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01:17
영감받는 조건
본문 : 약 1장 25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온전한 율법을 들어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온전한 율법을 들어다 보고 있다 하는 이 말씀이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지 온전한 율법을 들어다 보고 있다 들어다 보고 온전한 율법을 들어다 보고 있는 사람은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고 듣고 실행하는 자라 온전한 율법을 들어다 보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위에 거울을 들어다 보는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긴 것을 알 수가 있고 거울을 들어다 보지 아니하면 자기 용모를 모르고 또 용모를 알다가도 거울을 치우면 모른다고 위에 거울을 인용해 가지고 비유한 말씀입니다.
자기 육체의 용모를 그 얼굴을 바로 보고 바로 아는 데에는 이 거울을 보아야 바로 볼 수 있고 바로 알 수 있다. 거울 보는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는 자기얼굴을 바로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그런 인용을 했습니다. 거울 보는 것을 인용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여기다가 이제 말하는 것입니다. 거울 보면 자기 얼굴을 안다고 위에 하나 실례를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비유같이 말씀했습니다. 그래놓고 여기 갔다 들어다 보고 있는 자는 위에 그 말이 없었으면 온전한 율법을 들어다 보고 있는 자는 그러면 이것은 그 온전한 율법을 계속 들어다 보고 있는 사람 실행하고 있는 사람이라 이렇게만 말을 해석할 수가 있지 다른 해석을 붙이지 못하겠는데 여기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라 하는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온전한 율법인 영감도리를 늘 계속 보고 있다든지 실행하고 있다든지 하는 그런 말로 그 해석을 하면 안됩니다. 그 뜻이 아니고 위에 얼굴을 아는 데에는 거울을 봐야 안다는 것을 말씀한 그것을 해놓고 인제 인용을 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전한 율법을 들어다 보고 있다 하는 이 말에 뜻은 온전한 율법으로서만 자기라는 자기, 자기라는 자기를 얼 바로 볼 수도 있고 바로 알 수도 있는데 계속 자기라는 자기를 바로 보고 바로 볼 수 있는 데는 이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그것으로서만 바로 보고 바로 알 수 있다 하는 그것을 여기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그 뜻으로 알아야 되지 그저 성경 열심히 읽고 자꾸 상고하고 실행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라 그래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경을 실행하고 성경대로 사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말은 온전한 율법을 들어다 보고 있는 자는 하는 들어다 보고 있다하는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를 바로 보고 바로 알 수 있는데에는 그 말입니다.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이 말은 자기를 바로 보고 바로 알 수 있는 자는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위에 것을 인용한 것인데 그것을 인용하지 않고 그대로만 끊어서 해석을 하면 아주 딴 말이 돼버리고 본 뜻이 안 됩니다.
자기를 바라보다니 바라보는 것은 자기 아닌 자기 죽인 원수가 자기처럼 과장해서 나타난 그자를 아무고 모릅니다. 불신자로서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석가모니도 몰랐습니다. 공자나 뭐 맹자나 노자나 하는 사람도 몰랐습니다. 모든 소크라테스 같은 그런 철인들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자기 아닌 자기가 자기처럼 과장해 가지고 이 심신의 주인으로서 자기의 주격에 이렇게 나타나 가지고 있는 이 순전히 인제는 원수가 자기에게 와가지고 자기처럼 나타나서 이 원수가 이 심신을 멸망하기 위해서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이 심신이 멸망시키기 위해서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데 다만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사람으로서만 알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 아닌 자기도 확실히 아는 것은 이 율법실행에서만 알 수 있고 또 참 자기 참 자기를 바로 알아서 참 자기는 보배인데 참 자기는 하나님 다음으로 잘난 자기요. 하나님 다음으로 유력한 자기입니다. 이 참 자기는 하나님의 후사로 하나님의 대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참 자기인데 이 자기도 아무도 바로 알 자가 없어 다만 이 온전한 율법으로 실행하는 것으로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은 위해 거울에 비유했습니다.
거울 비유를 한 그것을 인용을 시켜 가지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짓 자기나 참 자기를 바로 보고 바로 아는 데에는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이 방편으로서만 알지 다른 것으로는 아는 길이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온전한 율법을 실행을 언제합니까 아무때나 할 수 있습니까 현실에서만 할 수 있습니까 백소출씨 아무때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만 꼭 합니다. 그러면 신구약 66권 도리가 있고 또 영감이 있지만 그것은 이 현실에 현실에서 성경말씀 이라면 이 현실에 이 성경말씀도 실행할 수 있고 저 현실에 저 성경말씀도 실행할 수 있습니까 그 시간에 실행할 말씀은 하나 뿐입니까 어떻소 ○○○씨 그 시간에 실행한 것은 하나 뿐입니다.
아무것이나 실행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 뿐이라 하나 뿐인데 그 영감대로 실행할 것은 하나뿐인데 그렇게 그 시간에는 영감도리를 실행할 것이 천가지 만가지가 있어도 다가 아니고 그 시간에 실행할 그 영감도리는 하나뿐입니다.
하나뿐인데 그대로 실행하면 그 실행이 무슨 작용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대로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니까 그대로 행하게 되면 그 옛사람 자기, 자기 아닌 자기를 배반하는 일이 됩니다. 자기 아닌 자기를 배반하는 일이 됩니다.
또 그 일이 자기 아닌 자기는 배반하는 일이 되고 참 자기와는 합작되는 일이 됩니다. 참 자기와는 합작되는 일이 됩니다. 또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하는 일이 됩니다. 또 만물에게 대해서는 만물이 그 시간에 그 시간을 통해서 구원 얻는 일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물들이 탄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렇게 사는 것을 고대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살 때에 관련된 만물은 다 살아납니다.
구속을 받습니다. 이래서 계시록에 만물을 새롭게 했다. 만물을 새롭게 했다 하는 그 새롭게 했다는 그 말은 그것들도 다 영생합니다. 영생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말하는 것인데 그 현실에 영감도리 그것이 온전한 율법입니다. 영감도리 곧 성령님이 이 문서계시를 통해서 인도하는 것. 그러면 문서계시는 마치 말하면 뭐와 같은고 하니 문서계시는 석류껍데기와 같습니다. 석류껍데기는 주먹만한 것 한 개지만 속에 알맹이는 자잔한 것이 아마 수십 개가 아니 수십 개는 넘을 것이고 아마 백개가 조금 넘을 것 같습니다. 안에는 알맹이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껍데기는 한 개인데 속에 알맹이를 보면 여러 개라 말이요. 석류가 그와 마찬가지고 문서 율법은 문서 율법은 석류껍데기와 같고 문서 율법 안에 성신의 감동으로 가르쳐 주는 영감도리 영감의 은밀 의지 하나님의 은밀을 영감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은밀의지는 석류알맹이와 같이 그렇게 속에 알맹이가 많습니다.
이런데 사람이 석류껍데기와 같은 이 성경말씀대로만 행하면 다 인줄 알고 하는 사람들은 그 율법을 행해도 구원이 하나도 안됩니다. 건설구원이 하나도 안됩니다. 그것은 속에 영감의 인도대로 속에 알맹이가 차지 않기 때문에 안됩니다 영감인도대로의 알맹이를 채울려고 하면 그것은 제 열심가지고 간절 가지고 마구 힘을 들어서 이래가지고 하면 그것이 됩니까 자기 마음 다하고 성품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목숨 다하고 자기 인격을 다 해야 됩니까 인격을 다해야 됩니다. 인격을 다하지 않으면 성령이 그 사람을 상대해 주지 않기 때문에 저는 이 신구약 성경이 문서계시만 알고 그대로만 살지 그 속에 영감인도대로는 살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기에 온전한 율법은 영감도리를 가르켜서 온전한 율법이라 하는데 자기 현실에서 영감도리 지금 그대로 자기가 실행을 합니다. 그대로 실행을 할려면 자기가 외부적으로 행동도 해야 되지만 또 자기의 행실만 가지고 안되고 외모만 가지고 안되고 자기 인격을 다 기울여야 된다 이것이요. 인격을 다 기울어서 자기가 신앙생활을 해야 그것을 깨닫게 되지 그렇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 인격을 다 기울어서 영감도리 대로 그 현실을 살게 될 때에 그 때에 그 행동하는 그 행동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어떤 행동입니까 어떤 행동이 됩니까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박금택 무엇이지?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어떤 행동이 되지요 또 여기 안경 쓴 분, 네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순종하는 행동이 됩니다. 순종하는 행동이 되요. 또 자기 옛사람 자기 아닌 원수에게 대해서는 어떤 행동이 됩니까? ○○○씨 예 배반하는 행동이 됩니다. 그런 것은 배반하는 행동이 됩니다. 또 참 사람 자기에게 대해서는 어떤 행동이 됩니까? ○○○씨 네 하나가 되는 것 참 자기와는 하나가 되는 행동이 됩니다. 그러면 고대하고 있는 만물들에게 대해서는 어떤 행동이 됩니까 ○○○씨 영광이 된다 모든 만물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만물들에게는 영광이 된다. 틀렸습니까? 기다리고 있는 만물들에게는 어떤 것이 됩니까 ○○○ 녜 기다리고 있는 만물들에게는 구원을 주는 일이 됩니다.
구원을 주는 일이 되요. 이러니까 자기 아닌 자기도 알게되고 참 자기도 알게 됩니다. 자기 아닌 자기 그 놈은 나를 깨우는 놈이기 때문에 그놈을 배반하고 놔야 그놈을 알게 되지 그 꼬여가지고 있는 중에는 그것이 제일인 줄 알고 모릅니다. 나를 꾀우는 자는 꾀우는 꼬이는 데서 돌아서야 그것을 알지 꼬이고 있을 때는 제가 제일인줄 알지 그것을 모르게 됩니다. 꼬이는 있는 그 나를 속이고 있는 자에게는 거기서 돌아서야 알게 되고 나를 바로 인도하고 바로 나를 위한 그 바른 자는 내가 그 말을 순종해서 합해봐야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아는 길은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것으로만 알지 다른 것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온전한 율법을 실행을 하면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순종하는 일이 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 축복하시는 일이 되고 자기 아닌 자기의 심신을 망칠려고 하는 그 원수 자기 아닌 자기 옛사람 그 놈은 그 배반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자기 심신이 그것에게 속지 않는 심신에 해방받는 일이 되고 또 참사람 중생된 영과는 일체단결되어서 함께 움직이는 일이 되어지니까 자기 심신과 영이 하나가 되니까 그 참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그 시간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관련된 천군천사나 만물이나 그런 것들은 어찌 되느냐 그런 것들을 구원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 것들을 구원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기에 만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렇게 살기를 고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만물들을 구원하는 일이 되어집니다. 이러니까 자유케 하는 율법이라 자유라 그러면 이 자유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만하면 여러분들이 자유라는 말은 알겠습니다. 자유라는 말이 무슨 말이지요? 자유라는 말은 그 모든 비뚤어져 있는 것들에게서 해방을 받는다는 말이요. 삐뚤어져 있는 것들이라니 삐뚤어져 있는 것들은 마귀가 삐뚤어져 자기고 있는 것들이요. 또 타락한 변질된 인간을 죽이고 인간자체가 아닌데 자체처럼 과장해가지고 나타나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 자기 아닌 옛사람 이런 옛사람 단체가 이 세상 전체인류 단체가 아니요 여기서 해방을 받게 되고 또 삐뚤어진 행동 이것은 모든 악령과 악성과 악습 이 세상 잘못된 운동에서 해방을 받고 또 저주받을 일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자유라고 말합니다. 자유라는 말은 벌써 붙들려 매였기 때문에 속박을 당해서 있는 거기서 해방받는 것을 전제로 두고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데에서 해방을 받고 어떤 데에서 소원성취를 하는 해방받는 것은 잘못된 자체에게서 잘못된 그 운동에게서 잘못된 그 일 잘못된 그 일에게서 해방을 받는 것을 가르켜 자유라고 말했고 그러면 그 다음에 소원대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판이 인정하는 것, 너는 됐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도와 주시는 것, 또 어디서든지 방해나 저주나 배척을 당하지 않고 환영하는 이 것 영생을 이루어 가는 것 그면 그 자체가 하나님과 모든 자기 밖에 있는 만물들에게 다 환영받는 그 자유 또 참 자기 그 영이 영과 이 심신이 원수가 되지 않고 영과 몸이 영육이 하나가 되가지고서 영생하게 되는 것 이러니까 저주 대신에 축복을 받지 사망 대신에 영생을 받았지 또 배척 대신에 환영을 받지 수치 대신에 영광을 받지 모든 일에 무지무능에서 깎깍 앞이 막히는 데에 전지전능자로 결합이 됐기 때문에 전지전능을 받았지 하는 이것을 가르켜 자유라 자유라는 말은 붙들려 매인데에서 해방받아 가지고 이제는 소원성취대로 소원대로 살 수 있다 하는 그것을 가르켜서 자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현실에서 온전한 율법대로 신앙생활하는 그것은 외부적으로 소극적으로 수입이 뭐이지요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그 실행에서 첫째 외부적인 수입이 무엇입니까 그 누가 간추려 그 총론인데 그 결론인데 그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므로 외부적으로 받는 유익이 무엇이지요. 외부적으로 받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서원균씨 외부적으로 받는 유익이 무엇이지 외부적으로 받는 유익은 자기를 아는 것 자기 아닌 자기도 알고 참 자기도 알고 자기를 아는 그것이 외부적인 수입입니다. 자기를 아는 것. 또 내적으로 참 알갱이 수입. 알맹이 수입은 무엇입니까 알맹이 수입은 자유하는 것입니다. 알맹이 수입은 자유하는 것이요 해방받고 소원대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어두움에서 해방받아 가지고 광명을 가지게 되었고 저주에서 해방받아 이제 축복으로 살게 됐고 속히고 꼬이는데서 해방받아 가지고서 옳고 참된 인도를 받게 됐고, 마귀에게서 해방받고 하나님에게는 살게 됐고, 자기 아닌 원수 자기로 더불어 이 심신이 살게 되었던 자가 이제는 거기서 해방받아 참 자기의 주격이 되는 참 자기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살게 됐기 때문에 이것이 자유입니다.
그러기에 온전한 율법을 실행하는 것은 외부적인 수입은 두 자기를 바로 알게 되는 것 외부적인 수입은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면 이 율법이 이렇기 때문에 이 율법은 온전합니다. 또 이렇게 결과를 이렇게 좋은 결과를 맺기 때문에 온전합니다. 그면 그 율법자체는 어떤 율법이기 때문에 그런가 이 온전한 율법이라는 것은 이 율법은 참된 위치입니다. 이 율법은 참된 위치요 그러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 위치를 저주하거나 해방할 수가 없어 이 위치는 참된 위치라 참된 위치요. 또 이 위치에 배경은 어떤 것인고 하니 이 위치의 배경은 절대가 완전자입니다. 완전자 절대가 불변자 영원불변 완전 유일하신 자존하신 창조주시오. 주재시오. 주권자시오. 모든 것을 홀로 섭리하시는 이 완전자 이 분이 이 율법의 배경이 됩니다. 율법의 배경이 돼요. 아무리 어떤 법이라 할지라도 그 뒤에 배후의 권세가 깨어져버리면 율법까지 다 깨어져 버립니다.
어게 하나님이 그 배경이 되기 때문에 온전한 율법이요. 온전한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 율법은 율법 자체가 자체가 더 이상이 없는 완전한 것이라.
완전한 위치 진리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면 갈수록 이 위치 진리는 하나만 되는 참된 위치이기 때문에 망하지를 안해요. 그면 자체가 완전해서 완전한 율법이요 또 그 배경이 완전해서 완전한 율법이요 또 이 율법이 맺어지는 그 결과 효과가 완전해서 완전한 율법입니다. 그 효과가 완전하다니 효과가 무엇인데 효과는 자기를 아는 것 자기를 바로 보고 바로 아는 그것이 이 율법의 효과입니다. 또 자기를 바로 보고 알 뿐아니라 자유케 하는 그 결과를 맺기 때문에 온전한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결과가 좋고 자체가 좋고 또 그 근거와 그 근거인 배경이 좋기 때문에 온전한 율법이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인 것을 내가 안다 말씀했습니다. 영생인 것을 내가 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 하는 것이 모든 것이 살아나는 것이고 이 말씀을 떠나면 모든 것이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을 해도 이 말씀을 떠나지는 안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 진리만 들고 성령과 능력을 받지 안하면 스스로 속이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속이는 사람이요, 왜 그 사람은 듣기만 하고 잊어버려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지 말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이대로 실행 못 할 때는 자기 속인 것이 되고맙니다. 그면 실행은 영감과 능력을 받아야 실행이 되지. 이치만 알아가지고 실행되는 것 아닙니다.
영감을 받아야 되지 이치만 받아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영감 받으려고 어떻게 해야 받는다고 말했죠? 영감을 받을려면 어떻게 해야 받아요 무엇을 내놔야 되요. 자기를 다 드려야 되. 그러기에 재주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많지를 못합니다. 잘난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많지를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그렇게 해놨소. 왜 그런고 하니 그 사람들이 다 그만 예사로 들어도 들려지고 자꾸 들어지니까 알아지니까 막 다해서 듣는 사람보다 놀면 들어도 자면 들어도 그 사람들보다 낫게 듣는다 그 말이요. 네 까짓것 암만 눈뜨고 막 주여 주여 이렇게 듣는 것보다 자면서 듣는 것이 내가 낫게 ? 말해 봐라 너보다 내가 말 더 잘하는가 이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됩니다. 왜 자기를 다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진리만 들었지 영감과 능력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말하기를 진리와 성신의 감동과 능력을 함께 받기를 원했어.
그러니까 이것은 사람 같으면 잘난 사람이면 설복을 당하지만 하나님과 진리는 잘났다고 설복을 안당하요. 그 까짓것 다 당신이 지은 것인데 뭐 잘난 게 있겠소.
다만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일 때에 다 기울일 때에 그것을 환영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