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1987. 5. 24. 주일오전

 

본문:야고보서 1장 5절∼8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알고 깨닫는 것이요, 아는 것은 신구약 성경이 어떻게 예수를 믿으며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친 그대로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요, 바로 깨닫는 것은 성경 가운데에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자기 할 것을 깨닫고 확정짓는 그것이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아는 것과 바로 깨닫는 것은 좀 차이 있습니다. 아는 것은 신구약 성경을 준해서 성경대로 모든 것을 바로 아는 것이요, 깨닫는 것은 안 거기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을 그것을 바로 알고 작정하는 것을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그렇게 표현합니다.

이제 처음으로 나온 이도 있겠고 또 믿은 지 얼마 안 돼서 예수님 믿는 이 이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또 이 설교를 듣고 버리지 말고 돈이 없어도 테이프를 사 가지고 가서 재독을 자꾸 듣든지 그렇지 않으면 설교록을 몇십 번 내리 읽어야 할 겁니다. 그러면 진리를 아는 눈이 뜨여져서 보게 되고 또 진리를 듣는 귀가 열려져서 들을 줄 알게 됩니다.

공 안 들이고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썩어질 그런 학문, 아무리 잘해 봤자 다 썩어지고 말 그런 것도 제대로는 중등이나 고등이나 대학이나 그 지식을 배울라고 하면 힘이 드는데 하물며 영생하는 구원 도리를 배우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구원은 지극히 크고 어렵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고로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룹니다. 은혜로 이룬 것은 공으로 주시는 구원인데 공으로 주시는 구원을 내가 아는 데에도 전심 전력 기울여야 되고 또 공으로 주시는 이 구원을 내가 받는 데도 전심 전력 기울여야 되지 안 기울이면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합니다.

요사이 여호와의 증인이니 뭐 사이비한 모든 이방 종교니 그런 거 많이 있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써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이 외의 것은 다 이단이라고 정죄하지는 못해도 그 가운데 혹 어떤 게 있는지 몰라도 대개는 다 탈선된 이단들입니다. 그런고로 그것을 알아야 하고, 또 기독교 외에 있는 수많은 종류의 종교들이 있지마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는 그런 것은 다 구원이 없다고 그렇게 똑똑히 밝혔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시켜서 넘어뜨립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들이 근방에 오지도 않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자들을 ‘성경 공부하자’ 하고서 성경을 자꾸 엮어대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으로 그러니까 참 그 사람들 말이 옳은가보다’ 이렇게 듣기 쉽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있는 절수만 빼 가지고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 하는 말도 여게서 단어를 빼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어야 천국 간다’ 하는 그 말도 이 성경에 있는 단어를 뽑아 가지고 그런 말도 만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 가지고 한다고 해서 들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 있는 단어 가지고 무슨 말을 못 하겠소?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구원의 이치를 바로 알아야 되지 그저 성경 가지고 말한다고 ‘그거는 성경 가지고 말하는 것이니까 옳지.’ 이래 가지고 미혹받아서 떨어지면 안 됩니다.

안식교니 여호와의 증인이니 천주교니 하는 것은 그는 이단입니다. 천주교는 우리와 합동 번역하기 때문에 정통이라고 생각하지마는 요새는 천주교가 변해졌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천주교는 주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또 천주교는 성경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니 또 모든 유명한 선지 사도들은 다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게 절합니다. 그 모양을, 동상을 만들어 놓고 거게 절합니다. 그거는 바로 이계명에 그런 것을 섬겨 절하기 위해서는 만들지도 말고 거게 섬기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라고 제이계명에 있지마는 눈이 어두워서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니까 그것도 옳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된 기독교 외에는 인생 구원의 길이라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믿어야 합니다. 지금은 말하지마는 예수님의 재림이 점점 가까와서 마지막이 되면은 돌변해서 이런 말을 못 하게 됩니다.

그때 하종택 목사님이 불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그 말을 했다가 중들이 전부 단합을 해 가지고 와 가지고 죽일라고 달라들어서 그때 경찰서 경관들이 막 동원이 되고 군인들도 동원됐던가 이래 가지고 겨우 죽이지 못하도록 구출했는데 그 목사님이 바른 말 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안하고 끝끝내 그 바른 말을 증거했습니다.

지금은 인제 그런 말도 하면은 박해가 오기 때문에 점점 그런 말을 약은 목사들은 지혜 있는 목사들은 안 합니다. 이러니까 옳은 말을 듣지를 못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못 읽도록 하고 신부들만 읽을 수 있지 일반인은 못 읽게 했으니까 그것이 옳은 예수교입니까? 모든 것을 우상으로 만들어 놓고 절하는 그것이 예수교입니까? 모르고 망할 자는 얼마든지 망해야 됩니다. 속에 강퍅한 자는 옳은 걸 말해도 성경대로 말해도 반발하고 속에 제 악이 저를 주장해 가지고 제 주관대로 해석하고 성경대로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다 택한 자라도 그 행위는 망합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여러번째 지금 증거하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으로 선포해 놓으신 이 계약을 알아야 하겠고, 아는 자들은 믿어야 하겠고, 믿는 자들은 실행을 해야 되겠고, 실행하는 자들은 계약한 대로 실상이 내게 와지도록, 실상이 이루어지도록 계속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다는 말만 하지 실상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의 실상은 이루지 못하고 말 구원뿐이니까 기본구원으로 영은 하늘나라 가지마는 행위구원은 다 멸망을 하고 맙니다.

이번에 가라지 설교에 ‘가라지 행위 하는 사람도 택한 자들은 다 구원 얻는다’ 이렇게 말한 데 대해서 세계가 이제 반발이 많이 올 것입니다. 칼빈 주석에도 ‘가라지는 처음부터 멸망의 자식이요 결과도 멸망의 자식이다. 가라지 행위 하는 자는 다 멸망이다.’ 했는데, 저는, ‘가라지 행위 하는 사람으로서도 택한 자들은 다 구원 얻는다. 이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가라지 행위를 다 하고 있다. 가라지 행위 한 그 행위는 다 지옥 가고 행위 한 그 사람은 천국 간다. 이러니까 행위는 다 지옥 가 버리고 사람은 천국 간다.’ 사람은 천국 가지마는 행위가 다 지옥 갔기 때문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바로 모르면 구원 안 되고, 바로 알아도 믿지 안하면 구원이 안 되고, 믿어도 행하지 안하면 구원 안 되고, 행해도 실상이 이루어지기까지 계속하지 안하면 구원 안 됩니다.

우리가 이 건설구원으로서 성화구원 얻는 것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 성경에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줬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건설구원은 조그만한 우주에 지구 땅덩어리라 하는 지구 땅덩어리 속에 한 귀때기를 차지하는 어떤 정권이나 그런 것 아닙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 모든 것이 다 네것이 된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 했습니까? 어누리 아닙니다. 제것 됩니다. 될 수밖에 없습니다.

깨달은 자들은 제것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믿어지게 됩니다.

이런 큰 영광스런 구원인데 세상에 있는 그런 것들을 얻을라고 일류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것만치도 힘쓰지 안하고 건설구원이 이루어진다 말입니까? 이는 천부당 만부당 말입니다. 아무리 제가 일류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자라 할지라도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못 했을 것입니다. 마음은 다했을란지, 힘은 다했을란지, 뜻은 다했을란지 모르지마는 목숨까지 다하지는 않습니다. 목숨 다할 지경이면 다 학교도 집어던져 버리고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나 건설구원 이루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건설구원을 이룬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데 교회야 네가 살았다는 이름만 있지 실상은 죽은 자이니 그 이유는 너희 행위에 온전한 것을 내가 보지 못했다” 그러면 온전한 행위라야 행위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히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제 주관으로써 조작배기를 해 가지고 이 건설구원에 얼마나 힘들여서 전부를 다 기울여야 이루는 건설구원을 너무 어누리해 가지고 거짓말로 ‘쉽게 얻는다’ 해 가지고 사람들은 이 건설구원을 이룰 수 있는 요소가 다 있고 이룰 수 있는 우리들이지마는 쉽게 봐 가지고 힘쓰지 안하는 데에서 다 실패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와서 이 능력으로 세상을 압도하고 살지를 못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또 봉독한 것도 실상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증거하는 것이지 거게 무슨 또 이런 뭐 논리나 저런 논리나 그런 거 지금 할라고 증거할라고 증거하는 것 아닙니다. 이상스러운 별스러운 논리나 무슨 감정이나 정서나 자기 마음을 무슨 감동시키는 그런 것을 들을라 하는 사람은 여게는 필요도 없습니다.

본문대로 간단하게 해석하겠습니다.

5절에, “너희 중에” 하는 말씀은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 중에’ 하는 말입니다, 구속 받은 성도들 중에. 성도 중에는 모든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해서 부족함이 없는 그런 사람들도 있지마는 하나님의 것을 받지 못해 가지고 부족함이 있는 모든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부족한 사람들은 구해라 말입니다.

족한 사람들이야 다 구해서 족한데 구할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러나 족한 사람들은 선지 사도들도 죽는 날까지 족한 부분은 내비두고 부족한 부분을 향하여서 전심 전력으로 구하다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요걸 바로 알아야 됩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일반적으로 지혜라 하는 것은 미래사를 아는 것을 지혜라 하고 지식이라 하는 것은 과거 현재사를 아는 것을 지식이라고 말하는데 여게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는 이 지혜는 곧 영감과 진리를 말합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영감과 진리가 부족하거든 하는 말입니다.

이 지혜는 지능을 총칭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분리하지를 못합니다. 지혜가 있는 데 능력이 같이 있고 능력 있는 데 지혜가 같이 있어서 능력과 지혜는 하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구하면 지혜 주신다 그 말은 지능이 부족하거든 구하면 지능 주신다 하는 말입니다. 지능이 부족하거든 구하면 지능 주신다는 말은 영감과 진리가 부족하거든 구하는 자는 영감과 진리를 부요하게 해 주신다 하는 말입니다.

영감과 진리는 무엇입니까? 영감과 진리는 하나님은 우리 금생과 내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만히 가지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금생 내세 영육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만히 가지신 분이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만히 가지시고 우리에게 주실라고 가지시고 계시는데 가지신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무엇으로 주십니까? 꼭 영감과 진리로 줍니다. 요거 아십시오.

돈이라고 돈 주시고 권세라고 권세 주시지 않습니다. 돈도 영감과 진리로 주시고, 권세도 영감과 진리로 주시고, 병 치료도 영감과 진리로 주시고, 자기가 사지에서 구출되는 것도 영감과 진리로 주시고, 그 모든 것을 영감과 진리로만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받습니까? 우리는 다른 것으로는 받지 못합니다. 영감과 진리로 주시는 것을 받는 것은 영감과 진리로 주시는 그것을 첫째 내가 믿는 것이 받는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순종하면 다 받았습니다.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 말은 하나님의 충만한 것이 네게 충만히 있는 것은 그만하면 됐고 무엇이든지 네게 충만히 있지 못하는 것, 하나님의 충만한 것이 네게 부족하거든, 하나님의 충만한 것이 네게 족한 사람은 구할 필요 없고, 없으면서도 족하게 여기는 자는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조건이 부족한 것, 나는 하나님의 것을 받아서 모든 사람이 볼 때에 저 사람은 온 세계에서는 제일 하나님의 것으로 제일 충만한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것으로 부족해서 갈급을 가지는 사람 있으니 그 사람을 가리켜서 “마음이 가난한 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 사람 있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저는 모든 것이 충만해서 부족함이 없다고 그렇게 느끼는 그런 교만한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너희 중에 영감과 진리가 부족하거든, 너희 중에 하나님의 그 충만한 은혜가 네게 부족하거든 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의 충만한 그 은혜가 네게 많이 있지마는 아직도 부족해서 더 갈급이 있거든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뭘 구하라? 지혜를 구하라. 지혜 구하란 말이 뭐인데? 영감과 진리를 구하라.

영감과 진리 구해 가지고 뭐할라고? 하나님의 충만은 영감으로 주고 진리로 주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충만을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구할 때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충만한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영감과 진리로 주신다. 네가 영감과 진리를 다 배반해 버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하나도 너는 받을 것이 없다.

영감과 진리로 주실 때에 그 영감을 네가 확신하는 믿음으로 받고 그 다음에는 몸으로 순종하는 믿음으로 받고, 마음으로 받는 인정 믿음으로 받고 몸으로 받는 행함으로 받아라. 그러면 하나님의 충만의 실상이 너에게 와 가지고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후히 주신다 말은, 후히 주신다 말은 에베소 3장 20절에는 보면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후히 주신다 말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가지신 것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이 주시고 우리가 많이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대해서 욕심이 자녀에게 더 많이 무엇이든지 가르치고 그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하는 부모와 선생이 다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하나님의 충만한 걸 우리에게 어서 많이 주시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해서 하나님같은 온전한 자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후히 주신다 말은 우리의 구하고 생각하고 소망하는 그 이상으로 넘치게 주신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꾸짖지 안한다는 것은 세상 것은 주고 심히 달라 하면은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이 성질과 달리 주시고 또 주시고 주시기를 원하고 원하여서 끝없는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그 심정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 안하고 얼마든지 주시기를 원하고 얼마든지 받아서 감당하기를 원하는 무한한 우리에게 기대와 소망을 가지시고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성부의 은혜와 성자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가 겸해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 은혜가 완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라 말은 성부의 은혜, 성자의 은혜, 성령의 은혜로 우리에게 오는 그 모든 은혜를 들고 있으니까 이 세 가지 은혜를 벌써 우리에게 베풀어 가지고 길을 열어 놨으니, 벌써 너희가 선택함을 받았고, 구속함을 받았고, 중생함을 입었고, 벌써 성화에 착공하고 있고, 제사장, 선지, 왕의 이 성직을 훈련시키고 연습시키고 있는 이 하나님에게 구하라. 너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려고 일체이신 한 분이신 하나님이 삼위의 이 격위를 가지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 하나님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 말은 “구하는 자마다 얻을 것이요” 하는 말씀과 같은 뜻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는 것은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받는 게 아니라 구하는 자는 전부 누구든지 다 받는다는 것을 보증해서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사람은 한다고 하면 ‘내가 하겠다’ 상대방이 신용 안 하니까 `내가 꼭 하겠다’ 그래도 신용 안 하니까 ‘내가 하기로 맹세한다' 그래도 안 들으니까 `내가 죽어도 한다’ 이런 말을 보태는 것은 자신이 상대방이 인정치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자신이 권위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나 “주시리라” 이렇게 말한 것은 이는 틀림없이 구하는 자에게는 확실히 주는 절대성 있는 그 보증으로써 “주시리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6절에, 요게 중요합니다.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구하고” 믿음은 세 가지입니다. 믿음이 뭐이 믿음인가? 믿음의 생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감과 진리로 가르쳐 주시는 그것이 믿음의 생명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마음으로 의심 없이 확신하는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믿음과 함께 실행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말은 확신과 순종으로 구하라. 하나님의 뜻에 확신과 순종으로 구하라. 하나님께 피동으로 구하고 네가 능동으로 구하지 말아라.

“믿음으로 구하라” 하나님을 따라서 확신과 실행으로 구하라.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이런 종류는 구하고 이런 종류는 구하지 말아라 했다. 하나님이 구하지 말라는 거는 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구하라는 것은 네가 구해라.

또, 하나님이 현실을 만들어서 주시기 때문에 때를 맞춰서 구하라 하는 때에 구하라. 때도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정하고 네 맘대로 정하지 말고, 하나님은 지금 내일 줘야 좋을 줄 아는데 저는 지금 달라고 야단입니다.

또 하나님은 그런 것은 네가 받으면 망하기 때문에 그런 거는 구하지 말아라 했는데 하나님이 구하지 말라는 거, 자기 양심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는데 양심으로 하나님이 구하라는 것이냐 구하지 말라는 것이냐, 신구약 성경에 구하라는 것이냐 구하지 말라는 것이냐, 신구약 성경에 말했기 때문에 구하라 하는 것만, 구하라 하는 종류를 구하라는 것만 구할 것, 성경이 구하지 말라는 건 안 해야 되고, 성경이 구하라고 한 것이라도 자기 양심을 쓰면 ‘성경에 구하라 했지마는 나는 이거 구하는 것이 이거 불가한 일이다, 내가 구할 것이 아니다. 또 내가 지금 이거 지금 달라고 구하는 것은 내가 이거 사욕이다. 이거는 외의 것이다.’ 분명히 우리 속에 있는 빛이 알려 줍니다.

“어떻게 행할 것은 사람에게 물을 것이 없이 너희 속에 기름 부음이 있으니” 너를 중생시킨 성령이 있으니 양심만 쓰면 “그 성령이 너희들에게 바로 가르쳐 주나니 귀가 있는 자는 들을 수 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은 깨달을 수가 있다 하는 말입니다.

이래서,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에 따라서 영감과 진리를 따라서 내가 확신해야 되고, 따라서 확신한 대로 실행하는 그것이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은 기도하라는 것인지 하지 말라는 것인지 그것을 구별을 해야 되고, 하나님이 구하라 하는 것을 구하는 데도 이것은 구하면 ‘주시는 것은 오늘 꼭 줘야 됩니다’ 나는 꼭 오늘 있어야 될란지 모릅니다.

‘오늘 꼭 줘야 됩니다’ 하는 그것도 시간을 제가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네가 정하지 말고 너는 언제 있어야 될란지 너는 모른다. 시간을 모르니까 시간도 하나님께 물어 가지고 하나님을 따라서 시간도 정하고 네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도 성경 보고 모르는 것은 네가 기도로써 양심으로 물어 가지고 하나님에게 이거는 구해야 되겠다, 안 구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알아서 하나님이 구하라 하는 것을 따라서 구해라. 그게 믿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종류도 하나님이 구하라 하는 종류대로, 시간도 하나님이 구하라 하는 시간대로, 그 분량도 하나님이 구하라는 분량대로 양심을 쓰면 알 수 있어. 이렇게 구하라.

“믿음으로 구하라”

그런고로,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믿음으로 구하라” 그러면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충만은 우리가 다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예비해 가지고 계시는 그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우리는 다 구할 권세가 있는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다 구할 권세가 있습니다.

오늘 공과에서는 지혜 중에 네 가지를 말했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첫째 지혜요, 또 둘째로서는 자기가 참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그 지능을 달라고 구하는 것이 둘째에 구할 것이요, 셋째는 자기가 나그네 세상에서 후회없는 참사람의 걸음을 걸어갈 수 있도록 지능을 달라고 하는 것이 셋째로 구하는 것이요, 마지막으로 남은 것 구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존재들에 대한 지식을 통달하는 지혜를 달라고 하는 것이 마지막으로 우리가 구할 지혜라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것만으로 한이 아니고 요긴한 것 넷을 들면 그렇다는 것이지 그걸로 다가 아닙니다. 여게 지혜라 말은 영감과 진리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을 다 구하라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한 모든 전부를 다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서도 다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여, 나는 기침이 나옵니다. 기침 이거 고쳐 주옵소서. 나는 항문이 빠져 나왔습니다. 나를 이거 고쳐 주시옵소서.’ 왜? 요번에 보니까 항문 빠진 사람 뭐 이렇게 쑥 빠진 사람이 나은 사람 꽉 찼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말합니다.

‘나는 이 폐병이 들렸는데 고쳐 주십시오. 나는 내 속에 쓸데 없는 욕심이 있으니 이 욕심 이거 고쳐 주십시오. 나는 시기하는 병이 들어 있으니까 이 시기를 고쳐 주십시오. 원망하는 병이 들었으니까 원망하는 거 고쳐 주십시오.’ 마음의 병, 인격의 병, 영이 그 심신을 통치하지 못하는 영의 무능성, 뭐 이번에 병이 얼마나 많이 고쳐졌을 겁니다. 고쳐지고 난 다음에 죄 지으면 다시 그것이 악화되고 맙니다. 소용 없어.

만일 고친 그대로 범죄하지 안하고, 범죄하지 않는다 말은 자기 걸어갈 걸음을 삐뚤어지지 안하고 자기의 걸음을 꼬박꼬박 걸어가면 말입니다. 그 은혜에 은혜가 소생되고 점점 자라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거든 하는 말입니다. 지혜가 부족하다는 말은 지능이 부족하다는 말이요, 지능이 부족하다는 말은 영감과 진리가 부족하거든 말이요, 영감과 진리가 부족하거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충만은 전부 영감과 진리 가지고 주는데 하나님의 충만이 내게 부족한 것이 있거든 그 말입니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이 있거든.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부를 다 구할 수 있습니다.

“후히 주시고” 생각보다 넘치게 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얼마든지 주기를 계속 원하고 원하고 계시지 ‘이제 그만 달라 해라’ 하는 분이 아니고 당신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얼마든지 좋아하시고 주시는 것을 얼마든지 마다 하지 않고 좋아하시는 이런 하나님이 있으니까 우리에게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부족한 것이 뭐 있습니까? 망령돼서 우리가 믿지 안하고 구하지 안해 그렇지 하나님에게 충만이 다 그거 다 내것인데, 내가 다 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뭐 있습니까? 이렇게 이 하나님의 충만을 다 자기 것 삼을 수 있는 이런 계약을 받고서 빼빼 말라 가지고 가련한 것은 제가 믿지 않는 그 행세요, 믿지 않는 벌이요, 믿지 안하는 징계요.

여게서 우리는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거짓 병신 못난, 인간 중에는 제일 천물이지마는 내게 모든 충만을 가지고 그분의 충만을 받으면 피조물 중에는 제일 부자가 되겠어. 그분의 충만을 나에게 주시기를 원하고 얼마든지 주시고 꾸짖지 안합니다. 그런데 이 가지신 것을 달라고만 하면 주실라고 하셨으니까 이 계약을 믿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충만은 믿는 자의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왜 믿지 않습니까? 구하는 데 방편까지 다 말했어. 그러면 구하면 어떻게 구해야 됩니까? 믿음으로 구해라. 네가 구하는 데에는 자살을 구하는 것도 있다. 자멸을 구하는 것도 있다.

어린 아이가 번쩍거리는 비수검이 옆에 있으니까 칼 달라 하지만 칼 그거 주면 제 상하지 유익될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하는 것만큼은 좋습니다.

만일 엄마한테 칼 달라 하면은, 칼 달라고 울면은 칼 주면 그 아이 죽을 터이니까 칼 안 주고 자꾸 그라면 ‘야야야’ 사탕을 주다가 안 되면 바나나도 줄 거고, 바나나 안 되면 과자도 줄 것이고, 안 되면 업고 둥게둥이 칠 것이고, 어짜든지 구하는 것은 부모는 그 구하는 아이에게 무엇인가 만족을 이루어 줄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악한 부모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구하는 자는 손해보지 않습니다.

이래서, 성 싼다싱은 말하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마치 바다물이 증발하는 것과 같다, 바다물은 다 짠 소금물이지마는 증발할 때는 염분은 다 제해 놓고서 맑은 물만 증발하기 때문에 비보다 더 깨끗한 물이 맑은 물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갖 구하는 것에서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은 다 제거하고 필요 있는 것으로 주시고, 필요 없는 걸 달라 하면 필요 있는 것을 바꾸어 주신다. 이런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런고로 쉬지 말고 구하라 그렇게 그분은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 계약이 얼마나 큰 계약입니다. 이만하면 우리 부자 다 되지 안했습니까? 이만하면 우리보다 더 높은 사람 없습니다. 우리 위에 갈 사람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야고보서 1장 9절에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아진 것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은 것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다 지나감이라” 예수 믿기 전에 인간은 나는 천물로 알았는데 이제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하는 이 계약을 척 받은 자기라는 걸 생각할 때에 천하에 자기가 제일이라. 이렇게 높아졌어.

자기가 인간 중에 천물이 아니라 인간 중에 제일 극상이 될 수 있는 자기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믿는 것이, 소망을 가지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기 전에 자기는 세상에 제일 유아독존으로 제일 잘난 사람이고 아주 제일 존귀하고 부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성경을 척 보니까 썩어질 것, 없어질 거, 풀의 꽃과 같은 거, 오늘이라도 지나가면 다 없어질 거 이것만 가지고 장담하고 이것만 보고 그랬기 때문에 자기같이 가난하고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예수 믿고 깨닫고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자기라는 것을깨닫고 낮아짐으로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자 낮은 자다.’ 아무것도 없는 자가 ‘나는 이와같이 부강의 희망을 가진 자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너희 중에” 구속 받은 자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영감과 진리가 부족하거든” ‘영감과 진리가 부족하거든’ 그거 무슨 소리요? 하나님의 충만은 영감과 진리로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충만한 것이 네게 부족하거든 하는 것이 요 속에 알맹이 뜻입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는 말은 그 안에 껍데기는 ‘지능이 부족하거든’ 하는 말이고, `지능이 부족하거든’ 하는 말은 ‘영감과 진리가 부족하거든' 하는 말이고, `영감과 진리가 부족하거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충만은 다 영감과 진리에 담아 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충만이 네게 부족하거든’ 하는 것이 그 속에 알맹이입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거 하나 가지고 우리 부자 다 되지 않습니까? 이거 가지고 만 가지 다 부강하고 성공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데 하나님이 거짓말 했습니까 우리가 구하지를 않습니까? 하나님이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신실히 말씀하신 것을 확실히 믿지 안하고 인정하지 안하고 그대로 행하지 안했기 때문에 우리는 거지로 있지. 이걸 회개해야 됩니다.

구하면 어떻게 구할 것도 말씀했습니다. “믿음으로 구해라” “믿음으로 구하라” 믿음으로 구하라니? 순종으로 구해라. 하나님께 피동으로 구해라.

하나님이 네게 준다 했으니까 주실 것을 확실히 믿으면 피동이요 마음이 순종이요, ‘준다 했지마는 주시겠나?’ 하면 하나님께 피동된 마음이 아니고 순종하는 마음이 아니고 자기 주관의 마음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하나님께 순종으로 구하라.

무엇에 순종?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문서계시를 순종하고 영감계시를 순종으로 구하라. 영감계시 문서계시를 순종하는 게 뭐입니까? 영감계시 문서계시를 네가 ‘이거는 거짓말이다’ 하면 순종이 아니고 영감계시와 문서계시를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참되다.’ 하면은 영감계시 문서계시를 네가 계시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게 믿음이다.

그거면 다입니까? 또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에게 이것은 구하지 말고 이것은 구해라. 종별을 말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하라는 종류만 구해라.

구하라는 종류 중에도 오늘 구할 게 있고 내일 구할 게 있고, 내가 늙어서 구할 게 있고 젊어서 구할 게 있고, 이런 환경에서 구할 게 있고 저런 환경에서 구할 게 있기 때문에 때를 따라서 구해라.

때도 순종으로 때를 정해라. 종류도 순종으로 정해라. 양도 순종으로 정해라.

하나님이 주시기는 언제 주실란지 모르는데 오늘 꼭 줘야 된다는 주시는 것도 받는 것도 네가 시간을 정하지 말고 그것도 ‘내 주여 뜻대로 나에게 가장 필요할 때 주십시오’ 그분을 믿으라!

“의심하지 말아라” “의심하지 말아라” 믿음은 하나님에게 순종 복종 피동이요, 믿음은 하나님께 피동이요 의심은 믿음의 반대인 자기 주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하나님께 순종으로 네가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 반대인 네게 순종하는 네 주관, 네 자율, 네게 순종하는 네 주관대로 구하지 말아라.

하나님께 순종으로 구하다가 자기 주관에게 순종하다가 이렇게 하는 자는, 하나님에게 순종했다가 자기 주관에게 순종했다가, 하나님께 피동됐다가 자기 주관에게 피동됐다가, 자기 주관하고는 세상하고는 한 덩어리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했다가 자기 주관 세상에게 순종했다가, 하나님께 피동했다가 세상에 피동했다가 이렇게 하니 이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물결이 동풍 불면 서로, 서풍 불면 동으로, 북풍 불면 남으로, 남풍 불면 북으로 이렇게 바람 부는 대로 흔들려 자기 주위 환경, 세상 인간들의 지걸거리는 모든 인간들의 의사, 네 주관 의사 거기에 따르다가 하나님에게 따르다가 이렇게 하니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실 수 없다. 꼭 하나님에게 따라서 연결돼서 하나님에게 피동으로만 인간은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피동되는 것으로만 줄 수 있어.

하나님은 뭘로 주는가? 돈으로 직접 주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로 줘. 영감과 진리로 주니 이 영감과 진리로 주는 것은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만 받을 수 있지 딴것으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데 “두 마음을 품었다” 하나님께 연결됐다가 이 세상에게 연결됐다가, 자기하고 세상하고는 하나이기 때문에 옛사람이라 그 말이오. 옛사람에게 연결됐다가 하나님께 연결됐다가 이라니까 하나님에게 연결돼야 그 연결을 통해서 주시는데 하나님과 우리와 연결이 어찌 되는가? 연결되는 것은 그분이 영감과 진리를 우리에게 주실 때에 옳다 긍정하고 믿으면 그분하고 나하고 연결이 됩니다.

뭘로 연결됐어? 진리로 연결됐지 영감으로 연결됐어. 연결된 그 연결줄에다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진 충만을 영감과 진리로 들이 내려주니까, 진리와 영감으로 이제 연결됐는데 진리와 영감으로 온 것을 내가 믿음으로 연결됐는데 충만을 영감과 진리로 우리에게 주실 때에 내가 영감과 진리에 순종하니까 그 영감과 진리는 내것 됐습니다. 그 영감과 진리에게 싸여 온 것은 내것이 됐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이요 우리는 받을 수 있는 우리요 하나님께 구하는 것도 이렇게만 구할 수 있는 것인데 이제 바람에 밀리는 물결같이 주위 환경에 피동돼 가지고서 정함이 없이 이 환경되면은 여게 피동되고 저 환경 되면 저게 피동되고 하니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고 싶어도 연결이 끊어졌으니 주실 수 없고 연결 끊어진 자에게 당신이 주시면 세상하고 연결된 그 연결로 인해서 왔다고 생각할 터이니까 그 사람이 세상과 이전보다 더 몇 배나 한 덩어리가 될 터이니까 멸망케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주실 수가 없어! 요 진리에 입각해서 요동치 안하면 얻지 못한 자가 없습니다! 왜 못 얻습니까! 만일 요렇게 했는데 주지 안하면 하나님 앞에 시비를 하고 고소를 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당신이 계약을 선포해 놓고 내가 요 계약대로 했는데 왜 주지 않습니까?’ 시비를 해서 하나님이 잘못됐다면 하나님이 자복을 할 것이요 사과를 할 것이요 하나님이 벌을 받을 것이오. 하나님은 거짓 하나님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짓되지 안하니 안 되는 것은 내가 구할 대로 양이 모자라든지, 방편이 틀렸든지, 내가 잘못 쓸라고 악이 들어서 구했으면 주면은 더 망하지.

이러니까, 이렇게 우리 믿는 사람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이 하나님이 계약을 님이 주셨는데, 믿음으로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인데 여기에서 이탈되는 데에서 우리가 다 거지되고 가난해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니라” 여러분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줄로 주십니까, 하나님과 연결 안 된 연결이 끊어진 데 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 연결 끊어진 데 주십니까 연결된 데 주십니까? 좋은 것은 생명과 평강의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완전한 것은 하나님과 연결에서 주고 하나님과 끊어진 데 주는 것은, 전부 주는 것은 멸망밖에 주는 거 없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데서 주는 것은 사망, 망하고 죽는 거 영원 멸망하는 거, 하나님과 끊어짐으로 인간들이 받는 것은 다 멸망하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은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으로만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런데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니 어떻게 주실 수가 있습니까? 받을 생각 말아야 되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의 십자가의 이 대속으로 인하여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 없는 보증의 약속으로 우리에게 선포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약속을 확신하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은 이 모든 지극히 큰 은혜를 저희들이 받아 세상에서 빛이 되고 영원 무궁토록 모든 존재들의 중보가 될 수 있는 이런 영광스러운 구원을 악령의 유혹에서 믿지 못하고 땅의 것만 보고 위엣 것을 찾지 못하다가 허송세월의 구원에 다 미비자로 주 앞에 서는 이거 원통합니다.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우리 모든 형제들 이 세계 어데 있든지 산재해 있는 형제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셋 능력으로 인하여 이 성경에 계약해 주신 이 계약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자기 전부를 이 계약 준행에 바쳐서 영광스러운 이 구원을 다 감당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신구약 성경이 생명의 말씀이요 영생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극히 큰 은혜를 약속해 주신 모든 권능의 실상인 것을 알고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한 구역에 오늘은 저들이 볼 수 있도록 일등, 이등, 삼등만 시상했습니다.

또 초등강 고등강을 다 공부하고 외우고 한 자들에게 이렇게 일등, 이등, 삼등으로 시상을 했습니다.

남은 형제들도 열심히 성경을 상고하여 여게 우리의 모든 소원이 다 있고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이기는 모든 은총이 이 속에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성경 말씀을 모든 독서량보다 더 뛰어나게 독서하여 온전히 믿음으로 주님이 주신 구원을 완전히받아서 감당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남은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들도 다 본받아서 열심히 성경을 상고하여 자기를 깨끗게 하고, 자기를 강하게 하고, 자기를 굳게 하고,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구출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 온갖 것을 구하여서 부족함이 없이 다 얻어 걱정 많고 거짓 많고 인정 없는 이 세상에 평안하게 염려 없이 살아가고 하나도 후회할 것이 없는 알속있는 생애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든든히 믿고 의지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요동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많은 기도와 수많은 눈물과 수많은 노력으로 구출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이 사랑의 심정으로 점점 뜨겁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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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 지행합일/ 로마서 12장 1절-2절/ 1980.12.3.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988 지혜 있는 생활-그 날의 계산/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1983. 6. 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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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5 지혜구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3. 7. 7.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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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22.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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