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1985. 2. 5. 교역자회

 

본문 : 마태복음 14장 27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 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떠나서 주님이 명하신 곳으로 갈려고 할 때에  순조롭게 항해할 때와 또 거슬려서 가지 못한 때를 우리는 우리의 구원 도리로  주신 것이니까 그때 형편을 자세히 살펴서 우리의 구원의 고 촛점. 서로 아주  접선되는 점 그 점을 우리가 바로 찾아서 가지는 것이 중요한 줄 압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이 세상을 거쳐서 우리의 목적지인 구원을 완성하는 목표를  향해서 가는 데에는 여게서 보여 준 이대로 그저 주님 한 분 외에 필요한 것이  없다 하는 이런 사람 되는 것이 참 문제입니다. 이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일이 쉽게 되는 게 아니고. 주님 한 분 외에 다른 필요한 것이 없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주님 한 분만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하고 그분 한 분만 있으면 다 된다 하는 이 사람이 우리가  되어지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또. 그저 할 일은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주님에게 피동되는 것, 주님에게 피동 되는 것 이거  하나만이 우리 할 일이다.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이거 뭐 쉽게 안 됩니다.

 여기 된 것을 보면은 예수님의 가르치신 말씀과 영감과 또 그때 표적 그것이  이 제자들에게, 순전히 그때는 가만히 명상해 보면 그 제자들에게 다른 것이  있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딴것이 그들에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있을 수가 그들이 없게 된 그 이유는 단지 이것인 줄 압니다. 예수님이  하늘 나라의 말씀을 자꾸 가르치시지 또 성신의 감동이 그들에게 감화를 시켜  주시지, 또 예수님이 하신 일이 뭐 그저 말씀하신 대로 이런 이적 저런 이적이  나타나니까 그 사람들은 바짝 변해졌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세 가지로서 만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심신이 이 두 가지  사람으로 완전히 변해서, 마치 베 쪼가리를 물들이면 순전히 물이 들어  가지고서 베쪼가리가 감염되는 것처럼 이 두 가지로서만 가득 찬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데는 이 세 가지 방편으로만 된다 하는 고것을 우리 여기서 배우고.

어깼든지 이 세 가지로 우리 자신을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 성화시키는 것, 요  완전히 성신의 감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인 줄 압니다. 여러분들도, 다 우리가  다 경험한 대로 안 그렇습디까? 뭐 참그만 낙망이 돼서 죽을 지경이고 뭐 참  자살할 만치 그럴 때도 있었고 또 뭐 독이 나오면 굉장히 독도 나오고 또 원망  불평이 나오면 굉장히 나오는 그때 그게 얼마나 심합니까? 이래도 뭐 장소도  어기지 안했는데 성령이 오시면 그거 다 우습지 않습디까? '참 그거 공연히, 왜  그때 그랬던가? 참 옛사람 그놈 마귀 그놈 오면은 다 그래 된다. 악령과 악성이  오면 그와 같이 된다.' 그거 우리가 많이 느낍니다. 느끼는데, 이 두 가지  사람으로 변화 되는 데에는 고 세 가지로 그들도 변화됐습니다.

 변화됐으니까, 하나는 주님의 말씀이니까 자꾸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하는  거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저 말씀을 자꾸 읽고 또 듣고 또 새김질하고, 남한테  설교를 들었다든지, 그러면, 설교를 들은 거 아니라도 자기가 그 설교를 두고  자꾸 이래 생각하면 돼요. 생각하고 자꾸 이러면 깨달아집니다. 그 ○○ 목사님  설교한 거 그거 주석에 없는 거요. 내가 들어 보니까 다 자기가 명상 가운데  기도 가운데서 깨달은 것이지 뭐 주석에나, 주석 쓰는 사람도 그런 그만치  깊숙히 생각지를 못해요, 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하는 것이 말씀을 들어서,  자기가 이미 아는 말씀이고 또 배운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가지고 자꾸 이래  새김질하면 새로 깨달아지고 깨달아지고 깨달아져 가는 가운데 벌써 그 말씀이  깨달아짐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기쁨이 올 때에는 그 기쁨은 뭐 세상 것  가지고서 유가 안 되는 그런 기쁨을 우리가 체험합니다.

 이래서 말씀을 자꾸 읽고 듣고 또 자기가 명상하고. 명상하면 성신의 감화가  와요. 성신의 감화가 오는 데다가 자꾸 거게서 그저 쉴새 없이 이래 하면은  우리 사람은 그만 나중에 땅의 아무 소망도 아무것도 보이지 안하고 그만  우리가 그럴 때 있지 안해요? 그런 거 우리가 많이 안 당합니까? '예수 한  분이면 됐다' 그만 그것이 내가 입술로 하는 게 아니라 '과연 주님 한 분이면  된다' 하는 그것이 우리가 콱 믿어지는 것이, 그때 그런 사람이 되어질 때가  있다 그거요. 그럴 때에 그 사람이 변동 안 하고 계속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뿐이지 뭐 무슨 실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또 표적을 안 보면 믿음이 안 생겨집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당한 표적  과거를 다 잊어 버려요. 어떻게 받은 것을 다 잊어 버립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기도할 때에 기도를 들어신 거, 자기가 또 그렇게 해 보니까 그런 일이  이루어진 거, 이렇게 자꾸 생각해 보면, 그걸 계산 안대서 그렇지 계산을 대  보면, 전부 따지고 따져, 깊이 따져 보면 주님의 능력으로 해 주신 것이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또 그러고 과거도 그런 것이 많이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현재도 주님의  말씀대로 이러냐 저러냐 그 씨름을 할 때에 고때 주의 말씀대로 고대로 딱  순종하면 반드시 이적이 나옵니다. 신강이, 신강이 있는 것 만치 어려움이 있는  것만치 순종하면은 고만큼 중량이 있는 그런 표적이 나옵니다. 이래 가지고  자꾸, 그런 표적 그것 때문에 아브라함도 담대했고 다니엘도 담대했고, 뭐  우리가 같은 사람이지 별 사람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 세 가지로만 우리 사람은 두 가지 사람으로 변화된다 하는  요것을 굳게 잡고 요 세 가지로 자기 변화시키기를 힘을 쓰고 이거 뭐 풍랑같은  이 세상 이런 일 저런 일에 거게 대해서는 관심을 안 가져도 좋습니다. 요것만  하면 됩니다.

 그거만 하면 어찌 될 건가? 그것만 하면 될 것이 왜 안 되느냐? 우리가 경험도  해 봤고 또 계약에도 그래 돼 있으니까 그것만 하면, 어떨 때는 보면은 주님이  이렇게 하라 하는데 하고 보니까, 하고 보니 그게 돈도 될 때 있고 하고 보니까  문제 해결도 될 때 있고, 당신 시키는 대로 하니까 시키는 대로 한 그것이  무엇을 잘 해서 잘된 그런 일도 있고 그것보다도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그거  했는데 우리 몸 밖에 당신이 역사하셔 가지고서 몸 밖에, '성읍에서도 복  받는다. 들에서도 복 받는다.' 뭐 자기네들 뭐 어데 안에 들어와서 된  것입니까? 명령 지키니까 하나님께서 그 넓은 성읍에 복을 주시니까 그 성읍이  자기 복 준다 말이오. 성읍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라 그 말은 온 성읍이 자기 복  주는 성읍이 된다 그말입니다. 그. 모든 들판이 다 자기 복 주는 들판이 된다,  그거요. 이것은 우리가 말씀대로 이와 같이 행할 때에 당신이 한 것이요 나는  손도 안 댄 것이라 말이오.

 손도 안 댔는데 또 어떤 거는, '몸의 소생이 복을 받는다' 그 말은 내가  그렇게 순종할 때에 나를 통해 사지고서 나를 통해 가지고서 내게 소생이 그게  또 내게 복 될 수 있다. 자식도 참 복된 자식도 있고 복 안된 자식도 있고,  자식 있는 사람이 참 상팔자라 하는 그거 좀 이거 뭐 오행에 속한 것이지마는  자식 있는 게 상팔자도 있고 자식 없는 게 상팔자도 있고, 그게, 그것이  하나님이 복을 줘야 자식 있는 것도 그게 복되지 복 안 주면 소용없고, 또  하나님이 복 주니 자식 없는 게 또. 복이 얼마나 있습니다. 이분에게 뭐,  복되게 하시면 복되고 복 안 되게 하시면 복 안돼요.

 이러니까, 내가 그 계명 지킬 때에 그 지극히 큰 능력이 내 속에 들어와  가지고서 나를 통해 가지고 뭘 하는 것을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당신이 나를  통해서 하시지, 또 내가 그 계명을 지킬려 할 때에 당신이 와 가지고 나를 변화  시키는 걸 봅니다.

 저는 방에 가면은, 이번에 방 지을 때는 거울을 많이 해 놨습니다. 보자, 거울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거울이 일곱이라. 일곱 개나 주 달아  놨어. 돈도 몇 닢 되지도 안하는 거 주 달아 놨는데 이거 달아 놓고서  이라는데, 어째 세상 것 조금 생각하고 하다 보면은 얼굴이 새카맣게, 돼  버려요. 면경 보면 얼굴이 새까매. 그라고 또 어째 참 주님하고 접선이 돼서  기도를 하고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있고, '이때는 참 주님이 같이 계신다' 뭐  기쁘고 즐겁고 전부 소망이고 소망 아닌 거 하나도 고 절망 하나도 없으니까,  전체가 소망이요 희망이요 이러니까 기쁠거 아니겠습니까? 그때는 보면 얼굴이  환해져.

 그게. 이게, 이거나 속에 우리 이성 변화가, 이성 말이지. 이성 변화나 이성  변화나 그 모든 온갖 속성 신화나 다 그렇게 될 터이니까 그리 되면 잠깐 뭐 안  되겠습니까? 이렇지, 내 몸 밖에서 그렇지, 내 몸 안에서 역사하시지, 또 뭐  간간접으로 역사하시지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다 사람인데 어찌 바울 같은 사람은 그렇게 사랑이 많을까? 바울도 독종이오.

바울도 독종이라. 그 스데반 죽인 거 보이소. 그 얼마나 부랑자이며 얼마나  혈기쟁이며 그런 사람입니까? 아마 사도 바울은 혈기의 사람 같애. 우리같이  오기도 성질도 급하고 그런 사람이라. 그래도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 가지고  그래 놓으니까 지중해에서 그렇게 곤란당할 때에, 언제 다른 사람은 그런데  자기가 또 봉사할 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봉사할 힘이 있어야 하지? 능력이  오니까 봉사했다 말이오. 자기 속에 역사 하지 안했습니까? 자기 속에  역사했습니다. 그 하필 그 독사가 뭐 하러 왔어, 또? 손가락은 뭐하러 물었오?  그게 전부 다 그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라.

 이래 가지고 전체가 다 하늘에서, '하늘 보고를 연다.' 하늘 보배 보고를  여는데 눈에 보입니까? 이래 가지고. 전부가 당신의 그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서 이렇게 잘되도록 이래 하니까 누가 방해를 하겠습니까? 이러니  순풍으로 갈 수밖에 더 있습니까?  이러니까, 내가 그 명령대로 시키는 대로 당신 한 분으로 전부 삼고 당신에게  피동되는 것만이 나 할 일로 보니까. 피동될 때에 피동된 그 행위 자체가  보배를 만드는 것도 있고 피동된 자체는 따로 있는뎨 엉뚱하게 저 밖에서부터,  밖에서 짜여 들어온다 말이지요. 또 하늘에서 보고를 열어서 하늘에서 내려  주지, 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전부를 다 움직여 당신이 이와 같이 지금 하고  있으니까,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당신의 능력이 나 보고서 좋아서 만물을 다  복종해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어찌 되겠습니까 뭐,? 이러니 안 될 수가 없어.

 이러니까, 우리가 요 두 가지만의 사람이 되어지는 이것이 참 문제입니다.

그럴 때는 벌써 우리 평강이 다 오고 그렇습니다. 그런뎨,  그러는 거는 그저 세 가지라. 요거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의  감화, 성신의 감화도 한번 소멸 안 하면, 성신의 감화대로 한번 하면 또 그렇고  한 번 하면 또 그렇고, 요번에 ○○목사님 설교할 때에 성시의 감화를, 뭐  모세의 부모네든지 하는 그것이, 그렇게 자기네들이 그렇게 하니까 뜻밖에, 뭐  할라고 또 공주가 목욕하러 또 뭐 하러 나왔겠오, 나오기를? 뭣 때문에 멀거이  또 나온 거라, 나오기를? 나오는데 하필 또 그 상자가 어찌 걸렸어? 걸렸으면  '그거 이스라엘인들이 저거 했는갑다. 저거 잡아 죽여 버리라' 이랄 건데 또  그거 뭣 때문에 그것을 데려다가 그랬겠습니까? 또 저거 생모를 유모로 어찌  정해? 하나님이 전체를 당신이 주권적으로 섭리해 가지고서 자래 하신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 전부 그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망한 것을 보면은. 창세기부터 망하는 것은 전부하나님  잊어버린 데서 다 망했어요. 하나님, 하나님은 자기와 함께 계시는테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깜빡 잊어 버린 데서 죄도 짓고 잊어 버린데서 망령도  부리고 자멸하는 일도 했지, 하나님이 딱 계셔서 하나님이 사람만치라도  자기에게 의지할 만한 것이 못 되어진다고 생각하고 사람 만치도 눈을 괄시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사람만치라도 그 안면을 괄시 한다고서.

 사람만치만 대우해도 외로울 때에, 외로울 때에 동무도 됐고 또 무서운 시험에  들 때 시험에서 건져 주시기도 하고, 이렇게 하나님 하나님 안 보이고 잊어  버렸을 때에 다 실패했고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으로 이래서 거게 충격을  받아서,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 충격을 받아서 제 자유가 거게 박탈이 되고 제  마음대로 못 하고 그분에게 충격으로 말미암아 되어 지는 무슨 행동이든지 한  거는 전부 영생이오. 이러니까 이거 두 가지로 되면은 그 사람이 행복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게 보니까 제자들이 지금 뭐 놀래서, 예수님 오는 것을 보고서  유령이라 이랬으니까. 그 사람들이 얼마나 놀래서 지금 자기 심령 안에도 대  불안과 고통이 가득 찼고, 자기 또 몸 밖에는 뭐 오만 풍랑이 일어나고 하니까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 뭐 학교서, 그때 뭐 학교 갈라 하면 학교서 배운  지식, 부모에게 배운 지식, 또 자기네 경험 체험, 선입적 관념, 자기네들에게  있는 지식 전부, 자기에게 있는 성질 전부, 또 자기 밖에 있는 바다 전부, 자기  안의 것 전부, 자기 밖의 것 전부 그 전부가 제자들에게 준 거 뭐입니까? 준  거는 고통 외에는 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통외에 준 거 뭐 있습니까?  배부리면서 오래 동안 배운 그 수많은 어부의 지식이 그들에게 뭐 두려움만  줬지 유익된 거는 하나도 못 줬습니다. 유익된 거 하나라도 줬습니까, 어데?  이랬는데 그분들의 고민과 고통을 뭘로 해결할 수 있을까? 단지 해결 한 것은  이걸로만 해결됐습니다. '내로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니까 그 제자들  심령속에 주관적 고통은 다 해결 돼 버렸습니다. 주관적 고통은 다 없어져  버렸어. 다 평안 안 했습니까? 평안한 걸 뭘 보고 평안했는가? 물 위로 오라  하니까 떠뿍 뛰어내렸으니까, 그 사람들 속에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지  두려움이 있으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관적 평안이 왔습니다.

 우리가 경험해도 그래요. 어걱움이 있을 때에, 사람이 흑암이, 암흑이 안 닥칠  때 없습니다. 반드시 암흑이 닥치고 난 다음에는 광명이 옵니다. 여러 번 겪어  본 사람은 처음에는 저도 호독호독 뛰고 뭐 굴렀어. 이제는 주님이 그래 하는  데 안 놀립니다. 이제 주님이 거게 대해서는 날 못 놀려요. 못 놀리고 안  하는게 아니라 뭣이 심령이 캄캄하이 암흑이 오면은 처음에는 영 죽을 지경이고  뭐, 그만 죽을 지경이라. 다른 사람은 보니까 학생도 믿음이 있고 모두 다  위로가 있고 평강이 있고 다 그게 있는 데 내게는 없어. 죽을 지경이라. 죽을  지경이라 놀랬지마는 지금은 이제 '아, 암흑이 오면 광명이 온다.' 이걸 경험  많이 했기 때문에 '이럴 때는 암말도 안 하고 참고 견디고 있자.' 암혹이 온  것만치 그 다음에는 반드시 광명이 옵니다. 반드시 좋은 게 와요.

 그런데, 그렇게 어려움이 있을 때에 우리가 해결하는 것은 그저 무조건 성경  읽어야 돼요. 그만 뭐 돈이 부도가 났든지, 제가 무슨 재를 저질러서 사형이,  사형 선고가 났든지 어쨌든지 그라면 그거 가지고서 사람 붙들고 해결 지을라고  제가 돌아다니면 저는, 그게 해결, 사람 붙들거나 뭐 이런 거 저런 거 해  가지고 해결 지울라고 하는 그것이, 그것이 누구 지식입니까? 인간 지식  아니오? 인간 지식 그거는 여게서 보니까 자꾸 놀래게만 만들었지 하나도,  도움은 한 내끼도 없었습니다. 그거 지식 가지고 돌아다녀도 안 돼요.

사람하고만 자꾸 그래 돌아다니거든.

 그럴 때에 성경이 옆에 있지마는 성경 보면 된다는 그것을 우리가 상식적으로  자꾸 이래 아는 사람도 보기가 어려운데 그거 모르는 사람이야 성경봅니까? 그  사람은 그 암흑이 제가 장난칠 대로 장난치고 손해 볼 대로 손해보고 그래  지나가 버리지 암흑을 휘뜩 뒤비트려서 자기가 크게 이용하는 그런 일은 못  한다 말이오. 그래 우리는 성경 지식을 아는 사람은 될 수 있어요.

 이러니까, 그럴 때는 성경.이 옆에 있어도, '성경만 읽으면 되는데' 이래도  마귀란 놈이 자꾸 '누구를 만나아 된다, 누구한테 얘기해야 된다, 이거는 뭐  어떻게 돈을 써야 된다, 이거는 뭐 어째야 된다' 이놈이 자꾸 연상적으로 들이  이걸 들이 미니까 이것을 물리치지를 못한다 말이오. 물리치지를 못하고,  성경이 있지마는 '성경 지식으로는 그럴 때는 성경 보라 했는데 성경 봐야  주관적 평안이, 성경 봐야 평안이 온다 했는데 성경 읽어야 되는데' '성경  읽어야 된다 했는데' 말하면서도 거게 있는 성경을 못 편다 말이오. 못 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성경을 못 폄니다. 또 그렇게 말하고 성경을 펴도 또  성경이 안 읽어집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참 주셔야 돼요. 미리부터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펑소에. '나에게 암혹이 왔을 때에 성경 읽을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주시옵소서.' 많이 평소에 기도 해 놔야 됩니다.

 성경만 읽으면 해결이 돼요. 자꾸 성경 읽고, 또 이런 사경회도 가서, 뭐 벌로  사경회 가면 안 되지마는서도 참 진리를 가르치는 사경회라면 사경회에 가서 또  하나님 말씀도 듣고 성경도 읽고 자꾸 그라다 보니까 자기에게 있는 당한 그런  모든 일은 피해서 기피하는 사람 모양으로 그 일은 먼데 있고 먼데 있고 자기는  그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어쩌든지 주관적 평안 옵니다. 주관적 평안 와요. 성경  자꾸 읽고 하나님의 말씀 듣고 그라면 성경 안에 내재적 영감이 있어 가지고서  성경 읽으면 성신의 감화는 따라오는 거는 필연한 것입니다. 성신 감화 오고  성경 읽으면 그만 주관적 평안은 왔으니까 해결이 됐습니다.

 그 주관적 평안의 해결이 됐지마는서도 실상 자기 몸 밖에 있는 환난은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환난 그대로, 그대로 환난 있지마는서도 이 제자들은 주님의  음성 듣고 나니까 뭐 풍랑이 일거나 말거나, 풍랑 이는 데 뛰어, 물 위에 뛰어  나선 사람도 있었으니까 뭐 다 같은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면 그 사람들의  심령에 얼마나 평강이 있고 담력이 생겨지고, 뭐 두려움이라 하는 것은 벌써  멸시를 당한 걸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돼지면, 우리를 잘못하게 해  가지고서 모든 풍랑을 일어나게 한 그 조장도 그놈이 했고, 그놈이 했고, 그래  놓고 난 다음에 우리를 위협을 주고 협박을 주면서 '너 그러면 지금 집이  차압을 당한다, 감옥에 들어간다.' 협박 주는것도 그놈 그놈이 병 주고 약  줍니다. 그래놓고 또 협박을 줍니다.

 그라는데 그만 그놈을 이기는 복수의 유일한 복수법은 그거라. 자꾸 성경  읽어요. 성경 읽으면은 내 심령에 마귀 역사가 왔다가는 배가 고프고 바시서 못  견디니까, 그놈은 어두운 놈인데 왔다 보니까 바시서 못 견디니까 자꾸 피해서.

그저 기회를 봐서 들어갈라 하니까 들어가도 또 성경 읽지, 이러니까 들어을  수가 없어. 자꾸 이라니까 마귀란 놈이 왔다가 그만 '아이구' 들어가다가 그만  팔을 하나 빼 버렸어. 마귀 팔이 하나 뚝 떨어져 버렸어. 이래 놓으니까  '아이구야. 들어갔다가 큰일나겠다.' 그래도 이놈이 고집이 있어 놔서 또  들어갈라고 외팔이로 또 들어 갔다가 한 쪽 팔 또 끊겼다 말이오. 이러니까  몸뚱이만 안 있어요? 이래 가지고도 이놈이 안 물러 갑니다. 안 물러 가고 또  들어와. 들어왔다가는 대가리도 날아가 버리고 몸뚱이도 날아가 버리고 이래  놓으니까 나중에 그놈이, 옛 사람 그놈이 죽어서 넘어가. 죽어도 그놈이 또  부활해요. 죽어도 또 살아 난다 그말이오. 그만 죽어서 그만 달아나 버려.

 그라고, 그라다가 보니까 어찌 됩니까? 몸 밖에 있는 환난은 어떻게 하면  물러가는가? 몸 밖에 있는 그 풍랑 그런 거는 어쨌습니까? 예수님이 오시니  물러가지 안했어요? 예수님이 그만 배 안에 들어오시니까 바람도 잔잔해지고 다  되지 안했어요?  이렇게 말씀을 자꾸 이라다 보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면은 그 환난 다 물러가  버립니다. 주님이 그것 때문에 하시는 거니까 그것 때문에 주님이 하시는  것이니까, 자꾸 이래 성경읽고 이라다 보니까 나중에 주님이 눈에 보이고, 자꾸  그러니, 이제 눈에 보이니까, 뭐 사람 어린 아이 눈만 봐도 못 할 일이라도  주님 눈이야 소경이기 때문에 얼마나 했지마는서도 인제 아이 눈보다도 더 하지  경관 눈보다도 더 하지 이래서 그분의 눈에 거슬리는 거 하지 못하게 되지, 또  그분의 안면으로서 그분이 좋아하는 것이면 죽는 거 사는 거 생각지 안하고 또  하게 되지, 옆에 계시는 그분으로 인해서 자기가 거게 피동되고 거게 충격되고  그로 인한 그 영향으로 인해서 자기의 행위가 변해지고 자기 벌써 심령이  변해지고 자기의 모든 마음과 이 고기덩어리가 변해지고 피부가 변해지고 뭐  이렇게 될 때에는, 벋써 그렇게 됐으면 주님 오시지 안했어요? 그게 주님  오시는 거라. 주님 오셔 가지고 주님하고 자기하고, 주님이 내 곁에 있으니  처음에 있는 그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주님 한 분이면 다이다 하는 그  주님 왔다 말이오. '그 주님 오고 주님에게 피동되면 된다' 이 사람 되고  나니까 풍랑 잔잔했어.

 우리가 이렇게 돼 지면, 이렇게 되면 우리 사람 그게 성화입니다. 그 게  변화된 것입니다. 그 사람 변화되고 나니까 독사 같은 사람이 오는데 그 사람이  이상하게도 변해집니다. 그것이 자연 계시 중에. 자연 계시 중에 제일 큰 것이  뭐이냐 하면은 인간의 마음의 구조입니다. 마음의 구조. 마음이 요래 되고 조래  되는 것, 주님하고 만나고 나니까 그 사람의 마음들이 전부 변했어. 철통같이  짜 놓고 '내일은 내가 그거는 꼭 그거는 봐 주지' 했는데 그 사람에게 엉뚱한  일이 생겨 가지고서 생각도 못 해보게 된다 말이오. 또 그 사람이 원수로 딱  맺고 있는데가 보니까 의외에도 그 사람이 나를 웅호하지 안하면 안 돼서  옹호할라고 기다리고 있다 그거요. 당신이 하면 안 되는 게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이렇게 벌써 주님을 자기가 영접해서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것을 인정할 수 있고, 주님이 함께 계시니 그분의 능력으로 어려운 것도 다  없어져 버렸고. 그분의 주권으로 모든 가난도 없어겼고, 그분의 눈초리로  그분에게 거슬리는 거 다 없어져 버렸고, 이런 사람으로 주님과 자기와 같이  있는 이 사람만 되면은 그만 당신이 그 몸 밖의 것은 다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이 기독교니까, 기독교는 전부 기적의 종교요. 전부 이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만 애굽에서 광야로 나온 것이 해방돼 나온 것이 기적이 아니고 오늘도  전부 기적이오. 전부 기적인데 이것을 믿음을 가지고 살아 보지 안한 사람은  기적이라고 느껴지지 안하고 우연이라 하니까 우연이라 하니까 귀신이 많이  생기고 도둑놈이 많이 생깁니다. 우연이라 하니까 이 놈이 와 가지고 내가 했다  제가 했다 이라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하신 기적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됐다  하면 아무 도적도 안 와요. 방해할 자 아무도 안 와요. 와도, 와도 그것은 내가  미혹받지 안하고 오히려 그럼으로써 더 단단히 굳게서 가지고서 단속하니까  그것도 양식으로 먹지 뭐, 양식으로 먹지. 이용하지 손해갈 거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들은 우리 밖의 모든 환난이 일어나는 것이 그대로  일어났기 때문에 일어났고, 주님과 주님에게 들은 이 두 가지를 잊어 버려서  나왔고, 잊어 버려서 이미 생겨졌으면, 잊어 버려서 이미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그렇든지 뭐 실수해 그렇든지 어쩌든지 무슨 큰 일이 일어났거든, 또  분위기가. 우리 믿는 사람은 다 안 보입니까? 이상하게도 잠깐 보면은 모든  사람이 전부 나를 옹호해서 분위기가 똑 봄동산 같습니다. 봄동산 같지 안해요?  교인들 안 그래요? 교인들 보면 자기 마음도 그렇지만 교인들도 다 그래요.

봄동산같이 쫙 이렇게 옹호하고 협조하고 봄 동산 한가지라. 이라다가 '됐다'  이랬는데, 갑자기 이거 참 아주 겨울 아주 눈보라, 눈비 뿌릴 때, 그만 당장에  환경에 있는 사람이 뭐 영 고만 맹수같이 이래 가지고서 이 사람이 봐도  눈초리도 저렇고 그 얼굴도 그렇고 전부 인정이 안 붙고 쓸쓸하이, 그 인간  마음. 이랬다가 이랬다가 이랬다 이랬다 하는 그게 주님의 주권이라는 거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내게 모든 내가 잘못해서라도 어떤 어려움이 오든지  오거들랑 그저 먼저 심령 평안부터 해야 됩니다. 심령 평안은 해결짓지 안하고  밖의 껍데기 외식으로 껍데기 그걸 해결지을라 하는자는 저는 자꾸 골탕만 집어  먹지. 그러기에. 마귀 방법은 쓸수록이 소용없지 안해요? 그 제자들이 하나님의  성경 지식 외에 있는 지식은 쓸수록이 그들에게 손해갔지 유익된게 뭐 하나나  있습니까?  이러니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읽으면 진리와 영감이 오면 우리 심령  평안이 됩니다. 주관 평안이 돼요. 주관 평안이 되고 주관 해결이 됩니다.

해결이 돼도 몸 밖의 그게 해결이 안 됐지요. 그 해결은 언제 되느냐? 그저  내가 뭐 변화되어 해결되는 그런 거 모든 것보다도 그만 주님이 내 곁에 서셔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이걸 자기 눈으로 보고 주님 때문에 주님 때문에  두려움도 물러가고, 주님 때문에 담대하기도 하고 주님 때문에 비겁한 자도  되고, 주님 때문에 하기 싫은 거 하는 자도 되고 주님 때문에 하기 싫은 걸  하는 자 되고 하고 싶은 거는 안 하는 자도 되고 '주님 때문에 원하는 거  하지도 못하는 자도 되고, 주님 때문에 내 모든 언행 심사가 그로 인해서  제재를 받고 거게 피동받을 만치 주님과 동행만 되면, 같이만 와서 들어오면  배는. 그만 바람 없어지고 잔잔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어 보면 이거 뭐  매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참 생명의 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러니까. 요대로  사는 사람들은 다 전부가 이적에서 삽니다. 이 방편 외에, 주님이 가진 이 방편  외에 다른 방편 가지고 해결이 안 돼요. 그 방편 가지고 할라 하는 사람은 골  빠지고 다 그 환난으로 인해 녹아질 거 다 녹아지고 절단날 거 다 절단나고, 다  죽었기 때문에 그거야 뭐 볼일 다 봤지요. 그러니까 마귀도 다 볼 일 다 보고  그걸 살려둬 가지고서 잘 이용하는 데에는 말씀대로 하는 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말이오.

 그래서 이제 두 번 째로 요것을 오늘 오후에 우리가 배웠습니다. 요거 배워  가지고서 놓지 말고 잘 써 먹도록 합시다.

 녜 다 같이 한번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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