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생 교통사고


선지자선교회 1983년 11월 28일 월새

 

본문 :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주라는 말씀은 주님 자신이 믿음으로 된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그  전체가 믿음입니다. 당신 자체가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인고 하니 아버지를  언정하는, 전적 인정하는 그 믿음이요 또 아버지에게 전적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털끝 만치도 인정치 않고 의심하는 일 없었고 또 털끝 만치도 순종 아닌 자기  단독이 행한 일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그러하고, 또 우리에게 구조가  됐는데 우리에게 구주된 것도 믿음으로 됐고 또 우리가 믿음으로만 그분이 우리  구주 되지 믿음이 아니면 그분은 우리 구주가 못 됩니다.

 주님이 이렇게 십자가의 대속을 하셨지마는 기본구원에 대한 구원은 하나님이  입히시기 때문에 그거는 본인이 나기 전에 입었고 알기 전에 입었고 다  입히셨지마는, 이제 건설구원이 하늘의 영광이나 존귀나 또 이 기본구원을 누릴  수 있는 건데 -여러분들이 누린다는 말 잘 아는지 몰라도. 그 사람은 회사를  경영해서 회사를 일으키느라고 아주 그 골이 빠지게 회사만 일으켜 놓고 그만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누리는 것은 자기가 일으켜  놓은 그 회사에, 회사를 잘 이용해서 그 회사로 인해서 자기가 평안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고 영광을 누리고 존귀를 누리고 권세를 누리고 편리를 누리고 한  그런 것을 가리켜서 누린다 말합니다. 그 사람은 공부하느라고 고생을 심히 많이  하고 참 외로움도 많이 당했지마는 고생해서 겨우 박사 학위 얻어 와 가지고  그만 오다가 죽어 버렸다. 와 가지고서 바로 그만 가족 만나자마자 죽어 버렸다  그리 되면 그분은 공부해도 공부하느라고 고생만 했지 누리지는 참 하나도  못했다 원통하다 그렇게들 사람들 말합니다. 누린다는 말은 그런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 자체가 믿음으로 되신 믿음 뭉텅이요 믿음 덩어리입니다. 또,  우리에게 이 구원을 주셨는데 구원을 주실 때에도 그 믿음 가지고 우리에게  줬습니다. 믿음으로 우리에게 줬지 믿음 아니면 주지 못합니다. 전체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 구원도 다 믿음으로 된 구원입니다. 또 우리가 이거  주시는 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또 믿음으로만 받은 이 구원을 누리는 것도 꼭 믿음으로만 누리지  다른 거 가지고는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주요' 말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된 주님이 믿음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고, 또 믿음으로 주신 그  구원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야 되지 우리가 믿음을 가지지 안해도 안 됩니다.

또 받은 구원이라 할지라도 그 구원을 누리는 것은 또 믿음으로만 누립니다.

이거 외에는 딴 걸로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체가  믿음으로만 됩니다.

 믿음으로만 된다는 그 믿음은 무슨 믿음인가? 우리가 잘 아는데도 새김질 안  하면 또 엉뚱이같이 딴 데로 탈선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전부가  믿음인데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그 믿음은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믿사옵니다' 하는 그 믿음, 자기를 부인하는 '믿사옵나이다' 하는 그 믿음,  그것이라고 그떻게 단순히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도 믿음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일부분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첫째가 지식이 들어 있습니다. 그  믿음의 요소를 분석한다고 하면은 제일 처음이 지식입니다. 아는 것이요, 아는  것. 모르면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는거요. 또 아는 것도 그것도 자기가  믿음으로 알아야 됩니다. 믿음으로 알아야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우리 들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자기가  먼저 '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하는 그 성경 말씀을 자기가 알고 난 다음에  성경 말씀을 믿어야 됩니다.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지식이라 말은  하나님이 이렇다 하실 때에 '아 그렇습니까' 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인식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지식하는 것,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가는 그 지식이 믿음의  지식입니다. 그거는 누구 인간 지식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자기 생각이나  연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다 하신 그대로 나도  확신을 가지는 그것이 믿음의 지식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알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안 그대로 인식을 해서 확실히 확인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확인  확실히 인정하고, 또 그 다음에는 확실히 믿고,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또 그대로  실행을 할 때에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전부가 다 어떤 것이 믿음인고 하니 순종이 믿음입니다.

순종은, 그래 순종을 마음의 순종과 몸의 순종, 순종 둘이 믿음이라 그렇게  말했는데,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신 이 말씀을 자기 마음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성경에 말했지마는 이것은 다 내가 인정할 수 없다 그건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사람들이 어떤 구절은 볼 때에  이런 구절이야 믿을 수가 있나 이 보얀 거짓말 어떻게 이 일이 되겠노 죽은  자가-어떻게 살아나겠노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믿기 어려운 그런 것도 자기가 아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하나님 말씀은 획 하나도 가감도 틀림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짓된 그런,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래서 성경에 있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지 자기가 마음으로 인정합니다.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이 이렇다 하시는 거기에 자기 마음이 따라간다 그 말이요, 자기 마음이.

하나님이 이렇다 하지마는 자기 마음이 안 그렇습니다. 하면 따라가지 안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에 이렇다 말씀 하신 그대로 내가 내 마음이  따라가서 '예, 그렇습니까? 이제 그대로 인정 하겠습니다.' 하고서 그것이,  마음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가리켜서 마음의 믿음이라 그렇게 말 합니다.

그러면, 마음으로 인정한 믿음인데, 이제는 몸으로 순종하는 믿음이라 하는 그  말씀은 무슨 말인고 하니, 마음으로 인정한 그것을 자기 몸이 친히 하나님에게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면은 그 몸이 하고 하지 말라 하면은 그 몸이  안하고 그러면 그몸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인정하고 확실히  확인하고 확신하는 그 순종이, 마음의 순종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또 몸의  순종이 있어야 됩니다. 마음의 순종이 있어도 몸으로 시키는 대로 순종치 안하면  안 됩니다. 두 가지 순종이 합해서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온전한 믿음 이 믿음 가지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할 때에 하나님의 법칙을 보고 말하지마는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지금 내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일하시는 그대로 나는 따라서 내가 말하고  있다, 내가 말한 것은 내 말이 아니고 아버지의 말이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말씀한 것은 당신은 이렇다 했는데 당신이  자체까지도 아버지가 이러니까, 아버지가 세모잡이니까 또 아버지 세모잡이  따라서 세모잡이 됐습니다. 예를 들면 비유컨데 아버지가 동글 동글하니까  당신도 아버지 따라서 동글 동글해졌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꼭 닮으신 분이요 하나님 형상을 꼭 따라서 하나님 형상과 꼭  같은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체가 믿음으로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자체가 되시고 또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때에도  믿음으로, 이 두 가지 순종으로 주시고, 한 믿음인데 우리가 또 그 구원을 받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받을 때에도 우리가 믿음으로 받지 믿음 외에는 받을 수  없고 믿음으로 받는다 그 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참되다 인정하고  확신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하나님을 따르는 마음과 하나님을 따르는  행동으로서만 우리의 구원을 받을 수가 있지 그렇지 않고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따라서 받을라고 하면 거기에 좀 애로점이 있습니다. 무슨 애로점이  있느냐? 그 따라 받을라고 했는데 이 세상은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이 세상이  되어 가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임으로 그 구원을  받을라고 하니까? 하나님을 따라 움직일라고 하니까 세상은 저따라 움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라 하는 우리에게 세상은 저를 따라서  움직이라고 합니다. 그럴때에 저를 따라서 움직이지 안하고 하나님 따라  움직일라고 하면은 저를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온갖 핍박을 하고  박해를 합니다.

 그러면, 가정에서도 자기 남편이 하나님 따라서 움직일라 하면은 아내 따라서  움직이지 안해준다고 핍박도 있을 수 있고, 또 아내가 하나님 따라 움직일라고  하면 남편이 저따라 움직이지 안하고 하나님 따라 움직인다고서 또 핍박하는  수도 있고 직장에서도 이런 투쟁이 있고 사회에서도 있고 모든 사업에서도 있고  온 세상에 대해서는 마찰이 됩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 움직일라 하니까 세상의 적이 되고  세상에는 대립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 왜 졸아. 졸지마. 졸면 남편이 와서 존다고 나는 그래 생각해. 저녁에  일찍 자. 뭐한다고 자꾸 앉아서 자꾸 소곤거리고 이야기하고, ○목사님  이야기하거든 야단치고 일찍 자라 해요. 저녁먹고 밥 삭을 만침 되거들랑 일찍  자라 해.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이래서 아주 절제하고 조심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벙 못 나수고 병 나았지마는, 병은 다 나았지마는 또 새로 병든다. 정신  차려).

 이렇게 세상에는 전부 다 하나님 반대하는 세상이요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이요 인간 저거 마음대로 사는 것만 모아 가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때가  악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을 따라 움직일라 하면은 가정에서도 마찰이 있고 사회에서도  마찰이 있고 무슨 회의하는 데에도 마찰이 있고 관서에도 마찰이 있고 장사에도  마찰이 있고 전부가 마찰이 다 있습니다. 왜? 세상은 하나님을 거슬려서 지옥을  향해서 타락해 내려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늘나라를 향해서 하나님께  순종으로 올라가니까 올라가는 것하고 내려가는 것하고는 마찰이 있을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내려가는 물에 올라가는 것은 마찰있다 그거요 물이 내려가고 있는데  산 고기가 위로 올라가면은 자연히 마찰이 있어. 그러기 때문에. 이런 데에서는  그것이 잘 안 보이지마는 시골 그 냇물이라 하는, 내(川)라 하는 그런 개울에는  물이 그저 한 요만침 한 자 정도 있고 요런데 큰 고기가 올라옵니다. 올라오면  사람들이 그 고기를 발견해 가지고서 잡을라고 뒤를 쫓습니다. 그 뭐 어디 숨을  데도 없고-소(소)니까 -거기 올라가면 잡힘니다. 쫓아 보면 이놈이 물로  거슬려서 도망을 치고 올라가면은 그 올라가는 데 물살이 갈라집니다. '아, 그  고기 크더라 물살이 갈라지더라.' 이 마찰이 되니까. 올라가니까, 이 물이  내려오는데 올라가니까 물살이 거슬릴 것 아닙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그 생명이 있기 때문에 위로올라간다 말이요. 생명이 없는  것은 뭐 부두렁 부두렁 떠내려오지. 생명 없는 것은 세상이 이렇게 타락해  내려가니까 타락해 따라 내려가지마는 생명을 가진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들은-생명이 연결인데-연결된 사람들은 세상이 부패해지는 대로 같이 부패해  지지 아니하고, 세상이 하나님 반대하는 대로 같이 반대하지 아니하고 세상이  진리를 어기는 데에 따라서 어기지 안하고 하나님의 진리대로 이렇게 바로  살라고 하니까 마찰이 있다 그 말이요. 그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고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런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라 하면 이런  고난이 있는데 이런 고난이 있는 그거는 필연한 일이지 없을 수가 없다 그  말이요. 마귀하고 어떻게 하나님하고 지금 서로 동행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악인과 죄인이 어떻게 동행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과 어떻게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마찰이 있는 것은  필연한 마찰이 있는데 그 마찰 있는 것은 내가 벌써 승리할 그 기미를 보이는  것입니다. 마찰 있는 것은 내가 바로 가는 증거요 마찰이 없으면 바로 가는  증거가 아닙니다. 마찰이 있는 것은 바로 가는 증거이니까 얼마 안 가서 이제  마찰되는 것은 다 뒤로 다 떨어지고 우리는 승리 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참으시더니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 그 말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마는 인자로 오셨을 때에는 그 성자의 지위를 가지고 왔는데 그  지위는 성부의 지위와 그 다음 지위 인데,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  말은 하나님 다음으로,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한 자리에 앉았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한 자리에 앉은 것은 예수님의 신성이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한 자리에 앉은 것을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  이시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내나 동등이요 아버지시요 그분이 그분이기 때문에  올라 갈 것이 없지마는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예수님의 인성이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게 됐다 그 말은  자존자이신 그 하나님 다음 위치를 가지고 승리하고 다음 위치를 가지고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드신 그것을 다음 위치를 가지고 하나님이  만드신 그것을 이제 영원히 다스리고 영원히 은혜를 베풀어서 살게 하고  영생하게 하고 행복되게 하게 하는 하나님 다음의 위치, 하나님 다음의 권위,  하나님 다음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역사를, 시은의 역사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66권 도리는 정확 무오한  말씀이라고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러면, 주님의 말씀이면 다 참되다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인정 되든지 안  되든지 우리가 틀려서 인정 안 되는 것이지 하나님 말씀이 틀려서 인정 안 되는  것은 아니니까 모든 말씀을 확실히 인정해야 되고 확신해야 됩니다. 확신하고  말씀대로 북북 나갑니다. 나아가면은 우리가 생각지 못할 별일들이 생겨지면  생겼거나 말았거나 나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순종해 나 가는 것,  마음으로 순종해서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면 전부 다 인정, 또 그다음에는 자기  인정한 것은 자기 몸으로 순종 이거뭐 순종으로만 북북 나아갑니다. 순종으로  나가다 보면은 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오만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제도 주일학교에서 그만 저게 신평 가 가지고서 그 사고가 나서 아이  하나가 직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도 우리가 할 일을 뭐, 그러면 우리가  전도한 것이 순종 아니냐 전도한 것이 순종으로 전도했고, 또 거기에 가서  데려다 준다는 것 그것도 우리는 스스로 다 데려다 주기까지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그 자리 다 가 가지고서 버스 내려 가지고 그랬으니까 아무리  거기 있는 아이라도 거기에서 버스 내리지 안할지라도 길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데 그 술취한 사람이 자기 차를 부리지도 안할 비번으로 되어 있는, 그날은  운전하지 안하고 쉬는 날인데 쉬는 날 술먹고 달리다가 그리한 그거, 그 사람을  술을 못 먹고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이며 또 비번에 된 그 사람을 너는  비번이니까 오늘 운전하지 말라 그렇게 어떻게 할 것이며, 그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말이요. 우리가 할 수가 없는 일이라 말이요. 또 거기 가서 있는 사람이,  그 중간에 오다가, 먼데서, 그 옆에 교회 간다 하지마는 옆에 교회 간다고 차를  안 건너고 가는 데가 있습니까 차 안 건 너고 가는 데도 있지마는 차 건너고  가는 데도 있으니까 차 건너는 것은 그 자리에서 그랬으니까 뭐 멀고 그래서,  먼데 오느라고 그런 것도 아니라 그 말이요. 먼데 간다고, 오다가 그랬으면  하지만 그렇지 안하고 또 그 자리 다 가 가지고 저거 집 옆에 있는 거기에서 차  건너다가 그랬으니까 또 그것도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 술 먹지 말게 하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술먹게 하는  것도 할 수 없는 것, 비번 이 나오게 하는 것도 우리가 할 수도 없는 일 또 그  사람이 그만 그 뭐 자기 속에 무슨 지금, 그 붕 뜬 마음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안  보이고 하는 그것도 또, 우리가 만들 수 없는 일이고 중단도 시킬 수 없는  일이라 말이지요. 이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거기에 대해서 마음에 아픈 것은  '아! 우리가 기도하지 안했다' 하는 그것이 마음에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에 대해서 이것 전도에 대한 기도 제목이면, 전도하면  유치반도 중간반도 장년반도 전도를 해야 되고 전도를 할라 하면은 그거는 덕이  있어야 되겠고 또 오고 가는 데에 사고가 없어야 되겠고, 우리, 그러면 사고도  없어야 되고 성령의 감동으로 그 아이들을 깨닫게도 해 줘야 되겠고 또 우리가  열심히 가서 전해야 되겠고 이렇게 다 관계된 것이지마는 아직까지 믿음이  어리니까, 전도 하면 전도에 관련된 모든 기도를 다 해야 되는데 그만 전도  하면은 그 단순히만 생각하고 전도에 대한 그 모든 조건들을 기도하지 안하니까  이것도 조건에 넣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어제 기도 제목을 저 혼자,  일곱 가지에다 기도 제목을 하나, 해석을 붙이는 기도 제목을 하나 더 넣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큰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 제목을 하나 더 넣어 가지고서 그면으로 몰라서 기도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그 뭐 장성한 분들은 다 전도에 대한 기도 제목을 기도할 때에 거기  대해 다 기도할 줄 압니다. 저도 유치반에 대해서 중간반에 대해서 장년반에  대해서 낙심한 그 모든 교인들에게 대해서 또 오고 가는 데 대해서 그 모든 환경  주위에 사회에서 시험이 있어도 이기게 하는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감동되어서  오해하지 안하고 복음에 협조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만 걸 다 기도하고 이래  하지마는 어떤 사람들은 아직까지 거기에 대해서 범위 넓게 기도를 하지 못하는  그런 수도 있을 수 있다 그거요. 그래서, 아무래도 기도에 대해서, 특별히 유치  반에 대한 기도 또 중간반에 대한 기도 또 장년 반에 대한 기도 또 우리 전도에  대한, 전도에 속한 것인데 안 믿는 이방인에 대해서, 기도 또 이 공산주의 되면  안 되니까 국가에 대한 기도 그런 것을 해석을 해서, 여덟째 기도 제목은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안 믿는 이방 또 국가 이 다섯 가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여덟째 기도 제목으로 세워야 되겠다 하는 그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제가 작정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일 할 라고 그런 것인지, 그것도 중대한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지금 의논할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 반사들이 그 차 타는 그런  사고 있으니까, 우리가 그전에는 결의하기를 자기 집까지 데려다가 딱 맡기면서  '이 아이를 데 리고 왔습니다' 부모에게 맡기고 난 다음에 안심을 해라 그라고  난 다음에 어찌 되든지 상관이 없으니까 그래까지 해라 그렇게 우리가 의논도  했지마는 그 일이 실상 그 많은 학생들을 짧은 시가에 하다 보니까 그런 일이 다  될 수 없는 일이라 그거요.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그  학생이 어린 학생이라면 아무래도 그 마을까지는 찻길 없는 데까지는 데려다  주어서 옆에 학생들도 증명이 되고, '요 아이들 좀 요렇게 네가 좀 크니까, 네가  형이 되니까 좀 그 집에까지 데려다 주는 그 일을 해라.' 그게 조직이라 말이요.

그 조직을 해서 반사들도 그런 걸 좀 조직을 해가지고서 여기에서 보내도 그 다  끼리 가지고서 데리고 갈 만한 그런 아이 학생을 그것을 딱 정해서 훈련을  시키고 지도를 시켜 놓으면 그것이 내나 보조 반사 참 보조 반사가 될 것이라  말이요. 또, 학생들에게 자꾸 우리는 말로 해야 돼. 무언은 정금이라 하는  그것은, 내나 나쁜 죄짓는 말하는 사람들은 입을 벌려서 말하지 안하고 딱  함구하고 있는 것이 정금이지마는 우리 입에서는 젖과 꿀이, 인간을 살리는 젖과  꿀이 나오는 입이기 때문에 자꾸 말해야 됩니다. 자꾸 말해야 되요 어떤 사람은,  말이 잦으면 쓸 말이 없다. 말이 잦으면,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다 하지마는  말은 많고 못 쓸 말은 한 마디도 없고 쓸 말만 있는 그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게 참 생명 덩어리요.

 그러기 때문에, 그저 학생들에게 자꾸 말을 많이 해야 돼. 야야 가다가 지금  차가 이럴때에는 봐라 네가 차 뒤로 갈 때에는, 차 뒤로 갈 때에는 또 차 앞에서  오는 차가 있고 차 앞으로 갈 때에는 차 뒤에서 오는 차가 있기 때문에 그  차들은 너 가고 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일단 먼데서 보고서 차가 네가 내려서  중지됐으면 반드시 거기에서 그 횡단도로 법규대로 횡단도로 있는 대로 건너가지  횡단도로 없는 대로 건너가지 말고 횡단도로가 없는 데는 네가 자세히 서서  보고서, 그 천천히 서서 보고 여기에는 넉넉히 건너갈 수가 있다 싶을 때에  그때에 건너가기를 시작해라 너는 여기에서 천천히 건너가도 건너갈 수 있겠다  하는 그럴 때에 그 자리를 건너가되 건너가기는 도망을 쳐서 건너가야지 찻길은  서서히 건너가는 게 아니다. 그러나 네가 뭐 저기 와도 내가 빨리 가면 되겠다  싶을 때에는 건너가지 말아라 어쨌든지 여게는 천천히 걸어가도 건너갈 수  있겠다 그 만침 차가 멀리 올 때에 건너가라 이걸 자꾸 인식을 시켜 거기에 대한  아주 박식을 가져야 되겠다 말이요. 박식이라 말은 널리 아는 것이 박식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널찍히 이런, 범위넓게 그런 지식을 가지도록 자꾸 그 지식을  넣어 주고. 또 거기에 큰 학생들에게 그 동생들을 잘 인도해 가지고 가도록, 그  일 학년이면 이 학년 학생 삼 학년 학생 사오 학년 학생들에게 그들에게 잘  인솔해서 그렇게 하라 이라면 그게 선한 일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그 학생에게 시키면 그 학생이 그 동무를 인솔해 가지고서 그  모든 사고없이 그렇게 하고 보니까 자기 속에 뭐이 기쁨이 나온다 말이요. 그  속에 성령으로 중생된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이지마는 그라고 나면은 자기 기쁨이  나오고 무엇이 평강이 나오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 주실 것같이 자기에게  축복을 해 주실 것같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실 것같이 그렇게 점점 자기에게  확신이 생겨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도록 해야 되겠고. 또 우리  교회에서는 그 반사들이 거기에서, 아내가 이거 반사질 하다가서 나중에 보니까  설교도 듣지 못하고 저 뒤에 앉으니까 어린 아이들이 자꾸 지끼 쌓고 하니까  은혜 받지 못하고 이러니 내가 이래서 안 되겠다 그게서, 아 내가 될 수  있는대로 좀 일찍 가야 되겠고 이러니까 요걸 그러면 좀 안 됐지 만 안 됐지마는  차만 태워 놓고 오자 요렇게 되는 일 많이 있다 이거요. 그래서, 아무래도 이  반사들 앉는 자리를 제일 좋은 자리를 남겨 두고서 그 반사 수대로, 그 수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면 이 또 교인들이 이해를 못 하기 때문에, 이제  일반 교인들은 괜찮을 터인데 조금 잘난 교인 부자된 교인 그 탈이요. 잘난 교인  부자된 교인 유식한 교인 권세있는 교인 그런 교인 들은 '뭐 주일학교 반사들만,  사람도 안 왔는데 떡 가운데 비워 놓고서 우리는 찌꺼러기 모양으로 뒤로 앉혀'  그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말이요.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그걸 의논할 것입니다. 이래서, 일등 자리도 안되겠고  꼰등 자리도 안 되겠고 좋은 자리 어디 일부분을 남겨 가지고서 뒤에 와도  거기에 뛰어 들어오면 자기는 설교 말씀을 다 고요히 들어서 은혜 입을 수  있으니까 그런 자리를 정해 두도록 할까 그런 생각도 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제일 좋은 자리를 줘도 아 그분들은 사정이 그러니까 제일  좋은 자리를 남겨 둬야 넉넉히 충분히 당황하지 안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겠고 또  뒤에 와도 그분들이 은혜를 받아야 이제 되겠으니 그렇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참  좋기는 좋겠는데, 아무리 세상적으로 높아도 그것을, 그런 마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요 그건 상식이 없는 사람이요 신앙이 어린 사람이라  말이요. 이래서, 이제 어린 사람에게도 시험이 안 돼야 되겠고 장성한  사람에게도 시험이 안 되어야 되겠고 이러니까 이거 참 옳게 바르게 해 나가는  일이 아주 힘드는 일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면  그것이 어떤 애로와 마찰이 있어도 상관하지 말고 그대로 밀고 나가야 됩니다.

그래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이십분을 늦추자 이랬는데 이번 이 사건은 늦춤에  관한 사건이지 당김에 관한 사건은 아닙니다. 당김에 관한 사건이 아니라 것다가  늦출수록이 장년 예배 시간은 더 촉박하니까 더 당황하고 더 급하게 되어지지  그게 뭐 넉넉해지지는 안할 터이니까 이 시간을 이거 늦추어서는 안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도 또 거기서 들었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저 믿고 순종하는 것, 인정하고  순종하고, 인정해서 순종하면 여러 가지 애로 마찰이 되어도 분명히 그것이  결과적으로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뿐이지 딴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반사들이 열심히 전도하고 이래 하므로서 일어나는 것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먼저도 말하기를 가까운 데 있는 그 학생들은 가까운 교회로  가도록 그렇게 하고 먼데 있는 교회는 안 가도록 그렇게 하면 좋지 않느냐 그래  가지고서 그 교회들이 단합을 해 가지고 문제가 일어났었습니다. 그 문제가  일어났었는데 그때에 가까운 교회도 가면 좋지마는, 자기네들이 자꾸 가까운  데에 전도를 해라 전도를 하면 우리가 또 있지마는, 우리는 자기에게 믿고서  가까운 교회 있다 하고서 가만 있고 가까운 교회는 또 게을 부리고 이래 가지고  있으면은 그 사람 구원하는 걸 구원하지 못하니까 주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하니까 우리 교회 나온 학생이라도 그 가까운 교회로  인도할 수 있으면 인도하도록 해라 그러나 그 가까운 교회 가는 학생들은 우리  교회로 오라고 그렇게 끌고 그러지 안하겠다 우리 교회는 온 학생들이면 처음에  우리가 전도해 가지고서 우리 교회 나온 학생들인데 우리 교회 나오는 학생들을  그쪽으로 오라고 이러니까 또 이쪽에 반사들은 우리 교회 나왔던 학생이니까  오라 하는 그거는 할 수 있지마는 그렇게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걸  좋아하겠노, 이러니까 왔던 장로하고 목사하고 처음에는 분발해 오더니마는  나중에는 웃으면서 예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이제는 목사님 시키는대로 저도  가서 목사 노릇을 하겠습니다. 주일학교에 대해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아마 그 교회가 지금 부흥됐을 것입니다. 그때 그게 무슨 교회 ○○교회가?  ○○교회인데 그 ○○교회 아마 주일학교가 지금 교회가 부흥됐을 건데?  모르나요? 분명히 부흥됐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가르치니까 가르침을 받아서  옳은 정신과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 교회가 부흥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여러분들 가거들랑 그 학생이 얼마나 되며 장년도 한번 알아 보십시요  반드시 부흥됩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면 부흥이 됩니다. 바른 행동을 하면  부흥이 되요.

 이러니까 거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거기에 있는 교회들이 그 개인  아이들이 그 길을 건너고 달고 하는 그런 것을 꼭 책임지고 그렇게 할 도리가  있습니까? 못 합니다. 하나님이나 할까. 그러니까 거게, 여기 와서 됐으면,  사고가 났으면 하지마는 거기에 가 가지고 됐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교회도 내나  거기에 있는 교회지 뭐 딴 것이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해석을 바로  해서 너무 필요없는 그런 자극을 받아 가지고서 마귀의 유혹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거요. 그러니까, 반사 선생님들도 용감스럽게 일을 해야 됩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도 내가 세숫간에 나가 가지고서 생각하기를 ○○○씨 따님이  요새 죽었는가 살았는가 아무 소식이 없다 이랬는데, 그분이 지금 대학을 다닌다  하는데 대학을 다니니까 그런지 도무지 안 보여서 죽은 사람 같애요. 안 보이요.

그전에는, 그등학교 다닐 때에는 내 눈에 제일 많이 띄인 학생이 ○○○씨  따님인데 요새는 ○○○씨 따님이 없습니다. 살기는 살았습니까? 모르요? 살아  있습니까 죽었습니까? 몰라? 모르냐고? 교회 나와요? 그러면 살아 있기는 살아  있구만. 안 보여. 내 눈에 안 보이는 것은 하나님 앞에도 보이지 안하는 거와  비슷한 것이 됩니다. 그전에는 제일 열심있는 반사라. 뭐 열심있는 반사니까 또  사고율도 많다 그 말이요. 열심히 믿는 반사니까 자연히 반사도 일등하는 동시에  학생들 이래 거석하니까 여게 데려다 주면 저기 못 데려다 주고 자꾸 이런 일이  있다 그 말이요. 그때 그래서 나는 참 큰 기대를 가졌는데 그만 대학이 들어서  그거는 바꿔 버렸어, 대학하고 그때에 나도 기뻐했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이랬는데 그것을 바꿔 버렸어. 대학하고 바꿨는데 대학이 정말로 그거하고  바꿀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지, 그의 장래에 대해서 그만침 행복을 줄 것인지,  나는 절대 안된다 나는 그래 생각합니다. 그런 어리석은 일들을 하지 마십시오.

 그 지금 아마 생각하니까 그럴 거라. 아이 참 내가 대학에 공부하러 와서 보고  보니까 그때는 철이 없어서 뭐 미아가 생기면 뒤에 가서 막 당황해서 야단을  지기고 이래가지고 그래도 또 자꾸 전도하고 이랬는데 그때는 목사님 설교에  체면술에 걸렸다 목사님 설교에 그만 그렇게 유혹을 받아 가지고 그리 됐다 내가  그때는 철이 없었다 어리석었다, 철이 없는지! 죽을 때가 와야지.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봐야 알지. 그 생각이 철이 없는지, 지금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  나니까 그렇게 하나님이 멀어지고 진리가 멀어지고 심판도 멀어지고 이 모든  것이 멀어져서 그 마음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라.' 자기의 소망과 자기의 사모가 주님의 재림을 만난,  주님 만날 그날에 가 있지 안하고 지금 대학 공부에 가 있기 때문에 그와같이 된  것 아닌가 그 바꿔서 그런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 판단이  잘못됐는지는 인간이기 때문에 모르지마는 그래도 내 판단은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데에 다 빠지지 마십시요. ○○○집사님이 교회 나온다고  증거하는데 내가 요 말하더라는 요걸 녹음이 됐으면 요걸 그 ○○○집사님에게도  보여 주고 또 그 본인에게도 들려 주고 교회 나오지 안하는 아버지에게는 들려  주면 반대일거라. 아버지는, 옛날 사람은 싫어하고 요새 사람은 됐다 좋아 할  것이고 그런데 ○○○씨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 하나를 들어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하고 세상  지식하고 바꾸지를 마십시요. 그러기 때문에 제 이계명을 지키라 그 말입니다.

우상을, 제가 만든 우상이 뭐입니까? 제가 죽도록 공부해 가지고서 앉았는 것이  제가 만든 우상이지. 요새 ○○○씨가 뭐 영어 오백 오십 점 맞을라고서 지금  애를 써도 그게 잘 안 되는데, 오백 오십점이면 어디 가서든지 영어로서는 뭐  부족함이 없이 이렇게 공부할 수 있다하는 그게 오백 오십점인데 나는 늘  생각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것이 제가 노력해 가지고 공부해 가지고  공부하고 난 다음에는 그게 큰 줄 알고 하나님하고 바꾸어서 교만한 자 되어서  망할까, 그 미국 가 가지고서 공부하고 온 세 사람이 있는데 이 세 사람이 공부  가지고 망할까 나는 항상 그거 염려하고 기도하고 있지 그 뭐 공부 그거 없으면  안 될 터이니까 그거 가지고서 구원 잘 이룬다. 절대로 공부 가지고 온 그  사람들 잘 이룬 구원이나 공부 안 한 사람들이 잘 이루는 구원이나 구원이라  하는 것은 그것 가지고 이루는 것은 안 됩니다. 그걸 털끝 만치라도 하나님  대충할 것으로 이렇거 생각하면 벌써 그게 우상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런고로, 반사들이 열심히 일하십시요 이번에 다음 주일에도 지금 저 충북  노회에서 결의가 돼 가지고서, 그때 ○목사님이 한번 거기 가 가지고 강의하는  가운데에서 그분들이 많이 은혜를 받았다고 그 뒤에 편지가 오고 이럽디다. 지금  간 데가 충북이요 충남이요? 충북이라. 거기 더러 왔더래요. 아 왔다고 그래  가지고 지금 거기 가니까 아 이거 ○목사님이 왔으니까 이거 큰일났다 이래  가지고서 그 지방에서 모든 교역자들이 뭐 경계를 하고 이래 뭐 다, 이거  왔으니까 이거 참 이거 어찌 되나 이래 덜덜덜 하고 있답니다. 이랬는데, 거기에  있는 그 노회에서 노회적으로, 시찰회적으로서 반사들 촐촐 추려 가지고서 삼십  명이 여기 와 가지고서 견학을 하겠는데 좀 허락을 해 줄 수가 있습니까,  편지오고 전화오고 이래서 그래 저한테로 전화가 또 와서 그래 오시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래서 다음 토요일 옵니다. 토요일날 와 가지고서 반사들이 어떻게  활동을 하는지 반사들 그 활동하는 것을 자기네들이 견학을 또 주일날 가르치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견학을 하고 또 이 목사님이 설교를 어떻게 해서 그런가  또 목사님 설교 하는 데 대해서 또 견학을 하고 이래 가지고서 한번 살아  보겠다고 온다고 합니다.

 이러니까, 이 운동이 이거 보통 운동 아닙니다. 이것이 인간끼리 돈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성신의 감화로 다 가지고 이래 돼 가지고 하는 이런 운동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고 기뻐하시니까 이런 일들도 더러 난다 그  말이요. 우리가 이렇게 했지마는 교회 생긴 후에 그런 일은, 그런 사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사고는 그 내가 잠시 들어 봐도, 그 사람이 술 취했고 비번에서  그리 됐고, 또 차가 내려 가지고서 또 그리 됐고 이러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이거요.

 이러니까, 뭐 그 사람이 그렇다는 것도, 술먹은 그것도, 그것도 하나님의 예정,  또 비번에서 출발한 것도 예정, 또 그 예정 다 예정 됐으니까 우리가 여기에서  우리할 일이 뭐인가? 우리 할 일을 깨닫는 것은 첫째로 기도할 것, 또 우리가 그  학생들을 데리고 온, 데려 온 학생이라면 그 학생을 아무래도 그저 우리 양심에  가책 없을 만침은 거기에 데려다 주든지 데리고 인솔할 만한 그런 사람들을  해가든지 어쨌든지 그런 일이 인간의 실수로 다른 사람들이 원망할 만한 그런  일은, 우리 양심에 원망을 받을 만한 그런 일은 없도록까지는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좌석도 어떻게 해서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  가집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이렇다고 해 가지고서 반사들이 조그만치 라도  이거 활동하는 데 대해서 제재를 받거나 그런 오해를 가지면은 마귀가 손뼉치고  기뻐합니다. 성공합니다. 이럴수록이 분발해서 일은 하고 또 우리가 기도도  하고? 거기 대해서 모두 기도해요. 그래서 여덟째로 기도 제목에 이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유치반 낙심자 중간반의 낙심자, 장년반 낙심자, 또 안 믿는  불신자도 다 회개하고 예수 믿도록, 또 이 국가의 안정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기도 제목 여덟째 기도 제목은 이 다섯 가지를 새로 더 추가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 기도회에 가입된 수는 이제는 사천이 넘었습니다. 사천 이십 칠 명입니다.

그러고 엊저녁에 여기에 기도하러 온 장로님은 6명입니다. 이 모두 다 장로님들  가운데에 기도에 본정꾼들은 이렇게 기도를 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은 다 자기  집에서 기도하지마는 할 수 있는 대로 교회 나와 기도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어집니다.

 그저 자꾸 만나거든 은혜를 주고 힘을 주라고. 교인은, 교인이 교인을 만나  가지고 힘을 주면 하나님이 축복을 할 것이고, 교인이 교인을 만나 가지고서,  집사든지 장로든지 누구든지 교인이 교인 만나 가지고서 힘을 주지 안하고 그  힘을 떨어뜨려서, 그 힘을 떨어뜨리게 만들면 하나님이 그 자를 저주 합니다.

그자를 진노합니다. 하나님께 그 자에게, 그 자에게 그 고라와 같은 보응을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이고 발락과 같은 그런 아각과 같은 그런, 아각과 같은 그  보응을, 아말렉 족속과 같은 그런 보응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러니까, 사람  만나거든 열심을 내도록 하고, 예수 믿는 열심히 내도록할 일은 할지라도 만나  가지고서 열심내는 사람을 열심을 깔아 앉추는 그런 저주받는 그런 무서운 짓을  하지 말도록 하십시오.

 권찰님들이 담대히 말하십시요. 네가 사람 만나면 자꾸 이래 믿음을 자꾸  식어지게 만드니까 하나님이 네게 대해서 진노가 오면 네 까짓 것이 당장에  송장도 될 수 있고 당장 정신 이상도 될 수가 있는데 네가 어디라고 그분 앞에서  그런 일 하느냐고 담대히 말해 주라 그 말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그래 가지고서 미움이 와서 죽임당하면 죽임당하고, 선지자들 이 그래 가지고  옳은 말하다 다 죽은 것이 선지자 아닙니까? 그런고로, 담대히 우리는 나가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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