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15:01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심
본문 :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 말은 나를 먹는단 말은 양식을 삼는다는 말인데 예수님을 자기의 전 생애에 양식으로 삼는다면 예수님을 자기의 전 생애에 힘의 재료로 삼는다면 나로 인하여 살리라. 무슨 돈을 그 사람 힘에 재료로 세상은 자기가 사는 힘이 어데서 나오느냐 자기의 사는 힘이 어떤 사람은 재물에서 나왔고 사람은 어떤 사람은 권세에서 나왔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서 나왔고 별별 종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머리 써 가지고 공부하는 것도 애로를 참은 것도 저 사람이 뭣 때문에 저렇게 참는 힘이 있으며 저렇게 온갖 좋지 못한 조건 속에서도 공부하고 있는가 땀을 흘리고 있는가 속을 썩히고 있는가 보면 그 힘이 다 뭘로 말미암아 생기겼느냐 그것을 그 사람의 힘의 양식이라 할 수 있소.
그 사람의 힘이 무얼 먹고 저렇게 힘이 생겼느냐 통털어 말해서 안하든 사람들은 세상을 먹고 그 사힘이 나왔습니다. 세상 때문에 그 힘이 나왔소. 아 어짜든지 참고 견뎌서 이번에 시험에 함격만 되면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참고 견뎌서 이번에만 인정을 받고 등용을 당하면 그 힘이 들어 전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양식이더라 그 말이오. 깨닫겠습니까?
그렇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은 그 힘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서 피와 살을 찢어 대속해 주신 이것이 그 힘의 원인이 되야 됩니다. 아 저 사람이 좋은 자기 형편은 두고 잘 먹고 잘 입고 대우 받고 아주 기분 좋게 인기를 끌고 살 수 있는데 왜 저걸 버리고 저 길을 가는가 그 이상하다. 그 길을 가는 것이 그것이 정신이 이상이 되 그런가 그 무슨 충격을 받아 저럴까. 무슨 힘으로 저럴까. 또 그런데 그렇게 기도로 사는 사람이 아주 생활에 곤고해도 기쁘고 즐거움으로 해나가니 저거 무슨 힘일까 아 옆에 사람이 볼 때에는 피곤해도 기도만 해도 항상 기쁨을 여기고 소망 중에 가니 저 힘이 어디서 나왔을 까 명예냐 아니야 부자의 것이냐 아니야 다른 사람이 존대하는 존대냐 아니면 그러면 무슨 어떤 사람이 좋아 해서 그 사람을 인함이냐 아니야 무엇 때문에냐 그것은 예수님에 미쳤어.
예수 때문에라 다른 것 때문에 아니라. 예수 때문에 다 예수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를 대형 대형 대생으로 모든 부요와 생명과 모든 것을 다 바쳐줌으로써 자기를 구속하신 그기 뭐인지 거게 매여서 끌려서 거게 붙들려서 거게 빚이져서 거게 미쳐서 거게 반해서 그로 인하여 저 사람은 뭐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욕 얻어 먹는 것도 수치도 저 사람은 그를 인함이라면 못견딜 기 없고 못할 게 없고 못 갈길이 없고 못 당할기 없고 그건 피와 살을 먹는 사랑입니다. 이 사람은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러니까 그 사람의 사는 동기도 예수, 목적도 예수, 방편도 그 방편인 예수 이것이 나로 인하여 살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땅 위에 있는 동안에 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산다 그 말은 자기 보이는 주위 환경 주위 형편 사정 거기에 충격되어서 거기에 피동되어서 살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산다 말은 자기안에 계시는 주님과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 이것에게 피동되었으면 성경 말씀에게 피동되었으면 자기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영 그리스도 영에게 감동되어 거게 피동 돼서 이렇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요 이것이 주로 인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보다는 좋아졌습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 증거한 것은 이들이 나 있으면 예수 믿고 나 없으면 예수 안 믿을 사람들인데 지금도 그런가 해서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 나와 보니까 그래도 새벽 기도 나는 숫자가 그렇게 많은 차이가 없는데 대해서 대단히 기뻤습니다. 그러나 기쁜 일이 있으면 찬송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하라 했는데 기도해야 될 터인데 이를 더우기 기도해야 될 책임을 가진 사람이 기도하지 안하고 이제는 목사님 안 나오시니까 요새는 새벽기도 가고 편하게 자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자기 의무와 책임도 모르는 사람이고 또 외부의 끝트며리에 피동돼 사는 사람이지 성경에 피동도 사는 사람도 아니고 영감에 피동되어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성경에 피동되는 것은 영감 피동의 중매쟁입니다. 영감 피동의 중매쟁이요.
성경대로 살아야 성신의 감화 감동에 피동되는 그 피동에 도달될 수 있소 성경대로도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감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감이 오고 싶지마는 접선이 안되는데 어떻게 되겠습니까. 되기를.
그런고로 이 세상에 자꾸 주위 환경을 하나님께서 바꿉니다. 이런 환경 저런 환경 하나님께서 바꾸시고 같이 접촉하고 있는 사람도 그 사람이 하루 열두번이 아니라 스무 번도 더 변하지요. 더변해집니다. 저래 변해지고 접촉하는 사람이 이래 변하고 저래 변하고 그 사람이지마는 말과 행동이나 정서나 모든 것이 다 변해진다 그말이오. 자기보다 신앙이 나은 사람은 그 사람이 신앙으로 변해지고 자꾸 신앙으로 하나님을 따라 움직일라 하니까 변해지지 변해지고 그 다음 사람도 변해지고 변해지는데
그렇게 변동 많은 환경으로 하나님이 만드는 이유가 무었입니까 그 이유는 이렇게 변동이 많애도 요래도 고기 피동되지 안하고 저래봐도 피동되지 안하고 요래봐도 피동도지 안하고 저래봐도 피동되지 안하고 아무리 환경이 이리 저리 변해저도 좋아도 거게 피동되지 안하고 나빠도 피동되지 안하고 악해도 피동되지 안하고 아름다워도 거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자기 보이는 이 환경에 이렇거나 저렇거나 주님에게만 피동될 수있는 요 사람이 되어야 요것이 완성입니다. 요걸 알아야 되요.
이런데 아 목성 안나오면 기도하는 것은 과거보다 기도를 더해야 될 터인데 그거는 이 성경이 가르치고 영감이 가르치겠지 이렇게 가르치지마는 그만 안나오면 새벽기도 안나오고 나오면 안나오면 늦게 늦게나오고 그만 안나오고 이런 것도 자기가 주님에게 피동된다면 목사님이 안 나온고 새벽기도 안나와도 (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저런 변해가는 그 환경 속에서 환경에 피동되지 아니하기를 노력하고 환경이 변하는데에 자기를 적어도 환경이 자구 변해가지마는 적어도 주님이 말씀의 법칙 안에서 사는 것만은 적어도 해야 되고 그것으로 성경이 알고 성경 법칙 안에서 살아 성신의 감화 감동에 도달돼서 영감과 자기와 하나되어 영감에게 피동돼서 사는 이것이 되기를 연습을 해서 날마다 이 일을 연습해 나가야 됩니다.
이기 연성되면 죽음이 왔다고 죽음에서 살아날 길이 났다고 거게 피동되겠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데 죽음이 갑자기 와 가지고서 죽음에 위협이 왔을 때에 그 죽음에 위협에 피동되지 안하는 그 일이 자기가 지금 죽음 수고에 들어 있는데 다이엘처럼 지금 다리오 왕의 말을 들으면 안죽고 안들으면 죽는데 죽음에서 구출하는 구출이 왔는데 그 구출에 피동되지 안하고 구출은 생명 아니겠소 죽음도 피동되지 안하고 또 생명에도 피동되지 않는 그 거게 피동되지 않는 것이 결심이나 자기 아는 노력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평소에 하나님 이에 다른 거에게 피동되지 않는 그기 연습이 되고 차차차차 연습이 돼서 연성이 되어서 이제 주님에게만 피동되는 요기 연습이 돼야 최종인 사망에게도 생명에게도 생명에게도 피동되지 아니하고 그럴 때에 주님에게 피동되는 그 사람이 순교자라 그기요 그것이 순생자라 그기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꾀어 가지고 안됩니다. 세상 일이야 그까짓 것 무식한 것 자가 일생동안 날뛰는 것보다 지혜있는 자가 하루 동안만 힘 쓰면 그 사람보다 수입을 많이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단 방법이 외에 그기만 이런 데 있지마는 예수님 믿는 일을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또박 또박 꼭 진실로만 걸가야 되지 다른 길은 용납이 안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잘난 사람이 많이 속아서 실패한 사람이 적고 못난 그것이 속아서 실패한 숫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돋교 안에 성공은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못난 사람 숫자가 많소 그 못났기 때문에 다른 수단 쓸라지 안하고 자기 힘 있는 대로 또박 또박 진실로 걸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그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