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길

 

1981. 10. 19. 월새

 

본문: 마태복음 16장 24절 - 26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지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군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4절에 "나를 따라 오려거든"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여기 "아무든지"  라는 것은 불택자나 택자나 다 말하는 건 아니고 택자에게 한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택자로서 주님 가서 계시는 하늘나라에 가서 살 준비를 할려거든 "나를  따라오려거든" 준비를 할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러면 주님이 가서  계시는 그 곳에 갈 준비를 할려고 하면 세 가지 있어야 되는데, 하나는 자기  부인해야 되고 또 하나는 주를 따라야 하고 또 하나는 십자가 지고 가야 하고 요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주님 가서 계시는 곳에 살도록 돼 가지고 있는 거 있고 가서살 수도 있고  살지 못할 것도 있고 아직까지 미결에 있는 거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에 가서  살기로 이미 변동 없이 결정이 되어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결정되지 못하고  미결에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에 말씀하는 것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이 세 가지를 해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 조건부를 붙인 것은  미결에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하고 이미 결정되어 있는데 대해서 말씀하신 것  아닙니다.

그러면 가기로 결정되어 있는 것은 어떤 것이 가기로 결정됐는가? 이것은 중생된  영은 가기로 결정이 됐습니다. 중생된 영은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고 천하가 다  달라 들어서, 피조물이 다 달라 들어서 못 가구로 해도 안됩니다. 이거는 벌써  하늘나라에 가기로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뭐이 돼 가지고 있는고  하니 우리의 이 형체가 예수님 재리하실 때에 살아 있는 사람이든지 죽어 있는  사람이든지 다 부활을 합니다. 택한 자들은 다 부활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영과 육의 형체 이 두 가지는 하늘나라에 가서 살도록  이미 결정이 됐습니다. 이거는 변동을 못합니다.

이 결정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주 하나님께서 주님의 공로로 인해서 이것을  결정을 지웠습니다. 그러기에 중생도 우리가 알기 전에 중생이 됐습니다. 또  부활도 우리가 예수님 재림때에 부활하려고 애를 쓸 필료도 없고 알기만 하면  됩니다. 알고 부활한다 하는 것을 알고 믿고 있으면 됩니다. 또 안 믿어도 부활을  합니다. 이러니까 예수님 재림 때에 부활에 대해서도 우리는 하나도 관심 가지지  안했는데 우리도 알기 전에 중생되고 중생된 자가 때가 되면은 예수님을 믿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만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야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고 하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말하는 것은 '이 미결에 있는 이것을, 이 세  가지 조건을 통과해야 이 미결되어 있는 이것이 결정이 되어진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미결되어 있는 것은 어떤 것이 미결되어 있는 것인가? 영 육,  영도 이미 결정됐고 육의 형체도 결정됐는데 육이라면 마음과 몸, 둘을 합해서  육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은 영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 둘을 합해서 육이라고  말하는데, 육의 이 형체는 예수님 재림 때에 부활하지마는 이 육의 기능, 육의  기능은 이 세상에서 하나 하나가 부활을 해야 되지 부활을 하지 안하면  하늘나라에 가지를 못합니다.

육의 기능이라면 예를 들면은, 어떤 사람은 세상에 나 가지고 자기의 세상적 기능  세상적 기능을 많이 육성시켰고, 어떤 사람은 세상적 기능을 하나도 육성을  시키지 아니한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적 기능을 육성시켰다 말은 그 마음에  모든 지식이나 지혜나 또 경험이나 체험이나 이런 것을 많이 해서 그 사람이  아주 그 학에 대해서 학문에 대해서 많이 노력을 해서 학문의 기능이 그 마음에  마음에 기능으로서 한 사람은 이 노력 안했으니까 학문에 대해서는 깜깜하게  무엇 아무것도 모르는데 학문을 아는 기능이 하나도 없다 말이오. 이 사람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학문에 대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하나 말할 때에 한 사람은 어학을 공부해서 칠십 몇 나라나  이런 많은 나라의 어학을 공부해 가지고 그 마음이 어학을 다 알고, 또 그 입이  어학에 대한 기능을 받아서 말을 하려고 하면 통화를 하려 하면 이 발음이 잘  된다 그말이오. 발음이 잘 되는데, 이 사람은 마음의 기능으로만 공부해서 영어를  영어 단어를 이렇게 입술을 내도 안하고 자꾸 속으로만 암기로 외워놨단 말이오.

암기로 외워 놨으면 그 다 단어를 알기는 알지마는 이것을 막상 통화를 하려고  발음을 하려 하니까 혀가 안 돌아가고 안 듣는다 그거요. 그러면 알기는 아는  말이지마는 말을 엉뚱한 말이 돼지고안 된다 거요. 말이 안되는 것은 이 혀  이거는 몸의 기능인데 몸의 기능이 숙달되지 안해 그렇고, 또 마음의 기능은  숙달이 됐기 때문에 알기는 알고 있고 기억도 하고 있고 외우기도 있고 다 안다  말이오. 그러나 한 사람은 거기에 어학에 대해서 노력을 하지 안했고 공부를  하나도 안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어학에 대해서 뭐 그 글로 써 가지고 모음  자음을 그것도 모르지, 또 한 단어도 모르지, 자기를 죽일려고 썼다 하더라도  그걸 모르지, 살린다고 해도 모르지 말이오. 알지도 못하고 또 혀로도 또 놀리지  못한다 거요.

그러면 다 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은 노력을 하니까 이 말에 대한 기능이 심신의  기능이 아주 숙달돼 있고, 한 사람은 마음의 어학에 대한 기능은 자기 나라 말망  알았지 딴 나라 말은 전혀이 모르고, 또 자기 나라에 산 사람도 굴에다 가둬  놓고서 이래 같이 삼십 세 되도록까지 가만히 길러 놓으니까 몸둥이만 커가지고  굴에서 앉아서 자꾸 이카는 이것만 숙달됐지 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 듣는다  그말이오. 그거는 그 기능 숙달이 안돼 그런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으로 영이 중생됐고 또 우리 몸이 이거 부활할  것이지마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기능을 하나도 살려내지를 못했다 말이오.

살려내지를 못하고, 이러니까 기능은 하나로 부활하지를 못했어. 이 형체 부활은  예수님 재림 때는 믿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그 부활을 하는데 이 기능이란 마음의  기능 이 몸의 기능이라 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기 현실 현실을 닥칠  때에 거기에서 이 기능을 살려놔야 되는데, 어떨 때는 요 현실을 살릴 수 있는 그  현실을 주시고 어떨 때는 저 기능을 살릴 수 있는 현실을 주시고, 우리는 왜 이  현실이 자꾸 바꿔지는가? 이것을 이상스리 생각하지마는 그것이 고 바꿔지는 고  현실이 아니면 고 기능을 살려낼 수가 없기 때문에 고런 현실을 바꿔주시고  주일날도 요런 형편 조런 형편 자꾸 이래 가지고 바꿔준다 그말이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살려내야 하늘나라를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려내는 그 시기는 하나님께서 정한 시기는 어떤 때가 정한 시기인가?  주님이 부활하신 이 부활로 인해서 우리가 이 기능을 살려내는 것인데, 주님이  부활하신 그 날도 우리가 이 기능을 살리기로 하나님이 작정하셨기 때문에  주일날은 모든 날 중에 제일 중요한 날이고 또 주일날 중에도 예배드리는 그  시간이 모든 시간 중에도 제일 중요한 시간으로서 그때 우리가 살아난다 그거요.

그러면 그때에 살아날려고 하면은 우리가 주일을 어떻게 지키야 되느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해서, 이렇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그것이 살아날 수 있다 그말이오. 왜? 다 해야 영생 얻는다 그 말은  '살아난다' 그말입니다. 영생 얻는거는 살아난 것이 다시 죽지 안할 그 기능이  되는 그것이 영생이라 죽지 안할 기능이 된 그것이 영생인데, 그 영생은 마음,  목숨, 힘, 뜻 이것을 다 기울이야 살아난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데에는 잘 지켰느냐 못 지켰느냐? 하는 것은  그날 주님이 너는 오늘 주일은 이 요소를 살려야 된다 저 요소를 살려야 된다고  당신이 뜻하시는 그 요소가 살아났으면 주일 잘 지켰고 만일 그 요소가 살아나지  못했으면 주일 잘 못지켰다 그말이오. 암만 일 안하고 와 가지고 설교 듣고 설교  들은 것 환하이 외운다 해도 부활할 그 요소가 부활을 못했으면 그날 주일은  껍데기 주일로 지켰지 실상 알맹이 주일로는 지키지를 못했다 그거요.

또 주일날 대체로 그러한데 다른 데 보면은 '네가 시험을 만나거든 죽도록  충성해라 죽을 힘을 다 기울려 가지고 그 시험을 이기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  준다'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 준다. 생명이 생명은 주님과 나와 결합된 중생  이것이 우리 생명인데 중생 이것이 생명이요, 그다음에 요소가 사는 것은  영생이지 생명은 아닙니다. 여기 생명과 영생과 ( ) 여러분들이 구분해야 되요.

생명은 단번에 받은 이것이 우리 생명이고 이 생명이 그말이요, 그건 다 영생.

네가 시험을 받을 때에 죽도록, 네가 생명을 내놓고 네가 그 시험에 범죄하지  안하려고 애를 쓰고 그 시험에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과 진리를 내놓지 안하고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가 될려고 '네가 그러면 죽인다' 이러면 생명을 뺏겨도  하나님과 진리를 뺏기지 안하려고 이렇게 애쓰는 고때에 네가 살아난다 이랬다  말이오. 고때에 살아난다.

또 말씀하시기를 시험을 당하고 변동되지 안하고 시험을 아무리 당해도 불  시험을 당해도 요동치 아니하고 신앙을 계속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 왜?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옳다 인정하신 후에 '됐다 네가 이제는 나와 진리를 네  목숨보다 모든 것 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구나 이제야 네가 이제 이렇게 하는 걸  내가 인정한다, 됐다' 인정함을 받으신 후에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마고 약속하신 그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 여기에도 보면 또  이제 다해야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려거든" 마음과 몸의 요소의 그  기능을 네가 살리려고 하거든 어떻게 만내면 자! 자기 생각하느냐 주님  생각하느냐? 둘이 똑 저울질됩니다.

그러면 자기라면 내 재산이 절단이 나느냐 주님과 진리를 딿느냐? 그것도 자기  재산이요, 자기지요. 또 내가 지금 이런 권세를 잡았는데 이 권세를 내놓나 내가  잡은 이 권세를 내 놓나? 주님을 딿나? 내 가정이 파괴를 당하느냐 주님을  딿느냐? 내가 부부간에 그만 절단이 나느냐 주님을 딿느냐? 그게 암만 부부가  좋고 가정이 좋고 지위가 좋고 권세가 좋고 사업이 좋아도 자기 목숨만은 못하지  안해요? 목숨도 내나야 가는데 그런게 문제 없단 말이오. 목숨이 떡 걸렸습니다.

'아, 목숨을 빼앗겨도 나는 주님과 진리는 놓지 안하고 내놓지 않겠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보스래기 부인할 때도 있고 뭉티이 부인할  때도 있고 목숨 부인할 때도 있고 목숨 부인이 최고 부인이라 말이오. 부인하는  것. 그러고 거기에서 '자 주님 인정할래, 자기 인정 할래?' '네 목숨을 네가 중히  여길래 주님을 중히 여길래?' 요 둘이 딱 요래 될 때에 목숨이 중하지마는 목숨이  제일, 세상에는 젱리 중하니까 중하지마는 목숨보다 주님과 진리는 더 중하기  때문에 할 수 없어 둘 다 취하면 좋지마는 둘 중에 하나를 내놔야 될 때에는  목숨을 부득이 내놓고 주님과 진리를 취하는 요것이 자기 부인하고 주님을 딿은  것이라 그말오.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하려고 하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기 부인하고 주님을  따를라고 하면은 뭐이 일어나겠지요? 십자가 고난이라 말이오. 십자가는 주님과  주님의 뜻을 인해서 죽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또 주님과 주님의 뜻을 인해서  손해보는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어쨌든지 손해보는 것 죽는 것 없애는 것이라  말이오. 이렇게 돼야 되는 것이니 네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부인하고 주님을  딿은 것.

그러면 평소에는 자기가 '주여! 주님과 진리에 나는 딿습니다. 주님과 진리는 나의  것이고 나는 주님과 진리에게 속합니다.' 아무리 이래 싸봤자 입술 가지고  거짓뿌리로 할 수 있다 그말이오. 그것 가지고 주님이 듣지 안해요. 마지막에  참으로 주님과 진리냐, 딱 닥쳤을때에 돈을 버리고 주님과 진리를 따를때, '오,  너는 돈보담은 나와 내 뜻을 중히 여기는구나' 결정이 됐다 그말이오. 또  마지막에는 '돈 그런 거는 다 하지마는 자기 목숨마는 못하니까 네가 그래도 생명  문제가 되면은 나를 버릴 것이다. 네가 내 생명은 나와 내 뜻보담 중히 여기지'  이랬는데 마지막에 고 시험이 와 가지고 생명을 내놓지 안하면 진리를 배반해야  되고 주님을 배반해야 되는 고런 일이 탁! 닥쳤는데 이제 자기 생명을 참 생명  내놓는게 쉽습니까? 죽을 지경이지마는 그래도 떨면서도 '목숨을 내놨으면 내놨지  주님과 진리는 내 놓을 수가 있느냐?' 하고 이제는 할 수 없이 '나는 죽어야 된다'  목숨을 포기하고 주님과 진리를 모실 그때에 '네가 생명보다 날 귀중히  여기는구나' 고래서 고때에 생명 내놓음으로서 부활할 요소 있고 돈 내놓음으로  돈을 내놓음으로서 부활할 요소 있고, 취미를 내 놓음으로서 부활할 요소가 있고,  또 자기의 행락을 내놓음으로서 부활할 요소 있고, 명예를 내 놓음으로서 부활할  요소 있고 요소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말이야.

이러니까 요거 어쨌든지 요게 부활하는 데에는 고것보다 요 부활을 더 낫게  여기야 요기 살아나지, 그리 안하면 살아나지를 안합니다. 그렇게 살아나지 안한  것을 하나님께서 살여 놓으면 그것이 난중에 그런 것 닥치면 다 넘어갈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이제 살아나는 것은 다시 죽을 수 없는 것으로 살아나기  때문에 거기에 관련된 것은 다 이기고 살아나야지, 이기기 전에는 살아나면  안된다 그말이오. 한번 살아나면 다시 두번 죽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고로 "나를 따라 오려거든" 누구든지 내가 가서 있는 곳에 너도 가서 와서  있고 싶거든, 네 영과 몸의 형체는 와 있도록 돼 가 있으니 염려 할 것 없지마는  네 지식이 와서 있고 싶거든, 네 기술이 와서 있고 싶거든, 네 모든 감정이 와서  있고 싶거든, 네 행락이 와서 있고 싶거든, 네 취미가 와서 있고 싶거든, 네  기쁨이 와서 있고 싶거든, 네 애정이 와서 있고 싶거든, 애정. 주님이, 백세에 난 이삭은 참 아브라함이 뭐 아내 보다도 사랑하고 참 제일  사랑했는데 요 사랑은 요거는 애정이라 말이오. 하나님께서 가만히 보니까 이  이삭을 참 사랑하는데 이삭을 하나님과 진리보다 더 사랑하면 이것은 그 결국은  그건 사망하고 마는 기거든. 이러니까 이삭이 사랑스럽지마는 주님과 진리보다는  그걸 사랑치 안하고 주님과 진리를 위해서 가지는 것이 되야 되겠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딱 시험했어. 너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 가지고 잡아서 불에  태워서 번제를 드리라. 하나님이 딱 시험했다 말이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바치라 하는 것이니까 기뻐서 이삭을, 밤잠도 안자고 나무 패서 짊어지고 가  가지고 하인들이 가져 가서 제단을 모아놓고, 이삭에게 '이제는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너를 번제로 드리야 되겠다' 하고서 묶어 놓고 칼로 가지고 들어서  지금 잡을려고 칠려고 하니까 벌써 그 때릴 때 '이러면 하나님께서 아마 중단시킬  것이다'그러면 믿음입니까 믿음 아닙니까? 믿음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바치면 더 좋은 게 나올 줄 알고 이삭을 잡아 바치면, 이삭이 생산한다고  말했으니까, 자녀를 놓는다고 말했으니까 이 번제로 드리면 재가 되는데 재 된  이것을 하나님이 살려 내겠다 싶어서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죽은 가운데서 살려낼 것을 믿었다 말이오. 아브라함이  그러고 칼로 이래 잡아 갈려고 이제 그 잡을 때 억지로 슬픔이 아니고 기쁨으로,  왜?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기 때문에 주근  가운데서 이삭을 살려낼 것이고 한번 바치면 더 귀중해지는 줄 알기 때문에  기쁨으로 칼로 칠려 하니까 하나님께서 중단을 시켰다 이거요.

시켜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이제야 네가 백세 난 독자라도 애끼지 아니하니 나를  두려워 하는 줄을 내가 알았다. 이제 네가 시험에 합격됐다. 제물은 이삭이 할 게  아니라 네 뒤를 돌아보라" 보니까 사슴이 와 가지고 나무에 걸리 가지고 하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제사로 드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대해 축복을 천하 만민의 구원의 중보자가 될 것을 딱 축복해서 결정을  딱 내려 버렸습니다. 그때 마지막 결정내렸소 그다음에는 미리 예약을 했지마는  그저 이러다가 마지막에 결정은 그러고 난 다음에 결정이 내리졌다 거요.

그런데 요것이 또 식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지금 계속해서 말합니다.

어제 오후에 말씀하신 것인데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리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러니까 내게 땅에 속한 거 멸망 안에 속한  거 있다가 없어질 거 그러면 우리 기쁨은 말이오. 두 가지 기쁨입니다. 없어지지  안할 기쁨이 있고 없어질 기쁨이 있고 땅의 기쁨은 다 없어질 기쁨이요. 재미도  그러합니다. 애정도 그러하요. 애정도 땅에 속한 애정이 있고 하늘에 속한 애정이  있습니다. 땅에 속한 애정은 차차 세월이 지내가면 늙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안하고 영생합니다. 영생하는 애정도 있고 영생하는 기쁨도 있고 영생하는 평강도  있고 영생하는 취미도 있고 영생하는 기능도 있고 있다 그거요. '네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좀도 동록도 도적도 해하지 못한다' 하는 그거는 영원히 제  소유가 영원히 있다 그말입니다.

이런데 이렇게 할려면 뭘 해야 됩니까? 자기 부인하고 주님 따라야 되는데  그럴려고 하면 무엇이 닥칩니까? 십자가 닥칩니다. 사람들이 다 영원히 영원한  것을 취하고 싶으기는 다 취하고 싶은데 영원한 것을 취하려면은 자기 부인하고  주님 모시면 된다고 하니까 다 그 하고 싶습니다. 어려움 없이 그럴 지경이면 다  할 것이요. 이런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하려고 달라 들었다가 왜 중단을 하고  고만 하지 못합니까? 하지 못하는 이유 어디 있습니까? 예? 십자가 때문에  사람들이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때문에 못하는데 이 십자가의 비밀에 대해서  그다음에 해석을 해 놨습니다. 해석해 놓은 것이 뭐라고 해석을 해 놨는고 하니,  어려움은 그 십자가는 자기가 깨지고 절단나는 줄로 알고 십자가에서 절단나면  절단나는 줄로 아는 요것이 오해라 그말이오.

마귀란 놈이 '너 이렇게 절단나면 절단난다' 예수님에게도 와 가지고 '네가 십자가  못박혀 죽으면 이것으로 끝난다. 죽으면 끝난다. 끝난다' 해도 예수님은 이것  비밀을 아신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죽으면 범죄하지 안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죽으면 다시 죽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되는 요 비결을 알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마귀가 아무리 협박을 줘도 꼼작도 안하고 주님과 진리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도 꼭 고대로 지켜서 딱 죽으면 '안돼, 죽으면 너는  헛일이라. 헛일이라' 해도 죽어버렸으니까 죽어도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구원하는 그 진리를 변동하지 안하고 요러게 하니까 예수님이 숨이 딱  끊어지면서 말씀해 "다 이루었다" 이제 완성했다. 주님이 완성했다 이랬는데  마귀는 그때 뭐라고 했겠습니까? 마귀는 뭐라고 했겠소 마귀가 뭐라 했을까요?  주님은 다 이루었다 했는데 마귀는 뭐라고 했을까요? 뭐라고 했겠고? '아, 이제는  다 실패했다. 완전 패전했다' 마귀는 완전 패전했다 그말이오. 그때부터 마귀는  예수님에게 수종을 들어야 됩니다. 종 노릇을 해야 됩니다. 그때부텀 마귀는  예수님의 부리는 신이 됩니다. 사망도 생명도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다 정복을  했다 그말이오.

예수님은 이 십자가에 어려움으로 죽어지는 것이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고, 빼앗김으로 빼앗기는 것을 이기고 영원히 취하고, 없어짐으로 없어지는  것을 이기고 영원히 있게 되는 이 비결을 비밀을 주님은 알았지마는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마귀의 이 꼬임에 다 떨어진다 말이오. 고것을 여기 가르치는  것입니다.

25절에, 2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서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주님 때문에 잃어 버리면 찾고 안 잃어  버리기 위해서 주님 내 놓으면은 잃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고라고 난 다음에  이제 2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목숨이 중한 것을 말했습니다.

고다음 26절에는 '모든 것보다 목숨이 제일 중요하지 않느냐? 목숨이 제일  중요하지 않느냐? 제일 중요한 목숨도 이러하거든 제일 중요한 목숨도 버린 자는  다 목숨을 얻는다. 중요한 목숨도 이러하거든 하물며 목숨 다음에 그 이하의 것은  의례히 그럴 것이 아니냐?' 그거 다 마지막 결론으로 총칭을 했다 그말이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는 요것을 한번 생각하십시오. 기한이 돼서 없어지는 거  있고, 기한이 돼서 없어지는 거 있고, 또 기한 전에 기한 전에 없어지는 거 있고  기한 전에는 은혜로 보존되는 것 있습니다. 모든 것이 기한이 있습니다. 기한이  닥치면 그는 저절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재물로 이 사람이 예를 들어서 일억을 가지고 있는 그 기한이 되면 일억이라는  그 재산은 그이에게 아무래도 그 재산은 없어집니다. 일억이라는 재산은 지금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데 기한은 없어질 기한은 닥치지 안했는데 없어지는 수가  있단 말이오. 없어지는 수가 그 뭐인지 압니까? 없어지는 수가 뭐인지 압니까?  없어지는 것은 요 밑에 말해 놨다 말이오. 고것이 없어질 것같이 딱 보이는데 고  기다가 딱 붙여 놓기는 뭘 붙여 놓았느냐? 네가 일억 재산 고것을 없애지  안할려면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해야 되고 일억 재산 고걸 보존하려면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해야 되고 요런 시험이 와서 딱! 닥쳤다 그말이오. 기한이 아직  안됐는데, 기한 안됐는데 시험이 딱 닥쳤어. 그 주인, 주신 하나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시험을 딱 치른다 말이오. 요러니까 요 아직 없어질 기한 안됐는데  요결 보니까 시험을 해보니 고 일억 재산을 하나님과 진리보다도 더 귀중히  여겨서 그 사람에게 우상이 돼 있다 말이오. 우상이 돼 가지고 있으면 그 재산을  그대로 두면 그 사람이 구원 되겠소 안 되겠소? 안되겠다 말이오. 그러니까 기한  전에 그 재산을 없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없애버립니다. 고것이 네가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나와 내 뜻을 버리면 그것이 없어지고 나와 내 뜻을 위해서  고것을 버리면 도로 찾으리라 그 말씀이 그 말씀이라 그말이오. 목숨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기한이 됐습니다. 없어질 기한이 됐습니다. 없어질 기한이 됐는데 이래도  저래도 없어질 기한이 됐는데, 없어지는데 없어지는데 자연히 우연히 그것이  없어지는 길이 있고, 이미 없어지지만 없어질 기한이 딱 됐으니까 없어지기는  없어질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 없어질 기한  됐습니다. 됐는데, '네가 이것을 보존하려면 나와 내 뜻을 버리야 되고 나와 내  뜻을 네가 배반치 안하려면 이것이 없어지겠고' 고래 시험이 왔다 말이오. 시험이  왔는데, 고때에 어떤 사람은 이미 없어질 기한이 됐는데 어떤 사람은 '아! 이거  없으면 안된다' 주님과 진리 버렸다 말이오. 진리를 버렸는데 요거 기한이  됐으니까 없어지겠습니까 안 없어지겠습니까? 없어지지요. 주님 버리고 그거  없어지고, 또 주님 버리고 기한 전에 것도 없어지고, 이러면 없어질 때가 되어  없어졌지마는 요것은 고것도 버리고 주님도 버렸다 말이오. 한 사람은 이미 버릴  때가 됐는데 주님이 고걸 딱 시험을 모라트리 가지고 딱! 닥쳤다 말이오.'네가  나와 내 뜻을' 뜻은 당신 뜻은 진리인데 '나와 진리를 네가 차지할래 네 일억  재산을 차지할래?' 요 둘이 딱 시험하니까 '주여! 일억 재산을 내가 버릴지라도  주님과 진리를 내가 버릴 수가 있습니까? 내가 그것을 다 팽개치고 주님과  진리를 모시겠습니다.' 주님과 진리를 모심으로 인해서 그 일 억 재산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없어졌으면 없어질 재산이 없어졌습니까 없어지지 안할  것이 없어졌습니까? 없어질 것이 없어졌어. 없어질 것이 없어졌으면 없어질 것이  없어졌는데, 없어질 것 그 없어지는 것 그것 가지고 그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한다는 하나 승리의 그 면류관이 하나 불을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소? 면류관이 붙지 않소? 이러니까 재산도 그러하고 생명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없어질 기한이 되는데 기한이 됐는데 없어지도록 그대로 없어지도록  내 두는 것이 좋습니까? 없어지는 기한이 됐는데 그것이 주와 진리를 위해서  없이한 그 행위를 하도록 통과하는 것이 좋습니까? 어떤게 좋소?  네, 순교라는 것은 그게 순교입니다. 여러분들 순교한다고 일분 일초도 일찍 죽는  것 아니요. 이미 죽는 기한이 됐는데 주님과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목숨을  내놓기까지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목숨보다 진리를 더 사랑하는 요  사람으로 이미 없어질 것 가지고 결론 짓는 것 이것이 뭐이냐? 패물 이용이라  그말이오. 패물이용. 이미 없어질 생명을 주님 위해서 버린 것, 이러니까 자기는  생각할 때에, '아! 주님을 위해서 내가 생명을 버렸다. 생명을 버리기까지  사랑했다' 다른 사람 다 그렇게 말하는데 대개 순교하는 사람 이것을 다 아는  사람들이요. 아는 사람 아니면 못합니다. 순교하면서 자기가 죽으면서, 아! 주님  위해서러 내가 죽는다. 그렇게 생각지 안하고 '주여! 내 죽을 기한이 됐으면 내가  죽는데 이 죽을 기한이 됐는지 모르겠는데 죽을 기한이 됐으면 이미 죽는 생명  이것을 가지고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요런 기회를 한번 주시  가지고 내 생명보다 주님과 진리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암만 생명과 생명보다  주님과 진리를 사랑하고 싶지마는 고런 기회를 안 주면 할 수 없다 말이오.

요렇게 내 생명을 다해서 주님과 진리를 사랑할 수 있는 요런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때문에 없어진 게 아니라 고걸 주님과 진리를 내 생명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고런 기회를 준 것을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것이 이것이 다 순교자들의 속에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 요거 십자가의 어려움이라는 것 요 주님과 진리 때문에  어려움 온다는 것 요것이 기한 전에는 없어질 것이 주를 위해서 없애면 주님이  책임지고 보호하기 때문에 기한 전에 없어지지 아니하고 또 제가 고걸 보존하기  위해서 주님과 진리를 버리면 기한은 남아 있지마는 주님의 보호가 떠나기  때문에 세상이 뺏들어 버리고 마귀가 뺏들어 절단을 내버립니다. 또 기한이  됐는데 어떤 사람은 주님과 진리, 진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 것같이, 이래  가지고 이제 자기 목숨보다

그렇지 안해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데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서, 예를 들어서  예물을 만일 천 원짜리를 하나 자기 힘을 참 없는 힘에서 해서 천 원짜리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그 받는 것도 좋지요. 천 원짜리 받을 때 뭐이 좋습니까? 돈 천  원짜리가 왔으니까 좋습니까, 사랑하는 자가 천 원짜리를 가졌왔으니까 그 사랑을  인해서 좋습니까? 무엇 때문에 좋소? 아, 사랑하는 자가 천 원짜리 예물을 했기  때문에 예물 그것보다도 사랑하는자가 사랑을 준 거기 때문에 기쁘다 그 말이오.

자, 그러면 자기는 또 그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음에 자기도 그렇게  기쁘니까 자기도 그 사랑하는 자에게 천 원짜리 예물을 보내 가지고 그 사랑하는  상대방이 내 사랑을 받음으로써 기쁘고 즐겁도록 그 갚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안해요? 그렇지 안해요? 그러면 뭐, 아! 주니까 좋다. 주니까 좋다. 이거 내가  유익이 됐다. 이익이 됐다. 그러면 그것은 그가운데 사랑이 연결 돼있습니까  사랑의 작용이 없습니까? 작용이 없지. 그렇지 안해요? 작용이 있으면 그 물건이  좋은게 아니라 그 사랑하는 자가 보냈기 때문에 그 물건은 찍해야 천 원짜리니까  그까짓거 다른 데서 천 원짜리면 집어 팽개치지마는 이거는 만 원짜리 보다도 십  만 원짜리보다도 귀중히 여기는 것은 거기에 사랑이 뒤에 붙어 있기 때문에  사랑이 붙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오. 그러면 나도 그런 것을 하나 무엇을  그이에게 하나 이렇게 사랑으로 뭘 하나 예물 하나 해줄까 이랬다 말이오.

이러니까 고런 걸 자꾸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모든 것 다, 부요를 다 나 사랑하기 위해서 내놨고 지위,  영광, 권세를 다 내놨고 생명까지 다 내놔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도 죽기  전에 어짜든지 주님을 내 소유 전부를 그 소유보다 주님을 사랑하고 내 목숨보다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요런 기회를 오기를 기다리고 자꾸 요렇게 하기를 원한다  말이오. 원하다가 자기에게 이제는 참 이 시간에는 목숨을 내놓지 안하면 주님을  사랑할 수 없는 고런 기회가 딱 오면은 이 사람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기쁘겠습니까 안 기쁘겠습니까? 예?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싶었던 요 소원이  평생 소원이 있던 사람은 그 기회를 닥치면 기쁘고 즐겁지요.

그러나 주님을 사랑한다 하지마는 그저 아무 것도 손해 없으면 사랑하지마는  돈이 백 원짜리 이해가 있으니까 사랑하는 걸 내놓았다 말이오. 백 원만침 사랑  못하는 사람이, 백 원이 손해갈 때는 주님을 사랑하였지만 온 살림살이가 퍽!  무너지게 되면은 그때는 떨떨떨떨해 가지고 하면은 그거는 온 살림이 갔으면  갔고 사업이 갔으면 갔지, 주님과 진리에 대해서는 문제가 뭐 있는가? 목숨이  와도 문제가 뭐 있는가? 이런 사람은 이런 사람은 주님 살자하는 양에 대해서  달라진다 그거요.

그런고로 이것이 우리가 신앙 걸음이요, 주님은 우리를 죽은 것을 살리시기  위해서 하늘나라에 옮겨지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긴데 하늘나라에 옮기질  것은 그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돼야 그것이 하늘나라 옮겨져 가지,  그것이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을 하늘나라 옮겨 놓으면 어찌 됩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 보다 그걸 더 사랑하는 걸 하늘나라에 옮겨 놓으면 어찌 됩니까?  그 사람 하늘나라에 가서 뭐하는 사람되겠어? 하나님으로 살고 하나님 섬기는  사람되겠습니까? 우상 섬기는 사람되겠습니까? 하나님 외에 딴 하나님 있는 우상  섬기는 자가 되겠습니까? 우상 섬기는 자가 되면은 그것이 하늘나라도 절단내는  것이고, 또 그거 우상 섬기는 거기에 하나님이 생명 안 주면 살 수 있습니까?  죽어 버리지.

이러니까 하나님의 뜨겁고 깊고 온전하고 영원한 사랑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되고 또 그 사랑을, 그 구원을 받는 데에는 어떤 순서가 통과되는가? 그것도  알아야 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그렇지 안하면 안됩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데에는 원수가 누가 원수냐? 예수 믿는 원수가 누구지?  옛사람 자기가 원수입니다. 방편은 뭐이 원수입니까? 방편은 뭐이 원수가 됐지요?  자기중심? 처음에 자기가 원수라 했고, 방편은? '이런 일을 멀리 하십시오. 그러면  닥치지 안하리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겠다 하니까 그 뭐입니까? 고난의 반대,  십자가의 원수, 안일주의라 그말이오. 십자가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 안일주의.

방편은 어짜든지 저 평안하고 좋게 하라는 것, 이것이 멸망한 것입니다. 주님 나  위해 이렇게 했으니까 어짜든지 주님 위해서,

자 남편이 아내를 여기 그분이 와 있는지 몰라. (OOO씨 와 있어? OOO씨 와  있으면 손 들어 봐. OOO씨, 손을 들어봐.) 저 뒤에 와 있네. 병이 모진 병이  들었다 그기요. 모진 병이 들었는데 내 옆에 집에, 그때 그 개명 있는 때에  있었어요. 그 모진 병이 들었는데 그 남편이 있는 재산 다 팔아 가지고 애낌없이  아내 그 병을 구원하고, 간절히 소원해 가지고 나았다 말이오. 이랬는데 그 뒤에  남편이 지금은 또 바람이 들어서 좀 망냉이 노릇이 노릇을 했다 말이오.

그때 내가 있다가서 말하기를 '저라니까 저 되겠나? 그만 치워 버리라.' 내가  (이래 놨다) 일부러 이래봤다 말이오. 이러니까 '아이구, 그럴 수 없습니다' '왜?'  '내가 병들었을 때 있는 것 다 발휘해서 자기 소유라는 건 다해서 나를 병난 걸  고쳐줬는데 나도 내게 있는 것을 다해서 그분을 위해야 될 터인데, 뭐 이런 것은  문제도 없습니다. 내가 그 은혜를 어찌 갚을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남편 위해서  고생하고 남편을 인해서 속상하고 남편 위해서 고통당하고 하는 그것을 원하고  있어. 가만 보니까, 내가 '이러니 그만 치워버리라' 이러니까 아니 그 속에는 남편  위해서 그 어려움 당하고 고난 당해서 그 남편의 사랑을 갚으려고 지금 애를  쓰고 있더라 그말이오.

'이거 네가 맞다. 옳다, 옳은 정신이다' 이랬는데 이제 그렇지 않소? 사랑하는  자가 나를 위해서 온갖 수고했으면 그 다음에 사랑하는 자에게 대해서 호강받는  것을 원하겠소. 나도 남편 위해서 수고하기를 고생하기를 지금 원하겠소?  뭐입니까? 자꾸 호강받기를 원하는 사람 손 들어봐? 그럴 사람,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러면 남편이 나 위해서 온갖 고생, 수고 다 했으니까 나도 남편  위해서 고생과 수고를 하지 않고는 마음에 만족이 없을 그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예, 이게 우리 인생 아닙니까? 그래 주님을 사랑하면  필연적으로 그 생활이 되어진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이 생활이 되어지도록 우리 환경을 자꾸 이렇게 주는  것입니다. 이 예수 믿는 이치를 알고 바로 믿어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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