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믿음의 수준, 믿음의 단계

 

1983. 4. 8. 금새

 

본문 :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은 예수님의 구속을 가리켜서 복음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은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계속 목적을 위하여 역사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또 부활하시고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피가 모든 존재들을 다 활용해서  목적을 달성하시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것이 영감 도리입니다.

이 내용을 포함해 가지고 전달된 영감 도리를 복음이라 합니다.

 그러면 이 복음은 인간을, 인간을 초월된 자로 조성해서 창조주이신 자존자이신  이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되게하는 그 결과를 맺게하는 복음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는 이 능력은 엿새 동안에 만물을 창조하신  그 능력보다 더 큰, 그 능력은 하나님이 이 능력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의  역사하신 능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모형을  하나님과 꼭 같은 자를 만드시는 그런 능력을 가진 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큰 목적을 가졌고 또 지극히 큰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족한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상대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상대해야 되지 믿음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말은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놓으신 모든 완전 구비가 내포돼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으로만 이 지극히 큰 하나님의 목적이,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이 성취해 나가는 것인데 성취해 가는 이 방편은  믿음뿐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의 그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고 목적에 동참해서 그 목적이 지금 연결돼서 그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사람을 가리켜서 의인이라 그렇게 표시한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모든 선포해 놓은  성경에 선포되어 있는 온갖 영과 육과 금생과 내세에 속한 모든 소망을 '네가  이런 소망을 가져라' 하는 그런 소망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모든 필요한 은혜를 받는 방편은  믿음 하나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는 도구와 같다, 또 방편과  같다, 하나님이 정하신 유일한 방편이다 그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간단하게,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종을 어떻게  하느냐? 그것은 영감 도리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꺼풀 속에서 성령이 감동시켜 주시는 그 감동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으로 믿는 믿음 안에는 지식 믿음이 있어야 되고 신구약  성경 영감대로 그대로 자기가 믿는 믿음이 있어야 되고, 또 그대로 자기가 다  소망하는 소망 믿음이 있어야 되고, 또 그대로 실행하는 실행 믿음이 있어야  되고, 또 이루어지기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다  마음 안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 마음 안에서 된 믿음이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을 자기의  몸의 믿음으로 실험을 해서 실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상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현실을 주십니다. 그러면 주시는 그 현실은 네가 참 마음에서 이루어진 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하나님은 아시지마는 본인은 모르고 속기 쉽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우리의 믿음의 진가를 자기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리기 위해서  시험하십니다.

 그러면 믿음에 대해서 그 진가를 본인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리기 위해서  현실을 하나님이 주시는데 현실을 통과하고 나면 안 믿는 것은 안 믿는 것으로  믿는 것은 믿는 것으로, 소망 안한 것은 소망 안한 것으로 소망한 것은 소망한  것으로, 실행할 수 있는 그런 진실이 내재한 것은 그대로 거짓부리는 거짓부리  그대로 현실에서 이 모든 것이 판정이 나는 것입니다.

 또 판정이 나면, 믿는다 해도 잡것이 섞여 있기 쉽습니다. 인적 요소로, 인적  요소라면 인간의 각오나 결심이나 무슨 다른 소욕, 명예욕을 위해서도 죽습니다.

테레비에 묘기하는 그 묘기쟁이들, 묘한 기술 그 사람들도 그게 하나의  명예심이요 또 자기 딴에는 그것이 하나 돈벌이 하는 기술인데 그것 배우다가  죽는 사람 많고 병신 많습니다. 그래도 합니다.

 또 모든 정치가들이 생명 내놓고 날뛰는 것이 그것이 그만큼 하면 그 사람은 다  땅의 것은 가지고 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니오. 모든 정치가들이 위험천만한 그  위치를 취하기를 원하는 그것이 다 땅에 속한 욕심을 가지고 그렇게 합니다.

 예수 믿는 것도 땅에 속한 욕심 가지고 순교도 하고 순생도 하고 뭐 오만 것  다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 사람의 믿음에 진짜가 얼마며 가짜가 얼마인가? 진짜는  전능성을 가졌고 영원성 불변성을 영생성을 가진 것이 진짜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그 대속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와 가지고 이루신,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내것이 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 전능자가  보호하고 전지자가 지배하니까 그는 전지전능 완전자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그 현실에는 다 소용 없이 떨어지도록, 꺾어지도록, 타지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을 연단한다, 금을 연단하듯이 연단한다. 그런 현실을  만나기 전에는 다 큰소리 텅텅 하고 있지마는 그런 현실을 척 만나 통과하고  나니까 잡탱이는 잡탱이로,  왜정 말년에 헛되게 교만한 모두 강퍅하고 교만하고 배짱 좋고 유식한 사람들  그 잡탱이를 신사참배로 다 태워 버렸습니다. 신사참배로 태우고 나니까 해방  후에 그때는 처음에는 환하게 자타들이 탄 것을 아니까 그런 거짓부리들이 '이게  정금이라' 그런 일을 못 하고 다 정금같이 날뛰는 자들이 '나는 정금이 아니고  잡탱이라 탔다' 하는 것을 증거 했습니다. 또 6.25때도 시대적으로 그와 같이 한  것입니다. 또 개인 개인에게 언제나 계속 시험 시련은 되고 있습니다. 또 온전케  이루어 자라가는 연성도 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 내가 만나서 그 사람이 모를 줄 알지마는 앞으로 그런 일이 닥칠  때에 어떻다는 것을 믿음으로 가지고, 과거 수천 년 지나간 일도 오늘에 믿음을  가지고 그 당시 생존한 자와 같은 그렇게 깨달음을 가질 수가 있는 건데  우리나라에서 왜정 말년이라든지 6.25라 하는 그런 것은 몇 해가 지나가지  아니했기 때문에 뭐 그런 것은 그 당시에 실감보다 더 지나친 실감을 가질 수  있는 일들입니다.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가 해서 거게 대해서 약간 말하니까 거게 대해서는  상관이 없습니다. 거게 대해서는 아예 듣지도 않고, 들을 줄도 모르고, 무슨  말인 줄도 모르고, 가치도 없습니다. 왜정 말년에 조선이라고 있을 때에 조선  교회가 싹 다 전멸이 됐지마는 전멸된 이 큰 우박이 왔는데 거게 대해서 하나도  느낌이 없이 그것 없이 또 지금 자꾸 이렇게 남발되는 죽순 모양으로 쑥쑥  올라오고 있으니까 그게 뭐 가 가지고 다 쓰러지고 나면 얼마나 남겠는가?  또 6 25도 그렇습니다. 그것도 보니까 벌써 한 삼십여 년, 삼십사 년 인가  삼십오 년인가 이렇게 돼 놓으니까 요새 모두 날뛰는 사람들이 삼십 세  미만이니까 별로이 몰라요. 이러니 이게 언제 어떻게 되나? 그저 마귀 수입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보여집니다. 신앙이라 하는 것은 과거 없는 신앙이  없습니다. 과거가 창세기 l 장으로부터의 그 모든 과거가 자기의 것이 돼야  됩니다. 또 미래적으로 영원 장래가 자기의 것이 되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뿌리가 넓게 뻗은 자라야 되지, 다윗이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다 하는 것도 많이 미루어 생각했는데, 사람이 저 에덴동산 아담 하와의  타락된 거게 가서 늘 시작합니다.

 거게부터 시작해 가지고 앞으로 역사에 지내간 어떤 종류의 인간 형편  사정이라도 '그런 형편과 사정이야 내게 닥쳐지겠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종류의 형편이 내게는 언제 닥칠런지 모릅니다.

 그런고로 믿음은 하나님의 그 전지한 지혜로 모아 놓은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아주 송곳, 가는 송곳 가지고 구멍 뚫어 놓은 것과 같은 자기 좁짝한 그런  생각이나 의사나 그런 범위 내에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주관대로의 해석, 주관대로의 모든 소망, 또 비판 그런 다  자기 범위 내에 것이 아니고 자기를 부인하면, 옛사람 자기가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가지고 있는데 그놈을 부인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른 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고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두 제 주관대로 위로와 안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현실 주어서 너는 이렇게 더럽다, 이렇게 약하다, 이렇게 어리석다, 이렇게  미혹받기 쉽다, 넘어지기 쉽다 하는 것을 현실에서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자기 양식을 삼으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범위 넓은 것이 믿음이오. 하나님같이 범위가 넓습니다.

소망도 넓고, 견해도 넓고, 비판도 넓고, 뭐 한 두서너 가지고 가지고 판단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아심을 가지고 판단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것을 소망하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무한성을 가졌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또 우리의 믿음은  다 무한적의 것이어야 된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자라감에 따라서 순서 있게  이렇게 자라가는 것뿐이지 그 믿음은 다 무한성을 범위적으로 무한성을 가지고  있다, 광대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으로 의인은 산다 그말은 이 산다는 말을 생활한다, 활동한다,  그 범위가 여러 종류가 있겠습니다. 활동한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법칙을 삼아서 하나님 말씀을 법칙으로 삼아  가지고 말씀의 그 법을 지켜서 그 법을 어기지 않고 산다 그렇게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  또 이 산다는 것이 그 사람은 음식을 먹어 그 사람은 어떤 그 음식 기운으로  산다, 무슨 음식을 먹고 산다, 그것도 있겠고,  또 그 사람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산다, 어떤 지능으로 그 사람은 산다, 어떤  인격으로 산다, 그 사람은 자연 생명으로 산다, 영생하는 생명으로 산다. 여기  사는 것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의 생명이 사는 것도 있겠고, 또 자기의 모든 속성이 사는 것도 있겠고, 또  자기에게 있는 기능이 사는 것도 있겠고, 자기의 활동이나 그런 것이 사는 것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 그말은 대개 생각하기를 하나님께 순종 생활, 가지 마라 할 때  안 가면, 또 하라 할 때 하면, 하지 말라 할 때 안 하면 그것이 대개는 행동살이  입니다. 행동 살이 그것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일 껍데기입니다.

 이렇게 믿음 생활하는 것이 곧 회개인데 믿음 생활하는 것이 악습이 믿음  생활로 바꾸어지는 단계도 있고, 또 악성이 그것이 새사람으로 바꾸어지는.

그것도 있고, 또 악령이 성령으로 바꾸어지는 그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를 도덕 회개가 있다, 그것은 악습이 회개되는 것입니다. 또 종교  회개가 있다, 악성이 회개되는 것입니다. 또 악령이 바꾸어지는 그것이 이제  신앙입니다. 신앙 회개가 있다. 이렇게 차이 두는 것이 그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살면 사는 것은 자기가 숨이 막혀서, 어떤 탄광에 들어가  가지고 숨이 막혀서 기절했던 자가 파여 나오면 이 공기를 쐬게 되니까 숨을  쉬면서 '이제 그 사람이 살아났다' 살아났다 하는 그것은 뭐 일한다 말 아니오.

그 생명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 아주 활동으로 완전히 죽은 자와 같이 됐더니마는 지금 어떤  줄을 통해서, 어떤 배경을 통해서, 어떤 무엇을 통해서 그 사람이 살게 됐다.

살게 된 것이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여게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데에는 그  범위가 넓게 다 포함돼 있습니다. 요걸 잘 모르면 안 되는데. 믿음으로 산다는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 믿음으로 힘을 얻는다 하는 말이 됩니다. 믿음으로 힘을  얻는다. 믿음으로 새로와진다. 믿음으로 자란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각각 다릅니다. 그이의 정도가 다르고 또 이 세상 계급이  다른 것처럼 도수가 다릅니다. 자기의 자라 있는 성장 상태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다른데 어쨌건 어데까지 장성한 사람이나 어린 사람이나 그 사람이  생명적인 그 생명을 얻는 것도, 또 그 사람이 그 사상을 얻는 것도, 정신을 얻는  것도, 또 그 사람이 마음의 힘을 얻는 것도 몸의 행동의 힘을 얻는 것도 믿는  사람은 전부 요 믿음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또 능력을 끌어오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그런데 왜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처음에 믿을 때는 힘이  나더니마는 차차 얼마 동안 믿어가니까 힘이 나지 않는가? 힘이 안 나는 그  이유는 자기가 믿을 믿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믿을 믿음을 믿지 않다니? 믿을 믿음을 믿지 않는 것은 자기가 하나의 이  말씀을 법적으로만 자기가 믿어서 이 법적으로 이 법을 지킵니다. 법을 지키면  다 된 줄로 이래 알지마는 법을 지키는 그것 가지고 되는 사람은 되는데 법을  지켜서 힘을 얻는 사람은 힘을 얻는데 언제든지 그 법만 지키면 힘 얻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법을 지키면 힘을 얻었으니까 이제는 언제든지 그 하나님의 말씀에  어김없이 신구약 성경에 발표해 놓은 그 법대로만 지키면 힘이 날 줄로 알지마는  힘이 안 납니다. 그것 지켜도.

 그 사람은, 믿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 한다 그말은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들여서 힘을 써야 되는 것이  믿음인데 자기에게는 힘이 안 쥐이거든 자기가 믿을 믿음이 아닌 줄을 알아야  됩니다. 힘이 안 쥐이면.

 힘도 여러가지, 육체의 소욕, 육체의 소욕이라 말은 자기 욕심인데 자기 욕심이  들어 가지고 열심하는 그런 것은 암만 해 봤자 외부적인 힘이지 속에 내부적인  힘은 안 됩니다.

 그러기에 부흥사가 마지막에 쭉정이가 돼서 나가는 그런 부흥사들이 대개 뭐  구십프로 이상됩니다. 그 사람이 부흥사가 마지막에 노경에 이를 때까지 신앙을  가진 그런 사람들 별로이 없습니다. 이래 추어 봐도 별로이 없습니다. 다 내나  늙어짐에 따라서 다 늙어지고 마는 그런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자기는 도덕에 속한 그 말씀을 지키는 그것으로써 힘이 얻어지고  새로와지는 그 단계가 있고, 또 그보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되고 그 다음에는  표시하기 쉬우려면 악성인데 자기를 중심해서, 자기를 중심해서 한 그놈을  회개해서 그래야 힘이 나오는 사람은 힘이 나옵니다.

 자기가 암만 신구약 성경 하나도 거리끼지 않고 말씀대로 하라는 것 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다 해도 절대 힘 나오지 않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벌써  그것 가지고는 자기 지킬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것 지키기는 쉬울 뿐만 아니라 안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벌써  그리되면 그만치 위치가 자꾸 돼 올라가기 때문에 율법적인 법적인 그 도리로  지키는 일은 안 지킬래야 안 지킬 수 없는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그런 자리에  올라가나 자기는 그 믿음으로 아무런, 믿음으로 살리라 했는데 믿음으로 삶에  속한 모든 것들이 자기에게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이러니까 잘 믿던 사람이 그만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마쳤다' 말은  성령으로 시작해 가지고 거기서 자라가지 않고, 성령으로 시작해 처음에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성장돼 나갔지마는 어느 단계가 지나가면 율법 그것 지키는  것 가지고는 소용이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안에 그 안에 이제 악성을 뽑고  하나님에게 소속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그것을 지켜야 되는 그런 단계가  있습니다. 그 단계를 찾아서 자기가 지키려고 하면 힘이 듭니다.

 내나 말씀을 지키는 그 일 했지마는 말씀대로 지키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까  주인은 딴 놈입니다. 주인은 도적놈 제가 주인이오. 내나 옛사람 그것이 주인이  돼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잘 지켜 나갑니다. 그것은 그놈이 주인이 됐기  때문에 그 결과는 어떤 결과냐? 세상 소욕의 사람이 됩니다.

 이러니까 오늘 교회들이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만 찾으라고 했지마는  교회들은 뭐 신학자, 목회자, 개인 할 것 없이 예수로 인해서 세상 것 찾고 있고  하늘나라의 것은 그저 하나의 가정처럼, 불교인들이 뭐 극락 찾듯이 이런 정도로  찾고 있고 실질성이 없는 그런 가운데 있는 것은 어데 가서 빠졌느냐? 예수 믿는  사람은 결국은 옛사람 그 사람이 예수를 믿지 중생된 새사람은 파묻혀 있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지금 바꾸어 '이 시간에는 말씀대로 살기는  살았는데, 말씀대로 행하기는 행하는데' 행하고 보니까 말씀대로 행한 것이  옛사람 자기 그놈이 행했습니다.

 그게 행한 것보다는 차라리 그 말씀을 행하지 않고 큰 과오를 범해서 죄 가운데  깊이 팍 빠져 가지고라도 '아, 내 속에 나는 이런 내로구나.' 하는 그자를  이별할 수 있고 적으로 삼을 수 있으면 그 사람이 낫습니다. 죄악이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는 것은 그것은 로마인서 5장에 말씀하신 것은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옛사람 자기 그놈을 그냥 도덕이라는  아름다운 꺼풀 속에 싸서 이래 말아 놓은 그걸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큰  죄인이 돼서라도 그놈을 벗어날 수 있고 고칠 수 있으면 그게 낫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실수 없이 이렇게 도덕면으로 스르르 나가는 그  사람이 속에 종교성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신앙성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자기가 어느 걸 지킬라 하면 힘이 드는가? 그러면 자기가 자기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하는 그래 할라고 할 때에  새사람이 나타나게 되는데 거게서 나가는 사람은 언제든지 그것도 연습하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서 하지마는 그것 가지고 또 힘을 못 얻는 사람 있어.

안됩니다.

 나중에는 영감이 꼭 계속이 돼서 영감과 연결이 돼야 뭐 되지 그 전에는 안 돼.

영감과 연결이 돼야 돼지지. 이러니까 그게 안 되면 이 껍데기는 되나 마나  그것은 하니까 오히려 그건 멸시가 돼서 이러다가 그러면 차라리 아닌 것이  아니라고 나타나는 것이 좋다 그거요,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가 지킬 믿음이 어느 도수의 믿음인가 하는 그것을 구별해  가지고 어쨌든지 믿음을 지키는 것은 자기에게 힘이 드는 그것이 자기 믿음  지키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는데 그 믿음 지키려 하니까 있는  힘을 다 들여야 그 믿음을 지켜지는데 힘을 들이면 지켜지고 좀 힘을 안 쓰면  그만 못 지키게 되면 그것 자기가 자기 지킬 믿음의 그 수준입니다.

 또 그걸 봐서 알 수 있고, 또 하나는 믿음을 바로 지켰으면 반드시 그 결과는  자기에게 옵니다. 그 결과가 쉽게 말해서, 산다는 것은 힘으로 살지 않습니까?  자기에게 힘이 옵니다. 그 힘은 무슨 힘이냐? 하나님에게서 오는 힘인데 일  학년도 믿음 지켜 힘 얻고, 육학년도 믿음 지켜 힘 얻고, 최고의 장성된 사도  바울도 믿음 지켜서 힘 얻고,  사도 바울이 믿음 지켜서 힘 얻는 것은 계명 지키는 것 가치고는 힘 얻지  못하고, 이러기 때문에 또 그가 말하기를 양심에 자책을 찾지 못하나 그때는  힘을 못 얻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참 자기가 모르는 것을 순전히 객관의 능력이  주님이 와 가지고 '이렇다' 이렇게 줄 때에 그걸 받아서 '그렇습니까?' 할 때  그때 그것으로만 자기가 힘을 얻게 되니까 그 힘 얻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힘이 쥐어지면 네 믿음이다. 또 거게서 새로운 위에서  내려오는 생기, 힘. 생기가 너에게 임했으면 네 믿음이다.

 이것은 자꾸 졸아 들어가니까 자기를 기울여야 되는 것, 자기 수족만 기울이면  되는 것도 있고, 자기 마음만 기울이면 되는 것도 있고, 자기의 모든 속성을  기울이면 되는 것도 있고, 자기를 다 기울이면 되는 것도 있어서 그걸 가리켜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뜻을 기울일 때, 또 힘을 기울일 때, 마지막에는  목숨을 기울일 때 그때에 비로소 나오는 또 그 힘도 있다 그거요.

 그런고로 예수 믿는 사람이 전부 방편은 믿음 지키는 것인데, 성신의 감동과 이  진리에 순종하는 것인데, 순종하는 그것이 힘이 쥐어지지 않게 순종하기 때문에  힘을 새로운 힘을 얻지 못합니다. 살지를 못합니다.

 이 꽃을 한 포기 갖다 놨더니마는 시들시들 시들어서 다 죽어간다. 이 꽃을 한  포기 갖다 놨는데 어째 그 뭐 무엇을 약도 쓰고 땅에다가 묻고 했더니마는 이  생기가 나니까 팔팔 살아난다. 시들시들 죽어간다. 살아난다.

 신앙들이 시들시들 죽어가는 것은 힘써 신앙 생활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 살아나는 것은 힘써 신앙 생활 하기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쓰는 것이 그것이 외부에 이런 활동, 이것도 저것도 활동 하나님은  그걸 원하지 않으시요, 외부에 일하는 그것이 그 사람이 그걸 통해서 당신의  형상을 가져 당신 같은 자가 되기를 원해서 하는 것이지 사람들이 일하는 그  역사를 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려면 일시에 다 해  버립니다. 인간 통하지 않고 일시에 예수 믿게 다 할 수 있어. 한번 '꽝'거려도  다 그만 예수 믿는 사람 다 돼. 강제굴복이라도 다해 버립니다. 그게 힘  아닙니다.

 이렇게 이런 데 저런 데에서 유기적으로 우리를 자라가도록 하려는 그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신앙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과 들어붙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우리가 들어가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어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이것이오.

그것을 표시해서 성전이라, 그러기에 지체라 이랬는데,  그러기에 이 힘을 쓰지 않기 때문에 변화가 안 되고 이 힘을 쓰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망령되고 점점 예수 믿어갈수록이 악해지고 교만해집니다. 왜? 자기는  할 일이 없으니까. 할 일 이것 다했는데 뭐 그 다음에 할 일이 없으니까. 신앙은  끝이 없고 죽는 그 시간까지 계속해서 새 신앙으로 전진해 나가야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꾸 들어서 귀만 즐겁게 하지 말고 자기가 실지로 변화하는 그 사람이 안 속는  사람입니다. 듣고 버리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이오. 하나님은 그렇게 뭐 요새 웅변가들에게 넘어가듯이 그래 넘어가는 것  아닙니다.

 요 세상에 책이 많이 있지마는 그것 다 믿을 수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 외에는  믿지 못해요. 왜? 세상에 말 잘하는 사람 지혜 있는 사람 날쌘 사람 세상적으로  능한 사람들이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다 배암의 그 깊은 것이오. 사탄의  깊은 것. 이러기 때문에 '이렇다' 세상이 이렇다는 걸 참고만 하는 것이지 거게  뭐 생명이 있다고 그것 정확 무오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무것도  정확무오한 것이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 외에는 없고 또 신구약 성경만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그 속에,  신구약 성경은 울타리인데 그 속에 하나님이신 영감이 그에게 가는 것은 가짜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가짜 가지고는 안 돼요.

 예수 믿는 것이 힘드는 것도 뭐 수족이 힘드는 것 아니라. 수족의 힘이 드는  것은 그건 또 수족으로 힘을 써야 되는 것도 있고 팔다리 힘으로 부지런히  걸어다녀야 되는 것도 있지만 그것 다가 아니라. 그 것보다도 마음으로 힘쓸  것도 있고, 성질로 힘쓸 것도 있고, 또 사상으로 힘쓸 것도 있고, 또 자기를  지금 바꾸는 여게 힘쓸 것도 있고, 힘쓸 것이 각각 다릅니다.

 자꾸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가면 믿는 사람은 까랑까랑하고 하나님처럼  온전해집니다. 가다가 그것 없이 이것만 하는 사람은 멍하게 내나 불교의  중들이나 꼭 같소. 중들이나 꼭 같은 사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암같이 또  그런 사람 돼져 버리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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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 지족하는 마음/ 디모데전서 6장 6절-10절/ 1985. 2. 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 지켜야 할 믿음의 수준, 믿음의 단계/ 로마서 1장 16절-17절/ 1983. 4. 8.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993 지키는 법/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2. 7. 9.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992 지행이 하나다/ 베드로전서 5장 5절-11절/ 1985. 7. 1. 양성경건회 선지자 2015.12.28
991 지행합일/ 에베소서 4장 13절-15절/ 1980. 11. 26.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990 지행합일/ 로마서 12장 1절-2절/ 1980. 12. 2.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989 지행합일/ 로마서 12장 1절-2절/ 1980.12.3.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988 지혜 있는 생활-그 날의 계산/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1983. 6. 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987 지혜 있는 청지기/ 누가복음 16장 9절-12절/ 1978년 41공과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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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5 지혜구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3. 7. 7.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984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20.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983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31.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982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30.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981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 1987. 5. 20.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28
980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979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24.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978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5. 22.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977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1장 5절-8절/ 1987. 6. 7.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