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9 14:38
총공회 교리 변증
본문 : 딤후3:12-17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대속을 입은 자들에게 보내신 계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지 아니한 성령이 그를 주관하지 않는 사람은 천하에 명철을 다 가지고 달려들어도 이 말씀은 그 사람의 지능에게 정복을 당하지 않는 절대의 능력을 가지신 말씀입니다.
제가 입술로 암만 말하고 어떻게 논술하고 논증한다 할지라도 성령의 감화가 없는 그 사람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이 진리로 인해서 저는 신죄함을 받아 멸망만 받지 구원은 이르지 못하도록 이 말씀이 방어합니다.
세상에 있는 다른 지식은 명철한 자에게는 욕을 하고 발로 밟아도 그 사람에게는 이해도 납득도 다 정복도 당하고 무식한 사람이나 둔한 사람은 아무리 힘을 기울여도 깨달아지지를 못하는 그런 세상 지식 입니다.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은 다릅니다.
세상 지식은 인간들이야 해 놓은 것이기에 뭐 권리가 없으니까 알려고 애를 쓰면 다 알고 또 명철한 자는 잘 알고 다른 모든 지식을 구비하게 아는 사람은 잘 알지마는 이 지식은 하나도 몰라도 성령의 도우심과 그 사람이 진실된 마음 가지면 다 알 수 있고, 아무리 모든 것이 통달한 자라도 그가 성신의 감화와 이 말씀 앞에서 겸손을 가지지 안하면 하나도 모르게 해 버립니다.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어린아이가 무슨 지식이 있으며 무슨 세상 학식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 사람은 깨닫지마는 통달한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본 말씀같이 이 말씀은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인데 이 말씀이면 이 말씀을 믿고 행하면 그 사람은 사람 자체도 온전해지고 또 모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뜻를 행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온전한 능력을 가집니다. 뭐 요만하면 됩니다.
옛날 노아 때도 그렇게 구원 얻은 사람이 많지를 못했어. 또, 시대 시대마다 다 그랬습니다. 아브라함 당시도 구원 얻어 하나님 같이 한 사람들이 많지를 못했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그때도 많은 이스라엘이 있었지마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하나님과 이렇게 통해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매우 수가 적었습니다. 오늘도 그때와 같을 것입니다.
누가 되는지 모르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심히 세계에 많은데, 아마 이방인 안 믿는 사람이 이방인이 제일 많은 것이고 그다음에는 회회교 교인들이 수가 둘째로 많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예수교 교인들이 것입니다, 천주교까지 다 합하면. 그러나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말씀도 그저 울림빵 놓는 말씀 아니오.
내가 어제 어떤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번에 거창 집회에 참석안 하던 사람들이 와서 참석을 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더냐?' 물었어. 교파는 내가 말하지 않습니다. 집회 참석하다가 수요일날 '강단을 누구한테 맡기지 안해서 가 봐야 되겠다' 하고 둘은 가고 한 사람은 끝까지 참석했다 하는데, 그것은 같이 간 사람에게 집회 도중에 갈라 하니까 미안해서 하나의 핑계지 그 사람이 참으로 은혜가 됐으면 그뭐 그 한 시간 강단 비우기가 어려워서 그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벌써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그 증거입니다 '뭐라고 생각하더노?' 이래 물으니까-요거 똑똑히 들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자꾸 이 교훈과 다른 교훈을 비교를 해서 비교를 해 보면 알 건데 비교를 안 한다 그거요, 게을해 가지고.
마태복음 7장에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는 이 말씀을 내가 해석해서 '꼭 이렇게 돼야 구원이 되지 그리 안 하면 구원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기본구원이 아니고 건설구원을 가르침인데 건설구원, 그것은 아무나따나 예수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참 성령이 인정하는 참 믿음의 행위가 돼야 되는데 사데교회에도 보면 '네가 살았다는 이름만 있지 실상은 죽었다. 네게 내가 온전한 행위를 보지 못했다. 그러기 때문에 내 행위 구원은 헛일이다. 네 행위에 온전한 걸 보지 못했다, 너는 죽었다' 이랬으니까 행위구원에 대해서는 온전한 행위라야 행위구원이 되지 온전치 안한 행위는 암만 해 봤자 구원이 안 된다는 것 그래 말해 놨다 그거요.
또 '자기 행위가 남아 있으면 상을 받고' 상은 본인이 아닌 것 아니요? '네 행위가 불타지 안하고 남아 있으면 상을 받고' 상은 그 자체는 아니지 안하요? 불타면 너는 구원은 얻지마는 불 가운데 구원 얻지 영광된 그런 구원 얻지 못한다 이러니까 행위가 다 불탔으니까 예수 믿는 옳은 행위는 하나도 없다 그거요. 하나도 없어도 구원 얻는 사람이 있는데 이 구원은 무엇이라고 말할 건가 말이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훼방하는 사람은 그것을 바로 회개하기 전에는 아직까지 그 사람은 구원에 절대 도달 못 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자, 누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다 행한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이 성구는 고신에 유력한 성경 학자, 고신에서는 제가 볼 때에 오종덕 목사님이 성경을 제일 잘 알고 깊이 알았습니다. 그뭐 박사들 있지마는 박윤선 목사님 하는데 성경 아는데는 근방에도 못 갑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제일 낫게 알았습니다. 고신에서는 그만 성경에 대해서는 오종덕 목사님이 제일 왕입니다.
이랬는데 오종덕 목사님은 해석을 하기를 이렇게 해석하더라. 아들이 연탄창고에 자꾸 가 가지고서 놀고 이러니까 옷을 하얗게 갈아입혀 보내면 새카매 가지고 오고 '또 다시는 가지 마라. 이래 더러워졌으니까 안 된다.' 목욕을 시켜 가지고서, 또 가는 것을 '가면 이러면 내가 종아리를 깔릴란다.' 그래도 가니까 붙들어 가지고서 물에다 집어넣으면서 '너 연탄에 갈래 안 갈래? 가면 여기 빠뜨려 죽여버린다.' 이러지마는 그 부모의 사랑으로 죽일 것인가? 죽인다고 협박 놓는 것, 하지 못하도록 그래 협박 놓는 것이라. 협박을 놓는 것이지 죽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협박의 말이다. 그렇게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고 그렇게 주님께서 '천국에 못 온다. 물에 빠져서 죽인다.' 죽인다고 해도 부모의 사랑이 죽일 것인가? 이렇게 주님이 말을 했지마는 이것은 그렇다 해 가지고 다 지옥 보낼 게 아니고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 안 하면 안 된다.' 하는, 죄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고 하는 그런 하나의 그 위협의 말이다.
예수님의 위협의 말을 했다고 하면 나는 그런 예수 안 믿소. 내가 믿는 예수는 그런 예수 안 믿소. 그의 말에 위협이 있으면 그는 내가 정죄하겠소. 위협이면 그것이 자기가 실행 안 할 것 사람을 협박을 줘 가지고 하는 것이라면 그분이 거짓부리 돼 그런 것 아니요? 주님의 교훈은 그런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지, 성경에 명문으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안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 또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능한 일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이랬으니까 나를 용납해 주옵소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안한 자는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 성구를 해석을 어떻게 할 건가? 그대로 하면 주의 뜻대로 하지 안한 사람은 다 멸망을 받아야 되는데 그러면 주님의 뜻대로 한 사람이 있는가? 이러니 거기에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분리시키지 아니하면 그런 억설 해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범하지 않는다' 하는 그것도 새사람과 옛사람,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분리하지 안하면 신구약 성경은 절대 해석이 바로 안 됩니다. 해석 못 합니다. '난해절, 이 절은 그냥 거짓말로 그래 위협으로 그래 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원리적'으로, 하나님께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은 자기가 원함으로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석을 한 것을 가지고서 나한테 편지가 많이 왔습니다.
죄는 제가 깊은 중심에 원하는 그대로 짓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죄는 껍데기로 하는 게 아니라, 껍데기는 범죄하기 싫은 것이고 죄를 지을 때는 자기 속에 깊은 속에 제일 깊은 속 중심 거게서는 죄를, 짓고 싶어서 죄를 지었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것은 그렇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것도 누가 온전할 자가 있느냐? 이거는 사람들이 교만하기 때문에 이 성구로 억압을 눌러서 '네가 온전하냐?' 이래 가지고 꺾어 누르기 위해서 한 성구라. 이렇게 해석을 챘다 그말이오.
그것은 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새사람과 옛사람을 구별하지 안하고 '이 성구는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다. 행위구원에 관한 말씀이다.' 이것을 구별하지 안하면 그렇게 억해를 하지 안할 수가 없어.
새사람 옛사람, 기본구원 건설구원 이것을 구별하지 안하면 시편 해석은 정말로 하나도 안 됩니다. 전부 억설이오. 제가 거게 대해서 주석들을 봤는데 전부 다 억설이라, 억설. 하나님은 거짓말쟁이요, 하나님은 협박자요, 하나님은 아니지마는 그렇게 위협을 해 가지고 '이렇다' 이렇지마는, 그렇다 해 놓고 당신이 구원을 줬으면 당신이 벌써 범죄한 것 아니겠소? 안 된다 해 놓고 어찌 그런 자를 구원 줍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주시는 것은 이제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도 이 이름을 나 혼자 이떻게 말하니 이게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모르니까 좀 모든 학자들에게 '좀 그걸 봐서 주석을 봐서 보라, 주석이 뭐라고 하는고 봐라' 이러니까 어드만 주석은 '하나님의 왕자라 하는 뜻이라' 그것도 조짜배기 가짜배기요. 아무 성경 근거가 없는 말이라. 또 누구는 있다가, 그 사람 뭐 유명한 주석이 여기 있는데 '그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겨뤄서 이겼다는 뜻이다' 하나님 이겼으면 제가 망하지 살겠소? 7장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외부에 행위 이런 저런 능한 행위 하나님께 붙들려서 행위한 그것이 구원인 줄 아는 그것은 다 거짓 논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구원을 이룬다. 그러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건설구원은 온전한 행위라야 된다고 말을 했고, 또 교회를 베드로야 네 위에 세운다, 금방 베드로를 사탄아 물러가라 했으니까 베드로의 영감 그 영감 위에 세웠다 하는 그게 해석이 틀립니까? 그 해석 외에는 천하에 옳은 해석이 없습니다. 그 해석에 반대되는 그 해석은 다 틀렸소. 다 정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뭣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고 가치도 모르고 이러기 때문에 도무지 하나님 말씀을 등한히 여기고 아무나따나 하나님 말씀은 분석하고 해석만 붙이면 된다 해 가지고,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서 '목사님은 첫째 둘째 다섯째 셋째 뭐 이래 말하는데 나도 이 성경 말씀 여게 대해서 자, 내가 한번 한 것 틀렸는가 보이소. 첫째 뭐' 둘째 뭐 막 주 대 놨는데 하나도 맞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나는 주석을 별로 보지 안해. 주석을 한 권도 본 일이 없어. 몇 절 봤지.
그랬는데 그래도 내가 깨달은 것이 모든 사람들에 말해 물어보면 뒤에 가서 보면 그 깨달음이 바로 됐다고 하는 그것이 어떻게 내가 여러 수천 년 동안 학자들이 계속해서 한 연구와 그래도 바른 것과 같이 됐겠소? 그것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이라 그거요. 깨닫게 하신 것이라.
이러니까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하는 이것도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제가 성경에 난해절이 많을 것이요 그 성경은 해석을 절대 못 합니다. 분명히 '네 행위는 다 불타고 없어진다. 그러면 수치를 당한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 얻은 것과 같다. 말하지 안 했소? 또 '하늘나라의 구원에 가지마는 벌거벗은 자와 같다' 어떻게 행위는 아무것도 없어도, 쓸모 있는 행위는 하나도 없어도 구원에는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로 들어가지, 기본구원이 있지.
기본구원 건설구원 이것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내 머리에서 연구해 가지고 발명이 아닌데 여러분들이 모르면 하나님의 역사를 봐도 모르는, 내나 어느 시대나 선지자로 알고 '선지자로 알아서 선지자 옆에 있지마는 몰라 부인해서 멸망받은 것과 꼭 같습니다.
옛사람 새사람 하는 이것은 그렇게 쉬운 줄 압니까? 중생된 영이니 중생된 사람이니 그 구별하는 것, 영은 육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마음은 육에 속했다.
짐승도 혼과 몸은 있습니다. 성경에 그래 놨소.
우리 사람은 영 혼 몸 이 삼분설이 옳기는 옳소. 삼분설이 옳은데 그것을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둘로 분류해서 이러다 보니까 그 둘로 편리상 영육 둘로 이분설을 말하는 것이지 삼분설 모르고 이분설로 아는 사람은 다 미혹에 들었소.
이분설을 하지 안하면 또 불편한 데가 있어 그렇지 이제까지 나오기를 자꾸 옛날부터 그래 나왔기 때문에 이분설 안 하고 삼분설 말하면 '봐라 그러기 때문에 이단이라' 그리 안 해도 될 것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줘서 진리를 가로막는 일을 하지 안하기 위해서 따라가는 것이지 실은 영 혼 몸 삼분이라, 짐승도 혼이 있소.
짐승도 마음이 있지 짐승이 마음이 없는 줄 압니까? 침팬지라 하는 원숭이는 크기도 사람만치 큰데 그것이 일면의 도덕에 이성면이 사람들만 못해. 요새는 뭐 요새는 이성면도 사람이나 꼭 같소. 사람도 다 그렇게 타락되고 말았어.
이랬는데 책임면이나 다른 도덕면이나 사회면이나 그런 면은 사람과 꼭 같고 예산도 비판도 계획도 추억도 앞으로 그 모든 예산도 사람만, 조금 모자라는 사람보다는 훨씬 명철하다고. 그걸 갖다 키우면 뭐 자동차 운전 같은 것은 아주 진실되게 잘한답니다.
이러니까, 사람을 전부 영육이라 성경에 영육이라 했으니 영육이라 하지 그 영육이 뭣이냐? 마음은 영이요 육은 몸뚱이라 이래 놓으니까 성경 해석이 또 안 된다 그거요. 그런 것은 그만 비유로 말하든지 그런 것은 이 가정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라 그래 말한 것이든지, 그러면 이것은 위협이라 말하든지, 협박이라 말하든지, 그 수준이면 전부 그수준입니다. 선택도 타락 후에 선택했다 하는 그것 하면 벌써 그 신앙은 전부 그 수준이오. 어리석지를 말아야 합니다.
지난밤에 내가 재독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도 대가 이렇게 뭐 설교 준비를 안하고 자꾸 놀다가 이래 내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 아니오. 나는 이제까지 설교 준비는 성경 읽으면서 하는 그것은 성경은 성경으로 읽고 주님이 무슨, 말씀을 주시는가 하는 것은 설교 시간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내 마음은 놓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은 늘 기울어져 가지고 있어.
이러니까 미리 놓고 아무리 설교를 준비 해도 강단에 올라 그 시간에 아니라고 딴걸 말하라면 딴걸 말하지, 내 목적은 뭣이냐?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랍니까?' 그 말씀을 내가 전하면 온 세계를 깨뜨리고 세우고 뽑고 심으고 이러는 전능의 능력의 말씀이지마는 하나님 말씀을 선택을 내가 해 놓으면 그것은 내 말이지. 선택을 내가 했으면 내가 그 말을 내가 이용하기에 그것은 내 말이 되기 때문에 안 되는 줄 아는고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그것을 가리기 위해 하기 때문에 항상 마음은 놓여 있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손으로 무슨 일을 해도 내 속에는 언제든지 하나님 말씀을 기다리는 그것은 계속 합니다.
쪽발로 걸어가는 그것도 내가 많은 그저 기다리는 가운데에 그 말씀을 뜻밖에 요것은 하나님이 말씀을 내게 주었다 하는 걸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내가 그걸 중거한 것이요. 그것도 살고자 하는 사람이면 됩니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해서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오.
그저 제일 먼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이냐, 하나님의 지식이냐 인간 지식이냐,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과 나의 사이에 중매자요. 세상 지식은 악령과 나와 그 사이에 중매자입니다.
그것 내가 그렇게 비유를 했어. 나무를 접을 붙이면 나무하고 나무하고는 이렇게 붙어 있고 한테 이래 연결이 안 됐어. 딱 붙어만 있어, 붙어. 붙어 가지고 있고 속에 나무 아닌 물이 나와 가지고, 진액. 물이 나와 가지고 물이 연결됩니다. 물이 연결되면 나중에 그게 오랫동안연결되면 나무까지 연결돼 버려. 이러니까 나무까지 그만 연결돼, 물이 연결돼 뒤에는 살까지 연결돼 버려요.
이 모양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진액인 물과 같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 말씀을 가지고 자꾸 영감의 말씀을 가지고서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고 이러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영감 진리가 오고 가고 자꾸 이것이 얽혀 가지고 나중에는 하나님과 나와 밀접하게 돼진다. 그러나 진액은 진액이요 나무는 나무다 이렇게 말씀했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나와 하나님과 그 사이에 중매쟁이라.
하나님 말씀 밖에 있는 수많은 지식은 마귀와 나와 중매하는 중매쟁이라, 이러니까 세상 지식만 제가 자꾸 주장을 하고 연구하고 읽고 주장하고 하면 결국은 저는 마귀하고 한덩어리 되지 하나님하고는 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만 자꾸 읽고 연구하고 실행하고, 말씀만 읽고 실행하고 또 연구하고 또 상고하고 이러면 그러다 보면 하나님하고 저하고는 한덩어리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중매쟁이기 때문에 우리가 첫째 구별할 때에 하나님의 지식이냐? 하나님의 지식은 육십육 권 도리에 명문돼 있기 때문에 쉽다 그거요. 그러나 거게 빠진 게 없어. 하나님 지식 속에는 내재적 영감이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 이 두 가지를 구별 하는 이것이 첫째, 이 둘 중에 자기가 행할 때에는 새김질이라 하면 과거에 수많은 인간들이 수천 년 동안 말했는데 그 지식이 예수 그리스도 아닌 지식 그 지식이 만들어 놓은 게 뭣이요? 전부 사망밖에 더 있습니까? 철학에도 사망, 정치학에도 사망, 과학에도 사망, 전부 사망 외에 뭐 있소? 사람 참 못났소. 머리가 너무 좁아서 도무지. 그게 왜 좁아졌느냐? 왜 좁아졌소? 마귀의 유혹을 받아 좁아졌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자꾸 좁히고 하나님은 우리를 넓혀서 하나님은 있는 대로 전체를 보게 하고마귀는 자꾸 끌고 들어가 가지고서 하나만 보게 하는 그것이 뭣이냐? 선악과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우리의 모든 행동이나 상대나 견해나 시야를 점점 좁히고 하나님은 넓혀서 모든 존재를 다 보도록 이래 한다, 하나님은 넓히고 마귀는 좁힌다 하는 이것도 그저 쉽게 듣지 여러분들이 그 말씀의 중량을 몰라. 그것도 천천 금은이 아니라 여러 수만 권 기독교의서적을 봐도 그렇게 해 놓은 말은 몇 권이나 쓰여 있는저 하나도 없는지 얼마나 쓰여 있는지 그것 모르겠소. 그것 다 하나님이 직접 준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두 가지 지식으로 딱 구별해 가지고, 또 과거에 모든 것을 거기다가 다 나벼 가지고, 새김질하는, 과거를 자꾸 새겨 가지고 과거를 벌써 자기 현재가 지나간 과거 되면 그 현재 잘못했나 잘했나 하는 걸 알 수가 있고 시대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그 시대에 하는 그 모든 사람들의 견해와 지나가고 나면 그 시대가 틀렸다 안 틀렸다 하는 걸 알 수 있다 말이오. 현재가 과거되는 것 현재가 과거가 되고 난 다음에는 벌써 정확하게 결과가 나타났으니까 알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과거 그것을 다 새김질해서 이것을 새로, 새김질은 먹은 것을 새로 게워 가지고서 입에서 우물우물 씹어 가지고 새로 되뱉어 먹는 거라 말이오.
과거에 모든 지나간 내 행동이나 전체 행동 그것을 살펴 가지고 내 현실 행동으로 삼는다 말이오. 먹는 것은 현실 행동아니요? 그런 것은 성경에 말해 놨지마는 그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다 그거요. 인격이 먹는 것은 행동이 먹는 것이고 고기덩어리가 먹는 것은 입으로 먹어.
이러니까 새김질이라는 것은 과거에 먹은 것을 한번 게워 가지고 새로 두번 씹어 가지고 두번째 먹는 거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인간의 자기의 과거나 모든 사람의 과거를 다 그것을 나벼 가지고서 잘못된 것은 고치고 삐뚤어진 것은 바루고, 많은 것은 어서 줄이고, 적은 것은 보충을 하고, 또 모자라는 건 구비하고 이제 현재가 과거가 됐으면 다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말이오.
그것을 다 새겨 가지고 나벼 가지고 그것을 다시 새기고 새기고 깨달아 가지고 현실에 둘로 구별하는 그 구별과 과거를 그것을 다시 반성하고 살펴 가지고 하는 그 깨달음과 요 두 가지 깨달음이면 새사람의 양식이 될 수 있다. 그 깨달음이면 그것은 영생이 되는 행동이다.
이래도 뭐 예사요. 참 놀랄 만한 말이오. 놀라서 기절할 만한 말이라 쉬운 말이 아니오.
이러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구약 때 그렇다'고 또 그래. 그러면 그리 한 사람은 그리하고, 어쨌든지 제 맘대로 하기는 합니다.
그래 가지고 네가 하는 행위라야 중생된 사람이 먹는 영생이 된다 말이오.
중생된 사람의 양식이 돼. 그러면 예수님의 피와 살이 참된 양식이라 말씀도, 다 일관이오. 요것 하나만 알고 고것 의심없이 확신을 가지고 해석하면 다른 해석이 전부 다 거기 따라와서 다 맞다 그거요 성경은 여게는 이리 되고 저리 되고 모순된 것 아닙니다. 모순이니 그게 일치되는 데가 있습니다. 한 진리를 알고 그것을 바로 믿고 나가면 다 그대로 전체가 한덩어리요. 이리 말한 것도 나중에 가면 거기 도달했고 저리 말한 것도 마지막에 보면 거기 도달했고, 이러니까 자기가 자기 현실을 둘로만 구별하는데 첫째 하나님의 지식이냐 사람 지식이냐 고것 구별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인제, 그때는 하나님의 지식을 잡았다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을 둘에서 인간 지식은 버려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을 잡고, 하나님의 지식을 잡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또 둘이 나오면 요 지식 가지고 또 그것을 구별해 가지고 또 옳은 것 잡고, 자꾸 옳은 것 잡고, 옳은 것 잡은 데도 그것만 가지고는 자기가 바로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또 실패하기 쉬우니까, 구름같은 간증자들이 있는 과거에 모든 것을 이것을 다 지나갔으니 안다 그말이오. 이게 제일이다 시대에 떠들던 것 보니까 한 시대가 지나가니까 다 전멸을 당했다 말이오. 이세상에 모든 이종교들이 이게 제일이라.
이 시대에는 이 지식이 제일이라. 이래 가지고서 모든 가치성을 이게 제일 귀한 것이다, 이게 보배다 했지마는 한 시대가 지나가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 그말이오.
과거를 자기가, 자기 과거 모든 사람의 과거를 살펴 가지고서 그 과거를 다 참고로 삼아 가지고 과거에 이렇고 이렇고 해서 과거에 틀린것은 다 버리고, 과거에 옳은 거는 취하고, 모자라는 것은 보충하고 이것을 가지고 현재를 하나님 말씀 가지고 둘로 구별하고 요 두 가지만 새기면 무지한 인간들이지마는 영생이 될 수 있는 참된 그 영감 인도대로의 행위를 할 수가 있다.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 구별해 가지고 옳은 길로 나아가고 또 과거와 둘 구별해 가지고 또 옳은 길 나가고 이렇게 나가면 얼마든지 나가서 세상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나갑니다.
엘리사나 엘리야나 그 사람들을 그때에 왕들이 사람으로 봤습니까? 사람 같잖이 봤어. 그들은 다 그래도 인간에 하나님이 주신 제도를 생각하기 때문에 왕들에게 다 존경을 했지마는 그 사람들은 아주 멸시와 천대를 했어.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헛된 것을 모두 숭배하고 참된 것은 사람들이. 다 멸시를 합니다.
그러면 둘로만 구별해 가지고 참만 잡고 나가면 돼. 둘로 구별하고, 그것으로만 나가면 먹지 말라 했어. 그것으로만 행동해 가지고 안된다. 신약에 와 가지고서는 행동을 먹는다고 했다 그거요. 네가 둘로만 구별하는 그 구별만 가지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 모든 과거를 다 나벼 가지고 과거 보니까 이것은 잘못됐다 잘됐다, 이것은 모자랐다, 이것은 그때 정반대라, 이 과거 모든 것을 다 나벼 가지고 네 현재에 한 자욱을 걸어가는 이 행위에 그것을 참고로 삼고 쪽발 걸어가는 요것 둘로 구별하는 요 구별과 과거 모든 것을 참고로 삼은 요것을 뭉쳐 가지고 네 현실을 행동하면 그것은 새사람의 양식, 그것은 영생이 된다. 의가 된다. 요걸 믿고 요걸 믿고 요대로만 막 뛸 거라 그말이오. 요 한 말씀만 해도 요대로 믿고 나가면 된다 그거요. 이런데 전부 헐어버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엊저녁에도 설교를 안 하려고 들었어. 안 하는데 먼 데서 와 가지고 참 요 말씀대로 살 사람이 있는지? 그런 사람에게 내가 전하지 안하면 내가 하나님의 주시는 생명을 가로채 놓고 내가 주지 안하면 내게 벌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난밤에도 증거를 한 것이오.
그렇지 안하면 뭐 일반을 깨우치는 데는 말은 하지 안해. 깨우치는 말은 그만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려. 왜? 특별히 주는 말이 없고 깨우치는 말이러면 그것은 여러번 했으니까 저거가 반성하면 알지. '어떻게 들었으며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하고 지켜 행하라' 했으니까 그대로 하면 될 터이니까. 우리가 어리석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실행이 없는 데는 구원이 안 됩니다.
지난밤에 주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오. 무슨 말씀 줬소? 지난밤에 무슨 설교 했소? 이것 또 봐요. 믿음에? 무슨 믿음에? 무슨 실행에? 어데를 봤습니까? 예, 사도행전 12장.
우리가 요 결론만 짓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첫째로 지존자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존하신 아버지요, 전지 전능의 아버지요, 사랑의 아버지요, 진실의 아버지요, 우리 속이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을 성경이 가르쳐 준 대로 그대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바라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성경이 말한 대로 그렇게 믿고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대로 그대로 가요.
요동치 말고. 고대로 끝까지 나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인 것을 자기가 믿고 그분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신 대로 그대로만 가요, 그대로. 가다가 가면 생명이 끊어질 때에도 염려하지 말고 가고, 살림살이가 다 파산돼도 염려하지 말고 가고, 자기가 감옥에 들어가도 염려하지 말고 가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이 신앙 생활을 제 주관으로 비판해 가지고서 가다가 '이럴 때는 좀 비껴야 되겠다, 안 해야 되겠다.' 그렇게 꾀를 쓰지 말고 복술 쓰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으로 계속해서 가되 어데까지 가? 끝까지 가, 끝까지.
끝까지 가면 저 하늘나라도 끝이겠는데 끝까지 가면 중간 끝이 어떤 것이 중간 끝입니까? 끝까지 가면 하나님 말씀대로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 걸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분을 바라봄으로서 그분이 인도하는 대로 그저 순종으로 가는데, 가다가, 하나님은 생명도 자유할 수 있고, 맹수도 자유할 수 있고, 세상도 자유할 수 있고, 원수의 그 심리도 자유할 수 있고, 사업도 자유할 수 있고, 자기에게도 자유할 수 있고, 그렇게 당신을 믿고 순종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당신의 전지 전능을 가지고서 그에게 전부를 다 기울여서 당신이 책임지고 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자, '하나님은 사자 입도 막는구나. 사자 입도 봉하는구나. 불기세도 해하지 못하게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보려면 어데까지 가야 됩니까? 어데까지 가야 볼 수 있습니까? 자, 하나님은 사자 입도 막을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기가 체험하려고 하면 어데까지 가야 됩니까? 어데까지 가야 돼요? 왜 그걸 몰라? 사자굴에 집어던지기까지 가야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보지.
또 불 속에서도 타지 않도록 할 이런 능력을 가지신 주님이신 것과, 그 능력과, 또 그분이 신실하셔서 아무리 복잡한 역사가 있지마는 신실하게 내게 대해서 이행하시는 것과, 하나님이 거게 계시지 안하고 몰라서 혹 빠지는 일이 없이 하나도 빠지지 않는 것과, 하나님의 전지와, 전능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실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주권과 모든 것을 그분이 그 역사를 나타내기까지 내가 가야 뭐 그걸 구경을 하지. 전부 제가 중간에 다 돌아서는데 하나님 할 일이 어데 있어? 이걸 믿는 게 믿음이라 말이오! 이걸 믿으면 될 터인데 안 믿는다 그거요.
이 말씀만 해도 다 살고 남소. 뭐 신학 백권 천권 뭐 짜다라 공부할것 없이 요 하나만 실행해도 그 사람은 하나님이 당신의 전지의 지혜를 주요, 전능의 능력을 주요. 모든 역사에 인간이 다 실패하고 예수님만이 성공한 그 성공의 길을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다가 이게 깨지면 어쩌려고? 깨지거나 말거나 그것은당신이, 이대로 나가는 자에게는 둘이 있다고 둘을 기억하라 했는데 뭐 지난밤에 둘을 기억하라 했습니까? 자, 저 ○O○조사님? 내가 명철한 줄 아는데. 뭣? 두 가지 깨달을 것 뭐라 했지? 뭐라 하노? OO목사님 고함 질러 봐. 두 가지 뭣 뭣이라? OO목사님? 밤에 왔어? 왜, 또 그래 에누리 했구만. 장례식에? 자, 그러면 ○OO목사? 뭐라 하노,그다음에 뭐? 그래. 이것 가치를 알아야 기억이 되지. 이게 그렇게 쉬운 줄 아요? 생명뿐만 아니라 재산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명예도 그렇고, 지위도 그렇고, 직장도 다 그래. 하나님의 예정에 직장이 버려야 될 그때가 되면 이미 그리 안 해도 그. 직장은 내놔야 될 때가 왔는데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대로 하다가 직장을 내놨으면 그 직장 전부 영원히 살아 있다 말이오.
자기 생명도 그렇고, 지위도, 권세도, 내놓을 때가 됐으면 말씀대로 하다가 계속하면 내놓을 때가 됐으면 이미 내놔서 버릴 것 다 소용 없는 전데 그 전부를 주님과 주님의 진리를 순종함으로 없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망에 속한 것이 생명으로 다 옮겼다 말이오.
주님과 진리대로, 없어질 때 됐지마는 주님과 진리 때문에 없어졌으면 그것이 주님과 진리의 것이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이것 뭐 하나 알면 다 아는 건데 모르기 때문에 암만 배워야 참 어렵습니다.
사는 것은, 죽은 것이 사는 것은 어떻게 살아나느냐?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은 마귀와 인간 지식의 것이 되어지는 것이, 자기 지식의 것도 인간 지식의 것이오.
이 세상과 세상의 것이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되어지느냐 둘 중에 어느 것이냐? 반드시 그때는 밤중이 오는 것인데 네가 하나님과 진리를 지지함으로써 끝을 내느냐? 네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지지함으로 끝을 내느냐? 네 현실을 어느 것으로 만드느냐요, 현실을. 요래도 그만 납득이 잘 안 돼 자기 현실을, 자기 현실이라면 모든 게 다 들어버렸는데. 자기 현실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대로 하려 하면 이리 해야 되고 세상과 인간지식대로 하려 하면 이리 해야 되고, 이 두 갈래길이라 그말이오.
갈래길, 현실은 반드시 언제든지 좌나 우나 둘 중에 하나지 안 되는 일은 없어.
이러니까 그럴 때에 인간과 인간의 지식대로 행하면 그 현실에 속한 모든 것은 사요 죽소? 죽습니다. 또 현실에 하나님과 진리대로 해서 그 현실이 끝났으면 그것은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됐습니까 세상 것 그대로 돼 있습니까? 여러분들, 우리 구원은 하나님과 진리로 인해서,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없어진 것,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없어진 그것이 다 영생이지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으면 아직까지 모르요. 니엘이 사자구덩이에서 나온 것은 우리 위해서 나왔지 자기에게는 금 그다음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노아와 같이 망령될 줄 압니까? 하나님과 진리로 없어졌으면 그는 그의 가진 모든 자체나 기능의 났기 때문에 마귀가 달려들어 시험 못 한다 말이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기신 것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그것으로서 끝이나 버렸어. 끝이 나 버렸으니까 마귀가 손 들고 그만 져 버렸다 말이오. 아직까지 예수님의 생명이 붙어 있으면 그때까지는 시비 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 구원은 하나님과 진리대로 끝나버린 것이 없어지는 것이 영원히 하나님 진리 것이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요게 믿어지지 않는다 말이요, 요걸 모른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중간에 마귀란 놈이 이리 비끼라 조리 비끼라 해도 그놈 말 듣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미련한 십자가라.
그러니까 뿍뿍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면, 순종해 나가다 죽으면 어쩌려고? 죽으면 어짭니까? 죽으면 어떻게 하요? 저 ○조사님? 죽으면 그냥 늙어서 병들어 죽으면 그 죽음은 다 폐물되는 건데 주님과 진리로 인해서 죽었으면 순교지. 큰 수입 아니요? 만일 죽을 때가 안 됐으면, 사자구덩이 들어갔는데 죽을 때가 안 됐으면 뭐 사자구덩이 들어가서야 거기서 어떻게 할 수가 있겠소? 사자구덩이 들어갔는데 죽을 때가 안 됐으면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미리 사자 입을 봉하고 발톱을 봉해 놓으니까 와 가지고 푹신푹신한 사자 요대기 속에 앉았었지 무슨 다른 일이 없다 그말이오. 죽을 때가 안 됐으면 당신의 초자연의 능력으로 살린다 그거요.
불미 속에 불 속에 집어넣으니까 거기 뭐 다시 조화가 있습니까? 용수가 있습니까? 무슨 융통이 있겠소? 하나님은 불을 뜨겁지 않게 하시고 따뜻하게 하실 수도 있고, 당신은 전능이라! 당신의 전능을 믿어야 돼. 당신의 전지를 믿어야 되고. 암만 나 혼자 산골짝에 대해도 당신이 그리 나와 같이 계셔. 알아.
전능이야. 나를 사랑하시오. 나와 약속한 것은 신실히 지키시요. 이걸 믿으면 왜 세상을 못 이깁니까?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마귀의 유혹에 들어서 우리가 이리 저리 신음하는 것이지 이것만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당신이 일할 수가 있지? 사자 입을 막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사자 입을 막아서 세상에게 '사자 입도 막는 하나님이시로구나'하는 걸 제상에 보여 주려 해도 사자구덩이까지 들어가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 믿음이 없으니 당신의 능력의 나타낼래야 나타낼 수가 없다 그말이오. '믿음은 보지 못한 걸 증거하는 것이라.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라. 이런데 이것은 도무지 교만해서 예사로 듣기 때문에.
나는 서부교회 교인들은 이제 마비가 돼서, 하나님 말씀 듣는 데 마비가 돼서 도무지 아무 감각이 없어. 왜? 자기가 지켜 행하려고 하면 실행을 하려고 하면 '이것은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이다. 이것은 말쟁이로 공연히 지어낸 말이다.' 환하게 안다 말이오. 실행한 자라야 실행의 설교인지 거짓부리의 말만 하는 설교인지 알 수가 있지! 자기가 정말로 천국을 가려고 생각했으면 그것도 성구인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안한 자면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 제가 하려고 하면 참으로 천국을 가려고 생각을 하면 '이 성구가 문제니 이 성구가 어찌 되느냐?' 이 성구는 부모가 연탄창고에 자꾸 가면 물에 집어넣으며 막 '이놈 물에 빠뜨려서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네가 안 그랄래?' '아이고 아버지 내가 다시 안 갈랍니다. 다시 안 갈랍니다.' 이렇지마는 아버지의 사랑이 만일 '나는 또 들어갈랍니다' 한다고 해서 물에 집어넣어 그렇게 죽이겠느냐? '네 이놈 할 수 없다.' 내놔 버린다. 그런 해석을 어데 살 수가 있느냐 말이요, 그걸? 성경에 어데 협박한 말이 어데 있어? 협박은 죄입니다. 예수님이 협박하는 말 했으면 예수님은 죄를 범했소. 내가 믿는 예수님은 그런 예수님 아니오. 자기가 거짓부리기 때문에 거짓부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지.
다 제대로 됩니다. 팔월 십오일 보름달을 보고도 제 주관대로 해석 해서 슬픈 자는 슬픈 달로 보이고, 기쁜 자는 기쁜 달로 보이고, 두려운 자는 두려운 달로 보이고, 그때 자기 주관대로 상대와 맞추면 자기는 피가수요, 나는 피가수라.
다른 게 뭣이 와서 붙어야, 내게 붙으면 자꾸 보태지는 것이라 말이오.
이런데 나 된 대로 다른 게 하나가 보태지면 내가 둘이라면 서이될 것이고 너이 보태지면 석섯 될 것이고 이럴 것 아닙니까? 이런데 완전 진공이 됐을 때에 나는 피가수인데 내게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 됐을 때에는 진공이 됐을 때에는 하나님도 내게 오시면 하나님 그대로, 정상의 하나님이 내게 와서 오실 것이고 모든 만물도 모든 피조물이다 마귀는 내가 진공이 됐을 때 마귀가 왔을 때는 마귀는 마귀로 확실히 드러나지마는 내가 조작배기가 뭐 있으면 뭣이 드러나면 그와 보태지기 때문에 달라진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야 모든 것을 알게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엊저녁에 쪽발 설교했는데 이것만 해도 요대로 행해 놓으면 따라갈 자가 없어. 어떻게 해야 될꼬? 그 모르면 네가 두 가지로 구별해 하나님의 지식 잡고, 하나님 지식 잡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비판을 하고, 그다음에는 과거에 모든 것을 지나간 것은 다 네 지나간 것도 알고 역사에 모든 사람들의 막 날뛴 것도 다 알고 하니까 그들이 날뛰었으니 그들과 나 당한 일이 어떠노? 네 현실에 어떠노? 그들과 내 현실이 같은데 내 현실을 그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는데 이리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하고 이리 행동 저리 행동 천 가지로 만 가지로 행동했는데 도매금으로 그게 다 어찌 됐느냐? 알 수 있을 것이라 말이오. 다 멸망 아닙니까? 내 개인의 행동도 과거에 그 일이 요 일 같은 과거에 닥쳤을 때에 그렇게 하고 보니까 뒤에 보니까 소용이 없고 후회더라.
과거에 모든, 지나간 모든 잘못된 것과 옳은 것을 다 나벼 가지고 그것을 내대로는 내 현실을 바로 찾으려고 바로 현실 행동을 바로 찾으려고 하는 데에 과거에 모든 것을 참고로 삼고 두 가지로 구별하고, 요라면 네 현실에 바른 것을 넉넉히 잡을 수가 있다. 바른 것을 잡아 가지고 바른 발자국을 떼놓을 수가 있다. 그러면 그것이 거룩한 자의 양식이 된다. 이스라엘 자손의 양식이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자는 제대로 속고 있습니다.
다 모두 이제 성경은 천지만엽으로 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이다음에 어느 것이 맞느냐 맞는 것은 한없이 영광이 될 것이고 틀린 데로 사람을 인도한 것은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스승된 자마다 많은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살라고 했습니다.
믿어야 돼요. 나는 지난밤에 역설한 그 말씀을 꼭 여러분들에게 강조를 하고 싶어 믿어 나가요.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인도는 바르고 참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인도는 영감 도리가 하나님의 인도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계시고 계시는 그분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갈 때에 옆도 돌아보지 말고 가라. 앞으로만 빨리 가거라. 앞으로만 향해 가거라. 뒤로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향해 가라. 번개같이 가거라.
이리 가면 우리에게, 그리 가면 마귀란 놈이 '큰 낭파 당한다. 큰 낭파 당하면 어찌 되느냐?' 낭파 당하면 그것이 없어질 때면 썩을 것을 썩지 안할 것으로 완전히 바꿨기 때문에 생명으로 옮기는 것 되고, 또 끝이 나지 아니할 때면 어짭니까?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걸 구경할 것이고, 모세가 구경하지 안했소? 구경할 것이고. 죽은 것이 살든지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을 구경해서 자기에게 믿음이 더 자라가게 되든지 손해갈 것 뭐 하나나 있습니까? 그럴 때 '아무래도 안 된다. 이것은 큰 낭파 당한다.' 믿지, 주님을 그럴 때 믿지 않는 그것이 주님을 배반하는 음행하는 것이오. 그럴 때믿는 것은 수많은 학식 있는 것보다 그분은 원하십니다. 수많은 연보 하는 것보다도 그분은 원하십니다. 수많은 높은 지위 권세 아무리 있는 자보다 문둥이라도 그 사람 원합니다. 하나님은 문둥이도 당장 깨끗하게 할 수 있고 문둥이로도 천하 제일 영광된 그 구원을 이루게 하실 수가 있는 이 하나님이시오.
이러니까 끝까지 나아가자. 어데까지? 하나님이 끝날 시간이 되면, 자기에게 대해서 미리 정해져 있어. 끝날 시간이 되면 그리 안 해도 끝나고 저래도 끝납니다. 끝날 시간이, 끝날 것이 됐으면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완전히 무더기로 옮겨서 이제 살아났고 끝날 시간이 안 됐으면 초자연이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구경할 수가 있고, (저러니까 뚜드려 맞지. 똑똑히 들어 가지고 말씀대로 하면 뭣 때문에 맞아, 맞기를? 말씀대로 하면 호통을 치지.
그러면 그 앞에 탁 꺼꾸러져버릴 건데. 안 믿어 그래, 안 믿어. 안 믿으면 당해.) 어리석게 인간에게, 사정에게, 정리에게,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라' 했는데 그놈도 큰 놈이오. 그놈한테 끌리면 함정에 빠집니다. 그저 쪽발과 새김질 요것 하나만 해도 잘 살 수 있소.
끝까지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둘로만 구별하면 환하게 알아. 둘로 구별해.
서이로 구별하면 이건가 저건가 크만 거기서 단서가 들면 안돼. '이렇지마는 이럴 수도 있지 않느냐?' 보지 말라 그말이오. 둘로만 구별해 가지고 옳은 것을 탁 취해버리는 요게 용기요. 이것이 인간의 최대의 능력이라.
둘로 구별해 가지고 옳은 걸 탁 취하고, 과거를 참고해 가지고 과거에 보고 그걸 참고해 가지고 옳은 것을 하고 옳은 것을 택하고, 요 둘을 가지고 옳은 것을 택해서만 딱 가면 전능이라 전지라. 완전이라, 온전이라. 다 영생이라 요렇게 하면 힘이 있고 요렇게 하면 용기가 나오고 권태가 안 나고 심심하지 안하고 풀어지지를 안할 건데 안 하기 때문에 풀어지지. 신앙 걸음은 누가 비유하기를 자전차 걸음이라. 그것 누가 비유 잘했소.
요새는 뭐 외발 자전차도 타고 다니고 서 가지고 있는 것도 하지마는 서 가지고 있는 것도 요리조리 돌리기 때문에 제가 서 가지고 있지 가만히 서 가지고 있으면, 고거 또 중심을 잘 맞추면 되기는 되지마는 되기는 될 거요. 논리는 되지만 안 될 거요. 신앙 걸음은 자전차 걸음이라. 자전차 걸음은 그만 서면 넘어갑니다. 서면 넘어가지마는 자꾸 달릴 때는 그게 힘이 굉장히 세. 되게 달리는 것을 옆에 발로 가지고 탁 차도 뭐 차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훅 달아난다 말이오. 신앙 걸음은 쉬면 안 돼. 자꾸 달려야 되지.
달리면 능력 나와. 몇 해 동안에 굉장한 능력 사람도 되고 몇 해 동안에 굉장한 천한 물건도 되는데, 뭐 누가 시비하거나 뭣이거나 그 말을 갋을 필요도 없어.
나쁘게 말하면 고칠 것 있으면 고치고 선생님으로 모시고, 나쁜 것 암만 살펴봐도 없으면 참고 있으면 상급 받고, 욕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유익만 주지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반대로 칭찬하는 사람은 손해보이는 것뿐이지 유익보는 것 하나도 없어. 칭찬받을 일이 있어서 칭찬받아도 하늘에 상급이 없어졌으니까 손해갔지, 칭찬받을 것이 조그만한데 많이 칭찬받았으면 그거 뒤에 대금을 내놔야 되니까 배상 내놔야 되니까 손해갔지, 칭찬 받을 것 없는데 칭찬 받았으니까 뒤에 심판을 받아야 되지. 참 세상이 모르는 생명의 도입니다. 인간의 육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오. 우리가 살아나기를 바람이 부는 것같이 살아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딴것없어. 결과가 영생이요 하늘나라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권찰회 없습니다.
뭐 실은 아런 것 저런 것 아무것도 없어. 그대로 행하면 되는데, 여게 한 청년이 있어 내가 말하는데 성신의 감동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신의 감동으로 기도하는 것은 까랑까랑합니다. 기도할 때에 아무나따나 나 오는 대로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기도하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이 지존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 아무나따나 함부로 입을 벌리면 큰 정죄를 받습니다.
기도는 어떤 게 기도냐? 평소에 자기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원하고 원하고 많이 느껴 있는, 그 속에 마구 뼈에 저려 있는 그걸 하나님에게 구합니다. 그게 기도요. 그 기도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나 자복하는 것이나 마음에 뼈에 저려서 꿈에도 이 말씀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느낌을 가진 이것을 '주여 이것 잘못됐습니다' 해야 그것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고 하는 기도고 제가 원하는 것도 그렇지 아무 생각없이 그저 입을 벌려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막 주 내 지꺼려 해서 기도하고 나면 뭐 했는지 모른다 하는 그것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것.
옳은 말을 해도 하나님 앞에 무책임하고 조심 없이 속에 생각없이 나오는 대로 벌로 주 지껄이기 때문에 미치괭이 신앙이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이 기도하는 것은 까랑까랑해서 이틀을 지나고 사흘 지나고 언제든지 그거 기억하고 있는 것이오. 그걸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고 또 여기 방언이라 하는 것은 방언은 그것이 진실이 떨어지면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는 항상 그저 하나님 대했다 하고서 막 이래 주 지꺼리는 것 아니오.
기도하면서 성자들의 기도는 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서, 기도하다가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하고 이렇게 묵상합니다.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아버지를 보니까 쪼립니다. 겁이 나 견디지 못해. '주님은. 누구십니까?' 자기는 너무도 안일주의고 너무도 교만자라.
이렇게 자꾸 주님이 누군지, 주님이 누군지 어떻게 자기가 알 것이요? 성경 말씀을 가지고 주님이 누군지 아버지가 누군지 자꾸 이렇게 봐 가며 그분에게 가니까 그분에게 말을 하니 자꾸 마음이 긴장돼지고 조심돼지고 조심돼지고 자꾸 조심이 돼지고 이래 돼지니까 그 기도가 자꾸 나가지를 않습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이걸 기도하지 안할 수 없어서 또 구하게 되고, 또 이걸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게 되고, 이렇게 자꾸 자기가 긴장되는데 방언이라 하는 것은 얼마 하다 보면 그만 자기가 마음에 입에 나오는 대로, 마귀란 놈이 그 입에 나오는 대로 마구 시설을 푸어 대. 그만 시설을 푸어 대. 시설을 푸어 재끼면 그다음부터는, 시설을 푸어 재끼는데 빨리 말을 하려니까 빨리 말이 안 돼요. 이러니까 그만 혀가 안 돌아가니까 내빌내빌내빌낼낼낼낼낼낼낼낼낼낼 그것밖에는 안 돼. 자기 마음에 자꾸 이래 마음으로는 말하는 걸 혀가 따라가지 못하니까. 이래 가지고 방언이다. 그걸 꾸며내기를 또 무엇을 이것은 무슨 방언 무슨 방언이다 조작배기로 꾸며 냈는데 그말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누가 알겠소? 성경에 말하기를 '일만 마디 방언보다 댓 마디 깨닫는 것이 낫다' 성경에 평가 했으니까, 댓 마디 깨닫는 게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 했으니까 가치 있는 걸 해야지.
또 '네가 방언 하기를 힘쓰는 것보다 예언하기를 힘써라. 예언은 심지어 무신론자에게까지 그에게 유익을 준다. 깨우치게 한다. 그러나 방언은 너를 미쳤다고 할 것이다. 너를 미친 사람이라 하지 않겠느냐?이랬는데 방언 그것을 참 방언은 예루살렘에서 한 그 방언인데.
그것을 왜 그걸 금지하지 않느냐? 너무 사람들이 심령이 땅에 들어붙어 가지고, 들어붙어 가지고 암만 이래야 하나님께 대해서 입도 벌어지지 안하고 땅에 들어붙었기 때문에 이래 시설을 지겨서라도 그 한번 심령을 한번 움직여야 되겠다 말이오. 그래 움직이나, 북을 뚜드리며 움직이는 거나, 뭐 춤을 추는 거나 어쨌든지 한번 이 심령이 한번 변화가 돼 가지고 한번 움직여져야 뭐 그 속에 뭐가 돼지는데 딴딴하게 굳어져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지 안하니' 그런 것이지 요새 방언이라 하는 건 전부 주장자가 전부 제 인기를 끌려 하는 제 인기를 끌려고 하는 것인 것을 소경이라도 보면 알 것이라 말이오. 십 년만 그 사람 생활을 딱 보면 알 수가 있는데.
방언 하는 사람이 환난 이긴 사람이 누가 있소, 있기를? 환난 오면 그것들이 다 전부 그것 또 그 앞에 가 가지고 알랑거리고 아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지 말아요. 지금은 때입니다. 지금은 참 옳고 그른 걸 구별할 때라. 보면 알아. 자, 교파면 교파하고 구별해. 교파와 교파를 구별해. 보면 알지. 둘로만 구별하면 압니다.
여반은 말이지 이제 자꾸 새벽기도 안 나온다고 대예배 때 야단을 치면 좀 많이 나오고 그리 안 하면 이래. 그러면서도 또 야단치면 사랑없이 공격한다고.
야단을 치면 효력이 나는데 제까짓 게 한다고 야단을 안 쳐? 제까짓 게 그리 한다고? 제까짓 게 글을 써낸다고 그까짓글 누가 글로 알아, 그걸? 사람 같잖은 건데, 마귀 말인데.
내가 모자라서 대예배 때 야단 안 치니까 이 새벽기도 안 나와. 안나와 못 배우면 모르고 모르면 못 행하지 어떻게 하겠소, 하기를? 자, 여기 신앙 생활 가는데 끝까지, 끝이 나도록까지 끝까지,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끝이 날 판이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끝이 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와서 막아서 끝이 나든지, 끝까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것을 끝까지 나갈 사람 한번 손 들어 봐. 끝까지 나 갈 사람? 봐, 이래 들기는 드는데 요것 하나를 지키려고 하면 불이 올 것이고 요것 하나 지키려 하면 불이 올 것이고 불이 오고 나면 '하나님이 과연 계시는구나!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베드로가 말이요, '이제야 하나님이 나를 지키셔서 헤롯과 유대인들의 기대에 만족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믿어봐야 당신이 어떤 분인지 알지. 안 믿는데 어찌 아요? 전부 제맘대로 제 꾀를 가지고 제가 제 할 일 다 하고 방비를 오바 옷이 열둘도 더 방비 다 해 가지고 제 꾀 다 제대로 제 실속 다 차리는데 하나님이 할 일이 있어야지? 믿어야 하나님이 일할 것이 있지? 어리석지 말아요. 어리석지 말아요. 다 모두 제가 구별할 수 있으면 구별하는데, 뭣 때문에 구별 못 했느냐? 제게 유익이 없기 때문에. 제 생각에 맞지 않기 때문에 구별하지 안하고 다 엉뚱한 길을 걸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