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믿음,사람의 성공

 

1983. 5. 4. 수후집회 

 

본문 : 시편 1편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내 보내도 안 되고 또 깨닫고 즉시 잊어 버려도  안됩니다. 오후에 다른 말씀을 증거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다시, 증거한 말씀을  더 복습을 해서 단단히 하나라도 간직하고, 이 말씀이 구원 이루는 데에 실지로  도움이 되어야겠다. 말씀 구경만 시키고 자꾸 이래서 도로 사데 교회를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있어서 다시 오후에 말씀을 이제 한 번  더 복습 하려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묻는 것도 있고 또 여러분들이 답도 하고 그렇게 해서 속에 단단히  간직하도록 합시다.

 첫날 배운 말씀 창세기 13장에 있는 본문을 보고 아브라함과 롯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창세기 12장으로부터 내리 읽으면 그 내용이 그 가운데 기록돼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평생 신앙 걸음을 걸어가는 노선이기 때문에  단단히 간직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어느 교파, 어느 교회에 있든지 그 교파는 외형이고 속에는 롯의 걸음을  걷든지 아브라함의 걸음을 걷든지, 걷는 그 신앙의 종류가 따로 있습니다.

사람이 아브라함의 걸음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대단히 힘들어서 꼭  계속하는 사람이 많지를 못하고, 또 롯의 걸음은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아브라함이 걸어가는 그 길을 걷다가 또 롯이 걸어가는 그 길을  걷다가 이렇게 갈지자 걸음으로 이렇게 저렇게 이래 술취한 사람 모양으로  비틀거리면서 그렇게 신앙 생활해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변할지라도 내가 한 말은 획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가감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좀 강퍅해져서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조금도 가감이  없이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이 말씀을 보아도, '우리에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면 내가 지금 그때에 후회할 것이 없느냐?'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면 자기에게 후회될 그런 과거가 없나 하는 것을 생각해 가지고  오늘에 후회를 하면서 용서함을 받으려고, 또 고쳐서 새로 바른 길을 걸어가려고  그렇게 애쓰는 사람들이 많지를 못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이 그대로  되지 않고 에누리가 있을 것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들의 마음이 강퍅해서  스스로 자기가 방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방탕으로 취급을 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지마는 그대로 꼭 이루어지겠나? 어떻게 한 말씀도 가감없이  그대로 이루어지겠나?' 이런 에누리 하는 그런 방탕한 생각을 우리들이  가집니다.

 이러니까, 마귀라는 놈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에누리 하도록  하는 그 일을 보통으로 하는 게 아니고 아주 전력을 기우려서 악령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에누리 하면 고만 그것만 하면 마귀는 믿는 사람을 에누리  하는 사람은 다 삼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말씀은 기록한 것도 정확 무오하고, 또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정확 무오하다, 가감이 없다,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을  하시고 그대로 될 것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뭐 말씀을 한다고 해서 그  말씀대로 그대로 그렇게 되겠나?' 하는, 요 에누리 하는 데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던 사람들의 모든 힘도 여기에서 다 떨어져 버리고 말고, 또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회개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여기에서 다 풀어져서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요것을 뭐 지식으로 아는 것, 말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이 그대로 이뤄지는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려고, 또  확신을 하려고 하는 여기에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쉽게,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도 정확 무오하지마는 또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정확 무오하다 하는 이것을 내가 에누리 없이  확신하는 이 사람이 되려고 하는 데에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닙니다. 이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우리가 평생 애써도 모자라는 그런 것들이오.

성경에는 다 이런 유의 것을 믿는 사람들이 힘쓰고 봐도 또 확신하는 것이 또  확신이 덜 됐고, 또,모자랐고, 또 보면 자기 속에 에누리 하는 그런 마음이 있고  이래서 그로 더불어 참 일생 동안을 싸우는 사람이 그 사람이 어리석은 것  같지마는 실은 그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세상에 무슨 보화나 권세나 지위나 그런 것을 두고 다투는 그 사람보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에누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에누리를 하는, 그런 실패자가  안 되려고, 에누리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거기다가, 재물에 대해서  애쓰는 것보다, 또 세상 권세나 지위나 취직이나 세상 모든 영광 있는 그런 것에  대해서 힘쓰는 것 보다 자기가 무엇을 이 세상에서 하는 그것을 힘쓰는 것보다  여기 대고 힘쓰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 아니고 제일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일생 동안을 학업을 닦느라고 공부하는 거기에 힘쓰고, 출세하고 또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고 활동해 가지고 입신양명되면 아주 그 사람은 참 성공했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그것은 다 사망에 속한 것 들입니다. 사망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그것을 취해도 좋고 또 안 취해도 좋고,  취하나 안 취하나 꼭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자기에게 닥쳐오는 현실이라면 꼭 같은 가치를 가졌기  때문에 뭐 그런데 대해서는 우리가 실은 마음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이 세상 자기 형편, 사정, 처지, 그런 것을, '좀 좋은 형편과 좋은  사정과 좋은 처지를 만들어 보자.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그런 자기 형편과 처지를 만들어 보자' 하고 어떤 사람은 공부하는  사람, 또 정치하는 사람, 뭐 사업하는 사람 별별 사람들이 있어, 그것을 해  놓으면 자기 딴에는 '이제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참 이거 보배로운 것을 나는  성공했다 생각을 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모두 부러워서 눈이 번득 번득합니다.

 그걸 모두 부러워합니다. 부러워하지마는 실은 그 사람이 하나님 이 선포해  놓은 이 말씀은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이 사실을 그  사람이 몰라서 지금 헛된 일을 경영하고, 헛된 자랑을 하고 있지 깨달으면 그런  자랑이 다 없어집니다.

 야고보서 1장에 보면 '높은 자는 저희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낮은 자는 저희  높아진 것으로 자랑한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세상 것 그런 것 가지고  자기에게는 그게 최고의 인간 할 일인 줄 알고 거기에 전심전력을 기울여 그  일이 되어서 아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그런 지위나 권세나 재벌이나  사업이나 명예나 영광이나 그런 것을 가졌으면 아주 자기도 행복된 줄 알고 다른  사람도 행복 된 줄 알고, 자기도 존귀한 사람으로 알고 다른 사람도 존귀한  사람으로 이렇게 압니다. 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 알지마는 실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은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고대로 이제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시고 보응하시고 다 이루신다 하는 이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높았던 사람이 '아이구 나는 아무 가치없는 것으로  공연히 헛되이 높아졌고, 또 하나님의 심판에서 벌 받을 뭉텅이, 벌 받을  뭉텅이, 형벌 받을 뭉텅이, 영원히 배상해야 될 수치 뭉텅이, 이게 전부 망하고  손해가는 뭉텅이만 이렇게 키워가지고 나는 이게 좋은 줄 알고 이러고 있었다.'  하면서, 높은 자는 자기의 낮아진 걸 자랑하고 높은 자는 이제 납작해져 가지고  아무것도 아니다. 아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낮아진, 낮아져 가지고 이제  이것이 내가 정신 차린 것이고 이제 내가 바른 자리에 섰다.

 또 '낮은 자는 높아진 것으로 자랑한다.' 자기는 이 성경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그런 것이 다 부럽고 그것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성경 진리를 깨닫고 보니까  그것이 좋은 것도 혹 있지마는 대개는 다 불행스러운 것이고 그 마침은, 마침은  멸망으로 되어 있는 것이고, 자기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차지할 수 있는, 세상에 제일 대국의 대왕, 대대통령 그 사람으로  비교할 수 없는 큰 지위와 권세와 부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그런 희망이 짧은  한 토막의 믿음 생활에서 이루어진다 하는 이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야! 나도  천하에서 둘째가지 아니할 수 있는 희망 있는 사람이다 해서 자기의 높은 것을  자랑한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첫째는, '성경이 정확하다. 성경의 말씀은 호리도 가감이 없이  이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이것을 믿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이  말씀을 정확 무오한 말씀으로 그래 믿어지 는 믿는 사람이 되려고,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 되려고, 자기가 믿음 없는 것을 탄식하면서 믿는 사람이 되려고 이  일에 대해서 주력을 하고 애를 써 본 사람이 여기 있습니까 누가? 잘못하면 속기  쉽 습니다. 그저 '나는 믿는 사람이라, 믿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헛되이  위안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사람으로 지내기 쉽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스스로 믿음도 없는 사람이, 하나님이 말씀의 성취는 정확  무오하게 성취되고 보응된다는 이 사실을 천지를 두고 하나님께서 맹세를  했는데, 천지는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믿어지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역사하는 것이  이 우리 현실을 가지고 역사합니다. 현실을 주어서, 현실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뭐 세상에 있는 그런 권세에 대해서야 뭐 부러울 것이나 염려할  것이나 두려워할 것이나 그럴 게 뭐 있겠습니까?  그 현실에 두려운 것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하님의 능력의 보호를 믿느냐 안 믿느냐를, 그것을 본인이 알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전능의 보호, 또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또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너희 것이라' 내것이 될 수  있는 이 소유에 대해서는 뭐 그 이상 없는 지극히 큰 소망, 또 내가 하나님과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과 그 사이에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예수님께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가 돼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에게 이렇게 모든 관계를 맺고, 또 하나님은 그 모든 피조물들에게  앞으로 영원히 주는 것을 예수님 한 분을 통해서 이렇게 주는 중대 역할,  하나님의 것을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에게 잘 조화있게 잘 관계를 해서 하나님의  것을 받도록 하고, 또 인간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바로 올바른 관계를 가져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그것을 아주 흠없이 잘 하신 분이 대제사장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그런 직분을 줬소. 무슨 일국이 아니라, 이 지구 땅덩어리  이것만이 아니라 이 우주의 수많은 것들과 하나님과 그 사이에서 하나님과 그  수많은 우주의 피조물과 그 조화를 서로 잘 맞추어서 하나님도 피조물보고  좋아하고 피조물도 하나님을 보고 소망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그  조화를 맞추는 그 직책을 우리에게 약속했습니다. 이러니까 '너희들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져 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뭐 이뿐 아니라 성경에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라는 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셨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무엇을 요구하시고, 또 명령하시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떠하다 하는 그런 것도 세밀히 가르쳐 주시고,  하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진 것이 없이 다 구비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만하면 족합니다. 이만하면 족하요. 그러기 때문에 다른  지식을 구할 필요가 없고, 또 다른 무슨 소유를, 어떤 종류를 구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이 계약하신 이 계약 하나만 가지고 계약과 하나님만 상대하면 다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농사를 하는 것이나, 장사하는  것이나 공부하는 것이나 그런 것도 할 때에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있다 해서 하면  그것 잘못입니다. 실은 그것이 뒤에 가서 꼭 화덩어리가 됩니다. 필요있다 해서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났으니까 길렀으니까 공부를 해야 되지, 공부를 해야  필요하지' 공부도 필요있다고 하면 헛일이고,  집사님, 농사짓는 것도  필요있다고 지으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어떻게 해야 됩니까? 들어 깨달아야 돼. 안 들으면 안 돼. 무엇이든지 그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과 나와 이 셋이 하나가 되면 다 됩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어떤 게 교회인고 하니 이 셋이 하나된 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하고, 진리하고, 그 사람하고 셋이 한덩어라가 된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회만 되면 됐지 그 이상 뭐 있습니까? 교회만 되면  영원무궁토록 모든 피조물의 중보자요 또 하나님의 바로 계대자 상속자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모든 것은 필요가 있다고 해서 하면 안 되고, 그것도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다 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그만 공부하기가 싫은데  하나님이 공부를 하라고 하시니 내가 공부를 해야 되겠다.' 믿음으로 해야  그것이 의가 되어지고 자기에게 필요가 있지 믿음이, 하나님은 공부하지 말라고  하는데 제가 이 공부는 아무래도 필요하다. 이것은 계명을 어겨도 필요하다 하는  그것은 다 죄 요, 망할 일입니다.

 또 자기가 어떤 사업을 하는 그런 것도 전부 하나님과, 하나님과 나와  연결되는, 진리와 이제 나와 있으면 됩니다. 왜?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요한 1서에는 말씀하기를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고 전해 주고 있는 데 이 셋은 하나라 이 셋만 하면  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달음을 잘못 가지고 하면 다 같이 같은 일을 하는데 하나는  의가 되고 하나는 죄가 됩니다. 공부는 믿음으로 해야 됩니까, 믿음으로 안 해도  됩니까? 이것은 또 이래 알기는 아는 데, 공부는 믿음으로 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안 한 것은 뭐입니까?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안 한 것은 죄입니다.

믿음으로 안 한 것은 죄 인데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요, 또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을 만드는 고 방편은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모두다 죄라'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하신 진리와 구속받은 나와 이 셋만 있으면 다  되지 이 셋이 있어도 모자라서 무엇이 필요해서 구하는 것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이제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니까 그분에게,  시키는 일을 순종하느라고 공부도 하고, 순종하느라고 장사도 하고,  순종하느라고 결혼도 하고, 순종하느라고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순종하느라고, 순종이 필요해,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순종하느라고 이것  저것 하지, 순종하는 것으로 하지 않으면 전부 그 죄라 그랬습니다. 삐뚤어졌다  그말이오. 죄의 값은 사망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이렇게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과 이 진리 외에 다른 것은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진리만 필요한데, 하나님께서 그 진리를 가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거 하라 저거하라, 당신 이 하라 하면 그것이 필요하지, 일생동안  공부하라 소리 안 하면 공 부 하면 안 됩니다. 공부 안 하는 것이 자기에게는  필요합니다. 또 공부하라고 하나님이 시키면 공부하는 게 자기에게 필요하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과 진리 외에도 필요 있어서 무엇을 갖추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은 죄가 되어지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범 하는 죄가 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되어지고,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공부하라면 공부하고, 감옥에 가라 하면 감옥에 가고, 죽으라면 죽고, 굶으라면  굶고, 매맞으라면 매맞고 뭐 하나님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은 다  영생이요, 그것은 다 영광이요, 평강이요, 성공이요, 다 그것은 구원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귀중한 말씀인데, 우리가 이 말씀을 에누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다 불쌍하고 가련한 자가 됐습니다. 에누리하기 때문에 담대함도 못  가지지, 에누리하기 때문에 참 구차한 소리 하지, 에누리하기 때문에 아부하고  그와 같이 아주 저자세로 날뛰고 있지, 에누리하기 때문에 공연히 거지 노릇  하면서 항상 구걸 노릇 하고 있지, 에누리하기 때문에 놀라지 아니할 걸 놀라지,  에누리하기 때문에 욕심 안 낼 걸 욕심내지, 염려 안 할 걸 염려하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에누리하는 데에서, 우리 기독자의 멸망은 전부 그 구멍에서 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공부하는 것보다 뭐 뭐 뭐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의심없이 확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그러기에 우리의 믿음은 마음 믿음 또 몸뚱이 고기 덩어리 믿음 그렇게 두 가지  믿음으로 나눌 수 있는데, 마음의 믿음의 속에 요소가 몇 가지라고 했지요? 네  가지. 하나는 지식 믿음. 또 하나는 소망 믿음. 또 하나는 실행 믿음. 또 하나는  인내 믿음. 이것이 우리 마음 안에서 다 되어야 됩니다.

 우리 마음 안에 된 그것이, 마음 안에 되어서 배 가지고 있는 것이, 밴 아이가  때가 되면 나오는 것은 그것은 필연한 일이 아닙니까? 우리 마음 안에 이 네  가지가 배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고런 기회, 고런 현실만 오면 톡 터져 이제  나오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지식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걸 말하는 것인고 하니, 신 구약 성경을  그저 자꾸 자기 읽는 대로 읽어서 성경에 대해서 네 가지 말한 중에 그 네  가지가 지키기가 좀 어렵습니다. 하나는 네가 평생 동안에 독서를 얼마를 했든지  네가 독서한 독서 중에는 성경 독서가 제일 많도록 내가 요 일을 기어코 해 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너는 지식의 종이 되어 너는 구원 이루지 못하고 망한다.

 그러기 때문에 독서 중에는 성경 독서가 제일 양이 많도록까지 네가 노력을  해라. 그러면 지금까지의 다 다른 것 그런 것 읽었기 때문에, 이제는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은 그 사람은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세상 독서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사람 속에는 독소가 많이 들었어. 독소가 많이 들었고 딴딴하게  강퍅하게 굳어지고 완패하게 어두워지고 둔해져 있으니까 길바닥이 됐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독서는 그래도 하면서 쉴 때도 있고 놀 때도  있었는데, 그 공부 많이 해 봤자 한 이십년 동안 했는데 이제 그래 한 사람은 그  다음부터는, 성경 말씀은 제일 독서 중에 제일 많이 해야 된다. 네가 성경  말씀은 밤낮으로 사모해야 된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즐거워하여 주야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이러니까 밤낮 이 말씀을 묵상해서, 자기가 세상이 배암의 지식을 읽은 양보다  하나님 말씀을 읽은 그 양이 커져야 배암의 지식을 발 아래 밟고, 배암의 지식은  소유가 되고 하나님의 지식은 주격이 되고 이래야 이게 바로 된다 그거요.

 주격이 되어서 하나님의 지식이, 순종이 되도록 하나님의 지식이 이렇다 저렇다  하면 그 세상 지식은 거기에 따라서 보조 역할하고 수종 역할을 하는, 이렇게  되어야 된다 하는 그것을 말을 해 놨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그걸 볼 때에 '이 사람은 그 독서는 찍해야 한 아마 다섯 권  했거나 두 권 했거나 여남은 권 했거나 그래밖에 안 했는 가 보다. 세상에 젊은  사람들이 공부하는 사람이 독서를 얼마나, 이방 독서 세상 사회학의 독서를 많이  했는데, 성경 읽는 것을 모든 독서 중에 제일 많은 양이 되어야 된다. 제일 많이  읽어야 된다 이 말이야 말도 아니다.' 말도 아닌 것 같지마는 말입니다. 고렇게  안 하면 저는 길바닥을 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들.

 지식의 사람이 된 그것이, 그 지식 그것이 자기에게 미혹을 주고 우상이 돼  자기를 멸망 길로 끌고 가는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걸 아직까지 몰라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또 이 성경의 말씀을 둘째로는 확신. 성경 말씀을 다 믿는 확신을  가져야 된다. 이 확신을 가지는 이것을 오늘 지금 말하는데, 성경 말씀을  에누리하는, 이 에누리하는 병이 큰 병이니까 성경 말씀을 의심없이 확실히 믿는  이 사람이 되려고, 이 일을 달성하려고 애를 써서, 돈벌이 보다도 세상에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에누리 하지 않고 고대로 확신하는 이 확신을 가지는  확신의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는 그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오, 하늘의 사람. 땅의  사람이 아니라. 그,사람은 모든 피조물, 인간들은 그 사람의 소유물이 되고 그  사람의 다 슬하에 영원히 머물러야 되는 것입니다.

 확신해야 되고, 또 그 다음 뭐라 했습니까? 또 성경으로 살지 아니한 죄 이제  성경대로 사는 게 아니라 성경으로 살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성경으로 살고,  그러면 성경으로 산다 그 말은 이 진리가 자기 속에서 자기 주관이라는 이  주관은, 그런 것은 다 죽여서 다 이제 이 성경이 잡아 먹었다 말이오. 성경  진리가 잡아먹고 이 성경 진리가 자기 속에 주관이 돼 가지고 이 성경 진리가 내  속에서 자유로 이렇게 저렇게 하니까 나는, 이 성경 진리가 내 속에서 사는데  나는 거기에 피동되어서 움직인다 그거요. 또 뭘 말했소? 예. 성경을 언제든지  가지고 다녀야 된다. 가지고 다녀야 된다. 이것도 보면 어리석은 소리 같지마는  성경 가지고 다니는 그것으로서, 성경 가지고 굉장한 복도 장만하고, 큰 환난을  면하기도 하고, 또 자기를 정금같이 만들기도 하고,  6·25때는 인민군들 있는 데 성경 들고 다니는 이것 가지고, 성경가지고 다니는  이것 때문에 기도도 많이 하게 되고, 회개도 많이 하게 되고, 믿음도 가집니다.

성경 가지고 가는데 인민군 오면 또 성경은 하필 빨간 책이라 표가 나네요.

이러니까 안다 이거요. 성경 가지고 가니까 어떨 때에는 '저 인민군이 눈을  감겨서 이 성경을 보지 못하게 하소서' 또 그런 기도할 때도 있고, '이제 이  성경 말씀을 성경을 가지고 가는데 성경을 물을 때에 그때에 내가 조그만치도  서슴없이 성경을 바로 증거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뭐 성경 가지고 그 인민군  속에 한 번 가는 데에 짧은 토막에서 그 역사가 굉장합니다. 그 역사가 굉장한  큰 유익이 있소.

 제가 6·25때 보니까, 거창서 보니까 어떤 목사님이 왔는데 인사를 하고 점심을  지금 이제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데, '나는 목사입니다' 이래. '목사입니다.'  그래서 첫말에 나도 모르게 떡 나온 말이 '성경은 어쨌습니까?' '아이구!  부끄럽습니다. 그만 급해서 성경을 못 가지고 나왔습니다.' 성경을 못 가지고  왔으니까 그 사람이 무슨 하나님의 은혜를 입겠습니까?  성경에 대해서 네 가지를 말했는데, 우리 마음의 믿음은 그 지식 믿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마음이 믿음 속에는 지식 믿음이 제일 중요하요. 지식믿음 무슨  지식 믿음인고 하니, 신구약 성경에 뭘 기록 했노? 신구약 성경에 인간은 뭐라고  기록해 놨노? 죄는 뭐라고 기록 해 놨노? 세상은 뭐라고 기록했노? 이제 성경이  이 세상을 가르쳐 놓은 그것을 다 배워 성경이 가르치는 세상을 보면 세상을  탐낼 것이 하나도 없고,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고,  이용물은 되기는 되지마는 대단히 위험천만한 미혹물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성경을 읽어서 어쩌든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다 배워서 지식 믿음을  가져야 된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것을 소망해야 된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이제 지식 믿음 가지고, 소망 믿음 가지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이제 내가  실지로 실행하는 실행 믿음을 마음에, 마음에 실행 믿음을 많이 해 봐요. 대번에  되는 것 아니오.

 여기 여    목사님 앉았는데 그 어른이 그때 그럽디다. 왜정 말년에  일본에서 군수 공장에 거기에서 직공으로 일을 했어요. 군수 공장에서는 매일  국기에 대해서 경례하고 또 황거 요배하고 그게 아침마다, 군인들이니까 그  군송을 군인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후방군인 재향 군인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꼭 군대와 같이 해 가지고 하는데, 매일 아침에 군대식의 조회를 하는데  거기에서 국기배례를 안 하려고 하고 황거 요배를 안 하려고 하니까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제는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이러면서 그 마음에  그저 또 믿었다가, 낙심했다가, 믿었다가, 낙심하고 이래 가지고 연습을 하고  이래서 그걸 근근히 넘겼는데,  그때는 배급을 안 타면 먹고 살지를 못하는 때인데, 배급을 타려 하는 날이면,  배급 주는 사람이 군인 장교인데 가면 이제 첫째 묻는 것이 '종교가 뭐이냐?'  그것이 문답에 나오고, 그 다음에는 그러면 신사 참배 하나 안 하나?' 그게  나오고 이러니까 그걸 안 하니까 그 대답을 묻는데 그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그  배급을 타지 않고 이럭 저럭 살다보니까, 고때는 참 마지막에는 굶어 죽을  지경이니까 배급 타러 들어가기는 들어가야 되겠는데 이게 문제라 이거요.

그때는 제가 대구에 가 가지고 '제일 값비싼 여관에 가면 설마 밥이 있겠지'  하고 제일 여관비가 많은 그 여관에 가니까 저녁이라고 나왔는데 등겨떡 요만한  것 두 개 나왔습디다. 저녁 나왔는데 등겨떡 두 개라. 또 아침에도 보니까  등겨떡 두 개.

 그래 이 목사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니까 '너 종교가 뭐이지?' 대답을  어떻게 하나? 신사 참배 하나 안 하나, 이 대답을 어떻게 하노? 이래 가지고  대답을 하면 그거야 당장 갇히는데 갇히기는 갇히지마는 그만 배급은 못 탈거라  그거요. 배급은 못 타고 인제 가면 그 안에 가서 고생할 건데, 그래 가지고  문고리를 잡고 이래 있다가 '보자' 이러면서 '주여, 주님이 눈을 감기고, 주님이  그 사람의 그 정신을 홱 돌려 버리고 하면 나 한테 그런 것 안 묻지 이러면,  이래 놓고 '믿사옵니다.' 이러고 문을 열고 조금 열려고 손 대다 보니까 또  의심이 나서 '안 됐다.' 또 나와 가지고 또 주여 믿습니다. 어쩌든지 그 사람의  마음을 돌려 가지고 그런 걸 묻지 않도록 하고, 고만 배급표에 도장 꾹 찍도록  그렇게 해 주옵소서. 이래 놓고 가다 보니까 또 마음에 안심이 안 되어서 또  하고, 그래 가지고 그 마음에 여러번 복습을 하고 자꾸 이러다가, 여러번 해  가지고 그 보니까 괜찮거든. 문잡아도 괜찮다 말이오.

 이러니까, 괜찮은데 문을 열고 척 들어가니까 또 그게 의심이 또 나오더래요.

이래서 거기에서 등골에 땀을 내고 이래 가지고 거기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해결  지으려고 이렇게 지금 마음에 실행에, 마음 속에 실행하는 그것을 해 보려고  하다가 겨우 되어서 가 가지고 장교한테 가 이래 거석하니까 그래 암말도 안  하고 도장을 꾹 찍어 주더래요. 그래 가지고 찍어 나와서 대문 앞에 나오니까 또  생각하니까 뒤에 잡으러 안 오나 싶어서 또 그래 고생을 했다고.

 우리가 마음에서, 실행 믿음이 마음에서 돼요. 마음에서 실행해 가지고 여러번  실행해 보고 실행을 해보고 자꾸 이래 마음에서 실행 이 숙달되면 그 다음에 이  현실 현상에 나와 이제 실행을 합니다. 실행을 해도 여러번 원청 많이 했기  때문에 실행이 문제가 없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마음 속에 실행이 아주  숙달이 되면 이제 현재 사회에 나가서 실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저 계속하는 인내 신앙, 또 인내 신앙도 앉아서 예수 믿는 사람이 그거요.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은 늘 눈 감고 있는 그것이 그거라. 눈 감고 있는 게, 좀 눈  감고 지식 신앙 가지려고, '성경에 뭐라 했지?' 또 거기에서 배우고, 그거  배우려고 해도 많고, 그것 배우는 것 실효가 있지마는 딴것 배우는 것은 백지  유혹뿐이지 별 소득이 없다 그말입니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 '이게 내가 소망하나? 정말로 소망하나?' 소망하고 나서  또 현실 닥치면 '소망 안 했다.' 또 닥치면 '소망 안했다.' 또 자기 실행을  자기가 마음으로 하고 나서 또 실행을 해 보니까 또 안 되니까 '안 됐다.' 또  마음 속에 가 가지고, 온상이라. 자기 마음 속에서 여러번 이렇게 해 가지고,  이런 때도 한 번 견뎌 보고, 저런 때도 견뎌 보고,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공산주의가, 지금은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뒤로 지금  팔을 돌려 가지고 여기다 작대기를 끼워 가지고 든다. 또 이 손가락을 둘을 묶어  공중으로 단다. 그러면 중추 신경이 당기기 때문에 사람이 아마 기절해질  것이다. 그것도 한 번 해 보고, 하면 고만 인내가 모자라요. 모자라서,  그래 나는 그게 제일 문제라. 알기는 아는데, 고문과 고형이 이래 되게 되면  아픈 걸 나는 견디지 못해요. 나는 아픈 걸 견디지 못해서, '그때에 되게 아프게  하면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변질되면 어찌 되나?' 이게  만날 마음 가운데 지금 연습인데 그 인내가 아직도 안 돼요. 그래 늘 기도할  때마다 안 빼고 기도해요. '주여 고문과 고형이 있을 때에, 그때에 나는 아픈 걸  못 견디는데 그 아픈 걸 견디지 못 해 가지고 내가 변질될까 두렵습니다. 주님이  마귀에게 대해서 제가 오거나 말거나, 십자가에 못 박거나 말거나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는 것과 그 계명을 어떻게 지키는 것 그거나 보여주지 딴 게 뭐  있나?' 마귀에게 대해서 주님은 만점을 했다 그말이오. 그래서 그런 자가 되려고  그래 기도를 하는데 지금도 뭐 자신이 없습니다. 이래서 항상 기도 제목이  그것입니다. 아픈 것 못 견디니까 고문과 고형이 있을 때에 거석해 달라고, 그  전에는 기도를 또 그래 했어. '주여 장기간과 고문과 고형을,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을 받게 해 주옵소서. 어떤 고문과 고형일지라도 단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아! 이래 떠들어 쌓는데 이제 나이가 많으니까 간이 작아 그런지 실지로, 요새는  생각해 보면 '아! 그때 그리 되면 어찌 되느냐?' 이래서 큰 소리 장담이 안 되고  자꾸 주님 앞에 지금 간구합니다. 그럴 때에 이제 약해지지 않고 실수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에누리하지 않고 확신하는 그 신앙을 가지도록 주님도  하시기를 힘을 쓰고 우리도 해야 되고 또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도 주시고 키울 것도 키우고 우리를 쓰실 때도 쓰실  수가 있지 그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을 줘 가지고,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육신의 믿음은  세 가지인데, 시험, 시련, 또 성장 연단 시키는 것 그 세 가지인데, 우리에게  오는 그 현실은 시험 요소가 대개 많이 있습니다. '보자, 네가 전능자를 믿나?  전지자를 믿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 너와 같이 계시는 것을 믿나?' 깜박 하다  보면 주님 잊어 버리고, 고만 현실에서는 사람 오면 사람하고 둘이 붙어 가지고  이야기 하다 보면 주님 잊어 버렸다 말이오. 또 사건 닥치면 사건하고 나하고  둘이 그만 이러다가 주님 잊어 버렸어. 이러니까 네가 뭘 주님하고 동행한다고  하고 있느냐? 이러니까 항상 주님 앞에 자복하고 또 회개하고 이것은 평생 해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시험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시험하시고, 권능에 대해서 시험하시고, 지혜에 더해서  시험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시험하시고, 하나님의 책임에 대해서  시험하시고, 모든 면을 시험하시느라고, 성경에 기록한 대로 의심없이 확신을  가지면 이 세상은 전부 다 통과라, 다 통과. 문제할 것 없어요.

 이러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을 우리가 하나도 에누리하지 알고 고대로만 확신을  가지면 온 세상을 마귀든지, 죄든지, 공산주의든지 말할 것 없이 그 전부는  의심없는 확신을 가지고 에누리없는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엇이 됩니까? 밥이 됩니다. 대답 누가 잘했다. 밥. 밥이 돼. 그 모든 것이  아주 고급 요리가 돼요. 공산주의도 고급요리, 또 감옥도 고급요리 부자도  고급요리 가난한 것도, 온 세상에 크고 작고 많고 뭐 적은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확신하는 그 사람에게는 다 식물이 됩니다. 다 식물이  돼요.

 그것 먹고 자라기나 하고, 살이나 찌고, 영광이나 되고, 권능이나 있어지고  그저 이렇게 그리스도에게 갈 만큼, 어깨 겨룸 할 만큼 그리스도의 분량이  이르기까지 부지런히 먹고 장성만 하지 하나도 거리낌이 없다 그거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확신하지 않는 데에는 다 실패를 가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번 집회를 하고 돌아가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낱낱이 살펴보면서  지식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하나도 에누리도 하지 말고 배지도  말고 고대로 지식해요. 고대로 지식해서, 지식 믿음이라면 고대로 지식하는 고  지식을, 성경이 가르치고 하는 고 지식을 고대로 네가 받아 들이는 것이 지식  믿음입니다. 고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고 지식에 거역하지 않고 고 지식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확신하고 고 지식 고대로의 털끝만치도 가감이 없는, 고  말씀은 정확 무오해서 하나도 가감이 없는, 정확 무오하고, 그 모든 성취되는  것도 정확무오한, 에누리 없이 성경 말씀한 고대로 솔빡 다 받아 들이는 것이  그것이 지식믿음이라 그거요.

 그 지식 믿음을 가지도록 자기가 노력을 해서, 그게 일단 공부라. 학생들이  학교 공부하는 것처럼 일단 전력을 기울려서 전공하는 공부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확실히 믿는 것. 이러니까 그 믿음이 자기 현실에서는  '보자 보니까 여기에서는 내가 믿나 안 믿나?' 안 믿은 것도 표 나고 믿는 것도  표 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믿는 것도 표도 안 나고 믿는 것도 표도 안 나고  어것은 뭐, 죽은 자가 무엇을 압니까? 죽은 자가 모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표도 안 나고 안 믿는 표도 안 나고 에누리하는 표도 안 나고 에누리를 안  한 표도 안 나고 이것은 생명 없는 자이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무 판단력이 없고  아무 감각이나 지각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  다음에 가면 하나님의 그 지식을 내가 먼저 다 아는 대로, 하나 알고 난 다음에  고 지식을 고대로 받아 들이면 지식 믿 음이 됩니다. 받아 들여서 의심없이,  에누리없이 확신하는 자기가 되려고 애를 써서, 이제는 뭐 어떤 두려운 자  앞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확실히 믿어지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무슨 비판력이 없지마는 저거 동무들하고 이래 싸우다가 그 센  동무한테 닥치면 겁이 나 가지고 막 벌벌 떨며 쫓겨왔지마는 쫓겨 가다가 자기  아버지를 만났으면 아, 자기 아버지 앞에 딱, '와 이래 급하게 오노? 저 동무  아무것이 그놈이 날 때리려 해요.' '그래?' 이러면서 아버지한테 안겨 가지고는  그 친구 쫓아오니까 이제 겁이 나서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 '아나  때려라. 아나 때려라. 아나 때려라.' 그러지 않습니까? 어려도 고것이 벌써  아버지의 능력이 의심없이 믿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이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라든지 또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을 주셨으니까 이게 믿어지면 땅 위에 욕심 낼 게 뭐  있습니까? 땅위에 뭐이 욕심낼 것이 있소? 조그마한 빌딩 집 한채를 가지고  시비를 하고 야단을 지기는데, 지극히 큰 소망,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이 소망을  확실히 믿는다면 이제 그거 나 취하려고 굵닥하게 포부를 그게 가지고, 좀 선이  굵게 아주 큰 욕심을 가지고 이래 할 일이지 뭐 조그만한 그거야 오든지 가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가 점령만 하면 그게 다 내것인데, 하늘과 땅의 것도 다  내것이 되는 것인데 그런 데 뭐 그럴 것이 있어야지?  이러니까 우리가 공연히 걱정하는 것도, 근심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복잡한 것도, 조급한 것도 모두는 다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도 믿지 않는 것, 믿어도 또 에누리 해서 믿는 것 여기에서 고장이  나 가지고 그런 것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믿는 사람이 돼 보겠다 이래  가지고 그 공부를 해요.

 하나님의 말씀에 뭐라고 말했는지, 신구약 성경 말씀에 뭐라고 말했는지 그것을  공부를 해서 다 알아요. 쭉 다 알고, 사람에 대해서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고  이렇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쫙 다 알고, 또 일에 대해서는, 남편에 대해서는  이렇고 이렇고 쭉 다 알고 아내에 대해서는 이렇게 쭉 다 알고, 또 이 세상  권력가에 대해서는 다 알고, 마귀에 대해서도 다 알고 뭐 이렇게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다 알면 그것이 또 남고 바르고 참되게 아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것 다 알지, 그것이 날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의심없이 확신만  가지면 그만 언제든지 우리는 헛된 일 하지 않고 알속있는 일만 하고 평강으로  살 수가 있다 그말이오. 마귀가 오니까 조롱해. 아까 그 아이가 조롱하는 것처럼  마귀나 권세나 공산주의가 와도 그렇게 조롱할 수 있는,  이러니까 어떤 선교사가 선교 갔다 오다가 풍랑이 이는데, 자기는 배에다가  머리 두고 누워서 쿨쿨 코를 골고 자니까 그 부인이 자기 이렇게 지금 놀라서  죽을 지경인데 동정하지 않고 잠만 자고 있다고 이래 화를 내 깨우면서 '여보  당신 뭣 하는 사람이오? 남편이 돼 가지고 아내가 지금 풍랑 만나서 지금 다  죽어 가는데 뭐 하는 사람이 오?' 이러니까 그 목사님이 있다가, 옛날에는  선교할 때에 칼을 가지고 다니며 선교했답니다. 칼을 쑥 빼더니마는 이래 성을  내 가지고 확 찌르려고 딱 이래 대니까 따르르 웃거든 '왜 웃느냐?' 하니까  '당신이 나를 찌르지 않을 것이고, 하도 그렇게 장난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웃으워 웃는다'고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이 풍랑 일으키는  이것이 내나 내가 칼 찌르는 것이나 칼 대는 것이나 또 당신이 우리에게 풍랑  일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 그래 말하더라고.

 우리가 이번에는 돌아가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지식이 하나도 빼면 안될, 다  기록하려하면 온 세상에도 둘 곳이 모자라는 그런 많은 것 중에서 간추리고  간추려 가지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만을 간추려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인데, 이것도 또 우리가 빼 버려면 어쩝니까? 이 지식을 다 가져야 되겠고,  또 이것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고 변하지 않는 말씀이니까  에누리하지 말고 우리가 확신해야 되니까, 지식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확신을  가지도록 연습을 해서 확신하는 내가 되어지도록, 그러면 거기에서 저절로  변화가 돼 가지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 그 나머지는 저절로 자꾸 부강해진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번에는  그래 합시다.

 그런데 그 한 토막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자 물어봅시다. 사람이 자기 성공  하는 것이 어떻게 되는 게 자기 성공입니까? 대학자가 되는 것이 자기  성공입니까? 대정치가가 되는 것이 자기 성공입니까? 대재벌자가 되는 것이  대성공입니까? 아주 구비한 행락자가 되는 것이 자기 성공입니까? 무엇이 성공,  저    씨    가 뭐 고? 예. 뭐이 성공이오? 저    씨 한 번 대답 해  봐. 뭐이 성공이지? 모두 말이오, 모두 성공하려고 눈에다 불을 써 붙여 가지고  야단을 지기는데, 그렇게 성공하려고 모든 사람들이 주야로 발동을 하는데 그  무슨 성공을 지금 자기네들이 노려서 그래 하는지를 모르겠어. 무슨 성공을  노리고 있는지?  그러면, 우리가 참 구하고 노력을 해야 될 성공, 후회 없는 참 가치 있는  우리가 해야 될 그 성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성공은,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이랬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켜서 말하는데,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그런 인격성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은  원형이고 그 원형을 우리가 본 받아서 모형적 형상,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다는 그것이 사람에게는 신성 같은 그런 인격성, 하나님의  속성 그것을 갖추어 가진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이요,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갖추어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을 먹고 마시고 살다가 남은 것  있으면 자기의 자녀에게 상속 넘겨 주고 좋아하는 그것이 그들의 할 일이지마는  '나는 깰 때'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랑한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한다 했습니다. 깰 때라 말은 세상서도 깬 것, 깬 것은,  같은 세상에 살지 마는 천국에 사는 사람 있습니다. 같은 세상에 살지마는 이  세상은 마귀가 임금 노릇하는 세상도 있고, 주님이 이제 탈환을 했기 때문에  주님이 임금 노릇하는 세상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세상에 살고 있소, 껍데기 세상은 마귀 세상인데 이 세상을 가지고  우리를 위협도 하고 꾀우기도 하고 야단을 지기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대로만 해 나가게 되면 이제 껍데기 세상은 활딱 벗겨져 버립니다. 이래  껍데기 세상이 벗겨지니까, 껍데기 세상 제가 벗겨져 쫓겨 나갈 판이니까 못  쫓겨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하면 여러가지  박해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이 점령한 이 알맹이 세상에서 우리 믿는 사람은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까지 나갔었지.)  자체 성공하는 성공은 하나님의 형상 입는 것이라. 하나님의 속성 대로의 사람  되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연결되어서 하나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연결되고, 또 하나님의 지식과 연결되고,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지식 아니오?  지식과 연결되고, 하나님의 중심과 연결되고, 또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되고,  하나님의 거룩과 연결되고, 하나님의 진실과 연결되고, 하나님의 의와 연결되고,  하나님의 주권에 연결되어서 그 주권이 내 주권된다 말이오. 연결되고, 하나님의  완전성에 지금 연결돼 가고 있습니다. 완전성에 연결 돼 가지고 있소.

미래적으로는 완전성이 안 됐지마는 회고적으로는 되어진 것은 다 완전성이라.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이것으로서, 자존성은 아니지마는 이렇게 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이 되어지는 요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자기 성공으로 알고 우리가 애를 써서 노력을 해야 될 것인데,  성공도 뭐이 자기 성공인 줄도 알지도 못하고 그저 아무나따나 이 사람이 이  성공 해 있으면 '그거 좋다' 또 고리 따라 가고, 저리 따라가고, 이래서 정함이  없이 방탕함으로 그 마음이 점 점 둔하여집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이요, 그것이 소위  성화되는 것이오. 그게 성화되는 것이요, 그것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하나님과 꼭같은 하나님의 모형이 되어지는, 하나님  같이 거룩하고, 깨끗하고, 선하고, 신실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원형에,  하나님의 속성에 내가 연결돼 가지고 하나님의 속성을 닮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속성 거기 연결되어, 하나님의 속성으로 인해서 내가 연결된 거기 소속한 것이  되어져서, 하나님의 지혜가 내 지혜, 하나님의 능력이 내 능력, 하나님의 소원이  내 소원, 하나님의 뜻이 내 뜻, 하나님의 성품이 내 성품, 하나님의 희로애락이  내 희로애락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 우리의 성공인데,  그렇게 성공하는 비결이, 아브라함은 그 성공을 했거든요. 아브라함은 그  성공을 했어. 자신도 됐지, 아들도 됐지 또 손자도 됐지, 아내도 됐지, 거기에  종업자 종들도 되었지, 다 인간 성공을 했다 말이오. 자기의 성공을 했어. 이게  정말 성공입니다. 이 성공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이 세상것 그것 성공한다고 뭐  이것 저것 하다 보니까 세월 다 보내고, 또 애를 써서 만들어 놨으니까 그걸 내  버리자니 안 되고 하니까 그거 좀 써 먹어야 되겠으니까 그것 성공한다 고 해  가지고 그것 좀 써 먹고 그것 좀 누려보고 하다 보니까 고만 늙어 죽을 때 됐다  말이지. 그러니까 그때사 후회를 하면서 '참 나는 잘못 살았어. 나는 이럴 줄  알면 참 안 사는 건데 내가 길을 잘 못들었어.

 어떤 불교에 참 왕불교 대가리가 저 서부교회 와 가지고 한 분 세상을 떴는데,  그 분은 참신주의라요. 이런데 그분이 마지막에 죽을 때 와 가지고 그만 개종을  하십시오. 그 가족들이 말하니까 '내가 지금 개종을 할 수가 없어. 이 불교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나를 따르고 내가 이리 이리 주장을 해 놨는데, 내가 지금  개종을 하지 못 하게 돼 가지고 있어. 이러더니마는 마지막에 이제 세 주일 서부  교회 나오고 마지막에 죽을 때가 가까워 오니까 그때는 심령이 밝아져 말하기를  '이제는 나는 개종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다. 이길  밖에는 사는 길이 없다. 나는 예수님이 나의 구주다. 이러니까 이제는 내가  죽거들랑 어찌 좀 거석해 가지고 김해 서부교회 교회 묘지때 나를 장례해 주고  다른 중에게는 도무지 기별도 아무데도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런 사람들 그러면서 내가 길을 잘못 들었어. 내가 길을 잘못 들었어. 그 말을  그저 속으로 아파 탄식하며 '내가 길을 잘못들었어. 길을 잘못 들었어.'  이것 모양으로 여러분들, 인간의 그 시간도 제한되어 있고, 능력도 정력도 제한  되어 있는데, 이거 소용없는 성공을 마귀라는 놈이 이 성공 저 성공 말하니까  이것도 좀 하고 저것도 한다고 성공 여러 수십 가지를 저 해 보겠다고 해서  자기의 시간과 정력 다 허비해 버리고 마지막에 끝에는 '내가 길을 잘못들었어.'  그러면서 사람들이 다 후회를 하는 것이 그것이 보통 사람들입니다.

 이제 인간 성공 하려면 뭐라 했느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이 성공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이 성공에 전공을  해도 이 성공이 될까 말까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지 않고 엉뚱한 짓 많이 하고  있다가 언제할 것입니까? 언제 갈 지 모르요.

 실상 이 세상에 필요한 뭣이 많이 있지마는 이 일만 자기의 목표로 두고 이  하나만 성공을 하려고,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입는 이 하나만 성공 하려고,  여기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하나님의 형상이 차차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그 속성  하나님과의 연결이 되어져서, 지혜도 하나님의 지혜와 연결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내 지혜 돼, 하나님의 지식이 내 지식 돼, 하나님의 능력이 내 능력 돼,  하나님의 소원이 내 소원 돼, 하나님의 욕심이 내 욕심 돼, 그러면 벌써 그  사람은 땅위에서 이런 사람이라. 모든 것은 다 그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꼭 첩경으로 질러 갈 수 있는 바른 길이 있는데 마귀라는 놈들이 꼬우고 또  사람들이 부패해지고 심령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말해야 안 들으니까 '백지 이런  설교 저런 설교 자꾸 이래 하는 것이지, 실상은 인간이 하나님 형상 닮는 이  성공, 아브라함은 여기다가 전심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기울였는데, 우리에게 꼭  촛점으로 딱 해 가지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느냐?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은 성령이 와야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를  시키는데,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성령이 오시면 된다. 성령을  오시도록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성령이 오시면 어떻게 되는데 다  되느냐? 성령이 오시면 우리 마음의, 심령의 병을 다 고쳐버린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 심령병을 고친다. 우리 심령에는 욕심도 병든 욕심이 있고, 병든 욕심 죽은  욕심, 병든 욕심, 또 소원도 죽은 소원 병든 소원, 기쁨도 죽은 기쁨 병든 기쁨,  이것은 전부 병든 것이고 성한 것이 하나도 없어. 이러니까 성령이 오시면 그게  다 치료가 돼 버립니다.

 병든 욕심이 어떤 게 병든 욕심입니까? 병든 욕심은 앞으로 죽을 욕심이 병든  욕심 아니오? 죽을 욕심이 병든 욕심이라. 자, 여러분들 욕심 가운데 안 죽을  욕심 하나 내 놓아 보십시오. 모두 죽을 욕심만 속에 가득 차 가지고 뭐 밤잠 못  자고 밥 해 주고 돈 뭐 학비 대고 어쩌고 해도 전부 욕심은 다 죽은 욕심이오.

 이러니까 죽은 욕심을, 죽은 생각을, 죽은 뜻을, 죽은 희망을 이것을 누가 와서  고치겠소? 이것은 성령이 오셔야 고치지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고치지 못해요.

생각 하나만 고쳐져도 그게 참 보배입니다. 그걸 보배로 모르는 사람은, 그  보배를 보배로 모르는 사람은 빼앗깁니다. 보배는 원수가 많고 도적이 많이 붙는  것인데 보배를 보배로 모르면 빼앗겨요. 참 생각 바로 가지는 것, 그 사람이  생각 하나만 바로 가졌다면 그사람 성공합니까? 못 합니까? 그 사람 어디 가도  성공하요. 생각 하나 바로 가졌으면 그 사람도 성공, 가정도 성공, 사업도 성공,  다 성공이요, 생각 하나만 바로 가져도. 이런데 마귀라는 놈이 생각 하나를 바로  가지지 못하도록 한다 그 말이오. 생각.

 어떤 사람 보니까 그 사람 평생 죽을 고생 당하는데 그 죽을 고생 당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당하느냐 하면 병든 욕심, 병든 욕심 잘못된 욕심, 아! 그 욕심은  자기를 망치는 욕심인데 그 욕심 하나 잘못 가져 그것 때문에 일생동안 죽자껏  노력하고, 뭐 자기의 전심 전력을 다 기울이고, 재물을 다 기울이고, 가치없는,  그 욕심 취해 봤자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고 도리어 자기 함정에 빠질 것인데 그  욕심이 그렇게 멸망할 욕심인 줄 모르고 한다 그거요. 성령이 오시면 그런 걸  고쳐요.

 우리 심령 속에 그런 걸 고치는데, 성령을 오시도록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고것을 우리가 첫 시간에 공부했다 그거요. 성령을 오시도록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되지요? 예? 그러면 장소는 어디입니까? 시간은? 현재  거기서 어쩌면 됩니까? 거기에서 고만 주인을 바로 찾으면 됩니다. 주인을 바로  찾으면, 바로 찾아서 되지도 못한 게 제가 주인 노릇 하려고 자주장으로 자기  중심으로 날뛰는 그 자는 다 망합니다. 거기에서 고만 주님을 주인으로, 주재로,  주권자로 주님을 중심으로 주님을 위주로 이렇게 주님을 주인으로 딱 모시고  자기는 주님에게 속한 자가 딱 되면 그만 그 다음부터 주님이 당신의 것이 됐기  때문에 책임집니다. 책임지고 실지로 지금 이 치료 공사를 하러 옵니다. 치료  공사를 하러 오는 이는 누구입니까? 성령, 또 진리, 또 피 이래 그만  착수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니까 자기 성공 하는 데에는 자기 현실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기는  거기에 속한 자가 되고 자기가 주인 노릇 하려 하는, 자기가 주격이 되려는 것,  자기가 자기를 중심으로 하려는 것, 어떤 인간이나 무엇을 중심하려는 것, 어떤  피조물을 중심하지 않고 주님을 중심으로 하는 고 현실로 딱 결정 지우고,  주님을 중심으로, 주님을 주재로, 주격으로 하고, 자기는 주님에게 속한 자가 딱  된 요 사람으로 고 현실에 움직이면 고만 자기는 주님의 것 돼 버립니다.

주님에게 속하요. 주님의 것 돼. 그래해 보십시오. 그래 해 봐요. 자기 현실에  그럴 때에 고 주님을 주인으로 주격으로 모시기에 어려운 때도 있고 쉬운 때도  있는데, 어려운 때일수록 효력이 빨리 나고 크게 납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은 거기에서 다리오 왕이 자꾸 조우는데, 여기에서 내가 나를  주장해서는 안 되지. 주님을 여기에서 주인으로 모시고 나는 거기 속해야지.

주님이 나를 주장해야 되지 내가 나를 주장하면 안 되지. 아! 나를 다리오왕이  주장해도 안되지. 거기에서 '안 됩니다. 주님이 나를 주장하시지 뭐 아무도  주장할 자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못 합니다.' 주님이 주장하시는 그 주장에  나는 따라야지요. 요래 고게 하나 딱 하고 보니까 그 파사 나라가 회딱 뒤비져  버렸어.

 우리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에 어려운 때일수록 효력이 그게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현실에 그랬고 롯은 그때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중심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않고 제 중심, 아내 중심, 뭐 목자들 중심, 딸들 중심,  모든 이것들의 종합 중심을 택해서 하니까, 그러고 난 다음에 뭐이 옵니까?  마귀가 왔다 이거요. 마귀가 오니까 심령을 전부 병들게 만들어 놨소. 심령을  병들게 만들었으니까 그 사람이 인간 성공이 됐습니까, 만고에 부끄러워서 머리  들지 못할 그 자체에 불쌍한 의인이 됐고, 롯도 불쌍한 인간 실패가 됐습니까?  인간 실패가 어떻게 됐소? 자기도 아무짝도 쓰지 못할 의인이 됐고 또 아내도  대실패자가 됐고, 딸도 대실패자가 됐고, 자기에게 소속한 종업자들도 다  실패했습니다. 완전히 인간 실패 해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당면하는 현실에서 명심하고 허퍼서라도 그 현실에 내가  주장을 하면 그것은 벌써 나는 멸망받고 나는 아무짝도 못쓰는 인간 실패가  되어지는 것이오. 이제 제일 좋은 성공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현실에서,  꿈에라도, 아무리 위급할 때라도, 혹 어떤 때라도 그 현실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 주님이 주장하도록 하지 못했다고 하면 열 번이라도 잘못했으면 빨리  고쳐야 돼. 빨리 고쳐야 돼. 빨리 고쳐서 이제 '아이구, 잘못됐습니다. 주님이  여기에서 주가 되시고 주격이 되셔서 이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거기에 나는  따르겠습니다.' 하는 요것은, 아브라함이 성공한 것이 요것 가지고  성공했습니다.

 자기 성화는 자기 현실에서 주님을 주격자로 모시고 자기는 거기에 소속자가  되어 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서 그 현실을 모두다 취급해 나가는 것 요것이 자기  최대의 성공을 가지는 유일한 간단한 첩경인 비결입니다. 첩경인 비결.

 그 다음에 롯은 사람 다 잃어 버렸어. 롯은 사람 다 잃어 버렸어.

아브라함에게는 사람이 어떻게 꾸역 꾸역 들이 모여드는지? 이사야 49장  모양으로 많이 모여 들어서 아마 아브라함이 식구는 굉장히 많았을 거라. 또  그뿐입니까? 아브라함에 참 속한 사람이 많은데 얼마나 됩니까? 저    목사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에게 속한 사람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다 했어.

 그것도 보면 하나님께서, 바다의 모래가 얼마나 많습니까? 뭐 하늘에 별도  그렇게 많은 모양이라. 이러니까 별과 그 별 사이에 굉장히 많으니까 우주도,  엿새 동안 지은 우주도 굉장한 모양이오. 이런 분을 우리가 모시고 있는데  이분을 멸시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아브라함은 이렇게 인간 성공을 했는데 롯은 마지막에 사람 다 잃어  버리고 사위 둘 그것까지도 멸시를 해 저 영감 만날 노망들린 소리만 하고 있다.

아내도 가자 하니까 아내도 있다가 아이구, 저 영감 평생 따라다니며 고생만  할세' 하면서 원망해 버렸지. 딸들은 겨우 따라왔지마는 딸들 그것도 애비를  애비로 여겼으면 그렇게 하지 않지마는 이제 그것은 아주 업신여겨서 동무같이  여겼다 그거요.

 이러니까 롯은 인간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완전히 잃어 버렸소.

잃어버리고 마지막에는 자기까지 잃어 버렸어. 인간은 완전히 잃어 버리고  완전히 실패한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그리 됐습니까? 인간 얻기 위해서, 인간  놓지 않기 위해서 인간 의사 따르는 것이 아! 그렇게 그런 결과로 맺어질 줄  성경이 안 가르쳐 주면 우리가 어찌 알겠소?  아브라함은, 홍포 입은 부자와 대결된 거지 나사로도 보니까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있데요. 이러니까 우리도 이제 세상을 뜨면 다 일단 아브라함 품안에 있어.

아브라함의 그 슬하에 있다 말이오. 아브라함의 부하로 아브라함 밑에 소속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거기 떡 속할 거라.

 이러니까 뭐 아브라함이 사람 성공은 얼마나 했는지 모롭니다. 그것이 뭘로  그래 했느냐? 자기 현실을 당할 때에, 자 하나님의 의사를 쫓느냐, 인간들의  의사들 쫓는나? 이 두 가지 시비가 나는데 롯은 그만 인간들의 의사를, 하나님의  의사를 쫓으려하면 마누라도 반대할 것, 딸도 반대할것, 이 종업자도 반대할 것.

전부 반대하고 다 데모나 일으키고 하면 '이거 큰일이다. 다 잃어 버리고  안되겠다. 이러니까 그것 빼앗기지 않고 놓지 않기 위해서 인간 의사를 따라서  한 그것이 그만 그렇게 돼 버렸어. 사람 놓지 않기 위해서 인간 의사 따른  그것을 하나님께서 복수해서 인간을 하나도 붙이지 않고 자기까지도 다 잃어  버리도록 해 버렸다 이거요.

 하나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바라면서 내가 인간을 잃어 버려도 하나님의  의사를 따라야 되지 내가 인간 의사를 따를 수 있나? 인간들과 다 대립이 되어서  내가 고독 고독 고독, 독보 독보 독보가 되어도 이제 하나님의 의사를 따라야지.

하고 따른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 여기셔서 모든 천하에 있는 만민을 다 그에게  소속시켜서 그렇게 사람을 많이 얻었습니다. 많이 얻었어.

 나는 그걸 가만히 봅니다. 우리 목회자들도 인간 의사를 따르는 사람은 인간을  얻기 위해서 인간 의사를 따르는 사람은 인간 잃어 버립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그 장로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 교회 돈 많은 굵닥 굵닥한 집사들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집사들이, 설교할 때에 그만, 설교하든지 자기네들의  의사를 말할 때 그 의견을 듣지 않으면 불뚝불뚝하이 뒤로 뒷장구를 치면서 뭐  그래 보지 뭐. 뭐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어째? 이렇게 이 쌓아니까 그만 그거  '저러면 장로 잃어버릴세, 집사 잃어버릴세.' 이래 가지고 인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인간 의사를 따른 사람마다 마지막에 인간 다 빼앗기고 그 교회에서 안  쫓겨나는 목사 못 봤습니다. 다 쫓다나요.

 그럴 때에 이제 부득이 내가 어떻게 내게 손해보는 것은, 내가 희생되는 것은  좋지마는, 내가 종 되고 내가 저거들에게 무슨 해를 보고 멸시하는 것 좋지마는  어떻게 하나님의 의사를, 내가 이 사람들의 의사를 따르기 위해서, 이 사람의  비위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사를 버릴 수가 있겠느냐? 할 수 없어. 이  교회에서 쫓겨나가도 어쩔 수 없어. 쫓겨나가도 나는 하나님의 의사는 내가  배반할 수 가 없다.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러니까, 미안하지마는  하나님의 뜻이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렇습니다. 하고 설교도 그래 하고, 주장도 그래 하고, 교회 행정도 그리 하고,  그리하면 당장 쫓겨나갈 것 같지마는, 그 교회에서 장로라도 가시가 있고  집사라도 가시가 있고 거짓부리가 있다 말이오. 거짓부리는 하나님 의사만  따르면 그것은 어디로 갔는지 도망을 쳐서 다 가 버리고, 비위에 맞지 않다고 가  버리고, 그러니까 있어야 가짜 손해 보일 것 그 모든 마귀의 것은 다 도망쳐 가  버리고, 이제 하나님에게 속한 진짜만 자꾸 모여드니까, 자꾸 모여드니까 뭐  하나님의 의사 따른 사람이 배척을 당할 리가 있습니까? 배척 안 당합니다.

그것이 크나 작으나 지금도 세밀히 하나님께서 역력히 보호하고 이루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도 빠지지 않소. 고대로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인간 비위 맞추기 위해서 인본 설교 하지 말라 그거요. 제가 강도사  시취 설교를 할 때에, 강도사 시취 설교를 하려고, 이제 학과는 다 치루었는데  시취 설교를 해야 되는데, 이거 시취 설교를 할 때에 그때 거기 많은 사람들이  다 모였으니까, 그때는 총노회이니까 총노회가 모였으시까 거기에서 하나님의  의사는 이 설교 해라 하는데 아! 그 설교 하면 당장에 이제 뭐. 큰 야단이  날것이고 강도사 시취는 이거고 저거고 다 헛일될 것이라 그거요.

 이래 하나님 앞에 조여서 '그렇지마는 내가 다른 때 증거하지. 이러면 그만  이거 강도사 시취는 헛일이면, 지금 요거 얼마 동안인데, 얼마 동안만 지내면  내가 거기에서 제명을 당할 터인데 지금 순종하고, 상부에 불순종한다고 제명을  당할 터인데, 아! 여기에서 강도사 시취에 합격이 안돼 놓으면 저거 돌 목사라  돌 신학교 졸업자라 이렇게 말할 터인데, 아! 자격증은 따야 내가 뭘 이래  하기는 해야 되겠는데 이게 어쩝니까?' 이거 조이고 조이다 보니까 다른 설교를,  뭐 좋아하는 설교 얼마든지 있는데 설교를 하려고 이리 하다가 보니까 시간이  십분밖에 안 남았어.

 이래서 그 설교를, 하나님 하라 하는 설교야 뭐 내가 안 생각해도 자꾸 생각해  주니까 그 설교가 속에 환하게 이래 있지마는 그 설교는 하면 탈나기 때문에 그  설교 안 하려고 다른 설교를 구하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그러다가 십분밖에 안  남아서 어쩔 수 없어서 차를 타고 가니까 다른 사람이 다 설교하고 지금 내  차례라. 그래서 거기에서 이래 씨름을 하다가……  '네가' 나는 그때 어려서 아브라함의 이 진리를 몰랐다 그말이오. 아브라함의  진리를 몰랐으나 '하나님의 뜻을 증거해야 되지 내가 뭐 시취 합격하기 위해서  이래 가지고 인본의 설교를 할 수가 있나? 인간 얻기 위해서, 뭐 그런 것 얻기  위해서 이래 할 수가 있느냐?' 이래 동그리 씨름을 하다가 할 수 없어, 시간이  됐으니까, 이름을 부르니까 올라가 섰는데 올라가 서 가지고 뭐 이것 저것  생각할 수 없고 부득히 속에 있는 것 나올 수밖에 없다 말이오.

 그래 그만 그걸 마구 퍼 부어 버렸어. 이래 퍼 부으니까 그때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그만 딱 오그라져. 이래 탁 숙여 가지고 이래 있다가 설교 마치고 그만  점심 때 됐는데, 점심 시간 되어서 점심 식사하고 나서 이제 개회때에 딱      목사님 올라오더니마는, '나는 저 뒤에 맨 뒤에 앉았는데 고함을 질러.  조사  무슨 의도로 그런 설교를 했느냐?' 이래 세 번이나 호통을 이렇게 하는데,  처음에 할 때에는 듣고 있다가 두번째 할 때에는 내가 저뻥하이 이랬다가 세번째  할 때에는 내가 발을 짝 짜매고 '저 양반이 저 무슨 소리를 저런 소리를 하노?  그러면 그 설교가 잘못됐다 말인가?'  이러면서 이래 있다가, 그러니까 합격을 시켜 줄 리가 있어? 합격을 안 시켜  준다 말이오. 안 시켜 줘서, '그것은 요번에 합격하면 안 된다. 안 된다.'  이러는데,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그래도 모두 다 저와 같은 동지들이 많이  있어서, '자 그러면 거수로 가결합시다.' 이래 거수로 하니까 합격을 시켜야  된다는, 그 설교가 바른 설교니까 합격을 시켜야 된다는 숫자가 원청 많아  놓으니까 그때 할 수 없어, 그때 다수 가결이니까 이제 강도사 시취설교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랬더니마는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 설교, 하나님 의사 쫓다가 이제 쫓겨나지,  거기에서 쫓겨나지, 사람 다 잃어 버리지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슬슬  붙여줘서 뭐 주일학교는 세계에 제일 많이 모이는 주일학교라 하는 그런 것을  나는 말도 안 했는데 자기들이 자꾸 그렇게 말해 가지고 그래요. 그 무리가  어디서 왔는지 몰라.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얻는 방편은,  방편은  하나님의 의사를 따르되 사람 의사를 따르면 사람을 얻고, 하나님 의사를  따르면 사람을 다 잃어 버리게 되는 고 대목장 고때에 하나님 의사를 딱 따르는  것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아나 이제 사람 많이 주마 하면서 주는 요 그런 좋은  시기라 그거요.

 아브라함은 그때 한 수 재꼈어. 그래 가지고 아주 사람은 하나님께서 몽탕  줬습니다. 이러니까 나도 세상 뜨면 아브라함 품안으로 갈 것이오. 그래 가지고  아브라함의 신앙 슬하에, 슬하에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라서 계통돼 있을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사람을 얻는 데에는 사람의 의사나 하나님의 의사나? 둘이 시비가 날  그때에 사람이 의사를 그것을, 사람도 잃지 않으면 좋지마는 참 부득이 자기가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 의사를 따르지 않으니  저들과 나와 대립이 되고 원수가 되겠는데 그들을 감화 시켜서 어쩌든지 그렇지  않고 깨닫게 해 주옵소서. 아까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의사를 따르면  하나님께서 됐다 하면서 사람들을 줍니다.

 고럴 때에, '너거 의사 반대하고 하나님 의사 따르면 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셔 내것 된다 하면서, 왱왱 하면서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아! 이 사람에게  많은 사람 줬다가는 큰 낭패되겠구나.' 해서 많은 사람을 안 준다 그거요.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멸 하겠다 이러니까 나도 같이  전멸 시켜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참으시옵소서. 아, 이러니까 그 모세에게  줘도 될 만해서 줬다 그거요.

또 롯은 보니까, 눈에 보이는 소돔 들이니 그런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눈에  보이는 조건이 좋아, 또 그 양이 좋아, 그 모든 종류들이 좋아, 모든 것이  보기에 좋은, 눈으로 보기에, 눈으로 보기에 자기들의 생각으로 해 보기에 아주  좋은 그것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이  둘이 대립이 되어서 그게 차지하려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됐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걸 차지하지 못하게 됐고 이 둘이 꼭 대립이 돼  있었다 그거요. 왜? 롯하고 아브라함의 종업자하고 둘이 시비가 났거든. 시비가  났으니까 좋은 것 그거 차지하면 하나님이 섭섭해서 '그거 차지했으니까 너는  그저 가지고 잘 살아라' 이럴 것이고, 그걸,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더  섭섭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려면 그것을 내 주고, 내 주면 하나님의 은혜나  바라고 하나님의 축복이나 바라지 딴 것 바랄 것이 없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 때에 하나님의 축복을 보이는 그 모든 것보다도 그게 여겨서  보이는 그것을 빼앗길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축복이나, 보이는 모든 이것들이나? 어느 것을 귀중히 여겨서 어느 것을  택하려느냐 할때에 롯은 보이는 조건 좋은 그런 것들을 택했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손해가도 그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 그게 낫다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택했다 그거요.

 택함으로서 아브라함은 세상에서도 큰 소유를 가졌고, 또 그가 무궁 세계는 더  큰 소유를 가졌어. 나도 무궁 세계 가면 우주와 영계는 다 내 것인데 내것은 또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의 것이라 말이오. 아브라함은 큰 거부입니다. 영계 가도  큰 거부요. 세상도 부자 됐다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을 만날 때에 눈으로 볼 수 있고 자기네들의 의사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좋은 것 그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축복하시고 은혜  베푸시는 이것이 크다 하는 것을 평가하는, 요 평가와 비판이 요렇게 되어서,  '그것도 좋지마는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내 놔야 될 경우에는 그것을  내놓지 하나님의 축복을 내놓지 않고, 그게 좀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된다 이러니까 이것이 손해보고 이것이  절단나고 이것이 파괴돼도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하나님이 나를 축복할 수 있는 이런 길을 내가 가야 되지 않느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지 않느냐?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지 않겠느냐?' 하는 요 길을  택하는 사람은 낱낱이 성공입니다. 뭐 이것은 아주 쉬운 것이요 낱낱이  성공이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보면 압니다. 저 사람, 보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면 속으로 비웃으면서 '예.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지요,  그렇지만 사람 할 일을 사람이 안 하면 됩니까? 속에는 도둑놈이 들었다  그말이오. 절 알아줘야 된다 그말이오. 아이구, 장로님 참 위대합니다. 장로님이  이렇게 해 그렇지요. 집사님이 이렇게 해 그렇지요. 뭐 누가 이렇지요.' 떡 저  한테 하면 뭐 그래 놓으면 자기 영광을 다 치지하고 자기가 왕이 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또 그게, 한 번 더 얻으려고 '하나님의 은혜지 뭐 제가 잘해 그런 것이  있습니까?' 하지마는 속에 도둑놈은 들어 앉았다 그 말이오. 그때에 하나님이  노여워 하시요.

 자기가 무슨 일이 되는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될 줄 알고 된 줄 알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된 줄 알고, 죄를 지어 그랬으면 하나님의 축복한 것이  아니니 아무리 좋아도 조만간에 큰 이제 화로 다 변화되고 만다. 이래서 미리  미리 손써 가지고 그것을 재빨리 모든 정리해서 수습을 하면 치료가 될 수 있다  그거요.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피를 흘렸소.

 그러니까 이제 첫날 공부한 것. 자기 자체 성공하는 유일한 법칙, 또 사람을  많이 얻어서 사람 성공하는 유일의 법칙, 세상과 내세에 소유를 성공하는 성공의  법칙 이 세 법칙을 배웠으니까 이 세 법칙을 이 집회 중에도 써 먹고, 가거든 써  먹어. 그대로 써 먹으면 이 세 가지 성공은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게 쉬운 것 같지마는 고게 어렵소. 어려울 때에 효력이 납니다. 어려울 때에  효력이 더 많이 나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가만히 생각하면서 확정을 지워요. 이제는 내 현실에서 누구도 하나님보다  높이지 않겠다. 내 현실에서 하나님을 제일 높고 그분에게 따라서 나는 그분의  것이 되고, 그분에게 소속하고, 그분에게 따라서 움직이겠다. 그분을 내 주로,  내 왕으로 나는 모시겠다. 요거 확정해요. 또 이렇게 인간 시비가 분분할 때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의사를 따르지 내가 인간의 의사를 따르지 않겠다  하는 요걸 확정을 지워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축복 위주로 그 축복을 받아야지 그 축복 안  받으면 보이는 것 암만 좋아도 소용없다 요것도 확정을 해요.

 이제 이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사람이 병들면 약방 찾고 의사 찾는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 이것 저것 찾고 돌아 다니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 찾습니다. 하나님 찾소.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는 상 주시는 자이심을  알아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는 그가 소원하시는 그 성공이  됩니다. 참 이렇게만, 요 세 가지 지키면 이제 굉장해서 우리가 이북에 모든  사람들 우리 손에 붙여서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쉽소. 인간이  하려 하면 어렵지만 하나님이 하려 하면 쉬워.

 네 폐회됐습니다. 광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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