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15:13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1985. 11. 2. 토새
본문 : 마태복음 18장 5절∼10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우리의 영원한 목적과 행복은 무엇인가? 영원한 목적과 행복은 무엇인가? 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마지막으로 꾀울 때에 '온 천하와 천하에 있는 영광을 다 줄 터이니까 나한테 한 번 절하라' 이렇게 말할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홀로 하나이신 그분만 섬기고 그분을 경외하라. 그분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섬기라 하셨느니라.' 이게 제일입니다. 웨스트민스터 그 요리 문답에도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이냐?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게 우리의 전소원이요 전가치요 전행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제일 우리에게 그만 그거 하나뿐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 그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생의 목적이요, 목적의 전부요 행복의 전부요 가치의 전부인데,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것이 그만 우리의 가치의 전부요 목적의 전부요 행복의 전부요 영광의 전부요 기쁘고 평강의 전부입니다 이러나 '이게 어째 그런가?' 그 이치를 모르면, 이해가 안 되면 개 머래 먹기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거야. 그러면 그게 뭐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뭐인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 자신들이 행복되어지는 것이요, 영생하는 것이요, 모두가 다 부강해지는 것이요, 모두가 다 든든하고 평안해지는 것이라. 요게 이해가 됩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당신 사랑하는 것을 제일 기뻐한다. 당신 사랑하는 거를 기뻐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적으로, 실력적으로, 권위적으로, 쾌락적으로, 모든 부강적으로, 행복적으로 그것이 제일, 이렇게 이것이 이제 말한 이런 것들이 제일 잘되는 방편이기 때문에, 제일 잘되는 방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신다 하는 말이오.
그러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제일 당신이 기뻐하신다는 것은 당신 사랑하는 것이 당신 위함이 되기 때문에 당신이 기뻐하십니까, 당신 사랑하는 것이 유일로 우리 자신들을 위하고 행복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기뻐하십니까? 당신 위해 기뻐합니까 우리 위해 기뻐합니까? 당신 위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우리 위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다른 사람이 드니까 따라 드는 모양이로구만. 놔요. 됐어요. 그라면 이럴 건데 '보자' 따라 들면서 이래 가지고, 이거 가지고는 안 돼요. '다른 사람 어짜는가 보자'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 드니까 슬그머니 드는 것. 요건 걸, 요걸 확실히 깨달아야 되지 확실히 잡아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볼 때는, 우리가 지키다가는 마지막에 생명을 내놓고 지켜야 될 말씀 아닙니까? 생명을 내놓을 만치 이는 지킬 가치성을 알고 확고성을 알고, 바로 지키지 안하면 내가 사는 것 같으나 영원히 죽는 것이요, 주님을, 주님의 계명을, 이 말씀을 지켜 말씀대로 하는 것은 죽는 것 같으나 마귀의 지식으로 착각이 됨으로 그렇지 실상은 영생이 된다는 요 사실을 확고히 자기가 알아서 의심 없이 생명을 척 내서, 생명이 뭐, 생명을 뺏든다 해도 웃으면서, 생명 뺏들라면 뺏들든지 말든지 하고서 이 말씀대로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요렇게 확고히 우리가 알아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우리에게 능력으로 역사하지를 못한다 그거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제일 기뻐하는 것은 당신 사랑하는 그것이 곧 우리가, 막바로 우리가 영생하는 것이요 행복이요 그것만이 우리가 행복될 수 있는 길이지 그외에는 행복될 수 있는 길이 없고 다, 그외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거 외의 거 사랑하는 거는 전부이 다 죽고 망하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되고 우리가 행복되기를 원해서 당신이 그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복되기를 뭘 원하는데? 우리가 행복되는 게 뭐이라서 그렇츰 그렇게 주님이 원하시는고? 우리가 그것을 자꾸 새겨야 됩니다. 하나님 혼자 계셨소. 하나님 혼자 계셨는데 이제 당신의 그 사랑의 대상을, 당신이 모든 그 마음과 뜻과 성품과 능력과 지혜와 소유와 정을 다 기울일 수 있는 그 대상을 하나 만들어 볼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당신의 목적이라 그 말이오. 당신의 목적.
이래 가지고서 그것을 만들라고 하실 때에 어떻게 만들까?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 했다 그 말은 그리스도로 말하면 그 세 가지 직 아닙니까? 세 가지 직인데, 이것은 자존하신 하나님도 참, 하나님에게도 필요하고 제일 좋고, 또 이 피조물들에게 도 좋고 한 그 직책을 행하는 것이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무한함을, 이 무한한 것을 이 피조물들에게 애낌 없이 막 갖다가 이래 들이부어 주는 그것이 선지 직이요, 또 하나님의 완전 이 통치를 이 피조물들이 거게 피동돼서 완전 통치로 피조물들에게 아주 물샐틈 없는 그 행복이요, 불행이 근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고것을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이렇게 당신이 원해서 이래 했고, 그뿐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랑의 대상을 만들어 당신이 사랑 받고자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주기 위해서 그 어데든지 기울일 데가 없어서, 쏟을 데가 없어서, 이런 것도 좀 느껴봐야 되지요.
사람이 뭣 때문에 모두 시집 갈라 하고 장가 갈라고 하고 야단을 지기는가? 그 자세히 해석해 보면 그겁니다. 자기의 그 모든 애정을 어데 막 팍 다 쏟아 부어서 애정을 쏟아 붓는 애정을 쏟아 붓는 그 맛이 있는데 애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없어서 그 대상을 지금 구하는 것이라 말이오. 언간히 되면은 이거 뭐 이라다가 좀 자기의 그 애정과 정욕과 자기의 정력과 자기의 전 기능을 마구 쏟아 부울 수 있는 그런 그 상대가 있어야 될 터인데 그게 없으니까 그걸 지금 구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거 구해 가지고서 거기다가 자꾸 자기의 애정을 쏟고 정력을 쏟고 또 모든 자기의 희생과 봉사를 쏟고 정성을 쏟고 전부이 자기의 기능과 그 정신과 전부를 다 거기다가 기울이니까 자꾸 그게 더 사랑해진다 말이오. 기울이고, 기울이다가 또 거기 또 새끼가 나니까 또 거기다 그라고 이래 가지고서 어데 다 기울일 수 있는 그 대상을, 그 없는 사람이 불행스런 사람이라.
없는 사람. 그게 없으면 사람이 고만 흔들흔들하면서 고만 재미가 없습니다.
자기가 죽을둥 살둥도 모르고 거기다가서 아낌 없이 막 쏟아 기울일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있는 사람이 행복된 사람이야.
내가 어떤 사람 봤는데, 그런 사람 많아요, 뭐 어떤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이 자기가 처음에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하고, 또 그 사람이 잘났고 아주 활동성도 있고 지위도 높고 이런 사람인데. 그 사람이 처음에 장가 가 가지고서 그 이혼하고 이랬는데 그 뒤에 결혼을 했습니다. 했는데, 그 마누라가 예뻐요. 예뻐서 그만 이 사람이 완전히 사람이 변화돼 버렸어. 예뻐서 고만, 고만 내가 알기로는 일생을 거의 고만 그 자기 아내 위해서는 뭐 죽는 것도 좋고 고생한 것도 좋고 뭐 그 천해지는 것도 좋고 다른 집안들이 '저놈 죽일 놈이라' 하는, 죽일 놈이라고 하는 것도 좋고 아무것도 눈에 안 보이요. 안 보이고 고만 그 아내를 위해서는, 일을 그렇게 하면서도 일이 기뻐서 즐거워서, 뭐 일이 기쁜 게 아니라 이 일해야 돈 벌어 가지고 아내를 기쁘게 하고 다 해 가지고서 만날 마음이 아내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시간만 퍼뜩 있으면 쫓아와서, 그 자가용을 타고 와 가지고 또 한번 만나 보고 가고 이래 가지고 자꾸 이렇게, 그러니까 아내를 자기 마음에 만족하고 아주 못 견디는 그런 사랑의 대상을 하나 딱 만나 놓으니까 뭐 그 사람이 그만 딴 데 마음이 갈 여가가 없어. 딴 데 갈 여가 없고 그리만 다 기울어지고, 갈 여가 없고 전부 그 아내에게 마음 다 가고, 또 나머지기는 아내에게 좋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것이니 된 줄도 모른다 말이오, 된 줄도, 돈벌이도 하는 줄도, 몰라. 된 줄도 몰라. 그리다가.
그런 걸 우리가 못 느낍니까? 사람들이 그래 하고 있는 걸 보지도 못합니까? 다, 못 봐요? 그거 못 보면 둔해. 전부 모든 사람이 다 그런데 그래 가지고 뭐 뛰 해 가지고 뭐 그 일 해야 재미도 없다고 뜅한 그것 보면은 뭐이냐 하면은 자기의 전부를 기울일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없기 때문에 지금 불평을 해 가지고서 뭐 이혼을 하느니 마느니, 이라다가 이혼한다 하다가 어째 거기서 새끼가 하나 나 가지고서 자식이 하나 딸이나 하나 낳아 가지고 있으면, 남자들은 보면 또 아들보다 딸이 나은 모양이라. 딸 하나 낳아 가지고 이래 거석하면 그만 거게 그안 된 것도 모르고 전 애정이 거기 기울어져. 그저 마음에도 있고 그 딸을 위해서 하는 것은 뭐이라도 뭐 되지도 안하고 아깝지도 안하고 뭐, 또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한다 해도 수치스러운 것도 모르고 욕도 모르고 그만 뭐 아무 정신도 없고 거기다가 마음을 다 기울인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이렇게 당신의 그 전지 전능의, 완전의, 무한의,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하시고 모든 영계를 창조하신 이분의 그 모든 전부를 어데 기울여 쏟을 만한 그런 대상이 없어서 그런 대상을 만들라고 그렇게 작정한 것이 뭐이냐 하면은 그것을, 목적을 정한 것인데, 그게 당신의 목적인데 당신의 목적을 정할 때에 정할 때부터 벌써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 정한 것이 어떤 그 뜻인가 하는 이것을 깨달을 때에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 수 있어. 그랬지.
또, 이 자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걸 예정하셨어. 예정하셨는데 '아, 오늘 무슨 일이 생겼다. 오늘 데모가 생겼다. 뭣이 전쟁이 일어났다.' 그 전부가, 이 인간계만 아니고 자연계나 이 공간계나 모든 이 세계에 날마다 하나씩 둘씩 그 새로운 전개가 된다 말이오. 새로운 순서가 자꾸 나타난다 말이오. 전개가 된다 말이오. 전개가 된다 말은 자꾸 새순서가 나온다 말이오. 순서가 나오는 그 전부가 하나님이 나를, 우리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다 뭣을 기울일 수 있는 그 사랑의 대상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만들기 위해서 모든 걸 예정하셨고. 우리 위해서 모두를 다 창조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모두 다 섭리하고 계신다 말이오 이 자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을 자꾸 깨닫고 분석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우리가 깨달아야 될 건데 너무 우리는 맹팅이고 우리는 이거 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려 해도 나무 토막 하나 놓고 사랑하는 것 한가지라, 나무 토막. 요거는 그래도 좀 만들기를 요래 조래 만들어 있는데 (강대상 위의 종) 뚱뚱한 나무토막 하나 그까짓 거야 또 볼 게 더 없다 말이오. 요거는 좀 낫지마는. 나무토막 같애. 암만 사랑할라고 해야 아무 감각이 없다 말이오. 아무 감각이 없어. 그렇지 안해요? 그 결혼은, 결혼은 일주일이면 다 지나간다 그런 말 있어요. 결혼은 일주일이 면 다 지나가요. 일주일이면 지나간다 하는 것은 껍데기 그 낯빤대기 예쁘다 곱다 하는 그거는 일주일이면 다 지나가. 지나가도 고외에 고 속에 평생 꼼짝 못하고 거기 달려 가지고 살 게 있다 말이오. 고 안에는 뭐이 있느냐 하면은 그 용모보다도 고 마음씨, 고 정신, 거기다가서 속에 심신의 그 기능 요걸, 어떤 사람은 요거 남편만, 기생충. 모양으로 긁어 먹기도 긁어 먹지마는 요 남편을 꾀울 줄 안다 말이오. 남편을 꾀어서 요렇게 조렇게 말 한 마디하면 고만 고게 녹아지고 해서 살살 꾀어서 그 말에, 언변에, 그 지혜에, 애교에, 그 아부에.
남자를 요리조리 이용하는데 고만 거게 태여 가지고 어짤 줄을 모르는 거라, 그만 이게 있어야 맛이 있는 건데. 그 부부간도 그라면 낯빤대기만 암만 좋아 봤자 낯빤대기 좋으면 일주일만 지나가면. 그만, 그거 그만이라. 일주일 지나가면 나중에 낯빤대기 고운 것이, 고운 것이 그 행위를 더럽게 하면은 더 밉게 보이고 낯빤대기 고운 것이 더 미련하게 또 말하면은 그 낯빤대기가 미련해지고 그 뒤에는 언행 심사의 행동을 인해서 났빤대기가 처음에는 이렇게 좋은 그게 낮빤대기가 조래 생겼기 때문에 그렇구먼. 고 낫빤대기 고라고, 고라고 보니까 눈 생긴 것도 고 미련하게 생겼고, 눈도 미련하게 코도 미련하게 귀도 미련하게 전부이 미련하게 밉상으로 다 보인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지금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그 대상을 만들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데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데 사랑하는 대상이 될라고 하면은 뭣과 같이 되면은 사랑하는 대상이 될까요? 뭣과 같이 되면? 이 여반에 한번 말해 봐요. 남편에게 제일 좋아하는 아내는 어떤 아내겠어? 당신과 같은 걸 제일, 사람은 저와 같은 걸 제일 좋아해요 뜻도 저와 같지, 마음도 저와 같지. 생각도 저와 같지 딱딱 다 들어맞는다 말이오. 마음도 저와 같지, 그 남편과 같지, 뜻이 같지, 말이 같지, 말해 보니까 말도 같이 하지, 말도 통하지 뜻도 통하지, 소원도 통하지 영판 이거는 자기 반쪼가리 쪼개 놓은 거 한가지라.
그만 딱 들어맞아. 이러면 그 사람들은 못 나뉩니다. 그 철통 같소. 인간의 육칠십 년을 살면서 피곤한 줄 모르고 하루같이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소? 이와 마찬가지로 꼭 같다 그거요 그러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같이 온전하고 당신같이 거룩하고 당신같이 깨끗하고 당신과 같은 자 되는 것을 제일 원합니다. 그래 이런 자 되기를 원해 가지고서 예정도 했지 창조도 했지 지금 모든 것을 보존도 하지 지금도 섭리도 하시지, 또 그뿐 아니라 당신이 이렇게 모든 것을 또, 우리가 잘못 재를 저질렀다 말이오. 우리 잘못 재를 저질러 가지고서, 우리를 타락하게 해 가지고서 이제 영원한 사망에다가, 사망에 우리가 잘못해 타락에 들어가게 해 가지고, 타락에 들어가구로 해 가지고서 거게서 또, 이 타락에서 완전히 그것을 복구시켜 가지고서, 회복을 시켜서 이제 타락하기 전보다도 훨끈 좋도록 할라고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남김 없이 희생을 다 해버렸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희생을 다 해 버렸다 말이오. 희생을 다 해서 우리를 대속하지 안했습니까? 이렇게, 우리의 타락을 예정하시고 또, 타락을, 섭리해서 주권 능력으로 타락을 만드시고 또 타락을 만들어 가지고 당신이 친히 도성 인신하셔 가지고서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을 이렇게까지 하진 것이 하신 것이 뭐 할라고 그랬습니까? 뭣이 그랬습니까? 뭣이 그랬어요? 주님의 사랑이. 그래. 우리를, 우리를 실컷 사랑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그 일 한 것이오.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람되신 것이 모든 것은 뭐 당신의 법이 그런 것도 아니요, 당신의 사랑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우리 죄가 죽인 것 아니요, 당신의 사랑이 죽였소. 땅에 또 도성인신하신 것도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사랑이 못 견뎌서 이제 그냥은 안 되고 하니까 좀, 그냥 이 구원하는 것보다도 타락을 해 가지고 한번 타락을 해서 이렇게 구원하는 것이 더 완전 구원을 줄 수가 있고, 완전 구원을 줄 수가 있고, 완전 사랑을 줄 수가 있고, 당신의 사랑을 다 주셔서 더 좀 잘 만들어 가지고서 영원히 이렇게 상대해 가지고서 기뻐하고 만족하고 살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당신의 그 사랑이 들어서 타락을 예정했고, 타락을 이루었고, 또 거게서 도성인신해서 대속을 했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사랑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내가 사랑하므로 이 인간을 사랑하므로 뭘 좀, 내가 사랑하므로 내가 희생이 갔다 말이오. 그러면 아내에게 희생이 갔다, 자녀에게 희생이 갔다, 사랑하는 친구 위해서 희생이 갔다. 자기의 사랑의 희생이 감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 말이오, 왜? 내가 사랑의 희생이 사람에게, 주님이 내게 대해서 기울인 것 요량하면 억만분의 일도 안 되지마는 그 사랑을 기울이고 보니까 내가 그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겠느냐? 내 힘이 있고는 그를 누가 해할라고 하면 냅두겠소? 그렇지 않아? 내 힘을 두고는 그를, 그를 다른 사람이 해할라 하면 내가 해하지 못하도록 보호를 할 거라 말이오. 내가 또 힘을 두고는 그에게 행복될 그 길과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쓰지 안하겠소? 또 그에게 유익이 되는 것인데 그이에게 주지를 않겠소? 안 주겠소? 그러기 때문에, 부모가 아무리 거석할지라도 모두 다 보면은, 동생이 지금 뭐 형보다 낫다 하면은 시기합니다. 이래도 '아, 그 아드님은 아버지보다 훨씬 낫겠던데요.' 이 맡은 뻔뻔스레 합니다. 우리가. 다 그래 하요. 하면은 '아들이 나보다 낫다 해?' 이 뿔따구가 돋지 않는다 그 말이오. 그만 그라면 좋아서 '에이구 뭐 그거 뭐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데' 그렇게 할수록 좋아한다 말이오.
'아니, 자제분은 참 아버지보다도 더 위대해지겠습디다.' 자꾸 이랄수록 이 '뭐 그래요' 하며 속으로 기뻐한다 그 말이오. 왜? 자기가 그거 사랑하기 때문에 거기다 뭘 기울여 놨거든. 기울여 놓고, 또 거게다가 자기가 지금 기대하는 욕망이 크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그게 커지는 거를 원한다 그 말이오.
좋아지기를 원해요.
이런 것을 봐서 주님이 당신이 전지 전능이신 데, 당신이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분이 나를 이 세상에다가 구원 이루는 기간으로 두고서 세상에 둬가지고 세상에서, 영원히 당신이 가지고 놀아도 만족되고 영원히 상대해도 만족되고 당신이 심부름을 시켜도 만족하고 일을 시켜도 만족하고 뭘해도 당신이 만족 만족 할 수 있는 이런 그 만족의 대상을 만드실라고 우리를 이 세상에다가 두고 있는데, 당신이 이런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굶어 죽도록 할 건가? 이것을 알면 먹을 것이니, 입을 것이니, 마실 것이니, 뭐 공산주의가 와서 해를 한다 뭐 어짠다 하는 거게 대해서 모든 염려가 우리에게 있을 수가 없다 말이오.
그분이 맡고도 남고 남고 이런데 뭐 염려가 우리에게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염려성이 있는 것은 그분의 지금,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그분이 내게 대해서 기대하는 기대를. 그분이 내게 대해서 투자한 투자를 우리가 못 느껴지는 가운데에서 지금 그런 사람이 되고 있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당신을 자꾸 연구하는데 그 모든 게 다 해결이 돼져요 이렇게 당신이 왜 당신 사랑하는 걸 기뻐하는가? 당신 사랑하는 그것이 진리를 사랑하니까 행복이 돼. 당신이 모든 걸 주시는 것을, 당신이 우리에게 좋은 걸 다 주시는 것을 자기가 믿으니까 당신이 좋아해. 당신이 제일 잘났기 때문에 당신과같이 당신 닮아서 당신같이 되는 것을 좋아해. 자꾸,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유일의 행복되는 방법이요, 유일로 실력있는 방법이요, 유일로 영광과 존영의 가치가 있게 되는 방법이기 때문에 당신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 말이오. 당신 사랑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제일로 좋아하신다는 그것은 우리를 제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 사랑하는 것이 당신이 제일로 사랑하는 우리들이 행복되는 길이기 때문에 당신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기뻐하신다 그거요, 요걸 여러분들이 압니까? 요것만 알아도 알면 뭐 공산주의도 문제가 없고 독침도 문제가 없고 모든 일에 대해서 변동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집니다.
이라고 인제 둘째로 당신이 기뻐하시는 것은 뭘 기뻐하시느냐? 소자 중 하나를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기뻐하신다 말이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거와같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켜서 사랑 안에 거하라. 이 사랑 안에 거하라. 이렇게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내 행복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들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 그러면 계명이 뭐이냐? 계명이 뭐이냐? 그러면, 주님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또 주님의 계명을 우리가 지키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고 했는데 주님의 계명 지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계명 지키는 것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 내 계명 지키는 것이니라. 이것이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방법이니라.' 그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그랬으니까 이제 주님이 둘째로 기뻐하시는 것이, 둘 뿐인데, 첫째 기쁨 둘째 기쁨뿐인데, 둘째로 기뻐하시는 것은 그 소자 중 하나를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기뻐하십니다. 왜 기뻐하는가? 그거 사랑하는 걸 뭣 때문에 그래 기뻐하는가? 기뻐하는 이유가, 기뻐하는 이유가 내나 우리 자신에게 대한 것이라 말이오.
기뻐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내가 소자 하나를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둘째로 기뻐하시는 것은 소자 그게 뭐인데? 당신이 영원 전부터 당신의 사랑의 대상을 만들라고서 이제 거기다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모든 것을 투자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예정하고 모든 걸 창조하고, 이렇게 사랑의 대상을 만드실라고. 해서 이제 모든 것을 기울여 수고도 많이 했고 애도 많이 썼고 모든 것을 막 기울여 전폭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또 고생도 진뜩했고 수고도 진뜩했고 뭐, 진뜩했다 말이오. 한 그 자이기 때문에 당신이, 소자 하나를 사랑하는 것을 기뻐할 수밖에 없다 그거요 주님이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가 느낄 수 있어요.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수고를 하는 것이 고생이 안 됩니다. 기쁩니다. 어떤 사람 보니까 할머니가 늙어 쪼그라져 가지고서 저거 집에 저거 제 자부한테 가 가지고는 뭐, 밥 먹으러 오라고 해도 어야, 어야, 어야 이라며 작지를 짚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기고, 변소도 가면서 막 아프다고 뭐 못 견뎌 쌓는데 딸네 집에 가더만 막 빨래를 하고 이래 가지고서 딸네 집에 가서 빨래를 해주고 뭐 오만 거 이래 하고 난 다음에 고만 와서는 턱 퍼져 드러눕는다 말이오. 왜? 딸을 사랑하니까 그 딸을 위해서 고생을 안 하고는 희생을 안 하고는, 거기다 실컷 고생을 해야 만족이 됐고 희생을 해야 만족이 되고 골탕을 쥐먹을 만치 기진맥진할 만치 이제 정력을 다 기울여서 고만 병이 들어야 만족하다 그 말이오, 딸을 위해서는 병이 들 만치 그래 해야 이제 시원한 것이 마음에 좀 풀린다 그 말이오. 그걸 느낀 여반들 손들어 봐. 그거 해 본 사람들 손들어 봐. 뭐 맹 것이네.
이런 감각 없는 사람들 이래 놓으니까. 왜 OOO권사님은 못 느껴 봤어? 못 느껴 봤어? 뭐 가도 딸네 집에 가면 고만 오만 거 다 하는구만. 다 하는 거 모르는 게 아니라 다 그래. 그러면 딸을 사랑치 안하든지. 어짜든지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수고를 해야 기쁨이 됩니다.
주님이 이렇게 그 소자 하나 그걸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거게다가 있는 거 다 기울여 줬지. 모든 거 다 앞으로도 다 줄라고 했지 또 고생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도 기쁨으로 못 박혔지 이제 고생으로 박히지 안했다 그 말이오. 그런게 사랑한 자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신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주님이 애정을 기울인 그에게 대해서 조심 없이 벌로 하면은,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그걸 이라면은 섭섭하다 그거요 사랑하는, 사랑하는 그 자기의 어린 자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갔는데 이제 그 집에서 아주, 그 지주로서, 지주로 떡 지주가 이제 갔으니까 그 간평, 이 사람들 간평도 몰라. 그 세상 사람 그거 참 아는 게 좋아. 간평하는 것은 토지 매기러 가 가지고서 이제 그러면 지주가 왔다고 막 대접을 잘 합니다. 이거 좀 느끼는 사람 누가 있나? OOO목사는 잘 느끼지. 이제, 이라는데 아들을 하나 데리고 갔다 말이오. 아들 꼬마를 하나 데리고 갔는데, 꼬마를 데리고 갔는데 가니까 뭘뭘 차려 가지고 오면서 이렇게 차려 가지고 음식을 대접하러 오는데 그 꼬마 그게 들어오니까 '아, 너는 뒤에 오너라 너는 뒤에 오너라. 좋아낸다. 너는 뒤에 오너라. 뒤에 오너라.' 이거 이제 저거 아버지만 대접하고 '뒤에 오라. 뒤에 오라.' 하면, 그라면 그 지주 마음이 이제 대접이 되겠소 안 되겠소? 안 먹어. 이 자꾸 대접하면서 자꾸 '많이 자시소. 많이 자시소' 그래도 입에 대지도 안 해 입에 대지도 안 해. 마음에 섭섭하다 말이오. 입에 대지도 안 해. 이 보니까 떡 차려 가지고 오더니마는 지주일랑은 그만 뒷전 돼 버리고 그 아이 그걸 그러면은 이래 거석하고 막 왕같이 이래 막 모셔 재껴서 그라면서 '야, 이게 좋지?' 이거 뭐 이거 아이를 기쁘게 할라고 애를 쓰면은 그 지주 마음이 흡족이 되겠소 안 되겠소? 그런 사건들 여러분들이 느껴 보지 안했소? 그런 게 꽉 찼다 그거야.
이런데,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소자 하나에게 그에게 대해서 참은 것이 주님에게 대해 참은 것보다 낫고, 그에게 대해서 희생한 것이 주님에게 대해서 희생한 것보다 낫고, 그에게 대해 소자 하나에게 대해서 수고한 것이 주님에게 대해 수고하는 것보다 낫고, 소자 그거 하나를 위해서 모든 곤욕을 당한 것이 주님 위해서 곤욕 당한 것보다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주님에게 행한, 직접 행한 것보다 훨끈 낫다는 그 심정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 하나님의 심정이 있다 말이오. 우리가 그것을 느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안해요? 개를 한 마리 데리고, 가는데 어째 그만 따라왔다 말이오. 개를 데리고 갔는데 사랑하는 개라. 애견 인데, 사랑하는 개 인데, 떡 데리고 왔는데 그 집에서 나를 대접한다고 이렇게 뭐 초대를 해서 아주 극진하게 대접을 할라고 이렇게 하는데 내가 데리고 온 개인 줄 알면서 그 개가 이라니까 '이놈의 개 왜 이래 쌓노?' 꼬쟁이로 딱 때리니까 깽 거리며 달아난다 말이오. 자, 그래 깽 거리며 달아나면은 그 개를 때렸는데, 개를 때렸는데 그 맞기는 누가 맞았지요? 주인아 맞았어. 주인이 '아, 여게 더 있다가는 안 되겠다.' 말은 안해도 고만, 고만 빽 돌아갔다 말이오. '아이구 나는 좀 시간이 바빠 좀 가야 되겠습니다.' 고만 떠나 버려. 그놈의 집구석에 있기 싫다 그 말이오.
이래 갔었는데, '이 개가 어짠 개고?' 내나 아무것이가 데리고 왔는데 아무것이 따라 온 개라고. 그렇느냐 하면서 막 고만, 주인에게 대해서 대접할라 하니까 힘이 들지마는 개 그걸 고만 아주 상객으로 그만 대우합니다. 주인보다 더 대우한다 말이오. 주인보다 더 대우하니까 주인이 그 대우를 다 받습니다. '그 개를 왜 그러는가?' 자기가 데리고 온 개라고 그렇게 막 성심 성의를 다 해 대우하는 것 보니까 자기 대접은 틀림없다 그 말이오. 그만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꼭 같소.
이러기 때문에. 소자 하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 대접하는 것이라 소자 하나에게 먹인 것이 나 먹인 것이고 소자 하나에게 물 마신 것이 나 마셔 준 것이요, 소자 하나에게 옷 한 벌 준 것이 나 옷 한 벌 준 것이요, 소자에게 갇혔을 때에 방문한 것이 나를 방문한 것이라 요렇게 마태복음 25장에 말씀했다. 요걸 우리가 실감으로 느껴야 돼. 실감으로 느껴 사실 고것을, 고것을 느끼고 느껴서 사실 그렇겠다 하는 것을 알고 나서 보면은 모든 사람들 생활하는 게 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 생활하는 것이 모두 다 그래.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에게 속한 그 작지 하나라도 벌로 내버릴 수가 없어.
작지 하나도, 그이를 존경하는 데는 그이의 지팡이 하나라도 그이 소유 하나라도, 가만히 보니까 뭘 소제한다 하면서 소제한다 하면서 자기가 쓰는 그 안경을, 보니까, 안경을 뻐뜩 들어 휙 던져 버립니다. 그게 뭐이냐, 막바로? '저 사람이 나를 요렇게 멸시를 하는데 내가 뭣 때문에 대접받는다고 뭐 하느냐? 내가 환장했다.' 아마도 딱 마음을 딱 가집니다. 보니까 이 소제를 이라는데 안경 하나 거기 있으니까 안경을, 가만히 문틈으로 본다 말이오. 안 보이구로. 저 사람은 안 보이고 나는 본다 말이오. 가만히 보니까 안경을 이래 들어 안경을 이라며 요래 호호 불고 이래 먼지를 털더니마는 요래 딱 두 손으로 딱 요랄 때 고걸 보면은 '저 사람이 나를 참 존경하고 너무 지나칠 만치 이렇게 숭배한다고 할 만치 이렇게 하고 있구나. 이제 저 사람이 내게 대해서 아주 참 존경을 하고 이거 존대를 하는구나. 그러면 저 사람은 내게 대해서 저만침 하기 때문에 저 사람은 좀 믿을 수 있다 나를 긁어 먹고 나를 해하고 나를 지금 그렇게 하는 외식자가 아니고 중심에 나를 존대하는 사람이라.' 하니까 그 사람에게 뭘 안심하고 뭘 좀 시킬 수 있다 말이오. 사람의 눈이 안팎에 다 있는 것입니다. 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 하나라도 그런데, 그런데, 자기와의 관련된 그것을 그렇게 할 때에, 천하게 할 때에 그 주인을 천하게 하는 것이며 존대할 때 존대하게 되어 지는데, 주님이 이제 당신이 영원 전부터 그를 사랑해서 목적을 그를 사랑의 대상을 만들라고 정했고 그를 또 그리스도 안에서 정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자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도 했고 그를 위해서 예정도 했고 창조도 했고 모든 섭리도 했고 보존도 했고 십자가 못 박혀 죽기도 했고 죽을 뿐아니라 살아나기까지도 하셨는데 그 대상을 우리가 업신여기면 당신이 암만 그래도 '주여 주여' 눈물을 흘리며 '주여 주를 위해서 순교하겠습니다.' 해도 소자 하나를 거석할 때에 딱 그만 틀렸어.
고만 섭섭해. 주님은 섭섭해 돌아가요.
그래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책에 쓰여 있는 걸 보니까 '주님을 주먹으로 쥐박으면서, 쥐박으면서 주님을 자꾸 사랑한다고, 한 손으로는 사랑한 다고 거머쥐고 못 가구로 하고 한 손으로는 쥐박고 이렇게 모순된 일을 한다.' 그런데 그게 뭐이냐 하면은 형제를, 형제를 사랑치 안하고 형제를 미워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 하는 그것이 주님의 옆구리를 자꾸 주먹으로 쥐 박으면서 주님 사랑한다는 그거 주님 놀리는 소리 아닙니까? 놀리는 일 아니겠어? 주님을 주먹으로 쥐박으면서, 하다가서 '아, 오늘 대접 받고 가이소 점심 자시고 가이소.' 이라며 자꾸 손으로 쥐박으면서 대접한다고 이라면 그 바보로 아는 것이 되니까 하나님이 큰 곤욕을 당했나 말이오 큰 모욕을 당했다 말이오. 그와 같은 것을 우리가 사실로 우리가 깨닫고 그보다 우리 말로 그라는 것의 그뭐 몇천 배 몇만 배 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그 소자 중 하나이니 그에게 냉수 한 그릇을 떠 준 것도 내가 결단코 그 상을 잊지 않겠다고서 말씀을 했는데, 하물며 소자 하나를 범죄케 하면 어찌되느냐? 범죄하면 당신은 죄의 관념이 어떻느냐 하면은 죄만 있으면 사망한다는 그건 틀림없는데 죄를, 범죄케 하는 것은 그 육덩이를 죽이는 것보다도 더한 것이니 육덩이를 목에다 돌을 매 가지고서 바다에 던졌으면. 그 사랑하는 자를 바다에 던졌으면 그분이 얼마나 분하게 여기겠소?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자녀를 누가 돌을 매 가지고서 바다에 던져 버렸으면 여러분들이 좋아하겠소? 얼마나 분개하겠소? 이걸, 나 못 할 일 남도 못 한다 그 말이오. 내 마음을 짚어봐서 남의 마음을 알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걸 생각해서 주님의 심정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 말이오.
이거는 특별 계시로 알아야 되고서 이 모든 자연 계시의 만물들, 인간들과 모든 만물을 봐서 알아야 되고 영감으로 알아야 되고 자꾸 당신의 사랑을 알면, 이러기 때문에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내 계명 지켜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하는 내 계명이 뭐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이 네 형제를 사링하는 것이니라 이보다 더 큰 형제를 위해서 목숨 버리는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너희들이,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으니 너희들도 형제를 위해서 뭐라 했습니까?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안했습니까?1 이런데 이 형제를 범죄케 하는 것을 어떻게 여길 거냐 말이오. 이 형제를 범죄케 하는 거는 육덩이 죽이는 것보다도 그거는 더, 참 강하게 멸하는 것인데 오히려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했으니까 범죄케 하는 것이 더 해독이 크다 하고 더, 주님이 사랑하는 자를 해친 것이라 말씀하셨으니까 육신 죽이는 것보다 주님의 사랑하는 자를 범죄케 하는 것은 더, 육신 죽이는 것보다 더 해쳤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면 당신 마음이 어떨 것이냐? 그러기 때문에, 아말렉 족속에 보면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구원할라 할 때에 방해한 그것을 그냥 멸하지 안하고 종자를 더 많이 퍼지게 해 가지고서 하나도 남기지 안하고 전부이 다 멸하라 했습니다 사울 왕이 아각이라 하는 그 사람 한 사람 남겨놨다가 이제 그 사울 왕을 당장 목을 베 버렸습니다. 왕을 그만 대번에 목 베었어. 그러니까 왕노릇 한다 해도 왕권은 그만 벌써 뺏겨 버렸어 왕권은 벌써 다윗에게로 갔다 그 말이오. 생명 있는 것 다 죽이라 했어. 생명 있는 것 다, 짐승이 무슨 원수가 졌겠소? 짐승까지 다 죽이라 했어 그런데 짐승 몇 마리 남겨놨다가서 그렇다 해서 큰 화를 당하지 안했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이나 우리나 꼭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라 이것이 모든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섭섭한 일, 네가 섭섭한 그것은 곧 나도 섭섭하고.
네가 원하는 건 나도 원하고, 네 맘이나 내 맘이나 꼭 같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공자 유교에서는 말하기를 '인심이 즉 천심이라' 사람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라 그렇게 이 모든 통계를 맞춰 가지고서, 그들은 바른 하나님을 찾지 못했고 범신론이지마는 이제 우주에 참된 존재가 있다고, 하면은 그분 심정은 곧 우리 인간의 심정이라 인간의 심정을 비쳐 가지고 그를 알았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자연 계시는 뭐이 자연 계시냐?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을 보면 알고 하나님의 섭리를 보면 알고, 인간들의 마음 구조를 보면 환하게 알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그 느낌 주님도 그래 느낍니다. 내가 섭섭한 그저 주님도 섭섭합니다. 내가 기뻐하는 것 주님도 기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 주님도 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은 주님이 기뻐하실까 저래 하면 기뻐하실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당신이 사랑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한 당신이 피로 구속하시고 영원 전 목적으로 정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이 하나를 사랑함이 당신을 직접 사랑하는 것보다 좀 못하겠소 낫겠소? 이걸 똑똑히 여러분들이 느껴 봐요.
그러면, 당신을 내가 직접 사랑하는 사랑을, 말하자면 당신을 내가 직접으로 주먹덩이만치 사랑했습니다. 주먹덩이만침 사랑하고 당신이 사랑해서 못견뎌서 모든 걸 다 기울이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끼지 안한 이렇게 기울이는. 이렇게 사랑하는 그 대상이 있는데 그 대상을 사랑함으로 주먹덩이만침 대접을 했으면 주님은 당신에게 직접으로 주먹덩이만치 사랑하고 대접한 것과 당신이 사랑하는 자를 주먹덩이만치 사랑하고 대접한 것과 두 대접에 대해서 당신이 마음 중심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마음에 감동되는 것은,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당신이 사랑하는 그 대상을 사랑하고 대접한 것일까요, 당신을 직접 사랑하고 대접을 한 것일까요, 어느 건지 한번 대답을 한번 이제 하도록 한번 내가 물어 볼 터이니까 한번 대답을 하도록 거석해 봐요. 어떤 건가? 손을 든 사람은 남 보고 들지 말고, 똑똑히 지금 그라면, 직접 당신을 주먹덩이만치 사랑하고 대접하는 것과, 대접한 것과 당신이 사랑해서 못 견뎌서 모든 걸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다 기울인 사랑의 대상이 되어 있는 그자를 이제 주먹 덩이만치 사랑하고 대접한 요 둘에 대해서 어느 걸 당신이 더 기뻐하시고 감동이 되고 좋아하고 그 대접한 사람을 좋아할까? 대접하는 사람을 좋아할까? 이제 여게 대해서, 그러면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대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는 이래 봐 가면서. 그래 가지고는 죽어. 속에 악을 빼 버려. 악독을 빼 버려. 악독은, 자기 중심을 빼 버려. 자기 중심을 가지고는 이 도를 듣지 못해요. 자기를 부인해야 되지.
그거라. 이제까지 해석하지 안했어요, 여러분들한테 해석하지 안했어요? 강아지가 한 마리 따라 왔는데 보니까 '야, 그 개 어데 갔지, 개 어데 갔지. 개 어데 갔는가 살펴 봐라. 어데 갔다 안 잃어 버렸나? 그 뭐 개 어데 안 나갔나?' '또 그 개 지금 어데 이웃 집 개하고 싸울라. 봐라, 봐라, 살펴라.' 이거 온 식구가 손님, 이 지주가 왔는데 지주에 대해서는 뭐 어데 갔는지 생각도 없고 그만 온 식구 정신이 전부가 그 개 한 마리에 기울여져 가지고 있습니다. 개 한 마리에 기울여져 가지고 있어. 그래 기울여져 가지고 있으면 '이 사람들이 미쳤나 정신이 빠졌나 그 개에만 정신 다 기울이고 내게 대해서는 생각도 없네' 이리 되겠습니까, 당신 뭘 대접을 못 해도 '아이구 이 그라다 보니까 이거 뭘 대접을 못 했어요.' '괜찮아. 괜찮아. 뭐 좋아요.' 그만 만족을 하고, 저렇게 내가 데리고 온 개라도 저렇게 내 게 속한 개라고 저렇게 대접을 하는 것 보니까 의례히 그 지주야 대접할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안해요? 우리 사람도 그렇다 그 말이오. 주님은 더욱 더 그래 그러기 때문에, 이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요 행치 안한 것이 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건 다 기록 안 했는데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에 쭉 내려보면은 '원편에 있는 자에게 내가 굶을 때에 먹을 거를 주지 안했다.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보지 안했다.' '언제 그랬습니까?' 그 말씀 해 놨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행하지 안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하지 안한 것이니라. 너희들은 영영한 불로 들어가라.' 얼마나 분하게 여겨서 복수했습니까? 이러니까, 이런 줄 알고 우리가 주님의 택한 형제 하나에게 대해서 하는 것을 신중히 하고 그저 주님을 보면서, 개를 그라는 거는 뭐이냐? 개 그라는 것은 주인이 좋아할 줄 알고 '야' 떡 주인을 이거 지주를 좋게 하기 위해서 '야야야 이거 개 어데 갔노? 개 봐라. 개 그 먹을 것 좀, 뭐 뭘 먹노 잘 먹는 것 좀 좋은 것 졸 잘 줘라.' 이 주인 들으라고 한다 말이오. 주인이 그 말 들으니까 주인이 좋아서 '에이 그거 괜찮아요. 그만 그래 뭐 냅둬요. 그래 신경 쓸 거 없어요.' 이래도 속으로 빙긋하면서 자기 대접하는 것보다 좋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소자 하나를 이렇게 대접할 때 주님을 사랑하므로서 그에게 대접을 하고 그렇게 귀중히 취급해서 이렇게 하는 것을 주님이 그렇게 좋아하신다 그거요. 그런데, 택한 자를 알아야지. 믿는 자도 믿는 자라고만 택한 자라 할 수 없습니다. 김 일성이 저거도 택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택한 자인지 모르니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택한 줄로 알고 또 모든 사람이 다 택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싶은 그 심정을 가지는 것을 또 주님이 기뻐하신다 말이오. 모든 사람이 다 택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심정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시고, 또 이 사람도 대할 때에 주님이 택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접하면 그 사람이 비록 택함을 받지 안한 사람이라도 나는 그 사람이 택한 사람으로 알고 대접하기 때문에 그 대접은 주님이 택한 자에게 대접하는 거나 꼭 같이 대접을 받고 만족하신다 그거요. 이러니까, 소자 하나를 범죄케 해 가지고 어찌 되겠습니까?
이런데, 그저 돌아다니면서 중얼중얼, 마귀란 놈이 들어가 가지고 요 사람하고 요 사람하고 이간을 붙이고, 또 조 사람에게, 사람이 나쁜 일이 있을 수가 있는데 고 나쁜 걸 살며시 전달해 가지고서 고 사람으로 하여금 고만 고 말 들으면, 좋은 줄 알았는데 그 말 들으면 '그래' 사람을 속에 악한 것을 자꾸 집어 넣어 가지고서 기억하도록 하고, 사람으로 더불어 벌어지도록 만들고, 사람 존경이 없어지도록 하고, 사람 애호가 없어지도록 하고 사람에게 다 소망 가진 것이 자꾸 없어지도록 하고 요 자를 주님이 미워하신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제일 미워하기는 야고보서, 야고보서 3장에 보면은 혀로 가지고서 나쁜 말하는 그것을 주님이 고렇게 분개했어 혀를 가지고 다니며, 이 혀는 윤회하는 만물을 지옥불로 사루는 것이 혀다 입술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이 형제를 죽이는 것을 그렇게 분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제일 미워하는 지체가 뭐이냐 하면은 혀요. 혀, 혀를 주님이 제일 미워합니다. 미워하는 중에 혀를 제일 미워해. 혀를. 제일 미워하는 지체요, 그다음에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지체가 뭐이냐 하면 우리 혀라 말이오. 그 혀로 가지고서 자꾸 이 사람 살리고 저 사람 붙들고 저 사람에게 유익 주고 자꾸 이라니까 그 혀는, 그래서, 내 사랑하는 자의 혀 밑에서는, 혀 밑에서는 젖과 꿀이 흐른다, 젖과 꿀이 흐른다, 이래 가지고서 자꾸 입에서 나오니까 사람을 살린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아 눈을 빼 버리라, 발을 빼 버리라 하는 그 말은 둘 가지고 지옥 가는 것보다는 하나 가지고 천국 가는 게 낫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제 이 우리 육신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지 영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오. 육신의 기능은, 자기가, 예를 들어서 만일 열 가지 지체가 있지 않습니까? 열 가지 지체가 있는데, 백 가지 지체라 합시다. 백 가지 지체가 있는데 아흔 아홉 가기 지체로써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뜻대로 살았으니까 현실에 살았으니까 구원이 안 됐습니까? 그거 영생이 됐어 다 영생으로 다 합격이 됐다 말이오. 합격이 됐지마는 아직까지 그것은 미결입니다. 합격이 됐지마는 구십 구는 다 이거 의롭게 해서 합격이 됐지마는 구십 구에 하나 요게 지금, 요게 자꾸 죄를 짓고 있다 말이오. 하나 요게 죄를 짓고 있어. 하나 요게 죄를 짓고 있으면 구십 구가 의롭게 한 것이 의로 인정이, 의로 완전히 심판에서 완전히 인정이 됩니까 아직까지 미결입니까? 미결이라 그 말이오.
저 사람은 모든 것 다 좋은데 그놈의 손으로 가지고 자꾸 투전을 해 자꾸 노름을 해. 노름을 하니까 그 사람 뭐 전 사생활이고 공생활이고 모든 면이 다 좋은데 요 손 가지고 노름을 해. 손 가지고 노름하니까 노름하다가 들켰다 말이오. 들켰으면 그 사람 손만 끊어 가지고 감옥에 가둡니까, 온 전신을 감옥에 가둡니까? 뭘 가둬? 전신을 감옥에 가둬, 다른 지체는 전부 다, 구십 구는 다 잘했는데 하나 잘못했다고 전신을 가둬? 하나 잘못했지만 그거 한테 붙었거든.
한테 붙었기 때문에, 주욱 꿰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느 지체 하나가 범죄하는 지체가 있으면, 그러기 때문에, 다른 지체가 온전해도 그것은 아직까지 고 개별적으로는 완전이 돼서, 고게 승리를 해서 고게 승리했지마는 승리했지마는 조거 하나 고것만 돼 버리면 요게 다 한목 돼 버리는데 아직까지 완전 결정은 못했다 그 말이오. 못 했기 때문에 요것이 미결인고로 요게, 요거 하나 때문에 네게 지금 그래 가지고 있으니까 요거 차라리 싹 끊어 버리고 나머지기, 그거 없애 버리면 다시 그 죄 안 지을 수 있으니까, 죄 안 짓게 되니까 이제 나머지기는 합격이 된다 그거야.
우리가 재판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재판을 할 때도 재판에서는 증인 재판을 하는데, 증인이 와서 증거를 해 주는데 이제 그 증인이 백 명인데 구십 구명이 증거를 해서 이 사람이 승소를 했습니다. 승소했으면 완전 승소요 아직까지 미결이요? 증인 하나 남았다 말이오. 하나 남은 그게 뭐라고 할란지 몰라. 그러면 완전 승소가 아니라. 완전 승소가 아닌데 하나님은 그게 엉뚱한 소리를 떡 해 가지고서 그 재판이 이기지 못하고 미결로 다 기울어질 수 있다 말이오. 나중에 그 한 사람이 증거를 하는데 구십 구 명 증거한 거는 다 거짓 증거고 이 한 증거가 옳은 증거면 나중에 한 사람 증거하고서 그 재판을, 시비를 패소할 수 있다 말이오. 질 수 있다 말이오. 그런 거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 지체가 범죄하면 차라리 그 지체 때문에 모든 지체 이것이 다 해 놓은 의도 소용이 없어. 그게 다 미정이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미결돼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미결돼 있으니 고대로 미결된 대로 가면 미결된 거로 가면 심판에 정죄되고 만나 말이오. 미결된 그걸, 이제 그것이 없어져 버리면 다시 그거는 죄 지을 수 없잖아? 그 지체가 눈으로 죄 짓는데 눈 뽑아서 없애 버리면 죄 못 짓지 않아? 못 지으면 그거는 못 지으니까 그걸로써 이제 의는 행하지 못하지마는 다른 걸 더럽히는 것을 더럽히지 못하게 되다 보니까 다른 거는 온전함의 구원을 얻는다 그거야.
이런데,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알아 놓는 것이 필요한 것이, 모르는 사람은 죄를 지을 때 죽을 때도 죽을 때는 이 지체가 다 죽으니까 문제 없지 않해? 죽을 때는 죽는 사람이 죄 짓습니까? 이제 죽는 사람이 죄를 안 지으니까 끊어내 버린 거나 꼭 같지마는 진리를 알아야 그때 회개를 하지 진리 모르는 사람은 그때 회개를 못하기 때문에 이 모르는 사람은 큰 모두때기로 손해를 본다 말이오. 이 아는 사람은 이것 때문에, 하나 때문에 못하니까 항상 가책을 받고 이것 때문에 미결로 돼 가지고 하나님의 권능이 오지 못하고 이거 하나 때문에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지마는 죽을 때는 끊어내 버린 거와같이 이것도 다 이제 볼 일 다 봤고 이거는 다시, 죄 짓는 볼 일 다 봤으니까 그때는 세상에 죄 지을 기능 하나도 없으니까 그때는 이제 이걸 회개를 하고서, 이 회개를 하고서 이것이 죄 안 짓기로 작정을 하고 회개를 하고서 이래 하니까 고 마지막에 죽을 때 회개함으로써 이제 미결되었던 것이, 고것이 해결이 돼서 구원을 이루어 갈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게 좋고 평소에 이거 많은 승리를 해 가지고 모아 눙는 게 좋아. 평소에 승리해 놓은 거는 그때 승리가 되지만 평소에 승리 안 해 놓은 거는 그때 암만 그때 할라 해도 안 돼.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승리해 놓은 것 이것이 그때 효력을 내고 평소에 승리해 놓으나 어느 부분의 승리하지 못한 걸 인해서 승리해 놓은 것이 마지막에 결정에 승리로, 완전으로.
승리로 그렇게 통과를 못하고 그것이 그거 하나로 인해 가지고서 지옥 가기 때문에 끊어 버리는 게 좋다.
그러면, 끊어 버리는 걸 지금 끊어 버릴 수 있으면 지금 그 의로운 거 가지고서 활용을 할 수가 있고 마지막에 죽을 때 그걸 끊어 버리면은 활용은 못하고, 활용은 못하고 이제 이것이 이제 의로 판결은 받기는 받는다 그 말이오. 이거 그때 끊어 버려서 회개했으니까. 그러니까 마지막에는 다 끊어 버리는 거 아닙니까? 마지막엔 끊어 버리지마는 그걸 알아야 그때 회개를 하지. 그러니까 지금 끊어 버리면 그 죄 짓는 걸 끊어 버리니까, 이제 죄 짓는 게 없어져 버렸으니까 이거는 다 합격돼 가지고서 의의 병기로. 의의 병기로 활용을 하는데 이거 의의 병기로 활용을 못 한다 그 말이오. 지금. 미결이 돼 있기 때문에.
이러니까 이거 끊어 버리면 의의 병기로 활용하는데 끊어 버리지 안해서 활용을 못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죽을 때에 끊어 버리니까 그는 구원을 얻지마는 의의 병기로 활용은 못하기 때문에 활용한 수입이 없다 그거요.
그런고로, 고것을 가리켜서 말을 합니다. 그러고,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그의 천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는다 그 말은 우리 한 사람에게, 사람에게 맡은 천사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다 맡은 천사가 있어. 천사가 있고 또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도 지금 한 사람에게 다 저거 군대를 풀어 넣어 가지고서 책임 맡아 가지고 맡겨 가지고 있고 또 천사도 맡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면 천사가 맡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이 그 하나님의 뜻에 옳은 일을 하면은 이 천사가 하나님에게 직접 옳은 것을 고하고, 또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을 고하고, 다른 사람이 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은 해친 것을 고하고 다 고발한다 말이오. 직고를 해요, 직고. 직접 고해진다 말이오. 안면을 보고 있다 그 말은 항상 대면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보고 직접 고하고 고하고 이래 되기 때문에 이 비밀을 깨닫고 네가 사람에게 대해서 해를 끼치든지, 사람에게 해를 끼쳤으면 해 끼친 것이 직접 아버지에게 직고 된다. 사람에게 네가 의를 행해서 사람에게 유익을 끼쳤으면 그것이 직고된다. 사람을 속여서 억울케 했으면 직고된다. 사람을 이간 붙이면 직고된다.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천사들이 있어 가지고, 책임 맡은 천사들이 있어 가지고 직고되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을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렇게 말씀했어.
"소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항상 그 앞에 있다 말이오, 고발자가 그 앞에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의를 행하는 것도 그게 직고되고, 선을 행하는 것도 악을 행하는 것도 직고되기 때문에 거게서 결정이 됩니다. '요놈은, 요거는 안 됐다. 요거는 어떻게 처벌을 해야 되겠다.' '요거는 요 행세가 요러니까 요 행세를 통계해 보면은' 요새 뭐 콤퓨터 가지고 통계가 된대요. 통계가 되는데 하나님은 콤퓨터를 만든, 두뇌를 만든 분이기 때문에 한 사람 머리에 천 억을, 콤퓨터 천억을 만들어 놓은 그분이 얼마나 명철한 분이요? 그분이 딱 계산해 가지고 '요거는 요걸 돈을 줬다가는 이게 몇십 배나 구원에 해독이 되겠다' 돈 안 줍니다. 요거는 권세를 줬다가는 안 되겠다. 요거는 건강을 줬다가는 안 되겠다.' '요거는 뭣 줬다가는 안 되겠다. 뭣 줬다가는 안 되겠다' 이제 해로운 것을 당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줄 수 없다 말이오. 안 주고, '요거는 줘도 되겠다 요거는 줘도 되겠다.' 줘도 될 수 있어 줘서 당신이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줘 가지고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사람만 된다면 당신이 주는 것은 뭐 당장 일시에 천하에 그 으뜸이 되도록 할 수가 있다 그거야.
이러니까, 우리의 모든 회개에 여기 모두 생사 화복이 다 있다. 흥망 성쇠가 다 있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걸 귀넘어 듣는다 말이오. 마귀란 놈이 배암이 와 가지고 자꾸 이걸 깔아 뭉케 없애 버리요. 그러니까 우리가 요 진리를 깨닫고 똑 진리대로 바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저 가서 새김질 해요. 새김질하는 거 기도하러 가 가지고 그냥 아무나따나 '뭐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하면은 하나님을 귀찮스럽게 하는 거라. 그래 하지 말고 자꾸 요 한 말씀을 들어 깨닫고 요 말씀을 새김질하고 새김질하면은 속에 불이 나와요. 힘이 나와요. '주여, 옳습니다.' 깨달으면 깨달은 것만치 힘이 나요. '주여 옳습니다. 나도 요렇게 살겠습니다.' 깨닫고 보니까 요거 잘못됐다 말이오. '주여, 내가 이렇게 한 거 참 잘못됐습니다.' 깨닫고 잘못됐다고 사과해야 그것도 주님이 기뻐하시고, 깨닫고 주님 앞에 하겠습니다' 해야 기뻐하시고, 깨달으면 깨달음으로 힘 나오는 그 힘이 무슨 힘입니까? 그 힘이 무슨 힘이지요? 깨달음으로 그 깨달음에서 나오는 의로운 힘이 그게 무슨 힘이요? 예? 진리의 힘, 예? 영감의 힘, 영감은 뭐이요? 영감은 하나님이오. 성령은 하나님이오. 하나님의 힘이요 진리의 힘이 다 거게서 나옵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생각할 때 깨달아짐으로써 나오는 그 힘이 나오면서 깨달아지면서 '주여, 나도 주를 위해서 죽겠습니다. 주여, 죽겠습니다. 죽기를 진정 원합니다.' 깨달음으로 요랄 때에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와 역사하는 것이고 진리의 능력이 와 역사하기 때문에 이러므로서 뺨을 맞으면서, 뺨을 맞으면서 내가 장생골 집회 때 은혜 받은 그걸 생각합니다. '그때 어떻게 어떻게 은혜 있더라' 그때 은혜가 있기를 원하면 그때 은혜가 따라옵니까? 안 따라오요. 어떤 부흥사가 고함을 지를 때 그때 감동됐는, 그 감동이 옵니까? 그 감동 따라 못 옵니다. 안 오요. 또 옆에 다른 사람이 권면할 때 이리이리 권면할 때, 권면할 때 받은 바의 그 은혜 힘이 나오는 그 힘을 생각해도 그 힘이 따라옵니까 안 따라옵니까? 따라오요 못 따라오요? 못 따라온다 그거야. 못 따라와. 다만 뭣만 따라올 수 있어? 이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진리는 내가, 저 뺨을 맞으면서 생각할 수 있어. 그 진리를 생각한, 진리를 생각하니 속에 그만,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 들어가 가지고 진리를 생각하니까 그만 찬송이 나와 주여!! 고함을 지른 것처럼 이렇게 그만 찬송이 튀어나왔다 말이오. 찬송 터져 나온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러니까 지진이 났고 옥문이 열렸고 뭐 죄수들이 다 풀렸고 야단을 했다 말이오. 그 하루밤에 빌립보 교회를 세운 교회요.
이러니까, 이제 우리가 요 진리를 들어 가지고 고걸 평소에 연습을 해 자꾸 이래이래 기도하기를 이라다 보면 옆의 사람 때문에 못하지마는 보면, 어짜다 고만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그래. '주여!' 이게 나온다 말이오. 고만 이래 나왔다 말이오. 힘이 나온다 말이오. 힘이 나오는 그게 뭐이냐 하면 세상을 이길 전능의 하나님의 힘이요, 그게 진리의 힘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 깨달아 가지고 고 말씀을 새김질하는 데에서 힘 나오는 고 힘을 가지고서 신앙 생활하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