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7 15:00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심
본문 : 요 6:53-5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양식과 양식을 먹는 그 자체와의 관계점을 인용한 말씀인데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이것으로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다. 그러면 떡이라는 말이나 양식이라는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의 전체를 떡이라 했고 또 여기 예수님의 피와 살을 양식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떡과 양식은 이미 살아있는 자에게 필요하지 죽은 자에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자는 양식으로만 그 살아있는 생명이 보존됩니다. 어떤 생명이든지 그 생명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면 그 생명은 유지되지 못하고 끊어집니다. 또 생명체 그것이 생명을 가진 그것이 양식으로만 새로워지지 양식이 아니면 새로워지지를 못합니다.
또 생명가진 그것이 양식으로만 힘을 얻지 양식외 다른 것으로서는 힘을 얻지 못합니다. 또 생명가진 그것이 양식으로만 자라가지 양식외에 다른 것으로서는 자라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의 구속을 입은 선택을 입고 또 부름을 입고 모든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요소가 종자적으로 살아났다 할지라도 이 살아난 것이 꼭 보존되고 유지되고 또 새로워지고 또 그것이 힘이 있어지고 또 자라고 하는 데에는 예수님으로 인하여서만 됩니다. 예수님으로 통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생각도 예수님을 생각하는 예수님을 생각하는 이 생각으로 인하여서만 그 생각에 산 것이 보존되고 산 것이 새로워지고 산 것이 깨끗해지고 산 것이 힘 있어지고 산 것이 자라지 이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또 사모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이 사모로 시발이 되어서 이 사모로 인하여서만 그 사모속에 있는 요소는 보존되고 새로워지고 힘 있어지고 또 자라고 아름다워집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구속의 절정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피와 살을 말하는 것은 절정을 들어서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피와 살을 말하는 그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전 목적과 예정, 창조, 계약 선포, 도성인신 물론 에덴동산 역사하는 것도 물론 다 들었다. 이 전부 근원부터 다 이루셨다고 하신 이 절정까지를 다 포함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에 속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는 순전히 당신의 능동으로만 주셨고 인간이 받을 무슨 요소를 가지고 인간의 노력이 첨부되어서 받은 것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께서 죽은 자에게 생명의 씨를 주셨다. 일단 받은 생명의 씨가 이것이 보존되고 새로워지고 힘 있어지고 아름다워지고 성장되는 것은 예수님의 이 구속의 공로로 된 모든 생명의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의 모든 것을 새김질할 때 보존도 되고 유지도 되고 새로워지고 보기에 아름답게도 되고 건강하면 아름답고 쇠약하면 흉합니다. 아름답게도 하면 빛이 난다 말이오.
또 성장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이렇게 사모하면 자연히 예수님께서 주신 이 구원을 베푸실 때에 어떻게 해서 베푸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낮아지심으로 가난해짐으로 또 모든 고난과 인내로 마지막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이 공로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 성질적은 방편 방편의 성질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이 구속의 은혜를 어떻게 보존하며 또 새롭게 하며 힘 있게 하며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자기가 할 그 의무적 방편을 알게 됩니다. 그리되면 자기에게 있는 생명의 모든 요소의 모든 것이 소생되어 집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피와 살, 구속을 사모하고 연구하는 여기에서만 모든 생명에 속한 것은 다 새로워지고 성장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돈벌이 하는 데에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생각할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예수님의 피와 살이 구속에나 쓰이지 돈벌이 하는 데야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하겠습니다. 또 자기가 난제를 당면했을 때에는 그 난제를 생각해야지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생각한다 해 가지고 무엇이 되겠느냐 이렇게들 생각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모로 예수님을 연구하고 예수님을 사모하고 예수님을 자기가 지식으로 영접하게 되고 또 자기의 모든 마음으로 마음의 온갖 요소로 영접하게 되고 몸의 온갖 요소를 영접하게 될 때에 이미 와 있는 모든 생명의 요소가 새로워집니다. 이미 와 있는 생명의 요소라는 말은 이미 와 있는 하나님과의 관련이 맺어져 있는 요소라는 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영생하는 생명은 모두다 하나님과의 관련된 거기에 연결된 연결을 가르쳐 생명이라 합니다.
이러기에 예수님의 약속을 자기가 사모하고 연구하면 그것이 돈벌이 할 때 돈벌이 하고 피난할 때 피난하고 정치할 때는 정치하고 모든 비판과 평가할 때는 비판과 평가를 하게 됩니다.
뭐 예수님를 사모하는 것이 무엇이 이렇게 인간이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다 말인가 그 이유는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자기에게 있는 모든 산 씨, 살아있는 그 씨가 새로워집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하나님과의 자기와의 관계가 새로워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와서 역사하심이 새로워진다는 말입니다. 전지 전능자가 와서 역사하는 역사가 새로워지고 대주재 역사가 새로워지고 없는 가운데 그것을 만드신 이가 주님이신데 인간 문제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인간 그까짓 것 만드신 이가 예수님이시고 만물을 보존하는 것을 찰나라도 끊으시면 그것을 그대로 다 멸망하고 마는 것인데 그분이 다 하시는데 나와 관계가 튼튼해지면 안될 문제가 무엇이 있겠소. 예수님의 피를 사모하면 사업이 잘 된다는 것이 이해를 못하면 그 사람은 영생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사모하고 연구해서 거기 대해서 올바를 지식을 가지는 것이 자기 전 생활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이해를 못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도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말은 내가 믿을 때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는 것인데 예수님의 피와 살을 양식삼는다 그 말은 예수님의 피와 살로 인하여서만 우리는 새로워지고 보존되고 자라고 아무리 그 사람이 미남이라 할지라도 양식을 안 먹으면 송장이라 그만 죽습니다. 아무리 푸리틱틱하고 송장같이 그렇게 있어도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좋은 양식만 먹으면 나중에는 번들 번들한 미남이 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다 비유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비유한 것은 그 무한함을 이 유한한 것으로 인용 비유한 것이기 때문에 이 유한한 것들의 이치가 이렇게 복잡한데 이 무한한 것의 그 이치는 무한히 복잡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자의 지혜로 꾀로 수단으로 이 길은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다만 진실 하나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인간 차이는 하나님과 자기 차이에 비해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가 하늘과 땅과의 그거 다 다른 것 다르다고 하면 그렇게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다고 하면 인간도 인간이 아무리 잘난 사람이 있다 해도 못난 사람과의 차이는 좁쌀 한 낱 서숙쌀 한 낱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그만치 차이 있어도 지능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과 둘이 이렇게 모든 일을 할 때나 같이 지날 때에 제일 저능의 사람, 아직까지 지능이 어린 그 사람으로서 자기를 망치게 되는 제일의 요소가 무엇인가? 자기 꾀를 써 가지고 자기 이상의 지능을 가진 분을 이렇게 저렇게 속이고 가두고 덥고 할려는 그것이 자기를 해치는 것이 제일 되는 요소입니다.
왜 그에게 그 지능에게 미혹을 받았다든지 거기에 설복 당한다든지 끌려 간다든지 이렇게 되면 그것이 자기의 뜻이니 성공이라 하겠고 또 그 사람에게 인정받은 한 방편이 됐다 이렇게지만 그것이 속지 않은 때에는 그것은 가장 미움 중 미움으로 판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럴 때에 제일 좋은 방편이 무엇인가 자기는 아무것도 가루지 않고 솔직하고 자기에 있는 모든 것은 부인하고 자기보다 지능이 낳은 그이에게 따라서 살려는 그것이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하물며 사람이 하나님을 상대해 살 때에 자기의 무엇을 나타내려고 하는 그것이 제일 추잡하고 제일 자기를 해치고 미움을 당하는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믿는 사람들이 제일 하나님 앞에 미움을 많이 당하고 버림을 많이 당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에 잘났는데 하늘 나라에 가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늘 나라에 놀랄 일이 많은데 놀랄 일 가운데는 아이구 저 사람이 세상에서는 저 사람이 제일 높은 줄 알고 큰 줄 알고 제일 지능이 높은 줄 알았는데 가 보니 너무 허무합니다. 이것이 놀랄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을 각오하고 그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아라 그 말은 주님의 인도대로 복종하라 그말입니다. 자기 부인하기 전에는 복종이 안됩니다. 또 고난을 각오하기 전에는 안됩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아무리 꾀를 써도 예수님의 구속외에는 사모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사모하면 예수님의 구속사모가 무슨 돈벌이가 소용있노? 예수님의 구속 사모가 사업 성공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 어리석소.
예수님의 구속 사모에서 전지 전능자와 자기와의 관계가 두터워집니다.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그 분과 관련이 두꺼워지고 튼튼해지기 때문에 그분의 무한함이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의 피와 살을 사모하는 것은 생명에 속한 것이 새로워진다 강해진다 자라간다 그말은 생명이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에 대한 정의가 아직까지 조직 신학에 안 나왔습니다. 믿음이라는 정의도 이렇기 때문에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직도 정의도 못내리기 때문에 '믿사옵니다 믿습니다'라고 별소리 다 합니다. 거저 믿음은 따르는 것이요 별 것이 없고, 생명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된 이것이 생명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되어 가지고 그에게 피동되는 움직이는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러기에 생명과 영생은 다릅니다.
그러기에 주의 구속을 이렇게 연구하고 사모하고 연구하면 그 동기도 연구가 되겠고 그 목적도 연구가 되겠고 그 방편도 연구가 되겠고 그 동기가 연구가 되면 전부 중에 피조물이 전부 중에 근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목적을 연구하게 되면 전체는 이것을 향해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고 그 방편을 연구하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이 구속을 연구하는 데에서 생명에 속한 것들이 새로워지고 아름다워지고 힘 있어지고 깨끗해진다 그 말은 하나님과 그 사람과의 결합이 되어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해서 둘이 동행하는 일이 그 일이 새로워지고 깨끗해지고 더 확실해지고 더 온전해지고 더 충만해진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자기가 사업을 하면서 이 예수님의 피를 생각할 것 없이 사업할 때는 사업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구속을 생각할 때 주님의 피와 살을 생각해야지. 아니야, 제가 돈벌이 하는 것도 재판소에 들어갈 때도 예수님의 피를 자기가 먹고 마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생각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동기, 예수님의 피를 생각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지혜, 비판, 용기 이것이라야 자기가 성공하지 그외 것은 다 자기를 사망시키는 것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