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온전하심 같이

 

1980. 3. 12. 수야

 

본문: 빌 1: 20- 22, 29- 3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예수님께서 비유하시기를 망대를 세우는 사람이 앉아서 그 비용이 얼마나  들것인가 예산을 해 가지고 공사를 시작치 아니하면 그 공사를 준공하지 못하고  중단하므로 시작하지 아니한 것보다 오히려 그 모든 공사가 다 수치가 된다고  비유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각오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있어야 될 모든 사회 모든 사물 모든  풍조 이런 것을 만날 때에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각오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뜻밖에 그런 일들을 만나게 되는 고로 자기도 생각지 못한 그런 실패를 해서 다  승패의 기회가 지나간지 후에 소용없는 후회를 하고 원통히 여기는 일들이 다  우리 과거 신앙생활에서 실패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을 믿는 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각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각오로 예수님을 믿는지 마치 망대를 짓는, 세우는 사람이 자기  가진 재산을 얼마나 되는지 계산을 하고 또 자기가 그 망대를 새우려고 하는  데에는 얼마만한 그 어려움이 있으며 비용이 들것인가? 하는 것을 계산하지  아니하고 공사를 시작한 사람들은 공사한 그 모든 공사가 수치거리가 되는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가 재산을 계산하는 것처럼 나는 주를 따르는 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각오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이것을 시험해 보지도  아니하고 계산해 보지도 아니하고 그저 봉사 어덕 닥치듯이 닥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지한 일이 되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내 자신이 신앙 걸음을 걷는데 있어  어느 정도의 각오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실천의 그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냉정스럽게 자기를 비판해 가면서 또 살아갈 때에 앞으로 어느 정도의 그  어려움이 자기에게 부딪쳐 올 것인가 하는 그것도 예측해 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일년 이태 십 년 일생 동안 신앙생활 했다는 것이 한 토막  사건에서 다 수치로 바꾸어지고 마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은 주님이 어떠하신 분이시며  주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셨는가 하는 것을 좀 분주한 것을 떠나서 고요히  깊은 생각에 들어가는 것이 다 기독자들의 명상들이요  이렇게 주님의 그 어떠하신 분이신 것과 또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신 것을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자신을 더듬어 나는 이러한 주님에게 대해서 어떠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도 한번 계산해 보고 그러면 이렇게  살아야 할 터인데 나는 실상 어떠한 각오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어떤 그 실행을  할 만한 그런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것을 자연히 살펴보지 안 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떤 성자가 말하기를 하늘나라에 입신해 가지고 보니까 세상에서 명상  제일 많이 한 사람이 가장 하나님을 잘 이해했고 또 자기가 인생을 잘 이해해서  합당한 조화로 살고 왔더라고서 그런 말을 기록한 것을 봤습니다.

 그것은 다 주님과 주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하셨으며 또 자기는 주님에게 어떻게  마땅히 하여야 할 자인 것을 생각하고 이런데 자기가 현재에 마음으로나  행동으로나 그것을 살펴볼 때에는 너무도 망대를 건설하려면 비용이 부족한  것처럼 이렇게 너무도 허무하고 부족한 것을 깨달아 죄인이라 죄인 중에 괴수라  또 너무 배은자라 망령되고 강퍅한 자라고 자기를 미워하기도 했고 자기를  부인하기도 했고 주님 앞에 필연적인 간구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주님은 우리 보다 크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이 어떤 분인가 모르면 넓은 대해를 건널 때에 그 바다를 지으신 주님이시오  높은 태산을 층암절벽을 폭풍과 우뢰와 번개들을 볼 때에 그것을 만드신  주님이시며 넓은 인간계 만물계 모든 것을 홀로 창조하셨고 지금도 운영하시고  모든 것을 살피시고 기르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하시는 일을 해 놓은 일을 우리가 볼 때에 그 분은 우리보다 얼마나  크신 분이 시다는 것을 우리 지식대로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분이 또  얼마나 영광스러우며 권위 있어서 어떠한 것을 통솔하고 계신다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늘의 모든 부요를 내어놓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한 것은 하나도 당신이 아끼거나 거절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도 당신이 아끼지 안 했습니다. 또 우리가 요구하실  때에 거절하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 분을 보지 못했지 그 분은 우리를  향하여 한번도 눈을 돌리신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향하여 눈을  기울이시고 당신이 아무리 고요히 생각해 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 외에 딴 일  하신 일이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 외에 딴 일하시는가 해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분이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지마는 그래도 못난 우리들도 여기에 저게  분주해서 이것 생각하다 보면 저것 생각하고 아무리 좋아하고 사랑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빈틈없이 그만 생각하고 그만 사모하고 그만 위해서 좋게 할려고  그렇게 끊임없는 거기에만 대해서 마음을 기울인다는 그것이 사람을 사랑함이나  학을 사랑함이나 무슨 권세를 사랑함이나 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그래도 딴 눈을  뜰 때가 있고 딴 것을 볼 때가 있고 딴 것을 생각할 때가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우리가 보는데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것 외에 당신이 딴 것 생각하신  일이 있나 암만 찾아봐도 없습니다.

 영원 전 당신이 홀로 자존하신 그 다음에는 전 움직임이 우리 생각했고 우리를  어떻게 하면 당신 같은 온전한 자를 만들까 하는 것을 생각하시고 생각하신  이것이 그만 당신의 목적이 되었고 이것이 당신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이 목적을 정해 놓고라도 혹 딴 눈을 다른 데에 눈을 기울인 일이 있으며 또  다른 일을 무엇을 동행하신 일이 있는가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아무리 연구해  봐도 딴 생각이나 딴 일을 하신 일이 없습니다. 전 경영이라고 경영하신 그  경영이 하나님이 예정이라고 성경에 나타났는데 그 예정하신 당신이 우리를  생각하고 우리를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그렇게 구비하고 온전한 자를 되게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시고 난 그 다음에 우리 생각해서 예정하셨고 그 예정하신  그것도 하나도 딴 것 없이 우리를 생각해서 예정했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뭐 조그마치 라도 먼 눈 팔거나 딴 데 그 지능이나  진심이나 당신의 속성을 기울이신 일이 없고 순전히 우리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당신이 경영했습니다.

 우리는 몰랐지마는 성경에 주님께서 영계와 물질계 모든 것을 그 경영하신  그것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경영이 우리를 생각한 그 어떻게 하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고 어떤 자를 어떤 자가 되기를 원하면서 그렇게 하려는 이것을  정해 놓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은 이런 자가 되게 할까 하는  그것이 영원한 소원이요 그 소원 외에는 없고 이 소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경영하였습니다.

 경영하신 그 경영 전체가 나를 위한 그 경영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와  여러분들을 위한 경영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극히 크시고 무한하신 이  분이 이것 뭐 우리가 너무도 어리고 너무도 좁아서 그렇지 그 분이 딴 것을  경영하거나 생각하시거나 원하시거나 그런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순전히 우리  위해서 경영했습니다. 우리 위해서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마음 가운데서 생각하신 그 예정이나 또 하나 하나의 모든 존재들을  지으신 그것도 지음을 받은 그것 위해서 지은 것이 하나도 없고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당신의 소원대로의 우리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지으셨다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또 그러시고 난 다음에 역사 세계에 시간이 흘러 내려가는 이 시간에 시간  세계를 지으신 것이나 이 세계를 운영하는 것이 여러분들과 나를 위하는 것  외에는 털끝 만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것은 그것대로 저것은 저것대로 자연히 우연히 이렇게  생각하지 성경을 우리가 읽어서 성경이 가르치는 데로 보면 먼지 하나도 나는  소리 하나도 우리 눈에 슬쩍 지나가는 하나도 우리가 잘 때 꿈 하나가 지나가는  꿈 하나도 전부 우리 위해서 하신 일이지 그저 당신의 취미로 하신 일이 없고 또  당신이 우리를 위하시다가 피곤하시니까 다른 무슨 딴 전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 것을 성경에 찾아보지 못합니다.

 뭐 틈 없이 하나도 우리 위하지 안 하는 그 먼지만 한 것도 없이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섭리하시고 이러다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다는 것은 이는 뭐 우리가 자기 보다 좀 아름답기 꾸미기 쉽고  무엇으로 인해서 참 칭찬 받는 것은 우리가 하기 쉽지마는 누구를 위해서 좀  수치를 당하며 누구를 위해서 좀 천대를 받고 하는 그런 것은 사소한 것도  견디기가 힘이 드는데 주님이 우리 위해서 낮아지신 것이라든지 그 하나님이  사람됐다는 것은 피조물 됐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의 그 제조품  제작품 우리가 제작한 제작품 만치 우리가 된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를 지으신 당신이, 당신이 지으신 우리 같이 된 것은 우리가 손으로  만든 그것과 같이 우리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가 그렇게 되어질 것도 없지마는  십자가상에서 당하신 것이라든지 그 후에 가만히 성경을 들어다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 한 마디도 생각 하나도 주장 하나도 빠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에게 뭐 괴롭다고 힘이 든다고 해서  주저하지 안 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그 당신에게 희생이 되어도 다  구비해 주었습니다.

 또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주었습니다. 이러하신 주님이시오. 또 이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서 살 곳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서 살 곳은 삐뚤어진 것이 없는 불의가 없는 잘못의 이치가 없는 이치 중에  이치로 참된 이치 속에 있는 나라입니다. 참된 이치 속에 있는 나라요

 또 성신의 감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는 그 성령의 감화 감동, 감동  속에 있는 나라요 하나님의 진실 속에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이 나라입니다.

거기에는 아픈 것이나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근방에 오지를 못합니다.

 죽는 것이나 병드는 것이나 뭐 시비하는 것 미워하는 것 질투 시기하는 것 이런  것이 있을 수 없는 영생하는 이 나라를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거기 가서 살 수  있는 자격자 되게 하기 위해서 온갖 구속의 섭리로 우리 앞에 섭리하셔 가지고서  참 수 없는 힘을 들여 가지고서 수 없는 것을 희생해서 우리가 그것을 그저  통과만 하면 될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 주신 그 현실이라 하는 것은 한없는  공역이 들었고 또 자본이 들었고 큰비용의 희생이 들어서 이렇게 했지마는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 너무나도 빈약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혜라 하지마는 그 하나를 만들어 우리에게 선물로  빈틈없이 이렇게 주시는 것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만들어 보면 압니다.

 오늘 어떤 사람이 뭣을 하기 때문에 "좋은 것 배웁니다." 뭣이든지 하나라도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그걸 해서 성공을 해 봐야 압니다. 심히 값이 적은  것이라도 그것을 바로 해 가지고서 그것이 완성이 된다는 것 그것이 성공이  된다는 것 성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큰 것이라도  아무나따나 잘못하기는 쉽지마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하나 바로 하는 데에는  남이 모르는 그 공역과 숨은 애로가 많이 있는 것이다  이것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이것 하나 이걸 바로 해 볼려고 할 때에 그게 얻고  깨달을 것이 많을 것이라고 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게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이렇게 하시는 일 어떻게 빈틈없이 쉬지 아니하시고 잊어버리지 안  하시고 어데 당신의 눈이나 마음이나 손이 가지 안 해 가지고서 허무한 것이  하나도 없소 빈틈이 없이 이렇게 모든 것을 섭리하고 짜셔서 우리를 구원을  위해서 섭리하신다는 것을 이거는 뭐 어떻게 참 이러니까 깨달은 성자들이 주를  위해서 사는 것만으로 만족이 없었고 주를 위해서 죽는 것만으로도 만족이  없어서 살면서도 마음 가운데에 늘 말할 수 없는 그 갈급이 있었고 죽으면서도  더 무엇을 못해서 더 못해서 더 못 주어서 갈급을 가진 것이 다 주의 한없는  주의 섭리를 그들이 조그마치 라도 깨달은 거기에서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주님을 우리가 대할 때에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겠으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상대해야겠습니까? 우리가 하나씩 따져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우리가 대적할 수 있습니까 이 주님을 우리가 대적할 수 있을까요  대적할 수는 없겠지요 이러한 주님을 뭣을 잘못했다고 우리가 그 분의 은혜를  보답하지 못할지언정 그 분을 대적 할 마음이야 있겠습니까?   어떤 강제나 세력에 못 이겨서 대적한다 할지라도 마음에는 아마 가책이 될  것입니다. 마음에는 속마음까지는 부득이 이 환경 세력에 끌려서 내가 대적하는  외모를 하지 안 하면 대적하는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안 하면 견디지 못해서  대적하는 척 할지라도 이 주님을 다소라도 깨달았다면 속마음으로서는 주님 앞에  죄송스럽고 속마음에 대적한 것이 가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훼방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훼방할 수 있을 까요 어떻습니까  우리가 훼방할 마음이 있습니까? 훼방을 훼방할 마음은 가지지 못하지 아마 못  이겨서 훼방하는 척할지라도 주를 다소라도 깨달은 사람이라면 속마음까지 주를  훼방하고는 못 견딜 것입니다. 훼방 할 마음은 없을 것입니다.

 훼방하는 태도를 했다면은 속으로는 분명히 주님 앞에 부끄럽고 미안해서  자복을 하든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자복할 안면도 없으니까 거저 도리어  잊어 버릴라고 어떤 사람은 술을 먹고 주님의 안면을 대하는 것을 잊어버릴 라고  자기 마음을 어둡게 강퍅해서 도무지 주님을 생각하니까 못 견디어서 그렇게  되는 사람들도 제가 만나 봤고 또 들어 봤습니다.

 이 주님을 우리는 그는 마음으로 사랑 할 마음이 있으니까 사랑하고 싶으니까  이 주님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생겨지는 요 위하고 싶지 사랑하고  싶은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대하여 하셨는데, 나는 내몰라라 하고 주님은  주님으로 나는 내 볼 일만 보고 내 생각만 가지고 주님에 대해서는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셔서 떠나지 안하고 섭리하셔도 우리는 마음을 다른데  돌려서 주님을 잊어버려서 다른 데에 분주 복잡한 데에 거기에 쏠려서 산다고  하면 그렇게 산 것이 자기 비판에 옳다고 생각이 돼지겠습니까?   아마 옳다고 생각이 돼지지 안 할 것입니다. 너무 가책이 되니까 그만 생각지  안하고 그만 생각이 나올라 하면은 머리를 쩔래쩔래 흔들어 버리고 생각을 안 해  그렇지 생각을 한다고 하면 주님에게 대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생겨지게 될  것입니다.

 만일 주님 앞에 무릎을 꾼다면 주님은 대면한다면 우리 무슨 죄 지은 사람  모양으로 머리는 숙어지고 주님 앞에 아무런 할 말도 없고 미안스럽고  기도할려고 해도 기도가 되어지지 안하고 거저 묵묵히 거저 눈만 깜았지 주님을  아무런 찾아서 대면 할 만한 책임이 없는 그런 마음을 주고 필연적으로 우리가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주님에게 대해서 나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어떻게  할 사람인가 하는 것을 나는 주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고 있는 사람이며 또  어떻게 할 사람인지 나는 지금 못 할지라도 나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좀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것인지 우리 자신을 계산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망대 짓다가 실패하는 거야 그거야 죽으면 그만이지마는 그 비유는 인간의 일생  건설을 말합니다. 인간의 일생 자기 건설 행위 건설 우리는 자기 건설도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되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관계되는 이 사회성의 건설도  이 세상에서 해야되고 만물과의 관계성도 세상에서 건설해야 되고 대주재이신 만  왕의 왕 만주의 주와도 우리의 관계 건설을 세상에서 해야 됩니다.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아무리 분주해도 주님은 어떠하신 분이시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주님은 내게 대해서 어떻게 했는데 나는 주님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내가 주님에게 대해서 바로 하지 못할지라도 그러면 나는 주님에게 마땅히  어떻게 해야 될 자기인지를 이것을 살펴서 생각하는 이것이 없으면 우리의  세상살이라는 우리의 건설이라 하는 모든 건설은 다 이것은 수치를 마련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장하다가 주님에게 마땅히  이렇게 사는 것이 지당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 마음이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지당한 줄 아는데  원하지마는 나는 그렇게 살아지지를 안 한다 나는 마음으로만 그렇게 살 것이  살고싶은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칠게 아니라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자본적으로 그렇게 할 뿐만 아니라 어떤 역경에서라도 주를 위해서 살고 싶은  마음만 아니라 주를 위해서 좀 고난도 받고 싶다   주를 위해서 손해 볼 마음이 있는지 나는 주를 위해서 손해 볼 이런 내 각오가  있나 손해 볼 주를 위해서 손해 볼 손해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때 내가 달게  당하겠나 내 마음에는 주님은 모든 것을 나 위해서 투자해 주셨는데 나는 주님  위하여 손해 볼 그 마음이 있는지 손해를 보기 전에는 내가 그때 어떻게 되겠나  내가 주를 위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의 소원을 인해서 내가 내 소원을 양보할  그것이 내게 있는지 양보 할 마음은 내게 있나 그 소원은 있나 그것도 없나  실제로 내 소원을 주의 소원을 인해서 양보 할 수 있는 내가, 손해를 볼 수 있는  내가, 손해를 받아야 될 줄 아는 알기는 하는 내가, 이 비판도 없고 평가도  없나, 손해를 보고자 하는 이런 소원이 있는가, 주를 위해서 주를 사랑하므로  내게는 고난받을 그런 소원이 있나?  고난. 그러면 없으면 고난받는 것이 옳다고 인정되는 것이 있나, 주님 이렇게  날 위해서 고난 당했는데 주님 위해서 고난이라는 그것을 생각해 보지도 못한 그  생각도 없는 내가, 고난을 원하는 내가, 고난을 당해도 주를 따르겠나,

 그러면 주를 위해서 죽을 마음은 있는지, 죽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아는지,  죽을 소원은 있는지, 진정 입술만 소원이고 속에 깊은 소원은 있는지, 내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므로 손해 어려움 고통 죽음 이렇게 소원을 하는데 소원  속에 꺼리는 것은 내 마음속에 섞여있지 않는지, 그럴 때에 내가 그것을 견딜  만한 무슨 그것이 있는지, 순전히 내게는 약간 그것이 끼어 있고 남은 마음은 다  나를 위해서 내 마음에 둔 그것이 얼마쯤은 주님을 향하고 얼마쯤은 나를 위하고  있는지   내가 정말로 주님이 나 사랑하시는 대주재가 이렇게 하셨는데 내게 있는 것 다  기울여서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각오가 있는지 그것을 내가 진정  원하는지, 내가 그것을 마련하는데 그것을 취하려고 날뛰는지 하는 이것을  우리가 조사해야 되겠습니다. 주님에게 대한 우리 자신들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자기의 하룻밤 나그네 같은 그 동안도 굶어 못살고 벗고 못살고 살라  하니까 이것저것 필요한 것 있어서 그런데도 우리는 마음을 기울려서 거기에  대해서도 계산도 해야 되겠고, 거기에 대해서도 대비도 되어야 되겠고 거기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다 계산 해 둬야 되지마는 그 보다도 우리의 소망은  주님에게 있고 우리의 문제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되는 이 문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 문제에서 다 해결됩니다.

 이러니까 주님에게 대한 나는 어떠한 낸지 어데 까지를 알고 있는지 어데  까지를 소원하고 있는지 속에 마음에서 그런지 껍데기까지도 그런지  껍데기뿐이고 중심은 없는지 어데까지의 그런 각오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 내가  얼마나 원하고 노력을 했는지 하는 이것을 우리가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어떤 분인가 찾아서 주께서 내게 어떻게 하셨는지 이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급선무요 중요하고, 그러면 이런 주님에게 나는 어떻게 해야 될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자인지, 내가 이 껍데기인지 알맹이인지 몇 십  분지 일인지 전부인지 가다가, 가다가 어떤 것에게 충격 될 때에 그때에 무슨  돌발적으로 술 취한 사람 모양으로 내게 일어나는 돌발적인 생각이요, 또  욕망인지 꾸준히 이것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주를 향한 이것이 변동 없이  역사하고 있는지 우리가 이것을 비판해서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지식으로  자라가야 되겠고, 아는 것으로 자라가야 되겠고, 또 비판으로 자라가야 되겠고,  소원으로 자라가야 되겠고, 공연히 헛되이 안심하고 있지 말고 냉정스럽게  비판으로 자라가야 되겠고, 소원으로 자라가야 되겠고, 각오로 점점 자라가야  되겠습니다.

 각오로 점점 자라가고 이 각오한 것을 한 번씩 두 번씩 실천해서 실행으로 자라  가서 우리의 종착은 주님이 전부 다해서 나를 사랑하셨고, 빈틈없이 하셨는데  나는 이 주님을 대하는 데에 내가 그 바쁠 때는 어떻게 됐으며 수월할 때는  어떻게 됐으며, 내가 좋아하는 재미있을 때는 어떻게 됐으며, 모든 주의 환경에  휩쓸릴 때는 어떻게 됐으며, 주님은 한번도 우리에게 그 시선을 옮기지 안  했는데 천상 옮긴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볼 때에 너무도  허무합니다.

 이래서 자기와 주님을 아는 데에서 자라가야 되겠고 냉정스러운 비판에서 점점  정하므로 자라가야 되겠고, 또 소원으로 차차차차 하나씩 둘씩 더 소원하는  소원이 커져가야 되겠고, 자라가야 되겠고, 우리 속에 결심이 하나씩 둘씩  계약적으로 자라가야 되겠고, 그 질적으로 실력적으로 능력적으로 자라가서 우리  속에 주님이 다 나 위해서 나를 사랑하므로 다 바쳐 죽었기 때문에 나도 주를  사랑하므로 주의 소원대로의 주를 위해서 다 바치는 여기에 우리가 목표를 두고  자라가야 되겠고,  주님이 당신이 자존하신 후에 한번도 나 위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신 일이  없으니 나도 땅 위에 복잡한 현실을 주실 때에 어떤 현실을 주시든지 주를  위하는 것이 아니면 생각도 소원도 마음도 느끼지도 않는 이 우리가 되어야  되는, 이것을 목표로 우리가 두고 달려야 되겠고, 주님께서도 당신에게 있는 것  다 드려서 몸과 생명 다 다해서 남은 것 없이 다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유익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좋게 우리 행복 되게 하기 위해서 다  드렸으니까  내게 있는 것 하나도 남김 없이 주를 사랑하므로 주의 소원대로 주를 위해서  하나도 남김 없이 싹 다 드려 주를 사랑할 이것을 목표로 두고 우리가 자라가야  될 줄 압니다. 우리는 이 면에 대해서 계산 없으면 안 되겠고 이 면에 대해서  계산과 각오 없이는 결단코 이 걸음에 승리를 못합니다.

 우리가 물론 다 농장에서 일하고 각각 자기의 분야에서 다 일하지마는 어데  있든지 그것은 하나님 우리 세워 주셨으니까 어데 있던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그 하나 하나의 생활에서 주를 점점 깨달아 주를 아는 지식이 점점 자라가야  되겠고, 주를 사랑하는 사랑이, 주를 위한 소원이, 주를 위한 모든 비판의  잘못된 그것이 주를 위한 소망과 주를 위한 각오의 밑거름이 되어서 있는 전부를  우리로 주님을 위하여 다 드리지 않고는 마음에 견디지 못하고 다 드리는  그것으로서, 만족 할 수 없는 그런 주의 무한함이기 때문에 이런 깨달음과 이런  각오와 이렇게 주를 사랑하는 뜨거움으로 세상 생활을 그대로 깨끗이 살고  갔는데, 우리는 어떤 사람이며 어데 까지 지금 걸어오고 있는지 우리의 앞으로  남은 거리는 얼마나 되며 우리가 출발해서 산 걸음은 얼마나 걸어 왔느냐 하는  그것을 한 번 우리가 이 시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이 건설이 큰 것인데 우리는 이 건축이 큰 건축인데 이 공사가 큰  공사입니다. 무슨 일 하든지 이 건설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주님 나 위해 죽었으니 나 주 위해 죽는 것 마땅합니다. 주님 나 위해 다  드렸으니 나 위해 다 드려도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요 나는 천한 죄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의 사랑도 세상에서 느끼고 가야 되겠고 주님의 사랑의  대상도 세상에서 우리가 갖추어가야 되겠습니다. 주님이 나 위해서 하신 그 모든  생애의 상대도 세상에서 우리가 해서 기념하므로 주와 관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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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196 주님을 위해/ 고f린도전서 15장 58절/ 1983. 9. 16.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4
1195 주님의 5가지 인정/ 마태복음 25장 19절-30절/ 1987. 8. 16.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4
1194 주님의 공로는 내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 요한복음 8장 31절-36절/ 1986. 12. 8. 월새벽 선지자 2015.12.26
1193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믿음/ 출애굽기 14장 15절-25절/ 1985. 4.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6
1192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믿음/ 요한복음 6장 26절-35절/ 1985. 4. 2. 화새벽 선지자 2015.12.26
1191 주님의 동행/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 1984. 2. 5.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6
1190 주님의 마음을 다 빼앗아라/ 마태복음 9장 1절-8절/ 1981. 1. 22. 목새벽 선지자 2015.12.26
1189 주님의 몸이 된 성도의 위치/ 에베소서 1장 22절-23절/ 1982. 7. 28. 수새벽 선지자 2015.12.26
1188 주님의 사랑/ 요한복음 13장 1절-11절/ 1984. 4. 18. 수저녁 선지자 2015.12.26
1187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방편/ 요한복음 15장 6절-15절/ 1981. 12. 10. 목새벽 선지자 2015.12.26
1186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방편/ 요한복음 15장 9절-15절/ 1981. 12. 11. 금새벽 선지자 2015.12.26
1185 주님의 사랑을 아는 노력/ 시편 91장 14절-16절/ 1984. 7. 6. 금새벽 선지자 2015.12.26
1184 주님의 양식 / 요한복음 14장 1절-12절/ 1987. 12. 21. 월새벽 선지자 2015.12.26
1183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라/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1984. 3. 11.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6
1182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라/ 야고보서 1장 12절-18절/ 1984. 2. 12.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6
» 주님의 온전하심 같이/ 빌립보서 1장 20절-22절/ 1980. 3. 12. 수저녁 선지자 2015.12.26
1180 주님의 유언/ 사도행전 1장 6절-11절/ 1982년 15 공과 선지자 2015.12.27
1179 주님의 음성/ 마태복음 14장 26절-33절/ 1987. 11. 30. 월새벽 선지자 2015.12.27
1178 주님의 인간 구원 방법/ 마가복음 1장 35절-39절/ 1983. 10. 2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7
1177 주님의 재림/ 마태복음 24장 44절-51절/ 1982. 3. 10. 수저녁 선지자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