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신앙과 초절신앙

 

1981. 5. 21 새벽 (목)

 

본문:창세기 8장 20절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창세기 9장 2절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번제는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와는 조금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번제는  자기의 잘못된 것을 용서받은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은 것과, 또  자기가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살아야 되겠다는 이런 뜻을 포함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기에 번제는 모든 제사를 다 포함한 제사요  또 회개와 감사의 제사라 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홍수 심판으로 모든 사람이 멸망당한 후에 땅에 나와서 처음 행위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짐승 중에 깨끗한 것을 가려서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인생에 대해서 긍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번제를 받으시기 전에는 노아의 여덟 식구에게 대해서만 긍휼을 베푸셨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에 괘씸해서 홍수로 전멸시켰는데 노아가 구원받은 후 첫  행사에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감동이 됐습니다.

인생은 날 때부터 자기 중심의 원죄로 인해서 자유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노아가  과거를 반성도 하고 감사도 하고 또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볼 때, 다른  피조물에게는 이런 것이 없는데 인생은 범죄하기도 하지마는 반성도 있고 감사도  있고 하나님의 신성에 대해서 교제하는 인격성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 향기를  흠향했다고 했습니다.

흠향하시고 다시 인생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새로 시작하시고, 인생에 대해서  다시 관대한 마음으로 마지막 심판 때까지는 멸하지 아니하고, 춘하추동 사시와  또 이런 사업 저런 사업에 활동하는 것이나 또 생육하고 번성하는 이런 은혜를  하나님이 다시 베푸시기로 했습니다.

또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땅에 모든 것을 내게 상속받아서 주관하고 또 이  모든 것들은 다 너희를 위하고 너희에게 복종하고 두려워하면서 섬기리라.

너희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습니다.

만일 홍수 후에 노아가 자기와 가까운 사람도 다 멸해졌으니까 슬픔을 가졌든지  혹은 마음에 통쾌감을 가졌더라면 홍수에서는 구원을 얻었더라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역사는 다시 시작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구원 얻은 다음에 하나님에 대해서 속죄제나 속건제나 화목제를  드리지 아니하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인생의 죄악과,  하나님의 지극히 공평됨과 두려움과 모든 것이 주권되어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과, 그분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려 바치는  일을 했는데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다시 인생에 대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이  민족을 전멸시키고 너를 이스라엘의 종자로 삼겠다’ 하실 때 모세는 그 일에  대해서 자기가 멸해지는 그 이상의 슬픔과 고통으로 하나님 앞에 간청을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백성을 애굽에서 기적으로 인도해 내셔서 광야에서 전멸시켜  버리면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또 그뿐만 아니라 인생이 다 이렇게  무지몽매한데 이렇게 멸하시면 되겠습니까? 나는 무엇 때문에 남기려고  하십니까? 나도 함께 멸해 주십시오!’  모세가 전체를 생각하는 이런 심정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그래, 내가 네 말대로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모세가 진으로  들어가서 그 범죄의 머리된 사람들만 멸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용서하시고 긍휼  베푸실 것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노아가 구원을 받은 다음에 첫째 생각하고 한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인생을  생각하고 앞으로 있어야 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면서 깨끗한 짐승을 잡아서  번제로 드린 것입니다. 이 번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면 무효가  되는 것인데 그들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실상으로 하고 예표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네가 이럴  때는 이런 제사를 드려라’ 하셨지마는 그들은 앞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대속하심으로 인해서 제사가 효력을 낸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잘못이 있으면 속죄제를 드리고, 또 모르고  잘못했으면 속건제를 드리고, 이웃으로 더불어 불목했으면 화목제를 드리고, 또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낱낱이 드릴 수 없을 때는 번제를  드렸습니다.

또 하나님과 관련 있을 때에는 자기 힘대로 제사를 드리라고 했는데 힘이 없는  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잡아서 제사를 드렸고, 또 좀 힘이 있는 사람은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고, 더 힘이 있는 사람은 더 큰 제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고, 또 무슨 경사가 있을 때는 말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지  아니하고 물질로 드렸습니다.

또 농사 지어서 추수하면, 만일 무우를 추수했으면 아이들이 모르고 뚝뚝 잘라서  먹을 수 있지마는 어떤 농사든지 일절 입을 대지 아니하고 제일 처음 것은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감사합니다!’ 하고 난 뒤에 농작물을 사용했습니다.

또 목축하는 사람도 소산이 생기면 새끼는 제일 첫 새끼를 드렸고 또 달리  수입이 있으면 머리를 떼서 첫 수입은 하나님에게 드렸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생각이나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말과 마음의 정성의 표시를  물질로 하나님께 드려서 섬겼는데 그럴 때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별별 복잡한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 앞에 번제 드리는  일을 제일 먼저 했을 때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이 됐습니다. 인생에 대해서  감동이 됐고, 생축이나 짐승에게 대해서 감동이 됐고, 심지어 땅에 대해서  감동이 됐습니다.

노아가 홍수에서 살아났더라도 하나님 은혜가 없다면 뭣합니까? 홍수에 몰사되는  것이나 그 뒤에 멸망하는 것이나 다를 게 있습니까?  우리들이 여기서 깨달을 것은 이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너희들이 내게 가져오는 예물과 제사가 내게 큰 고통의  짐이라, 도리어 내 마음이 괴롭고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것을 가져오지 말아라!’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하나님은 껍데기 물질이 아닌 우리의 인격을  원하시기 때문에 인격이 없이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도리어 노엽게 하는 일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예수님이 초림하셨을 때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마지막으로  책망하신 것은 외식에 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하시면서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제사가 외식이 됐는가? 하나님을 상대할 때 물질로 머리를  떼서 드리고, 짐승을 드리고, 이런 저런 제사를 드리라고 한 것은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하신 말씀처럼 자기가 실제 물질로 드려서 죄를  회개하고, 짐승 한 마리를 죽여서 드릴 때 자기 죄로 인해서 죽은 짐승을 보면서  죄에 대해서 마음에 더 실감이 생기고 사람이 변화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제사를 드리라고 한 것은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원해서 그 중심을 드리는 일이 강해지도록 한 것인데 그만 보이는  것을 드리는 일이 형식과 제도가 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중심은 없기 때문에  외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제사는 도리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뿐이니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고 그 제사에 응답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또 신약 교회에 대해서는 보이는 물질로 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보일 것은  너희들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몸으로 보이라고 한 것은 구약 시대와 같은  것이요, 너희들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타나게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연보가 연보가 아니라 인생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네가 입술로 감사할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기념하는  표로 너도 누구에게 전도를 하든지, 누구를 위해서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든지,  네 물질을 인간을 구원하는 복음 사업에 쓰든지 하는 것인데 어쨌든지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은 너희들의 중심이요, 너희들의 몸이니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 것이 신약 교회입니다.

그런데 신약 교회가 이리로도 저리로도 빠지지를 아니하고 마음의 중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인간 구원의 사랑을 베푸는 형식과  제도로 세계 선교회니 뭐 전도니 선교니 심방이니 하면서 일하는 그것뿐이지  속에는 이 중심이 없습니다.

자기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드려야 하는데, 어떤 것보다도 자기  몸이 제일 좋은 것이니까 몸을 드리라고 한 것인데 몸 드리는 이것이 하나의  제도와 형식이 됐습니다. 또 오늘은 구약 이스라엘이 외식이 된 것처럼 외식도  아니고 내식도 아닌 중간에 빠지는 일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노아 때에 사람의 마음의 경영이 전부 악한 것뿐이라고 하셨는데, 오늘  우리에게는 ‘너희들은 저희들이 멸망하는 멸망에 빠지지 말고 거기서 나와라.

그들의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했다. 그들이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였든지 그대로 내가 갚아주겠다.’ 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벌써 자기 중심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자기를 기쁘게 영화롭게  존귀케 할까 해서 모든 행동하는 목적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됐다는 말이요,  이것은 내식도 아니요 외식도 아닙니다. 이것은 중간에 기묘한 고등 술책의  마귀에게 빠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진실한 자들만이 승리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안되면 다시 구약교회에서 시작해서 신약교회의 완성을  이루어야 되겠고, 그렇게 연습하지 않아도 될 수만 있으면 신약교회의 행위를  정상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면 신약교회의 행위에 대해서는 청지기 비유에서 배웠는데, 첫째 우리는  주님의 구속을 받은 자들이요, 우리의 몸 생명 소유 힘 기능 이런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이라는 이 인식을 놓지 못하는 것이 신약  교회요, 자기 자체는 주의 것이니까 주로 말미암아 움직여야 하는데 주로  말미암아 움직이지 못한다면 자기의 가진 것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구속에 바치는  쉬운 일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당신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당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을 무엇으로 섬겨야 하느냐?  전 인격으로 섬겨야 하는데 이 섬김이 안되니까 인류 시조 때에는 밀가루를  가지고 섬겨라, 기름을 가지고 섬겨라, 곡식을 가지고 섬겨라, 돈을 가지고  섬겨라, 짐승을 가지고 섬겨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에게 바쳐서 섬기는 방편으로 하다가 마지막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니까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기에 전부를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 결말인데, 우리는 하나님  섬기는 것도 너무 외식화가 되어서 마음뿐입니다. 입술로는 주님 앞에서  얼마든지 말하지만 정말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에게 우리는 완전히 죽어야  됩니다. 이 죽은 자가 하나님의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살아 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실질적인 실감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죄를 회개하고,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잘 안되면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방편을 찾아서  섬기는 일을 연습해서 달성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입술로 주님을 부르는 소리를 끊지 않으려고 애를  써서, 속으로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이렇게 계속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부릅니다.

또 지금도 그런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보면 구제함을 예배당에 달아놓고,  연보궤는 자기가 주님에게 대한 사은을 하는 것인데 역시 같은 것이지마는 또  구제함을 달아놓고 ‘내가 하나님 앞에 이런 은총을 받았으니 나도 다른 사람을  구제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을 소멸하지 않고 ‘구제할 돈’  이라고 봉투에 써서 구제함에 넣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에다 감사하는 함을 달아놓고, 구제하는 함을  달아놓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표로 회개의 함을 달아놓고 그 일을 하는데  이렇게 작은 것으로 시작해서 자기를 하나님 앞에 바쳐 하나님과 연결을  가지다가 마지막에는 소유와 몸과 생명 전부가 주의 것이라고 인식해서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양심에 가책이 되고 마음에 고통이  되는 이런 단계에서 살게 됩니다.

요즘 교회들도 돌담 쌓듯이 이것 저것 하나씩 쌓아 나가야 하는데 밑은 없고  머리에 올라가서 섬기는 이런 제도만 가지고 있으니까 공중에 집 짓는 것과  같습니다. 공중에 집이 지어집니까? 이런 것을 초절이라 하는데 모두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밑에서부터  조금씩 자라서 자꾸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밑에는 아무 것도 없고 뚝 떨어져서  혼자 위에 올라서 있으니까 상상뿐이지 실상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초절신앙을 회개하고 초월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초월신앙으로 자라서 실질적인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실질은 없고 입술뿐입니다.

또 요새는 마음으로 섬기면 된다고 해서 마음으로는 감사해도 호주머니 돈은 한  푼도 바치기를 싫어합니다. 인간을 구제할 구원에 대한 감격은 있어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마음을 쓰는 것이나 행동은 없다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도 다 거짓부리가 점점 되어가고 있는 세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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