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세의 목적

 

1981. 3. 5. 새벽 (목)

 

본문: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재미가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덜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뭣이냐? 하늘나라만 못하지마는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준비를 할 수 있는 그 기간이기 때문에 준비하는 그 욕망에서 세상에 있 는 것이지 그렇지 안하면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 나라는 이 세 상에 있는 것이 다 있습니다. 다 있는데 이 세상 것을 탁월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다 저주받은 것들만 있고, 앞으로 멸망받을 것들이 있고, 다 더러운  것들만 있지마는 우리가 갈 하늘나라는 저주받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다 제거돼 버립니다. 또 더러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완전하고 새롭게  된 모든 만물들이 있습니다.

천국은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모든 화초 만물 이 것도 다 있습니다. 있는데 영계는 기이하게 신령한 것으로서 되어 있고 또 우리 가 사는 이 우주도 이것 다 새로와집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우주도 더러운 것 은 전부 불살라 버리고 다 새로와집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 이 랬습니다.

사람들이 육지에 있는 이것이 바다에도 있습니다. 바다에 있는 것보 다는 이 육지에 있는 것이 훨끈 가치가 높습니다. 또 이 우주에 있는 것이 영계 에도 있는데 영계에는 더 기이합니다. 거게는 수목들이 있는데 그 수목도  “달마다  열매 맺는데 그 열매는 모두 생명 과실이 맺고 또 잎사귀는 만국을 소생케  한다”  그게 신령적으로도 해석을 하지마는 실지로도 그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거 게는 길거리도 “길이 전부 다 정금 보석으로 돼 있다” 또 거리나 거게 있는  만물이나 사람이나 모든 피조물이 꼭 같습니다. 성질이 같고, 뜻이 같고, 목적이  같고, 움직임이 같고, 또 생명이 같습니다. 한 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살 고 있고, 전체가 움직이고 있고, 한 분 하나님의 뜻으로 통일이 되어 있습니다.

거 게는 죽는 것과, 쇠하는 것과, 낡아지는 것과, 더러워지는 것과, 아픈 것과,  슬퍼하 는 그런 것이 전혀 없는 나라입니다. 마치 사람에게 이 고기덩어리가 있습니다.

고기덩어리 안에 마음이 있습니다. 고기덩어리의 평안한 것도 좋지마는 마 음의 평안은 더 좋습니다. 고기덩어리의 괴로움도 괴롭지마는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마음의 괴로움입니다. 마음의 괴로움보다 영의 괴로움은 더하고 마음의 평 안보다 영의 평안은 더합니다.

이 세상에 모든 나쁜 그것은 ‘이것은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나쁜 그것은 그것이 지옥의 것이 비추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세 상에 사람들이 ‘이것은 좋다. 저것은 좋다. 기쁘다. 즐겁다.’ 행복이라고 모두  원하 는 그것들은 하늘나라의 것이 비추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늘나 라와 지옥과 그 사이에서, 세상 모든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은 하늘나라에 그림 자요 지옥의 그림자요. 하늘나라는 세상에 좋은 것의 그 실상이요 지옥은 세상의  인 간들이 싫어하는 그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아무리 안됐어 도 지옥만치 안됐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고통이 아 무리 심하다고 쌓아도 지옥 갈 사람은 지옥보다는, 세상에 제일 불행스러운 사람 이라도  지옥보다는 세상이 낫습니다. 하늘나라는 세상에 제일 행복되다 하는 그 행복 보다 하늘나라의 제일 말석이 그보다는 낫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이래 읽으면 서 성경에 하나님이 문서로 기록해 놓은 그것이 자기에게 믿어지는데 따라서  그 가치 는 인정됩니다. 또 성경이 인간의 말로 다 말해 놓지 못한 그것을 영감으로 자 기에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영원히 살면 좋기는 좋지마는 이미  세상을 떠나야 되니 할 수 없어 지옥 가는 것보다는 하늘나라 가는 게 낫다’ 그 런 것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세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마치 믿는 사람이 믿음이 없어 타락이 돼 가지고 참 죄짓고 하나님 앞에  징계받고 하는 그 믿음 떨어졌을 때가 행복스럽습니까 믿음이 자기에게 소생될  때가 행복스럽습니까? 자기가 가장 기쁘고 즐거운 때가 어떤 때입니까? 믿음을  떠나서 세상으로 나가 가지고 타락한 그 생활할 그때가 재미가 있습니까 가장  자기가 믿음이 좋아서 믿음으로 살 그때가 좋습니까, 뒤를 돌아다보면 어떤 때가  제일 행복스러웠습니까? 믿음이 있을 때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주님으로 모든 것보다 어쩌든지 자기 전부가 주를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까 영화롭게 할까 주님에게 대해서 갈급하고, 죄에 대해서 밉고,  있는 전부를 다 기울여서 의롭게 살고 싶고, 거룩한 자가 되고 싶고, 또 모든  형제를 원망해서 악독이 있는 그때보다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애낌없이 기울이려 하는 그런 때가 있었다면 그때가 아마 그 사람에게  제일 그리울 것입니다.

자기가 걸어온 모든 이 공간을 생각해도 악독부리고 죄짓고 하나님의 진노받을  그런 행위한 그 공간은, 그 장소는, 그 거리는, 그때는 아무런 사모될 게 없고  생각만 해도 원통하고 더럽고 안됐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장 신앙 생활을 은혜에 깊이 들어가 있었을 때가 있었다고 하면  아마 그때가 제일 그 사람으로서는 그리울 것입니다. 그 장소가 그리울 것이고,  그때가 그리울 것이고, 그 형편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것이 뭣이냐? 그것이 하나님으로 가까이 갈수록 좋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마귀에게로 가까이 갈수록 불행스러워지는 고통스러운 그것을 우리가 많이  체험을 합니다.

하늘나라는 삐뚤어진 것이 없는 곳이요 하늘나라는 사랑만 가득 차고 진리만  가득 차서 그곳은 말이 없습니다., 서로 통하니까. 모든 만물이 새로와져 있고  하나님과 가까와져 있고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진리로 충만하고, 사랑으로  충만하고, 생명으로 충만해서 죽음이 없어. 바다 속에도 산이 있고, 바다 속에도  대나무도 있고, 소나무도 있고, 바다 속에도 소도 있고, 개도 있고, 사람도 있고  다 있습니다.

아마 수중 세계라고 아마 영화를 본 사람은 더러 말하는데 그래 본 사람은 더러  알 것이오. 바다 속에도 밀림이 있습니다. 온갖 맹수들이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육지의 것이 더 아름답고 가치 있고 고귀하고 또 더 강합니다. 육지는 이  우주인데 우주 안에 것보다 신령한 천국에는 더합니다.

그러기에 좋은 걸 발견하고서는 나쁜 것을 버릴 수 있지마는 자기가 좋은 걸  주고 나쁜 것을 가질 때에는 섭섭합니다. 나쁜 것을 내놓고 좋은 걸 가지게 될  때에는 사람은 행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형편이 전날보다 나아지면 기뻐지는 것이요 전날보다 점점 못해지면  섭섭해하는 것이 인간의 그 생의 본능입니다. 그것은 왜? 좋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고로 어린아이들도 제가 좋아하는 것 내놓고 싫어하는 것 가지라  하면은 다 아이들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것 본능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가 이 세상보다 좋은 것을 자기가 깨달은 사람은 하늘나라를  원하고 세상이 좋기는 좋지마는 죽으니까 어쩔 수 없어 하늘나라 간다는 그  사람은 어쨌건 천국에 관한 생활은 억지 생활이요 세상 생활은 하고 싶어서 하는  생활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천국을 연구하지 안한 연고요 천국 생활을 해 보지 안한  연고입니다. 천국 생활은 해 봐야 되는 것이지 하기 전에 생각으로써는  모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당시에 그 제자들이 모두 묻기를 ‘주여 어디로 갑니까?’ 이럴  때에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면 이렇고 이렇다’ 그것 가르쳐 주지  안했습니다. `네가 와 봐야 알지 와 보기 전에는 모른다.’ 이랬습니다. 또  성경에 “받은 자밖에는 모른다” 이랬습니다. 받은 자밖에는 모른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생활이 목표가 어데 있느냐? 목표가 세상보다  하늘나라가 무한히 좋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발견하고 보면 세상이 싫어서 세상을  어서 버려서 하늘나라를 가면 싶은 그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우리가 목표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그것도 본능입니다. 요새 보니까 이 농장사들이, 농장사들이 돈을 잘  법니다. 실은 알고 보면 그것이나 그것이나 같은 것이오. 같은 것인데 이것  그전에 있는 것과 새로 있는 것 보면 조금 색깔을 잘 칠해 놓고 조금 편리하게  해 놓고 이래 놓으면 이제 농방에 가 가지고서 그것을 보고 이웃 친구집에 가  가지고 그걸 보고 저거 집에 있는것 보니까 색깔도 안됐고 안에 구조도 좀  안됐습니다.

여자들은 뭐 바꾸고 싶어서 그만 못 견뎌서 자기 집에 있는 것은, 돈 있는  사람은 누가 공으로도 가져가 버리면 싶으고 몇푼이라도 주고 그걸 돈을 많이  주고 바꿉니다.

그러기에 요새 내가 어떤 사람에게, 테레비를 말하기 때문에 ‘테레비  아이들에게 괜찮으니까 그것도 하나 사서 테레비 그것 문화 테레비 그런 것도  세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서 빠지지 안하고 구경해서 그것을 방어하는 데에는  괜찮으니까 그것 뭐 얼마 안 주면 살 터이니까 하라.’  이러니까 그 사람이 사려 하니까 말하기를 ‘좀 있으면 이뭐 흑백 테레비가  있고 칼라 테레비가 있는데 흑백 그 테레비 그것은 마구 주워도 주울 만치  그만치 천해질 것입니다. 좀 있어 인제 칼라 테레비가 나오면 흑백 테레비  그것은 아무도 안 합니다. 안 하고 다 그것 내던져 버릴 터이니까 뭐 주워도  주울 겁니다.’ 그런다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합디다. 그럴 거요.

뭐 좋은 것 나오면, 좋은 것 나오면 나쁜 그것은 거석한 사람들은 할 힘이  없으면 가지고 있지마는 좋은 것 나오면 다 버려버립니다. 보니까 안 그런 사람  하나도 없어요.

자기 정도에서 그보다 좋은 것 보면 그만 나쁜 것 그만 다 집어버려. 그만  마다고 다 집어던져 버리고 새것 하려 하지, 좋은 것 발견하고 난 다음에 좋은  것 할 수 있는 힘이 없어 그렇지 좋은 걸 발견하고 난 다음에 나쁜 걸 그대로  가지려 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이 정신병자입니다. 좋은  걸 두고 나쁜 걸 그대로 가지고 있어? 좋은 것 가질 수 있으면 좋은 걸 가지지.

이러니까 천국이 세상보다 좋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그 천국을 가고 싶고  세상이 좋은 사람은 세상을 떠나기 싫고 이러니까 그 사람은 천국을 바라도 참,  좋은 쌀밥이 없으니까 굶어 못 죽고 송구밥 먹는 것, 송구. 솔껍지기.

솔껍지기밥 먹는 것 모양으로. 떠날 판이니 어쩔 수 없어서, 떠나면 지옥 가는  것보다 천국이 낫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참 죽기가 싫을 것이요  세상 떠나기가 싫을 것이오. 또 천국이 세상보다 좋은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 가서 살고 싶을 것이오.

그러기에 세상에 예수 믿는 사람 쳐놓고 세상에 있고 싶은 사람 두 종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좋아서 세상 살이 하고 싶어 세상에 살고 싶은 사람  있고, 하나는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 가고 싶지마는 세상에서라야 영원  무궁세계에 가서 그 살 준비가 되기 때문에 그 나라에 가서 살 그 준비 그  욕심에서 세상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나가는데 배 타고 나가는 것을 그걸 보니까 참 가족들을  위해서 어짤 수 없이 좀 앞으로 좀 ‘요번에만 왔다 오면은 좀 돈 좀 벌어 와  가지고서 이제는 집에서 가족끼리 살까?’ 해서 그 소망을 가지고 배를 타러  나가지 참 나갈 때는 눈물을 머금고 영 뭐 아주 그만 얼굴이 빠짝 마르고 이래  가지고 큰 수심을 끼쳐 가지고서 죽을 데 가는 것처럼 그렇게 가는 사람  있습디다.

또 더군다나 더 그 금굴에 탄광에 가는 사람들은 그 갈 때마다, 탄광에 들어갈  때마다 상을 찡그리고 모두 참 죽는 사지에 가는 것 같지마는 거기서 돈을 벌어  가지고 와야 이제 가족끼리 머리 맞추고 재미 있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가기 싫은  것을 가는 것처럼 이 세상을 하늘나라의 소망을 인해서, 어서 가고 싶지마는 이  세상에 준비를 해 가지고 가야 되기 때문에 다문 얼마라도 하늘나라 준비를  위해서 그래 세상에 사는 사람 있습니다.

나 저 자꾸 보이라 하는 사람 저 이름이 뭣이지, 그 사람? 그 사람 이름이 뭐꼬,  인제 부른 사람?    씨를 내가 자꾸 찾는 것은 저게 중간반 반사들 보이라  놓은 것 보니까 그렇게 추워서 이런데 그 추위를 무릅쓰고 몸을 안 아끼고  어쩌든지 하려고 애를 써 재낍니다. 그게 아름다와. 그것 뭣이냐?  그 사람은 추운데 있고 싶어 그런 게 아니고 일하고 싶어 그런 게 아니고 자기  가족하고 살 그걸 생각하니까 그리 되는 거라.

독한 임금이 있는데 걸주에 황후가 아침에 떡 자고 일어나 보니까 얼음이 냇물에  있는데 어짠 농부가 오줌장군을 지고 얼음을 이래 깨면서 물 속에 들어가 이래  건너가니까 앉아 보고 ‘저 다리 속에는 뭣이 들어서 저럴꼬?’ 하면서,  청하기를 ‘저 사람을 다리를 한번 쪼개봤으면 좋겠다.’ 잡아다 쪼개 가지고서  하는 것 모양으로, 본다 는 그런 얘기처럼, 그게 뭣이냐? 그 사람이 추운 그 얼음을 왜 디디고 가느냐?  그래야 재미 있는 가족들의 처자의 굶기지 안하고 밥을 먹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소망에서 가는 거라.

그것처럼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 참 살기 싫지마는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그  소망으로 세상에 있고 무궁세계에 만물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그 환영, 그때  가서 환영 받을 것, 그때 가 가지고서 살 것 그것을 생각하고 세상에 있는 사람  있고 세상이 천국보다 좋아서 세상에 사는 사람 있고 이 두 종류가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가지고 기도를 하면서 어쨌든지 세상보다 천국이 좋은 것을  발견을 해야 합니다. 세상보다 천국이 좋은 것을 발견을 해서 세상보다 천국이  좋아져야 그 사람의 그 생활이 참 본능적으로 천국 위해서 세상에서 준비하고,  어서 가고 싶지마는 있는 동안에 부지런히 부지런히 어서 어서 준비할 것을  준비해서 시각을 아껴가면서 준비해 가지고서 갈 준비를 하지 그 사람이  아직까지도 소망이 땅에 있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없다” 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나라가 나은지 이것을 성경을 보면은 성경이 그 가치를 평가해  놨기 때문에 이것을 자기가 자꾸 성경에서 배워서 옳은 평가를 가지도록, 또  자기가 그래 안 되면 기도해서 옳은 평가를 가지도록, 또 자기가 천국에 속한  생활을 해 보고 세상에 속한 생활을 해 보면은 천국에 속한 생활이 맛이 있고  천국에 속한 생활을 해 봄으로 맛이 있는 맛있는 그것으로 천국 가치를 알게  되고, 또 비판을 해 가지고서 알게 되고, 자기가 또 영감을 받아 가지고 알게  되고, 그러면 비판으로 알아, 자기가 실지로 이 세상에서 거게 속한 생활 저게 속한  생활 그 두 가지 생활을 해 봄으로 알아, 또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알아, 그러기  때문에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하늘나라를 알게 할 알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성신의 감화를 받아야 하늘나라가 알게 됩니다.

성신의 감화를 받아야 이 주님이 이 우주에 모든 것보다 크고 좋고 자기에게  필요하고, 자기 가족보다 필요하고, 자기 생명보다 필요하고, 세상에 무엇보다  주님이 필요한 것을 성신의 감화가 와야 알지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모릅니다.

인간을 탁월한 참, 이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을, 이 불완전 완전한 것을, 이  죄뭉텅이가 의로운 것을 안다는 것은 성신의 감화가 와야 알지 그리 안 하면  모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기도하기를 ‘성령으로 감화 감동시켜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옵소서. 주님을 알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권능을 알게 해 주옵소서.’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 하나님의 권능을 알 때에는 땅위에는 권능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아무것도 아니라. 그분의 움직임에 다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라.

이래서 천국이 세상보다 말할 수 없이 탁월한 것, 또 이 세상에 좋은 게  많지마는 주님과 비교해서 모든 것보다 주님이 조금 나은 사람은 그 사람은  찌불떵찌불떵할 것이오.

‘주님이 낫기는 나은데 이래 볼까 저래 볼까?’ 주님이 이 세상 무엇보다 안된  사람은 항상 그 사람은 세상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보다 탁월한 사람은 그 사람은 어데서든지 참 주님 없으면 못 살  것이고, 주님 아니면 행할 수 없고, 주님 없는 자리는 있을 수가 없고, 그  사람에게는 자기보다, 자기 생명보다, 목숨보다 모든 것보다 주님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주님을 사모하게 되고,  주님을 접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자는 세상보다 하늘나라를 낫게 여기는 자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주님을 낫게  여기는 자입니다.

이런데 이것이 있는데 우리가 그 생활을 하지 안하고 자꾸 양심을 쓰지 안하고  영감으로 살지 안하고 이 세상 악령의 미혹에, 제일 미혹이 악령의 미혹이  있는데 악령의 미혹 중에 제일 큰 미혹이 뭣이냐? 욕심 미혹입니다. “미혹의  욕심이라” 이랬소. 미혹 중에는 욕심 미혹이 제일 강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 욕심, 어떤 사람은 명예 욕심, 어떤 사람은 지위 욕심, 어떤  자는 남자 욕심, 어떤 자는 여자 욕심, 어떤 자는 자녀 욕심, 평안 욕심, 별별  욕심, 지식 욕심, 이 욕심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자기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사람이 파묻혀 버리고 가리워져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뭘 찾느냐? 성경 보는 것은 쓰는 것이오.

드라크마를 잃어버렸는데 이것을 자꾸 쓰니까 나옵니다. 은전을 잃어버렸는데  이걸 쓰니까 나오요. 잃어버려 놓고 자꾸 쓰니까 그 나오는 것처럼 천국은 이와  같다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속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참사람 자기를 찾는 것이 뭣입니까?  성경으로 찾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찾고, 또 성경으로 깨달음으로 찾는 것이고,  성경대로 행하면 그것이 또 찾는 것이라. 그게 자꾸 쓰는 것이오. 성경대로  행하면 그것 회개요.

자꾸 회개, 쓸어 내트리고 자꾸 쓸면 자기 속에 참사람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주보다 큽니다. 이러기에 온 천하보다 가치가 크다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자, 성경을 봄으로 깨달아져, 성경을 보면 예수 잘 믿고 싶습니다. 성경을 자꾸  읽으면은 하늘나라가 세상보다 귀하다는 것이 알아집니다.

또 기도를 하면 더 알아집니다. 또 실행을 하면 더 알아집니다. 영감이 오면 더  알아집니다.

이래서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세상보다 천국이 좋다는 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꾀임받지 말고. 또 모든 것보다 주님이 더 좋아서 자기가 자기보다도, 자기도  믿을 수 없어. 자기보다 주님이 믿을 수 있어. 모든 것보다 믿을 수 있어.

믿을 만하고, 맡길 만하고, 의지할 만하고, 바랄 만하고, 내가 그에게 속할  만해. 그분으로 더불어 의논해서 그분의 인도받은 것은 후회가 없어,  보니까.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될 노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우리가 담대하여” 이  깨달은 자들은 “담대하여” 사람이 왜 비겁합니까? 왜 겁이 나고 비겁합니까?  비겁한 것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을 욕심을 내는 데서 비겁이 나옵니다.

세상보다 하늘나라가 낫고, 있는 것보다 떠나는 게 낫고, 세상보다 천국 것이  좋은 사람은 이 세상은 전부 천국 것을 잘 마련되도록 그렇게 해 줍니다. 자기의  생애를 더 가치 있게 하려고 세상이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뚜드리고 죽이려 하니까 그 손양원  목사님으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더 잘 준비하게 합니까 못 준비하게 합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잘 준비하게 합니까 못 준비하게 합니까? 그러면 잘 준비하게  하는 것이지. 잘 준비하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그러다가 참 생명까지 몽땅 주를 사랑함으로 주를 위해서 천국을 위해서  솔빡 생명까지 다 바쳐서 그렇게 되면 완성이 되는데 그 손 목사님이 그때에  순교를 원했겠습니까 살아 남아 있는 것을 더 원했겠습니까? 순교를 더 원했소.

살아 남아 있으면 낙망할까요? ‘남아 있게 하니 나는 순교할 자격이 못 되니까  더 지금 준비하라 하는 것이다.’ 또 준비 더 하겠지.

살렸으면 천국 위해서 준비 더 하라 하는 것인 걸 알아서 더 준비하는 거게  노력할 것이고 만일 마지막으로 홀빡 다 천국 준비에 싹 투자가 다 되면은  그것이 단번 승리기 때문에 더 좋을 것이고.

이 세상은 천국 가치를 더 있게 만드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왜 그것 불행히  여기느냐? 세상에 있고자 하기 때문에 불행스럽게 여기는 것, 불행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이것이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 바로 정상화된 사람입니다.

모든 것보다 주님하고 가까와지기를 원하고,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어서 천국에  가서 있고 싶고 천국이 더 좋고.

사람이 탄광에 일하는 사람이 돈 때문에 탄광에 일하지 탄광이 저거 집보다 좋은  사람이 어데 있겠소? 오뉴월에 공사하는데 자갈짐 모래짐 짊어지고 헐떡헐떡하는  사람이 그것이 뭐 집에 가서 가족끼리 재미 있게 먹고 노는 것보다 좋을 게 뭐  있겠소? 그 사람이 짐을 지고 가며 기뻐합니다. 왜 기쁘겠소? 짐지고 가는 게 왜  기쁘겠소? 기쁜 그게 뭣이냐? 이제까지 일할 데 없다가 와서 일을 하니까  기쁩니다.

‘짐지는데 뭣이 기쁘노?’ `일감을 만났으니까 안 기쁩니까?’ ‘일감 만났는데  뭣이 기쁘노?' `품을 받으니까 안 기쁩니까?’ ‘품 받아 뭐하려고?' `우리가  지금 생활에 곤란한데 이래 놓으면 가서 쌀 팔고 또 연탄 사고 또 고기 사고  아내와 아들딸이 그래 인제 좀 한번 오늘 저녁에는 잘 먹고 내일도 잘 먹고 살  걸 생각하니까 기쁩니다.’ 그 기쁨이 전부 거기 기쁨이오. 가족끼리 살 그  기쁨으로써 일하는 데 기쁘지 거기 기쁠 게 뭐 있어야지? 믿는 우리가 이것이 돼야 됩니다. 이것이 다 속에 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가리워져 가지고 있어 그렇습니다., 가리워져 가지고. 왜? 뭣에게  가리워졌습니까? 미혹을 받아서 가리워졌습니다. 무슨 미혹? 욕심의 미혹.

가리워진 미혹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제거해야 됩니까? 성경 읽어야 되고,  기도해야 되고, 실천해 보면 알아집니다.

중간반 반사들이 모두 세상에 몇십만 원씩 벌던 사람들이 오만 원 월급에 서로  하겠다고 그걸 원해서 달라들기는 달라들었는데 내가 요새는 지금 그것이 어찌  되는지 이 도무지 권찰회를 못 하니까, 권찰회를 못 하니까 그것 아무 심사가  없지,  권찰회 해도 그게 그만 질서가 잡히지 안하고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아무  보고를 받지를 못하지 이래 놓으니까 어찌 되는지 요새는 뭐 내가 도무지  모르겠는데,‘생활에 곤고하다’ 이러는데 나는 지금 내가 중간반 반사 노릇  하라 하면 한 달에 사오십만 원 내가 월급 받겠습니다. 월급 받겠어. 거게는  스물다섯 명만 나오게 되면 오천 원, 오십 명 나오면 만 원, 또 백 명 나오면  이만 원이가? 그래 더 되지? 아니, 오십 명이면 이만 원이야. 열둘 반이면 오천  원이지? 열둘 반이면 오천 원 아니가? 한 주일에? 열둘 반이면 넷 주일이면 오십  명 아니가? 이런데 뭐 생활비가 모자라느니, 모자라면 굶어 뒈져야 되지, 일 안  하는 건 굶어 뒈져야 되지, 놀고 기생충 모양으로 그러면 굶어 뒈져야 되지 어쩔  거라? 또 이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시작은 했는데 성령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뭐  늘어지는 모양이라. 묵은 반사들은 다 모두 죽은 것 한가지라, 보니까. 내가  보니 일하는 게 보이지 안해. 그래 일해 가지고 살진대야, 안 그래, 공무원들도 그렇지 안해요. 아침 몇시에 공무원들 몇시에 출근하지?  몇시에 돌아오지? 노동일도 요새 보니까 아마,    집사? 아침에 몇시에 가요,  노동일? 여덟시 반? 여섯시 반? 여섯시 반에, 몇시에 돌아와요? 일곱시 넘어야  막 이래 짊어지고 이러는데, 뭣한다고? 그게 뭣이냐 하늘나라가 안 보이면  그래요.

하늘나라가 보이면 누구 보고 하는 게 아니라, 루마니아에 청년 이십 명이 성경  이만 권을 가지고 가다가 붙들려서 하나는 맞아 당장 죽었고 열아홉 명은 지금  얼마나 죽었는지 그것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복음의 자유 달라고.

그분들이 돈 받고 갑니까? 누가 시켜서 갑니까? 하늘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 나라에 가서 주님 모시고 살 때에 주님을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인간을 구원한, 참 만물이 환영하고 만물이 칭찬하고 모든 인간이 칭찬하고  하나님이 칭찬할 수 있는 이 가치 있는 옳은 생활 할까?’ 해서 생명 내놓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돈 바라고 가는 것 아니오. 명예 바라 가는 것  아니오. 순전히 하늘나라 소망 가지고 갑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그분 한 분  보고서 지금 그 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거하든지” 세상에 있든지 “떠나든지” 세상을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뭣 때문에 그러느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분하고 영원히, 그분이 만왕의  왕이신데 그분하고 영원히 살 터인데 그분과 만날 그 일, 그분을 기쁘게 하고,  그분이 기뻐하고, 그분이 원하고, 그분에게 안면 있을 것, 이것을 인하여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이 좋은지 세상이 좋은지? 정말로 천국 가치를 알았는지?  주님이 좋은지 인간이 좋은지? 주님 가치를 알아 가지고 주님 누구신지 아는지?  이것을 알아야 본능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반사들도 뭐 잡것도 있지마는 약간 약간 그 맛을 조금씩 보고 있지만 분별을  못 해. 그 천국 생활, 천국에 속한 생활 하니까 기쁘고 즐겁기는 즐거운데  평가를 못 하고 그걸 평가 못 하고 하는 사람, 그걸 단단히 따져보고 ‘이  기쁨이 있으니 이 기쁨이 뭐꼬?’ 자꾸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따져보는  사람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 또 그보다도 더 좋은 것은 명상 많이 하는  사람이오. 자꾸 눈을 감고 생각합니다.

자꾸 생각하는 사람은 이 평가를 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신앙은  흔들지를 못해. 벌써 세상 마귀가 역사하는 것보다도 더 높이 평가하고 명상해서  생각해 가지고서 이 세상 인간들보다도 생각이 위에 간 사람은 세상 인간들이  미혹을 못 줍니다.

아무리 철학자고 뭐 과학자고 어떤 자들이 뭐라고 한다 해도 그보다 벌써 사상이  위에 가 있는 사람은 그것 말할 때 벌써 그것 다 생각해 가지고 지내왔어.

비판해 가지고 왔기 때문에 보다 보다, 보다 이게 낫고, 보다 이게 낫고, 보다  이게 나아서 이제 하나님을 잡았고 천국을 잡은 사람은 요동치를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서 말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 강하게 말하니까 이게 좋다 한  사람은 저게 좋다고 강하게 말하는 게 있으면 그게 좋다고  따라가지 뭐, 돌아가지 무슨 별수가 뭐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명상이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이, 명상도  자기대로 공상이 있고 명상이 있소. 공상은 소용 없는 생각 이 생각도 해 보고  저 생각도 해 보고, 명상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꾸 생각해 봅니다. 성경  말씀을 또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고 자꾸 생각해 보요.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이 성경 말씀을 자꾸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 생각하는 걸  만날 말하니까 평생 같이 있어도 그 사람 말하는 것은 장 새로 듣는 것이고 장  모르는 것이고 항상 배워도 되는 것이고, 왜? 자꾸 명상하니까 그 사람 생각하는  걸 따라오지 못하는 자는 그렇지. 그 사람 생각보다 썩 앞에 간 사람은 그 사람  말하는 소리를 뭐 들을 필요가 없지. ‘내가 옛날 생각한 것이다.’ 이러니까 이 세계를 걸어보면 알아. 명상해서 나가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에  신학에 뭐라고 말해도 ‘아니, 그것은 벌써 옛날 생각,’ 저 밑에 있는 거기서  밟아 올라왔고, 밟아 올라왔고, 밟아 올라왔고, 이러니까 불교가 저거가  참선한다고 뭐라고 떠들어 쌓고 불경에 뭐라고 쌓아도 말해 보면 ‘아이고,  그것은 벌써 저 밑에 세계에 그것은 아니라.’ 말하면 그것은 정죄해 ‘요것  때문에 요러니까 아니라 저러니까 아니라’ 다 알 수 있도록, 그 사람은  최고봉을 걸어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따라가지를 못해. 미혹을 주지를 못해.

그러기에 우리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것이 명상이라 말이요, 묵상. 말씀을 자꾸 이래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이제 천국이 열려지고 세상의 가치도, 세상도 바로 보이고 천국도 바로  보여집니다. 세상도 바로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 세상이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도 바로 보고 천국도 바로 보이고, 인간도 바로 보이고 하나님도  바로 보이고, 이 바로 보이니까 정평 정가가 나와.

이러기에 그 사람의 행사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청청하고 시절 따라서  열매 맺는다” 알고 하니까. 알고 하니까 후회될 일 하지 안하지. 세상에는 성공  같으나 실패가 있고 실패 같으나 성공이 있는 걸 알아야 됩니다. 천국에 대한  성공은 그것은 세상이 몰라. 지난밤에 말했습니까? 무슨 저축 한다고? 무슨  저축을 해요? 어? 어? 세상이 모르는 저축. 은밀한 저축. 세상이 모르는 저축을  해서 자꾸 저축이 쌓여가니까 좋아.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저것 저  불쌍하고 가련하다. 거지 가련하다.’ 이래도 제 속으로는 지금 적금을 넣는데  벌써, 요새 뭐 만일 몇 억 하면은 굉장한 재산일 것입니다. 자꾸 이래 증권으로  뭐, 뭐꼬? 뭐 보험이니, 증권이가? 증권이지? 이 증권에 넣어서 벌써 몇 억이  인제 되는데 ‘얼마만 있으면 몇 억을 지금 찾을 수 있는데.’ 거지로 삽니다.

거지로 살지마는 속에, 저 거지라고 이래도 배짱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이 뭐  돈을 이래 말해도 몇천만 원 말해도 그까짓 것 뭐 업수이 여깁니다. 왜? 속에  지금 다른 사람 모르지만 저 저축돼 나가는 게 있거든.

 그 사람은 그게 있는 것이고, 우리 믿는 사람은 세상이 모르는 저축 하늘나라의  저축이 자꾸 돼 가니까 그 나라의 저축을 위해서 자꾸 합니다. 무슨 저축? 그  나라에 가서 만물이 환영할 것, 그 나라에 가서 주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  ‘야, 수고 많이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들어와서 주인의 즐거움에 같이  하자.’ 영접하는, 주님 만날 때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환영하는 그것, 이것 보고  자꾸 저축합니다.

이러니까 저 사람 저 미련한 십자가의 길 왜 걷는고? 그 저축 때문에. 그것  때문에 선교로 나가고, 그것 때문에 자기가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데 안 취하고,  잘살 수 있는데 좀 절제해 살려 하고, 누가 일을 시켜 그런 게 아니라 자꾸  스스로 일하려고 애를 쓰고 그러는 것이지, 벌이 꿀맛을 알아놓으면 그게 죽는  것도 모르고 역사하는 것처럼 하늘나라와 주님을 안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리고  살게 됩니다. 일편단심 항상 그것밖에 없어.

이러니까 우리는 세상이 모르는 저축을 해야 됩니다. 은밀한 저축. 은밀한 저축,  은밀한 성공, 은밀한 지위, 세상 지위를 팔아 가지고 그 지위를 삽니다.

이러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련타 하지. 어리석다 하지.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이요 부요한 사람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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