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9 09:51
천국의 성질
1986. 12. 6. 새벽 (토)
본문:출애굽기 19장 12절∼25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모세가 산에서 내려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으로 성결케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 하니라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산 사면에 지경을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고하니라
기도합시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피의 대속을 입고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지극히 크고 영생이 되는 이 무한의 생명 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 각자들에게 영감으로 충만시켜 주사 영감으로 전하고 영감으로 들어 깨달아 실상을 이루어 주님 앞에 영원히 영광의 찬미가 되며 주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아침에도 들어 깨닫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고 확신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다 해석할 시간 없으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무형의 존재인데 하나님의 형체를 가지고서 나타나는 것은, 벌써 하나님이 유형으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본체와 많은 꺼풀을 입고, 많은 꺼풀을 입고 사람들이 대할 수 있도록 그렇게 이 물질화돼 가지고서 지금 나타나는 것이 이 시내산에서 빽빽한 가운데 구름 가운데에 그 불로 불덩어리로 나타났습니다.
그랬는데 그때도, 그러면 그때는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 부르고 ‘성령님’ 이래 부르고 접촉하는 이 성령과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은 본체요, 성령님은 본체요 이렇게 구름 속에 불 가운데 이 큰 나팔 소리로 이렇게 나타나시는 것은 이것은 본체가 아니고 본체가 많이 우리 사람들이 대해도 죽지 안하도록 자꾸 가루고 가루고 가루고 가루고 첩첩이 가뤄 가지고서 그렇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지금 나타나신 것은 본체가 직접 나타나는 것이고 그때는 본체가 우리가 만나도 죽지 안하도록, 안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많은 가루고 가루고 가룬 것이라 말이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나타나도 하나님께서 짐승들은 이 산 근방에 오면 다 죽을 것이고, 또 사람도 죽을 것, 사람도 죽는데 그냥 뭐 손을 대 죽이는 게 아니라 돌로 쳐 죽이든지 돌이 와 죽이든지 그래 안 하면 화살이 와서 죽이든지 이래 가지고 다 죽을 것이니까 오지 못하게 하고, 또 오는데 제사장들은 오되 특별히 성결케 하고서 백성들도 삼 일 동안, 그 산 근방에 오면서도, 산 근방에 오면서도 목욕하고 다 옷을 빨아서 의복을 새로 갈아 입고 또 자기네들이 삼 일 동안 깨끗하게 공을 들이고, 또 삼 일 동안은 남녀 동침하는 그런, 여인을 가까이 하는 그런 일 하지 안하고 깨끗이 깨끗이 준비를 해 가지고서 그래 백성들은 산기슭에 산 발치에 오고, 발치에 왔지 산에 오르지는 마라. 산에 쪼매라도 오르면 즉사당한다. 못 오고.
제사장들은 또 산 발치에서 백성보다는 조금 더 앞으로 오되 특별히 또 다시 몸을 깨끗이 하고 옷도 깨끗이 하고 더 깨끗이 이래 가지고서 올라오고, 아론과 모세는 산 중턱까지 올라오고, 모세는 더 깨끗해졌기 때문에 산 날망에 구름 가운데에 불로 나타나시는 그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서 서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음성을 들어도 모세가 견디지를 못해서 두려워서 견디지를 못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이 성령님이신데 이 하나님, 여게 나타나신 하나님과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오시는 성령님과 한 하나님은 한 하나님인데 그때 하나님과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과 이렇게 그 거룩하심이 같습니까, 그때가 더 거룩합니까 지금이 더 거룩합니까? 지금이 더 거룩하요.
그때는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자꾸 빽빽한 구름으로 둘러 가뤘지 또 그 불로 가뤘지 또 나팔 소리로 가뤘지 이래 가지고서 직접 대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가리워졌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의 하나님과 오늘의 하나님과는 아주, 같은 하나님이지마는 많이 가리워져 가지고서 이와같이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 그거요.
하나님이 지으신 햇빛도 우리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렇지 만일 햇빛도 우리가 어느 정도에 가까이 가면 다 타 버리고 말지 가까이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그 햇빛도 무엇을 가리고 가리고 이라면은 그 광선으로 말미암아 살해당하는 그런 일이 없고, 이 햇빛도 가까이 가면 타 죽는데 그 사이가 거리가 머니까 지금 우리는 안 탑니다.
이 햇빛을, 안 타지마는 햇빛이 요만한 면적, 요만한 면적에 있는 햇빛을 한테로 주 모으는 무슨 거울이고, 그게? 요만한 걸로 돋보기 유리를 가운데가 볼록하게 해 가지고서 이거 빛이 한테로 모이도록 합니다. 요만한 안에 있는 광선을 한테 주 모아서 요 쌀내끼 모양으로 그렇게 딱 모아 가지고 비추면 그 사람 살이 탑니까 안 탑니까? 대번 타버립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나 널리 퍼져 가지니까 우리가 안 탄다 말이지요.
이 하나님도 그런,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 하나님을 가리고 가리고 가리고 나타나는 그 하나님도 만날라고 할 때에 백성들이 전부 목욕하고 옷 빨래해 씻어 입고 또 삼 일 동안은 남녀 관계를 안 하고 깨끗이 깨끗이 이래 해도 찍해야 산 근방밖에 못 왔어. 아론 아주 뭐 전부 하나님만 사모하고 그렇게 깨끗한 사람도 중턱밖에 못 왔고, 모세는 뭐 아무 죄가 털끝만치도 없는 그런 참 율법을 다 이행하는 사람이지마는 산에 왔지마는 만나지 못하고 음성으로 겨우 듣고 이래 했다 그말이오. 이런 하나님을 지금 우리가 모시는데 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까? 오면 우리가 죽습니다.
그러니까 오면 죽는데, 그러면 우리가 뭐 어떻게 해야 내 안에 오시는 성령님을 맞이 할 수 있습니까? 그 방법이 뭐이지요? 지난밤에 배웠지요. 방법이 뭐입니까? 예수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내가 믿어서 사활의 대속을 입을 때에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들어오는 건 우리가 완전자가 됐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완전히 대속해 주신 그 대속을 내가 믿으므로 입어서 완전자가 되어졌기 때문에 그때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도 우리가 죽지를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또 레위기 16장 1절 한번 찾아 봅시다. 못 찾으면 그만 그냥 들어도 됩니다, 레위기 16장 1절.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아론의 두 아들이” 이 제사장으로 세웠다 말이오. 하나님이 제사장으로 세우라 해서 제사장으로 세웠거든요. 제사장으로 세웠으니까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지금 제사 드리러 나아가는데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벌받아 죽어 버렸어요. 벌받아 죽었어.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말해라 성소의 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그렇게 세운 사람이지마는 이 지성소 속에, 지성소에 제 마음대로 이래 출입할라고 들어왔다가 대번 즉사했다 말이오. 그 형제가 다 죽어 버렸어. 그렇게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계시지마는 하나님이 법궤 위 속죄소에 그룹 속에 이래 계시지마는 하나님이 그렇게 뭐 무형의 존재인데, 하나님이 계시지마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인간으로 더불어 관계에 많이, 많은 경계를 이런 걸로 가리고 저런 걸로 가뤄서 많이 첩첩이 가리고 하나님이 그 지성소 속에 와서 계신다 말이오. 그래도 거게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은 아론의 두 아들이지마는 거게 들어가다가서 즉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주의를 줍니다. “이 지성소 안에 무시로 제 마음대로 들어오지 말아라. 그래 가지고 말아서 죽음을 면해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이제 시내산에서 된 것을 끌어서 여게서 인용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이 세마포 마포 옷은 죄인이 입는 건데 마포 옷은 죄인이 회개하는 표로 이 세마포를 입는 것입니다. “베옷을 입고” 이렇게 말하지 안했습니까? “베옷을 입고” 들어올 때에는 수송아지를 잡아서 수송아지 피와 또 수양의 이 피를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들어옵니다.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안 살에 입고 “또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그러니까 자꾸 자기를 이렇게, 자꾸 하나님이 이래 거룩하게 저렇게 거룩하게 자꾸 거룩하도록 자꾸 거룩 거룩 이래 해 가지고 비로소 그 속에 들어오지 벌로 들어왔다가는 대번 즉사당한다 말이오. 가리고 가리고 이래 가지고 해야 된다 말이오.
“입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 제물을 위하여 수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하여 수양 하나를 취할지니라” 그러면 이래 가지고서 이 짐승을 잡고 잡아서 자꾸 이렇게 속죄제를 드리고 드리고 이래 가지고서 비로소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성소, 물질로 만들어 놓은, 성소에는 제사장들만 출입하고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 차례 들어갈 때에는 수송아지의 피와 수양의 이 피를 가지고서 속죄 제물을 가지고 들어가야 되지 안 가지고 들어가면 대번 즉사당한다 말이오.
이렇게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을 아무리 청해 들이고 부르고 성령 받기를 원하고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면은 나는 전능자와 같고 완전자와 같은 것인데 이 성령님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인도하는 것, 우리 속에는, 우리 믿는 사람은 두 가지 인도가 있습니다. 육체가 인도하는 게 있고 성령님이 인도하는 것인데 성령님이 인도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라.
성령님의 인도만 받으면 다 영생이요 전부 평안하고 다 영광스러운 것뿐이라.
이런데 이 성령님이 와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셔야 될 터인데 인도하시려고 하는데 성령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시는 것은 왜 들어오지 못합니까? 성령님이 능력 없이 들어오지 못합니까 우리가 무서워 못 들어옵니까 못 들어오게 하니까 들어올 권리가 없어서 못 들어옵니까? 하나님이 어째 못 들어옵니까? 어째서 못 들어옵니까? 들어오면 우리가 죽기 때문에 못 들어옵니까 당신이 해로울까 싶어서 못 들어옵니까? 우리가 죽기 때문에 못 들어온다고 믿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녜, 죽기 때문에 못 들어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를 믿지 안하면은 성령님은 우리 속에 들어오시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27장 50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그러면 이렇게 이 휘장이 내나 아까 출애굽기에서 보고 레위기에서 본 그 휘장입니다. 휘장인데 그거 내나 지성소 휘장이오. 지성소 휘장인데 그 일 년에 한 차례밖에는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한 차례밖에는 못 들어가는 것인데 두 번 못 들어가는 것인데 이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딱 운명하셨을 때에 그 휘장이 위로부터 사람 손 대지 안하고 짝 갈라져 가지고서 그만 성소와 지성소 사이가 확 틔워졌습니다. 갈라졌습니다.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일어났습니다. 무덤 속에서 일어났어.
“일어나되 예수님의 부활 후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일어나되” 무덤을 못 나옵니다. 무덤에서 일어나지마는 무덤을 벗어나오지 못해요. 무덤을 벗어나오지 못하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알겠습니까?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우리를 대속하신 이 대속을 끝냈을 때에 그때에 휘장이 갈라져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장벽이 무너졌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무너졌고, 인간 속에 죄악의 독은 그때부터 깨어지게 됐고, 이 세상에는 전부 사망 운동뿐인데 지진한다 하는 것은 생명 운동이 새로 일어나게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이제 죽으심으로써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무덤이 열린다 이랬지요? 무덤이 열리고 자던 성인들이 일어났지요? 그러면 무덤이 열린다는 그거는 사망이 깨어졌다 그말이오. 사망에서 해방됐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사망에서 해방됐어. 해방됐지마는 살아나와서 기동은 못 해.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몇 가지가 멸해졌다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세 가지. 세 가지, 마귀와 죄와 사망이 멸해지고 거기서 우리가 해방받았다 이랬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에게는 간단하게 가르치지마는 성경을 보고서 수천 년 동안 지금 신학자들이 연구하지마는 아직도 그 연구를 모르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말이오.
이렇게 밝히 나타나 있지 안해. 이러니까 하나님이 내가 가르쳐 주는 게 아니고 말세에 이제 성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당신의 것으로 쓰셔 가지고 이렇게 자꾸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라 그거요.
자꾸 저거들이 모르는 소리를 하니까 나를 말하기를 ‘옛날 사변주의가 있었는데 그것도 사변주의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더래요. 그러나 그거 입을 벌리지는 못해. 왜? 사변주의면, 사변주의라 하는 것은 제 생각 가지고 자꾸 말하는 것이고 제 생각 가지고 말하는 게 성경하고 들어맞으면, 성경하고 들어맞고 성경에 사람들이 모르는 속에 있는 진리를 발견했다고 하면은 그 사변주의 그 사람이 하나님입니까 사람입니까? 자기 생각 가지고, 자기 생각 말하는 게 하나님의 뜻과 딱 들어맞으면 그 사람이 사람이요 하나님이요? 하나님이라 말이오. 그러나 사변주의는 말하는 것이 성경과는 다릅니다.
성경과는 다르고, 성경과 다른 거는 제 속에 생각나는 대로 자꾸 말하는 그게 사변주의인데 그건 성경의 진리를 증거하는 게 아닌데 사변주의가 뭐인지도 모르고 지금 철때기 없이 그런 벌 입을 놀린다 그말이오. 하나님에게 정죄받아 가지고 망할라고 말이오. 그래서 내가 사변주의를 나는, 그런 소리는 나를 훼방할라 하니까 자꾸 막 주 대서 뭘 이래 그런 걸 들춰낸 모양이지.
그래 사변주의를 말하기를 우리 ○○○전도사님이 그런 이를 잘 접촉하니까 가 가지고 접촉하니까 사변주의라 해서 반박을 하고 이랬는데 이게 사변주의라 이 처음 듣는 말이라 싶어서 나한테 왔다 말이오. 와 가지고 말하기를 ‘아, 이렇게 말합디다.’ 이래서, 사변주의 얘기를 내가 쭉 다 하니까 ‘아, 목사님도 사변주의를 알았습니까?’ ‘아나 모르나 저거 하는 말이 개가 개소리하고 닭이 닭소리 하지 별 소리가 있느냐? 저거가 그 소리지 딴 소리가 뭐 있겠느냐? 그 사변주의 이런 것을 말했을 거다.’ 하니까 ‘예 맞습니다' 이러며 `잘 아시네요' 이래요.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지금, 보니까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며” “무덤이 열리며” 하는 이게 뭐이냐 말이요? “무덤이 열리며” 하는 이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써 사망의 문이 열렸고, 또 죄의 문이 열렸고, 사탄의 문이 열려서 거게서 나왔다 말이오. 해방됐다. 세 가지에서 해방됐다 말했지요? 세 가지에서 해방됐다.
요한계시 1장 5절에 보면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에서 해방하시고” 거기는 “해방하시고” 그렇게 성경에 말했다 말이오. 이 전체의 성경에 말한 것을 간추려 가지고 말하니까 여러분들은 뭐 놀고 먹기라. 놀고 이 간추려 주는 데만 주고 믿기만 하면 되는데 이것도 안 먹으니까, 호박씨 까 가지고 입에 넣어 준다 하더니만 이 까 가지고 입에 뭐 입에 맞도록 다 입에 넣어 줘도 입을 딱 다물고 입을 벌리지 안하니 이거 참 기가 찰 일이라.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일어나되” 일어나되 하는 건 조건이 있지 않습니까? 일어났지마는, 일어났지마는 아직까지 산 행동은 못 해. 해방은 됐지마는, 해방은 됐으되, 안 돼. 해방은 됐어도 활동 못 해.
“일어나되 예수님의 부활 후 저희가” “예수의 부활 후” 예수님이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왔다 말이오.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제 살아났지마는 행동은 못 하고 살아난 행동은, 살아난 행동은 언제 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 후에 살아난 행동은 했다 그거요.
또 히브리서 10장 19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지금은 이 성소가 있습니까 성소가 없어졌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성소를 가지고서 하고 있지마는 이제 성소가 지금 인제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지금은 성소가 뭐이 성소라고 고린도전서 3장에 말해 놨습니까? 뭣이 하나님의 성전이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뭐이 성전이라 했소?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우리는 신령한 이스라엘이 됐거든. 그때는 육체의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둔할 때이니까, 어두울 때니까 보여 줬지마는 지금은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성전이 됐다 그말이오.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시는,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러 들어가는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 안에 계시는, 우리 안에 지금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니? 성령님이 우리 마음 안에 계십니까 우리 몸 안에 계십니까 우리 영 안에 계십니까? 우리 마음 안에 계시요 우리 영 안에 계시요? 영 안에 계시는데 마음 안에는 안 계셔. 마음 안에는 계시는 사람도 있고 못 계시는 사람도 있어요. 마음에 들어오면 마음이 확 타 뒈져 버리기 때문에 못 들어오신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제 영 안에 계시는 이 하나님을 우리가 담대히 맞이할 수 있나니, “담력을 얻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휘장이 갈라져 가지고 우리와 하나님과 그 사이에 다 통해졌다 말이오.
통해졌는데 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만나는, 하나님을 만나는 그 담력 얻은 것은 뭣을 힘입어 담력 얻습니까?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담력 얻는다 했어.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나니”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을 내가 믿음으로 내것 삼을 때에 성령님은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들어오시는 거는 왜 그 전에는 못 들어오시는 거는 뭐이냐 하면은 그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가 소멸되기 때문에 들어오시지 못하고 피해야 돼요.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믿을 때에 우리는 완전자가 됩니다.
믿을 때에 몇 가지가 완전합니까? 믿을 때에 몇 가지가 완전해지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내것으로 믿을 때에 몇 가지가 완전해집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가 완전해집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녜, 일곱 가지. 일곱 가지가 완전해집니다. 일곱 가지가 완전해져.
하나님과 완전 화친, 완전 화친이 돼 버리요. 또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이행해서 하나님의 의를 가진 의인이 돼 버려요. 또 죄에게서 완전히 해방되고 마귀에게서 해방되고 또 사망에서 해방된 완전 자유자가 돼요. 또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영생자가 돼 버리요.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내것인 것을 믿을 때에 일곱 가지가 완전해지면 그때 성령님은 즉시 들어옵니다.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요 일곱 가지를 믿지 않으면 즉시 죄인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즉시 완전한 의인, 일곱 가지 완전한 의인 되고 이 믿음을 버릴 때에는 완전한 죄인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완전 죄인 되면은 우리가 성령님은, 만일 예를 들어서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믿다가서, 대속의 피를 믿다가서 잊어버리고 버렸을 때에는, 잊어버리고 버렸을 때에 만일 우리가 버리기를 먼저 하고 성령님이 뒤에 나갑니까 우리가 버릴 때에 즉시 같이 나가 버립니까? 같이 나갑니까 성령님이 뒤에 나갑니까 성령님이 앞에 나갑니까? 예? 같이 나갑니까 뒤에 나갑니까 앞에 나갑니까, 같이 나갑니까? 같이 나갑니다. 왜? 뒤에 나가면 어찌 됩니까? 예? 뒤에 나가면 어찌 됩니까? 뒤에 나가면 우리가 소멸돼 버려.
이러기 때문에 이거 기가 찬다 그거요.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잊어버리면 잊어버릴라 하면 잊어버림과 동시에 성령님은 나가야 되지 안 나가면 우리 속에 계시면 우리가 소멸되고 만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입으면 즉시 들어와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 오면은 우리는 어떤 자입니까? 전능자입니다.
전지자가 됩니다. 완전자가 됩니다. 사망도 우리를 해하지 못하고, 마귀도 해하지 못하고, 죄도 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공심판도 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완전히 밀접한 친밀이 돼지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살 수 있는 그 영생을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지난밤에, 예수님의 피 없이는 성령을 영접할 수가 없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어야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실 수 있다. 사활의 대속을 믿지 안하면은 성령님이 들어오시지 못하는 것은 들어오면 우리가 소멸되기 때문에 들어오시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밤에 말했습니다.
요것을 단단히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밤낮으로 뭘 생각해? 일하면서도 뭘 생각해요? ‘주님의 일곱 가지 대속은 내것, 일곱 가지 대속을 가진 나는 주님의 것.’ 자꾸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자꾸 일생 동안 자꾸 해. 자꾸 하면은 그 속에 양식이 자꾸 더 나옵니다.
나오면은 더 깨달아지고 더 깨달아지고 더 믿어지고 더 믿어지고 내 마음이 더 깨끗해지고 더 거룩해지고 거룩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자꾸 슬기로워지고 자꾸 믿음이 더 생기고 담력이 더 생기고 자꾸 평강이 더 생기고 생명으로 자꾸 충만해진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사모할 것은 주님 외에는 사모할 이가 없어. 그분 외에는 사모할 이가 없어. 내게 좋게 해 주는 이 없어. 그분 외에는 믿을 이가 없어. 내가 믿을 이가 없어, 뭐. 부모고 형제고 세상이고 왕이고 믿을 이가 없어. 그까짓 거 오늘 조석으로 변해지니까 뭘 믿겠소? 믿을 이도 없고, 바라볼 이도 없고, 의지할 이도 없고, 나를 맡길 이도 없고, 내가 신임하고 뭘 맡겨 놓을 이도 없고, 그 지도를 받을 이도 없고, 내가 또 부탁할 이도 없고, 내 모든 부탁하는 것이나 믿는 것이나 의지하는 거나 바라보는 것이나 내가 지도를 받는 것이나 또 뭐 섬길 것이나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왜? 그분 외에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 말이오. 오늘 변해지고 내일 변해지기 때문에.
돈도 돈이 있으면, 돈도 정함이 없어. 오늘 있던 돈이 내일 당장에 뭐이 될란지 모른다 그말이오. 이 세상이 이와 같이 있지마는 오늘 불타 가지고 지금 오늘 이래 온 우주가 불덩어리가 돼 불타 버릴지 누가 압니까? 모른다 그말이오. 또 내 생명이 끊어질지 몰라.
그러면 주님은 내 생명이 끊어질수록이 좋습니까 죽으면 좋습니까 죽기 전에만 좋습니까? 어째요? 예수님은 내게 대해서 죽으면 필요 없습니까 예수님은 내게 필요하기를 살았을 때에 필요한 거와 죽고 난 후에 필요한 것과, 죽고 난 후에 필요한 것이 더 많이 필요합니까 살았을 때에 더 많이 필요합니까? 예수님이 내게 필요한 것이 죽기 전에 더 많이 필요한지 살아 있을 때에 더 많이 필요한지 언제 더 많이 필요한지? 이 청년? 그 뒤에 청년. 죽은 후에. 몸뚱이도 커단하지 큰데 소리도 크고 요새는 지금 새벽기도 뭐 빠지고 못 견디는 모양이라. 나오지 말지 좀, 잠 좀 자고. 잠 자고 안 나오면, 하루 아침 안 나오면 죽을 거라. 그래 놓으니까 막 못 견디는 거라.
예수를 알면 천국은 누구든지, 예수를 진주와 보화로 비유했는데, 진주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서 사지 안할 자가 하나도 없다 이랬어. 예수님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예수 믿지 안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분 외에는 좋은 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예수 한 분이면 다라. 딴것은 다 속이는 것이고 예수 한 분이면 모든 것 다 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계속 합시다. 앞으로 큰 환난 닥칠 터인데 이 환난을 삼십 분 기도로만 이 환난을 이기지, 옛날 노아 때에 홍수로 다 멸망받을 때에 과학자들이 많았고 정권자들이 많았고 재벌가들이 많았지마는 그거 다 소용이 있습니까? 미남 미인도 다 홍수 속에 매장되지 안했소? 오늘이라도 불타면 다 전부 다 불에 타서 소멸돼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이 삼십 분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난을 구하는 것이니까 이 기도한 사람은 다 남아 있어. 하루 삼십 분 기도하는 거 이거 그렇츰 해도 안 하는 사람들 있는지 몰라요. 안 하는 사람들이 없이 다 하리라 생각합니다. 다 빠짐없이 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