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길러라

 

1981. 10. 26. 월새

 

본문: 베드로전서 2장 1절 - 2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1절 초두에 "그러므로" 말해놨습니다. 1절 초두에 "그러므로" 하는 말씀을  기록해줬습니다. '그러므로'는 무엇을 전제로 두고서 하는 말씀인고하니 1장  24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슴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은 뭐 어떤 것이든지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풀의 아름다운 그 꼿은 떨어져서 아름다운 모양이 없어지는  것처럼 그저 잠깐 동안 있다가 없어지는 것처럼,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치로 삼아  가지고 마음에 쓰지 말아라 하는 말입니다.

악은 자기나 피조물이나 그 피조물 중심으로 살아봤자 그것이 오늘 끝날런지  내일 끝날런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것을 상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악을 버리라" 그말은 어떤 피조물 중심이나, 자기중심이나, 뭐 인류 중심, 문화  중심, 아니 인류 중심 하면은 그게 대단한 줄 알아도 인류도 잠시후면 가 버리고  끝장납니다. 제가 인류를 암만 위한다 해봤자 그것도 그렇게 위하는 그것은 주님  오시면 끝납니다.

또 자기는 민족주의자라고 아주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받혔으면 위대한 줄로, 또  국가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또 자기는 가정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  중심으로 자기중심으로 이렇게 살아봤자 그것이 마치 풀의 꽃과 같다.

그런고로 그런데에 신경을 쓰고 정성을 드려서 네가 살지 말아야 된다. 그런  것으로 다 살지 말아라. 땅위에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그 일이 껍데기는 지나  가지마는 그 일은 너를 만들어 주시고 너를 먹이고 입혀주시는 구분과의 관련이  어찌되느냐? 하는 이것이 곧 뒤따라서 영원한 원인이 되어지는 것이니까  그런데에 네가 마음을 쓰지 말아라 하는 말입니다.

또 네가 다른 사람을 남을 해하는 그런 일을 해서 일시에 네 목적이 달성되서  남을 해하는 일을 했다 할지라도, 네 소원대로 다른 사람을 해하고 너는 서고  하면은 좋겠다 싶으지마는 그것도 잠깐이요. 또 다른 사람이 너를 해한다  할지라도 그것도 잠깐이다 해한다고 해도 조물주가 절대로 그대로 둬두지 않고  모든 것을 공평되게 하는데 일시만 보면은 저런 사람은 억울타 싶으지마는  억울한 것이 무궁세계의 갚음에 있는 그 복이 있는 그런 일이 아니라면 억울한  일은 그 당대만 보면 억울하지마는 그 위에를 보면은 그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면은 억울한 일이 없다.

그 미국같은 나라에서도 백인종이 흑인종을 인종 차별을 두는 걸 볼 때에는 그  킹 목사가 인종 차별을 두는 것이 이것이 잘못이 아니냐? 그렇게 일생을  노력하니까 그 사람을 아주 성자라고 그렇게 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흑인종은  대대로 막살았고 마구잡이로 살았고, 백인종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이래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 대한 하나님 보응이 다른 것인데 동등 대우를 받으려하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억울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평되게  조절하시고 만일 억울한 일이 그에게 있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원한  나라에서 갚아 줄 그 보상을 생각하고 그대로 둬두고 쓸모있어 둬두지 억울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 중심 피조물 중심도 소용없는 일 또 네가 남을 해하려고 해  가지고 그 다른 사람을 해하고 너는 일어서면은 좋다하지마는 그것도 잠깐, 모든  궤휼 네가 남을 이렇게 속이고 꽤워서 공산주의자들은 참 거짓말 잘 합니다.

그들은 뭐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보면은 이렇게 잘 하는데  또 이세상에서도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 우선은 다입니다. 보면은 그 사람이  거짓말 잘하면 사람 만나 놓으면 요리 꼬우고 조리 꼬아 가지고 바른 말 하는  사람에게는 다 원수가 되고 거짓말해서 절 꼬우고 속이는 사람에게는 모든  친근해집니다.

그러기에 안 믿는 사람들도 '소인이 사귀는 것은 꿀과같다.' 고 속이고 꾀우고  다른 사람 헐고 뜯고 그러면 그 아주 재미있게 단합된 것 같지마는 그게  멸망이요. 대인의 교는 담어수라 참 큰 사람들이 사귀는 것은 사귐이 물과 같다  싱겁기가 물과 같다 뭐 그렇게 짝짝한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궤휼과 외식은 어떤 게 외식인고 하니, 속에 알맹이 구원없는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일만 자꾸 아름답게 꾸미는 그것은 다 외식입니다. 외식과 시기 시기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 잘되는걸 보고서 마음 아파하는 그런 것이  다 시기요. 또 신앙 시기도 다른 사람 잘 믿는 것보고는 제가 마음에 만족치  안하고 마음에 불안하게 생각하는 그런 것 다 시기입니다.

다른 사람 잘되는것 보고, 다른 사람 좋은것 보고 제가 같이 좋아하면 그것이  제게에 뒤에 돌아오는데 이 어리석어서 다른 사람좋은 것 보고 제가 싫어하면 그  보응을 자기에게 줘버립니다. 남이 잘 되는걸 보고서 내가 시기를 하면 잘되는 것  좋아하지 안하고 그 마음 아파 그렇게 생각하면은, 잘되는 것보고 마음 아파  생각하니까 잘되는 걸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남 잘되는 걸 싫어하면은 잘되는 걸 싫어하는 것을 네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것을 네게 붙이봐라 잘되는 것을 남 잘되는 것을 싫어하면은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네가 잘되는 걸 싫어했지 그래 너는 잘되는 걸  싫어했으니까 너는 잘 되는 것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참 오묘한 역사를 하십니다.

남 잘되는걸 싫어하는 사람은 잘되는걸 싫어하는 고 보응을 자기에게 줍니다. 남  잘되는 것을 좋아하면은 너는 잘 되는걸 좋아하는구나 너도 하나 줄까 그 잘되는  걸 줍니다.

이러니까 이거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즉 법칙은 모든 것을 다 동등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래놨기 때문에, 다른 것 잘 되기를 원하면은 네가 잘 되기를 원하네. 잘  되기를 소원 하나 너 하나 주마. 안되는 것을 원하네. 남 안되는 것을 원하면 너  안되는 걸 원하니까 안되는 것 먼저 너부터 가지라 안되는 것 먼저 저부터  줍니다.

이러니까 이 시기 이런것도 다 우리가 공연히 우리 구원에 방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지남침을 가지고 그 배를 타고서 향해하는 사람이 지남침 그 나침판 그걸  가지고 이 동서남북을 가리 가면서 이래 그 항로를 찾는 것인데, 그만 그 옆에  쇠든지 뭐이든지 하나 있으면은 그 지남침이 거기에 끌려서 바로 정 남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좀 빼딱하게 가르쳐 빼딱하게 조금만 빼딱하게 가르치면 이게  처음에는 조금 틀렸지마는 갈수록이 나중에 수십리 수백리도 틀려 버립니다.

이렇게 돼진다 그말이요.

이런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 이래 바로 향해야 하나님을 딱  들어맞는데 하나님은 저게 계시는데 빼딱하이 이래 버리면 찾아가면 마귀을  만나지 하나님은 만나지 못한다 그말이오. 마귀나 만나지 하나님은 만나지  못해요. 이러니까 이런 것들을 다 버리라.

요거 비유인데 여러분들이 똑똑히 기억해요. 지남침이라고 내나 그 지나침 다  아십니까? 남쪽을 가르치는 것 국민학교도 안한 분들 많이 있기 때문에 지남침이  뭐인지, 촌에 가면은 풍수들이 묘자리 잡는다 하면은 그 하는 쇠라고 하는게  있어. 뺑뺑뺑 돌아가는 것 요거 어데든지 남쪽과 북쪽을 요래 가르쳐서 요래하는  것 그게 있어. 고 지남침은 고것이 지남철이라 하는 것 가지고 안 되는데,  지남침은 그 남쪽을 가르치는 쇠인데 그 쇠는 이 무쇠가 있으면은 들어 붙어버려.

이러니까 이걸 뜩 공중에 달아놓고 여 쇠를 가지고 이러고 있으면은 그것이 이리  당겨와서 흔들 흔들 흔들거려 조그만 가까이 가면 와서 딱 들어 붙어버려. 이  당기는 쇠하고는 당기는 게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지남철에다가 지남침 남쪽을 가르치는 지남침을 고걸 가지고 딱  만들어 남쪽만 가르치니까 바다가운데 가서도 이것 보면은  (엊저녁에 뭐한다고 불을 켜놓고 오래까지 있었어. 내가 늦게 내려가니까 이쪽방  저쪽방 다 불켜놓고 있데. 그래놓고 새벽으로는 꾸벅꾸벅 졸고 늦게 와 가지고  일찍 잘 수 있는데 일찍 자기 뭐한다고 그래 가지고 나와 가지고 졸고 있어.)  요 지남침은 저도 그거 하나 있습니다. 하나 사놨습니다. 미군들 전쟁할 때에  하는 것 하나 사놨는데, 어데든지 가면은 요 팔뚝에 딱 시계 모양으로 차고 이  갑니다. 가면은 여 남쪽이 어데인가 북쪽이 어덴가? 그 저 모르는데 가면은  뭐인지 몰라요. 이래 가지고 가서 그러는데 쇠가 고 옆에 있으면 고만 요쪽에  쇠가 있으면 요 지남침이 요 쇠있는 대로 당겨지니까 정남을 가르치들 못해요.

남을 가르치들 못하고 남쪽에서 북쪽하고 반반을 가르쳐 버리면 그 사람이  그것보고 가는 사람은 헛일이라 말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정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지 안했어. 마음이 정결한 자는 마음이 꼭 바로 깨끗 아무것도  거리끼지 안하고 마음이 깨끗하면 하나님을 바로 찾게 된다. 그렇지만 마음이  여기에 악독으로 마음이 고만 삐뚤어졌든지, 또 궤휼로 삐뚤어졌든지, 외식으로  삐뚤어졌든지, 시기로 삐뚤어졌든지, 비방으로 삐뚤어졌든지 이런것들이 자기  마음이 있으면 그만 그 마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에 지장이 되어서 바로  찾아가지 못해요. 그놈 때문에 빼딱합니다. 시기만 하나 있어도 내 마음이 벌써  시기로 갈라지고 하나님과 갈라지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만 남아 있지마는 시기 그게 들어서 내 마음을  빼딱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로 찾지 못해요. 이런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바로 찾지를 못 합니다. 그러기에 그것이 육도 망하고 영도 망하고 다 망하요.

또 외식이라 말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그런것을 무엇이든 탐하든지 '내가  다른 집에는 피아노를 사놨으니까 나도 피아노 하나 사야 되겠다.' 그것에게 자꾸  그것 욕심을 품고 그러면 그 욕심 때문에 그 욕심으로 마음이 조금 끌려가  가지고 요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순전히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고 그리 조금  끌려갔으니까 그 마음이 하나님을 바로 찾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을 바로 만나지 못하니 그 사람의 사고 방식이 다 틀렸고, 비판도  틀렸고, 평가도 틀렸고 그만 그 평가가 다 욕심적이요, 비판이 욕심적이요, 사색이  욕심적이요, 소망이 욕심적이요. 이러니까 욕심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향하여 찾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 세상에 필요한데 왜 그러는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데  그런거는 암만 해봤자 잠깐이다" 또 너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면 주의 말씀대로만 살면 그것은 절로 준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생겨지는 것이면 주의 말씀대로 살아서 생기지 안한 것이면  안해야 돼. 말씀대로 사는데 자기가 말씀대로 사는데 옷을 만원짜리 옷을 그렇게  만원짜리 옷을 사 입으려고 계를 모으고, 왜 나도 만원짜리 옷 한번 사 입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반드시 생각해서 사 입는 것은 그것은 뭐이냐? 그 마음을 더럽게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게 하는것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처음에는 옷이 떨어졌으니 천원짜리 옷하나 사입어야  되겠다. 그 천원짜리 옷 사 입는 것은 옷이 없으면 퍼득 사 입을 수 있고 뭐  그것때문에 욕심낼 것도 없고, 이러다 보니까 자꾸 이래 살다 보니까 나중에는  옷을 지난밤에 도적이 가지고 갔네. 옷을 사야 될세. 십만원짜리 옷도 그만 사고  싶으면 대번 산다 그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옷 사려고 그렇게 마음을 기울이고, 좋은걸 사려고 애를 쓰고,  계를 모으고, 뭐 욕심도 품고 이래야 되는 것은 자기 분수에 넘은 것이라  그말이오. 자기 분수의 자기 정도에 넘은 것은 하루 열번 잊어버려도 열번  잊어버리고 열번 불에 타도 사 입을 수 있는 그것이 자기 정도의 옷이라.

이러니까 옷이든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자기 정도에  합당하게 하나님이 주시니까 주시는 그것이면 자기는 얼마든지 그 할 수 있는 것,  음식도 자기가 그것 한번 먹었으면 좋겠다 이래 가지고 자기가 애를 써도 안  되니까 계를 모아 가지고 언제 한번 그 음식 먹으로 갈까. 또 저 가니 이렇게  비상한 수단을 쓰고 자기 마음을 거다 기울이고 애를쓰는 그거는 자기 음식이  아니라 그말이오. 자기 분수에 넘은 그 사치 음식요 그것은 정도에 지나친  음식입니다.

자기 정도에 먹고 싶은건 그날도 먹을 수 있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고 자기  분수의 정도가 있어. 이런건데 사람들이 공연히 자기 분수를 넘으려고 하는 통에  안되고, 분수를 넘으려고 하니까 마음이 그리 기울어지고, 하나님을 향할 것이  그리 기울어 지니까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니 하나님 축복받지 못하니까 도로  안된다 그말이오.

이사람이 참 망하는 길을 걸어갑니다. 왜 이러느냐? 마귀 이놈이 들어서 사람을  꼬아 가지고 자꾸 이렇게 어리석게 미련하게 자기 망하는 길을 자꾸 가도록  이렇게 만듭니다. 이러니까 모든 악독도 버리라, 모든 뭐 남을 요리 쏙이고 그래  저래 거짓말하는 그런것도 버리라, 외식도 버리라, 시기도 버리라, 비방도 버리라,  이런것을 다 버리라 버리고,  어떤 사람이 나한테 한번 접촉했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런말 해 그 사람이  어떻던가? 이래 내가 물으니까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 사람 내 다른거는  모르겠는데 그사람 만나보니까 꼭 다른 사람의 단점만 말하지 장점 말하는 것은  제가 들어보지를 못 했습니다.

그래 내가 참고를 삼으려고 그 사람이 어떻지 이러니까 그 사람은 만나보니까  내가 만난 후로서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의 단점만 보고 말하지 다른 사람의 장점  말하는 것은 보지를 못 했습니다. 그렇게 말해요. 다른 사람의 단점 보면 남을  만나면 남을 꼭 흉보고, 남을 헐뜯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다른 사람 삣고 깍지  다른 사람을 복돋아 주는 그런것은 들어보지를 못 했습니다.

 이렇게 말해. 그 사람이 그 내가 물을만한 사람이라. 그 지혜있는 사람이라 그  사람을 떡 접하면, 보자 이 사람은 남을 복돋은 사람인가 남을 허는 사람인가? 이  사람은 자기를 중심하는 사람인가 남을 중심하는 사람인가? 남을 중심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도덕가가 됩니다. 네 그 사람은 도덕가가 됩니다. 그래도  멸망이요.

이 사람은 보자 다른 사람을 중심도 안하고, 국가 중심도 아니고, 자기중심도  아니고 이 사람은 보니까 하나님 중심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신앙가가 됩니다.

하나님 중심이 신앙가가 돼. 사람을 접할때 이런 사람인가 저런 사람인가? 이것을  자꾸 이것을 살펴서 요 사람은 요런 사람이라 이러니까 내가 이 사람은 한번  사귀고 만났으면 요 사람은 요런 재미니 고걸 대번에 치료를 하면 안 됩니다.

늑막념이 늑막념을 알아서 그 고름이 한 두대나 들어 가지고 있는데 이것만  주사귀를 쭉 빼 버리면은 그사람 죽습니다. 이러니까 주사귀로 딱 꼽아놓고 요걸  하루 한홉씩 빼든지 얼마씩을 빼든지 차차차차 요놈 빠지는데 따라서 다른 몸이  채워져 나오고 이래야 되지지, 이런 것 쑥 빼 버리면 그 고름이 힘이 되는데  고름도 힘 있는걸 다 빼 버리면 죽는다 말이오.

병이지마는 이러니까 고 사람이 나쁜점이 있지마는 고걸 단번에 획 고쳐  버리면은 사고가 나고 지금 안 될터이니까 고걸 두고서 또 만나 가지고 고걸  모르는 가운데 사르르 또 주사침으로 빼고 고것을 아닌 것으로 말해주고 또 좋은  것을 대신 채워주고 자꾸 이래 가지고 사람을 고치는 것이라 그말이오. 사람을  만날때에 요 사람은 무슨 병이 들었느냐? 무슨 습성이 들었느냐? 무슨 습관이  들었느냐? 무엇을 연습을 많이해서 뭐 좋은 게 잘 숙달되 가지고 있으면 좋지만  나쁜 게 숙달되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요 사람 가지면 무엇이 나쁘다 요걸  아무래도 고쳐야 되겠다 그걸 고치기 위해서 온갖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써서  그래 별별 일이 다 있다 그말이오.

다음에 하늘나라 가면은 너는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이렇게 해서 사람을  고치는데 능숙해서 많은 사람을 고쳐서 옳은 대로 돌아오게 했구나! 옳은 대로  돌아오게 했구나! 그 사람은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납니다. 사람을 고치다가 안  되면 던져버려야 됩니다. 안 되면 던지야 되요.

이건 암만 고치려고 말해도 콩 말하면 팥 말하고 이리가라 하면 저리가고, 이럴  때에는 그 사람이 나에게 고치게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얼마동안 하다가는  버리야 되요. '안됐다 이거는 주여! 내가 못 고치겠으니까 이는 내 기술 가지고 못  고치니까 대의원 병원 원장 당신이 고치십시요.' 하고서 원장된 주님에게 맡겨  버리고 그 자기가 고칠 때까지는 자기가 고쳐보고  이러니까 여기에 반사들이든지 또 권찰이든지 집사든지 장로든지 목사든지 이런  사람들은 다 병을 고치는 사람을 고치는 의원들입니다. 다 의사들이요 의사인데  못 고치면 우리는 자꾸 이 고칩니다.

이러니까 '양떼를 먹이며, 다스리며, 살피며, 지키며, 보호하며, 치료하며, 기루게  해주옵소서.' 하는 그것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네 '사람을 먹이며,  입히며, 기루며, 다스리며, 보호하며, 치료하게 해주옵소서.' 우리가 다 그런것  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하다가 안되면 주여!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기도도 하지  않겠고 이 사람은 이제 주님에게 맡깁니다. 당신이 맡아서 이거 원장된 당신이야  되지 나로서는 못 합니다. 이래 맡긴다 그말이오 그러나 그때까지는 사람을  이래도 고쳐보고 저래도 고쳐보고 그 뭐 병든 것 알아야 치료하지. 그러니까  사람을 접촉하면 이 사람은 무슨 못된 습성이 있나? 내가 물어보니까 그 사람은  그 남의 단점 밖에는 못보는 것 같습니다. 그 말할 때마다 똑 단점 말하지 장점  말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고것도 눈이 뜨였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을 고런 사람인 줄을 알면은 이  사람에게는 단점이 안 보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조심을 해서, 그 사람이 보려고  해도 단점을 볼 수 없는 사람으로 조심하다 가면은, 그 사람을 만나도 또 자기  구원됩니다. 이 사람 만나도 구원되고 저 사람 만나도 구원되고 구원 안될 사람이  없어.

그런 것 모두 악독이나, 궤휼이나, 외식이나, 시기나 모두 남을 허는 것,  비방이라말은 남을 헐어 뜯는 것이 비방이라. 그 헐 비자, 헐 방자 그 헐 비자, 헐  방자 그 사람을 허는 것, 자꾸 빗고 깍는 것, 헐어 뜯는 것 이게 비방이라. 그런  것이 있으면 내 마음이 깨끗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지남침 옆에 쇠뭉치 논거와  같다.

그러니까 지남침이 그리 끌려서 정 남을 가르치지 못하니까 가다가는 배가  암초에 걸려서 파선되고 만다. 네가 그런것을 마음에 두면은 주님을 찾는 그 찾는  마음이 주님은 향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네 마음이 상해 있고 고것 때문에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네가 모든 일에 대해서 정평 정가를 못하고 옳은 것을  사모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생활 해 가다가는 나중에 배가 파선된 것처럼, 내라는  사람이 절단되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네 마음을 깨끗이 하라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 2절 찾아봐요. 베드로전서 2장 2절 "갓난 아이들 같이 갓난  아이들" 같이 갓난 아이는 뭐입니까? 권세를 탐을 냅니까? 그 무슨 처녀면 미남을  탐을 냅니까? 머슴아면 미녀를 그 탐을 냅니까? 무슨 오락을 탐냅니까? 뭐 내  탐냅니까? 갓난 아이는 뭘 탐내요? 젖 외에는 그놈 소원이 없어. 젖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말이오. 갓난 아이는 젖 외는 아무것도 없어.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랬는데 옛날 번역에는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하라.' 이래놨습니다. 더 알기 쉽게 도의 젖을 젖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을 말해요. 영감 이 예수  믿는 도를 말하는 것이라 이 신구약 성경과 성신을 만나려고 여기에 성신을  만나려고 성신을 만나고 어째 만나 성신을 만나려면 성신 만나도록 소개해 주는  소개인을 그 만나야 만나지 그리 안하면 만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때 괴룡산에 잡도가 많다해서 괴룡산 한번 구경하러 갔습니다. 괴룡산을  구경하러 가니 어디가 뭐인지 알아야지 우리가 괴룡산에 가 가지고 자 여기에  안내인을 하나 소개 해 주라 하니까. 괴룡산에는 뜻이 있는 사람들이 가지 그  관광하는 사람들은 그 가지 안해. 별로 볼게 없어요. 그러니까 안내원이 정한  안내원이 없어.

이러니까 그 누가 말하기를 여 어떤 노인이 있는데 그분이 그 자리를 잘 안다고  그래 소리했어. 보니 그 뚱뚱한 분인데 아주 좀 잘 알아요. 그래 그분을 딱  아내를 해 가지고 가니까 그 역사를 다 말해줘요. 요거는 요렇고 역사를 다 말해  줘. 안내원이 찾아 가지고 그래 갔습니다.

우리가 이 성령을 만나야 되는데, 성령을 만나 도의 젖은 인자 성령과 말씀  성신의 감화 감동과 말씀이 젖인데, 젖 우리의 인격이 자라는 젖인데, 우리의  인격이 어린 인격이 자꾸 먹고 자라는 젖인데 그 성령님을 만나려고 하면  소개자를 만나야 된다 말이요. 성령님의 소개자가 누구인고 하니 신앙  양심입니다. 알겠습니까. 신앙 양심이 성령님에게 소개합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은 자꾸 읽어도 말씀 읽는다고 양심 만나는 줄 압니까 양심 못  만났습니다. 양심 만나려면 양심을 만나려면 말이지요. 좀 힘을 써야 돼. 이런  마음도 버리고 저런 마음도 버리고, 어쩌든지 자기가 그 성경 말씀대로 괴롭든지  즐겁든지 요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요 모든 것을 제거하고, 어쩌든지  죽든지 살든지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고 마음이 양심입니다. 고 마음을  찾습니다.

자기가 봐도 알 수 있지 안해요. 내 속에는 지금 시기만 반츰, 욕심 마음 반, 또  미운 마음도 좀 섞여 있고, 분한 마음도 좀 섞여있고 이 마음이 깨끗한 마음을  양심이라 하는데 깨끗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이런 모든 잡탱이 마음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환하게 압니다. 내게는 이런 것, 저런 것, 그런건 없다. 아무것도  없지마는 네 마음은 텅 비어 가지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죽은것 같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도 또 안 된다 그말이오.

또 자기 살펴보면 그놈 버려야 되겠다고 마음 그걸 버릴려 하면은 얼마나  힘듭니까. 마음 그놈을 버리고 이 시기 마음을 버리야 되겠다. 욕심 마음을  버리야 되겠다. 뭐 무엇을 이런 돈 욕심이나, 인간 욕심이나, 무슨 욕심 이걸  버리야 되겠다. 그놈 잘 버려지지 않습니다. 잘 버려지지 않소.

어떤 사람이 갑자기 그만 남편이 죽어서 과부가 됐는데 그 사람이 늘 남편을  사모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때문에 그 마음이 삐딱해  가지고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 말이오. 그것이 자기 구원에 다 손해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때가 되서 데려갔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데려갔으니까 남은 자기는  어쩌든지 구원을 잘 이루어야 되지 그 암만 사모해야 소용있습니까. 사모하면 안  됩니다. 살아 있어도 그 사모하면 자꾸 구원에 손해가는데 그 됩니까. 아야  버려둘 줄 압니다. 버릴럽니다.

버릴려고 애를 써도 그것이 마음 가운데 있어 가지고 밥 맛도 없고 얼굴  두트려버려 이걸 버릴려고 애를 쓰고 애를 쓰려고 다른 것을 생각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이래 가지고 차차차차 그 버리는데 아주 힘이 드는 갑습니다.

버리는 게 참 힘이 드요.

우리도 그래요. 보면은 어떨 때는 섭섭함이 떡 들어왔다 그말이오. 섭섭함이 들어  오면은 그것도 버릴라 하면은 그것이 어떨때는 한 시간도 가고, 어떨때는 뭐 몇십  분도 가고 이러나 지금은 이제 아니라 하면, 버린다 하면, 그 시간 척 버리라  하면 척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

아무리 욕심낸 것도 버리야 되겠다 버릴려 하면 척 버려져 그것이 장성해 지니까  버릴려면 척 버리 버리고 버리고 난 다음에는 잘못하면 빈 마음으로 있으면은  딴것 들어옵니다. 그 귀신을 하나 쫓아내고 소지를 잘해 놓으면 그 다음에 몇  들어온다 했지요. 일곱 귀신 그런것 버려놓고 그 마음에 있어놓으면 엉뚱한 것이  마음에 쑥 들어와 가지고 그런게 또 주장을 한다 그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얼른 양심을 찾아요. 양심을 찾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손해 가든지 남이나 내나 이거 뭐 사람이 손해 가거나 유익 가거나,  어쩌든지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옳게 살아 보자.' 하는 고 마음이 신앙  양심입니다. 고 마음을 찾으면 고 마음을 찾아 가지고 성령을 소개해 돌라 하면은  고 마음이 즉시 성령을 소개합니다. 양심은 성령을 우리에게 알선해 주는  안내자요 소개자요.

이러기 때문에 양심을 찾지 못하는 사람을 성령을 만나지 못합니다. 설교할 내가  설교를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 설교를 좀 많이 하십시요. 또 남권찰님들도 좀  돌아다니면서 설교좀 많이 하십시요. 이러는 것은 설교가 그 오묘합니다.

설교는 사람이 그래도 자기대로는 양심이 되지 안하면은 설교가 안 나옵니다.

자기대로는 양심이 되야 설교가 나와 자기대로 그러니까 설교가 등급이 있고  차이가 있는것은, 양심이 등급이 있고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설교하려  하면 제 대로는 나쁜것 생각해 가지고 설교가 안 나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 설교할 때는 이거 옳은 하나님 말씀을 바로 증거해야 되겠다. 또  다른 사람에게 알아 듣게 증거해야 되겠다. 이러다 보니까 자연히 자기도 모르게  자기 마음이 깨끗해진다 그말이오. 깨끗해지니까 그 깨끗해지면은 어째 그만  깨끗해진 그것으로 인해서 성령 만나기가 쉽다 이거요.

그러나 장로를 세워놓고 설교를 안 시키면 그 장로가 뒤에 가서는 참 이상한  마귀 장로가 되기 쉽다 이거요. 이 설교라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나도 그래요. 이 설교하려고 애를 쓸때 그때 마음이 제일 깨끗해 이래도  설교가 하나님이 안줘. 안 주면 강단 앞에 와 가지고 이 시간은 됐는데 하나님이  뭘 말씀을 증거해야 될런지 당신이 증거하고자 하는 그 말씀을 증거해야  될터인데, 안 주니까 그때는 그만 참 등에 콩이 티어 바짝 이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라 하는지, 당신이 하라 하는 것 해야 되지 안 하라 하는것 내 혼자  선택해 가지고 하면 안된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하라는 이 말씀 선택하려고 애를 쓰고 이러다가 보면 그때 성신의  감화를 만나 가지고 성신이 이 설교해라 하는 그 설교 하면은 그러면 은혜가있다.

그러기에 이 설교하는 고것이 자기 양심 찾는 데에 참 좋은 방편이라.

이러니까 이 목회자가 복이 있고, 또 반사들이 복이 있고, 권찰들이 복이 있고,  교역자들이 복이 있어. 그 반사들 어떤 분들은 이 또 설교 양심이 죽어서 양심이  죽어서 그것도 없이 아주 죽은 양심이 돼 가지고 그저 성경이 이러니까 이대로만  전하자. 바로 전하고 이 하나님 말씀을 참 옳게 전해 사람을 고치게 되면은 요  마음도 없이, 마치 녹음테이프 그거는 언제든지 틀면 설교 나오지마는 그 속에  양심 있소?  그것 모양으로 테이프 노릇으로 앵무새가 사람 말도 뜻도 모르고 사람 흉내 내는  말 따라합니다. 이제 연습이 되어서 문열고 들어가면 '안녕하십니까.' 뭐이 새  집이 언제 가보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안녕하십니까.' 그 내 또 이름이  뭐이요? '잘 계시요.' '안녕히 가시요.' 시키시는 대로 따라 해. 그것 모양으로 그래  설교하는 인간이 있어.

테이프 설교 그거는 그 설교 많이 하게 되면은 아무 짝도 못쓸 사람 아주 그거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 중에 가장 가속도로 망하는 것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처음에는 그렇지마는 나중에 성령은 같이 하지 안하니까 아주 못된 궤휼자,  여 (박태선)씨니 (문선명)이니 저런 사람되고 만다 이기요.

이런걸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자라게 하려 함이라.'  오늘 아침에 지금 증거하려 하는 것은 요것입니다.

"자라게 하려 함이라." 자기가 자라야 돼. 자기가 자라야 그 아이는 아이로  낫지마는 그것이 자라지 안하면 무슨 힘있습니까 짐이나 돼지. 우리의 이 심신의  요소가 요소의 기능이 은혜받을 때에 부활은 됐습니0다.

오늘 주일은 요게 부활되고 여기서 부활되고 부활은 됐다 할지라도 부활된  이것을 가꾸어서 자라야 되지 자라지 안하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예배볼 때에  부활되서 부활된 그때 은혜 받을 때 그때 같으면 그때 같으면 심방도 해야  되겠고, 전도도 해야 되겠고, 이 학생들에게 가서 이리도 말해야 되고 그때  생각하면 학생들에게 그 학생이 그러니까 그 학생이 말씀을 전해주니까 잘  듣지도 안하고 비뚤 비뚤한다.

그러니 요번에는 은혜있게 이런거로써 벼락을 나야 되겠다. 벼락을 놓으면 제가  딱 오그라 땅에 붙들것이다. 이렇게 많은 능력있는데 고만 이 사람이 골케 골케해  버리면 가 가지고 그 아이에게 말할 때에 말할 힘도 없고, 말해봤자 그게 듣지  안해도 그만 어쩔수도 없고 그래된다 말이요. 자기 속에 불이 있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옳은 것을 말해서 안 들으면 불이 나갑니다.

'너 그러면 어찌 돼.' 좋은 말로 해도 그에게 칼같이 들려지기 때문에 고만 겁이  나지고, 무서워지고, 오그라지고, 또 안들으면 육체까지도 오그라지고 그렇게도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길러야 됩니다. 자라게 해야 돼. 구원이 되도록  자꾸 가자고 양심도 자라야 되고 자기의 그 기능도 부활된 것이 자라야 되고  부활은 했다 할지라도 자라지 안해.

어떤 사람은 말이요. 그걸 보면 감수성이 감수성이 빠른 사람은 부활은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감수성이 빠른 사람은 유지성이 없다 말이요. 또 유지를 못해요.

유지성이 없어. 유지성이 없는 그 사람은 기루지를 못해. 유지성이 강한 사람은  그 사람이 한번 깨닫아 부활만 됐으면 그것은 꾸준히 계속해서 자랍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 안다 그말이오. 나는 감수성이 빠른 사람이라. 유지성이 빠른  사람이가? 유지성이라면 인내성, 그게 빠른 사람 그게 강한 사람이가? 무슨 면이  강하나? 그 강하면 강한 고것은 고대로 두고 약한 그점을 자기가 취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래서 어쩌든지 우리가 자라는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사모해야 됩니다.

말씀을 읽는것도 좋소. 말씀을 읽고 읽는 것, 또 말씀을 사모하는 것, 또 셋째는  말씀을 읽고 말씀을 사모하고 또 말씀에 대해서 사모만 할게 아니라 거기에서 더  깨닫으려고 더 애를 씁니다. 또 고대로 행해 보려고 애를 씁니다. 자기가 읽고,  깨닫고, 사모하고 이러면 그 다음에는 행함이 행하고 싶은 마음이 나와요 그러면  이것이 양식이 됩니다. 또 무슨 양식이 되느냐? 이것만 가지고는 맛이 없기  때문에  어제 나한테 갈치국을 끓여 가지고 왔어. 그 시골에 있을 때는 그때 좋은것은 못  먹으니까 생 갈치국을 끓이면 참 맛이 있는데, 여 오니까 갈치국 끓여 먹을 줄  몰라요. 그래 갈치국을 끓여 왔는데 끓이기는 억수로 끓였는데 조미료가 없어.

여기에는 제피를 타야 되는데 이 제피가 없어서 안 되겠다.

그랬는데 뜩 후추를 가져 왔다 말이요. 후추는 또 거 넣으면 넣는 게 아니라  말이요. 그 조미료는 또 거 넣으면 안돼. 그 육미에 넣어야 돼지. 그래 이제 그  제피 가루를 넣어서 타니까 맛이 있어. 그것보라. 그러나 제피 가루 그게 맛이  없을 때에 조미료는 넣으면 맛이 있어. 있지마는 맛이 있지마는 그 제피 가루  그것을 그것만 먹으면 죽습니다.

우리 시골에 있을 때에 고기잡으로 가 가지고 제피 가루 제피 그걸 좀 까 가지고  불에다 꾸 가지고 갈아 가지고 몽둥이에다 넣어 가지고 저 큰 바위 밑에 둑  넣으면 좀 있으면 고기가 떠 나온다 그말이오. 독해서 이런데 그래도 맛을 내는데  좋거든,  자 성경 말씀을 읽어 성경 말씀을 사모해 성경 말씀을 깨닫아 그것만 자꾸  하면은 그 영양제가 좋기는 좋지마는 조미료가 없으면 느끼하다, 느끼하니까  조미료로 이 성자의 전기도 더러 읽고 또 다른 사람의 하는 행동 그것도 보고,  이런데도 뭐요 그게 조미료 제피 가루 한가지라 그게 뭐 아무리 성자의 전기를  읽어도 그것이 내게 영양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양되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 사람의 그 전기를 보고 '아이구 이 사람 이렇게  사는 것 보니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하는 그 마음이 생겨나니 그 제피 가루  모양으로 조미료지 우리를 기루는 것은 하나님과 말씀과 성신의 감화 감동  이것만이 우리를 기룹니다.

예 기루는데 이거는 날 기루는 것인데 이것을 맛을 맛을 자꾸 먹으니까 니끼해질  때에는 다른 성자의 전기 이런 성자의 전기 이런 성자의 뭐 산다씽 전기니, 뭐 그  데레사전이니, 오빌린전이니, 후란시스전이니 뭐 이런 전기를 이렇게 또 한권  읽으면은 '하 이 사람들 이래 살았구나! 나도 이래 살아야 되겠다.' 그러고 나서  성경을 읽으면 맛이 또 썩 나온다 그말이오.

이래서 우리가 자라는 것은 성경 말씀과 성신의 감화 감동과 다른 사람들의 옳은  현실 그 장점 그건 조미료가 그것보고 그 사람 따라갔다가는 죽습니다. 아이구야  이 제피 가루를 넣으니까 이것 참 맛이 있으니까 제피 가루 이것 참 좋은기라  제피가루 만일 이만치만 먹으면은 그만 기절해서 그만 잘못하면 죽을런지  모릅니다.

이것 모양으로 어떤 사람은 이게 조미료인 줄 모르고 몸에 유익한 줄 알고 자꾸  성경보는 것보다도, 소위 그 신앙 잡지 신앙 전기 이것만 읽어서 그것 읽으면 될  줄 알고 이거는 제피 가루만 많이 먹으면 디져, 디지는 것처럼 그것만 많이  읽으면 디져.

이런데 어떤 사람은 성경은 보지 안하고 그것만 보니까 맛이 있거든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가 알도록 하기 위해서 제피 가루로 말했는데 우리가  자랄 젖은 신구약 성경 말씀 또 성신의 감화 이것만이 젖입니다. 젖인데 조미료는  어떤 사람이 좋은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그것도 실은 조미료요 알겠습니까? 설교  노트를 가지고 이와 같이 읽으니까. 보자! 이렇게 설교를 했으니까 이 말씀이  성경과 어떤가 보자.

마지막에는 성경하고 대조해 보니까 아이 성경이로구나! 성경이 이렇구나  마지막에는 성경에 돌아가 가지고 성경 하나 가지고 어쩌든지 그 진리 성경에 요  속에 들어가야 되겠구나! 요거 다 성경 안에 들었구나! 이래서 성경 하나 고 자세로 보면은 성경 안에 다 들어 있도록 고것을 성경에서  찾아내면 그 영양제입니다. 왜 자기가 큰 환난을 닥쳤어. 목사님이 설교를 할때에  이렇게 하시던데 그래 해야지 그거는 생각해도 마귀라는 놈이 딱 주기를 목사가  하나님이가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했다 고만 힘없습니다. 생명 내 대서 지킬  용의가 없어져 버려 이러나 말씀을 생각할 때에 이것은 성경 말씀이다 성경에  이래되 있어. 성경 말씀이다. 성경이야 성경이야 이러면 그 말씀을 인하여서  자기가 죽기까지 보수하고 생명을 받혀도 아깝지 않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어쩌든지 들은 설교는 성경이라 하는 것으 파고 들어가 가지고  성경과 일치를 시켜서 이 말씀이 성경이로구나 요게 가야 됩니다. 요 가서 성경이  딱 근거해야 자기에게 참 영양제가 됩니다. 자기를 키우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의 감화 감동이 우리를 자라게 하는 젖이요  젖 어린아이의 젖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한 것처럼 우리는 성경 말씀고 성신의  감화를 이렇게 사모하고 자꾸 이래야 우리가 자라가요. 이래야 우리가 자라가요.

이래서 자기를 기루고 또 가다가는 다른 사람의 옳은 행위 그것을 보면은 그것도  조미료가 되서 내게 도움이 되집니다. 맛있게 먹으니가 이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는 것보다 장점을 보는 것이 좋고 또 단점도 안 보면 안 됩니다.

단점을 볼때는 어떻게 봐야 됩니까?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볼때는 어떻게 보라고  성경에 가르쳤지요. 남의 눈에 티를 보거든 그 티로 인해서 자기 눈에 들보를  찾아야 돼요. 남의 단점을 보는 데는 요래만 봐야되지 달리보면 안 됩니다.

남의 단점을 볼때에는 저 사람에게 저런 단점이 있구나! 흠점이 있구나! 고  흠점을 볼 때에는 고 흠점을 가지고 헐뜯고 흠점을 가지고 그 사람을 업신  여길게 아니라. 흠점을 남의 흠점을 보거든 남의 단점을 보거든 그 단점으로  인해서 내게는 저런 단점이 없나 이래 찾아서, 찾아 보니까 그 사람에게 몇 십배  몇 백배 되는 단점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이걸 찾는 고 방식에만 써 먹어야 되지 거기에 안 써먹고 달리 써 먹으면 저는  죽습니다. 남의 장점으 보면 그거는 좋아요. 장점 저 사람 저런 장점이 저래 저  사람은 저래 사는구나! 나는 저래 못 살았구나! 남의 장점만 보면은 자기에게  누워서 일해도 유익이 있지마는 나의 단점 보는것은 조심 안하면 잘못하면 손해  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는 자기를 길러라 자기를 기루는 데는 이 새벽기도 나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벽기도에 중요한 말씀인데 이 말씀을 가지고 이 말씀에서 주여  옳습니다. 요래 딱 검어지면 자기가 부활된 것이 힘을 얻는데 말이오. 부활된  것이 자라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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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 자기를 부인하는 자의 수입/ 마가복음 1장 14절-15절/ 791231월새 선지자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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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7 자기를 연구하라/ 마태복음 18장 7절-9절/ 851028월새 선지자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