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

 

1986. 3. 26. 수밤

 

본문:에베소서 4장 22절∼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다음 공과입니다. 공과가 늦게 나와서 여러분들이 공과를 가지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오늘 제목은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 하는 이 말씀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요절은 로마서 6장 8절 말씀인데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하는 성구입니다.

서론입니다. 지식 중에 제일 귀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요, 지식 중에 제일 귀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요 둘째로 귀한 것은 사람을 바로 아는 지식입니다. 둘째로 귀한 것은 사람을 바로 아는 지식이요 셋째는 사물을 바로 아는 지식입니다. 사물이라면 일과 물질에 대한 것을 바로 아는 것, 그러면 이거는 과학이 되겠습니다. 이번 공과는 사람에 대한 지식의 일부를 공부할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돌아가서라도 느낍시다. 지식 중에 제일 귀한 지식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입니다. 신구약 성경 외에 세상에 책이 수없이 있지마는 그 책을 다 뭉쳐도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은 그 속에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 외에는 그런 거 같으나 따져 들어가면 그것이 다 틀립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당신이 말씀해 놓은 말씀이기 때문에 이 지식만 하나님에게 대해서 바로 나타내서 가르쳐 주지 세상에는 바로 우리에게 알려 주는 지식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둘째 지식은 사람을 바로 아는 지식입니다. 사람에게 대해서 바로 가르치는 지식도 신구약 성경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상마다 종교마다 인생관이 있지마는 그 인생관은 성경과는 전혀 다릅니다. 셋째는 사물관이 바로 돼야 됩니다. 일을 바로 알아야 되고 물질을 바로 알아야 되는 이거는 셋째로 가는 지식입니다.

본론에 대해서 첫째, 잘 들으시면 알 수 있습니다. 영육으로 지음 받고, 사람은 영과 육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생기를 불어 넣었을 때에 생령이라,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영을 지었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성령을 불어 넣으시고 난 다음에 사람은 생령이 됐습니다. 생령이 되고 난 다음에 사람이라는 이름을 또 주었습니다.

그 후에는 아담의 실수로 타락 후의 사람을 가리켜서 육체라고 하였습니다. 타락 후에는 사람을 가려켜서 육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이 사람이 제 욕심대로 살고 하나님을 따라서 살지 아니함으로 그때부터 사람은 사람이 안 되고 육체가 되었다 이랬습니다. 육체는 하나님이 같이 하지를 못합니다. 사람이 육체 된 이후부터는 하나님이 사람과 같이 하실 수가 없다, 동거 동행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요걸 잘 순서대로 아십시오. 사람은 영육으로 지음받았다 지음 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됐다. 생령. 사람을 가리켜서 생령이라 이랬습니다. 생령이 됐습니다. 또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후에 선악과 먹음을 인해서 타락이 됐습니다. 본 지위에서 쫓겨났습니다. 본 지위를 타락으로 인해서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이것이 일반인입니다. 사람이 쫓겨나서 육체가 됐다고 이렇게 한 고것이 일반인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사람이 됐습니다.

일반인 중에 영원 전 ‘일반인 중’ 이라 말은 우리는 꼭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일반인 중에 영원 전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삼대 대속을 입고,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입고, 대속이라 말은 대신해서 우리를 구원했다 그말입니다. 형벌을 대신 받았고 대신 행했고 대신 화친을 해서 우리를 대속한 것입니다. 이 대속을 입고 죽은 영이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죽은 영은 살아나지 못합니다.

왜 살아나지 못하는가? 죄가 있기 때문에 살아나지 못합니다. 의가 없기 때문에 살아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불목돼 있기 때문에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대신 다, 죄는 형을 받아서 없앴고 의는 대신 행해서 의를 건설했고 불목은 대신 화목의 제물이 되셔 가지고서 화목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 대속을 입고 죽은 영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중생은 영과 육이 다 중생된 것 아니고 영만 중생됐습니다.

살아났을 때에, 영이 살아났을 때에 뭐라고 말했는가? 산 영이라. 산영이라 이랬습니다. 산 영이라. 창세기에는 생령이라 했고 여게는 산 영이라, 같은 뜻 같지마는 아주 천지 차이가 있습니다. 영을 가리켜서 또 속사람이라 했습니다.

속사람이라. 영이 살아났을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속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중생 후에, 중생 후 영은 버리고 심신만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단합이 되었을 때에 옛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중생된 후에 중생된 영과 마음과 이 몸이 한덩어리가 되어서 살 때에는 새사람이라 했는데 중생된 영은 이 심신들이 배반하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하고 이 심신이 한덩어리가 됐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또 심신이 중생된영과 단합되었을 때에 새사람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 새사람을 여러분들이 알겠고 옛사람을 알겠습니다. 중생된 영하고 우리 마음하고 몸하고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때에 새사람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것이 영이기 때문에 영이 심신과 같이 있을 때에는 영, 대속의 공로, 성령, 진리, 이 넷이 하나가 돼가지고 이 넷이 이제 심신 둘과 합해서 여섯이 하나 되었을 때에 그때에 새사람이라 합니다.

그런고로, 불신자는 육체의 사람, 타락한 사람, 곧 변질된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면 불신자는 육체의 사람, 또 타락한 사람, 변질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불신자들은 그러면 영은 없는가? 죽은 영과, 안 믿는 사람들은 죽은 영과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심신으로 뭉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전에 안 믿을 때에는 죽은 영하고 이 심신하고 악령 악성 악습하고 이 여섯이 뭉쳐 있을 때에 그것이 곧 육체의 사람인 것입니다.

새새람과 옛사람이라는 이름은 기독자에게만 있는 이름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새사람이라는 그 이름이 없습니다. 또 옛사람이라는 이름도 없습니다. 요걸 자세히 들으면 좀 분별을 똑똑히 할 것인데 이거 좀 어려운 것입니다. 기독교에 많은 역사가 지나갔지마는 아직까지 여게 대해서 간추려서 그렇게 똑똑히 돼 가지고 있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이리 보면 이렇고 저리 보면 저런데 이 성경의 전체를 다 총괄해 가지고 거게서 뽑은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암만 많이 읽어도 모를 수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옛사람은 심신이, 심신이라 하면 마음하고 몸하고 가리켜서 심신이라 합니다. 옛사람은 심신이 저희 주격이 되는 산 영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유혹에 빠져서 심신이 저희 주가 되는 산 영은 버리고 자기의 주인된 영을 죽인 원수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자기 주로 착각하여 심신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단합하여 행동할 때를 옛사람, 마귀의 자식이라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옛사람으로 한 언행 심사는 전부 자살 자멸뿐입니다. 이놈이 전 인류를 삼킨 자입니다. 요걸 잘 들으면 한자리에서 두 사람이 꼭 같은 일을 하였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 것은 그 새사람으로 하는 것과 옛사람으로 하는 것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 속에 영이 주격이 되고 악령 악성 악습이 주격이 돼 가지고 하는 거게서 고장이 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1장 33절과 38절에 보면 ‘통분히 여기신다’ 또 우셨다 통분히 여기시고 우신 것이 거기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통분히 여기시고 우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우신 까닭은 뭐 때문에 우셨는가? 우신 까닭은 이렇게 인생이 죽기 싫어하고 망하기 싫어하면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속고 속아서 하는 모든 것이 멸망과 자살만 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통분히 이겨서 우셨던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을 보고 그 모든 유대인들이 모여 가지고서 울었습니다. 우니까 예수님이 그것을 보고 통분히 여기셔서 우셨다 이랬습니다. 통분히 여기셔서 우셨다 이랬습니다. 이것도 난해절입니다. 왜 통분이 여겼으며 왜 울었는가? 여게 대한 해설이 똑똑히 없습니다. 이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면 이것을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사람이 그 중생된 영을 따라서 살면 다 영생이 되는데 자기 영을 참 자기를, 자기 영 참 자기를 죽인 원수 그것이 뭐인고 하니 악령이 죽였고 악성이 죽였고 악습이 죽였습니다. 악습은 본죄가 악습이요, 또 악성은 원죄가 악성이요, 악령은 사탄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죽기를 싫어하고 망하기를 싫어하면서, 죽기는 싫어하고 망하기는 싫어하면서 악령 악성 그놈이 꼬와서 ‘요렇게 하면 네가 복 받는다’ 하니까 그놈에게 꼬여 가지고서 그놈 시키는 대로 그것은 전부 자살 행위요 자멸 행위입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악령에게 꼬여 가지고, 악령이 ‘이라면 복된다.

이라면 잘된다.’ 전부 이라니까 그 어리석음에 꼬여 가지고서 자멸 자멸 자살 행위를 하는 것을 주님이 보시고 분히 여기셔서 아무래도 이 악령을 멸해야 되겠고 죄를 멸해야 되고 사망을 멸해야 되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기도 그래 오셨고 그때도 그걸 보고 분히 여기셔서 우셨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리 판단과, 사리 판단이라면 일을 이치대로 따지는 거, 일의 이치를, 우리가 행할라고 할 때에 무슨 판단을 할라고 할 때에 그때에, 사리 판단과 언행 심사를 할 때에, 말하고 생각하고 또 행동하고 이렇게 할 때에 그만 거게 대해서 우리 사람들은 상대방으로 더불어 시비해서 이길라고만 애를 씁니다.

또 우리는 거게서 돈이나 유익되도록 할라고 애를 씁니다. 또 사건이나 평안 무사하게 될라고 애를 씁니다. 우리는 그런 통에 자살 행위를 자꾸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자기가 옛사람인지, 자기가 지금 그렇게 할 때에, 하고 있을 때에, 자기가 옛사람인지 새사람인지 이것부터 판단하고 날뛰어야 합니다.

자기가 지금 다른 사람하고 시비를 하든지 무슨 사업에 경영을 하든지 또 무슨 판단을 하든지 뭣을 하든지 그저 자기 앞에 닥친 그 일이나 잘 되도록 또 물질에 유익이나 되도록 자기 명예나 지위나 그 권세가 올라가도록 그런 것만 생각하는데 그것이 자살 행위입니다. 그게 자살 행위입니다. 그렇게 하지말고 다만 정신 차려서 내가 지금 이 말하고 생각하고 소원하고 있는 것이 내가 옛사람이냐 내가 새사람이냐 그것을 먼저 구별하고 해야 됩니다.

옛사람은 어떤 게 옛사람인가? 옛사람은 중생된 영은 저버려 버리고, 영은 버리고 악령하고 악성하고 악습이 꼬우는 대로 그게 좋다고 해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이 심신이 하나가 돼 가지고 행동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옛사람에게는 영이 거게 함께 영이 들었습니까 안 들었습니까? 영이 안 들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로마서 7장에 보면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렇게 행할라고 하는데 육체 속에 다른 것이 있어 가지고서 원치 안하는 곳으로 산 영을 싣고 갑니다. 산 영을 싣고 가니까 산 영은 실려 가면서 탄식을 하고 그 심신이 악령 악성 악습에게 꼬여 가지고 그래 날뛴 그 모든 것은 다 죽은 것입니다. 심신의 기능도 죽었고 해 놓은 일도 죽었고 뭐 모든 것이 성공이고 뭐고 전부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주 이게 지혜로운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할 때에 그 일만 보고 하지 말고 또 물질의 이해만 따지지 말고 내 명예가 지위가 올라가느냐 그것도 따지지 말고 내가 여게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 그것도 따지지 말고 내가 승리를 하나 패전을 하나 그것도 따지지 말고, 그것을 따지지 말아야 됩니다. 악령은 자꾸 우리를 유도해 가지고서 그런 것들만 보라 합니다. 봐라 이라면 네가 물질이 손해간다. 네 지위가 틀려진다. 네 계획이 헛일된다. 네가 패전한다. 승리 못 한다. 자꾸 이렇게 해서 거게다만 눈을 기울여 가지고서 눈이 그리만 기울이도록 마음이 그리만 기울이도록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은 악령은 알고 있기 때문에.

그까짓 거야 다 차지해 봤자 내나 마귀 제것이기 때문에 상관없고 다만 사람이 새사람으로만 살면 악령은 박살이 납니다. 죄도 박살이 납니다. 사망도 박살이 납니다. 새사람으로만 살면 그때 산 제 심신의 기능도 다 영생돼 버렸고, 그때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영생이 돼 버렸고 그때에 이용된 모든 물질도 전부 영생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로마서 8장에, 「만물이 탄식하기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유하는 것을 고대한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유한다면 뭐입니까?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사람인데 진리와 성령으로 사는 것이 자유요 진리와 성령을거스리고 악령을 따라 사는 것이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죄에게 종노릇하는 것이요 악령에게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악령과 죄와 사망에게 종노릇하지 안하고 진리와 성령으로, 예수의 피로,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했기 때문에 이 중생한 자가 중생한 자로 씩씩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만물이 탄식하면서 원합니다. 왜? 그렇게 살면 뭐 할라고? 그렇게 살면 그렇게 살 때에 관련된 모든 만물도 다 영생이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유함에 이르기를 원한다.

자유한다는 말은 진리대로 자유하고 영감대로 자유하고 주님의 피대로 자유하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자들이 원치 안하는 이 마귀에게 죄에게 사망에게 종노릇하지 안하고 그대로 사는 것이 그게 자유이기 때문에 그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원한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사건 있을 때에 옆에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너 그거 지금 주장하고 있는 네가, 주장하고 있는 네가 누가 주장하나?’ 그 마음이 주장하고 있고 몸이 주장하고 있고 둘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장하고 있는데, ‘네 마음과 몸을 피와 성령과 진리가 지금 주장하고 있느냐?’ 네 마음과 몸을 악령 악성 악습이 주관하고 있느냐? 그것을 좀 판단해 봐라.’ 이럴 때에 자기가 평소에 많이 숙달시켜 놓지 안하면 그때에 판단이 되기는 돼도 그게 그렇게 손해 가는 줄 모르기 때문에 ‘나도 옛사람이 말하는 줄 안다. 옛사람이 하는 줄을 안다. 그렇지만 내가 못 견디겠다.’ 이래 가지고서 옛사람의 행동을 그렇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악령이 뭐이지요? 악령은 타락한 천사를 가리켜서 악령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타락한 천사를 왜 가리켜서 악령이라고 말하는가? 악이라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배웠지요. 악이라 하는 것은 창조주 중심이 아닌 피조물 중심을 가리켜서 악이라, 피조물 위주를 가리켜서 악이라 이렇게 성경이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령이라 말은 그 천사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살지 안하고 그 천사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라고 하는 거기에서 하나님에게 정죄받아 가지고서 쫓겨났습니다. 제 중심 제 위주로 살라고 하는 그 천사가 루스벨 천사라고 천사장인데, 천사장인데 천사장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중심하고 위주하는 것으로 살면 저는 하나님 다음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을 터인데 그것이 하나님 지위와 권세를 가로취할라고 하는 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는 거기에서 타락이 돼 가지고 악령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악성인데, 왜 악성이 됐는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사는 것을 요 하늘에서 타락해 가지고서 쫓겨 내려온 요 타락한 천사 유다서에 보면은 타락한 천사를 말해 놨습니다.

타락한 천사 요 악령이 들어와 가지고 해와를 꾀워서 ‘하나님이 선악과 먹지 말라 하는 것은 하나님같이 선악을 알 줄 알고 먹지 말라 해 놨다. 너희들이 선악과를 먹으면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되리라.’ 이라니까, 고 말은 참말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 말은 고 말은 마귀가 참말을 했습니다. 참말을 했는데 그 참말한 것이 해와가 어리석기 때문에 해와의 심리와 지식 정도를 이용해 가지고서, 그렇게 하면은 해와는 그걸 알아차리지를 못하고 막바로 들어서 제가 하나님 될 줄 알고 그렇게 먹으리라 하는 그 심리를 이용해 가지고서 그렇게 아주 고등 술책으로서 꾀웠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만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선악과 따먹은 그것이 하나님 된다 하니까 좋아서 그때부터 자기 중심 들어온 그것이 들어서 인간은 완전히 멸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선악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됐다. 그 에덴 동산에 쫓겨날 때에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왜?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은 선악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고 하니 선악의 정의를 하나님을 좋아하면 선, 하나님을 싫어하면 악, 하나님에게 속하면 선, 하나님을 떠나면 악 이것이 하나님이 선악의 정의를 그렇게 내놨습니다. 왜? 그것은 하나님이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을 좋아하면 선이요 완전을 미워하면은 악으로 이랬는데 이 해와와 아담은 유한한 인간이요 완전자가 못 되는 것인데 이것이 하나님처럼 자기를 좋아하면 선 자기를 싫어하면 악, 자기에게 속하면 선 자기에게 떠나면 악, 이렇게 정의했기 때문에 요것이 들어서 틀려서 멸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요것이 원죄입니다.

그래서, 악령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으로 할라고 하다가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쫓겨난 천사가 악령이요 악령에게 꼬임 받아 가지고 에덴 동산에서 전인류의, 부정 모혈로 나는 사람의 대표로 아담이 하나님과 계약한 것이무슨 계약이냐? 모든 거는 다 너희들이 자유로 사용하지마는서도 요것만은 너희들이 사용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금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 선악과를 금했습니다. 선악과를 금했는데 고 금한 고것은 요것만 금하고 딴것은 다 너희들이 자유하라 한 것이 하나님하고 사람하고 계약한 것인데 사람이 그 계약을 어겨서 하나님을 거스려서 범하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어 버렸습니다. 고것이 뭐이냐? 그때부터 인간은 악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처음에 날 때는 악성도 아니고 선성도 아니고, 인간의 그 본성이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었는데 에덴 동산에 하나님이 ‘여게서 동산을 지키라’ 할 때에 그때에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서 살아라’ 하는 그때가 인간은 선성이 됐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성품이 됐었는데 그만 거게서 선악과 먹고 난 다음에 인간이 악성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타락 후에는 인간이 본성이 악하냐 선하냐 할 때에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철학자들입니다. 철학자들은 전부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이렇고 보는 것이 철학자들이요 기독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이렇게 성경이 가르쳐서 보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에,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이라기 때문에 모든 철학은 ‘이것은 다 껍데기로 나와 그렇지 인간이 인간 자기를 파고 들어가고 파고 들어가고 자꾸 자기를 파고 들어가면 자기 속에 선이 있다. 덜 파고 들어가서 그렇지 인간이 자꾸 파고 들어가면 그 안에 선이 있다.’ 그것을 소망하고서 파고 들어가는 것이 모든 이종교가들이요 또 철학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이 아니고 인간은 이제 본성이 악하게 됐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대로입니다.

또, 악령은 악령이요, 악령이라는 말 알지요, 이제는? 악성이라 말은 인간의 원죄가 악성입니다. 원죄. 자기 중심 그것이 악성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옛사람으로 사느냐 새사람으로 사느냐 하는 그것은 자기 이 심신이 자기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 돈 중심이면 그것도 피조물 중심이요 권세 중심이면 그것도 피조물 중심이요 자기 중심이면 그것도 피조물 중심이요 민족 중심이면 그것도 피조물 중심이요 전인류 중심이면 그것도 피조물 중심이요 모든 만물 중심이라도 피조물 중심입니다. 창조주 그분 중심이어야 선이지 그 외에 것은 다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악성은 그것입니다.

또, 악습이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악습이라 말은 습(習)자는 익힐 습(習)자 습관이라 습(習)자 익힐 습자입니다. 이래서, 악령이 유혹을 하고 또 근본 타락한 원죄가 악성이기 때문에 악령과 악성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자기 중심의 언행 심사의 행동을 한 번 했으면 그것은 악행 곧 죄가 됩니다. 고것을 두 번 했으면 두 번 연습했기 때문에 고것이 악습이 됩니다. 세 번 했으면 더 악습이 됩니다.

열 번 했으면 더 악습이 됩니다. 백 번 했으면 더 악습이 됩니다. 악습이 되니까 악령 악성 악습이 들어서 네 마음과 네 몸을 주관하고 있다.

그러면, 악령 악성 악습이 우리 마음을 주관하고 우리 몸을 주관할 때에는 그 생활은 천지를 다 얻는 거 같아도 마지막에는 멸망이요 하나도 산 것이 없고 완전히 멸망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보면은 악령이 우리를 해하는 그것보다 악성이 해하는 것보다 제일 우리에게 가깝게 있어 가지고 우리를 타락하게 하고 범죄케 하는 것이 악령이 되겠습니까 악성이 되겠습니까 악습이 되겠습니까, 우리를 각각 거게서 제일 타락시키는 제일 앞잡이 서 가지고서 우리와 가깝게 우리를 범죄케 하는 것이 악령입니까 악성입니까 악습입니까? 여러분들이 혹 겪어서 살펴 가지고서, 요 셋 중에 요놈이 제일 내 옆에 딱 붙어 가지고서 요놈이 나를 망치는구나 하는 제일 내게 가깝게 붙어 가지고서 나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그자가 뭐인고 한번 찾아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뭐인지 찾아 본 적이 있습니까? 고것은 악습 그놈입니다. 악습. 악습 그놈이 제일 가깝게 붙어 가지고서 고놈이 그랍니다.

오히려 악성은 저 멀리 있는데, 악성도 붙기 전에 악습 그놈이, 과거에 요렇게 했던 습관이 들어서, 뭐 노름하던 사람도 노름 습관이, 술 먹는 사람도 술 먹는 습관이, 또 무슨 명예 권세를 탐하던 그것도 명예 탐하던 권세 탐하던 고 습관이, 또 도둑질 하던 또 습관이, 뭐 술 담배 먹는 고 습관이, 또 음행하는 습관이, 또 뭐 모든 것이 습관 고 습관 그놈이 들어서 먼저 끕니다. 습관 고것이 들어 가지고서 우리 몸을 끌고 우리 마음을 끌어 가지고서 끌고 난 다음에는 고 악성이 딱 달라붙고 악령이 딱 달라붙어 가지고서 우리를 이렇게 망치게 해 대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태복음 4장에 마귀가 예수님을 꼬운 것이 세 번 꼬왔는데 세 번 꼬운 것이 그게 다 ‘보라, 이렇게 이 백성들이 다 로마에 식민지로서 경제에 이렇게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모두 못 먹고 못 입고 곤란을 당하고 있는데 이럴 때에 네가 이 돌로서 떡이 되는 이런 걸 하면, 너는 떡 되게 할 수 있지 않느냐? 네가 돌로 떡 되게 뭐 돌이 떡 되라 하면 당장 다 온 돌이 다 떡 될 터이니까 네가 돌로 떡을 만들어 가지고 이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여 준다고 하면은 모든 사람이 다 너를 구주라고 쭉 따를 터이니까 구원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느냐?’ 그렇게 꼬왔습니다.

그게 뭐이냐? 하나님이, 하나님이 떡 만들라 하면은 떡 만들지마는서도 그게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비위를 맞춰서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하나님을 따라서 하지 안하고 구속에 역사를 위해서 제 주장대로 제 마음대로 제 단독으로 제가 능동적으로 떡 만들라 해서 떡을 만들었으면 그것으로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배반했고 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악함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라다 안 되니까 예루살렘 성전에 꼭대기에 올려 놓고서 ‘보라, 여게서 이렇츰 높은 이걸 이렇게 사십여 년 들어서 지어 놓은 이 성전이 얼마나 높으냐? 이래 높은데 여게서는 새나 날아 내릴까 사람은 내리지 못한다. 너는 여게서 훅 뛰어내려도 죽지 안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성경에 시편 91편에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안했느냐 그러니까 네가 여기 훅 뛰어내리면 모든 사람이 보고 이는 참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다 하고서 영접할 터이니까 뛰어내리라.’ 이렇게 마귀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걸 알았습니다. 아니까, 예수님이 그때 그 반박하기를 뭐라고 반박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시나 안 도와 주시나 보자’ 하나님이 도와 주시겠다고 말하지 안했고 뛰어내리라고 하지 안했는데 제 자유대로 뛰어내리면서, 자유대로 뛰어내리면서 뛰어내리면 하나님 도와 줄 것 아닌가 하는 요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뛰어내리라고 하는 데에 뛰어내리고 그랄 때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뛰어내리라 소리도 하지도 안했고 도와 주마고 약속도 안 했는데 제 혼자 이와같이 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도와 주시겠나 안 도와 주시겠나 시험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요렇게 말했습니다.

또 고다음에 한번 나한테 절하면 천하 영광을 다 주겠다 이랄 때에 주님이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홀로 그에게만 경배하라 했다. 이놈아 네가 어떻게 나를 하나님에게 그저 그분 중심으로, 그분 중심 그분 위주로 이제 선으로 나갈라고 하는데 나를 삐뚤뜨려서 어쨌든지 내 중심 내 위주로 내 능동으로, 내 능동으로 내 중심으로 내 위주로 하도록 할라고 하느냐? 이랄 때에 사탄이 도망을 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우리가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하는 요것을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만일 어떤 사지에서, 사지에게 거게서 만일 어떤 큰 뭐 구렁이나 맹수가 와 가지고 달라듭니다. 맹수가 달라들 때 그때에 우리들이 본능적으로, 맹수가 달라드니까 내 생명을 피하겠다 하고서 ‘어디로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을까?’ 했다면 실패했습니다. 그거 옛사람입니다. 제 몸뚱이만 생각했지 하나님은 생각지 안했습니다.

그때도 ‘새사람으로 산다’는, 그때도 예수님의 피공로 생각하고 성령 생각하고 진리 생각해서, ‘여게서 내가 이라면 예수님이 공로를 입고 있는 것이냐, 이라면 내가 성령에 도우심을 입겠느냐, 이라면 진리의 도우심을 입겠느냐, 이라면 주님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주님과 나와 어떠냐?’ 주님부터 생각하고 생명을 뒤에 생각했을 때에는 요때는 새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사는 데는 절대 생명이 있는 한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만일 해했다면 그는 한없는 면류관과 영광이 되게 하시는 것이지 절대 피해는 없는 것입니다. 요걸 우리가 꼭 믿어야 됩니다.

셋째로, 새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과 성령의 감화 감동과 진리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감사하고 이 세 가지 은혜에 배치가 아니 되도록 할려고 애를 쓰면서 언행 심사에 행동을 할 때가 중생된 산 영과 심신이 단합되는 때니 새사람으로 살려고 힘쓰는 때입니다.

새사람으로 살 때는 죄와 의와 하나님에 대한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가 다 담당하고 우리가 요렇게 예수님의 피공로로 살 때에 우리에게 뭐 삐뚤어진 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든 부족한 거, 행함에 부족한 거, 하나님과 이 좀 사이가 좀 멀어진 거, 이런 것이 주님의 피공로로 살라 할 때에 다 해결돼 버립니다. 요것 중요합니다. 요걸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살라고 해도 우리는 삐뚤어진 것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삐뚤어진 것이 없을 수 없어. 우리가, 죄라는 말은 삐뚤어졌다, 삐뚤어진 게 없을 수 없는데 주님의 피공로를 믿으면서 이 공로 안에서 살라고 애를 쓸 때에 나에게 내가 아는 거 삐뚤어진 거 모르는 거 삐뚤어진 거 모든 삐뚤어진 것을 예수님의 사죄가 다 책임을 집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순종을 다 한 것도 있지마는서도 순종함에 부족한 거 혹 어긴 거 이 모든 순종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의 대행이 다 책임을 지십니다.

또, 내가 하나님과 바로 결합되지 못한 것도 있고 멀어진 것도 있는데 이런 것을 예수님의 공로를 입고 살라고 애를 쓰고 예수님의 공로를 기억해서 그 피와 살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을라고 할 때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잘못된 것이나 좀 삐뚤어진 거 하는 이런 것을 다 책임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책임져 주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지를 못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인제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바로 만들고 우리 생각을 바로 만듭니다. 성령이 우리 심령을 바로 만들어 가지고서 바로 알게 합니다. 성령이 안 오면 우리 마음은 자꾸 삐뚤어지게 꺼꾸로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지도해 보면 그 사람이 바른 말을 알아 들을 줄 알고 그 다음에 바른 것이라면 자기에게 이해를 불구하고 고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면 다 됐습니다.

그만하면 다입니다. 벌써 그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알아 들을 줄 알고 옳은 것이면 자기에게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옳은 것이면 단행할 수 있는 그 사람만 됐다면 그 사람은 벌써 의인이요 성공자요 그 사람 앞에는 아무 장애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담당하고, 담당하고 전지 전능 사랑의 하나님으로 동행하기 때문에 이는 전부가 생명이요 평강이요 승리요 성공과 영광이 되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 새사람과 옛사람을 잘 분별해야 됩니다. 그 사람은 축복과 기적 속에서 살게 됩니다. 전생활은 영생이요 심신의 기능도 다 영생이 되고 관련된 물질도 다 영생이 됩니다.

오늘 묻는 것은 문답은 둘 뿐입니다. 하나는 불신자의 이름을 말하시요. 불신자의 이름이라는 안 믿는 사람은 그것을 뭣이라고 했는가? 안 믿는 사람은 뭣이라고 했는가 그것을 지금 말하라 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 말이요. 생령 사람, 이 생령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얻은 이름입니다. 생령 사람, 또 그 다음에 육체 사람, 타락한 사람, 변질된 사람, 죽은 사람, 마귀의 자식이라 합니다. 요것이 성경이 말하는 안 믿는 사람들의 사람 이름입니다. 사람 이름. 생령 사람, 요거는 타락하기 전입니다. 또 육체의 사람, 요거는 타락한 바로 즉시입니다. 또 타락 사람, 변질 사람, 죽은 사람, 마귀의 자식이라 합니다.

그러면 둘째로, 신자의 이름을 말하라. 신자의 이름을 말하라. 신자는 생령 사람, 꼭 같습니다. 요거는 꼭 같소. 생령 사람, 육체 사람, 이것도 꼭 같습니다. 또 타락 사람, 이것도 꼭 같습니다. 택자나 불택자나 꼭 같습니다. 타락 사람. 또 변질 사람, 이것도 꼭 같습니다. 또 죽은 사람, 이것도 꼭 같소. 우리가 다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죽은 사람. 또 마귀의 자식 이것도 다 같습니다.

우리가 다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게서부터 틀립니다. 대속받은 사람, 여게서부터 이제 우리와 다릅니다.

대속받은 사람. 그 다음에는 중생된 영, 우리를 중생된 영이라 이랬어. 중생된 영.

또 그 다음에는 새사람이라 이랬습니다. 새사람 이랬는데, 또 옛사람이라.

우리에게는 또 새사람인데 옛사람 이름을 또 가지고 있어. 새새람인데 새사람이 영과 이 육이 둘이 나누어졌을 때에, 이 영과 육이 합해 가지고 같이 동행할 때에는 새사람인데 동행하지 안하고 이 심신이 영을 배반하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함께 동행할 때는 그만 옛사람이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옛사람, 또 하나님의 자녀, 천국 시민이라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 공과가 나올 터이니 이런 것도 공과를 가지고 가거든 그거 그저 간단 명료하게 이래 해 놨기 때문에 고걸 여러분들이 ‘지금 요래 알면 다다’ 이런데 고걸 자꾸 알고 요렇게 알고 난 다음에는 이 세상에 나가면 요 하나에 대해서 반대하는 반박문이 이런 책이 한 권씩이나 됩니다. 이 반대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여기 배운 이걸 반대하는 사람들의 그 설명해 놓은 것이 하나에 한 교리에 대한 것이 이런 책이 뭐 한 권 둘뿐 아니라 그 책이 뭐 여러 수십 권도 넘습니다. 이러니까 나가 가지고는 다 넘어지고 맙니다. 마귀란 놈이 홀켜서 넘길라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그냥 이와같이 안다고만 ‘요거뿐이라’ 이게 아니오. 이걸 얼마나 미혹시킬라고 애를 쓰기 때문에 우리는 거게서 주의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단단히 익히고 기도를 많이 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니까 똑똑히 알면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혹이라는 것은 자기 이상의 지식이 있을 때에는 그 지식에게 미혹을 받기 마련인 것입니다. 사람은 순응성을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은 미혹 안 받지마는서도 마음은 미혹을 받는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자기로서의 이상 없는 최고의 지식을 가져야만 미혹을 안 받는 건데 그 지식은 믿음의 지식을 가지면 최고의 지식입니다. 믿음의 지식이 아니고는 최고의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감의 지식을 받으면 미혹을 받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밤에는 옛사람 새사람 이것을, 나가면서 이제 받아 가지고 나가십시오. 나가면은 그 공과를 다 줄 것입니다. 이러니 받아 가지고 가서 어짜든지 이것을 여러 번 읽어 보면 옛사람 새사람을 알 것입니다. 새사람을 말을 한 데도 새사람을 똑똑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늘 보니까 조직 신학에서 새사람 공부를 하는데 여러분들이 잘 배웠으리라 생각 됩니다.

새사람은, 요 새사람은 이 산 영과 이 심신이 합해 가지고서 영육이, 산 영과 심신이 합한 그것을 가르켜서 산 사람이라 이라는데, 그러면 그 영이 몇 가지 힘으로 살아났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녜,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이 산 사람의, 새사람, 산 사람의 그 심신의, 심신의 힘은 몇 가지입니까? 새사람의 마음의 힘은 몇 가지입니까? 네 가지요? 아니오. 뭐 뭐 네 가지? 인제 또 영을 말하는 모양인데. 녜, 아마 피 성령 진리 또 영 그래 인제 해서 이 너이를 말한 것이데 영은 아무 힘 없어요. 영도 내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셋 힘이 영의 힘이오. 이러기 때문에, 새사람의 힘은 영도 이 셋 힘 또 새사람의 마음도 이 셋 힘 또 새사람의 몸도 이 셋 힘,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새사람의 힘은, 영육이 합해서 ,사람인데 새사람의 힘은 그 힘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저 뒤에도. 새사람의 힘이 몇 가지인지 손가락으로 한번 저 뒤에도 가리켜 보이소. 모르면 안 돼. 저 뒤에. 셋 냈소, 셋? 셋 낸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옳지 셋 냈으면 맞았어요. 셋 안 내면 틀려. 셋.

그러면, 새사람의 힘은 무슨 힘입니까? 진리의 힘이오. 진리가 우리 힘입니다.

우리 힘은 진리의 힘입니다. 요걸 말로 해도 똑똑히 확신을 못 가져. 진리의 힘.

우리가 목회할 때에 뭐, 이 목회할 때나 무슨 사건 날 때에 이 배경에 , 배경에 무슨 뭐 정권의 힘이나 재벌의 힘이나 뭐 많은 다수의 힘이나 그런 것을 사람들의 힘으로 삼기 쉽습니다. 그건 죽은 힘이지 산 힘 아닙니다. 요것도 얼마나 구별하기 어려운지 모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힘은 진리의 힘입니다.

진리가 우리 힘입니다. 그러기에, 목회도 진리가 우리 힘이오. 어데든지 진리와 나와 동행했으면 그거는 천지가 눌러도 꼼짝도 안 합니다. 진리가 우리의 힘입니다. 우리의 힘은 진리의 힘이오. 진리 떠나면 우리는 죽여 버렸습니다. 진리 떠나면 우리는 죽었습니다. 진리가 우리 힘이요. 진리의 힘이요 성령의 감동의 힘입니다. 영감의 힘이오. 영감의 힘. 또, 예수님의 이 사죄 칭의 화친, 사죄의 힘이요 칭의의 힘이요 화친의 힘이요 이 세 가지 힘은 만사 형통입니다. 다 완성이야. 이거는 완성이라. 이 참 깨닫고 보면은 얼마나,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나 혹 교역자들도, 목회자들이, 가 보면 진리를 제 목회의 힘으로 영감을 제 목회의 힘으로 또 예수님의 피공로를 제 목회의 힘으로 이 힘으로 삼지 안하고 가 보면 뭐 막 이래 떠둘러 가지고서 어떤 장관을, 어떤 지방 장관을, 어떤 재벌가를 뭣을 이런 사람이나 또 돈이나 이런 것을 제가 목회하는 데에 힘으로 삼고 하는 것은 참 비참하고 가련합니다. 그게 망할 것입니다.

보면, 저 사람은 요새 지금, 저 사람 요새 좀 기분이 좋고 보니까 배짱이 있고 어깨가 쩍 벌어진다. 저 사람이 무슨 힘이고 보면, 연보가 많이 나왔다든지 또 어떤 돈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옹호를 하고 찬성하면은 그 힘을 가지고서 그만 그걸 보고 의지합니다. 교회 연보 나오고 교회 재정이 넉넉하니까 그걸 힘으로 떡 배짱을 냅니다. 불쌍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그저 구원하기에 그렇지마는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 진보가 없었요. 하나님은 섭섭해 하십니다.

자기가 자문 자답을 해 대야 돼요, 자문 자답을. 내가 ‘보자, 내가 의지하는 힘, 내가 지금 힘을’ 힘이 없으면 못 싸우는 거 아닙니까? ‘내가 가진 힘, 의지하는 힘, 내가 쓰는 힘, 내가 배짱에 힘, 내가 지금 내 힘으로 가지고 있는 힘, 이 힘이 뭐꼬? 혹 사람이 아니냐?’ 자꾸 수정해야 합니다. ‘사람 아니다. 사람은 안 한다. 사람이 내 힘이 어찌 되느냐?’ 사람의 힘. ‘그러면 뭐 우리 교회 재정이 많으니까 재정이? 아니, 재정이 그게 내 힘 안 된다. 또 그라면 무슨, 많은 교인들이 환영을 하니까 그게 내 힘? 아니, 그것도 힘 아니다. 내 힘은 오직 진리만이 내 힘이다. 영감만이 내 힘이다. 예수님의 대속의 이 공로만 내 힘이다.’ 요렇게 하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요렇게 하는 자의 하나님이시오.

이러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이 전폭을 기울여 주고 옛사람으로 돌아갈 때에는 하나님은 손 떼고 돌아가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똑똑히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 그는 두렵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도 멸할 수가 없어요. 그러기에,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을 축복하면 축복받고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을 멸시하면 그 사람은 멸시합니다. 새사람을 저주하면 그 사람을 저주하십니다.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을 자꾸 이래 축복을 해야 축복이 가지,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말도 한 마디 나쁘게 못 합니다. 욕 한 마디도 나쁘게 못 하요. 하면 제게 그만침 하나님의 분개가 돌아간다 그말이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제 목이 쉰 것을 오늘 밤에 광고하고 다음 금요일날 광고하고 주일날 오전 광고하고 오후 광고하고 그라고 나면 인제 끝납니다. 내가 이 목 쉰 거는 죄를 지은, 죄를 지어서 목이 쉬어 가지고, 주일날 오후에 ○ 장로님이 광고 이 감사 연보한 것을 이 광고를 할 때에 그때 내가 죄를 지어 가지고서 당장에 목이 딱 막혀서 암만 해도, 내가 그때, 여러분들 여기 봤을 거야,다. 기록할 때 아 악 악 암만, 암만 뭐 소리가 납니까? 암만 해야 소리가 안 나와. 이래서 막 악 악 암만 이래도 이래 기침도 해 보고 암만 해도 소리가 안 나와. 안 나서 광고를 못 하고 요래 가지고 여기다 대고 암만 해도 안 되고 이랬었는데, 가서 집에 돌아가니까 목이 더 잠깁니다. 밥상을 가져 와 가지고 무슨 말하는데 대답을 해야 되는데 대답을 할 수가 있어야지? 암만 해야 대답이 안 나와, 암만 해도 안 나오지. 또 뭘 좀 말해도, 말해도 말이 안 되지. 이래서 그래 인제 눈을 감고 가만히 이래 생각해 보니까 ‘아따야’ 싶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왜? 내가 큰 죄 지은 것은, 그때 안 죽기 다행이야. 하나님이 그만 때려서 죽였으면 그만 죽어 버리는 건데, 내가 죽어도 남은 죄를 지었어. 무슨 죄를 지었느냐? ○ 장로님이 오전 예배 보고 나 가지고 그 모든 걸 하시지 이거 또 감사 연보를 기록할라 하면은 이백 수십 명 그걸 기록할라 하면은 점심도 못 먹지 그래 놓으니까 내가 그날 광고할 때 보니까 ○ 장로님이 느준하이, 점심 못 먹은 것 같애. 느리하이 기운이 하나도 없이 이런데, 느려 빠져 가지고서 광고를 힘 없이 하는데 어떻게 안타까워서 말이지, 힘 없게 저래 하는데 참 점심도 못 먹었을 거야, 그것 또 필기를 했다, 보니까 또 교인은 여기 앉은 사람 보니까 막 주리를 틀어서 아이구 뭐 어째 감사 연보 뭐 어째 광고를 저래 한다. 이래서 나도 거기 동감이 됐어요.

그전에는 그 광고할 때에 기뻐서 자꾸 ‘주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를 깨달으니 감사합니다.’ 이랬는데, 그래 내가 속으로, 이제 내가 조 광고만 딱 끝나면 말하기를 그 감사의 종목을 쓸 때에 그만 무슨 감사라 요렇게 간단하게 요래 하지 그걸,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해 가지고서 회개하고 믿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요런 조목을 쓰는 것을 그걸 못 쓰구로 하고, 못 쓰구로 하고 그만 간단 명료하게 그렇게 할라고 딱 작정을 하고 딱 끝나기 때문에 내가 광고를 할라고 ‘광’ 하니까 뭐 말이 나와야지 안 나오고 말았다 말이오.

그때 내가 깨달으니까 주님이 하나님의 그 영광의 높음도 내놨고 부요도 내놨고 피조물 되어 오셨고 또 부활로 또 피조물로 부활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셨고 이렇게 당신이 우리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거 다 바쳐 주셨는데 우리가 당신에게 대접할 게 아무것도 없어. 또 우리에게 바랄 것도 하나도, 그분이 바랄 게 하나도 없어. 우리가 자복 기도는 벌받기 싫으니까 자복 기도하는 거고 회개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간구는 뭐이 모자라니까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고, 또 무슨 도고하는 것은 모르니까 알려 달라고 도고하는 것이고 당신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어. 당신에게 우리 연보한다고 당신이 가져갑니까? 아무것도 없어.

당신이 이렇게 큰 역사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받을 것이라야, 우리가 대접할 것이라야 받을 것은 감사하는 거 그뿐인데, 감사하는 그걸 많아 봤자 한 시간 하면 될 터인데 요 망령을 부려서 그래 내가 그때 안 죽기 다행이야. 그때 얼마나 하나님이 분하셨던지 내 목을 탁 잠가서 그만 말이 못 나왔었는데, 그래 내가 기도를 했습니다. 밥상 앞에서 기도하면서 내가 이걸 깨달았습니다. 이 죄를 내가 깨닫고 내가 주님 앞에 참 죽임을 당하지 안한 것이 다행입니다.

그런데 내가 목이 잠긴 것은 그거 때문에 딱 주님이 잠가서 우리에게 알릴라고 잠근 것인지 그것은 혹 신체상으로 그럴 때도 있으니까 그래 잠겼는지 내가 그걸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것으로 잠겼다고 하면은 이 시간에 탁 틔워 주시면, 그것 때문에 아마 목이 잠겼는갑다 이걸 제가 알고 내일 새벽 기도에 가서 광고할 것이고 또 수요일날 밤에 광고할 것이고 금요일 밤에 광고할 것이고 주일날 오전에 광고할 것이고 오후에 광고할 것이고 이 광고해서 주일날 오전에 광고할 것이고 오후에 광고할 것이고 이 광고해서 내가 모든 사람이 이제는 감사 연보를, 늘 그 말은 했어요. 감사 연보를 할 때에, 돈이 문제가 아니요.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해서 참 주님이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 감사한 것을 세밀히 기록을 하고 돈 없으면 십 원도 좋고 또 백 원도 좋고 뭐 천억이라도 좋고 그건 자기 힘 있는 대로 이래 하는 것이니까 그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자복을 하고 회개했습니다. 회개하니까 그만 목이 툭 터져 버려. 그뭐 그래 터져. 터져서 그래 가지고 목이 터졌습니다. 목이 터졌는데 또 좀 잠겨져. 잠겨지는 거는 뭐이냐? 내가 그래 야 이놈아 네가 나한테 그런 큰 범죄를 해 놓고, 내가 너거 위해서 이렇츰 많이 했지마는서도 내가 바랄 거, 나 대접할 게 뭐꼬? 내가 찍해야 ‘감사합니다.’ 이것밖에는 내가 받을 것이 없는데 그거조차 못 하구로 그렇게 했다는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그래서, 이제 광고를 합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앞으로 뭐 여기서 주님에게 감사한 걸 깨달아서 ‘요것은 참 감사합니다’ 돈은 십 원을 넣고라도 요 종이가 없으면 더 많이 써서라도 ‘요거 감사합니다. 요거 감사합니다.’ 그 감사한 것을 어짜든지 세밀히 쓰면 이제는 ○ 장로 혼자 시키지 안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가지고 그걸 다 이렇게 쓰도록 이렇게 해서, 이렇게 세밀히 써서 그저 한 시간이 걸려도 우리는 주님 앞에 감사하다는 거 광고를 할 때에는 한 시간이 걸려도 좋겠고 열 시간 걸려도 좋겠고 뭐 그 스무 시간 걸려도 좋겠고 그렇게 하면 당신이 우리 시간으로서 일 못 한 거, 일 못 한 거 우리 잠 못 잔 거 다 해서 당신이 해 줄 수가 있어.

이러기 때문에, 고걸 기탄 없이 다 세밀히 써서 내도록 하십시오. 그날 내가 고 광고를 어떻게 뭐 소리가 안 나는데 뭐라고 애를 써서 내가 그 말을 좀 했어요.

기어코라도 억지로 가지고 그래 가지고 뭐 간단 명료하게 어짜고 했는데 그 말도 안 되는 거 그래 좀 했는데 그말 취소합니다. 어짜든지 세밀히 쓰도록 하시고 요다음에는 고것을 혼자만 맡길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요렇게 해 가지고서 기록하고 또 광고하는 것도 혼자 하지말고 ○ 장로님이 얼마 한 백 명쯤 하고 그 다음 사람이 또 백 명쯤 하든지 요렇게 하고 한 오십 명씩 하든지 요래 갈라 가지고서 해서, 참 주님이 우리에게 바랄 것이라 해야 그 은혜 주신 거 감사함으로 깨닫고 ‘감사합니다.’ 그것밖에는 받을 것이 없는데 우리가 그 감사하는 그것을 막았으니까 얼마나 큰 죄가 됩니까? 우리가 감사하는 그것이 주님 대접하는 것이고 그 외에는 당신에게 대접할 게 없습니다. 모두가 당신에게 하나도 안 돌아가요. 그러기 때문에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감사를 제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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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 옛사람과 새사람/ 고린도전서 1장 18절/ 870306금야 선지자 2015.12.12
2103 옛사람과 새사람 구별/ 로마서 6장 1절-7절/ 841018목새 선지자 2015.12.12
2102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자/ 누가복음 9장 25절-20절/ 881225주후 선지자 2015.12.12
2101 옛사람-새사람/ 로마서 6장 5절-9절/ 870713월새 선지자 2015.12.12
2100 옛사람 생활/ 골로새서 3장 1절-11절/ 870212목새 선지자 2015.12.12
2099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1986. 3. 23.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12
»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860326수야 선지자 2015.12.12
2097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860406주새 선지자 201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