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의 표준

 

1987. 11. 13. 새벽 (금)

 

본문:누가복음 10장 27절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하루 삼십 분 기도를 빼지 말고 계속해서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미래의 환난을 위해서 기도를 계속합시다. 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양심을 써서 명상을 많이 하면 자기도 변화되고 또 자기에게 속한 학생들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하철 공사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은 지권찰회가 있는데 종전에는 지금 고친 시간으로 열시에 했지마는 오늘부터는 반 시간 당겨서  그전 과  같이 아홉시 반에 합니다. 지금 고친 시간으로 아홉시 반. 지금 시계를 보고 아홉시 반에 권찰회 하는 줄 알고 그렇게 다 준비하시면 되겠습니다.

또 그리고 하나 광고합니다. 지금은 이 산에 자유로 입산하지 못합니다. 지금 벌써 산화 문제 때문에 자유로 입산하지 못하고, 종전에는 그 산에 경비들이 있었지마는 지금은 그 경비를 세울까 말까 그런, 이미 민도도 조금 알게 됐고 또 여러가지 문제로 그렇다 말 들었습니다. 세우든지 안 세우든지 지금부터는 보통 일반으로 입산이 금지돼 있습니다. 또 아침으로는 위생상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뭐 몇시까지는 그것을 허용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데 더군다나 더 산에는 자유로 천막 같은 것을 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전에 금정산에 가 가지고 천막을 치려고 감시원에게도 부탁을 하고 또 파출소 가서도 부탁하고 이래도 그것이 안 돼서 그때에 마지막에는 못 하고 말았습니다.

이랬는데 양산동은 너무 지금 천막이 난잡해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기 산이라도 자기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 법령입니다. 내 개인 산이지마는 그보다 더 큰 주인은 국가의 산입니다. 국가의 산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또 우리 양산동 그것은 특별한 수원 보호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는 집을 하나도 짓지를 못합니다. 방 한 칸도 더 넣지는 못합니다. 그런 곳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천막을 몇몇 쳐도 괜찮았었는데 제가 어제 올라가 보니까 너무 천막을 많이 쳐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천막치는 무슨 허락을 받은 것같이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마 그것이 구청에서나 동회서 나오면 모든 천막이 다 철거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돼지고 또 그리고 거기다가 너무 그 땅을 파서 아주 산태에 위험한 그런 곳도 더러 있는 것을 제가 어제 봤습니다. 이러니까 될 수 있는 대로는 천막 같은 것을, 물론 쳐놓으면 가기에 편리하고 이렇지마는 만일 그것이 철거를 당하고 자연 훼손에 말썽이 나게 되면 그뭐 그 율은 형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모두 선거 시기라 좀 혼란 시기 같지마는 이 혼란한 때에 이렇게 잘못 저질러 놓은 것을 나중에 모든 것이 정리되면 그것이 다 나오게 됩니다. 지금 무허가 건축도 얼마든지 무허가 건축을 모두 이렇게 하기는 하지마는 무허가 건축 된 것은 평당 이십만 원 이상을 벌금을 한다 하는 그런 것이 언제 한번 신문에 난 일 있지요? 어찌 됩니까? 그런 말이 한번 났다 말 들었는데. 어? ○○○집사님 어데 있습니까? 그말 났습니까? 신문에 났습니까? 무허가 건축은 평당 이십만 원 뭐 이십일만 원 이상 그 벌금을 한다 이랬으니까 그게 나중에 실수가 될련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것도 그래요. 지금은 뭐 조금 혼란기라 이렇지마는 우리가 천막치는 그런 것이 너무 많이 되면 좀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몇몇 천막을 쳐놓고 그것은 본인이 안 갈 때에는 누구든지 가서 수용하도록 그렇게 했으면 좋겠고 또 그 천막을 그저 몇몇 천막만 치고 또 너무 땅을 파서 이렇게 형질을 변경시켜 놓은 데는 그것을 다시 복구를 해서 그들이 와서 말해도 아무 침을 안 당하도록. 또 그리 나가면 자연이 없어지기 때문에 아무도 거기 안 갑니다, 들판이니까. 그러면 나무도 없어질 것이고 다 산태가 나서 험하게 될 터이니까 그것을 애끼지 안하면 보존 안 되고 또 자연이 없으면 거기 가서 뭐 하려고 그까지 멀리 가서 기도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면을 해서 할 수 있으면 다 자진해서 철거를 하도록 하고 거기 있는 천막은 누구 천막이든지 아무 천막이라도 내 천막도 그렇고 뭐 누구 천막이라도 그 비었을 때에는 가 가지고서 거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몇몇 천막을 가지고서 그렇게 사용해서 기도할 때 곤란 없도록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여남은 개, 한 열댓 개나 그 고정한 천막을 해 놓고 그때 주인이 있으면 친 사람이 그 우선권이 있고 또 천막 친 사람이 없을 때는 누구든지 밤이고 낮이고 사용할 수가 있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요사이 늘 이 말씀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첫째 입문에서는 하여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요런 것을 우리가 판별해 가지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뭐 세상법은 우리가 표준하는 것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해서 해야 될 일과 안 해야 될 일, 이것은 해도 괜찮은 일이다 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 것을 우리가 알아야 안 할 일을 안 해서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 곧 하나님의 심판에 걸리지 안하겠고 또 할 일을 우리가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하나님에게 칭찬 받는 일이 되겠습니다.

또 세상에 있는 모든 제도들은 성경에 말하기를 그것은 복음을 위해서, 복음이 오히려 욕 얻어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법도 세워 놓은 것은 지키라, 복음을 가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법도 지키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이 뭐 하나님 법에만 저촉 안 되면 하나님의 심판 받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덕되지 안하는 그런 점이 있으니까 그런 점을 생각하면서 지키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우리가 세상법도 생각해서 그걸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법에 죄가 되는 일 있으니 그런 것은 우리가 지킬 수 없습니다. 또 지켜도 하나님 법에 위반되지는 아니하고 오히려 복음에 덕이 된다 하는 그런 정도의 것은 우리가 믿음의 덕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 복음이 가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신구약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은 우리가 하지 말라고 금하신 것은 다 우리가 금하도록 힘을 쓰고 또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금하는 것을 우리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차차 차차, 마치 자라가는 것처럼 그것이 자라갑니다. 처음에는 하지 말라는 것을 하나 알았다가 그 다음에는 둘 알고 그 다음에는 셋 알고, 아는 것도 차차 차차 자라가고 또 그것을 실행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안 하고 못 견뎌서 그것을 하게 되고 한번 하고 그 다음에는 후회해서 또 그 다음에는 안 하게 되고 안 하는 것도 차차 차차 이래 안 하게 됩니다.

또 성경에 하라고 하는 것도 이것도 하라 하는 것을 알았다고 해 가지고 대번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자꾸 힘을 쓰고 애를 써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나씩 둘씩 해서 이렇게 나갑니다.

그러면 첫째는 우리가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에 그 종류를 아는 것이 우리 신앙에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이 세상 나라의 법이 뭐 여러가지 행정의 법도 있겠고 또 장사하는 데도 법이 있겠고 오만 데 다 법이 없는 데는 없습니다. 다 법이 있습니다.

법이 있는데 그 법에 걸리지 안하도록 이렇게 해서 자기가 살 때에는 어데든지 담대할 수가 있고 책잡히지 않을 수가 있지만 법에 걸리는 그런 일을 했을 때에는 뭐 아무리 그것은 강한 사람이라도 강하지 못합니다. 법에 어긴 것은 그 세상 나라에서 그 사람을 잘못됐다고 대적하기 때문에 그 나라보다 권세 있는 사람은 나라에서 세운 법 그까짓 걸 지키나 마나 자유로 할 수 있지마는 나라보다 약한 사람은 그 법을 안 따르면 안 됩니다.

또 그 나라보다 강하다 할지라도 이 세계에 유엔법이 있기 때문에 그 법에 걸리면 또 안 됩니다. 또 세계에 유엔법도 다 이렇게 자기가 이기고 남은 힘이 있다 할지라도 인간들의 다 도덕법 양심법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양심에 ‘저것은 틀렸다, 저것은 아무리 저와 같이 한다 해도 권리 가지고 하지마는 우리 양심으로 생각할 때는 틀렸다.’ 양심의 법에 걸려서 남의 양심에 인정 안 받고 정죄를 받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은 자꾸 범위를 넓혀서 이렇게 참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정죄할라 해도 정죄할 수 없는 그런 생활을 해 나갈 때에 우리 생활은 든든합니다.

그러기에 어짜든지 성경을 읽으면서 거게는 별별 것을 다 소망을 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우스운 말이지마는, 시골에서는 나물을 캐러 갑니다. 부인들이 나물을 캐러 가면 그저 이 나물도 이런 종류의 나물도 캐 넣고 저런 종류의 나물도 캐 넣고, 쓸모 있는 것은 캐 넣고 또 쓸모 없는 것은 다 암만 있어도 버리는 것처럼,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첫째는 ‘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그것을 찾아서 우리가 지식하도록, 하라는 일은 해야 되겠으니까 하기 위해서 그것을 알아야 되겠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금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안 하기 위해서 알아야 되겠고, 또 자기의 그 마음을 쓰는 데 대해서도 마음을 이래 쓰는 것은 괜찮고 이렇게 쓰는 것은 나쁘고, 자기의 말도 이런 말은 해도 괜찮고 이런 말은 하면 안 된다. 또 그렇게 말에 대해서, 자기가 또 물질에 대해서는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또 사람에 대해서는 자기 성질은 또 어떻게 써야 되느냐? 양심은 어떻게 써야 되느냐? 그런 것 우리가 하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 종류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볼 때에 우리는 성경에서 많은 유익을 볼 것입니다.

둘째로는 우리가 뭣이 필요하냐? 그러면 안 할 것인데도 그 표준이 어데 있느냐? 안 한다면 어데까지 안해야 되겠느냐? 그 안 한 데에 절정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안 하면 어떻게 안 해야 되느냐? 어데까지 안해야 되느냐? 어데까지 안 해야 되느냐 하는 안 해야 된다는 안 하는 것에 표준을 우리가 또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어데까지 사랑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뭐 조금 사랑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 일시 사랑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 이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대해서는 그 표준이 어떠한가? 성경에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나님 사랑하는 데는 그 사랑의 표준이 내 마음 목숨 힘 뜻 전부 다하니까 나 다입니다. 나 다를 가지고서, 그러면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뿐, 하나님만 사랑하는 목숨뿐, 하나님만 사랑하는 힘뿐, 하나님만 사랑하는 뜻뿐.

그러면 이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가지고 목숨 가지고 힘 가지고 뜻 가지고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장사도 할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직장 생활도 할 수 있고, 또 목회도 할 수 있고, 뭐 문학도 할 수 있고, 예술도 할 수 있고, 사회 생활도 할 수 있고, 가정 생활도 할 수 있고, 부부 생활도 할 수 있고 못 할 것이 없습니다.

하는 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가지고 해야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숨 가지고 해야 되고, 하나님 사랑하는 힘을 가지고 해야 되고, 하나님 사랑하는 뜻을 가지고 해야 되니까 전부가 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을 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표준으로 정해 놨습니다.

이러고 그 다음에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렇게 했는데 우리는 이웃은 사랑해야 되고 미워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또 성경에서 압니다. 그러면 사랑은 할 수 있고 미움은 할 수 없다. 미워하는 것은 금지됐고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됐다.

그러면 금지와 명령이 됐으니 사람을 이웃을 사랑하면 그러면 어데까지 사랑하라고 사랑하는 그 표준이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느냐? 어데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느냐? 그것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표준입니다. 거게까지 우리가 사랑해야 이웃 사랑한 것은 그것이 완성이 됐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 나간다고 해서 그것이 다 누가 완성한 사람이 없고 완성했으면 하나님이 필요 없기 때문에 데려갑니다. 그러니까 완성한 사람이 어데 뉘가 있습니까? 완성하려고 자꾸 애를 쓰지요.

쓰는 데도 이제 완성이 죽기까지 완성을 한 사람도 있고, 완성하는 데에 백분지 일밖에 못 한 사람 있고, 천분지 일밖에 못한 사람 있고, 또 그걸 다 한 사람 있고 이러니까 그것이 하늘나라의 존비귀천의 계급이라 그거요. 그것이 또 하늘나라에 대우가 많다 크다 존귀타 하는 그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우리가 살 때에 세상 국법을 준해 가지고서 국법에 맞춰서 국법의 정도로 하는 것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법의 정도로 하는 것 있고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도 그 표준이라는 절정이라는 완성이라는 그 단계를 생각하고 그와같이 지금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 사랑을 제 몸같이 하라 그말은 뭐 이것은 참 다 제 몸을 사랑하는 것은 다 알기 때문에 거게서 뭐 이렇게 사랑하라 저렇게 사랑하라 말씀하지 안했고 이웃 사랑은 제 몸같이만 하면 된다 이렇게 말씀해 놨으니까 아주 요령입니다. 아주 요긴하고 간단하고 명료하고 우리들이 여게 대해서는 더듬을 것도 없고 생각할 것 없이 그만 제 몸같이만 사랑하면 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표준으로 줬기 때문에 요렇게만 하면 됩니다.

제 몸을 어떻게 합니까? 제 몸은 첫째로 사랑합니다. 제 몸은 첫째로, 제 몸을 뉘가 미워하는 사람 있습니까? 제 몸은 사랑합니다. 둘째로는 제 몸은 애낍니다.

제 몸을 안 애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혹 어떤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은 제 몸을 애낄 줄 모르는 사람은 즉시 그 애끼지 못한 거게 대한 해를 제가 받습니다.

둘째로는 자기 몸은 자기가 애끼고, 또 셋째로는 자기 몸은 자기가 보호합니다.

자기 몸은 자기가 보호를 합니다. 또 넷째로는 자기 몸에 상처가 있으면 그 상처를 치료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또 다섯째로는 자기 몸이 아무리 내음새가 나도 자기 몸은 자기가 그것을 더럽다고 버리지 안하고 그걸 어데까지나 잘 고쳐서 깨끗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몸을 자기가 어떻게 하고 있나 하는 요런 것을 자꾸 생각, 요모 조모로 생각해 가지고서 ‘나도 이웃에 대해서 이와같이 해야 되겠구나’ 하는 그것을 깨닫고 그와 같이 할 때에 우리에게는 평강이 오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오고,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오지 안하고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에게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기 몸을 첫째는 어떻게 한다 했지요? 사랑하고, 첫째는 자기 몸을 사랑하고, 또 둘째로는? 자기 몸을 안 아끼는 사람 없습니다. 자기 몸을 애끼고, 또 셋째로는? 녜, 자기 몸은 보호합니다. 자기 몸을 보호 안 하는 사람 없어요.

자기 몸을 보호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몸을 어떻게 합니까? 자기 몸에게 상처가 있으면 치료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이웃에 대해서, 이웃에 대해서 나쁜 것을 치료하려고 애쓰는 그 마음이 하늘나라 가는 새사람의 마음입니다.

이웃에 나쁜 점이 있을 때에 ‘저 나쁜 점이 저래 있으니 저놈 이제 나쁜 저걸로 가지고서 뒤에 가서 망하는 것 보자’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다 우리가 안 믿을 때에 가지는 생각입니다. 그럴까 하지만 해석하면 다 그렇습니다.

이 믿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안 된 점이 있을 때에 그것을 고치려고 애를 씀으로써 고쳐 주려고 함으로 그 방편이 잘못돼 가지고, 수술도 좋은 의사가 수술하면은 그 수술하는 데에 아주 이한 그 날카로운 그런 수술기를 가지고 하면 아프지도 안하고 덜 아프고 이런데 무디디한 그런 수술기 가지고 하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수술해도 잘하는 사람 있고 그 사람을 진정 나쁜 것을 고쳐 주려고 애를 써도 고쳐 주는 방편에 있어서 무디디하게 그만 이래 놓으니까 고치는 것보다도 상대방의 감정을 일으켜 가지고서 도로 고치면커녕 도로 악화를 시킨다 그말이오.

이 사람이 속에 맹장염을 앓는데 맹장염 그것을 수술해 주려고 달라들어 가지고서 이것 마취도 시키지 안하고 그만 이 아주 뭐 무디디한 것을 하니까 뭐 한 번 그려도 안 돼 두 번 그려도 안 돼 자꾸 이래 그려대다 보니까 나중에 그만 그 사람이 아파서 맹장 수술도 하기 전에 그만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잘못된 것을 치료하는 그 마음은 우리가, 자기 몸에 대해서 잘못된 것 병난 것 치료하려는 것은 이거는 다 있습니다. 자기 몸에 대해서 병난 것을 치료할라 하는 것은 다 있는데 자기 몸이라도 치료를 하는 데는 잘 생각해서, 어떤 사람은 너무 독한 약을 해 가지고서 도로 병을 얻는 사람 있다 말이오. 그것 아주 지혜롭게 약도 쓰고, 지혜롭게 수술도 하고, 지혜롭게 이렇게 치료를 하면 그것이 잘 치료됩니다.

그러면 치료하고, 그 다음에는 뭐라 했습니까? 더러운 것 있어도, 더러운 것이 있어도 자꾸 좋게 할라 하지 버리지는 안합니다. 입에서 내음새 나는 게 더럽지마는 입몸을 쑤셔 가지고서 입몸에서 내음새 나면 아이구 이 더럽다 이 빼 버려 버리고 버릴 사람 없어. 내음새 나면 그걸 안 나도록 뭐 양치도 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안 나도록 닦고 이 씻고 또 이것 치료하고 이럴라고 들고 있지 버리지 안해.

무좀 앓는, 다른 사람, 나는 나를 보고 해요. 무좀 앓는, 나는 지금도 무좀이 완전히 낫지 안해요. 이러니까 집회 가서 오백 명이나 육백 명이니 다 병이 낫는데 나는 무좀도 낫지 안해. 이러니까 그거 주님이 고쳐 주셨지 내가 고친 것 같으면 내 무좀 고치지 여러분들보다 그렇 것 아니겠소? 그러니까 백 목사가 고친 게 아니고 주님이 고쳤다는 그것을 이제 알리기 위해서 무좀도 안 고쳐 주시는 모양이오.

또, 신윤필 집사님이 미국서, 내가 목사님의 그 눈썹 찌르는 걸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눈썹이 지금 찌릅니까 하는데 나는 그것 몰랐는데 눈썹이 안 찔렀어.

그리고 났는데 기도 안 하는가 또 눈썹이 또 새로 나서 또 찔러.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들의 기도의 덕택으로 내가 사는 사람이지 내가 내게 대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잘 안 들어 주시요. 아마 그게 지금 여러분들은 나 치료하고 나는 여러분들 치료하고 서로 아마 바꿔 치료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모양이요, 지금.

더러운 것이 있어도 자기에게 있는 더러운 것은 더럽지 안하고 그것을 치료해서 깨끗게 하고 싶지 그렇지 안해.

이러니까 참 요 요령을 말했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하는 요 말씀을 하셨으니까 자기 몸을 생각하면서 이웃에게 대해서 ‘이 사건에는 이래야 되느냐 저 사건에는 저래야 되느냐?’ 그 사건을 당할 때에는 ‘이는 도무지 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이 되지만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했기 때문에 ‘내 몸 같으면 어찌 되겠느냐? 내 몸이 이렇게 됐다면 어찌 되겠느냐? 내가 이렇게 되면 어찌 되겠느냐?’ 그럴 때에 우리는 관대함이 나오고 관용함이 생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무슨 이상법을 말해 놓은 게 아니고, 하나님을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무슨 이상법을 우리에게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 사람이 돼야 되고 이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상한 법이 아니고 믿는 사람이면 다 이대로 살아야 되는 것이 이것이 보편이지 뭐 특수한 것 아닙니다.

또 그리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하는 이것은 ‘그저 아주 뭐 이것은 이상스러운 아주 특수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 그런 게 아니라, 특수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 일반 우리 기독자의 신앙 생활 전부는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는 것이 이것이 보편 생활이요 일반 생활이요 누구든지 다 해야 되는 생활이지 이것 뭐 특별히 성자 성녀들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말단 예수 믿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으면 이웃 사랑을 제 몸같이 하는 이것이 하나님 명령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의 정상이지 ‘그것은 어떤 성자나 성녀들이 행하는 일이지 우리가 행할 일은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는 것은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다 해야 되는데 이것 나는 못 하니까 다하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다’ 이것이 우리의 정상의 마음입니다.

또 하나님은 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내 전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뿐이요 하나님 사랑하는 그것 가지고 모든 이 세상 일 이런 것을 저런 것을 하지 하나님도 사랑하고 또 이것도 좋아하고 마음을 나눌 수 없다 말이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도 목숨도 힘도 뜻도 전부 다 똘똘 뭉쳐서 하나님 사랑하는 것뿐인데 하나님 사랑하는 것 그것 가지고 하나님 사랑하는 그 마음 가지고, 하나님 사랑하는 그 목숨 가지고, 하나님 사랑하는 그 힘 가지고, 하나님 사랑하는 그 뜻 가지고 이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할 수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무슨 특별한 이게 아니고 우리 믿는 사람이면 다 이것을 갖추어 가져야 되겠고 가진 것만치 하늘나라에 그대로 옮겨가지 이것이 안 된 것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고 다 그것은 갈 때에 불타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진영에서는 믿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죄를 짓는 죄 지은 그 죄 지은 기능, 죄 지은 기능 그것은 다 죽어버려서 지옥에서 형벌 받는다 나는 이렇게 말을 했는데 거게 대해서 지금 ‘그렇지 않다’ 이래 가지고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이것 지금, 뭐 잘못했다고 사과하기는 쉬운데, 사과하기는 쉬운데, 잘못됐다고 사과하면 그것은 쉬운데 이게 잘못됐나 잘못되지 안했나 여게 대해서 내가 지금 그래 증거는 했지만 ‘잘못되지 안했다’ 이렇게 지금 말할 만한 그렇게 지금, ‘잘못됐다’ 이러니까 `이것은 잘못되지 안했다' 아주 잘못됐다 할수록 배짱이 있어서 ‘잘못됐다 하니까 언제든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지금 잘못됐다 하는 사람은 그럴 때 굴복을 할 것이다’ 이런 배짱이 있을 만치 확신이 없습니다, 잘못됐다 하니까.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누구든지 연구해 가지고서 이것이 잘못되지 안했다 바로 됐다 하는 그런 것을 나에게 알려 주시든지, 잘못됐다 하는 그런 것 알려 주시든지, 알려 줘서 내가 죽기 전에 그런 것을 확정을 짓고 가면은 심판 안 받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내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뭐이든지 다 그래요. 내가 가르치는 것 중에 잘못된 게 있거든 여러분들이 말을 해서, 사람이 모두 완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 완전은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을 가르쳐 줘서 심판 앞에 가기 전에 고치게 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선지자요 내 선생님입니다. 또 바로 된 것은 뭐, 바로 된 것은 그것은 나에게 이거 바로 됐다 이렇게 말해 줌으로써 내게 그거 또 유익이 돼. 왜 유익이 되느냐? 더 확신이 있거든. 바로 됐으니까 확신이 있다 이러니까 확신이 있다 그거요.

그런데 지금 제일 큰 문제가 무슨 문제인고 하니, 중생된 영은 죄 짓지 않는다는 거게 대해서 이단이라고 정죄를 많이 받았는데 거게 대해서는 내가 확신이 있기 때문에 염려가 없고 말이지, 염려가 없고 그렇게 할수록 나는 가만히 둬 둡니다.

둬 두면 언젠간가 그들도 깨달을 때가 있지 않겠는가? 이 확신이 있는데 그거 모양으로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그와 같이 지금 ‘예수 믿는 사람이 현실에서 죄 지었으면 죄 지은 기능 그것은 다 멸망을 받는다’ 하는 그것, 다른 사람들은 ‘죄 지어도 멸망 받지는 안하고 또 뒤에 그 기능도 구원 얻을 수가 있다’ 이런 말 하는 것, 여게 대해서는 내가 중생된 영에 대한 거와 같이 그렇게 내게 확신 있는 그런 것을 지금, 그렇게 내가 깨달아져서 말만 했지 확신이 있는 그런 그 성경적 증거를 대서 그런 그것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 나는 항상 지금 고민이오.

그런 것도 고민, 여러분들에게 뭐 하나 말해 놓으면 그게 맞으나 틀리나 그것을 알기 위해서 고민도 많았고, 또 알고 난 다음에 불쑥 증거하고 난 다음에는 뒤에 또 자꾸 몰려대니까 이게 틀렸는가 싶어서 또 걱정도 많고, 내게는 항상 평안한 마음은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했는데 평안한 마음 없어.

왜? 평안한 마음 없는 것은 내가 아직까지 하나님의 도리에서 하라 하지 마라, 옳고 삐뚤어진 것을 다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 알기까지 항상 거기 대한 궁구요 염려요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다 말이오. 이것도 나는 축복이라 해. 다른 사람들은 뭐, 잘못된 것 얼마든지 여러 수백 가지를 가지고 있어도 거기 대해서 아무 생각 없다, ‘잘못됐으면 잘못됐지 뭐. 삐뚤어졌으면 삐뚤어졌지. 옳으면 옳지.’ 이러는데 거게 대해서 마음에 근심이 되기까지 내 속에 느껴지는 것이 있는 것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지금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니까, 내가 어제 오만 데다 다 전화도 했어.

‘모두 이렇게 말하는데’ ○○목사님에게 `야 이런 거 있으니까 이게 틀렸나 옳으나 하는 것을 좀 연구를 좀 하도록 해라’ 이러니까 ‘우리가 뭐 그런 걸 할 만한 자리에 어데 성장이 됐습니까? 그저 그것은 목사님 하십시오.’ 이렇게 하나도 연구하라 하면 연구는 안 하고 이제 가르쳐 준 것은 그까짓 거 예사로, 가르쳐 준 것은 그거 예사로 여깁니다. ‘그까짓 그런 깨달음 뭐.’ 모르는 것을 깨달아 가지고 실컷 죽자껏 노력해서 깨달아 가지고서 옳은 것 말해 주면 식은 죽먹듯이 그만 그까짓 것 뭐 그렇게 해 버리고, 또 인제 깨달아 놓은 것은 제가 깨달은 것처럼 이래 가지고 자랑은 잘 하고, 또 모르는 것 의문되는 건 좀 연구해서 깨달아 가지고 좀 이것 틀리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 이것 학자들도 말이지, 내가 틀린 것 있거든 좀 말해 가지고서 이것 틀리지 않도록 해 달라 해도 말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내가 죽고 나면 이제 ‘요것도 틀리고 요것도 틀렸다’ 해 가지고서 왕창 또 뒤비트릴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 건 그 양심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이든지 내가 증거하는 데 틀린 것이 있다 싶으면 그것을 자꾸 신고함에 기록해 넣어요. 이 무엇은 틀렸다 이라면 기록해 넣으면 그것을 사람을 말하면 자기 전화번호나 이걸 기록해 놨으면 내가 전화번호로 전화로 내가 해 줄 거고 틀렸으면 틀렸다고 내가 감사하고 내가 틀린 것은 발표를 할 겁니다. 내가 틀린 것은 바로, 틀렸으면 내가 여게 대중 앞에서 발표를 해서 ‘내가 이것은 틀렸으니까 이것은 고칩니다.’ 그래야 심판 앞에 가 가지고 심판 안 받지요.

그것 또 옳은 것은 다른 사람한테는 그것 말할 필요 없고 그 사람이 옳은 걸 틀렸다고 했으면 그 사람에게 내가 전화해 가지고 ‘이것은 너는 틀렸다. 그건 이렇고 이렇고 하니까 옳으니까 이대로 믿으라.’ 내가 권고를 할 것입니다.

이래서, 틀리고 옳은 걸 말해 가지고 우리가 자꾸 합동해서 고쳐 나가야 돼요.

우리가 전부 합동해서 고쳐 나가야 되지 이제 옳은 것 말한 것은 그것은 제가 은혜로 가치 있게 여기지 안하고 그것은 제가 한 거로 여기고 또 내게 대해서 틀린 거 말한 것은 틀린 것은 말해 주지 안하면 그것 심보가 나빠. 나는 저거에게 잘못된 것을 얼마든지 말해 가지고 고쳐 주려고 애를 쓰는데 저거는 내게 잘못된 것 있는 것을 말해 주지 안하는 그것은 뭣이냐 하면 심보가 나쁘다 그말이오.

심보가 나빠.

그렇지 않소? 나는 여러분들에게 잘못된 것을 자꾸 이 말하고 옳은 걸 말해서 자꾸 이래 고쳐 줄라 하는데 여러분들은 내게 잘못된 것을 말해 주지 안하고 옳은 것으로 고쳐 주려고 애를 쓰지 안하면 여러분들이 심보가 나쁘다 그말이오.

인제, 그렇게 해야 그 마음이 옳고 양심이 바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요.

알겠습니까? 이제는 내가 가르치는 데에 잘못됐다 이렇게 생각이 되면, 그것 다 써넣으면 뭐 자기 깨닫지 못하고 하는 걸 써넣으면 안 돼. 이러니까 자기 구역장에도 물어보고 좀 깊이 생각해 가지고서 꼭 잘못됐다 싶은 것은 신고함에 써넣어 주면 내가 그것을 보고서 잘 고쳐서, 고치면 그분이 내 선생님이요 내 선지지요. 또 그분이 잘못 알고 하면 내가 또 그분에게 똑똑히 바로 알려 줄 것이고, 이러니까 이래서 우리가 합동해 가지고서 전체가 합동해 가지고 잘못된 것은 고치고 또 옳은 것은 자꾸 서로 깨닫게 해 가지고서 해 나가고 이렇게 해야 건설이 안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이니 한 몸이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억만 명이라도 다 그리스도의 한 몸이요 그리스도에게 속한 한 지체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누구든지 다 고쳐져서 다 바로 돼야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제 몸같이 사랑해야 된다는 것이 이것이 별스러운 법이 아니라 널리 생각하면 다 그리스도의 한 몸이니 내나 자기 몸이라 말이오. 여러분들이 내 몸이요 내가 여러분들의 몸이라 그말이오. 신령한 몸의 몸이요 또 그리스도 안에 구원 받은 몸이요 이러기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서로 서로 고쳐서 자꾸 깨우쳐 나가요. 감정적으로 듣지 말고.

잘못된 걸 말해 주면 얼마나 고맙소? 또 잘못된 걸 말하나 될 수 있는 대로 상대방을 아껴서, 자기 몸에 잘못된 것 있으면 치료할 때에 ‘잘못됐으니까 끊어내 버려라’ 이럴 수 어데 있는가? 될 수 있는 데로 안 아프구로 상하지 안하도록 그렇게 알뜰히 그것을 애껴서 치료하지 안해요? 그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에 잘못된 것을 치료할라 해도 애끼면서 그래 치료해야 되지 그만 사랑 없고 애끼지 안하고 그렇게 무작스럽게 그래 버리면 상처가 많이 나고 치료도 잘 안 된다 그거요.

이래서 요새 늘,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했으니까 이웃 사랑을 어째야 됩니까? 이웃 사랑은 무슨 마음 가지고 해야 됩니까? 이웃 사랑은 무슨 마음을 가지고서 이웃을 사랑해야 됩니까? 저 ○○인가 ○○라든가, 저분? 자기? 예. 마음 가지고 형제 사랑하는 마음 따로 있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따로 있고 그래 두 마음을 가져야 안 돼요? 한 마음.

또 너는? 무슨 사랑 무슨 마음 가지고? 그게 아니고 여기 대답이 맞아. 마음은 하나뿐인데 마음 하나님 사랑하는 데 마음 다하라 했는데 뭐 남은 게 있는가? 마음을 다하라 했는데 남은 마음 있어? 없지? 그런데 어제 내가 어떤 사람이 나한테 와서 말하는데 영 일방적으로 생각하니 안 돼. 사람들이 말이요, 자기 주관으로 자기 면만 생각하면 그것이 무식한 사람입니다. 자기 면만 생각하지 말고 서로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면부터 먼저 다 생각해서 그 면을 다 생각하고 그 다음에 자기 면을 생각해야 되지 자기 주관만 생각해 말하면 언제든지 무례한 소리고, 배짱 있는 소리고, 그것 그것은 다 죄가 되는 옛사람이 하는 거라.

이러니까 하나님 사랑하는 그 마음 가지고서 내나 이웃도 사랑해야 됩니다. 이웃 사랑하는 것 그 마음, 그는 뭐이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이웃을 사랑한다 그말이오. 그러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러면 맞습니까? 부부간도 그래 사랑하면 돼요? 그래 사랑하면 제일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녜.

이렇게 사랑하면 부부간에 이혼 백 번 해도 남아야 될 것도 이혼을 못 합니다.

이혼을 못 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위해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지 안하니 그게 아무리 변해도 끝까지 사랑하다 끝을 마치고 말지 그게 대해서 거기서 상대가 돼서 피동될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 사랑이 강해요 약해요? 강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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