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의 법칙

 

1984. 6. 4. 월새

 

본문 : 시편 23편 1절∼6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의로운 생활, 가치 있는 생활. 거룩한 생활 이 생활을 하는 것은  형체가 없으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 가지고 되기 때문에 하는 일이 다  자기가 한 것같이 여겨지게 되는 그런 방편으로 일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이  뚜렷이 형체를 가지고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렇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기 쉽고 또 '주님이 돕지 안하고 내 단독이 했다' 이렇게 할 수  없지마는 주님이 형체를 가지지 안하시고 무형의 존재로, 형체없이 무형의  존재로 우리 안에 역사하셔 가지고 의로운 그 승리의 가치 있는 걸음이 걸어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형체를 항상 중하게 여기는 이 껍데기 사람이 늘 습성이 돼  있기 때문에 주님이 무형의 존재로 내 안에 역사하셔 가지고 내가 그 승리의 참  가치있는 그 고귀한 걸음을 걷게 되니까, 돕는 주님은 보이지 안하고 그와 같은  승리의 생애를 하게 되니까 꼭 자기 혼자 한 것같이, 자기가 한 것같이 그렇게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약대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분의 은혜로 됐지 은혜로 안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제 설교할 때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면서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훈련받은 그 훈련은 오늘 우리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같이 세상에서 나와  가지고서 홍해 바다를 걷는 거와 같이 우리가 완전히 중생함을 받아서 죽었던  생명이 살아나서, 중생함을 받아 가지고 중생함을 받은 사람 들이 이 광야 같은  이 세상 교회 생활, 교회 생활에서 무궁을 준비해 가지고 요단강 같은 그 죽음을  통과해서 가나안같은 그 하늘나라를 가게 되는데. 광야에 그들이 있을 때에 사십  년 동안 양식을 먹은 것이나 물을 마신 것이나 메추라기 먹은 것이나 그 모든  것이 세상에서 추출함을 받아 가지고 하늘나라를 가는 그 준비를 하는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의식주의 생활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때는 무슨 하나님의 기적으로, 의식주의 생활이 하나남의  은혜로 돼서 옷 한 벌을 가지고 길쌈하지 안하고 사십 년 동안이나 입어도  여름이나 겨울이나 철에 맞았고 낡아지지 안하는 그런 의복을 입혀 줬지마는  우리는 지금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가지고 입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가지게  되고, 그때는 만나 가루이지만 우리는 농사짓고, 그때는 멀 건 반석에서 물이  나왔지아는서도 우리는 여러 가지로 이렇게 모든 과학을 통해 가지고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때는 주님이 기적으로 고기를 먹였지마는 우리의 노력으로  먹는다 이떻게 생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요.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러기 때문에 어제 말하기를, 신약에서 신약 시대에 되는 그  일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구약으로 말미암아 깨닫고, 구약의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신약으로 말미암아 깨달아지는 그 모든 것이 다 이런 것 들입니다. 그들을.

손대지 안하고 공중에서 만나 가루가 내려와서 먹은 것은 순전히 그들의 손  하나도 대지 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먹였고 또 은혜로 마시웠고 은혜로 입혔고  또 은혜로 고기도 먹였고 은혜로 이와같이 인도하신, 순전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된 것인 것처럼 오늘도 꼭 그러 합니다. 오늘도 실은 우리 사람이  한 것 아니고 그때나 꼭 같이 주님이 혼자 은혜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데,  오늘에는 그때보다 영면으로 장성한 사람들이 됐기 때문에, 장성한 사람들이  됐기 때문에, 그때 하늘에서 만나 가루가 내려와서 먹으니까 '하나님이 이거는  우리에게 은혜로 주셔서 손대지 안하고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로 됐다' 이렇게  그들은 그 시대에 생각했지마는, 오늘은 이런 저런 것 있지마는, 이런 저런 것  인간이 농사짓는 방편을 쓰고 또 뭐 수도니 뭐 이런 모든 방편을 쓰고 또  의식주에 대해서 모든 면에 대해서 인간들의 노력을 통해서 되는 것 같지마는  실은 순전히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가지고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기를 때에 사람들의 공작은 하나도 없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그때와  꼭 같이 지금도 하나님의 단독 은혜로만 되지 인간의 힘을 보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됐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기가 어렵고 사람들의 노고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요렇게  해석 하기가 쉽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됐다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심령이 밝은 사람이 아니면 인정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도,  그러면. 번연히 사람을 통해서 됐는데, 그러나 사람을 통해서 된 그 사람이  뭐이냐? 사람이 하나님이 전부 밑천을 따지고 따지고 들어가면 하나님 혼자  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지 하나님이 혼자 하신 것 외에 무엇이 도운 것  하나도 없습니다. 도운 것 하나도 없어. 예를 들어서 농부가 와 가지고서 농사를  지어도 농부가. 하나님이 직접하는 게 쉽지 농부 그걸, 농사짓느라고 농부  그것을 만들어 가지고서 농사짓도록 해 가지고서 그게 농사짓도록 그래 만드는  데에는 하나님이 혼자 하는 그 자본보다도 많이 들었지 덜 든 게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전히 우리의 이 교회 생활에,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다 그거는 한가지인데, 교회 생활 하는데 의식주에 대한 이 전부는 주님 단독이  하신 것이지 인간이 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요것을 우리가, 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 광야 생활에서 그렇게 된 것을 우리가 거기에서 보고 고 계시로  인해서 우리가 깨닫기 어려운 신약 시대의 요 깨달은 요건 깨달아야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게 됩니다.

 그때 그들이 그렇게 의식주가 하나님의 은혜로 됐지마는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됐다는 것을 그들이 느끼지를 못했소. 알지를 못하고 느끼지를 못 하고 그저  알기야 알지요. 알지마는서도 그것을 하나님이 이와 같이 전적 해 가지고서  하시니까 이 하나님이, 이 하나님으로서 부족할 게 없다, 또 과거에 애굽에서의  모든 재앙을, 그런 걸 본다든지, 홍해 바다를 건너는 것을 본다든지, 물이  변화된 그런 건 본다든지 보면 그분 한 분으로써 만족이 되고 전부 다 될 수  있는데 그들은 그건 믿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그 때와 꼭 같이 주님이 하시는  것인데 오늘은 좀 알기 어려워서 사람들이 전적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산다 하는  그것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 예를 든다면, 그 예가 잘 안 되지마는서도 하나 든다면, 어떤  여인이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을 갔는데, 보니까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서 뭐  집을 이렇게 수리를 하고 집을 깨끗하게 이렇게 만들어서 아주 편리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 만들어 주더마는서도 또 아주 가구를 피아노를 들여 놓는다 뭐 또  이런 악기를 들여 놓는다 또 이래 해 줍니다. 또 보니까 정원에다가 정원수를  심어 가지고서 아주 아름답게 그렇게 해 줍니다. 아, 또 쌀가마니를 가지고  옵니다. 또 이런 모든 요리를 모두 다 해 가지고 옵니다. 오니까 이 여인이  있다가서 '아, 이거는 저 남자가 해줬다 이거는 저 남자가 해 줬다' 이렇게 해  가지고서, '나에게 포도주와 기름과 또 이 떡과 이 모든 길쌈하는 원료 삼과  이런 것은 저 아무 것이가 줬다 이렇게 말을 하고서 그 간부로 더불어 친해서  '저희가 나에게 줬기 때문에 저만 사귀면 내가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간부로 더불어 사귀는 그 자가 이제 주인이 막고 이래서 그걸 가로막아서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이래 하니까 마지막에는 할 수 없어서 만나지도 못하고 이러니까  본부에게 돌아와 가지고야 그제야 '처음 그때보다 지금이 낫다. 그때야 비로소,  아, 그 삼을 준 것도 그자가 준 게 아니고 이분이 줬는데 그자가 제가 주는 척  하고 이제 떡과 포도주도 이 본남편이 주는데 그 간부 그가 제가 주는 척 했고  또 이 정원수를 심으고 모든 가정에 장식물을 하면서도 이래 해놓으니까  좋지요?' '아, 참 감사합니다.' 제가 해준 척. 제가 해준 척 하고 양식도 제가  제 양식 갖다 주는 척 하고 있는 그놈은 다 불한당이라 말이요. 그놈은  도적놈이라 말이오. 도적놈. 이라면서 이 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니오. 이  쌀은 당신 남편이 지금 여기에 돈다, 쌀삯 다 냈고 운반비 다 냈고 여기에 딱  갖다 들여 놔 주라고 이래서 주는 건데. 자기 남편이 준 것이지 이거 내가 쌀  갖다 주는 것 아니오.' 정원수를 만드는 정원사도 그래야 될 것이고 또 모든  건축가도 그래야 될 것이고 이런데 요것이 못되게 이 어리석은 여자가 그가 주는  줄로 이래 알고 있으니까 살살 꾀어 가지고서 그만 간음해 가지고서 그만 절단을  내 버린다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여자가 있다면 어리석은 여자 아니겠소? 오늘 우리가 꼭  그러합니다. 모든 것은, 아무리 쌀장사가 와 가지고 쌀을 짊어지고 땀을 철철  흘리고 왔지마는 땀 값 다 받았소. 땀 값 다 받았고 거기에 운반한 값 다 받았고  쌀값도 다 받았소. 그 남편이 땀 값 내고 다 했기 때문에 남편이 메어다가 준  거라 그말이오. 그런데 그걸 모르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것 오는 것이 오는데, 이것은 뭐 자연을 통해서 왔다, 나라를  통해서 왔다, 이것 뭐 과학을 통해서 뭐 왔다 하지마는서도 남편이 그것을 다  그렇게 보내서 다 댓가를 다 내고 그래 가지고서 온 것이지, 주님이, 안 준 게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그 의식주나 모든 것을 다  인간들이 손대지 안하고 주님의 은혜로 순전히 먹었다는 고것이 뭣 때문에  그렇게 우리에게, 다 기록할라면 천하에 두어도 책이 둘 곳이 모자랄 만한 이  많은 가운데서 그런 것을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느냐? 주신 그것은  우리에게 뭣 때문에 그렇느냐? 아, 애굽에서 그런 것 났다. 그런 기적 났다.'  그까짓 것 우리에게 보일라 하는 것 아니오. 그것은, 애굽은 세상이요 홍해는  중생이요, 세례요 중생이요, 광야는 교회요, 요단강은 죽음이요, 가나안은  하늘나라라. 상징해서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하셨으니 그때에 만나 가루나  물이나 메추라기나 모든 의복이나 그런 것을 뭣 때문에 우리에게 말했는가?  이것이 뭐이냐?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들의 하나님의 혼자의 노고로,  혼자의 수고로,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이지 다른 것은 하나도 거기에 도움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이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제도 그런 말을 많이 했는데, 이거는 내가 돈 주고 사 가지고  왔는데' 하지마는 '야, 돈 주고 사 왔지마는서도 너 돈 준 거는, 찍해야 그 돈  준 거는 점포 벌여 놓고서 생선 놓고 너 기다리는 사람 그 사람 일비 치러 줬고  또 저 바다에서 잡아 놓은 것 운반하는 운반비 줬고 또 바다에서 그냥  공짜배기로 잡는 사람들의 잡는 수고비 줬고, 고기 키운 삯은 하나도 안  냈으니까 네가 고기 먹는 것은 내 고기를 공으로 먹는다. 다 만 인간들은 품  하나도 안 받지 안하고 다 품을 받아서 인간들의 품삯만 쳐 줬지 뭐 네가 고기  값을 냈느냐 그와 마찬가지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모든 것이 그래 되기 때문에, 그 여인이 정원수 하는  남자에게 하, 이렇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남편은 오니까 떡 말하기를  가정에 꽃 한 포기도 심지 안하는 밉상스러운 남자가 오네. 아, 나무 보고서  좋다고 남편이 그라니까 허, 꽃 한 포기도 심도 안하면서 나무 심어 놓으니까  보기는 좋은 가베? 이 엉뚱이같이 이렇게 말하면 그것 참 데리고 살기에 곤란할  거라 그말이오. 안 그렇겠습니까? 데리고 살기에 곤란할 거라.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이 꼭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자기가 되고 난 다음에도 자기가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나 된 것이 하나님이 나 되게 하셨다' 또 죄 가운데 빠진  것도 그렇습니다. 죄 가운데 빠진 것도 영원 전.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 못박혀 죽기까지 하신 그분이 전지전능자이신데 그분이 예정 하신  순서로 됐으니까 내가 죄 가운데 빠진 이것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 내가 죄  가운데 빠졌으니까, 이렇게 하다 조심 없이 죄 가운데 빠졌으니 이 죄에서  돌아서고 일어서고 다시는 범하지 말자. 그것도 좋지마는 무엇보다도 거기에서  초월해서 '하나님께서 와 나에게 이렇게 죄 가운데 빠지게 했으며 나로 한번  우쭐하다가 떨어지게 했으며 이렇게 했느냐? 모든 것을 당신이 목적을 위해서  예정 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로 이루셨기 때문에 그 광대하신 그 뜻에 붙여서  우리는 생각하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고 감사하지 안할 것이 하나도 없고,  낙망할 것이 하나도 없고 어데든지, 모든 데서 경험하고 체험해서 배우고 깨닫고  새로 힘을 내서 이제는 천하를 다스릴 만한, 하늘과 땅에 있는. 천군 천사도  다스릴 수 있고 땅 위에 있는 모든 대통령이고 뭐 모든 정치가고 모든 박사고  학박사고 다 통치할 수 있는 이런 권리를 가졌다, 실력을 가졌다 하는 그 자신이  만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지자에게 연결됐으니까,  전지자에게 연결됐으니, 전지자와 연결됐으니까 전지자와 전지자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것을 통치하는데 부족할 게 뭐 있겠습니까? 전능자에게  연결됐으니까 부족한 게 뭐 있겠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분이 무형의 존재로  내게 와 가지고서 전지전능의 역사를 하니까 꼭 제가 단독이 한 것 같이. 제가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되고 이렇게 제가 한 것같이 이렇게 여겨지는 그것이  뭐이냐? 무형의 존재로서 내 안에 와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와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타내서 여기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모두가 다 제가 한 것같이 여겨지나  그게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저를 통해서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어서 했는데 그러면 저 한 일은 어찌 됩니까? 저 한 일은,  제가 노력한 저 한 일은 어쪄 돼요? 주님이 그렇게 만반의 준비 같이 했으면 저  한 일은 어데 갔습니까? 제가 수고한 것은 어데 있어? 제가 수고를 얼마나 했소?  ○○○집사님, 수고를 얼마나 했지? 그 사람 본인은 수고를 얼마나 했지?  하나님이 백의 구 십 구 했고 자기는 한 일쫌 했을까? 허 허, 저 어른은 다는  안돼. 그라니까 맞기는 맞는데. 네.

 그러니까 성도들이 다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저 '나는 주님에게 방해한  자뿐입니다.' 목회자도 방해한 것, 권찰도 방해한 것, 농부도 방해한 것.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방해한 것이 부패성 이것, 옛사람 이게 들어 가지고서  방해한 것뿐이지 하나님을 도운 자가 하나도 없어. 도운 것이 하나도 없어.

그분의 하시는 걸 방해해도 그분이 방해를 당하지 안하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서.

기어코라도 내 패역에 제재 받지 안하고, 그만 삐꿔서 '에이 이놈 그라면 냅둬  버려라' 이렇게 하지 안하시고 기어코라도 그 열심이 내게, 내 부패성에 제재  받지 안하시고 역사하셔 가지고서 하셨다 그거요. 그러니까 깨닫고 난 다음에는  '나는 방해한 것뿐이지 방해하지 안한 것이 없다.'  그러기에, 설교자가, 그거는 형식으로 그런 게 아니라 설교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그대로 바로 전했으면 백 프로 은혜가 됐을 터인데 나는  칠십 프로밖에는 못 전했다. 삼십 프로는 내가 방해했다. 삼십 프로 방해했다.'  늘 자기 방해한 것만, 방해한. 백지 말로 입에 발린 그런 게 아니고 정말로  방해한 것만 깨달아서 아, 내가 이거. 방해했다.' 그러니까, 늘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히 나타나시옵소서' 그런 소리를  감히 기도하지 못하고 주님이여, 내가 이제 주님에게 방해하는 일을 언제까지  하겠습니까? 이제는 거칠고 방해물이 되지 않도록 좀 도와주시옵소서. 방해물이  되지 않게, 투명체와 같이. 투명체와 같이 주님의 하시는 일 그대로 막바로  전달이 되도록 이렇게, 그 가운데에 끼어서 거리끼지 않는 자가 되도록 해  달라고서 그것을 기도하는 것이 성도들의 늘 기도인 것입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래서,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는 것은 이 계약의  말씀을 자기가 떠나지 안하고 계약의 말씀을 모시고, '계약의 말씀을 버려라' 이  말씀을 버리라 버리라 해도 안 버리고 모시고 있는 그것이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고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변판원 선생은 성경을 보이면서 '이 성구를 네가 어찌 하느냐? 이 성구를  버린다 하면 살려 주마.' '아, 나는 믿습니다. 그 성구를 믿습니다. '이놈의  새끼' 하면서 칼로, 또 푹 찌르고 또 그라고, 그러니까 성경을 몇 장을 쨌는지  모른대요 몇 장을 쨌는지. 그라고 얼마나 칼로 찔러도 그래도 꼭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라는 게 뭐이냐? 여호와를 버리라 버려라 해도 칼로 쩔러도 버리지  안하고 나중에 안 되니까 이 뱃구멍 있는 데를 이 만침 칼로 '이놈의 속에 뭐  들어 가지고 이런고? 하면서 칼로 이래 뚫어서 마지막에는 구멍이, 뱃구멍이  이만침 뚫렸어. 그래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더래요. 그게 여호와를 버리지  않는 것이라 말이오.

 여호와를 버리지 안했으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것이 뭐이냐? 그것이 여기  끝에 보면,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상을  베풀었다 말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 베풀었다 하니까 벌써 승리했다 그말이오.

상을 베풀어, 상은 밥상을 차려서 대접하는 것인데, 밥상 상(床)자요 그거. 상을  베푸셨다 이랬는데, 인제 원수를 승리하고 나니까 이렇게 대우한다 말이오,  대우. 그 원수가 뭐입니까? 주님이 오신 것은 마귀를 멸하려고, 죄를 멸하려고,  사망을 멸하려고. 이 세 가지로 더 불어 싸워서 세 가지를 멸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러니까, 원수는, 성도의 원수는 이 세 가지인데,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셨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승리를 했다 그말이오. 이 세 가지를  승리했어.

 이러니까 그게 뭐이냐? 변판원 선생이 여호와를 배반치 안하고 이렇게 모시는  그것이 들어서, 아마 칼로 찌른 그 사람들도 택한 자라면 언젠가 가슴 치면서  회개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아, 참 그렇게 예수를 믿는데 나는 예수  믿는다는 것이 이것이 뭐이냐?' 그래 가지고서 그 말이 어데 퍼져 나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귓속에 댄 말이 지붕위에 외치고 터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단둘이 그와같이 했지마는서도 그것이 뒤에 전파될 때에는 귓속에 대고  한 말이 다 전파가 되어져요. 손 양원 목사님이 그때 왜정 말년에 일본  형사들하고서 이렇게 대화하고, 검사하고 대화 한 그것이 나올 수가 어디  있습니까? 그 말이 어디라고 새 나오겠습니까? 못 나오는데 그 말이 하나도 없이  싹 다 나왔다 그말이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나타내고 한다면은 여호와를  버리지 안하고, 이래도. 죽어도 버리지 안하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구원이 되며 그것이 죄를 얼마나 멸한 것이 되어지며, 마귀를 얼마나 멸한 것이  되어지며, 사망을 얼마나 멸한 것이 되어지느냐? 그 변판원씨는 잘 싸웠다  그말이오. 그 변판원씨의 그와같이 하는데서 뭐 마귀가 얼마나 깨졌는지  모릅니다. 이 성도들 이 여러 수천 명이, 수십 명이 신앙생활 한 것보다도 고  단번에 그 사람 이 깨트린, 마귀의 일을 깨트린 것이 더 많은지 모르요. 사망의  권세를 깨트린 것이 더 많은지 모르요. 죄악의 권세를 깨트린 것이 더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여호와, 계약의 하나님이 내 목자신데 이 계약 버리지  안하는 것이 목자를 버리지 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여호와가 자기  목자가 되어 가지고서 몇 가지 해 준다고 했소? 첫째, 의식주. 영육의 의식주야.

심령의 양식, 영의 양식, 마음의 양식, 몸의 양식, 모든 활동의 양식. 영육의  양식을 담당해 주시고, 그 다음에는, 둘째, 예? 모든 행위를 다 담당해 주시고.

모든 행위를 다 담당해. 의의 길로 인도하시요.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딱 명중하는 행동만 자꾸 하도록 이래 한다 말이오. 행위를  담당해 주시고, 셋째는 또 뭐 했소? 원수로 더불어 싸우는데 승리해. 원수,  원수가 뭐인데? 원수가 누구인데? 죄를 승리하게 하고 마귀를 승리하게 하고  사망을 승리하고 승리하게 한다 말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 넷째로는 뭐 줍니까?  장립시켜. '머리에 기름으로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늘 아침에 고것을 증거해 줄라 하는데, 어제 모두 증거하는 것 보니까 그것을  잘못 깨닫고 있는 셈인데, 이 '원수로 더불어 싸워서 승리하게 하시고 내 머리에  기름으로 바르셨으니, 기름으로 바르셨으니' 주님이 장립을 시키셨으니, 장립을  시키셨으니, 무슨 장립입니까? 제사장 장립 선지자 장립, 왕의 장립을 장립을  시키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누구의 잔이  넘쳤습니까? 누구의 잔이 넘쳤소? 예? 누구의 잔이 넘쳤어? 이 잔이 말이요,  제사장 잔, 선지 잔, 왕의 잔이 넘친 잔을 받은 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잔이  넘친 이가 있지 않았습니까? 제사장 잔이 넘쳤고, 선지 잔이 넘쳤고 왕의 잔이  넘쳤으니 그 잔 넘친 그 잔이 누구의 잔이소? 누가 그랬습니까? 주님이, 주님의  그 잔은 넘쳤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그렇게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지성과 지공에  만족하도록 대속하신 것은 제사장 직의, 제사장 직의 그 역사를 이 쓴 잔이요  고난의 잔인데. 제사장 직을 감당하는 것이라 말이오. 제사장 직을 감당하는 것.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안했으면 제사장 직도 못했고 선지 직도 못했고 왕  직도 못했고 다 헛일입니다. 제사장, 선지 왕 직 이 세 가지 직책을 조금도  손색이 없이 지성에도 만족 지공에도 만족하도록 완전히 이 성직을 다 완성했다  그말이오. 완성한 것 그게 뭐입니까? 봉사 완성이요, 희생 완성이요, 구원  완성이요, 대속 완성이요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원히 만족을 준 그 일을 이루셨다  그말입니다.

 여호와만 버리지 안하면, 여호와만 우리가 버리지 안하고 자기 목자로 모시고  있으면 우리는 모신 거기에서. 변 판원 씨는 거기에서 나무에 달려서  죽음으로써, 죽은 그것이 제사장의 완성이요, 선지 완성이요. 왕의 완성이요.

그것이 이제 자기가 마귀를 완전히 멸한 것이요, 또 죄를 완전히 멸한 것이요,  사망을 완전히 멸했다 말이오. 그분이 멸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그때 6 25 지나고 난 다음에 지리산 토벌할 때에 바로 지리산 밑에  있었는데. 그때에 그 교회 보니까 장교로 온, 그 부대장으로 오는 부대장으로  오는 사람들이, 부대장은 오면 교회 와 가지고서 눈물 흘리며 기도를 해요. 그래  내가 그때 보기에 '아, 이거 전부 예수교가 다 됐구나. 이 장교, 부대장들은  전부 와 가지고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 보니까 전부 믿는 사람들이구나.

그래 내가 이상해서 물어 봤어요. '어떻게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어떻게  부대장이 됐습니까?' 이상해서 내가 그래 물으니까 '예, 제가 서른 네 번 제  있는 부대에서 전부 몰사했는데' 다 몰사했는데 자기만 살기를 서른 네 번 산  사람 있어. 다 몰사하고 자기만 이 산 것이 서른 네 번 산 사람이 있어. 그  사람들을 전부 부대장으로 했어. 그런 가운데서 살아 나오고 이랬으니까.

그동안에 살아 나왔으니까 그 사람 부대장 줘야 될 것 아닙니까? 전부 사지에서,  사지를 여러 번 하나님의 권능으로 구출 받은 그 사람들이 부대장이 됐어. 무슨  뭐 사관학교 졸업하고 그런 것도 아무것도 없고 그만 거기에서 실력으로 그래  가지고 하나님 은혜로 됐어. 이러니까 나는 부대장 된 것이 내 힘이 아니고,  나는 이리 이리 했는데, 나는 졸병인데 이래 가지고서 부대장이 됐습니다.

이라며 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기도해요.

 이러니까, 여호와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승리하게 할 수  있는데, 그 모두 승리한 것을 다 '너는 얼마나 승리했노?' '아무 부대에  승리했습니다. 승리했습니다. 승리 한 것을 이래 표창을 해. 내가 일본에 있을  때 그때 무슨, 일본서는 참 군인 대우를 굉장히 합니다. 뭐 부다이쪼(부대장)  부다이쪼 부다이쪼 부다이쪼.' 부다이쪼가, 그때 만주에서 싸우는 싸움할  때인데, 아무 부다이쪼가 온다고 부대장이 돌아온다고 이래 가지고서 뭐 환영을  나가는데 그 어떻게 영광스럽게 환영을 하는지. 이 부대장은 어떤 승리를 했다.

또 저 부대장은 또 승리를 더 큰 승리를 했다. 그 승리한 것을 역력히 온 전국  백성들이 다 알게 이렇게 표창을 하면서 찬성을 해요. 그때 나는 거기에서 좀  분한 맘이 났어. 이거 나도 군에 가서 내가 승리하고 좀 승리의 장병이 됐으면  좋을 건데 내가 원수의 나라에서 자원, 지원대라고 있어. 일본 군대인데,  지원대. 지원병은 할 수 없고. 지원병은 할 수 없고, 나라를 잃어버렸으니까  지원병을 할라 해야 그 일본 나라에, 원수에게 지원병은 하기 싫고, 나라가  없으니까 군대 생활 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 평생 마음의 포원이오, 군대 생활  못한 것이. '나도 우리나라가 있으면 군대 생활 했으면 나도 한번 승리하고서  승리의 장병으로 이제 나타날 것인데 이거는 군인 생활 못한 것이 원통하다.'  그래 가지고 그때 그걸 보고서 잠깐 동안은 '나도 그라면 일본 나라에 가 가지고  서 모든 지원병이라도 할까' 그런 말 퍼뜩 했다가서 취소를 하고 '내가 원수의  나라에 지원병을 해? 내가 이 나라로 더불어 싸워서 어떻게 해야지' 이랬는데,  그 승리하고 온 장병들 보니까 어떻게 기백이 있고 영광이 있고 존귀가 있는지.

 이 다음에 보면 우리도, 지금 주일 학교 반사들도 승리하지 않았소? 주일학교  반사들 승리한 것. 승리가 뭐 입니까? 여러분들이 노력함으로써 마귀의 일은  깨집니다. 마귀의 일은 깨지고, 여러분들이 노력함으로 사망은 깨어지고, 또  죄는 깨집니다. 깨져서, 이렇게 함으로써 점점 그 학생들을 점령하고 있는  죄악이 깨지지. 마귀가 깨지지 사망이 깨지지 이라니까, 모두 다 요만침 이긴  것, 이만침 이긴 것, 이만침 이긴 이 승리한 승리를 다, 그게 면류관인데 이  승리를 전부 표창하고 이래 다 상을 줄거라 그말이요. 상을 주니까, 그  면류관상을 주니까 상을 받은 사람이 있다가 면류관을 받아 가지고서, 받아  가지고 다 주님 앞에 던져요. 주님의 발아래 던져요. 감히 가지고 가서 이래  바치지도 못하고, 멀리서 가지 못 하니까 이래 던져요. 던지면서 '아이구 나에게  승리 주신 이는 이제 보니까' 주님이 혼자 나에게 이 승리 하도록 이렇게  배후에서 역사하셔서, 주님이 혼자 했으면 백 개나 했을 터인데 나 무지한 이것,  강팍한 이걸 통해 가지고 하기 때문에 방해를 얼마나 해서, 주님이 하시는  승리에 방해를 얼마나 했고 자기 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면류관을 벗어서  주님의 발아래 다 던졌어.

 이러니까. 이렇게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이 서부 교회 이 반사들을 붙들고서  학생들을 뭐 칠천이니 팔천이니 이라는데 이것도 알지도 못하고 제가 좀 힘 쓰면  돼지고 힘 안 쓰면 안 되니까, 이러니까 제가 하는 것같이 그렇게 여겨지는  그것이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승리의 장병들이 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버리지  안하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승리를 주시고, 그러면 '주의 막대기가  그렇게 자기를 안위한다.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그 주님의 섭리를 의지하기  때문에 든든해.

 이래서 여기 지금 한 사오백 명 모였는데, 사오백 명 모여서 이제 오늘이라도  세상 떡 떠나면 주님 앞에 갑니다. 가면은 '너는 면류관이' 면류관이 뭐 이런  면류관 저런 면류관 여러 가지 면류관이 있을 건데 그 면류관 큰 사람도 있고  아주 뭐 면류관도 참 가치 적은 면류관도 있을 것이라. 어떤 부흥사가, 그때  여기 ○○○목사님 와 가지고 말하지 않습디까? 부흥사가 입신에 들어갔는데,  가보니까 십자가가 있는데 금십자가 있고 나무로 만든 십자가 있는데 금 십자가  저기에 내 십자가인가' 이라니까 '아, 그거 네 십자가 아니다. 또 금 면류관이  있는데 '저거는 아무래도 내 면류관이지. 네가 부흥사이니까 내 면류관이지.

'그것도 아니다.' 이렇게 자꾸 저기에 내 건가 저기에 내건가 저기에 내 건가?'  저 내려가니까 개털로 만든 개털벙치가 하나 있는데 '저기에 네 면류관이다'  이라더래요. '나무로 만든 이 십자가 저기에 네 것이다. 너는 금십자가 그거 져  놓으면 치어 죽었다 이라더래요. '그러면 그거는 누구 것입니까?' '네 앞에  엎드려서 밤낮 기도하는 할머니의 면류관이요 할머니의 십자가다 그래  말하더래요.

 이러니까, 이 세상에서 주님과 주의 도를 위해서 이 고난당하는 이 고난이  십자가인데, 어떤 사람은 뭐 바람개비 같은 그런 십자가도 짊어지고 못 견뎌서  비척, 비척거리면서 아이구, 나같이 고생스러운 사람 있겠나' 하지마는 어떤  사람은 참 황금 같은 그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도 뿍뿍 지고 간다 이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잠시 잠깐 후면 우리가 섭니다, 그때에 전투를  얼마나 했으며, 승리를 얼마나 했으며, 또 면류관이 어떻게 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얼마나 무거운 십자가를 졌는가? 금 십자가는 무겁고 지기 힘들지마는  가치 있지 앉습니까?  이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상을 베푸시고' 이제 내게 한  상 차려 준다 말이오. 승리했다고 이래 떡, 상을 베푸신다 말은 대우한다  말이오. 이 상급이 아니고, 상급이라는 상(賞)자가 아니고 밥상상(床)자입니다.

밥상 상 자.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나를 장립을  시켰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제 주님이 쓴 잔을 잘 마신 것처럼 자기가  마실 그 쓴 잔, 쓴 잔을 잘 마신 것처럼 자기가 그 희생을 잘 할 수 있게 됐다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그저 여호와만 떠나지 안하면 우리의 승리는 다 있는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새벽기도 다 나와요. 안 나온 사람 자꾸 자꾸, 다른 사람을 살려요.

저만 살 게 아니라. '아, 새벽기도 나오니까 좋더라 새벽기도 가자.' 내 지난  밤에 재독하는 걸 들었는데, 내가 들었지마는 재독하는 걸 들으니까 '이 재독을  전부 우리 교인이 다 들어야 되겠다.' 설교할 때에 잘 모를 건데 이 재독을 들어  보니까 더 확실하고 깨끗해지는데 재독도 안 듣고 뭐 하는 건지 모르겠소.

어짜든지 이 재독을 빠지지 안하고 들어야 됩니다. 다른 교회서는 이부 삼부  예배 본다는 것은 일부 예배 본 것을 내나 또 그 위에 이부 예배보고 삼부 보고,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삼부까지 다 참석하요. 여기는 그러니까 재독을  참석해야 이 설교를 두 번 듣는 것이 된다 이거요. 여러분들이 두 번 들어도 잘  몰라요. 그거 쉬운 것이 아니라. 이러니까, 어제 오전에 설교 듣고서 '아이구,  깡깡 깡깡 그래 쌓아니 애가 터진다 해서 자기네들이 모르니까 좔좔 해 버리면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이러니까, 재미없다 해서 오후에는 안 나온 사람들 많았소.

그러나 자기네들이 참 몇 십 번 들어야 알 만한 그런 설교를 어제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처소에서 기도하지마는 가끔 가다가 한번 씩이라도 와야 되지  처소에서 기도한다고 위로 받으면 안 됩니다. 처소에서 기도하는 것도 여기 와서  기도하거나 산에서 기도하면은 하지마는서도 자기 직장에서 기도하는 것은  그만침 자유 없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만침 어느 모퉁이 인가 종이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자유가 없기 때문에 그래 자유가 없어요. 우리는 신앙 자유 양심  자유, 신앙 자유라 말은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대해서는 내 맘대로, 하나님에게  무슨 순종이든지 다 순종할 수 있는 것. 무슨 순종이든지 다 순종할 수 있는  그것이 신앙의 자유입니다. 양심의 자유는 자기 양심대로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면 거리끼지 않고 죽어도 양심대로 하는 그게 양심 자유라.

 그런고로, 어짜든지 새벽기도에 나와야 됩니다. 안 나오면 안 돼요. 어제  주일학교가 내려왔는데 바짝 힘을 써요. 힘을 써 가지고서 우리를 이 세계 주일  학교의 등대로 세워 놨는데 이게 바로 되면 많은 교회들이 은혜를 받을 터인데  이것 주물주물 하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나는 세계의 나는 세계의 등대  파수꾼이라. 나 반사는, 나 반사가 적은 것 같지만 나는 세계의 어린이 교회  파수군이라.' 이걸 깨닫고 좀 용기를 내야 되지, 요런데 여기에 속닥하는  마귀들이 있어. 요 마귀를 내가 기어코 나중에는 잡아 죽여 버릴 거라. 이  마귀들이 있다 말이오. 마귀에게 사로잡혀 가지고서 이 주일학교 반사들이  저거끼리 모여서 숙덕숙덕 해 가지고서 자기 죽이고 남 죽이는 그런 행위를 하고  있어. 내가 그자들을 알고 있다 말이오, 알고 있기를. 안 되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매를 들어서 때릴 거라, 하나님 말씀으로. 때리면 제 까짓 게 안 맞고 어쩔  거라. 뭐 뻐드러져 죽을라고 하고 있어? 망하려고 하고 있어? 맷정 쓰지 말아요.

그거 가서 전하라고, 좀. 모두.

 그리고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손상케 하는데 자기 신앙을 손해 보이게 하는  그런 동무를 뭐하려고 가까이 하느냐 말이오, 가까이 하기를? 가까이 하면 안돼.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손상케 하느니라 사람을 삼가라.' 그러기에 만나면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할 일이지 남의 믿음에 손해 보이는 일을 하면은  하나님이 그 복수를 어째 하는 줄 압니까? 신앙에 손해 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수가 굉장합니다. 아각에 대해서 하는 일을 보십시오. 어찌 되는가? '아. 내야  그래도 뭐 십 년 이십년' 아이구, 십년 이십 년 가지고 다 산 것 아니오. 삼십  년 사니까 다 산 것 아니요. 늙을 때 다 산 것 아니라. 마지막도 있고.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눈은 불어나고 재물은 더하고 모든 일은 형통하고 했지마는서도 그  사람의 복 수는 하나님이 분해서 세상에서 복수 안 하고 죽고 난 다음에 복수  했어. 죽고 난 다음에. 그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그런 실수 없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사람이기 때문에, 또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해도 일어서요, 일어서  가지고 어짜든지 깨어서 복음 운동에 전심전력을 다 기울입시다.

 그리고, 또 저기 차 기다리고 있으니까 타고 기도하러 가고 걸어서 가고, 또  여기에도 산만 해요. 저리 가고 하면은 한참 걸어가야 되니까 저 구석에 이  구석에 끼어 가지고서 어짜든지 하나님 앞에 꺼리낌 없이 깨끗이 회개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솔빡 다 받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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