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0 10:08
충성
1989. 1. 8. 주새.
본문: 요 15:9-14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오늘 주일 공과는 지난번에 공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때도 그와 같으리라' 하는 이 공과입니다. 이 공과를 설명을 해 주는 것보다도 학생들에게, 벌써 여러 주간째 외워 들렸는데, 그 마음 속에 깊이 박혀서, 그 기억 속에만 박힐 게 아니라 감정 속에도 박히도록, 기억과 그 실감 속에 박히도록 그렇게 심어 줘서, 그 학생이 온갖 지식을 다 받는데. 뭐 사회서도 받고 또 학교서도 받고 온갖 지식을 받는데, 은갖 받는 그 지식이 이 지식을 쫓아내지 못하고 이 지식이 그 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차지해서 그 학생의 이성 활동할 때는 이 지식이 이성할 수 있도록, 잊을래야 버릴래야 버릴 수 없도록 그렇게 강하게 그 심령 속에 심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아침에 봉독한 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그러면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한다 말은 무슨 말인가? 사랑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 성질로 말하면 깨끗하고, 옳고, 참되고, 바르고, 진실한 걸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흠과 점과 주름잡힘이 없는 참사랑, 깨끗한 사랑, 온전한 사랑, 진실한 사랑, 영원히 변치 않는 그 깨끗한 그 사랑의 그 성결성을 말하는데, 이 사랑 가지고 이 사랑의 역사는 뭘 가리켜 말하는 것인가 하면 준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그러면 아버지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내게 주신 것같이, 주시되 뭐 주는 것도 별별 주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주는 것도 부정하게 주는 것이 많습니다. 제 욕심을 가지고 이렇게 뭐, 이 어리석은 여자들은 남자들이 저한테 무슨 예물이나 무슨 대접이나 이렇게 좀 뭘 주면 그만 정신없이 좋아 가지고 일생을 팔아버리고 마는 그런 어리석은 자들도 많이 있어. 남자들도 마찬가지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랑의 뜻은 세 가지로 생각하민 좋습니다.
하나는 깨끗하다. 깨끗하게 사랑한다. 깨끗하다. 또 하나는 영원히 책임진다. 이제 하나 남았습니다. 하나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준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결백과 영원히 책임지신 영원한 책임과 있는 것을 다 주시는 것이 사랑이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실 때에 깨끗하게 사랑하셨다. 참 이는 깨끗하고 온전하다. 또 영원히 모든 나의 것을 다 책임지시고 아버지가 하신다. 그러니까 좋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것을 하나도 없이, 남김 없이 다 예수님에게 주셨다 그말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이제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였으니 하는 그 말인데,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어떻게 사랑하셨나? 내나 위에서 내려온 사랑 그 사랑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깨끗한 사랑입니다. 또 우리의 영원 무궁의 모든 것을 다 나쁜 것, 더러운 것, 죽은 것 전체를 책임을 다 지는 사랑입니다. 또 아버지의 모든 것을 주님이 다 받으셨는데, 주님이 받아 가지신 것 모든 것 다 우리에게 다 준다는 말입니다. 다 주십니다.
주시는데, 주시는 데 그 조건이 있으니 뭐이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으로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시는 결백을 다 받았고, 완전 영원 무궁의 보호를 다 받았고 또, 아버지의 모든 것을, 영광이나 소유나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내가 다 받아 가지고 내가 받아 가지고 있다. 있는데 이제 내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 이 모든 것을 내가 다 받은 것처럼 너희들도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이 사랑을, 내 사랑 안에 있으면 다 받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아버지에게 크게 말해서 세 가지 받았는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도 세 가지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아버지의 이 세 가지 사랑을, 다 받으시기를 어떻게 해 가지고 받으셨느냐? 받으신 그 방편이 우리가 받는 방편과 꼭 같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사랑을 주님이 배음 때에 다른 방편 가지고 받지 않았고 아버지의 계명 지킴으로 받았습니다. 계명 지키는 것 외에는 받는 방편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세 가지로 나를 사랑하시는 이 사랑을 내가 아버지의 계명 지킴으로 그 사랑 내가 다 받았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 것같이 너희가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그러면 이 사랑으로 주는 이 세 가지를 다 받아라 그말이오. 다 받아라.
그러면 받는 방법은 아버지가 주님에게 주시는 사랑이나 주님이 우리에개 주시는 사랑이나 꼭 같은데, 성결도 같고, 영원 안보도 같고, 또 주어서 부요케 하는 것도 같고 똑 같은데, 받는 방편도 꼭 같다 그말이오. 그러면 주님은 무슨 방편 가지고 받았는가? 아버지의 계명 지키는 것 가지고 다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주님의 계명 지키는 것 가지고 다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어떻게?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버지의 충만이 다 주님의 것 다 됐는데,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 지켜 다 차지했는데, 우리들도 주님이 다 가지신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우리가 이것을 받아, 다 받아 가지고 다 내것 삼는 데에는 주님이 계명 지켜 다 받아 가진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계명 지키면 다 받아 가질 수가 있는데 그 계명 지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그 계명 지키는 것이 뭐인가?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래 지금 주님의 계명 지키면, 계명 지키려 하면 사람듬은 선입적 관념을 가지고. 계명 지키는 것이 하나님외 뜻대로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계명 지키려고 하면 이거는 큰 고통이 아닌가? 큰 멍에로 여긴다 말이오. 멍에로.
하나님의 계명 지키려 하면 큰 고통이 아니겠는가? 이래서. 이 말씀 먼저 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들에게 말하는 것은, 이 계명 지켜서 내 사랑 다 받아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 지켜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받는 이것이 한량없는 기쁨입니다. 영원한 기쁨이고 무한한 기쁨이오. 이러니까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니까 큰 고통스러워 그랬는 줄 알았는데 십자가에 못박히실 그때에 최고의 우주적인 고난인데, 그 고난을 당할 때 기뻐 못 견뎌서 찬송했습니다. 이런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사망이나 섀상 피조물들이 해할 수 없는 그런 참 피조물들을 초월한 무한하고 영원하고 완전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너희들 안에서 너희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 너희들이 이 계명, 지켜서 내 사랑 다 받으면 너희들도 땅위에 없어질 돈 가지고 기뻐하고 또, 제 명예 가지고 기뻐하고, 뭐 다른 것들을 희생해서 기뻐하고 하는 그런 기쁨 그것이 아니고,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어 원수, 희망 없는, 멸망할 이런 것들을 위해서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주는 그것이 우주적인 고난을 당하는 것이지마는 기뻐 못 견뎌서 찬송했다. 그러면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입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이요, 아무것도 해할 수 없는 기쁨이라. 이 기쁨이 너희들에게도 충만하여서 너희가 이 기쁨을 가지는, 십자가의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그 기쁨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 내가 말한 것이다 말한 것이오.
그러면 이 기쁨은 무슨 기쁨인가? 예수님의 기쁨인데, 예수님의 기쁨은 어떤 기쁨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원수 위해서 사람되어 오심이 그렇게 기뻤습니다. 또 예수님은 이 원수를 죄에서, 의에서, 하나님과 원수됨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이 그렇게 기뻤습니다. 또 이 기쁨은 죽은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셔 가지고 이 원수 우리들을 영원히 행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그 하나님 되신 당신이 영원히 피조물 사람되신 그것이 기뻤습니다.
이 기쁨을 가지니까 이 기쁨은 모든 피조물들이 다 좋아하는 기쁨이지, 또 이 기쁨을 가지니까 어떤 피조물 어떤 존재도 지옥 밑에 있는 마귀들도 다 감사와 찬송과 경배를 드리고 무릎을 꿇고 전체가 다 좋아하고 환영하고 위하지 싫어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니라' 그러면 이 계명이 뭐인가? 인제 그게 제일 요긴합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 곧 주님의 계명이라, 다른 게 아니고. 아버지의 계명 지켜,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 지킨 것도 주님이 아버 지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 사람 돼라 하실 때 사람 되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라 할 때에 죽으셨고, 영원히 인간 돼라 할 때 인간 된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우리들을 사랑하는 사랑이라.
이걸 사랑함으로 아버지가 만족하시고 주님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받아서 당신 것을 삼았습니다. 그러면 그와 꼭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주님이 명령하시는 것이 뭐이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함같이 우리들이 이웃을 서로 사랑하라는 이것이 곧 주님의 명령이라. 계명이라. 여게 사랑하라 했는데, '서로 사랑하라' 하는 서로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의 구원과 남의 구원, 이 구원을 위해서 있는 전부를 다 희생하는 거, 또 모든 것을, 나쁜 것을 대신하고 좋은 것도 전부 대신해 가지고 완전케 하는 것, 영원히 받아 누리게 하는 것, 그러면 도성인신 하신 것과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부활하신 이것이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 지킨 것이요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계명 지키는 것은 어떤 것이 우리가 주님의 계명 지키는 것인가? 주님이 우리 위해서 하심같이 우리가 형제 위해서 하는 것이 계명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위해서 몇 가지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 했습니까? 뻐뜩 들어 봐요, 손가락으로? 몇 가지 했습니까? 세 가지. 그러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그러면 내 자신과 남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 자신과 남을 구원하기 위해서 몇 가지 하면 됩니까?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
하나님이 그렇게 모든 면으로 부요하신 분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하게 되신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거라.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완전히 낮추는 것,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완전히 낮추는 것. 하나는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전부를 바쳐서 수고와 고생하는 것, 수고와 고생하는 거, 또 한 가지는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 영원히 된 것처럽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완전히 영원히 낮추는 것, 이 세 가지가 우리가 계명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계명을 지키는데 여게 말씀하시기를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라' 해 놓고, 그러면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그러면 우리가 이 일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이것이 완성이라. 이거 위해서 우리 목숨을 다 바치는 것이 이것이 완성이라.
그러면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 이 소유만 바쳐 가지고는 아직까지 미결이오. 몸만 바쳐도 미완성이오. 생명까지 바치면 이제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같이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의 친구가 된다 그말이오. 주님의 친구. 그러면 우리가, 주님이 생명을 바쳐서 우리의 친구가 되신 것같이,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면 우리가 주님의 친구가 되고 모든 죄인들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가 다 받는 것, 주님이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받은 것, 아버지의 소유를 다 받았고 아버지의 보호를 다 받았고 아버지의 깨끗함을 다 받았어.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의 그 모든 면에 무한한 성결과 무한한 보호와 무한한 그 부요를 다 받는 방법이 주님의 계명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 지키는 것인데 계명 지키는 것은 서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인데, 그러면 이 계명 지키는 데에 계명 지키는 절정은 뭐입니까? 계명을 지키는데 최고로 계명을 잘 지켜서 이제 완성하는 것은 뭐입니까? 계명 지키는 데 완성은 뭐이지요? 어? 크게 말해 봐. 네, 목숨 바치는 것. 목숨 바치는 것.
이러니까 목숨 바쳐서 이래 하는 게 뭐인데? 하나님의 성결을 다 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부요 다 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보호 다 받는 것이요, 아버지의 것을 예수님이 다 받으심같이 예수님은 다 받아 가지고 있는데, 이 방법 가지고 다 받아 가지고 있는데 우리도 이 방법 가지면 주님의 가진 것 다 받습니다. 주님의 보호 다 받소. 주님의 성결 다 받소. 주님의 그 부요 다 받습니다.
그러면 이 일을 우리가 하기 위해서는 어데까지 투자하는 것이 최고로 다 완성을 하는 것인가? 뭐이요? 목숨 바치는 거. 이러기 때문에, 이 깨달은 사람들은 잘났든지 못났든지 다 이게 제일 가치 있는 일이다 하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바치는 것입니다.
여게 모두 지금 이제 중간반 반사들은 조금 달라. 처음에 중간반 반사들은 그거 다 이것이 제일인 줄 알고 땅위에 있는 그 모든 것을, 소망하던 것을 다 버리고 바쳤습니다. 이래 여기 중간반에 들어올 때에 그때에 뭐, 다는 아니지마는 그대로 한 달에 사오십만 원 수입 못 한 사람 없었습니다. 그래 모두 다 사장되려고 새끼 사장으로 출발했던 것인데 출발해 가저고 자꾸 성장돼 나가는데 이리 들어왔습니다. 들어와 가지고 월급 오만 원 받았어, 오만 원. 십분지 일 받았어.
그래도 근근히 살면서도 한 것은 그것은 자기들도 인간 구원에다가 전부 목숨까지 바칠 그 소원을 가지고 그런 성질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달려들어 나왔는데 이러던 것이 나중에 얼마 되고 난 다음에는 생활이 골몰하니까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처럼, 처음에는 뭐 '굶어 죽어도 좋다' 이랬는데, 생활이 곤고하니까 월급이 작으니까 좀 구불텅이를, 작다 소리는 안 해도 구불텅이를 쳐 쌓아서 그때 가감봉식을 시작하니까 우리가 이것 보고 하는 것 아니라고 떠들어 쌓고 이래 쌓았습니다. 그래 내가 자꾸 중간반을 마지막에 내보낼 때는 되게 미워했어. '너거 중간반 네까짓 것들은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들이다.' 막 이렇게 야단을 치고 중간반 가치를 폭 떨어뜨렸어. 아주 중간반 가치를 폭 떨어뜨렸는데, 떨어뜨려 가지고 그거 전부 지금 다 교역자 다 돼 나갔습니다. 그걸 그대로 우쭐해 보내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마구 족쳐서 막 아주 나쁜 걸 다 말해 가지고 못쓸 것들이라고 이래 가지고 보냈는데, 그것이 저희들에게 양식이 됩니다. 이래 가지고 여게서 나간 중간반들은 다 목회 잘합니다.
이래서, 이제 다른 교회들이 '여기서 나간 것은 다 목회 잘하고 이라니까 아무래도 서부교회서 내놔야 된다' 이래 가지고 여기 서부교회서 그때 들어온 것은 참 자기들 소원대로 다 목회자가 다 됐습니다. 여반은 혼자 사는 사람 남았지마는 내외 하는 사람도 다 목회자로 나갔고 목회자로 안 나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인제. 그 뒤에 들어온 것들 지금 그때보다 또 조금 해도 먼저 들어온 사람들 처음 모양으로 그래 안 해. 지금 여기 중간반 반사들 있다 해도 먼저 처음 들어온 그런 반사만치 그렇게 헌신적도 아니고 소망적도 아니고 그렇게 충성적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대로 나가면 그렇게 위대한 일꾼들이 못 돼요.
어쨌든지 반사 일 이거 잘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자기 것을 삼아요. 이제 반사 일을 다 잘하면 어데까지 반사 일을 해야 다 잘한 것이 되는가? 어데까지 해야 될 건고? 종착이 어덴가? 이 반사 일 하는 데에 어데까지 해야 다 하겠소? 그 종착이 어데입니까? 저 OOO집사? 목숨 바치는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종착이요 이것이 완성이라.
그러기 때문에 목회에 나간 사람, 어떤 사람들은 이거 쓰지 못해서 생활 할 데가 없으니까 목회자나 해 갈까 하는 그런 것은 목회해도 그 생활이오. 목회해도 곤란이고 항상 고생이오. 세상 것 있지마는 그런 것 다 버리고 이 큰 수입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다 버리기 전에는 마음에 만족이 없어 이거 다 버려서 주님이 친구를 위해서 목숨 버린 것처럼 우리도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이것을 목표로 한 사람 쳐놓고는 이 길에 들어서서 존영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존영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곤란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다 유력한 사람들 그런 분들은 다 목표가 다르요. 깨달음이 달라.
이러니까 이것을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오늘 아침에는 특별히 심방 갈 시간인데 여기 반사직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 이것이 어떤 사명이며, 어떤 희망을 가진 것이며, 어떤 성공을 할 자들이며, 소망이 무엇이며, 어데까지 내가 충성하고 어데까지 내가 투자를 해야 될 것 인가? 그러면. 투자하면 이 투자하는 것이 십자가의 걸음인데, 이것이 과연 눈물로 가는가? 뭐 언제 보니까 누가 노래를 지었는데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배고파도 가는 길 이렇게 골고다의 길이라' 이러는데 아니오. 눈물 흘리고 슬퍼 탄식하면 못 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미쳤다 하요.
이래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이 일밖에는 할 일이 없다 하는 걸 생각하고, 이 일 하기 위해서 전부를 다 바쳐 기울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교하기 전에는 마음에 만족이 없어. 순교해야 되는데 이거 순교가 문제라. 그래서 평생 소원 순교 제물입니다. 그런 분들은 뭐 다 목회해서 다 성공을 했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 또 생각한 거 있어. 이런데 그 간판이 뭐인고 하니 교회 들어와 가지고 애만 먹이고 꾸중물만 일으키고 항상 교회 와서 하나님 말씀 들어도 되지 아니할 가라지 잡탱이 그런 것을 못 들어 오도록 막는 방어선이 그것이 간판이오.
알겠소? 그 방어선이라. 오면서 '이 간판 보자, 간판 보니까 이거 안됐네.' 하는 그것은, 왔다가 간판 보고 달아나는 것은 여게저게 돌아다니면서, 흘러 돌아다니면서 못쓸 것, 잡것, 쓰지 못할 것, 그거요. 순진한 새것이 아닙니다. 그거 들어와야 말씀 배워도 항상 그것이지 변화가 안 됩니다. 그런 것은 못 들어오게 해. 그거 누구 못 들어오게 하면 야단 날려고? 그 간판이 들어서 못 들어오게 다 방어한다 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교회 들어왔는데, 들어온 그것을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 들어 가지고 참 자기 구원 이루려고, 참 구원 이루는 것, 뒤에 주님 앞에 데리고 가면 '네 잘했다. 착하다 이렇게 보배를 만들었구나' 하는 보배 만드는 그 보배들만 들어오고, 와서 교회 안에서 암만 해 봐야 예수 믿어야 별수 없는 이거, 만날 성전 밖마당만 될 그런 것들은 간판으로 방어해 버립니다. 들어와 가지고 간판 보고 달아납니다. 간판 보고 달아나고 찬송가 보고 달아나고 이거 둘 보고 달아나는 그거는 양사방 교회 돌아다니면서 아주 못쓸 것, 들어와 가지고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 연보를 해도 다른 야심을 가지고 연보해서 교회 두통거리를 만드는 거 그런 것, 희망 없는 그런 것들만 전부 촐촐 추려 다 막아내는 방어선이라.
들어오는 데에는 일방어선이 뭐이요? 간판이오. 안에서, 들어와서 인제 안에 들어와서 또 이방어선은 뭐이요? 찬송가요. 나가는 데에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일방어선은 뭐이요? 찬송가요. 이 찬송만 장 해서 나중에 찬송가에 은혜를 받고 이러면, 딴데 가서 보니까 찬송가 뭐 울렁 떵 딱 이래 쌓는데 거기 가니까 은혜도 안 되고 또 보니까 벌써 찬송가 보니까 '이거 잡탱이다. 안 됐다.' 안 가는 거라. 못 나가도록 하는 일방어선이요, 딴데 돌아다녀 보니까 그 찬송가가 아니니까 그만 거기 안 가. 나가는 데 이방어선이 공회라.
이걸 몰라. 그래 내가 저거한테 말하기를 '이것이 속화 방지에 성경 다음으로 속화 방지의 권위를 가졌다' 이래도 무슨 말인지 몰라요.
이래서 이제는 양성원에는 내가 생각하기를, 사람들은 그거 처음에 시작할 때는 신학자들 박사들을 데려다가 뭘 가르쳐야 된다. 박사 속에 아무것도 없어. 박사는 인간들이 준 건데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것만 가득찼어. 이 사람이 이런다, 저 사람이 저런다. 자꾸 그런 것만 하지 생명의 말씀은 속에 없다 그말이오.
어떤 사람이 그래 말하기를, 우리 교회 아니오. 아닌데, '어떤 사람 그 목사는 박사가 들어서 죽였다. 그 사람이 박사 안 했으면 그 사람이 그래 삐끄러져 나갈 사람 아닐 건데 박사 때문에 죽였다.' 인제 그런 것 다 필요해. 그래서 미국에 있는 공부하는 아이들도 나도 그럴 뿐 아니라 저희도 그래. 그래서 지금은 박사를 쓰지만 앞으로는 박사를 우리 양성원에는 안 써요. 박사 자격이 몇이 있어도 박사 안 하고, 그런 거 하지 않고 성경만 진실히 연구하는 사람만 쓸 거라. 이래서 인제 양성원은 앞으로 목회자 양성 성경학교가 될 거라. 성경학교.
그러고 이제 딴데서 끼직찌거한 거 그거 와 가지고 자꾸 잡탱이 그게 와 놓으니까 일을 안 해. 이래서 여기 서부교회서 자꾸 주일학교서부터 자라난 거, 이런 것은 가서 보니까 잡탱이가 되어지지를 않아, 다는 아니지만. 이런 것을 이제 좀 있으면 자꾸 내보낼 거라. 내보내도 뭐 예배당 지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내보낼 돈이 없어요. 제가 나가야지. 제가 나가서, 뭣 가지고 나갑니까? 전도하러 나갈 때에 주님 뭐라 했소? 뭣뭐 못 자지고 가라 했어? 뭐 못 가지고 가라 했지? 전대, 또 뭐 못 가지고, 가라 했어? 두 벌 옷, 또 뭐이요? 또 뭐 있나? 이거 못 가지고 가게 했어. 뭣만 그러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나사렛 예수 그러스도의 이름' 그 역사 말이오. 이름이라 말은 역사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하시는 그 역사만 가지고 가라.
이거 나가니까 나면서 앉은뱅이 삼십팔 년 된 것도 전부 점령 다 했어. 점령 못 할 거 없어. 이것만 가지고 짖갈 자는 이제 앞으로 때가 되면 다 나가거라.
너희들이 아예 나가 가지고 곯아 죽고 안 될상바르거들랑, 나갔다가 들어오고, 나가서 될 수 있는 거는 얼마든지 다 나가거라 할 거라, 이래서, 나가 가지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 가지고 아무 세상 박사 학위도 없고 또 석사 학위도 없고, 뭣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가지고 가서 성공할 사람들 만들어 가지고 막 파송시켜서, 지금 우리 주일학생이 많이 줄었어요.
줄어서 지금 뭐 칠천이니 얼마 그래밖에 안 되는데 저 먼저께 탄일 때는 그때 겨우, 만 명 왔나? 그래 만 명 오고 이랬지마는 이거 이게 다 돼서 이제 그저 일 년에 한 오륙백 명씩만 자꾸 해서 내보내 놓으면 이제 한국과 세계를 구원할 거라.
이래서 어떤 사람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거한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으로 충만케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이것이니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너희가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내 친구가 되리라.' 이러니까 이제 이것만 목표를 가지고 주님이 가지신 전부 자기 것 삼으려 하는 이 욕망과 목표를 가진 사람이면 그만 돼요. 아무 필요 없어. 자본도 주님만 자본으로 삼고 또 가진 것도 주님의 것 소망하려고 하고, 그러면 네가 투자하기는 어데까지 투자할래? 목숨을 바치는 요것까지를 투자로 목표로 하면 그만 다 돼요. 그런데 여기 잡탱이들, 딴데서 와 가지고 뭐 열심히 그런다 해도 그만 밑천이 없어 나중에 보면 달라. 제일 큰 일꾼은 우리 주일학교서부터 여기 와. 가지고 자란 이것이 인제, 나는 이것들 이거 뭐한다고 내가 여게 자꾸 진리를 자꾸 가르치고 이거 이럴까? 이거 뭐 아무 희망도 없고 이런 것들 데리고 이거 이렇게 지금 이십세기에, 이제까지 이단이라고 정죄받아도 이단이라 하는 게 똑 성경을 대조하면 다 바결되고 해결되고 해결돼서 지금은 이단이라는 사람들이 없어요. 다 그들이 잘못된 걸 다 고쳤지. 그런데 하나 지금 이단이라고 큰 거 하나 있을 것인데 그거는 지금 아무도 소문이 나가지를 앓아요.
뭐이야? '미련한 다섯 처녀가 지옥 갔다고 할 수 없다' 하는 거라.
그래서 어쨌든지 오늘 아침에 말씀하는 것은 요 줄 요 두 줄바 앉은 사람들은 다 반사이고, 저 다른 데 있는 사람도 반사 모양인데 여러분들이 반사를 하면 어데까지 할 거야? 어데까지 투자할 거라? 피곤하기까지? 땀이 나기까지? 어데까지 해, 그러면? 목숨 바치기까지 해야 된다는 걸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저 뒤에 어떤 사람 보니까 손을 드는데 이런다. 막 이런다. 그게 뭐 저기 뭐, 모르겠어. OOO가 그래 손 든 것 같은데 그게 그래 될 건가, 저거 친구 OOO목사 모양으로 그래 될 건가 삼가 조심해야 돼. 막 손을 뻐뜩 든다. 그래.
우리는 땅의 것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땅의 것을 소망하고 살지 않아.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외우고 실천할 것, 외우고 실천할 것, 또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 것, 부장 선생님과 반사 선생님들과 보조반사 선생님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붙여 준 믿음의 새끼, 믿음의 자녀, 참 아들 참 딸, 믿음의 새끼, 믿음의 자녀 이것은 어데다 두고 길러야 돼요? 마음에 두고 길러야 돼. 마음에. 항상 마음 밖에 나가면 안 돼.
오늘도 지금 다른 교회서 견학으로 많이 온 모양인데 인도하는 분들은 늘 인도하려 하니까 그렇게 사람이 늘 그렇게 계속할 수 없어,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니까 피곤하지마는, 그래도 이것이 주님의 원하시는 것이요, 나는 이 일을 암만 해도 '내가 많이 했는데' 그러면 뭐야? 내 목표는 목숨을 바치기까지인데 나는 지금 목숨 바치기까지 않으니까 '나는 이렇게 게을하다.' 항상 부족한 것을 느끼지, 그거 '다 됐다'하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없어.
이제 오늘은 오늘 주일로서 그게 마지막인데, 예수님의 재림을 가르치는 것이 마지막인데 어쨌든지 그 속에 깊이 심령 속에 예수님의 재림을 각해 놔서 그것들이, 아무리 학교에 가 다른 지식을 배워도 그 지식이 이 지식을 뚫고 하지 못해. 이 지식이 제일 뿌럭지요, 이 지식이 제일 우두머리가 돼 가지고 역사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은 다 듣기 싫어해. '예수님의 재림 오고 불심판 온다. 마지막 말세지 말이라' 하니까 다 듣기 싫어해. 왜정 말년 때에 말세라 한다고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듣기가 싫어서 막 데려다 놓고 고문을 하고 고초를 했어. 이래도 성경에 있는데 어짤 거라? 말세지 말입니다. 잠깐 충성하고 주님 앞에 가서 만나도록 해요.
이러고 일등 반사들 전부 그때에 제일 자기 최고수를 다 복구하도록 해요, 그거 나눠 줬어? 여기 일등 반사로 지난주에 모두 종이 나눠 줬다 하는데 그거 받아서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고 어떤 충성했고 어떤 결과를 가지고 있었던가 하는 것을 읽어 본 사람 손 들어 봐. 읽어 본 사람. 그거 읽어 본 사람 손 들어 봐. 여기는 안 읽어 봤는가배? 여반사들? 안 받았어? 안 받은 사람들 손 들어 봐. 안 받은 사람,봐 가지고 읽어서, 왜? 그때는 했는데 지금 못 해? 나이가 들어가면 좀 더 잘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