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23:38
참된 성전을 건축하자
1986. 10. 1. 밤
본문:학개 2장 18절∼19절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요사이 늘 이 말씀을 우리가 상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 짓는 일은 아직 시기가 안 됐다’ 그렇게 말하고 그저 자기네들 잘살 일에만 급급했습니다.
그것을 인해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많은 수입을 해도 전대 밑구멍 떨어진 데 넣는 거와같이 어디로 흘러 나갔는지 저축이 안 된다고 말씀했고, 또 온갖 것을 다 모아 들여도 하나님이 바람으로 불어서 다 날려 보내 버리고 없이 하겠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든 재앙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 짓는 것은 무시해 버리고 저거 잘 살라고만 이렇게 날뛰기 때문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면이 마구 말라 들어갑니다. 뭐 한 가지 두 가지가 아니라 전면적으로 다 말라 들어가니까 참 아이들 말로 개가죽을 불에다 구우면 타서 오그라지는 것처럼 전체가 이렇게 오그라져 들어가니까 그들이 견딜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랬는데, 구월 이십사일부터 선지자 학개의 전하는 말씀을 듣고 ‘아무래도 우리가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 되겠다.’ 하고 성전 짓기를 시작하기를 구월 이십사일날 시작했습니다.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구월 이십사일부터 너희들이 내 종 선지자 학개의 전하는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회개하고 성전 짓기를 시작하였으니 시작한 이날부터 내가 하늘과” 6절에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이제 성전 짓기를 시작했는데 “조금 있으면” 그 다음에 보면은, 이십사일날 시작했는데 이십사일날부터 효력이 있었습니다.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성전 짓기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 모든 열국 이 전부를 다 진동시켜서 성전 짓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축복하시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2장 20절 이하에는 「그달 이십사일」 내나 구월 이십사일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말씀이 또 학개 선지자에게 와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희들이 성전 짓기를 시작하였으니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다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며,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들을 엎드러 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성전 짓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뭐 그 연방에 있는 이웃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그저 마구 쳐들어오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참 견디지를 못합니다. 아주 참 곤고하고 비참하게 됐는데 이래도 성전 지을 생각은 가지지 안하고 자꾸 그럴수록 저희들의 힘으로 저거들이 잘 살아 볼라고 자꾸 애를 쓸수록 점점 망해졌습니다.
학개 선지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를 안했었는데 이제 학개 선지의 말을 듣기를 시작해 가지고 성전 짓기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셔서 이들을 성전 짓지 못하게 송사하고 방해하던 모든 대적들이 다 전부 그 나라를 이 성전 짓는 일을 위해서 협조하고 참 뭐 그 연방 나라들이 다 이 이스라엘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보면 껍데기와 알맹이가 있는데 껍데기를 잘함으로 알맹이가 잘될 수 있고, 또 알맹이를 잘함으로써 껍데기가 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알맹이의 병든 것을 껍데기에서 알 수가 있고, 껍데기 병든 것을 알맹이에 가서 찾아서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의 신체적으로도 능한 의사들은 겉에 뭐 얼굴색만 봐도 속에 내장들이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또 내장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은 껍데기의 또 그것으로서 어떻게 돼 있다 하는 것이 표시가 되기 때문에 능한 의사들은 외부에 나타난 것으로 그 속을 진찰 안 해도 다 알고, 또 속이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는 그것을 외부를 봐서 다 알 수가 있고, 또 치료도 외부를 치료함으로 내부가 치료가 잘되고, 내부를 치료함으로 외부까지 치료되는 그런 일들이 다 사람의 신체상으로든지 모든 이 만물로든지 또 이런 과학으로든지 다 그러합니다.
조그만한 무슨 기계 하나도 기계의 외부에, 그 하나 시계라면 시계의 외부에 침이 돌아가고 시간 맞추는 것을 그걸 보고, ‘이것은 속에 뭣이 잘못돼 있다’ 하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고, 또 속에 그 기계가 잘돼 있는지 없는지 그거는 뜯어보지 안해도 외부에 그 시간 맞춰지는 나타난 것을 봐서 속을 알 수가 있는 것처럼 만 가지가 다 그러합니다.
과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을 믿어 드리지 안하고 의심할 때에 하나님이 제일 걱정하고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면 배반하고 하나님과 반대되는 자하고 접선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하신 일을 보면은 하나님을 참되시고 완전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대한 모든 일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실하신 하나님으로 알아 달라고, 믿어 달라고, 인정해서 그대로 살라고 그렇게 하셨는데, 백성들이 그렇게 살 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마귀에게 꼬임 받아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부인하고 반대했을 때에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이렇게 나아가는 것은 혹 생각하기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기 때문에 하늘나라만 잘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지 하늘나라가 잘될라고 하면은 세상 나라는 잘못된다, 그러면 하늘나라 성공을 할라 하면은 세상은 실패를 해야 되고 세상 성공 할라 하면은 하늘나라 성공은 실패를 해야 된다.’ 이렇게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거는 악령이 우리를 꾀워서 잘못 가르치는 것이지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안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겠다고, 머리가 되고 위에만 있겠다고, 또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하나님 믿는 일을 바로 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육의 축복을 뭐 심히 많이 줬습니다. 또 그들도 하나님에게 잘못됐을 때에 그런 것들이 다 또 모든 재앙을 받고 그렇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믿는 사람들이 껍데기 이 세상 일, 육신의 일 이런 것들이 잘되고 누가 봐도 ‘저는 아마 돕는 자가 있다, 복이 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모르니까 ‘운이 있다, 복이 있다, 팔자가 좋은갑다, 뭣인가 돌아봐서 아주 복된 그런 운을 만나서 복되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그게 뭐이냐? 그것이 껍데기 그건데, 껍데기가 잘되는 그것은 속에 볼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돼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우리 믿는 사람들이 껍데기 그 육신의 일이 자기 생각보다 자꾸 기한 전에 과실이 떨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또 농사짓는데 이런 모든 재앙들이 이르는 것처럼 하는 일에 자꾸 이렇게 뭣이 방해가 되고 모든 것이 다 풍재 충재 농사에 있는 것처럼 이 재들이 다 일어나 가지고 일이 잘 안 되고 있는 그런 것은 그게 잘 안 되어 있는 그것도 물론 문제는 문제지마는 그것보다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돼 있다 하는 그런 표시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구약 성경이나 신약 성경이나 “예수님을 잘 믿으면 육신이 잘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만 신구약 성경의 전체의 증거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그런 일 하면은 저주받아서 육신의 모든 일이 다 망하게 되고 다 절단나고 자기만 골빠지게 노력해도 성과는 없게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해 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를 잘못 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교는 잘 믿으면 세상에서 잘되고 잘못 믿으면 세상에서 잘못된다. 뭐 천국이니 내세니 하는 그거는 다 그거는 공연한 소리고 예수 믿는 도가 잘 믿으면 세상에서 잘되고 잘못 믿으면 세상에서 망한다.’ 이렇게 하는 주장들이 강하게 돼 가지고 예수님 당시도 바리새교와 사두개교가 있었습니다.
사두개교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순전히 하나님 섬기는 것은 세상과 육신 것만 잘되고 못되는 것이지 뭐 하늘나라나 부활이나 그런 게 어데 있느냐? 그런 것은 다 하나의 위로를 주고 하나의 사람들을 권선,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도록 하기 위해서 권선징악의 하나의 방편이지 참으로 하늘나라가 있는 줄 아느냐?’ 그렇게 생각을 해서 예수님 당시에 사두개교라 하는 그 교가 심히 왕성됐던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말하고 하나 교파적으로도 여호와의 증인이니 벌써 저런 교파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는 그 소망은 아주 부인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안돈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정말로 뭐 하늘나라에 뭐 있느냐 하고 하늘나라의 구원을 아주 부인합니다. 그것이 내나 여호와의 증인이라 하는 예수교입니다.
또, 그뿐 아니고 부활도 믿고 천국도 믿고 이렇게 교리와 논리적으로는 믿는다고 말을 하지마는, 우리 장로교 교리가 교리적으로는 제일 건전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교파인데 장로교의 신자들도 하늘나라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구설에 지나지 못하고 실상 그들이 뭘 믿고 있느냐, 뭘 바라고 있느냐? 바라는 것은 어짜든지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잘 되는 그것을 바라고, 또 죄짓고 하면은 무슨 징계나 저주받아 가지고 세상에 안 될까 해서 그라는 것이기 때문에 사두개교가 아니고 부활과 하늘나라를 믿는다고 하기는 하지마는 실상으로 바라고 상대해서 자기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다 땅의 것들이더라 그거요.
이것은 다 성경을 그래 보면 전부가 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서 볼 만치 그렇게 ‘예수를 잘 믿으면 이 육신과 세상, 다시 말하면 세상의 것이 잘되고 잘못 믿으면 세상 것이 망한다.’ 이렇게 말해 놓은 것이 성경에 거의 전부라고 할 만치 그래 돼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치우쳐 가지고서 일방적인 해석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 알아서 그런 것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잘 믿으면 육신의 일이 잘됩니다. 육신의 일이 잘되고 세상 일이 잘됩니다. 뭐 인인관계도 잘되고, 사물관계도 잘되고, 또 이 자연관계도 잘 됩니다. 자연이 도와 주고 사물들이 도와 주고 모든 사람들이 도와 주고 이래서 모든 일이 다 잘 형통해져 나갑니다.
‘뭐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뭐 예수 믿는 사람 하나 하나에 대해서 그렇게 우주를 움직이고 모든 이 자연들을 움직이고 모든 인류 사회를 다 움직이고 그렇게 만물들을 다 움직이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너무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믿지를 못하고 다 부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창집회 가서도 우리가 잘 봤습니다. 하나님이 그 한서를, 춥고 더운 것을 우리 위해서 우리 전국을 움직인 것을 우리가 봤습니다. 또 비 오고 비 그치고 하는 것도 우리가 얼마든지 이번 집회 가운데는 다 하나님이 개별 개별을 섭리하셔 가지고 역사하신 것을 우리가 잘 보았습니다.
또 거게 참석하는 사람들의 개인 개인의 그 모든 신체상 모든 그런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기적으로 돼서 뭐 무슨 병 나은 것도 다 그러하지마는 그렇지 안한 것도 밥맛이 있고 소화 잘되고 아주 기력이 아주 청청해서 그 집회를 잘 마치는 그런 거, ‘그럴 때라 그렇지’ 하는 사람들은 그럴 때라 그렇지 이리 되고, 또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라’ 그렇게 깨달은 사람은 또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자꾸 뭐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때 기후로 말하면 관상대에서 우리 집회 하는 그 주간이 전국에 일 년 중에 제일 더울 것이라고 그 모든 이제까지 모든 관상대서 보고 그렇게 신문에 많이 떠들고 했는데 그 주간이 굉장히 시원했습니다. 여게까지도 시원하고 전국이 시원했습니다.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또 뭐 이상 기온이라 말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또 그라고 ‘우리 때문에 한창 농사지을 때에 일기가 서늘했으니까 이 농사가 잘못되면 어짜나?’ 하는 그런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때문에 이 농사가 잘못되면 어짜나? 제일 고비에 일주간 동안이 그렇츰 서늘해졌으니 아무래도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집회 때문에 이렇게 서늘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때문에 서늘해서 농작물에 피해가 있다고 하면은 이것이 다 공평된 그 심판에 가 가지고 무엇이 문제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하는 그것을 기도하고 ‘하나님이 거게 대한 기후의 그 열도를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이 보충해서 우리 집회 때문에 우리 나라의 이 민족의 농작물에 손해가는 일이 없어야 떳떳하지 있다고 하면은 그것도 문제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들은 많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금년에는 기후가 그 보충이 되고 남을 만치 이상 기온으로 더워졌습니다. 더위가 계속 됐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은 너거 육신이 잘된다’ 이렇게 말해 줬습니다. 또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너희들이 이 육신의 온갖 면이, 온갖 이런 면 저런 면 이런 종류 저런 온갖 종류의 손해를 봐도 너희들이 하나님의 도를 배반치 안하고 그대로 지키게 되면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여러 배 백 배나 더해 주겠다.’ 그렇게 하나님이 약속을 했습니다.
이라니까, 얼핏 보면 ‘예수교는 순전히 그것도 내나 이 사두개교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 소망이요 세상 축복을 위해서 한 것인데 그 봐야 천국 말은 뭐 뜨문뜨문 가끔가다 한 마디씩 끼어 있고 전부 육신의 이야기만 해 놨는데 그 천국 소망이라 하는 그것은 다 가짜다’ 이렇게 여길 만치 교파적으로 들고 나온 그런 교파들도 있고, 또 믿는 사람들도 거의 이 하늘의 소망과 영계의 영원한 이것을 말은 하기는 하면서도 실상 그 사람이 바라보고 의지하고 노력하고 지금 구하고 있는 것은 내나 땅의 것들이더라 그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 그러면 그만 세상 것은 다 부인해 버리고 하늘나라의 것만 잘되도록 그렇게 했으면 좋을 것인데 예수 잘 믿으면 세상 것 잘되는 이런 일 했는가? 그것은 그 모든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가 다 그러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해서 육신의 것이 잘되거든 육신의 것이 잘된 그것을 보고 기뻐할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주재자시요, 개별 주권 섭리자이시요, 대주재요, 또 만주의 주이신 그분과 그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맺어지고 잘 맺어진 것만치, 백분의 일이 잘 맺어졌으면 그만치 육의 축복이 오고, 백의 오십이 잘 맺어졌으면 그만치 축복이 오고, 백의 백이 잘 맺어졌으면 그만치 축복 오는 거, 육신의 이 세상 일로 인해서 볼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돼 있는 거,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돼 가지고 있는 그것이 곧 영원 무궁세계의 구원인 것인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가 어떤 직장에 가서 일을 할지라도 사람 보기에는 꼭 같은 그 일을 합니다. 한자리에서 둘이 일하고 둘이 매갈고 또 한자리에 같이 누워자고 이렇게 가견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 형태는 꼭 같지마는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한 그 중대한 영원한 차이가 어데 있는가? 그것은 하나는 땅의 것을 위해서, 이런 분야 저런 분야에서 땅의 것을 위해서 일을 했고, 한 사람은 땅의 것을 위해서 일한 것 같으나 하늘의 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피공로 이 세 가지와 관계를 바로 맺기 위해서 그 분야에서, 그 일에서 그 세 가지 관계를 바로 맺고, 이 노동에서, 생각에서, 이런 사업에서, 직업에서 거게서 이 세 가지 관계를 바로 맺는 그것이 제 소망이요 또 그것이 목적이요 그걸 위해서 주력을 하고 가견적인 볼 수 있는 이 외부의 것은 다만 이 세 가지를 만드는 공장이라, 장소라, 또 그 모든 외형이라, 껍데기라 이렇게 할 수 있을 만치 생활했기 때문에 속에 알맹이 그거 만든 사람은 가고 만들지 못한 사람은 다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신앙 생활을 바로 하면 육신의 모든 일이 잘된 그것으로서, 육신의 잘된 그것을 우리가 소망하고 잘할라 하는 게 아니고 육신의 그것이 잘될 때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표로, 증표로, 기뻐하는 증표로 이것을 주시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신앙 생활을 한다고 열심히 하지마는 여기 말씀하시기를 “성전 기초만 닦아도 그날부터 축복한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아침에도 배웠는데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은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거 새벽에 안 나왔기 때문에 또 재독해야 돼요. 고린도전서 3장 16절 읽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옛날은 물질로 만든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이었지마는 그거는 참 성전의 모형이고 참 성전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래서, 그때에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신 약속이나 오늘에 성전에 대한 약속이나 성전에 대한 약속은 변경이 없습니다. 변경이 없고 다만 그때는 물질로 만들어 가지고서 집을 성전이라고 이랬지마는 오늘은 예수님의 피로 대속하신 성도들을 가리켜서 성전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성전은 뭣이 성전인고 하니 우리 영이 성전이요, 우리 마음이 성전이요, 우리 몸이 성전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 인류 시조가 범죄함으로써 우리 사람들은 마귀의 전각이 돼 있었습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 안에 우리 몸 안에 들어와 가지고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악령, 악성, 악령이 주관하니까 우리 사람의 본성이 악성이 됐고, 악령과 악성으로 행동하니까 한 행동 두 행동 그것이 자꾸 악한 버릇이 돼 가지고 자꾸 쌓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계약에 따라서, 하나님이 대속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영 안에 계시고 우리 마음 안에 계시고 우리 몸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그 신격이라는 그 신격이 우리 사람의 인격이라는 인격과, 이 신격과 인격이 서로 교제하고 결합돼 가지고 하나님의 그 신격이 우리의 인격 속에 와 가지고 내주하셔서 우리를 주관하시고 우리를 책임지시고, 우리를 주관하신다는 것은 참이 우리를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은 진리가 우리를 주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하시고, 또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보호하는 것은 진리, 하나님이 우리를 진리로 보호하고, 또 완전으로 보호하고, 영원으로 보호하고 참 모든 완전한 거, 하나님의 속성의 사랑도 완전한 사랑이요, 또 진실도 완전한 진실이요, 거룩도 완전한 거룩이요, 지식과 지혜도 완전한 것이요 그 완전한 걸 가지고 우리를 보호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공은 어데 있는가? 우리의 성공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성공은 외부적으로 말하면 먼저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되는 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과거에는 마귀의 것이 됐고, 과거에는 마귀의 것이 됐고 내것이 됐는데, 내가 내것된 것은 그게 곧 마귀의 것입니다.
여러분들 요거 아십시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에 인간은 자주자로 살지 못하도록 지었습니다. 인간은 꼭 피소유격으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격이 되든지 마귀가 주격이 되든지 인생은 독립할 수 없는 존재로 지었습니다.
지은 것은 하나님이 내주하시고 주격이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격이 돼 가지고 있어야 요것이 행복되고 모든 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그 위치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공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내라는 이 내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 되는 것이 이것이 일차적으로 성공입니다. *주님의* 것이 된다 말은 완전의 것이 된다 말이요, 완전자의 것이 된다 말이오. 내것이 완전자의 것, 내 마음이 완전의 것이 되면은 내 마음은 살았습니다. 내 소유가 완전의 것이 되면 그는 영원히 멸해지지 않습니다. 내 인격이 완전의 것이 되면은 그 인격은 영원히 멸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는데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것을 기쁘지 안하고 내것이 돼야 좋다 하는 그것이 내나 악령과 악성으로 말미암아 원죄성 그것이 착각돼 가지고 그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것이 되고, 또 하나님의 종이 되고, 그러면 이제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나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체가 됩니다. 하나님의 수족이 된다 말이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되면은 우리 안에 전지자, 전능자, 완전자가 계셔 가지고 내 안에서 역사하니까 내 손은 전능자의 손의 역할을 하게 되고, 내 발은 전능자의 발의 역할을 하게 되고, 내 입술은 전능자의 입술의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지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체라.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몸이 되고, 그 다음에 대외 관계 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고, 하나님의 선지자 되고, 하나님의 왕이 돼 가지고 모든 우리 몸 밖에 있는 피조물들을 다 통치하고 시은하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공은 하나님의 전이 되는 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성공인데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되면은 ‘계시는 그때부터 이전을 추억해 보라, 하나님이 계시기 시작하기 전을 네가 추억해 보라, 하나님이 계신 후와 비교해 봐라, 비교해 보면 아주 판이한 것을 알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전 지대를 쌓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은 벌써 하나님의 성전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을 이제는 하나님을 모셔서 내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 돼야 되겠다, 또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돼야 되겠다.’ 자기 마음과 자기 몸, 다시 말하면 마음과 몸과 영을 합하면 그게 뭐입니까? 영과 마음과 몸을 합하면 그게 뭐입니까? 인격입니다, 인격. 알겠습니까? 내라는 인격 속에 하나님이 내주하셔 가지고 하나님은 내 인격의 주인공이 되고 나는 하나님의 그 주인공의 모든 지체가 되어지는, 내 모든 영육이 되어지도록 이렇게 되는 것이 우리의 성공인데,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이 성공인데, 그러면 우리의 목적은 뭐이냐? 그라면 여게, “모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와 열국을 다 진동시켜 가지고 모든 세계에 보화를 다 네게로 몰아붙이겠다” 이러기 때문에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됩니다. “몰아붙이겠다” 우리 기독교가, 구약 성경을 보면은 조그만한 나라지마는 하나님과 바로 관계를 가졌을 때에는 세계를 통치했습니다. 세계를 통치한 것이 영토적인 통치를 하지 안했고, 그건 괴롭기 때문에. 세계 통치한 것은 온 세계가 땅 끝까지 와 가지고서 조그마한 이스라엘 나라에게 조공을 바치고 이스라엘 나라에게 모든 지도를 다 맡겨서 이스라엘은 세계를 재판하는 재판장이 되었고 세계를 지도하는 지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솔로몬 당시에도 저 땅 끝에 있는 나라가 다 솔로몬에게 와 가지고 모든 그 국정의 지도를 다 받아 가지고 했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면은 하나님께서 외부에 눈에 보이는 나타나는 그 모든 것에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기적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그 증거가 모든 물질로 증거가 되고, 또 모든 인인관계로 증거가 돼지고, 사물관계로 증거가 되어지고, 우리 자체에 대해서 증거가 되어지고 이 증거가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이 과연 되어져 간다 안 간다 하는 것을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져 가나? 안 가나?’ 하는 것을 우리가 이 결과인,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간다 안 간다 하는 것을 우리가 뭘로 알 수가 없습니다.
알기는 자기 마음 자기가 물론 판단해 가지고서, ‘내 마음에 지금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내 마음 안에 계신다’ 하는 것을 우리 주관으로 물론 이성 판단 가지고서 ‘지금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에 계신다, 내가 하나님을 모셨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지마는 우리의 마음 그 자체라는 것이 믿을 수 없도록 참 만물보다 거짓된 마음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러니까, 성전이 잘못됐는지, 잘돼 가고 있는지, 거짓부리로 속아서 지금 성전이 안 돼 가고 있는지 그것을 우리가 잘 시험해 보고 하나님의 성전이 바로 돼 가야 되겠는데 바로 돼 가는 그것을 뭘 보면 바로 돼 가고 안 되는 것을 알 수가 있을란가? 하나님의 성전이 내가 바로 돼 가는지 바로 안 돼 가는지 뭣을 보아서 알 수가 있을란지 그것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것이 여게서 성경이 다 가르칩니다.
네가 바로 되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다, 또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축복을 해 주신다, 여러 배 백 배를 주신다, 또 믿음의 조상 이삭도 당년에 그 농업에서 백 배 얻었다, 백 배라 하는 그거는 논 한 마지기에 쌀 요새 한 세 가마니 네 가마니 나면 잘 나고 밥맛 있는 쌀은 세 가마니밖에 안 난다 하는 것인데 이거 네 가마니 난다고 하면은 이거 참 굉장히 많이 나는 것인데 백 배라면 사백 가마가 나야 될 거 아니겠소? 그거 어떻게 되겠소? 하나님이 거짓말 했겠습니까? 농사 짓는 추수로 그 해 백 배가 왔다 하는 것을 공포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게 다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돼서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되는 것은 뭐이냐? 바로 되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몸이 되고, 또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왕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고, 하나님은 우리 머리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몸이 되고 이렇게 되어지는 인제 이 조물주와의 영원한 관계 이것이 우리 목적입니다. 이게 목적이*요* 이것 때문에 우리가 성전 될라고 애를 쓰고 하나님의 지체 될라고 애를 쓰는 것인데 하나가 되면 다른 것이 다 됩니다.
성전 되면 지체 되고 이래 되는 것인데, 그러면 그렇게 이것이 바로 돼 나가는지 안 돼 가는지, 바로 돼 가는지 안 돼 가는지 이것을 우리가 뭘 봐서, 봐야 잘못돼 가면 참 그거 고쳐야 되겠고, 또 바로 돼 가면은 좋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의 이 관계, 이 관계는 영원한 구원인데 영원한 구원인 이 하나님과의 이 관계가 바로 돼 가는지 안돼 가는지 뭣을 봐서 우리가 보고 하겠습니까? 이 시계가, 시계가 이거 바로 됐는지 안 됐는지 침을 맞춰 놓고 뚜껑 딱 닫아 놓고서 이래 보니까 시간이 한시 지나갔으니까 두시인데 이거는 세시가 됩니다.
또 이거 지금 두시라야 될 터인데 이건 또 지금 삼십분밖에 안 됐습니다. 그라면 그 시계, 시계가 병 났소 안 났소? 속이 잘못됐습니까 잘됐습니까? 이 겉어머리 봐서 속에 바로 됐다 안 됐다 하는 그것을 아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영원한 관계, 영원한 하나님과의 이 관계, 영원한 관계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을 뭣을 보고서 우리가 알고, ‘요 바로 됐는가보다’ 안심을 하고 ‘요 잘못됐으니까 요거 고쳐야 되겠다' 그 뭣을 보고서 바로 됐는지 안 됐는지 하는 것을 우리가 표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습니까? 뭣을 보아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볼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 돼 가나 안 돼 가나,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나 안 계시나 하는 이런 것이 바로 됐는지 안 됐는지 하는 그것을 뭘 보아서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뭘 보아서 알아야 되겠습니까? 뭘 보아서 알아야 되겠습니까? 요걸 똑똑히 압시다.
뭘 봐서 알아야 되느냐? 아는 것은 우리 이 육신의 일, 육신의 일, 내 자체의 신체적인, 신체적인 면이 잘되는 그걸 보고, 또 우리 소유적인 물질 소유 그거 잘되는 걸 보고 알고, 또 우리 모든 이 사업이 잘되는 것을 보아서 알고, 또 모든 인인관계가 잘되는 걸 보아서 알고, 또 내 행위가 과거에는 둘을 할라 하면 하나도 못 하게 되는데 이거 행위가, 내가 과거에 아무리 결심해도 찬송 하나 부를 때, 한 절 부를 때 마음이 벌써 세 번 네 번 바꿔지고 잡된 것이, 자꾸 생각 안 해야 될 것이 자꾸 세 번 네 번 들어왔는데 찬송 한 장을 해도 들어오지 안하고 하루 종일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안하고 내 마음이 변화돼 가는것, 내 자체가 성화돼 가는 것, 인인관계, 사물관계, 모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뭐 멸시, 천대, 존대받는 거, 환영받는 거, 협조받는 것, 이 모든 이 세상 일, 이 땅에 속한 세상 일 이런 것들이 잘되는 것을 보아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돼 가는가보다’ 생각을 하고, 이것들이 잘못될 때에 ‘이거 잘못된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못 됐는가보다’ 하는 그것을 찾아 가지고서 고치도록,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된 이것을, 이것은 육체의 모든 일이, 이 세상 일이 잘된다 요렇게 단정을 지우십시오. 단정을 지우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이 육신의 이 모든 일이 잘못된다.
그러기 때문에 육신의 모든 일이 잘못된 이것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못됐다는 요것을 우리는 미루어서 진찰이나 진단을 하고, 미루어서 진단을 하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점 그것을 고치도록 애를 쓰는 우리가 되어져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되면 육신의 일이 잘돼서 자기의 몸도 튼튼하고 좋아지고, 또 자기 모든 사업도 잘돼지고, 모든 가정도 잘돼지고, 모든 사물도 잘돼지고, 또 이리 되면은 모든 사회적으로나 인인관계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지위적으로나 모든 면이 다 잘되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잘못되고 요렇게 우리가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요것을 확정을 짓자 그거요.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 일이 잘 되기 위해서, 세상 일이 잘 되기 위해서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느냐?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하는 그것이 내 목적이어서 세상 일이 잘못됐으면 세상 일 잘못된 그것이 세상 것이 잘못돼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나와의 볼 수 없는 그 영원한 보배가 잘못된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표시가 됐기 때문에 우리는 잘못된 그것을 보고서, 이 세상 것 잘못된 걸 보고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그걸 보고서 ‘요거 잘못됐음으로써 하나님과 나와의 잘못된 것을 표시해줬다, 표시해줬다.’ 그 사람이 기침을 콜록콜록 하는데 의사가 떡 보고는 ‘야 너 기관지염에 걸렸다.
이 사람 폐병에 걸렸는데 지금 그걸 낫우지 안하고.’ 기침을 보고서 속에 보이지 않는 폐가 병 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뭣이 잘못되면 ‘요것은 하나님과 나와 볼 수 없는 그 이면에 영원한 이 보배로운 관계가 잘못됐다’ 하는 그것을 발견하고, 요 세상 거 잘못되면 그걸 가르쳐 줬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어서, 세상 것 잘못된 걸 보고 탄식하는 거 아니고, 세상 것 잘못된 걸 보고서 탄식을 해야 됩니까 기뻐해야 됩니까? 기뻐해야 됩니까 탄식해야 됩니까? 기뻐해야 됩니다. 그러면 세상 것 잘못된 게 좋습니까? 기뻐하는 거 왜 그러냐? 이거 잘못됨을 인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영원한 것이 잘못된다는 걸 발견됐기 때문에 기쁘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기쁩니다.
그러면 우리가 또 원하는 것은 세상의 이 모든 것이 잘되기를 원해야 됩니까 못되기를 원해야 됩니까? 자, 잘되기를 원할 사람 손들어 봅시다. 잘 되기를 원할 사람 손들어 봅시다. 녜, 나도 잘되기를 원합니다.
왜 잘되기를 원합니까? 왜 잘되기를 원합니까? 잘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이면에 하나님과 나와의 그 관계가 잘되는 것이 잘됐다고 표시가 나기 때문에, 시계 속에 내부 조립이 잘 됐으면 이 침이 똑딱똑딱 가면서 시간이 맞기 때문에 그거와 마찬가지로 주님과 나와의 그 이면에 이 사실이 잘돼 가지고 있으면은 겉어머리 이게 잘되기 때문에 겉어머리 잘된 그게 좋아 그런 게 아니라 내부가 잘됐다는 그것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또, 이 겉어머리가 잘못되면 겉어머리 잘못됐으니까 그것이 돈이 적어져서, 회사가 뭐 고장이 나고, 사업이 무슨 병이 나고, 자기 몸에 무슨 병이 들고, 그만 다른 사람이 자기를 그렇게 공연히 인인 성사가 안 되고, 인인 해독을 만나게 되고 이래 하는 것이 그것이 잘못된 그것이 손해가고 해서 섭섭한 게 아니라 그게 잘못된 그것은 안에 하나님과 나와의 잘못됐다는 그대로 표시된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그것으로 걱정하는 게 아니고 그 표시는 하나님과 나와의 잘못됐다는 그걸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인해서 걱정하고 우리가 즉시 거게서 착수해 가지고 그 일을 바로 시정해 나가도록 그렇게 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변하지 마십시오.
요것이 뭐 우리 총공회 교역자들 가운데에서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많이 있는 것은, ‘목사님이 요새는 설교를 어째 자꾸 육신적인 설교를 하고 땅의 설교를 한다, 육신적인 설교 하고 땅의 설교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말하면서 ‘목사님이 요새 설교가 깊지 못하고 얕아지고 얕아져 가니까 자꾸 걱정이 되네. 우리 스승이 자꾸 깨달음이 깊어지지 않고 얕아지니까 걱정이 되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거에 깨달은 것보다 좀 깨달음이 자꾸 달라집니다. 나는 그 깨달음을 알고 과거에 모르던 그 깨달음을 알아서 나가나 그들은 몰랐기 때문에 그래 하니까 차차 차차 따라오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꼭 여러분들,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은 사두개 교인과 마찬가지로, 사두개 교인은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지 않고 땅의 소망 위해서 하나님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두개 교인과 같이 우리가 땅의 것을 바라서 예수 믿는 것 아니고 땅의 것이 이것은 뭐이냐? 속에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됐다는 그것을 표시하는 하나의 표시라, 표시판이라.
볼 수 없는 그 사실을 표시하는 표시판이니 이게 잘되면 이것이 잘돼서 좋은 게 아니라 이게 잘된 것 보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됐기 때문에 기뻐하고 이것이 잘못됐을 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됐기 때문에 이거는 표시하는 것이니까 여기 이것에 내가 소망 가진 게 아니고 이건 다만 표시니까 이거 잘됐을 때 기뻐하는 것도 이게 잘됐다고 기뻐하는 게 아니고 이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게 잘된 거 보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됐다 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이게 잘못됐을 때는 그게 잘못되니까 돈 없어 회사가 병났다, 내가 병났다 뭐 하는 게 아니라 이것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못됐다는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걱정하고 어서 근본에 가 가지고 하나님과 나와의 잘못된 그것을 고쳐서 바로 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생활이 돼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변동하지 맙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기 몸이나, 자기 가정이나, 또 자기 소유나, 자기 사업이나, 자기 명예나, 자기 지위나, 자기 권위나, 다른 사람한테 욕 얻어먹는 거는 영광 명예가 절단난 거 아닙니까? 이제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다는 볼 수 없는 그 사실을 하나의 표시하는 표시판이다. 표시하는 표시판이다. 이러기 때문에 이게 잘못됐으면 내부가 잘못됐기 때문에 어서 그것을 다시 수정해라.
그러면 수정하는 것은 내가 수정하는 것이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수정하는 게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는데 수정하는 그것이 바로 수정이 돼 가는지 안 돼 가는지 그것을 뭘 보고 알아야 되겠습니까, 뭘 보고 알겠습니까? 여기 저 양성원 학생, 저 저게? 그래. 뭣 봐서? 뭐라 하노? 상태를 봐서? 그런데 그만 표시판이라 하면 더 쉬워.
어짜든지 알아듣기 쉽고 무식한 말 쓰는 게 좋아요. 알겠습니까? 절대 고등 술어를 쓰지 마십시오. 고등 술어 아예 배울라 하지도 마십시오. 고등 술어는 저 고등 인물에 가지 이 서민에게 전혀 필요 없어. 고등 술어 쓰지 말고 어짜든지 서민들이 아는 쉬운 말, 쌍놈 말이라 하든지 무식한 말이라 하든지 어짜든지 쉬운 말, 알아듣기 쉬운 말로서 그 내용의 뜻만 잘 표시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 제일 좋습니다, 우리는 다 그걸 초월해 있기 때문에.
그러면, 표시판, 우리의 이 모든 것을 주님과 나와의 관계에 표시판인 줄 알고 이제 표시판이 잘못됐으면은 저 안의 것이 잘못됐으니까 고칠 때에 뭘 보고 고칠랍니까?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내가 고치는데, 고치는데 뭘 보고 ‘고쳐지나 안 고쳐지나?’ 뭣을 보면서 고쳐야 되겠습니까? 표시판을 보고 고칩시다.
알겠습니까? 요걸 꼭 잡으십시오. 표시판을 보고서 고칩시다.
표시판이라니? ‘어짠지 이거 뭣인가 좀 속이 껏껏하게 소화가 안 되네.’ 소화가 안 되면은 고 표시판이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뭐인가 잘못됐다. ‘머리가 띵하다.’ 아! 이거 표시판이다. 관계가 잘못됐다. `오늘 다른 사람이 나를 공연히 욕을 하네.’ 이게 표시판이다. 주님과 나와 뭣이 잘못됐다. ‘이거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나를 해하고 이래 자꾸 이리 모략 중상을 하고 나를 자꾸 헤벼파고 긁어서 나를 절단낼라고 하고 있네’ 할 때에 그때 이게 표시판이다. 주님과 나와의 그 관계가 잘못됐는가 살펴보자.
실컷 고치는데, 고치는 데 아직 잘못됐다고 하면은 그 사람이 나를 욕을 하고 해치는 것인데 해친 것이 얼마 지나고 나니까 그 해친 것이 도리어 큰 축복으로 바꿔져 버리고 말 때도 있더라 말이오. 알겠습니까? 그런 거 없읍디까? 그 사람은 나를 해했는데 해한 그것이 나중에 보니까 그 사람은 해한다고 했지마는 결과적으로 보니까 해한 그것이 내게 대해서는 큰 도움을 줬더라, 그렇게 정반대로 아주 역효과 나는 것을 경험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경험 없습니까? 경험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경험 있는 사람? 우리가 다 경험했어. 그거 없으면 예수 잘 못 믿었어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오늘 저녁에 배우는 것은 여러분들 그저 우리가 육신주의 아니오. 우리가 그렇다고 해 가지고 이 세상에 육신의 잘되는 그것이 우리 소망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주님과 나와의 영원하고 완전함이 어떻게 돼 가지고 있나 하는 표시판으로 하나님이 정해 줬기 때문에 이 표시판을 봐 가면서 고치고 표시판이 바로 됐으면 안심을 하고 이게 잘못됐으면 그거 고치고, 또 고칠 때도 ‘고쳤는데 내가 잘 고쳤나 못 고쳤나? 잘 고쳤나 못 고쳤나?’ 제 주관으로서 잘 고쳤다 아니고 고쳤으면 반드시 표시판에 나타나니까, 이 표시판에 나타나니까 이 표시판을 보고서 고치도록 하라.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잘 만듭시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내가 오늘 증거할라고 준비한 것은 지금 따로 있는데 요것만 지금 증거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그것은 증거를 하겠습니다. 이제 표시판과 같이,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이 만들어지는 데는 어떻게 우리가 만들면 되겠느냐? 만드는 것도 보이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 있고, 보이지 않는 이면의 것을 만듦으로써 보이는 외부의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 있고, 밖에서 만들어 들어가는 것 있고 안에서 만들어 나오는 것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만드는데 대해서는 내일 아침에 증거를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배운 거 요거 변치 마십시오. 요 마귀가, 나가면 요거 가지면 마귀 요놈이 지금 그렇지 않다고, ‘그거는 순전히 유물주의다, 육신주의고 물질주의다, 예수 믿는 게 공연히 뭐 그러니까 세상복이지.’ 그거는 사두개교라고 할 것이오.
사두개교라고 욕을 할 것이오. ‘그거 백 목사는 사두개교라’ 이렇게 욕을 할 것입니다. 아니오. 당치 않소.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는 절대 진리입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마귀에게 많이 속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렇게 우리가 실지로 느껴서 그렇게 효력 있게 정확한 참 진리로 우리는 믿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는 과학을 말해. 과학은 물리를 말합니다. 과학적이라 말은 물리적이라 그말입니다. 우리는 진리적의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꼭 우리는 주님과 나와의 영원한 관계를 지금 맺어가는데, 이거는 영원한 관계요 완전한 관계인데 이 완전한 관계가 바로 됐는지 못 됐는지 이거는 통통 영 뭐 백프로 잘못돼도 저는 의인인 줄 알고 사는 것이 이 세상이니까 기가 찬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과 나와의 그 관계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그 표시는 뭘로 표시가 돼 가지고 있느냐? 자체, 자기에게 속한 자기의 가정, 자기의 소유, 자기의 사업, 자기의 모든 지위, 권세, 명예, 자기의 사업, 자기 권위, 자기 영광 이것이 표시판이다. 우리가 그걸 바라는 게 아니라 표시판이 이게 잘못됐으면 그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걸 보고서 보이지 않는 그것을 고쳐 가면서 살아 이 모든 것이 표시판인 줄 알고 이것 잘못되면 그거 잘못된 거 가지고 저 속에 이면이 잘못 됐기 때문에 어서 그거 고쳐가자. 그런데 우리는 소망은 이 표시판이 우리 소망이 아니고 속에 있는 그것이 우리 소망이라 하는 것을 굳게 잡고 나아갑시다.
요거 단단히 가져요. 오늘 저녁에 이 말씀하신 것을 이해가 정말로 이해가 돼서 알아들은 사람들 미안하지만 손 한번 들어 주십시오. 알아들은 사람들? 이해가 되고 알아 들은 사람, 손을 뻐뜩 한번 들어 봐요. 예, 그만하면 됐습니다.
그러고, 새벽기도 나와요. 새벽기도 나와야 심령이 밝아지는데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됩니까?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들은 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귀를 뚫으십시오. 귀를 뚫어요.
지금 저 산에서 지금 있는 사람들 있습니다. 내가 오늘 어떤 사람 내려올라 하기 때문에, 오랫 동안 예수 믿어도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 있어요, 진리를. 이래 올라 하기 때문에 좀 더 있다 오라고 이랬어.
자꾸 재독을 듣고 들으면은 겨우 알아듣습니다. 하나님의 이 도를 알아들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다른 데서 억만금을 준다 해도 못 갑니다. 이 도리를 알아들은 사람은 이 진리를 떠나서 제가 딴데 가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보배가 없는데 뭐 보배 두고서 똥덩이 찾아서 따라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새벽기도 꼭 다 나오도록 하십시오.
요새는 새벽기도 약 천명 나옵니다. 구백명은 조금 넘습니다. 약 천명 나오는데 또 조금씩 줄어갑니다. 저 아래는 약 천명 나왔었습니다. 저쪽에 앉은 사람들이 한 약 이백명 여기 하고 양쪽에 앉은 사람 이백명 됐고 여기서 한 팔백명 됐고 그래서 약 천명 나왔었습니다.
이런데, 또 자꾸 우리가 결심하고 작정하고, 작정하고 삐뚤어졌으면 또 회개하고 또 작정하고 자꾸 그라는데서 돼져요. ‘사람이 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정월 초하룻날 마음 먹은 것은 섣달 그믐날까지 가야 되지 사람이 말해 놓고 변해? 말해 놓고 변해?’ 그 사람이 잘난 사람이요 거짓말쟁이요? 잘난 사람입니까 거짓말쟁이입니까? 거짓말쟁이야. 네까짓 게 무슨, 통계가 다 그게, 네가 변하는 것을 요리저리 네가 어누리 해 가지고 꿰어 맞췄지 안 변하는 게 없어.
그러니까 작정해도 변하지요, 뭐. 또 내일 새벽 새벽기도 나온다고 작정해 놓고 또 못 나와서 밥도 굶고, 또 밥도 또 굶는다 하는 게 또 그것도 또 거짓말쟁이 모양으로 밥도 굶지도 못하고 그런 사람도 있지요. 내가 보니까 저 산에서 보고 ‘너거 남편 나오나?’ `안 나옵니다.’ 오늘 새벽에도 깨워 달라고 하더니마는 깨우니까 성을 내면서 안 나갈려고 한다고. 그래 가지고 밤에는 깨우라 해 놓고 아침에 깨우면 성낸다고. 내가 좀 깨우는 방편을 가르쳤어. ‘깨워라’ 이랬더니마는 내가 오늘 아침에 전화 걸어 보니까 새벽기도 나왔어. 나와서 내가 만났어. 손을 잡고 ‘나왔나?’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했어.
자,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어찌 됐든간에 나오도록 작정하고, 못 나오면 아침 굶고 점심 굶고 저녁 굶고 뭐 세 끼만 굶으면 ‘네 이놈, 이 고기덩어리 네 이놈 내가 새벽기도 나가겠다 해도 자꾸 못 일어나구로 했으니까 너 내일 새벽 안 가면 아침 굶고 점심 굶고 저녁 굶고 그 이튿날 내일 새벽 나가고 난 다음에 아침 먹인다.’ 이래 보십시오. 그러면 그놈 그만 버르징이가 딱 고쳐져 버립니다. 이 고기덩어리 버르징이를 고쳐야 돼요. 고기덩어리 못된 버릇대로 하면 안 돼요.
자,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오기로 작정하고 못 나오면 밥을 굶어도 굶고 새벽기도 나오든지 밥을 굶든지 그렇게 작정하고 그대로 할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인제 내일 아침에 여기 뻑뻑하겠구만. 이래 이래 자꾸 이래 들고 들고 하니까 한 사백 명이 천 명까지 올라갔어요. 이러구로 되는 것입니다, 자꾸 사람은. 드는 데서. 내일 아침에는 안 나오면 밥 굶어야 됩니다. 또 잊어버릴라? 자,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안 나오면 밥 굶을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예.
그라고 또 힘을 써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