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아래 있음


선지자선교회 1985년 9월 30일 월새 

 

본문 : 로마서 6장 12절-14절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을 때 잘 구별해 들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들은 말씀 한  마디도 뽑지 말고 다 기억을 해 가지고 그 모든 말씀이 다 똘똘 뭉쳐서 한  진리를 가르치도록 이렇게 돼야 됩니다. 한 진리를 가르치도록 이렇게 해서 자기  마음이나 자기 몸이나 정신이나 뜻이나 이 모든 것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돼  가지고 그렇게 신앙생활 해 나가야 되지 마음은 이쪽으로 가고 뜻은 저쪽으로  가고 몸은 또 그리 가고 자기 감정은 이래 가고. 또 진리는 배우니까 이리 가라  하고 저 진리는 저리 가라 하고 이렇게 혼합이 되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못  합니다.

 혹 이번에, 집회 가운데에 자기가 신앙생활 하던 그 신앙생활 그 줄기에 도움이  되고, 줄기에 도움이 되고 또 가던 길이 더 확고히 알아져서 더 똑똑해지고  도움이 되면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사람이지만 그만 얼떨떨 해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될지 과거에 신앙생활 하던, 쪽 연결 줄이 있었는데 그만 그 줄을  잊어 버렸어.

 금굴, 금을 파는 금광에 가 보면 금광에 금줄이 있습니다. 금줄이 있는 데 그  줄이 계속 졸졸 있으면 다행인데 혹 어떨 때는 조금 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또 그 금이 눈에 보이게 있는 게 아니고 돌 속에 들어 있어서 뭐 한 가마니 되는  돌을 그것을 갈면 그저 금이 쌀 내끼만침 나오거나 그렇습니다. 그 돌을 갈면.

그러니까, 그게 겉에 발려 있지 않기 때문에 금이 있는 돌인지 없는 돌인지 잘  모르는데. 파 나가다가 금줄을 잃어 버려 놓으면. 줄을 잃어버리고 딴데  어만데로 팠다 말이오. 자꾸 왔으면 나중에 파고 난 다음에, 파다가 금이 있나  없나 한번 그것을 갈아 봅니다. 갈아 보면 금이 없어. 그러면, 금줄 잃어 버려  놓으면 그만 그 사람 광부가 낭파 납니다. 새로 그걸 찾으려 하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야 되고 그게 밑으로 내려갔는지 위로 올라갔는지 올라서 실패합니다.

 그러고 뭐 또 열대 지방에 밀림 같은 그런 데는 그 숲이 참 하늘에 닿다시피 꽉  절려 가지고 뭐 길도 잘 없고 뭐 이런데 맹수는 가득 찼고 맹수가 가득 찼는데  거기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놓으면 그만 그 길이 그 길 같고 그 길이 그 길  같애서 길을 잘못 들어 잃어버려 놓으면 그 사람 맹수의 밥이 됩니다. 잃어버려  놓으면. 그것이 어디 자꾸 간다고 끝이 있으면 하지만 자기가 며칠을 간다 해도  끝이 없는 그런 넓은 광야인데, 뭐 맹수는 가득 찼지 가다 보면 그만 맹수 밥이  되고 만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밀림에 구경도 하고 또 연구하는 사람들도  거기에는 안내자를 단단히 세워 가지고 돈을 많이 주고 능한 안내자를 세워,  가지고 가야 되지 안내자 없이 가다가는 죽습니다. 그만 가다가 길 잃으면 못  찾아. 꼭 우리 신앙 걸음이 그와 같습니다.

 악마 뭐 마귀는 뭐 빈틈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꽉 들어찼는데, 우리가 길이  뭐이냐 하면 이 신구약 성경 이 말씀이 길인데, 그 예수 믿는 이치를 이렇게 꼭  가지고 이렇게 꿰뚫고 그저 길이 똑똑히 발견을 때에는 그 길로 암만 힘을 써도  갈 길이 있고, 그저 힘을 써도 요래야 되겠다 하는 그걸 똑똑히 알고 그렇게  전력을 기울여서 구원을 이루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지만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놓으면 어떻게 할 줄을 모릅니다.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그걸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신앙이 방종해집니다.

 요새 교회들 가운데에 그런 교회들이 많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아, 어디로  가야 될지'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될란지, 자기가 예수를 한번 잘 믿고 싶기는  잘 믿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잘 믿는 것인지 그걸 모르니까 잘 믿기  위해서, 어디 불파가 있다고, '거기에는 성신이 뜨거운 불 같이 임한다.' 성신  받으니까 어떤 사람은 배가 뜨끈뜨끈하고 어떤 사람은 가슴이 막 불이 붙고  뜨끈뜨끈하고, 또 어떤 사람은 팔뚝이 막 불에 구운 것같이 뜨끈뜨끈하다 이래  쌓아니까 '아이구. 거기에 가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그리 돌아다니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래 가 봐야 그거 뭐이 됩니까?  이래 놓으니까, 그리 갔다가는 또 헛일이라. '에 이, 여기에도 안 됐다. 아무  데는 지시파가 있다 하는데, 하나님이 네가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지시파가  있다 하니까 그 지시파에 가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또 지시하는 그런 파가  있습니다. 눈 감고. 이래 가만 감고 있으면, '이래 가야 됩니까 저리 가야  됩니까? 이거 이 일을 이래야 됩니까? 저래야 됩니까? 하면 '아 이래라' 가르쳐  주는 그게 지시파인데 또 지시파가 있다 말이오.

 또 지시파로 돌아다니다. 가, '아, 지시파도 불파도 소용없다.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은 거기에 방언파'라고 있다. 방언파가 있으니까 그리 가야 예수를 잘  믿는다' 이래 가지고 또 방언파로 가 봅니다. 방언파로 가니까 자기는  방언하려고 애를 씁니다. 방언하려고 애를 쓰니까 그 사람이 나중에 방언을  합니다. 방언하는 그게 참 성령이 방언 주는 방언이 아니고 마귀가 주는  방언하게 됩니다. 자꾸 자기가 데랠랠랠 이래 하려고 애를 쓰면. '뭐 방언  없으면 이거는 지옥 가는 사람이다. 이거 구원을 못 얻는 사람이다' 이러니까,  방언 하려고 자기도 애를 이래 자꾸 이래 쓰면 나중에 가서 방언 할 때에 따라해  가지고, 다른 사람 보니까 랠랠랠랠 이래 하니까 그만 자꾸 이라다 보니 자기도  그만 나중에 그만 뭐 랠랠랠. . 이래 가지고 뭐 하는 거 같고 자꾸 그라니까 또  힘이 나고 신명이 나고 좋습니다. 그래 가지고 방언파 제가 평생 해 봤자 구원은  못 이룹니다. 기본구원은 있지만 건설구원은 못 이룹니다.

 또 이거 신유의 뭐 은혜라고. '신유의 은혜, 이거 하나님 표적이 나타 나는  신유의 은혜 있는 그리 가야 된다' 이래 가지고, '어디로 가자 어디로 가자  신유의 은혜로 가자' 그래 가지고. 뭐 그 사람들이 전부 사기꾼들이오. 다.

 ○○○씨가 신유의 은혜받았다고 이래 가지고 그때 전국 교회가 거기 안 뛰어  들어간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목사들 거의 다 들어갔습니다. 목 사들 중에는  ○○파 목사가 제일 적게 들어갔는데. ○○파 목사가 적게 들어간 것은 ○○파  목사가 뭐 실력이 있어 그런지 그거 나는 모르겠는데. 다만 '우리 교파가  제일이지 우리 교파 외에 딴 교파는 없다' 교파 관념이 아주 강하게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 안 들어 가고 다른 교파는 거의 다 갔습니다.

 그랬는데, 그때 뭐 말 나기를 '그저 어떤 병이든지 오면 다 낫는다.'  설교하는데 한쪽 머리에 있다가서 '아, 나는 나았습니다. 나는 앉은뱅이인데  나았습니다.' 또 옆에서 말하기를 아. 이 사람이 앉은뱅이인데 나았다 그 또  증거를 합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혹해 가지고 야단지기는데, 나중에 보면 병  나은 게 하나도 없다 그 말이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짜고 있어요 짜고 있어  가지고 '아. 이 사람이 병 나았다' 그러면 옆의 사람이 있다가 '아. 그 사람이  뭐 병이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이 사람 누가 아는 사람 있나' '아, 우리 마을  사람입니다. 우리 마을 사람인데 내나 앉은뱅이로 있다가 지금 나았습니다.'  이래 쌓아니 혹했는데, 전부 저거끼리 단체를 해 가지고 한 집회에 한 몇백 명  되는 사람들이 딱 단합해 가지고 여기 똑 야바위 노름 할 때, 야바위 노름 하는  거 봤어요? 나는 그거 처음에, 그런 걸 몰랐는데 해방 직후에 부산, 그때에  버스가 참 귀한데 버스를 타고 내려오니까, 차가 좀 쉴 때 되니까 거기 가  가지고 뭣이 이렇게 뭐이라는데, 막 돈을 이 사람이 따 먹고 저 사람이 따 먹고.

보니까 번연히 알만한 건데 그거 보니까 그거 가지고 그만 돈 걸고 이 사람이 따  먹고 저 사람이 따 먹고 이래 가지고 '아 돈 벌었다' 이래 쌓아며 또 나가고 또  그 다음 놈이 다가서 그 이래 쌓는데, 그래 내가 옆에 가만히 보니까 조금  눈치를 알만해요. 이래서 어떤 사람이 하나 하는데 보니까 그 사람이 억울하게  돈을 떼여요. 보니까 돈을 이래 가지고 돈을 떼이는데, 그라니까 뭐이 사람이 뭐  시비를 붙고 이러니까, 시비 붙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옆에 있다가 자기가  잘못해 놓고, 자기가 돈 따먹을라고 그랬으면 돈 줄 일이지 뭐 그래 쌓느냐고.

나중에 보니까 전부 저거 편이고 하나 생태이를 끌어 대 가지고 그 사람 녹히고  녹히고 이래요. 나도 그때 처음 봤어. 그래서 그때는 젊을 때라서 이놈의 새끼들  이런 일이 어디 있냐고 이래 좀 내가 막 야단을 지기고 이래 좀, 이래 좀  거석하니까 옆의 사람이 웃어. 옆에서 웃으며, 하. 그거 원 그라는 건데 뭐  그라십니까? 그게 야바위 노름이라 하는 겁니다.' 이래. 그래 내 야바위 노름을  알았어. 이것 모양으로 세상에서 그런 짓을 합니다.

 어떤 권사님이라든가 뭐 무슨 뭐이라든가 이라는데, 우리 교회 교인 하나가  있는데, 물으니까, 아. 그분은 여기 암이 있으면. 유암이면 유암을 손가락을 탁  대고 꽉 찌르면 유암에 쑥 손가락이 들어가는데 그래 가지고 학 골어첼다고. 꽉  찔러서 손가락으로 확 끌어내는 게 환하게 보인다고 이래 야단인데, 순 거짓말.

성경에는 그런 일이 없어.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때에 병이 낫고,  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해서 성경 말씀을 가르쳐서 믿음이  생겨질 때에 그때에 낫고 그렇지 어디 성경에 손가락으로 찔러 가지고 뭐  암병이면 암병 무슨 뭐 늑막염이면 고름이 나오고 이래. 손가락으로 빼낸대요.

이래. 그래 가지고 날 수가 있다가서 사진 보라고, 이거. 이 사진 보라고. 그래  내가, 사진이 있고 뭐 사진이 있고 책이 있다더나 뭐 어떻고 하기 때문에.

나한테 그라기 때문에 '나는 그거 안 봐. 볼 필요가 없어. 볼 필요가 없고 그거  봐서 필요 있는 사람이 필요해 보지 필요없는 내가 뭐 볼 게 뭐있는가? 이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속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이 굉장히 많이 모아들어요. 모아드는데, 어째 모아드는가  이래 보니까 이렇게 놀음을 해 가지고 자꾸 이래 가지고 '나도 병 나았다. 나도  병 나았다' 자꾸 이런 거짓말로 성한 놈이 자꾸 병 나았다 하는 거라. 이러니까.

병 낫우기 위해서 돈을 냅니다. 돈을 마구 내. ○○○씨도 그 사람 큰 돈  벌었습니다. 그때 한 번 집회 하면 돈 나오는 걸랑 냅두고, 돈 나온 게 이렇게  나와 가지고 광고를 하는데, 광고하는 그것도 또 항상 그 광고라. 그래 돈 나온  거 이래 가지고 광고하고 또 얼마 나왔나 이래 나가고, 이래 가지고 했는데,  거기에 다 걸려 들어가 가지고, 한 번 집회 하면 금이, 패물이 큰 말로 한  말씩은 나온대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 막 갑자기 큰 거부가 안 됐습니까?  거부가 됐는데, 거부 된 그 돈을 가지고 천년성이니 이래 가지고 오만 수단 방법  다 해. 가지고 돈을 주 모았는데 그 사람이 지금 이제 생활이 곤고합니다. 여기  지금 여기 전도관 이거 있는 거는 이름을 뭐 몇 번이나 갈고, 지금은 천부교라고  이라는데, 그 재산은 아들이 톨톨 털어서 다 털어 먹어 버리고 뭐 지금 이제  천년성이니 뭐 그런 공장이니 그런 게 없습니다. 많이 절단 났습니다.

 이런데 이거 사람들이 자꾸 유혹을 받아서 이리 저리 흔들립니다. 옳은 말 하면  안 듣고 삐뚤어진 말은 잘 듣소. 그래 돈 모아 가지고 얼마든지 오는 사람은  그만 밥을 공으로 먹여. 자기 밥 값 내는 사람은 내고 안 내는 사람은 뭐 일  년이고 이태고 그만 거기서, 밥 잘 먹지, 자꾸 가르쳐 쌓아니까 뭐 그 소리 듣고  이래 뭐 자꾸 찬송 부르며 이라지, 또 '지금 나을 때가 안 됐으니까 좀 있다  낫는다 낫는다' 하니까 행여나 나을까. 또 공밥 먹고 또 그런 데 있는 사람은,  거기 있는 사람은 못쓸 사람만 주 모은다 말이오. 쓸모 있는 사람 뉘가 공 밥  준다고 거기 있을 수가 어디 있겠소, 있기를? 쓸모없는 그런 것들만 주 모아  가지고 자꾸 이래 한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거기에가 신문에 난 데는 보니까 뭐  경기도 뭐 포천이니 포태니 하는 그런 지방이 있는데 거기에 뭐 경치가 좋은가  그런 아주 미신의 마귀 도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오. 이래 가지고 얼마나 많이  모았는지 사천 명 모여 가지고 있는 데도 있고 뭐 천 명 모여 가지고 있는 데도  있고 모두 있는데 그라다가 사람을 산 매장을 해서 그것이 수사에 걸려 가지고  이라 그 이러니까 또 이제 그걸 정부에서 금지 해 버리니까 못 하고, 있는  환자를 또 다른 데다가 또 넘깁니다. 이거 지금 이거 좀 이 자를 말을 거냐 그  아, 좋다고. 맡아라고. 이래 가지고 이리 저리, 뭐 팔아넘기는지 그냥  넘기는지는 모르지만 이래 가지고 날뛰는 이 거짓부리 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거 왜 그러냐? 그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정통 신학자들에게 책임이 다 있어서  심판은 인제 신학자들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왜? 바른 길을 가르쳐 주지  안하니까, 바른 길을 가르쳐 주지 안하니까 어느 길로 가야 될란지 그걸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여긴가 저긴가 이래 자꾸 이래 가지고 헤매이고 날뜁니다.

 제가 금정산에 그때 있을 때에도 그 위에, 자기는 문둥인데 나았다고 이라면서  뭐 이적 행한다고 이래 가지고 야단을 지겨서 그때 또 한참 그라다가 한 달인가  얼마 있더니만 그만 다 탄로가 나가지고 가버렸습니다. 요새 또 금식  기도원이라고 거기도 동래 가 가지고 야단을 지기는데 한 달에 오십만 원인가.

알아보니까, 뭐 광고를 내기를 연보가 얼마 나고 얼마 나와 가지고 뭐 십 몇  억인가 주고 이거 샀다 이라더니만 가서 알아보니까 한 달에 오십만 원씩 월세를  내고 있어요. 월세 한 달에 오십만 원 월세를 내고 있는데 그 월세가 안 나오는  거라. 인제. 월세가 처음에는 냈지만 안 나와서, 일 년 기한인데 아마 그 기한이  다 돼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월세가 안 나오면서, 그래 내가 슬그머니 가서 그래  보니까 '아. 요새 어찌 됩니까? 뭐 수지가 맞습니까?' 이러니까, 그러니까 '예  요새 좀 별로이' 환자들이 잘 안 들어온다고 이라면서, 자꾸 그라면서도 또  이제, 좋다고 자랑을 해요. 그러면. '혹 그러면 다른 사람 이 그거 이양 받을  사람이 있으면 이양 받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러니까 어디 마땅한 데 있으면  그만 넘기고 지금 서울로 도로 올라가야 된다고. 그래도 이제 이거는 한 달에  계약을 딱 오십만 원씩 기한을 얼마 해 놓고 해 놨으니까 꼼짝 못 하고 그래  있는 모양이라. 아마 좀 있으면 그 금식 기도원 그것도 없어질 겁니다.

 이런 모두 유혹들을 받는 것은 그것은 전부 욕심에 끌려 다 그래.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이 되기 쉽다 그거요. 예수 믿는 길을 딱 가르쳐서 예수 믿는 이치를  쫙 배워 가지고 그대로만 지금 하면, 이대로만 하면 뭐 걱정 할 것도 없고  그대로만 자꾸 하면. 그대로 힘만 쓰면 얼마든지 되는 건데 그만 길을 잃어  버렸다 말이오. 이래 믿어야 되나 저래 믿어야 되나 뭣이 이치를 잘 모르면 잃어  버려지는 것 모양으로 깜깜, 마음이 깜깜해지는 것이 심령이 또록또록해서  이렇다 저렇다 모든 게 환하더니만 그만 심령이 깜깜해져 가지고 이런지 저런지  그걸 모르고. 몰라 놓으니까 어찌 믿을지를 모르는 그런 사람 되기 싶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아예 교인 쳐 놓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그런 교인은 못쓸  잡탱이 교인으로 아예 작대기 그어 놔야 되지 그 까짓거 상대할 게 없습니다.

그저 기도원에 많이 돌아다니고 하. 는 교인이면 그 교인은 그만 못 쓸 교인으로  그래 알아야 돼요.

 이번에 우리 교회서 집회를 했는데, 여러분들이 혹 길을 잃어 버렸는가 싶어서  그랍니다. 여기서 이제까지 가르칠 때에는 하나 가르치면 그것을 꼭 끝을 맺어서  그 이치를 확실히 깨닫도록 이래 했는데, 그만 ○목사님 그 설교에는 좀 이런  제목에 하나 떠 내 놓고 또 여기에 내놓고 자꾸 많은 제목을 이래 내놓으니까  그것을 다 해석을 못 하고 이래서 좀 얼떨떨했는가 싶어서 그런 주의의 말을  합니다. 지난 주일 오전에는 그 집회 한 것을 간추려서 말씀했어. 간추려서  말씀한 것은 여러분들이 어찌 할꼬 그걸 잘 잡지 못할 것 같애서 제가 간추려서  그렇게, 여러분들이 길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해 가지고 그렇게 간추려서 말해  줬었습니다. 주고. 오후에 설교했는데 오후 설교 한 데서 여러분들이 좀 또 잃어  버렸던 길을 바로 찾았을지도 모르겠고, 그랬는데, 그날 오후 설교한 그 설교에  연결한 설교를 지금 말합니다.

 12절 보십시오. "그런고로 너희는" '너희는' 하는 거는 우리 믿는 사람  말입니다.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죽을 몸이라  말은 우리의 이 몸뚱이 이것은 한 번 죽어야 할 몸뚱이입니다. 죽어야 할  몸뚱이가 죽어야 할 몸뚱이가 이라면 살고 저라면 죽고 하는 그런 지금, 기로  가운데에 있습니다.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그러면 우리 몸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중생된 것 아닙니다. 중생된 거 아니라. 영은. 우리 영은  죽을 영입니까 영원히 안 죽을 영입니까? 죽을 영으로, 죽을 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죽을 영이라고. 그러면, 영원히 안 죽을 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예. 영원히 안 죽을 영입니다. 그러나 백 목사 몸도 죽을  몸입니다. 백 목사 몸도 죽을 몸이라. 중생되지 안했기 때문에. 이제 성화된  부분은 그것은 기능은 안 죽고 있지만 몸은 죽을 몸이라 말이지요.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왕노릇하지 못하게 한다 그 말은, 죄가  왕노릇하면. 그러면. 왕이면 그 밑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복종해야 됩니까  대항할 수 있습니까? 대항 못 하지요. 그러면, 죄가 왕노릇한다는 말은 죄가  왕노릇을 해서 죄한테 복종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왕노릇이라 그랍니다. 죄가 너거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몸의 사욕, 욕심은 두 가지 욕심으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성신의 욕심이요 하나는 사욕입니다. 성신의 욕심 외의  거는 전부 사욕입니다. 사욕은 인간 욕심이라 말이요 성신의 욕심은 하나님의  욕심이라 말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욕심 아니면 인간 욕심. 인간 욕심 아니면  하나님의 욕심 둘 중에 하나입니다.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우리 이목구비수족 말이오. 입이나 눈이나 귀나 뭐 이런 것 다, 이목구비 수족.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불의의 병기라 말은. 죄 짓는 도구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죄에게 드려서 죄가 사용 하도록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너희 심신을 말입니다.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같이 죄 짓지 말고 의의  병기로 살라 그 말이오. 죄 짓지 말고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에게 네  모든 이목구비 수족의 전신을 다 드려서 '너희 지체를' 너희 모든 이목구비 수족  모든 그 지체를. '의의 병기로' 의의 병 기, 의를 행하는 도구로,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러면 사람이 예수님과 같이 살 수 있다 그말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렇게 예수님의 지체와 같이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죄를 안  지을라면 안 지을 수 있고 죄를 이길라면 이길 수 있고 의를 행할라면 의를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예수님과 같이 그렇게  살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렇게 살아라. 자, 이렇게. 이렇게 살고 싶은 사람  죄의 도구가 되지 말고 의의 병기 의의 도구가 되고 예수님과 같이 그렇게 죄  짓지 안 하고 거룩하게 깨끗하게 온전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이래 살고 싶은  사람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네. 우리가 다 살고 싶기는 살고 싶은데.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라고 하니까 됩디까 안 됩디까? 자, 되는 사람 손 들어  보이소. 하고 싶기는 하고 싶은데 되는 사람하나도 없네요, 그러니까. 되는 사람  하나도 없어 되는 사람 없다 그 말은. 다는 안 되지만 조금씩 돼 나가는 걸  여러분들이 보겠지요. 여기에는 조금씩 되는 게 아니라 다 된다 했습니다. 다  된다 했습니다.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 다음에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죄가 우리를 주관 못 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면 예수님과  같이 죄 안 짓고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죄 그놈이 우리  주관해서 못 사는 것이지 '주관치 못하리니' 주관치 못한다 말이오. 주관 못  한다 그 말이오. '못 하리니' 어찌 못 하느냐? 그 다음에 이제 진리가 있습니다.

 '이는' 왜 죄가 너를 주관하지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이  성구가 난해절입니다. 이 성구가 해석하기가 어려워서 이 성구를 바로  해석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이걸 바로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에 있는 이  성구가 다 이거 그만 난해절이고 의문 중에 있어 사람이 어떻게 죄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의롭게 살 수가 있고 죄 안 짓고 살 수가 있겠느냐 다 그렇게 안다  말이오.

 그런데, 죄 안 짓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 죄 안 짓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느냐? 그것은 너희가, 죄가 너희들을 주관하지 못하 게 되는 것은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는 연고다. 법 아래 있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법 아래 있다 그  말은, 법은 하나님의 율법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율법. 이 신구약 성경은 전부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율법인데,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율법 아래에 있지 안하고 그 말이오. 법 아래 있지 않다는 말은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지 않다,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그러면 신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법인데 이 법 아래 있지 안하고,  그러면 신구약 성경이 우리에게는 상관없다 말입니까? '법 아래 있지 안하고'  그러면, 신구약 성경을 내가 지켜야 하는, 내가 지켜야 하는 내가 이 하나님  법을 지켜야 하는 이 법에게 매여 있지 아니하고, 법에게 매여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니라' 은혜 아래 있다 말은 공짜배기 아래 있다 그 말이오.

공짜배기로 받는 공짜배기 아래 있다.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은혜 아래에 있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이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서 우리는 법적으로  심판적으로, 또 하나님의 계약적으로 우리가 대속을 받았습니다. 대속을  받았는데, 영은, 대속받은 것을 영에게 그만 공짜배기로 다 줬습니다. 이 대속을  영에게 다 줬어. 그러기 때문에. 영에게 다 줬기 때문에 영은 이 공짜배기  대속을 다 입었습니다. 다 입었으나 우리의 이 몸은 말이오 이 위에 몸, 늘 몸  말하지 안했어요? 몸, 몸을 말하지 안했습니까 몸 또 '욕심' 하는 거 보면  마음도 다 들어가. 몸과 마음 요거 두 가지를 말했다 말이오. 몸과 마음 두  가지를 말했는데, '너희는 죄로 죽을 몸을' '죄로 죽을 몸을' 하는 거는 죄로  죽을 육신을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지금 죄 아래 있으나,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다 입었고 이 몸은 대속의 공로를 입지 못했습니다. 법적으로는 입고  있고. 또 계약적으로는 입고 있고. 또 뭣 적으로 입었다 했어? 셋인데. 예?  심판적으로는 입고 있고. 이래 입고 있지만 실상은 못 입고 있다 말이오. 실상은  입고 있지를 못해. 실상은 입고 있지를 못하는데 지금, 실상으로 입고 있지  못하는데 실상으로 입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지금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상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죄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죄의  도구가 되지 말고 의의 도구가 되어서. 죄 짓지 안하고 의롭게만 사는 의의  도구가 돼 가지고 의만 행하고 살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해라 그렇게 할 것은,  네가 힘만 쓰면 죄가 너를 주장하지 못하게 된다. 왜 주장하지 못하게 되느냐?  네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네가 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는 지켜야 되는데,  하나님 율법을 지키기는 지켜야 되는데 이 율법을 네가 지켜야 되는 그런 네가  아니고, 하나님의 율법을 네가 지켜야 하는 그런 네가 아니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하나님이 대신 지켜 주시는 그런 입장에 네가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것도 참 어려운데,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없이 했고  의롭게 했고 하나님과 화친하게 했고 이렇게 한 것을 영은 단 번에 공짜배기로  입혀 줬지만 이 심신이라 하는 것은 입혀 주지 아니하시고 입은 영하고 이  심신하고 둘이 합작을 해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죄의 도구가 되지  안하고 죄를 짓지 안하고 의롭게 살고, 죄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을 우리 중생된 영하고 우리의 마음하고 몸하고 이 기능이 합해 가지고  의의 병기로 살고 죄의 병기로 살지 안하고 죄가 주관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관하도록 이렇게 할라면 할 수 있는 우리들인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할라면 할 수 있다 네가 할라면 할 수 있다 말은, 뭐라고 말했는고 하니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그 말은 할 수 있다는 말이오 할 수 없다 말이오?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랬으니까 죄가 주관, 절대 죄가 주관 한다  말이오 주관 못 하게 할 수 있다 말이오 없다 말이오? 이게 이렇게 꼭닥스럽게  이걸 똑똑히 알아야 이게 되지는데, 뭐 그때 그만 훌렁훌렁하이 이래 버리면  아는 거 같지만 속에 물으면 한 내끼도 모른다 그 말이오.

 그러면 여기에 나타난 말 간추려 말하면. 우리의 이 심신의 이 모든 심신을  죄가 주관하지 못하고 의롭게 살아라. 너희들이 죄 짓지 말고 의롭게 살아라.

이렇게 살라고 하면 죄가 너희들을 주장하지 못하게 된다.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주관하지 못하게 된다 말 아닙니까?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랬으니까,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했으니까 주관 못 한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이 말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가서 읽어 보면.

우리가 죄를 안 지을라면 안 지을 수 있다 말이오? 없다 말이오? 네 죄를 안  지을라면 안 지을 수 있다 말이오? 없다 말이오? 안 지을 수 있다 말이오. 안  지을 수 있다 말이오. 의롭게 우리만 살라고. 의의 병기로 의롭게 살라고 하면,  하나님께 드려서 의롭게 살라고 하면 의롭게 살 수 있다 말이오? 없다 말이오?  있다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 안 지으려면 안 지을 수 있고 의롭게 살라면 의롭게 살 수  있는 그런 실력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 있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왜 다 안 들어? 있는 사람만 손 들어 봐요. 죄를  이길라면 이길 수 있는 실력 있고 의롭게 살라면 의롭게 살 수 있는 그 실력이  자기에게 있는 사람 손 들라 그 말이오. 뻐뚝 들어 봐요. 차차 많아진다.

놓이소. 그런 실력 있어요? 정말로 있어요? 죄 안 지을 실력이 있어요? 의롭게  살 그런 실력 있어요? 없어요. 네? 죄를 이긴 사람은 천하에 하나도 없습니다.

죄를 이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 예? 중생된 영이 있어도 영이  탄식하는 거 이번에 로마서 8장에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인 우리까지도 탄식한다  했는데, 그러면, 그 탄식하는 탄식은 누구 탄식입니까? 예? 중생된 영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 탄식 하는 문제는, '몸의 구속을 기다림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몸이 죄 안 짓고 살도록 하시 위해서 중생된 영이 그렇게  탄식을 해도 안 됩니다. 탄식을 해도 안 돼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죄 안 짓고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의롭게 살 수가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죄 값으로 죽는 것인데 인간이 죄를 안  지을 수 있다 그말은 사람이 안 죽을 수 있다 말과 같은 말입니다. 사람은 죄를  안 지을래야 안 지을 수 없고 의롭게 살래야 의롭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죄 안 짓고 의롭게 살라면 살 수가 있습니다. 있습니다.

있는 그거는 뭣 때문에냐?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안하고' 너는 그 율법을 네가  지켜야 되는 율법을 네가 지켜야 되는 네가 율법지킬 책임을 짊어지고 네가  율법을 지켜야 되는 그 책임자가 돼 가지고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니라' 은혜 아래 있다 누가 이 죄를 대신 짓지 못하도록, 의롭게 살도록  그렇게 대신해서 줄 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입니다. '너희들이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너는 공짜배기로, 대신 공짜배기를 해 주는 그런 은혜를 입을.

공짜배기로 죄를 이기고 공짜배기로 의를 행할 수 있는 그런 소속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은혜로 죄를 이기고 은혜로 의를 행하고 이러니까. 은혜로 죄를 이기고  은혜로 의를 행하고 이러니 그 은혜로 행하는 것은 누가 행하는 것입니까? 누가  행하는 것이오? 그것은 내나 우리 구주요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한다, 주관하지 못하는 그 이유는, '이는'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법 아래 있지 안하고" 네가 하나님의 법을 네가 지켜야 될 자로  있지 안하고. 하나님 법을 네가 지켜야 될, 법을 네가 책임진 자로 있지 안하고,  율법을 네가 책임진 자로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 다른 이가 책임을 져  줬기 때문에 너는 공짜배기로 받는 그런. 은혜 아래에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은혜 아래에 있으면 이것은 누가 죄 짓지 안하도록 의롭게 살도록  그렇게 해 준다 말입니까?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해  주시면, 하나님이 해 주시면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해  주시니까 뭐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죄  안 짓게 해 주시고 의롭게 살도록 해 주시는 데. 이거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니 우리는 팔장끼고 가만히 있어야 됩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해 주신다  했습니까? 어떻게 하면 해 준다 했소?  들어 보십시오. '그런고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왕노릇 못 하게 한다고 우리가 못하게 할 수가 있소? 우리는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할라면 할 수 있다 말이오. 왕노릇이라 말은 최종 주권을 말하는 것인데,  주권으로 하지 못하게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우리는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자기 몸의 사욕 자기 몸의 사욕, 식욕, 물욕,  명예욕, 권세욕, 또 정욕, 모든 안일욕, 사치욕, 행락욕 이거 전부 사욕  아닙니까? 사욕이지요 이 사욕을 '사욕에 순종치 말고' 사욕에 순종 안 하려고  한다고 안 할 수 있습니까? 사욕에 순종 안 하려고 한다고 안 할 수 있소 없소  사욕에 순종 어떻게 안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안 할 수 있소? 예? 예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이제 알기는 아는구만. 네, 사욕대로 안 살라면 안 살 수가  있습니다. 안 살라면 안 살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우리가 안 살라면 안 살 수  있다 말이오. '사욕을 순종치 말고' 안 할라면 안 할 수 있다 말이오.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 드리지 말고' 우리 몸을 죄의 도구로  드리지 안할라면 안 할 수 있다 말이오.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예수님같이 그 말이오. 예수님은 죄 짓지 안했어요.

예수님은 의롭게 살았어요.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같이, 부활하기 전에도 죄 안  지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같이. 이렇게 우리는 깨끗하게 살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이걸 믿어야 돼요.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의만 행하는 그런 의의 의만 행하는 의의 도구가  되도록 해라. '의의 병치로 하나님께.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못 하리니' 어찌 그러냐?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니라' 법 아래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 있다. 너거가 그 법을 책임지고 너거가 지킬 것이 아니고 다른 이가 대신  지켜 주는 그런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된다 했습니다. 그러면, 대신 지켜  주시니까. 대신 지켜 주시니까 우리는 대신 지켜 주심을 받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받을 수가 있습니까? 대신 이 모든 율법을 다 지켜서 법을 하나도 어기지  안하고 법을 완전히 지킨 자로 법을 완수한 자로 내가 되는 데에는 내가 지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대신 지켜 주시 기 때문에 이 법을 완수한 사람으로 살 수가  있고 완수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완수한 사람으로 주님이 대신 지켜 주시도록  하는 데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자,  주님의 십자가를 믿어야 된다. 하는 그 대답이 바로 됐습니까? 바로 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틀렸어. 그거 빵점이야, 빵점.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다고 되는 거 아니야 그게.

 이 받는 방편을 위에 말해 놓지 안했소? 위에 말해 놓지 안했소? 죄에 드리지  말아라. 죄가 너를 주관하지 못하게 해라. 하나님께 드려 의의 병기로 살아라,  자, 이러니까. 이렇게 하려고 하면 우리가 반쪽 힘 들이면 됩니까 전력을 다  기울여야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죄 안 짓고 의롭게 살라고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이렇게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러면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전심전력을  기울인 그 힘 가지고 우리가 죄를 이기고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 힘으로. 못 산다 그 말이오. 못 삽니다. 그러면.

우리가 못 살면 누가 사는가? 주님이 대신 해 주시는데. 주님이 대신 해 주님을  받는 데는 우리의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우리 전심전력만 다 기울이면. 우리  전심전력을 다 기울였으니까,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 가지고 죄 안 짓고 의롭게  살았으니까 죄 안 짓고 의롭게 산 것은 그것은 누구 힘으로 살았습니까? 우리  전심전력을 다 기울이니까 죄 안 짓고 의롭게 살았으면 그 의롭게 살고 죄 안  지은 것은 은혜입니까. 우리 힘으로써 한 것입니까? 어떻게 은혜라?  이러니까 범벅 타령이라. 이거 도무지 말을 구별해 안 듣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는 앞으로 여러분들이 환난 다. 실컷 이겼다고 하는데, 과거에 말이오.

6.25때도 어떤 목사, '하. 뭐 인민군이 어때서?' 이겼다고 말 하는데 내가  보기는 하나도 못 이겼어. 전부 다 졌어. '아, 그거 뭐 문제가 있는가요? 그  사람들 문제 없는데. 떡 만나 가지고 아, 수고하십니다. 그 말 한 마디만 하면  괜찮은데' 자, 인민군 보고 수고하십니다. 했으니까 졌소? 이겼소? 수고  했습니다. 하니까 저거 편 아니야? 벌써 그 사람은 굴복한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야 마귀가 그거 뭐 말할 거나 뭐 있는가? 실컷 져 놓고 그 말 해. 내가  그때 그 말을, '그것은 진 겁니다.' 하는 그 소리를 내가 못 했어요. 못 한  거는. 나는 그때 하나의 전도사요 또 그는 목사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을 못  하고 내가 단지 말하기를 '뭐 인사하면 그 사람들, 아. 수고하십니다.

찬성하는데. 찬성하면 그 사람들이 뭐 반대할 거 뭐 있습니까?' 이래만 하고  말았는데 그래도 그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거 같애. 예수 믿는 사람 이래  덩더꿍으로 듣기 때문에 이겼다고 하는데 나중에 가 보면 전부 다 만판 져  버렸습니다. 거기 다 홀켜 다 들어가 버렸어.

 자기 힘으로 다 전심전력을 기울인다고 해 가지고, 전심전력을 기울인 다고 해  가지고 죄를 이길 자가 있습니까? 죄 이길 자 없습니다. 어떤 의지가라도 어떤  절제가라도 죄를 이길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 자가  없습니다. 전심전력을 기울여도 안 됩니다. 안 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된다 했으면 전심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됐으니까 너거 힘으로 됐다 이럴 건데 왜  은혜로 했다 합니까? 왜 은혜로 했다 하요? 이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우리가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해 주시도록 그것을  간구하는 것이 되고 은혜로 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우리 준비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 하고 은혜로 해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받을 수 있는  그 준비한 것이요 받을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갖추는 것이지 그것 가지고 죄를  이기는 것은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가 그대로 행하면, 그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우리가 지켜 행할 수 있어요 없어요? 어제 배우기를 뭐라고 배웠어요?  신구약 육십육 권 도리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하신 그 말씀은  우리에게 하라고 한 말씀이기 때문에, 하라고 한 말씀이니 우리는 다 행할 수  있습니다. 다 행할 수 있는데 그 행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힘으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전심전력을 기울여 행하면 우리 행하는 것은 죄를 이기거나  의를 행하는 것은 털끝만치도 못 합니다. 죄를 이기거나 의를 행하는 거는  털끝만치도 못 합니다. 우리가 죄를 이길라고, 의를 행하고 죄를 이길라고 애를  쓰면, 우리의 힘을 다 기울여 애를 쓰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가지고 돕는  거기서부터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는 일이 이만침, 눈꼽째기만치 도왔으며  눈꼽째기만치 이길 수 있고, 주먹덩이만치 도왔으면 주먹덩이만치 이길 수 있고,  집동만치 도왔으면 집동만치 이길 수가 있지, 죄를 이기는 거는 순전히 하나님의  힘입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힘이오. 의를 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힘이 우리를 도와 가지고 이 일이 되도록 하는 데에는 우리의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찍해야 그분이 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그 과정이 된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자, 죄를 이겨서 하는 것은 그것은 유한한 것입니까 무한한  것입니까? 멸망받을 것입니까 영생할 것입니까? 죄를 이기는 것이나 의를 행하는  것은 그것은 영생할 것입니까 가다가 죽을 것입니까? 그거 영생할 것이라.

그러면, 그거는 완전한 것입니까 불완전 한 것입니까? 완전한 것이라. 그러면,  우리 힘에 완전한 힘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기에, 순전히 우리 구원은  하나님께서 새로 창조해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와 가지고 되기 때문에 마치  비유컨댄 뭐로 장생골서 비유했습니까? 장기짝으로 비유했어, 장기짝으로.

하나님,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의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지  우리 이룸으로 하는 것 아니라 그말이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이게 얼마나  알기 어려우냐 하면, 이것이 주석에, 여러분들이 ○○○목사님 주석이든지 자꾸  주석을 자꾸 허어 봐요. 주석을 읽어도 여기에 대해서 없다 그거요.

○○○목사님 주석은 내가 못 봤지만 다른 주석은 봤는데 그걸 여러분들이  그것도 한번 찾아보십시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거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아래 있다  이거는 다 알지만, 이 은혜 아래 있다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아래에 있다는  말인데, 이 죄를 이기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아래에 있다는 그 말로서 다  되는 게 아니고,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들은 인간이 못 하는 것을 하나님이 다  대신해서 해 주시는 그 소속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전심전력만  기울이면, 전심전력 기울이는 것은 하나님이 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그 간구에  지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소원하는 그 소원에 지내지 못해요. 소원 라면,  소원하되 그저 지나가면서 '해 줄라면 해 주고 말라면 마십시오' 그런 거, 또  '뭐 해 주면 좋지 또 안 해 줘도 좋고' 이제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우리가 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라 그 말이오.

요라면 하나님이 해 주신다 말이오. 그러면 죄를 이기는 것이나 의를 행하는  것은. 실지로 이기고 의를 행하는 것은 인간 힘으로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은혜로 되는 것이라 말이오.

 그는 은혜로 되는데 너거가 의의 병기로 살도록 그렇게 힘을 써라, 그러면,  언뜻 보면 우리가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하면 우리 힘으로 되는 것같이  보여지는데, 그 다음에, '이는 너희들이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연고라' 이렇게 말하는 이것 성구에서 말해 놓은 건데, 이것을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많은 논단이 있었지만, 많은 논단이 있었지만 이 은혜 아래 있다는 이것을  ○○○목사님이 그걸 가지고 해석을 하려고 자꾸 이렇게 애를 쓰다가, 애를  쓰다가 그 확실한, 쾌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은혜 아래 있다고만  했지 예수님이 우리가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우리가  전심전력을 이래 기울이면 요만치 올라가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으로서  받을 수 있다 전심전력을 기울이면 은혜로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다 하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것을 잘 깨닫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실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면 망하는 것도 있고 다 절단 나는  것도 있는데, 하나님 말씀 실행하면 그 실행을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다 실행할 수 있는데. 실행하는 거 우리가 행할라 그 하면 하나님이 행하게 해  주시기 때문에 실행합니다. 실행을 합니다. 실행과 축복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따로 있습니까 같습니까? 실행과 축복은 따로 있어요. 실행을 했는데 축복을  세상에서 주는 것도 있고 실행 했는데 축복은 하늘나라 가서 주는 것도 있어.

그러니까, 당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주신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신구약 육십육 권 도리는 다 실행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실행할 수 있다. 어떻게 실행하는가? 주님이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거짓말 하신 분이 아니고  또 우리에게 안 될 일을 시키지 안 하기 때문에, 하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하려고  달라들면 된다. '땅아, 모든 식물을 내라. 바다야 모든 바다 속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내라' 바다 제까짓 게 뭘 내며 땅이 뭘 내겠습니까? '내라' 하신 분이  낼라고 할 때에 낼 수 있도록 하셔서 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되라' 하니까 그대로 됐다 말이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구약 육십육 권의 도리를, 이거 명령이니까  이대로 행해라 했으니까 우리가 그거 행할 수 있습니다. 행할 수 있는 것은,  말씀하신 그분이 전능하신 분이요. 그분이 신실하시고 책임지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와 같이 하라고 했는고로 우리가 그와같이 하려고 하면 당신이 우리만  달라들면 해 주신다 그거요.

 홍해 바다로 건너가라 한 것은 당신이 전능이기 때문에 건너가라고 했고  건너가라고 하는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이 건너가라 했으니 안 될 걸 시키지  않는다. 될 걸 시킨다. 그러니까, 우리가 홍해를 건너갈 수 있다' 믿음으로  건너가니까 홍해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믿음으로 건너가니 건너갔는데. 믿음으로  건너간 그 건너간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 건너갔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너갔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면,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한 것은. 홍해 바다를 건너가라고 말씀하신 그분이 책임지고 건너가게  했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신구약 성경 말씀은 '이대로 행하라' 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이  책임지고 하라 했기 때문에 우리만 하려고 달라 들면 된다 그 말이오. 하려고  달라 들면 되는데, 우리 힘으로 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려고 달라  들어서 하면 책임진 그분이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한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힘  이상의 것은 그분이 인계해 가지고 다 되게 하기 때문에 된다 그거요.

 이걸 믿는데, 이걸 그만 잘못 하면 다 잊어 버려 버리고. 벙벙해서 다  잊어버리고 이 줄을 잃어버리면 헛일이라. 요번에 그만 집회 하는 가운데서 이  줄을 혹 여러분들이 잃어버린 사람이 있는지, 이 줄을 더 강하게 잡은 사람이  있는지, 요거 참 잃어버리면 그만 줄 잃어버리면 그만 신앙생활 못 해요. 이랄까  저랄까 뭐 어떻게,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만. 이렇게 해야 된다는 요게 없으면  안 돼. 그렇게 알고 그대로 우리가 힘써 해야 하나님이 거기에 맞춰서 해 주신다  그거요.

 어제 오후에 한 설교를 지금, 하나님이 해 주신다 하는 것을 밝히 또 증거하기  위해서 이 성구를 지금 택해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 행할 수 있다.

너희들이 다 이래라 이래라, 죄가 너희들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해라 어찌  주관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가?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안 하고 은혜 아래  있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그것을, 법 아래 있지 않다 말은  법을 네가. 네가 법을 책임지고 이 법을 네가 책임지고 살 사람이 아니고 이  법은 주님이 대신 책임졌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이 대신해 주시는 그 은혜  아래에. 너는 대속 아래에 있기 때문에 된다. 하나님이 대신해서 해 주시기  때문에 된다 그 말이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 은혜 아래 있음/ 로마서 6장 12절-14절/ 850930월새 선지자 2015.12.14
1795 은혜 아래 있음/ 로마서 6장 12절-16절/ 851001화새 선지자 2015.12.14
1794 은혜는 준비와 충성으로 받는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87073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4
1793 은혜로 얻는 우리 준비/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0123토새 선지자 2015.12.14
1792 은혜베풀 때와 구원의 날/ 이사야 49장 8절/ 850726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4
1791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1절-26절/ 841114수야 선지자 2015.12.14
1790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1절/ 830706수야 선지자 2015.12.14
1789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7절-9절/ 841114수새 선지자 2015.12.14
1788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1절/ 841118주새 선지자 2015.12.14
1787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1절/ 841117토새 선지자 2015.12.15
1786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6절/ 841113화새 선지자 2015.12.15
1785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1절-9절/ 841110금새 선지자 2015.12.15
1784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1절-26절/ 841111주전 선지자 2015.12.15
1783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1절-26절/ 1984. 11. 11.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15
1782 은혜의 댓가는 감사/ 사도행전 3장 1절/ 800514수새 선지자 2015.12.15
1781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5절/ 841112월새 선지자 2015.12.15
1780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2절/ 841111주후 선지자 2015.12.15
1779 은혜의 댓가는 감사/ 시편 136장 1절-26절/ 1984년 23 공과 선지자 2015.12.15
1778 은혜의 때/ 이사야 49장 8절/ 85092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5
1777 은혜의 말씀/ 사도행전 20장 32절/ 801003금새 선지자 201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