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11:24
죄값(벌)과 징계
본문 : 골로새서 3장 1절∼5절 상반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총공회 행정위원회에서 부탁하는 광고입니다. 거창집회는 팔월 칠일부터 팔월 십일일까지 열린다고 광고해 달라고 합니다. 팔월 칠일부터 팔월 십일일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죄의 값으로 오는 병이나 또 죄값으로 오는 모든 실패 낭패되는 일이나 죄값으로 오는 불행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믿읍시다. 사람들이 보면 '저 죄를 저래 지어서 죄값으로 저래 온다.' 이렇게 보여질 만치 그 경우가 그렇게 됩니다. 그 죄와 관련성 있는 그런 질병이나 또 사업의 병들이나 모든 자기의 앞길에 병들이 가로막히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저거는 반드시 저 사람의 범죄한 값이라' 그렇게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그 범죄를 한 그 범죄 요소를, 그 사람을 그것을 뽑아 가지고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 있는 참사람 새사람을 만드는 데에는 그와 같은 방편이 필요해서 그것도 그 사람을 구원해서 온전한 사람 만드시기 위한 방편이지 절대로 잘못한 그 값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요것을 확정지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 잘못한 죄값으로 온다, 그것의 벌로 온다 이렇게 깨달음을 가지면 예수님의 완전 대속을 의심하는 게 되기 때문에 큰 구원에 지장이 됩니다.
우리는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그 말씀을 우리가 많이 공부했습니다.
이러니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믿으면 된다. 이래 가지고 소위 굴속에서 있는 사람들, 또 이 기도실에 모두 다 있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성경은 바로 알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무슨 신기한 그런 신유의 일들만 자꾸 사모하고 이렇게 원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탈선돼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 그 신앙 생활의 결말은 다 실패입니다. 거의가 실패입니다.
그래서, 실패되는 그 폐단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기적이라는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기적이라는 건 정상이 아니다.' 이렇게 마귀란 놈이 또 둘러붙여 가지고 이 보수적으로 나가는 그런 진영에서는 기적을 부인합니다. 또 그 병이 들었습니다. 그 병이 들어 가지고 또 실패를 합니다. 기적을 부정하니까 하나님이 모처럼 나타내시는 그 역사가 있으면 이것은 마귀역사로 그렇게 알고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불건전한 그런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 이렇게 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을 정죄하는 일이 되지, 또 죄값으로 온다고 하니까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지 않는 일이 되지 어짜든지 '믿사옵나이다' 하고 이라니까 따져보면 하나님 믿는 게 아니라 자기 주장, 자기 욕심, 자기 뜻을 믿습니다.
어떤 욕심이라도 내놓고 그 욕심을 이루어 주실 것만 확신하면 된다 이라니까 하나님은 만물보다 거짓된 그 자기의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으로 이렇게 결과의 해석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들의 그 생각을 따라 이루어 주시면 결국은 하나님은 만물 중에 제일 거짓된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는 논리가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들도 다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그 믿음은 뭐이냐? 아는 것인데 아는 것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인데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을 두 가지로 알기 쉽게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본적으로 알고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기본적으로 그렇게 사는 것 이것이 있고 그 기초 위에다가 건축하는 거와같이 건설적으로 이렇게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일이 있습니다.
기초적인 그 믿음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또 하나님은 계신다. 하나님은 주권 전지 전능의 대주재시요 만왕의 왕이시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대속으로 구원하셨다.' 이런 종류의 신앙을 가진 그것을 가리켜서 기초 신앙이라 이랍니다. 터가 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터가 건물 건축되는 건 아닙니다. 터가 있으면 그거 건축이 돼야 거처도 하고 뭐 할 수 있는데 그저 건축할 수 있는 밑절미는 되어 있지마는 자기 신앙의 건축은 안 됩니다. 이라니까 기본적인 구원은 얻어 가지고 있지마는 건설구원은 이루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성경을 깊이 따져가는 사람들이 구원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분류하지 안하면 성경 말씀은 다 해석이 안 된다. 성경에는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 있고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을 잘못 인용하면 낭파된다.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은 그저 행위로 된 것이 아니고 거저 주신 구원이다. 이것을 건설구원에다가 갖다가 꿰어 맞춰 놓으니까 건설구원도 행위에서 난 것 아니고 그저 거저 받는다 이라니까 이 건설구원은 힘을 써야 되는 것인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이렇게 힘쓰는 이런 건설구원을 거저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은혜로 받는 것이지 뭐 자기의 공력이 있는 거 아니다' 이래 놓으니까 건설구원을 박살을 내 버립니다. 그 누가 그라는고? 마귀 그놈이 혼돈을 시켜 가지고 그렇게 합니다.
또 이놈이 기본구원을 죽도록 충성해야 기본구원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또 혼돈을 시켜 놓으니까 이거 기본구원도 항상 힘써도 모자라고 고쳐도 모자라니까 그만 기본구원을 얻는 이 일이 박살이 나 버립니다. 그것도 마귀란 놈이 그래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자, 이러니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말을 한다고 조롱을 하고 훼방을 하고 핍박을 하고 이렇게 하면서, 그전에는 내가 백 조사요, 장립받기 전에는. '그 백 조사는 왜 뭣을 자꾸 쪼개, 쪼개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생선 쪼개듯이 막 쪼아서 난도질을 이렇게 하니 그게 죄가 아닌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막 쪼아서 들이 쪼개 대는고?' 이렇게 말을 하면서 조롱을 하고 그게 옳다고 쭉 따라가 가지고, '그 말이 맞다. 구원은 구원이지 뭐 구원이 둘이 어데 있나?' 이렇게 말하면서 따라가는 사람도 그 참 마음에 안타깝고 그 잘못된 깨달음을 가지고 큰소리를 하면서 옳은 것을 정죄하고 자기가 옳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도 안타깝습니다.
이래서, 건설구원의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시고 자기에게 요구하시고 교훈하시는 바로 그것, 육십육 권 도리에서 그거 하나 그것을 발견해 가지고 그것을 '요게 하나님의 뜻이라. 요게 하나님의 명령이라.' 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그것이 그 건설구원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 '믿사옵나이다' 하는 이거 가지고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안하면 안 되는데, 아무리 성경대로 한다고 해도 믿음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양심으로 한다고 해도 믿음이 안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어떤 게 믿음이냐? 건설 믿음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딱 잡는 그것이 건설 믿음인데 그 믿음을 가리켜서 어떤 믿음이라고 했습니까? 겨자씨 믿음. 산 믿음 그것이 산 믿음입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이 하나님과 연결된 생활이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명령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대로 행한 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기도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 생활이라 이랬는데 그것도 혹 동행 생활이 될 때가 있지마는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 현실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딱 찾아 가지고 그대로 해 나가는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그것은 전부 다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영생이라 하는 것은 생명을 얻는 거와 다릅니다. 우리가 중생되는 것은 중생될 때 그때에 한 번만 생명 얻는 것입니다. 한 번만 생명 얻는 그 생명이요, 영생이라 하는 것은 내게 와 있는 그 생명의 힘으로써 시간 시간마다 행동하는 그것이 다 영생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은 이 생명을 받아 살아난 사람들도 그게 영생 아닙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현실에서 생동하는 그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자기가 만드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은혜로, 대속의 은혜로 얻은 기본구원의 생명을 가리켜서 생명이라고 말하고,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건설구원의 이 생명 역사를 가리켜서 영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요한일서에 보면 네가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해도, 열심히 믿어서 뭐 장로되고 목사돼도 너희 안에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있으면 그 속에 영생이 있다 했습니까 없다 했습니까? 영생이 없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기본 생명은 가져도 영생은 없습니다. 영생이라 하는 것은 생명이 생명 생활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믿사옵나이다' 가지고는 안 되고 이 세상의 물리도 그것이 이치에 딱 들어맞아야 되지 이치에 안 맞으면 안 맞은 것만치 낭파되고 이치에 맞으면 맞은 것만치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뭐 날마다 하는 이 밥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밥 먹는 것도 이치에 맞으면 소화가 되고 영양이 되고 이치에 안 맞으면 먹는 것이 도리어 해독이 됩니다.
그런 것도 그런데 하물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이거 완전자의 형상을 갖추는 완전자와 같이 되어지는 이 성취법이, 이루어 가는 그 법칙이 이래도 된다 저래도 된다 뒤죽박죽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무나따나 해도 된다고 그렇게 될 리가 있습니까? 이것은 참 아주 그 부당한 그런 논리를 하고 있지마는 거게 꼬입니다.
이래서, 삼각산에 있는 기도원이 다 모두 이 산지 개발을 인해서 그게 다 거의 없어졌는데 그것은 어떻게 잘됐는지, 삼각산에 굴 속에서 거짓말하고 자기 일생 팔아먹고 남을 속여서 죄, 순전히 죄뭉텅이를 먹고 마시는 이런 것들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또 사이비한 종교 이런 것을 없앤다고 해서 하는 그것들도 아주 많은 성과를 나타냈습니다. 그랬는데 얼마 안 가서 그들은 그게 다 불교에 속했기 때문에 그것은 다 그대로 다 회복이 되고 이 기도실 이런 것만 다 제거됐습니다.
이러니까 이것도 하나님이 좋아하지 안할 일들이오. 이래서, 그래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그 말은,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은 것은 그것은 다 전능이라 만능이라. 왜? 하나님에 딱 들어맞은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어제, 그 겨자씨 믿음에서 '와서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그러면 주인은 안 먹고 네가 먼저 와서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주인의 먹을 것을 예비하고 먹을 때에 수종들고 그라고 난 다음에 먹으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요것을 자기가 신앙 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요런 도리를 해석 못 합니다. 깨닫지 못합니다. 제가 앵무새 모양으로 들어서 이렇게 말은 할지라도 실상을 자기가 믿고 느끼지를 못하게 됩니다.
혼자 하는 것이, 우리 신앙 생활은 하나님이 먼저 먹고 주인이 먼저 먹고 그 후에 수종들다가 먹는 그것입니다. 주님이 먼저 행하시고 먼저 행하실 때에 거게 우리는 수종듭니다. 수종들어 주님이 행하실 때에 우리는 소원하고 우리는 되기를 원하고, 원하고 소원하고 거게 가서 또 요라면 안 되겠다 조래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다 우리 수종이오.
그라다가 일이 척 되니까, 그라다가 그렇게 마음을 갖추어 가지고 그 일이 성사가 되니까 사람들이 '이거는 내가 했다' 하여서 일이 이루어진 그 영광은 제가 따먹어서 또 실패합니다. 그것이 내나 주인 먹을 때에 수종드는 것이오 그러니까 주님이 먼저, 먹는다는 것은 다 행하는 걸 말합니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의 양식이 있으니' 이 제자들은 고기덩어리 양식밖에 모르기 때문에 입으로 먹는 것만 알지 인격의 양식은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 인격의 양식, 믿음의 양식, 참사람의 양식 이거는 행함으로 되기 때문에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내게 있으니 이 양승은 곧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그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양식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거게서 먹는 것을 똑똑히 말씀했다 말이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이제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이거 그 해석으로 하면 쉽고 바로 되고 온고 이런데 이 억설로 가지고, '내 피와 살을 먹는다' 이라니까, 이러니까 온 세계의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의 피가 얼마나 그리 많으냐? 성찬을 먹을라고 하면은 그 떡은 예수님의 살 화되고 그 포도즙은 예수님의 피화된다.' 이래 가지고 그 설을 가리켜서 이단설인데 화육설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그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피와 살로 화해졌다. 이게 전부 육덩이밖에 모르기 때문에 육덩이로 먹는 것을 거석하니까 '이 포도즙과 떡을 이거 마시고 먹고 이라니까 이것이 예수님의 피와 살이 돼야 되겠다' 하나의 의식이요 하나의 깨달으려는 기념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살고 예수님의 살로 사는 것이오. 예수님의 피와 살이 나에게 성령한 것을 그대로 복종해서 사는 것이 피와 살을 먹는 것입니다.
이래서 겨자씨 믿음에서 믿음 더해지는 방법은 사람들이 일 좀 성공하고 밭갈든지 양치든지 일을 성공하고 오면은 그만 자신만만이니까 저 혼자 해 댄다 그 말이오. 자신만만이니까 설교도 저 혼자 해 대고 기도도 저 혼자 해 대고 청산유수요, 언제든지. 그 사람의 기도는 청산유수라. 언제든지 설교하면 설교는 그대로입니다. 이런데 주인이 먼저 먹고 그 다음에 자신이 먹는, 주님이 먼저 일하시고 그 다음에 보이지 않는데 주님이 일해 놓으시고 일해 놓으신 것을 저는 일하는 데에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기도하고 힘쓰고 또 이라면 된다 안 된다 이렇게 마음을 기울여 가지고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 기울여 가지고 이래 그걸 되도록 할라고 자기 기도 어짜든지 많이 기도도 하고 이래 가지고 애를 쓰다가 그 일이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이루어졌으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일을 자기에게 주시니까 자기가 노력한 것은 하나님이 해 놓으신 일을 공짜배기로 받는 노력이지 그것이 그 일을 성공시키는 노력이 아니라고 요렇게 구별하는 요렇게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기도도 어떨 때는 보니까 영 못 하고 설교도 못 하고 이거 인본주의는 언제든지 기도도 설교도 철철철 합니다. 그런 경험 있어요 없어요? 자기 혼자 하고 주님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따라서 주님이 해 놓으신 그것이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주님이 하시는 그 일이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거 제가 한 줄 아니까 자꾸 교만해지고 만다 말이오. 그게 시작이 교만에부터 시작해. 그러기 때문에 성공할라고 하는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좀 자신이 있어 놓으면 그만 그 다음에는 밭갈고 양치다가 와 놨으니까 인제 자기 한 일이 있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뭐 주님 떼내 버리고 자기 혼자 다 해도 될 수 있는 것으로 아는 그것이 믿음 망하는 길입니다. 그것이 믿음 망하는 길이라. 믿음 그 믿는자라는 길은 어데까지 어떤 성공을 하고 어떻게 했을지라도 또, 크나 작으나 주님이 해 주셔야 되고 주님이 당신이 하시는 것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야 되는 것이지 내가 무슨 힘으로써 완전에 속한 요소인데. 완전 요소를 불완전한 내가 뭘 그걸 할 수가 있어? 완전은 완전이라야 할 수 있지 불완전한 것이 어떻게 완전을 할 수가 있어?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어떻게 만들며 천한 것이 귀한 것을 어떻게 만들며 무식이 유식을 어떻게 만들 수가 있었어? 죽은 것이 삶을 어떻게 만들 수 있어? 요와 같은 일이라. 산 게 산 걸 만들지. 이러니까 먼저 하는 것은 그러면 먼저 누가 하는가? 우리 속에 와서 계시는 하나님이 합니다.
이래서, 이번에 공부한 데에 사람병 고치는 이거, 사람병 고치는 것은 뭣을 고치는 것이 사람병 고치는 것이냐?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잘못 알아 잘못 인정하고 상대하는 그것이 제일 큰 사람병이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바로 모르고 바로 상대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 둘째에 큰 병이오. 또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에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뻐뚤어지게 바라보는 그것이 큰 병이오.
그것을 통틀어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대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그대로 믿지 안하고 자기 주관대로 맏는 것이요 자기 자율대로 믿는 것이라. 그 주관과 자율이 어데서 나왔습니까? 자, 그거 한번 물어 봅시다. 주관과 자율이 어데서 나왔습니까? 마귀에게서 나왔어. 배암에게서 나왔어. 에덴동산 해와에게 배암이 와 가지고 그렇게 유혹시킬 때에 배암이 어데서부터 나왔느냐? '참으로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시더냐?' '만지지도 말고 먹지도 많라 하더라.' 벌써 거게서 제것이 나오기 시작했어. 그 원인이 어데 있느냐? 동산을 지키고 다스리고 했는데 지키지 안하니까 그만 그리 돼 버렸어. 지키지 하는 그것이 원인인가? 지키지 안하는 것이 원인이 아니라 그보다 더 원인이 있어. 그보다 더 원인은 뭐이요? 그보다 더 원인은 뭐이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생각하는 것이 제일 근본입니다.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 명령 생각하면 그 다음은 자연히 필연적으로 이루어 나가요.
이러니까 우리의 신앙에 제일 근본은 하나님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생각하는 거기에서 또 하나님 명령 생각하고 그라면 탈선이 안 돼요 그라면. 그런 탈선되지 못해요.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 명령 생각한다면 거게서부터 절대성의 그 역사가 나오기 때문에 거게는 이 인간이 방해할래야 방해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병 고쳤다, 사람병 고치면 다 돼요. 지난밤에 내가 여기 방에서 보니까 뭐 나와 보니까 반신불수가 뭐 뭘 둘이 일어났어? 반신불수가 둘이 일어났다고 그래 막 뛰고 다니면서 좋아서 이래 쌓고 모두 박수하고 야단을 지기는데 와 보니까 그래요. 그래. 그게 뭐 큰 게 아니라. 인제 사람병만 고쳐지면, 여러분들 지금 요번에 말하기를 어짜든지 죄값은 없다. 죄값은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담당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는 어떤 불행이라도 그 사람을 고쳐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제 건설적의 건설면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이 건설면에 있는 것이지 그 잘못됐다고 형벌 주는, 형벌 주는 형벌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어떤 불행이라도 '여게서는 나를 뭐를 고치라고 지금 뭣을 건설하라고 무엇을 갖추어 준비를 하라고 이렇게 하는 것인가?' 주님이 준비하라는 것 찾아서 갖추고 또 고치라는 것 고치고 이라면 되는 것이지 벌로 왔으니까 나는 이리 벌을 받았으니까 벌받았다 하면 그거 벌써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거 딱 끊어져 버리요. 딱 끊어지니 그 다음에 지극히 큰 능력과 끊어지니까 올 수가 없어.
어떻게 둥치와 위에 나무가 끊어졌는데 둥치의 영양이 어떻게 그렇게 올 수가 있습니까? 포도나무 둥치에 끊어졌는데 포도나무 영양이 끊어져 있는 그 가지에게 어떻게 가겠어?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잘못된 거는 끊어지는 거라.
예수님의 대속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그 연결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대속을 중보자라 이렇게 중보자라 말합니다. 중보자는 둘을 한테 연결시키는 그게 중보자라.
이러기 때문에 잘못 믿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말하면 '까다롭다, 뭐 하나님 말씀을 막 쪼개 놓는다, 그냥 믿으면 믿지.' 이렇게 하는 이것을 사람들은 다 좋아해. 마귀가 들어놓으면 우선 수월하고 편한 것만 좋아하기 때문에 자꾸 그걸 좋아해. 성신이 오시면 구별하고, 우리 이름이 뭐이라? 우리 이름이 뭐입니까? 성도요. 성도라 말은 구별하는 무리라 그 말이오. 구별하는 무리라.
이러기 때문에 레위기 l l장에 보면은 '고기를 먹는데 새김질하고 쪽발 있는 고기가 아니면 그거는 짐승이면 더럽기 때문에 거룩한 자들이 먹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했어. '도야지는 쪽발은 쪽발이지마는 새김질 안 하기 때문에 부정하고 또 토끼 같은 이런 거는 새김질은 하기는 하지마는 쪽발이 아니기 때문에 부정하다. 쪽발에다가 새김질 해야 된다' 그렇게 짐승을 가지고 우리가 미개하고 유치할 때는 우리에게 교훈해 주셨다 말이오.
그러면 그것이 뭐인가? 우리는 걸어갈 때는 항상 이거냐 저거냐 둘로만 구별해야 되지 서이 되면 복잡해 그만 마귀에게 꼬여 들어가 버립니다. '이거는 하나님 위함이냐, 나 위함이냐?' 그라면 그만 대번 쉽게 구별이 돼요. '이런 또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냐 천국 소망이냐, 땅의 소망이냐?' 이거 그만 환하게 찾으면 돼. '요것은 하나님의 뜻이냐, 내 뜻이냐?' 이렇게 둘로만 구별하면은, 구별해, 걸어갈 때는 반드시 둘로만 구별해 가라 말이고, 자기가 뭐이든지 취할 때는 받아들일 때는 언제든지 이것은 새김질해야 됩니다.
받아들이는 거. 말씀을 받았든지 지식을 받았든지 뭘 받았든지 자꾸 그것은 새김질을 해야 된다. 어데 가서 돈이 수입이 돼도 자꾸 새겨야 돼요. 이게 자, '이게 이거 먹으면 죽을 것이가 살 것이가? 이게 어데서 나와 가지고 어찌 됐느냐? 이 말씀은 이거 어데서 나왔으며 이대로 행하면 그 결과가 어찌 되겠느냐?' 자기에게 들어오는 거, 자기에게 들어오는 것은 자꾸 새김질하라 말은 들어온 것은 또 새로 생각하고 새로 생각하라 말이오. 새김질을 모르는 사람 더러 있을 거라. 시골에 가서, 농촌에 가서 소를 먹이면 그 소가 밤새도록 씹습니다.
이래 가만히 누워 자면서 억 하면 속에 인제 그 위에 있던 게 쑥 게워지면 또 씹어서 우물우물 이래 또 씹고 또 또 억 하면 또 나와 또 씹고 그저 한번 들어간 것을 얼마든지 그리 씹어저 그리 합니다. 그게 새김질이라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자꾸 따지고 따지고 구별하고 구별하고 이래 가지고 해야만 거룩 속에 들어가지, 생명 속에 들어가지 그저 마구 삼켰다가는 다 죽어요.
그래서, 이번에 이 간단하게 짧은 기간 동안에 말씀을 주셨는데 이번에는 할 수 없어서 총공회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거는 총공회 교리와 신조다. 일반 교리와 신조, 일반 교회들이 깨달은 것은 아니고 아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총공회 행정이다.' 하는 것을 말을 했습니다. 누가 어떤 사람이 어제도 보니까 '총공회 행정 그것이 옳다.' 그 사람 조금 눈이 떨어졌는 모양이라. 그런 거야 알기 쉽소.
그것은 제가 벌써 사십여 년 전에 고신에 있을 때에 말을 했고 제가 나올 때도 그런 것 때문에 시비가 나와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 다수가결을, 다수가결, 많은 다수에 따르지 않는다고 내가 치리 받은 것이 그것이 상회 불복종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상회가 아무리 이래 전체가 뭉쳐져도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나는 안 하겠다. '하나님의 뜻을, 나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온 교인이 한 사람도 반대 안 하고 삼백 명이 전부 한 사람도 반대 안 하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내가 옮기지 안할 거고 다문 한 대여섯 사람 칠팔 명이라도 반대를 하면은 그걸 트집을 잡아 가지고 나는 옮기겠다.' 나도 옮기기를 원한다 그 말이오.
옮기기를 원하고 원하고 그만 옮기면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아닌지 이거 몰라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보이니까 옮길 수가 없다 말이오. 핑계라도 대 가지고 그만 옮길 수 있으면 옳기면 좋아요, 너무 괴로와서. 이래도 그래 기도하고 나서 자기네들이 투표할 때 와 보니까 하나도 부표가 안 나오는데 어짭니까? 이걸 어기고 또 갈 수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모든 사람의 다수를 따라서는 옮겨야 되겠는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 이걸 내가 옮길 수가 없다 그거요. 그것도 행정에서 갈라진 것이라. 행정에서 내가 치리받았어. 이러니까 이제 자꾸 이 총공회를 뭐 송장같이 똥덩이같이 생각하는데 나는 그저 총공회 이것을, 총공회 될라고 하는 거 아니라. 이름 할라 하는 거 아니라. 모이다 보이까 모이니 이거 공회가 되고 또 공회가 많이 있으니까 공회 위에, 위에 공회가 있으니까 총공회라고 하는 것이지 그 무슨 뉘가 간판 가지고 교주가 될라고 하고 그렇게 명예 영광심으로 따로 갈라지기 위해서 한 것 아니오. 진리 때문에 깨달음의 진리 때문에 그렇고 또 행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이번에는 내가 그 말을 했어. 많이 말했어. '이거는 총공회 교리요 신조다. 이거는 총공회 행정이다.' 그 말을 하는 것은 누가 있다가 '다른 데도 그렇다.' 그러면 다른 데 그러면 뭣 때문에 시비가 날 건가? 어제도 어떤 목사님이 어떤 지방에 있는 목사님들이 와 가지고 말하기를 거게서 지금 아무래도 이거 어느 집회는 이 모든 이 지방에 있는 교파를 망라해서 모든 교회들에게 인정이 좀 잘못돼 가지고 있고 좋지 못한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좋지 못한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언제 한번 와 가지고 그것을 한번 다 좀 변증을 좀 가서 한번 증거를 한번 해 달라고 이라는데 그래서 '그러면 언제 그런 시기를 맞춰 달라 그라면 한번 가서 그라겠다' 이라면서 '가는 게 좋습니까 어느 게 좋습니까?' 그렇게 말해요. 그래 내가 있다가 '무슨 문제인데?' '영이 지금 범죄 안 하니 하니 이라는데 이 문제인데 그래 그걸 다 모두 틀렸다 하고 이라고 있는데 거게 대해서 한번 말해 달라.' 그 사람이 배우고 싶어서 그라면 배우고 싶으면 배우지 그런 꾀를 쓰는 데는 복술에게 피동되는 거라. 안 해야 돼요. 그래 인제 그 목사님이 있다가 '그라면 너거들은 사람의 인적 요소를 이분설을 믿나 삼분설을 믿나 하니까 삼분설은 이단이요 이분설이 정통으로 이분설을 믿는다.' '이분설을 믿으면 그러면 뭘로 믿느냐?' '그러면 영육 이렇게 이분설을 믿는다.' '그 영육이면 영은 뭐이냐?' '마음이 영이다' '그러면 마음이 영이요 영이 마음이다' 그러면 마음과 몸, 마음은 뚜렷하니까, 마음과 몸 이 둘로 믿는 것이 정통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 사람들이 영을 알지도 못하는데 영이 죽느니 사니 하는 그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소? 그러니까 영이라는 말이 있으니 영을 부정할 수는 없고 이제 자기네들 보기에는 몸뚱이하고 마음하고 둘밖에는 없으니까 '마음이 영이요 영이 마음이라'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단다는 것을 다 그들이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거리가 너무 머니 뭐이 되겠느냐? 그래 내가 있다가 거기서 무슨 자꾸 그만 이미지가 안됐다고 그라면 욕하면은 고치라 하면 고칠 것 있으면 고치라. 또 고칠 것 없으면 가만 있으면, 고칠 것 있어서 고치면 복되고 어떤 사람이 욕을 하든지 말든지 욕하는 데에 고칠 것 있으면 고치면 복되고 또 고칠 것 없으면 어째야 돼요? 시비를 해요? 고칠 것 없으면 가만 있으면 복되고, 이거야 옳은 길만 가면 이래도 복 저래도 복 뭐 전에가 복인데 문제할 게 뭐 있겠소? 지금도, 지금도 그래 하고 있기 때문에 이 하나가 되겠습니까? 이래 놓으니까 어짤 수 없어, 이게 거게서 있으면 말하지마는 쫓겨 나은 것이 그것 때문에 쫓겨 나와서 그대로 믿으니까 이게 자연히 행동을 하니까 뭐 의논도 있고 단체도 이래 모이니까 서로 이 교리 신조 행정을 가진 자들이 모인 것을 가리켜서 그 모였으니까 여럿이 모이니까 공회 아니요? 예루살렘 공회도 그것 때문에 모여, 성경 사도행전 l5장에 모인 거와 같은 그런 모임으로 우리가 모여 가지고 있으니까 여럿이 모이니까 그 공회가 됐는데, 여럿이 모이니까 공회가 됐는데 여럿이 모이는데 자꾸 교회가 퍼져 나가니까 그러면 전국이 다 그런 문제로 다 한목 모일 수가 없으니까 '아, 이거는 그 지방끼리 모이라.' 이러니까 지방끼리 모이니까 지방에 공회가 됐고 그러면 지방끼리 모여 지방 공회가 됐는데 그라면 지방 공회와 또 전국이 다 모일라 하면 어찌 되느냐? 그거는 총공회라 이름을 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이 이름이 되어지는 것이지 누가 간판내기 위해서 된 것입니까? 알지도 못하고 자꾸 그래 지금 욕만 하고 있다 그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총공회 간판을 떼야 된다고, 간판 때문에, '왜 간판 뗄라 하노?' 문터막이 높으니까 사람이 못 넘어온다고. 이거 간판을 이렇게 이래 놓으니까 왔다가는 다 그만 도망가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또 찬송가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렇게 말해요' 그게 좋은 방어선이다.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하는 방어선이다 일차 방어선이 총공회요 이차 방어선이 찬송가다. 그게 속화되지 안하고 이 세상, 하나님이 보내지 안한 그런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거 막은, 여게 저게 돌아다니면서 못된 것 배워 가지고 나쁘게 배운 것은 와서 고칠라 해야 안 고쳐져요. 가르칠래야 참 안 가르쳐져요.
이러니까 제가 여기 대구집회를 할 때에 여기 뭐 대구에 목사님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많이 와 가지고 '아이구, 모두 예수 새로 믿어야 될세.' 이라더니마는 그 사람들이 왜 떨어졌느냐? 다 떨어진 것은 영혼 문제로 다 떨어졌어. '영혼 그거, 이 보라.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거 이지 이단 아니냐?' 그거 다 정죄하게 되니까 그러면 그렇지 저거 한 게 좋다고 말이요, '그러면 그렇지', 우리 해가 다 틀렸고 이라다 보니까 우리 다 예수를 새로 믿어야 되겠다고, 목사들이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이라다 그 문제가 딱 나오니까 '그러면 그렇지 우리 해가 좋지' 잘 좋았다. 어리석게 어리석어. 이러니까 성경을 전혀 모르니까. 성경을 모르고 저거 생각대로 예수 믿으니까 자꾸 그리 된다 그 말이오.
그래서 이 총공회가 된 거라. 이러니까 아버지가 보낸 자는 와요. 아예 총공회 간판을 간판 밑에 들어오고 또 이 찬송가도 이백 곡 이내에 구백구십 몇인가? 구백구십을 고쳤어요. 통일 찬송에서 옛날 그 찬송을 구백구십을, 이백 곡에 구백구십을 고쳤으니까 한 곡에 한 얼마나 고친 거라? 한 더넛 고친 것이가? 한 곡에 너덧 고쳤다 말이오. 이래 고친 거 고친 그게 싫어서. 고쳤으면 좋게 고쳤으면 좋지마는 좋게 고치지 안하고 이 나쁘게 저거 욕심대로 저거 생각대로 이 유행대로, 유행. 이 유행을 좋아해서 유행대로 고쳤으니까 그거 찬송가의 지은 사람의 근본 뜻은 없고 그 영감의 뜻은 없고 전부 속화가 돼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걸 이거 성경은 성경이고 제이 성경은 찬송가인데 이거 따라 모두 사람이 하는데 이걸 자꾸 이 속화된 이걸 용납할 수가 없다. 이래서 우리는 그걸 따라가지 못하겠으니까, 못 따라가는데 우리는 또 찬송에 그렇게 뭐 지식도 없지 이라고 이러니까 '이걸 전부 다다 그렇게 할 게 아니라 그만 이거 한 이백 곡만 예배 찬송으로 해 가지고 이것은 그 사람들 따라가지 말고 새로 유행 따라가지 말고 옛날 찬송 지은 그 사람들의 가사가 더 뜻이 깊고 더 신앙적이니까 그거 따라가고 혹 성경적이 아닌 삐뚤어진 것이 있으면 그런 거는 고치고 그렇지 않은 거는 다 이대로 하자' 이렇게 해 가지고 우리가 이거 찬송가를 한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이거 근본을 알아야 돼요. 우리는 우리가 만든 거 아니요. 우리가 따라가기 싫어서 그런 것이고 우리는 유행되기 싫어서 그렇지. 이래서 이거는 이라면 자꾸 속화가 막, 이번 통일 찬송으로 말미암아 교회들이 얼마나 속화돼니, 갈란지 모릅니다. 전부 다 옛것은 다 고쳐 쓸데없는 것 자꾸 세상으로 말미암아 고쳐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걸 알고 요번에 여러분들이 배운 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테이프든지 가져가 가지고 단단히 그래 가지고 한 테이프를 사오십 번 들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쉽게 들어서, 말로나 알지. 알지마는 인간의 방언이라 하는 건 이거 아무것도 아니요. 인간의 방언은 속에 영감을 발표를 못 합니다. 발표를 못 하니까 인간의 방언 속에 자꾸 듣고 자기가 양심으로 깨닫고 자기가 기도하고 이 묵상하고 사모하고 이 간절하는 그 속에서 이제 인간의 말로 표시 못 할 하나님의 뜻인 영감 뜻이 자기에게 알아진다 말이오. 영감 뜻이 알아져. 그러면 그 영감 뜻이 알아지면 거게서부터 생명이라. 그런고로 이번에 이 모두가 사람을 고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단단히 강직합시다.
이제 한번 간추려서 한번 재독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이제 할 시간은 없고,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한번 기억하라고. 처음에는 이사야 3장 l절 이하의 거석을 세 차례, 세 시간 계속, 세 시간이 아니라 세 차례 예배를 계속했습니다. 이런데 여게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는 그것은 다 하나님이 멸망시킨다. 제해 버린다. 다른 걸 의뢰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자꾸 악화 변해져 버린다. 그것을 거기서 말해. 사람이 변해지니까 모든 형편이 변해지고 생활이 변해지고 결국은 비참하게 된다. 옷 한벌이 없어서 전부 여자들도 남자들도 다 전부 아랫도리가 다 환하게 나온다. 암만 뭐 입을라 해야 입을 게 있어야지? 지금 말하면 다 웃을 것이오. '어찌 그래요?' 우리가 클 때는 가난한 사람들 이 궁둥이 다 나왔습니다.
째져서 궁둥이 다 나왔어. 그거 또 그 앞에도 다 나와. 그때는 뭐 빤스 입고 뭐 입고 뭐 그런 거 입는 줄 아요? 그런 거 없어.
나는 뭐 빤스라, 나는 빤스라밖에 몰라요. 그거 뭐 또 뭐라더라? 팬티라 하더나 뭐라더나? 나는 그저 한 가지 표현되면 말을 하지 그만 알면 되는 것이지 그거 그 안에 진리를 원하지 그런 말을 자꾸 아름다운 말로, 될 수 있는 대로 보통 쓰는 말로 자꾸 그런 걸로 나가지 요 말을 좀 수사해 가지고 요런 문자를 쓰고 요런 맵시 있는 요런 무슨 고등 술어를, 그까짓 것에 나는 생각 안 해. 그게 중한 게 아니라 그까짓 저는 중한 게 아니고 그것이 표시할라고 발표할라 하는 그 속에 있는 진리가 중하고 진리가 중한 게 아니라 진리 안에 생명이 중하고 생명 안에 하나님이 중하다 그 말이오. 그때는 그렇게 참 어려웠습니다. 어려웠는데 그 어려움을 경술년에 일본하고 합방됐는데 합방되고 난 후에 조금 어려움이 면해졌고 그 어려움이 또 계속하다가 해방 후에 어려움이 좀 면해졌고, 그 해방 후에 이 정권에서는 인문학을 많이 해서 사람이 돼야 된다 해서 인문학을 공부를 많이 했고 그라니까 배고프니까 그 다음에는 자연학을 많이 해 가지고 박 정권 때에 우리가 조금 배가 불렀고 인제 허기를 면했고 그 다음에 O정권 때에 배가 불렀고 지금은 얼마나 불렀든지 뭐 밥이 귀하다 옷이 귀하다 하면 우습게 생각합니다. 옛날을 몰라요.
이렇게 우리들은 예사롭게 생각하지마는, 의뢰하면 다 제한다. 하나님이 제한다.
여러분들이 돌아가 가지고, 의뢰라 말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게서 내가 받아 가지고 가지고 있다. 또 앞으로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받을 그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하는 그것을 의뢰라고 표시한 것입니다. 의뢰와 의지와 달라요. 의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지금 배경을 뭘 삼고 지금 등을 삼고 이와 같이 뭣을 내밀고 자기가 이와 같이 할라 하는 그걸 말하는 것이고, 의뢰는 벌써 받아 가진 것을 말하고 또 앞으로 받을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서 다 받은 것이고 또 앞으로 하나님 한 분에게서 받을 것이라는 요것을 삐뚤어져 놓으면은 그 첫째는 사람이 교만해지고 그라면 교만해지니까 다른 사람 멸시하게 되고, 모든 것을 남용하게 되고 방탕하게 되고, 사치하게 되고 요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뭐 아랫도리가 다 나왔다. 또 발로 걸으면 쟁쟁쟁쟁거리며 그렇게 아주 하지마는 나중에 가서는 이 모두 다 얼굴에는 자자한 그런 게 뭐 그거 아름다운 얼굴을 대신하고 또 썩은 악취, 썩은 악취가 향기를 대신하고 이렇게 비참하게 망해진다 그 말이오.
요걸 이제는 그게 존재관을 말한 것인데 내 게. 있는 거, 내라는 존재, 내게 있는 무엇이든지 지식이나 지위나 권세나 또 무슨 소유물이나 뭐 불력이나 무엇이든지 나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 그분으로 말미암아 왔고 또 그분의 것이고 앞으로도, 그분에게만 받지 딴데는 받을 데가 없고 우리를 줄 데가 없어. 불한당, 그 일 안 하고 제가 했다 하는 불한당 그 도적놈 말이요, 불한당 그게 들어서 제가 줬다고 마귀란 놈이, 마귀 이름을 불한당이라 해요, 불한당. 제가 안 주고 '내가 아들 준다. 내가 복 준다.' 이래 가지고 전부 하나님이 하시고 저는 하나도 안 하는 것이 제가 한 척 하는 것이 마귀 역사라. 이것에게 꼬이지 안하고 모든 존재는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또 앞으로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이러니까 내것 아니고 그분에게 모든 주권되어 그분이 주고 하니까 그분에게 대해서 조심 안 할 수가 없소? 자 얻으러 가는 사람은, 사람이 빚을 얻으러 가도 그렇지 안해요? 얻으러 가면 그 빚줄 사람의 비위를 생각하지 안해요? '저 사람한테 가면은 어째야지. 저 사람은 술먹는 사람은 절단이다. 내가 술을 먹고 가면 돈 안 빌려 줄 거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암만 술이 먹고 싶어도 그때는 술 안 먹고 간다 말이오. '야, 이 사람아, 자네 요새 술 안 먹나?' '나 술 안 먹습니다.' 이래야 돈 빌려 줄 것이거든 그때 가면서 막 술이 취해 가지고 흔들흔들 자빠지며 가 보십시요 주는가? 이게 간단하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에게 모든 거 다 얻었고 앞으로 얻으니까 그분의 비위를 안 맞추면 안 되겠으니까 그분의 비위 맞출라 하다 보니까 차차 사람되어지고 행위되어지고 이래 돼지고, 그분이 아니고 이제 어떤 인간에게서 왔다, 제일 악한 것이 제 힘으로입니다. 내 힘으로 됐다 하는 그자가 제일 교만한 자 되고 제일 불쌍하고 속히 망합니다. 이래서, 이사야 3장 이하에 있는 모든 존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왔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오고 또 이걸 내가 사용하는 데도 그분의 뜻에 맞게 이렇게 하면 자꾸 주고 주고 줘서 있는 자에게는 더 주시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도 뺏들어 버린다.' 이랬다 말이오 성경에 그래 놓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이거 존재관이 이거 바로 돼서 그라면 하나님께 얻었다 하니까 그분 비위를 맞춰야 되니까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또 다른 사람 멸시할 수 밖에 없고 이거 동정할 수밖에 없고 자꾸 사람이 복받을 사람이 자꾸 돼 간다 그거요. 요래서 이사야 3장 l절에 있는 말씀을 기억하고, 또 히브리서 l l장 l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는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도 자꾸 읽어요. 믿음은, 믿음은 뭐이냐?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요대로 하면 요거는 틀림없다 하는 것을 인정했으면 벌써 그 속에 이미 되어 있는 그 실상을 자기가 만진 거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실상이 있느냐? 하나님이 말씀을 할 때에는 벌써 실상도 같이 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면 전부 실상이오. 이러니까 뭐 보십시오. 천지야 창조돼라 하니까, 이 우주가 얼마나 복잡합니까? 이렇게 많은데 하나님이 천지야 창조돼 라고 이라니까 벌써 다 됐어. 그 속히 속성이 아니라 말씀이면 곧 그 실상이라 그 말이오. 요것을 똑똑히 믿어요.
이래서, 우리가 성경에 기록한 모든 소망하는 것은 이제 자기가 알고, 아는 것은 뭐이라요? 아는 것은? 발견하는 것. 또 인정하는 것은? 어? 인정하는 건 내것 된 것. 인정은 하나니까 하나님하고도 나하고 하나님의 그 가지고 계신 그것도 나하고 하나고 합작됐어. 인정에서 합해지는 거라. 인정에서 합해져요. 그 다음에 행함은 뭐이요? 먹으면 돼요. 사용하면 돼, 벌써 실상이 있으니까. 알고 인정하면 다 되고 그 다음에는 사용 안 하면 안 돼. 알고 인정 하니까 밥이 됐어. 알고 인정하니까 밥이 됐는데 밥을 먹어야 배가 부르지요. 안 먹으면 안 된다 말이오.
밥은 있는데 안 먹으면 배가 부르지 않는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알고 인정하면 다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다음에는 그만 행하는 것은 뭐이야? 행하는 것은 만드는 것이요, 자기가 누리는 것이요? 누리는 것이라. 요것이 다르다 그 말이요. 요 믿음의 해석이 달라. 믿음에 대한 깨달음이 달라.
이러니까 제가 지금으로부터 한 오십 년전인데 거창서 나는 '뭣이든진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은 이미 하나님이 이루어 준 줄 알아라. 받은 줄 알아라. 그 제가 중간에 낙심 안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대로 행할 때는 그것이 이미 벌써 이루어져 가지고 있다.' 하는 요 말을 얼마나 미웠던지 내가 거창집회에 가니까 쉰다섯 문제인가 조목을 그래 해. 쉰다섯, '요것도 요라기 때문에 틀렸다, 요라기 때문에 이단이다 이단이다.' 하는, 그분이 지금 내가 이름은 말하기 미안해.
지금 살아 계십니다. 고신에 살아 계시요. 그 편지가 지금도 내게 있어요. 이렇다 이렇다 이라는데 그분들은 그것을 벌써 '기도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알아라' 성경이 그렇게 말했는데 그렇고 또 사실이 그렇다 그거 요 이러니까 믿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다 했어요? 믿음 속에는 뭐이 들어 있어요? 알고 아는데 아는 데 뭐 들어 있어요? 뭘 알아요? 믿음 속에는, 믿음 속에는, 우리가 아는 것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면 아는 것 속에는 예수님의 피가 들어 있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들어 있고, 전지 전능이 들어 있고, 하나님의 충만을 내게 주실라고 손에 들고 계시는 것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알면 안 그 바로 찾아서 알면, 바로 찾아서 알면 바로 찾은 그 하나님의 뜻 속에는 뭐이 들었어요? 하나님의 뜻을 내가 바로 찾아서 알았다면 그 속에는 뭐이 들었어요? 모두 다 잊어버리니 이래 가지고 뭐 가 가지고 테이프만 모두 믿고 있는가? 그 속에는, 그 속에는 우리 중보자 예수님의 대속이 들었어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딱 찾아 가지고 하나님이 요렇게 하라 하신다 하는 그것을 아는 것이 아는 것이라. 그것이 건설구원의 믿음에는 그게 아는 것이라.
기본구원은 신구약 성경이 정확 무오하다 이렇게 아는 게 기본이지마는 건설구원에 대해서는 건설구원에 대한 믿음은 그 현실에서 아는 그게 아는 것이라. 그 아는 것 속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했다 그 말이오. 바로 발견한 속에는 뭐이 들었어요? 예수님의 대속의 이 설정된 공로가 들었어요. 예수님의 대속이 들었어요. 대속 뒤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들었어요. 전지 전능이 들었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실라고 이제 들고 지금 섰어요. 아나 받아라 하며 들고 섰어. 그 안에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인정하면 벌써 내것 다 됐어. 인정하면 내것 다 돼 버렸어. 이러니까 그 다음에 행하는 것은, 그 다음에 행하는 건 내가 누리는 것이라 그 말이오. 요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관입니다. 요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관이오. 그 신앙도 둘로 기본신앙 건설신앙 구별해서 나눠 가지고 건설신앙에는 자기 현실 속에 담겨 있는데 거게서 벌써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발견만 했으면은 거게 뭣 들었어요? 바로 발견했으면 거게 뭣 들었어요? 예수님의 대속 들었고, 또? 삼위일세 하나님 들었고, 또? 하나님의 전지 전능 들었고, 또 하나님의 충만한 은총이 다 들어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자, 어데 금덩이가 있고 이 세상에서 뭘 보배를 주으러 다닙니다. 금을 주으러 다니고 은을 주으러 다니고 주으리 다니요. 주으러 다니고 또 잘난 사람을 지금 만나 가지고 그 사람으로 교제해 가지고 이제 사교해서 뭐 도움을 받을라고, 세상에서 좋은 걸 찾아다니면서 좋은 걸 찾아다니는데 제일 좋은 것은 어데 들었습니까? 제일 좋은 거는 어데 들었어요? 어? 저 OOO권사님? 제일 좋은 게 어데 들었어? 저 똑똑한데 요새는 바보가 됐는가배.
권사님? 제일 좋은 게 어데 잊어요? 자, 제일 좋은 것이 어데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야. 요걸 잡아요. 제일 좋은 게 하나님의 뜻이야. 뭘 좋아? 아름답기도 제일 좋고, 능력도 제일 좋은 능력, 지혜도 제일 좋은 지혜, 모든 소유도 제일 좋은 거 또 제일 좋은 양반 찾아요. 제일 좋은 양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찾으니까 그보다 더 좋은 양반이 어데 있어? 이러기 때문에 요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요것은 요렇게 보배인데 요것을 보배라는 것을 모르는 그것이 우리가 다 실패하는 그런 원인이라. 그러면 믿음은 아는 거, 인정하는 거 이라는데 아는 거 인정하는 것을 벌써 뭐 수십 년 말을 했고 이래도 이 사람들이 자꾸 엉뚱한 일 해. 아는 거 그거는, 신구약 성경을 물론 알아야 건설 신앙의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니까 신구약 성경 우리가 뭐 백 독 하자 이래 쌓는 것은 뭐이냐? 현실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요것을 알기 위해서 준비하는 거라. 왜? 하나님이 내게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주시되 성경 범위 내에서 문제를 내거든. 성경 범위 내에서 문제 내기 때문에 성경 공부해 놓으면 그 문제를 맞추기가 쉽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자꾸 읽고 상고하는 것이라 그거요. 이래서 뭐할라고 그거 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아는 그것이 믿음의 삼분지 일이요 시작이 됐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 뭐인데 능치 못함이 없어? 그 뭐이 들었는데 능치 못함이 없어? 뭐이 들었는데 능치 못함이 없지요? 우리 OOO목사님 말해 봐. 그 능치 못함이 없는, 거기 다 들었거든. 우리의 뭐 완전이라, 죄에 대해서 완전, 의에 대해서 완전, 하나님께 대해서 완전, 이 모든 데 대해서 창조주에 대해서 완전, 피조물에 대해서 완전 모든 것에 다 완전이 그 속에 들어 있는데 그 완전이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대속이라 그 말이오. 대속이 들어 있지 또 그 완전이니까 이제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하고 한덩어리 되는 중보니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들어 계시지, 전지 전능이 들어 계시지, 하나님의 충만이 들어 있지 이라니까 암만 돌아다녀도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 찾는 이것보다 더 보배는 없습니다.
자,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보다도 더 보배로운 것 있소? 보배로운 것 있거든 한번 말해 봐요. 우리 OOO목사님? 없어. 없어. 이러기 때문에 무디 선생이 '믿음보다도 더 큰 수입 있는 거는 없다' 하는 그분이 깨닫고 한 말이라. 그러기 때문에 그 시대를 구원했습니다. 이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는 것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또 골로새서 3장 l절로 4절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생명의 비밀을 비결을 말씀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가 듣는 것도, '듣는 것은 뭐 귀로 듣지, 보는 거는 눈으로 보지, 말하는 거는 혀로 말하지.' 그게 말해요? 듣고 보고 말하고 접하고 모든 것을 취사 선택하고 하는 것은 그거 손으로 하는 건 손이 해요 뭐이 해요? 생명이 해요, 생명이. 껍데기 보면 손으로 하는 것 같지. 생명이 이것들을 붙들고 이용해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게 무슨 증거가 있느냐? 생명 떠나니까 손도 그 손이고 귀도 그 귀고 눈도 그 눈이지마는 아무것도 못 봐요. 생명이 들어오니까 봐요. 생명이 이런 것들을 다 작용하고 이와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러니까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이러니까 우리 안에 삼위일체의 하나님 또 이 진리가 내 속에 들어와 가지고, 우리 생명이 뭐이 생명 됐어요? 우리 생명이? 예수님의 대속은 삼위일체가 한 대속입니다. 대속 또 성령, 진리 또 영원한 하나님 향한 소망 이것이 우리 속에 와서 생명이 돼 가지고 있어. 생명이 돼 가지고 있는데, 그래 이 떠나면, 생명 떠나면 어찌 됩니까? 생명 떠나면 썩어.
별수 없어. 생명 떠나면 썩어요, 생명이 오면 온 지체가 살아 움직여.
이러니까 이 생명이 들어와 가지고,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들어오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 다 들었는데 그리스도가 들어와 가지고 생명 역사를 할 때에 이제 나타나기는 뭘로 나타내요? 생명이 와 가지고 듣는 것은 뭘로 나타내요? 귀로 나타내요. 보는 거는 뭘로 나타내요? 눈으로 나타내요. 그러면 둘째 아담의 자손인 이 생명체가 우리 속에 있으면 그거 그 생명체가 뭘을 도구로 삼아 가지고 일해요? 첫째 아담의 자손을 도구로 삼아 가지고 일해요. 이래서 너희들이 의에 드리면 의의 병기가 되고 의의 도구가 된다' 악에게 드리면 악의 도구가 된다! 했어. 병기가 된다 했어. 연장이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첫째 아담의 것은 다 연장이 되고 그 속에 둘째 아담에로 말미암는 것은 생명이 돼 가지고 이와 같이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 떠나면 썩는다. 생명 오면은 그 모든 이목구비 수족이 제대로 제 구살을 하게 된다. 이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셔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잊어버리지 안하고 그리스도를 생각해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의 나는 내 노릇 할 수 있고 손은 손 노릇 할 수 있고 발은 발 노릇 해 수가 있어. 그분이 없는 데는 죽는 것밖에는 못 해요. 이제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손도 사는 노릇하고 귀도 사는 노릇하고 모두 사는 노릇 해. 입도 사는 노릇하고. 그러면 그 사람이 입을 영생 만들 수 있고 입이 들어서 영원한 멸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말만하면 되는 게 아니야. 말하는 것에서도 영생도 만들 수가 있고 멸망도 만들 수가 있어요.
이러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되어 있는 우리 영육이 둘째 아담의 자손인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이 새사람 이것이 속에 주격이 돼 가지고 있어야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은 이 자손이 산 노릇 하고 이제 영광되어지고 복 되어지지 그거 없으면 틀리요.
이러니까 뭐 여러분들이 명상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명상을 하지마는 그저 간단하게 알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님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썩습니다.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살지만 예수님 잊어버리면 그만 썩어 버리요.
이러니까 자꾸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에 이 생명 떠나면 썩는 거와 같이 예수님만 잊어버리면 우리는 썩어 버려. 그러니까 아침에도 예수님, 저녁에도 예수님, 또 일을 할 때도 예수님, 자꾸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 쭉 나와 버려. 예수님만 생각하면 환하게 다 나와 버려.
이러니까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 요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위엣 것을 찾으라 우리의 영원한 내가 취할 것은 위에 있어. 위에 것이라니? 내가 취할 건 위에 있다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 말이오. 그리스도 안에. 위엣 것이라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삼아서 똥오줌으로 삼는 것은 왜 그러냐? 과거에 귀하게 여겼던 것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왜 그러냐?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거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거 그리스도 안에만 모든 게 좋지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는 요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밖에 있는 거는 똥오줌과 같이 다 여겼더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위엣 것만 찾으라. 거게만 내것이 있지 거게만 내게 필요한 게 있지 딴데는 없어요 이래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생각지 말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생각지 말라' 무슨 말이지요? 생각지 말라 발은 가치로 삼지 말라 말이오. 가치로. 그거는 '이거 여게, 여게 대정권이 있다. 어떤 나라에 정권자가 있다.' 그것도 그대로 가치가 있지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에 거게는 비할 수 없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취할 만한 그런 가치는 아니야. 똥덩어리 가치 있어요 없어요? 가치 없는 게 있습니까? 다 가치를 가졌지마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는 못된다 그 말이오. 이거는 세계에 제일 재벌이다. 그것도 우리는 가치로 삼지 말라, 그거 생각지 말라 말이오.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가질 가치 있는 거는 아니야.
또 누가복음 l7장 5절에 겨자씨 믿음, 이 겨자씨 믿음에 대해서 그 위력을 말했습니다. 겨자씨 믿음의 위력이 몇 가지가 위력이라요? 세 가지 위력이 있어.
세 가지 위력은 하나는 썩지 않는 거, 썩지 않는 거, 썩지 않는 것은 썩으면 흙 되지. 이러기에 세상화되지 않는다 그 말이오. 우리는 세상 속에 있어야 이거 믿음이 성공을 하거든요. 이런데 썩지 않는 건 세상화되지 않는 것이라. 그러면 세상에 어떤 일이 와 가지고도 자기의 이거 깨달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거 깨달음이 그거 세상으로 말미암아 까뭉캐지고 녹아지고 없어지는 게 아니고 어떤 게 와도 그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그것으로써 단행을 하면은 그것이 이제 겨자씨 믿음이 되는데 그게 흙이 안 되는 것이라. 썩지 않는 것 그거 그만 가 자꾸 새기면 그거 나와요. 썩지 않는 것. 또 둘째로는? 뭐이요? 둘째는 뭐이요? 단행. 이거는 얼토당토 안 한데 뽕나무를 아름되는 뽕나무를 뽑혀라 하는 이것도 단행한다 말이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면 그거는 필연적으로 단행하게 돼요.
하나님의 뜻을 제가 잘못 찾았기 때문에 이거 하나님의 뜻인데 해 볼까 말아 볼까 하는 그거는 벌써 잘못 찾은 것이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으면 그 속에 누가 있는데? 피, 하나님, 전지 전능 지극히 큰 모든 하나님의 은총 이게 들어 있기 때문에 그거 발견하고 난 다음에 귀한 것을 발견하고 천한 것을 가질 자가 누가 있겠소? 자기가 이거 보석 반지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 이거 지푸라기로 만든 반지 그거 할 자가 누가 있어? 몰라 그렇지. 보석 반지를 발견했으면 지푸라기 반지를 던진다 말이오. 귀한 걸 발견하면 천한 것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보배로운 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 보니까, 찾고 보니까 온 세상이 오니까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라고 할 때에 온 세상이 오는데 두렵지 않습니다. 왜 두렵지 안해? 뭣 때문에 안 두려워?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거든. 또 그 부럽지 안해. 모두 '저거 야 모두 좋고 부럽다.' 있는 거 그거 억억억만 배도 더 되는 것이 믿음 속에 들어 있어. 이러니까 부러워할 게 뭐 있어야지? 이러니까 썩지 안해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면, 그러기에 기독교는 전부 필연성입니다. 다 필연적이라, 필연적으로서 하나 바로 되면 쭉 따라서 바로 되지요. 잘못되면 쭉 따라서 잘못돼지고 이러니까 필연적인데 그게 위력이고 하나는 썩지 않는 것. 또 하나는 위력이 뭐이요? 명하는 것. 단행하는 거라, 단행하는 것. 단행하는 것. 또 셋째 이제 위력은 뭐입니까? 그대로 응종이라.
만물이 다 응종해. 웅종 안 할 수가 있는가? 창조주고 그분이 말했는데 누가 그걸 응하지 안해.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하나님이 돼.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가 대신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거게는 만물이 응종해 수 밖에 없지.
이러니까 바다 위에 심기라는 그게 얼토당토 안 하지만 딱 심어지거든.
'순종하였으리라' 명하였을 것이요 순종하였으리라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가지고 잡으라 그 말이오. 또 그 다음에 중요한 거 해석하기가 좀 어려운 것인데 '와서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하는 그거 혼자 먹으라 하겠느냐? 혼자 먼저 먹으라 하겠느냐? 요런 건데, 혼자 와서 먼저 먹으라 하겠느냐? 요것이 거게 어데 있어? 그게 속에 파고 들어가 보면 거게 있어. 혼자 앉아 먹는 게 뭐야 OOO조사님? 설교해서 자꾸 설교 자꾸 하니까 인제 그런 설교 더러 안 해요? 거게서 다 믿음이 썩어지는 거라. 거게서 믿음이 썩어져. 주님이 하시고 내가 피동으로 따라 해야 되지. 인제 좀 해 놓으면 말이오. 밭갈고 양 먹여 놓으니까 좀 능숙했거든.
성공했거든.
이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그만 저 혼자 해 그만. 이러니까 벌써 저 혼자 하면은, 설교자가 설교해 때에 벌써 처녀성이 없고 할망탕구가 되면 헛일이오. 할망탕구, 처녀는 '어짤꼬? 남이 보나 안 보나? 어짤꼬?' 자꾸 조심해 벌벌 떠는 것이지마는 할망탕구야 '뭐, 나이 많은 나를 어짤 거요? 아들 손자 다 있는데 어짤까?' 그거라 말이오. 이거 배짱내는 거라. 그거 다 헛일이야.
그래서 자꾸 저 사람은 처녀성이 없다, 저 사람은 나이가 백발이다 하지만 저 사람은 항상 처녀다. 그래서 그 오묘한 그 이치를, 그라고 마지막 결론은 그래도 할 일을 했다. 무익한 종이라 하는 것이 '예수님이 나를 대속의 댓가는 얼마나 큰데 나는 죽도록 해 봤자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이 시키는 거 한 것뿐이다 하는.' 요 결론의 깨달음음 가져야 된다 그거요.
마지막에 에베소서 l장 3절 이하에 하나님의 아들 자,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면 첫째 아담의 자손은 첫째 아담의 요소가 와 가지고 됐어요 안 와 가지고 됐어요? 첫째 아담의 요소가 와 가지고 됐어요, 안 와 가지고 됐어요? 와 가지고 됐어. 와 가지고 됐는데 둘째 아담의 자손은 이제 하나님의 요소가 와 가지고 됐어요, 안 와 가지고 됐어요? 와 가지고 됐어. 꼭 같이 와 가지고 됐어.
다른 거는 뭐입니까? 와 가지고, 다 와 가지고 되기는 됐는데 첫째 아담의 자손이 부모에게서 요소가 나와 가지고 된 것, 또 우리도 우리 부모 하나님의 요소가 나와 가지고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됐는데 다른 게 뭐입니까? 어? 다른 게 뭐이요? 다른 게 뭐이지요? 여기 좀 대답해. 다른 게 뭐이요? 첫째 아담의 것은 나눠져 가지고 쪼갱이가 와 가지고 됐어. 쪼갱이가 와 가지고. 그 쪼갱이가 와 가지고 됐지마는 둘째 아담의 자손은 그 요소가 실지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지마는 쪼갱이로 와 있지 안하고 한덩어리라. 그거는 쪼갤 수가 없어.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체가 우리 속에 다 와 있어. 전체가 다 와 있어.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이 그 부모 요소를 많이 탔어요, 둘째 아담의 자손이 부모 요소를 많이 탔어요? 요걸 믿어야 돼요, 요걸 믿어야 돼요. 요것이 모두 다 부정하고 있는데 요걸 믿어야 됩니다.
영육 이래 말했는데 마음이 영이요 영이 마음이라고 그래 생각하니까 마음이야 하루 열두 번도 죄를 더 짓지요. 이래 놓으니까 그 영이 범죄한다는 그 소리를 면할 도리가 없어, 요거는. 영은 마음이 아니요 신령한 영물이요 마음이라 하는 것은 물질이라 하는 요걸 발견을 못 해 그래. 마음은 물질입니다. 짐승에 물질이 있어요 없어요? 물질인 짐승도 마음은 있어. 영은 없어요. 왜? 마음이 왜 없어? 그게 희로애락을 다 알아요. 지정의를 다 알아요. 섭섭한 것도 알고 눈물 흘릴 줄도 알고 다 알아요. 짐승 눈물 흘리는 것 봤어요, 모두? 못 봤어요? 짐승이, 여러분들 조그만한 거, 개라도 사랑하는 애견하다가 만일 비참하게 새끼가 어찌 돼 보십시오. 그게 그거 참 비통의 눈물을 흘립니다. 또 애터지게 하는 것도 꼭 같소. 좋아하는 것도 같소. 사랑하는 것도 같소. 미워하는 것도 같소. 꼭 우리 마음의 작용 다만 등급이 달라서, 우리는 고급이고 그거는 저급이라는 그것뿐이지 마음은 같아요. 그거 물질이라. 그거 그러기 때문에 짐승들도 혼은 있어요.
짐승들도 혼은 있다 했어요. 영은 없어. 이러니까 그거는 찾아보면 성경에 보면 짐승의 혼도 있고 사람의 혼도 있다.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가고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 이렇게 말해 있는 것인데 그 혼이 뭐이냐 하면 육외에 혼 있는 고거 다 짐승도 '사람과 같은 그런 이성이 있고 이 모든 마음의 요소들이 있는 것인데 이것을 자꾸 안보고 공째배기로 먹을라고 이렇게 성경은 보지 안하고 이러기 때문에 일이 낭파가 되어지는 거라.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실지의 신적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는데,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는데 첫째 아담의 자손은 부모의 요소가 자기에게 쪼그만한 게 떨어져 나와서, 뭐 얼마? 정충은 사백 오십 배를 돋아 봐야 보인다던가? 이 사백오십 배나 돋아 돋보기로 봐야 보일 수 있는 그 쪼끄맨한 게 떨어져 나와 가지고 돼졌지마는 그러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은 그 선조하고 자손하고 항상 한테 살아요 나뉘어요? 나뉘어 버려요. 나뉘어. 나뉘어. 나뉘는데 뭐 어데 간 줄도 몰라요.
이런데 둘째 아담의 자손은 그 쪼갱이로 나눠 가지고 있어요 그 뭉텅이로 와 있어요? 뭉텅이로 와 있어요, 뭉텅이로. 전체가 와 가지고 있어, 전체로. 쪼갱이 아니오.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뭉텅이로 전체가 와 있어요. 그러면 내 속에 와 있는데 자, 내 속에 와 있는데 OOO 목사님 속에는 와 있어요 없어요? 어? 내 속에 계시는데 거기 계시요, 어데? 내 하나님을 뺏들어 갈라 하네. 내 속에 계시는데 어데 거게도 계시요? 그래. O목사님 속에 아버지의 요소가 와 가지고 O목사님 하나님 아버지 아들 됐어요? 하나님이 그라면 쪼갱이가 와 가지고 분자가 왔어요 전체가 와 있어요? 전체가 와 있어, 전체가! 요 비밀을 깨달아야 돼요. 요게 마지막입니다. 그래 가 가지고 요것만 고치면 다 나아요.
그런데 요번에 나은 사람들, 저 지난밤에 거둔 게 어데 가 있는지? 그래, 그것을 잘 거석해 가지고 이 빨리 나은 사람들은 다 모두, 여게도 많네. 이거 한 아마 한 삼사십 매 되는 모양인데 지금 자꾸 이래 보고를 해요. 그래야, '나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네가 제사를 드려라.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라.' 그것이 전체 성경입니다. 이러니까 그거 나았으면 보고를 해야 되지 속으로 엉큼하게 숨겨 놓고, 얼마나 깍쟁이인지 보니까 떡 나아서 또 도질까 도질까 해 가지고 있다가 지금 한다 하며 작년에 나았는데 지금 보고한다는 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 자꾸 도지기를 원하니까 그거 되겠어? 자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요한 신앙 준비의 자유의 때를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 이 장소를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마음을 움직이게 하사 주님이 세계와 전국에서 모여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고 가는 데에 교통의 안보를 주신 것을 감사하옵고 또 앞으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금번에 저들의 마음을 갈급하고 가난하고, 간절케 하시고 빈 마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 생명의 말씀을 저들에게 부어 넣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한 사람에게도 흐려지거나 삭아지거나 떠내려가지 않게 하시고 그 속에서 역사하사 능력의 생명 역사를 이루시옵소서.
이렇게 모든 사람병을 고쳐지게 하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게 따라서 이 원인으로 말미암은 볼 수 있는 나타나는 그 결과로 몸에 모든 질병된 이런 것도 주님께서 이 원인이 치료됐다는 증거로서 이 나타나는 육의 모든 병을 완치해 주시옵소서. 주님 완치해 주시되 그가 믿음이 있든지 없든지 주님의 영광 위해서 이름 위해서 이 모임이 주님이 하신 모임,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전부 다 낫게 해 주시옵소서. 모든 외부병 내부병 다 낫게 하시고 모든 정신병 다 낫게 하시고 악마의 요놈이 괴롭게 하는 요놈들도 다 물리쳐 주시고 완전히 거게서 구출해 주시옵소서.
이리하여서 이미 들은 바의 말씀으로서 회개하여 횐옷 입고 주님 섬기게 하시고 이미 고침 받은 것 가지고 남은 때는 주님 위해서 살아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은혜의 때와 은혜의 장소를 주시옵소서. 주님이 친히 오셔서 계속 역사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