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02:12
의인의 행위
1982. 3. 14. 주후
본문 : 마태복음 25장 34절 - 41절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첫째로 주의할 것은 이 말씀이 기본구원을 가르친 말씀인지 건설구원을 가르친 말씀인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결정됨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과 행위는 정 반대로 달라집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이렇게 주님을 대접한 거라는 말씀은 여기 본문에 말한 대로 믿는 형제에게 한 것을 가르쳐서 직접 주님에게 하신 것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형제에게 하는 것이 우리는 육으로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을 수 있고 영으로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을 수 있는 그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것의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은 것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육체에 이런 어려움도 있고 또 심령의 어려움도 있습니다. 성경에 심령이라고 가르친 것은 영은 아니나 그 마음인데 신비한 영의 관계를 가진 마음들을 가르쳐서 심령이라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육을 표준한 말씀이라 하면 심령에 대한 것과는 정 반대가 되고 심령에 대한 것이라 하면 육에 대한 것은 또 관련이 아주 멀어지게 됩니다. 물론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된 사람이기 때문에 영의 문제가 육에까지 번져 나오고 또 육의 문제가 영에게까지 관련은 안 있지마는 어느 것이 표준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제가 깨닫는 대로는 이 말씀은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라 그렇게 저는 깨닫고 여러분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 여기 대접했다는 것은 믿는 형제에게 행한 것인데 형제의 심령은 상관치 않는 육의 대접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거 하신가 그렇지 않은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가르칩니다.
심령에 대한 말씀이니 심령은 그 외부적으로 육에게까지 미치지 아니하면 심령의 일이 잘되지를 아니합니다. 이러니까 육에선 육의 것은 관련이 있을지라도 심령 때문에 관련 있는 것이지 육 때문에 육에 관련된 것은 아무 여기에서 말씀에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그렇게 압니다.
또 오전에도 말씀했거니와 노아 때에 우리는 수많은 면으로 다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나가야 되는 것이 그때 성도들이나 지금 성도들이나 조금 차이는 있지마는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그때에 다른 도리를 지킨 그것은 아무런 물심판에 상관이 없었고 다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이 한 계명 지키는 것으로만 모든 흥망성쇠는 결정됐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도덕가도 있었을 것이고 절제가도 있었을 것이고 열심가도 있었을 것이고 인내가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는 방주를 안 만들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면이 결함이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방주 만들라는 그 말씀에 따라서 방주를 만들었으면 홍수 심판은 면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께서 구원과 멸망을 표준한 그 계명은 다만 방주 만들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멸망과 구원을 좌우하는 근거 조건으로 하셨던 거와 같이 불심판이 오는 말세 예수님 재림을 맞이할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그때와 같이 온갖 면의 교훈도 또 법칙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 다 말세 불심판에서 구원 얻고 멸망 받는 이 표준 계명이 안되고 이 표준 계명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것만이 표준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방편은 어떠한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이런 방편으로 서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다시 자기 건설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 하는 이 구원을 말씀하신 것인데 아무리 기본구원을 얻었다 할지라도 건설구원이 없으면 하늘나라에서는 제일 작은 자로 제일 영광 없는 자로 제일 능력 없는 자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반열에는 다 들어갔다 할지라도 인간과 인간의 차이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 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 차이가 있어 어떤 인간은 존귀한 자의 집에 짐승만도 못하고 어떠한 인간은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그런 영광도 있는 것처럼 하늘나라에 구원을 얻어 간 사람도 그러합니다. 그 수치와 그 무능과 그 천함은 하늘나라에 가지 안 했으면 그런 것은 당할 수 없는 터인데 하늘 나라 갔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그만치 차별 대우와 차이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공심판에는 누구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입지 안한 자로는 하나님의 공심판의 멸망을 벗어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만 공심판은 면할 수 있습니다. 택한 자들은 예수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공심판에서는 완전히 제거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대속하신 것은 공심판에 정죄가 되어서 대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은 두 번 심판할 수 없어 택한 자들은 공심판에서 어떻게 정죄나 상관을 하지를 못하게 되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들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대속받은 자들이 대속받은 자들로써 어떻게 행동했느냐 하는 그것이 구별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말은 예수님이 우리의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셔 가지고 우리를 구속하셨는데 네가 선지자 제사장 왕의 구속을 입기는 입었는데 이 구속을 얼마나 써먹었으며 이 구속이 너희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이 얼마나 효력 있게 역사하고 효력의 그 결과를 맺었느냐 하는 것을 심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여기 여섯 가지 이것만 가지고 따져서 멸망과 구원을 결정지었습니다. 마치 노아 홍수 심판 때에 다른 뭐 도덕이 천하에 제일이라 해도 그까짓 거 상관하지 안 했습니다. 자비와 긍휼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방주 안 만들었으면 홍수에 멸망 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세에는 어떤 면에 열중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사랑이 없으면 다 멸망 받습니다. 다른 면이 모자라도 이 사랑이 있으면 이 사랑은 모든 심판을 이기고 남음이 있습니다.
이 여섯 가지는 하나님의 구원 사랑을 말씀하신 것인데 지난 시간에도 증거 했지마는 제일 귀중한 것이 사랑이요 제일 나쁜 것이 사랑입니다. 인류를 죽인 것이 사랑이 죽였고 인류를 살린 것이 사랑이 살렸습니다. 첫째 아담 하와가 가졌던 사랑은 자체와 소속한 모든 자를 살렸습니다.
제일 악독한 것이 사랑이요, 제일 귀중하고 의로운 것이 또 사랑입니다. 제일 귀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을 점령을 하고 인간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첫째 아담 하와가 서로 죽인 이 사랑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게 복종을 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이용물이 되어질 때에 죽은 사랑은 살아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인간의 사랑이 주장되면 죽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사랑이 죽이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사랑과 연합이 되면 살리는 사랑이 되는가 그것은 인간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정반대입니다. 인간의 사랑을 가지려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적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려고 하면 인간의 사랑의 적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에게 완전히 정복을 당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소속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랑을 주권하고 이용할 때에 비로소 그 사랑은 살아나고 살리는 사랑의 역할을 수종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이웃을 향하여 봉사하는 것도 꼭 이와 같습니다. 죽이는 사랑에 속해서 봉사할 수 있고 살리는 사랑에 속해서 봉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죽이는 사랑에 속하여 봉사하는 것은 살리는 사랑에 속한 봉사와 원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둘이 나란히 둘 다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가 죽임을 받아서 정복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 사랑에게 정복을 당하지 않습니다. 인간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에게 정복을 당했을 때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대한 봉사하는 것 죽이는 사랑이 봉사하는 것은 그의 심령에 구원에는 상관없이 다만 고깃덩어리만 보고 봉사하는 것은 이것은 죽이는 사랑이 하는 것이며 결과는 하나님의 사랑과 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그 집에 있는 살림살이를 탈취하려면 그 집에 제일 힘센 자를 결박해야 그 다음에 탈취할 수가 있지 그전에는 하지 못한다 하는 말씀이 다 이런 데에 이런 것들에게 관한 말씀입니다.
어떤 대성받이는 아주 대성들이 함께 몰려 사는 그 대성들의 우애는 그 문벌의 단합은 굉장합니다. 그것이 강하면 강한 것 만치 교회가 앞섭니다. 그러기에 대성받이 속에 가서 복음을 전할라 하면은 힘이 듭니다. 교회가 잘 안 서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죽은 사랑으로 결합되어 단합되어 있는 그것이 강하기 때문에 산사랑이 거게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죽이는 사랑으로 견고해진 그 가문에는 그 가정에는 이산 사랑이 들어가기는 심히 어렵습니다. 왜? 적이 강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구를 심령에 관한 말씀이냐 육에 관한 말씀이냐 하는 그 말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이냐 인간 사랑에 대한 말씀이냐 하는 그 말씀입니다.
봉사는 봉사고 대접은 대접이지 다를 게 뭐 있겠느냐 하는 그것은 악령이 주장하는 모든 것을 혼합 혼탁시켜서 구별을 없게 하려는 악령의 큰 궤휼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육에 대한 봉사는 무시하는 것, 육에 대한 동정이나 희생은 무시하는가? 무시할 분만 아니라 적일 수도 있고 지극히 보배로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적이고 어떻게 하면 보배가 될 것인가 육에 봉사 화평 희생하는 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 하나님의 구원, 그 형제를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영원히 구원하기 위한 이 동기에서 이 목적에서 이를 위해서 역사 하는 것이라면 그는 대단히 보배로운 도구와 같은 것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좋은 농구를 가진 거와 같이 보배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에 대한 동기도 없이 목적도 없이 그를 위함도 없이 그 인간을 좋게 하든지 자기라는 인간을 좋게 하든지 어쨌든지 인간끼리 서로 상호 협조해서 좋게 하려는 이것은 인간을 하나님과 결합시키는 데에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대적이 됩니다. 아! 저 가정의 우애는 구원을 망치는 강적이 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 가문의 단결은 하나님의 구원을 강하게 방어하고 있는 천국의 무서운 강적 대적이 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것이 인간적인 화목, 인간적인 봉사, 육적의 그 모든 봉사 희생 화목하는 이 줄을 타고 하나님의 구원이 퍼져 나올 때에 그 모든 운동은 산 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르나 외부에 모든 육적의 관련인 좋은 점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목표로 두고 그걸 향하여 슬슬 밖에서부터 그것을 안으로 찾아 들어가는 운동이라면 이것은 다 산 운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나 따나 인간끼리 화친한다고 좋은 것 아닙니다.
봉사한다고 좋은 것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연약한 힘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힘껏 봉사를 하고 구제를 하고 희생을 합니다. 이 사람은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그에게 주어 그를 하나님의 구원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만 보고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하는데 이러니까 그 지방에서 아 참 예수 믿는 사람 위대하다 참 예수 믿는 사람이 좋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감화 감동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거기 어떤 부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부자가 있는 재산을 기울여서 봉사하고 희생하고 이렇게 모든 걸 다 구제하고 이렇게 합니다. 하니까 그 사람들은 그 지방 사람들은 마음이 갈 붙였습니다. 아 예수 믿는 사람만 아니라 안 믿는 사람도 이렇게 하는구나 그 사람이 하는 것보다 이 사람이 하는 것은 그 하는 양이 더 크고 많구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칭찬 돌렸던 것도 그것이 인생이 사는 참 도라고 생각했던 것도 다 그때에 말살돼 버립니다.
이래서 그 결과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을 막았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로 끌어 붙이던 그 사람의 운동은 완전히 밭에 밟혀 버렸고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로 끌어 붙이는 그 결과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그자가 하나님의 적입니다. 그자에게 저주가 가야 됩니다. 그자에게 진노가 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 분을 풀고 복수하실 것입니다. 그에게 복수는 하나님이 착수했으니 그 복수가 생각 못할 영원토록 세세토록 그 고난의 연기가 올라갈 것입니다. 여러분들,
다 같이 한 자리에서 인류애를 하고 있는데,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데 하나는 멸망으로 버려 두고 하나는 구원으로 데려갑니다. 두 사람이 봉사했는데 두 사람이 인자했는데 하나는 하늘나라로 데려가고 하나는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지는 속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리석게 천인 만인을 속여 마음대로 이용했다고 그 수단 방법 가지고 만유의 하나님도 그렇게 상대하고 취급했다가는 참 화약 지고 불로 들어가는 것이지 거기는 먹어 들어가지를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행위는 스스로 자기를 속인 것 밖에는 안됩니다. 진실함으로 해야 됩니다.
천주교는 교리적으로는 건설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파보다도 뛰어난 도덕과 자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니까 '우리는 다 성당에 다닙니다. 천주교 다닙니다.' '어떻게 해서 여기는 천주교 다 다닙니까?' '천주교에서는 하루 두 번씩 죽 배달을 줍니다' '여기 교회 다니는 사람 더러 있었지마는 거기 다니는 사람은 죽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다 죽 타 먹기 위해서 다 교회나 가지 안하고 이제는 다 천주교로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도 사랑이요 봉사요 희생이요 구제지마는 그 구제는 예수님의 구원과는 정 대립의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현저히 제 이 계명을 범하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교황이 말한 것이라면 신구약 성경 말씀과 꼭 같은 동등으로 정확무오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람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람이 주장하는 겁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 그 원 성경 그 성경 한 권만이 정확무호를 우리가 믿고 있는 것입니다. 번역 성경은 잘못된 번역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본 외에 사본이 원어로 사본이 많지마는 사본은 정확무오하다고 믿지를 않습니다. 원본 그 한 권만이 정확무오로 우리가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귀한 것일수록 가짜가 많습니다. 천한 것은 가짜를 만들지 않습니다. 귀한 것이라야 가짜를 만듭니다. 사랑이 귀하기 때문에 가짜가 많습니다. 예수교의 구원이 귀하기 때문에 가짜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의 해석이 귀하기 때문에 가짜가 많습니다.
그런고로 이름만 같다고 같이 보면 안됩니다. 같은 이름에 참된 것과 거짓이 있는 이것을 구별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어디든지 하나님 말씀 가르치는 대로 많이 배우면 된다 생각하는데 바로 가르치는 것은, 바로 가르치는 것은 귀한 것이지마는 잘못 가르치는 것은 인간에게 해독 중에 가장 해독이 큰 교훈이요 지식입니다.
부흥회 참석하는 것이 부흥회야 좋은 것이지마는 회 중에 제일 우리에게 복을 많이 주는 회도 성경을 가르쳐는 그 부흥회요, 인간을 가장 해쳐서 망치는 것도 부흥회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모든 잡지 소설 주석 그런 것들도 다 그러합니다.
귀한 동시에 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 여섯 가지를 말하는 이것은 심령에 대한 것입니다. 심령에 대한 것이 육에 대한 것까지 퍼져 나올 때에 원만한 효력을 얻을 수가 있고 또 육에서 시작했으나 실은 심령의 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도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심령의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고 심령의 것이 육의 것까지 번져 나와야 하고 육의 것만으로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고 육의 것이 심령의 것을 향하여 찾아가서 거기 연결이 되어야 비로소 효력을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표준한 것은 육의 것이 아니고 신령한 것입니다. 신령한 것이 없으면 육의 것이 필요가 없습니다. 신령한 것이 있으면 육의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정도로서 족합니다.
그러면 35절에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 이 주린 것은 심령이 배고픈 것을 가르쳐 말씀한 것이니 범위를 넓게 잡으면 많지마는 첫째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지 못해서 굶주린 자입니다. 이러니까 영감과 진리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것이 구원인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양식을 먹지를 못하는 자가 굶주린 자입니다.
이것을 먹이기 위해서 혹은 육체에 배가 고플 때에 밥 주는 것도 좋고 또 그런 면으로 동정하는 것도 좋지마는 이것을 목표로 이 동기에서 하지 안 하는 것은 전부 이것은 사람을 세상으로 끌어내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식인 주의 피와 살을 먹게 하고 구속받은 자가 구속받은 자로서 예수의 것으로 사는 이것이 양식을 먹는 것인데, 이렇게 하려고 하면 성경도 읽어야 되고 기도도 해야 되고 설교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마를 때에 마심을, 마실 것을 주었다'는 이 말씀은 그이에게 악령의 감화와 물질의 감화 인간 감화 온갖 더러운 정욕의 감화는 있지마는 성령의 감화가 없는 자가 목마른 자입니다.
성령의 감화를 생수로 비유한 것은 인생이 성신의 감화 받기 전에는 그 마음에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그 심령의 시원함이나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제가 원했던 돈이 아무리 수많은 자본으로 대재벌가가 되어도 돈 있으면 심령이 평안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있으면 있을수록 그이에게는 불이 붙어서 과할 것입니다. 더 고통이 심할 것입니다. 인간의 심령은 성신의 감화로만 시원함으로 시원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목마른 자에게 마시움을 줬다는 말씀은 그의 심령에 영감이 없는 빼빼 말라고 돈으로 병들고 권세로 병들고 자기로 병들고 저는 된 줄 알고 뒤로 자빠지는데 가련하기가 뒤로 넘어지면 죽을 그런 무서운 지금 함정이 들어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뒤로 저뻥하고 좋은 옷만 입고 비틀거리면 다 된 줄 압니다. 넘어가면 죽어 죽기 전에 꼬꾸라져서 겸손히 회개해야 되지.
' 아, 이 사람에게는 영감이 없구나, 악령의 감화가 들어와서 모든 면으로 삭득하게 조브랍게 자기 주관에서 날뛰고 있는 구나 어떻게 하면 여기에 이 영감을 접선시키고 영감 받을 수 있는 일을 할까 이 일에 도와 줄까, 내가 무엇으로서 이 일을 아이에게 도와 줄까' 하는 요것을 주님이 불심판에서 인정합니다. 그걸 줍니다. 네 딴 거는 가치 없습니다.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하는 이 말씀은 우리는 다 천성을 가는 나그네니까 이 천성 가는 사람 영접한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밖에 있는 자는 다 객지생활입니다. 예수밖에 있는 사람은 다 객지생활이요.
예수님만으로 영접하는 것이 이것의 나그네 된 자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무의무택의 인간입니다. 외로운 자요 아무 거처할 것이 없고 거처할려면 남의 집 밖에는 없는 자입니다. 자기 처소를 찾지 못한 자, 자기의 은신처를 자기의 안정처를 자기 집을 찾지 못한 자에게 자기 집을 찾아주는 예수 안으로 영접하는 이것이 나그네 된 자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 일하기 위해서 여비 없는 사람에게 여비도 줄 수 있겠고 이 일을 위해서 자기 집으로 초대해 가지고 잘 유숙시킬 수도 있지마는 이 목적이 아니고 했다면 그것은 다 소선이기 때문에 대선의 적이 됩니다. 하나님의 대 사랑 운동에 적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적이 무엇이냐? 인류의 이런 종류의 저런 종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이 여기 있다 하는 모든 미혹이 하나님의 적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어린양보다도 더 선량한 새끼양이라고 말했습니다. 새끼양 두 뿔 가진 새끼양. 땅에서 나왔기 때문에 도덕을 바탕으로 삼아 나온 자입니다. 공맹의 도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삼강오륜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예수님의 구속을 입으면 영원한 세마포 옷을 입게 되는 것인데, 예수님의 구속을 입으면, 한 시간 입었으면 그 사람의 하루의 한 시간의 생활은 무궁 세계의 자기 의복에 한 실 오라기가 될 것이고 베 한 오라기가 될 것이나 한 시간 예수님의 구속을 벗고 제가 제 주인이 되고 예수님의 것이 되어지지 안한 것으로 자유롭게 한 시간 살았으면 그 생애는 영원무궁세계에 자기가 입고 다닐 자기 의복에 얼이 같습니다. 한 오라기가 빠졌으니까 그 베에 얼간 것처럼 얼이 갔습니다.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인격에 병이 들어 예수의 구속을 받은 사람이 구속받은 그 인격이 병들고 아직까지 구속을 보지 못해서 만신창으로 되어 있는 그 병든 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료하는 이 인간의 병든 것을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육신의 병듦을 말한 게 아니고 사람 병든 걸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병을 고치신 것은 그 육체의 병을 고치시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열 문둥이를 고쳐서 보내고 난 다음에 한 문둥이만 찾아 와서 고쳐 나음 받은 한 문둥이만 와서 예수님에게 다시 찾아왔고 아홉 문둥이는 보이지 안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거는 헛일했다는 것을 발표해서 아홉 나은 문둥이, 나은 아홉은 어디로 갔느냐? 마음이 안타까워 원통해서 헛일했다고 말했습니다. 너는 잘하였으니 제사장에게 가서 네 상처 나은 것을 보이고 네가 성전에 깨끗한 사람으로 출입하라 하는 것은 허락해 줬습니다.
우리가 거창 집회에서 칠십 여명이 병이 나았는데 그 병 나은 일 큰 거 아닙니다.
병 나은 것은 큰 병원이면 하루에 완치 받아 가지고 나오는 사람도 아마 칠십 여 명되는 그런 병원도 있을 것입니다. 그거 큰 거 아니요.
그러나 큰 거 있는 것은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하신 대주재 만 왕의 왕이신 주권자이신 이분이 와 가지고 치료했다는 것이 큰일입니다. 이것이 중대한 일입니다.
내가 추워서 아슥 아슥하이 추워서 발발 떨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옷을 입혀준 그것보다도 일국의 왕이 대통령이 일부러 찾아와 가지고 보니까 옷을 벗고 있으니까 '야, 너 왜 옷 벗고 있노' 하면서 나한테 따뜻한 옷을 한 벌 입혀 주고 갔으면 일부러 나 찾아 옷 한 벌 입혀 주고 갔으면 그 옷이 귀중한 게 아니라 옷을 입혀 준 그분이 크니 그 분과 그 옷을 입은 사람과 관련이 있으니까 그 온 동리에는 그 사람을 멸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옷 한 벌 요걸 멸시 못하는 게 아니라 그분에게 옷 위에 그 나라에서 제일 권세자가 있기 때문에 멸시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격으로 치료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가 그 좀 잊어 버렸습니다. 무슨 병인지 조금 틀려도 이해하십시오. 아내는 자꾸 기침이 나 쌓고 이래 쌓는데 딸이 말하기를 와서 곰을 해 가지고 좀 어머니도 자시고 나도 주고 그래 하면은 그 병이 기침병인지 무슨 병인지 모르겠소. 어쨌든 간에 그 곰까지는 맞습니다. 그러면 몸에 영양실조라 그런 것이니까 몸을 도우면 괜찮을 것이니까 그래 하십시오. 이래서 과연 가 가지고 그래 하니까 이제 건강이 오고 그 기침병은 없어지고 이래 나았는데 예수님의 은혜로 병 나은 사람들 손 드십시요 하니 이것도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내나 그런 것 아니겠나 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 뒤에 저거끼리 앉아 가지고, 분명히 딸이 해 준 곰 먹고 병은 나았지마는 하나님의 은혜의 덕 아니겠느냐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느냐 해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병 나았다 하는데 손을 들었으니 어떤 집사에게 한국에 제일 가는 거기 전문 의사가 말하기를 '이것은 절대 한 달 동안에는 치료 안 된다. 보니까 한 달 동안에 희망 없는 희망이 없는 병이 한 달 동안에 완치가 됐기 때문에, 적어도 반년이나 걸려야 되는데 한 달 동안 완치됐다 하는 거 이거는 절대 있는 일 아니니까 이래 안심했다가는 큰 일 나니까 다시 그 심사한 그 기계가 노후에서 그런 것이니까 새 기계에 가서 새로 심사해라.' 일부러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주 이래 속기 쉬우니까 잘못된 그 사진보고 안심하면 안되니까 가서 새로 찍어라.' 새로 찍으니까 완전히 나았습니다.
이거는 불신자들이 나오고 불신자 과학이지마는 이거는 과학으로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이거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인데 그것을 목사는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나은 것이요. 의약으로 나은 것이 아니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았다고 손을 들고 그 증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착수하시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래 하신다는 것을 증거를 하고 영광을 돌리고 다른 죄인들을 그것 때문에 구원 얻도록 해야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그렇지 안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이렇게 목사님은 말하니까 목사님이 말하는 것은 억설이고 본인도 약도 썼기 때문에 하는 말은 진담이다 하는 그런 말이 있었더랍니다.
여기 칠십 몇 명이 병 나은 것이 다 그렇게 억지로 끄다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느냐 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냐 이런 것으로 병 나은 것을 가르쳐서 기적이라고 말한 것 아닙니다. 그래 놓고 저희끼리 쑥덕거리기를 칠십 명 나았다 하는 그거는 전부 아무 것이 곰 먹고 나은 그 말한 거와 같은 그런 종류다 봐라 야 내 써서 나았다고 한, 나 약을 썼기 때문에 하는 그 말은 정직한 말이요 옳은 말이요. 그걸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았다고 하라 하고 목사 말한 것은 목사는 그 억설이다.
잘 합니다. 그것으로 죽어 목사 말이 억설이 아니라 목사 말은 딱 들어맞는 정확한 말이요. 그 곰 먹고 나았는데 하는 그 말하는 사람은 거짓 뿌리요.
하나님의 섭리지 기적이라고 해서는 안 돼. 그게 하나님의 섭리야 섭리지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지 그러기에 자신이 거짓된 자는 모든 것이 다 거짓으로 보여지고 자기가 참된 자는 참된 것은 참되다 거짓 것은 거짓되다 이렇게 구별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왜 이 말하는고 하니 칠십 명 병 나은 것이 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집회에 같이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같이 하시는 것이 이것이 큽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썩은 인간과 같지 안 해서 당신과 가까이 있는 자는 똥이 묻어도 향이 묻었다 하고 자기와 대립된 원수에게는 향이 있어도 똥이 묻었다 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처럼 썩지 안 했습니다.
자기와 당신과 섭리 가까운 자의 그 죄는 오리 가까운 자에게 가면 바싹 타 죽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가까울수록 깨끗해야 되고 더 참돼야 되어지지 더 옳아야 되지 하나님과 가까운 자에게는 벌이 더 큽니다. 더 까다롭습니다. 더 깨끗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시내산에서 모세는 산만당까지 가도 안 죽었는데 아벨은 중턱 이상 오면 죽는다고 못 올라오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산 발치 더 들어오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산발치 거기 오면 다 죽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가까이 올수록 하나님은 그 빛이시기 때문에 어두운 것이 빨리 절단 납니다.
이렇게 병든 것을 하나님에게 기도해 나았을지라도 그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 그의 구원을 위해서 했으면 그 능력이 그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때는 나타날 것이고 이것을 그 사람의 구원인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이것을 착취하는 도구로 삼으면 얼마 안 가서 그 돈이 자기에게 화근이 되어서 망함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주변에서도 잘 보고 있을 것입니다. 돈이 없었으면 그들이 당하지 안 했을 것입니다. 또 이것을 자기의 권위나 자기의 영광으로 이용하면 그는 또 상당한 값을 자기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알려 인간을 구원하는 여기만 쓸 때에 하나님은 그를 책임지고 필요한 때는 또 다시 같이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고로 여기 병든 자를 찾아보았다는 말씀은 그의 신앙인격에 병이 든 것을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으로 건강한 자가 병드는 병은 인간으로 병드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건강한 자의 병은 세상으로 병드는 것입니다. 영감으로 건강한 자는 자기로 병드는 것입니다. 병든 자 자기 위주로 자기 주관으로 산 자가 병든 자이니 이것을 고치는 자 세상으로 병들어서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고 이 세상은 우리가 잠깐 지나가는 것인데 세상 위주로 세상 소망으로 사는 그 자가 병들었기 때문에 그 병을 고쳐주는 것이요.
하나님으로 전부 병든 건강한 자가 이 인간으로 병든 그 자가 병든 자 입니다.
이게 인격병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병입니다. 그것을 동정하고 고쳐 주려는 그 병든 것을 안타까이 여겨 치료할려고 하는 요것을 불심판에서 돌아보시고 이것을 드십시요. 무궁 세계의 요 인품만 씁니다. 요 인질만 씁니다. 요 사상만 씁니다.
요것만 보배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요 인물만 필요하지 돈이 뭐 필요 있소, 권세가 당신에게 얼마든지 있습니다. 요렇게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그 신성과 같은 인격성 요것이 하나님에게 필요합니다.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물론 진리 때문에 투옥됐을 때에 가서 방문하는 거 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진리 때문에 영감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됐기 때문에 방문하는 사람은 다 그래서 방문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옥에 갇힌 유형의 옥 그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도 그 사람의 그 인격 그 신앙인격을 방문하는 것인데 여기 옥도 그런 옥도 있지마는 그것이 아닙니다.
너를 옥에 가두려니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네가 거기서 자유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이 옥입니다.
무슨 옥? 자기에게 갇힌 옥, 자기에게 갇힌 옥, 자기 옥, 자기 옥, 사욕 옥, 모든 인간 옥, 세상 권세 옥, 온갖 욕심의 옥, 세상 지식의 옥, 행락의 옥, 취미의 옥, ....
언제 한번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그 사람을 다른 사업을 하다가 이제는 낚시 상점을 차려 놓고 낚시하러 다니는데 그걸 한다 이래서 내가 말하기를 '아, 이 감옥에 갇혔구나, 빨리 거기서 출감을 시켜야 되지 내비두면 죽는다 오래 있으면 죽는다' 낚시질하는 그 취미의 감옥에 갇히면 그것도 못 나옵니다. 일생 동안 가정이 망쳐져도 제가 낚시질하다가 구부러져 죽든지 그래 아니면 갈 기운이 없기까지도 낚시 취미 딱 던지면 기계 장치해 놓고 고기가 와서 딱 물어 가지고 착 지나가면 그것은 눈으로 보는 고 시각의 취미 폭 내려가 트리면 쪼그만한 고기가 빠다닥 들려 올라오는 그 시각에 취미 그것보다도 낚싯대 딱 들고 요래 가 있으면 고기가 와서 딱 물면 이 손에 까뜩 긋는 요 취미 요 신경말초의 취미 시각말초의 취미. 요 취미에 붙들려 일생 망치는 그것도 감옥에 붙들 자입니다.
신앙에 자유하지 못하고 요런 것에 저런 것에 붙들린 요것이 감옥에 붙들린 자들이기 때문에 요것을 보고 여기에서 해방시킬려고 저기서 해방시킬려고 이렇게 찾아다니는 그 자를 불심판에 그것보고 하나님께서 대우하십니다.
그러기에 주일학교 반사들 이제까지는 불신의 감옥 속에 들어 있는 학생들을 끌어서 주일날 나오는 것으로 자기네들 사명을 다한 것으로 해 가지고 열심히 구출했습니다. 그래도 그 일이 무효로 돌아가진 안 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나와 반사 선생님들의 모든 노고를 치하하는 그 열매가 맺어졌습니다.
우리는 그것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생각 요만치도 가지지 안 해. 어떤 학생이 다른 사람에게 못되게 유괴가 되어 가지고 석 달 동안 이 문제, 이 문제 때문에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그 문제가 여기 경찰서까지 그 문제가 돼서 올라가고 그것 때문에 억지고 고발당해서 가고 가고 한 것이 마지막에 여기 정보과에서 온 어떤 분이 와서 그 내용을 듣고 가 가지고 그 아이 유괴된 데 대해서 우리는 통장마다 통리 통반마다 모이는데 다 이 통지를 보내 가지고 미리 다 광고하게 하고 방송에도 곳곳에 하고 신문에도 내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 이상은 할 수 없다 하고서 아, 서부교회 그만치 주일학교 많이 모이는 줄 몰랐다고 이것이 그분들이 신문에 내 가지고 신문에 첫 주 났습니다.
이래 가지고 어떤 그 기사가 와서 '아, 영국에 이 신문에 났는데 여기서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나는 그 영국에 신문 난 걸 봤고 미국에서 여러 번 났고 났습니다. 그 세계 주일학교서는 한국에 있는 이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제일 많이 모이고 왕성됐다 하는 그것이 영국 신문에도 각국 신문에 많이 났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동을 구원할라 하는 이것도 내나 여섯 가지 여 들어간 것이니까 귀하지마는 그래도 그건 일부러 데리고 오는 것뿐이지 다른 면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외부적이기 때문에 '진실 되게 이제는 구원하는 일을 하자' 이래 가지고 몇 달 전부터는 그 학생들에게 오는 것을 첫째로 하고 그 다음에는 그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서 그 학생들이 이 진리로 자기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모든 미혹하는 동무들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을 따른 의인들을 살도록 이 일을 우리가 결실하자 하는 것으로써 모두 다 손들어 약속하고, 이러니까 일주일 내내 자기가 자기 마음 속에 넣고 위해서 기도하고 해서 시간 없는 사람은 몸은 못 가지마는 마음으로 늘 가서 심방하고 마음으로 가서 심방하는 게 효력이 적지마는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나님이 감동 받아 가지고 성령이 가서 이와 같이 심방해 주도록 자기 자기가 그 마음에 몸으로 심방하지 못한 간절한 마음으로써 마음이 가서 심방할 수 있도록 꿈에도 심방할 수 있어.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꿈을 꿨는데 어디 가서 뭐 어떻게 학생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고 꿈에도 그 꿈이라 꿈에도 학생들 꿈 마음이 가서 심방하고 성령이 가서 심방하도록 이렇게 해서 구출하자 하는 이것을 우리가 단합해 가지고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절 이게 문제입니다.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는 이것이 우리가 주의해서 볼 만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미래사를 말합니다. 앞으로 그럴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 형제의 심령 구원을 위해서 힘쓴 것이 막 바로 주님을 대접한 것이라는 것을 설교도 많이 하고 성경도 우리가 많이 읽었고 또 모든 형제를 두고 저부터는 이 강단에서 이것을 주장을 합니다. 강하게 주장하고 외칩니다. 얼마나 똑똑히 알고 외칩니까? 똑똑히 알았지마는 똑똑히 알고 형제의 심령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건 주를 위하는 것이라 이건 주를 위하는 막 바로 주를 위하는 거 막 바로 주를 위하는 것이다.
에누리 없고 바로 직접 주를 위하는 것이다. 이렇게 했으면 나도 주님 앞에 가서 볼 때에 이렇게 땅 위에서 한 것이 참으로 주님을 위한 것이 그렇게 됐다는 것을 안 놀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됩니다.
아, 세상에서 그렇게 형제의 심령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주를 위함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들었고 그렇게 알고 하기는 했지마는 형제에 심령에 대한 그것이 정말로 주님에게 이렇게 했다니 꼭 이 일 했을 줄 몰랐다 다 놀랠 것이다 말이요. 여러분 다 놀래. 다 놀래. 아무리 자기가 그렇게 세도 그렇게 그런 줄은 다 몰랐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해 이것이 막 바로 주님에게 하신 이 사실인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원히 모시고 살 주님 만 왕에 왕이신 제일 높으고 제일 권세 있고 모든 것이 주인이 되시고 모든 것에 주재가 되시는 그분 삼 사 년 오륙 년 권세 잡고 있다가 그 다음에 내 놓을 그 권세자에게도 친밀을 가지려고 애를 쓰고 두꺼운 관계를 가졌으면 복이 있다 권세가 있다고 하는데 그 나라는 변동이 없어. 변동 없는 그 나라. 그분과 자기와의 관계 맺어지는 관계는 오늘 못난 자에 대해서 하는 것이 다 그 관계를 맺어지는 것이다. 얼마나 쉽습니까? 얼마나 쉬운 거 가지고 얼마나 귀한 것이 마련됩니까? 없어도 무능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 길로 무궁세계 가서는 새로 털끝만치도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이렇게 어려운 무한의 관계 이 관계를 오늘에는 지극히 작은 것으로 천한 것으로 약한 것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을 믿는 게. 이것을 믿는 게 믿음입니다.
저 거창서 해방 직후에 가주에 어떤 그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해방 후에 이박사가 그 거창으로 소식을 전해서 가주에 아무 것이가 살아 있느냐? 조사해 올리라. 살아 있다 하니까 그분을 한번 초청을 해서 모셔 올렸어. 이러니까 이 정권 때는 거창서는 그분이 제일 대가리입니다. 그분의 말이라면 모든 게 다 될 줄 알고 모든 사람들이 그만 거기 한번 올라갔다 오니까 마구 이래 가지고 그 동리도 그만 같은 성받이도 모든 사람이 겁을 내. 아이구 아무것이 집 아나이까? 모두 참 요새 아이들 말로 알아 기어. 어떻게 알아 기는지.
그랬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이박사가 독립운동 하러 다니면서 그 지방을 지나갔는데 배가 고파서 못 간다 하니까 그분이 만나 가지고 식사를 대접하면서 아, 우리나라를 위해서 참 애를 지고 독립 참 거석하다면서 노비를 조그매 주고 대접한 그것이 뒤에 등극하고 난 다음에 그렇게 그분을 찾아 가지고 사은을 했어.
여러분들 시골 가면 흰죽다랭이, 흰죽다랭이 배고픈데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 배고픈데 흰죽 한 그릇 끓여준 그것을 얻어먹고 뒤에 가서 좋은 논을 줬는데 그 논빼미가 그 흰죽다랭이라 하는 논빼미가 있어.
그것보다 오늘은 이렇게 주님이 소자 하나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요. 소자 하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 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니라" 이랬는데 아, 말로 그렇지마는 좀 그렇기야 그렇지마는 뭐 얼마나 효력이 있을까 했는데 모든 의인들이 가서 보고 이렇게 막 바로 그 주님에게 한 이것이 된 줄은 다 모두 놀래서 언제 그렇게 했으며 언제 그래 다 놀래지 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요걸 믿는 게 믿음입니다. 믿으십시오. 믿으십시오. 얼마든지 자기를 존귀케 하십시오. 이분을 얼마든지 오늘에 사귀십시오. 얼마든지 친밀히 하십시오.
얼마든지 그분으로 밀접하도록 오늘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입니다. 전능한 나라입니다. 다시는 변동 없는 나라입니다. 이것을 보기 때문에 땅 위에 많은 문제가 있어도 모두가 다 경한 문제요 사소한 문제라.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사소한 형제 하나에게 대한 그것이 막 바로 주님에게 무궁토록 대하는 그게 되기 때문에 의인들이 할 말 못하고 의인들이 하기 싫은 어리석은 십자가의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토마스 목사가 우리나라에 와 가지고 모르는 민족들에게 죽이는 그 도끼 앞에서 책 한 권을 주고 거기서 생명을 달게 바친 것이다 이런 것을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이요. 그런 분들이 영광 가운데서 영원한 세계서 나타나서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다 볼 것이요. 자기 욕심만 가지고 세상 것 잘났다고 고것만 하고 살던 자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천하고 작은 자로 영원히 있는 것도 우리 눈으로 볼 것이요.
그런고로 보는 것으로 살지 안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놓은 이 약속을 보고 살아야 되지 눈에 보이는 이걸 가지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