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효력을 누리게 되는 순서


선지자선교회 1988년 2월 2일 화새

 

본문 : 시편 136:1-26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기에 대해서 제일 바로 깨닫기가 어려운 것은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함에 따라서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에게  있게 되는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함이 원인이 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 결과로 있게 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우리가 감사를 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을 모르고 감사를 안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자히 여기심은 변치 않고 그대로 인자히 여기시고 인자를  베풀고 계신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인자는 우리의 감사의 결과로 하시는 일이  아니고 우리 감사 있기 전에, 또 우리 감사야 어쩌든지, 우리 감사함에 조금도  거기에 피동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의 그 본질과 본성과 능력으로  우리에게 인자를 베푸신다 또 이렇게 깨닫는 깨달음을 가질 수도 있고,  마지막은, 하나님의 인자는 우리 택한 자들이 감사하든지 안 하든지 거기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변치 않는 그런 인자를 벌써 우리가 나기 전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에, 또 우리가 나기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  영광스러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섭리하시고 또 창조하시고  역사하신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이 베푸시는 인자를 우리들이 하나님이 발표해  놓으신 변치 않는, 거짓말하지 아니하시는 할 수 없는 이 하나님께서 선포해  놓으신 이 약속의 말씀을 인해서, 이 약속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자로 이렇게 모든 창조와 역사와 섭리를 할 뿐만 아니라  당신 자체가 우리를 인자히 여기시는 그 자체로 계시는 이 사실을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의지해서 이 말씀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인해서,  하나님의 이 인자를 자기가 깨닫고 하나님의 인자를 깨닫고 하나님이 모든  면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모든 그 사망이 되어 있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그 멸망이 되어 있는 그것과 또 우리가 연약하고 모든 면에 무지 무능한  것과 또 우리가 살아날 힘도 없고 성공할 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사망을 자취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의 그 가련한 것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거기에서 구원해가지고 한이 없는, 끝없는 영광스러운 그  영광과 존귀에 이르러서 모든 피조물이 다 보고 감사하고 칭찬하고 기대고  의지하고 바라봄의 대상이 되는 이런 영광스러운 존재와 모든 사상과 행동이  되게까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까지 이렇게 당신이 홀로의 주권으로  이루실 것을 하나님이 당신이 말씀으로 선포해 놓은 이 선포 해 놓은 말씀을  인해서 자기가 이를 깨닫고 알고 깨닫고,  알고 깨닫고 나니까 뭐이 오는고 하니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난 뒤에 '이것이  공연히 사람들이 해놓은 이 책을 보고 이렇게 사람들이 하는 것 아닌가?'  세상에는 그렇게 거짓말로 꼬우는 것도 많고 위로하는 것도 많기 때문에  세상에는 복받는 길도 많고 복 주는 자도 많고 복 주는 주도 많고 너무 많이  있으니까 그런 거와 같은 것 아닌가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보고 하나의 이것도 꾀우는 기만의 하나의 논리요  주장이다 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항해 버릴 것이고,  이 사실을 자기가 믿을 때에 이 사실을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다' 네.

가지로, 하나님 자체와 그의 지능 그의 속성 그 전부가 다 택함을 입은 우리를  인자히 여기시고 모든 것을 인자로 베푸신다는 이 말씀을 선포해 놓은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을 하고,  또 하나님이 지으신, 우리가 아는 것 모르는 것,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데. 이 모든 지으신 것 이, 지으실 때에 지은 목적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인자히 여기셔서 인자를 베푸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여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나에게 인자를 베푸시기 위해서 인자의 것들로 그렇게 존재케  하셨다고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이 모든 존재들이 천태만상의 그 행동하고 있는 그 모든 복잡한  틈바귀 속에서 그 모든 충돌 속에서 우리들을 그 층돌이 없어도 안 되고 그  충돌을 다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우리에게 인자 베푸는 그 충돌이 되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충돌을, 속에 끼일 때에는 나 죽는다 하고서 낙망  불평했지마는 그 뒤에 지나고 보면은 그것이 나를 그 충돌 그 마찰 속에 내가  볶이지 안하고 내가 찍히지 안하면, 내가 내 구원을 이룰 수 없었던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닫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인자 베푸시는 이 역사라  하는 것을 알고,  우리에게 필요한 기업이나 의식주나 모든 것도 다 조절하셔서 많아 폐단도 없고  적어 폐단도 없고, 없어 폐단도 없고 있어 폐단도 없이 모든 것을 적절하게  이렇게 하셔 가지고 자비를 베푸시는 이 사실을 자기가 알고,  거짓말로 돌릴 때에 그 사람에게는 모든 빛과 희망이 사라지고, 그는 자꾸  하나님의 이 사랑의 인자의 은총을 자꾸 거부하니까, 거부하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강제할 수가 없고, 인간에게는 제한된 자유성을 줬는데,   이러니까, 하나님은 주시는 것을 우리가 받지 안하니까 애터지고 받도록 할라고  수많은 성도들과 모든 섭리로 권면하시고 또 마귀는 이거 거짓말이다 믿지 말고.

받지 말아라 이렇게 유혹을 하고 하는 이 사이에 끼어 있는 게 우리 성도들인데,  이 사실을 믿고, 이 사실을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는다. 가감도 없다. 한  획도 여기에 말만 있고 안 되는 거는 없다. 한 획도 이대로 안되는 것은 없다.'  이렇게 자꾸, 당신이 보증하신 이 사실을 믿을 때에, 믿을 때에 믿느냐 안  믿느냐 믿음의 표적이 뭐이냐? 믿을 때에 감사가 그 표적으로 나옵니다. 믿으면  반드시 믿은 것만치 감사가 자기 속에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감사하는 것이 그것이 진정 감사인지 수단쟁이가 이 세상에서 외식  버릇을 많이, 배웠기 때문에 외식하는 것으로 속으로는 멸시하면서 겉으로는  존대하는 것처럼,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사랑하는 것처럼, 겉으로는  잘된 것보고 좋아하면서 속으로는 배가 아픈 것처럼 이런 버릇을 많이 해 놓은  이 악습이 가득 차 있는 악습을 가지고서 감사하는지 참 진정 이 사실을  믿으므로 감사하게 됐는지 그 감사가 참인지 거짓인지 하는 그 표적으로 또  우리에게 기쁨이 생겨지고,  그러면, 그로써 참 기쁨이 생겨지면, 기쁨 생기는 그것도 외식이 있어서 속에는  기쁘지 안하면서 겉으머리만 기쁜 척 하는, 암만 해 봤자 그거는 속이지를  못합니다.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웃고 기뻐하니까 그렇게 보지마는 실상은 그 입술과 말과  그 모든 행동은 기뻐하는 행동을 해도 그에게 모든 피부라든지 눈초리라든지  그의 모든 나타내고 있는 것들이 기쁜지, 기뻐해도 속에 슬픔이 있는지,  기뻐해도 속에 두려움이 있는지, 원망이 있는지, 불평이 있는지, 와서 간교하게  해도 속에 이간이 들어 있는지, 시기가 들어 있는지, 원망이 들어 있는지,  낙망이 들어 있는지 압니다. 이제 참 기쁨이 그에게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알고 믿고 믿으므로 감사하게 되고, 참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에 감사함이  넘치고 감사를 바로 하고 보니 뭐 만고에 근심 걱정 다 물러가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고, 또 기쁨이 충만하게 되고 보니 모든 면에 희망이요, 욕망이요,  용기요, 모든 것에 다 건설의 노력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벌써 알고 부인할 때에 자기에게는 고민과 허무가 오고 이  사실도 알고 부인해 버리니까 희망이 없소. 아무것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할  소망이 하나도 없소. 그러면 그 사람은 다 허무, 낙망, 말은 안 해도 그저 비관  속에서 삽니다.

 이러나 알고, 아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자기에게는 감사뿐이고, 하나님이신 그  자체가 나에게 인자하신 하나님인 것을 자기가 알 때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자를 베푸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해서 존재하신  것을 자기가 알고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존재들이 마찰, 충돌,  복잡한 이 모든 데에서 나를 인자히 여겨서 그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 나에게  인자를 베푸는 역사가 되어지게 돼 있는 이 사실을 알고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소유적으로나 내게 내 신체에나 모든 데 필요적으로나 그  모든 것을 양도, 종류도 다 빠짐없이 적절하게 해서 우리에게 부요하게 충만케  해 주시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그 사람에게 기쁨 외에 딴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감사가 충만하게 되고, 이렇게 해 주셨으니 참 감사 외에는 딴게 없어. 근심  걱정이나 염려나 하는 것이 다 죄송스럽고 그분에게 대해서 너무 거역했기  때문에, 감사가 필연적으로 충만하게 되고 감사하기까지 깨닫고 보니까 그  기쁨이 넘치게 되고 기쁨이 참 진실한 기쁨이 넘치고 보니까 모든 것으로 더불어  다 화평하지 원망, 불평, 시비할 이유가 없어.

 모든 전부가 다 이렇게 행복돼 있는데, 평화가 이루어지고 거기에는 희망과  욕망이 넘치고 거기에는 용기와 근검의 그 노력이 움트고 불붙고,  이렇게 돼지면 하나님이 이렇게 베풀어 놓으신 영원한 불변의 인자를 제 자신이  이렇게 변화됨을 따라서 변화된 것만치 그 인자의 효력을 제가 얻고 누리고 그  혜택을 자기가 힘입어서 살게 된다 하는 이렇게 여기에 대해서 깨달음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 깨달음이 있겠고 둘째 깨달음이 있겠고 셋째 깨달음이  있겠는데, 첫째 깨달음도 갈급하고, 인간이 뭐 감사하지마는 감사 그것이 얼마나  견고하며 얼마나 그것이 끊치지 안하고 계속되는가? 그 감사한다 할지라도  감사의 자체를 볼 때에 너무 허무하고 빈약하니 그것도 우리가 평강을 누리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감사할 때에 하나님의 그 모든 인자하심이 자기에게 오게 된다. 이미  있지마는 자기에게 오게 된다. 감사할 때에 오게 된다. 이래도 또 이것도 또  문제입니다. 우리 감사가 그것이 완전치를 못하요. 이런데, 첫째 둘째가 다  그렇고, 셋째는 감사하라, 감사한 것만치 너는 바로 그것이 직접 하나님의  인자를, 네 몫이 되어 있는 그 인자를 네것으로 네가 안 것이요 깨달은 것이요  네것이 되어서 그 효력을 네가 벌써 가진 것이요 누리는 것이라.

 그러면, 백에 하나만치 감사하면 그만치 너에게는 효력이 있고 또 크면 큰  것만치 효력이 있고, 인자도 변치 않는데 네 감사의 그 여하와 그 양에 따라서  네가 그 인자를 네가 힘입고 그 인자의 효력을 네가 누릴 수 있다.

 그러면, 네가 감사가 펑생에 순간만 있었으면 순간 있을 그때는 네가 그 인자의  효력을 네가 누리게 된다. 바로 감사하는 그것이 네가 효력 누리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너에게는, 인자의 효력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인자의 효력을 네가  누리고 그 혜택을 네가 누리고 네가 유익을 보게 된다 하는 이것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대로 되리라' 믿는 대로 되리라 왜 네가 믿으니 물 위로  걸어왔고 또 믿음이 끊어지니 물에 빠지고 하느냐? '왜 네가 믿지 뭣 때문에  의심하느냐?' 그러면 믿으면 이루어지고 안 믿으면 안 이루어집니다.

 나사로를 '죽은 지 나흘인데 내음새가 나는데 어떻게 뭐 희망이 있습니까?'  '네가 믿으면 하나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안했느냐?' 믿으니 나사로가 살아났고  안 믿으니 할 수 없어서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믿으니 되고 안 믿으면 안 되는데 믿기는 뭘 믿는 겁니까? 그  사건을 믿습니까 자기가 '나는 믿으면 된다. 믿사옵나이다. 믿으면 된다.' 믿는  그 자기 마음을, 믿는 마음 그 믿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까, 뭘 믿는 것입니까?  뭘 믿는 것입니까?  그 사건이 될 것을 믿습니까 그 사건을 주님이 해 주실 주님을 믿는 것입니까?  주님이 약속을 선포해 놨으니 선포해 놓으신 약속대로 거짓말 안 하시는 주님이  약속을 선포해 놓으신 그대로 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주님이 해 주시는 그  주님이 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까 자기 믿는 믿음이라는 믿음의 힘으로 뭐이  되는 것으로 그렇게 믿는 것입니까? 뭘 믿습니까?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가, '나 지금 배고픕니다' '그러면 바로 저 집이  밥을 파는 밥집이니까, 밥 파는 집이니까 가자 내가 밥 사 줄께.' 할 때에  아버지가 밥 사 줄 것을 믿는 것, 그것이 믿는 겁니다.

 밥을 사 준다 해도 '아버지 뭐 이 거짓말하는 사람인데' 안 사 준다고, 아무리  사 줘도 안 사 준다고 밥을 줘도 '이거 밥이 아니라 지금 나 먹고 죽을 지금  뭣을 독약을 준다' 하고서 안 먹으면 그거 어쩔 수 없어. '야야 그런 게 아니다.

이게 밥이다. 이게 쌀로 한 밥이다. 먹으라.' 아무리 권면해도 안 먹으면 할 수  없어. 의심하고 안 먹으면 할 수 없어.

 내가 물 위로 걸어 오라 했으니까 걸어오게 할 것인데, 네가 '걸어 오라  하십시오' 이러기 때문에 걸어 오라 했으니까 내가 너를 걸어 오라 한 것은  걸어오게 할 내 말이요 내가 그거 책임질 줄 알고 네가 그라니까 떠벅떠벅  걸어왔는데,  '왜 믿지 않느냐? 왜 의심했느냐?' 의심한다는 것은 믿음의 반대입니다. 왜  믿다가 그만 믿음이 중단됐느냐? 누구를 믿다가 중단됐어. 여기 ○ 선생, 누구를  믿다가 중단됐어? 누구를 믿다가 중단됐어? 이봐 이렇게, 하나님이 안 열어  주시면 이렇게 어려워. 누구를 믿다가 중단됐지?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라  이렇게 하신 주님이 내가 푹 뛰어내리면은 물에 빠지지 안하고 당신이 당신에게  물 위로 걸어가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당신을 믿는 거요, 주님을 믿는 거요.

이런데 '믿음이 적은 자야' 주님을 믿다가 안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신구약 성경에 선포해 놓으신 이 모든 약속을 약속하신  당신이 이루어 주시는 당신을 믿는 것이요, 당신을 믿는 것입니다. 공연히  우리가 '믿사옵니다' 하는 믿음이라 하는 자체는 아무것도 없어.

 믿는 것은 뭐이냐? 당신이 해 줄 것을 믿으면 당신이 해 줄 수 있고 해 주실  것을 안 믿고 거부하면 사람이 안 받을라 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애터지지  강제하지를 못해. 강제는, 우리 구원은 강제가 아니오. 유기적인, 제한적인 이  자유를 허락했기 때문에 우리가 구하기 전에 다 있을 것도 아시지마는 우리  구함을 통해서 당신이 역사하신다 그 말이오.

 '믿는 대로 되리라' 그러면 당신의 계약을 믿을 때에 당신이 그와 같이 역사 할  수가 있고 안 믿으면 안 돼.

 '왜 나한테 부르짖느냐? 네가 구름 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홍해로 건너가면 될  것 아니냐?' 이라니까 들어가니까 갈라져서 건너갔지 '바다 가면 빠져 죽습니다.

물에 가 빠져 죽느니 애굽 사람한테 자복을 하면은 혹 살려 줄지 모르니까 홍해  바다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애굽 군인들에게 항복하는 게 낫다' 하고 안 들어가면  어쩔 수 없어. 들어가면 갈라져서 무사히 건너는데. 건넌다고 당신이 했는데,  책임지고 하는데.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것은 당신을 믿는 것이오.

 이 시편 136편에 이 네 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자를, 당신 자체가 우리를  인자히 여기는 그 전부요, 또 당신이 모든 창조한 것이 전부 우리에게 인자를  베푸시기 위해서 창조 목적이, 또 이 모든 복잡한 이 교류되는 이 모든 움직임을  우리에게 인자를 베풀기 위해서, 우리에게 인자하게 하시기 위해서, 인자의  효력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 모든 존재, 우리에게 많이 주고 적게 주고 있는  게 없어지고 없던 게 있어지고 하는 모든 우리 소유에나 우리의 필수의 모든  그것이, 왜 많다 적다, 있다 없다 변동되느냐? 그것이 네라는 자체에 가장  적절하고 유익하도록 하나님이 인자히 너에게 베푸시는 것이라. 인자히 나에게  행하는 것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내 자체가 아무것도 소유가 없어야 되지 소유  그거 있으면은 망하게 될 때에는 그 소유를 없애는 것이 인자라. 이 사람에게는  이 소유를 암만 줘도 많을수록 이 사람에게는 유익이 되겠다 할 때는 많이  주시는 것이 인자라.

 이래서, 주의 인자를 알고 믿을 때에 감사가 나오고 바로 믿을 때에 기쁨이  충만해지고, 알고 믿고 감사하고 기쁨이 충만할 때에는 모든 시비곡직이 없어.

모든 데 대해서 평화해. 물 속에 지금 헤엄치고 있는 자가 물 없는 염려할 게 뭐  있어야지? 평화하게 돼. 평화 속에 희망이 넘쳐. 소망이 넘쳐. 이러니까 모든  욕망에서 그의 뜨거운 행위가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기독자요. 여기에서 사는 것인데 전부 하나님의 이 계약을  부인하는 가운데서 멸망을 자취하고 고난을 취합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해야 됩니다. 우리가 안 해야 되는 그 지식을  억만의 일도 모릅니다. 억만의 일만 알아도 안 해야 됩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알고 보니 참 안 해야 되겠고 알고 보니 참 안 해야 되겠고 알고 보니 참 안  해야 되겠고, 하지 말라는 것은 뭐 알고 보니 안 해야 되고 얼마나 안 해야  되고, 하라는 것은 죽는 것같이 보이나 그것은 해야되고, 하고 보니 좋고 하고  보니 좋고 얼마든지 해야 되고, 이분을 믿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행복이나 성공은 당신이 우리에게 약속으로 선포해  놓으신 약속을 보는 데서 약속을 찾는 데에서 시작돼 가지고서 이 약속을 믿는  데에서 진행되고, 믿는 데에서 감사로 진행되고, 감사에서 기쁨으로 진행되고,  기쁨에서 화평으로 진행되고, 화평에서 희망과 욕망의 넘침으로 진행되고  여기에서는 모든 의의 생활이 불붙고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데서나 나쁜 데서나 거기에서 내가 첫자욱을 디뎌  놓을 게 뭐입니까? 내가 환난 중에 있든지 기쁨 중에 있든지 어려움 중에 있든지  내가 첫 발자국으로 맨 먼저 첫 박자국을 떼 놓을 자국이 뭐입니까? 첫 발자국이  뭐이요? ○, 약속을 상고하는 것, 신구약 성경 약속을 상고하는 것 이게 첫  발자국이라. 둘째 발자국은? 믿는 것, 셋째 발자국은? 감사하는 것, 넷째  발자국은? 기뻐하는 것, 다섯째 발자국은? 화평하는 것, 여섯째 발자국은?  희망과 소망에 넘치는 것, 또 일곱째 발자국은? 용감스럽게 뜨겁게 역사하게  되는 것이 필연적이오! 기독교의 신앙은 필연적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상고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알게 돼요. 또 자기가 아는 자는  필연적으로 감사하게 돼요. 감사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기쁨이지, 뭐 만드는 게  아니라. 필연적이라, 다. 필연적으로 기쁘게 돼. 기쁜 자는 필연적으로 관대한  화평의 평화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이 평화의 사람이 되어진 사람은 필연적으로  희망과 소망에 넘쳐. 희망과 소망에 넘친 사람은 용감스럽게 걸어갈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거 잃지 말아요. 강퍅 부리지 말고 하루 삼십분 기도  어데서든지 자기 미래를 위해서 아침에든지 낮에든지 저녁에든지 어데서든지  하루 삼십 분 특별히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미래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 안 하고 '내가 이만치 담대하니까 앞으로 뭐 어떤 환난이라도 이길  수 있지, 나는 끈질긴 그 인내력이 있기 때문에 하지.' 어림도 없소. 그런  사람은 다 실패야.

 우리 마음을 강퍅케 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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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 인간병/ 요한복음 5장 14절-18절/ 850603월새 선지자 2015.12.16
1688 인간병 고치는 순서/ 요한복음 5장 6절-10절/ 890609금새 선지자 2015.12.16
1687 인간병 고치려/ 요한복음 5장 6절-18절/ 850602주후 선지자 2015.12.16
1686 인간병 고침/ 사도행전 3장 1절-13절/ 850508수전집회 선지자 2015.12.16
1685 인간병 고침/ 사도행전 3장 16절/ 850507화후집회 선지자 2015.12.16
1684 인간병 치료/ 사도행전 3장 3절-15절/ 850523목새 선지자 2015.12.16
1683 인간욕심/ 베드로후서 3장 1절-7절/ 800101화새 선지자 2015.12.16
1682 인간의 난제 해결/ 시편 73장 16절-17절 / 1977년 33공과 선지자 2015.12.16
1681 인간의 멸망/ 마태복음 5장 13절/ 890730주후 선지자 2015.12.16
1680 인간의 멸망/ 유다서 1장 5절-10절/ 1976년 2공과 선지자 2015.12.16
1679 인간의 연약성과 최고의 계명 /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40510목새집회 선지자 2015.12.16
1678 인간의 욕심-무저갱/ 요한계시록 9장 1절-11절/ 840902주후 선지자 2015.12.16
» 인간의 효력을 누리게 되는 순서/ 시편 136장 1절-26절/ 880202화새 선지자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