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02:14
이 복음의 가치
1986. 3. 25. 화새벽
본문:마태복음 7장 15절∼27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는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양성원 학생들이 지금 여게 참석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뭐 나에게 어떤 대우를 해 주고 높이는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전하는 이 도리를 여러분들에게 아껴서 혹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란 것은 완전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깨달음이 잘못됐으면 잘못된 그것을 나에게 말을 해 줘서 잘못 깨닫고 증거하는 것이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배우는 그 일로 퍼져 나가기 전에 나에게 말을 해서 고치도록 하면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가르쳐서 심판 받는 그 심판을 미리 적게 받고 그것을 또 고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를 사랑하여 주는 것입니다.
또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게 사랑하는 것이냐? 내가 전한 도리를 세상이 이해를 못 해서 이단이라고 이렇게 말을 할 때에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또 성경으로 잘 연구하고 상고해서 이거는 이단이 아니고 이거는 바로 깨달은 올바른 교리라 이렇게 해서 그것을 증거해서 모든 사람들이 잘못 알고 이단이라고 이렇게 매장하는 그 매장에 진리가 매장을 당하지 안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제도 어데서 편지가 왔는데, 그 내가 노회는 말하지 않습니다. 백 사십여 교회 교역자들이 모인 그 노회인데 그 노회에서 제게 대한 말이 났었는데 그 사람은 이단자라고 그 노회가 전체가 떠들고 이래 가지고서 그렇게 정죄를 했다고, 정죄를 했는데, 그래 뭐 때문에 그렇게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느냐 어떤 사람이 말을 하니까 그이의 설교록을 어떤 사람이 받아 보는데 그 설교록이 열 처녀 비유에 다섯 처녀는 지옥 가고 다섯 처녀는 천국 갔다 그렇게 모두 다 해석을 해 내려온 전통이 있는데 이 전통을 깼다. 거게 설교록에는 열 처녀가 다 천국은 가기는 갔는데 다섯 처녀는 건설구원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다섯 처녀만 건설구원을 이루었다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전통을 깼으니 그런 이단은 죽여 버려야 된다 그라면서 그런 것은 어짜든지빨리 죽여야 된다 하는 그런 말을 해서 정죄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죽는 것은 참 비참한 죽음도 있고 영광스러운 죽음도 있는데 그 죽는 것은 그것은 뭐 아무 때 죽어도 죽을 것 이기 때문에 문제가 하나도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해석을 바로 해석을 했는데 죽임을 당한다면은 그것은 그 사람들이 몰라서 죽이는 그것이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좀 섭섭하고 마음에 좀 안타깝지마는서도 바로 증거하고 그것 때문에 죽임당한다면 그거야 영광이지 그거 나쁠 것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도 내대로는 깨닫기를 그렇게 성경이 가르친 것이다 이렇게 깨닫는 것이 옳은 줄 알고 그렇게 증거를 하는데 그런 것이 혹 잘못 깨달음에 해석이 된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 중에 안다고 하면은 이 성경에 이렇고 이렇고 했기 때문에 이 깨달음은 아무래도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줘서 그게 틀렸으면 틀렸다고, 그러면 틀렸으면 설교록에 이렇게 해 놓은 것이 틀렸다고 죽기 전에 그 신문 광고를 내든지 광고를 내야 될 것이고 또 그런 것이 없다면 뭐 그저 마음에 걱정은 됩니다.
왜 걱정은 되느냐 하면, 믿는 사람들이 다대수가 이렇게 깨닫고 아주 뭐 참 소수라고 할 만치 적은 숫자가 이렇게 깨닫고 하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기 전에는 그게 참 어느 것이 맞았는지 하는 것이 항상 걱정되고 의문되기 때문에 걱정은 됩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잘 배워 가지고서 그렇게 하기를 해 주었으면 싶은 그런 생각이 납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들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 것을 바로 해서 하는 것이 그것이 참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복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진영 중에서도 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을 확고히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를 못합니다. 교역자들 가운데서도 그저 ‘이상한 말 한다. 좀 다른 사람과 뭐 다른 말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그게 맞다, 백 프로 맞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오는 사람들이 많지를 못한 줄 내가 압니다. 왜? 자기네들이 제가 증거하는 것과 다른 것이 많은데 다른 그런 것이 다 멸망이냐 구원이냐 하는 그런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참 잘못 가르치느냐 바로 가르치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깨닫고 믿는 대로 믿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속아도 저와 하나가 돼 가지고서 빈틈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이 이렇게 노선에서 같이 가면서도 언제든지 만나면 저와 하나되고 나뉘어 가지고 조금만 있으면 딴것 돼 가지고 서로 이렇게 대립이 된다는 이것은 뭐인가 확고한 믿음을 잡지 못해서, 제가 믿는 것이 바르더란대도 확고하게 그걸 잡지 못해 그렇고 또 틀린 것이라도 그 틀린 것을 그라면 틀렸다고 확고하게 그러면 뭐 이거냐 저거냐 뭐이냐 그리될 터인데 그저 중간에 머뭇머뭇하고 있는 것은 어쨌건 확신이 없는 까닭인 것입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이상한 일들이 있습니다. 있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은 자꾸 날 아주 존대해서 나를 망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게 믿는 사람 가운데에 어떤 사람은 각 교회에 다니면서, 저를 말하기를 그 백 목사님은 사람이 아니라 이다음에 부활해서 오실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하면서 어짜든지 교회마다 돌아다니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또 말하기를 그런 소리 하면은 이제는 안 되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해도 조금 있으면 나타나면 알 터인데 그란다고서 그렇게 강하게 뭐 누가, 죽어도 요동치 안하고 증거하는 그런 사람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병원에다가 보내 가지고, 정신 병원에다가 보내 가지고 우리가 돈을 대고 암만 그래도 그게 변동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니 그것도 제게 대해서 뭐인지는 나는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이 생겨 가지고 그런가 그걸 모르겠습니다.
이러니까, 왜 이 말 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이 구원 얻을라고 하면은 말세에 악령이 별별 방법을 말하는데 여러분들이 꼭 요 진리를 듣고, 진리 들을 때에 진리의 주인공인 성령을 받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성령 받지 안하면 그것은 뭐 제가 암만 뭐라고 쌓아도 그것은 헛일 됩니다.
여게도 오늘 아침에도 여게 본 데에 좋은 나무가 나쁜 과실을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과실을 맺을 수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무와 과실을 둘을 모아서 말했습니다. 그 과실을 보아서,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 것이라고 그렇게 말했고 또 집을 짓는데 반석 위에 짓는 집과 모래 위에 짓는 집으로 또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여게도 여기 ○ 집사는 조는데 이거 졸고 그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조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참 가서 보면은 이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가는 사람이 심히 적고, 기본구원이야 그것은 이래도 저래도 얻어 있습니다. 이랬는데 전부 귀신 들었고 전부 미치괭이고 이러니까, 이 미치괭이는 저 미치괭이를 미치괭이라 하고 저 미치괭이는 이 미치괭이를 미치괭이라고 하고 이 사람은 저 사람을 귀신 들었다 하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을 귀신 들었다 하고 이 세상이 막 이래 돼 가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참 칼빈이 말한 대로 궁극적 구원으로 하나님이 택해서 구원 시키는 자만 구원돼지지 구원시키지 안하는 사람은 구원이 안 되게 되고 또 하나님이 그렇게 의롭게 살게 하는 사람만 의롭게 살아지지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떨면서 하나님에게 간구해야 될란지 모릅니다.
집을 짓되 기초를 반석 위에 세워야 한다 고 말이나 또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하는 그 말이나 다 뿌럭지를 말해 놨는데 또 말하기를 거짓 선지자를 조심해라 이렇게 말을 하고, 그러면 거짓 선지자들이 와 가지고서 어떤 것이 거짓 선지자인가? 거짓 선지자들이 와 가지고서 말하기를, 천국을 들어갈라 하니까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구로 문을 막아 놓고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못 들어오도록 문을 막아 놓고 문을 닫으니까 말하기를 내가 주의 이름으로 기사도 행했고 이적도 행했고 많은 귀신도 쫓아냈고 기적 행했다 말은 병도 많이 낫았다 병도 많이 낫았고 귀신도 쫓아냈고 또 주님의 이 복음을 많이 전파하지 안했느냐 이렇게 말할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불법을 행하는 자야,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나라에 갈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구원을 얻으리라.’ 했으니까 이 구원이 무슨 구원인지 여러분들이 똑똑히 또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온갖 이적과 기사를 행했고 또 선지자노릇했다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말입니다. 전했는데, 주님이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이렇게 쫓아냈습니다. 쫓아냈으니까 이 구원이 무슨 구원인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렇게 쫓아냈으니, 그라고 난 다음에 이 반석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을 말했습니다. 지은 집을 말하면서, 그 지은 집이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비 오고 바람 불고 막 이래 나도 넘어지지 안하고 있고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 오고 이 홍수 치니까 다 떠내려가 버렸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게 뭐인지? 여러분들의 심령이 성령을 받아야 되지 성령 안 받으면 안 됩니다. 성령은 구하면, 하나님에게 구해야 성령 주신다고 했고 또 자기가 믿어야 성령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와야 믿는 동시에 또 믿어야 성령이 그에게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게 구원은 또 어떠한 구원이며 또 고린도전서 3장 10절 이하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그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 구원은 또 무슨 구원입니까? 이 구원은 무슨 구원이요? 자기 공력은 다 불타 버렸는데 구원 얻었습니다. 자기 공력은 하나도 없이 다 탔는데, 자기가 공력, 자기가 공력한 것, 자기가 공들이고 자기가 노력하고 자기가 수고해서 이루어 놓은 것은 다 불탔는데 또 그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 했습니다.구원을 얻는데, 그러면 구원 얻으나 공력이 다 불탔으니까 구원 얻지마는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같이 해를 보고 있으리라 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또 이 구원은 또 무슨 구원입니까? 또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에 준비한 자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준비 못 한 자는 다 쫓겨남을 당했다. 이거는 또 무슨 구원입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문제가 이것을 여러분들이 다 알고 바로 배워야 일이 돼지지 바로 배우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또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또 이 구원은 무슨 구원입니까? 여게는 보니까 우리 행함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아니고 우리 행동으로 인해서 주시는 구원이 아니고 순전히 은혜로 주시는 구원인데 이 구원은 언제부터냐 하면 영원한 때 전부터 이 구원이 벌써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하는 이 구원은 또 무슨 구원이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성경을 단단히 보고 살펴 가지고서 단단히 믿어야 되지 그저 흐리멍덩하게 ‘이 사람은 이렇게 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한다’ 저희들이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세상을 못 이겼고, 뭐 과거에는 총총 못 이기지 안했습니까? 지금도 그렇고 또 미래에도 또 어떤 시험할 일이 있으면은, 과연 홍수 나고 바람 부는 거와같이 환난 일면은 다 예수 배반하고 다 도망 칠 것입니다. 어데로 갈란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다 지옥 갑니까? 아니오. 택함을 입은 자는 지옥을 못 갑니다.
그러기에, 여게 지금 ‘영원한 때 전부터 주신 구원이라’ ‘행함으로 말미암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의 뜻대로의 그 은혜로 된 구원이라’ 하는 이 구원은 기본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기본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이 기본구원이 우리 구원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뭐입니까? 하나님의 예택입니다. 하나님의 예택이 나고 난 다음에 택합니까? 영원 전 택함입니다. 이것부터가 또 다릅니다.
그러기에,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에서는 가르치기를 그 사람이 생겨지고 난 다음에, 생겨지고 난 다음에 택했다 그렇게 말하고 우리는 지금 깨달아 믿기를 생겨지기 전에 하나님이 택하시고 택한 자를 그 하나님의 택함 속에서 창조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택한 게 아니고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의 목적으로 ‘내가 이런 자로 만들겠다’ 그렇게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대로의 지음을 받은 것이 우리들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예택 구원이 우리 구원이요 예정구원이 우리 구원이요 창조구원이 우리 구원이요 그 다음에는 중생구원이 우리 구원이요 부르심을 받아서 예수 믿게 된 구원이 우리 구원이라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들과 우리는 범위가 너무 넓고 너르기 때문에 이것을 자꾸 똑똑히 알고 믿는 자가 있어야 증거를 하지, 믿는 자가 있어야. 그뭐 혹 이래 와서 바로 믿어서 증거할까 이래도 그런 사람들이 많지를 못하다 그말이오.
○○ 교파에 있는 어떤 목사님 아들이 장생골 집회에 와 가지고, 그때에 그 ○○ 교파에서 세 사람들이 왔더라는데, 마태복음 7장에 있는 해석을 이것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들을 알지 못한다’ 한 이것은 행위구원에 대해서 주님이 그들이 불법을 행하기 때문에 모른다고 하는 것이지 기본구원은 순전히 주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행위구원에 관한 말씀이라 이라니까 그들이 이해가 안 된다 하고서 중간에 갔답니다.
이런 복음을 여러분들이 들으니 책임 있게 들어서 여러분들도 멸망을 받든지 구원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를 해서 구원이냐 멸망이냐 하는 거 증거해 줘야 될 터인데 그렇지 안하니 그것이 또 문제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자기네들 말대로 합니다. 하면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라야 들어간다. 뜻대로 행한 자라야 들어간다. 그러면 뜻대로 못 행한 사람은 지옥 간다 말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다 행한 것이 뭐입니까? 신구약 그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다 행하지 못한 사람은 다 구원 얻지 못한다 말 아닙니까? 뭐입니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라야 들어가지 불법을 행하는 자는 못 들어간다. 불법 행한다 했으니까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는 못 들어간다 말 아닙니까?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 행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있으면 손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다 행했어, 하나님 뜻대로 다 행했어? 뜻에 어긴 것 하나도 없어요? 어긴 것 하나도 없어? 어긴 것 말해 줄까? 어긴 것. 지금 말이요. 집사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향기를 나타내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향기를 맡지 못해요. 옆에 사람만 알지. 그라고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 자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수백 가지 있어. 그걸 좀 찾아요. 이렇게, 이 성구를 이렇게 인정한다고 하면은 다 지옥 가야 되는 거라. 다 지옥 가야 돼.
불법을, 불법이란 말은 세상법을 어기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법칙인 신구약 성경을 어기는 것을 말씀한 것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을 어기지 안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말이오. 그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양심에 가책할 것이 하나도 없으나 이로 인해서 내가 온전타 함을 얻지 못하고 항상 걱정 중에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에게서 심판받으니까 그분에게 가면 내가 무엇이 지금 몰라서 미진한 게 있는지 내가 모르겠다 이래서 걱정 가운데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분도 구원이 아직까지 의문 중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의문 중에 있으면 이 구원이 무슨 구원이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 자기가 영원한 때 전부터 있는 그 구원은 기본구원이요 그거는 택함의 구원이요 예정의 구원이요 그거는 창조의 구원이요 중생된 구원이요, 이제 뜻대로 행한 자라야 구원 얻는다 하는 뜻대로 행한다는 것, 또 불법을 행하는 자는 그 천국에 오지 못한다는 거 그것은 곧 우리가 말한 대로 건설구원, 그 사람의 심신의 기능 육의 구원이니까 그것은 하나님 뜻대로 된 것이라야 고게 가니까 딴것은 못 간다. 그러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어서 자기의 공력이 다 불탄 자는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었고 또 공력이 있는 자는 다 상을 받는다. 그라면 상 못 받는 구원이 있고 상받는 구원이 있으니 상 못 받는 구원은 행함이 다 탔는데 그 구원은 뭐인가? 그거는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으나 기본구원은 가졌다는 그게 아닌가? 이런데도 이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고 똑똑히 배워 가지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이것을 똑똑히 가르쳐 주면 그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정죄하지 안하고 그분들이 ‘우리가 이거 잘못 믿었다.’ 깨어서 이렇게 바로 믿어야 되겠다고서 돌아올 터인데 이 있으나 믿지 안하고 흐리멍덩하기 때문에 다 그러니까 양성원에 다니면서 여러분들이 똑똑히 믿으면은 여러분들 살고 다른 사람 살 것이고 그렇지 안하면 여러분들도 죽고 다른 사람들도 죽을 거라 말이오.
여러분들도 멸망을 받고 다른 사람도 멸망을 시킬 거라 말이오.
멸망시킨다, 멸망시킨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거 거짓말입니까? 멸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양성원 학생들, 여러분들은 멸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손들어 보십시오. 멸망할 수 있습니까? 멸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절대 멸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들어 보십시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 그러면 멸망할 수 있다는 사람은 무엇이 멸망한다 말이요, 그라면? 무슨 구원이 멸망한다 말이요? 건설구원이 멸망한다 말 아니겠소? 또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또 무얼 말합니까? 기본구원 아니겠소? 그러니까,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이거 분리해 놔야 구원 도리를 바로 깨달을 수 있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이걸 말해 놓은 것인데 이것 때문에도 정죄를 많이 받았습니다.
‘구원을 뭐 때문에 쪼개느냐’ 내나 성경에 있기 때문에 말한 것이지 내가 혼자 쪼갰습니까? 성경에 쪼개 놨기 때문에 성경대로 말한 것이지. 또 사람이면 한 사람이지 옛사람이니 새사람이니 제가 죄를 지어 놓고 죄를 나는 안 지었다고서 말한다 이래 가지고 또 이단이라고 많이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똑똑히 들어야 되지 똑똑히 안 들으면 모릅니다.
죄를 지은 것은 누가 지었습니까? 죄를 지은 것은 산 영이 지었습니까 마음이 지었습니까, 육이 지었소 영이 지었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난 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난 자가 죄 지은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요렇게 다 구별해야 될 터인데 이걸 막 먹는다 말이오. 막 먹어 아무나따나 이렇게, 우리 구원이라면은, 우리 구원이 온 이십세기의 모두 발달되어 있는 과학 이것보다 우리 구원이 능력이 큽니까 적습니까? 크요 적소? 그러면 이 구원 이루는 것이 온 세계 이십세기의 과학을 통달하는 것보다 어렵겠소 쉽겠소? 어렵습니다. 힘들어야 됩니다. 힘써야 됩니다.
그래도 우리 힘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순전히 은혜로써, 그렇게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가 네게 주겠다 이랬습니다. 충성한다고 그게 제가 생명의 면류관을 만듭니까? 네가 있는 힘을 다 쓰니, 네가 참 믿기 때문에 있는 힘 다 쓰니 내가 생명의 면류관 주겠다. 주님이 주시겠다 말씀했어. 우리가 만드는 것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거, 그런데 내가 기대하기를 행여나 여게서 뭐이 날까 해도 참 깜깜합니다. 깜깜해. 인간에게 배운 거 이런 것은 믿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은 믿지를 안해.
이러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게 ○ 목사님이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도 조직신학을 가르치면서 이 교리와 신조 이게 우리가 깨달은 이 교리와 신조가 과연 성경대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걸 살펴 가지고 성경대로 됐다는 이것을 좀 확고한 이 성경적이라 하는 걸 증거를 해서 이래 보내면 이게 옳다면 세상이 살아날 건데 그걸 지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걸 기대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거게 입각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따라갈라고 이라는데 가면서도 본인도 이거는 얼떨떨하니까 이건가 저건가 자꾸 이렇게만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많다 그말이오.
또, 지금 우리 진영에서 배우는 이것보다도 내가 미국 가서 배운 거 있으니까 내가 배운 이놈이 서야 될 터인데 이러니까, 그게 서면 이게 죽고 이게 서면 그게 죽습니다. 또 그거와 이거와 또 하나로 돼 가지고 있는 것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정말로 참, 무엇인가 이거 큰 문제가 있기는 있습니다. 이래서, 그뭐 백 사십여 교회 목사들이 모여 가지고서, 모인 회에서 이것은 아주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고 이거는 다 이런 사람을 죽여 버리야 된다고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그러니까 문제가 아닙니까? 그 백 사십여 교회가 우리 깨달은 거와 달리 깨달았으니까 우리가 틀렸든지 그들이 틀렸든지 둘 중에 하나는 틀린 것 아니겠소? 우리가 틀리면 우리가 절단나고 그이가 틀리면 그이가 절단나는 것이니까 이것을 똑똑히 밝혀서 자꾸 한 사람이 더 똑똑히 알고 두 사람이 더 똑똑히 알아서 증거를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증거하지만 저희들이 듣고 배우고 실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암만 해야 몰라. 앵무새 모양으로 이거는 참 녹음기라.
그저 전하기만 전하지 속에 믿는 믿음이 없다 그말이오.
요번에 총공회 때도 그때에 이 믿음의 종류들을 많이 말했지마는서도 ‘별스런 소리 말한다. 이상한 말 한다.’ 이렇지, 확 깨달아 가지고서 그 깨닫는 자 없어.
깨달으면 뛰어요. 이게 옳으면 산 길이 이 길이니까 뛸 것 아니겠습니까? 틀렸으면 왜 그걸 두고 있습니까? 반발을 해서 이것을 고쳐야 되지.
이러는데, 참 주님이, 춤을 춰도 노래 부르지 안하고 울어도 같이 울지 안한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너무 이 하나님의 도를 업신여깁니다. 업신여겨. 업신여기기 때문에 진심으로 듣는 사람들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그래도 진심으로, 이거는 왜? 암만 알라 해도 몰라. 제라 믿어서 행해야 알아져.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대 네가 내 말에 거하면」 그말은 행한다 말 아니요? 「참 내 제자가 되고」 성화된다 말 아니요? 그러면 「진리를 알지니」 하나님 말씀을 행해야 성화되고 성화된 것만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안 된 게 뭐이 깨닫게 됩니까? 이런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예사로 여겼으면 안 됩니다.
제가 어제 아침에 말했는데 또 양성원 학생들이 왔기 때문에 내가 말합니다.
이거. 내가 목이 어제 쉰 것은, 주일날 쉰 것은 주일날 이렇게 설교를 오전 오후에 목 하나도 안 쉬고 설교를 창창 잘했습니다. 잘했는데, ○ 장로님이 이 광고 시간에 나와 가지고서 감사 연보를 이렇게 모두 하는데 그 장로님이 그걸 다시 봉투에 감사 연보 나온 그걸 재필기를 해서 쓸라 하니까 그 상당히 요새 감사 연보가 자꾸 숫자가 많아갑니다. 이백 사십 몇 명이나 이래 감사 연보를 냈는데 이거 쓰는 것도 상당히 시간이 걸리겠고 이거 또 광고를 하는 데도 그 낱낱이 읽을라 하니까 듣는 사람들도 보니까 지루해 그래. 듣는 사람들도 막 주리를 틀고 지루해 그러지 또 읽는 사람도 이백 사십여 명이 기다라이 그 기록해 놓은 것 그걸 다 읽을라 하니까 얼마나 답답합니까? 나는 그전에는 또 처음에 감사 연보를 광고할 때는 마음에 고마와서 ‘이렇게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해서 기뻤고 또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주님의 노를 풀겠다 또 그래서 기뻤고, 또 저렇게까지 저거를 감사로 깨닫고 감사했구나 감사함을 깨달은 사람 있으니 또 기쁘다 이랬는데, 그때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더냐? 감사하는 사람이 다 돼서 우리 서부교회의 교인들이 전부 다 빠짐없이 감사하는 사람 돼서 감사 연보를 내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돈을 모으기 위해서? 그래 내가 돈은 말했습니다. 돈은 여러분들이 감사하는 것을 깨닫고 요모 조모로 감사하다 하는 고걸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십 원도 좋다, 십 원도 좋고 백 원이면 많다, 십 원도 좋고 백 원도 좋으니까 감사한 걸 깨달아 가지고서 감사하다고 그렇게 연보해라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했었는데, 그날은 갑자기 내 마음이 변했습니다. 내 마음이 변해서, 자꾸 이러니까 이 ○ 장로님에 대해서 좀 동정이 가서 내가 생각하기를 이제는 주일날 그 감사연보한 고것을 기록할 때에 한 사람이 기록할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고걸 보고 기록을 해 가지고서 합하면 되니까, 합하면 여러 종이에 기록해 가지고 요거 보고 요거 보고 이래 하면 되니까 여러 사람이 기록하도록 해야 되겠다. 또 고다음에는, 이렇게 읽기가, 이렇게 기록하기 그렇지 잃는 데 시간 걸리고 또 모든 사람들이 다 지루해 하고 있지 이러니까 요것을 간단 명료하게 해서 간단하게 기록해 가지고서 그렇게 하라. 그저 자기는 알고 있으니까 간단하게 해 가지고 무슨 감사 연보라 요렇게 간단 명료하게 기록해라 요 말을 내가 광고를 해야 되겠다 고 생각을 내가 가졌습니다. 고거 가지고 지금 광고가 끝나기를 애터지는 마음 가지고서 기다리면서 광고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랬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광고할라고 ‘광고합니다’ 할라고 `광' 하니까 ‘광’ 소리가 안 나옵니다. 안 나서 광고할라 하니까 암만 뭐 기침을 하고 고함을 질러도 소리가 안 나옵니다. 그래 내가 광고를 못 했습니다. 못 하고 이래, 이래 가지고 이랬었는데, 그래 나는 그래도 내가 무지하고 미련하기 때문에 그걸 내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 시간 깨달았으면 내가 광고를 했을 건데 깨닫지를 못했다 그말이오.
못 하고, 가 가지고서 저녁 식사를 지금 해야 되는데 수고하는 그분에게 뭘 말을 해야 되고 또 그분이 말하니까 내가 답을 해야 될 터인데 곧 먹는 거니까 이래 해야 될 것 어떻고 또 이거 먹으라는 그거 말을 해야 될 터인데 암만 말을 할라 해야 말이 안 나옵니다. 말이 안 나와서 그래 말은 못 하고 엎드려 식사 기도를 하면서 기도를 할라 하니까 그때사 깨달음이 나옵니다.
식사할라 하니까 깨달음이 나오기를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하늘에 부요를 다 내놨고 낮아졌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고 또 영원히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내가 부활까지 하셨는데 너거가 나한테 바치는 게 뭐꼬? 너희들이 나한테 바치는 거 연보한 거는 그게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거끼리 구원하는 그것이지.
내가 이렇게 하고 너거한테 찍해야 기다리는 것이라 해야 감사고 받는 것이야 감사밖에 없는데 그 감사하는 그걸 암만 길게 썼다 할지라도 암만 몇 시간, 너희들이 감사할라면 평생 감사로만 계속해서 이래 다른 사람이 미쳤다 하든지 어쨌든지 감사로만 계속해도 모자랄 터인데 그 찍해야 삼십 분이면 될 것이고 그리 안 하면 이십 분 이면 될 터인데 그 감사해서 깨달아서 감사한 고것 말하는 그걸 그거 너무 길다, 너무 길다, 감사 너무 기니 간단하게 써라 그거 너무 시간 많이 걸린다. 네가 도무지 뭐꼬? 이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진노하심을 내가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거 죽지 안하고 참 산 게 다행이다. 주님이 당장 쳐서 그만 송장을 만들 터인데 죽지 안하고 살아 있는 게 다행이다.’ 고걸 내가 깨달았습니다.
깨달아 주님에게 자복을 하고, ‘내가 이렇지마는 이거 잘못된 것을 깨닫기는 깨닫지마는서도 목 잠긴 게 이것 때문에 잠긴 건지 내가 그걸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것 때문에 잠겼다면 내가 내일 아침 새벽 기도 때에 가서 광고를 할 것이고 또 주일날 오후에 내가 했기 때문에 ‘오후에 광고를 하겠습니다’ 이랬는데, 그 뒤에 내가 `오전 광고도 하겠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이것 때문에 그러면은 주님이여 나는 이거 둔해서 모르니까, 이거 잘못된 거 알기는 알겠습니다. 아는데 제가 목이 잠긴 그것이 그건지 아닌지 그걸 내가 모르기 때문에 지금 그걸 묻는 것이니까 만일 그것 때문에 주님이 내 목을 막았다고 하면은 내 목을 이 시간 틔워 주시면 그런갑다 내가 확실히 인정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를 하고서, 보자 이제 소리가 나오나 안 나오나 보자 이래서 말을 내가 했습니다. 식사하는 중에 ‘집사님’ 하니까 말이, 지금은 좀 쉬었어. 그때는 맑은 음성이 나왔다 말이오. 나와서 ‘이거로구나’ 그라고 내가 그래 광고하기로 작정을 했는데 그 뒤에 목이 잠겨 가지고 있는데 이 목 잠긴 것이 이것이 아마 속히 안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목 잠긴 데에는 뭣으로 치료하면 된다고서 치료해 주러 온 사람 더러 있었습니다. 있어도 내가 치료를 안 받는다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노해서 나에게 징계로 주신 그 징계는 내가 그것을 달게 받아야 되지 내가 뭘로 치료? 내가 치료한다면 나는 치료하고 당신은 또 목을 잠기구로 하면은 내가 하나님보다 강하겠느냐? 이 의학이 강하겠느냐? 안 된다 하고 내가 치료를 안 받았습니다. 안 받고 지금까지 내가 그런 짓을 안 합니다. 또 누가 말하기를 그거는 소금물을 해 가지고 우우 이래 뭔가 하면은 우우 이래 하면은 된다고 이래 해서 소금물을 해 가지고 또 하라 하는 것도 내가 하지 안했습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징계라.
내가 가만히 그라고 생각하니까 참 우리가 잘못된 걸 회개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 위해서 기뻐하시지. 우리 위해서 기뻐하시지. 또 무슨 간구한 것도 또 우리 위해서 기뻐하시지. 또 모든 것을 도고하는 것도 우리 위해 기뻐하시지.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당신이 받습니다. 이것만 당신이 받습니다. 감사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이렇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만이 당신이 받습니다. 이렇게 당신은 해 놓고 받을 것이라야 감사밖에 없는데 우리가 감사해야 되지 하는 거, 감사 이것이 우리의 모든 전 생활 가운데에 감사가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이고 감사 이게 제일 크다 하는 것을 내가 요번에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이래서, 그래 나는 목이 어서 틔워지기를 내가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그저 만족하시기까지 이거 목이 잠기도록 이것을 해서, 나는 그래야 이게, 아주 너무도 건망기가 있어서 고만 퍼뜩 잊어버리고 퍼뜩 잊어버리는 이런 인간인데 안 잊어버리도록 해 요것을 내 속에 박히도록 해 주옵소서. 그래 그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설교할 때는, 설교할 때는 또 이거 설교할 수 있도록 좀 해 달라고 그렇게 또 기도합니다. 설교하고 난 다음에는 또 회복되기를 내가 원합니다.
그래서, 내가 주일날 큰 죄를 지어서, 이래서 말하는 거마다 자꾸 양사방 전화는 오지, 그거 ○○○ 목사님 전화하기 때문에 ‘그거 목이 좀 아마 좀 잠긴 거 같습니다.’ 그래 내가 ‘죄를 지어서 목이 잠겼습니다.' 이 좀 전화해서 목 잠겼다 하는 사람 되면 나는 내가 뭐 수고하고 애써서 과로돼 잠긴 게 아니고 내가 죄를 지어서 잠긴 것이기 때문에 죄 지어 생겼다는 그 말을 자꾸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복음을, 나는 모릅니다. 내가 이거 뭐 성경보고 깨달아 가지고 내가 깨달은 것 아닙니다. 깨닫게 했는데 이 깨달은 것이 내가 지금, 이거 이단자 되는 것이 틀린 줄 알고 증거하는 자는 이단자가 안 됩니다. 옳은 줄 알고 증거하는데 그게 틀린 것이 그게 이단자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증거하는 것이 이게 참말로 내딴에는 꼭 옳은 줄 알고 내가 증거하는데 이게 틀렸다면 내가 이단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거 증거하는 것이 만일 모든 교계와 이래 대립적으로 이런 게 많은데 내가 깨달은 이게 바로 됐다고 하면은 이 시대의 선지자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것을 잘 살펴 가지고서 그래 하십시오.
내가 뭐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이나 말하는 것이나 또, 옛사람 새사람 이것은 다 성경에 있지마는서도 옛사람 새사람을 강조하는 이것도 제가 유별스레 말하기 때문에 조롱을 받습니다. 또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됐다는 이것도 주님이 그랬지 내가 성경보고 깨달아 가지고 한 것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옳다고 내가 믿고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이게 틀렸으면 그렇지요.
그러기 때문에, 항상 바울이 말하는 대로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아는 이게 바로 깨달아졌나 이게 어떠나 항상 이거 그저 늘 미결 중에 있는, 재판 중에서, 재판에서 미결 중에 있는데 다 끝까지 완전히 증거가 다 나오고 다 해서 끝까지 ‘됐다’ 해야 안심을 하지 그전에는 만날 뭐이 어떻게 뒤집어질지를 참 의문 중에 있기 때문에 미결 중에 있다 그말이오.
여러분들도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을 들을 때 똑똑히 듣고 깨달을 때에 똑똑히 깨닫고, 이거 좀 성령을 받으면, 성령을 받으면 또, 성령을 받았는지 마귀신을 받았는지 모르나 성령 받은 것은 여러분들이 알 것이라 그말이오. 성령이 하는 일과 마귀 하는 일이 현저히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새 방언을 말하는데 방언의 해석도 또 다르다 그말이오. 모든 사람이 방언 해석을 한 것은 뭐 은혜 받았다는 전부, 대개 그 사람들이 모두 교인 많이 모으고 이래 가지고 큰 교회를 시무하고 있는데 방언한다는 사람들은 그저 넬넬넬넬 하는 무슨 이래 그 무슨 방언인지 나는 모르겠는데 그걸 방언이라고 하는데 나는 방언의 해석을 성경을 보니까,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에 보니까 방언이 뭐이냐? 방언이라 하는 것은 한 나라 말로 했는데 그 말이 열 나라 사람이 들으면 열 나라 말로 다 그들에게 전달이 됐고 몇십 나라 말로도 다 전달이 됐으니까 이 방언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리를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 방언 은혜라.
또 하나님의 도리를 증거할 때에 다른 사람이 깨달을 수 있도록 증거하는 권위가 그것이 방언의 은혜라. 증거하는 은혜가 방언의 은혜라 자기가 들어서 깨닫는 그것이 방언의 은혜라 나는 이렇게 깨닫기 때문에 네빌네빌 하는 거와는 영 반대라 말이오.
반대니까 내대로는 성경을 보고 깨달았지마는서도 동지가 없어. 동지자가 없어.
여게 대해서 주장하는 사람 없고 전부 렐렐렐렐 하는 이것이 방언이라고 하지 이제 ‘그것이 아니다. 백 목사가 말하는 방언의 해석이 옳다.’ 이렇게 하는 동지자가 없다 그말이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없어. 이거 말하면 정죄받을까 싶어서 이 진영에 있는 사람들도 이 소리는 못 해요. 저 미국에 가 배워 가지고서 뭐 칼빈 선생이 말하는 것이나 뭐 그 미국에 배워 가지고 온 것은 이거는 유명하다 해 가지고 크게 자신 있게 말하지마는서도 저에게 배운 것은 자신 있게 말하는 동지들이 적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기를 원하는 것은 이거 찍해야 지금 중간반 지금 청년들 아직까지 미개한 청년들 이것들은 믿는 것 같은데 이것들이 또 믿어서 될 만 하면 나는 벌써 죽었을 터이니까 이 연결이 되면 좀 강하기 때문에, 연결이 없고 먼저 증거하는 사람은 죽어 버리고 뒤에서 하니까 만날 세상에는 의문이고 장 의문 이 문제는 끊어지지 안하고 있다 그말이오. 이것이 하나님의 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듣는 것은 아무나따나, 지난 주일에도 제가 오전에 한 시간 반인가 했고 오후에 두 시간을 꼬박 증거를 했는데 그 새사람과 옛사람에 대해서 증거했으나 여러분들이 똑똑히 들어 들었으니까 아무데 나가도 될 줄 아요? 들었으나 까먹을라 하는 원수들이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듣고서 나가서 밖에 가서 무슨 말을 하는 날이면 당장 다른 사람들이 이단으로 정죄해서 굉장할 것입니다. 왜? 그것이 지금까지 이 교계에 나오지 안한 말이라, 그 말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책임지고 들어서 확신을 가져야 되지 확신 안 가지면 이거 어떻게 됩니까, 되기를? 그래, 이 가르침을 알라면, 가르침을 이것을 확실히 알고 싶거든 가르친 대로 행해 보십시요. 행해 보면 여러분들에게 아는 증거가 있을 것이고 참되다는 증거를 받게 될 것이고 행하지 안하는 자는 항상 의문 가지고 있습니다. 행하지 안하고 요걸 지식으로만 받아 들인 자는 항상 그는 확신은 가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인제 진가가 언제 나오느냐? 세상에서 나오는 것은 환난밖에는 나올 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환난을 일으키면 하나님이 같이 해 주는 자와 제가 제끼리 저거끼리 하는 자와 인제 다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는 자는 그분이 ‘네가 나를 안즉 내가 너를 높이리라 네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너를 건지리라’ 했으니까, ‘환난 때에 너의 기도를 다 들어서 응답하리라’ 이랬으니까 그때나 표가 나지 지금은 표 나지 않습니다. 왜정 말년 때도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감옥에 갇히지 안하고 자유로 반대한 사람,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도 신사 참배 반대하고 자기 밑에 교인들도 하나도 신사 참배 안 하고 반대한 그런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도 있었어. 6.25때도 그랬고.
이러니까, 우리가 오늘에 어짜든지 이 진리를 자기 진리를 삼을라면 행해 봐야 압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양성원 학생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어느 강사든지 교수든지 와서 가르칠 때에 저에게 가르침 받은 거와 다를 때에는 고것을 저한테 말해 주십시오. 그라면 저도 또 새로 살펴 가지고서 그게 틀렸으면 고쳐야 되고, 뭐 틀렸으면 나 틀렸으니까 그라면 나만 그렇지 여러분들은 소용없다 하지만, 관계 없다 하지마는서도 내가 틀리면 여러분들도 거게 대해서 책임이 있습니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저한테 말해 줘서 그러면 내가 틀렸는가 혹 가르치는 게 틀렸는가 그걸 상고해서 바로 잡아야 될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