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1:45
이해할 수 없는 현실-7도적질 회개
본문 : 말라기 3장 7절∼1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난밤에 OOO학생이 말씀을 증거했는데, 거기서 좀 앞으로 생각할 거 뭐인고 하니, 신앙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자라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자라가는 거.
자라가는 게 신앙이고, 또 신앙은 시작과 중간의 끝이 있는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으리라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 범위가 대단히 넓습니다. 말로 예수 믿는 사람은 말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 끌리도록 하고, 또 외식으로 거짓부리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거짓부리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 끌리도록 하고, 또 실행하는 사람은 실행하는 사람에게 끌리도록 하고, 진실한 사람은 진실한 사람에게 끌리도록 그렇게 합니다. 그러기에, 설교를 할 때에 그만 겉으머리 좋은 것만 뚝뚝 따 가지고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그만 그 신앙적 허영과 허욕에 그만 받혀 가지고 사람들이 아무짝도 못 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런 사람들이 다 신앙을 가진 거라든지 모세가 신앙을 가진 거라든지 그런 것이 결과는 좋은 결과들을 다 이루었는데 그런 좋은 결과를 이루기까지는 반드시 자라간 신앙 과정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이삭을 드린 그런 것이 아주 위대한 신앙이지만 아브라함이 그런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 그래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밤새도록 좋아서 잠을 자지 못하고 나무 준비한 것이 그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자기의 경험 신앙 체험 신앙에서 나왔습니다. 그게 없이, '그리 하지 아니할지라도,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나는 말씀대로 지키겠나이다'하는 그 신앙이 나온 과정을 그것을 좀 더 연구해서 첨부하지 안하면 사람을 허영으로만 인도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말뿐이고 실행하는 교인을 못 만듭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목회를 하면 말은 아주 최고의 말을 듣고 행위는 어떻게 해야 될란지를 모르기 때문에 교회가 일시는 조금 부흥이 되는 것 같애도 나중에는 차차차차 쇠퇴해져 가지고 그 교회가 크게 성장해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왜 그런 신앙을 가졌던가? 모세라든지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든지 이런 사람들, 어떻게 해서 그런 신앙을 가졌던가 하는 것을 그런 과정을 거게 첨부해서 말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그런 신앙에까지 도달했다, 그래서, 신앙은 첫째로 신구약 성경 지식을 우리의 절대 지식으로, 표준 지식으로, 원형 지식으로 삼고 이 지식을 따라가야 되는데 거게다가 자기의 또 주관 지식이 없으면 안 됩니다. 주관 지식은 뭐이냐? 경험의 지식 체험의 지식입니다. 자기가 말씀대로 해 보니까 체험이 됐다 이거 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다 기록을 안 했어도 베드로가 나중에, 예수님을 버리고 간 것은 처음이 아니고 두번째인지 세번째인지 모릅니다. 그가 제일 먼저, 안드레가 부름받고 그 다음에 베드로가 부름 받았는데, 그것은 세례 요한의 소개로서 부름을 받고 거게 기록하기를 베드로라는 이름을 줬습니다. 게바라는 이름을, '네가 이제는 네 이름을 게바라 하라' 이래 했으니까 벌써, 그렇게만 기록됐지만 그 안에는 그 분과 많은 관계도 있고 그를 따를 때에 모든 걸 버리고 따르는 그런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주님이 그거 아주, 그래 안 해도 보지만 그 신앙 행위에 따라서 '네가 참 대단히 아름다운 신앙을 가졌다' 하는 그런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래 했지만 예수의 말씀만 듣고는 그 믿음이 생겨지지를 안했습니다.
안 했는데, 고기 한번 떡 잡고 난 다음에, 자기가 경험을 하고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 그때 획 돌아섰습니다. 돌아섰지만 예수님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또 타락해서 또 디베랴 바다로 또 갔습니다. 또 그때 다시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인 것을 자기의 그 실지에서 경험하고 체험한 데서 그가 참 다시 뒤로 물러가지 안하고 예루살렘에서 죽일라는 죽음 속에서도 열흘 동안을 계속 기도해 가지고 성신의 권능을 받아서 교회를 세우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라는 것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그만한 걸 믿음으로 자꾸 이렇게 지금 믿음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 보는 사람이 실행해 보니까 되는구나 되는구나 해서 나중에, 하나님이 처음에 인도할 때는 육체적으로 인도합니다. 그러기에, '혈육이 먼저요 신령은 다음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전체적으로도 육체의 이스라엘이 먼저요 그 다음이 신령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믿음도 없지만 그대로 해 보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거, 하나님이 벌써 그거는 믿음을 줘 놓고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믿음을 만드는 게 아니고 믿음 주시는 것을 새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만들어 간다는 것은 처음보다 믿음이 자꾸 새로 온전해져 간다 말이오. 온전해져 가는 그거는 하나니 이 위로부터 믿음을 주시니까 또 믿음을 받고 또 주시니까 또 받고 또 받고 자꾸 받으니까 믿음이 지금 점점 온전해지고 커져 간다 이거요. 이러니까, 자기가 순종해서 보면 땅에 있는, 내나 혈육의 사람이기 때문에 혈육에 대한 신앙 성공을 보고, 혈육에 대한 신앙 성공을 보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비로소 신령한 것을 소망하게 되고 또 신령한 것을 바랄 만한 그런 장성한 믿음에 나아가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에 대해서는 경험의 신앙과 체험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경험 신앙 체험 신앙이 중요한데, 사람들이 경험하고 체험하도록,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큰 데도 충성된다' 이렇게 말씀했는데, 지극히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행해 나가야 그 사람이 신앙 생활이 올라갈 터인데 아예 지극히 작은 것부터 실행하는 거는 싫고, 그까짓 거는 안 보이고 듬뿍듬뿍 큰 성자가 되고 그만 참 아주 역사에 깜짝깜짝 놀랄 만한 그런 대 성공만 말하면 그런 데만 눈을 떠 가지고 바라는 사람들은 그거 다 허영과 허망이 됩니다. 실지로 당해 놓으면 헛일이라 말이오.
당해 놓으면 헛일이라.
이러기 때문에, 과거에 우리 조선 나라로 있을 때에 교회들이 얼마나 부흥이 됐고 이랬지만, 선천 고을 그런 데서는 일 군에 뭐 안 믿는 사람이 없었다는데 뭐.
그래도, 신사 참배 났을 때에 일본 사람들이 죽인다 하니까 일본 사람들, 죽인다는 일본 사람보다 더 능력 크신 자의 보호가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 고을에, 선천 고을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게 전부 다 허영과 허욕으로 날뛰었기 때문에 그래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꼭 하나씩 따박따박 지켜 나가는 데에서, 성경 말씀을 내가 지켜서 거기서 경험을 얻고, 지켜서 경험 얻고 지켜서 경험 얻고, 경험 얻는 게 뭐이냐? 지켜서 응답 얻고 지켜서 응답 얻고 지켜서 성공하고 지켜서 성공하고, 자꾸 지켜서 성공하니까 처음에는 쉽게 지키는 거, '이거는 뭐 지켜 봤자 손해 안 가니까' 하고 지키니까 성공하니까 나중에 가서는 어렵게 지키는 것도 하나님이 명령만 하시면, 쉬운 명령에는 쉬운 성공이 있고 어려운 명령에는 어려운 성공이 있겠고 참 극히 어려운 명령에는 극히 큰 성공이 있었다는 것이 자기 일생 동안 생활해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제일 어려운 것은 생명 내놓는 그게 제일 어려운 것인데 그런 게 닥치면 이제는 자꾸 어려운 걸 닥치니까 근심되는 게 아니고 어려움을 닥치니까 좋다 그거요. 왜? 어려운 거 닥 치면 성공이 더 크고 좀 더 어려운 거 닥치면 성공이 더 좀 크고 자꾸 이러니까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해도 아브라함은 기쁨으로 백 세에 얻은 독자를 번제로 드릴려고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갔다. 신앙이 좋다.
이렇게만 사람들이 가르치고 배우면 그만 그런 허영과 허욕에서 나도 아브라함같이 되어야 되겠다 하지만 자기가, 그 아브라함은 신앙이 처음에부터 어떻게 어떻게 신앙이 돼 가지고 그 사람이 신앙 됐느냐 하는 그 과정을 모르고 그 결과의 열매만 뚝 떼 가지고 이라면 사람들이 그만 그렇게 배우기 때문에 '나도 그래 하겠다' 했지만 실제로 그 일을 당하면 그만 실패하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면, 또 실제로 당했을 그때도 또 안 하면, 안 하고, 안 하고 그걸 지나가니까 언제든지 미래의 신앙으로, '앞으로 이래 하겠다' 또 그렇게 소망만 가지지 실상 신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면 간단하게 기록하기를 '본토 아비의 집을 떠나라 이래 축복한다' 이렇게 그것만 기록되어 있지만서도 그 다음에 신앙은 보면 아브라함의 태도가 나타났습니다. 벧엘에 가 가지고 어려움 되니까 그 어려움에서 자기가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거기서 크게 패망을 당하고 자기 생명도 끊어졌을 터인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생명이 유지된 그것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난 다음부터 그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보면 반드시 그 믿음이 자란 게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셉이가 그 신앙 생활 한 것을 그 끝만 보면, '대단히 참 위대하다, 나도 그런 신앙 가지겠다' 그게 아니라, 요셉이는 체험적 신앙입니다.
그가 집 안에서 형제들하고 같이 있을 때에 하나 실행하면 그 반드시 자기 속에 내증이 있었습니다. 실행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응답을 받았고, 그저 그때 그때 자기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어려움을 능가할 만한 하나님으로부터 위로가 왔고, 또 사람들에게 이와같이 부인할 수 있는 그런 의심나는 그런 광경을 당하고 났을 때에 이 신앙으로 이기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증거를 보여 줬고, 뭐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앙이 이래 나왔기 때문에 전부 그 신앙은 다 경험 신앙이고 체험 신앙이오. 또 그 생활은 기적 생활이라. 보디발 집에 가기 전에 벌써 경험한 것이, 많은 경험이 그에게 그 다음에 미래를, 저 미래에는 모르지만 자기 앞에 그저 조그만, 예를 들면 사람이 산을 올라갈 때에 그저 한 자욱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저도 기운이 없지만 그 천막 있는 데 갈 때에는 한 자욱씩 올라 갑니다. 또 아무리 기운이 있는 사람이라도 산에 올라갈 때에 아마 삼 미터를, 삼 미터, 한 열 자, 열 자를 그냥 한 자욱에 올라가는 사람은 천하에 없을 것입니다. 딱 산을. 이것이 한 자욱씩 올라가면 다 올라가는데 한목 올라갈라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우리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자꾸 '아, 믿어 보니까 된다. 믿으니까 된다.
믿으니까 된다. 믿으니까 된다' 이렇게 점점 경험에서 경험으로 이래 자꾸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믿는다는 건 뭘 믿는다는 것이냐? 벌써 부인을 전제로 하고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 그말은 무엇을 부인했다 그 말이오. 믿는다 그말은 무엇을 부인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뭐 땅 위에 큰 걸 부인했든지 적은 걸 부인했든지 개적에서 부인했든지 전체적에서 부인했든지 그때 그때 이걸 부인해야 주님을 믿는 일 됩니다. 이러니까 믿는 일은 전부, 말하자면 세상에 모순된, 세상과 모순된, 세상과 일치되지 안한, 세상과 다른, 세상과 다른, 세상에 반하는, 세상에 반대되는 그것을 행하는 것이 그것이 다 믿음입니다. 세상에 반대된 일, 다시 말하면 자기 주관에 반대 된 일 이렇게 반대된 일을 주님에게 순종했는데 순종하고 보니까 잘 됐습니다. 순종하고 보니까 잘 됐어. 이러니까, 자기 마음에는 순종하면 안 되겠다 싶었는데 순종하고 보니까 되니까 그게 뭐입니까? 그게 기적이라 말이오. 그거 기적.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은 전부 기적으로 삽니다.
작은 기적이 점점 큰 기적이 되고 이래 가지고 점점 이 기적이 커서 마지막에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선을 넘은 그런 초자연의 기적, 그러기 때문에, 초자연의 기적이 다 신앙 생활이라 그렇게 우리는 봐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뜨끔뜨끔 그거는, 절정을 그런 것을 잡는 것은 잘했는데 그거 이제 그 밑에 그 순서에, 단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잘 연구해서 그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치도록 노력을 해야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설교는 실천하는 사람은 실천하는 설교를 듣기를 좋아하고, 허영 사람은 허영 설교를 듣기 좋아하기 때문에, 허영 설교를 하는 사람은 사람이 모여든다 할지라도 허영자만 전부 모여 들기 때문에 나중에 교회가 안 됩니다. 실천하는 자는, 그 말 들으니 그럴 것 같은데 실제로 살아 보니까 안 된다 말이오. 살아 보니까 안 되니까 '아, 이거 안 됐다 이러니까, 실천의 설교를 하는 데에는 실천 사람만 자꾸 모아듭니다. 허영의 설교하는 사람에게는 허영자들만 자꾸 모아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뭐이냐? 행한 대로 갚는 거, 보응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설교를 평해 준 것입니다. 내가 설교를 시킬 때에 좀 유망하게 보기 때문에 내가 설교를 시켰는데, 지금 자기는 믿음을 가지고 그래 하기는 하는데 그래 가지고는 실상을 닥치면 안 된다 그 말이오 사람이라는 것이, 넓이가 석 자, 석 자 넓이면 이만 안 합니까? 넓이 석 자 합판을 땅에다가 깔아 놓고 여게 걸어가라 하면 거게 걸어가지 못할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그러나 그 길이 무슨 눅근거리지 안하고 세멘트 길로라도 석 자 길이 다섯 자가 되면 좀 달라집니다. 높이가 다섯 자가 되면 좀 달라집니다. 열 자가 되면 또 달라집니다.
백 자가 되면 또 달라집니다. 또 그 밑에가 시퍼런 바다에 물이 돼 가지고 있으면 또 달라집니다. 그것은 왜 달라지느냐? 사람이 신경이라 하는 것이 있고, 신경이라 하는 것이 있고 그 계산이라는 이성 계산이 있기 때문에 그 계산을 하면 '여게 떨어지면 그 상함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그 계산이 자꾸 따라 올라온다 말이오. 그 계산이 따라 올라오기 때문에, 내나 거게 석 자에 걷는 것이나 백 자 위에 석 자에 걷는 것이나 바다 위에 석 자 걷는 것이나 눅근거리지 안하면 꼭 같은 계산은 계산인데 그 계산을 가지고 '여기 걸어가면 거기 걸어갈 수 있지' 이래 생각하지만 사람의 주관에 감정에 신경에 계산법이 있기 때문에 그거 계산이 틀려서 안 된다 그 말이오.
그런데, 여기 지금 와 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수위 OOO집사님, 그 때에 여게 굴뚝을 세울 때에 내가 이야기 하는데 암만 설득을 해도 꼭꼭 세워서, 그 얘기를 많이 했는데 나중에는 조금 알아 듣는 거 같아도 그저 어짤 수 없이, 어른이 하니까 어짤 수 없지만 속으로 '그거 그런데' 이렇지, 감탄의 그렇게 긍정은 되지 안해. 하지 안하는데, 그래 내가 말하기를 '너는 범사에 계산을 이래 대기 때문에 네가 성공을 보지 못하고 허영으로서, 허영과 허욕으로서 그래 허망으로 실패를 많이 볼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이랬는데, 요번에 나무 캐러 가 가지고 그만 다리를 다쳐 버렸어. 다쳤는데, 가면서 내가 또 말을 부탁을 했어.
'야, 어찌 됐든간에 조심해서 해라. OOO집사님은 좀 그런 착오하는 계산법에 있기 때문에 좀 조심을 해야 되지 안 하면, 다치지 일도록 조심하라고 해라' 또 내가 부탁한 그 사람도 또 그렇게 생각을 했대요. 그 생각을 했었는데 운반할 때에 다른 사람은 안 된다 하는 데 꼭 된다고 세워 가지고 나중에, 될 거 같았는데 나중에 해 보니까 안 돼 가지고 그만 디리를 다쳤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지금까지 있습니다. 이제 언간히 낫기는 나았는데, 계산이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소. 왜 그러면 땅에서 석 자와 한 백 길 위에서 바다 위에서 석 자와 그 광과 그 길의 넓이를 말하면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은데 왜 거기 가면 못 건너갑니까? 기어서도 못 걸어갑니다. 딱 엎드려 가지고도 못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뭐이 그렇소? 사람이라는 것은 신경이라 하는 것이, 정신이라 하는 것이 있고 계산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여기서 탈선되면 탈선 봤자 뭐 그까짓 거 이래 딱 발 올려 놓으면 되는 것이지만 다섯 자만 돼도 떨어져 구부러질 것이고 열 자 정도되면 박살이 될 것이고 바다에 떨어지면 어찌 되고, 그 계산이 사람들은 다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인간도 하나님 다음으로 모든 것을 복합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이렇게 모두 계산하고 사색하는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신경을 계산 안 하니까 안 됐다 그 말이오. '아 이라면' 다섯 자 위에는 그만치 신경이 쓰여질 것이고 또 상한다는 계산이 그렇게 자꾸 나올 터이니까 그 계산을 대 가지고, 다섯 자 위에는 벌써 여섯 자나 돼야 된다, 길이 여섯 자가 돼야 밑에 석 자에 걸어가는 거와 여섯 자에 걸어가는 거와 같다. 만일 열 자 위에라 하면, 열 자 위라 하면 거기서는 한 열 자나 돼야 한다, 백 자 위에는, 백 자 위에는 그 넓이가 한 백 자나 이백 자나 돼야 된다. 그러면 바다 위에 된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다 말이오. 저 바다 위에 길, 옆으로 길 되어 있는 거 가도 아무 상관이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데까지 다 계산을 대야 되는데 그 계산을 대지 안하고 이래 했다가는, '뭐 여게 석 자 걸으면 거게도 걸을 수 있지 못 걸을 게 뭐 있겠느냐?' 이렇게 계산을 대 가지고 가다가는 다 떨어지고 못 가고 만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자꾸 실행을 해 가지고 경험 체험으로 하면 그런 걸 다 계산해 가지고, '아, 나는 생명 내놓는 데로 걸어갈 수 있다. 생명 내놓을 수 있다'그 계산을 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백 길 위에, 석 자 길을 백 길 위에 할 때는 그 길을 산같이 백 자나 넓이가 돼 놓으니까 그 밑에 그래 봤자 거게 안 나가면 된다 말이오. 그 밖에, 백 길 높은 데 가 있지만 그 백 길 높은 데서는 한 여나무 자 안으로 들어와 가지고 이래 걸어가면 아무 마음에 염려성이 없고 걸어갈 수 있다 말이오. 그러나 그것도 조금, 그 길이지만 차츰차츰 난간으로 나가서 끄트머리 남은 데가 얼마 안 되면 신경 계산법이 있기 때문에 그게 안 된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는 제일 바로 아는 연구법이 뭐이라고 말했지요? 세례 문답에 뭐라 했소? 여기 말해 봐 예? 성경 연구법이 제일 좋은 연구법이 뭐이라고 했어요? 예? 아는 대로 실천하는 것. 아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게 중요합니다. 그게 아니면 안 돼요. 그러면, 그거 내나 한 가지라.
과학자들이 앉아서 논리 연구를 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아, 요라면 되겠다.' 요라면 되겠다 하니까 논리 연구를 딱 했다 말이오. 논리 연구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발표하고 이라면 된다고 떠들면 헛일입니다. 자, 그것이 바로 될라고 하면, 그 논리 연구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을 실지로 다시 연구해 가지고 정확하도록 할라고 하면 그 뒤에 무엇이 뒷받침이 돼야 됩니까? 뭐이 뒤 따라야 됩니까? 저 조사님, 저 뭐꼬? 자기 말이야. 예? 실험, 실험 연구가 있어야 된다 말이오. 실험해 보면 틀리거든, '그거 똑 맞은데 그거 실험해 보니까 안 되네. 그거 이상하네.' 거기서 실험하지 안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그렇게, 전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지자가 아니니까, 내 마음에 꼭 이렇지만 전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원만하지를 못하고 어디인가 편벽된 그래 일방적인 그런 빈 곳이 있지 않느냐, 그런 데는 실험을 해 자지고 한다 말이오 실험을 해 가지고 했는데, 거게 대해서, 원자탄을 연구를 해서 발명하기는 했는데, 나중에 그 사람, 광도에 원자탄 던지도록 발명한 사람이 내가 듣기에는 삼 년 동안을 울면서 회개를 했다 말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던지면 폭발해 가지고 사람이 죽는다는 그것만 연구했지, 이것도 일방적 지식이라 말이오. 이래 놔 가지고 이래 가면 그 무책임한 사람들이 벌로 이 위험물을 써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었으면 죽인 사람의 그 원인은 내니까 내가 어찌 되느냐, 이것 뒤에 가서 용도가 어찌 되느냐, 이 사용의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그 계산을 대지 안했기 때문에 그 광도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난 다음에 계산 대 보니까 자기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삼 년 동안 회개를 했다 그거요.
그러므로, 우리 신앙 생활은, 우리는 모르는데 주님은 고걸 아신다 말이오.
아시기 때문에, 우리 신앙이 원만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요런 현실을 또 경험하도록 하고 저런 현실을 경험하도록 해 가지고 자꾸 요 현실을, '아 뜻밖에 나는 이런 일이 왜 닥쳤는고' 하는 그것, '와 닥쳤는고' 하는 그런 현실은 모든 평소의 현실보다도 더 유효한 현실이라 그 말이오. 왜 이래 닥쳤는가 하는 그런 현실은 자기와 거리가 멉니까 가깝습니까? 저 O조사, O조사, OO교회 O조사, 예? '이상하다. 뫼 이런 현실이 닥쳤나' 그거는, 이상하다 하는 그런 현실은 자기와 거리가 멀어 가까워? 예? 뭐라 하노? 가까와? 가까와? 가까와? 또 여게 저 O선생 멀어. 그렇지 않아? 이해를 못 했으니까 '참 이상한 일 닥쳤네' 하는 거 아니라? 먼 거 아니야? 먼 거 아니야? 머니까, 그런 일에 대해서 자기 주관대로의 계산 처리는 이상한 일을 닥쳤기 때문에 그 이상한 일과 자기와의 그 계산 이치가 맞는 것이 거리가 더 멀어서 많이 틀릴 거라 말이오. 이러면, 그럴 때에 자기가 자기 주관대로 하다가 틀리니까 다시 몇 번 실패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난 다음에 '아, 이렇게 틀린 것도 이렇게 실행하면 되는구나' 하는 그것을 알게 될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 당할 때에 이해 못 할 현실은 자기에게 많이 틀린 것을 고쳐 주는 현실이요, 또 이해할 수 있는 그런 현실은 뭐 일반적으로 조금 수정이나 정리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이해 못 할 놀랠 만한, 이해 못 할, '이거는 참 천부당 만부당한 어디 이런 일일 수가 있겠느냐?' 이럴 수가 있겠느냐 하는 그때에 자기로 하여금 고칠 것이 많은 때입니까? 적은 때입니까? 많은 때라. 그렇게 주님이 많이 고쳐 줄라고 그런 걸 조금 조금 자구 이렇게 신앙 생활해 나가다 보면 어린 신앙은 '아이구' 놀래면서 '이럴 수가 있는가' 하지만 벌써 경험해 나 온 사람은 뭐 그런 것은 '그렇게 놀랠 게 뭐 있느냐? 한번 자꾸 실행해라' 먼저 간 사람은 뒤에 사람보고 '자꾸 순종하라. 순종하면 된다' 순종하면 된다 하는데 또 그라면서도 저는 또 앞으로 걸어가면서 자꾸 '이거는 참 이해 못 하겠네. 못 하겠네' 이래 가지고 한다 그거요 주님이 우리 사랑하는 그 사랑은 얼마나 광대하고 세밀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이 우리에게 해방을 얼마나 줬느냐? 그 해방의 범위와 종류가 얼마나 넓고 크냐? 해방이라 말은 우리가 속박되었다 말, 구금됐다 말 아니오? 그러면, 우리가 구금된 것이 얼마나 됐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측량 못 할 구금을 주님이 다 해방시켰습니다. 한 말로 말하면,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구금된 감옥이 뭐이냐? 무형의 감옥인데, 벽을, 벽돌로 쌓아 놓지 안한 그런 감옥소인데 그건 뭐이냐 하면 삐뚤어진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이라 그 말이오. 거기서 주님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얼마나 삐뚤어졌는데 우리를 해방했는지, 또 우리를 해방했으면 자유 아닙니까? 우리를 어디까지 자유시켰는지 그거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연구할수록 그분이 해방시킨 것이 한이 없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가 한이 없어 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받아 보면, '한 가지 아, 또 하나 있다. 두 가지. 아, 열 가지. 아, 백 가지. 아, 천 가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가 가지수를 말해 보니까 살아갈수록 가지수가 점점 많아지니까 그 끝이 없다 그 말이오 주신 은혜가 그렇지, 또 소망도 그렇습니다. 나중에 가서 주님의 구속은 무한이오니 내가 다 알지 못하나 그저 그런 걸로 알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실천이 중요합니다. 그런 것, 자꾸 지금, 오늘 말하는 것도 자꾸 실천하도록 하는 그런 걸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라 그거요
이랬는데, 오늘 아침에 이 말라기, 어짜든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먼저는 혈육이요 신령한 것이 아니라' 말씀과 같이 먼저는 세상이요 다음 이 천국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성공부터 좀 하자 그 말이오 세상 성공하면 뭐 세상 성공하자는 것이 목적이 뭐이냐? 세상 성공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고 하늘나라 소망의 그 성공을 해야 되겠는데, 하늘나라 성공을 할라면 믿음을 가져야 되겠는데, 우리가 믿음 가지는 것은 세상에서 경험과 체험의 신앙을 가져야 믿음이 생겨지는 것인데 세상의 경험과 체험이 뭐이냐 하면 예수 믿어서 세상 성공 해보자 그 말이오. 세상 성공하면 아, 믿으니까 세상 성공되는구나.
이러니까 천국 성공도 믿으면 되는 것이로구나' 이래 가지고, 이 세상 성공은 땅에서 걸어가는 것이고, 믿음 성공은, 하늘나라 성공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인데, 날아가는 것인데 땅에 걸어가는 것도 못 하는 것이 날아가는 그런 것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암만 해도 이거 말라기에 있는 이 도적질을 회개해야 우리가 지금 먼저 이 세상 성공을 해서, 가정 성공도 하고, 자시 또 건강 성공도 하고 또 물질 성공도 하고, 취직 성공도 하고, 지식 성공도 하고, 모든 사업 성공 도 하고 성공을 해야 되겠다 이제 요새 지금 그것을 말하는데, 또 성공한 사람은 그것 성공해 보니까 하나님 말씀은 그대로 다 이루어지니, 성경에 말하는 것은 땅의 것은 하룻밤 나그네와 같고 예수 안에 있는 거는 영원 무궁이라고 했으니까, 하룻밤이 중요합니까 영원이 중요합니까? 하룻밤 잘 사는 게 중요하요 영원히 잘 사는 게 중요하요? 이러니까, 땅의 것을 경험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틀림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게 되면 뭐 하늘의 것은 절로 욕심을 바꿔서 소망을 하늘나라로 돌리지 땅의 것에 돌릴리가 없다 그 말이오.
모세가 애굽의 귀한 많은 재물보다도 그 하나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 받기를 더 기뻐한 것은 하나님의 상 주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 때문에 그런 그것인데, 그것은 벌써 모세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경험했고 배 밖에 나와서 젖 먹을 때부터 경험했고 그 전체가 그 속에 자꾸 복음의 역사가 있어서, 교훈이 있으니까 그 경험한 것이 그렇게, 사십 세 되도록까지 애굽 아주 대궐 안에서 살았는데, 그 안에서 살았는데 그런 신앙가 된 것은 매일 매일 그것은 사십 년 동안 경험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리 됐다 말이오. 그러니까, 사십 년 동안 애굽에서 경험한, 그 어머니가 바로, 생모가 유모로 와 가지고 이와같이 해서 그분이 사십 년 동안 그런 신앙 가졌으니까 사십 년 동안 그 궁성에 있으면서, 왕의 집에 있으면서 그런 사람이 됐으니까 그 어떻게 자랐을까 하는 자란 과정 그게 중요하다 말이오 자란 과정 그게 중요해. 그거 없으면 그렇게 안 돼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주면서 경험해 가면서 자꾸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 좀 부자가 돼야 될 터인데 전부 도적질만 하고 있다 그 말이오. 그래서 내가 물어 봤어. '자, 이거 도적질이 일곱 가지인데, 도적질 일곱 가지인데 일곱 가지 도적질이 뭐인고 물어 보자.' 내가 그날 아침에 여러 군데 물어 봤어. 여러 군데 물어 봤는데 다 몰라 다 까먹어 버렸다 말이오. 알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거 실행 되겠소? 모르는 일이 실행이 되겠소? 늘 머리에 명심하고 있어도 실행할라 하면 힘이 드는데 기억도 못 하고 있는데 무슨 실행이 될 거라? 자, 도적질 일곱 가지를 한번 말해 봐요. 도적질 일곱 가지를 그 종류 로 나눌라 하면 몇 종류로 나눠야 돼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손가 락으로.
다른 사람은 손가락 못 드네. 뻐뜩 다 들어 봐요 모르는 사람 들지 말고 아니, 놔.
손가락 놔. 자,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봐요. 모르는 사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거짓말쟁이네.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봐. 아,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봐 목사라도 모르면 손들어야 되지 뭐 거짓말하면 어짜는고.
자, 그러면 도적질 둘이라 했는데, 두 가지 맞습니다. 두 종류로 말하면 두 가지 도적질 하나는 소유권 도적질, 하나는 소유권 도적질이오 자, 소유권 도적질이 몇 개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저 손가락 안드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라, 다? 새벽 기도 나오면 모를 리가 있는가? 소유권 도적질이 둘이라, 둘 맞았어. 하나는 자기 소유 밖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어? 그 소유권자가 누구요? 자기 밖에 있는 던든 것의 소유권자가 누구입니까! 주님이시라. 주님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주님이십니다. 내나 같은 말이오 주님은 우리와 가까와겼고 하나님이라 말하면 좀 멀어졌고 이랬는데, 하나님이 주님돼 가지고 우리 주님 됐습니다. 그러면, 모든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나를 대속하신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요것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믿으면 자꾸, 경험의 신앙 있어야 돼.
공산주의가 주 오니까, 닥치니까 '이게 다 주님의 것인데, 이게 다 주님의 것인데 주님의 것이니까 내것이지.' 그게 다, 공산주의가 다 내것이요 우주가 다 내것이라 그 말이오. 주님이 내게 상속해 줄라 했으니까 주님의 것이라. 그러니까, 주님의 것인데, 그러면, 관리는 누가 하느냐? 주님이 관리하지. '큰 것만 대략만 관리하지.' 아니,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왔는데 그 사람이 마음을 요래 먹고 조래 먹고 하는 것까지 다 관리해서 주권적으로 관리 다 하고 있다. 이 경험해서 다 체험해서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뭐라고 한다고 해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같은 그런 진실한 대답이 나올 수 가 있을 것이라 그거요.
모든 것이 주님의 것. 이것도 또 대번에 되는 게 아니라. '아, 주님의 것이라.
인제 그래 알았다' 그 사람은 다 실패할 사람이오. 그것을 실지로 자기가, 실험은 뭐이냐? 그거는 믿음뿐이거든. '이것도 내가 주님의 것으로 믿나 안 믿나' 실지로 따져 보니까 안 믿는 거 많거든. 안 믿는 게 자꾸 많다 말이오. 또 따져 보고 따져 보고 이렇게 따져서 수없이 따져 가지고 나중에 그래 가지고 '이거는 참 주님의 것이라 주님의 것이라 하는 것을, 실제로 자기가 인정된다 인정된다 어떤 일에도 인정이 된다하면 그것이 자꾸 걸어 올라가서 자라가는 신앙인데, 그래 가지고 가진 사람과, '아, 모든 것은 주님의, 소유권 도적질 둘을 알았다. 모든 건 주님의 것이라' 이렇게만 하고 그것을 실상을 만들라고 자기가 애를 쓰지 않는 그 사람들은 다 허영자이기 때문에 소용이 없어, 다. 그게 말뿐이기 때문에 교만하고, 교만하고 다른 사람에게 정죄나 하지 저를 고쳐서 구원 하는 자기 복음은 안 되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면, 소유권 도적질 하나는 모든 존재가 다 내 주님의 것이라. 자, 그러면 자기가, 자기 아버지의 것이라면 자기가 권리 있소 없소? 아버지의 것이라면 자기가 권리가 있어 없어? 이 세상에는 보면 저거 아버지는, '이놈은 신용 못 하겠다. 이놈한테는 회사 안 맡기겠다' 맡겨 주지 안 해도 이게, 그게 사장의, 사장의 맏아들이 돼 가지고 있으면 제 회사같이 어디 오면, 아버지한테 벌써 불신임을 받고 있어도 회사는 저거 회사같이 막 어깨를 벌리고 그랍니다. 왜? 모든 소유가 다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는 거기서 자기가 만물의 모든 존재에 대해서 태도가 달라진다 이거요. 이 달라지는 그것이 있어야 실상이 있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렇지 않소? 또 소유권 하나 도적질은 뭐이냐 그것은, 자기와 자기에게 있는 거 전부도 다 주님의 것이라. 이것도 쉽게 되는 것 아니야. 뭐 기도하기를 늘 기도하다가 보면 '내가 주님의 것인 것을, 주님의 소유인 것을 나에게 확신하게 해 주옵소서.' 또 믿음을 또 따집니다. 또 따져. 따지고 따지고, 내가 어느 정도 내 생명과 나와, 백 목사라는 내 자체와, 내가 뭐 주님의 것이니까 내가 가진 것도 다 주님의 것이지, 내가 주님의 것인데 내가 가진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소? 이것을 주님의 것으로 이렇게 판정 해 가지고 확신을 가진다는 이것이 얼마나 큰 신앙의 그만 근본 토대입니다. 이 두 가지 도적질.
그런데, 이거 주님의 것인데 이 우주를 어떨 때는 '아, 이거는 뭐 미국 것이라, 이거는 뭐 어디 것이라 어디 것이라' 물론 그 분엽적으로 하나님께 보관시키시는 보관시켰지만 그 보관자들이 저거 권리는 없어. 그걸, 모든 이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주님의 것으로 확실히 인정하지 않는 그것이 내가 소유권 도적질을 한 것이라 그 말이오. '이거는 미국 것이다 이거는 일본 것이다. 뭐 있는 것이다.' 내게 있는 것을 주님의 것인 것을 알지 못하고, '나는 내인데 뭐,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지 뭐, 내 뜻을 내 뜻대로 하지, 내 생각을 내 생각대로하지, 나는 내것인데, 이 물건은 내것인데, 아, 이 시간이야 내가 자유하는 내 시간인데'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소유권 도적을 한다 이거요.
소유권 도적질을 두 가지 요걸 회개해야 됩니다. 이거 회개하는 데에서 모든 생활의 건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 전행위의 토대라. 밑절미 이게 없으면 안 돼요. 사람들이 탈선하는 것도 '뭐 내 일인데 뭐 내 마음대로 하지, 내 손인데 내 마음대로 하지, 나는 내것이니까 내가 뭐 새벽 기도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말고 뭐.' 밉상을 지기고 돌아 다니면 뭐이냐 하면 저만 곯아 죽는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사람은 모든 말 하는 것이 복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복수가 없어요 복수는 마귀하고 죄하고 사망하고 그것만 원수고 그 둘에 대해서만 대해서 지금 복수를 하고 있지 그 나머지기는 다 제 편이기 때문에 복수할 것이 없어. 이 세 가지만 우리의 원수요.
그러기에, 이것을 내가 어느 정도 도적질을 내가 회개를 했는치, 지금도 어느 정도 내가 도적질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살펴서 이 도적질 한 것을 회개하는 이것이 우리의 할일이요, 이러니 장, 가서 기도하라 하면 그거 하고, 기도하라 하면 그거 해요. 기도하면 자꾸 뭐 중얼중얼, '뭣 주십시오. 뭣 주십시오.' 이것만 하는 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하라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나와 이렇게 대조를 해 보니까 틀렸다 이거요 이러니까, 자꾸 틀린 거 고치고 그라다가 보니까, 처음에 기도하러 갈 때는 막 뭐 이런 걸 가지고 이래 기도, 기도를 제목을 가지고 '이건 내가 죽어도 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왔는데 나중에 가다 보니까 이상하게도 그만 '아. 주님이여, 내가 부끄럽습니다. 내가 망령을 부렸습니다. 내가 자살 행위를 내가 자꾸 도모하고 자살하는 것을 자꾸 주님 앞에 구했으니까 주님이 주실 리가 있습니까 이거 이제 다시는 구하지 않겠습니다.
포기하겠습니다.' 그렇게 단식 기도하고 시작했던 걸 나중에 가서는 아니라고 포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 그거는 주님을 만나면서 기도하니까 자꾸 수정이 돼지지요. 기도하는 사람이 주님 만나지 안하고 자기대로, 자기 생각을 또 하고 또 하고 생각을 또 하고 또 하니까 전부 그거는 자기만 튼튼해지니까 자기 사욕이 더 견고해지고 자기 주관이 다 견고해지고 자기 자율이 견고해지니까 그거, 자, 생명 뭉텅이가 커졌습니까 멸망 뭉텅이가 커졌습니까? 저 OOO조사님. 멸망 뭉텅이가 자꾸 커진다 말이오 기도하는 사람이 그래, 산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보면 자꾸 주관 멸망만 커진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주관 신앙으로 됩니다.
요새도 또 말 들으니까 어떤 사람이, 어북 좀 날씬하게 생기고 아주 지 성인인데 와 가지고 '서부교회 백 목사님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인데 왜 사람이 아니라?' '사람 같지만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이 돼 가지고 오셔서 있는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하면서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며 증거하는 사람이 또 있답니다. 먼저 그 사람 그래 가지고 그걸 참 정신 병원에 거석해 가지고 치료하는 데 돈 얼마 들었지? 칠십만 원 들어서 병을 고쳤는데, 그때 보면 고쳐졌는데 지금 다 고쳐졌는지 뭐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이게 마귀 역사들이라, 마귀 역사. 또 한쪽 머리에는 또 이단자라고 또 욕을 하지, 또 그러지 이게 다 뭐이냐 하면 그게 마귀가 하는 것이라.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하나님 복음을 전하니까 점치는 그 귀신이 차 가지고 이는 하나님의 사자라 하나님의 생명의 도를 전하니까 너희들이 들으라고 이라니까 바울이 생각하면 자기 동역자로서 도와 주는 줄 알았지만 바울이 눈이 밝기 때문에, 그 속에 귀신이 들어서 그런다 그거요 그래서 그거, 근심한 것은 그 귀신을 쫓아내는 날이면 나중에 큰 화가 나기 때문에 사흘 동안인가 걱정하고 있다가 사흘 만에 귀신을 쫓아냈어. 쫓아내고 난 다음에 바울이 얼마나 두드려 맞았습니까, 그 귀신 가지고 돈벌이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 가지고 깊은 감옥에 갇혔었는데, 그렇게나, 그러니 이거 뭐, 뭐 좀 아프기는 아팠지만 하룻밤 동안에 아주 아름다운 교회를 세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그날, 거기는 하룻밤에 세운 교회라. 하룻밤에 교회가 돼 버리고 그판 거기 떠나 버렸어 떠나도 그 교회가 잘 됐다 이거요.
또 하나는 용도 도적질일니다. 소유권 도적질이 둘, 용도 도적질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또 가리켜 봐요. 아는 사람은 아는데, 지금 뭣 듣고 있는 거라? 자, 손 한번 늘어봐요. 손을 이래 다섯 개를 들어 이래 용도 도적질이 다섯 가지라. 다섯 가지. 손을 이래 들어. 들어. OOO목사님 제수, 몸은 머리는 여기 있으며 손은 저기다 들어 놓으니까 내가 알아야지? 손은 들기는 들었구먼. 이래라 말이오. 이래 들어라 말이오 똑 바로 들어 봐. 머리 위에. 저 OOO씨 부인. 머리에 바로 들어 봐 바로 들어. 버뜩 들어 봐. 더 들어, 더 들어. 그래, 옳지. 내가 다 알고 있어요, 모르는 줄 알아도 내가 누구인지도 그래 다 안다고.
소유권 도적질이 다섯 가지라. 요걸 회개해야 돼. 요걸 회개하고, 그래 야 우리가 부자 자꾸 부자 되기 위해서, 이래야 지금,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그렇게 주나 안 주나' 이 복을 받아야 우리가 되지요.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시험하여 보라 했어. 붓지 안하나 시험해 봐라. 얼마나 우리가 미련 하니까 똑똑히 알려 주셨습니까?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시험해 봐라.
그래 가지고 또 말하기를, 그래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황충 금한다 하니까 농사 짖는 사람이나 필요있지 우리는 필요 없겠다.' 황충은 농사짓는 데 해하는 해충 아니오? 장사하는 데도 해하는 것, 내 장사에 해하는 거 있고, 사업에 해 하는 거 있고, 출세에 해하는 거 있고, 공부에 해하는 거 그 해하는 것은 다 여기 해충 하나로 다 이 이치를 다 가르쳐 놨다 말이오. 우리에게 해 하는 거 다 없애 주시지, '금하여 너희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나 하는 일을, 나 하는 일을 손해가지 앉도록, 나하는 일을 안 되도록 하는 그러 걸 다 절단낸다 말이오. 그러면 그거 뭐 저절로 잘될 것 아니오?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이거 두 가지를, 농사짓는 사람, 자기가 하다가, 포도가 열었지만 기한 전에 떨어지면 그거 아무짝도, 소제하기나 힘들지 소용이 있습니까? 기한 전에 안 떨어지니까 익었으니까 다 상품이 되고 돈이 되지 않습니까? 뭣이든지 다 성과를 다 있게 하겠다.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을 다 좋은 성과를 다 맺도록 하겠다. '아, 될 것 같았는데 실패했다.' 그러니까, 시작할 때는 다 될 줄 알고 뭐 빚도 내대고 자꾸 이렇게 했는데 나중에 하고 나서 보니까, 되고 나니까, 나중에, 시작하고 보니까, 막 좋다고 잘된다고 이랬는데, 내가 그런 말을 우리 아버님한테 들었어요. 아따, 그 해가 뭐 무슨 해라더라? 흉년이 들었는데, 8월 추석에는 싸움이 나기를 뭐라고 싸움이 나는 게 아니라 서로 저거 집에 술 먹으러 안 온다고, '왜 우리 집에는 술 먹으로 안 오냐? 막 장래, 장래 곡식을 내서라도 부자들 집에 이래 빌려 가지고, 뭐 농사가 하도 잘 됐으니까, 잘 됐으니까 모두 서로 저거 집에 대접받으러 안 온다고 야단 지기디만 팔월 몇일날이든가 내가 그 날짜 잊어버렸어. 그만 대풍이 불어 가지고 전부 나락 이삭이 쏙쏙 다 뽑혔어. 얼마나 바람이 불었던지. 그만 그럴 수 없는 대흉년이 져 심리를 주권하고 계시지. 주님 생각하니까 내 마음을 명철하게 하니까, 다른 것 돈 생각하면서 기계만 보고 하면 팔을 퍽 꺾일 거라도 주님만 생각하고 이래 생각하니 주님이 주권적으로 활동계 심리를, 활동계를 주관하니까 손이 저리 쑥 놔 버려서 안 치였다 말이오. 또 심리를 주관 하니까 '아, 이라다가는 내가 손 다치기 쉽겠다' 이러니까 정신이 바짝 들어 가지고 차려졌다 말이오.
주님이, 자, 시간계를 주권하시지, 공간계를 주권하시지, 활동계를 주권하고 계시지, 생사계를 주권하고 계시지 모든 걸 다 주권하고 있으니까, 나는 차 타고 올 때에 그래 기도합니다. '주님이여, 안전 운행을 주시옵소서. 통행 안보를 주시옵소서.' 이래 기도하면서, 그래 내가 기도를 해석을 합니다. '당신이 안보 안 주면 됩니까? 암만 이 운전수가 명철하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와 가지고 옆에 사람이 일을 내는데, 자, 활동계를 당신이 주관하고 계시지, 심리계를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지, 공간계를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지, 심리계를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지, 이러니까, 주관하고 계시니까 인간이 암만 해 봤자 그 주권을 하고 계시니까 당신이 픽 틀어 버리면 다 치여 죽지 누가, 인간으로서 교통 안보를 할 자 가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밖에 없습니다. 당신밖에 없으니까 내가 당신에게 책임을 지우고 간구하니까 당신이 해 줘야 되지 않습니까?' 조건부로 따집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했기 때문에 내가 구하니까 이거 당신밖에는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이래서, 주일학생들 위해서 기도할 때도 교통 지도에 대해서는 이런 것을 따져 가면서 그래 주님에게 나는 기도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자, 오늘 아침에는 도적질 몇 가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들어 봐요 도적질 몇 가지 회개해야 돼요? 일곱 가지. 이것도 요걸 회개하면 자꾸 복이 와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