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09:48
자기 부인
1989. 1. 13. 금새
본문: 눅 9:24-27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24절은 자기 목숨이냐 주님이냐 둘 중에 어느 것이냐 하는 것을 그 비중을 가질 때에 사람들은 자기 목숨에 중량을 더 크게 두기 쉽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생명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더 크게 중량 높게 그렇게 생각을 하고 행동하면 그 생명은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사람들이 뭐 재산이니 지위니 권세니 행락이니 이런 것을 다 귀중하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돈이든지 권세든지 일류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이든지 다 좋지마는 자기 생명과 둘이 비교될 때에는 그런 것들 다 집어던지고 자기 생명을 제일 귀중히 여겨서 생명으로 자기는 집중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보다 생명이 제일 귀중한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여게는 이제 사람이 제일 귀중한 생명이냐 주님이냐 둘 중에 어느 것이냐? 네가 생명을 주님보다 더 중하게 여겼으면 네 생명은, 네 생명 네가 간수하지 주님께서, 전지 전능의 주권의 주님께서 네 생명을 책임 질 수 없다.
그러나 네가 생명 네 생명, 제일 귀한 네 생명보다 주님을 더 귀중히 알고 믿고 행동하면 주님은 네 생명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책임지시면 정한 생명이 생명의 때가 됐으면 그것은 가야 되는 것이지 정한 생명의 때가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해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나 다니엘이나 그런 사람들은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더 귀중히 여겨서 생명이 어찌 될지라도 바로 주님의 계명 주님의 명령은 어길 수 없다 해서 높이, 생명보다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이것이 주님을 바로 믿는 바라보는 정신이요 성질이요 그 방편이요 행동이기 때문에 주님은 그에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사람들이 믿는 대로 그에게 역사하십니다. 안 믿는 자에게는 당신이 역사할 수 없고 주권자로 믿는 자에게는 주권자로 그에게 역사할 수 있고 저의 생명으로 믿는 자에게는 생명으로 역사할 수 있고 돈 천 원만치도 안 믿는 자에게는 천 원만도 못한 역사나 할까 그보다 큰 역사는 할 수가 없고, '믿는 대로 되리라' 믿는 대로 하나님은 대우하고 또 믿는 대로 또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인 것을 말씀합니다.
또 25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는 말씀은 사람들이 세상 것 얻기 위해서 자기를 빼앗기는데 자기를 도적 맞게 되는데 자기를 잊어버리게 되는데, 세상에 있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 자기를 잊어버리게 되는데, 잊어버린다 말은 도적맞았다 말이요 또 아주 완전히 망각해 버렸다는 말이요 실지로 잃는 것도 잃고 여게서는 지각에서 망각해 버릴 것을 가리켜서 잊어 버렸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여게 자기는 '천하를 얻고도' 온 천하를 자기가 소유했다 할지라도 자기를 잊어버렸으면 그 사람은 손해 봤다. 그러면 자기는 천하보다 귀하다 그말이오. 또 사람들이 세상 것을 탐해서 그것 얻기 위해서 그만 자기를 망각해 버린다. 자기는 온 천하보다 가치가 크다.
그러면 자기가 어떤 자기인가?. 이 자기는 중생된 영생하는 자기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자기요,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의 모든 것 사망이나 생명이나 모든 것들을 다 차지한 주인공된 자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피와 성령과 진리와 영생으로 중생된 참 자기,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 천상 천하 모든 피조물의 대리 주인이 된 자기, 영생한 자기, 전지 전능의 실력을 가진 자기, 완전한 자기 이 자기는 우주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우주보다 큽니다.
이래서, 한 생명이,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이렇게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고 사람 구원에 힘을 씁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그 생명은 고기덩어리의 생명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고기 덩어리의 생명 그까짓 거야 6·25때도 그렇게 많이 죽었고 지금도 뭐 한 사람의 나쁜 생각으로 인해서, 요새도 OO에 사람 죽은 것에 대해서 시비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누군간가 하나 잘못한 고 못된 죄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 그 죄악의 책임자는 누군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들은 모르고 있으나 하나님은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네가 들어서 이 모든 일을 일으켰고 사람들이 죽게 됐다 하는 걸 알고 있지마는 사람들은 그거 지금 모르기 때문에 이리 저리 서로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그거요. 또 땅 위에 사람들도 성령의 사람들은 안다 그거요.
그까짓 그렇게 가치 없는 생명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을 말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됐으면 그 사람은 참 생명을 가졌어.
한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연결된 그거는 천하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주인이 귀하지 그의 무슨 가진 소유가 귀합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봉독한 이유는 사람이 자기를 바로 알아야 한다.
자기와 자기 아닌 자기를 바로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뭐인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에 대해서 무식하고 혼돈되기 때문에 마귀 이놈은 일생 동안 우리를 이용하고 우리는 그놈에게 완전히 이렇게 존귀한 구원을 다 빼앗기게 됩니다.
이래서 자기를 똑똑히 알아야 되는데 자기는 어떤 게 자기인가? 진리로 살아난 게 자기요. 그러기 때문에 진리로 사는 자기요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그 진리 가지고 삽니다. 진리로 사는 자기, 영감으로 사는 자기, 죄 없이 사는 자기, 의롭게 사는 자기, 하나님과 연결돼서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자기, 하나님을 소망하고 향하는 자기, 이것이 중생된 자기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것이 된 자기요, 하나님의 종인 자기요,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요, 하나님의 지체인 자기요, 하나님의 몸인 자기요, 하나님의 제사장인 선지자인 왕인 자기입니다.
이렇게 존귀한 자요. 이렇게 사는 자가 자기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가 자기요.
이렇게 아는 자가 자기가 아니라 이렇게 알고 이렇게 사는 자가 자기입니다. 이 자기가 이렇게 존귀한 자요. 이것이 자기요. 만일 자기가 이 자로 살지 아니할 때는 참 자기가 살지 않고 자기 아닌 원수가 자기를 지금, 마구 독주를 먹여 놓으면 독주에 취해 놓으면 정신 없습니다. 정신이 없어.
어떤 내가 책에 보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가 새카만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만 술이 취해 가지고 술먹다가 다른 사람이 옷을 좋은 옷을 벗겨 버리고 횐옷을 입혀 놨어. 흰옷을 입혀 놓으니까 이 사람은 술먹기 전에는 기억이 있지만 술먹고 난 다음에 기억이 없어. 이라니까 '어느 게 네고? 네가 어느 게 네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가리키면서. 이게 내라고. 검은 옷 입은 게 저이니까 이게 내라고.
'너는 이게 네가 아니다. 이 지금 허여이 횐 이게 네다.' 이러니까 아, 나는 아니라고 나는 내가 새카만 양복 입었는데 새카만 양복 입은 이게 내라고 이렇게.
그거 잊어 버렸어.
이거 모양으로 이제 그만 세상주의 이 세상 욕심에 도취가 돼 놓으니까 중생된 자기 다 잊어버리고 안 믿는 그 사람, 악,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것이 자기인 줄 알고 중생된 자기는 자기인 줄을 몰라.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면 자기 중심으로,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저만 생각해서 나 나 자기에게 유익되게 하는 그것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 그게 참 자기인 줄 알고 그게 자기인 줄 알아서. 자기에게 손해 안 가도록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이러니까 그런 자를 만일 책망을 하면 막 달려듭니다. 그자에게 손해가고 중생된 새사람에게 유익되게 하면 마구 달려드요.
'서울대학 가지 말고 여기 가까운 데 여기도 좋은 대학도 있고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여게서 공부하며 하나님의 도를 공부해라' 하면 '헤, 우리 자식이 지금 서울대학 가서 입학할 수 있는데 이런 실력인데 서울대학 가라고 이렇게 말을 권면하지 않고 여게 지방 대학 가라고 이렇게 권면한다.' 저를 죽이는 줄 알고 저를 해하는 줄 알고 눈이 뿔룩뿔룩 해 가지고 뛰하이 해 가지고 싫어한다 말이오. 그게 뭐이요? 그러면 그렇게 하라 하는 것이 그 사람을 해하는 것입니까 유익되게 하는 것입니까? '서울대학에 가지 말고 지방대학에 가면서 이 도를 받아서 네가 도로 하나님으로 부자 되고 믿음으로 부자 되라' 하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유익된 지도요 해된 지도요? 아버지 어머니는 서울대학 못 가도록 한다고 '목사님이 권사님이 뭐 이거 서울대학 가도록 이렇게 하지 않고 어쨌든지 공부를 많이 하라고 이래야 되지 서부교회 목사는 이러다 보면 서부교회는 인제 전부 무식자들뿐이지 지성인들은 없을 것이다' 이러며 지금 예언을 하고 있어.
그러면서 반발합니다. 반발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참 자기입니까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자기의 원수인 자기 거짓 자기입니까 그게 참 자기입니까? 자, 그것이 참 자기라고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자기를 죽인 원수요 자기 아니라고 아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아이고 손은 잘 든다, 손은 잘 들어. 맞았어. 맞기는 맞았는데 그런 줄 알고 살아야 됩니다. 천하를 얻고라도 자기 잊어버리면 소용없어.
왜 사람이 참 자기 잊어버리는가? 이 세상 것 이놈 탐하고 이놈 좋은 줄, 아까 술먹고 취한 거 모양으로 세상주의 인본주의 여게 도취가 돼 가지고 그만 그것만 있으면 될 줄 알아. 그것이 자기 놀음이요 원수에게 이용당해서 지금 원수 수입 보이요? 원수 수입 보이는 거라, 마귀 수입 보이고. 자기 생활은 하나도 아니라.
자기 유익은 하나도 아니야.
그런고로 그것을 우리가 깨닫고 언제든지 내가 참 나, 참 나, 참 나로 살면 그 사는 생활은 전부 영생이요 자기 생활 하면 영생이요 자기 생활 아닌, 원수란 놈이 꼬우니까 술취한 것 모양으로 자기 아닌 원수가 꾀우니까 원수의 시키는 대로 하는 그것이 자기를 유익되게 하는 것인 줄 알고 자기를 좋게 하는 줄 알고, 그러니까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걸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만이 자기에게는 생명입니다. 이러니까 십자가 원수의 길을 걸어. 자기 죽이는 길만 자꾸 걷는다.
자기 죽이다니? 옛사람을 죽이요 새사람을 죽이요? 자기 죽이는 생활만 모든,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참 자기를 죽이고 원수만 살을 띵띵 찌워 가지고, 이 서부교회 오면 내가 사장인데 내가 그래도 지금 뭐 교수인데 나를 지금 높여 주지 않고 나를, '이 세상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라.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에 소망 두라 이러니까 부자 안 알아 주니 부자 안 알아 주는 그 교회는 갈 필요가 없다. 안 갑니다. '아이구 사장님 오셨습니까?' 연보하면 '사장님이 이렇게 연보를 많이 했습니다.' 추켜 올려서 높이는 데 그리 갑니다.
그러면 그래 돌아다니는 사람은 옛사람 살찌우는 것이오 새사람 살찌우는 것이오? 옛사람 살찌우는 것이라고 아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왜 가운데 저 뒤에는 안 들어? 안 들면 뭐 수 있는 줄 알아? 지옥 갈 자만 살을 찌우는 거라.
이래서 야고보서 5장에 '도살의 날에 살찌운다' 도살의 날이라 말은 푸주간, 소 잡는 데 푸주간 아니오? '도살의 날에 네 마음을 살찌운다. 이제 심판에서 잡아 죽일 심판에서 멸망받을 것만 살찌운다. 심판에 멸망 받을 것만 살찌운다. 자꾸 심판에서 멸망으로 커 가는 사람 있어. 하루 살고 나면 멸망이 더 크고 하루 살고 나면 멸망이 더 크고 그런 사람이 있고 영생으로 커 가는 사람 있어. 이러기 때문에 자기와 자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자는 예수를 바로 믿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자들 가운데에 바로 믿는 자가 많지를 못해.
이런데 우리 교역자회에도 이러면 지금 두 갈래라. 하나는 세상 좋다고 인간 좋도록 에서 너무 총공회 예수 믿는 거는 너무 딱딱해서 나사를 너무 되게 조우면 나사가 탁 터져 버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거 엔간히 조아야 되지 자꾸 백 목사는 너무 조아 대니까 나중에 터져 버려, 터져서 나갔다. 터져 나간 게 잘 나갔지 못 나간 게 아니야. 그 비유가 잘못 됐어.
하나님을 향한 나사는 암만 조아도 지금 다 조우지를 못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 했는데 남은 거 없이 다하라 했는데 아무리 그 백 목사가 참말로 남은 거 없도록 되게 조아댔을진대야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뭐 상을 얼마나 줄 터인데 내딴에는 실컷 조운다고 해도 아직까지 헐렁헐렁헐렁해 가지고 조아지지를 못 하고 있어. 정신차려 믿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실천 체험, 경험의 지식을 가지고 가르치도록 할 것, 또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기도할 것, 이러고 요걸 기록하라 했는데 잘 기록했습니다. 단체로 기도하러 가신 구역, 분구 포함해서. OOO권사님 구역 양산동 82명이 갔습니다.
연경회에 참석한 학생 수가 193명이고, 이 193명이 삼층에 앉아서 똑 오글오글오글하이 똑 병아리 갓 까놓은 거 모양으로 그렇게 오글오글해 가지고 그것들이 뭐 성경 공부한다고 야단이야. 외우고 뭐 이래 공부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셔.
이 말이요. 모세 지팡이가 얼마나 권위 있었든지 그 법궤 속에 놔 가지고 싹이 났어. 똥 같은 게, 똥 같은 거라도. 하나님의 심부름만 하면 존귀해져.
OOO선생은 이거 연경실에 실장이 돼 가지고 이거 방학기에 학생들 성경 공부하도록 하는 걸 주장을 해 가지고 이 일을 열심히 해. 이러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기뻐하시는지. 하나님이 기뻐하셔. 그만 참 똥덩이가 금덩이가 됐어. 뭐 일반인이, 일반인인데 존귀한 사람이 돼 버렸어.
그래서 하나님의 일만 하면 사람은 존귀해집니다. 하나님 일하면 다 권능 있어.
왜? 하나님의 일을 하자니까 아무리 등신이지만 하나님이 그 일을 성공을 시켜야 될 터이기 때문에 성공한다 말이오. 하나님의 일 하는 사람은 다 성공해요.
그러니까 잘난 사람이 돼.
그런데 하나 주의할 것은 '내가 잘나서 내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썼으니 감사합니다.' 겸손 가지면 그 뒤에 하나님이 쓰시고 '허, 나 아니면 일 못 해. 내가 위대하다' 이러면 '이 자식아 치워. 너 물러가. 너 필요 없어' 다 그래. 나 오늘까지 그와 같이 하고 있어. 서부교회 누구든지 일을 시켜서 제가 뭐 교만해지고 그러면 그놈 내버려두면 그 사람 망하거든. 교만하면 망한다 말이오.
이럴 때는 '아야 그만 될라' 내버려될 버려. 그래 누구든지 시키면 잘해.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뻘뻘 떨어.
이러니까 이 권사님들도 말이요 다른 데 같으면 내가 권사가 되고 이러면 지금 배짱이 나 가지고 '허, 나 아니면 교회 안 된다' 이러지마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어. '하나님이 이제까지 써 주시니까 감사합니다.' 이거 만일 하나님이 나를 버리면 안 되니까 뻘뻘 떨어서 백 목사는, 백 목사는 하나님 아니지마는 하나님 심부름꾼이니까 목사님이 나를 버릴런가 싶어서 말하면 버버버벌벌벌벌 떨어.
그게 예수를 바로 믿은 거라. 진리를 바로 배운 거라.
그러면 백 목사도? 백 목사도 그래. 여러분들한테는 큰소리 뻥뻥 하는 것 같지마는 속으로 하나님 앞에 떨어, 지금. 하나님이 만일 나를 들어서 옮겨 버리면 헛일인데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러고 항상 잘 못된 거나 발견하지 제가 잘나서 잘한 줄로 그래 배짱내고 그렇지 않아.
너도 그러나? OOO동생 너도 그러나? 소망하고, 겸손하나? 그래 뭐 편집실이 모든 일이, 주의 일 하는 데는 그래야 하나님이 자꾸 쓰시고 존귀해지지 잘난 척 그래 해 버리면 그만 헛일이라. 이 도리를 깨달으면 다 예수 믿는 사람이 바로 되고 바로 되면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왜 요걸 기록해라 했느냐 하면 단체로 가는 구역을 기록해서 그러면 견물생심이라, 다른 사람이 가니까 아이구 나도 가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가는 사람 기도하러 가는 사람 많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오.
이 보고 한다고, 교역자들 보고한다고 '하, 그거야 나오면 나오는 거지 보고를 낱낱이 해?' 이래 가지고 그 반대하는 인간들은 지금 내나 모이니까 내가 그 노릇 그 노릇 해. 그거는 반대 안 하지만 또 딴 거 옳은 거 반대 해. 항상 옳은 것의 반대편에 선 사람은 서. 그거 누가 보고하는 거 누가 백 목사가 보고 받는 게 아니고 그러므로서 자기가 보고함으로 자기를 새롭게 하고 자기가 반성하고 자각해 가지고 다문 얼마라도 주의 일에 좀 열중할까 해서 그래 하는 것이지 누가 그거 왕이 돼 가지고 보고 받는 것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보고해 가지고 우리 스스로를 정리하고 정돈해서 하나님의 심판 받을 그것이 적고 없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알겠어요? 이러니까 이 눈이 있고 귀가 있으면 '그래 보고하는 것을 또 반대하더니마는 내나 요거구나. 처음 시작할 때 요거 반대한 사람이 요거 반대 요거 반대 그 사람은 내나 일관으로 그 사람이로구나' 또 '그때도 옳은 거 바른 편에 붙어 가지고 하는 것은 내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로구나' 환하게 볼 수 있건마는 하나님이 눈을 가리워 놓으니까 못 봐. 보는 사람은 본다 그거요.
그런고로 옛사람이 일어서면 이것을 거석하면 저거 또 옛사람 저거 날뛴다, 저거 또 옛사람이 지금 저 말하고 있다. 그 말하고 있으면 그 교역자회도 엣사람이 말하고 새사람이 말하는 거 두 사람이 말하는데 저거 옛사람이다 그걸 보면 옛사람은 죽여야 돼요 살아야 돼요? 예? 옛사람은 죽여야 돼요 살려야 돼요? 옛사람을 살려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죽어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다 죽여야 된다는데 교역자들은 옛사람 안 죽여.
그래 너무 모두, 왜? 보면 전부 옛사람이지. 이거 하도 이래 놓으니까 교역자 앉힐 때도 명패를 붙입니다. 너는 여기 앉거라 여기 앉거라, 왜? 옛사람끼리 주 모아 놓으면 옛사람 세력이 세어 가지고 막 죽기 때문에 이래 자리를 거석해 놓으면 그거 저거가 앉고 싶은 데 못 앉아. 요 사람은 요 사람하고 앉으면 둘이 죽이기 때문에 요거는, 요게 앉혀야 되겠다 조게 앉혀야 되겠다 이렇게까지 이거는 뭐 갓난 어린 아이 한 가지라. 이렇게 관리를 해도 이게 살아나지 않고 망령을 부리니 참 기찬다 그거요.
내가 여기 예배보러 오는 데도 서로 저희끼리 좋은 대로 그래 앉아. 그래서 내가 말합니다. '너는 그걸 좀 그거 어째 그래 꼭 그래 앉노?' 꼭 저희 동무끼리 간다 말이오. 저희 동무끼리. 둘이 한데 어울러 앉아. 집회도 가면 꼭 저희 동무끼리 어울려. 그거야 어울릴 수밖에 없지. 개는 개하고 어울리지 개가 호랑이하고 어울리는가? 닭은 닭하고 어울리고. 제 동무 제 찾는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거 말하는데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면 우리는 매사에 감사할 거는 원망합니다. 옛사람 죽이면 좋아요 안 좋아요? 좋지. 이러니까 자기의 잘못된 것을 책망하는 것은 옛사람을 죽이는 것이오? 참 자기를 죽이는 것이오 옛사람을 죽이는 것이오? 잘못된 것 책망하는 것은? 옛사람 죽이는 것이요 새사람 살찌우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감사하고 기뻐해야 될 터인데 그렇지 않아. 정반대라.
그러고 새벽기도 나오도록 전화를 많이 해요. 전화를 많이 해서 자꾸 새벽기도 나와 가지고, 나와서 들어야 되지 저희가 안 나오면 이 말씀을 못 들어. 박사라도 몰라. 대학 교수라도 모르고. 어림이나 있는가? 이거는 땅의 말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