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0 10:18
치우치지 말라
1981. 6. 16. 화요일새벽
본문:신명기 28장 14절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위에 많은 복에 대해서 기록하셨고 또 그 아래는 여러 가지 화에 대해서 기록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복과 화를 하나님께서 여게 기록하셨습니다. 복을 먼저 기록하시고 화를 그 다음에 순위로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장단점이 있으면 장점을 먼저 우리에게 말해서 힘을 주시고 또 단점을 말씀해서 모든 파괴를 예방하고 건설하십니다. 또 성공될 것을 먼저 말씀해 주시고 실패되는 것을 순위 다음으로 말씀해서 주위를 주십니다.
여게 오늘날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아라 한날의 괴로움이 그날에 족하니라”오늘 할 것을 오늘하고 내일 것을 염려하지 말아라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연구도 있어야 되겠고 또 과거를 반성하는 반성도 있어야 되겠고 또 미래를 계획하는 계획도 있어야 되지마는 이것은 다 준비에 속한 것이요. 방어에 속한 것입니다.
다만 오늘이라는 이 현재 현재에 성패가 이루어지는 것은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여게 오늘날이라고 말씀한 것은 현재에 모든 성패가 이루어지는 그 시기와 장소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너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너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너에게 명하는 말씀이라고 하신 너희는 이 단수가 아니고 복수입니다. 너희들에게 말씀하신 말씀이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개인에게 네게 명하는 그 말씀과 좀 다르고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 곧 하나님께서 법칙으로 주신 이 계명의 말씀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대한 주님의 뜻 구원 이루는 뜻은 개인 개인마다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시는 그것이 자기에게 대한 개별적 그 지도입니다.
이렇지마는 여게 너에게 명한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로 말하면 신구약 성경 말씀이 되겠습니다. 이 말씀을 떠나지 마라 하는 우리가 주님이 주신 이 66권 도리를 우리의 생애 법칙으로 주셨고 또 우리의 소망의 계약으로 주셨고 또 우리에게 모든 것을 옳게 바르게 가르쳐 주시는 지식과 지혜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언제든지 준해서 이 말씀을 목수가 잣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재는 것처럼 먹줄을 가지고 바르고 굽은 것을 다루는 것처럼 그 중량을 달때에 저울로 가지고 그 중량을 이렇게 다루는 것처럼 이렇게 이 성경 말씀을 언제든지 우리는 준해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비판하고 또 평가하고 소망하고 계획하고 또 모든 조직과 계획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이 성경 말씀대로 모든 것을 알아야 되는데 성경 말씀에 기록되지 아니한 것들도 있고 기록된 것들도 있습니다. 기록된 것은 기록된 그 명문대로 그대로 알아야 되고 기록되지 안한 것은 이 성경 말씀 안에 범위 넓게 내포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마는 명문되어 있는 것보다는 그렇게 중요하지 안합니다. 그것도 그 질이나 양이나 그런 것을 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나타내주신 요 지식에 준해서 거게 따라서 우리가 모든 과거도 그렇게 비판해야 되고 미래에 대한 것도 그렇게 알아야 되고 또 현재도 그렇게 알고 해야 됩니다.
이 성경에 명문되어 있지 않는 그것도 그것이 성경에 빠지지는 안했습니다. 그게 좀 직접으로 간접으로 또 넓은 범위에서 기록된 것뿐이지 그것이 성경에는 빠진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닥치는 무엇이든지 그것이 성경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전재 지식으로 가지고 성경 안에 있으니 이것은 어느 성경에 포함됐으며 어떤 종류의 것인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살펴는 것이 지혜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말씀을 떠나지 말아라 하는 이 말씀이 있고 그 밑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증거할라고 하는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는 이 말씀을 증거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게 올 때까지는 셈과 야벳의 그 신앙에 대해서 증거 할라고 생각해 가지고 왔는데 여게 와서 갑자기 이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이 복을 받고 화를 면하는 데에는 하나님께서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성경 이 말씀을 따라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또 원하고 또 비판도 하고 또 그 가치도 평가해야 되는 것을 여게 첫째 말씀했고 또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말씀하신 것은 이 말씀을 떠나서 생각지도 말고 이 말씀을 떠나서 원하지도 말고 또 이 말씀을 떠난 비판이나 평가도 가지지 마라.
이 말씀을 떠난 기쁨도 가지지 말 것이며 두려움도 가지지 말 것이며 또 재미도 가지지 말 것이며 슬픔도 가지지 마라. 아무리 온 세상이 다 그는 존귀하다 해도 이 말씀이 존귀하다 하지 아니하면 너는 존귀하다고 평가하지 마라. 아무리 세상이 두려워하고 참 불행이라 화라 할지라도 이 말씀이 복이라고 하면 너는 이만 그 복인 것인 것을 너는 그대로 알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서 하고 이 말씀을 떠나지 말아라. 이 말씀을 네가 지키고 떠나지 마라. 모든 것을 이 말씀을 따라서 내가 마음 움직임이나 네 몸의 움직임이나 성질의 움직임이나 네게 대해서나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나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모든 일이나 물건에 대해서 꼭 이 말씀을 따라서 네가 움직이라. 그러고 이 말씀을 떠나서 움직이지 마라. 떠나서 움직이는 일을 하지 말고 이 말씀을 따라서 움직이는 일을 네가 해라.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이것은 오른쪽이면 왼쪽이 있고 하니까 오른쪽도 아니요 왼쪽도 아니요. 중앙을 취하라는 말인데, 그 중앙을 취하라 말은 오른쪽 것도 무시하지 말고 왼쪽 것도 무시하지 말고 또 오른쪽으로 중하게 여기게 하지도 말고 왼쪽을 중하게 여기지도 말아라. 그 둘이 다 연결된 그 중앙이라야 된다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생각할 때에 반드시 상대적으로 생각해라. 인간을 생각할 때에는 인간의 상대가 무엇인가? 그러면 인간의 상대는 첫째는 하나님이시요. 또 그 다음에는 모든 지음받은 피조물들이겠습니다.
그러면 피조물을 생각할 때에는 피조물과 나와의 둘이 관계가 있을 때에는 피조물과 나와 관계있을 때에는 피조물 위주로 그리 치우치지도 말고 또 피조물 중에 네 좌라는 좌로도 치우치지 말고 너와 피조물 그 관계에 중앙을 취해라. 또 네가 하나님과 너와의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만 생각하고 너를 생각지 않는 그렇게 하나님으로 치우치지도 말고 또 너만 생각하는 너로만 치우치지도 말아라.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에 그 중앙, 중용, 중앙점, 그 하나님과 나와의 조화가 바로 되는 올바른 조화점 그게 네가 입각을 해라.
또 천국을 생각할 때는 그 천국에 상대는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과 천국에 대해서 네가 생각해야 되고 거게 대해서 행동해야 될 때에는 내가 천국으로만 치우쳐도 너는 실패하고 세상으로만 치우쳐도 실패하는 것이니 천국과 세상에 중간 그 중앙을 취해서 천국과 세상이 둘이 조화가 되어지는 그 조화 되어지는 그 위치가 있기 때문에 그게 네가 입각해라.
그러면 천국만도 아니요. 세상만도 아니요. 또 천국이라면 천국이요. 세상이라면 세상인 천국과 세상이 둘이 합해 가지고 이루어지는 그것이 네가 걸어갈 네 길이라 그것을 말합니다.
또 다른 사람과 자기를 생각할 때에, 때에는 다른 사람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네 자신으로만 또 치우치지 말고 다른 사람과 너와 그 둘이 조화가 되는 그 중점, 이거는 다른 일을 중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요 자기를 중하게 여기는 것도 다른 이와 자기와 꼭 같은 중점으로 다루는 그것이 네가 걸어갈 길이다.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하는 그 말씀을 한데는 살펴보면 자기만 자기 일만 돌아보지 말고 하는 그 말 했습니다. 자기로 치우쳤기 때문에 다른 일도 또 치우치는 그것을 한태 결합시켜 가지고 그 둘이 조화가 바로 맞는 그 중점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사람이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 자기 몸으로 행동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서로 상대적이니까 마음으로 행동하는 이리만 치우치지도 말고,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 아닌 몸으로 행동하는 이리만 치우치지도 마라. 요 둘이 다 조화가 되어 가지고 하나가 되는 그 중점 그게 네가 걸어갈 길이지, 사람은 마음이 제일이라 이래서 마음으로만 그리 치우치고 사람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행동이라는 것은 무시해도 안된다. 또 사람 눈에 보이는 것도 이 행동 몸으로 하는 행동만 중점을 두고 마음으로 지금 움직이는 그것이 없어도 너는 안된다. 그 둘을 같이 비판해서 치우치지 말고 그 중용을 취하라. 가운데를 취하라.
또 네가 그 성경을 연구한다면 성경 연구하는 것에 성경 연구하는 것에 상대방은 뭐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지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이요 또 하나님의 지식에 상대하는 세상 모든 인간들의 지식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 그 둘의 어디로 치우쳐도 너는 이 복은 받을 수 없고, 또 이 화는 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치우치지도 말고 인간의 지식으로만 치우치지도 말고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이 둘이 조화가 바로 되어지는 그것이 네가 걸어갈 네 위치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인간 지식만을 가졌던 우리기 때문에 인간 지식만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의 지식만을 가져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만을 가져야 인간 지식만을 가졌던 자가 그 둘이 지금 조화를 맞출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지식은 참된 지식이요 인간의 지식은 다 거짓되고 죽이고 죽는 지식이지마는 죽고 죽은 그 지식과 살고 살리는 그 지식이 둘이 조화가 되는 그기에 우리가 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세상을 떠나지 안했습니다.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지마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한편은 죄요.
한편은 의요. 한편은 몹쓸 것들이요. 한편은 고쳐서 옳은 것들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양면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이다음에 부활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부활의 권능을 자기가 생각하면 부활의 권능과 이 세상에 사는 권능 이 두 가지 권능을 생각해서 이 두 가지 권능의 조화가 바로되는 그게 자기가 살아야 되고 그것이 자기 걸어갈 걸음이지 그것을 그러지 않고 부활의 권능만이 제일이지 이 세상 권능은 소용있느냐 이래 가지고 이 권능을 무시하면 부활의 권능 그것이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의 행위를 말하면 기도하는 일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일 성경 보는 일 또 우리가 행동하는 일 또 하나님에게 대한 일 인간에게 대한 일 모든 일과 물건에 대한 일 자기에게 대한 일 이 모든 것이 이것이 수많은 종류들이 다 있는데 이 모든 수많은 종류를 내가 어떨 때에는 이 면을 하고 어떨 때는 이 면을 하고 우리는 그렇게 치우치기 쉽습니다.
이 수많은 것이 있는데 이 수많은 것이 다 합해져 가지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 수많은 것들이 합해져 가지고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거기에가 우리가 살 곳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단일화 단일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단일질이요 단일성이요 단일화요 된 거기에가 우리가 살 곳이요. 우리가 걸어갈 좁은 생명의 길이요. 그것이 승리의 길이요. 그것이 성화의 길이요. 그것이 회개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를 들면 비유를 하면 물질을 미워할 때는 물질을 미워할 때는 반드시 물질 미워하는 그것이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져야 합니다.
또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사람을 사랑하는 그것이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요 그 사람을 미워하는 그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요것이 둘이 조화가 되지는, 왜? 사람을 사랑하는데 미워하다니 그 사람을 사랑하는 동시에 그것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그것이 그에게 그 참 생명에 속하고 온전에 속한 그것을 사랑하는 그것과 동시에 그 사람에게 옛사람을 미워하는 그것이 함께 역사해야 되지 옛사람 미워하는 거는 잊어 버려버리고 새사람 사랑하는 그것만 사랑하다가는 저는 치우쳐 가지고 결국은 탈선을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또 사람이 주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주는 것이 복이 있으나 주는 준다 주는 것에만 치우치면 그 사람 실패합니다. 주는 동시에 그에게 받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주는 것과 받는 그 둘이 조화를 가져야 됩니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그 사람에게 내가 물질을 주면 물질을 주면서 그에게 무엇인가 지금 감화를 받든지 깨달음을 받든지 그에게 내가 지식을 받든지 무엇이든지 줌으로서 받는 것 요것을 생각해야 되고 또 요렇게 나는 주면서 하나님에게 받는 것도 요것도 생각해야 되고, 그러면 나는 중간에 있기 때문에 주고 받을 때에는 하나님과 나와의 그 사람과 나와의 요것을 생각하는 꼭 치우치지 않고 좌우 둘을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좌도 택하고 우도 택하고 요 좌우를 택해 가지고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이 좌와 우 사이에 끼어 있는 가운데 요것이 우리의 걸어갈 것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잘못하면 우리는 실패하기 쉽기 때문에 자기를 보아서 모르거든 남을 보아서 깨닫는 것이 그것이 자연계시로 자기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소리나 말이나 귀에 들리는 것 접하는 것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꼭 필요해서 구원에 필요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계시를 우리가 인용할 때에는 이 자연 계시를 반드시 이용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치우치지 말아라 하는 그것을 오늘 아침에 증거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꾸 양면을 우리가 생각지 않고 일면으로 생각하는 통에 실패입니다.
레위기에 쪽발로 걸어가라 두발로 걸어가라. 에스겔 1장에도 쪽발로 걸어가라 이렇게 말하고 쪽발로 걸어가라는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오른쪽 것도 오른쪽 발이 두 쪼가리인데 한 쪼가리가 조각나 달아나버리면 못 걸어갑니다. 오른쪽도 이용하고 왼쪽도 이용하고 이 두 가지를 함께 이용한 그 붙든 이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그 말이오.
그러면 좌와 우를 다 가졌는데 좌우를 가진 그 중앙으로 가야 되지 좌로 치우쳐도 넘어지고 우로 치우쳐도 넘어지는 것이니까 쪽발로 걸어가라는 말이나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이나 꼭 같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의 그 반드시 상대성이 있다.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상대가 있다. 그 하나만 생각지 말고 이것의 상대는 무엇이냐 하는 것 이 면을 발견해 가지고 상대의 어디로든지 치우쳐 안되는 것이니까 그 상대 둘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 둘이 함께 조화를 맞추어 가지고 합해지는 그 중점 요 둘을 다 연결해서 가져서 가지는 조화를 맞추어 가지고 합해지는 그 중점 요 둘을 다 연결해서 가져서 가지는 조화를 맞춘 그 중점 그것이 우리가 걸어갈 길이요. 모든 복받는 방편이요. 화를 면하는 방편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