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12:24
진실을 만드는 법
1984. 7. 22. 주일 오후
본문 : 요한계시록 17장 14절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악령은 언제든지 세상에 지금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는 세상을 완전히 점령해서 저희나라로 삼고 있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이기고 부활하신 후에는 악령이 예수님에게 완전히 정복을 당해서 예수님에게 모든 통치를 받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악령을 통치하실 때에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까지는 정권을 가지고 통치를 했는고로 악령을 가리켜서 세상 왕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악령을 이기시고 세상을 이기신 다음부터는 악령은 불택자들에게는 여전히 왕 노릇을 하지만 대속함을 입은 성도들에게는 왕 노릇을 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제한적 권리를 가지고 침노도 하고 또 여러 가지로 대항을 하게 됩니다. 그 조절이 신약 교회의 초대 보다 차차 말세가 가까워오게 될 때에 무저갱에 갇혔던 사탄이 나오게 된다 그 말은, 그전에는 사탄이 세상에 없다는 말이 아니고 제한적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제한의 감옥 가운데에 들었다가 이제는 그 제한에서 해방되어서 무제한적인 권리를 가지고 택한 자들에게 왕 노릇은 못 하지만 마음대로 침노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십니다. 그러기에, 얼마 동 안은 준비할 수 있는 시기를 주셔서 이 고요한 이때에 성도들로 하여금 준비를 하게 하시고 준비한 기간이 지나가면 악령을 보내서 그 진가를 심사 하는 그런 시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기 짐승은 처음부터 악령의 통치 아래에 있는 세상을 짐승이라고 하셨는데, 이 마지막 요한계시록 17장에 있는 이 짐승은 악령의 제한된 그 권리가 이제는 범위가 넓어지고 커진 범위. 제한에서 해방 받은, 마지막에 저희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힘을 다해서 택한 자들이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도록, 얼마든지 일 대 일로 대결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 세상을 가리켜서 짐승이라 그렇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짐승은 악령에게 통치를 받는 세상이라 그렇게 여러분들이 생각을 하면 간편하게 기억하기 쉬울 것입니다.
또 짐승에게 일곱 머리가 있었는데 일곱 머리는 악령에게 통치 받는 세상에 속한 모든 사상이나 주의나 우뚝 우뚝 산봉우리 모양으로 솟은 모든 큰 세력들을 가리켜서 일곱 머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일곱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한 수대로 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저 하나 둘 숫자로 일곱을 말하는 게 아니고.
열을 말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정한 숫자 다를 말해서 인간의 만수를 말한 것입니다. 머리는 악령에게 통치 받는 세상에 속한 모든 사상 모든 주의. 모든 종교, 모든 도덕 그런 모든 것들을 가리켜서 일곱 머리라 했고, 열 뿔이라고 말한 것은 악령에게 통치 받는 세상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가리켜서 열 뿔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악령이 통치하고 있는 그 세상에는 뭐 과학이든지, 물질이든지, 또 지식이든지, 예술이든지, 도덕이든지 종교든지, 또 정치든지 무엇이든지 악령이 통치 하고 있는그세상에 속한 모든 힘을 다 총칭해서 열 뿔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한 뜻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어린양으로 더불어 대항하게 됩니다. 어린 양은 곧 예수교를 가리켜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하는 그 말은, 예수교는 창조주 조물주 모든 주권자 당신이 경영하신 도이기 때문에. 이 도를 위해서 모두 다 그런 것을 예정하셨고 만드셨고 이렇게 하시니까 이 도는 의례히 이깁니다. 이 도는 하나님께서 이 도를 위해서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예정하셨고, 지금도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에 의례히 예수교는 이긴다 그말입니다. 이기나, 예수교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서 문제를 말합니다.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어린 양으로 더불어 함께 있는 자들 예수교인들을 말합니다. "있는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부르심을 입는 것은 중생한 것과 예수님 믿기 시작한 것을 가리켜서 부르심이라고 말하고, 또 빼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영원 전선택을 가리켜서 빼심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빼심을 얻고" 그러면. 성도가 세 가지인 데, 부르심 입고, 빼심 얻고, 진실한 자는 이기고, 부르심과 빼심 은 받았으나 진실이 없는 사람들은 이기지 못합니다.
뮐 이기지 못하느냐 하면, 일곱 머리와 열 뿔과 짐승이 한 덩어리가 되는 그것을, 사람들이 알기 쉽게 말하려고 하면 그것을 인본주의의 단 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 단체라 말은 사람을 중심해서 사람을 위주로 한 단체라. 기독교는 하나님을 위주로 한 단체가 기독교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데 그 법칙이 어떠하냐 하는 것을 말할 때에 그 법칙을 진리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이 두 가지는 얻었습니다. 우리가 영원 전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했고, 중생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는 이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얻었지만 진실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이 두 가지가 없는 사람은 진실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져도 소용없고, 이 두 가지를 이미 순전히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인데 이 두 가지를 얻어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진실은 이것을 궁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다 해 주시는 것이지만 서도 외부적으로는 사람 제가 했다고 할 만치 인간의 노력이 가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자들은 이긴다.' 진실한 자들은 이긴다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이 인본주의를 이긴다는 말이요 짐승을 이긴다는 말이요, 일곱 머리를 이긴다는 말이요, 열 뿔을 이긴다는 말이요, 세상을 이긴다는 말이요. 악령을 이긴다는 말이요, 죄를 이긴다는 말이요, 사망을 이긴다는 말이요 모든 저주를 다 이긴다는 말이요, 모든 실패를 다 이긴다는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만능이요 전능입니다. 이 진실 이 세 가지로써 승리하고 하늘나라는 이 진실이 그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요, 그 나라의 법칙들이요 그 나라의 모든 제도들이요 그 나라의 행정들이요, 그 나라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종자도 진실, 또 재료도 진실. 방편도 진실 모양도 진실, 색깔도 진실, 실력도 진실, 결과도 진실 전부 진실 뭉텅이가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무슨 과학의 힘으로도 이기지 못하고. 노아 홍수 때와 같이 땅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이기지 못한 모든 것을 이 진실 하나로 다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진실을 갖추는 데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진실을 갖추는 데에, 진실을 만드는 데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또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는 이 진실을 빼앗기지 않는 데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진실을 만들지 못한 자는 뭐 뺏길래야 뺏길 것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마귀가 시험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침노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너희가 세상에서 나왔음이라. 너희가 세상에 있으면 저희 것이라 해서 저희가 사랑할 터이나 너희가 세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한다.
세상이 너희들을 미워하는 것은 너희들을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먼저 미워한다.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미워한다. 창조주 조물주 자존자를 미워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오후에는 진실을 만드는 것과 또 진실을 빼앗기지 않는 데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를 하려고 합니다.
진실은 세 가지 진실을 우리가 배웠는데, 하나는 지식 진실 지식이 진실해야 된다는 말이고. 행위가 진실해야 된다는 말이고 또 사람이 진실해야 된다는 이 세 가지 진실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러면, 세 가지 진실을 언제 마련 할 수가 있는가? 이 지식 진실을 마련할 때에. 그 사람이 신구약 성경을 열심히 읽어서 아주 통달하고 신구약 성경 말씀을 아주 다 기억하고 외우고 또 통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진실한 지식을 가진 사람인가? 지식은 성경대로의 지식이 진실한 지식인데. 그 사람은 진실한 지식을 가진 사람인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신구약 66권을 다 알고 다 기억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진실한 지식을 가진 사람인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진실한 지식을 구경한 사람입니다. 진실한 지식을 구경한 사람입니다. 제 것은 아닙니다. 안 됩니다. 진실한 지식을 구경한 사람이오.
그러면 진실한 지식은 언제 가질 수 있는가? 우리의 현실에서, 반드시 현실을 닥치면 인간 지식이 거기에 나오고 하나님 지식이 나와서, 인간 지식대로 하라고 내 안의 부패성도 말하고 내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환경들도 다 말하고, 또 속에 있는 성신의 감화는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라고 하고 또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라고 권유를 하고 이래서, 우리 현실에서는 이 사람의 지식을 내가 취하느냐 하나님의 지식을 취하느냐? 어느 지식을 따라가느냐? 어느 지식이 하라 하는 대로 내가 따라가느냐 하는 요것이 현실에서 반드시 시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은 그저 뭐 밥 먹고 자고 깨고 일하고 밥 먹고 자고 깨고 항상 그런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반드시 그 현실에는 사람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이 둘이 있어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라 하고, 사람의 지식은 사람의 지식대로 하라 하기 때문에 그 현실은 사람의 지식을 하려 하면 하나님의 지식을 반드시 배반해야 되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려 하면 사람의 지식을 배반해야 되고 이 투쟁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는 버리고 하나는 취하고 하는 이것이 반드시 현실에서 없는 현실은 절대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에 사람의 지식을 하면 이 세상에서 편리하고 좋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면 하늘나라와 하나님 앞에서는 좋고 이러나 이 세상은 희생하게 됩니다. 세상은 여러 가지 어려운 낭패가 되고 손해 가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알고도 현실에서 인간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래서, 요 현실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했으면 이제 진실한 지식,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성경대로의 지식을 가진 사람.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그만큼 삼은 사람이고 그바에 인간 지식대로 행했으면 자기는 아무리 신구약 성경을 통달한다 할지라도 현실에서 인간 지식을 취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고 현실에서만 두 가지 지식 중에 어느 것을 취할 것이냐 하는 데에서 인간 지식을 버릴 때에 하나님의 지식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또 현실에서 행동 할 때에 하나님을 위해서 행동하느냐 나를 위해서 행동 하느냐? 창조주를 위해서 행동하느냐 피조물 위해서 행동하느냐? 이것을 가르쳐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를 중히 여기면 저를 경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기면 이를 중히 여기느니라 사람이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라 하면 물질계에 속한 것을 버려야 되겠고, 물질계에 속한 것을 더 치중하면 하나님을 버려야 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 현실에서 자기가 행동할 때에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그것이 성경대로의 행위입니다. 성경대로의 행위이고, 현실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하지 아니하고 이 자기 위주로, 세상 위주로, 물질 위주로, 뭐 피조물 어떤 거 위주로, 피조물 어떤 것이든지 그거 위주로 하는 것은 성경에 말하기를 그런 걸로 행동하면 죽는다, 망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요 현실에서 성경대로의 진실한 행위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고 요 현실에서 진실한 행위를 내어 놓고 이 거짓부리 인본의 행위를 가질 수도 있고 요것이 현실에서 다 되는 것입니다. 현실이 아니고는 얻지도 빼앗기지도 않습니다. 현실에서만 만들 수도 있고 현실에서만 빼앗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진실한 사람도 그러합니다. 진실한 사람도, 요 진실한 사람은 성경대로의 사람인데, 자기가 성경에 말씀하신 하나님의 속성대로. 하나님의 모형으로 하나님의 속성은 진실한 지식. 진실한 지혜, 진실한 선, 진실한 사랑, 거룩, 의, 주권 이게 다 하나님의 속성인데, 이렇게 성경대로의 사람으로 자기가 살라고 하면 인본주의의 단체와 전부 반대가 됩니다. 인본주의의 단체와 반대가 됩니다.
악령이 통치하고 있는 세상, 또 짐승의 나라, 일곱 머리의 나라 열 뿔의 나라, 인본주의의 그 단체 그 단체와 대립이 됩니다. 자기가 진실한 사람, 성경에 말씀하신 하나님의 모형대로 참 사람으로 사는 것 진리와 영감에 끌려서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그 사람이 참 사람의 생활이요 그것이 성경대로의 사람인데 그것이 사람 진실입니다. 그게 진실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진실한 사람으로 살라고 하면 있는 걸 다 내놔야 됩니다. 있는 걸 다 내놔야. 무엇이든지, 왜? 세상은 악령의 것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담 하와가 졌거든. 아담 하와가 졌기 때문에. 악령이 아담 하와를 이기고 세상을 점령했습니다. 세상을 점령했는데, 예수님이 이겼기 때문에 택한 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이 이 기신고로 택한 자에게 대해서는 악령이 왕 노릇 못 하지만 이 이방인은 다 악령이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본주의의 이 단체에 끌려가지 안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참사람으로, 새사람으로, 진리와 영감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고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참사람으로 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인본주의의 단체와 반대가 됩니다. 오늘도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이 죄를 지어서 반대되는 사람도 있고, 또 참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이 세상은 반대할 수밖에 없고 오늘 속화된 교회는 그 사람을 반대할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 같은 그런 사람이 있으면 모두 원하지만 사도 바울 같은 그런 참 진실한 성도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온 교파가 다 총질을 다 할 것입니다. 그런 세상인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실한 사람도 현실에서만 만들 수 있고 또 진실한 사람이 이렇게 거짓된 사람으로 변질돼 나가는 것도 현실에서만 변질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이라는 이 현실이 아주 좋고 위험한 것입니다. 보배를 현실에서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현실은 보배로운 것이요, 또 현실에서는 보배를 다 도적맞을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은 위험한 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위험한 줄 알고 현실을 무엇보다도 보배로운 줄을 알고 우리는 이 세 가지 진실을 갖추어야 말세에 인본주의의 단체를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만 갖추면 악령을 이 깁니다. 죄를 이깁니다.
사망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깁니다. 마귀를 이깁니다. 모든 사망을 이깁니다.
모든 멸망을 다 이기고, 실패를 다 이기고 모든 것이 다 승리하고 완전하고 그리스도가 승리하는 거와 같은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요히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우리 현실에 반드시 진실한 지식과 거짓된 지식. 인간 지식은 다 거짓된 지식입니다. 그러면, 알기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 또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 행위와 사람이나 피조물을 위주로 하는 행위와, 또 하나님의 신성대로의 참사람과 이 악령의 모형으로 속화된 이 사람과 이 둘이. 이 오른편 셋과 왼편 셋이 우리 현실에서 반드시 대두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여섯 사이에, 오른편에 셋 있고 왼편에 셋 있는 이 사이에 끼여 있는 것이 우리들인데, 여기에서 이라면 살고 이라면 죽습니다. 이러니까. 이라면 살고, 이라면 죽는데. 다 '이라지' 싶으지만 이랄라 하면 너를 부인하지 안하면 안 된다.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이루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요거는 내줄 수 없다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있는 것을 다 포기하고 뭐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이 세 가지 진실만은 내줄 수 없다. 모든 걸 다 내줘도 진실만은 내 줄 수 없다 하는 이 사람이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이 진실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때가 되기 전에 빼앗아 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공연히 악령이 협박 한 하는 것이지 제게 주권은 택한 자에 대해서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깨어서 삽시다. 깨달으면 세상은 어떤 것이라 하는 것을 조물조물 할 수 있습니다. 온 세계는 조그마한 계란 알 하나와 같이 거머쥐고 요리 조리 째작거리면서 다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근본도 그의 장래도 현재 속의 알맹이도 껍데기도 다 볼 수 있어. 그것이 어떤 것인가 우리는 판단 할 수 있습니다.
이거는 영존할 것이다, 이거는 멸망할 것이다 이거는 없어질 것이다. 이것은 변질될 것이다, 이거는 다 변화될 것이다 이거는 다 원소로 돌아갈 것이다. 불탈 것이다 알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은 피조물 보자기 속에 싸인 것이 아닙니다. 천상 천하의 피조물을 다 관찰하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이 모든 것을 다 평가하고 비판해서 거기에 대해서 능히 처리 할 수 있는 것이 성도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