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9 15:04
총공회 명칭
본문 : 계3:1-6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어제 어떤 사람이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하는 이 말씀에 대해서 질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철장은 무엇인가?' 이랬는데 이 철장은 비유한 것입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는데 그 권세와 세상과 비할 때에 세상에 죄 사망 마귀로 되어 있는 이 세상은 질그릇과 같이 비유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권세는 철장과 같이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그 철장은 무엇인가? 어제 말한 대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능력입니다.
사활의 대속 능력은 세상에 있는 사망과 죄와 마귀 이런 거, 이 마귀 이 모든 절망 이런 것을 깨뜨리는 것이 마치 철장으로 질그릇 깨뜨리듯이 깨뜨리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마귀의 강한 세력, 죄의 강한 세력, 사망의 강한 세력 인간을 절망케 하는 강한 이 세력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이 권세를 가지고 그것을 깨뜨릴 때에는 마치 철장이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그렇게 깨뜨릴 수 있는 승리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래서 그 다음에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하는 말씀은 주님은 세상을 이겼습니다. 세상에 죄 사망 마귀 모든 인간들의 절망 이런 것을 다 깨뜨려서 하나님을 향한 영원한 소망의 영생으로 완전히 재건하였고, 또 사망을 영생으로, 마귀를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하나님의 공심판에게까지 완전 통과한 율법의 요구에 완성을 이루는 하나님의 의를 이렇게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믿음이니 곧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의 개인, 개인에 대한 모든 원치 안하는 그 대적들, 개인에게도 우리의 대적돼 있는 것이 죄 사망 마귀 절망 이것들이 대적돼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도 육체의 모든 것도 다 이 네 가지가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나타나서 있는 것뿐이지 그 실상은 이 네 가지입니다. 이 네 가지로 주님은 세상에 있는 것을 깨뜨려서 완전히 세상을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네 가지로만 승리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주님도 이 권세받았고 우리도 이 권세만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사람병 든 사람도 이 네 가지 권세로만 그것을 질그릇같이 깨뜨릴 수가 있습니다. 또 몸에 있는 모든 질병도 이 네 가지의 능력으로만 질그릇같이 깨뜨릴 수가 있습니다. 또 자기의 모든 행동과 생활의 그 모든 불의한 것도 이 네 가지 능력으로만 질그릇같이 깨뜨릴 수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데 교회는 다섯째 교회인데 이 사데 교회가 일곱 교회 가운데에 무능한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주 죽은 교회고. 무능한 교회로서는 사데 교회가 제일 무능한 교회입니다.
이런데 사데 교회는 주님이 어떠한 주님으로 나타나셨는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말씀했습니다. 일곱 별은 주님이 장중에 잡고 있고 놓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교회에 모든 그 사자들, 교회를 인도하는 자들, 하나님께 쓰여져서 일꾼된 자들 이런 자들은 다 주님이 장중에 잡고 당신의 것을 이미 내놓은 것이요 또 당신의 것으로 사용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곱 별을 가지신 이 일곱 별은 당신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잘났든지 못났든지, 지혜롭든지 무지하든지간에 주님이 붙들고 쓰시는 주님의 일을 할 때에는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일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어떤 능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제가 능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저를 붙들고 일하시는 주님이 능해서 그 능한 결과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로 깨달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를 주님이 이렇게 붙드시고 능하신 일 하는 데에 내가 주님의 능하신 일하는 그 일에 방해한 그런 것을 찾아 가지고 나는 방해한 그것을 생각에서 주님 앞에 '참 다시 주님이 써 주시나?' 하는 거게 대해서 마음에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정상의 깨달음이요 생각인데 오히려 제가 한 척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을 위해서 쓰지 않습니다. 쓰지 않고 좀 버려둡니다.
그러기에 주님에게 붙들려서 일하는 사람은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못나도 잘난 사람되고, 어리석어도 지혜 있는 사람되고, 무능해도 능력 있는 사람되고, 허무한 사람이라도 아주 존귀한 사람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그런 자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주님이 그런 자를 만들어 가지고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면 자기는 존귀해집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존귀해지지 제 자체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영광은 주님에게 돌리고 자기는 혹 주님에게 거리끼는가 하는 그것을 찾는 것이 슬기로운 일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은 가지신 이가' 이 사데 교회는 참 허무한 교회였는데 여게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말은 성령입니다.
성령과 별은 주님이 잡고 계신다. 그러면 아무리 사데 교회가 허무하다 할지라도 사데 교회를 살리고 영광스럽게 존귀케 승리케 하는 데에는 이 둘만 하면 됩니다.
성령과 주님이 그 사자를 잡으시고 일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잡으신, 주님이 붙들고 쓰시는 일꾼과 성령만 있으면 이 사데 교회도 완전 회복을 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는 이런 교회가 된다는 것을 여게 말씀합니다.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요 행위라 하는 데 대해서 우리는 잘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여게 사데 교회에 대해서 잘못을 들어서 지적하시는데 이 사데 교회의 영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 마음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몸들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행위를 들고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이나 마음이나 몸이나 그것은 다 주님의 대속을 공심판에 통과시킨 대속을 당신이 벗기지 안하고 그대로 입혀 둡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기는 심판이나 뭐 관계할 점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기 때문에 완전입니다. 그건 다 영생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영이 입었고 마음이 입었고 몸이 입었고. 이 영육이 입었는데 영육이 입고 네가 이제 입은 그 행위를 어떻게 하느냐? 네가 이 사활의 대속을 입고 이 사활의 대속을 네가 믿느냐 안 믿느냐? 그 권세를 네가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네가 그 능력과 권세를 쓰느냐 안 쓰느냐? 쓰느냐 안 쓰느냐? 이래서 행위는 심판하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서서 각각 선악간에 그 행함을 따라서 받으려 함이라' 한 그 심판도, 그리스도의 심판에도 우리의 영육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요걸 단단히 구별해야 됩니다. 우리의 영육은 심판받지 안하고 다만 우리의 행위만 심판받습니다. 행위는 심판받아서, 아무리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하나님의 공심판에 산 자로 다 통과되어서, 산 자가 되었으니까 공심판에 산 자로 인정했으니 그는 아무것도 죽일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속하신 그 대속주는 대속을 입힐라면 입히고 안 입힐라면 안 입히고 그것은 당신에게 권리돼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육도 당신의 대속을 만일 벗겨 버린다면 우리는 완전한 멸망뭉텅이뿐인 것입니다. 이런데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이 영육은 심판하지 아니 하시고 이 영육이 예수님의 대속을 어떻게 믿으며 이 대속을 어떻게 간직하고 있느냐 하는 그 행위만은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위는 심판하고 영육의 그 본체는 심판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모두 다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는 이 말씀은 공심판에 대한 성구가 아니고 사심판에 대한 성구입니다. 이제 공심판에서는 행한 대로 갚는다는 완전 행위를 했기 때문에 한 건으로서 그것을 완전히 완전하다 공심판에 통과한 것을 다시 재심사나 정죄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만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우리의 행위도 심판 못 합니다. 우리의 해 놓은 일도 심판을 못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만은 심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당신이 대속의 공로를 입혔기 때문에 벗길라면 벗기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입혔는데 입힌 그 대속을 자기가 벗어버리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벗어버리는 것은 행위로 벗어버리지 그거 몸 자체가 벗어버리는 것 아니고 마음 자체가 벗어버리는 것 아니고 그것은 마음과 몸에서 나온 것이나 마음과 정력과 몸의 정력이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인정하느냐 사활의 대속을 배척하고 이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인정하느냐 두 가지 기로에 있는데 사활의 대속을 인정하는 그 길을 택할 수도 있고 또 이 세상 주장과 세력대로 그 길을 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은 언제든지 우리의 영육에서 나오는 행위의 심판, 행위의 시험하는 그 현실인데 그 현실에는 양쪽 두 가지 갈래길이 있어서 하나는 생명이고 하나는 사망입니다.
이래서, 좁은 길로 가는 것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넓은 길로 인도하는 것은 사망으로 가는 길인데 좁은 길은 하나뿐입니다. 좁은 길은 주님의 사활의 대속한 이 대속은 하나뿐이요 또 대속은 진리기 때문에 하나뿐이요 둘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된다는 같은 불교의 길도, 유교의 길도, 뭐 어떤 철학의 길도, 미신의 길도, 또 이런 모든 사상의 길도, 주의의 길도.
이런 욕심의 길도 뭐 천도 만도 넘은 그런 것을 가리켜서 넓은 길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은 하나뿐이요 참인 그 하나 밖에 것 삐뚤어진 거는 천도 만도 그 수가 무한히 많다는 것을 가리켜서 그런 것을 넓은 길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보다 보다 모든 것을 심사해 가지고 하나인 진리, 하나인 하나님의 사활의 대속에 입각해서 사활의 대속 속에서 사활의 대속으로 통하여 걸어가는 그것이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행위를 아노니.' 그러기에 아무리 택한 자가 예수님을 잘 못 믿는다 할지라도 영도 꼭 같은 영으로 하늘나라 갑니다. 또 심신도 꼭 같은 심신으로 하늘나라 갑니다. 그는 차이가 없이 꼭 같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고 갑니다. 그러나 가는데 그의 영광과 실력은 다릅니다. 영광과 실력이 어째 다르냐? 이 심신은 심신의 자기의 가진 것을 다 썩을 데 투자를 해 버렸습니다. 자기 심신의 가진 것을 육체로 심었습니다. '육체로 심은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육체로 심은 것이 어떤 것이 육체로 심은 것인고 하니 '성령의 생각은 생명이요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육체라는 것은 뭣이 육체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아난 영으로 인해서 움직이지 안하고 이 심신 제가 단독이 움직이는 행위를 가리켜서 육체라, 육체의 생각이라, 육체의 욕심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이 육체에 대해서 원어가 나는 모르는데 들어 압니다. 육체는 원어가 싹스고 몸은 쏘마라고 이라는데 '쏘마는 몸을 가리키는 것이고 싹스는 부패성을 가리킨다' 이래 가지고 한창 고려신학교에서 그것이 가득 찼던 것입니다. 이런데 내가 성경을 깨닫고 해석하는 거는 전부 거게 걸립니다. 걸리니까 꼼짝 못하게, 원어를 들이대고 학자들이 말하니까 그것은 꼼짝 못 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대로, 또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시는 대로는 그렇지 않는다 이런데, 그래서 내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체가 약하도다' 하는 그 육체를 가지고 말을 하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육체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육체라 그렇지 예수님의 육체는 약하지 않다' 이렇게 해서 그것도 또 그만 거기서 패쇠를 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거 나중에 그래 가지고 '그러면 그것이 단수냐 복수냐? 그것을 내가 나는 모르니까 찾아봐라.' 이라니까 단수라고.
'그 단수니까 예수님의 육체를 말한 게 아니냐?' 이렇게 말했지만 그들을 능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내가 한참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며칠 동안 궁구하고 있는 가운데에 "요한복음 1장 14절을 봐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랬으니까 거게 육신이라는 그것이 싹스인가 쏘마인가 그것을 봐라." 이러니까 그때 여기 최재현 목사가 나와 같이 내 밑에 학년인데 그래 그 사람은 원어를 공부하기 때문에 물었어. 그걸 봐라. 찾아보더니만 "그것은 싹스입니다 그거 거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그 육신이 싹스고 쏘마가 아닙니다." 그게 만일 쏘마가 됐더라면 꼼짝 못할 터인데 싹스가 됐어.
그래 '그러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제이위 성자가 부패성 됐다 말이냐?' 하는 것을 그것을 말하니까. 옳은 것을 말하니 큰 소리하지도 안했습니다. '그거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라. 거게 보면 육체를 싹스라 했는데 그 싹스는 예수님이 싹스됐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그거 몸 됐다는 것이지 부패성 됐다는 말은 아니다.' 가만히 말했는데 그거는 어느쩍에 퍼져 나갔는지 신학교에 꽉 퍼져서 그 다음부터는, '싹스는 부패성이라 쏘마는 몸이라' 이런 말은 그 신학교에서 한 마디도 다시 나오지 안했습니다. 싹 철거돼 버렸어.
이러기 매문에 우리가 뭐 다른 사람에 이러니 저러니 말할 것 없이 옳은 것이면 옳은 것 그 자체가 진리기 때문에 이 모든 피조물을 진리가, 시공자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인격체가 아니지만 능력은 우주를 창조하고 영계를 창조할 때에 창조의 시공한 그 시공 자체는 진리가 시공했고 시공을 진리에게 명령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옳으면 그것이 모든 피조물보다 능력이 큽니다. 또 옳은 것은 하나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옳으냐 그르냐? 대적이 많으냐 그런 건 생각지 말고 이거 진리냐 진리 아니냐? 하나님의 명령이냐 명령 아니냐? 이 두 가지에서 우리는 가치와 권위를 두고 모든 범사를 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옳은 것이면 반대한 그 천하는 마지막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에 대해서 반대하던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마지막에는 다 알고 보니까 틀렸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렇게 이 진리를 저희들이 자꾸 거짓부리라고 반대하고 있으니까 반대를 받는 것은 잠시 잠깐 후면 그들이 영원히 무릎 꿇고 찬양하는 찬양을 받게 된다 이는 주님과 하나기 때문에 주님에게 받고 또 그들에게도 받게 된다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이거는 행위를 말합니다. 네 행위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다는 이름이라 말은, 생명책에서 흐리겠다.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다 제해 버리겠다 또 생명책에서 제하지 않겠다. 성경에 많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네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고 네 이름을 하나님 앞에서 안다 하리라' 이렇게 이름을 말씀을 했는데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다 그말은 생명책에 녹명이 됐다 말입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있다 말은 생명책에 녹명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살았다는 이름은 있다는 것은 생명록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산 자로서 산 자 명부에 다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들어 가지고 있는데 이 산 자 명부에 들어 가지고 있는 것은 여기서는 무엇이 산 자 명부에 들어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영이 산 자 명부에 들었다는 말이요 이 심신이 산 자 명부에 들었다 말이요 행위가 산 자 명부에 들었다는 말입니까? 뭐입니까? 영 있고 육 있고 행위 있고 이런데 그라면 이 셋을 다 생명록에 기록됐다는 걸 여기 말하고 있습니까 영이 기록된 걸 말합니까 육이 기록된 걸 말합니까 행위가 기록된 걸 말합니까? 본문을 보지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이렇게 똑똑히 밝혀 놓지 안했습니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그런데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이라니까 이거 영도 아니요 육도 아니요 행위 아닙니까? 이거 행위 아니고 딴것이라고 말하면 결국 논리하고 결국 자꾸 궁구하고 논리해 나가면 그거는 육을 말한 것이라 영을 말한 것이라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요게 표현한 것은 물론 영과 육도 다 생명록에 기록 했지만 여게 특별히 들내서 말한 것은 행위를 말했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하니까 이 행위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공심판 대속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대속하신 것은 공심판 대속을 했습니다. 공심판 대속을 할 때에 영도 공심판에서 당신이 대속함으로서 공심판에서 완전이라 하는 의의 자격을 받았고 또 이 심신도 의의 자격을 받았습니다, 또 행위도 의의 자격을 받았습니다. 기능도 다 의의 자격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러나 죄도, 그라면 그 사람이 지은 죄도 의의 자격을 받았습니까? 어떻습니까? 죄는 의의 자격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내가 온 것은 죄를 멸하러 오셨다'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대속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한 몸을 대속하시고 죄를 범한 마음을 대속하셔서 죄라는 독이 그 심신을 해치는 그것을, 죄라는 그 독소를 다 뽑아서 죄에게 해를 당하고 있는 마음과 육, 영육을 완전히 그 독소를 빼서 영육은 죄 없는 영으로서 죄 없는 심신으로 이렇게 했지 우리가 지은 죄까지 예수님이 대속하여 가지고 그것을 우리를 구원하신 것 아닙니다. 죄는 멸하러 왔습니다. 죄를 범한 우리를 구원하셨지 우리가 범한 죄를 구원하시지는 않는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죄를 범한 내 영육을 구원하셨지 내 영육이 범한 그 죄까지 구원하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지은 죄도 멸했습니다. 멸하러 오셨다 이랬습니다. 나를 붙들고 쓴 마귀도, 나하고 동행하던 마귀라고 주님이 그걸 대형하셔 가지고 구속하시지 안했고 그 마귀 그것도 멸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의 육을 붙들고 그렇게 범죄케 하는 그 마귀도 멸했고 죄도 멸했고 다만 거게 빠져서 실패하고 한 이제 그것 때문에 얽매인 것, 이 죄 때문에 꼼짝 못하고 붙들려 있는 영육을 이걸 예수님이 대속해서 해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 행위 구원에 대해서 기능이 이러냐 저러냐 하는 그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요것을 기억하고 가서 연구를 하면 좋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공심판 대속이지 사심판 대속은 아닙니다. 공심판 대속으로서 구출해 놓은 이는 완전타 온전타 함을 받은 그것을 이제 다시 예수님이 사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러기에 공심판에서 인정 통과된 것을 아무도 그를 건드리거나 정죄하거나 침해하지 못하지만 대속하신 당신은 하실 수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하는 것을 이름을 붙여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그렇게 밝혀 놨습니다.
이래서 그 심판은 행위만 심판합니다. 이래서 살았다는 이름은 있다 말은 그 심판에서는 다 인정해서 행위도 전부 살았다 행위까지 다, 행위까지 주님이 다 대속하셨습니다. 행위는 죄를 행위라고 말하지 안하고 심신의 기능이 그 행동한 그것을, 행동하게 한 그 자체, 행동을 발생해 놓은 우리의 정력을 다 말해. 우리의 정력. 심신과 심신의 정력. 심신과 심신의 정력 그것을 가리켜서, 그거는 뭐하는 것입니까? 심신의 정력 그것은 행위하는 것입니다. 구속을 받고 난 다음에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그 정력은 다 생명록에 기록돼 있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게 뭐이냐 하면 아직까지 행위로 나타나지 안했지만 행위의 원료입니다. 행위의 자료입니다. 그것이 한번 움직이면 행위가 됩니다. 움직이고 난 다음에는 그 자기의 심신의 정력이 그것이 그대로 있느냐 하면 정력이 그대로 있지 안하고 정력이 변화돼 버립니다. 정력이 변화됩니다. 자기의 심신의 정력이 한번 움직여서 쓰여지고 난 다음에는 정력이 그대로 있습니까 그 정력이 없어졌습니까? 없어졌습니다. 하루를 살면서 하루의 정력을 하루 사는 데는 하루 사는 양만치 그 정력은 벌써 하루 살고 난 다음에 그 정력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정력이 없어졌으면 그 정력이 무엇이 됐습니까? 기능이 됐습니다. 그 사람의 하루 24시간 정력을 어학을 공부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였으면 정력은 없어졌고 어학이라는 기능으로 화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그 사람이 하루 그 정력을 어디다 쏟았느냐? 사람을 죽이는 그 일에다가 하루 종일 정력을 쏟았으면 그 사람은 정력은 없어졌고 그 사람에게는 살인하는 기능으로, 살인하는 악의 기능으로 이제 화해졌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이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의 몸의 이 모든 것을 들여서 의의 병기도 되고 죄의 병기도 된다' 이랬습니다.
'죄의 병기는 멸망하고 의의 병기는 산다' 이랬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하면 병기라는 것은 기능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면서 한 시간 살라면 한 시간 유지되는 데에는 정력이 들지 앓고는 유지를 못합니다. 한 시간 살았으면 한 시간 정력은 소비됐고 하루 살았으면 하루 산 그 정력은 소모됐고 일 년 살면, 또 몇십 년 살면, 그러면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정력이 다, 이것이 다 쓰여졌을 때에 그 사람은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 정력이 없으니까 다시 더 살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살 수 있는 정력이 다 쓰여지고 정력이 다 없어졌으니 그 사람은 세상에서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일생 동안 그 정력을 가지고 어디다 투자했느냐? 그 정력을 투자한 그것이, 육체로 심은 자라 말은 육체에 투자했다는 걸 가리켜 말한 것인데 육체라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 인간의 주장, 인간이 주권해 가지고 인간의 주권에다가 투자했다 그 말이오. 그 반대는 뭐이냐? 육체로 심은 거 반대는 성령으로 심은 자라 이래 놨어. 성령으로 심은 자라 그말은 자기가 자기 주장 생각대로 정력을 투자하지 안하고 성령이, 성령이 지도하는 대로, 성령을 위해서, 성령을 위한 것은 성령을, 성령은 뭐 하고 있습니까? 성령은 뭘 하고 있습니까? 성령은 뭐 하고 있지요? 성령은 뭣을 하고 있어요? 성령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우리 것을 만들어 주는 그 일을 할라고 책임지고 보증자로, 내가 이걸 만들겠다 하고 보증자로 책임지고 나온 것이 성령입니다.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단독이 아니라 영원 자존하신 자존의 그 모든 회의에서 성자는 사활의 대속을 하시고, 사활의 대속을 책임지고 우리에게 실효 있게 적응시키는 것은 성령이 적응을 시키고, 이 모든 것에 뒷바라지 하고 그 모든 전체를 다 총괄해 가지고 역사하기는 성부가 역사한다고 그렇게 성경에 발표를 했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사는 것은 자기의 심신의 정력을 가지고 살고 또 영은 거기서 지도하고, 지도하는데, 영이 지도하는데 영이 지도할 때는 그 영은 어떤 지도를 하기 때문에 그 영은 관계가 없느냐? 그 영은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지도한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성령과 중생된 영은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결합이 돼 버렸어. 이러기 때문에 그걸 발표하기를 '영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다 살아났다' 그렇게 말씀했어. 영생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다시 죽는 일이 없기 때문에 중복이 없습니다. 단번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영생하는 본질 본성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는 말은 중생된 영이 죄 외에는 죽이는 일이 없기 때문에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는 그런 말은 중생된 영도 죽음이 있다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범죄하고 또 살아나고 범죄하고 살아나고 이라면 아마 수천 번 수만 번 죽었다가 살아나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영의 생명이라 이렇게 하는 것은 그분들이 어디서 이거 착각을 일으켰느냐 하면 영을 마음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영을 마음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자기가 실지로 신앙 경험 체험에 마음이라 하는 것은 하루 수백 번도 변해지고 실수하는 것을 보기 때문에 자기가 실지로 실수하는 걸 보는데 중생한 후에 이거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 말을 자기가 실지로 체험하고 경험하고 확실히 체험하고 경험했는데 이 영이 범죄하지 안한다 하니까 이 말은 이해가 안 되니까 담대히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 그들은 아직까지 영과 혼이라는 것을 구별하지를 못했습니다.
이래서 정통에서 이분설은 사람은 영육으로 돼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이 정통에서 이분설을 말하는 것이고, 또 사람을 삼분설 말한 것은 사람은 영 혼 몸 이 세 가지로 돼 있는 것이 사람이라, 이 삼분설이 유리한 점도 있고 이분설이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
이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영육뿐이라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꼭 삼분설을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들이 삼분설을 알아야 자기네들의 그 주장이 틀렸다는 것도 알고 그 주장이 또 바로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자꾸 이분만 하고 하니까, 영 육 이라니까 이제 그 사람들은 영을 모르고 마음 이 고기덩어리 둘밖에 모르니까 이제 이것은 마음은 영으로 보고 또 몸은 이거 고기덩어리로 보고 이래 보니까 아무리 중생했지만 이거는 날마다 범죄하기 때문에 이것을 암만 말해도 믿어지지를 안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이분설 하는 사람은 성경에 영 혼 관절과 골수 이거 몸을 말한 것인데 영과 혼과 몸 이 삼분설을 자기들이 믿어야 됩니다. 삼분설을 믿으면 그러면 문제가 무슨 난제가 나느냐? 영은 무엇이며 혼은 무엇이며 또 몸은 무엇인가 이럴 건데 둘로만 하니까, 하나를 빼 버리고 둘로 하니까 하나 그것을 생각할 것도 생각지도 안하고 알라고도 안하고 그것을 그만 무시해 버리고 말기 때문에, 셋인데 둘만 아니까, 요긴한 그 영을 빼 버리고 심신 이 둘만 알고 보니까 항상 어두운 데서 헤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주석해 놓은 것이 유명한 분들이지만 주석해 놓은 것이 언제든지 영은 없애 버리고 심신 놀음으로서만 이렇게 주석한 것을 봅니다.
이래서 시편 주석은 더군다나 더 그러합니다. 시편은 더 어렵고 어려운 중에 깊은 은혜 가운데서 기록한 것이 이 시편인데 시편 주석은 그들은 옳게 주석을 못 합니다. 자기가 오만 실수한 일을 많이 하면서도 '나는 의인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십시오. 내게 무슨 흠과 점이 있습니까? 내가 뭐 법을 범했습니까? 내게 뭐 책망받을 게 있습니까? 나는 완전자입니다.' 이렇게 말했어. 그게 뭐이냐? 심신이 아니고 영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은 것은 완전하다는 말이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고 보니까 '나는 완전자라' 대속을 벗으면 전멸자입니다. 이러니까 대속을 입은 그 대속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여 나를 보십시오. 흠과 점이 있습니까? 내가 잘못된 게 뭐 있습니까? 내가 심판받을 게 뭐 있습니까? 완전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제 자랑쟁이입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대속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공심판에서 우리가 이 영 혼 몸 이거 다 대속을 받았습니다. 영은 범죄하지 안했지만 육은 범죄했는데 심신이 들어서 범죄했는데 이 범죄한 것을, 범죄하니까 심신이 전부 죄뭉텅이입니다. 심신이 죄뭉텅이입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은 이 심신은 죄뭉텅이라 이래 가지고 육을 평생 미워했기 때문에 자기가 세상을 떠날 때도 '내가 죽거들랑은 나를 상여를 만들지 말고 리어카에다 끌어다가, 관도 하지 마라. 널도 하지 말고 리어카에다가 거적때기로 묶어 가지고 리어카에다가 실어다가 저 불에 태워 버려라.' 그분은 육을 죄로 아주 미워하고 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뭐이냐? 그것도 바로 깨닫지 못하는 데에서, 육이 범죄하니까 그걸 미워하는 것으로 이렇게 해서 육을 전부 죄뭉텅이로 생각했습니다. 그거는 깊이 들어가지를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열어 주면 할 수 없어. 이 심신이 죄를 범하니까 심신은 죄뭉텅이인 줄 알지만 심신에 죄라는 물을 들였기 때문에 근본은 이것이 괜찮은데 이 죄악의 물이 들어서 이렇게 됐으니까 죄만 탈색해 버리면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가 탈색됐습니다. 이라니까 이 심신은 깨끗한 심신이 돼졌습니다.
이래서 신학적으로 '물질 개악설이라' 물질은 다 악이라 이래 가지고 사람의 그 육도 물질이기 때문에 악한 것으로 이래 보는 그런 그 사상은 그게 이단입니다.
그게 진리가 아니고 이단입니다. 그래서 다만 육은 물질이지만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고 악한 것으로 감염돼 가지고 했기 때문에 그걸 악한 것을 싹 탈색을 시켜 버리고, 색깔을 처 버리고 그걸 성령으로 순전히 물을 들여 버리면 그게 또 성령같이 돼 버리고 만다. 이래서 우리들의 성화를 가리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다 이렇게 대속을 받은 것인데 재심사하는 것이 이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재심사하는데 재심사할 때 영도 심사하고, 마음도 심사하고 몸도 심사하고 심사를 하느냐? 이거는 심사하지 안하고 행위만 심사한다 그 말이오. 네가 영육이 어떻게 하느냐? 영육이 어떻게 지금 행동하느냐? 행동을 심사해서 행동이 만일 행동이 죄가 되면 예수님은 죄를 멸하는 예수님이시지 죄를 대속하지는 안합니다. 예수님이 죄를 대속한 줄 압니까? 죄는 멸하러 왔어. 죄로 인해서 사람이 죽기 때문에 죄 그놈을 쏙 잡아 빼버려서 하나도 없이 죄를 완전히, 요새 뭐 탈색하는 거 그게 뭐라 하더라? 탈색하는 거 뭐 있어? 뭐 탈색하는 거 내가 못 쓰구로 해요. 빨래 할 때 그거 쓰면 싹 다 빠지는 모양인데. 탈색하는 그거 모양으로 이제 죄를 싹 탈색을 해 버리면 이제 완전한 하나님이 지어 놓은 본질 그대로만 남게 됩니다.
이래서 심판은 행위만 심판하는데 행위 심판하니까 몸과 마음은 심판하지 안하고 행위만 심판하니까 이제 그 몸과 마음은 그대로 다 있습니까? 몸과 마음은 심판은 받지 안 했지만 심판 받을 수 있는 것이 몸과 마음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거 무슨 말인지? 몸과 마음은 당신이 심판하지를 아니하시는데 행위를 심판한다 했으니까 그 행위가 어디서 나옵니까? 마음과 몸에서 나옵니다.
마음과 몸에서 나오면 그것을 이름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합니까? 정력 아닙니까? 그러면 하루 사는 데는 마음과 몸이 살 때에는 뭘로 가지고 삽니까? 정력으로 삽니다. 그러면 정력은 그것이 정력으로 그대로 늘 남아 있습니까 하루 살았으면 하루 산 정력은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습니까?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없어지고 말았으면 그 정력이 그냥 없어졌습니까 그 정력이 뭘 만듭니까? 기능을 만듭니다.
죄짓는 기능을 만들든지 의를 행하는 기능을 만들든지 이제 마귀하고 합작된 기능을 만들든지 하나님하고 합작한 기능을 만들든지 기능을 만듭니다. 기능을 만드는데, 하나님과 합작된 그 기능을 만든 것은 이것은 의의 병기가 됩니다. 의의 무기가 된다 말이오. 그 기능이 의의 무기가 되고 죄에 드리면 죄의 병기가 된다 말이오. 죄의 병기가 된다 말은 죄의 도구가 된다 말이요 죄의 무기가 된다 말이오. 죄의 무기가 된다 말은 죄의 기능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의의 기능은 하늘나라 가고 죄의 기능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우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이래서 살았다는 이름은 있다 말은 이 공심판에서 살았다는 생명록에 기록은 됐지만 기록된 거 이거는 절대적이요 불변적이 아니라 그 말이오. 이 생명록에 기록이 됐지만, 행위는 생명록에 기록이 됐으니까 산 것이지만. 살았다는 이름은 있지만 이거는 절대성 불변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여게 이 생명록에 기록한 행위를 절대 불변성으로 다시 변동 없이 거게 흐리지 못하도록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그것은 변경할 수 있고 흐릴 수 있고 없앨 수 있고, 생명록에 기록했지만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성경에 말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가 사데 교회를 공부하고 있지요? 그런데 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그 이름 무슨 이름입니까? 행위 이름입니다. 그 위에다 그래 해 놨지요? 그거는 변동 못 하지 안해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이 행위를 지금 들고 말하고 있는데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러면 흐리지 안하니까 흐릴 수 있다 말이요 없다 말이요? 흐릴 수도 있고 흐리지 안할 수도 있다 그말입니다.
흐릴 수도 있고 흐린다 말은 뭉캐 버린다 말이요, 싹 깎아서. 요새, 탈색을 시켰다 말이오. 그만, 기록했는데 뭘로 어짜니 글씨가 쏙 빠져 버리데요. 뭐 이랬는데 뭐 붓으로 요래 요래 하니까 글씨가 쏙 빠져 버리고 하얀 베쪼가리가 돼 버리데.
그러면 거게 딴걸 또 써 넣더구만. 이런데 흐려버려. 뭉캐 버리고 없애 버린다 그 말이오.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이라니까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하니까 반드시 흐릴 수도 있다 말 아닙니까? 뭣을 흐릴 수 있고 흐리지 안할 수 있다 말입니까? 행위라 말이요, 행위.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 이름은 무슨 이름이요? 행위 이름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구속을 대속을 받은 우리의 이 영육인데 영육은 다 대속을 받아서 이렇게 했지만 영육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영육에서 나오는 그 정력이 행위가 되는데 그 정력이 행위를 무슨 행위를 만드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면 뭐이 만들어집니까? 영생이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의의 병기가 됩니다. 의의 병기는 그것은 없어져요 하늘나라 가서 쓸 수 있어요? 영원히 의의 병기는 쓸 수 있어요. 영원히 쓸 수 있는 영생하는 기구라. 또 자기 몸을 죄에게 드려서 죄의 병기 만드는데 죄의 병기 만든 그걸 예수님이 대속을 하십니까 안 하십니까? 죄의 병기 됐으니까 죄의 도구, 죄의 무기 죄의 기능인데 죄의 기능은 예수님이 대속합니까 죄의 기능을 멸합니까? 멸하러 오셨다 그랬어. '내가 마귀와 죄와 사망을 멸하러 왔다'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이래서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하는 이 말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다 통과된 것인데, 통과된 것인데 이것이 지금 제가 행위에서 그 정력을 다 죽여 버린다 그 말이오.
자기 정력이 없어지기는 언제 없어집니까? 자기 정력은 현실에서 없어지는데 자기 정력이 그라면 현실에서 없어지면 뭘로 없어져요? 행동으로 없어지지.
그렇지 안해요? 정력이 현실에 행동으로 없어지지 안해요? 행동으로 없어지지요.
하루 살았으면 그만치 그 정력은 없어졌습니다. 없어지는데 없어지는 그게 육체로 심는 것도 있고 성령으로 심는 것도 있다고 말씀했는데 없어지는, 그 현실에서 없어지는 정력이 그게 행위로 없어지는데 행위가 성령의 행위로 없어지는 것도 있고 육체의 행위, 인간 생각, 성령과 상관 없는 심신이 주체가 돼 가지고 하는 없어지는 것도 있다 그 말이오.
그러면 심신이 주체가 돼 가지고 없어지는 것은 어떻다고요? 육체로 심은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썩어진 것이라는 것은, 썩어진 것을 거뒀다 말은, 썩어진 것이라는 것은 아주 그 형체가 전연히 없어졌다 말입니까 이제 썩어진 걸로 있다 말입니까? 썩은 걸로 있다 말이요 없어졌다 말이요? 그러면 그 사람이 정력을 그래 가지고 지금 저 뭐 나는 말만 들었는데 옥스포드 대학이 어디 있지? 영국에 있는가? 영국에 옥스포드 대학에 말이지요, 그 사람이 일생을 바쳐 가지고 거기서 제일 으뜸되는 사람이 됐어. 제일 으뜸되는 사람이 됐으면 그 사람은 지금 세계에 유명한 사람은 돼 가지고 있는데 그 유명이 썩은 유명이요 산 유명이요? 썩은 유명이라니? 세계에서 지금 찬양하고 하는데 썩은 유명이라? 그 유명이 썩었습니까? 지금도 모두 모든 사람에게 찬양을 받고 제일 지금 대가리노릇 세도를 부리는데? 그게 썩었어요? 썩었으면 세도를 부리고 있어? 지금은 살아 있지만 마지막에 종결 시간에 종말 시간에 보니까 그거 거기서 생명에 옮겨가지 못하고 생명 세계에 없고 요 죽음에서 끝나고 말기 때문에 최종을 보니까 죽었다 그 말이오.
노아 시대에 모든, 노아 여덟 식구 외에 사람들은 모두 다 준비하는 그 모든 준비가 다 '너 죽을 준비 하지 마라. 그거 다 죽은 준비다. 소용 없는 준비다.' 이러니까 그 사람들에게 시비를 하면 이깁니까 못 이깁니까? 왜 살아 있는데 죽었다 하느냐고 죽었다는 말이 헛일이요, 못 이기요. 못 이기는데 언제 가면 그때 그게 판정이 납니까? 홍수가 내리면 판정난다 그거요. 인제 육체로 심은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둔다 그라는데 이 세상을 딱 끝내고 보니까 다 썩은 거라. 다 죽은 거라. 아무것도 없어. 이러니까 범위가 거게까지를 말한 건데 당장 이 시간 범위로 보면 안 죽고 살았고 팔뚝시같이 이거 세도를 부리고 있는데 죽었어? 아직까지는 안 죽었지만 그것은 어디를 범위를 두고 했느냐 하면 이 세상 떠날 때까지의 그 범위, 하나님의 심판까지의 범위를 잡고 보니까 그 전부 다 전멸된 것 죽은 것이고 다 썩은 것이다 하는 그 말이오.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로다 행위가 그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그러면 지금 이 남은 바 죽게 된 거니까 지금 많이 죽고 남은 것 있고 많이 죽었고 죽은 것 있고 남은 것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죽은 거는 뭘로 보겠습니까? 죽은 거는 그 현실에서 벌써 육체로 심어서 육체로 따라 살아서, 인간 생각대로 살아서 그것은 벌써 죽어진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죽고 남은 게 있으니까 남은 거는 뭐인가? 아직까지 살 날이 하루인지 열흘인지 뭐 십 년인지 백 년인지 모르나 남아 있는 거는 그 죽은 거 남은 거, 죽은 거는 지옥 가지 않소? 죽은 게 무슨 천국 갑니까? 하늘나라도 죽은 것 가지고 갑니까? 하늘나라 죽은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라면 이런 거는 분명히 알 만하지만 우리 진영에서도 지금 거게 대해서 지금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반대를 하고 있고 또 염려도 하고 있는데 내가 그거는 말을 자꾸 하지 안하고 스르르 냅두지만, 자꾸 그거 그라고 자기네들, 아무라도 처음에 다 깨닫는 사람이 없어. 자꾸 이리 저리 생각하고 깨달아 보면 '아, 이렇구나.' 이 슬그머니 가르쳐 놓으면 나중에 가서는 어떤 사람은 들어서 배워서 깨달은 그 기억이 있는 사람이 있고, 기억이 있는 것만 있습니까? 없어. 자기가 이라다 보면 배운 것은 기억이 없고 그 속에 말씀은 역사해 가지고 뒤에 자기가 나옵니다. 이러면 그거는 자기가 발견한 것이오. 자기가 발견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백 목사보다 훨씬 낫다.' '그런 데 대해서는 우리 목사님이, 조사님이 훨씬 백 목사보다 훨씬 깊고 넓고 뭐 옳애 가지고 있다.' 우리가, 나도 어디 가서 배웠든지 들었든지 그리 안 하면 자기가 언제 한번 슬쩍 지나갑니다. 슬쩍 지나간 걸 그것을 자기는 몰라도 한번 씻어 지나가고 두 번 씻어 지나가고 세 번 지나가고 자꾸 지나가면 차차 차차 낯이 익어서 그것이 주관화되는 것입니다. 주관화되는 것. 이것을 가리켜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어떻게 받았으며 하는 그것이 성령의 은사를 가리켜 말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자기가 영감을 받았는데 영감을 받았는데 그만 있다 보니까 지나가 버렸어.
이래서 저도 여기 개명 있을 때 그때 집사로 있을 때인데 지금 내일 설교할라 하니까 산에 가 가지고 기도하고 이래서 참 은혜를 받아서 그 도리를 깨달으니까 기쁘고 즐거워서 이렇게 와서 좋아서 이랬는데, 이래 가지고 냇물이 거기 하나 있어요. 냇물이 하나 있는데 냇물이 다리가 아니고 노디, 돌로 가지고 요래 건너가요. 냇물 건너올 때는 좋고 즐거워하고 이랬는데 그만 노디 건너가다가 불트려 버렸어. 노디 건너며 노디 안 빠질라고 이거 보고 이래 쌓다 이라는 바람에 내 정신은 그만 그리 가 버려서 그만 성령과 연결이 없어져 버렸다 말이오. 없어지니까 그만 그거 그걸 한번 다시 새김질하며 해야 될 터인데, 새김질하며 가야 될 터인데 그만 잊어버렸어, 어디로 갔는지. 그래 잊어버려 놓으니까 할 수 없어 그것을 도로 또 그 산까지 갔다가 또 새로 또 걸어와 보고, 걸어오면 중간에 흘렀는가 싶어서 찾을까 싶어 이러고 없어. 이래 가지고 몇 번 걸음 한 일이 있어요. 갔다가 다시 또 돌아오면서 또 이 받은 것을 또 찾을라고 또 이래 가지고 자꾸 이렇게 받은 것을 생각하고 이래, 생각해서 자기가, 받은 그거는 손으로 쥐는 것도 아니고 생각으로 밖에는 못 쥐거든요. 마음으로 밖에는 접촉을 못 해. 이거 받은 것을 자꾸 이렇게 생각할라고 이래도 그만 잊어버려. 안 됩니다. 암만 해 봤자 안 돼요. 그게 뭐이냐? 주님이 '야, 이놈아 네가 나를 버리고 엉뚱한 것 딴것 보고 좋아하는데 내가 네까짓 놈 보고 기다리고 있을 턱이 뭐 있나?' 하고 그거 그만 섭섭해서 가 버렸다 말이오. 이라면 이래 마음에 고심을 합니다. 고심을 하고 이래도 안 나와요. 그라다가 어째 변소에 갔어.
변소에 갔는데 쑥 튀어온다 말이지. '나 여기 있어' 이라며, 그래 그때 그러면 이거 뭐 없으니까 이 암만 기억해도 또 안 되니까. 이래서 나는 그때는 꼭 요 조그만한 종이쪼가리 조그만한 것하고 요거 조그마한 붓 하나하고 가지고 다녀요.
그러면 거기서라도 그라면 그 자리 그만 써 버려요, 뭐.
변소에서도 쓰고. 그라면 길가에 가다가 또 다른 사람하고 얘기할 때 쑥 튀어나오고 그래 가지고 그때 나와서 나오면 좋고 그라면 환하게 정신이 밝아지고 모든 것을 바로 보인다 말이오. 사람도 바로 보이고, 나도 바로 보이고, 남도 바로 보이고 바로 보여.
이래서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그라면 이미 죽은 것도 있고, 다 살아 있습니까 다 죽어 있습니까? 요게 뭐라고 했어요? 아주 죽어 버린 거 있고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남아 있는 거 있다 말 아닙니까? 요 환하게 표가 나지 안해요?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면 행위구원은 어때야 행위구원이 돼요? 행위구원은 어떤 게 행위구원이 돼요.? 그라면 제 마음에 됐다 싶으면 행위구원이 돼요 다른 사람이 그 행위는 괜찮다 하면 행위구원이 돼요, 어때야 행위구원이 돼요? "내가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했으니까 온전이 아니면 구원 못 됩니다. 우리 행위는 온전이 아니면 구원이 안 돼요. 이 구원의 표준을 온전이라는 것으로 표준하니까 온전이 아니면 안 되니까 온전되는 것으로 할라고 애를 쓰는데 행위를 온전이고 뭐고 그냥 예수의 이름만 가지고 속에는 마귀 노릇 암만 해도 행위하면 다 구원 얻는 줄로 이래 알기 때문에 우리가 이 건설구원의 가치를 너무 아주 과소평가 했다 말이오. 너무 이 가치를 아주 작게 평가했기 때문에 건설구원 이루는 거 행위구원 이루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된다는 이 말은 다 이거 거짓말로 듣고 그거는 다 인정 안 해. 마귀 그놈이 인정 안 하라 해요.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암만 작은 거라도 그걸 다 투자해 가지고, 남아 그렇게, 이걸 다 가지고 하는 것과 이거 뭐 여게는 조그매만 돼도 되니까, 이래 쌀내끼만 하면 되니까, 쌀내끼만한 그 일이라 쌀내끼만한 일에 자기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이걸 다 투자해 가지꼬 한 그것이 이제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서 영생하는 구원이 된다 그거요.
그래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여기 온전은 뭐할라고 여기 온전을 말합니까? 행위의 온전을 여기 뭐할라고 말합니까? 온전을 찾지 못했으니까 온전만 쓸모 있고 온전치 안한 거는 쓸모 없다 말이요 모든 게 다 행위 다 쓸모 있다 말이요? 네 행위의 온전한 걸 찾지 못했다고 이래 말씀했으니까 행위에는 온전이 아닌 것은 다 못쓰고 다 죽은 것이고 버려버렸다 하는 그말 아닙니까? 이것이 우리의 성화구원 건설구원의 표준이라 그 말이오. 온전이 표준이라. 또 그것을 건설구원을 이루는 우리가 이루는 우리의 준비는 또 뭐이야? 준비는 무엇이 표준입니까? 준비는 뭐이 표준이요? 다하는 것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는 것. 그것이 이 건설구원을 이름에 표준이요 또 건설구원의 검사에 표준은 온전이라야 돼.
이런데 이걸 전부 어짜든지 좋다고 해 가지고, 저 OO교회서 나간 사람이 그라더래요. 그래 가지고 말하기를 '아이고, 아이고 총공회 예수 징그러워. 총공회 예수가 징그립고 참 재미 없어. 이거 이래 나오고 나니까 그래 관광도 갈 수가 있고 좀 사귈 수도 있고 서로 자꾸 먹는 것도 여기서 한판 먹고 저게서 한판 먹고 가고 이래 가지고 그래 이래 다니니까 어떻게 자유가 있고 좋은지? 자유가 하나도 없지, 꼼짝도 못하게 하지, 바빠서 눈코를 뜨지 못하지.' 이라는데 이제 수윌하다고, 그래 말하기를 '그러면 나가니까 뭐이 좋으노? 좋은 걸 말해 봐라.
여기 안된 게 뭐이냐?' 아이고 거기서는 도무지 뭐 꼼짝도 못하고 시집살이 살고 뭘 아무데도 가지도 못하지, 먹지도 못하지, 꼼짝도 못하는데 이제 우리는 지금 얼마나 참 재미가 있고 수월하고 좀 그런데 이게 예수 믿는 맛이 있다고 그래 말한대요. 그래 내가 '그 사람은 뭣이 나빠 나갔다 하더노? 뭐이가 나가 보니까 뭐이 좋다 하더노?' 좋다 하는 거 물으니까 내가 우리는 하면 안 된다고 말이지, 그거는 안 할라고 지금 그것을 피할라고, 그걸 거기 안 빠질라고 애를 쓰는 그것을 그분은 좋다고 해요. 얼마 안 가서 자꾸 부패해 나갑니다. 그리 나가면 잠시 잠깐 후면 타락합니다. 완전히 속화돼 버려. 이래 가지고 교회들이 다 속화되고 맙니다.
우리 여기 총공회도 교역자회 모이면 전부 다 그 주의요. 그 주의니까 나하고는 전부 대립이라. 그래 가지고 모두 말하기를 '백 목사는 그 사람은 율법주의 아니가?' 율법주의라고 그래 또 율법주의라고 또 한창 많이 말 있어. '그건 율법주의다' 사활의 대속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죽을 지경인데 그게 율법주의입니까 그게 은혜주의입니까? 그게 은혜주의요. 그게. 율법주의가 아니고.
은혜주의로 예수님의 공짜배기로 주는 이 구원을 얻을라고 하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는데 이거 가지고 의를 만드는 것입니까 공짜배기로 주는 의는 하도 의가 크기 때문에 그 의를 우리가 공짜배기로 받는 데에도 받기가 그렇게 힘든다는, 받는 그 힘 드는 걸 말하는 것입니까 그게 구원을 만드는 것입니까? 만드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라, '온전한 걸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받은 것은 생각하면 돼, 받은 거는 생각으로 잡지 손으로 잡지 못해요.
받은 거는 생각으로 잡지 마음으로 잡지 손으로 잡지를 못해요. 받은 게 뭐인데? OOO조사? 받은 게 뭐인데? 허허, 엉뚱한 소리만 자꾸 저래 하지. OOO집사님? 그거는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 있지 안해? 영감. 내나 그게 그거야. 지극히 크신 분이 내게 와 역사하는 그게 내나 영감인데 영감은 손으로 잡아요 그거 생각으로 잡아요? 자꾸 생각으로 잡아 놓지 안해야 돼요. 이런데 그만 놓았거든.
이러니까 내가 언제 그런 설교한 적 있어. 자기에게 영감으로 한 번 왔다 간 것 있어요. 한 번 왔다 간 그것이 자기에게는 제일 거리가 멀고 제일 깊은 거라. 두 번 왔다 간 거 있고 세 번 왔다 갔고 네 번 왔다 갔고 여러번 왔다 간 거는 이제 자다가도 생각나. 자다가도 알 수가 있어. 자다가도 알 수가 있고 아무 때라도 나올 수 있지만 한 번 왔다 간 거는 다시 못 찾는 수 있어요. 이러니까 그만 길을 가다가도 그거 뻐뜩 생각나면 그만 씁니다. 또 이거는 혹 무슨 또 급할 때 또 생각날 때 있어. 급할 때 생각나면, 급할 때 생각나면 급한 그 것 다 집어던져 버리고 씁니다. 기록을 해요. 그래 가지고 언제든지 나는 요 좌측에다 딱 넣어 가지고 장 그래 가지고 다녔는데 지금은 그것을 내가 가지지 안해요. 지금은 이래 가면 별로 퍼뜩 한 번 왔다가 간 그런 것이 없고. 보면 내가 요새 신앙 생활 못 해 그런지 새로 한 번씩만 만나고 간 그런 게 많아야 되는데 별로 다 구면이고 초면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거 그런데 구면이 많아야 좋아요 초면이 많아야 좋아요? 초면이 많아야 좋아요. 초면이 많아야. 초면한 그걸 가리켜서 '어떻게 받았으며' 하는 것을 가리켜. 영감의 성신의 은사를 받아, 성신의 가르침을 받고 지도를 받고 감동을 받아서 나에게 더 믿어지게 하고 깨닫게 되고 견고하게 하는 거, 저 OOO씨. 받았어요? 영감 받아? 영감 받아 그뭐 암이고 그까짓 거 상관 없이 주님, 암 생각하면 헛일이라. 암 보다 주님을 더 생각해야 되지 암을 주님보다 더 생각하면 주님이 시기해요 안 해요? 시기해. 안 돼. 암보다 주님을 더 생각해야 돼. '아이고, 암이야 내가 주님만 하면 주님이면 족하지 암 그까짓 거야 있거나 말거나 네야 오든지 가든지 뭐 네야 어짜든지 네 맘대로 해라. 나는 주님 한 분으로 만족이다.' 이랄 때에 주님이 이제 당신만 보니까, 당신만 안 본다고 지금 암을 줘 버렸는데, 당신이 쥐박았는데 이제 당신만 보니까 자꾸, 보니까, 주님이 삐꿔서 잘 돌아오지 안하고 주님 한테 '주여' 주님에게 자꾸 들어붙어서 주님만 위하고 자꾸 이라니까 주님이 슬그머니 이래 보고 또 이라다가 이게 백지 외식으로 이래 하는 거 아니가? 또 한번 시험해 본다 말이오.
시험해 보고 그런 일을 당 하니까 그래도 그때 보니까 꼼짝 않고 주님만 바라보거든. 자꾸 이래 저래 자꾸 이라니까 나중에 가서 주님만 바라보면 주님과 정이 든다 말이오. 정이 들면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인데 그거 더러운 게 묻었으면 되겠어? 더러운 게 묻었으면 '그거 목욕 좀 하지. 화장도 좀 하지.' 이 돈이 드는데 '어째 파마도 좀 하지.' 어짜든지 보기 좋도록 자꾸 하라 한다 그 말이오. 이 이치가 꼭 우리 생각 이치와 같애요.
그러니까 그런 것 생각하기 전에 주님만 생각해. 그라면 그런 게 다 돼져요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지키어 회개 하라는 것은, 들은 것은 지키어 회개하면 되고, 들은 것은 지키고 자꾸 고쳐 나가면 돼. 회개라 말은 고쳐 나가라 말이오. 들은 것은 지켜서 자꾸 고쳐 나가고 또 받은 것은? 볼끈 붙잡고 놓지 말고. 요라면 돼져요.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안하면' 회개치 아니하면 말이오.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알지 못하리라' 하는 이 말씀은, 도적같이 이른다 말은 네가 가지고 있는 거 솔빡 도적 다 맞는다. 네가 가지고 있는 거 솔빡 도적 다 맞는다. 마음 도적 맞고 고기덩어리 도적맞고 영도 도적맞고 다 그런 거 도적 맞는가, 행위 도적맞는가 정력 도적맞는가? 이제 도적맞는 거 뭐 도적맞지요? 도적맞을 거 도적 안 맞을 거 OOO조사님 한번 말해 봐. 행위구원. 뭐뭐 도적맞지? 자, 도적맞을 거 뭐? 영 도적맞아요? 마음 도적맞아요? 몸 도적맞아요? 정력만 도적맞아. 정력 도적 맞는다 말이오. 정력 도적맞고, 돈 도적맞아요 안 맞아요? 헤, 이거는 딱 통장에다 딱 넣어놓고 '이거는 내 것이다.' 회사에 주를 딱 넣어놓고 '이거 내것이다.' 그거 '또 이거는 재판소 등기에다 부동산으로 내게 딱 등기했으니 내것이다.' 이라지만 그 위에 재판소도 없어지게 하는 수가 있고 재판소도 없어질 때가 있고 또 은행도 없어질 때가 있고 그게 또 없어지지 안해도 또 제가 없어질 때도 있고 제가 없어져도 안 되지 그것들이 없어져도 안 되지 이러니까 정함이 없고 확고함이 없고 견고함이 없는 이제 튼튼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말씀했다 말이오, 이래서,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알지 못하리라' 이라니까 일찍 죽는다 말 아니고 이제 네가 가진 것, 주님이 도적으로 오는 게 아니라 주님이 뺏드는 게 아니라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옵니다. 주님의 날이 척 닥치니까 싹 다 뺏겼어. 오늘이라도 주님 구름 타고 오시면 자, 자기 가진 것 다 뺏길 것이 얼마나 되는지, 전부 뺏길 것 뿐이지 구름 타고 오시니까 '아, 잘됐다.' 하고 그렇게 그런 사람 별로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도적같이 주의 날이 온다는 그 말은 있는 것 싹 소유 뺏긴다 말이오.
자유도 뺏겼지, 기쁨도 뺏겼지, 쾌락도 뺏겼지, 명에도 뺏겼지, 권위도 뺏겼지, 돈도 뺏겼지, 행락도 뺏겼지, 모든 부동산도 뺏겼지, 동산도 뺏겼지, 자기 생명도 뺏겼지 하나님 오면 싹 다 빼앗겨요. 그러니까 뺏기기 전에 영원히 뺏기지 안할 것을 가지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 됐는데 주의 것이 돼야 이거는 영생하는 거라. 주의 것이 됐는데 지금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까 내것입니까? 보관하고 있는 거, 보관한 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그 이전, 이전 수속, 요새 뭐 부동산 이전 수속이라 하데. 이전 수속하는 것은 이전 수속하는 법이 뭐라? 이전 수속하는 것이 심는 것이라 하는데 그것이 연보가 이전 수속입니다. 연보가 이전 수속이라. 명의 이전 수속.
명의 이전 수속이라니? 하나님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나는 보관주인데 보관주가 외나 자기가 주인이 돼 버렸어. 하나님께서 '아나 이거 영원히 네것 해라.' 이렇게 소유권 이전을 해 주는 이전 수속 방법이 뭐이냐 하면 이제 심는 것, 내나 연보하는 것,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대로 쓰는 것, 연보하면 하나님이 가져갑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쓰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쓰는 것이라. 뜻대로 쓰는 건 뭐이냐? 하나님께, 어떤 사람은 지혜 많이 주고 돈 많이 주는데 돈 많이 준 자에게는 돈 그거 많이 주는 건 없는 사람 대표로 저한테 보관했기 때문에 없는 사람이 할 것을 대표로 제가 다 대신 해야 돼 이라니까 하나님은 자본주의요 공산주의요? 자본주의. 하나님이 자본주의인데 자본주의만 했으면 이거 큰탈 나는데 자본주의인데. 당신이 도성인신해 가지고 사활의 대속 했으니까 그 자본주의가 뭣 하는 것입니까? 나눠주는 은혜주의라. 나눠주는 것. 자본주의는 시은의 역사를 해야 돼요. 자본주의는 시은 역사를 해야 튼튼해요. 만일 하나님이 자본주의로 하면서 시은의 역사를 안 했으면 다 망가져 버리고 말아요. 이제 하나님이 독생자로 시은의 역사를 했기 때문에 영원해요. 이러니까 자본주의는 나눠주는 것인데 그 미국 나라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 미국 나라가 이걸 좀 알기 때문에 그 자본주의 자기네들이 먼저 가지고,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을 내것으로 알기 때문에 안 돼. 가지고 있는 것 누구 것이요? 주님의 보관의 것이라.
자, 우리 총공회 교인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거 예를 들어서 교인들 전부 똘똘 뭉쳐 봤자 돈 백만 원 자본밖에 없는데 한 사람이 천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억 가지고 있는데 백만 원 돈밖에 없는데 총공회 백 억짜리 무슨 일을 해야 됩니다.
백억짜리 일을 하면 백억짜리 할 일을, 일을 백억짜리 해야 되겠는데 백억 그 자본이 있어야 되겠는데 백억 자본이 어디 가 있어요, 지금? OOO집사, 어디 가 있지? 어디 가 있어? 재주 있는 것도 소용없고. 백억이 들어야 되는데 그게 교인들 다 해 봤자 한 백만 원밖에 없는데 백억 자본이 어디 있어? 백억 자본 어디 있어? 어디? 천억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이 거게다 보관해 놨다 말이지? 맞아요 안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이랬는데 떡 보관해 가지고 있으면서 나중에 '자, 여게는 지금 백억을 지금 이래 해야 되는데 백억 이거 돈 내놔라.' 백억을 돈 내놔라 이라니까 보관주가 백억 돈 내놓지 안하고 시침 떡 떼고 입을 딱 다물고 모른 척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내놓으라 하면 안 내놓고 엉뚱한 소리 하고 있습니다. 엉뚱한 것 보고 있습니다. '야, 어서?' '예?' '정신 못 차려?', 이라니까 그래도 '뭣 말입니까?' '야 이놈아, 내가 너한테 보관한 것 내것 내놓으라 그말이야.' 이라니까 아까와서 슬그머니 이렇게 내놓습니다. 슬그머니 이렇게 내놓으면서 제것 내놓는듯이 거석해서. 그라면 그 사람 보관자 시키면 되겠어요 보관직을 뺏들어야 되겠어? 떡 이래 떡 거석하면서 딱 그래 가지고 있다가 '백억이 있어야 돼.' '아이고 여기 있습니다. 지금 가져오랍니까?' 지금 가져오랍니까 좀 있으랍니까 이라니까 '아, 가만히 있어.' 또 좀 있다가 이래 하기를 '가져와.' '예, 여기 있습니다.' 자꾸 이라면 그거 청지기 노릇 잘해요 못해요? 잘해요. 그라면 그 사람을 청지기로 쓰겠소 면직을 시키겠소?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조그만한 청지기에서 큰 청지기로 자꾸 나가는데 이걸 못 하기 때문에 그래요, 세계에서 물질 가지고 자선 사업, 구제 사업, 복음 사업을 제일, 복음 사업 하는 데 물질로 제일 투자 많이 한 사람이 누굽니까? 월리암 부으드 구세군 창설자, 윌리암 부으드라. 그후에는 몰라도 내가 알마 전에는 그걸 봤어요.
그 사람이 물질 가지고는 제일 봉사를 많이 했는데 그 사람은 청지기 노릇 잘했어. 두 내외 나서면서 돈 한 푼도 없었어. 없었는데 그저 받으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또 보관했다 내놓고 또 보관했다가 또 인제 내라 하면 내놓고 자꾸 이래만 하니까 어떻게 충성된 보관자가 돼 놓으니까 세계 역사에서 제일 물질 가지고 복음에 제일 바쳐서 일한 사람은 그 사람이 액수가 제일 많답니다.
통계가. 이런 길이 있는데 이거 어리석기가 어떻게 어리석은지? 좀 우리가 알아야 돼요.
'도적같이 오리라' '도적같이 오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한다' 어느 시에 너희에게 임할는지 알지 못한다 이 말은, 어느 시에 임할는지 알지 못한다 그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거는 어느 때에 죽을란지 네가 백 살을 먹어도 항상 땅의 것만 생각하고 어이쿠 깜짝 놀란다 백 살을 살아도 그만 어느 때 올지 모르니까 갑자기 오니까 다 뺏기게 되면 놀랄 것 아닙니까? 이것은 자기가 사는 동안 여게 대해서 한번 생각도 가지지도 못하고 제것인 줄 알고 요것만 보고 알뜰히 살뜰히 요래 야단 지기다가 나중에 갑자기 주님이 척 오라 하니까 가야 되니 그만 헛일 되고 만다 말이오.
'어느 때에 임할는지' 그말은 네가 죽는 그 시간까지의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네치 이렇게 네것인 줄 알고 땅의 그것만 생각하고 이래 가지고 있다가 그만 갑자기 주님 만나게 되니까, 갑자기 세상 떠나게 되니까 다 도적맞고 만다, 다 뺏기고 만다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양성원 신축 모금 운동 요번 집회에 내가 했는데 아마 모금 운동 했으니까 아마 다 될 거야. 제가 안 하고 못 견뎌. 안 하면 보관한 거 다 뺏길 건데, 다 뺏들어 버릴 건데, 하나님이 다 뺏들어요.
그 쓰는 데는 청지기 쫓아내지 안했어요. 다 뺏들어요. 그라고 되게 막 단단히 가지고 이를 갈아붙이고 '안 놓는다, 절대 안 놓는다. 내가, 어디가 뺏들어? 절대 안 놓는다.' 막 볼끈 거머쥐고 손을 얼마나 거머쥐었기에 손이 새파랗게 거머쥐고 있습니다. 그라면 어째요? 이래 쭉 뻗게 만들어. 그래 다 사람들이 그렇게 모두, 모두 사람들이 요래 가지고 있다가 하나님이 '야, 이놈.' 하고 다 뻗게 만드니까 다 손 쪽쭉 뻗어 가지고 '아이고, 몰라라.' 다 집어던지고 나니까 그게 다 뒤에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맙니다.
이제 여게 뭐 그만, 그 다음에, 그만 다 해석 못 하겠고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도다' 하는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는 곧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사활의 대속 속에서 산 사람 몇 명이 있다 그 말이오. 옷을 더럽히지 안했다 말은 사활의 대속을 손상시키지 안했나 그 말이오. '안한 자가 명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이거 사활의 대속을 벗지 안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흰옷 입은 사람이요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이기는 자가 뭐인데? 이제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요것을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는 것이 이기는 자라. 요렇게 하면 어찌 돼요? 흰옷 입어요 그라다 보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꾸 입고 입어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속에서 사는 생애가 됩니다.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안하고' 그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안한다. 그 이름 그라면 영 이름이요, 몸 이름이요, 마음 이름이요, 행위 이름이요? 행위 이름이라. 그 행위 한, 행위 이름이 뭐인데? 행위 이름인데 그 행위가 뭐인데? 그 행위에 몇 가지 요소가 들었어요? 두 가지 요소. 뭣 들어 있어? 정력 들었고 기능 들었지. 그 행위 속에는 정력 들었고 기능 들지 안했어요? 이러니까 이제 정력은 그대로 정력으로 있어요 없어요? 정력은 없어졌어요. 정력이 그라면 뭣 됐는데? 정력이 행위겠지. 정력이 행위되지 안했어요? 정력이 행위됐지. 행위는 또 뭣 됐지? 기능됐지. 이라니까 그 기능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겠다 말은 흐릴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싹 까뭉캘 수가 있어.
이것이 뭐이냐 우리의 기능은 구원을 얻고 멸망을 받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거는 시인한다 말은 '이거는 내가 대속을 했다.' 대속은, 이 사람 어짭니까? 이래, '너 이놈아 어디 와 하는 거라? 못 들어가.' '나는 들어갈 수가 있어.' '이게 뭐인데 들어갈 수가 있다고 떠들어, 떠들기를?' '나는 들어갈 수가 있어.' '이거 안 되겠다, 이거. 고발해야 되겠다.' 고발합니다.
고발해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요 그 심판을 가지신 심판주에게 떡 고발합니다.
'이 아무것이 여게 들어갈라 하는데 이런 자가 있습니까, 이거?' 이럴라 하니까 떡 있다가 '그거는 내가 책임을 졌어. 내가 책임을 졌어!' '아노라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 아노라,' 주님이 '그거 내가 책임졌어.' 얼마나 영광이 될 건가? 뭐 모든 게 이래 해도 '내가 아노라. 내가 책임졌어.' 그라면 그만 그 통과라.
이걸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천사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잠깐 통성으로 기도하고 이제 우리가 약속한 대로 오늘 마지막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또 무슨 병이든지 하나님이 착수했으면 자꾸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래 살겠습니다. 약속을 하고 자꾸 회개를 해요.
회개하면 그 일이 돼져요.
어제 보니까 뭐 병 나은 사람, 뭐이 나았다 하니까 어디 나았다 어디 나았다 자꾸 그래 하는데 신고하라 했는데 신고를 빨리 해요. 어떤 사람은 '이거 다시 도질란지 모르기 때문에 이거 안 하고 그래 가지고 3년 후에 신고해. 단단히 여물기는 여문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하나님 은혜를 잘 못 받아요. 나중에 벌받을까 싶어서 그래 신고한다 하며 일 년 후에 그래 신고한 사람들 많이 있어.
즉시 신고해요. 그라면 믿음에 유익입니다.
뭐 위암이든지, 장암이든지, 폐암이든지 또 뭐 별별 많아요. 치질암이든지 뭐라도 아무 관계 없어. 속에 있는 암병이든지, 간병이든지, 경화증이든지 속에 있는 병도 겉어머리 있는 병도 주님은 능치 못할 것 없어요.
성경에 말하기를 우리 믿는 자들은 죄값으로나 위생 주의를 못 했으나 모든 그런 것으로 오는 병은 주님은 다 담당했기 때문에 그런 병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독자에게 있는 병은 예수 잘 믿어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구원 때문에 있는 병이지 구원 때문에 있는 병 외에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구원만 이루도록 회개만 하면 다 돼요.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기회에 관련된 모든 것을 주님이 역사하셔서 합력하여 주의 주시는 구원을 이루어지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식구 가운데에 단체적으로나 개적으로 아무 어려움 없이 이 은혜받는 기간을 보호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렇게 요 물 건너는 삼십삼도의 더위가 있었다고 하고 또 부산에는 삼십육도의 더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여게는 더운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하게 선선하게 주께서 초자연의 능력으로 역사하사 이스라엘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그 역사가 오늘도 꼭 같이 우리들에게 역사해서 표적으로 보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금번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될 이 교회에 대한 정관의 지식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이 주님이 우리에게 사람을 통해서 말씀해 주신, 주님이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이요, 이 모임을 주님이 직접 주관하신 것이요, 이 모든 은혜 역사에 수종드는 모든 종들은 주님이 붙들고 친히 역사하신 이 사실을 저희들에게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한 말씀 한 말씀을 확고한 신앙으로 믿어 실상이 이루어져 주님에게 영광의 찬미의 실상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씀으로 주님, 사람병 든 것을 다 고쳐 주시옵소서. 사람병이 뭐인지 모르는 자도 다 고쳐 주옵소서. 저들에게 아무런 바치는 것이나 볼 만한 무슨 미점이, 장점이, 의의 점이 없을지라도 순전히 주님의 은혜로 다 고쳐 주시옵소서.
원합니다. 또 몸에 이 병도 안팎에 있는 우리는 그 종류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이 병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고쳐 주시옵소서.
항상 우리는 심령이 어두워서 육을 먼저 보고 영은 보지 못합니다. 육으로만 느끼기 쉽습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육의 병을 고침으로서 그 안에 볼 수 없는 것까지 주님이 하셨다는 증거의 표적으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이 자리에서도 나타내 주시고, 돌아가서도 나타내 주시고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어리석어서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나타나면 또 거게 치우쳐서 그만 참을 알맹이를. 참 생명을 잊어버릴까 염려되는 것도 있는 줄을 압니다.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시간과 장소는 정하셔서 어쨌든지 사람병 고기덩어리병, 모든 생활병을 완전히 고쳐 주시옵소서.
이리하여서 세상에 빛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복음의 주인이 주님이신 것을 확실히 보고 믿을 수 있도록 표적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울어도 못 하네 눈물 많이 흐르되 겁을 없게 못 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 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힘써도 못 하네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하되 다시 나게 못 하니 힘써도 못 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참아도 못 하네 할 수 없는 죄인이 흉악 중에 있어서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 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믿으면 하겠네 구주 예수만 믿어 하신 일을 힘입고 주께 가기만 하면 영원 삶을 얻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