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0 15:51
팔복
1986. 10. 31. 새벽(금)
본문:마태복음 5장 1절∼12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팔복을, 여덟 가지 복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을에서 하나님의 도를 전할 때에 각처에서 많은 무리들이 다 몰려왔습니다. 와서 여러가지 병든 자들이 다 병 고침을 받고 그 일을 마치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가니까, 거게서 자기들의 소원이 이루어짐으로 각각 모두 자기 처소로 돌아간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무슨 뭐 병 낫고 또 자기들에게 여러가지 각각 모두 소원된 그런 소원들이 이루어지는 그런 것으로써만 만족이 되지 아니하는 그런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따라서 또 산으로 갔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그래 또 예수님이 산으로 가니까 산으로 이렇게 쭉 따라가서 많은 무리들이 모였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거게서 말씀하신 것을 가리켜서 산상보훈이라, 산 위에서 교훈한 보배의 교훈이라, 그렇게 산상보훈이라, 보배의 교훈이라 이렇게도 말하고, 또 황금율이라, 그러면 그 모든 교훈이나 가르치는 그 율례가 다 이는 황금이라, 이는 정금이라, 정금 교훈이라, 정금율이라, 보배로운 교훈이라 그렇게들 사람들이 이름을 짓습니다.
예수님도 무슨 일이든지 이 복음 전파하는 일을 하실 때에 이런 촌으로, 또 뭐 도시로 이렇게 다니시면서, 그때는 별 도시가 없었지마는. 복음을 전하고 나서는 언제든지 산에 한적한 곳을 많이 찾았습니다. 이래서 대개는 예수님이 거처하신 것이 혹 믿음의 사람들 집에 가서 거처한 일이 있었고, 뭐 마르다 마리아 집이나 또 그 뒤에 삭개오 집에도 가서 유하셨습니다. 그랬으나 대개는 산에 가서 밤을 많이 새웠습니다.
어제 아침에도 우리가 여기 새벽기도 마치고 가니까 저 양산동 공동묘지 거게 가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 걸어오는데 나는 잘 못 봤는데 같이 가는 그 ○집사가 있다가 ‘이복순 집사님이 지금 저게 걸어서 가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합디다.
그분은 그게 얼마나 갈란지 몰라도 좀 한 공들인 것은 한 이 년 됐습니다. 늘 산을 자주 가고 한적한 곳을 많이 찾아서 다니는데.
산에 가서 있다가 또 새벽 예배 시간이 되면 내려와 가지고 양산동에서 같이 설교를 듣고 또 혹 설교가 그만 전화가 안 돼서 설교를 못 듣게 될 때에는 테이프를 자기가 가지고 다니면서 테이프를 산에서나 듣고, 밤을 한적한 곳에서 늘 지내는 그런 일을 지금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과거에 아주 뭐 참 생명이 위험한 분인데 어릴 때 다쳐 가지고 그것이 그때 죽을 사람인데 어떻게 살아나 가지고, 방편을 여러 방편을 썼었습니다. 저 ○○온천에 거기 가니까 효력이 있다고 ○○온천에 아마 달 반, 한 달 반 다녔는가 두 달 다녔는가 다녔습니다.
그래 내가 ‘○○온천에 거게는 치료되는 효력이 없다. 거게는 그거 사람들이 선전에 따라서 말하고 그저 하나의 호기심에서 ○○온천 효험 있다 하고 모두 다 그리 모아들지 좀 있어 봐라. 그거 아무도 안 간다. 그거는 하나의 돈벌이 하는 사람들과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 그렇츰 모이는 것이지 참으로 치료의 효력이 있는 거 아니다.’ 좀 있으면 저거 ○○온천 유명이 없어집니다.
그거는 모두 사람들이 가 가지고 아무 음식이라도 처음으로 먹으면 맛있고, 또 아무 곳이라도 처음 가보면은 구경할 만하고, 그런 모두 다 호기심에서 또 변동되는 그런 변동성에서 취미를 누리는 인간의 그 부패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 부패성으로 인해서 어데든지 뭐 하나 이름 나면 막 그리 사람들이 주 모아드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효력 없다 했더니마는 얼마나 자신이 있었든지 나한테 한번 오더니마는 ‘목사님, 그런 말씀은 안 하셨으면 좋겠읍디다.’ 내가 그걸 알아요.
‘왜요?’ 이라니까 `지금 현재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효력을 보고 있는데 그 효력이 없다고 이래 그라면 목사님의 말씀이, 알지도 못하고 말한다. 한 마디라도 목사님 말이라면 다 죽어도 죽을라고 그렇게 지금 각오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헛말을 하시게 되면은 그 사람들에게 시험이 되고 은혜가 삭감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그 사람은 내가 안 그렇다고 세워봐야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아이, 그렇습니까? 효력이 있습니까?’ ‘예, 현재 효력이 있습니다.' `그래 지금 집사님이 효력을 봅니까?’ ‘예, 효력을 봅니다.' `그러면 어짜든지 병을 낫워야 되지 그 병으로 죽습니다. 죽으니까 좀 계속 다니십시오. 비용이 모자라면 돈을 무슨 빌려 가지고라도 꼭 낫도록 계속 다니십시오.’ 한 달 반인가 두 달인가 다녔어요. ‘꼭 하루도 빼지 말고 다니십시오.’ 그라니까 ‘예' 하고서 꼭 다녔습니다.
다녀 보니까 차차 차차 시일이 지나갈수록이 낫아야 될 터인데 시일이 지나갈수록 낫지 않습니다. 하나도 낫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서, 나한테 양심이 깨끗하면 와 가지고 자복을 할 터인데 자복도 안 하고 안 간다 말 내가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불러 가지고 ‘왜 안 갑니까?’ 이라니까, 웃으면서 ‘목사님이 그렇게 거석할 때 나는 그걸 부인했는데 내나 그 말씀이 맞고 내가 하나도 효력이 없어서 지금은 안 갑니다. 그때 내가 말 잘못한 걸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을 합디다.
그래서, ‘그렇게 한 달반인가 얼마인가 계속 다닐 만치 그렇츰 자기가 받은 증거가 있고 확실해서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헛일이 아니냐? 한 달 반이나 계속하고 난 다음에사 비로소 알아지니 범사에 다 거짓부리를 그렇게 판단할라 하면은 자기가 거짓부리를 언제 다 판단하고 언제 바른 길을 걸어갈 수가 있겠느냐? 그러니까 그런 원죄 본죄를 회개를 해야 되지 그 죄악성을 회개치 안하면 항상 죄, 원죄와 본죄의 충돌에서 평생을 지내고 만다.’ 그랬었는데, 그뒤에 이제 수원지 가서 기도하러 다닙니다. 수원지에 기도하러 다녀서 뭐 언제든지 하루 아침도 빼지 안하고 수원지로 기도하러 다녔어. 그래 내가 그 뒤에 말하기를 ‘이제 병 나을 그런 길을 바로 잡았으니까 이것은 변동하지 말고 다녀봐라. 현재 다니면 별 효력이 없지마는 차차 다녀보면 자기의 심령이 변화가 될 것이고여게 팔복 중에 첫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했는데마음이 차차 좀 깨끗해질 것이다. 마음이 깨끗해질 터이니까 다녀보라.’ 다녀보고 나중에 한 달포 다니고 나서 내가 만나 가지고 또 묻기를 ‘그러면 다녀보니까 마음에 무슨 좀 마음이 깨끗해지는 그런 것이 있느냐?’ 요리조리 물어보니까 좀 깨끗해지는 게 있어요. ‘심령에 과거에 보이지 아니하던 것이 더러 보이는 게 있느냐?’ 물어보니까 과거에 깨닫지 못했던 거 느끼지 못했던 거 그런 것이 조그매씩 느껴진다고 그렇게 말합디다. ‘이거는 이 집사가 병고칠 길이니까 이는 튼튼하고 온전한 길이니까 요동치 말고 다녀보라. 반드시 자기의 병이 나으리라.’ 계속해서 다녔습니다.
다니는데, 그 뒤에, 다니는 데 보니까 또 힘이 없이 좀 다니는 것 같아서 그래 또 내가 한번 불러 가지고 말하기를 ‘이렇게 다니는데 네가 산에 기도하러 이래 다니면서 그저 아침마다 이래 다니고 이라니까 좀 피곤함이 생겨지느냐?’ 피곤함이 생기느냐 하니까 좀 피곤하다고. ‘피곤하면 병든다. 피곤하면 차차 차차 다닐수록 병드니까 피곤하거들랑 그만 다녀라.’ 그만 다니라 하니까 그만 다닐 수는 없대요.
‘그라거든 다니되 그저 산에 그래 가는 그것을 위주로 할 것이 아니라 가면 네가 무슨 감사한 것을 찾든지 네게 대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적의 역사를 찾든지 받은 바의 그 은혜를 그라면 찾아봐라.’ 그라고 나서 자꾸 가 가지고 다니면서 감사할 걸 찾으니까 감사 하나 둘이 자꾸 나오고 이래 나오고 하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자기가 안겨 있다 하는 그것을 느끼니까 ‘요새는 어떠냐?’ 이러니까 피곤함이 없다 해요. 피곤함이 없다고, 피곤함이 없고 기쁘고 즐겁고 안 갈 수 없다고. 그래, 종종 이래 물어서 그 다음에는 여기 대신 공원에 비가 오든지 뭐 겨울에 춥든지 뽑을 수 없는 그런 걸음을 걷게 됐습니다.
그라다가 그 뒤에 이제는 그 사람이 완전히 변화됐습니다. 좀 변화가 됐는데도 그래도 그 육적 변화뿐이었는데 그 뒤에 양산동 기도산이 생기고 난 다음에 그리 이제 다니는 일을 해서 거기 가서 며칠씩 있고 밤을 새고 늘 이렇게 그저 한적한 곳에서 자기의 모든 나쁜 것을 찾고 또 자기에게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찾고 자꾸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변화가 됐습니다.
이래서, 그분이 처음에 여기 수원지 다니다가 양산동 갈 때 그때는 아직까지 은혜를 그리 많이 받지 못한 때인데 가 가지고 다른 사람 있는데 못 있어서 그만 와 버렸습니다. 왜? 거기 있으니까 거기는 습기가 많은 곳입니다. 이래서 그만 몸에 습기가 졸려 들어오고 이러니까 몸이 아파서 아무리 견딜래야 견디지를 못해서 그러면 왔습니다.
그러니까 어데 가면은 그분 가는 데는 짐이 그저 뭐 제일 보따리가 큽니다.
보따리 큰 거 여러분들 봤습니까? 여기 권사님들 같이 다니는데 누구 보따리가 제일 커요? 이복순 보따리가 제일 큰 거 봤어요, 모두? 그거 못 느꼈어? 내가 이 말을, 느낀 걸 말해야 되지 나 혼자만 느끼면 내가 잘못 느꼈는지 아는가? 이복순씨 보따리가 제일 큰 걸 느꼈어요? 이복순이 보따리가 제일 크고, 둘째 보따리는 ○○○권사님 보따리가 크고 그렇습니다. 안 그래요? 그렇거든 손 좀 들어 봐, 그 본 사람은. 느낀 사람 손 들어, 느낀 사람. 손을 들어 봐, 느낀 사람은? 거짓말쟁이들 모양으로. ○○○권사님은 못 느꼈구만.
제일 컸습니다. ○○○권사님은 못 느꼈어요? 그분 보따리가 제일 큽니다. 왜? 못 견디니까 뭐 이런 거 저런 거 막 주 싸 가지고 이래 다녀야 되지 안 싸고 다니면 안 돼서 보따리가 제일 크고 또 ○○○권사님이 또 몸이 약합니다. 그러니까 몸은 약한 데다가 보따리는 제일 커야 됩니다.
이랬는데, 요새는 보따리가 아무것도 없어. 책보따리 하나뿐이라. 책보따리 하나뿐이야. 아무것도 없어요. 저 산에 가 가지고 이거 다우다인가 뭘 이래 가지고 그 요만하이 하나 뭐 만들어 가지고 그래 거기 가서 밤새껏 그냥 있어요.
밤새껏 그냥 있는데 추운 것도 없고 밤새껏 앉아 있어도 졸지도 안하고 피곤치도 안하고.
여게서 저녁 먹고, 낮에 가 또 일하고. 낮에 심방하고 전도하고 또 그라고 저녁 먹고는 또 가요. 저녁 먹고 또 갈라 하면 전철 타고 가면은 약 두 시간 걸린답니다. 두 시간 걸리는데 저녁 일찍 먹고 가면은 거기 가면, 산에 가면 한 아홉시나 된대요. 아홉시 되면 인제 거기 가 또 밤새껏 기도하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새벽에 내려와 가지고 예배 볼 때에 같이 예배보고. 그때 예배 보는 사람이 없으면, 뭐 엊저녁에는 예배보는 사람이 없고 열쇠를 못 가지고 갔으니까 아마 산에서 녹음 들었는지 모르겠어.
그라고 나면은 또 예배 마치고 나면은 이제 또 달음질해 옵니다. 거게서 팔송이 어북 안 멉니까? 그거 또 먼 게 없어, 그분에게. 그분에게 먼 게 없어. 그만 달려와 가지고 또 지하철 타고 오면은 또 두 시간 걸려. 두 시간 걸리면 오고 가고 네 시간인데 네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 네 시간이 그 시간도 기도 시간이라, 네 시간도 기도 시간. 그러면 네 시간에 자기 식구 기도할 거 기도하고 자기 대한 기도하고 이래 기도하고 또 그라고 나서는 또 식사하고 나면 또 심방가요.
이라는데, 그라니까 가다가 피곤한 일이 있을 때에는, 피곤한 일이 있을 때에는 나는 자꾸 좀, 그라며 또 굶어요, 또 자꾸. 굶고 돌아다녀요. 그래서 ‘그거는 고행주의다. 안 된다. 우리 힘으로서 할 수 있는 그런 거는 하고, 할 수 없는 거 하나님께 달라 해서 구해서 해야 되지 배고픈 데에 밥 먹고 밥 먹으면 힘있고 밥 안 먹으면 배고프고 기운 없고 하는 그런 일은 그게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방편인데 그 무시하고 그라는 거 아니라’고. 그래 인제 그래서 주일날은 밥 먹습니다.
주일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굶어요. 아무것도 안 먹고 굶고 이래도 뭐 팽팽하게 이랬는데, 그래 인제 밥을 내가 좀 뭐라 해서 ‘삐쩍 말라 가지고 장 그라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가리워지니까 안 된다’ 지금 밥은 주일날 두 끼 먹어요. 하루 두 끼씩 먹어요, 그 사람은. 하루 두 끼식 먹는데 이래도 뭐 어떻게 뭐 빠른지, 건강을 가지고.
그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는데 심령 가난을 지금 조금 맛을 본 모양이라. 맛을 봐 가지고 그래 다니는데 조금 지내치지 안하고 이래 치우치지 안하면, 하나님 보실때 ‘그라면 그거 안 됐다, 그거는 고쳐야 되겠다.’ 고칠 방편이 아니고 하나님이 옳다 하시는 그 방편만 쓰면은 그거는 언제까지나 변동이 없이 자꾸 새로와집니다.
새로와져서, 그분을, 주일날 내가 오라 소리 안 했는데 주일날 오후 예배 드리고 나면은 와요. 자기가 그때는 저녁을 안 먹으니까 이래 와 가지고 얘기하고 또 나도 또 밥을 먹으면서도 얘기할 맛이 있어. 왜? 그 보면 그 안에 뭐 아름다운 게 있으니까, 예수님의 형상이 있으니까 아름답다 말이오. 그 말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예수님의 형상이 나오니까 나도 보기에 또 교제할 만하고 또 아름답다 그말이오. 또 자기도 또 이렇게 만나는 사람 중에 또 내가 식사하면서 이래 해도 또 만나는 중에 또 재미있는 사람이 또 내 속에도 있는 모양이오. 아주 그래 가지고 변화가 됐는데 그 구역 식구들도 차차 차차 변화가 돼 갑니다. 변화가 돼 가고 또 그 하는 일이 권위가 있어지고.
그래 내가 그랬어. ‘그래 다니며 암만 기도해도 나타난 기적과 축복이 있어야 되지, 표적과 축복이 있어야 되지 그거 없는 그거는 공연히 미신을 믿고 돌아다니는 거 아니냐? 뭣이 표적이 있어야지. 표적이 있는 건 그 구역 식구들이 새로와지든지 구역이 부흥이 되든지 뭐 자기 몸뚱이만 건강해지고 그것만 된다면 무슨 소용 있느냐?’ 또 이래놨더니마는 아마 거게 대해 기도하는가 그 구역이 조그매씩 자꾸 일어납니다. 그 구역이 자꾸 새로와집니다. 뭐 그 구역 심방하는 그런 거 가지고, 뭐 그런 거는 많이 못 하는데도 새로와지고, 한 마디라도 말하면 살리는 말 하기 때문에.
그전에 내가 한번 저 대티에 기도실 있을 때에 같이 이래 가니까, 따라 붙여서 같이 가는데 ○○○씨 어머니를 가다가 만났어요. 내가 그전에 말한 그 사람이라.
○○○씨 어머니를 이렇게 만났는데 만나니까 뭐 구역장이라고 뭘 만나 가지고 구역장은 말을 많이 해야 되는 줄 알고 얘기하는데 그 사람한테 뭐 어짜고 어짜고 어짜고 한참 보니까 내가 있으니까 더우기 지금 봐라 하고서 아마 뭘 식구에게 권면하는 것 같아요. 권면해서 한 오 분 동안이나 거기서 뭐 권면을 이래 해요.
권면하는데 나는 그걸 뭐 반대할 수도 없고 그래 내가 옆에 가만히 듣고 이래 섰었는데 한 마디도 사람 살리는 말 아니고 전부 사람 죽이는 말이라. 그저 말만 하면 되는 줄로 알고 이래 있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암말도 안 하고 머리 숙이고 듣고 있기는 있지마는 그 사람에게 뭐이 먹혀들어갈 리가 없고 감동될 리가 없고 새로와질 리가 없어. 그래 내가 그 앞에 갈 건데 안 가고 내가 꼭 ‘뭐라 하는고 보자’ 듣고 있으며 바라고 듣고 섰었어요.
그래 나중에 보내고 난 다음에 뒤에 따라오기 때문에 내가 말했어. ‘권찰님, 권찰님이, 권찰은 식구 만나면 아무나따나 자꾸 이래 말을 주 대는 그것이 권찰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권찰님 오늘 아침에 그 말한 것을 이런 말 이런 말 자꾸 했는데 그 말이 하나도 쓸모 없고 사람 죽이는 말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만나면 식구 죽이는 말만 하지 도무지 살리는 말은 하나도 없고 사람을 죽이는 말,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말만 자꾸 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식구들이 살아나겠느냐?’ 그래 내가 좀 야단을 쳤어요.
‘그것은 자기가 천국을 보지 못하고 지금 그래 돌아다니니까, 세상 사람이니까 입에서 나와 봤자 세상 나오지, 똥자루에서 터지면 똥 나오지 그뭐 딴거 나올 게 뭐 있느냐? 금이 들은 금자루가 터졌다면 거기서 터져나오면 나오면 금이지 딴게 나올 게 없다. 속에 천국이 담겨 있어야지 천국이 담겨 있지 않으니까 헛일이라.’ 그래 가지고 내가 좀 야단을 친 일이 있어. 그걸 내가 여기 강단에서도 내가 여러 번 말했을 거라. 다른 권찰들 말하는 걸 내가 듣지를 못했으니까, 별로 못 들었는데 들어보면 허무합니다. 허무한 소리 안된 소리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보면 사람이 많이 변화가 됐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게 앞으로 조금 이 팔복을 계속해서 가르칠란지 모르겠는데 이걸 아무나따나 들어 가지고는 안 되고 좀 ‘뭐인고?’ 이래 갈급하고 ‘이 뜻이 뭐인고?’ 이라다가 들어야 되지 아무나따나 이런 것 없이 이렇게 들으니까 암만 말해봤자 ‘원래 저래 한다’ 제가 가르치는 말은 `원래 저란다. 원래 우리 모르는 말 한다. 뭐 별말 한다.’ 그만 도매금으로 ‘목사님이 가르치는 것은 우리 모르는 말 별말 한다.’ 이거 하나로 다 돼 버렸어. 이거 하나로 다 돼 버리고 도무지 이게 참 천천 금은보다 보배라는 그 보배성을 느끼지 안하고 있다 그말이오.
이렇게 우리 믿는 사람이 어짜든지 한적한 곳이 있어야 됩니다. 한적한 시간이 있어야 되고 한적한 곳이 있어야 됩니다. 그저 자기가 어떤 때는, 어떤 정도의 사람은 자기 친구를 못 만나면 갈급이 납니다. 친구를 못 만나면 갈급이 나고 재미 있는 곳을 가지 안 하면 갈급이 나지마는 차차 변화되면 친구가 좋기는 좋지마는 암만 좋아도 예수님만 못하기 때문에 사람 친구가, 자꾸 사람하고 친하고 시간 보내면 주님과 멀어지는 것이 자기가 환히 드러나기 때문에 오는 사람을 괄시는 못 하지마는 할 수 있는 대로 사람 오는 것이 마음에 심히 괴롭고 또 이 세상 일 모양으로 괴롭고 그저 예수님, 하나님. 예수님에 대한 갈증이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면 이 세상이 접하는 것이 그것이 세상에 대해서, 세상이라 말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 말인데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의 갈급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제 좀 많이 괴로움이 돼서 ‘좀 없는 데 갔으면 좋겠다, 좀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피하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을 피하는 사람이 되고 거게 갈급한 사람이 되지 안하고 하나님께 대한 갈급한 사람이 되는 그 사람으로 자꾸 사람이 변화됩니다.
믿는 사람은 어짜든지 그게 있어야 되지 그게 없이 그저 세상 사람들, 제가 여기 서부교회 오고 난 다음에 전도지 처음에 박을 때에는 그런 전도지를 제가 박았었는데 ‘취미를 바꿔라. 취미를 바꿔라.’ 또 `갈급을 바꿔라. 욕심을 바꿔라.’ 그렇게 그걸 바꿔야 돼지지 그게 바꿔지기 전에는 항상 세상 사람이다 그렇게 그 한 전도지를 박았는데 그 전도지 지금은 없지요? 지금 없지? 그 기억납니까, 그 전도지 박은 거? 그래 가지고 기쁜소식이라 하는 것은 제가 처음으로 말했어. 그래 가지고 기쁜소식이 어떻게 전국에 나돌았는지? 그때는 기쁜소식이라는 거 없었는데 모두, 기쁜소식이라는 그말은, 전도지에 기쁜소식이란 말 박은 거는 제가 제일 먼저 처음 박았습니다. 그때까지 뭐 전도지는 이래 전도하는 사람은 수십 종류의 전도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다 알아요. 기쁜소식 없었는데 지금은 거의가 다 기쁜소식입니다. 기쁜소식으로 변화됐어. 조그만한 데서 말해도 그게 전국에 퍼져, 세계에 퍼진다 그말이오.
이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한적한 곳을 가지도록 애를 쓰고 한적한 그런 시간을 가지도록 애를 쓰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한적한 곳을 가진 게 아니라 어데든지 한적한 곳을 만들고 어데든지 한적한 시간을 만드는 그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백팔십도 지금 옳은 데서 삐뚤어져 가지고 있다, 백팔십도 삐뚤어져 가지고 있다.
조금 구십도 삐뚤어져 가지고 있다.’ 하는 이것을 자기가 어떤 자인 것을 확실히 알고 ‘나는 요런 자다.’ 확정을 가져야 거게서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이지 그것도 모르면 뭘 고쳐? 표준이 없는데 뭘 고쳐나갑니까? 예수 믿는 것은 밤낮이 없고 쉬지 않고 자꾸 열심히 노력하는 이게 있어야 되지, 마귀란 놈은 자꾸 우리를 게을하게 만든다 말이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한적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한적한 곳을 가지십시오. 그래 가지고 안 믿는 사람들이 재미있고 취미있는 그것보다도 이거 외에 재미있고 취미있는 것을 발견을 하십시오.
이래서 테레비가 취미인데 테레비가 취미있는 그 사람, 테레비 그거 있는 그게 취미있는 사람은 그 사람은 조금 아직까지 세상에 떨어지지 안해. 그거는, 테레비는 세상입니다. 또 그걸 보는 데도 같이 봐도, 보는 데도 사람됨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 테레비에서도 얻을 게 많이 있어요, 얻을 게 많이 있어.
신문에서도 얻을 게 많이 있고.
많이 있는 것은 그것은 땅에 속한 게 아니고 거게서 땅의 것을, 땅의 것을 자연계시로 땅의 것으로 인해서 하늘나라의 것을 발견하는 그런 큰 유익을, 영원히 없어지지 안하는 그런 유익과 그런 지혜와 지식과 소득을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일단 우리가 변화돼야 됩니다. 일단 우리가 사람이 변화돼야 되지 변화되지 안하면 안 돼요.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우리 예배당은 나는 보니까 그래요. 내가 예배당에 이거 낮으로 보니까 무서워. 산보다 무서워, 낮으로 보니까.
왜? 여기 뭐 감감하고 저 구석에 가면, 저 구석에 들어가면 산중에 들어가는 것 같겠어, 산중에. 안 그래요? 저 구석에 들어가면 산중에 가는 것 같애, 또. 이 구석에도 산중에 가는 것 같애.
이러니까 낮으로나 밤으로 어데 한적한, 오다가 중간에 거기 있지 말고 저 좀 깊숙이 산속에 좀 깊숙이 들어가 가지고 거기서 좀 한적한 시간에, 좀 처음에 길들인 데서 세상이 가득차 가지고 있으니까 이 세상을 자꾸 벗어나와야 되지 물에 빠져 있으면 죽지 안해요? 물에 들었으면 처박혀 있으면 숨 못 쉬고 죽지 안해요? 이거 모양으로 세상을 가리켜 바다라고 말했는데 이 속에 들어가면 심령은 죽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헤치고 좀 나와야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좀 고요한 시간에서 자기를 찾아요.
이래 가지고 처음에는 안 되면, 주님하고 뭐 친밀해져야 되는데 친밀해지는 데는 자기에게 대해 주님이 은혜 베푸신 그거, 은혜에 대해서 하나 둘 생각하면 감사 감사 자꾸 감사가 나오게 되고 자꾸 이게 나오게 돼요, 찾게 되면.
그러면 어떤 사람은 찾으면 감사가 그러면 끝이 있는가? 끝이 없어요. 이것도 감사, 하, 감사. 그러면 감사 속에, 감사 첩첩 속에, 감사 하나 속에 들어가니까 감사가 뭐 백도 천도 자기 지식에 따라 달라요. 감사가 천도 백도 넘은 감사 구덩이 속에 자기는 들어 있어. 이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의 태 안에 내가 들어서 지금 자라고 있구나.’ 그러면, 그런 데는 감사의 속에 들은 사람은 기쁨 속에 들은 사람이요, 그 사람은 또 감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에게 베푸신 기적과 표적을 보면은 전부 기적이라, 전부 기적. 기적 아닌 게 없어. 걸어다니는 것도 기적. 그러면 그 전부 기적 속에 산다 말이오. 기적 속에 하나님의 초자연의 권능 속에 사는데 그 사람이 염려가 뭐 있으며 두려울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 심령 생활은 노력을 해야 되지 노력 안 하고는 되는 것 아닙니다.
어제 아침에는 가르쳤는데 모든 기독자의 행복이 어데서 나온다고요? 어데서 나와요? 생각에서 나와, 생각에서. 어제 누가 말했노? 저 사람 저 뚱뚱하게 저렀는데 저거 참 좋은 총각이라, 내가 보니까. 저게 뭐이 있다 그래 장 생각했는데 들어보면 등신 같이 앉았는데 속에 뭐이 들었어. 생각에서 나옵니다.
알겠습니까? 세상 기쁨도, 세상 갈급도 생각에서 나와요. 천국 갈급도 생각에서 나와요. 그러면, 생각에 나오는데 그러면 생각을 어째야 됩니까? 생각에 나오면은 세상 기쁨을, 세상도 생각에서 나오고 천국도 생각에서 나와요. 마귀도 생각에서 나오고 하나님도 생각에서 나와.
그런데, 그라면 생각은 좋소 나쁘요? 생각이, 생각은 필요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생각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생각이 좋지.
생각이 나쁘지. ‘좋으면 좋고 나쁘면 나쁘지 자꾸 목사님 만날 길마 말,’길마는 이래 생긴 게 길마야. 길마 말 한다고. 생각은 좋지. 생각은 나쁘지. 좋고 나쁘지.
우리의 모든 좋은 것이 생각에서 나오고 우리의 모든 멸망받는 게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뭐 생각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해야 돼요? 저 ○조사님 한번 말해 봐.
그러면 생각해야 돼 안 해야 돼? 멸망이 생각에서 나오는데 해야 돼? 뭐라 하노? 그런 생각을? 그런 생각을 안 되는가? 어떻게 돼야 돼요? 한번 또 말해 봐. 한번 말해 봐. 봐, 이거 봐. 허, 이거 봐. 이 총각 일등 총각이라. 이거 인제 뭐 처녀들, 짜다라 돈 많은 그까짓 거 필요가 없어. 이 조사님들 보고, 양성원생한테 물으면 잘 모를 건데. 하나님의 지식대로 생각하면 좋은 게 나오고 세상 지식대로 생각하면 멸망이 나와요. 알겠습니까? 미국에 칠십이 노벨 수상, 과학 노벨 수상자의 입에서는 전부 그놈의 지식은 사람 죽이는 지식입니다. 창세기를 부인하게 해요. ‘엿새 동안에 뭐 하나님이 지어? 억억억만 년 걸렸지.’ 이 자식아! 하나님은 전능이야! 너 같은 놈은 그 과학으로 눈이 멀었어. 심령이 멀었어. 소경이야. 그까짓 게 무슨, 한 말로 소경이지.
이러니까, 그런 것을 볼 때 속에서 불이 나오고 ‘이 바보 자식 이런 게 이거 뭐한다고?’ 이래 놓으니까 ○○○이가 저 미국에 과학 공부하러 간다고 갔다 말이오. 가 가지고 배우니까 전부 소경 말만 하고 있으니까 하도 탄식이 나서 ‘내가 여기서 이 공부 하면 찍해야 저 사람들만치, 저 사람만치 되면은 박사 되고 이라니까 성공자 아닌가? 박사가 되면 내나 저 물건, 저따위 인간 될 거 아닌가?’ 못 견뎌서 ‘내가 이래 봐야 그러니까 여기 안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는 아무 배울 것이 없습니다. 아무 가치가 없고 배워 봐야 죽은 것 썩은 것뿐이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이제 내가 신학을 가야 되겠습니다. 안 되겠습니다. 신학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신학을 갈라면 어디로 가야 됩니까?’ 그래 내가 ‘저 센트루이스에 있는 카브넌트 신학으로 그리 가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좋은 신학교 그 옆에 있어요. 그리 가라 했더니만 당장 치워 버리고 그리 가 가지고 지금 거기서 공부하며, ‘지금은 불만이 없느냐?’ 이라니까 `여기서는 공부를 하면서 그래도 썩은 소리는 안 하고 이라니까 그런데 이제 어서 공부하고 와서 그만 내가 목사님한테 지금 배우고 그거 가지고 살고 그거 지금 자꾸 연구하고 있대요. 여기서 배우는 것이 저거가 가서 배워 보면 알아. 배워 보면 알아요.
며칠 전에는 ○○○목사님이 그 지식으로서는 우리 나라에서 신학 지식으로 말하면 이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는데 그 부인도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같이 가 또 공부해 가지고 왔어요. 이런데 며칠 전에 말하기를 ‘아이, 목사님. 세상 떠나시기 전에 어서 목사님이 계실 동안에 목사님 가는 그걸 좀 해 가지고 이거 좀 저서를 해서 이거 교리서를 이걸 좀 작성하도록 좀 권면해서, 목사님 떠나면 못 하고 지금 이러는데.’ 지금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꼈어. 필요성과 중요성 가치성을 느꼈어. 그전에는 안 그랬는데 차차 차차 느껴. 이래 놓으니까 저 아래는 ‘아무래도 목사님 한번 봐야 되겠습니다. 얼굴 한번 보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라며 기어코라도 왔어. 와 가지고 그래 뭐 보니까 많은 성화가 됐어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배워서 바로 알아야 돼지지, 생각에서 나온다는 그 말은 성경에 있어요. 마음 지키라고. 있는데, 생각에서 나오는데 생각은 제일 위험한 게 생각이요 제일 행복스러운 게 생각이라. 제일 행복된 것이 우리 생활 가운데서 활동 가운데서 생각이라는 활동이, 수족 활동보다도 생각이라는 활동이 제일 중요하고 중요한 동시에 생각이라는 활동이 제일 위험하고 독이 크다.
그러면 ‘사랑의 독이 제일 크고 사랑이 생명이 제일 많다. 생명이 제일 많은 것도 사랑이요 독이 제일 많은 것도 사랑이다, 독이 많은 것도 사랑이다.’ 이런 말이 없는 말이오, 여기서 들으니까 예사로 알지마는 그런 말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랑을 범벅해 가지고 자꾸 세상이 이러니까 썩어 들어가는데 요거 한 마디만 똑똑히 알면은 교회가 썩지 안해요. 알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다 물으니까 모르는데, 다른 사람 다 뭐 속에 있지마는. 하나님의 지식으로 생각하면 보배가 나오고, 이 세상 그 칠십이 과학 노벨 수상자 그런 지식대로 하면은 뭣 나와요? 사망 나와요, 사망. 그거 배울라고 야단을 지기고 그거 못 배우면 거석한다고. ‘헤, 나는 지금 새벽기도 안 나오고 지금 이거 해 가지고 열심히 한다.’ 네까짓 게 암만 해봤자, 암만 해봤자 거게는, 똥구덩이에서는 암만 네가 뭐 여게 저게, 이 구석에 저 구석에 어느 구석에 파봤자 나중에 똥은 똥이지 똥 외에 딴거는 아무것도 없다. 썩은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알겠습니까? 이걸 초월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