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10:49
자라는 법 4요소
1986. 12. 4. 새벽 (목)
본문:에베소서 4장 11절∼16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한없이 큰 능력의 은혜를 가지는 것이고 또 아주 제일 허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하신 말씀은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획 하나도 더하지도 못하고 덜하지도 못하고 이대로 이루어지는 이 말씀인데 이 효력이 어떤 기독자에게는 백프로 임합니다.
이 효력이 백프로 임해 가지고 참 인간이 상상도 못 하게 영계와 물질계의 것을 다 제것을 삼을 수도 있고, 하나님 다음가는 지위나 권세나 영광이나 존귀의 능력자가 될 수도 있고,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하늘나라는 얼마든지 다 좋은 줄 알아도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은 그런 부끄럽고 뜨겁고 불안한 자도 있습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선천적이라 말은 이거는 이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인데 모두 다 그걸 쓰고 있기 때문에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말합니다. 선척적이라 말은 나기 전에 타고 나기를 잘 난 것을 선천적이라 하고 후천적이라 하는 것은 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의 모든 형편이 좋은 것을 가리켜서 후천적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뭐 선천적의 것이나 후천적의 것이나 좋고 나쁜 것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앉은뱅이라도 상관없고 누운뱅이라도 상관없고, 무식해도 상관없고 유식해도 상관없고, 권세가 많아도 상관없고 권세 없어도 상관없고 예수 믿는 데는 꼭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그 선천 후천의 그런 것을 가치로 따지지를 아니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 이랍니다. 사람들은 그러나 그것을 가치로 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가치로 하나도 보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가치로 보시는 것은 어떤 걸 하나님이 가치로 보시느냐? 하나님이 이 선포해 놓으신 계약을 알고 믿고 그대로 자기 힘 있는 대로 다해서 행하는 그것만을 가치로 삼습니다. 그 외에는 가치로 삼지 않습니다.
이 모든 걸 합해서 말하기를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약해 놓으신 이 사실을 아는 것과 아는 그것을 고대로 참되다 인정하는 그 믿는 거, 그 사실을 확실히 믿는 거, 요 말씀하신 요대로 된다 하는 것을 믿는 거 그다음에는 자기 힘 있는 대로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누운뱅이는 누운뱅이대로 행할 것이고, 앉은뱅이는 앉은뱅이대로 행할 것이고, 참 비호같은 용사는 비호같은 제 힘 해 가지고 할 것이고 어쨌든지 힘을 하나님이 어떤 자에게는 많이 주셨고 어떤 자에게는 적게 주셨기 때문에 실은 이 세상 사람의 형편 좋고 나쁜 모든 차이라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형편을 주신 그 차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어떤 자에게는 닷 냥중 맡겼고 어떤 자에게는 두 냥중 맡기고 어떤 자에게는 한 냥중 맡겼다 이랬습니다.
한 냥중 맡긴 사람은 그 사람은 파묻어 뒀는데 한 냥중 맡긴 사람이 만일 한 냥중을 더 늘궜으면 닷 냥중 맡은 사람은 닷 냥중 다 들여서 장사해 가지고 닷 냥중 늘군 사람이나 꼭 같은 대우가 될 것을 두 냥중이나 닷 냥중이나 대우가 같았습니다. 남긴 것은 닷 냥중은 닷 냥중 남겼고 두 냥중 남겼는데 대우는 꼭 같이 대우했습니다.
한 냥중 이것도 위에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그와 같은 이치인데 이거는 하나 더 간단해서 하나 더 알리기 위해서 이것은 파묻어 두면 헛일이다. 아무리 은혜가 작게 자기에게 하나님이 주셨다 할지라도 ‘내야 뭐 이거 가지고 뭐 하겠느냐?’ 하면은 헛일이다 그말이오.
한 냥중이 ‘나는, 다른 사람은 닷 냥중 받았는데 나는 한 낭중이고? 다른 사람은 뛰어 돌아다니고 지금 날아다니듯이 다니는데 내야 누운뱅이니까 내가 누운뱅이니 이거 뭐이겠나?’ 그렇기 쉽습니다.
누운뱅이가 누운뱅이로서 자기의 것을 다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힘 다해서 알라고 애를 쓰고 또 믿을라고 애를 쓰고 그대로 행할라고 애를 썼으면, 물론 하나님께서 근본 지어 주실 때에 어떤 사람은 한 달을 공부하면 신구약 성경을 다 외울 만한 그런 총명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외워 봤자 그 신구약 성경을 외우지 못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많이 주고 적게 준 거게 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뭐 총명으로나 건강으로나 모든 활동성으로나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적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많이 줘서 많이 가졌고 적게 줘서 적게 가졌지 당신이 주기를 그래 줬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그말입니다. 그저 있는 대로만 다하면 됩니다.
다해서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알라고 하지마는 일생 동안 다해서 애를 써 봤자 이 계약의 말씀을 한번도 옳게 못 외울 수 있는 그런 아주 저능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외우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차이가 있으니 ‘내야 뭐 일생 동안 읽어 봤자 한번 읽지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 외우는 사람에게 따라갈 수 있겠느냐?’ 해서 한 냥중 가진 사람은 낙심하고 그것이 활동을 안 해서 그렇지, 활동을 안 해서 주인한테 쫓겨나고 야단 만났지 활동이 적어서 그랬다 그렇게 하지 안했어.
한 냥중 만일 가진 사람이 한 냥중을 가지고 장사해서 한 냥중을 남겼다면은 닷 냥중 가져서 닷 냥중 다 활용해 가지고 닷 냥중 남긴 사람이나 대우는 꼭 같은 대우할 것을 성경에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이 능력은 금생이 다가 아니고 금생에 행한 대로 영원 무궁세계에서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그러면 무궁세계에 갚아 줌을 받는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믿고 행하는 그것인데 자기의 지능으로서 지능을 다해서 아는 데에 다 기울였고, 아는 대로 믿는 데에 다 기울였고, 믿고 행하는 데 다 기울였으면 됐습니다.
아주 천하에 제일 무능자 그 사람도 자기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이 계약의 말씀을, 다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참된 말씀인데 뭐이 기록되어 있는지 이것을 알라고 해 봤자 그게 근본 나기를 저능이요 또 어떤 사람은 눈을 보지 못하니까 이거 뭐 손가락을 가지고서 이거 요새는 맹인들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 가지고 손으로 이래 더듬어 가지고서 구멍 뚫린 거 볼록볼록 튀어나온 거 요런 걸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아니까 그뭐 얼마 알겠습니까? 또 그것도 또 모르는 이거 손도 병신된 사람 있으면 그것도 못 하는 사람 있다 말이오.
하나님께서 보면 뭣인가 하나 열어 줬습니다. 손이 병신된 사람은 눈을 열어 줬든지, 눈이 병신된 사람은 귀를 열어 줬든지, 귀가 병신되고 눈도 병신되고 손도 병신되고 그 입도 병신되고 이와 같이 전부 병신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또, 그것만 없으면 다 모르고 못 듣고 하는 줄 알아도 그 사람에게는 또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혜와 총명을 줘서 그 사람은 또 하나님이 직접 능하게 한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에 제일 유명한 봉사 또 귀머거리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헬렌켈러라 하는 그 사람이 무슨 병신 무슨 병신이요? 무슨 병신 무슨 병신입니까? 귀머거리, 벙어리, 소경. 그런데 그 사람이 세계에 제일 유명한 실력가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잘났든지 못났든지 상관없고 유능하나 무능하나 상관없고 하나님께서 요구는 그 사람 뭐 아무리 무능해도 당장 능력 있는 사람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신 대로 받아 가지고 받은 대로 있는 것을 다해서 마음 다하고, 또? 목숨 다하고, 또? 힘 다하고, 또? 뜻 다하고. 이거는 네 가지만 말한 것 네 가지만이 아니오. 모든 거 자기 것 다한다 그말입니다.
그걸 가리켜서 다해 가지고서 믿으면, 다해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하는 게 믿는 거라. 뭐이냐?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실행하는 거 아닙니까, 사랑하는 것. 사람 사랑하는 것도 실행하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자기가 유능하든지 무능하든지 어떻든지 자기 있는 걸 다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계약의 말씀을 알려고 애를 쓰고 아는 대로 믿을라고 애를 쓰고 알고 믿는 대로 행할라고 애를 쓰면 그 사람은 다 영생을 얻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알고 안 믿으면 아무, 모르는 거나, 소용 없어. 알고 안 믿으면, 모르고 안 믿는 사람과 알고 안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성경에 형이 꼭 같다고 말한 데도 있고 또 더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씀을 보면은 그 사람은 더, 많이 알고 행하지 안한 사람이 적게 알고 행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하나님의 노가 큰 것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이 알고 행치 않는 그것이나 모르고 행치않는 그것이나 그 두 사람 가운데에는 알고 믿지 않는 그게 더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사람입니다.
이 서부교회 교인들은 알기는 뭐 여러분들이 귀넘어 들어 그렇지 가르친 거는 최고의 도를 가르쳤습니다. 최고의 도를 가르쳤어. 뭐 최고의 도를 가르쳤습니다.
일반에서 다 말하지 않는 걸 간단 명료하게 자꾸 이래서 가르쳤는데 이 사실을 믿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가르칠 때는 알고 믿고 행해서 축복받으라고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가르쳐도 귀넘어 들으니까 암만 들어 봐도 그만 듣고 난 다음에 그만 잊어버립니다.
듣고 난 다음에 잊어버리니까 못 잊어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재독을 자꾸 이래 하고 이래도 재독해도 듣지 안합니다. 이거는 입을 벌리고 집어 넣어도 밀어내고 혀로 밀어내고 하는 그와 같애. 하나님이 보시면 얼마나 미울 건가? 소를 먹이는 농부가 소를 사 왔는데 이 소가 그저 풀을 널큼널큼 이렇게 잡아 삼키면 그 주인이 보고 참 좋습니다. 이거 소는 말라 가는데 아무리 좋은 꼴을 갖다 줘도 혀 끄터리로 요래 가지고서 하나씩 찍어 가지고서 요래 낼랑낼랑 요렇게 먹고 푹푹 먹지 안하고 이라면 주인이 보다 보다 안 돼서 혀를 끄트머리를 끊어 버립니다. 혀 끄트머리를 끊어 버리요.
나는 끊어 보지 안했는데 나도 모든 사람이 그럴 때는 소 혀 끝을 날려 버리면 된다. 이놈이 끄트머리가, 고거 그래 먹는 거는 끄트머리가 날카로워 가지고서 아주 쪼부단 요래 가지고서 하나씩 낚아 올려서 이래 가지고서 먹지 안하니까 그놈이 마릅니다. 그걸 ‘우리 소는 그놈 끄트머리를 끊어 버렸더니마는 잘먹는다’고.
끄트머리를 이래 끊으면 혀 끄트머리가 뭉텅합니다. 이러니까 뭉텅해 놓으니 이놈이 뭐뭐 이거 거머집을라 해야 거머집힙니까, 이거? 암만 낚아도 안 낚이니까, 혀를 내 가지고 요래 해도 안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할 수 없이 그놈이 배지는 고프고 이러니 이래 부득이 이래 푹 떠 가지고 이래 이래야 입에 들어가지.
들어가면 한 주먹 들어가든지 그리 안 하면 그만 안 들어가든지 이래 된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 그놈이 한 주먹씩 먹으면 살이 찐다 그거요. 그래서 혀 끄트머리를 끊어라. 그게 얼마나 혀 끄트머리 가지고서 내빌내빌하는 그게 밉든지 그 주인이 끊어 버렸다 말이오. 끊어 버리니까 이거 그 행실을 안 한다 그거요.
이거 모양으로 자, 이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서 안 들으니까 재독을 시켜, 또 성경 안 읽으니까 성경을 봉독을 또 마이크를 가지고서 이렇게 읽어서 들으라고 또 이래 해, 또 옆에서 권고를 해 이렇게 몇 번이나 한 설교를 하고 이래 가지고 해도 이거 도무지 알라고도 하지 안해. 또 아는 자는 아는 것으로 다인 줄 알지 믿지 안하지. 이 교역자들 지금 이거는 여게도 녹음기 갖다 놓고 녹음기로 가지고 그저 녹음에 된다 이라고 설교하는 데는 잘 듣지 안합니다.
요새는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녹음기 이거 참 좋습니다’ 이라기 때문에 ‘그래 뭐 녹음기 좋은 거는 어떤 게 녹음기 좋은 것이고?’ `이거는 테이프 한번 넣어 놓으면 손 댈 것 없이 저절로 딱 이면이 다시 녹음이 됩니다. 그러면 이거는 이래 놓으면 아무래도 두 시간 이상되는 설교는 없으니까 그래 놓으면 설교 듣는 데 정성 다 들이고 그만 이거는 가만 냅두면 잘 녹음이 됩니다.’ ‘너는 이제 고등 우상을 만들어 가고 있구나, 고등 우상을.' 너는 네가 뭐라고 쌓아도 녹음기 갖다 냅뒀으면 녹음기에 기록했으니까, 마음은, 녹음기에 기록해 놔야 되니 언제 털컥거리면 끝났으니까 얼른 바꿔 넣어야 되지.
마음은, 마귀 그놈은 ‘저거 곧 다 돼 간다’ 마음은 그리 가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는 안 갑니다.
이러니까 그거는 초급 우상을 가져서 녹음기가 제 우상이고 이제 이거는 양면을 다 하니까 고급 우상이라. 이거는 고급 우상이기 때문에 ‘이래 놨으면 뭐 이거는 녹음된다’ 하니까 탈칵거리는 그 마음에라도 깨어 가지고 정성을 들여서 탈칵거리는 소리가 언제 나는고 싶어 거게라도 마음을 기울이니까 고거 졸지는 안하지마는 그것도 없으니 이거 누워 잡니다. 왜? ‘녹음기에 기록됐으니까 뒤에 혼자 가서 틀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이라는 통에.
마귀란 놈은 그러기에 ‘내일 아침에 몇 시 깨워 주십시오’ 그래 놓고서 부탁해 놓고, 그날은 그 시간에 안 깨우면 낭파될 사람입니다. 이래도 잠 올 때 깨우면은 ‘왜, 몇 시에 깨어 달라고 야단을 지기더니만’ 내가 안다고서. 몇 시에 깨우면 그때 뭐 거짓말 아주 감쪽같이 해 댑니다. 깨워 달라 했지마는서도 뭣이 어째 변경됐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내가 전에 손양원 목사님 청빙하러 저 가 가지고서 순천에 가 가지고 거기 자는데 뭐 어데 어두워 놓으니까 아무 데 찾지도 못하고 거게 보니까 요 하숙집입니다. 영창이 칸이 있는데 나는 여기 자고 그 사람은 여기 자고 이라는데 주인한테 말하기를 뭐 신실히 ‘내일 아침에 몇시에 새벽 차 안 타면 안 되니까 꼭 깨워 주십시오’ 이래 야단을 지겨요.
지기더니마는 그래 누워 자. 그래 내 속으로 나도 경험도 있고 또 깨워 본 경험이 있어. ‘저 사람이 내일 아침에 잘 깰란가?’ 그 주인이 깨우니까 감쪽같이 ‘예, 압니다. 뭣이 이렇고 이래 돼서 안 가기로 됐습니다.’ 이렇게 감쪽같이 얘기를 해요. 이라니까 주인이 ‘그래요? 왜 깨우라 그래 쌓더니마는’ `예, 깨우라 했는데 뭐이 변경이 됐습니다.’ 이래 말해요. 그래서 저 보자 해서 있으니까 나중에 시간 돼 일어나니까 주인더러 ‘아이쿠, 이거 왜 안 깨웠습니까?’ 왜 엊저녁에 깨우라 하니까 안 깨워 줬느냐고서 오늘 이거 큰 낭파 났다고서 뭐 탄식을 한숨을 쉽니다.
그게 사람 부패성이고 자꾸 미끄러지게 하는 부패성이오. 부패성은 그런 게 있어요. 부패성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이 구원의 길을 걸어갈려고 하면은 악령은 이리저리 자꾸 꼬와 가지고 못 가도록 어짜든지 만듭니다.
이러니까, 녹음기 있는 사람은 ‘녹음기에 있다’ 으례히 그 사람에 그 인식을 시켜서 졸게 만들어 버립니다. 또 양면 녹음기로 기록하는 거는 사용하는 거는 또 그대로 또 속에 부패성 있어. 부패성 그놈을 원수로 삼아서 그걸 죽여야 되지 그거 죽이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이 서부교회 교인들이 암만 가르쳐 봐야 이걸 이 지식은 억지로 자꾸 이래 가르치니까 이게 억지로 담겨도 담겨집니다. 억지로 담기기는 담겨.
물으면 말은 대답은 할 줄 알아. 할 줄 알지만 안 믿으니까 거기서 스톱되고 있어.
서부교회 교인들의 축복은 어데서 다 축복이 가로막히고 모든 능력이 가로막혀 가지고서 가련한 자, 아주 하나님의 징계에서 가련, 저주나 받고 진노나 받지 축복을 못 받아. 축복을 못 받는 그 축복이 어데 가로막혀 있는가? 또 그 사람이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어데 가로막혀 있는가? 어데 막혀 있습니까? 어데서 막혀진 줄 압니까? 무능에서 막혀 가지고 있습니까, 직장이 나빠서 막혀 있습니까,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방해를 해서 막혀 있습니까, 어데 막혀 있습니까? 어데 막혀 있습니까? 이거는 참 부처라, 부처. 허수아비라, 허수아비. 아무 감각이 없어.
자, 어데 막혀 있소? 막혀 있는 게? 한목 대답해. 어데 막혀 있습니까? 저 뒤에도, 어데 막혀 있습니까? 모르는 사람 손 들어 봐. 모르면 모르는 이는 가르쳐 줄 터이니까 모르면 손 들어 봐요.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그라면. 참 애터져. 모르면 모른다고 말 안 하지 아는 사람 손 들라 하면, 이래 이라면 시간이 바쁠 건데. 뭐 거석한다고 이래 가지고, 이거는 참 죽은 송장인지 뭐인지 도무지 이거 뭐 참 상대하기가 힘들어.
믿지 않는 데, 인정 안 하니까 소용 있습니까? 아무리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을 했지마는 안 믿으니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안 믿으니까? 또 자기가 인정한다 해도 행해야 이루어질 터인데 인정해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인정하고 행해야 될 터인데 알라고도 안 하지, 아는 것도 또 믿지를 안하지, 믿는 것도 행하지 안하지 이러니까 탈이라.
오늘 아침에도 내가 이 말씀을 택한 것은 이거 자꾸 요새 내가 걱정이 되는 것이 ‘이게 왜 안 자라노? 이게 뭐이 안 자라노?’ 축복도 자라가지 안하지 만날 그만이지. ‘경제가 어떻게 돼 가지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좀 모든 활동하는 그 형편이 “무릇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랬는데 좀 뭣이 좀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또 그 사람이 어떻게 좀 변화되고 있습니까?’ 아무 그런 것이 없어. 이러니까 이거는 뭐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라, 그거는 뭐. 뭘 줘도 안 돼요.
내가 여기 우리 교인 하나 그걸 나는 의수이 그게 희망이 있다 이래 보고서 결혼을 시켰는데 요 결혼하고 난 다음에 죽어 버려. 결혼하고 난 다음에 뒈져.
뒈지는데 그 뒈지는 것을 내가 이래 보니까, 남자로 인해 뒈지나 여자로 인해 뒈지나? 여자로 인해 뒈져.
여러분들 장가 잘못 가면 헛일입니다. 낯빤대기만 보고 장가간 사람은 저주를 받아. 알겠소? 낯빤대기만 보고 장가가는 자는 저주받아. 그게 망하는 거라.
낯빤대기가 사람 다 아니오. 사람 보고 시집가고 사람 보고 장가가야 됩니다.
사람은 보지 안하고 낯빤대기만 그만 잘 생기면 됐어.
그래 내가 요새는 지금 그런 거 뭐, 하도 그래 쌓아니까 안 오는지 모르겠어. 이혼 당한 여자 오는데 보면은 오면 내가 들짱 그거 묻습니다. ‘녜, 그러면 남자가 얼굴은 잘 생겼지요?’ 이라니까 ‘예 얼굴은' 모두 얼굴 잘 생겼지 하면 기분이 퍽 나 가지고 ‘예 얼굴은 잘 생겼습니다’ `너는 얼굴 보고 갔기 때문에, 얼굴 보고 갔으니까 너도 얼굴 보고 갔는데, 속에 실력은 없고 얼굴 보고 가니까 얼굴 보고 달라드는 사람 많으니까 그놈이 죄지을 수밖에 없고 망할 수밖에 더 있겠느냐? 그걸 회개해라. 네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이라기 때문에 네가 망한 원인이 거기 있다.’ 그 말해 줘요.
그래 가지고 ○○○권사님의 집에도 어떤 목사 딸 거기 와 가지고 몇 달 있었지? 잊어버렸습니까? 예? 잊어버렸어요? ○○○목사 딸 거기 가 있지 안했어요? 지금 가 가지고, 여기 석 달인가 있다가 이래 가 가지고 다시 합해서 가 잘 사는지 아무 소식이 없지? 소식이 없는 거 보면 잘 사는 모양이라. 소식 있었으면 그러면 안 되면 다시 왔을 건데.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본 것은 또 그거요. 아무래도 이거 뭣인가 하나가 안 돼 가지고 있다. 자라가는 것은 몇 가지만 하면 자랍니까, 손가락으로? 네 가지만 하면 자라는데 이 안 자라는 건 네 가지 중에 뭐인가 하나 없어 그렇다. 네 가지 중에 뭐이 없으면 하나만 없어도 자라지 않습니다. 안 자라니까 요 네 가지 중에 요거라도 한번 해 보라 말이오.
요 네 가지 중에, 네 가지가 있으면 내가 내 경제도 자라고, 사업도 자라고, 회사도 자라고, 지식도 자라고, 총명도 자라고, 인격도 자라고, 의지도 자라고, 심주도 자라고, 사랑도 자라고, 화평도 자라고, 인내도 자라고, 열심도 자라고, 감정도 자라고, 기분도 자라고 모든 거 다 자라요. 자꾸 장성해져요. 하나만 아니고.
장성해지는데 첫째가 뭐입니까? 첫째가 생명력이라, 생명. 모든 게 생명에서 다 나와요. 아무리 팔다리가 건강해도 생명만 딱 끊어지면 이거 소용이 없어.
생명에서 모든 게 나옵니다, 생명에서. 생명이라는 걸 다른 말로 말하면 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생명에서 나오는데 이 생명력이 강하면 나머지기 셋은 저절로 따라서 돼져요. 제일 중요한 게 생명력입니다.
생명력인데 이 생명, 우리의 생명력이 몇 가지가 우리의 생명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일곱 가지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이게 얼마나 쉽게 가르쳤고 어렵고 요긴한지.
평생 믿은, 뭐 평생 예수 믿어도 요거 모르는 사람은 몰라요. 평생 부흥사 노릇 해도 요거 모르는 사람은 몰라요. 알겠습니까? 생명이 뭐인지를 모른다 그거요.
제가 고신에 다닐 때에 생명이 뭐이냐 하는 데 대해서 그때 오종덕 목사님이, 박윤선 목사님 사모님이 그때 차 사고로 별세를 하셨는데 애 많이 먹였었습니다, 그분이. 박윤선 목사님이 애 많이 먹었는데 그분이 차 사고로 별세했어. 그래 출상 예배 보는데 우리가 그때 신학생이라서 갔습니다.
갔는데 생명에 대해서 그날 설교하는 가운데 생명 얘기가 나왔어. 생명 얘기가 나왔는데 생명이 뭐이냐 하는 걸 아무도 몰라. 모르는데 오종덕 목사님이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요 끊어지면 사망이다’ 그말이 그때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오종덕 목사님 입에서 처음으로 나왔어. 그분이 고신에서 성경으로서는 제일 성경에 대해서는 아주 유력했었습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고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이 사망이다 이것도 뭐 세계에 믿는 사람들 다 모아 놓으면 아마 백의 구십구는 모를 거라.
이랬는데, 생명에다 일곱 가지가 생명이라 하는 거는 이거는 얼마나 이거 굉장한 우리에게 참 지름길을 가르쳐 준 이 진리인데, 일곱 가지만 가지면 생명이 충만하다, 일곱 가지만 가져서 생명력이 충만하면 저절로 기도는 되고 이 생명력이, 일곱 가지가 충만하면 기도는 저절로 되고 또 이 생명력이 충만하고 기도하면은 자연히 그 사람은 안 먹고 못 견뎌요. 성경 자꾸 읽게 되고 자꾸 재독을 자꾸 듣게 돼요. 또 그 사람 이 세 가지가 되면은 그 사람은 자연히 활동 안 하고 못 견딥니다. 활동을 하게 돼요.
이러니까 제일 일차 중요한 것이 생명력이요, 이차 중요한 것이 호흡이요, 삼차로 중요한 것이 모든 더하는 거, 식료, 자기가 모든 보충하는 식품이요, 그다음에 넷째로서는 그 사람의 활동력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이것을 듣고 요거라도 듣고 요거라도 실행을 하면 ‘생명력이라. 그러면 일곱 가지가 생명이니까 일곱 가지를 자꾸 생각해야 되겠다.’ 생각하라고, 일곱 가지를 생각하라고 한 이거라도 생각하면 뭣이 변동이 될 건데 도무지 생각지 않고 밤낮으로, 여기 있다가 지나가면 뭐 밥하는 인간은 밥할 것만, 일하는 이런 직장 가는 자는 직장을, 전부, 그게 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자가 아니며 그것이 노아 때에 장사하는 사람, 또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 또 집 짓는 사람 이런 것이 다 그거 뭐입니까? 그것이 지금 우리입니다, 우리.
암만 들어도, 하루 종일 그래 뭐 하루 종일 시집가고 장가가. 하루 종일 ‘가정을 어떻게 일으킬까, 가정을 어떻게 따뜻한 재미있는 가정을 만들까?’ 하루 종일 가정 생각, 하루 종일 뭐 가정 생각 안 해도 ‘직장이 이거 충실해야 되고 직장에 감원되면 못 먹고 산다.’ 해석을 하면은 전부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오. 늙어서 오십이 된 사람이야 시집가고 장가 벌써 안 갔습니까? 뭐 시집 장가 가서 아들 많이 낳았는데? 이래도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이라. 왜? 전부 가정에 다 있다 말이오.
암만 가정 잘할라 해 봐도 학개서에 보면은 자기네들이 자기 집만 판벽한 집에 거할라고서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께서 곰팡으로 썩히지, 바람으로 날려 보내지, 전대 밑구멍을 뚫어 버리지 이래 놓으니까 죽도록 해 봤자 헛일이라 말하지 안했습니까? 이랬는데, 가정 위주로 이렇게 날뛰고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이요, 또 사고 팔고 하는 그 사람이 뭐이냐 하면 의식주 만날 먹고 살 그것이요, 또 집 짓는 거 그거는 뭐이냐 하면 자기 항상 거주, 집 짓는 거는 뭐이 집 짓는 거요? 집 짓는 거는 이 세멘트로 짓는 집도 있고 또 이 사회에 운동을 해 가지고서 집 짓는 거, 자기가 동회 말단 서기 위치에 있다가 또, 그뭐 동회 뭐라 하더라? 동회 동장 밑에 뭐입니까? 사무장. 사무장 위치, 또 사무장 위치에서 동장 위치, 이러다가 ‘내가 구청장 한번 돼 보자’ 구청장 위치, 자꾸 이게 내나 집 짓는 거라. 내나 집 짓는 게 거기 다 들었다 말이오. 자기 위치 지위 자기 활동의 그 활동 무대 이게 전부 집 짓는 겁니다. 다 집 짓는 데 들어 가지고 있어. 요 간단하게 말했으나.
이러니까? 거게만 들어 있지 모두지 암만 가르쳐도, 자, 생명을 가르치니 생명을 강하게 생명력을 강하게 만들라고 애를 쓰나, 또 숨 안 쉬면 죽는다 이래도, 뭐 생명이 죽은 것이 무슨 호흡이 필요 있습니까? 이 생명력이 강하고 난 다음이라야 호흡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안해요? 죽은 것이 무슨 호흡이 필요 있소? 산 자라야 호흡이 필요하지. 이 생명력이 강하면 저절로 숨을 훅훅 쉬게 돼 기도하게 되고, 생명력 강해 기도하게 되면은 그다음에는 안 먹으면 못 견뎌. 배가 고파 못 견뎌. 먹게 되고.
생명력이 강해, 숨 잘 쉬어, 배부르게 먹어 힘 있어. 이라면 그 사람이 안 되면 그냥 뛰어도 뛰지 가만 앉았습니까? 못 있다 말이오. 활동한다 말이오.
활동을 하는데 활동하는 데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 보면 밥 먹고 이래 가지고 자빠져 놀면서 그래도 오래 살기는 오래 살고 싶어서 어짜든지 아침마다 등산 가고 하는, 운동하고 하는, 어짜든지 그라는 그것만 하고 있는 거, 자, 그렇게 수입 없는 활동만 하면은 나중에 뭐 됩니까? 말해 봐요. 수입 없는 활동만 하면 어찌 되지? 어찌 돼요? 말해 봐요, 어떻게? 예? 배고프지. 그걸 몰라요? 수입 없는 활동만 하면 배지 고파요, 배지 고파. 수입 없으니 밥 먹을 게 있어야지? 암만 뭐 모가지는 주먹덩이 같은 밥을 줘도 꿀떡꿀떡 넘어갈 수 있지마는 밥을 뭐 줘야지, 수입 없으면 밥을 살 돈을 내야 되는데 돈이 있어야지? 수입 있는 활동 해야 되는데 수입 있는 활동은 뭣이 수입 있는 활동입니까? 수입 있는 활동은 뭐이요? 전도. 전도. 이 반사들 중간반 반사들 수입 있는 활동 합니다.
그런데 수입 있는 활동을 하는데 전도하는데 장사를 하면서 그 집에 보니까 아따 하루 오늘 얼마치가 들어왔고 얼마치가 나가고 막 수지에 분주해서 막 야단입니다. 이런데 나중에 섣달 그믐날 계산 대 보니까 부도가 나 버렸어.
알겠어요? 뭐 큰 돈 버는 것같이 오고 가고 들어가고 나가고 야단이지마는 마지막에 결산을 해 보니까 수입이 없다 말이오.
그거 모양으로 이뭐 일생 동안 중간반 반사 노릇 한다고 야단을 지기고 이래 지금 또 주일학교 반사 노릇 한다고 권찰 노릇 한다고 야단을 지기고 이라지마는 그 마지막에 결산해 보면 결산이 없어. 수입이 없어. 죽도록 데려다 놔 봐야 헛일이고 헛일이라. 그거 뭐이 없어 그렇소? 전도하는 데 뭐이 없어 그렇소? 사랑이 없어 그래, 사랑 없어서. 사랑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 서부교회 오는데 처음부터 좀 내 마음에 해결이 안 되는 게,’ 네가 해결 안 되는 거는내가 말은 안 했지마는해결 안 되는 것은 네가 그 장로한테 미혹을 받았구나. 그거 장로 말 잘했다. 네가 사랑 없이 이 중간반 반사를 명예적으로 내가 중간반 반사다 하고서 명예적으로 했고, 또 반사 하면서 가감봉 하니까 월급이나 더 올라가기 위해 했고, 또 일등 하기 위해서 했고, 네가 순전히, 상대방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를 죄에서 해방시키려고 ‘어쨌든지 이 죄에서 해방시켜서 죄를 안 지어야 될 터인데.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될 터인데.
이래 가지고서 이 구원이 바로 돼야 될 터인데.’ 여게 대해서는, 이게 사랑인데 그거 사랑 없이 했기 때문에 네가 그렇지 사랑했으면 대번에 말이 나오기를, ‘장로님 사랑이 어떤 게 사랑입니까? 나는 이제까지 아침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만날 내가 사랑 가지고 지금 사랑에 볶여서 내가 못견뎌서 지금 피곤해도 피곤한 줄 모르고 자꾸 이래 하고 있는데 사랑이 뭐 어떤 겁니까? 나는 열성으로 사랑한다고 자꾸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러면 사랑이 뭐입니까?’ ‘사랑은 서로 따뜻하게 해 주고, 서로 화목하고, 서로 친절히 하고, 같이 놀러도 다니고, 왔냐고 환영도 하고 이게 사랑이라.’ ‘그거는 죽이는 동류의 사랑, 혈통의 사랑, 정욕의 사랑 그 사랑입니다. 그거는 죽이는 사랑, 마귀 사랑입니다. 나는 배우기를 하나님의 사랑은 그 상대방을 영생의 구원을 주기 위해서 죄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과 연결시키고 그 사람이 어짜든지 참사람이 자라도록 이렇게 하는 게 나는 사랑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거 할라고 나는 지금 분주하게 날뛰는데 뭐이요?’ 이라면 그 장로가 팩 꼬꾸라져 가지고 쭉 뻐드러질 거라 말이오. ‘아이쿠 내가 예수 잘못 믿었다. 헛일 했다.
그게 옳다.’ 이랄 건데, 제가 죽어 놨으니 살릴 자를 어떻게 살릴 수가 있어? 어제 ○○○조사님이 이제 저 진해에 세우는데 진해에 오백만 원 전세를 얻어야 되는데 오백만 원 전세 예배당 뭐 그래도 이십 평인가 전세를 얻는데 그것만 얻으면 돼요. 그것만 얻으면 되는데, 오백만 원 전세를 얻어, 그런데 이백만 원은 공회에서 무이자로 대 주고, 제가 갚기로 하고, 다 갚습니다. 다 갚아요. 그러니까 교회 세우는 사람 보조 하나도 안 받아요, 다 갚지. ‘이백만 원 줄 것이고 삼백만 원 돼야 되는데 삼백만 원 있나? 삼백만 원 있거든 가라.’ 내가 이래 했더니마는 ○○○조사님이 ‘마련해 봐야 되겠습니다’ ‘마련해 가지고 가거라. 삼백만 원만 마련하면 된다. 어떻게 하든지 가거라.’ 이라면서 내가 말했어. ‘네가 가되 여게 반사 노릇 하듯이 그따위로 하면 나중에 오고 가지도 못하고 배척당하고 불쌍하고 가련해서, 그렇게 하면은 나중에 가서 교역자 노릇은 못 할 것이고 장사꾼으로 돌아가든지 그리 안 하면 취직으로 돌아가든지 다시, 도시락에 넣어 놓은 생선 두 마리가 이제는 바다로 가야 되지 딴데는 못 간다.’ 바다에 가면 잘 놉니까 썩어 버리요? 도시락에서 예수님의 입에 들어가야 되지. 이제 이리도 저리도 못 하는 거라.
‘그러니까 반사 노릇 하듯이 그렇게 하면은 너는 헛일이고 어짜든지 가 가지고서 이제 참 네 힘을 다해 가지고 하면은 될 것이고,’ 배우기는, 실력은 있어요. 실력은 있으니까 가서 있으면 돼. 실력만 길렀지, 여게서는 기생충 노릇만 했지, 중간반 반사들 전부 기생충 노릇만 하지, 다 하는 건 아니라. 몇 사람은 안 해요. 그런데 기생충 노릇만 하지 실력은 있어. 이러니까 나가 놓으면 해요.
○○○목사님도 이제 가 놓으면 얼마 동안 할 거라. 거기 인제 가서 여게 모양으로 그래는 못 해요. 못 하고 지금 가 가지고서 빠짝 마르기까지 있는 죽도록 힘을 쓰면은 될 거고 여기 모양으로 그래 하면은 헛일일 거고. 내가 저 아래도 이게 어찌 되노 해서 보니까, 보니까 내려갔어. 모든 게 내려갔다 그말이오. 여기 모양으로 그라면 내려가요.
그러니까, 건강한 사람이 목회 나가면은 그만 빠짝 마르고 이래 가지고 이거 뭐 성한 사람이 병이 들고 이런 사람은 가면 그만 교회가 자꾸 부흥이 되고 이제 가 가지고서 이제는 아무 뭐 시어머니도 간섭하는 백 목사 시어머니가 없으니 편하다, 이러니까 편하다 하고서 살이 찌는 사람은 그만 헛일이라.
오래 된 목사도 그래요. 내가 ○○○목사님 보고 ‘○○○목사 배가 나온다’ 이랬더니마는, 또 그래 서울로 내가 보냈더니마는 서울 가 가지고는 보니까 또 배가 쏙 들어가 버렸어. 이래 좀 힘을 쓰는 모양이라. ‘인제 배가 너무 들어갔다.
몸 조심해라. 몸 약하면 헛일이다.’ 또, 이게 시어머니라. 살이 찌면 살쪘다고 나무래지 마르면 말랐다고 나무래지, 인제 이거 뭐이냐 하면 바로 되라고 하는 거라.
이래서, 여러분들 생명을 가져야 됩니다. 이거 제일 중요한 것이 생명력이오, 제일 중요한 게 생명력. 생명력만 강하면 저절로, 숨은 저절로 후후 쉬고 저절로 뭐 먹고 싶으니까 안 되면 돼지 구유라도 가 가지고 자꾸, 건강하면 모래라도 파 먹습니다. 뭐이든지 맛있고 말이지요. 그라면 활동해요.
그러면, 제일 중요한게 생명력인데 우리의 생명력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일곱 가지. 일곱 가지. 예수님이 내 대신 형벌받아 내 죄값의 형벌받아 죽으심으로써 내 죄가 절단나 버렸고, 죄가 절단나니까 사망이 절단났고, 죄와 사망이 절단나니까 마귀 모가치 그놈 모가치가 없으니까 그놈이 쫓겨나가 버렸고 그래서 거게서 해방과 자유를 줬습니다. 그러면 그 세 가지.
또 예수님이 내 대신 하나님의 그 지성 지공의 율법을 다 내 대신 행하심으로써, 죽을 힘을 다해서 행하셔서 하나님의 의를 내게 줬습니다.
또 하나님과 불목된 원수를 화목할라고서 대신 화목하는 일을 생명과 모든 걸 다 기울여 가지고 화목을 해서 화목의 제물로서 하나님과 우리와 화친이 됐습니다.
그라면 몇 가지입니까? 이제 몇 가지 말했어? 다섯 가지 말했지요? 저 뒤에도 다섯 가지 말했지요? 다섯 가지.
두 가지는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그 생활을 내 대신 살아 줬어. 내 대신 살아 준 그것을 내것 만들고 이제,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요 둘을 나에게 줬으니까 그것은 내것 만들고 그 둘을 내것 만든 나는 내게 힘 있는 대로 예수님의 것으로 살아.
예수님의 것으로 사는데, 예수님의 것으로 살 때도 있고 예수님의 것으로 살지 안할 때도 있어. 그래 예수님의 것으로 산 거는 됐고 예수님의 것으로 살지 안할 때에는 예수님의 것으로 살지 안했으니까 ‘내가 주님의 것으로 살지 안했다’ 다시 퍼뜩 일어나면 돼.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믿는 자로서는 자기가 실족했으면 자기 실족이 아니고 예수님의 것이 실족했어. 예수님의 것이 실족했기 때문에 다시 예수님의 것만 되면은 암만 뭐 실수해도 즉시 회복이 돼 버리고 말아요.
하루 몇 번이나 회복할 수 있어? 예수님이 몇 번 말했어요? 칠칠은 사십구, 일흔 번씩 일곱 번이니까 칠칠은 사십구 사백구십 번이라도 된다, 다 그 안에 떨어지지 그 이상 되지는 안해요.
이러니까 이렇게 사는 길이, 믿으면, 믿으면 뭣 와요? 믿으면 뭐이 와요? 베드로가 물위로 베드로가 이래 믿으니까 그 바다물이 이 콘크리트 포장한 도로 같애. 믿으니까 그 바다가 포장한 도로와 같이 쩌뻑쩌뻑 걸어갔어. 이제 푹 파져 들어가는 건 뭐 버리니까 푹 빠져 들어갔습니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적으니까 믿음이 떨어졌다 말이오. 믿음이 떨어졌다 말이오. 믿음이 떨어진 게 뭐이냐? 의심한 거라 그말이오. 믿지 않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믿으면 능력이 와서 오고 믿음 떨어지면 그만 헛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음의 신비성에 대해서 얼마 전에 자꾸 말해도 이걸 귀넘어 들어. 참 이상해요. 어짜든지 이걸 뭐 들으면 막 죽을 만할 건데 그렇게 보배로 여기지 안하는 거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가 지금은 필요 없어요, 하루 삼십 분 기도가. 앞으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올 때 그때 삼십 분 기도가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자꾸 기도를 해서 모두어야 해요.
하루 삼십 분 기도면 한 달이면 몇 시간 돼요? 한 달이면 열다섯 시간 돼요.
그러면 일 년이면 얼마 돼요? 백팔십 시간이면 며칠 돼요? 이레 반? 이레 반이면 이레 반에 올라갈 높은 산을 대번에 올라갈 수 있소? 못 올라가.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그걸 모으는 거라. 높은 산 올라가는데 지금 그래 자꾸 모우는 거라.
그러니까, 일 년이면 얼마? 이레 반? 이레 반이면 자, 삼 년이면 얼마라? 이십일 일이네. 이십일 일날 올라갈 그 높은 데를 대번에 뛰어 올라가, 제가? 그러니까 기도 안 하고 대번 올라갈라 하는 자는 대번에 이십일 일날 올라가는 걸 저는 대번 올라갈라 하고 이거는 못 올라가기 때문에 하루 반 시간씩 주 모아 가지고 이 한목 그래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삼십 분 기도 이거 중요합니다. 이거 안 하면 뒤에 가서 그 사람들은 이 서부교회 있어도 다 서부교회 다 팔고 말아요. 이제 앞으로 서부교회 교인 노릇 할라 하면 뭐 그래 쉬운 줄 알아요? 나중에 뭐 이래 생명 내놓지 안하면 못 해.
생명 내놓는다고 됩니까, 능력이 있어야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