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과 사람


선지자선교회 1982년 5월 1일 토새

 

본문 : 계 13:1-18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3절에 보면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되었던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14절에 보면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일곱 머리 중에 한 머리가 상하였다, 상하였다가 그것이  나았다, 상할 때는 모든 사람이 보고 아, 저것이 상했구나, 절단이 났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 상한 그것이 끝까지 상하지 않고 상하여 죽게 되었던 것  그것이 다시 살아납니다. 다시 살아나니까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되었던 것이  살아난 그것 보고 이상히 여기고 마음이 담 대해지고 또 용기를 얻습니다.

 일곱 머리 중에 7분지 1이니까 약간입니다. 약간이 상한 것을 보고 아, 저것이  저렇게 상하는구나, 절단이 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가져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동요가 되고 안심이 되지를 아니하다가 상한 그것이 좀 후에 그 상처가 회복이  됩니다.

 회복이 되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 상한 것 보고 일곱 머리를 따르던 사람이  멈춤하고 마음에 담력과 자신을 가지지 못하다가 그 상하였던 것이 다시  회복되어 나은 것을 보고 그 짐승을 모두 바라보고 의지하고 따르는 일에 담력을  받아 가지고 따르게 되면서 말 하기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상하였다가 다시  치료된 이것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느냐, 이 자보다 더 큰 자가 어디 있느냐.

14절에도 보면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일곱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였다가 나은 것을 보고 사람들이 담력을 얻고 안심을  하고 이제는 상하였다가 나은 그 짐승에게 전부를 기울여서 존경하고  숭배합니다. 이보다 더 큰 자가 어디 있으며 강한 자가 어디 있느냐, 또 누가  이로 더불어 대항해서 싸울 자가 있겠느냐 하면서 칼에 상하였다가 나은 자를  존경하며 두려워하며 소망하며 거기에 속하여 따릅니다.

 이것이 성경에 보니까 일곱 머리 중에 상하였다가 나은, 그 머리가 누구의  머리냐. 짐승의 머리입니다. 짐승의 머리가 일곱이요 뿔은 열인데, 겉에  나오기는 뿔이 열이지마는 그 뿔 열을 찾아 들어 가면 내나 밑 뿌럭지는  짐승입니다. 짐승 한 마리인데 짐승 한 마리의 그 뿔입니다.

 또 머리가 일곱이니까 일곱 종류요 각각 일곱인 줄로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지마는 찾아 들어가 보니까 일곱 머리가 다 한 짐승에게 붙었습니다.

이것은 이 짐승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세상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뭘로 된 세상인가. 세상은 물질로 일로 된 세상이지마는 세상에  주요 요소는 사람입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만들어진 것이 세상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사건도 있고 물질도 있지마는 물질 사건 그까짓 것은 다  따라가는 것이오. 사람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행동 저런 행동, 이런 사상  저런 사상, 이런 계획, 저런 건설, 이런 역사 그 전부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진  그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을 이렇게 짐승으로 상징했는가. 이는 짐승은 살아 있기는  있지마는 그에게 영은 없습니다. 또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 비슷하게 생명,  호흡, 지능, 지식, 사상, 총명 그것이 사람만 못 해 그렇지, 차이만 있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영 외에는 짐승에게 거의 다 있습니다.

 이렇게 영만 없지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이 되어있는 것이라, 영만 없지  혼도 있고 몸도 있고, 영만 없는 것이지마는 이것은 사람은 아니요 짐승입니다.

 그러면 사람으로 된 세상이지마는 그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 완전히  수성(獸性)화 된 사람들이라. 창세기 6장에 「사람이 육체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하는 그말은 사람이 짐승이 되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과 짐승, 성경은 이 두 가지로 구별했는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또 하늘과 땅의 것의 통치권을  유업받을 수 있고 이렇지마는, 상속받을 수 있고 이렇지마는 짐승은 그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을 가리켜서 이래서 짐승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세상을  가리켜 짐승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000이, 000이 윗도리 갈아라. 못 쓴다. 빨간 것 그뭐 잘 될려고 그런 걸  추접하게 사 입어.)  내가 봉산교회 집회 갔을 때에 그때에 빨간 옷 입고 있는 사람을, 그 사람이  천막마다 자꾸 출입을 하면서 낯빤데기를 빤들빤들 해 가지고 유혹을 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것을 그때에 저거 교역자에게 말하기를 저거 제거하지  않으면 교회가 안 된다, 내가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마는 제거해 버려라,  저것이 창동교회를 망친다 이렇게 말했는데 나중에 과연 그것이 창동교회를  망쳤습니다.

 망쳐서 그 다음에 그 사람 아니면 교회 안될 줄로 뻘뻘 떨었는데 교회 나오지  못하도록 치리를 했습니다. 치리를 하고 난 다음에 창동교회가 일어섰습니다. 그  치리를 그때 신용인목사님이 했는지 누가 했는지 아마 그 안에는 한 사람 없고  그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좀 나를 아름답게 이렇게 나타내 보일까, 옷이라는  것은 보호색이라 푸른 데 가면 푸른색을 입는 것이 보호색이요 검은 데 가면  검은색을 입는 것이 보호색이라.

 그러기에 버러지를 잡으려 하면 꼭 자기 환경에 있는 색깔과 같이, 푸른 데  사는 놈은 푸른색을 입고, 나무 둥치에 사는 놈은 나무 둥치와 같은 색을 입는데  그래야 적이 없어지고 자기가 보호되지. 그래 보호색이라 합니다. 보호색.

자기를 해칠 자가 적다 그말이오. 자기를 해칠 자가. 그러기에 너무 뒤떨어져도  드러나기 때문에 해칠 자가 많이 따라 오고 너무 앞서도 해칠 자가 많이  따라오고, 앞서지도 말고 뒤서지도 말고 중간을 따라가라, 자기 환경에 표 없이  살아라, 그래야 자기에게 쓸데없는 그 부담과 쓸데없는 소비, 쓸데없는 마찰,  투쟁이 없어지고 자기 할 일을 알뜰히 할 수 있다 그말이오. 이런 말은 잘, 일반  세상 사람들이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이라.

 이 세상을 가리켜서 짐승이라 말했는데 짐승은 사람인데 짐승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끊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육체가 됐으니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그와  함께 하지 못한다. 기한을 120년으로 정하겠다 하고 120년 후에는 이 짐승은 다  홍수에 침몰시켜 버렸고 다만 사람인 노아의 여덟 식구만 홍수 심판을 이기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말세에, 이 계시록은 말세에 있는 성도들을 경고하는 예언인데 우리가 짐승의  일을 피하여야 우리의 구원이 되지 짐승 일을 피하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짐승은 사람으로 된 것인데, 사람으로 된 세상을 가리켜서 짐승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사람으로 된 짐승인데, 이 짐승이 일곱 머리로 일곱 사상을  말합니다. 일곱 사상이라 말은 하나 둘 일곱까지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곱은  하나님의 만수인데 하나님이 그 숫자를 그 사상의 수를 몇개를 내놨든지 그  사상의 수 전부라 그말이오. 일곱 머리는 정치사상이나 종교사상이라,  문화사상이나 모든 사상의 종류들을 가리켜서 머리라고 말했고, 또 뿔이라고  말하는 것은 힘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뭐 문화의 힘도 있고, 돈 힘도 있고,  젊음의 힘도 있고, 과학의 힘도 있고 별별 힘이 있는데 그것을 힘이라고  말했는데, 열뿔이라 그말은 힘 전부를 말합니다.

 열은 인간의 만수입니다. 그 힘의 전부 그 전부 그것이 보니까 세상에서 나온  힘이요 세상에서 나온 머리더라.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과 관련을 가질 수 없는  짐승, 사람이나 짐승인 그 짐승 단체에서 짐승 뭉텅이에서 나온 머리며 뿔이더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짐승 머리와 그 힘에게 소속해서 짐승 머리를 여기에 보니까 숭배하고  그 짐승의 뿔을 모두 두려워하고 의지하고 이렇게 있습니다.

 그러면 짐승의 머리와 짐승의 뿔을 의지하고 섬기고 바라보고 이와같이 큰 자가  어디 있느냐 하면서 그를 위해서 우상도 만들고 이렇게 섬깁니다. 짐승 섬긴  자가 하늘나라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우리 성도들이 내가 지금  바라보고 의지하고 섬기고 따라가고 소속한 이 대상이 짐승이냐 어린양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에 8절에 보니까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사로 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이거 사로잡고 칼로 죽이는 이거는 뭐이냐 하면 짐승의 생활법칙이라  말이오. 짐승은 이거 가지고 삽니다. 짐승은 사로잡는 것, 죽는 날까지, 죽는  날까지 좀더 사로잡고 좀 더 취하려고, 좀더 사로잡으려 하는 그것들이 그들의  생활입니다. 또 그들의 생활방편 하나는 칼, 자기에게 있는 독소 이 힘 가지고  상대방을 해치는 것, 상대방을 해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 이것이 그들의  생활의 전부입니다.

 기독자의 생활은 또 이것에 정반대, 사람의 생활은 자기가 그것을 취하려고  애를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다 주고 갈까 하는 것이 이것이요, 자기에게  있는 세력을 가지고 상대방을 상해서 복종해야 자기에게 있는 힘을 가지고  상대방을 도와서 살리려는 것이 이것이 첫열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러기에 짐승의 생활과 이 어린양에계 속한 성도의 생활이 하나는 생명 하나는  죽은 것인데, 이것을 참 구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것을 구별 못하기 때문에 모두 다 어린양의 생활이라고, 예수님 믿는  일이라고 했는데 순전히 짐승 일이 되고 마니까 집을 짓기는 짓는데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었고 불이 와서 타니까 다 타 버리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그것만이 남지. 집을 짓기는 지었는데 자기 명예 건설, 자기 행위 건설, 자기  지위 건설, 권위 건설, 믿음 건설, 구원 건설, 자기 취미 건설, 재미 건설, 행락  건설, 소유 건설, 자기의 인격 건설, 지위 건설 모두 다 건설은 죽자껏 죽는  데까지 건설은 하기는 했는데 그 건설이 하나는 모래 위에 지은 건설되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건설되고, 하나는 반석 위에 지었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건설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건설이 여기에 보면 건설이 어떻게 됐느냐. 하나는 정복하는  취하는 것으로 건설했고 하나는 이제 주는 것으로 건설했고, 하나는 자기에게  있는 힘을 가지고 상대방을 정복하는 것으로 건설했고 하나는 자기에게 있는  힘으로 가지고 상대방을 도와서 살리는 것으로 건설했기 때문에 사이비하지마는  그 방편이 정반대라 그거요. 그런데 마지막에는 제가 자원으로 그와 같이 하는  것이 아니고 이와같은 짐승을 섬기고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을 바라보고 의지하지  않으면 「몇이든지 죽이게 한다」 짐승에게 속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제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죽여서  강제로 하게 만듭니다.

 이러기 때문에 짐승 생활이 뭐인지 성도 생활이 뭐인지 알고 짐승 생활을 안  하려고 사람 생활하려고 애를 써도 마지막에 생명 내 놓지 않으면 죽이게 되니까  짐승 생활을 아니할 수 없는데 이렇게 소원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사람 생활 할  수 있습니까. 만에 일도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짐승 생활과 사람 생활을 알고 알기 전에 모두 다 짐승 생활을 존경하고,  세상에 이렇츰 큰 자가 어디 있느냐, 이렇츰 세력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이들을 대항해서 싸울 자가 어디 있느냐, 이것이 제일이다 이래 가지고 섬기고,  섬기다가 마지막에는, 이를 위해서 우상까지 만들자, 이를 직접 섬길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또 간접적인 그 새끼까지 만들자 이렇게 되고, 이걸 섬기지  않는 사람은 다 그 세력들이 그를 덜하려고, 이걸 섬기지 않으면 부모네들이 막  이거 짐승되지 않는다고, 너 망한다고, 이 짐승 섬기지 않는 일은 부모네들이  자식이 망한다고 해 가지고 일수가 되면서도 자식들에게 짐승 섬기라고 애를  쓰지, 나라가 그러지, 사회가 그러지, 학교 선생들이 그러지, 모든 지식이  그러지, 세상 전체가 다 짐승을 섬기라고 하는데 어떻게 짐승을 섬기지 않을  자가 있겠으며 섬기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강제로 죽이기까지 하는데 짐승 섬기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느냐. 이런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 중에 비로소  이기는 자가 있을 수 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에게 택함을 입고 중생된 자가 이길 수 있는데, 중생된 자라도 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택함 입고 중생된 자 가운데도 이길 자가 있으니 이길 자는  어떤 자가 이길 자라고 했습니까.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진실이 있는  자만이 이기는데 이것을 알지도 못하니까 어떻게 이 싸움에 대상으로 해서 싸울  것이며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짐승은 벌써 교회를 점령해서  교회는 짐승을 섬기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이 짐승은 발견하기가 심히 어렵고,  신학자들도 벌써 짐승에게 속한 자가 되었고, 성경 번역자들도 벌써 짐승에 속한  자가 되어졌고, 총회장 노회장 뭐 개혁주의자 모든 신학자들도 다 이 짐승에게  속한 짐승의 종들이 되었으니 이 짐승을 발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을 발견하는 수가 결과적으로는 하나 있는 것은 뭐 있느냐.

「지혜가 여기에 있으니 그 수를 헤아려 보라」 지혜가 여기에 있으니 그 수를  헤아려 보라.

 18절에 「지혜가 여기에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라」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라,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라 이만하면 알 수 있습니다. 짐승의 수라. 그러면 암만 백이고  천이고, 천이면 육천이라. 하나면 여섯이라. 이런데 하나님의 수는 하나님이  일곱을 가리켜서 7수로 전부 70이라, 7년이라. 일곱 주일이라, 7이라 이렇게  7수를 하나님은 쓰셨는데 여기에는 6이라.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가 아니라면  이것이 일등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하시는 그것만 그 위에 있고 하나님 하시는  것 밑에서는 제일 높은 것들이라.

 그런데 그것이 뭐이냐. 「짐승의 수라」 암만 헤아려 봐도 그것을 분석해 봐도  그것이 짐승 모은 것이라, 짐승 모은 것이라, 세상 모은 것이라 그말이오. 세상  모은 것이라. 세상을 모은 것이라. 하나님은 섞여 있지 않아. 암만 많아도  하나님은 섞여 있지 않고 세상 뭉텅이라. 또 「사람의 수라」 거기에 보니까  전부 사람 위해서 사람 좋게, 전부 하나님도 말은 하지마는 하나님은 소속을  시키고 사람이 주재가 되고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서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부속물로 거기에 붙으려 합니까. 하나님이 부속물로 소속하려 합니까. 하나님이  부속물 위치를 지키려 합니까. 하나님 당신은 왕이시요 주재시오.

 제가 이번에도 산에 좀 기도실에 가서 구약에 말년에 망한 것을 봤는데,  말라기를 보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아니하고 이러니까  나는 만왕의 왕이요 창조주인데 내가 그런 대우를 받겠느냐, 그것이, 그렇게  섬기는 것이 내게 대해서 그 이상 어떻게 모욕이 되겠느냐, 하나님을 제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제이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이야 하고 바라보긴 바라봤지.

 이러니까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라, 그러면 암만 해도 인본이요 세본이라  그말이오. 암만 해도 세상을 근본으로 삼아 가지고 하는 주장이요 인본을  근본으로 삼아서 하는 주장이라 이걸 가지고 아는 사람은 대번에 알아.

 빌리그레함 운동이 그렇게 크게 왔는데 내가 보니까 인간이 근본이라 하는 것은  뚜렷이, 1호만 인간이 되고 그 다음 2호가 하나님 된게 아니라 1호로부터  100호까지는 인간이오. 하나님을 그 다음에 100호가 그 다음에 지나가서  하나님이 나올런지 모르겠습니다. 엑스포 74도 그렇소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을  말을 해서 간판을 붙여 놓고 이용만 해 먹지 속에는 사람이 왕으로 들어  앉았더라 그 말이오. 모든 선교니 뭐이니 하는 데도 다 그렇더라 그말이오.

 세계선교협회 동남아 책임자가 한국 사람입디다 동남아 책임자인데  세계선교협회에 총무되는 사람이 이 동남아 순찰을 하는 중에 그 사람하고 같이  왔는데, 그 사람이 제가 아는 사람이라. 아는 사람인데 한국에 와 가지고  한국서는, 그 사람이 그전에는 나하고 접촉을 좀 했기 때문에, 한국서는 이  부산에 있는 아무것이 밖에는 찾아 볼 이가 없습니다. 그이하고만 찾아서 만나고  가면 여기서 다 만나고 가는 셈이 됩니다. 그러면서 데리고 왔어. 와서  만났는데, 세계선교협회라. 내가 거기에 대해서 똑똑히 말을 하지 아니하고,  나는 아직까지 거기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니까, 그분들이 열두시쯤  되니까 왔는데, 그러면 오후예배가 몇 시입니까, 두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배를 참석하고 가겠습니다. 오후예배에 그분들이 둘이 참석을 합디다.

 참석을 하는데 그날 오후에 하나님께서 설교 말씀을 주셨는데 그 때 이 말씀을  주셨는지 모르겠어. 이 말씀이 뭐 성경대로 하는 말인데 뭐 나쁩니까. 이랬는데  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조금 시작해서 신본 인본을 말하고 짐승과 사람을 말을  하니까 둘이 싹 일어나더니마는 그만 가 버리고 다시 만나지 않고 가  버렸습니다. 그 말씀이 이겨냈다 그말이오. 「사람의 수요 짐승의 수인데 그  수는 육백 육십 육이니라」 그러니 이 짐승과 어린양을 구별하지 못하면  성도들이 그에게 삼켜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택함을 입고 빼심을 입고 생명록에 기록한 사람 중에는 다, 생명록에 기록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는, 생명록에 기록한 사람이라 말은 택한 사람이라 말이오.

영생을 다 가진 사람이라 그말이오. 영생을 가진, 택함 얻고 중생된 사람 아닌  사람으로서는 다 짐승에게 삼켜지게 됐다.

 그러면 생명록에 기록한 사람은 다 승리하게 되느냐. 아니다. 진실한 자만  이긴다. 온 세계의 일곱 머리와 열 뿔은 한덩어리인 짐승에게서 나온 것인데  그것이 똘똘 뭉쳐서 힘도 한덩어리 되고 사상도 한덩어리 되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전체가 통일됩니다. 단합됩니다. 이 전체가 단합됩니다.

 단합이 되는데 그것을 느브갓네살왕이 꿈 꾸면서 우상을 볼 때에 마지막에  우주의 종말인 그 끝인 머리로 그때부터 머리로부터 시작해서 역사가 잡히고  내려오고 내려오면서 마지막에 「발가락은 철과 진흙으로 됐다」 그렇게  됐습니다. 그 발은 철과 진흙으로 만들어졌더라, 그것이 역사 세계의 종말을  말합니다. 역사 세계의 종말은, 철은 강한 것이요 진흙은 아주 그 부스러기가  뭉쳐 있지마는 그거는 하나는 아닙니다. 물에 대고 흔들면 다 떨어져 나가  버리고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약소국가, 약소국가가 전부 독립되고 다 자립되고 강한  나라 하나가 들어 가지고 통치하게 된다. 그 밑에다가 지배를 다 받게 된다  했는데 지금은 미국하고 소련하고 두 나라가 강하지마는 소련은 벌써 미국보다도  그 강한 것이 몇 배나 강하게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에 다만 문화는 미국이 앞섰다 하지마는 정신무장이라든지 사상무장, 이제  상대방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과 이쪽이 양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보하는 것은  암만 커 봤자 싸우려고 침략의 조그만한 것을 양보자는 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느 것이 왕이 되고 철이 되고 그 다음에 소속이 될런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공중에 든 돌이 와 가지고 때려 주니까 우상이 다 깨져 버리고 아무  것도 없고 돌은 커지더라,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이제 전체 통일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랬는데 이렇게 모두가 단합되어서 똘똘 뭉펴 한덩어리 됐는데 이것은 다만  대적은 누구하고만 대적이냐.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어린양과는 대적이  되어 있다.

 여기 13장에도 보니까 「어린양의 생명록에 기록되지 않은 자라」 어린양이  나와 있습니다.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는데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으례히 당신이 이겨서 당신 주장대로 해 나갈 것이고 그에게  속한 부르심을 입고 빼심을 얻은 자로서 진실한 자들만 이것을 이기고 날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라. 여기에서 지혜와 총명이 나옵니다.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라. 이것 잘 모르면 모릅니다. 지금은 가르쳐 주지만 이  다음에는 벌써 가르치는 사람들을 다 죽여 없애 버립니다. 가르치는 사람들을  죽여 없애. 이러고 나니까 그 햇빛이 있을 때에는 음지 양지를 알고, 햇빛이  있을 때에는 음지 양지를 알지마는 음지 양지가 없이 다 같이 새카매질 때에는  무엇이 없을 때입니까. 해가 없으면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가서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그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이랬습니다. 해가 기울어지고 이제는 그림자가 있다가 그림자가  없어. 전부가 다 그림자 다 돼 버려. 그림자가 다 돼 버려. 그때에 성도가  드러납니다.

 여기에도 보니까 마지막에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히고 칼에 상할 자는 칼에  상하리라 성도의 인내가 여기에 있다, 성도의 승리가 여기에 나타난다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자 이 덩어리가, 이 사상이 짐승의 수인지, 이 짐승의  수인지, 암만 많이 말하고 암만 뭉텅이가 커도 짐승 뭉텅이인지, 사람의 수라  사람 뭉텅이인지 그것 살펴봐라. 짐승 뭉텅이인가 사람 뭉텅이인가 그것  살펴봐라.

 이것이 세상이 뚤뚤 뭉쳐서 세상 뭉텅이인가, 세상 무더기, 세상을 주워 모아  놓은 세상 무더기인지 또 사람 무더기인지 하나님 무더기인지 진리 무더기인지  헤아려 봐라.

 또 「그것의 수는 육백 육십 육이라」 여섯이지 7수에 도달하지 못했다. 성경은  7수로 말했는데, 하나님 수는 7수를 말했는데 7수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것이  좋기야 좋지마는 성경에 보면 그보다 더 좋은 방편이 있지 않느냐, 선은  선이지마는 성경에 보면 그보다 더 좋은 선이 있지 않느냐. 화평, 화평, 화평이  있지마는 성경은 그보다 더 좋은 화평이 있지 않느냐, 이거 무슨 말인지 7수라는  이것을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깨닫기가 참 어려을 것입니다.

 7수라 그들이 말하는 것이 그 주장도 좋고 사상도 좋고 정신도 좋고 방편도  좋지마는 성경을 살펴봐라. 그보다 더 좋은 방편이 성경에 있지 않느냐. 그 방편  좋지마는 그보다 좋은 방편이 성경에 있지 않느냐. 그러기 때문에 성경수에  도달하지 못한 성경 이하의 육백 육십 육이다, 지혜와 총명이 여기에 있다,  헤아려 보는 자는 알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벌써 지나간 때이니까 준비해야 소용없는 때입니다. 그때는 심판  때이기 때문에 자기가 준비할 때만, 준비할 때로 알 때는 어느 때냐.

이것입니다. 칼에 상하였다가 상처가 나은 이것 보고 온 세상이 달라붙어 그를  섬기고 그를 따릅니다.

 일곱 머리 중에 상하였다가 나은 것 이것 보고 온 세상은 따르는데 성도는,  상하였다가 나은 것 이거 보고 세상은 따르는데 성도는 이거 보고 돌아서는 것이  성도입니다. 이것은 깊이 감추어 있기 때문에 몰라. 알기가 참 어려워,  「일곱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였다가 나았다」 이것을 간단하게 말 하겠는데  세상에서 자기의 명예든지 지위든지 사업이든지 가정이든지 자기 위신이든지  자기 쾌락이든지 무슨 목적이든지 무슨 사업이든지 자기의 소유든지 그것이  상한다는, 상하는 것은 깨어지고 없어지고 줄어지는 것이 상하는 것 아닙니까.

상하는데, 상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상하는 것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고 상하지 않을 수 있는데,  말씀에는 거리낌이 없지마는 자기 신앙양심에 거리껴, 신앙양심 때문에 이  손해는 봐야 되겠다 하는 손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난 명문의지, 하나님의 뚜렷이 나타나 있는 명문되어 있는 이  법칙, 이 법칙 때문에 손해보는 것 있소. 이것을 손해 안 보려 하면 하나님의  뚜렷한 이 법칙을 어기게 되기 때문에, 어기기 때문에 그만 하나님의 법칙에  뚜렷한, 하나님의 말씀에 뚜렷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만 안되면 그만 그  손해를 안 보고 하고 싶은데 하나님 말씀에 뚜렷이, 이것은 틀렸다, 하지 말아라  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뚜렷이 저촉이 되어서 할 수 없는 손해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이냐. 성도가 보는 손해입니다. 그것이 성도가 당하는 상처입니다.

상합니다. 성도의 상함이오. 성도의 사업이나 무엇이나 그렇게 상하는 것은,  그렇게 상하는 것은 짐승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오. 또  성경 말씀에는 거리끼지 않는데, 성경 말씀에는 뭐 거리낄 것이 없고 정당한데  자기의 신앙양심에 어쩐지, 뚜렷이 뭐 죄라고 이렇게 지적은 하지는 못하겠는데  어쩐지 양심이 께끄름하다 누가 와서 말하기를, 뭣 때문에, 그거 그렇게 하면  손해 안 볼 것인데 그렇게 안 하느냐, 안 하는 이유를 성경을 가지고 지식해라  성경에 지식할 만한 무슨 명문이 없는데 어쩐지 모든 성경을 뚤뚤 뭉쳐 가지고  생겨진 자기 신앙양심에 어쩐지 께끄름하다.

 성경에 꼭 찝어서, 이렇기 때문에 죄가 된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된다 이렇게 찝어서 말할 만한 무슨 그렇게 뚜렷한 그런 것은 없기는  없다마는 어쩐지 양심에, 어쩐지 양심에 께끄름하게 안됐다, 양심이 께끄름해서  양심 때문에 손해를 보는 그것이 성도가 상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상하는 것  짐승이 상하는 것 아니고 성도가 상하는 것이오.

 또 이것은 양심에도 아무런 그렇게 께끄름한 것도 없고 성경에 거리낄 것도  없는데 하나님의 사랑에 거리낍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거리낀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그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정의를 언제 많이 말했는데,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그 면을 생각하니까 구원에는 유익이 없다, 구원에는  반드시 손해가 된다, 성경 말씀에도 거리끼지 않고 양심에도 거리끼지 않는데 그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고 보니 구원에는 이것이 도움이 되지 못하고 구원에는  손해가 된다 이래 가지고 이제 손해를 보는 이것이 성도의 상하는 것입니다.

상하는 것이오. 짐승이 상하는 것은 어떤 것이 짐승이 상하는 것이냐. 성경  말씀을 어기지 않으면 상할 수밖에 없는 것. 알아 듣겠소. 성경 말씀을 어기지  않으면 상할 수밖에 없는 것. 성경 말씀을 자기가 어겨야 상하지 않지 성경  말씀을 지키고는 상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것이 짐승 상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어김으로 상하는 것 성경 말씀을 어김으로 상하는 것 있다 말이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사업을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음으로서 상함  본 것, 양심대로 하지 않아서 상함 본 것, 성경 말씀을 어김으로 손해가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어김으로 손해가는 것 있소.

 또 성경 말씀에는 어긴 것도 아니고 지킨 것도 아닌데 성경 말씀에 아무 관련  없이 자기에게 상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절단나지고 손해가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성경 말씀을 어김으로 상한 것이 있고, 말씀을 어김으로 상한 것이 있고  말씀을 어기지도 않고 상관도, 말씀에는 상관도 없는데 저절로 상한 것이 있다  말이오. 저절로 상한 것이 있어. 또 자기의 무슨 노력 부족이나 자기의 무슨  노력 부족으로서 이렇게 상한 것이 있어. 그러면 그 상한 것이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상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진리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상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상해지는 것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어겨서 상해진 그것이 상해질 때에는  깜짝 놀랍니다. 하하, 내가 죄를 죄어서, 내가 그만 말씀을 어겨서 이렇게  상해졌구나. 이것이 안 되는구나. 계명을 어겨서 내가 이렇게 됐다, 앞으로 내가  계명을 어기지 않아야 되겠다 이랬는데, 그 다음에 계명을 지킴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계명을 지키지 않고 그대로 제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  상해서, 자기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 상한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그  다음에 보니까 상했던 것이 도로 회복이 됩니다. 회복이 됩니다. 공연히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안 됐다고 그렇게 내가 주관 해석으로 그래 가지고  그랬구나 이래 가지고, 말씀을 어김으로 상했던 것이 말씀을 지킴으로  복구되지를 않고 말씀을 어겨서 상한 그것이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을  지키지도 상관 안 했는데 그것이 저절로 복구가 됩니다.

 또 하나님 말씀은 상관없이 그것이 상하였다가 또 그것이 저절로 복구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관련없이 그것이 엎어졌다가 일어 섰다가 또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엎어졌는데 짬짝 놀랐더니마는 하나님 말씀 지키지 않아도 다시  그것이 복구가 된다 무엇이든지 상하였던 것이 시기 문제지 반드시 그것이  일어서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어서게 되는 것인데 일어서는 것, 상하였다가  일어서는 그것을 보고 사는 것이 그것이, 그것을 보고 사는 사람이 짐승을  따라서 가게 되고 하나님을 어겨서 어김으로 상하였던 것이 하나님과 관련없이  그것이 다시 복구가 될 때에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담력을 얻어 가지고 나가는  것이 그것이 짐승에게 점점 소속해 가는 것이고,  하나님과 관련없이 이것이 실패되었다가 또 하나님과 관련없이 이것이 일어서는  그것을 보고, 상하였다가 일어서는 그것을 보고 사는 것이 짐승을 따라가는  결과적으로 그 걸음이 되고, 상하였다가 일어서는 것 복구를 보고 사는 것이  짐승을 따르는 사람 되고 정반대인 깨지는 것을 보고 사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소속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하나님 말씀을 조금 어겨서 상하니까 아이구, 이거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이것이 상해졌다, 하나님 말씀 어겨서 상해졌다 그것 보고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상하는, 이거 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잠깐만 말하고  여러분들이 집에 가 연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신앙양심으로 인하여, 복음의 사랑으로 인하여  손해본 이 손해를 소망하고 사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이 손해를 소망하고 사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또 하나님 말씀과 상관없이  상하는 것 보고, 이거 상하는 것 보고 사는 사람이 또 성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겨 아, 내가 주일 범했더니만 내가 이런 낭파 당했다, 낭파가 됐으면  그 낭파가 그 다음에 복구가 제대로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상하는 것만 보고 살라고 말하는 것이오 말씀을 어김으로  어제 주일을 범했더니만 내가 이래 손해 갔다, 그러면 손해간 그것으로서, 주일  범함으로 손해 갔다 자기 알았으면 됐고 그대로, 주일 범하면, 계명 어기면 손해  간다 그것만 가지고 제가 살 일이지 그것이 뒤에 복구된 그것으로 자기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를 말라 그말이오 또 하나님 말씀 상관없이 상합니다. 아, 참  정함이 없는 재물이로구나 없어지는 것 보고, 자기 몸이 건강하다가 병드는 것  보고 삽니다. 병드는 것 보고 살아. 참 이 몸은 건강하지마는 언제 병드느냐  말이오. 병드는 것 보고 살고, 짐승 섬기는 자는 병드는 데에는 깜짝 놀랐다가  다시 회복된 것 보고 삽니다. 이거 어려운 말인데 간단하게는 알면 됩니다.

짐승을 따르는 자는, 상하였다가 복구되는 것 보고 사는 그자는 짐승을 따르는  자 되고, 복구되는 그것을 능력으로, 복구되는 그 힘을 의지해서 사는 자가  짐승에게 결과적으로 따르는 자 되고, 또 상하였다가 복구된 그것을 소망하고  사는 자가 짐승에게 따르는 자 되고, 또 상하는 거,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상하는 그 수입 보고 사는 그자가 하나님에게 속한 자 되어지고 또 세상에서  상하는 것 보고, 상하는 것 보고 사는 자,   그러기에 이것을 가리켜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영광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이러면 성도는 풀이 무성한 것 보고 사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사는 자요 풀이  마르는 것 보고 사는 것이 성도들이라. 꽃이 활활 피어나서 아름다운 것 보고  사는 자는 짐승에 속한 사람이요 꽃이 떨어져 쇠잔해져, 꽃이 쇠잔해져 가는 것  그것 보고 사는 자가 성도라 이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려우나 앞으로 시간 있으면 그 전에도 늘 가르쳤지마는 세밀히  가르칠 수 있겠습니다.

 이 짐승과 사람, 짐승의 수 사람의 수, 세본 인본 이거는 다 멸망입니다. 세본  인본 이거는 멸망입니다. 어린양에게 속한 자 이것만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심지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우상이 말하게 되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게 되지, 온 세계가 그 앞에 복종을 하지, 그 권세를 다  의지하지, 그것을 우상을 만들어 가지고 그 짐승을 섬기게 하지, 그것이 뭐이냐.

세상 권세인데, 그 권세를 누구에게 받았느냐. 용에게 받았습니다. 용이 그  권세를 줬습니다. 용이 누구입니까. 용이 옛날 에덴동산이 있는 배암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해서 세상 임금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말세가 되어 갈수록 이것이 얼마나 힘드는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명심해야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짓지  않지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 잘 했는데 헛일입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 보면 세계에 유명한 인물인데 저 하늘나라에 택한 자면  맨 말단에 천물이 되어 가지고 있을 것이오. 세계가 몰랐는데 제일 높은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세상이 끊어 죽을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가면 놀랄 일이  있어. 세상에 예수님의 재림 때면 크게 놀랄 일이 역사에 있고 하늘나라 가 보면  놀랄 일이 있어. 그렇게 작은 줄 알았는데 그렇게 큰 자고 그렇게 큰 줄  알았는데 아주 작은 자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번에, 지금 오늘 아침에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상하는 것 보고 산다, 상하는 데에 소망 두고 산다, 상할 소망으로, 상하는 것  그거, 상하는 걸 보고 상하는 그것 바라고 그것 지금 소망하고 산다, 또 상하는  것 보고 평가를 한다. 상하는 것 보고 평가한다. 상하는 것 보고 소망하고 산다  그것이 성도요.

 상하는 것 보고 두려워 떨었다가 이제 나은 것 보고 담대함을 얻어가지고 나은  것 보고, 나은 것 보고 그것 보고 숭배하고 사는 것이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다,  나은 그것 보고 살고 나은 그것 소망하고 산다, 상하는 것 보고 상하는 것  소망하고 상하는 것 보고 산다, 나은 것 소망하고 나은 것 보고 산다.

 세상은 나은 것 소망하고 나은 것 보고 산다, 성도는 상하는 것 소망하고  상하는 것 보고 산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기록해서 가  가지고 자꾸 새김질하십시오. 새김질하면 이제 여러분들 속에서 샛별이 떠올라서  알게 될런지 모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936 진실한 사람/ 요한계시록 17장 14절/ 1985. 4. 26.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935 진실한 사람/ 요한계시록 17장 10절-18절/ 1984. 11. 8.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934 진실한 자-3가지/ 요한계시록 17장 12절-14절/ 1987. 6. 21.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933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 1984. 2. 23.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932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 1984. 2. 24.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931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 1984. 2. 24.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930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16절/ 1984. 2. 29.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929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7장12절-16절/ 1984. 2. 19.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28
928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마태복음 10장 11절-26절/ 1982. 7. 2.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927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7장 1절-14절/ 1984. 7. 22.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926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7장 12절-16절/ 1984년 5 공과 선지자 2015.12.28
925 진실함으로/ 요한복음 9장 30절-31절/ 1984. 4. 4.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924 진주와 보화/ 마태복음 13장 44절-46절/ 1984. 2. 11.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923 진화론/ 레위기 11장 1절-8절/ 1988. 11. 21.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 짐승과 사람/ 요한계시록 13장 1절-18절/ 1982. 5. 1.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921 짐짓 범한 죄/ 히브리서 10장 26절-31절/ 1984. 2. 27.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920 집사 선택/ 디모데전서 3장 1절-13절/ 1985. 1. 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919 집사제도의 변혁/ 요한1서 3장 20절-22절/ 1986. 2. 2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918 집사자격 12가지/ 요한 1서 3장 3절/ 1986. 2. 1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917 집사자격13가지-현재의 가치/ 야고보서 3장 13절-18절/ 1988. 12. 28. 수저녁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