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11:52
죄를 짓지 말자
본문 : 고전10:5-10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큰 힘을 들여서 애써 애굽에서 구출한 백성들이지마는 그 백성들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안한 그것으로 인해서 다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 해서 하나님이 기한 전에 죽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회개하도록 참아 기다리고 기다리고 해도 회개하지 안하니까 그만 죽을 때가 되니까 다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출해 내시는 데에는 큰 힘 들여서 구출해 냈습니다. 우리는 몰라도 악령이 안 믿는 사람은 다 저희 군병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낱낱이 통해 가지고 우리들로 신앙생활하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게 방해한 일이 심히 많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우리를 인도해서 예수님 믿는 사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땅에 사나 우리의 사는 생활로 인해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멸망치 아니할 하늘의 것을 우리가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땅의 것만으로 어떻게 영화롭고 좋은 일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늘의 것을 이루는 데에 유익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또 그것이 하늘의 것을 이루는 데에 방해가 된다 고 하면 그것은 자기에게 복이 아니고 하나님이 복으로 주신 것을 믿음을 떠나기 때문에 저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좋은 지위나 사업이나 권세라 할지라도 그것을 인하여 자기 영원한 것을 마련해야 되지 그것 때문에 영원한 것을 마련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명 어기고 하나님에게 대한 충성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가 저주인 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변하여 색욕거리를 삼았다' 유다서에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변하여 도리어 색욕거리를 삼았다' 색욕거리라 말은 거기에서 이성적 음행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니까 은혜로 가지고 이루어 놓은 그것을 가지 고 이 세상에 번쩍거리는. 세상에 번쩍거리는 세상에 좋은 것 세상 표준으로 좋은 것 그런 것을 취하는 일 삼았다 그말입니다.
예를 들면은 다니엘 같은 사람에게 그 지위를 준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지위를 주셨는데 그 지위 때문에 하나님 못 믿고 지위 때문에 새벽기도 못 나오고 지위 때문에 성경 못 보고 기도 못 하고 그 지위 때문에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도 지위 그것에게 붙들려 가지고 하지 못한 그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를도리어 색욕거리로 삼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이 주권의 그 은혜로 우리에게 주셨으니 빼앗을 사람도 없고 우리에게 줄 사람도 없다는 이것을 확실히 믿는 것이 기본구원에 하나님의 주권 능력 성취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걸 안 믿는 사람은 기본구원을 벗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힘들여서 인도해 냈지마는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안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만 사십 년 동안 있으면 서 사십 년 동안 사니까 모세까지도 다 늙어 죽어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여호수아 갈렙 외에는 다 죽었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다 거기에서 멸망받은 것은 이것이 우리의 거울이 된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구출해 놓으신 이것은 영원한 것을 마련하라고 구출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이 광야 이 세상 생활에서 다 망하고 맙니다. 세상 생활에서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못 되고 세상 생활에서 세상 생활 그걸로써 그만 끝나버리고 맙니다. 일찍 기한 전에 죽는다 말이 아니고 세상 생활로 끝나고 세상 생활이 변해서 하늘나라의 것을 이루지를 못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크고 작은 모든 것에 세상에 살면서 세상 줄이 끊어져야 하늘 줄이 연결되고 세상 것을 진리와 성령의 것으로 변화를 시켜야 그것이 영원한 것이 되어집니다. 변화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현실에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영감대로의 것 진리대로의 것이 되면 그것은 죽은 것이 살아나고 산 것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안 믿는 시간이 한 시간이든지 두 시간이든지 평생이든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안하는 그 시간은 다 죽는 시간인 줄 알 고 광야에서 세상에서 죽는 시간인줄 알아야 됩니다. 그 시간에 해당된 그 기능들은 다 죽었습니다.
또 그 시간에 해당된 모든 만물은 다 죽었습니다. 그 시간에 우리가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려고 하면 세상을 배반해야 됩니다. 버려야 됩니다. 세상에게 순종하느냐 하나님과 진리에게 순종하느냐 이 둘 중에 하나인데 하나님과 진리에게 순종하려고 하면 세상 인간의 이치와 이 세상을 버려야 그리 되고 또 세상과 좋게 이렇게 하려고 하면 하나님을 버려야 됩니다.
그러기에 요새 죄악 가운데에는 어떤 죄악이 제일 많으냐? 우리가 가만히 우리를 살펴볼 때에. 우리 서부교회나 또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회들이나 다른 진영의 교회들이나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하는 그런 교파들 가도 보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범한 죄의 그 순서 대로 범하고 있습니다.
제일 많은 죄가 우상 숭배죄입니다. 제일 큰 죄 우상 숭배죄입니다. 하나님을 제일 노엽게 하는 것이 우상 숭배죄입니다. 우상 숭배 죄는 지난밤에도 말했지마는 간단하게 말해서 보이지 랄는 하나님으로 인한 저희의 충격보다 보이는 것들로 인한 충격이 더 큰 것이 그것이 우상 숭배죄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노여워하셨느냐? 진멸하겠다 했습니다. 진멸 진멸은 우상 숭배 그것으로 진멸한다 했지 다른 걸로 진멸한다 하지 안했습니다.
모세는 그걸 보고 석판을 깬 그것이 실수입니다. 그게 죄입니다. 실수지마는 하나님이 그 실수한 그것을 하나님이 '이 실수 때문에 내가 너를 멸망시킨다.' 그렇게 발표하시지를 안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이는 것으로 인한 희로애락 그것을 하나님이 노여워 하십니다. 보이는 그것들로 인해서 희로애락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이렇게 은혜를 주셔서 이렇게 됐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것을 알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하나님께 대해서 감사하고 보이는 그것들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선물을 사다 줄 때에 선물보다도 사랑하는 남편이 주는 그것이 고맙고 그것이 귀해서 크고 작은 것이 상관없이 '이것을 어떻게 이런 것을 사 주십니까?' 감사하는 그것은 남편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불평하는 것은 남편에게 대해서 섭섭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그만 거기에 애정을 다 기울여 버리면 그 남편에게는 진노거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좀 불편하고 수고롭다고 해서 재산 많은 사람이 자가용을 사 가지고 운전수를 들여서 이렇게 해 놨더니마는 이 아내가 그럼으로 인해서 '남편이 나한테 이렇게 했으니-항상 차탈 때마다-나에게 이런 자가용을 주셔서 참 이거 너무 황송하고 고맙다. 내가 남편에게 어떻게 좀 잘할까?' 이러면 그 남편이 그 차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마는 이랬더니마는 그만 운전수에게 정신이 빠져 가지고 운전수하고 음행하고 그 주인에게 대해서 차차 성글어지고 멀어집니다.
그걸 우리 사람들은 몰라서 속고 이중 삼중하는 걸 모르고 속지마는 하나님은 속는 하나님이 아니라 말이오. 그 남편이 그 사실을 알 때에는 어떻게 할 건가? 알 때에는 당장에 차도 없애버릴 것이고, 자가용 운전수도 없애버릴 것이고 자기 아내에게 대해서 '저 여자가 저러한 여자라' 하는 그 인을 찍어놓고 마음에 분개할 것입니다. 그와 꼭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래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제일 노엽게 된 것은 저거 손으로 만든 그 우상 숭배 그것을 인해서 분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제 묻기를 '모세가 그렇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반석에 물 낼 때에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한 그것과 또 석판을 깬 그런 것으로서 다 되어진 것이라 이렇게 말을 했는데 엊저 녁에는 잘했다고 칭찬하니까 그 모순됨이 어떠냐?' 그래 말귀를 알아 들을 수 있다면 참 대단히 좋습니다. 그 깨달아야 됩니다. 그렇게 해 야 됩니다.
모세가 그렇게 한 것은 대실수입니다. 그 실수를 왜 했느냐? 실수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했습니다. 교역자가 교인 때문에 더러워지고 하나님 앞에 진노거리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는 그거 생각해야 됩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을 좋게 하랴 사람을 좋게 하랴?' 둘이 꼭 맞섭니다. 하나님 좋게 하려면 사람 좋게 안 되고 사람 좋게 하려면 하나님 좋게 안 되고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사람들을 사귀어 가지고 아무리 그 사람하고 사귀려고 애를 써도 가다보면 그만 말 한마디에. 그걸 도무지 말 안할 수 없고 말하면 그 사람이 섭섭해 그럴 줄 알고도 안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겠고 그 말을 한마디 함으로 그만 그 사람하고 뚝 끊어지니 만나 가지고 몇 마디 안 해서 그만 그 사람과 사이가 벌어지니 참 이거 못할 일이라'고. 그렇습니다. 성도의 생활은 그렇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과 진리에 걸리지 안한 것은 자기의 어떤 희생이라도 하고 어떤 양보라도 하고 이렇게 할 각오도 가지고 또 할 마음도 있고 벌써 그런 물질을 초월한 사람들은 그걸 그런 각오로 또 행동합니다.
이래도 꼭 거기에서 그 말과 그 행동을 하자 할 때에 '그것 내가 할 수 없습니다' 거부한다든지 원하는데 거부한다든지 또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그걸 아니라고 반대를 한다든지 그렇게 하는 그런 일을 안 하면 주님이 섭섭하게 여기시겠고 주님을 대우하려 하면은 그 사람이 섭섭하겠고 하는 그런 현실을 우리가 얼마든지 뭐, 만나면 즉시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그런 일을 안 하려고 그때에 그 화 제를 달리 돌려 가지고 다른 말하고 그 말이 더 나오기 전에 벌써 달 리 돌려서 다른 말 하려고 이렇게 애를 쓰고 해도 그 사람이 뿍뿍 그 래 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속에 들은 마귀는 그 사람과 우리와 사 이를 벌어트리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은 그 사람과 우리와 사이를 화친케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 화친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화친이라야 되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지 안한 화친은 소용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으로 한 화친을 하려 하니까 거기서 자꾸 지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하는 것으로써 제일 하나님을 노엽게 했으니 우상 숭배는 자기가 만든 것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그것이 자기에게 복되게 하고 그것이 잘못되면 자기가 화가 되어지고 그렇게 해서 제가 만들어 놓은 그것은 자기의 행불행 존비귀천을 주관할 수 있다 인정을 해 서 그것이 좀 병들든지 그것이 좀 상하든지 그것이 좀 잘못되든지, 그게 좀 약해지든지 적어지든지 그것이 요동되면 그만 우리의 마음이 그만 요동됩니다. 그만 요동됩니다. 저 사람은 왜 눈이 저렇게 들어갔는가? 보면 그것이 요동된데 따라서 요동이 돼 버렸어.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와 어떻게 된다는 것은 자기 양심이 행동하는 그것으로 하나님과 가까와질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고 하나님과 대립될 수도 있는데 자기가 하나님 앞에 대립되는 그런 행동이라도 주저하지 안하고 '뭐' 해도 별로이 자기가 거기에 대한 충격을 받지 안 하고 자기가 거기에 대한 피동이 별로이 없습니다.
마땅히 두려워 떨어야 될 일이라도 예사고, 한없이 기뻐해야 될 일이라도 예사고 그러니까 하나님을 무신한다 그말이오. 하나님은 무시하고 보이는 것들을 하나님 대신으로 섬기는 그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저들이 손으로 만든 우상 숭배.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이 보이는 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할 때에는 그 구역장들이든지 교역자들이든지 그것이 지나가기 전에 거기에서 그 사람을 치료해 줘야 됩니다. 이것은 모릅니다. 이것은 보이는 것은 시험거리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도 다 시험거리가 됩니다. 보이는 건 다 시험거리가 됩니다. 하나님이 백 세에 이삭을 줬으니까 이삭이 얼마나 좋습니까? 좋지마는 시험거리가 반드시 됩니다. 보이는 것은 시험거리가 돼 가지고 그 시험에서 하나님을 잡고 그것을 포기했을 때에 그때 그게 축복이 되어지지 포기 안 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온 것이 화가 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는 시험에 다 이겼습니다. 자기에게 큰 재산이 왔었는데 그 재산이 왔을 때에 그 재산은 하나님의 법에서 당당히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재산이 왔을 때에 그 재산을 취하느냐 하나님을 생각하고 재산을 버리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하면 버 려야 되겠고 그것을 취하려 하면 하나님의 권워나 영광을 부인해야 되겠고 이럴 때에 아브라함은 그것을 버렸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것이든지 우리가 잘못해 가지고 취한 것이든지 땅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 왔을 때에는 그것을 살 리는 방법이 그것을 하나님과 진리로 인해서 버리는 것이 살리는 것이요. 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축복의 것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 또 하나님과 진리로 순종함으로 인해서 그것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 '있는 것을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하는 그 말씀은 그것을 포기함으로써만 그게 내게 복될 수도 있고, 그것이 죽은 것이 살 수도 있고. 이 없어질 제한의 것이 무한한 영원한 온전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버린다는 것을 이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버리는데 대해서 담대한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버려야 삽니다. 버려야 영원한 내것이 되어집니다. 버려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의 축복의 것이 되어집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이런데, 이러기 때문에 이런 기뻐하고 마시고 놀고 노래 부르고 이래 하는 것, 보이는 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 떼내놓고 하나님 떼 놓고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소망할 이것을, 하나님을 소망 하지 그게 소망이 됩니까?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안 됩니다. 소망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당장 없애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깨달은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소망을 가지면 당장 하나님이 진노하는 것인 줄 알고 그것이 음행인 줄 알고 보이는 것으로 그 기뻐하는 일 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기뻐하기 전에. 기뻐하고 싶으면 '하나님게서 이런 걸 이런 걸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그것을 몇 번이나 튼튼하게 해서 하나님이 노엽지 안하도록 그렇게 해 놓고 그것으로 기뻐하지, 그것으로 기뻐해도 잠깐 기뻐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큰 진노가 올 줄 알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또. 껍데기로만 그런 게 아니라 실상. 이것은 하나님이 오늘 유에서 무를 만들 수도 있고. 없는 데서 유를 만들 수도 있고 작은 것을 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아무 주권 없는 줄로 그렇게 자기가 압니다. 이렇게 알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러다가 짜빡해서 보이는 것을 하나님 대신으로 이렇게 하나님께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피동해야 될 것이 그것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피동하면 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지식. 그 지식이라는 그것으로써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배짱내는 그것이 자기 망치는 것인데 그것을 돌이키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보이는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 알고 우리가 소망은, 소망은 하나님에게만 소망해야 됩니다. 딴데 소망 하면 안 돼 하나님이 아무리 귀한 선물을 많이 줘도 거기에 소망하는 것은 그것은 음행하는 죄가 됩니다.
세상과 벗되는 것은 음행이라. 세상을 숭배하는 것은 음행죄입니다.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아무리 주신 것이라도 그것을 소망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만일 미군을 보내 가지고 '미군이 이렇게 강하게 우리를 세계에 제일' 우위는 지금 떨어졌습니다. 벌써 몇째갑니다. 이렇게 한 둘째 간다 하지마는 둘째 갈런지 셋째 갈런지도 모릅니다. 셋째 갈지 모른다고 말은 악독이 없다 그말이오. 이북이 둘째 갈런지 모릅니다. 이북과 같이 붙으면 이북은 뭐 없다 하지마는 그 사람들은 군함 굴뚝에 들어가서 뭐 얼마든지 폭격시킬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런 미군이 와 있다 할지라도 '이제는 하나님이 미군을 이렇게 우리에게 보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한 데서 그쳐야 되지, 그쳐야 되지 '미군이 있으니 이제는 든든하다 미군이 있어 든든하니 기도나 회개나 하나님께 대해서 조금 성글어져도 미군 있으니 든든하다.' 하나님에게 소망할 것을 미군에 대해서 소망하면 그것이 바로 음행죄요.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엔군이 다 철퇴돼 버리니까 '아이구 이제 하나님이 유엔군을 보내서 우리를 안보해 주더니마는 유엔군이 가니까 우리는 이제는 절단 났다 하는 그말 하는 그 정신 그 사상 그것으로써 한국 교회는 한 번 완전히 통일됐습니다. 완전히 통일됐습니다 유엔군이 철퇴할 때에 '유엔군이 갔으니 우리는 절단났다 큰일났다' 이렇게 해서 낙망하고 비관해서 그렇게 한 것은 한국 교회 몇 사람이나 빠졌는지 몰라도 전부가 다 통일됐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진노케 했고, 그럴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자복을 하면서 '주여, 용서해 주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해서 저런 것이니 그게 천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당신이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의지하는 것이 흔들리고 그것을 소망하고 의지했던 그것이 드러나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 죄인 줄 알고 그걸 회개해야 된다고 회개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회개를 하나님 앞에 회개해서 노회록에 총회록에 기록까지 해야 된다 하는 그 말을 하는 그것이 다 깨달은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 뭐 '그걸 뭐하려고 기록할 게 뭐 있느냐? 그것 회의 록에 총회록에 기록할 게 뭐 있느냐? 우리가 뭐 회개했는데' 그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깨달음이 없다 말이오.
네가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한 요 성구를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거기에 대해서 아무 깨달 음 느낌이나 회개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뻔뻔히 하고서 다 해도 총회적으로도 '그게 옳다' 노회적으로 '옳다' 이거 회개하자 하니까 회개할 게 뭐 있느냐? 반대를 하고 하는 그것이 다. 그래도 죽는 건 아닙니다. 죽이지 안하요.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다고 광야에서 기한전에 죽은 것 아닙니다. 수명대로 살았지마는 건너가지 못했으니 그것 다 멸망맏고 말았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소망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소망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장이 사업이 아무리 많고 하나님이 주셔서 자기에게 큰 교회가 아무리 돼 가지고 있어도 그 교회가 '교회가 이렇게 든든하니 내 무슨 생계는 문제가 없다' 하면 그 시간 하나님께서는 대 시기를 하십니다. 대 시기하시요. '내가 이랬더만 네가 이제 보이는 것으로 간음하는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변해서 색욕거리를 삼는구나.' 분해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망하는 것도 아무리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도 소망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에게만 소망하십시요. 또 순종하는 것도 꼭 하나님에게만 순종해야 되지 딴데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또 의지하는 것도 하나님에게만 의지해야지 딴데 의지하면 안 됩니다. 이거는 불가침입니다. 이거는 다 침노하면 안 됩니다. 이거는 변동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와도 안 돼요.
하나님에게만 순종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이것은 그에게만 해당된 일이지 다른 데는 아무리 하나님이 주셔서 튼튼하다 하더란대도 그만 그거 의지하면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보내 가지고 이것으로 통해서 나를 안보해 주는구나'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렇지마는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안보해 주시는 하나님이니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시고 안보해 주신다' 그분에게, 그분이 이제 나를 보호하느라고 그것을 보냈으니까 그분의 보호인 줄 알고 그분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지 그분의 보호가 왔으니까 '이제는 이것만 하면 하나님은 좀 섭섭하고 어떻게 해도 된다 의지하는 것이 순전히 하나님에게만 아니고 보낸 그것을 의지하는 양이 거기에서 가면 그것은 간음입니다. 그것을 소망하는 양이 생겨지면 간음입니다. 그것에게 크고 작은 것의 순종하는 순종이 생겨지면 그것은 간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살라 나로 인해서 살라" 하나님으로 인한 희로애락보다. 그것으로 인한 희로애락이 더 큽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진노거리인 줄 알아야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왜 여기에서 피해 가지고 강대국으로 피난가는 그런 사람들이 다 하나님으로 인한 희로애락보다도 보이는 공산주의로 인한 희로애락이 더 크고 미국으로 인한 희로애락이 더 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람들은 진노거리의 걸음을 걷고 있으니 발람의 길을 걷 고 있으니까 거기 가서 아무리 충성해도 하나님의 노는 풀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기 싫지마는 그쪽의 민족과 구원을 위해서 가는 것은 다릅니다. 가기 싫은데 가는 게 있고 거기에 하나님을 의심하고 믿지 못 하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그걸 믿기 때문에 가고 싶어 가는 자가 있으니 믿고 싶어 간 자는 거기에서 암만 충성해 봤자 발람과 같기 때문에 그것을 회개하고 돌아와야 됩니다.
돌아와야 되지, 거기에 시민권 떡 맡아놓고 여기 나와서 일한다는 것 다 소경들이오. 소경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에게 무엇을 배우겠다고 그런 자에게 무슨 권위가 있다고 뭘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게 다 죽고 눈이 멀고 완전히 죽고 또 죽어서 지금 그런 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뭣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민족이 그 나라의 시민권을 얻어 놓고야 이제는 하나님은 믿지 안하고. 그게 하나님 믿지 안하고 그 나라 국권을 믿는 것 아닙니까? 시민권 얻어놓고 지금이라도 무슨 꽝 소리만 나면 '나는 시민권을 가졌기 때문에 간다. 문제 없다.' 이랬는데 이제는 차차 차차 미국에서도 정신을 차려서 그걸 아는 것 같습니다.
알아 가지고. 시민권 두고 거기에서 나이 좀 어떤 연령에 도달한 사람은 거기에서 국고금을 타먹고. 국고금을 타먹고 여기 와 가지고는 또 일하면서 월급받고 이중 월급받고, 또 여기는 국고금 타먹기 때문에 여기서는 월급받지 안하고 선교한다고 이와 같이 하고 있는 그것이 우리 민족을 위해서 우리 민족이 와서 수고하는 것 좋은 것 같지마는 하나님이 거기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하지 않는 그것은 공연히 그것이 들어서 거칩니다. 그게 되는 줄 알고 거짓말쟁이고 껍데기요 하기 때문에 실은 영양없는 식물이기 때문에 속이는 것이라 그거요.
그것은 하나님이 구출해 주는,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해서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도하는 그 결과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그 된 것만치 우리의 구원이 되는 것이지 연결 안 되고 무슨 소용있습니까? 연결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물없는 구름이라. 뿌리까지 뽑힌 가을나무라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는 것으로 인한 그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보다 큰 것을 그것을 주님은 심히 분노하십니다. 시기하기까 지라 했소. 시기 시기죄는 무섭습니다. 시기죄가 인류의 죽인 둘째 죄입니다. 둘째 죄인데 시기죄는 무섭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시기하기까지 하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아무래도 이 죄는 자꾸 말해도 우리에게 뿌리가 뽑히지 안했으니까 자꾸 말해야 되겠어. 이걸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회개하고. 보이는, 공산주의가 온다고 무슨 퉁 소리가 나고 무슨 대포 소리가 무슨 소리가 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문제없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저들이 아무리 와도 하나님이 오게 해서 오지 하나님이 오게 했다가 여기 와서 중단하라 하면 중단할 것이고 가라 하면 갈 것이고 이렇게 모든 전능자 주권자가 우리 주님이신데 내게는 주권자가 계시니 문제가 뭐 있느냐?' 요렇게 믿는 자에게는 '천인 만인이 네 옆에서 꺼꾸러지고 엎어지나 너는 해 하지 못하리라' 말했습니다.
왜정 말년에도 그 모든 한국 교회가 다 그렇게 했지마는 그렇게 믿는 사람에게는 한국 한국 교회에 그때 일정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를 말했지마는 신사참배가 상관이 없었습니다. 평양에 있는 오 장로님이라고 오행순 장로님이라고 하는 그 장로님은 그때에 신사 참배를 하면 안 된다고 외치고 돌아다녔습니다. 외치고 돌아다녔지마는 그 장로님을 죽이지도 못했고. 그 장로님을 처음에는 두 번이나 가뒀다가 나중에 나오고 난 다음에 그 장로님에게 대해 해치지 안했습니다. 해치지 못했어. 마음대로 전도하고 마음대로 신사참배 반대하고 다녔지. 그게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게 위대한 사람이오. 그게 하나님이 함께한 사람이오.
물론 들어가서 고생받은 것도 좋지마는 가 가지고 고생을 받으면 정말로 멋지게,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이 들어가서 고난받으면 그 고난이라야 하나님이 만족한 것입니다. 그들은 고난이 없어. 손양원 목사님은 감옥에 들어간 데에 고난이 없어 만족이라 그걸 기뻐하고 즐거워해서 말하기를 '우리의 콩깨묵 요만한 것 솔 방울만한 콩깨묵 이것이 천하 사람들이 먹는 소고기보다 가치가 더 있다' 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했고. 오늘밤에는 너를 지금 꺼꾸로 달아 놓고 소금물을 먹여서 죽일 터이니까 오늘밤에는 물을 하나도 먹지 말라고서 이리 그 간수들이 하도 감동이 되니까 와서 귀뜀하는데 귀뜀하지마는 그것도 내나 마귀 일꾼이오. 그것도 마귀 일꾼이라.
귀뜀하니까 손 목사님은 '예, 알겠습니다.' 하고서 그날밤에 식사를 들어왔을 때에 방꾼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전에는 다 내가 먹던 것을 자기네들 다 줘서 내가 먹게 했지마는 오늘밤에는 내가 좀 많이 먹어야 되겠으니까 나를 주십시오.' 이러니까 그것도 모르고 '아이구 녜 목사님이 잡수시려면 드리지요.' 달라 하니까 물을 얼마나 둘러 마셨든지 배가 탄탄해 가지고 이러먼 소금물 조그매만 들어가도 죽는다 말이오. 조그매만 들어가도 죽어 주를 위해서 죽기를 원하는 이 사람 기쁘고 즐거우니까. 그날밤에 가 가지고 기쁘고 즐거워서 '오늘밤에는 이제 주를 위해서 한번 인제 죽는 것으로 완전 승리한다' 하고 들어갔는데 들어가니까 그자들이 앉아 가지고 '아무래도 우리가 지금 전쟁은 패전하는 거라 우리는 아무래도 손을 들어야 되겠어. 패전하겠어.
안되겠어.' 이 소리를 실컷 하다가 옆에 보니까 손 목사님이거든. 부끄럽다 그말이오. '오마이 오루까' 너 여기 있나, 부끄러우니까 '가거라' 뭐 금방 저거가 그 소리 해 놓고 또 뭐 신사참배 할래 안 할래 때릴 그런 양심은 없거든.
그 손양원 목사님은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지냈고 다른 사람들은 참 못 견뎌서 고통으로 고통으로 지내다가 황거요배. 일본이 그때 천황을 신화시키려고, 이북의 신화시키려는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오. 그때 이 천황 폐화는 완전히 신으로 산 신으로 신화시켜 가지고 하는데 그 신화시키는데 '동경에 있는 소화 천황이 있으니까 소화 천황에게 이 한국에서 절해라. 절하는데 예배드릴 때는 반드시 절부터 먼저하고 예배를 드려야 된다 또 강단에 천조대신의 가미다나를 거기에다 갖다 붙여야 된다.' 가미다나를 안 붙인 교회가 한국에 몇 교회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배드릴 때에 그때 예배드리는 사람들 중에 예배드리는 교회 가운데에서 동방요배 안 하고 예배 드리는 교회가 몇이나 있었는지 없었는지 오르겠습니다. 혹 한둘이 있었는지 몇이나 있었는지? 가미다나를 안 단 그런 교회도 몇이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다 부산 여기 다 달았습니다. 유명한 교회들 다 달았어요.
작고 큰 교회 다 달았습니다.
다 그 사람 가고 나면 떼버렸지 안 단 것 아니오. 단 게 문제지 뗀 게 문제가 아닙니다. 단 게 문제입니다. 제가 아는 대로 고제에 넷 교회가 있었는데, 넷 교회가 있었는데 넷 교회 가운데에 셋 교회는 다 달았습니다. 제가 아는 대로 거창서는 안단 교회가 없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어려워 가지고 그렇다는 것.
그런고로 우리는 그저 껍데기로 살지 말고 신령한 눈을 가지고 주님의 안면을 보면서 이 피조물을 보면서 이래 살아야 되는데 지금부터 자꾸 연습해야 됩니다.
'보이는 것으로 인한 내가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위안이나 평강이나 안심이나 담대나 근심이나 걱정이나 이런 것 하는 이 큰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겠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서만 나를 기쁘게 할 자도 주님이요. 나를 근심되게 할 자도 주님이요 나를 두렵게 할 자도 주님이요, 나에게 평강을 줄 이도 주님이요, 주님이오.' 이렇게 된 자를 누가 죽인다 말입니까? 죽일 자 없습니다.
왜정 말년에도 그런 사람은 자유롭게 신사참배 안 하고 이래 돌아 다녔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교회는 교인도 하나 신사참배 하나도 안 했습니다. 거기에는 가미다나를 안 달았습니다. 황거요배 그런 걸 안했습니다. 그거뭐 그렇게 쉬운 줄 압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자에게 내가 너를 높이리라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했습니다.
그런고로 지금 이것이 준비할 때입니다. 이러니까 뭐 이북이 어찌 되느냐 뭐 어찌되느냐 그런 것보다도 이거 준비할 때라.
어제는 여기에 경비가 아홉이 뭐 셋씩 이래 섰다 하는데 서는 그것은 저거가 뭘 지키겠소? 아무 지켜야 소용없어 지키지 못하지만 좀 알아서 좀 소동을 해야 되겠다 그거요. 소동을 해야 이때가 어느 때라는 걸 알고.
그거 지킨다고 무슨 소용있습니까? 쿨쿨 잠들어 옆에 깨워도 모르는데. 또 그 사람들이 뭐 그것만 가지고 하요? 아무 소리 안 나는 요새는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어 팩 거리면 간다는데 소리 안 나는 총. 소리 안 나는 총 그게 그게 참 더 편리하겠어 그래 가지고 돌아 다니는데 옆에서 장 가는데 이렇게 있으니까 가는데 쏴 버리면 죽어 버리지 그게 무슨 소용있소. 있기를? 이러나 좀 깨달으라 그말이오 알라 그말이오.
뭐 특공대를 십만 명을 남침했다던가 뭐 언제 보니까 이러는데 그 사람들은 지금 전쟁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뭐 '전쟁이 한 번만 한 번만 이 짓 하면 어짜고 하지마는 전쟁 그 사람들은 벌써 해서 수입을 많이 봤소. 지금 계속하고 있소 지금. 이러니까 그것을 뭘로 막을 거냐 그말이요? 국방하는 것을 그것을 '미군이 있으니까 국방된다' 하는 그것이 안 믿는 사람들은 말을 해도 괜찮지마는 믿는 사람들은 그말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진노가 됩니다. 하나님에게 진노가 돼요. 우리 국력이 강하니 하는 그게 진노가 됩니다.
강하고 약하고 강하게 해 주시니 감사하다 할 수는 있소. '강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서 이와 같이 와 가지고 주둔해서 국방해 준다 하니 감사합니다. 이거 주님이 보낸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국방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통해서 주님이 국방하시면 되고 그것을 통해서 도로 이제 우리에게 화를 초래하는 것이 되면 초래하는 것이 되어지지 거기에 있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 있습니다. 내가 그래도 그것 보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 보고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걸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걸 믿지 않습니다.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 의지하고 당신을 믿습니다. 이럴 때에 당신은 만족합니다. 이러면 당신이 당신의 안 품에 품으시는데 누가 해 하겠습니까? 6·25 때도 그랬습니다. 저도 6·25 때에 저 천 장로가 저기 있는 데 여기 이만기 목사도 있고. 그때 6·25 때 두 달 동안은 집회했소. 인민군 점령지입니다. 점령지 속에서 하루 세 번씩 종치고 집회 했소. 집회했는데 한 사백 명 모였습니다. 그 조그만한 예배당에 양 사방서 각처에서 막 모아들어 가지고 그뭐 기쁘고 즐거워하고 그들 이 뭐라 하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인민군은 하나도 겁을 내지 안했습니다. 인민군 겁은 내지 안 했는데 공습 오는 것은 겁을 낸다 그말이오. 그때 공습이 겁나는 것이 아니라 인민군이 겁나는 것입니다.
겁을 안 내고 이러다가 그들이 예배당 위에 미군들이 공습 와 가지 고 교회라 하는 것을 보면은 폭격 안 할 터이니까 교회라 하는 것을 표시로서 이걸 뭐 처어치라던가 뭐이라던가 이래 '씁시다' 이래. 나는 집회하고 지금 점심 먹다가 먹으면서 그래 말하기 때문에 그뭐 아무 생각없이 기도하지 안하고 점심 먹으면서 '그 뭘로 쓰는고?' 이러니까 백목, 명베. '명베로 이래 쓰면 됩니다' '명베가 누가 있나?' 있다 해. '그러면 가 쓰려면 써라' 이랬는데 가서 청년들은 좋아서 퍼뜩 가 썼는데 그게 마귀 시험이라.
그러고 난 다음에 와서 '이제 다 해 놨습니다' 하는데 그때사 깨달아져. 그때사 깨달아져서 '내가 하나님 의지하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미국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게 내 속에 들었구나 이제는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그만 그때부터 겁이나서 못견뎌.
그래 한 달 동안은 지내면서 그래도 하나님 은혜로 '오늘 죽인다' 내일 죽인다.
그들이 그렇츰 그래 쌓아도 강단은 한번도 새벽 예배나 대예배나 한번도 장단은 범한 일 없어. 강단은 뽑은 일 없어. 꼭 계속해서 강단에 서서 증거했습니다.
그때에 계속해서 강단에서 증거한 사람이 내가 알기로는 한 사람도 없었소.
거창서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 목사님도 주일날은 가서 예배보고 수요일날이니 그런 때는 들어가지 못한 때가 더러 있었고 이랬지마는 참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두 수요일은 딴데 가서 봤습니다. 두 수요일은 딴데 가서 본 것은 한번은 배수윤 목사님의 자녀가 세상을 떴다고 통고가 와서, 거기는 가는 것이 한 오십 리 되는데 멉니다. 이러니까 거기 가려 하면은 그때는 내가 그 사람들 때문에 변장할 수 없고 그때 모두 삼베 옷 떨어진 것 입고 여기에 막 이래 비벼 가지고 못이 배기도록 하고 그래 다녔습니다. 이랬는데 그렇다고 그런 외식을 할 수 없고 양복 입고 가야지 성경 들고 가야지 그때 양복 입은 사람들은 없으니까 양복을 입으면 그 사람들이 색다르게 봤습니다. 그런데 걸어서 거기까지 가야 되는 것이니까 인민군을 통과해 가지고 이래 가야 되는 것이니 참 하나님의 권능만 믿지 뭐 권능 안 믿으면 못 갑니다. 거기까지 가 가지고 가 거기에서 하루 저녁 인제 수요일 예배를 보느라고 본교회는 수요일 예배를 뺐고.
한번은 개명교회 가 가지고 개명교회서 '우리는 다 죽을 터이니까 이제는 한번.
도야지를 한 마리 숨겨 놨으니까 도야지 이거 잡는데 조사님이 오셔 가지고 같이 좀 참석해 달라.'고 그래 가지고 와서 거기 가서 그날 밤에 거기서 수요일 예배를 보고 그래 가지고 그 이튿날 '오늘 여기 주일 예배 보라'고 이러는데 수요일날 그날 저거 집에 처가 왔어요. 와서 '내일은 지금 인민 재판이 있는데 인민 재판에 둘째가 지금 조사님으로 그래 되어 있는 것을 거기 있는 사람들이 와서 말하고 이러니까 내일 주일에는 지금 꼭 오면 안 되니까 오지 말라' 고 그렇게 말하고 또 거기 사람들도 붙들고 이래서 그뭐 역부러 그것 알고 거기 꼭 다른 사람 예배봐도 되는데 죽는 데 갈 거는 없다 싶어서 그만 안 가고 농산교회에 예배보려 했는데 그날밤에 ○○, 지금 목사 ○○목사하고 나하고 둘이 한 방에 누워 자는데 아침에 자고 나니까 ○○목사가 오줌을 싸서 내 옷에 오줌이, 옷이 젖었어 그때 내가 깨달음이 '이것도 자연계시인데, 이것도 자연계시인데 이 오줌이 뭐이냐? 오줌이 썩은 것 아니냐? 내가 거름 아니가? 그러면 내가 이번에 내가 여기에서 엊저녁에 갔으면 되는 건데 안 가고 여기 있는 것은 이거 거름 노릇하는 썩는 것이다. 이러니까 지금이라도 가면 안 되겠느냐?' 마구 그때 나서 가지고 달음질쳐 가지고 뛰어가니까 예배 십 분 전입니다.
예배 십 분 전인데 가니까 마구 놀라면서 어짤라고 오시느냐고 지금 이렇는데.
그러나 그래 왔으니까, 또 그들이 와서 그래 쌓으니까 또 겁이 납니다. 그게 내나 교회라는 이름 쓰고 난 다음이오. 그러나 그래도 그래 가지고 온 사람이 안 할 수 없어서 여기 가만 있으라고 이러는 걸 내가 인도하겠다고 쌓는 것을 가 가지고 강단에 설교를 했는데 그날 은혜가 크게 있었습니다. 마구 그때 공산주의를 짓밟고 마음에 얼마든지 평강을 가질 수 있는 온 교인들에게 평강을 가질 수 있는 큰 은혜가 그날 내렸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깨닫고 자연계시에서 깨닫고 이렇게 저렇게 깨달아서 어쨌든지 참 이렇게 배우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인한 그 희로애락에 우리의 피동되는 것, 우리의 감동이 피동이 되든 지 우리의 감각이 피동이 되든지, 우리의 정서가 피동이 된다든지, 우리의 마음이 피동이 되어서, 공포심 그런 것도 그것 내나 보이는 공포심 그것이 내나 보이는 것에게 피동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함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거리라.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우리는 살아야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온 것이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감사히 받아서 사나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동해야 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지 이 세 가지는 딴 데에 하면 안 된다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없으면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것이 음행죄다 하는 이것을 깨닫고 이 죄는.
내가 오늘 아침에는 그 다음에 둘째가 간음이요 셋째가 시험이요 넷째가 원망인데 이것을 하려 했는데 거기 갈 여가도 없이 이거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지금 스톱을 하려고 생각합니다. 어짜든지 이거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가 음행죄는 거기에 보면 겉어머리는 그 발락이 사람을 보내 가지고 창기들을 보내서 미인들을 보내 가지고 이와같이 대접하고 이렇게 하니까 아주 좋고 아름답고 친절했지마는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발락이 들었고. 거짓 교훈자 발람이 들어 있었고 그 속에는 사탄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음행죄 속에는 이 세 가지가 들어 있다는 걸 반드시 거기에는 거짓 기독교의 교훈이 내 속에 왔습니다. 내 속에 왔기 때문에 내 속에 온 그것이 지금 충족되도록 하려는 것이요. 나를 멸하기 위해서 이용하기 위해서 악령이 그와 같이 한다는 악령이 나를 멸하기 위해서 이용하기 위해서 한다는 요것을 우리가 보이지 안 하는데 그것을 속에서 반드시 음행되는 그 상대방의 남자나 여자나 그 셋이 그 속에는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고.
그럼으로써 하루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는데 이만삼천 명 죽되 그 죽은 것이 염병으로 죽었습니다. 다른 걸로 아니고 염병으로 죽었어 이만삼천 명이 염병으로 죽은 것은 이제 음행죄라는 것은 그 하나가 범하나 음행죄 그걸 거기에다 물드는 것, 감염 염병은 물든 병이요. 물들 염(染)자 병들 병(炳)자, 물드는 것 이제 물든 병인데 음행죄 그것은 다른 데보다 자기 몸 안에 있고 그 음행죄는 한 사람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물들어서, 음행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사상을 자기가 받아서 그것이 아무리 뭐 다른 남자 여자를 취하지 안해도 그 음행의 물이 들어간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지금은 우리가 어느 시기가 지나간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위해서 고자로 지내는 그것을 연습해야 될 일이지 이제 음행을 연습 해서 연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백해무익이지 유익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행죄로 인해서 하루 동안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는데 그 음행죄를 미워하는 비느하스의 그 미워하는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노가 풀어졌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미워해야 되겠습니다. 그 음행 죄를 미워하는 그것이 우리가 있어 가지고 하나님 노를 풀만치 그렇 게 해서 우리가 회개를 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 시험하는 것은. 이거 좀 어려운 문제인데. 시험하는 것은 닥친 현실에 하나님이 도와 주실 그것을 확신하지 안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입니다. 과거에 그런 경험이 많이 있는데 현실에 어떤 현실을 닥쳤든지 자기가 죄를 지어 닥쳤든지 거기에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니 여기서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이 구원하신다. 된다.' 요것을 가져야 되지 그거 안 가지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니.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니 하나님이 돕기 때문에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람으로 하나님의 뜻에 어기는 것을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되리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제 마음대로 움직여서 움직이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움직이라는 요거는 하나님의 뜻이라 인식하고 움직이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인지 뜻 아닌지 모르지마는 하나님이 도와 주실 터이니까 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 한 움직임을 가지는 그게 시험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사탄이 와 가지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도우셔 가지고 이와 같이 하실 터이니까 모든 사람이 보리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므로 하나님께 피동되지 안한 그 일을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하는 일을 하나님을 믿으므로 시작하는 그 시험에 빠져서 멸망하고, 또 어떤 사람, 그둘 뿐이오. 하나는 자기에게 현실이 닥쳤는데 '내가 범죄한 현실 이 현실에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출하시겠느냐?' 우리가 암만 범죄해도 그것도 하나님의 예정이오. 그것도 하나님의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된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것도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구원이기 때문에 주신 것이니 거기서도 하나님에게 복종하면 구출해 주신다는 그것을 확신 해야 됩니다.
자치가 의를 행했을 때에는 하나님을 소망하는 걸 가지지마는 자기가 범죄했을 때에는 하나님에게 소망을 가지지 안하는 그것이 시험하는 것이라 말이요. 요 시험이하는 그것을 얼마 며칠 전에 이야기했는데 그것 시간이 많이 걸려야 되고.
원망하는 것은 원망은 이스라엘이 자기들에게 물이 없어. 물 없으면 그것 기 차고 죽지 않습니까? 먹을 것이 없으니까 죽지 않습니까? 죽을 일입니다. 죽을 수 있는 그런 일이라 말이오. 그런 일 닥친 것 도 거기에서 원망하지 안하고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우리가 물이 없으니까 지금 목말라 죽겠습니다.' 목마른데 목말라 죽겠다 하는 그게 무슨 죄요? 하나님에게 옳은 말 하는 것이지.
'목말라 죽겠습니다. 물 좀 마시워 주십시오 물 좀 주십시오.' 당신을 소망하고 물 달라 하면은 얼른 '오냐. 내가 너거에게 물 줄 줄 아느냐? 물을 줄 수 있는 줄 아느냐?' '당신이 물 주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 물 줄 수 있지요. 물을 주십시오. 밥을 주십시오.' 이것을 당신을 믿고 구하면 당신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준다 말이오. 그렇게 어려움을 닥치게 하는 것은 뭐 때문에 어려움을 닥치게 하느냐? 닥치게 하는 것은 당신에게 구하도록 하기 위해서 닥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다고 말씀하는 것은 이리 가운데에 이리에게 잡아 먹척서 이리의 밥이 되라 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리 때문에 이리 보고서 하나님에게 달라붙 으라고 하는 것이오.
우리에게 어려움 주는 것은 당신에게 달라붙으 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산주의들이 이렇게 뭐 어떻게 말하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께 달라붙으라는 것이오.
엊저녁에 내가 처음으로 들었는데 그 좋은 말 들었어. ○○○목사님이 자기 서재에 의자에 앉아 가지고 요래 딱 앉아 가지고 요래 가지고 요래 앉으면 꼭 요 이마를 맞을 수 있는. 요리도 안 삐끄러지고 요리도 안 삐끄러지고 위로도 아래로도 안 가고 요 이마에 딱 맞을 수 있는데 탄환 구멍이 여기 부산 내려왔다 올라가니까 세개가 똑 뚫렸더라고. 총을 놔서 말이지. 총을 놔서 세 개가 딱 뚫렸는데 거기 앉았었더라면 그만 딱 맞는다 말이오.
그러면서 뭐 모두 고발하고 어짠다 하기 때문에 뭐 그럴 것도 없고 조용하라고.
'그런데 하나님이 기도하지를 안하니까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 바로 깨달았다. 그 말에 나도 기뻤어. '그것 참 바로 깨달았다 기쁘고, 그럼으로써 교회에 그것을 은혜의 기회를 삼을 수 있어 '봐라 이러니 너희들이 기도하지 안하면 어찌 되겠느냐?' 하고서 그로 인해서. 자꾸 그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더 잘 가고 가까이 가고 좋은 걸 인해서 가까이 가고 환난 인해서 가까이 가고 이 풍랑 인해서 더 빨리간다고 이래 이러나 이제 모든 것을 가지고 주님에게 가까이 가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일이 더 견고해지면 그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뭐 공연히 쏘았겠습니까? 그 모르지. 하나님 아마 쏘게 했어. 쏘게 한 것이라. 하나님이 쏘게 했으니까 기도하라고 쏘게 했다. 그렇게 믿는 것이 그것 바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닥치는 것은 당신에게 달라붙으라 그 말이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서 이리가 엉을엉을하는 그것 보고서 양이 거기에서 양이 잡아 먹히라는 게 아니고 그걸 보고서 어서 목자에게로 달려가라, 목자에게로 달려가서 목자에게 들어붙으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이스라엘이 네 가지 범죄로 멸망받은 거와 같은 그 네 가지 범죄가 우리에게도 있으면 멸망받지 별수는 없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라 말은 하나님 말씀은 그들만 치는 게 아니라 우리도 친다 그말이오. 양날 가진 칼이라 그말은 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고 우리에게는 해당 안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들에게 해당되고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그말이오.
그러므로 돌아가거든, 교역자들이 돌아가거든 회개하고 거기에서도 이 기도회를 시작하고. 우리 교역자들 가운데에서도 반발하는 사람 '꼭 백 목사 하는 대로 뭐 할거냐?' 그래 할 거냐 하는 그 사람들이 그것이 교회가 부흥이 안 돼요. 부흥이 안 되고 그게. 꼭 재를 저질러 가지고 교인들을 낭패시킵니다.
어짜든지 기도회를 시작해 가지고서 여기에 하는 걸 자세히 물어 가지고 가서.
또 고 기도 제목도 기본구원도 여러분들이 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마는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이라 그말이오 건설구원이 뭐이 건설구원이냐? 기본구원을 그것을 입었느냐 벗었느냐 기본구원을 네가 가진 자냐 안 가진 자냐. 기본구원 얻은 자로 기본구원으로 사느냐 기본구원 받았으니까 이 구원으로 사느냐 그말이오. 전능자의 아들이니까 전능자의 아들로 사느냐 그말이오 기본구원으로. 건설구원이 왜 하늘나라의 영광을 좌우하느냐 하면은 건설구원이 현실에서 기본구원을 버리느냐 기본구원을 입고 있느냐? 기본구원 입은 자로 사느냐 기본구원을 부인하느냐? 그 기본구원을 어떻게 하느냐?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으로써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그 사람은 기본구원에 대한 인정이나 바라보는 것이나 기본구원으로 산 것은 없으니까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 실은 기본구원의 능력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본구원 건설구원에 대해서 이거 잘 써내면 굉장하지마는 잘못 써 내면 뒤에 가서 도로 역습당합니다. 그러니까 잘 알아서 요 기본구원에 대해서 이것을 잘 생각해서 잘 써야 될 것이고 또 예정에 대해서 도 예정에 대해서도 많이 의문을 지금 가지고 있는데 예정에 대해서 우리가 믿는 예정이 이거 아직까지 우리로서는 암만 비판해도 성경적 이고 이제까지 예정 말한 것은 그 예정은 다 재미 없는 예정입니다. 이제까지 말한 건 국한적 예정이오. '이렇게 대국적으로 이래 큰 것 원 줄기적으로 윤곽적으로는 예정이 됐지마는 그 자잔한 세포적인 그런 것은 예정이 안 됐다.' 그렇게 믿는 예정 또 어떤 예정은 '우리 구속에 대해서만 예정됐지 구속 밖의 것은 예정이 되지 안했다.' 이것으로서 되어 있는 것이 대개 많습니다.
그것이 예정되고 딴게 예정 안 됐으면 그것이 될 도리가 없어. 예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정이 됐으면 다 한목됐지. 그렇기 때문에 예정한 분을 모르는 것이고. 예정한 분이 그분이 어떤 분이라는 걸 모르는 것이고 그분이 또 예정하는 것은 어떻게 예정했을 것이라 하는 그 신성에 대해서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결말적인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가거든 어짜든지 기도회 시작하고서 기도합시다. 그래 가지고 전교회가 기도의 사람이 되어 가지고 자꾸 그 기도해야 될 이유를 가르쳐 줘서 기도하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이렇게만 하면. 이거 외에 피난 길이 없어 가 이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뭐 '꼭 백 목사' 백 목사 따라하는 게 아니라 백 목사는 따라할 필요 없고 하나님은 따라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따라해야 돼요. 하나님이 지금 그걸 원하십니다. 똑똑히 깨어서 기도를 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