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1980. 12. 2. 새벽 (화)

 

본문 : 로마서 12장 1절 - 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금생에서든지 오는 영원한 내세에서든지 우리  생활하는 데에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금생에 대해서도 바로  깨닫고 바로 행하는 거기에 모든 불행이 제거되고 행복이 갖추워집니다. 또  이것은 금생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내세 영원토록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제일 불행이 무엇이냐? 제일 불행은 잘못 깨닫는 것입니다.

잘못 깨달으면 잘못 행하는 것은 그것은 필연적으로 힘 안써도 잘못 행하게  됩니다. 또 바로 깨닫는 것도 바로 깨닫고 바로 행하기가 어려운 줄 알아도 바로  깨닫고 바로 행하는 것도 힘 안들고 저절로 행해집니다.

사람 안다고 해도 거게 대해서 일부분만 알고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는 것과  행함이 일치되지 아니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거게 대해서 안다  할지라도 예를 들어서 거기 그것이 다섯 면이 있다고 하면 오분지 일면쯤 알고  다 아는 줄 알기 때문에 일면 아는 그것은 아는 그대로 자기는 행하려고 했는데  그보다 많은 사면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행하려고 하니까 사면을 모르고  행하려고 하니까 그 면이 무리가 되 가지고 행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나 무엇이든지 그것이 다섯 모를 가지고 있는데 다섯 모 다섯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다섯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안다고 하면 그것은  행하기가 쉬우냐 안 행하기가 쉬우냐? 안 행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왜? 그것은  자기 지식을 전부 거슬리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행하는 것은 저절로 행해집니다.

그러기에 사람이라는 것은 생에 애착욕이 있는 것입니다. 살고저 하는 애착욕이  있소. 살고자 하는 애착욕이 있고, 또 행복되고저 하는 그 행복 욕심이 있습니다.

또 자기가 존귀해지기를 원하는 존귀 욕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속에 다  본능적으로 들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애 애착욕도 들어 있고, 또 그 존귀욕도 들어 있고, 또 행복욕도 들어  있습니다. 이런 욕심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욕심들은 자기의 있는 모든 힘을  다 주장합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무엇이든지 아는 그대로 욕심을 품고 아는  그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에 애착욕이 있기 때문에 만일 길이 열 길이 있는데 갈레길이 열이  있는데 생에 애착욕이 있기 때문에 갈레길이 열이 있는데 이 한 길 이 길은 가면  사는 길이고, 아홉 길은 가면 죽는 길이라는 것을 자기가 그렇게 알고 있으면  자기가 그걸 바로 알았든지 몰랐든지 아홉 길은 죽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한  길은 사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 그 사람은 죽는 길로 다른 사람이 끌고 간다면  있는 힘 있는 대로는 안 끌려 갈러고 애씁니다. 또 사는 길은 자기가 다른 사람이  못 가루러 하면 다른 길은 다 죽는데 이 길로만 가야 산다 하면 그 길을 어떻게  뭐 손으로 뚫는다면 손이 막 모지래져도 뚫습니다.

또 이 생애 애착욕이 제일 강한데 그 다음에 행복욕, 이 행복욕은 자기가 분명히  알기를 이 열 길 가운데 있는데 요리 가면 행복이 되고, 요리 가면 비슷한 행복이  되고, 요리 가면 불행이 되고, 요리 가면 망한다 하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알면  자기가 망하는 길은 피하려고 애를 쓰고 행복된 길은 갈려고 애를 쓰는데, 행복된  길을 갈려고 해를 쓰되 이것도 고 지식이 좀 약하면 어지간이 그만 행복된 길을  가고 아주 행복된 그 길 외에는 그때 계산하면 불행이다 하면 행복된 길 갈려고  있는 힘 다 기울입니다.

그러기에 알기만 하면 행한다는 것은 안 행하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쉽습니다. 이  아는 게 문제지 알기만 하면 행한다는 그것은 저절로 됩니다. 사람이 내리가기가  쉽지 올라간다는 것이 어렵고 또 낭떨어지 올라가는 것 철사로 만들어 놓은 가시  줄 이 가시 그런 것 검어쥐는 것이 사는 길이 좋아 할리가 없습니다.

이렇지만 어떤 사람이 함정에 빠져 가지고 있을 때에 거게 아주 그 날카로운  철사가 이 담침해 놓은 그런 그런 철사 줄이 있습니다. 고 한 줄밖에 없어.

없는데 아무래도 이 줄을 타고서 이 줄로 당글아 맺혀서 이 함정을 벗어나야  되지 좀 있으면 이제 이 함정 안에 든 내게는 함정을 파 가지고 나를 잡으려고  하는 그들이 오면 나는 삼켜진다 하는 그것을 자기가 안다면 그 철사 줄 그걸  타고 올라 오려고 손과 발이 마구 끌겨서 피가 나고 절단이 날때까지 올라가려고  애를 쓰겠소 안 쓰겠소? 안 쓸 사람 한번 손 들어 보십시요? 그 손이 절단나고  다 절단이 나도 살려고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애쓸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요. 나도 그러겠소. 이겁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아는 것을 어디까지 안다고 아는 것을 표준을 할것이냐? 아는 표준이  어디까지냐? 아는 표준은 알면 행하는 행해지는 그것이 아는 표준이냐? 자기  있는 힘을 다 기울이 가지고 안 행하고는 견딜 수 없는, 자기 힘이 없으면 아무리  그 함정에 빠진 사람이 철사 줄을 타고 올라오면 살 줄 알아도 아무리 거머쥐고  이래 해도 손을 다 꺽어 있는 힘을 다 기울이도 이거는 힘이 없어서 팔 힘이  없어서 올라가지 못하고 그러면, 그 사람이 죽는 그 시간까지는 자꾸 이거 뭐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살을 다 끌어도 이렇게 애를 써도 못 올라 오겠지요. 힘이  없으면 못 올라 오지만 힘을 두고는 안 올라 올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는 것과 행함은 하나입니다. 이런데 행해지지 않는 것은  아직까지 거게 대해서 알때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안다는 것이 거게 대한  십분지 일을 알았든지 그러면 아는 것이 껍데기로 알았든지 그 아는 그것의  원인과 결과와 거게 대한 그 보응, 거게 대한 비참, 거게 대한 행복, 거게 대한  영광 이것이 어떻다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그 행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게서 실패를 많이 합니다. 안다는데 대한 이 아는 것에  정도를 이것을 에누리를 해 가지고 그 정도에 십분지 일쯤 알고 난 다음에  이것을 다 안다고 했기 때문에 헛일이라.

사람을 접촉해 보면은 그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은 아는 것 없고 모르는 것 없어  보면 접촉해 보면 다 압니다. 알지만 그 사람이 소문 들은 것처럼 그런 정도지 그  아는 것을 자기가 종목도 바로 아는 게 알지를 못해. 그 아는데 거게 대해서  백분지 일도 몰라. 그러고 압니다. 그 사람의 아는 그 표준을 이렇게 에누리를 해  가지고 아는 사람은 모르는 것 없이 다 알지요. 이렇지만 다 아는데 아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안다는 이 그 보수를 표준을 이것을 사람들이 에누리 해  가지고 자 사람을 안다하면 사람은 개 아니고 짐승 아니고 하는, 버러지 아니고 목석  아닌 그것이 사람이다. 사람은 보면 보고서 저거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서 사람  아는 것이 아는 것 아닙니다. 사람을 알려고 하면 그 사람은 근원과 결말과  위치와 그가 어떤 요소로 되어 있는 것이며, 어떤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어떻게  존귀하고 귀천한 그 결과를 맺으며, 사람에게 대한 그 지식을 알라 하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 사람에 대한 지식은 우리 믿는 사람도 아주 안다는 것이 너무  희박합니다.

사람이 천군 천사보다도 높게 지었고 만물 위에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데에는 사람이 제일 깊은 형벌을 받습니다. 마귀보다도 더 형벌  받습니다. 택한 자들은 얼마나 존귀하냐?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할 수 있는 이런  희망성을 가진 것이 사람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불택자와 같이 이렇게 사는 그것을 부러워하고 택자의 구별된 생활을 하기를  싫어합니다.

무엇 때문에 세상에 사는 그런 목적을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가지 시련을 싫어하고, 또 훈련을 싫어하고, 모든 피조물의 탁월한  자이기 때문에 아는 것도, 행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비판하는 것도 이것도  탁월해서 천군 천사를 다 심판하고 영원히 통솔할 수 있는 이런 위치가 우리  위치인데 이 위치에 합당한 그 실력을 갖춘다는 것은 얼마나 배워야 될런지.

옛날도 그 군왕 정치에서는 임금의 아들이 임금이 되는데 임금의 아들이 임금이  되는 그것이 그 군왕 정치에 계통이기 때문에 되어지지만 자기가 임금이 된다면  모든 백성보다도 탁월한 그런 지능을 가지지 안하면 임금이 될 수 없다는 요것을  알고, 이렇게 애를 써서 참 임금이 될만한 이런 실력을 갖추워 가지고 계대해서  왕이 되는 그런 왕은 그 나라를 부강하게 통치하고 이것은 그런 위치를 받을  것인데, 저 그만 한 실력을 갖추지 아니하고 게을한 그런 것은 결국은 그 나라가  망해버리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임금의 아들로서 그 계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마구 정국이  들어 가지고 힘을 모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배우고 기르고 이래 가지고 애를  써서 그 임금의 아들은 잠시 순간도 어데 외출을 못해. 벌써 나가면 다 수속을  밟아 가지고 수많은 사람이 따라. 이러기 때문에 혼자 동하고 정하는 일은 전혀  못해.

그러기에 실상 인간의 행락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행하지 못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 불행 중에는 임금의 아들로서 임금되는 이보다 불행이  없다는 이것을 절실히 느끼고 이렇지만 자기 사명상 자기의 그 계통상 유전상  아니라, 이 백성을 위해서 자기는 이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 사명을  가지고 어데 빠져서 숨어서 도망을 쳐 가지고 딴데로 가도 서민 생활하고 싶지만  이것을 어쩔 수 없어. 이래 해.

또 달아날라 해도 자기에게 그 하나님의 사명 천명을 받아 가지고 있는데 자기가  그렇게 나가면 벌받아 죽을 줄 아는 이 사람이 왕의 계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  되면 이런 사람은 그 나라가 태평해 지고 이제 그참 좋은 임금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실력을 갖추지 안한 사람은 안되는 것인데, 이 세상에 그거 다  자연계시인데 그 일본에서도 귀족 정치한 사람들은 귀족이라 하면 귀족, 귀족이라  하는 그 사람이 그저 아무나따나 귀족이라 계대하는 게 아니라. 귀족이면 귀족의  그 모든 민족 중에 제일 귀족으로서 모든 사상이 고상하고 지능이 고상한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안됩니다. 귀족이 절단나고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만큼 준비하는 것이데, 우리가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한,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같이 거룩하고 깨끗하고 온전한 이런 그 우리가 되어져야 우리의  위치를 감당할 수 있고, 우리의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이것을 알면 세상에서  참 촌음을 애끼면서 어쩌든지 기도하는 가운데에 구하는 가운데서도 시간  허비하지 않게 해달라는 이것을 시간 허비 하지 않게 해달라는 이것을 구하고  시간을 허비한 거 대해서 가슴이 아프고 기가 막히고 그 마구 짜증이 나고 이래  애를 쓰고 이렇게 발동을 해도 이 시간을 바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바로 안다는 것을 벌써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게 구하라" 그말은, 지혜를  구하라 말은 바로 깨닫는 것을 말하는데 행하는 것은 어찌하고 사람들은 행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기가 깨닫는 것을 백분지 일쯤 깨닫는 것도  깨달은 것이라 이러고, 백분지 구십 구를 깨닫지 못하겠으니 아는 대로 행하지  않는다 그말이요. 거게 대해서 실은 백분지 일밖에 못 깨달아 백의 백을 다  깨달으면 행하는 것은 안 행하래야 안 행할 수 없게 된다고, 안 행할래야 안 행할  수 없어.

뭣 때문에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본능 때문에 그래 생애 애착의 본능이  있고, 행복의 본능이 있고, 존귀의 본능이 있어. 이러기 때문에 이 본능의  행위로서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행할 능력을 구하라고 하지  아니하고 바로 깨닫는 것을 구하라" 깨닫는 것만 구하면 깨닫기만 하면 다 된다  이거요.

그러기에 여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들을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라 말은 너희들이 영으로 사는 생활이니라  그말이오. 네 영으로 사는 생활은 산 제사로 드리는 일이 아니면 안됩니다.

산 제사로 드리는 이것을 산 제사로 드리니까 이거 얼핏 생각하면 자기 일을  행복스럽게 불행스럽게 하고 자기를 망치는 것으로 이렇게 알지만, 산 제사  생활해라 하는 것이 자기 망치는 이 생활로 이렇게 인식을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들을 권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자비라  말이요. 하나님의 자비가 뭉치고 뭉치고 하나님의 모든 자비가 자비를 가지고  너를 대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산 제사 드리라 하는 이거라 그말이요. 산 제사  드리라 하는 이것이 자비라. 하나님이 자비에서 그러기에 산 제사 벗어 놓는다는  것은 다 자기 망할 길이라 그말이요.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이것이 온전히 깨닫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알면은 이것은 온전히 깨닫는 것이라. 바로  깨닫는 것이라. 하나님이 거게 대해서 이렇게 아시는 대로 자기가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대로 같이 알고, 하나님이 거게 대해서 느끼는 대로 같이 느끼고, 하나님이  깨닫는 것같이 깨달으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라.

그러면 이렇게 바로 깨닫는 것이 참 행복입니다. 모든 행복이 바로 깨닫는데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망하는 것이 잘못 깨닫는데 있는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마귀라는 놈이 와서 일하는 것은 뭐이냐? 삐뚤어지게 잘못 깨닫도록 하려고 하는  것이 마귀의 전심 전력이요. 하나님은 뭐 하십니까? 바로 깨닫도록 하려고  하나님께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십니다.

이러니까 사람을 접해볼 때에 벌써 그 사람이 힘이 모지라는 것은 상관 없어요.

그 사람이 잘못 깨닫는 것 그것이 있으면 그거 고치기 전에는 그 사람은 볼일 다  봤소. 헛일이요. 사람을 접촉해 보면 그 사람에게 다 좋은데 잘못 깨닫는 고것  하나만 있어. 고거 하나가 있어. 있으면 고것이 그 사람에게 암이요. 그 사람의  행복에 암이요. 그 사람의 존영의 암이요. 그 사람의 모든 성공의 암이라. 고것  가지고 다 망쳐요.

사람이 바로 깨닫기는 깨닫는데 행하는 실력이 없습니다. 행하는 실력 없으면 고  사람이 좀 적게 하지. 시간이 걸리지. 하기는 합니다. 바로 깨닫는 것이 이렇게  제일 중요하고 잘못 깨닫는 것이 제일 큰 화근이 된다는 이것을 사람들이  느끼지를 못해요. 그 바로 깨닫는 것이 십분지 칠이면 바로 행하는 것은 십분지  삼밖에 안된다. 그거는 어렵기가 십분지 삼밖에 어렵지 안하고 바로 깨닫는 것은  십분지 칠이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전심 전력을 기울려서 바로 깨닫는 데에 기울여야 된다.

이말을 암만해도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를 못합니다. 모두 다 말하면 행하기가  어렵지 뭘 알기가 어려워, 아는대로 행할지야 알면 안 행하고는 못견딥니다. 못  행하게 하면 자기 있는 힘 있는 대로는 못 행하게 하는 그걸 대항해서 행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고것이 아는 표준으로 삼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기를 '주님이여 육십육 권 도리를 바로 깨닫게  해주시고 영감을 바로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바로 깨닫는 걸 해달라는 이것을  평상 기도할 때마다 한 번도 빼지 아니하고 기도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로 깨닫는 걸 해달라는 이것을 평상 기도할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아니하고  기도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로 깨닫는 데는 어떻게 바로 깨달을 수가 있느냐? 그 위에 바로 깨닫는 순서가  있어. 그 위에 있는 그 순서 그 순서를 밟아야 바로 깨닫지. 이 순서는 밟지  아니하고 제가 이 바로 깨닫는 데에 도달하는 바로 깨닫는 이 방편이 이 순위를  밟아야 바로 깨달아지는 것인데 이 순위를 밟지도 아니하고 그냥 성경만 보고  바로 깨달으려고 무릎만 꿇고 이래 가지고 있으며 바로 깨달으려고 안 됩니다.

이 바로 깨닫는 것 말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바로 깨닫는 이  순서가 몸으로 제사를 드리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를 드리야 되고,  거룩한 제물로 몸을 드리야 되고, 산 제물로 몸을 드리야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야 돼. 이것이 첫째라.

그 다음에는 이 세대를 따라서 사는 이것을 버리야 돼. 그 다음에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돼. 몸이 변화를 애를 쓰면 이것은 된다  그말입니다. 이것은 된다 그말이요. 이래도 아직가지 바로 깨닫는 것은 아니라.

이것을 밑천으로 삼아 가지고 받아 변화를 받아 가지고 여기까지 준비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래야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비로소 분변할 수가  있는 거라. 이것이 바로 아는 거라.

바로 아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인데 목회자 할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설교할 때는 꾸벅 꾸벅 졸고 오만 생각 다하고 녹음기 뜩 틀어놓고 자 녹음기를  틀어 놨으면 녹음기 소리에 테이프가 다 되어서 딱 거리야 그걸 또 고쳐야지  이래 놓으니까 찌그러기 마음 중에도 그중에 찌끄러기 마음만, 마음은 다  잊어버리고 마음은 지금 죽은 마음이라. 죽은 마음 가지고 죽은 마음 이걸 싸나  그중에 제일 마음에 그 정신을 그 죽은 마음은 그 아주 저급의 마음 이런 마음  중에서도 기울인다는 것이 고 기울이는 고 종류의 제일 머리 되는 고 마음  고것은 테이프 중단 되는 고게 기울려 가지고 지금 그 소리 듣고 있다 말이요.

제가 속고 있소. 이러니까 무슨 영감을 받을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것도 그만 하지 아니하고서 다 필기한 것 그것 한 달 것 만육천  원만 주면 사는데 만육천 원만 주면 사니까 그거 사서 하지. 거 다 기록해 가지고  있는 것, 마귀라는 놈이 그렇게 합니다.

제 귀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줄 그때도  영감과 진리가 성령의 감화가 능력이 함께 올때도 듣지 아니하고 마귀는 듣지  못하게 했는데 그 책 들고 제가 혼자 앉아 가지고 됩니까? 읽다 보면 또 잠오고,  아무리 봐야 무슨 말인지 모르고, 암만 읽어 봐야 무슨 말인지 모르고 이러니까  모르니까 이제 외우기나 하지. 외우니까 외워 가지고 그대로 외우지.

'아 내 꼭 그대로 외워도 은혜 못 받는다 한다.' '참 내 은혜 못 받는다는 말은  내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이해가 안되노?' '내가 꼭 노트 그대로 읽어 보기도  했고 노트를 놔두고 외워 가지고 해봤고 그랬는데 어떻게 하면 은혜가 되고  어떻게 안 됩니까?'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네가 그러니까 순 욕덩어리다.'  '그런진데 네까짓 거 뭐 하려고 교역자로 세울기 뭐고 녹음해 가지고 테이프 해  가지고 녹음기 놓고 틀면 될긴데 뭐 하려고 너를 돈을 많이 주고 세울 거고  세우기는,' '하나님의 나라는 뭐라고 했노?' '하나님의 나라는 권능에 있고 말에  있지 않다는 말 네가 못 들었나?' 이러니까 이것이 안 됩니다.

설교를 들을 때나 성경을 볼 때에 깨달아지는 게 다 같이 들어도 깨달아 지는  거는 뭐이냐? 이 순서가 된것만침 깨달아져요. 이 순서가 십분지 일이 됐으면  십분 지 일밖에는 못 깨달아져. 암만 제가 애써 봤자 이러니까 이것은 안하고  마구 깨달으려고 암만 해봤자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아주 성경을, 성경 학자라고 수십 년을 연구해 가지고 성경 학자라고 된 그  사람에게 자기에게 조그만한 희생될 일 자기의 생명에 조금 위험한 일 그것  안하면 안 된다 말이요. 이런 일 닥치니까 공연히 죽지도 안하고 거석하지도  안하는데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하고 떠나버립니다. 그게 전부 과거에  신학자들 아니요.

신사참배 신사참배 지금 안하면 잡아다 가두고 난중에 가서 어찌될지 모른다  이러니까 전부 배반했소. 그 사람이 몸을 산 제사로 드린 사림입니까 네 산  제사로 드리질라 하니까 그만 도망을 쳐버리는데 산 제사 금방에도 가지도  안했는데 그 사람이 뭘 깨닫겠소. 이러니까 깨닫음이 아니야 그 사람에게  배워봤자 죽는 것 밖에는 없어.

이러니까 우리가 바로 깨닫는 여기에 생사 화 복 존귀 귀천이 여게 달렸습니다.

바로 깨닫고 잘못 깨닫는 여기에 전체가 매달렸습니다. 바로 깨닫고 잘못  깨닫는데 전부가 여게 다 매달렸소. 이러니까 바로 깨닫는 이 일을 하려하면 이  순서가 돼.

그러니까 바로 깨달으려고 하면은 이렇게 밑천이 많이 드는데 바로 깨달으려고  하는데 이런 노력이 많이 드는데 바로 깨닫는 이 바로 깨닫음이 얼마나 가치  있다는 이것을 모르면 누가 이런 밑천 넣겠소. 이런 밑천 넣을 사람 없어. 바로  깨닫는 것이 이렇게 가치 있는 이것을 알고도 이 바로 깨닫을 수 있는 밑천을  넣으려고 하면 밑천이 아깝고 안되는데 바로 깨닫는 이것이 이렇게 가치 있는  줄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이런 밑천을 넣어 가면서 바로 깨달으려고 애를 쓰겠소.

이러니까 마귀라는 놈이 어떻게 인식시키느냐? '바로 깨닫는 것이 무슨 소용  있나?' '바로 깨닫는 것이 무슨 소용 있느냐 행하는 게 제일이지.' '이렇게 까지  껍데기로 지금 바로 아는 것을 암만 알아 봤자 소용 있나?' '안 행하면 소용  있나?' 아는 것을 이렇게 까지 그 소용 없는 무능한 가치 없는 것으로 아는 그  사람이 바로 깨닫는 데에는 한없는 그 참 밑천을 넣어야 되는 것인데 이런  밑천을 넣겠습니까 이러니까 그 사람이 바로 깨닫는 데에는 참 거리가 멉니다.

너무 거리가 머요.

언제 그 사람이 바로 깨닫는 것이 자기에게 이렇츰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  또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난 다음에 자기의 있는 밑천을 넣고 그러고 난  다음에 바로 깨달아 지니까 이것이 얼마나 거리가 멉니까. 잘못 깨달으면  망합니다.

우리 이 개교회로 나가는 이 교역자들도 자기네들이 지금 뭐 불만 불평이 많이  있데요. 불평 불평이 많이 속으로 괴고 있데요. 그런데 언제는 그것을 전부  기록해라 해 가지고 이렇게 무엇인지 그걸 들어 내 가지고 고쳐야 되지 그게  전부 이 마귀가 와 가지고 요놈이 요리 간사 부리고 조리 간사 부리고 간사를  부려서 다 고래 가지고 이간을 붙여서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뭘로 뭘로 하나 되느냐? 칭찬, 자 나는 허무하지만 그래도 나한테 칭찬받는  것은 칭찬받는 그것들끼리 하나가 되어 가지고 있고 책망받는 것은 책망받는 것  끼리 하나 되어 있습니다. 책망을 받는 것이 책망을 달게 받는 고거 '아 참  감사하다.' '내가 이것 책망을 이런 게 있었다.' '이게 이걸 고쳐야 되겠다.'  책망받는 것을 자기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이것 참 사랑해서 책망한다는 요걸  깨닫은 사람은 얼른 그 책망받는 사람의 자리에서 얼른 옮겨서 칭찬받는 자리로  옮겨지는 책망을 잘받으니까 칭찬합니까 내가 알기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는  칭찬하고 하나님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자는 책망합니다.

뭘 보고 목회자는 목회자가 가 가지고 그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하고 교인들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고 아무짝도 못쓰는 사람으로 만드는 그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데 나도 미워해야 될 것 아니요. 하나님 날 세워놓고 책망할  것은 내가 책망해야 될것 아니겠소. 이러니까 가는 곳마다 교회를 떨어뜨리고  교회를 절단내는 그자들은 그자들끼리 하나되어 가지고 있소.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내가 내일 저녁에 오늘 뭐고 오늘이 화요일이가? 그렇습니까. 오늘이  화요일이면 이제 금요일 밤에는 내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그 여게서 그말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 놓으니까 교회를 실패케 하는 자들은 그대로 똘똘 뭉쳐 이래 가지고 제가  꾸지람 들으면 꾸지람 들으면 꾸지람 들은 자는 다 알고 있어요. 옳지 꾸지람  들었으니까 '우리 편 된다' 하고서 꾸지람 들으면 뒤에 살모시 어느 모퉁이라는  기다리고 있다가 찾습니다. 딱 만나 가지고서 왔다 갔다 딱 거석해 가지고 고  사람에게 위로해주는 듯이 그렇게 '그 참 그래하는 건 너무 그래 꾸중하는 것은  그래 너무 그래 꾸중하는 것은 뭐 조용히 타이르든지 안하고 여럿이 있는데  그래하고 제까짓기 뭐이냐.' '제까짓게' 타이르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이 망하는 길이면 너 망하는 길이라 하는 여럿이  있는데 말하는 게 어쩌든지 망하는 길 가르쳐 줬으면 됐지 밀림에서 지금  저리가면 이런 큰 구리가 있어 가지고 확 둘러 마실긴데 거 가면 이런 큰 구리가  있어 가지고 확 둘러 마실긴데 거 가면 죽는 것 그것을 그리 가면 죽는데 하는  것을 기회를 만나 가지고 지금 바쁜 사람이 언제 기회를 만나 가지고 '야야 그  나가면 죽는다.' 그럴 시간이 없어. 이 사람도 갈 사람인데 바쁜데 '그러면  대굴이 있다.' '여럿이 있다.' '그래 뒤질라고 가느냐?' 이래라도 옳게 가르쳐  줬으면 안 죽게 했으면 감사 아니요.

그와 마찬가지로 뭐 제까짓게 뭐인데 기회 찾아서 또 전적으로 저만 또 만나  가지고 제 시간 내야 되고 내 시간 내야 되고 또 그럴 장소 만나야 되고 옆에  사람 없어야 되고서 어데 그럴 시간 어디 있소? 그럴 시간이 없어. 그럴 시간이  있으면 그런 인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라. 하나님과 동행 안하는  인간이라. 어디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빈 시간이 없는데 그래 가지고  하나됩니다.

또 나는 그걸 압니다. 조기 조랬으니까 조것을 하나 될기라 하고서 보면은 난중에  조사해 보면 고기 다방에 갔든지 그리 안하면 무슨 전포에 갔지 뭐 조그만한 것  하나 사서 먹으면서 이래 가지고 한덩어리가 돼. 철통같이 하나 돼. 그러니까  무능한 자는 언제든 무능한 자와 한덩어리 되버립니다.

왜 무능한 자가 무능한 자가 되느냐? 하나님과 우리 차이는 저 하늘과 땅과 같은  차이가 있다면 인간과 인간의 높이 차이는 저는 제가 깨닫은 데로는 서숙 한  내끼 차밖에 없다. 그거나 예수 믿는지 몇 개월 후에 내가 깨닫았습니다. 인간과  인간 차이는 서숙알 한 내끼 차이 밖에 없다. 높아 봤자 서숙 한네께 택 높아  못나 봤자 서숙알 안네끼 택밖에 못났어.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어.

이런 하나님이 제일 낮은 인간에게는 또 한테 접선되면은 그자가 인간중에 제일  높은 자가 됩니다. 인간 저 단독이 제까짓기야 아무리 높아 봤자 하나님 떨어지면  그까짓게 서숙알 한 네끼 만침 높으지 뭐 별로 높을 게 뭐 있겠소. 인간 차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보기 인간 차가 많은 것 같지만 그 차가 제가 보는데는 많지  하나님이 접선되고 안되는 그 차이는 인간이 무한이라 알지도 못할 만침  높습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삐뚤어지게 깨닫도록 삐둘어진 생각을 가지도록 삐뚤어진  마음을 가지도록 요렇게 하는 고것이 자기 망치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아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교역자들도 그러고 권찰들도 그렇게 어쩌든지 그 사람을 막  슬슬 추켜서 추켜 올려서 그 사람에게 세상일만 좋도록 봉사를 해서 지옥을  보내지요. 그렇게 자기 세상적으로 좋게 하고 세상적으로 유리하게 하고  세상적으로 존대하고 이러는 것만 찾아다니는 자는 멸망할 자입니다.

멸망할 자 좋게 말하든지 나쁘게 말하든지 어쩌든지 자기로 하여금 잘못된 것  말해주고 자기로 하여금 옳게 바른것 말해 주면 빰을 때리며 말해줘도 거게만  찾아다니는 자는 마지막에는 존귀한 자 됩니다. 어리석지를 말아야 돼요. 뭐  말하면 뚝 하고서 성을 냅니다. 그러는 자는 하나님이 말하려고 할 때는 어찌할  수 없어. 말하지 그렇지 아니하면 뭐한다고 그 개에게 진주를 던질 필요가 뭐  있는가?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바로 깨달으면 살고 잘못 깨달으면 죽는다는 것 그러면  나는 이런지 저런지 못하는데 바로 깨닫는 것은 자기 목숨보다 큽니다. 바로  깨닫는 것은 천금 만금을 주는 것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말씀은 천천  금은보다 낫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바로 깨닫는 것 말이요. 바로 깨닫는 것  자기가 바로 깨닫는 것은 천천 금은보다 낫아 성경을 봐야 책을 봐야 저자한  자들이 저서를 내가 많이 안봤지만 더러 봐 봐야 그런게 없어.

모든 사람이 이용도목사를 전부 이단이라고 정죄해서 몰아 붙이는데 그분이 불을  붙이는데 그래 가지고 불을 딱 꺼버렸어. 그러기 때문에 교역자들이 소방대라  불끄는 소방대 성신의 불을 끄는 소방대 그분의 저서에 보니까 그런 말이 쓰여  있어. '세상에 속한 자가 물질을 얻었을 때에 기쁨, 세상에 속한 자가 죽음에서  구출할 때에 기쁨, 그 기쁨과 같이 성신의 사람들은 한 마디 깨닫는 데에 기쁨이  죽음에서 구출된 기쁨보다 더 크다.' 수많은 물질을 얻어도 감격의 눈물이 나지 아니해도 죽음에서 구출되어도 감격의  눈물이 나지 아니해도 한 마디 진리를 깨닫았을 때에는 감사의 눈물이 난다.

진리의 깨닫음의 그 가치를 그분은 그렇게 고귀하게 봤어요. 나는 그걸 그분의  저서에서 봤어. 모든 저서 봐야 볼 게 없다 말이요. 다 껍데기야.

껍데기로 제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 말에 논 책만 자꾸  읽어 가지고 무슨 깨닫음이 생겨지요. 생겨지기를 아닙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야 깨닫습니다. 그러기에 바른 깨닫음 여게서 모든 사는 그 행복이  생겨지고 잘못 깨닫는 여기에서 모든 멸망이 옵니다.

이러기에 내 마음에 잘못 깨닫도록 충격주는 그게 바로 원수요. 내가 분하게  하든지 뭐라고 하든지 바로 깨닫게 하고 모든 안된 것이 다 돌아서게 하는  고것이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내게는 대해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그점에 대해서 기도해요. 아무리 말해 줘도 바로 깨닫지 않는 자는 그말  하면 반항적으로 콩이라 하면 팥, 오른쪽이라 하면 왼쪽, 하라하면 안하고  반항적인 고것은 고걸 벗기전에는 절대로 구원은 없습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996 지위범죄/ 마태복음 23장 7절-9절/ 1987. 4. 1.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995 지족하는 마음/ 디모데전서 6장 6절-10절/ 1985. 2. 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994 지켜야 할 믿음의 수준, 믿음의 단계/ 로마서 1장 16절-17절/ 1983. 4. 8.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993 지키는 법/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2. 7. 9.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992 지행이 하나다/ 베드로전서 5장 5절-11절/ 1985. 7. 1. 양성경건회 선지자 2015.12.28
991 지행합일/ 에베소서 4장 13절-15절/ 1980. 11. 26.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 지행합일/ 로마서 12장 1절-2절/ 1980. 12. 2.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989 지행합일/ 로마서 12장 1절-2절/ 1980.12.3.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988 지혜 있는 생활-그 날의 계산/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1983. 6. 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987 지혜 있는 청지기/ 누가복음 16장 9절-12절/ 1978년 41공과 선지자 2015.12.28
986 지혜 있는 청지기/ 누가복음 16장 1절-8절/ 1977년 24공과 선지자 2015.12.28
985 지혜구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3. 7. 7.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984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20.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983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31.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982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30.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981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 1987. 5. 20.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28
980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979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24.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978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22.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977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6. 7.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