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9 14:28
체계적인 신앙
1981. 7. 27. 월새벽
본문: 마태복음 23: 23-24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우리 신앙은 언제나 체계적인 신앙이어야 합니다. 체계적인 신앙이라야 한다는 이 체계적이라는 말은 우리 신앙도 우리 몸과 같이 그렇게 구조가 되어져야 합니다. 몸이 눈을 떠서 일할 때에 수족은 가만히 있고 수족이 일할 때에 눈과 귀는 제가 하는 것 아니니까 가만히 있고 이러면 그것은 그 병신입니다.
손으로 일을 하면 그때는 손만 놀리는 기 아니고 눈도 손이 일하는 것을 협조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눈이 일해야 될 일이 있으면 손보다 눈이 더 재빨리 그 일을 착수하게 됩니다. 또 손이 일할 때에 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귀는 자고 있지 않습니다. 손이 일할 때에 귀도 협조하는 그런 모든 긴장을 가지고 있다가 귀가 돕지 안하면 안될 그런 일이 있을 때에는 재빨리 귀가 손으로 하는 일을 도와서 그 일이 원만이 되어져 가도록 해야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그 몸이 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기계 앞에서 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그 손은 모르지만은 귀가 퍼뜩 들을 때에 아 이 기계가 지금 고장 났으니까 재빨리 이것을 중단시켜 놓고 고치지 안하면 제작하는 물건이 절단 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일하는 자기 생명이 위태하든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손이 일하는데 귀가 먼저 듣고 또 동시에 눈이 함께 협력해서 재빨리 그것을 관찰하고 그럴 때에 발이 자기 몸이 좀 옮겨야 될 때는 그 몸이 옮겨 가지고 그 고장 난 것을 방비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중단을 하든지 해서 그 큰 화를 만나지 않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앉아서 일하면 손이 일하니까 발은 노는 것 같애도 앉아 일하다가 발이 일해야 될 일어설 일 있으면 손보다 발이 먼저 일어서는 일을 해 가지고 그 일이 지장되지 않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사람 몸이 일하는 체계의 일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생활도 꼭 그러합니다. 자기가 기도할 때에는 기도할 때에는 만사를 잊어버리고 기도만 하고 또 일할 때는 전도할 때에는 전도만 생각하고 다른 것 다 잊어버리고 전도만 하고 저가 직장에 일할 때에는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직장에서 일만하고 하는 그것은 그것이 체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거 하면 저것이 낭파되고 저거하면 이것이 낭파되고 또 방편적으로 보면 이거 할 때에는 저것은 낭파되도 저것은 됐다고 생각하지만은 우리가 하는 일은 모든 것이 다 연관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할 때에 이것은 됐지만은 저것이 생각과 손을 쓰지 안 해서 그기 낭파 됐으니까 저것은 낭파되지 이것은 잘됐다 그런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잘된 것 같으나 저기 안됐으니까 이거 잘된 것이 결국은 깨져야 되고 그것 때문에 이것이 또 희생이 되어져야 되는 그런 일이 필연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농부도 밭에 가서 일할 때에는 몸은 밭에서 일을 하니까 마음은 논에 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 사람이 논에 가서 일할 때에는 논에만 일하는 기 아니고 밭에도 그 일을 할뿐만 아니라 지금은 허가가 나 가지고 이 땔나무를 준비해야 될 이 시기인데 땔나무를 준비를 어떻게 하나 논에 가서 밭에 가서 일하면서 땔나무 그것을 또 마음으로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밭에가 일하는 농부가 밭에 일만 아니라 논에 일도 생각하고 땔나무도 생각하고 이렇게만 하면 되는가 아닙니다. 아무데 돈 줄 것이 있으니까 돈을 어떻게 마련하며 또 아무데 돈 받을 것이 있으니까 이 돈을 어떻게 받아야 하느냐 자기가 몸은 비록 논에 가서 일하고 있지만은 그것이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또 돈 주고 받을 것도 생각을 하고 또 아무것이가 이렇게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분에게 실수하지 안해야 될 터인데 도덕면도 생각을 하고 또 그뿐만 생각하는 기 아니라 이 가족들 가운데에 아픈 사람이 있으니까 그걸 치료를 어찌해야 되나 그것도 생각합니다.
그러면 만일 그 사람이 밭에 가 일한다고 밭에 일하는 그것만 하고 딴 생각을 전연히 가지지 안하면 그 사람은 그것은 하나의 기계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요.
기계에 지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아무런 생명적 효력은 가지지 못합니다. 기계는 그것은 도는 건 항상 돌기만하고 또 끊는 거는 항상 끊기만 하고 그것뿐이지 그기 뭐 있습니까? 그거는 기계적인 인간이지 그 인격을 가진 산 사람은 아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산에 기도하러 가면 기도 갔으니까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이 시간에는 기도만 하자 하면서 기도에만 기울이는 그 사람은 그 기도가 바로 되지 안합니다. 자기가 기도하러 가서 기도하면서 자기가 현재에 그 자리에서 기도하고 있지만은 기도하면서 심방하는 것, 전도하는 것, 또 누구에게 관련돼 있는 것 자기에게 관련되 있는 모든 일은 열 가지면 열 가지 백 가지면 백 가지 그 사람의 활동이 좀 좀 더 고귀한 활동일수록 반드시 접촉하는 그 요소가 많습니다.
아주 그 사람의 활동이 저급의 활동이라면 못난 인물이라면 그 생각하는 것이나 자기에게와 관련된 일들이 수가 적지만 좀 큰일을 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관련을 가진 그 숫자가 많습니다. 또 자기가 손을 뻗쳐 가지고 일하는 그 범위가 넓습니다.
그러면 넓으면 기도하러 갔으면 일단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기도만 하자 하는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때 기도할 때에 자기는 오늘 기도실에 갔다든지 기도원에 갔다든지 산에 갔다든지 굴에 갔다든지 거게서 기도를 하고 있으니까 거게서 다른데 심방도 못가지 전도도 못가지 다른 사람 접촉도 못하지 자기 직장도 못가지 고 생각밖에 못하지.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을 그 안에서 자기가 관련가질 걸 다 가집니다. 관련가질 것을 다 관련을 다 종합해 가지고 그 종합한 그 전체에 그 자리에서 할 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직장에 할 일도 그 자리에서 하고 또 인간 여수 거래도 그 자리에서 하고 또 서로 신의 관계도 그 자리에서 하고 그 자리에서 그 모든 것을 가지 못한 것을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 그자가 할 수 있는 것이 뭐이겠습니까? 마음으로 하고 또 하나님에게 그런 것을 의논하고 하나님에게 맡기고 거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 준비를 하고 이렇게 하는 그 사람이 체계적 활동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게 이것도 버리지 말고 하려니와 저것도 해야 된다. 이것도 하지만 저것도 버리지 말고 해야 된다 하는 그 일방적으로만 나가지 말라는 것을 말했는데 어떤 사람은 그만 심방 가면 심방 가니까 오늘 심방만 생각 두고 심방만 합니다. 심방만 하다 보니까 그 사람이 하는 일이 가정에서 낭파가 나고 나중에 인인관계에 모든 관계들이 절단이 나고 이리 되고 나니까 심방하고 난 다음에 그만 그것이 마구 잘못돼 떠들어 일어나고 나니까 심방해 놓은 것도 헛일이고 나중에는 그 사람은 원망 불평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내가 심방 안 갔더라면 안 그럴 걸, 뭐 어떻게 했으면 안 그럴 걸, 나중에 그래 가지고 도리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연보해 가지고 죄지어서 즉살당한 것 만찬가지로 이렇게 주의 일을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나중에 역효과가 나 가지고 도리어 그 심방 안 갔던 것보다 더 큰 손해를 끌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심방을 가면서 심방을 하면서 심방만 하는 게 아니라 심방을 하면서 ‘자 집에서는 지금 내가 불 위에다가 뭘 얹어 놓았으니까 나설 때에 한 시간 심방하고 갈라고 했으니까 한 시간이 넘으면 집에 화재가 나 가지고 집을 태울 것이다’ 이것을 생각 하고 심방하면서 집에 한 시간이 넘으면 그게 불이 나 가지고 집 태울 것도 생각해야 되지 그건 생각지 않고 심방하면 그만 심방에만 다 기울여 가지고 아무 것도 모르고 아 나중에 가 가지고 심방하는 그만한 시간 안에 돌아가야 할 터인데 한 세 시간이나 지나고 보니까 소식이 오기를 아 집에 불이 나서 집이 다 탔다고 기별이 옵니다.
심방하는 게 무슨 효력이 있겠소. 나중에 다 게워 내버리고 도로 손해가지요.
또 아무것이 하고 몇 시에 약속을 했으니까 심방하다가 그 시간 되기 전에 가 가지고 내가 그 일을 해결해야 되겠다. 이걸 머리 두고 심방을 해야 되지 심방에만 다 기울어져 가지고 그거 잊어버렸습니다. 그 사람 그 시간에 와 가지고 안 지키니까 아 그 사람에게 큰 낭파와 손해를 줬습니다. 그 나중에 만나 가지고 자기가 약속해서 이랬는데 이래 낭파가 가지 안 했느냐? 응 이런 손해를 물리라 말하지 안할지라도 이제 원망과 불평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심방해 놓은 그 인격은 다 깨져 버리고 도리어 나중에 가서는 후회만 됩니다. 오늘 심방 안가는 건데 어쩌고 이리되지. 그러기에 심방을 하면서 자기와 인인관계 여수관계 가족관계 또 모든 자기 담당한 사무관계 밥하라고 했으면 밥하는 관계. 지금 내가 책임진 밥을 줄 때가 됐는데 이 시간이 어찌되노? 이러면 내가 가지 못하면 이것을 여게서는 아마 가야 되는데 가는 것 보다는 내가 이것을 하고 다른 이에게 의탁하는 기 낫겠다. 그러면 전화를 해 가지고 그 내가 지금 시마이해서 갈긴데 천상 이러니까 좀 밥을 차려 먹으라는 그런 전화를 내가 하든지 옆에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 가지고 이러니까 가서 좀 챙겨 주라든지, 모든 일이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일은 열 가지나 백 가지나 그것을 다 들고 이 일할 때에도 다른 것도 다 들고 이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한 할 수 있는 그 정도로서 하고, 이래서 그 사람이 되면 여기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사람은 지금 그 저게도 할 일 할 수 있는 것 저 국제간에도 할일이면 할 수 있는 것은 여게서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모든 것 다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체계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안하면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효력을 거둘 수 있는 그 수입은 못 봅니다.
기계로 되져버리지. 그러면 그거는 됐지만은 자기로서는 다 개인 인격을 가졌고 또 자기가 주체성이 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주체성에 대한 일은 모두가 낭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보면 일하는 분들이 이 체계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기계적 기계와 같이 활동하기 때문에 그 일이 실패가 많다 이기요.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 어제 보니까 교인들이 많이 떨어졌는데 와 떨어졌는고 원인을 찾아보라 이러니까 기도하고 심방을 안 해서 아마 그런 것 같다고 이러는데 그 기도만 하고 심방 안하면 그거야 의례히 떨어지지.
기도하면서, 기도하면서 심방도 해야 되지요. 기도하면서 심방 어찌해야 되겠소. 또 기도하다가 쫓아가 심방하고 기도하고 그러겠습니까. 아 기도하면서 심방해야지.
자기는 기도하면서 몸은 못 가니까 마음으로 해야지. 기도한다고 해서 아무것에 대한 이런 사건이 있다 내가 가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해줘야 되겠다. 거게 대해서 마음을 쓰고 기도를 하고 이러면 사람은 이 영이 있기 때문에 영이라 하는 것은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 영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이 내가 굴 안에 앉아 가지고 내 영으로 그이에게 가 가지고 어떻게 해결 지울 걸 해결 지으려고 노력을 할 때에는 그 영과 영이 통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이 육을 만나지 못해도 또 그 사람에게 그 심령이 또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몇만리 밖에 있는 사람을 이 사람이 여기서 마음으로 그 사람에게 대해서 참 죄송한 마음을 가지는 그 몇 만리 밖에 있는 그 사람에게 가가지고 죄송한 마음을 가진 것이 그에게 통해지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이해가 됩니다. 그보다도 성령은 더 빠릅니다.
그러기에 앉아서 마음으로 그에게 대한 걸 염려를 하고 일을 하지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지 이러니까 기도하고 오니 이제는 마음으로는 심방을 했는데 무슨 심방을 못했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요. 무슨 심방을 못했지? 몸을 심방 못했지.
그러니까 기도하고 오니까 이제는 어찌 되겠습니까. 지금 그 사람이 무슨 심방을 지금 하겠소? 경옥씨. 응? 기도하고 나니 오고 나서 그 사람이 심방하겠소. 응? 무슨 심방 하겠어. 주양 몸 심방하지. 몸으로 심방하지.
그 몸 심방이 기도하러 가기 전과 기도하고 오니까 몸 심방 마음은 했지만 몸 심방이 이것이 채여 있지요. 못하고 눌려 있지요. 그러나 그 사람의 몸 심방이 그것이 기도하러 가기 전보다 더 많이 하게 됩니까, 더 적게 하게 됩니까? 응? 응? 응? 아 고걸 아마 묻는 각도를 잘 모르는 모양인데 기도하러 가기 전에 하루 다섯 집 갔으면 이제는 기도하고 오니까 하루 열 집을 가야되겠지요. 가라 소리 안 하나 갈수 있는 그것이 자기에게 벌써 마음으로는 심방하고 몸으로 심방하기 때문에 그리 되지요.
그러면 심방을 갔습니다. 기도하러 가기 전에 한번 심방과 기도하고 와서 한번 심방과 심방한 그 심방의 효력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예. 예. 다르지. 얼마나 다르겠소. 그러면 효력이 덜 나겠소, 더 나겠소? 예. 예. 효력이 많이 나지. 많이 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아 많이 심방을 많이 해놨는데 몸 심방을 안했으니까 몸 심방하니까 마음 심방을 많이 했으니까 효력이 많이나지. 응. 마음 심방 안할 때보다 많이 나지.
이러니까 이제 기도에서 몸으로 하지 못한 그 일이 눌러 있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심방을 자꾸 한 그 사람은 그것이 재빨라집니다. 누가 독촉하지 안 해도 많이 하게 됩니다. 또 기도하면서 자기가 가지 못한 모든 해결을 사건들을 그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그 모든 일을 해결하고 연구하고 한 사람은 기도하고 오며는 재빨리 그 일을 가 가지고 연구했기 때문에 벌판으로 하지 않고 연구를 해 가지고 요래 일하기 때문에 기도하러 와 가지고 일할 때에는 일이 배나 효력이 속히 납니다.
이런 것이 체계적으로 활동하는 것인데 우리가 이거하면 저거 잊어버리고 저거하면 이거 잊어버리고, 그 설교를 듣는데도 그렇소. 체계적인 설교를 듣는 사람이 있고 단편적으로 단어적으로 듣는 그 설교 듣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어린 사람이요.
설교를 들으면 처음과 나중 전부를 다 간추리고 또 이 면도 저 면도 다 보고 평가를 하고 이렇게 해서 넓게 볼수록 또 다각 면으로 또 자기가 생각하고 연구할수록 은혜가 더 많이 돼지고 체계적인 그런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 말하고 나면은 이 말하고 나서 저 말 할 때에는 다 잊어버리고 처음에 말하는 건 다 잊어버리고 항상 단어 묘한 말하는 단어 거게만 맛을 붙인 그 사람은 신앙 생활이 단편 신앙생활이 됩니다.
응. 그 사람의 설교하는 것을 종합해 가지고 오늘은 눈에 대한 설교를 했다, 그럴 때에 눈에 대한 설교를 했으니 이것이 발에 대해 발에 대한 관계가 어찌 됐노, 귀에는 관련이 어찌 됐노, 전신에 관련이 어찌 됐노, 그 면을 생각해서 보면 이 사람의 설교는 죽은 시체 설교라. 팔은 팔대로 떼놨고 다리는 다리 떼놨기 때문에 그 언뜻 들으면 설교를 잘하고 아주 그런 것 같지만은 이 사람 설교를 듣고 사람은 사람이 배우면 그 사람의 신앙을 한 단편적인 신앙이 되고 체계적인 신앙은 되지 못한다, 하는 그렇게 모든 면으로 비판해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심방할 때에는 몸은 심방을 하면서 마음은 그 내가 가지 못한 그 모든 면을 생각하면서 전체를 들고 낭파를 지우지 아니하고 이래야 되지, 이거 할 때에는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하면 해 놓은 것이 제가 깨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체계적인 활동, 체계적인 신앙, 체계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얼핏 들으면 뭐인고 잘 깨달아지지 못해도 그러니까 생각을 해야지. 가서 자꾸 생각을 해요. 생각을 하면 이 진리가 깨달아 질기라. 아 그 말이 체계적으로 심방하라 하더라. 체계적으로 활동하라 하더라. 체계적으로 신앙생활 하라 하더라. 이것을 자꾸 생각을 하면 여러분들이 깨달아질 때에는 속에 힘이 나오고 능력이 나옵니다.
녜. 오늘 아침에 권찰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