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9 09:40
천국 가치관
본문 : 롬 8:3-9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율법은 하나님의 율법 곧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율법이요, 또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는 영감의 법칙이 다 율법입니다.
이런데,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여기 육신은 우리 사람들, 영은 죽었고 이 심신만 남아 가지고 움직이는 걸 가리켜서 육신이라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율법 가지고 인간을 구원얻도록 이렇게 했지마는 사람들이 그 심신이 무능해서 하나님의 율법만 가지고는 구원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히나님은 하시나니' 하나님은, 우리의 몸이 연약하므로 하나님의 법칙을 완수할 수 없는 이것을 하나님은 하실라면 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기 위해서 역사하 일이 있다,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이 말은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마는 우리를 율법 완성할 수 있는 자가, 완성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죄없는 예수님에게 우리 죄를 다 부담시켜 가지고 죄있는 육체로 보내사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징하사' 그러며, 예수님에게 우리 죄를 부담시켜 가지고 정하사.
고 4절입니다. '육신을 좇지 아니하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요 4절은 우리를 가리켜 말합니다. 요걸 위로 붙이면 예수님이 육신을 좇지 아니하고 영을 좇아 행하는 것으로 요렇게, 고 '육신을 좇아 행하사' 하는 것을, 고 육신을 위로 붙여 버리면은 예수님의 육신이 되고 아래로 붙이면 우리 육신이 되는데 그 아래로 붙여서 우리 육신으로 그렇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여기까지는 예수님에게 대해서 하신 것입니다.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아니하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육신을 좇지 아니하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그 영이라는 것은 성령을 가리켜 말하고 우리의 영을 가르쳐 말한 것 아닙니다.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이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율법 요구를 완성 완수하도록 하기 위함이라. 그러면, 예수님을, 죄없는 예수님을 우리 죄를 다 부담시켜 가지고서 이렇게 대속하게 하셨으므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전에는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수 없는 것은 죄 문제, 의 문제, 하나님과 원수된 문제 이것 때문에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수 없었는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공로를 베풀어 주신 이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그러면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 가지고서 성령을 따라서 행하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 가지고서 성령을 따라서 행하도록 하신 그 시작이 뭐인가? 그것이, 성령이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는 그때가 곧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는 그 인도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어떻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오실 수 있었는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죄 문제가 해결되어서 죄가 없어졌지, 또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 복종하는,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는 의가 이루어지게 하셨지, 대신 순종해서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것이 화친을 이루어서 하나님과 그 친목하게 화목하게 그렇게 하게 됐지. 이래서,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와서 우리를 중생시켰습니다. 중생시킨 그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은 그 성령을 따라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케, 율법을, 율법의 요구를,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그것이 성령으로 중생된 사람에게 내재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지극히 큰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성령이 그 속에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에 원수가 되어지고 율법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면,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만 내재하게 되는가? 성령은 예수님이 죄의 원수된 것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대속해 주심을 받은 그 사람에게만 한해서 성령이 이제는 그 죽은 영을 살리시는 역사를 할 수가 있고, 진리가 살리는 역사를 할 수가 있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살리는 역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그 다음에 진리, 그 다음에 성령의 감화 성령 이 셋이 합해서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렸습니다. 우리 죽은 영을 살린 그 사람은 그 속에 성령이 내재해 계십니다. 영감은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활동하게 하고, 성령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시나 우리가 영원히 보지 못합니다. 그는 완전자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셔 가지고서 눈에도 보이지 안하고 형체도 없으신 분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인데 그 역사가 뭐이냐? 곧 영감입니다.
그래 가지고, 육신을 좇지 않고, 육신을 따라서, 심신을 과거에는 따리서 살았지마는 이제는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성령을 따라서 살도록 성령을 따라 산다 말은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산다 말이요, 예수님의 공로를 입고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좇아 행한다 이러니까, 이 세 가지인데 세 가지 중에 성령만 말한 것은 마지막에 그 결론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기 전에 성령보다 우리에게 먼저, 우리에게, 우리가 따르도록, 우리가 좇도록, 성령이 우리가 성령을 좇도록 하기 전에 율법이 우리를 율법을 좇게 하고, 율법을 좇도록 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대속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좇게 하고, 그러면, 그리스도의 대속을 좇아 행하므로 이제는 그것이 온전해지고 그것이 충만해져서 율법을 좇아 행하게 되고 두 가지를 좇아서 행함이 이제는 점점 성장하고 온전해지므로 성령을 좇아 행하게 됩니다.
그 밑에 두 순서는 말하지 안하고 마지막에 '육신을 좇지 아니하고 그 영을 좋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라 하심이라' 율법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리켜서 율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율법의 요구, 신구약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이것은 하지 말아라 이것은 해라 이렇게 우리에게 명하시고 고대로 우리가 복종하는 자 되기를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대속을 받았고, 또 진리로 우리가 우리의 인도자 우리의 선생님을 삼게 됐고, 또 그 위에 성령님이 친히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받게 됐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렇게 다 받게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를 목적하는 것이 어떤 것을 목적하고 있느냐? 제일 처음에는 목적하는 것이 예수님의 공로를 온전히 입는 자 되어, 또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도 범할 것 없이 완전히 전부 다 지키는 자 되어, 그 다음에는 성령의 인도대로 온전한 인도를 할 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이런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율법을 내가 온전히 지킬라고 해도 예수님의 공로를,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안하면은 근방에 가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제일 처음에 주홍같고 진홍같은 붉은 죄인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입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먼저 내가 접해 가지고서 이 공로를 입음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율법에 손을 댈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의 인도를 내가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 비로소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의 율법이 아무리 우리를 정죄할라 해도 정죄할 수 없는 그자가 되어서 처음에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됐지마는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대속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그걸 할 수 있는 그런 자, 율법의 요구를 만족히 이룰 수 있는 자, 성령으로 동하고 정하고 성령과 함께 동거 동행할 수 있는 자 이런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인 것입니다.
5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육신을 좇는다는 것은 그 성령을 좇는 자 정 반대자가 육신을 좇는 자입니다. 성령을 좇는 자의 반대자는 어떤 자인가? 둘째 아담 예수님의 그 우리에게 대속해 줘서 상속시켜 준, 상속시켜 준, 전가시켜 준,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전해 준, 그 대속을 전해준 그 전함을, 대속을 전해 받고, 대속을 우리가 전함받고, 그래 가지고서 우리는 대속을 전함받고, 하나님의 율법으로 또 온전해지고, 그 다음에는 성령으로 온 전해지는 이렇게 나아가는 이와 정반대로 첫째 아담의 그 정죄와 그의 부패성을 유전받고 육신을 좇는 것을 유전받고, 또 하나님의 율법인,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인 인간의 자율, 인간의 생각, 인간의 제도, 인간의 법칙 이것을 또 유전받고, 이것을 받고,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있는 악성 악령, 악성 악령으로서 성령의 반대인 악령이 자기를 주관하도록 되어지는 그것이 육신을 좇는 자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첫째 아담의 정죄와 유전성을, 첫째 아담이 우리에게 전해 준 그것을 받아 가지고 인간 생각대로 자꾸 하는 그 일이 성사가 되어서 마침내 자기 속에 있는 악성, 자기 중심, 또 자기 중심의 악령, 악령 악성을 만나게 돼 가지고서 악령으로 인하여 움직이게 되는 그것이 이제 최종적으로 안 믿는 사람들의 성공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은 첫째 아담의 유전 받아 가지고, 또 인간들의 생각, 인간 자율 그것을 좇아 행해 가지고 악령과 하나가 되어지는 그것이 이제 육신의 생각의, 육신을 좇는 자의 완성입니다. 그 완성. 그 완성이 뭐이냐 완전 사망입니다. 완전 사망.
육신을, 5 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그러면, 육신 좇는 자는 이제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육신 좇는 자는 어떤 자가 육신 좇는 자인고 하니 첫째 아담이 전해 준 그 첫째 아담의 유전을 받고 그 다음에는 하나기의 이 율법의 반대인 인간 법을 그것을, 그것의 인도 받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율법으로 인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처럼 이제 인간 율법의 인도를 받아가지고 마지막에 종결은 악에게 인도를 받는다, 악에게 인도받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자기 중심, 내나 악령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기 중심으로서 자기 중심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들어온 그것이 인간의 원죄입니다. 배암이, 사탄이 자기 중심 그걸 인간에게 넣어 줘서 자기 중심에 감염돼 가지고 그 유전을 ]받은 그것이 뭐이냐? 이제 인간들이 자기 중심으로 이렇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그 육신의 일은 어떤 것이 육신의 일인가? 육신의 일은 그 악령의 중심, 악령은 우리 속에 들어 가지고서 역사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자기 중심, 인간 중심, 인간 중심 가지고서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그것이 육신의 일입니다. 육신의 일은 육신의 일은 어떤 것이 육신의 일인고 하니 그 피조물 중심인데 그걸.
말하자면 자기 중심입니다. 민족중심이라고 말해도 그 사람도 내나 분석하면은 자기 중심이 그것이 확대되어서 민족 중심이 됐지, 자기가 난 민족이기 때문에, 자기 소속한 민족이기 때문에, 민족주의 뭐 애국주의 모든 문벌주의 하는 그것이 다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중심이라는 그 자기 속에는 악령이 들어 가지고서 있는 것인데 육신의 일은 악령 중심. 피조물 중심, 악의 중심. 악으로서 세상을 이루어가는 것이 육신의 일입니다. 육신의 일.
육신의 일은 중심은, 중심은 악령 악성 악습, 그 악을 붙인 것은 다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 중심을 빼 놓은 것 그것이 다 악입니다. 그러니까, 악령도 하나님을 빼놓고 악령 제 중심으로 움직이다가 쫓겨났고, 또 악성은 인간이 타락해서, 원죄 부패성 그것을 가리켜서 악성, 또 악습은 자기 중심으로 한 가지 두 가지 행동해 가지고서 그것을 자꾸 하니까 그것이 연습이 되어서 그것이 나중에 가서는 자기에게 그만 천성같이 됩니다. 그래서 습관은 제이의 천성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일은 그 세 가지가 육신의 일입니다, 그러면, 중심은 악령 곧 자기 중심이고, 또 목적은 세상을 어떻게 하면 잘해 볼까 하는 세상 목적이고.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그러면, 영을 따르는, 성령을, 여기 성령을, 여기는 사람 영이 아니고 성령입니다. '영을 좇는 자는'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영의 일은 어떤 것이 영의 일인가? 영의 일은 곧. 육신의 일은 첫째 아담의 유전을 받는데, 유전을 받는데 영의 일은 둘째 아담의 유전을 받습니다. 둘째 아담이 우리에게 남겨 준 그 유전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이래 가지고 목적은 어디 있느냐 하면 진리의 나라, 사랑의 나라, 완전한 나라, 영계와 물질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라 말은 제사장의 나라라 말이요 선지자의 나라라 말이요 왕의 나라라 말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전부가 다, 다 제사장이요. 내가 저 사람의 제사장이 되고 저사람은 내 제사장이 되고 전체가 제사장 생활, 선지 생활, 나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을 내가 들어서 저 사람에게 하나님의 것을 다만 얼마라도 그에게 갖다가 넘겨 줘서 부요해지도록, 저 사람이 또 하나님의 것을 넘겨서 주는 것을, 그러면, 나도 하나님의 것을 저 사람, 모든 이웃에게 주고 모든 이웃도 하나님의 것을 나에게 주어서, 받는 것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받는 요 제도가 확립되어 지는 것이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어떤 것이 이제 육신의 생각인가?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영의 일을 생각 하는 것이 영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육신의 일은, 육신의 일은 그 첫째 아담의 유전 받아 가지고서 인간 자기 주장대로 자기, 자기 제도 인간 자기 자율, 인간 자율 인간 주관 그것대로 해 가지고서 이제 악령에게 딱 들어 붙어서 악령과 하나 되는 것.
그러면, 이 세상에서는 첫째 아담을 점령했기 때문에 첫째 아담으로 인해서 그 악령이 세워 놓은 제도와 율법이 있으니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입니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세상 지식, 그것이 음행의 포도주라 하는데 그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로, 믿음으로 사용하면 그 놈을 잡아 먹을 수 있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세상 지식에게 지배받는 것이 아니고 세상 지식을 아주 선물로 이용할 수 있단 말이요. 그래 이용 못하면 거기에 이용 당하고 맙니다. 세상 지식을 내가 이용하지 못하면 그것에게 이용 당하고 맙니다. 이용 당하면 죽습니다.
그런고로, 첫째 아담의 유전 받아 가지고, 둘째로서는 인간의 자율, 인간의 자율, 인간의 자율대로 그 유전받은 것을 점점 키우고 성장시켜 가지고서 고다음에는 누구와 딱 들어 붙어서 하나가 됩니까? 악령과 딱 들어 붙어서 하나 돼 버립니다. 그러면 그거는 완전 사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라, 성령의 생각은 곧 성령의 일인데 성령의 일은 첫째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생각 셋인데, 성령의 일이 성령의 생각인데 성령의 일 세 가지가 뭣 뭣입니까? 첫째, 둘째 아담의 유전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 아담이 유전을 받는 것. 또 둘째로는? 뭐이요?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서 이제는 점점 성장시켜 나갑니다. 둘째 아담의 유전 받은 그것을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길러 나갑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서 온전히 이루어 나갑니다. 나가서,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해서 사죄를 줬지마는 이제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서 이제는 죄와 상관없는 자, 죄를 완전히 이겨서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고 하나님 율법을 가지고서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우리가, 참 의인이 실상이 되어지고 이제는 하나님 율법을 가지고서 인도함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과 완전한 친밀이 돼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이제 영의 일입니다. 영의 일 영의 일. 영의 일 세 가지 생각하고 육신의 일 세 가지를 생각해서, 영의 일을 좇는 영의 일을 하는 자는 영의 생각을 가지게 되고 육신의 일을 하는 자는 육신의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인데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요 육신의 생각은 망하는 거와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렇게 일이라고 하다가 마지막에는 생각이라고 말한 그것은, 우리는 일이 들어서 생각을 내고 생각이 들어서 일을 만들어 내지마는, 우리가, 일보다도 생각이 빠르기 때문에, 일은 그 심신이 다 움직여야 일이 되는 것이고 생각은 그 마음의 기능만 가지고도 활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이 빠른고로 생각을 단속해서 생각이 바로 되어야 되지 생각을 바로 하지 못 하면 실패한다, 그러기 때문에 생각을 표준해 가지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생각은 참 빠릅니다. 생각은 얼마나 연상하며 하나에서 둘 주루룩 연상해 나가는 것, 또 이 생각은 여기에서 퍼뜩 퍼뜩 가는 것, 이 생각이 내나 자기가 일해 놓은 것, 자기가 이목구비 수족으로 접촉한 모든 세상 그것을 이 생각이 퍼뜩 퍼뜩해 가지고서 다 접하기 때문에 이 생각을 단속을 하지 못하면은 이 생각이 우리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생각을 단속해라, 육신의 생각은 죽고 망하는 것이요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 된다. 그러면, 성령의 생각은 뭐이 성령의 생각인가? 성령의 생각은 세 가지. 또 육신의 생각은 뭐인가? 육신의 생각은 세 가지. 그러면, 성령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은 정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 말하기를,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 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절대 불가능한 것을 여기에 딱 못 박아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육신의 생각으로 살기 쉽고 영의 생각으로도 살 수 있고 이러니까,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 것은 저절로 되고, 그거는 자꾸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절로 되고 영의 생각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힘을 쓰고 애를 써서 조심해서 이래 애를 써야 이루어지지 그리 안 하면 안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생각은 저절로 되고 영의 생각은 힘을 써야 된다, 육신의 생각은 공중에 있는 것이 땅으로 떨어져 내려오는 거와 같고 영의 생각은 공중으로 달아 올리는 거와 같기 때문에, 영의 생각은 힘이 들어야 되고, 힘이 들고, 육신의 생각은 저절로 된다.
육신의 생각 세 가지 영의 생각 세 가지인데 육신의 생각은 뭐이며 영의 생각은 뭐인가? 영의 생각은 예수님의 대속의 둘째 아담의 유전을 받는 것. 둘째 아담의 유전을 받는 것. 그 다음에 둘째 아담의 유전을 받아 가지고 뮐로 가지고서 기르느냐? 무엇으로 기르느냐? 하나님의 율법으로 길러 가지고 이제, 그러면 율법으로 길러 가지고 어디까지 장성해서 도달하게 되느냐 성령에까지 도달해서 장성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 성령과 결합되는 그것이 곧 하나님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영의 생각.
또, 육신의 생각은 뭐입니까? 정 고 반대가 뭐 입니까? 첫째 아담의 유전받아 가지고 그것이 뭘로 기릅니까? 인간의 율법 가지고. 인간의 자율 인간의 인본의 율법, 인간의 자율 가지고서 그것을 기릅니다. 그래 길러 가지고서는 최종적으로는 무엇으로 더불어 결합이 됩니까? 악령으로 완전히 하나가 돼 버립니다. 그러면 완전히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거는, 그 끝은 완전히 죽는 것이고 성령의 생각은 완전히 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기에, 우리가 현실을 만나는 것은 내가 현실을 만드는 줄 알아도 하나님이 현실을 만드십니다. 아 현실 이거는 내가 일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인데, 내가 죄를 지어 가지고 만든 것, 내가 힘을 써 가지고 만든 것, 내가 노력해 가지고 만든 것인데, 내가 연구해 가지고 만든 것인데 어찌 이것이 하나님이 현실을 만들어 줬다고 그렇게 아주 얼토 당토 안한 소리를 하는가 그렇게 사람들이 조브랍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현실을 당신이 주시는 구원을 완전히 이루도록 하시기 위해서 내 현실 만들어 주시는데 현실을 만들 때에 그 현실에 재료가 드는 모든 요소는 수많은 것들이 듭니다. 수많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어떨 때는 내 생각을 요소로 할 때도 있고 다른 생각을 요소로 할 때도 있고, 나는 이런 일을 닥치지 안할라 했는데 다른 사람이 이런 일을 닥치게 했다, 나는 운전을 잘 했는데 다른 사람이 운전에 실수해 가지고서 사고가 나게 됐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뛰어들어 가지고서 사고냈다, 다른 사람이 뛰어들어서 사고가 났든지 네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든지 어쨌든지 그 현실은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한 현실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 그러기 때문에, 그 현실에서 우리 할 일이 뭐인가? 현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다는 요것 단정 지으십시요. 이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을 뭐 그냥 신학박사가 되어 가지고서 얼마든지 미국가서 짜다라 공부 많이 한 사람 아는 줄 알아요? 모르요. 조직 신학에 나와 있지를 안해.
조직 신학으로서는 세계 조직 신학 쳐 놓고는 한국에 있는 박형룡 박사의 조직 신학이 아마 표준적일 것입니다. 뻘코프 조직 신학도 있고 어드만 조직 신학도 있고 뭐 조직 신학도 수많이 있지마는 다 건전치 못하고 박형룡박사의 조직 신학이 제일 건전합니다. 박형룡 박사가 그분이 어디가서 공부를 했느냐 하면 미국에 웨스터 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때 공부할 때에는 메이천 박사라 하는 그분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분이 그 자기가 그 신학교에서 있다가 그 신학교 아무래도 타락이 되어서 프린스톤 신학에 있다가 프린스톤 신학이 점점 속화 타락이 되니까 내가 여기 못 있겠다 이래 가지고 개혁을 해 가지고 나온 분이 그이 메이촌 박사인데 그분이 있을 때에 공부했기 때문에 아주 신학으로서는, 조직 신학으로서는 정확합니다. 거기에도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조직 신학을 김 현봉 목사님이 일 페이지를 조금 들여다 보고서 이 모두 다 죽은 글이다. 죽은 글이다. 죽은 글이다 그래 정죄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문제가 많았어. 왜 죽은 글이냐? 이는 모든 사람들이 이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 학자는 저렇게 말한다 모든 학자들이 말한 것을 다 인용만 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해 놨지 요것은 요렇기 때문에 죽었다 요거는 요렇기 때문에 틀렸다, 옳다 틀렸다 해서, 이러니까, 요게 옳은 것이니 나는 요렇게 믿는다 하는 그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책보따리지 그 사람이 산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말했어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다 이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여러분들이 쉽게 그렇게 생각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이렇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요걸 굳게 잡고 놓지를 말라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만들어도 하나님이 나를 이용해 가지고 내 현실을 만들었고, 어떤 그 원수를, 원수가 만들어도 원수를 이용해 만들었어 그것을 조성하고 조절하고 계획하고 경영한 것은 영원 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셨고 그분이 또 주권적 의지로 예정하신 것을 주권적 능력으도 성취를 해 나가시기 때문에 이걸 믿으면 그 안에 다 있습니다.
이렇게, 현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할 일이 뭐인가? 할 일은 성령의 생각을 우리가 할 일이고, 우리가 조심할 것은 육신의 생각을 조심해야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벗어나도록 애를 써야 되고 성령의 생각으로 살도록 애를 써야 되고, 그러면 육신의 생각은 무엇이며 성령의 생각은 뭐이냐? 육신의 생각은 육신의 일을 하는 것이요 성령의 생각은 성령의 일을 하는 것이라. 성령의 일 육신의 일, 그러면, 성령의 일 육신의 일 그것이 세 가지를 말했다 그 말이요. 성령의 일 세 가지는 둘째 아담의 유전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율법을 사용해 가지고서, 그것을 성장시켜서 하나님에게 까지 도달하도록 딱 만드는 것이고, 또 육신의 일은 뭐이냐 하면은 첫째 아담의 유전을 받아 가지고서, 인간이 만들어 내는 율법, 인간의 자율-인간 스스로 제가 만들어 놓은 율법이 인간의 자율입니다.-인간의 자율을 이용해 가지고서 악령에게 딱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것이 육신을 좇는 일이라 말이요. 육신의 일이라 말이요. 육신의 일-성령의 일 이것을 가리켜서-일이라 하면 둔해지고, 일이라 하면 둔해져서 벌써 현장에 나갔기 때문에 현장에 나갔으니까, 둔해지니까 현장의 원인이 되는 그 생각을 들어서 지금 우리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 성령의 생각,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요 육신의 생각은 죽고 망하는 것이라 요것을 알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아무나따나 해서 되는 것 아닙니다. 이 세상에 그 물질의 과학이라는 그것도 아무나따나 해 되는 것이 아니고 고 재고 달고 뭐 이래 가지고 시험해서 그 질과 양과 그 모양과 모든 것이 정확해야 되지 정확치 않으면 안돼. 그러기 때문에, 뭐 이 아마 자동차 운전하기 보다 비행기 운전은 더 어렵습니다. 비행기 운전보다는 이 우주선의 운전은 더 어렵습니다. 더 머리가 세밀하고, 안쓰면 안 돼. 그런 것도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처럼 온전히 되는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그렇게 조심하고 애쓰지 안하고 주의하지 안해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주의 해도 안 된다 그 말이요.
육신으로 이루어지지, 육신이 연약하므로 이루어지지 못한 그것은 '인간의 심신이 연약해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그래 가지고 성령이 우리에게 도왔기 때문에, 부족하지마는 우리의 전심 전력,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성품 다해서 우리 것만 다하면 성령이 우리의 다한 그것을 보충하고 보강해 가지고서 이제 이 일을 이룰 수가 있다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요지는 뭐이냐 하면은 우리는 생각을 우리가 사로잡고 생각을 붙들고 살아야 되지, 생각을 제 마음대로 내놓으면 이것이, 한 시간 다른 생각 가지면 평생 그 값을 내야 됩니다. 한 시간 잘못된 생각 가져 가지고서 평생 그 생각의 댓가를 내어서 그 속에서 망하고 마는 사람들 이 많습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요. 그러기 때문에, 생각을 육신의 생각 영의 생각 둘뿐이기 때문에 생각을 조심해서 여기서부터 단속해야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