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989. 4. 12. 수새.

 

본문: 계 1:5-6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를 구원하신 동기가 하나님의 온갖 그 속성이 있지마는 다른 속성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동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구원의 동기도  아니고, 능력이 우리 구원의 동기도 아니고, 진실이 우리 구원의 동기도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신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여게 '우리를 사랑하사'  또 다른 성경에도 보면 우리를 구원하신 그 동기가 전부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그 구원이 우리 인간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광대한 구원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뭐  사랑을 할 만한 그런 아무런 가치나 자격이 있어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도 말로 암만 해도 안 되고 자기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 사랑을 자꾸  생각해 보면 그 사랑에 대한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가 차차 차차 우리로  하여금 알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알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것이 차차  뿌리가 넓게 깊게 박는 거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생각하면 그 사랑이 우리에게 견고하기도 견고해지고,  확고하기도 확고해지고, 또 넓어지기도 넓어지고, 깊어지기도 깊어지고,  높아지기도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생각하면, 그 생각은  무슨 성격을 가졌다 했습니까? 생각은 무슨 성격을 가졌습니까? 파고 들어가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자꾸 그 사랑에 대해서 자꾸 깊이  파고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것을 기억지 말라' 이렇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내게 대해서 잘못한 것이나 내가 또 내 중심으로 행한 그런 것이나 그런 것은  생각지 말라 이랬습니다. 생각하면 자꾸 깊어집니다. 우리가 죄지은 그 죄를  그것을 생각해서 너무 이 죄를 그냥 그만 간단하게, '내가 이런 범죄해서 이거  잘못됐다, 후회하는 일을 했다, 잘못됐다.' 이것을 이렇게 간단하게 발하고 하는  그것은 좀 안된 것같이 보여져서 안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며칠 동안 좀  울기도 울어야 되겠고 또 생각도 가져야 되겠고 뭣을 이렇게 하지마는 안된  그것을, 악한 그것을 생각을 하면 자꾸 그게 더 깊어지고 자꾸 그 죄악이 견고해  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예 그만 그것은 잘못된 줄 알면 이것이 예수님을 내가  고난받으시게 했고 예수님이 대형함으로 없어진 이 사실을 자기가 믿음으로  믿으면서, 다시 그런 것은 생각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생각도 안 하고 다시는 그런  행동도 안 하고, 생각이 먼저 되어져야 행동이 되어지지 생각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생각되면 벌써 그 생각이 행동의 앞잡이기 때문에 생각이 가면  행동은 그 뒤를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모든 나쁜 것은 생각에서부터 끊어야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우리 구원의 동기가  됐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동기는 뭐 우리에게 가치 있어 그런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당신의 진실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는 동기가 됐다면은 거슬리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무조건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한 만가지 베푸시는 그 은혜가 뭐 법도 아니고 이치도 아니고  뭐 이거는 아무것도 아닌 아주 거짓말이라고 할 만침 그렇게 폭이 넓고 이해가  넓고 깊습니다. 그거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신 동기가 됐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사랑에 대해서도 자꾸 생각을 가지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그 자체를 우리가 차차 차차 알게 됩니다. 그 사랑의 넓이도 알게 되고,  깊이도 알게 되고, 그 사랑의 깨끗함도 알게 되고, 영영함도 알게 되고, 또 높이도  알게 되고. 알게 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생각이라 하는  것은 지식을 따라갑니다. 생각이라 하는 것은 지식을 따라가는데 지식이 없으면  생각할래야 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식이 있는 것만침 생각하지 지식 없는  거게는 생각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 데에도  그 생각이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되겠는데, 그 지식은 무슨 지식을  따라서 들어가야 되겠습니까? 특별 계시, 보통 계시 그 두 가지 지식을 따라서  생각해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특별 계시는 하나님의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특별 계시이기 때문에 자꾸 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어떠한가? 성경을 자꾸  읽으면은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이러하다, 이러하다.' 또 '이럴 때도  이렇게 했다. 저럴 때도 이렇게 했다'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이래서,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오해한 일이 많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보니까 오해한 것이 회개가  되어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래 하셨구나' 하는 것이 이해가  되어집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장성한 사람들은 감사해서 못견디는  그 형편과 사건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해하고 낙망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렇게 잘못을 많이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특별 계시로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생각하친,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라고 하니까 특별 계시를 좀, 하나밖에 모르면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라  해도 하나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하니까 특별 계시를  백 가지를 알았으니까 백 가지 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천  가지를 알았으면 천 가지 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계시 말씀을 읽어 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생각하고  이래 되어지니까 자꾸 양식처럼 먹을 맛이 있고 자꾸 특별 계시를 알 맛이 있다  그거요.

 이번에 양성원 학생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에 첫째는 성신의 감동으로  읽도록, 이렇게 성신의 감동으로 읽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라 이랬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읽고 성령의 감동 없이, 그러면 성령의 감동으로 읽으려고 하면은  성령의 감동으로 읽을 수 있도록 성령의 감동에 찾아가는 방편이 무엇입니까?  찾아가는 방편이 뭐야? 찾아 가는 방편이 뭐지? 양심을 써야 됩니다. 양심을 써서  이 성경을 읽으면은 그 다음에 양심 쓰는 가운데에서 가다가 시동이 걸립니다.

시동이 걸리는 것은 성신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을 읽게 된다 그거요. 성신의  감동으로 읽어라, 또 성경에서, 읽으면서 네가 하나님 앞에 직접 이 성경에서  교훈을 받아라, 또 성경에서 책망을 받아라, 또 성경에서 옳고 바른 그런 것을  자꾸 수정해서 이렇게 해라. 이라면 차차 차차 그 사람이 뭐이 되느냐? 자기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그 수입이 생겨집니다.

 그래서 제가 며칠 전에 '이 말씀을 증거해 줘야 되겠다' 이래서 '모든 것을  성경에서 얻어라. 성경에서 얻어라. 모든 것을 성경에서 또 찾아라. 성경에서  만나라. 만나는 것도 성경에서 만나고 성경에서 찾고,' 이 성경 우리에게 얼마나  보배로움인지 모릅니다. '성경에서 깨달아라' 그래, 특별 계시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는 사랑을 자꾸 생각하고, 또 특별 계시만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것만 가지고 안 됩니다. 자연 계시를 가지고 생각해야  됩니다. 자연 계시를 가지고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에 모든 동물들이 가진 사랑,  곤충들이 가진 사랑, 또 이 식물들이 가진 사랑, 사람들이 가진 사랑 그런 모든  다, 이것은 완전 사랑이 아니지마는 다, 썩음에 속했고 없어짐에 속하는 그런  사랑이지마는 그런 만물의 사랑을 자꾸 이렇게 볼 때 '이런 것이 이렇게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니까,  동물들도 자기에게 소속한 새끼를 사랑해서, 이렇게 하는 이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니까,  누가 말하기를, 고동은 자기 새끼를 낳아 놓으면 그 새끼들이 젖을 먹일라 해도  젖 먹일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새끼가 전부 어미 살을 뜯어먹고, 이래 가지고 어미  살 다 뜯어먹으면 이제 먹을 게 없기 때문에 딴데로 흩어지고, 어미는  드부랑드부랑 껍데기가 떠내려가니까 어머니 시집간다 이래 한다고서. 곤충들이  가진 사랑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고동이 그렇게 새끼를 사랑해서 자기 전부를 희생해 주는 이것을 배울  때 '이것을 만드신 이가 누구냐?'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라 말이오. 하나님이  이렇게, 이런 것도 이렇게 만드셨으니까 이 만드신 이것이 고동 위해서 만드신 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드신 거라.

그러면 전부 이 자연 만물도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자연 만물들을 만들었다 말이요.

 그러면 자연 만물 만든 그 모든 것은 만물을 위해 만든 게 아니라, 만물 그것도  전부 택함 받은. 구속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여주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모든 창조와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의 섭리 인간의  마음의 구조 이런 것이 다 뭐이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그  섭리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라 그거요.

 과수원마다, 과수원을 만들어 놓고 과실 안 맺으면 그만 그 과실나무는 베어내  버린다 그 말이오. 그런 것도 뭐이냐 하면 그거 뭣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과실 맺지 않으면, 그 주인의 소용에 안 닿으면은, 암만  가꿔도 소용에 안 되면 나중에는 캐내 버리든지, 땅만 허비할 것이 아니라 그걸  캐내 버런다 말이오.

 이래서 특별 계시를 이 자연 계시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고 자연 계시를 특별  계시에 깨달아서, 특별 계시와 자연 계시 둘이 합해 가지고 하나님을 우리가 찾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섭리를 찾고. 하나님의  공평을 찾아서 자꾸 이래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거는 뭘로 하느냐? 생각이라야  된다 말이요. 생각.

 그러기 때문에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많이 독서를 하지 안하면은 안 됩니다.

그러면 독서도 요새는 뭐 인간에게 대한 독서 그것만 자꾸 이래 하니까 인간들의  죄악면에 대해서 얼마나 숙달된지 모릅니다. 인간의 죄악이 요런 죄악도 있고,  저런 죄악도 있고, 인간의 그 심리의 악한 것이 마구 인간들의 그뭐 소설이니  잡지에 다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거는 치우친 게 많지마는 시골 사람이  좋은 것은 뭐이 좋으냐? 시골 사람은 만물 속에, 하나님의 자연 이 교과서, 실물  교과서. 자연 이 교과서, 교재 속에 있기 때문에 논두렁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보면  논두렁 속에 오만 철학이 다 들었어. 거게서 벌거지 철학도 들었고, 또 풀포기  철학도 들었고, 뭐 큰 거 속에 작은 거 있고 보면, 아주 작은 곤충 속에도 아마,  모두 다, 균으로 말하면 아메바균이 뭐 작다 하는데 아메바균 그것도 현미경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아메바균 그놈도 뜯어 먹고 사는 게 있습니다. 날개 밑에나  다리 밑에 그 모든 데 뜯어먹고 사는 것들이 거기 붙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래 그래 해 가지고 이와같이 되는 이런 것을 다 볼 때에 사람들의 마음이  넓어지고 생각이 다 발라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뗘한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연구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할 수 없는 사람은 돼야 됩니다. 의심할 수 없는  사람은.

 뭐 갑자기 자기에게 무슨 큰 변동 되는 일이 있어도 '왜 이럴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서 깨닫는 가운데서 원망이라 하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낙망이라 하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불평이라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없고, 모든  염려나 의심이나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걸 우리에게 알려 줄라고, 우리가 얼마나 둔합니까?  이러기 때문에 알려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를 하고 애를 쓰시는지  모릅니다.

 이래서 사람이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루도 지내고 이틀도 지내고, 그만 밥도 못  먹고 며칠 동안 그걸 생각지 안하고 지내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이나 뭐이나  하나님의 속성이나 또 그것을 특별 계시로 자꾸 이래 알아들어가고 자연 계시로  생각해 들어갈 때에 생각에 젖어 가지고 그렇게 된다 그거요.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그의 피라 말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 말이오.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것만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신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지위, 권세, 부요, 영광, 존귀, 자유,  하나님이 얼마나 자유가 있습니까? 자유가 있는데, '그의 피로' 하는 것은 자유를  하나도 못 했습니다. 자유를 하나도 못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자유 하나도 못 했어. 하나님이 도성 인신하신 것과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모든 대속하신 것을 똘똘 뭉쳐서 한 말로  '그의 피로' 그러면 그의 피가 우리에게 어느 정도 대속했고, 어느 범위를  대속했고, 어떤 종류를 대속한지 모릅니다. 그러면 대속했는데 뭣 해?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 하시고' 우리 죄에서라 말은 우리 삐뚤어진 데서  그말입니다.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 삐뚤어진데서 우리를 다  해방시켰다 그 하나만 삐뚤어져도 삐뚤어진 그거는 그 삐뚤어진 것이 고쳐져야  되지 고치지 앉으면 해결이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과거에 삐뚤어진 그것을  암만 오늘부터 잘한다 할지라도 과거에 삐뚤어져 놓은 그거는 그 값이 있어야  되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암만 오늘부터 의인노릇 한다 해도 과거에 삐뚤어진  건 어짤 수가 없다 그 말이오.

 그러면, 과거 현재 미레의 모든 삐뚤어진 것을 주님이 대신 다, 죽으심의 피로  해방시켜 준 이것도 자꾸 생각해야 돼요. 생각하고 생각해서. 그러면 자기에게  삐뚤어진 죄가 하나 나올 때에 그때 우리 할 일은 뭐인가, 삐뚤어진 거 나올 때에,  '나는 이런 삐뚤어진 일은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런 삐뚤어진 이런 일이 나에게  있구나. 그러면 이 삐뚤어진 이것도 주님이, 이 삐뚤어지기는 내가 삐뚤어졌는데  이걸 벌써 미리 삐뚤어진 이것의 댓가의 형벌은 주님이 받으셨구나.'  이래 가지고 자꾸 이렇게 생각하고 연구해 들어가면 그만 우주와 모든 존재가  주의 사랑이요 나는 그 사랑의 한없는 무한한 사랑 속에 묻혀서 날마다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자라가고 있다 그 말이오. 택함을 받은 자들은 뭐, 사람 보기에는  어떤 자라 해도 그 속에 자라갑니다. 겉어머리가 나빠지는 건 속이 자라가고,  겉어머리 좋은 것은 또 속이 그만침 안 자라가고, 이래 가지고 기묘한 하나님의  이 사랑의 역사가 있다 그거요. 그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오늘은 좀 할 일이 있어서, 이제 이 사층에 예배 장소를 둘로 나누기 위해서  가운데 저 복도를 막게 됩니다. 월요일부터 지금 OOO집사님이 그 책임을 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금요일날까지 다 마치고 토요일날 청소하고 그래 다음  주일부터 사용하도록 그렇게 하기로 계획을 세워놓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요것은 제가 언제부터 생각했느냐 하면은 한 십팔 년 전에 계획 세워놓고 늘  위해서 기도해 나왔는데 이제 이것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층에 브로크를  올릴 것이 한 삼천 장 되는데 지금 바로 예배 끝나고 난 다음에 남녀반이 가서,  또 자기 가정에 어려움이 있으면 여게 매이지 말고 거기 가서 그 일을 보고, 또  나중에, 아침에라도 무슨 집에 볼 일 봐놓고 낮에 와서 해도 됩니다. 삼천  장이니까 상당히 많으니까 일시에 안 될 것이니까, 뭐 아침 먹고 와서도 해도 될  것이고 어떤 분은 점심 먹고라도 와 가지고 남아 있는가 와 보고서 하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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