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큰 소망

 

1987. 2. 15. 주일오후

 

본문:에베소서 3장 14절∼21절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마지막 절에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렇게 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그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한 것을 우리들로 하여금 믿고 소망하고 아는 자 되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가운데에 역사하시는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온갖 구하는 것이나” 이는 우리가 성경을 보기 전에는 우리의 구하는 범위가 심히 좁지마는 성경을 본 후부터는 우리의 구하는 범위가 심히 넓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생각도 안 믿는 사람, 성경을 보기 전에 생각은 심히 좁고 원하는 것도 심히 좁지마는 성경을 봄으로 우리의 원하는 것도 심히 범위가 넓어졌고 또 생각하는 것도 심히 넓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이 능력은 원하는 그 소원이 심히 넓지마는 그 소원이 다가 아니고 우리보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그 능력은, 지혜와 능력 그 지능은 더 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읽기 전에는 지식이 심히 좁아서 모든 생각하는 것이나 비판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나 그런 것이 모두 좁아서 일방적도 있고 또 심히 어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봄으로 새로운 지식을 가지게 돼서 우리가 보는 생각하는 그 시야는 무한히 넓어졌습니다. 우리가 과거 성경을 보기 전에는 그저 부귀 영화나 있으면 족한 줄 알았고 또 어떤 지역에 권세나 잡고 형통하면 족한 줄 알았지마는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우리의 모든 지식이 넓어짐에 따라서 보는 면도 상대하는 면도 또 평가하는 면도 심히 넓어져서 이제는 성경 보기 이전에 우리에게 소원하던 그런 소원은 다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런 것 가지고는 우리가 만족되지를 아니합니다. 또 그런 것은 우리가 상대하지를 아니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지식의 범위가 넒어짐에 따라서 구하는 것도 넓어졌고 깊어졌고 높아졌고 길어졌고 생각하는 것도 심히 그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이 역사는 넓어진 우리의 구하는 우리의 생각도 다 이루어질 뿐 아니라 넘치도록 우리가 생각지 못한 것 원하지 못한 것 그런 범위까지 그 모든 것을 넘치도록 해 주실 이 약속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러므로” 이러므로라 말은 여러가지 세상에서 이해 못 할 그런 모든 환난들이 있으나 그런 것은 다 필요 없는 환난은 있는 것 없고 우리에게 영원한 수치를 치료하고 또 영원한 실력을 마련하고 영원한 영광을 마련하기 위해서 있는 모든 형형 색색의 환난인데 우리는 그런 것을 조브랍게 생각하고 이해 못 해서 그저 불만 불평하기 쉬운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선포해 주신 이 지식을 보기 전에는 그 웃는 것도 너무 어리고 안 웃을 것을 웃고 안 울 것을 울고, 기뻐할 것은 기뻐하지 않고 너무 어려서 모든 면이 실상과는 너무 일치되지 않는 그런 이리저리 치우친 어두운 가운데 있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다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14절에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이는 하늘에도 수많은 족속 반열들이 있고 땅에서도 수많은 족속 반열들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수많은 접촉들이 있고 수많은 굴곡과 애로 복잡다다한 그 모든 형편들이 있도록 그런 것을 다 계획하셨고 또 계획한 예정대로 그런 것을 하나 둘 그렇게 성취해 나가시는 이 광대하신 이 하나님 앞에 내가 무릎을 꿇고 빈다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좁아서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짧은 공간 그것만 상대해서 울고 웃고 넓은 공간을 보지 못하고 좁은 몇몇 종류를 만나 가지고 그 종류와의 관계에 따라서 우리의 희로 애락을 결정하고 그 밖에 수많은 종류의 나열들이 있는데 거게 대해서 보지도 생각지도 못 하는 그런 우리들이었습니다.

이래서 이 성경 기자는 땅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광대하신 이 사랑의 계획과 섭리, 참 측량 못 할 큰 소망을 이루실라고 우리에게 주시고 역사하시는 이 광대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지식이 좁아서 이해 못 하고 이렇게 저렇게 불평하고 울고 떨고 기뻐하고 욕심품고, 아무것도 그럴 것이 없는데 그렇게 하고 있는 그런 것을 보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형형 색색의 모든 수많은 종류의 끝없는 공간과 끝없는 세월, 측량 못 할 모든 종류들이 다 나열돼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서로서로 이렇게 상호 관계를 맺어 오늘은 내일을 예비하고, 금생은 내세를 예비하고, 일시는 영원을 예비해서 하나 물샐틈 없이 하나님의 이렇게 절대적인 철두 철미한 조직과 모든 강령과 그 세포가 철두 철미하게 되어서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 광대한 사랑과 섭리를 이해 못 하고 너무 조브랍게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므로” 성경 기자는 이러므로 너희들은 이래 불평하지는 형형 색색의 수많은 종류와 수많은 사건들과 그 모든 그런 것을 주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한다 말한 것입니다.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마는 자기에게 닥쳐지는 그 모든 형편 하나 하나에서 믿음을 지키면, 이해 못 하는 그 형편에서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과 또 인도하심, 그 모든 자기 현실의 수많은 거기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믿음을 지키면 그 모든 것이 다 영광이 돼서 측량 못 할 무궁세계에 가면은 그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에 ‘내가 어떻게 저 영광을 내가 받을 수가 있습니까? 나는 저걸 알지도 못했는데.’ 그때 가 보면 그것이 네가 언제 어느 때에 어데서 이해 못 할 그때에 믿음 지킨 그것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피조물들이 살고 평안하고 은혜로 충만하고 새로와졌다 하는 그것을 그때야 알고서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당한 그 현실에 하나하나 그것이 그저 지나가는 거 하나도 없고 필요 없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내 지식이 좁아서 이해 못 해서 그것을 필요 없다고 무가치하게 평가하지마는 전지하신 능력의 이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계획해서 이 세상에서 지금 창세 이후가 육천 년이 다 돼 가는데 오천 년 전에 어떤 일이 오천 년 후 오늘에 어떤 데에 필요하고 오늘에 어떤 사건이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무궁세계 그때에 어느 세계에 해당되고 그 모든 것이 다 성취되고 치료되고 행복되고 하는 그런 수많은 것을 다 이루는 그런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이해 못 하기 때문에 그저 지나 보내지마는 우리의 일동 일정에는 모든 피조물이라면 영계에 있는 피조물도 있고 물질계에 있는 피조물도 있는데 수많은 피조물들이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뭇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이라.

자유함에 이른다 말은 하나님의 뭇아들들은 피와 성령과 진리 곧 일곱 가지 대속과 열한 가지의 하나님의 이 구원으로 이루어진 그 모든 구원으로 이루는 이런 것들인데 사람들이 몰라서 제 마음대로 조브라운 생각으로 저 좋은 대로 제 비위에 맞는 대로 제 계산에 맞는 대로 이렇게 모두 다 믿음을 떠나서 행동하기 때문에 만물이 탄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을 주신 아버지께” 이름을 주셨다 말은 종류 종류의 모든 생활 처지도 줬고 방편도 줬고 또 별별 모든 종류 종류의 생명도 줬고 이래 가지고 이 모든 것이 합하여서 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을 알고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 영광이 얼마나 무한한지, 그 영광이 얼마나 무한한지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라 말은 성도의 일동 일정의 지극히 작은 한 행동에서, 이해 못 할 한 행동에서 수많은 피조물을 행복되게도 하고 수많은 피조물에게 다 구원이 됩니다.

예수님 한 분이 대속하셔서 우리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의 구원이 된 것처럼 성도들의, 이 구속 받은 성도들의 일동 일정의 모든 행동으로써 우주의 억억억억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많은 것들이 다 구원이 되고 성취돼서 그것들이 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하는 그 영광을 말하는데,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하늘나라 가 가지고 억만 년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활동하고 사는데 억만 년 후에 처음으로 만나는 어떤 지역에 한 군데 가니까 나를 보고서 기다리고 있으면서 감사하고, 가니까 아주 영광을 돌리고 감사합니다.

나는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왜 그들이 그런가? ‘당신이 이렇고 이렇고 언제 어떻게 어떻게 어떤 형편에 이렇게 이렇게 해서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 되고 우리에게 해결이 됐다’ 하는 그들에게 구원이 됐다고 감사하고 찬송을 하고 환영을 하고 하는 이런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그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의 그 무한한,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그런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을 문서계시로 주셨지마는 문서계시 안에는 영감계시가 있어서 성령은 이 문서계시를 뚫고 들어가면, 문서계시를 타고 들어가면 탈선은 없습니다.

문서계시를 타고 들어가서 영감계시에 접선이 될 때에는 그 영감계시는 하나님의 전지의 무한한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또 우리로 하여금 감당하게 하시고 감당할 때에 도와 주셔서 성공하게 하시는 이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은 우리에게 무한한 지능, 무한한 사랑, 무한한 생명, 무한한 평강, 무한한 은혜 베푸는 무한한 시은, 무한한 영광과 감사의 구원의 역사를 우리를 통해서 하십니다. 우리가 굉장한 것이고 우리 자체가 어떻게 굉장한 것인지 이는, 이러기 때문에 자존자 하나님 다음의 가치가 되는 존재하는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고” “너희 속사람을” 우리의 속사람은 무엇이 우리의 속사람인가? 우리 속사람은, 겉사람은 단순합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것이 우리의 겉사람입니다. 제 중심으로 날뛰는 그 귀신, 마귀, 사탄과 이제는 우리가 어리석게 자기 중심으로 사는 우리의 악성, 우리가 안 믿을 때는 전부 악령 그놈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우리는 악성으로 살았습니다. 악성, 악성은 제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악성인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조물주가 있고 우리를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계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의 지공 지성의 입법이 있는데 그 입법 아래에 사는 우리들이 그분을 따라 살아야 될터인데 조브랍게, 마귀 요놈이 와서 꼬우니까 제 욕심대로 제 생각대로 제 뜻대로 제 원하는 대로 하면 좋고 성공인 줄 알고, 그러기에 우리가 믿기 전에 성공이라고 좋다 했던 그것이 믿고 나서 보니까 전부 그것이 토하여서 회개하고 주님 앞에 고해서, 우리가 날마다 일거리 있는 것은 주님을 알기 전에 내 중심으로 내 위주로 살았던, 그때는 성공이라 좋다 했는데 그게 전부 토하고 우리가 치료받아야 될 것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안 믿을 때에는 그런 것을 다 좋은 줄로 우리가 생각했는데 그게 옛사람이오.

우리 속사람은 어떤 것이 속사람인가? 속사람은 넓게 말하면 열한 가지로 된 속사람입니다. 영원 전 택함을 입은 사람이요, 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일곱 가지를 입은 사람이요, 또 제사장 선지자 왕의 삼직의 이 직책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이것이 우리 속사람이요 새사람입니다.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능력은 무슨 능력인가? 열한 가지의 다 그 능력은, 택함의 능력도 자존자의 능력이요, 또 우리가 하나님과 서로 화친된 그 능력도, 또 우리가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그 전지의 입법을 다 이행한 것도, 또 우리들이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자유하는 것도, 하나님을 향하여서 진리로 영생하고 영감으로 영생하는 것도, 우리가 모든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에 제사장 노릇하고 선지자 노릇하고 왕노릇하는 것도 이거 전부 다 이능력은 땅에 있는 능력 아닙니다. 이는 완전한 능력이요 영영 불변한 능력입니다.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고” 창조주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에 계약해 놓은 이 계약서를 낱낱이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나는 상대해서 살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그러면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가운데 내가 믿을 때에 계시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게 되는데 이 그리스도는 몇 가지를 가지고 계시는 그리스도냐? 열한 가지를 가지고 계시는 그리스도입니다. 열한 가지를 가지고 계시는 그리스도인데 이 그리스도는 내 안에 아무리 오라고 해도 올 수 없고 나는 영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선택하신 이 사실을 내가 믿을 때에 그분은 내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과 나와의 화친된, 이 대속으로 화친된 걸 믿을 때에, 대속으로 일곱 가지 이 구원이 된 것을 내가 믿고 그대로 살 때에, 나는 하나님과 화친됐기 때문에 나는 다시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다, 죽어도 어떻게 해도 나는 하나님과 나는 끊어질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을 주님이 대신 다 이행해서 나에게 하나님의 의를 줬기 때문에 나는 이 의를 입고 내가 어떻게 변하고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 어떤 게 있다 할지라도 나는 다시는 하나님의 법을 범할 수가 없다, 나는 죄의 종될 수 없고 마귀의 종될 수 없고 사망의 종될 수 없고, 나는 아무것도 소망하고 향하지 안하고 하나님만을 향하고 진리대로, 이 문서계시대로, 문서계시 안에 영감계시대로 이렇게 해서 날마다 내가 제사장 노릇하고 선지자 노릇하고 왕 노릇하여 제사장 선지자의 이 왕의 실력이 점점 숙달되고 성장돼 가는 이 생활로만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실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그러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이 열한 가지를 가지신 이분이 우리 안에 계시도록 한다. 그러면 열한 가지를 가지신 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게 하는 데는 뭘로 계시게 할 수 있는가? 믿음으로만 계시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 믿음은 뭐인데?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믿음은 첫째는 문서계시 믿음이요 다음에는 영감계시 믿음입니다. 문서가 나에게 가르쳐 주는 요것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요, 그 속에는 성령의 감동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고 믿게 하는 것을 내가 그대로 행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요 믿음을 가지고 이제 그리스도를 내 안에 계시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계시게 한다 말은 열한 가지를 가지신 그리스도를 내 안에 계시게 합니다.

이래서,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뭐할라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뭐할라고? 골로새 3장 1절에 “너희가 만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건 뭐할라고 계시는데? 함께 계셔야 이 열한 가지가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열한 가지인데 여덟 가지는 밑천이요, 여덟 가지는 밑천이요 자본이요, 세 가지는 이 여덟 가지 자본을 가지고 건설하는 것입니다. 건설하는 세 가지는 무엇인데? 그리스도직, 제사장 선지자 왕직.

제사장직이 뭐인데? 제사장직은 창조주와 모든 피조물과 그 사이에 거리 먼 것을 짧게 하고 이질적인 것을 동질로 만들고 불화 원수된 것을 화합의 일치를 만드는 이것이 제사장직입니다.

제사장직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 때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때에 제사장은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과의 그 사이에 모든 잘못되어 있는 것들을 책임지고 제사 드려서 조화를 이룬 것이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잘못된 거 피조물과 잘못되는 것, 우리가 범죄했기 때문에 피조물은 공연히 정죄받았습니다.

저주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그 사이에 불목되고 잘못된 것을 당신이 화목의 제물로 당신이 제물되셔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지운 것이 제사장 일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 생명이요 축복이요 모든 평강이 되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이 어기면 죽고 그 뜻을 바로 받아서 가지면 삽니다. 이런데 생명과 평강이 되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들에게 갖다 주시는 일을 한 선지자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이렇게 해서 이분을 뭣 때문에 계시게 할라 하느냐 하면은 그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시게 합니다.

계시게 하면 이분이 몇 가지를 가지고 왔는데? 몇 가지를 가지고 왔습니까? 몇 가지 가지고 왔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 가져왔소? 열한 가지 가지고 왔어.

학생들이 잘 알아들어. 못 알아듣는 학생은 모르면 안 돼. 열한 가지를 가지고 왔어.

열한 가지 가지고 왔는데 몇 가지가 자본이고 몇 가지가 지금 달성할라고 하는 건축입니까? 몇 가지가 건축이고 몇 가지가 자본입니까? 여덟 가지가 자본이고 세 가지가 우리가 건축의 대상입니다.

이 자본도 우리들은 주님이 완전을 다 이루어 놨지마는 우리가 이거 계속 자꾸 받아서 쓰게 됩니다. 이래서 우리의 달성은 우리가 완전히 제사장되고 선지자되고 왕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뜻을 피조물들에게 이 식물들에게 무한한 뜻을 줄 때에 이 식물들은 그 뜻에 따르면 이게 다 삽니다. 그 뜻에 떨어지면 이게 다 죽습니다.

이래서, 골로새서에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 말씀했습니다. 만유시라 말은, 오해하면 안 됩니다. 만유시라 말은 그리스도는 모든 전 존재라 그말입니다, 전 존재. 다시 말하면 이는 그리스도라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는 그리스도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마귀란 놈은 여러분들에게 와 가지고 ‘이게 그리스도라면 이게 하나님이라 소리다? 이거는 범신론이다.’ 이래 생각 가지게 해. 만유시요 다시 말하기를 만유 안에 계신다. 껍데기는 이 초목으로 나타났고, 그 안에는 초목과 그 모든 무생물 생물들을 살리는 생명으로 나타났고, 생명 안에는 그 속에 진리로 나타났고, 그 진리 속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관리로 이래 나타나 가지고 한 분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이 이렇게 뿜을 때에 그 모든 것이 나가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모든 피조물들입니다, 모든 피조물들. 이러기 때문에 그 안에 충만합니다.

이래서, 모든 것은 그 안에 그리스도가 없는 가운데서 있게 했고 있는 것을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십니다.

이랬는데, 그리스도가 뭘로 가지고 있게 하고 살게 하는가?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가지고 있게 하는데 우리는 뭐 할라고 데려가는가? 우리를 해서 이제는 우리가 만물의 제사장 선지자직 왕직으로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또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인 영감과 진리, 또 그 안에 삼위일체의 하나님, 이렇게 해 가지고 영원한 무궁세계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그러면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계시면 뭣 할라고 와서 계십니까? 이 여덟 가지를 점점 기르고 여덟 가지를 또 사용해 가지고 세 가지를 완성을 하고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면은 예수님의 대속을 활용하고 효력 있게 활용을 시켜서 예수님의 여덟 가지 대속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서 우리는 완전한 왕 같은 제사장, 왕 같은 제사장이라니? 왕 같은 제사장이라 말은 예수님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걸 가리켜서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고 보니 모든 만물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의 그 관계에 화친의 중보를 누가 합니까? 화친의 중보를 누가 합니까? 무엇이 합니까? 화친의 중보를 뭐이 합니까? 제사장이 합니다. 제사장이 하다니? 예수님이 하셨고 이제는 그리스도로 나타나서 우리 속에 와 가지고 우리를 만들어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하게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입니다.

이러니까 오전에, 그리스도만 모시면 모든 것은 다 있다, 그리스도만 모시면 모든 것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시다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스도만 모시면 우리는 전지자요 전능자요 우리는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요 대주재시요 우리는 모든 데 대해서 주권 개별 섭리자입니다.

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나는 만물에게 대해서, 만물에게 대해서는 피조물에 대해서는 완전히 하나님이요, 피조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요 나는 그에게 대해는 피조물입니다.

피조물과 우리와 하나인데 이제 피조물과 교회 사이를 보니까 교회는 피조물의 중보자요, 그들은 교회가 하나님의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인 줄 알지마는 실은 우리는 피조물이요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조물에게는 하나님의 노릇으로 이렇게 해서 하나님 대리의 제사장 선지자 왕노릇을 하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 구원의 오묘를 우리가 알아야 되고 이 비밀의 큰 것을 안 사람은 자기 있는 것을 다 바치지 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보화와 진주를 안 사람은 자기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이 보화 있는 것을 산다, 밭은 산다는 것은 밭은 뭐인데?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이 보화가 들어 있는 세상이니 세상을 내가 점령해야 이 세상 안에 들어 있는 보화를 내가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니까 자기 모든 걸 다 들여서도 이 세상을 자기 구원을 이루는 데에 이용만 했지 이 구원에 손해가는 천만금이라도, 세상 지위 권세 다라도 눈도 떠보지 않습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너희 마음 안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를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터가 굳어진다 말은 모든 기초가 든든해진다 말입니다. 모든 기초가 든든해집니다. 기초가 무슨 기초인데 든든해지는가? 기초가 무슨 기초인데 든든해지는가? 이는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박았기 때문에 그 기초가 든든합니다.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기초입니다.

“누구든지 이 터 위에 집을 짓되 조심있게 지어라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 “터가 굳어져서” “사랑에 뿌리를 박아”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를 박아, 사랑 가운데라 사랑 가운데 뿌리박는 것이 무엇이 사랑 가운데 뿌리박는 것인가? 어데다가 뿌리박는 게 사랑 가운데 뿌리박는 것입니까? 사랑 가운데 뿌리박는 것은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것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사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 했습니다. 이것도 사랑이요, 하나님과 불목된 것을 화친케 예수님의 대속의 일곱 가지도 이는 순전히 사랑이요, 우리를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만들라고 하는 것도 이게 사랑입니다.

“사랑에 뿌리박아” 이 열한 가지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을 근거해서 거게다가 뿌리를 박고 거게다가 근거를 두고 그 진액을 빨아먹고 그것으로서 그 터 위에 세우는 거는 영영합니다! 이는 아무도 상우지 못합니다. 우리가 땅위에 피조물의 이런 거 저런 것을 먹고 살지 않습니다. 어떤 피조물의 무엇을 먹지 안하고 바로 창조주 그분이 직접 베푸신 이 열한 가지 먹고 자라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이래서 이 구속받은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 말은 인간의 지식이 암만 생각해도 아무리 범위 넓게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신구약 성경을 알고 난 다음에 생각하고 생각하고 하는, 신구약 성경 지식 가지고 아무리 알아도 모릅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모르는 거 신구약 성경 지식에서 배워서 알았고, 신구약 성경 지식에서 배워서 모르는 거 영감 지식으로 알았고, 영감 지식으로 알아도 그분은 무한한 분이라. 그분은 무한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지식은, 그분은 무한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이 사랑과 소망은 지극히 큰 소망을 줬는데 이것은 지극히 큰 사랑인데 우리가 아무리 느낄라 해도 다 못 느끼고 알라 해도 다 못 알고 생각을 해도 다 못 생각하고 아무리 추측 추론해도 모르는, 인간의 지식으로 측량 못 하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합니다. “지식에 넘치는” 넘친다 말은 이거는 초월한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리스도의 사랑이 뭐인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뭐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몇 가지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자꾸 올려봐요. 손가락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몇 가지입니까? 몰라요, 몰라.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 봐. 나는 아직까지 주석을 못 봤어. 내가 이제 이걸 보고 나서 나중에 시간 있으면 칼빈 주석이 나은데 칼빈 주석을 볼 거야.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지식에 인간의 지식으로 측량 못 할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이 나를 택해서 나를 택한 것이 뭐인지? 사랑해서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 택했다 하는데 이 택한 게 뭐인데?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예정했답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나를 택한 이 택함의 이 구원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걸 예정하셨고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걸 창조했어. 그 택한 게 뭐인지?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넓은지 알겠습니까? 당신이 창조한 걸 다 알면 하지만 창조 그걸 다 압니까? 몰라요, 몰라. 택함도 몰라.

하나님과 우리와 원수가 어데까지 됐던지 몰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하나님 대주재이신 창조주 완전자와 우리와 이 화친이 됐다는 이거는 측량 못 해. 얼마나 된지 어떻게 된지 몰라. 다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것이라. 하나님의 지공법을 대행 대신 행하신 것도 우리는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의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그 넓이와” 그 넓이, 얼마나 넓은지!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으로 입법해 놓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주신 모든 자유법, 모든 생육법, 그들에게 자유법, 그들에게 생명법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다 범했는데 그 모든 것을 다 대신 해결 다 해서 다 완전히 해결했기 때문에 그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 보고 다 환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왜? 그 하나에게도 거리낌이 없어. 하나도 거리낌이 없어. 그 사랑의 넓이.

“깊이” “깊이” 음부가 어데까지 음부인지 사망은 어데까지 깊은 것인지 우리는 몰라요. 우리가 “죽음에서 살렸다” 했고 우리의 “죽음의 고통이 세세토록 올라간다” 했는데 세세라 말은 영원 무궁인데 우리 죽음의 그 고통 매인 것이 몇 억억억억억억억만 년 얼마나 깊이 매였던지 모릅니다. 이거 다 당신이 다 해결했소. 당신이.

“깊이와 높이” 그분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에게까지 만족하도록 해결 다 지웠어.

“길이가 어떠한 것” 이는 억만 년 가면 끝날 것 아닌가? 억억만 년 가면 끝날 것 아닌가? 가도 가도 억억억억억억억억억억억 가도 또 억억억억 또 있어.

억억억억 e 년 후에 보니까 또 있어. 그 길이에 무한해! 그 사랑에 무한해! 그분이 우리를 대속한 것은 무한해!! 무한해! 한이 없어!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그 충만도 다 무한이라. 그 종류도 무한, 양도 무한, 종류도 무한, 양도 무한, 가치도 무한, 능력도 무한 전부 무한이라. 완전이라.

“그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충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와서 충만해서 우리는 그것 받아 가지고 창고 삼아서 삽니까? 그 충만한 거 받아 가지고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케 하시는 충만이 우리들입니다.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시기를 원하노라” 대대 무궁하기를, 그 영광 있으라고 우리가 축도합니까? 이분에게 영광이 대대 무궁하라고 축도하는 것 아니오. 그분에게 이 영광과 존귀가 대대 무궁한데 이 무궁한 것을 원하노라 말은 이 무궁한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고 인정하고 믿고 이렇게 평가해서 우리들이 거게 대해서 준해서 살아야 될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과거에는 너무도 지식이 좁았습니다. 좁아서 우리가 안 믿을 때에 우리의 산 것이 좁은 것이 꿀밤딱지 같애, 꿀밤딱지. 꿀밤딱쟁이 같았어.

이제는 그때 비교하면, 우리가 이 성경을 봄으로 해서 그때 비교하면 억억만 배 더 넓어졌어. 그때는 피조물만 알았지 창조주를 몰랐어. 사는 것만 알았지 죽음도 몰랐어. 어데서 온 줄도 몰랐어. 이런데 성경으로써 넓어졌어. 또 영감을 받고 보니 더 넓어졌어.

그뿐만 아니라 갈수록이,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항상 있다” 했습니다. 왜? 믿음이 항상 있다 말은 무슨 말이요? 알아도 또 알 것 또 있고 또 믿을 것 또 있고 또 그대로 행할 것 또 있어. 믿음은 아는 것 믿는 것 행하는 것인데 이것이 영원토록 있다 했어. 영원토록 또 알 게 또 있어.

이 구원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 구원을 안 자가 땅위에 탐할 게 뭐 있으며 또 이 구원을 자기가 날마다 경험하고 체험하는데 이 대주재 그분이 우리가 밤이고 낮이고 그분을 찾을 때에 시간 지체 안 하고 즉시 우리에게 화답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모르는 것 다 가르쳐 주시고 온갖 데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해결 안 될 것 없이 다 모든 것 다 해결해 주시고 하신 이분을 동행하고 이분을 체험한 자는 이분을 떠나지 못합니다. 딴데로 향하여 가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서장 히말리야 산에는 가면은 이분 떨어지기 싫어서 이분 앞에 명상하고 서로 같이 지내다가 그 굴에서 해골로 그 자리 앉아서 주저앉은 그런 해골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여게서도 다 이 사랑과 이 가치를 봐서 본 사람들은 세상에 나오기가 싫어.

나오기 싫지마는서도, 후란시스도 안 나올라고, 그만 들어가 가지고 안 나올라 하니까 나중에 가 가지고 ‘후란시스 당신이 당신된 것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됐느냐? 우리 위해서 하나님이 당신을 만드셨는데 그러면 당신만 좋다고 이 산골에서 그만 금식하다가 주님 만나 가지고 갈라고 하면은 우리는 어찌 되느냐? 당신이 당신된 게 당신으로 됐느냐 우리 위해 됐느냐? 요 점을 가지고 기도해 봐라.’ 할 수 없어 끌려 나왔어.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지극히 큰 소망이 있는 걸 알아야 되고, 털끝만한 것도 절대 우연이 없습니다. 털끝만한 것도 하나님께는 실수가 없습니다. 털끝만한 오산도 착오도 없습니다. 털끝만한 것도 정확 무오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분 앞에서 우리가 사니 소망도 지극히 크고 우리가 조심해서 얼마나 걸릴 게 없도록 사는 조심도 심히 무한하다 할 만치 크고 우리의 준비도 크고 우리의 희망도 무한히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으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찾으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편에 앉아 계시다니? 창조주가 만족하는 완전 승리를 이루었어.

하나님을 완전히 차지했어. 하나님의 모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차지했어.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도, 조그만한 먼지만한 것 하나도 불평 없이 감사하면서 주라 시인하는 이 평가적인 가치, 가치있는 생애, 이 생애를 승리했어.

이 생애를 승리한 그 생애가 세상이 볼 때에는 옷 한 벌도 없고 머리 둘 곳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집이 있지마는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니까 가련한 것 같지마는 이 생애가 완전 승리야.

삼 일 만에 부활해 가지고 신인양성일위로서 우리와 영원히 동행하고 계셔.

그리고 난 다음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하나님과 동등이시지마는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안하시고,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당신을 비어서 피조물들을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했으므로 모든 만물의 회복과 구원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우리가 갈 길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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