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23:36
참된 성전을 건축하자
1986. 10. 1. 새벽(수)
본문:학개 2장 18절∼23절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그달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추억하여 보라” 미룰 추자 기억할 억자, 추억하여 보라 하면 구월 이십사일 이전을 생각해 보라 말입니까 구월 이십사일 이후를 생각해 보라 말입니까? 이전을 생각해 보라 말입니다. 이전을 생각해 보라 그 말이오.
“곡식 종자가 창고에 있느냐” 없다 말이오.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면 그때는 이 농사를 근본으로 두고, 그때나 지금이나 농사가 근본입니다,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뭐 장사 공업 이런 것, 모든 학업 이런 거 있지마는 제일 중요한 것이 농사입니다. 왜? 먹어야 되니까. 그래서 그런 말 있습니다. ‘만승천자도 식이위대라는 사람도 있고,위천이라.’ 만국을 통치한 그 왕도 먹는 것이 제일 왕이라, 먹는 게 제일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여게 성전 기초를 쌓기 이전에는 너희들의 모든 것이, ‘나무는 번들번들하이 있지마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말은 너희들이 이런 사업 저런 명예 뭐 이런 저런 기술 오만 것 다 가지고 있어서, 또 자리도 좋고 직장도 좋고 뭐 오만 것 다 구비하게 돼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결과가 없다 그 말이오. 결과가 없다.
사람이 암만 좋은 걸 먹어도 몸에 영양이 있어야 그 결과가 좋은 거고, 몸에 영양이 있어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그것이 올바른 행세를 해야 복이 되는 것이고, 뭐 올바른 행세하고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모두 다 칭찬하는 그런 행세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복을 안 주면, 자손을 짜다라, 아합왕 모양으로.
아합왕은 얼마나 손세가 왕성했던지 아들이 칠십 명이라, 물론 한 사람에게서 난 거는 아니겠지마는 칠십 명이라. 다 그때에 제일 최고의 학문을 가졌고 또 구비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에 칠십 명이 예후의 한 칼에 무찔려 가지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져가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결말이 좋아야 되는데 결말이 없다 그 말이오.
네가 이런 거 저런 거 해서 시작이 다른 사람이 보고 좋아서 놀라고, 중간을 봐서 좋아서 놀라고, 사람들 보기에, 일시 보기에 좋아 놀랬지마는 성전 쌓지 안하고 하는 인간의 결과는 다 결실은 없다, 결과는 다 망하고 만다 그말입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좀 뭣을,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좀 더듬어 봐서 아는 것이 좋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순 기적으로 먹고 마시고 걸음을 걸었지마는 거게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믿지도 못하고 원망 불평하다가 마지막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그때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딱딱 생각도 못 할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과, 그들이 또 인도함을 받을 때에 자기네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끌려오면서 아무 생각 없이 끌려오는 것과, 또 좀 괴로운 거나 깨닫고 끌려오는 것과, 자기가 걷는 걸음을 자세히 생각해 본 사람은 ‘아이쿠야, 이번에는 이제 죽었다. 수십 길 되는 이거 층암 절벽으로 이끌고 있으니까 여기서 사람이 안 죽겠나?’ 이라는데 나중에 보니까 죽지 안하고 지나왔고, ‘아, 여게는 강물이 있으니까 이 강물에 이제 다 빠져 죽는다.’ 그랬는데 또 뭐 어찌 됐는지 강물도 그래 지나왔고. 자기네들이 보고 미래에다 두고서 생각할 때는 ‘죽겠다, 하나님 인도가 망한다.’ 이랬는데 지나고 보니까 아무 어려움 없이 지나왔으니 ‘야, 하나님의 참 보호다.’ 얼마든지 겪을 수가 있었을 거라 그 말이오.
또 바다를 척 건넌 것도, ‘바다에 다 들어서라’ 하니까 다 죽을 지경 아니겠소? 이랬는데 바다에 물에 들어서 가지고 이래 쭉 오니까 이제 죽는다 하지마는 그때 뭐 인도를 안 받을 수 없고 인도받아 가지고 따라 가지고 이래 오는데,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건너와서 보니 육지로 건너왔고 바닷물이 다 그만 양쪽으로 갈라져서 그래 됐고.
이라니까 그런 것을 자기네들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걸음을 똑똑히 살펴봤으면 뭐 고비고비마다 놀랠 것이고 어려운 굴곡을 당할 때마다 놀래서 ‘아! 참 하나님 믿을 만한 하나님이라’ 의심 없이 믿고 담대히 따라갈 수 있었을 터인데 아무 그런, 눈에 보이는 거,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지 보이지 않는 그 이면 역사를 저들이 생각지를 안했다 그 말이오. 그래서 그들이 망했습니다. 우리도 자꾸 자기가 무엇을 이래 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성전을 짓지 안하고 성전이 허물어져 있을 때에는 암만 주 모아들여야 전대 밑구멍 떨어진 데 넣는 거와 마찬가지다. 네가 주워서 수입만 보지 돈이 나갈 때는 반드시 망치고 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돈아 돈아, 네가 나갈 때 부디 소리 없이 나가고, 또 나갈 때에 꼭 우리를 망치지 말고 그냥만, 돈 네가 나갈라면 네나 나가거라.’ 이랬는데 돈이 나갈 때는 꼭 꼭 망치고 나갑니다.
치료비로 나간다 해도 망치고 나가는 거, 시비에 재판 비용으로 나가도 망치고 나가는 거, 또 남한테 도둑맞아 가지고서 억울해서, 요 옆에 집에 그집에는 그때에 수십억 됐는데, 요새로 말하면 얼마가 될란지? 그때 재벌 중에 하나로 그랬는데, 돈 삼천만 원 어떤 사람이 떼먹었는데 그게 그만 마음에 아까워서 원통해서 분하고 분해 가지고 그것 때문에 그만 병이 간병이 생겼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걸로 죽지 안했습니까? ‘돈이 나가되 소리 없이 나가거라. 우리 망치지 말고 나가거라.’ 돈 수입만 된다고 소용이 있습니까? “전대 밑구멍 뚫어진 데에 넣는 것과 같다.
너희들이 부지런히 벌어서 막 꺼머들여서 해도 내가 바람을 불어 가지고 다 날려 보내서 하나도 남는 것이 없게 하겠다. 또 너희들이 아무리 뭐 온갖 과원에 요긴한 나무를 다 심어 가지고서 이 수입 저 수입 볼라고 이랬지마는 다 열매가 없어서 하나도 수입이 없다.” 이런 것이 다 뭐이냐 하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성전 짓지 안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성전을 무시하고 다른 일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이리 된다 하는 것이 학개서를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오늘은 무슨 날입니까? 구월 이십사일, 성전 기초 쌓던 그날입니다. 그날부터 하나님이 무슨 일 하시느냐 하면, “모든 너를 대적하는 자는 다 제대로 망하게 하고, 너를 대적하는 자는 네가 망치는 게 아니라 저거끼리 망치도록 그렇게 만들겠다.” 이렇게 말했어.
“그라고 너를 내 도장을 만들겠다” 도장 만든다 말은, 도장 한 일은 누가 책임집니까? 도장 한 일은 누가 책임집니까? 도장 주인이 책임진다 그 말이오.
“내가 너를 인을 삼는다” 그말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도장을 말이요, 인. “도장을 삼으리니” 그러면 너 하는 일을 내가 전부 다 책임지고 다 내가 하겠다, 책임지겠다 하는 그말입니다. 뭐하는 날? 성전 기초 쌓는 그날부터.
자기가 성전 만드는 것은 냅두고 너거 집에만 급급하고, 그저 성전이야 허물어지거나 말거나 어짜든지 수입 많고 이렇게 해 가지고서 부자로 평안하게 살라 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거처할 곳은 없으면서 너희들만 잘살라고 하기 때문에 너희들을 내가 멸망시킨다 그렇게 말씀했어.
그러면 하나님이 거처하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고린도전서 3장, 어제 봤지요? 16절에, “너희가”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전인 것과” 하나님의 전, 집 전자 말이오.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그러면 성전을 거룩히 해서, 자기를 이렇게 하나님이 거처하시는데 참 하나님이 거처하실 수 있도록, 더러운 내음새도 안 나고 불편하지 안하고 이렇게 성전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계시기에 좋도록 성전을 만들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온갖 축복을 해 주시겠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몇 가지가 하나님의 성전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십시오. 저 뒤에는 손가락 넷 드네. 녜, 세 가지. 녜. 우리의 영은 성전인데 변동 없고 우리의 마음은 성전이 됐다가 마귀의 전이 됐다가, 또 우리 몸도, 우리 몸의 기능도 하나님의 성전이 돼서 하나님이 우리 몸을 쓰시고 이렇게 계실 수도 있고 마귀가 쓸 수도 있고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이나 십자가에 대속하신 것은 마귀에게 뺏겨서 우리의 영육이 마귀의 전각이 되어 있는 이것을 뺏어서 하나님이 내주해 계시는 성전 만들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영은 문제할 것 없고, 됐고, 자기 마음을 하나님이 계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마음을 깨끗게 자기 몸을 깨끗게, 몸을 깨끗게 하는 것은 몸의 움직임을 깨끗게 하는 것이 몸을 깨끗게 하는 것이고 또 자기 마음을 깨끗게 하는 것도 마음의 움직임을 깨끗게 하는 것이라. 그 사람은 마음씨가 좋다 말은 마음 사용을 참 깨끗하게 한다 그 말이오. 그렇게 우리 마음과 이 몸을 하나님이 계실 수 있도록 깨끗하게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그만 그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겠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자, 우리가 가서 있는 데에 평안한 자리는, 제일 기쁘고 좋은 자리는 어떤 자리며, 우리가 제일 고통의 지옥이 되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뭣이 있는 데에 지옥이 됩니까? 방안에도 지옥이 되고, 예배당에도 지옥이 되고, 들에도 지옥이 되고, 지옥되는 이유가 뭐입니까? 뭐 있으면 지옥됩디까? 뭐 있을 때? 그런 소리는, 뭐 하나님 거하시지 않으면, 그거 다 그것도 하나님이 거하시면 거하시는데 뭘? 자, 우리가 뭐이 있으면 지옥이 됩디까? 자기의 원수가 있으면 지옥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사람이 뭐 초막이나 궁궐이나 아무 데 가도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은 자기의 좋아하는 사람, 자기 뜻에 맞는 사람, 자기 기뻐하는 사람, 또 자기 기뻐하는 일, 기뻐하는 일 기뻐하는 사람 이런 거 있으면 기쁘고 즐겁고 자기의 싫어하는 일, 자기 싫어하는 사람 있는 그 자리가 지옥입니다.
하나님도 그래.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기를 뭘 싫어합니까? 하나님이 뭘 제일 싫어하요? 마귀를 싫어하셔. 예수님이 “내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왔다”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까? 마귀를 제일 싫어하시요. 그 다음에 또 생존자 말고는 당신이 무엇을 제일 싫어합니까? 죄를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 중생된 자는 영 안에 계십니다. 영 안에는 중생된 자는 언제든지 계시기 때문에 영은 변동이 없고 영은 죄를 짓지 안하고 영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만 구원 얻고 이 마음은 하나님을 모시지 안하기 때문에 마음은 하나님 모시지 안한 그 시간은 망한 것입니다, 그 시간 행동은 망해.
마귀가 오면은 우리 마음을 마귀 그놈이 주장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행동은 다 마귀적이 되고 맙니다. 마귀적이라니? 마귀적이면 뭐 별게 마귀적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의 모든 것은 다 마귀적입니다. 그라면 ‘안 믿는 사람도 선이 있는데?’ 선이 있어도 마귀적이 아닌 것이 털끝만한 것도 없습니다. 요렇게 믿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오.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악령이 그를 주관하기 때문에 선도 마귀의 선이지.
소련에도 신학교가 있습니다. 소련에도 신학교가 있어. 이북에도 신학교가 있어.
그거는 뭐이냐? 믿는 사람을 삼켜서 멸하기 위해서 있는 그 신학교지 하나님을 섬기는 신학교는 아니라 그 말이오.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모든 도덕이 있고 뭐 선한 게 있는 거 같지마는 그거는 사람을 미혹시켜 멸망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지 참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구원 얻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그걸 또 뭘 보고 알겠느냐? 우리는 무엇이든지 하면서, 지금 산에 가서 있는 사람들이 수십 명 있습니다. 어제도 보니까 모두 가 가지고 뭐 그저 울며불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찾아 가지고 자기 잘못된 거 회개한다고, 그런 사람은 오면 결과가 있습니다.
○○○집사도 지금 산에 가서 거기 가서 뭐 먹다가 굶다가 이라면서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기도하는 이런 것도 자기가 알아. 자기가 아는 거 자기에게 무엇인가 자기 찾아서 잘못된 거 고치는 것이 있어야 효력이 있는 거고, 자기가 아는 대로의 자기에게 잘못되는 것을 고치는 게 있어야 되지 고치는 거 없으면 소용 없어.
또 과거에 자기가 하나님께 대해서 모르던 것을 새로 하나님께 대해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새로 고치고, 사람에게 잘못된 거 고치고 자꾸 이래 고쳐 나가는 것이 있으면 그 기도가 바로 되는 것이고, 그렇게 고생을 하고 수고를 해도 헛일 안 하고 다른 것보다도 더 수입이 많고 좋아지는 것이고, 만일 아무리 가도 시간이나 보내고, 집에 일도 못 하지, 또 거기 가서 잠도 못 자고 고생하지, 또 그게 잘못 되면 길들어 놓으면은 그만 혼자 조용히 가 가지고서 공기 좋은 데서 그저 뭐 누워자고 싶으면 자고 그렇게 또 아주 못쓸, 아주 방종한 자를 만들기도 쉬운 것입니다. 이러니까 내가 예수 믿는 게 바로 믿나 안 믿나 그것도 자기가 좀 경험해 봐 가지고 효력이 있어야 되지 효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어.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자,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이소.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자기 욕심대로 안 하고, 자기 감정대로 살지 안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계시면, 성령의 열매, 성령이 와서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열매라 말은 성령이 내 안에 와서 계시는 그 결과가 나타난다 말이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계시는 그 결과가 나타나. 표시가 나타나요. 표시가 나타나는데 여게는 결과 몇을 말했습니까? 몇 가지 말했습니까? 아홉 가지. 아홉 가지 결과가 나타난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자기 속에 하나님을 모신다고 이렇게 해도 자기 속에 시기심이, 또 분노심이, 남을 훼방하는 마음이, 남을 허는 것이, 자기 장점만 보고 남의 단점만 보는 것이, 사람을 이해하지 않는 것이, 항상 하나님 생각할라 해도 자기 욕심 자기 생각만 자꾸 나지고 자기 뜻만, 자기 비위, 성질만, 자기 취미만 자꾸 생각 나지면 그것이 뭐이냐? 자기 속에 마귀가 들어 있고 하나님이 들어 계시지 않는 증거라 말이오.
그러면 자기 속에 하나님이 계시는지 마귀가 자기 속에 있는지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봐서 알 수가 있어. 그걸 봐서 ‘아, 내 속에는 마귀 있구나.’ 그놈을 쫓아낼라고 애를 쓰고, 또 하나님이 자기 속에 와서 계시도록 할라고 애쓰면 계시고, 하나님이 와서 계시면 안다 말이오, 자기가 알아요.
이렇게 해서 자기 마음을 고치도록 애를 쓰고, 자기 몸의 행동을 고치도록 애를 쓰면 현저히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 환하게 나타난다 그거요. 환하게 나타나요. 그게 나타나야 인제 안심을 하지, 나타나야 안심이 무슨 안심인가? ‘이제 하나님이 내게 오셨고 내가 신앙을 바로 가져서 지금 하나님이 와 계시니 이제는 오신 하나님을 내가 쫓아내지 않겠다.
이제는 오신 하나님을 내가 밀어내고 마귀 이놈을 청하지 않겠다.’ 이래 가지고 자기가 보는 대로 하나님이 계시는 그 증거가 나타나는, 고쳐진 것만치 그것을 잡고 놓지 안할라고 애를 쓰면, 한참 있다 보면은 고쳐진 그거는 괜찮지마는 그거 고쳐지면 자기 마음이 밝아지기 때문에 밝아지면은 나쁜 게 자꾸 생각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회개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잘못된 것이, 나쁜 것이 자꾸 나오는 사람이 복이 있고, 망할 사람은 자기의 잘한 것만 나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도 ‘나는 그 사람에게 잘했는데, 잘했는데, 잘했는데.’ 이것만 자꾸 생각이 나고, ‘그 사람이 나한테 잘못했는데 잘못했는데, 뭐 잘못했는데 뭐 잘못했는데.’ 이것만 생각하는 거는 귀신이 들어와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거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어야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하나님의 성전이 되지 안하면 축복을 안 해 주시는데,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지.
성령이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의 계시는 곳이 하나님의 성전이니, 하나님의 성령이 내 마음 안에 내 행동 안에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는 그 표가 뭐이냐 하면은 그 결과를 보아서 알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러면, 내게 그 사랑이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내 가운데 계시는 증거입니다. 이제는 원수도 사랑하고 싶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조그마치라도 원망을 할라 해도 원망하면 하나님이 두려워서 원망을 못 하겠고, 또 다른 사람 미운 사람일수록이 위해서 자꾸 기도를 더 하게 돼지지 미운 사람이라고 기도를, 망하라고 기도야 못 하지마는 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불행스러웠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 외에는 가지지를 못해.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으니까 항상 기쁘고, 또 서로 어짜든지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할라고 애를 써. 저 사람은 탱탱 그러면서 자꾸 남의 비위를 상하게만 하지마는 나는 속을 썩혀서 그 사람하고 화목할라고만 자꾸 애를 써.
또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인내를 할라고 애를 써. 그렇게 하면 말이지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오래 참음이 인내입니다. “인내와, 자비와,” 자비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거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온유라는 것은 뭐이 온유냐? 온유라는 것은 하나님을 자기가 모시고 있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들어도 좀 든든하다 그 말이오. 그러면 자기 속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안심이 되는 그것을 취하지 다른 사람들이, 뭐 환경이 또 뭐이 잘됐다고 마음에 든든하지 않는다 말이오. 하나님과 나와에 해결을 지워 가지고서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에 든든한 그게 온유입니다.
‘아, 돈이 됐으니 든든하다. 직장이 됐으니 든든하다. 이제 기술 면허증을 땄으니 든든하다. 아무것이가 나를 협조하고 옹호하니 든든하다.’ 그것은, 든든하니까 온유는 온유인데 그거는 땅에 속한 온유입니까 하늘에 속한 온유입니까? 땅에 속한 온유라.
하늘에 속한 온유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욕을 한다 해도 자기가 욕 얻어먹을 만한 그런 일이 있는가 없는가 살펴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 앞에 자복을 해서 고치고, 고쳤으면 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욕하면은 ‘내가 욕을 얻어먹는 게 마땅하다. 주여, 욕하는 것이 마땅하고 내가 욕 얻어먹는 것이 마땅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이러니까 욕하는 사람에게 원망과 시비가 나지지 않습니다.
또 자기가 그런 죄가 없으면 욕을 할수록이 오히려 ‘그 사람이 몰라서 그런 것이니까 그 사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오히려 복을 빌지, 그 사람 욕하는 것이 자기에게 화가 됩니까 복이 됩니까? 화가 됩니까 복이 됩니까? 복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자연히 온유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온유와, 절제,” 절제라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거는 하고 안 할 거는 안 하고, 많이 할 거는 많이 하고 적게 할 거는 적게 하고, 이제 뭐 공부하는 게 좋지만 공부하는 것도 절제해서 해. 하나님이 ‘지금은 너 새벽기도 가고 하지 마라’ 할 때는 안 해야지. ‘오늘은 주일이니까 하지 마라' 하면 안 해야지. 또 ‘네가 지금은 테레비 보고 뭐 동무들하고 놀 게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라’ 하면 해야지. ‘공부하고 나서는 또 잘 때 되면 빨리 자거라' 또 자야지. 이렇게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면은 전지자가 시키시는 대로 하니까 그 하는 행동은 다 전지의 행동이요 전능의 행동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요런 게 있을 때, 한번 같이 해 봅시다. 첫째, 사랑! 희락! 또? 화평! 또? 인내! 또? 자비! 또? 양선! 또? 충성! 또? 온유! 또? 절제! 요렇게 요 아홉 가지요.
이게, 내 마음을 더듬어 봐. 아, 이게 없으면 ‘아, 이거 잘못됐다.’ 해 가지고서 다시 내가 그런 걸 고쳐야 하나님이 들어오지 그런 더러운 거 있으면 들어오지 못해요.
자, “미워하는 자는” 뭐라 했습니까? “미워하는 자는” 뭐라 했습니까?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뭐이 없다고요?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 속에 없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미워하는 거 있으면 그만 우리 구원은 헛일입니다. 시기하는 게 있어도 우리 구원은 헛일입니다. 또 원망이나 불평이나 있어도 우리 구원은 헛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깨끗하신 분이시오. 뭣이든지 그런 부정한 게 있으면 우리 구원은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이런 게 있으면 그런 것을 내 망하는 것보다, 암만 원망할 만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 원망하는 날이면 내가 망할 터이니까 내가 안 망할라면 원망을 버려야 되니까 원망을 버릴라면 그 사람 위해서 기도하지 안하면 원망이 버려지지 안해요. 자기와 하나님을 생각하면 나는, 그 사람은 나한테 잘못한 것은 털끝만치 잘못했으면 나는 하나님 앞에 잘못한 거는 태산같이 잘못했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나를 용서했는데 나는 그 사람이 나한테 요만치 잘못한 걸 용서하지 못하니 이런 독사 같은 인간이 없다고서 자연히 회개가 된다 말이오.
어쨌든지 하나님의 성전 기초를 쌓던 날부터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니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할라고, 자기 몸을 깨끗이 할라고, 자기 행동을 깨끗이 할라고,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할라고, 자기 생각을 깨끗이 할라고, 자기 욕심을 깨끗이 할라고, 모든 걸 깨끗이 해서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실 수 있도록 할라고 요거 할라고 애를 쓰다 보면은 복은 저절로 와. 복받을라고 생각지 말고 이것만 하면 복은 뭐 지체할 것 없이 즉시 즉시 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뭘 잘되기 위해서 믿는 거 그게 속에 그놈이 우상입니다.
‘뭐 잘 되리라. 예수를 믿어야 내가 이거 잘 되겠다. 예수를 믿어야 뭣이 형통해지겠다. 예수님을 믿어야 우리 자손이 잘 되겠다.’ 예수님을 잘 믿어야 자손이 잘 되겠다 하면은 그 사람 옳은 신앙입니까 우상 신앙입니까? 우상 신앙이라. 자손 잘 되는 그런 거 그게 제일, 원인이, 자손 잘 되기 위해서 하나님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은 껍데기로, 저거 아들 위해서 하나님께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동이라. 하나님은 피동이지 원동은 저거 자식이라 그 말이오.
그런 거 생각지 말고 어짜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존귀케 하기 위해서 자기를 깨끗게 하는 그 사람에게, 깨끗게만 하면은 “그날부터 네가 살펴봐라.
과거 그런 생각 가지지 안한 것과 작정한 그날과 다른가 안 다른가 봐라.” 현재가, 사람이 접할 때에 누가 나 그래 하는 걸 압니까? 모르지만 사람을 접할 때 그 사람이 다르다 그 말이오. 내 마음이, 또 마음이 모든 활동이 달라져.
평안하고, 즐거워지고, 누그러워지고, 모든 것이 사람다운 마음을 자꾸 가지게 된다 그 말이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들도! 그러할지니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하나님 보고 믿어요. 하나님 보고 믿어 가지고, 한번 작정한 것은, 사람은 연약해 넘어져요. 우리가 과거에 다 뭐 도적질한 자요, 살인한 자요, 또 뭐 음행한 자요, 우상 섬긴 자요, 뭐 안 지은 죄가 하나나 있습니까? 하나도 없어. 다 그렇던 자인데 자꾸 고칠라고 애를 쓰고 이라는 가운데서 이만치 고쳐 나오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이만치 된 것이 앞으로 애쓰면 잠깐 잘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