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하는 방편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15일 금새

 

본문 : 롬 8:1-8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또 흙에서 나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이 형상은 사람의 영을 가리켜서 말씀하시고, 흙에서 나왔다 하는  이 말씀은 이 육인 심신은 물질에서 물질로 말미암아 지으셨다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도 짐승의 혼과 같은 혼이 있고 짐승에게도 사람의 혼과 같은 혼이  있다고 말씀하신 이 혼은 사람의 이성 마음 이것을 말하고 또 짐승의 본능이라고  말한 그것은 곧 짐승의 생각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이 지음 받았고 또 짐승같이 물질로 육을  지음 받은 것이 사람입니다. 물질로 지음 받은 모든 물건들은 그것을 별스럽게  하나님이 생명을 주었다는 그런 말씀이 없이 그들은 다 살아난 것들입니다.

 사람도 영과 육을 만들어 놓으시고, 영과 육을 만들어 놓으시고 육은 살렸다는  그런 말씀이 없고 다만 영에 대해서는 살린 그 법칙을 말씀했습니다.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됐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코에다 생기를 불어  넣었다 하는 그 생기는 곧 영감입니다. 영감. 영감을, 영과 육으로 된 그 육에게  영감을 접하니까 그 영이 산 영이 됐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을 대해서 숨을 이렇게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숨을 내 쉬면서, 후우 이래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그렇게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기를 불어 넣었다는 그 생기에 대해서 어떤 교파에서는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됐다" 하는 그것을 총 합해서 사람의 육의 생명으로 그렇게 보는  교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기를 불어넣었다" 생기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는 곧 성령의 감화입니다. 그것은 그 뒤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에 무엇으로 살렸는고 하니 영으로 살리셨습니다. 성령으로  살리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생각이 곧 하나님의 생각이요 우리에게 나타난  진리입니다.

 그 뒤에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다시 살아나야 된다  거듭나야 된다' 할 때에 니고데모는 그것을 이해하지를 못하고 '사람이 늙으면  벌써 어머니는 죽었는데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물을 때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네가 거듭나야  된다는 말을 이상스럽게 별스럽게 여기지 말아라. 진리와 성령으로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거듭난다 말은 다시 살아났다 말입니다.

 성령과 진리로, "물과 성령으로" 하는 그 물은 진리를 말합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볼 수도 없고 가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해서 죄와 허물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은 성령으로만 살릴 수 있다 하는  것을 그 뒤에 나타내서 우리가 알게 됐습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 산영이 됐다" 그때는 영이 죽은 것이 아니고 생명  없는 영이기 때문에 성령을 영감을 접하니까 산영이 됐습니다. 지금 우리 영은  에덴동산 생기 받기 전 아담의 영과 다른 것은 아담의 영은 아직까지 생명을  얻지 못한 생명 없는 영이었고 우리 영은 생명을 받았다가 죽은 영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죽은 영은 다시 살아나야 된다고 했고 또 생기를 아직까지 얻지도  못한 그 영은 성령으로 산 영이 됐다, 산 영이 됐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  영이 됐다 하지 않고 산 영이 됐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물과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야 된다 하는 성령은 성령을 말씀했으니까  알지마는 물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좀 의문을 가지겠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전서 1장 20절 이하에 죽 내려 가 보면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난 것이 아니고 항상 있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살아났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거기에는 말씀으로 살아났다  그렇게 말했고 또 여기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 이러기 때문에 그 물은  말씀이라는 것이 증거가 됩니다.

 또 말씀을 물로 이렇게 표현한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역사 하는 그  보증자가 있으니 보증자는 성령과 물과 피니라" 그렇게 말씀했어. "성령과 물과  피니라"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요, 거기에 물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그 물 곧 진리를 말씀하고, 피는 예수님의 공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에덴동산에 생명이 없는 그 영을 살린 것도 성령으로만 살리셨고,  아니 살렸다는 게 아니고, 그건. 성령으로만 생기를 주었고, 살렸다면 죽은 것이  전제되기 때문에 성령으로만 그 생기를 주셨고 또 죽은 영이 중생 되는 것도  성령과 진리로만 살아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또 말씀하시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살리는  것은 영이라는 그 영은 성령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 가운데도 4절에 "육신을 좇지 아니하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의 그 요구를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다 완성을  했습니다. 완성을 이렇게 해 놓으시고 이것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대신하셔 가지고 당신에게로 끌어들여서, 비유로 말한다고 하면 1차 전쟁에서  죽은 시체를 이제 살리려고 병원으로 옮겼다고 그때 비유한 것같이 그리스도  안으로 다 이끌어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정죄받아 가지고 죄 있으면 멸망하고  죄 없으면 구원 얻는 이 하나님의 공심판, 이것을 가리켜서 계시록에는 백보좌  심판이라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공심판에서 사람들은 다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대속한 그 사람들은 예수님이 대신 공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공심판에 참여를 안 합니다. 공심판에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려 나온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에 이 심판 앞에서 양과 염소를 나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이래 나뒀다 하는 그것은 우리가 이방인과 같이 심판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오른편에 세웠다 하는 그 말은 벌써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공심판에서 다 해결 받고 옮겨진 자라 그렇게 그것을 표시한 것입니다.

 또 고린도후서 5장 9절 이하에는 보면 우리가 심판은 받기는 받지마는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심판을 받지마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  말은 공심판에서는 다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과 화친의 이 새생명을 받은  자들이지마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제사장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제사장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 선지자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 왕의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심판한다.

 공심판에서 살아나기는 다 살아나 버리고, 정죄 받지 않고 살아 구원은 받기는  받았지마는 무궁한 하늘나라에 가서 살 때에 이 사람이 제사장 실력이 얼마나  있으며, 선지자 실력이 얼마나 있으며, 왕의 실력이 얼마나 있느냐 그 실력을  심사한다 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 역할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도 사랑도 축복도 다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것들에게 주시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이나 피조물들이 하나님에게  드리려고 할 때에 꼭 제사장을 통해서 드렸지 직접 드리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주시는 것도 직접 주시지 않고 제사장을 통해서 주시고  또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하려는 것도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게 돼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중보자라 그렇게 표현하면  적절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라, 제사장 중에도 대제사장이라 그 말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님이 대중보자라, "대제사장이라" 대중보자라. 우리는 성경에  가르치기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았다" 우리를 제사장이라고 했지 대제사장이라고는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대제사장, 제사장의 근원이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제사장 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제사장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제사장은 중보직이요 또 선지자는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인간들에게 알리는  것이 선지자입니다. 과거사나 미래사나 현재사나 이것을 알리는 것이 선지자의  직책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선다 그 말은 이 사람이 하나님과 이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 노릇을 얼마나 할 것이며, 또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해  주는 선지자 노릇을 얼마나 하며 선지자의 실력이 얼마나 있는가? 또 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가지고 하나님에게 권리를 받아 가지고 이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권이 얼마나 있는가 그것을 심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마련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마련하고 있는고 하니, 사느냐  죽느냐 하는 이 생명을 우리가 마련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다. 생명은 벌써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알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서 진리와  성령으로 우리 영이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 주격이 살아났으니까 이 몸도  예수님의 재림 때는 다 부활하면 다 살아나기는 살아납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은 영은 하나님이 살려 주셨고 육도 재림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순전히 살려 주시고, 영과 육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홀로 우리를  살려 주셔서 은혜로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영이 살아난 것도 꼭 같고, 사도  바울이나 우리나 꼭 같고 또 이 육이 부활하는 것도 사도 바울의 부활이나  베드로의 부활이나 우리 부활이나 아브라함 부활이나 꼭 같습니다.

 다만 다른 것이 무엇이냐? 부활의 능력이 다릅니다, 부활의 능력. 그 능력이  다르니 그 능력은 무슨 능력이냐? 그 능력은 곧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 하는 그것을 심사하는 그 능력이니, 그 능력이 곧 제사장  능력이요, 선지자 능력이요, 왕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곧 부활의  능력이니 마음의 기능이요 몸의 기능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현실에서 마음이 제사장 선지자 왕의  기능으로 살아납니다. 기능으로 살아나기 때문에 역연 현실에서 이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도 진리와 성령으로만 살아납니다. 다른 것으로써는  살아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에 복종함으로 살아나고 영에 복종함으로 살아나는 이 제사장  선지자 왕의 기능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우리가 영원히 제사장 노릇하고 선지자 노릇 왕 노릇  하는데, 그 선지자 제사장 왕 노릇이 자기가 이 세상에서 기능을 받아 가지고  있으니까 이 기능 가지고 거기에서 독립적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제사장  선지자 왕의 기능을 받는 이 기능은 그것이 독자적으로 독립적으로 독행적으로  할 수 있는 그 기능이 아니고 이 기능은 순전히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기능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일이 없지마는 한 억억만 년을 제사장 노릇을 하늘나라에 가서  했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연결 없이 피동 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제사장  노릇을 한 시간이라도 할 수 있느냐? 못 합니다. 하나님과 연결 끊어지면 그  시간부터 죽는 것이오.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로 가지고만 제사장 선지자 왕  노릇을 하는 이렇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그 현실에서 하나님이 66권 도리의 이 진리를 가지고 이  현실에서는 이 성경 진리로 말하면 '이렇게 해야 되겠다. 이 진리를 지켜야  되겠다. 저 진리를 지켜야 되겠다.' 하는 이것이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윤곽적인  피동입니다. 윤곽적인 피동이요 외형적인 피동입니다.

 외형적인 이 피동을 하면, 자기가 거기에서 마음을 목숨을 힘을 뜻을 다하면  자기를, 자기중심 자기 위주가 아니고 다해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할  때에 그때에 자기는 외형적인 윤곽적인 이 피동인 진리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의  피동 된 그 피동이 영감의 피동에 도달해서 영감 피동에 접하게 됩니다. 그러면,  영감 피동에 접하게 되면 이제는 그 현실에 작용하는 그 심신의 기능은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살아났다 그 말은 이것은 진리와 영감에게 피동 되는 자로 결정돼 버렸다. 그  현실에서 진리와 영감이 거기에 피동 되고 거기에 접선하라고 성령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권고하고 또 악령은 이 세상 많은 사람들과 여러모로 가지고 '네가 이  현실에서 성경대로 하면 너는 망한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이 인간 생각, 인간  법칙, 인간 통계, 이 자연의 법 이대로 해야 네가 이 사업이 안 무너지지 이대로  해야 너희 가정이 안 무너지지.' 이래 가지고 양편에서 지금 '이래야 산다  저래야 산다, 세상대로 해야 산다 성경 말씀대로 해야 산다.' 이렇게 시비 있는  이 사이에 끼어 가지고 있어서 바울이 찬 곤고한 생활이라 말했습니다. 이  사이에 끼어 있는, 이 두 사이에 끼어 있어 가지고 자유하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이기고 남음이  있다 하는 것을 마지막에 결론으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현실에 살아나는  것은 어떤 것으로 살아나느냐? 이 살아난다는 것, 죽은 것은 어떻게 하면  죽느냐? 죽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떨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또 살아나는 것은  진리와 하나님과 연결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다 그 말은  연결이 끊어졌다 그 말이오. 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됐다 그 말은 진리와  성령과 새로 연결됐다, 재연결이 됐다. 재연결이 됐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나는 것은 순전히 이 진리와, 영감은 하나님인데 진리와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이것으로만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외에는 살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의 생각은 생명이요 육신의 생각은 망하고 죽는 것이니라,  사망이니라." 그러면 우리가 우리 현실에서 내 마음과 몸뚱이가, 육신의  생각이라 말은 어떤 걸 말하는고 하니 하나님과 진리의 움직임 그 외에 것은  전부 육신의 생각입니다.

 내 마음도, 내 뜻도, 내 의견도, 내 지혜도, 내 지식도, 내 비판도, 어떤 또  훌륭한 사람의 그 사람의 지혜도 지식도 말도 인도도, 나라들의 소원의 이  지식도 인도도, 가정들의 지식도 인도도, 어쨌든지 신구약 성경 말씀과 그 안에  내주해 있는 성신의 감화 이 둘 외에는 전부 육신의 생각이요 육신의 마음이요  육신의 지식입니다.

 이것은 전부 사망이라. 망하고 죽는 것뿐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현실 딱  만났을 때 여기에서 양쪽에 두 세력이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줄을 알아야 됩니다.

한편은 인간 생각대로 인간 마음대로, 인간 성질대로, 인간 뜻대로, 어떤  사람의, 이 세상 국가나 뭐나 사회나 가정이나 하나님과 진리 이 외에 것은  전체가 다 육신의 것입니다. 이대로 하면 그 현실에 관련된 그 심신의 기능은  완전히 죽습니다. 이것이 둘째 죽음의 해로써 영원히 죽습니다. 다시 그 심신의  기능은 두 번 살아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죽고 사는 그 결정을 여러번 보는 게 아닙니다.

한 번 봅니다. 한 번밖에는 못 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과 몸의 기능이 한 개  같으면 한 번 보면 다 죽어 버리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기능도 수백  수천입니다. 마음의 기능도 수백 수천이요 몸의 기능도 수백 수천입니다.

 우리 몸이라는 것도 이 세포가, 한 몸뚱이 같지만 이 세포가 뭐 억억만도  넘습니다. 한 몸뚱이에 세포로 말하면 억억만 개도 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세포라 하는 것은 더 많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이 현실에서 이 세포가, 이 부분이, 이 분자가 살아나고, 또  이 분자가 죽고 이래 하기 때문에 우리 이 현실에서 자기의 마음이나 몸의  기능이 진리와 성령으로 피동 되면, 진리와 성령대로 움직이면 그 요소는 그만  영생했습니다. 영생했기 때문에 그것은 다시 죽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 현실에 '네가 무엇하고 연결하겠느냐? 네가 이 현실에서 진리와  성령으로 연결하겠느냐 진리와 성령 외에 이 세상에서 천태만상으로 나타나는 이  모든 종류들과 네가 연결하겠느냐, 어느 것과 연결하겠느냐?' 이것이 자유의  율법입니다. '어느 것으로 연결하겠느냐?' 내가 오른편에 있는 진리와 성령으로  연결을 가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왼편에 세상 것들이 말하는 내 마음, 내 마음  그것도 세상이오. 내 생각도 세상이오. 또 이 모든 인간들의 마음 생각도,  친구도, 그 모든 나라에서 말한 것도 이것 다 세상입니다. '그것하고 연결이  되느냐?' 진리와 이 세상 생각이 대립이 되고 영감과 이 속이 있는 악령의  감화와 이 대립이 되는 그 현실을 내가 만났을 때에 내가 어디 속하느냐?  이것으로써 영원한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 속하느냐? 영원한 결합이  됩니다.

 악령에게 속했으면, 세상에게 속했으면 세상과 영원한 결합됐기 때문에 세상이  불탈 때 저는 영원히 같이 타야 됩니다. 이 진리와 성령에게,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요 영감의 역사인데 이 진리와 성령과 결합이 되면 이것은 영원한 결합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영원무궁세계에 가 가지고도 이 결합으로 삽니다.

 그러면 결합되면 무엇이 나오느냐? 결합되면, 진리와 성령과 결합이 되면  하나님의 능력이 영감과 진리를 통해서 그에게 오기 때문에, 진리와 성령으로  다시 살아난 것, 다시 재연결된 것, 연결된 것은 전지와 연결됐고, 전능과  연결됐고, 완전과 연결됐고, 영원무궁자와 연결됐고, 하나님의 그 사랑과  연결돼서 하나님의 속성과 연결이 돼 버립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연결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과 연결됐고, 하나님의  지능과 연결됐고, 하나님의 그 본체와는 연결이 안 됐지마는 하나님의 본체의  역사와는 완전히 연결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연결됐는데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연결된 그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를  무엇으로 움직이시느냐? 하나님이 영원히 움직이시는 것은 세 가지로  움직이십니다.

 세 가지로 움직이시는 것은 제사장 역할을 하도록 당신이 역사 하시고, 선지자  역할 하도록 역사 하시고, 왕의 역할 하도록 역사 하시기 때문에 이 움직임에  피동 되어서 하면 완전한 제사장이요, 완전한 선지자요, 완전한 왕입니다.

 그래서 중보자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요 대선지자요 대왕입니다. 만왕의  왕입니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이제 영원히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다음으로  예수님이 피조물들에게 필요하고, 예수님 다음으로 이 제사장 선지자 왕 된  우리들이 필요합니다. 제사장 선지자 왕 된 이것은 무엇이냐? 이것이 이제  교회입니다.

 이래서 그리스도는 머리요, 하나님은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라. 이래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그들에게 영원히 충만케 해 주는 것이  이것이 교회의 직책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영이라 말은 영이 진리를 통해서  살렸기 때문에, 성경은 영감 기록이 성경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진리와  성령 외에는 살리는 힘도 법도 없는 이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현재에 진리와 영감대로 움직이느냐, 내 마음이 진 리와 영감대로  움직이느냐? 진리와 영감대로 움직이면 영생을 가져서 다시 죽을 수 없고 살게  되고, 내가 이 현실에 진리와 영감으로 움직일 수도 있고 또 인간 생각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하는 이 두 양 사이에 끼어서, 진리와 영감대로 움직이면  이것은 영생이 되고 인간 생각대로, 내 생각이나 뭐 누구 생각이나 친구  생각이나 왕의 생각이나 대통령 생각이나 뭐 부모 생각이나 남편 생각이나 아내  생각이나 어쨌든지 진리와 영감에 대립이 되어지는 인간 생각대로 움직이느냐?  움직이면 그것으로써 영원한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리와 영감대로의 생각이라면 그 생각이 사람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진리와 영감대로 나에게 말한다면 그 말이 그 사람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은 진리와 영감에 매였습니다. 진리와 영감에  순종으로만 살아나지 그 외에는 살아나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영이 살아날 때에는 하나님과 진리와의 이렇게 연결을 시켜서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났다. 물과 성령으로 살아났다 이랬고 살아난 영이 살아난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은, 심신의 기능 우리 마음의 기능은 어떻게 살아나느냐? 우리 마음의  기능이 진리와 성령에 피동 되는 이것으로만 통해 가지고 살아나지 이 외에는  살아나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진리와 영감에 내 마음이 순종하는 그것은 언제 순종할 수 있느냐?  현실이 아닌 데는 순종이 안 됩니다. 현실이 아닌 데는 그것은 공상이요 그것은  명상뿐이지 안 됩니다. 그 현실에서, 암만 명상으로 공상으로 '그래 하겠다'  해도 현실 탁 닥쳤을 때에는 그 마음이 확 변해질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러니  현실에서 그래 해 버리고 나면 이것은 결정지웠기 때문에 현실이 지나가  버렸으니까 다시는 변동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패와 생사는 현실에만 속했습니다. 현실. 현실에 여기에서만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어지는 것이고, 제사장이 되느냐 또 만물을 죽이는 것이  되어지느냐, 선지자가 되느냐, 거짓말쟁이가 되느냐, 왕이 되느냐 모든 만물을  다 멸망케 하는 것이 되어지느냐 이것이 결정되어지는 것인데 현실에서만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어 진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 진리와 성령대로 내가 움직이면 영생이고 현실에서  진리와 성령을 버리고 움직이면 그건 내가 영원한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와 성령은 성경을 보고도 알 수 있고 또 사람을 통해서도 말할 수  있고, 원수를 통해서도, 아이를 통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어린아이가 말해도, 당나귀가 말을 해도 진리라면 들어야 됩니다.

 발람이, 발람에게는 당나귀가 말했습니다. 당나귀가 말할 때에 그 말은  하나님이 당나귀를 통해서 한 말이기 때문에 '네가 이 길 가면 안 된다,' 할  때에 그대로 순종했더라면 그가 살았을 것이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에서  진리와 영감이냐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생각, 육신의 생각으로 가는 것이냐 이  둘이 결정되어지는 이것은 영원한 사망과 영생으로 이렇게 결정되어집니다.

 그런데 진리와 영감이 내게 직접으로 나타낼 때도 있지마는 내가 둔할 때에는  사람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오늘 아침에도 지금 이래 설교하는 것이 진리와  영감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고, 어떨 때는  어린아이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어떨 때는 아주 내 원수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또 미치괭이를 통해 가지고도  나타납니다. 어떨 때는 미치괭이를 통해 가지고 나타난다 말이오. 어떨 때는  짐승을 통해 가지고도 나타납니다. 어떨 때는 그 기관으로서,  나는 6·25 때에 승리한 중에 그것 참 크게 효력을 받은 것은, ○○이라고 지금  인제 아마 곧 목사가 될 겁니다. 그 내 조카하고 같이 누웠는데 조카가 오줌을  싸서 내 옷에, 오줌이 내 옷에 적신 그 오줌을 통해서 나에게 진리와 영감이  나타나더라고 '아하, 내가 어제 본교회로 갔으면 괜찮은데' 하도 거기 가서  죽인다고 쌓고 지금 재판을, 내일 인민재판이 시작하는데 제 2호가 조사님이니까  오면 죽으니까 오지 말라고 그래 쌓아서 내가 그날 돌아갈 건데, 토요일인데  돌아갈 건데 안 돌아가고 거기에서 자다 가 그만 조카의 오줌이 내 옷에 이렇게  옷이 젖었다 말이오. 오줌은 그것 거름 아닙니까? 그것 썩은 것 아닙니까? 썩은  건데 '아이쿠, 내가 어제 갔더라면 이 썩은 것에 물들지 않을 것인데 썩은 것에  물드는 오줌이 된 것이 이것 내가 다 썩는다' '네가 안 갔기 때문에 썩는다.'  이것이 나에게 깨달아진다 말이오. '네가 주일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갈 수  있고 또 인간 구원의 복음을 위해서 네가 산 제물로 드려서 죽는 것이 너에게  손해 가지 않고 몸과 생명을 바치기로 작정했으면 네가 못 갈게 없는데 이것은  네가 후퇴하는 신앙이니까 썩는 것이요 죽는 것이라.' 하는 그런 해석이 마구 옷  젖고 난 다음에 자꾸 해석이 들어오는데 견딜 수가 있어야지? 이제는 아직까지  쫓아가면, 되게 달아나 가면 오전 설교를 할 수 있을 터이니까 설교만 하면 내가  썩을 뻔했는데 썩지는 않고 살아나겠다.'  이래 가지고 거기에서, 아마 거기가 한 20리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을  넘어서 가는 데인데. 그만 그 시간부터 나서 가지고 마구 달음질 쳐서 죽자고  치니까 그때 가니까 예배 시간이 조금 못 됐어. 들어가니까 모든 사람들이  놀라면서 어쩌려고 여기 오느냐고, 지금. 나를 숨기려고 지금 하고 있는데 그래  거기서 그만 쫓아 강단으로 가 가지고 강단 위에서 설교를 하는데 그날 뭐  굉장한 은혜가 내렸습니다. 공산주의들은 벌써 그것 포위를 해 가지고 주목을 몇  번이나 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때 내가 살아나는 것이오. 그때 그날은, 그날은 그날 잔 요소는 전부  영생이라. 내 생각에 아마 그날 산 것은 전부 영생이 되지 않았겠느냐 이래  싶어요 그때에 만일 인간 생각대로 거기에 있으면 설교야 하기는 했지마는 그  강단에서 설교한 그 설교는 내 구원에는 소용이 없는 것이라 그거요.

 이래서 우리는 꼭 살리는 것은 진리와 영감, 진리와 성령 이 둘만 우리를 살릴  수 있지, 진리와 영감에게 복종되는 귀속되는 이것으로만 살아나지 딴걸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진리와 영감에 귀속되는 것은 그 현실에서만 되어지지, 평소에 되는  것은 자기 상상이지 소용없어. 내가 평소에 '내가 아무래도 순교하겠다.

순교하겠다.' 순교하겠다 그런 소원 많이 했지마는 순교는 그 현실을 닥쳐야 될  터인데 현실에 순교할 현실 되니까 '아이구!' 그만 배반하고 '아이구, 죽기가  두렵다.' 하면서 딴데로 도망할 수 있다 말이오. 현실 전의 것은 그것은 그렇게  한 명상하는 것뿐이지 그것은 결정은 안 됩니다. 현실에서만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현실에 진리와 영감대로 하는 것은 살아나는 것이고 자기 현실에  진리와 영감을 버리고 어떤 친구의 말이나 높은 사람의 말이나 어떤 사람의  말이나 어떤 물건이나 사정이나 그것대로에 움직이는 것은 다 육신으로  움직임이기 때문에 그것은 전체가 사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현실에서 이것을 잊어버리면 그만 그 현실은 이 현실 잊어버리고 저  현실 잊어버리고, 자꾸 현실에 현실이 자꾸 연달아서 오는데 현실만 뺏겨버리면  자기의 일생은 다 뺏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에 영의 생각이냐 육신의  생각이냐 이 둘로 구별하는 이 구별이 계속돼 있는 이것이 영생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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