선악과인데 해독 많은 그 선악과가 마귀의 유혹받고 보니까 천상 천하에 그보다 더 보배가 없기 때문에 죽어도 먹고 싶 었습니다. 죽어도 취하고 싶었어.
실상은 인생에게 그보다 더 해독 있는 게 있습니까? 이렇게 마귀란 놈이 우리를 와서 유혹시키게 되면은 자기에게 천상 천하에 제일 자기를 해치는 고거라도 자기에게 천상 천하에 제일 보배로, 그것만 있으면 내가 행복될 것으로 여겨지게 그렇게 미혹을 시 키는 것이 악령의 미혹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의 미혹을 다 물리치고 마귀에게서 해방을 당하지, 사망에서 해방을 당하지, 모든 번민 고통에서 근심에서 해방을 당하지, 기쁘고 즐겁고 평강과 담대와 욕망에서 넘치도록 사는 것이 우리의 기독자인데 신앙을 지키지 안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이 구원은 오는 데에 뭘로 오느냐? 십자가 도로 옵니다. 십자가 도는 어려움을 통해서 평강이 오고 낮아 짐을 통해서 높아짐이 오는 그것은 뭣 때문에냐? 인간이 하나님을 인정하나 안 하나 시험하기 때문에, 인정하나 안 하나 시험해서 인정 하는 사람만 얻고 인정하지 안하는 사람은 얻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인정하는, 하나 안 하나 시험하는, 인정하는 사람은 얻게 되고 인정 안 하는 사람은 못 얻게 되기 때문에, 인정 안 하는 사람은 옛사람인데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그 모든 은혜의 역사는 옛사람이 볼 때는 망하는 것으로 보고 고통스러워 보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의 길이 자기에게 고통이다 걱정이다 근심이다 하는 그 걱정 근심 고통되는 것이 옛사람이 들어서 미혹받아서 근심하고 고통이 되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고통은 아닙니다. 고통은 아니오. 전부 사는 길이요, 죽은 것이 살아나는 길이요, 천한 것이 귀해지는 길이요, 약한 것이 강해지는, 전부 좋아지는 길이지 나빠지는 길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마귀의 미혹을 받아서 옛사람이 들어 그렇지.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는 먼저 고난 후에 평강이라 하는, 고난은 왜 고난입니까? 고난은 옛사람 그놈 죽이는 고난이오. 새사람이 죽습니까? 새사람이 안 죽소. 옛사람 죽이는, 그놈은, 옛사람 그놈에게 고난이요, 그놈에게 죽음이요, 그놈에게 고통이요, 그놈에게 근심이지, 옛사람 그놈을 죽이고 멸하지 새사람은 고통당하는 것 아닙니다!
그런고로 어쩌든지 이번 기회에 기도회를 시작한 이 기도회를, 처음에 시작할 때에 말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시작했다가 중단했지마는 이번 에는 중단하지 안하고 주님 구름타고 오실 때에 주님을 맞이할 때까지, 개인적으로는 주님이 부르셔서 부름받아 갈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그때에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번에 기도 제목 일곱 가지 준 그 일곱 가지가 우리의 신앙 전체를 간추려서, 그 제목을 통해서 들어가면 온 성경에 우리 신앙 생활이 쪽 들려들어오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열거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쩌든지 주의해서 지금 고요한 때이기 때문에, 그것도 나는 며칠 전에 알았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한 학생이 와 가지고서 '어떤 분이 내려와 가지고 강연을 하는데 그분이 어떤 분입니까?' 이래 말하는데, 함석헌씨를 말해요. 말해서 나는 그때, '뭐 하러 거기 그 강연 들으러 갔더노? 그는 무교회주의다.' 이 랬는데, 나는 그분은 무교회주의인 줄 알고, 무교회 주의는, 무교회주의는 비성경적이요 이단입니다. 여러분들, 성경에는 전부 하나라도 모여서, 둘이라도 서이라도 모이면 그게 교회가 되고, 그 교회를 하나님이 구원했고, 교회를 핍박했고, 교회를 상대했지 어데 교회, 무교회주는 무교파주의가 되고 무교파주의는 무개인주의가 됩니다. 이거는 중세 철학에서 전체주의라는 철학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거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분이 강연을 어디서 와서 했다 하는데 내가 그분이 지금 살아 있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습니다. '거기에 와 있어?' 그전부터 그분의 하는 일을 좀 이상하게 보기는 보고 어짠지 좋지 안해서, 나하고 가까이 접촉하는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그이 하는 일을 어짠지 나는 환영이 안 된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해 올리는데 나는 환영 안 된다.' 이랬는데, 엊저녁에 들었어.
우연히 엊저녁에 그분이 와 가지고서 말하기를 '그분이 내나 무교 회주의 아닙니까? 무교회주의라서 복음병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 나는 깜짝 놀랬어.
그분이 무교회주의인 줄 전혀 몰랐어. 이랬는데 이제 말 듣고 보니까 딱 들어맞았거든. 무교회주의, 지금 또 무신론주의, 유물주의, 기독교 뭐 정치주의, 도덕주의, 사휘주의, 그거는, 그것은 기독교에 없는 것 아니라 말이오. 기독교에 기독교 사회성을 제일 높여서 그걸 위주로 하는 그것이 기독교 사회주의입니다.
기독교에서 물질을 또 부인합니까, 물질을 하나님과 동등이라고도 생각했는데.
이런데 기독교에 물질도 귀중하지마는 물질을 귀하게 여기는 그것을 제일 위주로 삼는 그것이 유물주의입니다. 기독교 사회주의라 하는 기독교 사회성, 기독교 도덕성도, 도덕성 이, 기독교에 도덕성이 있는데 도덕성을, 도덕성보다 그 안에 신앙성이 뭐 높은 것이 많이 있는데 도덕성을 제일 위주로 하는 그것이 기독교 도덕주의입니다.
이래서 인본주의, 신신학 이런 것이 지금 나와 가지고서 기독교를 이렇게 해치고 모두 다, 엊저녁에 그분도 그래. '모두 차기 전부 자기의 기업체, 다 교회를 자기 기업화시키고 있다. 자기 기업체로 전부 기 업화시켜 가지고서 있으니 이것도 하나님의 큰 진노거리라.' 그분하고 잠깐 만나는데 땀이 통해요, 보니까.
이런데, 여러분들 우리가 주의할 것은 우리가 허영 허욕 인기 공명을 탐하는 그런 사람들은 이런 모든 속화된 이단 아닌 이단 성전 밭마당 여기에 빠져 가지고서 다 빠져서 자기의 구원이 멸망하도록 하나님을 부인하는 상당한 값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내셔 가지고 이와 같온 모든 미혹의 속화 교회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다른 사람이 어쨌든지, 뉘야 어찌 됐든지 그저 성경에 있는 말씀 인정함으로, 인정하는 믿음, 인정함으로 필연적인 기도 필연적인"기도에서 필연적인 회개, 필연적인 회개에서 필연적인 소망 필연적인 소망에서 필연적인 소욕, 필연적인 소욕에서 자기에 이제 단마음으로 순생과 순교가 하고 싶고 원하는 그 행함이 원하고 원해지는 그 행위 필연적으로 끝까지 계속하는 그 인내,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어짜든지 이번 기도회에서 우리가 그 기도 제목 준 것을 그것을 다 알라 하면 여러 날 걸리니까 기도 제목을 간단하게 생각하면서 내가 인정하나 안 하나 다져보고 그다음에는 '인정합니다!' 할 때에 우리에 게는 기도가 나올 것이요, 간구가 나올 것이요, 담력이 나올 것이요 소망이 나올 것이요, 욕망이 나을 것이요, 평강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니까 땅위에 어떤 세력이 무엇을 하겠느냐? 독침을 가지고 보내신 이가 주님이시요, 독침 너머 주님이 계시고 사랑하는 주님이 거석하니까 네가 아무리 독침으로 나를 찔러도 독침의 독이 내 속에 들어갈 수도 안 들어갈 수도 있고 그거는 주님의 주권에 매였어. 네가 내 살에 대도 하나님께서 그 이상을 내밀지 못하게 하면은 내 살에 들어가지를 안해.' 요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을 우리가 평소에 연습해야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인정하는지 안 하는지 요걸 시 험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안하는 죄,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을 내가 인정하는지 안하는지?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는지 안하는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인정하는지 안하는지? 그 방편으로 주신 그 방편을 인정하는지 안하는지? 인정하면 우리는 뛰고 굴리고 날아가지요.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지지요. 우리는 깨끗해지지요. 우리는 깨끗한 교회가 되어지지요. 죄는 우리가 원수가 되고 그는 참으로 미운 것이 되어지지요.
하나님께 대해서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가 인정하는지,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는지, 하나님이 주신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을 인정하는지, 그 방편들을 인정하는지, 이 구원을 위해서 모든 순서가 있고 이 구원을 위해서 모든 존재들이 있는 이 지극히 크고 광대한 사실을 인정하는자 안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기뻐 뛰고 뭐 춤을 추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