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 생활

 

1987. 2. 12. 새벽 (목)

 

본문:골로새서 3장 1절∼1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위엣 것을 찾으라 말은 천국에 속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지나갈 세상에 속한 것을 생각지 말라는 말입니다. 소망을 위엣 것을 소망하고 땅엣 것을 소망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땅엣 것을 소망으로 삼고 살던 악령과 네 중심 악성과 악습으로 살던 죽음에 속한 자, 정죄와 저주와 사망 아래에 속해서 안 믿을 때에는 몰라서 사는 것인 줄 알지마는 그게 죽는 것입니다. 사는 것인 줄로 알지마는 죽는 것입니다. 요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안 믿을 때는 하루 살면 그만치 생명은 짧아졌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날은 완전히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중생된 이후는 하루 사는 것이 영원히 죽는 것도 되는 생활도 하고, 또 죽을 것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것이 살아난 새생명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루 사는 것이 영원히 죽는 심신의 기능도 되고 하루 사는 것이 영원히 사는 심신의 기능도 됩니다.

“너희가 죽었고” 하는 말은 심신의 기능이 하루 지나면 그만치 죽고 십 년 지나면 그만치 죽는 그 죽음의 것으로 살았던 그것은 죽어버렸고 이제는 삶으로 사는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다. 육의 생명도, 육의 우리의 생명은 그것이 점점 살아서 영원히 사는 생명을 우리가 가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대속을 벗고 살면 또 다시 죽는 생명을 가지고 죽는 생명으로 살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면 죽는 생명으로 사는 자는 사는 것 같으나 그게 죽는 것이요, 죽는 생명으로 살던 그자는 죽었고 이제는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죽지 안하고 사는 생명으로 사는,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그 생명을 우리가 받아 가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자는 죽는 생명 그게 좋아서 죽는 생명으로 다시 돌아가 가지고, 죽는 생명은 뭐인데? 악령 악성 악습,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 때는 그것이 죽는 생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는 죽었기 때문에, 어떤 자가 죽었는데?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그자는 죽었고 이제는 예수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 위주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가 받은 일곱 가지 대속의 이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대속 생명으로 사는 것은 영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저 지난 시간에 거기 대해서 많이 말씀을 했는데, 우리는 나와 나를 구별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나와 나를 구별하기가 어려운데 참 나 영생하는 나는 누군가? 나와 내가 아주 어떻게 교묘한지 참 나와 나를 죽인 원수인 나와 교체되는 것이 찰나로 교체됩니다.

참 나는 뭣이 참 나입니까? 참 나는 뭣이 참 나입니까? 참 나는 자기 맘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사는 자기, 그 나.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뜻, 자기 욕심, 자기 소원, 자기 성품, 자기대로 사는 그 나, 그 나는 참 내입니까 나를 죽인 원수인 내입니까? 요걸 압니까? 요거 똑똑히 알아야 돼요. 원수인 내입니다. 참 내가 아니오.

그 나는 나 같은데 그것은 무엇으로서 생겨진 것입니까? 원수인 나, 거짓된 나, 참 내가 아닌 나 그것은 몇 가지 요소로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손가락으로? 세 가지 요소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이오. 요것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참 나, 영생을 가진 나, 우리 심신의 주인이 되는 나, 그 나는 뭐입니까? 그 나는 뭐입니까? 그 나는 뭐입니까, 여게? 중생된 영. 알겠습니까? 중생된 영이 참 내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거는 중생된 영 나는 죄와 허물로 죽어버렸고 시체 영하고 심신하고 뭉친 것이 안 믿을 때의 사람들입니다. 안 믿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영은 죽었기 때문에 기능으로는 전혀 없는 거와 같고 그때 움직이는 기능은 뭐인가? 심신의 기능이 움직이는데 심신의 기능의 지배자는 누군가? 영이 지배 야 될 터인데 영이 죽었기 때문에 악령이 지배해 가지고 심신의 기능을 악성을 만들었습니다. 자기 중심의 악성을 만들었고, 그러니까 그것이 자꾸 악습대로 살게 됩니다.

“너희가 죽었고” 하는 것은 영은 말하지 않습니다. 영은 살았는데 영은 살았고, 영은 살았고 육은 죽었다 그말입니다. 영은 살았고 육은 죽었고 “너희가 죽었고” 영은 살았고, 영은 죽은 영이 중생으로 살아났고 “너희가 죽었고” 뭐이 죽었다 말입니까? 심신의 기능이, 심신의 기능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것의 지배받아 가지고 심신의 기능 그것이 중생된 영의, 영이 죽었기 때문에 중생된 영의 지배받지 안하고 자기 아닌 악령 악성 그놈의 지배를 받아 가지고 사는 그자가 죽었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거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죽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죽었으니 이자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 이 생명으로 살아난 자라. 그러면 심신의 기능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하루 살면 하루 사는 것이 생명이 자라가는 것입니까 하루 살면 하루 살았다는 것이 생명이 짧아져 가는 것입니까? 죽은 자는 어떤 자가 죽었습니까? 생명이 짧아져가는 죽음으로 존재해 가는 그자가 죽었고 생명으로 성장해 가는 자가 살아났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었는데 죽은 자를 다시 끌어들여 가지고 죽은 자로 살 수 있고 산 자로 살 수도 있습니다. 산 자로 살 수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죽은 자로 살 수도 있고 산 자로 살 수도 있고, 죽은 자로 살면 하루 살면 그만치 죽었습니다.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습니다. 산 자로 살면, 산 자로 살면 하루 살았으니까 하루 산 것이 죽습니까? 하루 살았으면 그 생명이 짧아졌습니까 그 생명이 하루 산 것이 영생이 됩니까? 영생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아무나따나 덩더꿍이로 이래 뭐 덜덜덜 믿는 대로 되는 것 아니오.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을 두고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털끝만치만 그것만 틀려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요렇게 정확한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이런데 뭐 요새 믿는 사람들 예수 믿기는 쉽소. 이래도 믿고 저래도 믿고.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이렇게 저리도 맘대로 해석을 하고 아무나따나 하는 그것은 자기 속는 일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않는 정확무오한 것인데 이 일을 그렇게 알고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느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그말은 세상에 속한 지체를 죽이라. 세상에 속한 지체, 세상에 속한 것으로 움직이는 지체를 죽이라. 세상에 속해서 움직이는 지체를 죽이라.

그러면 지체를 죽이라는 말은 지체의 기능을 죽이라 말입니까 지체를 지배하고 있는 그 지배의 악령 악성 악습의 그 지배력을 죽이라 말입니까 뭐라 말입니까? 지배력을 죽이라 말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의 악성 악습 그것이 우리의 몸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제 종을 삼을라고 원수 그놈이 와 가지고 날뛰는 그놈, 음란 그놈을 죽이라. 부정을 죽이라. 사욕을 죽이라. 악한 정욕을 죽이라.

욕심은 왜 여기 정욕에 대해서는 왜 욕심을 악을 붙였느냐 하면 욕심에 대해서는 좋은 욕심 성신의 욕심도 있는데 악한 욕심이라 말은 자기 중심의 욕심이라 말입니다.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 이런 것들을 다 초월해 가지고 이제 살아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이 말씀입니다. 3절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 심신이 움직이는 것은 생명으로 움직입니다. 생명이 끝나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의 움직이는 것은 생명이 움직입니까 사망이 움직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 속에서 사는 그 심신을 움직이는 것은 생명이 움직입니까 사형받은 생명이 움직입니까? 뭐이 움직이요? 사형받은 생명이 움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루 살면 그만치 죽습니다. 십 년 살면 그만치 죽습니다.

우리는 이제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정죄와 저주와 사망을 받은 그리스도입니까 그리스도가 거기서 우리 대신 정죄와 저주와 사망을 받고 삼 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이 그리스도는 사망을 이긴 그리스도입니까 사망 아래 있는 그리스도 입니까? 사망 아래에 있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사망을 이긴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 됐습니다. 거게 대해 여러분들이 다 알라 하면 힘들고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따라합시다.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생명이 떠나면 뭣 됩니까? 생명이 떠나면 썩습니다. 생명 떠나면 썩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잊어버렸을 때에는 한 시간을 살았든지 두 시간을 살았든지 무슨 일을 해도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는 살기 쉽습니다.

얼마 동안 예수 믿는 사람이 되면은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람을 대해서 말을 하든지 일을 처리하든지 그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 어기는 그런 일은 별로이 안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니다.

사람을 대해서 얘기할 때나 또 무슨 일을 처리할 때나 경영할 때나 하나님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삽니다. 그러나 그동안 예수님은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주님과 자기와 연결을 가지고 ‘나는 주님의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자요,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내라.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내라.’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나는 누구 것 됐습니까? 주님의 것 됐습니다.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나는 주님의 것 됐는데, 그러면 주님이 우리의 소유물로 계십니까 우리의 정신으로 계십니까 우리의 마음으로 계십니까 우리에게 뭘로 계십니까? 뭘로 계십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뭘로 계십니까? 우리 정신으로 계십니까, 신경으로 계십니까, 또 무슨 감정으로 계십니까, 정서로 계십니까, 기술로 계십니까, 지혜로 계십니까, 예수님이 우리 안에 뭘로 계십니까? 생명으로 계십니다. 요걸 알아야 돼. 생명으로 계십니다.

생명으로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와 같이 산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대속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슨 생활입니까? 저 ○선생? 뭐?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는 삽니다.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대속도 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삽니다. 그 사람은 무슨 생활하는 자입니까? 율법 생활. 율법 생활입니다.

하나님 율법을 지키는 율법 생활이오. 율법 생활이오.

그렇게 살면서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가 생각하면서 사활로서 일곱 가지 대속 받은, ‘일곱 가지 대속 받은 일곱 가지 대속을 가진 내라’ 하는 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일곱 가지 대속을 받은 내라’ 이래 가지고 살 때에는 그거는 무슨 생활이냐? 그것은 율법 생활은 아니지마는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 생활입니다. 대속 생활이오.

대속 생활이니까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 생활은 대속 생활 그 모든 율법과 제도와 형편과 다 그런 것이고 그 속에 생명이 없으면 일곱 가지 대속 생활해도 생명이 없으면 산 생활은 안 됩니다.

그러면 산 생활은 뭣이 산 생활이냐? 예수님을 언제든지 우리 생각에 떠나지 안해야 됩니다. 자기 마음 속에 예수님은 나의 대속주요 나의 생명이라 하는 것을 기억하고 주님을 생각함으로 일곱 가지 대속을 생각하고, 주님과 일곱 가지 대속을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생각하고 요렇게 살 때 요것이 뭐이냐? 겨자씨 믿음입니다. 요것이 생명 있는 믿음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산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인데 이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고 이 믿음은 모든 것을 뽑고 옮기고 심는 능력을 가진 믿음인데 이 생명 있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 그것은 율법 믿음입니다. 율법 믿음. 생명은 없어. 또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만 자기가 기억하고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만 가지고 제가 예수님은 잊어버리고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만 가지고 삽니다. 그것은 대속 믿음이오. 생명은, 생명 있는 겨자씨 믿음은 뭐입니까? 겨자씨 믿음은 일곱 가지 이 대속과 연결이, 대속과 연결이 그 생명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 있는 것입니까? 생명은 뭐입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생명이 있는 것이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 없이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만 받은 대속만 가지고 있으면 생명 없는 대속이오. 생명은 뭐이 생명입니까? 생명은 하나님이 생명이신데 우리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생명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이러기 때문에, 지금 오늘 아침에 내가 말하는 것은 이것을 늘 말하는데도 여러 날 전부터 말할라 하다가 자꾸 다른 거 말하느라고 말 못 했는데. 우리 믿는 사람이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생각하는 거, 주님을 우리가 생각으로 연결됩니다. 사모로 연결됩니다. 생각으로 연결되고 사모로 연결됩니다.

다른 걸로 연결될 수가 없어. 생각으로 연결되고 사모로 연결돼 가지고, 생각과 사모로 연결돼 가지고 그 다음에는 뭐와 연결되느냐 하면 예수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과 연결되고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과 연결돼 가지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을 잊어버린 그 시간은 다 썩는 시간입니다. 그 사람이 성경 말씀대로 살아도 주님 잊어버린 시간은 다 썩는 시간이오. 또 자기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이거는, 그것도 처음에 어릴 때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생각하면 주님 안 생각할 수 없고 주님 생각하면 사활의 대속 이렇지마는 이게 그만 능숙해 놓으면 나중에 가서는 주님 잊어버리고 사활의 대속만 자꾸 이래 생각하기 쉽다 말이오. 사활의 대속만 생각하고 주님은 잊어버리고 사활의 대속만 자기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언제든지 우리의 생명이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 생각함으로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을 생각하고,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생각함으로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인 이 뜻을 생각하고 해서, 거게서 영감을 찾는 데는 저 주님과 연결돼 가지고 그 다음에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입어야 영감을 잡지 그리 안하면 영감을 못 잡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말을 할라 하니까 복잡하고 하지마는, 우리가 지금 이 육의 생명 이거는 죽을 생명이지마는 육의 생명을 보십시오. 우리가 안 믿는 사람들이 이 모든 이성 감정 욕심, 마음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있으면 그 마음의 움직임은 저주받아서 지금 사형받은 생명이지마는 마음이 움직이면 그 사람의 그 생명과 끊어져 가지고 마음의 움직임이 됩니까 안 됩니까? 마음의 움직임이, 안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의 그 육의 생명은 사형받은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죽어갑니다. 하루 지내면 하루, 그 사람에게 몇 해를 땅위에 있으리라 하는 정한 수명이라 하는 그 수명은 그 사람의 사형받은 그 생명이 얼마 동안, 얼마 기간을 통해 가지고 다 죽는다 하는 그 기간, 죽는 기간이라 말이오. 안 믿는 사람들이 수명 기간이라 하는 것은 죽는 기한입니다.

알겠어요? 죽는 기한입니다. 이러니까 그 생명은 지금 사형받는 생명이오.

사형받은 생명이요 죽어가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생명 사형받은 생명 그 생명과 연결 없이 마음이나 생각이나 이성이나 감정이나 욕심이나 뜻이나 정서나 하는 그런 것이 움직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생명 없이 움직일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생명 없이 움직일 수가 있소 없소? 없습니다. 생명 없이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 없이 움직이는 일은 없습니다.

생명이 빈약해질 때에는 그 움직임이 빈약합니다. 그 생명이 힘이 없을 때에는 그 움직임이 정리된 움직임이 되지 못하고 질팡갈팡 이래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지막 사람이 숨질 때에는 별소리를 다 합니다.

모든 거 정비 정돈이 안 됐기 때문에 생명력이 약하니까 정비 정돈이 안 되니 별소리 다 하다가 생명이 끊어지면, 생명이 딱 끊어졌으면 그 끊어지는 그 찰나부터 그 심신의 기능 작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심신의 기능 작용이 있으면 그 생명이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까? 그 속에 마음은 그 생명과 연결이 돼 가지고 그 생명이 마음에까지는 그 힘을 뻗쳐서 마음에까지는 움직였어도 그 생명이 몸은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수 있습니다. 그러면 움직일 수 없으면 그 사람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말도 못 하고 손도 움직이지 못하고 숨도 못 쉬고 그렇습니다. 숨도 못 쉽니다. 숨을 못 쉽니다.

호흡이 없습니다. 뚜뚜 이래 하던 게 그거 없습니다. 없어도 그 속에 마음의 움직임은 아직 끝나지 안했습니다. 지금 정신은 그대로 있습니다. 있을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사람이 죽을 때에는 우리는 이제 ‘이제는 숨을 안 쉬는 거 보니까 이제 죽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숨은 안 쉬어도, 숨은 안 쉬어도 맥박은 뜁니다.

숨을 안 쉬어도 맥박은 뜁니다. 맥박은 안 뛰어도 속에 지금 마음의 역사는 있습니다.

이러니까, 숨도 안 쉬고 맥박도 짚어 봐야 맥박도 뛰지 안합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그 사람이 깨어나는 수 있습니다. 깨어나는 수 있어. 깨어나고 난 다음에 물어 보면 숨도 안 쉬었고 아무 이 맥도 놀지 안하고 그랬는데 그 사람이 옆에서 한 말 다 들었습니다. 들어서 말을 합니다, 이런 말 했다는 걸 그 사람이 듣고 기억하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숨도 끊어졌고 맥박도 끊어졌는데 아직까지 정신이 맨 뒤에 거둬졌다 그말이오.

내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육의 생명의 힘이 강할 때에는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데 움직일 때에 그 모든 움직임이 정비 정리 정돈된 움직임을 합니다.

헛소리를 안 합니다. 헛 행동 안 합니다. 이러나 생명의 힘이 빈약할 때에는 그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고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합니다.

이라다가 몸이 그 움직임이 다 끊어져도 그 마음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음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숨과 맥박까지도 다 끊어진 그 사람도 옆에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말이오. 옆에 사람이 말하는 것을 아직까지 듣고 있어요. 그 듣는 것이 생명의 힘이 다 떨어지면 듣는 것까지 다 끊어져 버렸습니다. 다 끊어져 버려.

사람들은 죽었다 해도 법적으로 이십사 시간 전에는 장례하지 말아라 하는 것은 아직까지 이 고기덩어리는 죽어 있어도 속에 있는 정신이나 마음은 지금 살아 있을 수 있다 말이오. 있으면 그게 스물네 시간이 지나가면 그게 다 죽어버리기 때문에 장례하라 하는 것이오.

왜? 그 안에는 생명이 다 아직 끊어지지 안했기 때문에 마음에만 겨우 연결돼 가지고 마음만 조금 움직이고 있다 그거요. 움직이고 있으면 마음은 움직이고 있으면 아직까지 생명이 떠나지 안했기 때문에 마음 움직이던 생명이 좀 소생되면은 몸도 움직이고 숨을 쉬게 되고 숨쉬고 난 다음에는, 숨은 쉬지마는 이거는 죽어버렸습니다. 숨을 쉬고 나니 이거 죽은 차차 차차 지체가 살아나게 된다 말이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생명과 연결이 안 되고는 그 심신의 기능이 움직일 수 없다. 확실합니까? 움직일 수 없는 것 압니까? 움직일 수 없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일곱 가지 예수님의 대속의 사활을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을 생각해서 이렇게 산다 하지마는 주님을 잊어버렸을 때에는 생명과 끊어진, 생명과는 끊어졌는데 거게는 다른 생명이 와 가지고 지금 역할하고 있다.

일곱 가지 대속도 말하고, 대속도 말하고 율법대로 행위도 하고 있습니다. 행위도 하고 있는데 그때는 예수님은 잊어버렸습니다. 잊어버렸는데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기도 합니다. 그때는 움직이는 자기가 누굽니까? 움직이는 자기가 누구요? 중생된 영이 아닙니다.

중생된 영으로 움직일 때에는 주님과 진리와 영감과는 떨어지지 못합니다. 진리와 영감은 떨어지지 안했는데 그 사람이 이 심신 요놈을, 심신 요거 어리석은 놈이라.

우리의 심신은 어리석어서 마귀 요놈이 와 가지고 살살 꼬우면은 심신 이게 착각을 해 가지고 그만 중생된 영의 주인인 자기를 잊어버려 버리고 자기 아닌 어만 놈을 자기인 줄 알고 해 가지고 합니다. 자기가 아주 민첩하게 교체됩니다.

교체되면은 그놈이 다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아요 모르요?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기억 못 하고 있습니까? 그 심신의 기능이 기억하고 있소 없소? 악령과 악성 악습 마귀 그놈 말이오. 죽인 놈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이간을 붙여 가지고 요 심신이 중생된 영 그게 제 주인인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게 제 주인인지 이 주인을 착각한다 말이오.

주인을 착각해 가지고 영은, 이 마음이라 하는 이것이 영은 배반해 버리고, 영은 배반해 버리고, 배반하고 지금 그것이 악령하고 합작이 됐습니다. 악령하고 합작이 됐으면은 그 마음과 그 고기덩어리가 예수님의 이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을 압니까 모릅니까? 알고 있어요 모르고 있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어. 잘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되는 걸 알고 있습니까 모르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악령이 지금 그 사람의 심신을 거머쥐고 날뛸 때에 전도합니까 안 합니까? 전도합니까 안 합니까? 심방을 합니까 안 합니까? 설교합니까 안 합니까? 설교도 잘 합니다. 얼마든지 잘 합니다. 주님 잊어버리고 얼마든지 잘 합니다. 그것은 사람 보기에는 그러나 악령이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걸 볼 때에 저거는 속에 생명이신 주님은 떠나버리고 악령이 지금 악령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그 사람의 심신을 거머쥐고 얼마든지 뭐 설교도 하고 얼마든지 예수님의 대속도 말하고 또 하나님의 율법도 지킵니다. 이러기 때문에 솔빡 속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것은 말씀대로 지었습니다. 말씀대로 행했다 그말이오. 말씀대로 행하기는 행했는데 다 불타 버립니다. 뭐입니까? 생명 없이 했기 때문에 그것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주인공이 돼 가지고 날뛰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거는 옛사람 생활이라.

옛사람 생활은 꼭 율법을 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게 옛사람 생활인가? 아니오. 하나님의 율법대로 해도 악령 악성 악습, 자기 중심으로 설교하는 것은 다 그거라 그말이오.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얼마든지 말하고 설교도 하고 권면도 하고 전도도 하는데 그것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는 것은 이 겉어머리 나타난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지만 속에 들어가면은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주인이 돼 가지고 날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잊어버리면 생명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주님을 생각지 안하고,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는 건 우리 생각으로 잊어버리지 안해. 사모로 잊어버리지 안해.

그런고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주님으로 인해서 하나님도 연결되지 주님 없이 하나님과 연결 안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중보자요. 우리의 생명이시오.

이러기 때문에, 주님과 나와 연결이 돼 가지고 주님 생각하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그 다음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을 법도를 이 현실에 지킬라고 할 때에 그때에 생명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거기 대한 논리를 말할라면 복잡하지마는 그저 쉽게 주님 잊어버린 그 시간은 내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내 생각이든지 다 썩은 것입니다. 썩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 영에서는 주님이, 우리 영에게서는 주님이 떠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 영에게서는 주님이 떠나는 그 찰나나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 영에게서는 주님이 떠날 수 있는 찰나나 순간적으로 떠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순간적으로 떠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찰나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찰나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는, 우리 마음에는 주님이, 주님의 일곱 가지 대속을 말을 하면서도 우리 마음에 주님이 떠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얼마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대속만 말하고 주님은 잊어버려, 주님은 버렸습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주님을 사모하고 또 우리 마음으로 그와 같이 하는 것인데 우리 생각에 주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 생각에 주님 잊어버렸으면 우리 마음에 주님이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우리 생각에 주님 잊어버렸습니다. 우리 생각에 주님 잊어버렸으면 주님이 우리 마음에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내 생각으로 주님을 잊어버렸는데, 내 생각으로 돈 생각하다 주님 잊어버렸고, 인류 생각하다 주님 잊어버렸고, 사람 생각하다 주님 잊어버렸고, 뭐 말 생각하다 주님 잊어버렸고, 일곱 가지 예수님의 대속 생각하다가 주님 잊어버렸고, 진리 생각하다가 주님 잊어버렸고, 어짜든지 뭘 생각하다가 그런 거 생각하다가 주님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있습니다. 요것이 외식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것이 외식.

그러기 때문에, 주님 잊어버리고 얼마든지 그런 거 할 수 있는데 그때는 그런 거 하는 게 누구입니까? 마음하고 몸하고 둘이 그거 진리도 생각하고 서로 설교도 하고 또 예수님의 대속도 말하고 그럴 때 그때에 그 마음과 몸으로 그와같이 하고 있는데 그 마음과 몸 그 단독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그때는 누구하고 하고 있습니까? 마음과 몸 단독이 하고 있습니까 누구하고 하고 있습니까? 마음과 몸 이것이 독립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마음과 몸이 독립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찰나라도 독립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찰나도 독립할 수 없다는 거 그거 때문에 많이 강조를 했습니다. 찰나도 독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독립할 수 없는데 그때 주님은 생각지 안하고 주님은 잊어버렸고, 주님은 잊어버리고 지금 그 속에 자기 욕심이 들어서, 다른 거는 다 냅두고 그만 설교라 하면 더 중요하지 않겠소? 기도라 하면 중요하지 않겠소? 기도하면서도 주님 잊어버리고 자기 욕심이 들어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 명예심이 들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기 전투력이 들어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감정이 들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복수성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자기 공명심이 들어서 기도할 수도 있겠습니다.

설교도 그렇습니다. 주님 없이 얼마든지 외식으로서 대속도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도 말할 수도 있고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주님 잊어버린 거게는 다 썩었고 사망뿐입니다. 소용 없습니다. 주님을, 대속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우리의 생명이신” 주님이 우리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라 말은 영의 생명만이 아니오. 영의 생명뿐이 아니고 우리 마음의 생명이요 몸의 생명입니다. 생명이기 때문에 영은, 주님이 우리 영의 생명이신데 우리 영은 생명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생명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 영은 생명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생명이신 주님이 끊어질 때 있습니까 없습니까? 얼마든지 있습니다.

일생 동안 생명이신 주님은 잊어버리고 제가 뭐 설교도 하고 부흥사도 하고 많이 하지마는 악령 악성 그것이, 옛사람 그것이 왕돼 가지고 하는 겁니다.

옛사람된 그걸 알 수가 있습니다. 옛사람돼 가지고 하는 거는 알 수가 있어.

그것은 저도 시험해 보면 알고, 제가 스스로, 다른 사람이 시험을 안 해도 제가 스스로 시험하면 해 보면 알아. ‘요럴 때는 나는 요거 순전히 악령 노릇했다.

나는 악령 그놈의 소유가 돼 가지고 악령 그놈의 심신이 돼 가지고 설교했다.

악령 그놈의 심신이 돼 가지고 전도했다. 악령 그놈의 심신이 돼 가지고 변론했다. 악령 그놈의 심신이 돼 가지고 시비했다. 악령 그놈의 심신이 돼 가지고 모든 자선하고 구제했다.’ 자선 사업 구제 사업이면 다 옳으냐? 자선 사업 구제 사업도 속에 그 악령 그놈이 공명심을 일으켜 가지고 그래 가지고 하는 거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것이 그렇게 공연한 말 아닙니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율법을 행해도,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행해도 일곱 가지 대속을 버리고 행하면 이제 문제입니다. 일곱 가지 대속을 입고 행해도 주님을 잊어버리고 행했는지 일곱 가지 대속 그것이 근원이 돼 가지고 했는지 모릅니다.

자존자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완전자요 유일하신 영원 불변자이신 전지 전능자이신 이분, 주권자이신 이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분, 우리 주 예수님, 우리의 생명이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고, 자꾸 주님을 생각해야 돼. 주님을 사모해서 주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주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대속과 진리 생활이 돼야 됩니다. 연결이 돼 가지고.

요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오늘 아침에 많은 해석했는데, 그러면 육의 심신이 움직이는 것이, 심신이 움직이는 것이 육의 생명과 연결이 끊어져 가지고 움직이는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움직이지 못합니다. 육의 생명과 연결이 돼야 심신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육의 생명과 연결이 강하게 돼 가지고 있으면, 육의 생명이 강하게 돼 가지고 있으면 강한 육의 생명과 심신이 움직일 때에는 심신이 실수를 안 합니다. 빈약한 육의 생명과 심신이 연결돼 가지고 움직이면은 그 정상의 움직임을 못 하고 나중에는 고기덩어리 움직임은 중단돼 버리고 마지막에 최후로 마음의 움직임이 끝나면 그 사람은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 연결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연결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데 내가 하나 묻겠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 물어보고 그것만 답하면 그칩니다. 심신이 육의 생명과 연결이 돼 가지고 움직이는데 연결이 끊어지면 그때부터 다 움직임은 중단돼 버리고 끝나버리고 맙니다.

육의 생명과 심신의 기능이 연결이 돼 가지고 움직이는데 연결돼 가지고 움직일 때에 그 심신의 기능이, 마음의 기능이 ‘나는 생명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기 때문에 육의 생명과 연결이 돼야 움직이지 육의 생명과 연결 안 되면 안 움직인다. 육의 생명을 내가 생각해야 나는 연결이 된다.’ 이렇게 생각해야 연결이 됩니까 생각 안 해도 연결이 됩니까? 생각 안 해도 연결이 됩니다.

그것은 벌써 연결돼 거기서 나온 것은 연결이 돼 가지고 자꾸 생각한다고 연결이 되는 게 아니라 연결된 것은 생각 안 해도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 생활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다음에 와 가지고 우리 중생된 영에게서,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자의 구원은 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이종교들이 말하는 건 땅에서 찾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생각하고 이것이 자꾸, 우리는 지금 우리가 받는 것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기 때문에 받고 받고 이래서 자기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충만하게 되어질 때에, 되어져서 점점 장성해지면은 주님을 생각하지 안해도, 생각하지 안해도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생각하지 안해도 잊어버리지 안했습니다.

주님을 잊어버리는 그때는 아직까지 주님이 자기에게 생명되어 있는 그 밀접한 연결이 되지 안한 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밀접한 연결이 되지 안한 사람은 자꾸 이 연결을 시켜야 됩니다. 연결을 시켜서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자꾸 주님을 생각하는 것을 자꾸 이리 돼 놓으면 으례히 주님은 자기 속에 와서 계시기 때문에 주님 떠난 어떤 그 마음의 움직임이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떠난 마음의 움직임을 할라 하면은 떨려서 안 됩니다. 주님 떠난 마음의 움직임은 자기가 생각은 몰라도 마음의 신경이 압니다. 마음의 감정이 아요.

우리 마음만 예민한 줄 압니까? 마음만 예민한 것 아니오. 마음보다 어떨 때에는 이 몸의 신경이 예민합니다. 이래서, 마음에는 아니라고, 마음이 이거는 틀렸다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해도 어짠지 심신은 그 기능이 불쾌합니다. 어짠지 께꾸름하게 불편하요. 이 심신의 기능이 뭐인가 조금 심신의 기능이 좀 불쾌하고 심신의 기능이 뭐인가 좀 활발하지를 못하고 이런데 ‘이게 왜 내가 이 오늘 노곤하이 이렇게 뭣인가 좀 이 심신의 기능이 활발스럽지를 안한가?’ 그럴 때 있어. ‘활발스럽지 안한가?’ 암만 생각해도 모릅니다. 생각해도 모르나 그때가 뭐이냐 하면 그때는 이 마음은 둔하고 마음보다 몸의 신경이 더 예민해서 주님과의, 이 중생된 영. 중생된 영과 연결이 끊어진 것을 몸은 아는데 마음은 모를 때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육의 생명과 연결 없는 심신의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이 중생되고 새사람 된 것도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연결이 끊어지고는 우리의 심신의 작용이 생명 작용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심신의 작용은 겉어머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을 증거하고 또 일곱 가지 대속을 증거하고 이 대속과 말씀을 증거하면 요것은 확실히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연결이 된 것이라고 우리는 봐야 됩니까 연결이 됐는지 안 됐는지 그것을 살펴봐야 됩니까? 연결이 된 것도 있고 연결이 안 된 것도 있고 그렇습니까?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고 두 가지가 있습니까 틀림없는 연결은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연결은 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일반 세상 이 모든 교회들인데 요거는 예수 믿는 요 바른 길을 찾지 못해 그렇습니다.

얼마든지 설교합니다. 여러분들, 이거 구약을 보십시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으로는 얼마든지 설교했고 하나님의 율법을 말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라고 정죄할 때에 그때 그들이 뭣 가지고? 하나님 말씀 가지고 했어.

저희들의 법도 가지고 했어. 하나님이 주신 계명 가지고 했어.

계명인데, 그들의 생명은, 구약의 육체의 이스라엘의 생명은 누굽니까? 구약의 육체의 이스라엘의 생명은 누굽입니까? 누구요? 구약 육체의 이스라엘들의 생명은 누굽니까? 생명이 누구지요? 육체의 이스라엘들의 생명이 누굽니까? 대답해 봐. 예수님이십니다. 알겠습니까? “저희의 생명의 주를” “저희의 생명의 주를” 저희들이 ‘생명 생명’ 말하고 있지만 생명을 주니까 생명 죽였습니다. 그들은 생명과 연결이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생명이 연결이 안 됐어.

안 됐는데, 무화과나무 밑에서 기도하던 나다나엘이 오니까 예수님께서 ‘너는 이스라엘에서 간사가 없는 사람이라’ 이랬습니다. 그래 나다나엘이 있다 말하기를 ‘주님이 나를 언제 봤습니까?’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밑에서 봤다.’ 무화과나무 밑에 기도하는 그걸 말해. 그래 나다나엘이 ‘과연 내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찾고 있던 주님이시로구나’ 하는 걸 생각하고 그때부터 주님 영접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도를 얼마든지 말했지만 생명의 주와는 끊어졌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 많지마는 생명의 주와 끊어져 가지고 행동하는 게 많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제가 죄를 짓고 하면서, 죄를 지으면서 ‘주님 주님’ 한다고 되어집니까? 안 됩니다.

어제 아침에는 우리가 “율법을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행치 안하는 자는 지극히 작다 일컬으리라” 천국 가기는 가는데 제일 말단 구원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어제 아침에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 그자는 어떤 자라 했습니까? 지키는 자가 어떤 자가 하나님 법을 다 지키느냐? 하나도 빼지 안하고 다 지키고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지극히 크다 일컬음을 받는다 했는데 지키는 자는 누구라고 했습니까? 다 지키는 자는 누구라고 했습니까? ○○○장로님이 어제 좀 알아듣는 것 같았는데, 내가 보니까. 한번 말해 보십시오. 적은 것도 지키는 사람인데 적은 것도 지키는 사람. 율법을 온전히 다 지킨 사람은 어떤 사람이 온전한 다 지킨 사람이지, 어제 아침에 말했는데? 하나도 몰라요? 자기가 과거를 깨닫고 잘못된 것을 깨닫고 ‘이제부터 내가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다 내가 주의 말씀대로 다 순종하겠습니다.’ 순종하겠다고 했는데 순종한 사람은 누군가? ‘네가 참말로 순종할래? 순종하는가 보자.’ 하고 주님이 순종케 할 수 있는 시험은 주님이 하십니다. 뭘로 시험합니까? 현실로 시험합니다. 그렇게 작정한 이후부터 자기 현실에서 주의 말씀 어기지 안하고 하루 살고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킨 사람입니까 안 지킨 사람입니까? 완전히 다 지킨 사람입니다. 왜? 그때 주님이 시험하는 것은 다 합격했거든.

시험하는 건 다 합격했으니까 남은 것도 합격으로 봐야 되지 시험 안 한 거는 시험 안 했기 때문에 그거 안 됐지 그때 또 현실을 줬으면 다 지켰을 거라 말이오. 요것이 우리에게 구원에 그 완전히 율법을 지키는 비결인데 요것이 설교록에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깨고 이의도 달 것이고 깜짝 놀래고 자기들이 살아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러기 때문에, 구약의 이스라엘이 생명의 주를 얼마든지 사모하고 설교도 하고 그렇게, 안식일날은 닭 모이를 안 줬어. 모이 줬다가 닭이 주워 먹고 나머지기 싹이 나면 종자 심으지 말라 했는데 종자 심은 게 된다고. 이렇게 지켰고 세밀하게 뭐 나물 한쪼갱이도 다 십일조를 다 지켰지마는 의와 인과 신은 버렸어.

믿음을 버렸어.

믿음을 버린 거, 믿음이 뭐이야? 하나님과 연결이 믿음 아닙니까?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이 믿음이라. 하나님과 연결은 버렸다 말이오. 연결 버렸기 때문에 생명의 주가 왔는데 십자가 못박아 죽였지.

오늘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에 없을 때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에 없을 때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으면 모든 그때부터는 죽는 것입니다.로마서 8장을 똑똑히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쉬운 연습은 우리 마음과 생각에서 주님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주님을 잊어버릴 때에는 벌써 우리 마음에 몸에 모든 것은 다 썩습니다. 생명 떠나면 썩소. 생명 떠나면 그 시간부터 썩는 거라.

주님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계시는가? 우리 마음 가운데 우리 생각 안에 계시고 우리 사모 안에 계십니다. 우리 생각과 사모 안에, 우리 생각과 사모, 우리 생각과 사모 우리 마음 안에는 돈이 가득 찼고요걸 똑똑히 알아요!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 영생이 없다” 그말은, 그러면 그 속에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그 속에 점령해 가지고 있으니까, 사람 미워하는 게 점령해 가지고 있으니 그리스도가 그 안에 같이 계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우리 속에 죄를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계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 속에 죄를 생각할 때는 주님이 없습니다. 죄를 짓는데 어떻게 계실 수가 있습니까? 그 생명 다 썩은 구원이오. 다 썩은 것이오. 하나도 생명화된 거는 아닌 것입니다. 요걸 알고 오늘부터는 우리가 작정해야 됩니다.

자꾸 주님을 사모합시다. 이 연습을 해야 됩니다. 나중에 연습이 되고 난 다음에는, 스케이트 타는 사람을 처음에 가르칠 때에는 요리 넘어갈 때는 요래라 조래라 반드시 그 논리가 있습니다. 논리가 있어 가지고 되지마는 나중에 익고 난 다음엔 논리는 몰라도 됩니다, 몸에 익어 가지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자꾸 생각하고 사모하면은 자기 속에 주님을 새삼스럽게 그렇게 생각지 안해도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 주님이 우리 안에 항상 상주해 계시도록 할라 하면 우리가 얼마나 사모해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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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7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860406주새 선지자 201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