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믿음,사람의 성공


선지자선교회 1983년  4월 6일 수새.

 

본문 : 빌 4:8-9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우리는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살이에서 하나는 하나님에게 받은 바의 은혜를  보존하여 써먹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크게 말하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우리가 해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멸망으로 기어들어가 그러하지 하나님의 어떤 법도 우리를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예수님이 공로를 베풀어 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벗는  거게서 사 고가 생깁니다.

 또 하나는 악령에게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악령이  왕입니다. 제가 아무리 날뛰어도 악령에게 순종하는 일만 하지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악령을 물리치려면 물리칠 수 있고 악령에게 자유가  있는 그 권세가 있습니다. 또 사망이 왕노릇 하는 데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사망이 우리에게 주권을 가지지 못하게 됐습니다.

 또 죄가 우리에게 주권을 가지지 못하게 됐습니다. 죄가 우리에게 왕노릇을  못합니다. 왕노릇 못 하는 것은 우리가 거게 대해서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다는 것,  왕노릇 하는 것은 그것에게 자유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구별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네 가지 은혜를 받았는데 네 가지 은혜를 늘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의 영은 단번에 살림을 받았지마는 우리의 이 마음과 몸 육이라는  육과 또 우리의 생활이라는 생활 우리의 모든 소유 이런 것은 살림을 받지를 못하고  죄 아래에 있습니다. 그것이 한 현실 현실로 여생을 우리가 통과해 가는데 여생을  통과해 가는 현실은 무엇을 하는 현실인가? 우리에게 죽은 부분을 살려내는  현실입니다.

 자기가 그것을 잊어버리고 그만 그 현실에, '요 부분을 지금 살려낼 현실이로구나.

저 부분을,' 그 부분에 관한 현실을 만나서 그 부분에 관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그때가 막바로 그 부분을 살려내는 기회입니다. 모든 죽은 것을 살려야 하는  여생으로 세상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살아난 것이 하나님에게 힘을 얻어 가지고 그것이 자랍니다. 세상에  음식을 먹고 자라는 것은 육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 이용 도구가 되어지는 것이지  자라는 방편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새로운 힘을 얻어 가지고 자라가야  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보해 주시고 평강을 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안보해  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합해서 하나인데 하나님이  안보해 주시는 이 안보의 은혜를 또 우리가 입어야 됩니다.

그러면 살리는 은혜, 또 성장하는 은혜, 안보해 주시는 은혜, 이 은혜를 네 가지  대속을 받은 우리들은 힘써 이 세 가지를 자꾸 받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받는 방편은 무엇인가? 방편은 다 같습니다. 우리의 중생된 영도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 것입니다. 또 우리의 심신의 각 요소도 영감과 진리로 살아납니다. 또  살아난 것이 새로운 능력을 얻어서 자라가는 이 능력도 영감과 진리로 우리가 힘을  얻습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안보해 주시는 이 안보도 영감과 진리로 받습니다.

우리가 그때 그때 영감과 진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영감과 진리와 동행할 때가  막바로 전능자, 주권자, 주재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어떤 현실에 거게서 하나님을 자기가 아주 필요있게 요구하면서도 현실이  너무도 어려우니까 그만 영감과 진리를 버리기 쉽습니다. 그때에 영감 해 주시는 그  현실에 해당한 그 현실에 대한 영감과 진리를 우리가 버리고 뺏기고 하나님의  보호를 입으려고 할 때 많습니다. 벌써 그때의 영감과 진리를 어떤 그 세상의  세력으로써든지 이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전능자의 안보를 내가 입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자의 안보를 입을 때에 아무도 손해 보이지를 못합니다.

 사도들이 평생 복음을 위해 살다가 마지막에 죽는 시간은 다 순교로 죽고 사도  요한만 그렇지 안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죽는 그 죽음이 이미 죽을 때가 됐는데  그 죽음을 주와 및 그 말씀을 인하여 죽었기 때문에 그 죽음은 참 가치 있는  죽음입니다. 주님이 안보하시시기 때문에 그 때가 된 그 죽음을 가치 있게 폐물  이용으로, 이미 죽는 죽음인데 가치 있게 폐물 이용으로 귀중히 사용하도록 하셨지  절대로 영감과 진리를 내어 주지 아니할 그때에 전능자의 보호가 떠나지 않습니다.

요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영감과 진리를 내어 주지 아니하면 전능자의 보호를 내가 입어서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뒤에 죽 말했습니다. 이런 것 저런 것 말했는데 그게 다  영감시켜 주시는 도리요 또 진리가 가르치는 도리입니다. 이 도리를 자기가  저버리지 아니할 때에 평강의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같이 지켜 주십니다.

 그런고로 어떤 세상의 상대방의 강하고 어떻다 할지라도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  주님보다 크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 그것 지으신 것이고 또 우리 주님이  그걸 다 주권하고 계십니다. 꼼짝 못하라 하면 꼼짝 안하고 또 활동하라면 활동하고  그 생사나 활동이나 모든 걸 다 주님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어떤 대적이  강할지라도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보다 크지를 않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현실에서 그 현실에 해당되는 그 영감과 진리는 이 평강의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시느냐 나를 버리시느냐 하는 그것이 결정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유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버리면  하나님은 버림을 당하여 우리를 안보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온갖 힘을 하나님에게 얻어 가지고 자라가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 할 수 있다' 그말은 주 안에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자기 사명과 본분 의무 책임을 주님이 주시는 능력 가지고 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 가지고 주님 안에 있는 일을 할 수  본분 의무 책임을 주님이 주시는 능력 가지고 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 가지고 주님 안에 있는 일을 할 수 본분 의무 책임을  주님이 주시는 능력 가지고 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  가지고 주님 안에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주님 안에 있는 일이 뭐인데? 주님 안에  있는 일은 간단하게 말하면 성령이 시키시는 일, 진리가 시키시는 일, 피가 시키시는  일, 이 세 가지 일이 주님 안에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 할 수 있다. 능력을 어떻게  주시는가? 그것도 하나입니다. 그 현실에 영감과 진리가 해당된 것 있습니다. 그  현실에 해당된 영감과 진리가 있는데 그 영감과 진리가 내게 부딪혀서 '요 영감과  진리를 행하면 애로가 있겠다' 또 영감과 진리를 자기가 내놓지 안하고 요 영감과  진리를 자기가 영접하혀고 하면 애로가 있고 힘이 들겠다 해도 그때의 영감과  진리가 그것이 전능자의 그 능력을 내게 주시려고 그 능력을 가지고 온 능력입니다.

능력을 가지고 온 능력입니다.

 그때에 그걸 버리면 전능의 능력을 내가 버렸고 그걸 버리기 전에는 피조물이  아무리 서로 신강해도 그 능력을 버리도록 하고 난 다음에 그들이 해하지 그 능력을  버리기 전에는 반드시 그 능력 앞에 복종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힘이 없는 것은 왜 힘이 없느냐? 믿는 사람이 힘이 없는  이유는 그때 그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데 그 능력을 받지 않고 버립니다. 그  능력을 받지 않고 버리는데 왜 받지 않고 버리느냐? 받지 않고 버리는 것은 악령이  그 능력은 능력으로 알지 못하게 하고 그 능력을 배반하는 그런 세상 것들이 능력  있는 줄로 이렇게 오해를 하도록 딱 미혹을 줍니다.

 이러니까 능력을 자기딴에는 '영감과 진리 이를 내가 영접하면 나는 절단난다.

부득이 양심에 가책이 되지마는 영감과 진리를 내어놓고 요대로 해야 내가 일이  되겠다.' 하는 그것이 마귀 유혹입니다. 그런고로 어데서든지 영감과 진리를 무엇을  받고 내놓든지 영감과 진리를 내놓고 다른 것을 받아 가지게 하는 그것이 다 마귀의  유혹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자가 힘이 없는 것은 그 현실에 영감 진리를 자기에게 주십니다. 자기 현실에  거게 해당된, '요때는 내가 배운 진리로 말하면 요렇게 해야 된다. 요때는 요렇게  하는 것이 성신의 감동이다.' 영감과 진리를 자기가 분명히 알 수 있는데 그것을  내어놓지 아니하고 '요것이 능력이다.' 하는 것을 알고 받아서 내놓지 안하고 자기가  그 현실에서 내 주지 아니하고 그 현실에서 그 영감과 진리를 자기가 가지면,  영감과 진리를 자기가 가지면 그 전능한 능력의 힘이 자기에게 오는 것입니다.

 또 자기 현실에서 어떨 때는 영감과 진리가 그 현실에 해당된 영감과 진리는 그  종류가 살아나는 때입니다. 마음과 몸의 요소, 자기 사업의 요소, 그 요소가 막바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영감과 진리로 그 사업이 또 살아나고  살아나고 살아나서 영감과 진리로 살아난 그 사업은 세상이 해할 수 없고 그 사업이  무궁세계까지 갑니다.

 다니엘이 총리한 그 총리를 세상 사람들이 떼서 그 총리를 그만 뒀다 할지라도  그가 그 총리 그로 인하여서 하나님이 새로 살려 주시는 살려 주심을 받아서 살려  주시는 기회를 놓지 아니했고, 길러 주시는 기회를 놓지 아니했고, 보호해 주시는  기회를 놓지 아니했다고 하면 그는 아무도 빼앗아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다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업하는 사람들이 요렇게 사업도 살아납니다. 우리가 예수 밖에 가지고  있는 것은 다 어떤 것이라고 했지요? 산 것입니까 죽은 것입니까? 전부 죽은  것입니다. 그 죽은 것인데 그것이 다 살아나야 산 것이 됩니다. 살아났으면 다시  죽지 않습니다. 살아난 것은 자라면 자라고 안 자라면 그대로 파묻혀 버려. 제가  파묻으면 파묻어 놨지 살아난 것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기에 죽은 것이 살아날 기회에 왜 살아나지 않느냐? 마귀란 놈이 꾀어 가지고,  살아나려면 영감과 진리대로 해야 되는데 살아나려고 하면 마귀의 꾀움의 말대로  하면 '영감과 진리를 지키다가는 이 사업이 절단이 난다.' 절단이 난다 이러기  때문에 절단나지 않기 위해서 영감과 진리를 버려버려. 그러니까 그 사업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업이 기회를 만나 가지고 또 죽고 기회를 만나 가지고 또 죽고  또 죽고 이래서 그 전뭉텅이가 다 죽으면 이제 그 다음에는 사망이 왕노릇을 해서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나려고 하면 마귀가 유혹을 줘서 '네가 이것을 살리려고 하면 너는  죽는다' 이렇게 자꾸 위협을 줍니다. 또 성경 지식이 아닌 인간 지식을 가지고 보면  죽습니다. 인간 지식으로 비판해 보면 죽습니다. 그러니까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죽음에게 종노릇 하는 그자를 놓아 주려고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현실을 만날 때에 영감과 진리, 요 진리는 우리에게 죽은 부분을  살리는 생명으로 와서 역사하고, 우리의 아주 유약한 것을 강하게 성장시키는  힘으로 왔고, 또 우리를 전능한 그 능력의 안보로 왔습니다. 자기 만난 현실에  영감과 진리는 이 세 가지로 왔습니다. 이 세 가지는 누구든지 입을 수 있느냐 하면  이 네 가지 기본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니면 못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권세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또 죄의  권세에서,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받은 자는 자기만 하려면 자유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할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때에 살아나야 하는 부활시키는 그 부활로 온 영감과 진리가  있고, 또 우리에게 능력을 채우시려고 능력으로 온 진리와 영감이 있고, 우리를  안보해 주시는 안보로 온 진리와 영감이 있는데 이것을 사람들이 받으면 좋을  터인데 왜 받지 못하느냐? 받지 못하는 그것은 인간 지식으로 볼 때에 그것이 죽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해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죽기를 싫어하는 자는 해를 받기  일어하는 자는 그게 겁이 나 가지고 그만 거기 종되고 맙니다.

 예수님과 빌라도가 한 자리에 있었지마는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알아서 사는 길을  택했고 빌라도는 죽기 두려워함으로서 생명이 온 것을 버리고 죽음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라'  하는 그말은 나를 따라오는 자는 자기를 돌보지 말고 모든 고난을 달게 받아서  그래야 따라온다, 달게 받아 따라오라 하는 말인데 그 말씀이 정말로 맞은 말입니까  그 말이 마귀가 주는 지식으로 볼 때에 그렇다 말입니까 참으로 그 말이 맞은  말입니까? 어떻습니까? 그 말이 정말로 주님을 따라가려 하면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자기가 고통을 각오하고 받아가며 따라가야 된다 하는 그말이 그것이 참말입니까  부패한 인간들의 인간적인 말로 하면 그렇다 말입니까? 뭐이요? 그걸 구별해야  돼요. 부패한 인간적인 말로 하면 그떻다 말입니다.

 그게 자기 부인이 아니오. 자기 부인이 아닙니다. 참으로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오.

참으로 자기를 인정하고 자기 아닌 그놈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오. 또 그것이 십자가의 고난 고난이 아니라 그것이 모든  고난에서 평강을 취하는 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이 지식이 없이 진리의 지식을 가지지 안하고 자기 열심이라는 그 열심이 암만  있어봤자 인간들의 열심 그까짓 게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인간들의 충성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인간들의 각오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인간들의 그 젊음이 무슨 힘이  있소? 인간들의 의지가 무슨 힘이 있소? 아무 힘 없습니다. 아무 힘이 없어. 어쨌든  예수 믿는 도리를 바로 알아야 그대로 안심하고 행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알아서 하나님의 법칙에 들어맞아야 아무도 해하지 못하지 하나님의 법칙에  들어맞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어.

뭐 사람들이 떠들고 마구 주먹을 거머쥐고 '주여' 막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볼 때  '야, 저 사람 억세다. 저렇게 하면 참 뭘 하겠다.' 싶으지만 아무 힘 없습니다. 진리에  맞으면 가만히 누워서 있어도 그 진리에 맞은 것은 힘이 있고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현실에 부활의 성구, 부활의 계명, 부활의 영감, 바로 그 영감이, 그  성구를 영감해 주는 그 영감이 부활인데 그걸 받아들이면 부활하는데 버리면 그만  살아날 걸 살아나지 못하고 둘째 사망의 해로 죽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  사망에서 심판에서 마귀에게서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 다시 얽매여 다시 죽는다  그말이요, 둘째 사망의 해로.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현실에 자기에게 해당된 그 진리와 영감은 그것이  막바로 요 세 가지라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게 뭐 그리 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 아니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이 주신다는 약속이 아니오. 막바로 그것이,  그것이 살리는 부활이요, 그것이 곧 능력이요, 그것이 곧 안보입니다.

 이렇게 계약을 지키면 하나님이 새 주신다는 그것 아니오. 바로 그것이 바로 그  실상입니다. 그게 실상이오. 자기 현실에 해당된 그 영감과 진리 그것이 부활의  실상입니다.

 그러면 그 진리를 지킴으로써 그만 내게 죽은 요소가 성질이 죽은 것이든지,  입술이 죽은 것이든지, 말버릇이 죽었다든지, 무슨 습성이 죽었든지 그때에 '요때는  내가 거짓말 안 할 수 없다. 요 거짓말해야 되는데.' 그때 영감에 '그래 하지 마라'  하면, 거짓말 안 하려면 거짓말 안 함으로써 이제 거짓말하는 그놈이 안 함으로써  그 지극히 큰 능력으로 인해서 죽습니다. 그 지극히 큰 능력으로 안 할 때에 거게서  완전히 그것은 죽어서 해방을 받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살아납니다.

 그런고로 자기 현실에 영감과 진리는 '이렇게 네가 하면 내가 살려 주마, 이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능력을 주마, 이렇게 하면 내가 너를 보호하마.' 그게 아니오. 바로  실상입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돼. 바로 실상이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마다 이 네 가지 큰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시간 시간 이  세 가지 할 일, 어데든지 그 사람이 어떤 성자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현실은  이 세 가지 일을 위해서 있는 현실이지 없는 현실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다  끝났으면 그 사람 가야 되지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모를 때는 '내가 이 점이 죽었다.' 현실을 통해서 죽은  것을 보여 줍니다. 현실을 통해서. 그러기에 모든 현실을 통해서 우리가 범죄둬  때에는 죽은 것을 내가 모르고 '나는 완전자다. 내가 뭐 그런 실수는 없다.' 하는  그자에게 실수할 수 있다는 요소가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 그때  보고 '내가 요 요소를 죽이고 살려야 되겠다' 하면 반드시 그 다음 현실에 죽이고  살릴 기회를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럴 때 죽이고 살리면 이제 영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요렇게 간섭하셔 하니까 세 가지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네 가지 은혜 입은 것. 이것은 알든 모르든 관계없지마는 네 가지 대속 입은 것을  모르면 담대하지를 못하다 그거요.

 성경에 로마서에 보면 왕노릇이라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고 봐야 될  것입니다. 왕노릇 한다 그 말은 왕노릇하는 자는 그 왕권 밑에 있는 자는 왕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너희들에게는 왕노릇하지 못하게 됐다,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것은 그것이 절대적인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절대성 권위, 사망이 우리에게 절대성 권위, 죄가 우리에게 절대성 권위,  하나님이 심판이 우리에게 절대성 권위 못 가졌습니다.

 이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은혜지마는 사람들이 집 한 채를  늘리면 뭐 몇 억 짜리 돈 벌면 그것은 큰 줄 알지마는 그까짓 거야 언제 날아갈지  압니까? 이 네 가지는 참 큰 것입니다. 네 가지를 받은 자들은 시간마다 살아나야  되겠고, 새로운 힘을 얻어야 되겠고, 그 힘 못 얻으면 그 다음 순서 올 때에 그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힘을 얻어야 되겠고, 또 하나님의 안보를 받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이놈 죽인다' 이랄 때에 그때에, 다니엘이 '너  그러면 사자구덩이 던져 죽인다 죽인다' 할 고때에 영감 그 도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나는 그래도 기도하지 안 할 수 없습니다.' 하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뭐요?  그것이 다니엘이 무엇을 내 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지극히 큰 능력을 내 주지  아니하는 것이오. 하나님의 안보를 내 주지 아니하는 것이오.

 그게 암만 커봤자 하나님의 안보를 내가 안 내 주면 죽을 때가 됐으면 죽어서 그  죽음이 영광스러워 승리할 것이고 죽을 때가 안 됐으면 그에게 아무것도 못 할  것이고. 요걸 알았기 때문에 마귀의 위협과 협박과 유혹에 떨어지지를 아니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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