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론

 

1989. 2. 7. 오후교역자회

 

본문: 에베소서 4장 13절∼14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 구원을 위해서 만전을 갖추신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지식이 미칠 수  없는 그런 큰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이래 구속하신 그 목적이  어데 있는고 하니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야 모든 궤술과 간사한 유혹과  교훈의 풍조에 밀려서 요동치 아니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처음에  이 일을 에덴동산에서 시작하셨으나 궤술과 간사한 유혹을 이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로 인해서 전인류가 다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완성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그리스도의 그 분량이  장성해지는 그것이 우리 구원이요 하나님의 목적인데 이렇게 되는 이유를 끝에  간단하게 좀 말해 놓기를 '사람의 궤술과' 사람의 궤술이라는 말은 사람이 꾀우는  그 모든 수많은 술법을 말하고, 간사한 유혹이라는 것은 원죄성, 자기 중심의  원죄성이 있는 우리들에게는. 어짜든지 우리 좋게만 하면 제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거 뭐 간사한 유혹이면 다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능가할 수 있는  자가 되지 안 한다면 이 그리스도직은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이라 그렇게 끝에다 말씀해 놨고  '교훈의 풍조에 밀려서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교훈의 풍조라 하는 그것은 이  세상 모든 변해져 나가는 문화들 그 전부 총칭해서 교훈의 풍조라 이랬습니다.

풍조라 말은 쏜살같이 내려가는 물결이라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정함 없이 날마다 자꾸 변해져 가는 말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흔듭니다.

 마귀는 이거 저거 자꾸 새것을 보이고 새로 변동시키고 변경시키고 요동시키는  그것이 마귀의 전법입니다. 이래서, 요한계시록 9장에 보면은 그 힘이 어데 있는고  하니, 배암 같은데 그 꼬리에 힘이 있다 이랬어. 배암의 꼬리에 힘이 있다.

상징으로 계시해 놓은 것인데, 배암은 이 세상을 가리켜서 배암이라고 말했는데  이 세상 힘은 어데 있느냐? 꼬리에 있다. 꼬리에 인간을 망치는 그 힘이 있다.

꼬리에 있다는, 그 배암의 꼬리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면은 이  교훈의 풍조 곧 여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에 배암을 잘 잡았습니다. 그러기에 뭐 제가 있는 데는 배암은 그만  전부 전멸이 됩니다. 이라는데, 그거 무섭지 안하고 취미삼아 했는데, 그 배암의  꼬리가, 그거 모르는 사람은 아마 모를 것입니다. 제가 큰 배암 구렁이 한 이만한  것 그런 것을 이 구멍에 들어간 것을 이래 하면은 이놈이 들어가다 다 못  들어가고 꼬리만 끄트머리 있으면 밖에서 들으면 다르르르륵거립니다.

다르르르르륵거려요. 들어봤어요? 다르르륵 하는 것 못 들어봤어요? 아주 뭐  이게(책상을 빨리 뚜드리는 표시) 문제가 아니라 아주 다르르르륵거립니다. 나는  그때에 인식하기를 배암 이놈은 꼬리를 참 빨리 흔든다, 뭐 다르르르륵 흔들어서  어떻게 빨리 흔드는지?  이랬는데 나중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성경 요한계시록 9장에, '그는 배암인데 그  힘은 배암의 꼬리에 있다. 그 능력은 배암의 꼬리에 있다.' 이걸 볼 때에 내가  그게 퍼뜩 생각이 났습니다. 이거 마귀 곧 세상의 힘은 이렇게 저렇게 자꾸  변동시키는 사람들 정신차리지 못하게 이라면 저라고 저라면 이라고 자꾸  변동시키는 이것이 사람을 죽이는 힘이로구나 하는 것을, 그거 보고서 능력은  배암의 꼬리에 있다 이 말을, 아마 요한계시록 봐도 이 해석은 사람들이 잘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그걸 몇 번이나 경험해 가지고 한 그것이 그때에  성경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됐다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뿐 아니고 그럴 때 어릴 때에 한 일, 예수 믿기 전까지 하는 모든 일은 그것도  하나도 다 무용된 일이 없고 무익한 일 없고 그 전부가 다 이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먼저 기존 지식으로 기초 지식으로 저에게 준 것 같애요. 그래서 제가  성경 보고 깨달은 것은 이거 뭐 성경학자들이 깨달은 거와는 아주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이래서 저는 예수 믿기  처음부터 사람의 궤술에 대해서 크게 적대시하고 또 간사한 유혹에 대해서  적대시 해 나왔는데 그만 이것을 약하게 보고 조심하지 안하면은 낱낱이 다  떨어져 버립니다. 그만 거기 간사한 거석에 다 떨어져서, 아무것도 아닌데 그  간사에게 떨어져 가지고 이제 자기를 망쳐지는 이런 일을 하게 됩니다.

 이래서, 이 세대가 배암 꼬리같이 그렇게 흔든다 이래서 뭐 온 세계가 해 나가는  것이나 또 시대적으로 이 모든 흘러내려가는 이 시대의 지식이나 교훈이나 그  시대적 평가나 비판 이거 한갖되지 않습니다. 일관되지 안하고 전부 배암 꼬리  한가지야. 뭐 이거 하나도, 일정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볼 때에 저것이  또 인제 조거는 며칠 만이면 변하겠다, 몇 달만이면 변하겠다.

 요새 지금 여기 OO회 하고 있는데 OO회 그거 보면은 어떤 사람은 '하, 이  OO회가 이거 참 아주 권위 있고 대단하다.' 그 OO회를 상경을 아는 지혜 있는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 길가에 앉아 가지고 소꿉 장난하는 그보다 훨씬 가치가  못합니다. 거게는 그래도 철학이 있고 거게는 뭐 이학이 있는데 이거는 아무것도  아니요, 이거는 또 그들이 비판하고 안다는 것은 뭐 참 하나님이 알려 줘야 되지  안 알려 주면 모릅니다.

 이러기에, 뭐 지금 OO OO회 이거 가지고 많은데, OO에 그 실상의 사태를  누가 알 건가? 아무도 알 자 없습니다. 또 지금 이 나라가 저래 하고 있는 게  저거 뭐인가? 저걸 누가 알 건가? 그런 것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모르면 그  홍수에 휩쓸려서 다 몰사되고 말지 제가 헤고나지는 못합니다.

 요새 모든 교회들이 8·15후에 많이 변해졌고, 그보다도 6·25후에 많이  변해졌고, 한국에서 이 88올림픽을 했는데 이게 뭐인지? 88올림픽을 통해서 그  후로 세계가 아주 많이 변해졌습니다. 변해지니까 '야 이때는 우리가 참 날개 펴고  어서 자리잡아야 될 때다' 하고서 날개 펴고서 모든 불신자들은 물론이고  교회들도 야단입니다. 이래서 아마, 이거 교회 올림픽이라 하더나? 뭐라고 신문  모두, 요새 뭐 광고 나오는, 교회 올림픽? 기독교 을림픽. 기독교 올림픽인가 뭐  이래 가지고 아주 정신 없이 지금 흔드는데 날뛰고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찍부터 아는 것은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이것이 하나가  되고 다만 어린 양과 어린 양에게 속한 진실한 자들만 합작 안 되지 다른 것은  다 합작된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일찍부터 성경을 보고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세계가 이래 되는 걸 보고 어떤 사람은 좋은 세월 났다고 뭐,  내가 요새 뜨문뜨문 보니까 출국에 비자받는 것이 아주 그전보다 아주 완화가  돼서 용이하게 돼 가지고 있고, 또 영주권 받는 것이라든저 시민권 받는  것이라든지 뭐 이런 것이 아주 풀려서 용이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요새는 한국 목사돌, 한국에 갇혀있던 목사들 미국에 갇혀있던 목사들  이 목사들이 이제 때가 됐기 때문에 이제 석 달씩 날아다닙니다. 석 달은 한국에  와 가지고 여게서, 뭐 무책임하니까, 무책임한, 책임 없으니까 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책임 없는 말이야, 뒤가 이제 거석해 그렇지 책임 없는 말이야  뭐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일주일 부흥사 노릇은 천사 노릇을 다 할 수  있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나 부흥사는 돼도 목회자는 어렵다.

 목회자는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십 년이고, 내가 여기 서부교회 삼십칠 년째  납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항상 일관돼 있으니까 거기서 그래도 말하고 난  다음에는, 말을 하고 난 다음에는 미래가 현재되고 현재가 과거되고 자꾸 이렇게  되어지니까 그렇게 무책임한 그런 천사 노릇은 못 합니다. 마구잽이로 주 지껄일  수는 없다 그말이오. 이렇지마는 그뭐 석 달 천사 노릇 석 달 부흥사 노릇이야  누가 못 하겠습니까?  이러니까, 책임 없이 그저 한국에 와 가지고 뭐 한국 사람 모두 병이 든 것이  이게 미국을 못 가 그렇지 미국 갈 수만 있다면 싹 다 가지 미국 갈 수 있는데  안 가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몇 사람 안 될 것입니다. 이러니까 모두 가고 싶어서  지금 거기 있는 사람들이면 별계의 천국에 갔다 온 사람들 모양으로 이렇게  애모를 하고 존대를 하는데, 이분들이 와 가지고서 마구 퍼부어 재끼면은 '햐,  이거 됐다' 싶어서 그거 잠깐 모여 가지고서 교회를 하나 만듭니다.

 이거 우리 나라에 또 돈은 참 많아요. 이래서 뭐 자기네들이 마음만 인정된다면  돈은 뭐 몇억 멎십억 하는 그런 거는 문제가 없어. 여기 또 교회 하나 또 석 달  만에 하나 세워요. 석 달 만에 하나 세우고 또 훅 날아가 가지고 또 미국에 가 또  석 달만이면 또 하나 세웁니다. 또 세워 놓고 나면 또 어째 석 달이면 또 습니다.

그거 나는 석 달이 왜 그런가 이랬더니마는 비자를 석 달만에는 바꿔야 된대요.

미국에 갔 다가는 한국에 오면은 한국에 와 석 달 뭐 뭐인가 내놨다가 또 인제  여기 석 달 있다 거기 또 가야 된대요, 또. 미국에 갔다 와야 되고. 그러니 석 달  동안에 그러니까 이리저리 다니면서 자꾸 새끼를 쳐서 이라니까 잠깐 동안에  그뭐 수십 교회를 만들 수가 있답니다. 이러니까 이 좋은 시대라고  또 지금 보니까 뭣이라더라, 그 사람이? 저 이북에 간 사람 말이요? OOO인가  그 사람은 이북 사람이라. 이북 사람인데 여기 뭐 OO회사의 그 기관이 모두  월남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는 몰라도 거기 가 가지고서 금강산 지금 관광지  만든다 하는데 그 사람들은 여게서는 십 년 기간을 두고 하자 하고 그쪽에서는  오 년 기간 두고 하자 하고 그런 것만 해도 다 깨달을 수 있어. 왜 거기는 오 년  말하고 여기는 십 년 말하는가? 그게 돈은 뭐 여기서 대고, 뭐 거기 댈 돈이 뭐  있습니까? 그거 뭐 암만 차관해 봤자 상관없습니다.

 그전에 그 O정권 때에 여기 국회의원들이 말하기를 바다 다 팔아먹고 전부 다  잡혀먹고 차관이 빚이 얼마라 하기 때문에 내가 그 소리 듣고 '야 이 등신놈의  새끼들아. 네까짓 놈들이 국회의원 해 가지고 뭐 할 것이고? 빚을 암만 내도 이거  한국을 금방석을 만돌어 놓으면 짊어 지고 가겠나? 그거 만들어 놓으면 우리  것이지, 내나 우리가 살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그런 배짱들이 되나 안 되나 자꾸  남 욕이나 할 줄 알고 그렇다고 이랬었는데, 그때 차관한 그것이 참 우리  나라에서는 크게 지혜를 써서 한 것이라 그말이오.

 그런데, 이북에 지금 저란다고 이래 하고 또 소련에 지금 뭐 시베리아, 벌판이  시베리아가? 시베리아 지금 개발한다고 이래 가지고 그래 인제 선로를 잘 닦아서  운반한다 하는데 그 선로가 소련이 우리 나라에 와서 점령하도록 닦아 주는  길인지 뭐이 알겠소 알기를?  어떤 사람이 어제인가 아레인가 장로하고 목사하고 둘이 와 가지고 나한테  '그전에 목사님한테 배운 말씀 가지고 지금 내가 살고 있기는 있는데' 그 보니까  말하고 돌아다니는데 벌써 바람이 들었어. 내가 만나 볼라고 이란다 하기 때문에  내가 만날 수 없으니까 전화를 하라고. 그러면, '이 세대가 지금 이거 어찌 되는지  도무지 내가 몰라서 이걸 좀 묻습니다.' 그래 내가 요한계시록 17장을 가 보라  내가 그말을 하고 말았어.

 이랬는데, 우리 기독자들이 시대 풍조, 바람 부는 거 말이요, 바람 불고 물결치는  이 시대 풍조에 밀려서 요동을 안 하고 해야 되지 거게 밀리고 요동하는 자는  언제 마귀 자식이 될란지 모릅니다.

 어러니까, 그저 어쨌든지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기를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여게만 피동되고, 성경에만 피동되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할라고 애를 쓰지 시대의 문화나 뭣이 막 야단을 지기고  88 올림픽이 뭐라고 한다 해도 그런 데 피동 안 될라고 애를 쓰고, 또 아예  연습하는 게 그런 데 피동이 되지도 안하고 뭐 교계가 어떻고 어떻고 해 무슨  복음 운동, 선교 운동 그래 쌓아도 그저 우리는 그런 데 피동 안 될라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 교훈의 풍조에 밀리는 것과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이 유혹에 빠지지  아니하는 그런 장성한 자가 돼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신 말씀을 우리가 삼가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인류 시조가, 인류 시조가 멸망하게 된 그 멸망하게 된 것은 죄 때문에  멸망했는데 멸망하게 된 그 죄의 순서가 뭐입니까? 그 죄의 순서가 일호가  뭐입니까? 일호가 뭐이지요? 이거 쉬운 말 아니오. 선악과 먹은 거는, 이게 그래  쉬운 거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잊어버린 것이 그것이 멸망의 제일  일호입니다.

 이래서, 그때 그라고 난 다음에는 3장에 보면은 가장 배암이 간교 하더라 이래  가지고, 간교하더라 한 이 간사한 유혹이라는 것은 뭘 간사한 유혹이라 하는가?  간사한 유혹이라 하는 것은 어짜든지 제게 한닢푼치 되는 것을 두 닢푼치로 하고,  제게 실력 없는 걸 그래 있는 걸, 자기를 자기 실상 이상으로 과대 평가를 하면  자기 죽이는 것이요, 아는 사람이 말하면 자기 놀려 먹는, 원숭이같이 놀리는  것이요,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라먼 자기를 지금 궁지에 뭉치도록 자기 위에  무거운 짐이 될 사람들이요, 또 그 사람이 자기와 함께, 물에 들어간 사람 건질라  하면 그거는, 그래 말합디다. 물에 빠진 사람을 그냥 건질라 하면 안 된대요. 들짱  뒷꼭대기를 때려 가지고서 죽여야 된대요. 죽여 가지고 그래 끌고 나와야  된답니다. 안 죽이면 그만 거머쥐면 안 돼.

 이런데, 자기를 높이고 하면은 이게 좋은 줄 알고 그게 지금 자기를 거머쥔 줄  알고 헤치고 나오지도 못하구로 해 가지고 같이 빠져 죽구로 만드는 것인 줄을  모르고 어짜든지 저만 높이면 좋아합니다. 이래 가지고 뭐 제 입으로 제가 높이고  제 또 행동으로 제가 높이고 태도로 높이고 이래 가지고 자멸 행위를 자꾸 이래  하는 이것이 전부 간사한 유혹이라. 이래서 이런 데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하십니다. 그래서, 이뭐 거튼거튼 잠깐 말하고, 구체적으로 할라  하면 뭐 또 며칠 집회나 해야 될 터이니까 간단하게 하는 것인데, 첫째는 이  도리가 뭐이냐? 오늘도 찬송에 대해서 말했지마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  하나님은 자존자시요 그분은 완전자시요 그분은 영원 불변자시요 그 분은  주권자시요 주재자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생겨진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다가 그분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분의 심판  앞에 돌아가 가지고 영원히 멸망 구원으로서 영원한 결정이 지워지는 것이  그것이 피조물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이렇게 되어져야만 그리스도의 자질의 실력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한 사람은 뭐이 완전한 사람입니까? 완전한  사람은 그것은, 완전한 사람이라 하면 범위가 얼마나 넓겠습니까? 이러나 완전한  사람의 정의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알지마는 완전한 사람의 정의를 다른 데  목사들에게 가서 물어 보십시오. 잘 아는가? 완전한 사람은 우리를 중생시킨 그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요 그 사람이 자라서 충만한 데 가면은 더우기 완전으로서  장성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네 가지로 중생 안 됐습니까? 성령과 진리로 중생 됐다고 이렇게  성경에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전제로 해 놓고 그렇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이 됐지마는 이거 참 뭐 언제  내가 OOO목사가 거창에 사경회할 때 보니까, 감옥에서 해방시켜 놨지마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이거 이래 놓으니까 참 뭐 도로 감옥에  들어갈라고 이래 쌓아도 못 들어가고 하니까 사람을 뚜드리든지 해야 들어간다고  이래 말하는데 그 좋은 비유라요. 그 모양으로, 이거 나왔지마는 먹을 것 없으니까  도로 감옥으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 옆에다 구제하는 그런 모든  사업계들을 많이 설비해 놓고, 나오니까 그만 일자리 있지 뭐 돈 벌 수 있지 그만  거처할 집 있지 이라면 잘 사는 것처럼, 그 비유를 했는데,  우리가 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걸 누리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귀한 참 지극히 큰 무한의 은혜로 새생명 받아서  중생된 새사람 된 우리들을 이 무한한 은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예수님이 세 가지로  중생시켜 주신 모든, 은혜의 사람이 이렇게 자신이 그 사람으로 살고 그 사람으로  행복을 누리고 그 사람의 직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예수님께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중생이라 하는 이 새로운 세계를 주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은, 이것은 제가 고려신학교 거게 갔을  때에 박윤선 목사님, 박형롱 박사도 거기 있었고 또 하밀턴 뭐 선교사님 한부선  선교사님 그런 분들 다 거게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그때 무슨 문제가 났는고 하니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것은 우리가 자라가야 되느냐? 우리가  자라가야 되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서 가야 되느냐? 그러면 우리가 지금  자라가야 된다 그거는 공통이 되는데, 자라간다면은 땅위에 어떤 것으로 가지고  자라가야 되느냐? 땅위에 이 모든 광문다학 하는 이건 모든 지식들이 있으니까  이거, 또 피조물 이런 거 것건 거 모든 것을 다 거게서 그것을 먹고 마시고 또  경험하고 체험하고 거기서 그래 가지고서 그래 자라간다. 이러니까 이거냐, 또 한  설이 있기는, 그때 하나의 설로만 있었어요. 있었는데, 이는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와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만 가지고 자라가야 되느냐 아것이 문제가  됐는데 그때 해결을 못 지웠습니다. 이것을 고려신학교서 해결을 못 지워요. 못  지우고 다 이거라 저거라 이렇게 하고 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

 지금은 그들이 어떻게 해결 지워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마는, 그때에 저는  산골짝에 있다가 나왔으니까 그뭐 다른 것 아무것도 못 봤기 때문에, 이거는  순전히 마치 말하면 위에서 풍선을 많이 놔 놓고서 위에서 바람을 이래 막 불면,  사람이 입으로 불면 그 사람의 공기가 다 저 풍선에 와 가지고 불룩불룩하게 다  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한 분의 충만이 거게서 크게 불면 이게 쭉  내려와 가지고서 천 명 만 명에게 쭉 내려와서 이제 우리 영에 탄탄히  충만해저고 (OOO? 저 속에 귀신 들어갔구만. 왜 조노, 졸기를? 내가 자꾸  나무래 재껴. 나무래 재끼는데 나무라는 것이, 책망하는 것이 빛으로 나올 줄 알기  때문에 내가 한다 말이오. 책망하는 거 제가 암만 이래 듣기 싫든지 말든지  책망하면 그것이 안 되면, 햐, 책망하니까 내가 이제 막 연구해 가지고 자금 한번  목사님보다 앞서봐야 되겠다 그라든지, 이라든지 어짜든지 책망은 빛으로  나옵니다. 빛으로 나오지 딴거 안돼요. 옳은 거 가지고 나쁜 거 책망하면 빛으로  나오지 딴거 안 돼요.)  이렇게 풍선처럼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 영에게 와서 충만하고, 우리 영의 것이  우리 영혼에 와서 충만하고, 우리 영혼에 충만한 것이 우리의 몸에 와서 충만하고,  우리 몸에 와서 충만한 것이 우리가 접하는 우리 세상 모든 우리 현실에 충만해  가지고 충만해져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가지고서 거기 가 가지고 이게 점령한  그게 내 소유요 그게 하늘나라입니다. 뭐 딴거 아니라. 이거는 껍데기는 슬슬  누에 허물 벗듯이 자꾸 이거는 벗어지고 순전히 하늘의 것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충만했지 만들어져지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구윈입니다.

 이것이 지금 다, 오늘은 내가 뭐 조직신학은 모르니까 모르지마는 그때까지는  그게 없었습니다. 지금도 아마 이거 아마 이래 하는 거, 그때는 무슨 시대냐  하면은 사람에게 왜 도덕이 있느냐? 안 믿는 사람도 도덕심이 있느냐? 도덕심이  있는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그 형상이 다 죽지 안하고 남아 있는  그것이 이제 사람들에게 도덕이 되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안 믿는 사람에게도 도덕이 있다. 안 믿는 사람에게도  양이 적어 그렇지, 또 전반적이 아니고 원만치 못해 그렇지 그들에게 또 의도  있고 선도 있다 이랬습니다.

 이라니까 예를 들면은 그들이 공자나 주자가 부모에게 효성하라 하는 그것이나  오계명에 부모에게 효하라 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마 오늘 세계가 거의가 그렇다고 이렇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거는  아주 판이합니다.

 제가 그때 전도사로 있을 때인데 바로 해방 직후입니다. 해방한 지 한 일 년  미만됐었는데 대구 가서 집회할 때에 그때 우상의 제물 먹으면 죄라 하다가 그만  그 장로들에게 몰려 가지고 그때 내가 참 모둠매를 맞을 뻔 했는데, 그 교회  장로가 O장로라고 억센 장로가 돼가지고 저거 교회 강사 온 사람들을 막 지금  절단낼라 한다고 그래 달라들어 가지고 거기서 피난을 했었어. 그뭐 전도 부인들  막 전부 다 왔습디다. 우상의 제물 먹는 게 제사 음식 먹는 게 뭐 어떠냐고,  그들이 제사 음식 제사 지낸다 하면은 또 인제 추도식 해 주고 가면은 한 판씩  잘 먹고 모가지 때를 벗기는데 그 제를 먹지 말라 해 놓으니까 마구 들어  달라드는데, 그래도 지금은 그것이 믿을라 하는 사람들은 다 제재가 아마  돼졌으리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랬는데, 제가 마산 가 가지고 마산 OOO교회에 집회를 하는데, 그때에 그  공과가, 마침 그날 공과가 와 가지고 OOO목사님이 사회 하고 했을 때인데, 그  공과를 보니까 '공자니 뭐 맹자니 뭐 석가모니니하는 그런 사람들이 다 구원을  얻었다. 그거는 양심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 이것이 공과에  나왔습디다. 그때는 장로교 하나뿐입니다. 단일 장로교입니다. 그게 공과에 나왔어.

공과에 나와서 다 그거 그래 다 통일 공과에 넣어 가지고 다 쓴다고 이랬는데,  그걸 보고 '이거는 이단의 말이니까, 이거는 비성경적이니 안 된다.' 그래 가지고  거게서 말해서 OOO목사님이 역부러 총회 가 가지고 '이거는 안 된다' 이래  가지고 말을 해 가지고 그 뒤에 그걸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 모르기는 모르지마는  OOO목사님음 역부러 내가 보냈었습니다.

 자꾸 이런 것은 뭐이냐? 그때는 어두울 때이기 때문에 자꾸 시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가르치시고 자꾸, 이래 가르치는 데도, 가르쳐도 누가 한  사람이 다 아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합해 가지고 자꾸 이래 깨달아져저 점점,  이거는 땅에서 뭐 새로운 발견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전부 다 있지마는 그것을  우리에게 차차차 조그매씩 계시해 주는 것이 순서적으로 우리 실력에 따라서  계시해 주는 것이지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 가지고 주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다 받은 게 아니고 앞으로 지금 얼마나 받아야 될지를  모릅니다.

 모르는데 제가 OO교회 가 집회할 때에 칼빈 선생은 이렇게 말했는데 이거는  그때로는 감당했지만 지금은 이게 안 된다. 지금은 이게 틀린다. 그 말을 설교를  했더니마는 얼마나 빠른지 바로 그날 직통으로 가 가지고 소식이 오기를, 그때  나는 OO교파에 있을 때입니다. 오기를 '이 백 조사 이거 못됐다. 제가 칼빈보다  낫다고 하니까 이거는 교만하다' 이래 가지고 뭐 그만 그날 올라와 가지고서 뭐  야단이 났어요. 이래 나는 지금 내가 거게 있고 제명 당하지 안했으면 내가  발견한 진리를 십분지 일도 발표 못 했을 것이라. 그래 나왔기 때문에 지금  자유롭게 얼마든지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순전히 하나님에게서 신적 요소가 와 가지고, 신적 요소가  와 가지고, 인적 요소 꺼풀 속에 신적 요소로 가득 채워 가지고서, 이렇게  하나님의 것으로만 이렇게 충만시켜 가지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피조물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OO신학교 이학년 때인가 OOO장로님하고 나하고 한 방에  있었습니다. 한 방에 있었는데 그때 하도 예배 인도를 해 달라고 쌓아서 내가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를 이렇게 설명을 하면서 '이 포도나무가지에게는  전부 포도나무 둥치에서 나온 것만 제게 유익하지 포도나무 둥치에서 나오지  안한 그런 것은 가지 저에게 다 해가 된다. 이거는 잎사귀고 줄기고 뭐 꽃이고  열매고 다 순전히 둥치에서 나온 것만이 제것이요 저에게 유익이지 딴데서 온  거는 소용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는 순전히 하나님에게서 받아  가지고서, 받는 그 수통은 믿음인데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받아 가지고 되어지는  그것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거 아닌 것은 다 해독이 된다' 이라니까  그 OOO목사는 있다가 찌글찌글 웃으면저, 아주 웃게 들어요. 그래 놓으니까,  '이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저 사람이?' 아주 조롱을 해요. 지금 똑똑합니다,  아주 OO목사 알지요? OOO목사 몰라요? O장로 몰라요? OOO목사,  OO교파에서는 똑똑하기 이겁니다. 그때는 그래 그런 걸 몰라요.

 그래 내가 고려신학교 입학 논문 쓰라 하는데, 입학 논문 쓰라고 하는데, '뭐하러  신학교 왔노' 그게 논문 제목이라. 그런데 나는 떡 쓰기를 포도나무 대목가지 되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래 놨으니 이게 논문이 아니라 이거 아주 교학실에 막 소문이  나 가지고 봐라, 이걸 논문이라고, 이걸 논문이라고 이래 썼다. 이게 논문이라고  썼다. 이래 가지고 얼마나 자기네들이 조롱하고 이래 놓으니까 입학이 돼야지?  그래 주남선 목사님이 그런 게 아니라고 한번 시켜 보라고 괜찮을 거라고, 그래  내가 주남선 목사님 때문에 입학을 했어요, 그때. 그리 안 하면 입학 못 하는데.

그때부터 하나님이 내게 깨닫게 해 주시는 거는 달라요. 이래서, 포도나무  대목가지 되기 위해 한다고 이랬는데 그래 하나님께서 대목가지를 되구로 해  주실란지 모르겠어. 나는 믿어요, 지금.

 이래서, 어짜든지 우리는 순전히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하나님에게 받은 것만,  얼마 전에도 그랬지만 하나님께 받은 것만 우리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것만 우리 지혜요 하나님깨 받은 것만 우리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이요 그는 머리요 우리는 몸으로서 그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껍데기만 우리지 속에는 순전히 신적 요소요. 그래  가지고 되어지는 우리 구원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구원이라 하는 건 말할  수 없는 지극히 참 영광스럽고 충만한 거라.

 이런데, 이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 구원이 되어 지는데,  그러면 이 충만이 우리에게 올 때에 어떻게 해서 오느냐? 이 충만이 우리에게 올  때에 그 충만이 우리에게 오고 싶어도 오지를 못해요. 못 하는 것은 우리는 죄에  속해 가지고 있으니까 그분은 빛이시니까 오면 우리가 뭐 살기보다 녹아  버리는데 어떻게 올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를 아껴서 못 오신다 그말이오.

못 오시는데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서 다리를 놨어요.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서,  건너오시기 위해서 다리를 놨는데 그 다리를 놔 가지고서 간신히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우리에게 건너왔어.

 그러면 그 다리가 뭐인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라. 예수님의 대속 그  대속으로써 왔기 때문에 그를 가리켜서, 예수님을 중보자라 말씀했고 내가 아니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면 아버지에게로  아무도 오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그 충만이 예수  그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왔고 이 대속을 통해서 온 충만한 은혜가  성령으로 통해서 우리에게 왔지마는 거리가 멀어 잡히지를 못해. 성령으로 온  충만이 어에 진리로 우리에게 가까이 왔어. 잔리로 가까이 왔지만 진리가 눈에  보입니까? 그 진리도 우리가 이제 이성으로 좀 감상할라면 감상할 수 있지마는  우리와 거리가 먼데, 그러면 그 진리가 우리가 알기 쉽도록 우리에게 온 것이  뭐이냐? 문서 계시라. 문서 계시는, 문서 계시는 껍데기고 그 속에는 진리가  들었어.

 이래 가지고 문서 계시에 우리가 연결돼 가지고 지금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  마음에 건너오고, 우리 마음에 건너온 것이 우리의 몸에 건너오고 우리 모든  접촉하는 사물들에게 충만히 와서 나를 통한, 나를 통한 이 하나님의 충만,  하나님의 충만이 또 그게 뭐이냐? 하나님의 충만이 그것이 내나 무죄, 그게 무죄,  의, 하나님 동행, 또 하나님을 향한 소망. 또 그것이 영감, 진리 자꾸 이래 와  가자고 이라기 때문에, 우리들이 온전한 사함이 되는 더는 순전히, 네 가지로  우리가 중생 됐기 때문에 중생된 우리 네 가지가 네 가지로만 자꾸 먹으면 자꾸  자라요. 우리가 자라는 건 딴거 가지고 못 자라요. 네 가지만 먹고 자라야 됩니다.

네 가지 먹고 자라야 되는데 우리가 뭐 먹어? 진리 먹고 자라야 되고, 영감 먹고  자라야 되고, 사죄 먹고 자라야 되고, 칭의 먹고 자라야 되고 화친 먹고 자라야  되고, 또 하나님을 향한 소망 먹고 자라고 자꾸 이래 자라야 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힘은 그거라. 이러니까, 거게서 받아 먹고 자기가 자라서  힘을 가질라고 하고 있고 그것만이 자기 힘인 줄 아는 사람은 절대 실패가  없습니다. 부끄럼 당하지 않습니다. 이거 보면 저거가 뭐 사람을 매수하기 위해서,  매수해 가지고 너는 국수 한 그릇 사 줄까, 국수 한 그릇 사 주고 매수하고 돈 몇  푼 주고 매수하고 또 이래 가지고 '곤란하지' 하며 등어리나 톡톡 두드리고 하는  거, 이제 거석한 사람은 낯이 간지러워서 그라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그걸 또 얻어 놓고 나면 '아무것이는 내 사람이라 아무 것이는 내 사람이라  그러니까 든든하다.' 또 '나는 누구 어떻게 하니까 또 든든하다.' 이런 데에서 다  실패합니다.

 보면은 이거 찍해야, 보면 막 상이 찡그려 가지고 아래 가지고 있다가 상이 쭉  펴였어. 내가 여가 어떤 목사, O목사라 하는 그분이 있는데 그 펴였어. 그래 내가  봐 알지요. 그거 뭐 알아. 그래 내가 '오늘은 어째 교회 어려움이 다  없어졌습니까?' '예, 인제 됐습니다.' '어찌 됐습니까?' 내나 장로 한 분이 저를  찬성하니까 됐다는 거라. 그거 하나님은 '네 요놈' 하고서 얼마나 분하겠소?  주권자 주재자 그분한테는 지금 노여움을 끼쳐 놓고 인간 그거 하나 의지했다고  하니 얼마나 비참하요? 그래 가지고 여기 자꾸 오다가 안 오지? 그때 그 목사  이름이 뭐꼬? 모르나?  그래서, 자기가 뭐 아무리 거석해도, 아무리 못 해도 이 성경 말씀이 자기를  변호해 줄 수 있는, 성경 말씀이 변호해 줄 수 있는 요 정도는 돼야지 이것도 안  해 놓고 안심한다는 그거 어리석은 사람이오. 미친 사람이오. 성경 말씀이 보증을  해도, 보중을 한다고 해도, 구약 성경에 보면은 성경 말씀이 다 보증하고도 다  정죄받고 그건 사람들 많이 있는데, 성경 말씀을 보증을 했지마는 성령이 인을  치나 안 치나 그게 문제라. 성령이 인을 치나 안 치나?  성령이 인치는 데는 사기 협잡 사기꾼이 이중 십중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  에헤' 하면서 하나님에게 상긋상긋 웃으면서 달라든다고 하나님이 그 웃음에  매수를 당할 건가? 그 뇌물에 매수를 당할 건가? 자기가 좀 뭘 도와 준다고  하나님이 무슨 힘이 모자라서 제 노동력을 볼까봐서 하나님이 거게 매수를  당하겠습니까? 이러니까, 영감이 아니면 그런 것 다 마음에 안심이 안 됩니다.

우리 중생된 영이 있기 때문에 영감이 찬동 안 하면 암만 인성을 쌓아 가지고  어떻게 해도 마음에 안심이 안 돼요. 기쁘지 안해요. 거기 있으면 뭐 위에서 욕을  할수록이 기쁩니다. 욕을 할수록이 기쁘고 때릴수록 기쁘고 감옥에 갇힐수록이  기뻐요. 양심대로 영감으로 나가는 그 길에는 아무라도 순교해 수 있습니다. 거기  대해서는 아무도 겁도 나지 안하고 맞을수록이 좋아져요. 암만, 모두 경험한  사람들은 다 알건데? 그럴 때는 욕 얻어 먹으면은 분하지 안해. 욕 얻어먹어 분할  때는 벌써 딴 거라요.

 이래서, 이것만이 우리 힘인 줄 알고 이것으로 힘을 해서, 그러면 설교할 때도,  교인 다스릴 때도, 그러면 교인들이 저거 뭐 단합하면 어짤 거요?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 거라? 할 권리가 없어. 그런데,  자기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딴것과 이래 하면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미워하는 자요 그것을 사랑하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라 이래, 그거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미워하는 거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면 또  그런 것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충만을 가지고 우리에게 해 가지고 그 요소를 받아 가지고  이것이 커지는 것이 우리가 장성해지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영은 벌써 거기  접선이 돼 가지고 있지마는, 영도 자랍니다. 영도 자라는 것은 영이 본질이 자라는  게 아니라 양적으로 자란다 그말이오. 영은 어데서 자라는가? 영은 자라는 것이  다른 데는 자라지 못하고 자기의 영혼 속에서 자랍니다. 영혼 속에서 자라고,  영혼온 자기 육체 속에서 자라고, 육체는 어데서 자랍니까? 육체는 고기덩어리가  커지는 게 아니라. 육체는 어데서 자라는가? 육체는 자기가 접하고 있는 자기  현실이라는 이 세상에서 자라. 세상을 점령해, 자꾸. 그래서 하나님이 또 근본  하시기를 그분이 피로 건너오셨고, 또 영감으로 건너오셨고 진리로 건너오셨고  문서 계시로 건너오셨고 또 부활의 영생으로 우리에게 건너오셨기 때문에 거게다  입을 대요. 그 수도 꼭지 거게다가 딱 입을 대서 이제, 입은 무슨 입이냐? 맨  끄트머리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 입을 대면 쭉쭉 빨아먹으면 얼마든지 빨아  먹어서 말이지요,  이거 포도나무 벌거지 보면 그래요. 조그만한데, 조그만하기는 조그만한데 이게  자꾸 커집니다. 이놈이 물 올라오면 거 자꾸 빨아먹으면 자꾸 늘어져요. 늘어져  가지고 자꾸 커져. 커단하게 이만하게 이래 돼지는 건데, 자꾸 어데다가 대고 자꾸  빨아먹으면 됩니까? 어데 대고 빨아먹으면 돼요? OOO목사? 진액을 어데다가?  진액 참말로 포도나무 가지에 진액 빨아먹다가 죽을라고? 뭐 빨아먹고 돼, 뭐  빨아 먹고? 저 O목사님?  제일 끄트머리 문서 계시에다 입을 딱 댑니다. 문서 계시에 입을 딱 대요. 그래  가지고 자꾸 빨아먹어요. 문서 계시에서 뭘 빨아먹습니까? 문서 계시에서  하나님을 빨아먹습니다. 문서 계시에서 주님을 면접하십시오. 문서 계시에서  주님을 면접하고 또 문서 계시에서 거게서 믿음을 가져요. 거게서, 문서 계시에서  내가 믿음을 행해야 되지 딴데서 취한 거는 잡탱이 믿음이라 안 돼.

 문서 계시를 보고 이럴 때 '주여 믿습니다.' 이럴 때 그것이, 인제 거게서 믿음을  가지고 거게서 소망을 빨아먹고, 거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빨아먹고, 거게서 이제  회개도 빨아먹고, 거게서 이제 뭐 실행도 빨아먹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이 문서  계시를 내가 듣고, 듣는 데서, 읽는 데에서, 내가 또 외우는 데에서, 내가 실행하는  데에서 거게서 주님도 만나고, 거게서 믿음도 발견하고, 소망도 발견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도 발견하고, 거게서 잘못된 죄인도 발견하고, 회개도 발견하고 자꾸  이와같이 이래 해 나가면은 나중에 그것 가서고는 양식이 안 돼요.

 그거 가지고 양식이 안 되니까 거게서 이제 영감을 배워야 되겠는데, 영감이  오면은 이제 충만해지겠는데 거게서 영감받는 게 쉬운 거라. 자꾸 그라면서 '아,  내가 참이가? 내가 정말로 이거 외식 아니가? 거짓부리 아니가? 내가 참으로 이  시간 지금 나에게, 내가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듣는 데에, 설교를 듣는데 주님이  나에게 지금 말씀해 주시는 주님으로 내가 대면을 하고 있나? 내가 성경을 혼자  읽으면서 주님이 문서에 나한테 지금 읽어 주고 었다는 걸 대면하고 있느냐?  내가 여게서 내가 여게서 믿음을 참 가지는 것이 진실함으로 거짓 없이  가지느냐?' 진실되게 참되게 참되게 할라 하는 이것이 뭐이냐 하면 우리의  양심입니다.

 그래서, 양심이라는 것은 이것은 신적 요소도 아니요 인적 요소도 아니라. 그래서  모든 학자들이 말하기를 그 양식이라 하는 이것은 신적 요소도 아니고 인적  요소도 아니고 그 사이에 하나님의 사자라. 천사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디다.

 내가 미국서 온 선교사 쳐놓고는 제일 신령한 눈이 밝은 사람으로서 스톡  박사라 하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이 제일 눈 밝은 걸 내가 봤습니다. 뭐 OOO  이런 이 그렇지만 이런 분들은 좀, 신앙은 좋아도 진리를 파고들어가는 데는 좀  어둡습니다. 이런데 스톡 박사 그이는 미국에서 나온 미국 윤리학, 칼빈 신학교  윤리학 교수라든가, 저 OOO전도사님 스톡 박사 알아요? 스톡 박사? 그때는  그게 아니고, 한국에 선교사 안 왔어. 그때 잠깐 왔었어요. 잠깐 왔었는데, 와  가지고 일주일 동안 집회 하는데 여기 막 불이 났었습니다. OOO목사님 그때  따라다니고 이래 가지고.

 이런데, 그때 할 때 보니까, 그래 내가 OOO목사님한테 그랬어. 자기는 지금  그걸 듣고 배운 것이 오래 전부터인데 지금 그것을 들고 그렇게 뭐 '내가 이 처음  봤다' 하고 이래 쌓고 막 간증을 해 쌓아 여 거석해 가지고 내가 좀 야지를 줬다  많이오. 그러면 지금 그것을, '이래도 여기 하는데 우리는 이 위에 걸 배우지  안했느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안했느냐? 내가 이렇게까지 OOO목사님하고  둘이 차에 오다가 좀, 너무 배운 거를 무시하고, 그런 사람 말하는 거는 그래 하고  우리가 말하는 거는 무시해요. 이래 내가 그런 말까지 했었어. 했는데, 그분이  양심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는 신적 요소 아니고 인적 요소도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하나님이 내놓은 그 사자로서 중간에 중매 역할하고 있는 사자라,  하나님의 사자라 그렇게, 그분은 양심관을 그렇게 가집디다.

 그러나 양심은 분명히 인적 요소입니다. 인적 요소인테 사람의 마음으로서 최종  권위를 가진 것이 양심입니다. 모두 다 양심을 저버리니까 권위가 없는 줄 알아도  아니오. 어떤 살인 강도라도 마지막에 그 사람은 양심 앞에 무릎을 꿇고야  맙니다. 양심 앞에 결국 그러는데, 양심 지도를 살아 있을 때에 여유 있는 시간  있을 때에 그 지도를 받으면 소득이 생기지마는 그때는 안 받아도 최종에 후회로  받아도 받습니다. 후회로 받아도 양심 앞에 반드시 거게서 복종하고야 마는 것이  인생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자기가 어짜든지 여기 거짓이 없이 내가 참되게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나 또 거게서 믿음을, 자기가 믿사옵나이다 하는 크게 믿는 거라. 거게서  믿음을 마련하는 것이나 소망을 마련하는 것이나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접하는  것이나 이 모든 자기가 욕망을 가지고 의욕을 가지고 실행하는 것이나 이런 것이  내가 이거 진실되나 거짓 되나? 진실되냐 거짓되냐 하는 것을 자기 험껏  진실되게 할라고 할 때에 바로 거게가 거겝니다. 그게 바로 성령이라. 그럴 때에  성령은 우리에게 역사해 주시오.

 이러니까 반드시 양심에 접해서 양심이 소개하는 그 양심 소개의 그 진리를  접할 때에 그 사이가 그것이 영감이라. 그러니까 진리는 양심을 향해서 찾아가서  양심에 접선시키는 거라. 양심에 접선시키면은 그라면 어찌 되느냐? 자기가 이제  진리를 듣고 읽고 또 자기가 외워보고 생각해 보고 행해 보고 또 이라다가  그것이 점점 참되져서 영감에 나아가도록, 그러면 양심으로 자기가 참으로  양심으로 듣고 양심으로 읽고 양심으로 자기가 외우고 양심으로 실행해 보고  이라면은, 그럭저럭 그라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영감, 자기 영감이 할 때는  벌써 뭐이냐 하면은 자기 주관을 초윌한 역사가 자기에게 오는 걸 자기가 알  거라 그말이오. 자기로서는 암만 해도 이 이상은 깨달을 수가 없는데, 이 이상은  믿을 수가 없는데, 자기 혼자 믿을라고 할 때는 요만밖에는 안 믿었는데 자기가  어데 자기 이상의 믿음이 자기에게 오고 또 깨달음이 자기에게 오고 또 소욕이  자기에게 오고, 그러면 욕심도 자기에게 있는 욕심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그  의의 욕심 그 이상의 욕심이 자기에게 오는 그것이 바로 영감이라,  그래 되면은 뭐이냐? 그리 되면은 그다음에 끝으로 예수님의 피를 입어요.

예수님의 그라면 사죄가 자기가 입어집니다. 사죄 입는다는 것은 그라면 자기는  필연적으로 죄하고 싸우게 돼요. 죄하고 자꾸 타협을 할 수 없어. 필연적인  전쟁이 돼. 그러니까 기독교는 자꾸 필연성으로 이루어지는 거라 강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저절로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라. 그라면 필연적으로  죄와 싸우게 되고 죄와 싸우게 되고, 또 그 생활 이래 하니까 필연적으로 자기  생활이 의가 자지 생활, 의는 좋아하고 의는 기뻐하고 의는 사랑하고 의는 자기  편이라서 그만 거기 하나가 되고 싶고, 의의 적이면 내 적이고. 죄면 내 적이고  이래 가지고 비로소 사죄의 공로를 힘입으면 사죄로 더불어 살게 되고 그라고  나면 이제 하나님의 화평의 하나님과 동행이 돼요. 하나님과 동행돼 가지고 이제  하나님이 자기에게 모든 역사하는 것을 그것을 자기가 느껴서, 아버지가 너희  안에 너희가 아버지 안에, 이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너희들이  보리라. 본다 그말이오. 우리가 뭐, '지금은 하나님이 나하고 거리가 머네. 거리가  머네.' 거리가 멀기는 잠깐 멀어지는데 그 거리를 축소시켜서 하나님과  가까와질라고 하면은 애를 써서 가까워질 때는 안다 말이오. '주님이 나는 지금  주님이 함께 하신다. 이 시간때는 주님이 함게 하시고 이 일도 주님이 기뻐  하신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말하든지 뭘 하든지 할 때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거게 전화를 듣고 거게 연락을 받아야 담대가 되어지지 거게 안 받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천인 만인이 다 위로가 안 돼요. 그분과 나와 하나가 되어서 할 때에  비로소 담력은 우리에게 오고 평강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인제 그러면, 그라면 자, 아무것도 소망할 게 없어. 뭐 과거에 한번 땅에 뭐  재벌가가 되면 좋겠다 뭐 욕심 같은 거 많지마는 그것 내음새가 나고 더러워서  아무 소용이 없고 그게 필요가 없어. 없으니까 단지 소망은 하나님 그분 차지하는  것밖에는 내 소망이 없게 돼. 이러니까, 그거면 영생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는 그게 영생이라.

 그래서, 내가 올해 세배하러오는데, 세배하는 그걸 내가 못 오구로 했어 그날은  괴로워요. 절을 받고자 하는 게 아니고, 세배 왔는데 그것들에게 구원이 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배 오는데 세배돈이 십이만원인가 삼만원인가 나갔어. 똑  천원짜리만 주는데, 새돈 천원짜리만 주기는 줬는데. 그래 오면은 그날은 녹아요.

이래 오면 또 기도해 주고 이래 놓으니까 이 OOO교회는 못 오구로 자꾸 이래도,  그뭐 피해도 어째 붙들립니다. 그날도 그만 어데로 갈라 하는데 못 가고 붙들려  이랬는데, 오면은 또 그 사람에게 유익되도록 해 줘야 되지 왔다가 손해 보면 안  된다 말이오. 오면 손해를 안 보고 또 유익을 준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날은 뭐  기도를 얼마나 했든지 녹았어. 저 OOO조사님은 말이지, 떡 와 가지고, 이래 와  가지고 그래 인제 여게 대해서 좀 권면하고 기도 떡 해 주고 나니까 갈 때 또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목사님 기도 한번만 더 해 주시이소' 떡 이라며 저거  교인더러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기도는 많이 받을수록 좋습니다.' 허허허허허.

저라지, 저 OO 조사님도 산에 천막에 내가 앉았으면 이래 와 가지고, '저거 또 또  온다. 오면 기어코라도 기도해 달라 합니다. 그래 나중에 내가 인제 '오늘은 기도  해 달라 하지 마라. 네가 기도하지, 너 하는데 내가 거절하면 너 섭섭할 것이고  기도 할라 하면, 기도를 아무나따나 하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그게 진액이  빠진다.' 기도 그거 진액이 빠집니다. 하나님이, 그래도 자기로서는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가지고 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래서 우리는 우리 신앙 생활, 회개도 좋은 것이고 믿음도 좋은 것이고 소망도  좋은 것이고 사랑도 좋은 것이고 또 열심도 좋은 것이고 이 모든 게 다 좋은  것인테, 이 모든 것이, 이 모든 것이 성경 말씀에서 나오는 그것만 받아 가지고  우리가 자라는 것이 그게 바로 되는 것이라.

 성경 말씀에만 받아 가지고. 말씀 속에서 나오는 거게만 빨아먹어요. 그거  딴거는 자기가 뭐 그냥, 믿는 거 이런 거, 믿는다는 거, 믿는 그게 얼마나  위험합니까? 또 소망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합니까? 저 혼자 백지 좋아 가지고  그럴 수 있어. 그러니까 하나님이 당신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접선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봄으로 믿는 거, 이 많씀을 인해 믿는 거, 이 말씀을 봄으로 소망하는  거 이 말씀으로 인해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사랑 하는 거 이거는  변동이 없기 때문에 기도도 그렇게 해야 되겠고 주님을 모시는 것도 대면하는  것도 이렇게 해서 우리가 자라가면 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

 그러니까 우리가 받을 심판은 그리스도의 심판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뭐이 그리스도의 심판인가? 그리스도의 심판은 제사장 선지 왕 심판인데, 제사장  실력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그 사이를 무마시켜 가지고 잘 화합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그 진노가 반드시 멸망을 시킬 터인데 멸망시키지 안하고  긍휼로 바꿔오고, 또 심판이 하나님의 진노로 멸방을 받을 것인데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하고 그 사이에 대속을 조화 붙인 것이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일을 하는 것이 우리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은 뭐 딴거 가지고는 없어.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 계명은 뭐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어느 정도?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이랬으니까, 자꾸 이렇게 하는 이것이 우리의 바로 자라는  것인데, 여게는 딴것이 없어요. 딴걸 보면 안 돼요. 딴게 여게 끼이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게서 자기, 자기 영웅심 다 끼여 있지, 자기 욕심 다 끼여 있지, 주관 다  끼여 있지, 교만성 다 끼여 있지, 자기가 왕되고 싶은 거 다 끼여 있지, 명예심 다  끼여 있지, 자기 또 인기 끌라는 인기성 다 끼여 있지, 거기 또 거짓부리 다 끼여  있지 막 어글어글하게 꽉 찬.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짜든지, 첫날밤에 O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랬는데 그 악, 자기 중심 이것 빼면 됩니다. 제가 지금으로부터  삼십 한 사오 년 전인데 그때에 OO교파에서 전국 학생 신앙 운동이라 하면은,  그 신앙 운동에 제일 주력으로 힘쓴 이가 한부선 목사님이고 학생들로서 제일  신임하고 인기가 높은 이는 저였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전국 학생  신앙 운동에 집회를 할 때에는 새벽집회 인도는 늘 제가 인도를 했었습니다. 그  인도할 때, 그래 내가 인도하며 그랬는데, 그래 내가 그런 말을 했었어요. 그거  여러분들도 많이 들었을 건데. 그러면, 다른 사람이,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죄 뭉텅이 전부, 세계에 있는 죄 전부가 너를 해하는 것보다도  네 죄 하나가, 네가 알고 있는 죄, 자타가 알고 있는 네 죄 하나가 네게 해가 더  크다. 뭐 그때 왜 내가 그 말 했느냐 하면은 모두 다 OO교파에서는 '주여 이  민족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민족 죄를 붙들어 안고 기도하고 또 그때 뭐  나라의 죄를 붙들어 안고 기도하고 이래 하는 그 소리가 내가 미워서 그때 그런  말 했었어요.

 천하에 있는 죄악의 그 해독보다, 너를 해하는 해독보다 자타가 아는 네 죄  하나가 네게 대해서는 해독이 크다. 자타가 아는 네 죄 전부보다 다른 사람이  모르고 너만 알고 짓는 죄 그것이 네게 해독이 더 크다. 너만 알고 짓는 죄 그  전부보다 네가 모르고 범죄하는 그 죄 하나가 네게 대해서 해독이 더 크다. 그  모든 죄보다 네가 중심돼 가지고 있는 그것이 죄악이 더 크다 하는 그것을 제가  그때에 증거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악인데, 그게 제일 네게 죄악이 제일 크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한  이년 전인가 삼년 전인가 그때 그것을 그래서, 하도 책 내라 쌓아서 조그만한 책  그때 하나 써놨는데 그게 어데 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가지고 갔는지?  그래서, 어짜든지 우리는 요 진리를 자기가 배워 가지고, 요 진리를 배워 가지고,  양심을 쓰지 안하기 때문에 이 진리를 듣고 나서 딴데로 돌아다니지 이 진리를  양심을 써서 들으면은 절대로 딴데 안 나갑니다. 또 나가봐야 뻔합니다. 벌써  나간 지 일 년이 되면 일 년 된 것만치 세상과 가까와졌지 하나님과  가까워지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하나님이 이렇게 사명을  줬기 때문에 이 사명을 잘 보수해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서부교회도 주일학교 견학으로 오는 사람들이 벌써 천 얼마라더라? 천오십  몇 회입니다. 전부가 온 게. 그걸 여러분들은 이거 뭐 예사로 아는 그게 강퍅이오.

어떻게 그라면 전국과 세계에서 뉘가 오라 소리 안 하고, 누가 대접을 합니까?  아무 대접 안 하요. 그 사람들이 저 먼저께도 그때는 OO교과에 주일학교 부장  오십두 명이 내놓고 주일날 왔었어. 주일날 여기 주일학교에 여기 와서 참석하고  갔었어. 그 일이 쉬운 일입니까? 이렇게 이래 해도 그래도 눈에 안 보이니까  예사로 여긴다 그말이오. 예사로 여겨.

 저 먼저인가 언제인가 OO목사가 말하기를 그때 뭐 '그걸 자꾸 그거 기적이니,  뭐 기적이니 뭐이니 표적이니 그런 거 이라면 안 되니까 그거 다 치우고 진리로  돌아가자' 하는 그 말을 강단에서 했는데, 그때 OOO교회서 한 것보다도 저게  가조 OO교회서 자꾸 안수해 달라고 막 뭉클여 놓으니까 문둥이만 전부 와서  문둥이 병신들만 앞에 앉고 성한 사람들은 있다가 못 앉아요, 그만. 그것들이 미리  와 가지고 들어앉아서. 이래서 인제는 안 되겠다 이래서 그때에 그만 내가  하나님께 설교를 할라 하니까 설교가 전연히 안 돼서, 여기 그때 뭐 OOO씨  OOO 그런 이들이 다 거기 있을 때입니다. 암만 설교할라 해도 그날 밤에  설교가 안 돼요. 설교를 할라 해도 입이 막혀서 설교가 안 나와요. 안 나와서  못하고 나는 땀만 쫄쫄 빼고 안돼서 이게 뭐인가 하고서 잠깐 통성으로 모두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고 죄을 회개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라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이라다가는 진리는 구하지 못하고, 사람병 고치지는  못하고 나중에 고기덩어리 병 고치는, 그거는 암만 고쳐봤자 그거는 다 죽고 마는  것인데 그거 하지 딴거 못 한다'하는 그걸 가르쳐서 그때 말하기를 '주님이여 내가  이제부터는 안수하는 것이나 이런 모든 병 고치는 거 거게 대해서는 내가 위주로  하지 안하고 그저 나는 말씀 전할 때에 저들이 낫는 거는 낫고 그대로 하지 그걸  내가 안수하거나 그렇게 주력하지 않겠습니다.' 그걸 인제, 그때에 신앙 동지가  없었어요. OOO목사님의 부인 OOO씨가 그때 신앙 생활 했고 OOO씨  어머니가 신앙이 좋았어요. 그래 그때는 사람이 모두 뭐 많아 놔서 땅에 앉을  수가 없으니까 강단에도 소복하게 앉았었어. 소복하게 앉아 가지고 이랬는데 그래  그걸 구별을 하고서 같이 기도했는데, 하고 나서 '내가 이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래 그거 선포했어요. 선포하고 이제 앞으로는 그라겠다, '만일 하나님이 이게  하나님의 뜻이거들랑 이 시간에 은혜를 주시옵소서.' 그랬는데 그라고 나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는데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의 설교를 하도록 했어.

그날밤에 그 설교에서 막 전부 뒤벼져 버렸어요. 그래 막 큰 은혜의 역사가  나타났어. 그라고 난 다음부터는 안수하는 일을 그런 일을 안 했었습니다. 그전에  안수 하다가 뭐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문둥이도 깨끗해지고 이랬지만  그다음부터는 내가 뭐 안수하는 일 안 하고서 이랬는데, 그러나 하나님이 설교  말씀을 하고 이래 할 때에 제가 듣고 깨달음으로써 그렇게 기적이나 표적이  나타나는 그건 내가 부인하지 안해요. 그걸 나는 OO 신학교에 가서 좀  부인했어요. OO신학교에 가니까 그거는 전부 신비주의라 못쓰는 것이라고 자꾸  이렇게 주 몰아대서 그걸 그만, 나도 그것만, 뭐 어데 그 사람 뭐 집회 하는 데  병나았다 하면은 그만 마구 문둥이 모양으로 주목을 하고 이래 가지고 했서 그거  큰 수치로 이래 알았었는데, 갈라져 나오고 난 다음에 암만 봐도 '그게 아니다  아니라' 이라다가 그때 언제 여기서 내가 선포했어. '그게 아니다,' 그거 오늘에도,  말세가 돼 갈수록이 누가 하나님 말씀을 참말 하는지, 전부 말로는 전부 다  부흥사요 다 모두 천사들인데 다 설교는 잘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같이 하느냐  안 하느냐 그걸 뭘로 알 거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런 역사에서 그거 알  수가 있지 않느냐? 예수님 당시에도 표적을 보고 그들이 믿었지 표적 안 보고는  안 믿었어. '우리가 당신이 하나님에게서 온 분인 것을 믿을 수 있도록 표적을  보여 줘라' 이래 표적 보고 난 다음에 그들이 믿었다 말이오. 그래서 그걸 이렇게  하니까 거게 대해서 반대를 모두 여기서 했지마는 기어코라도 나는 그대로  했습니다. 해서 지금 뭐 표적 많이 나와. 우리 교회는, 요번에 보니까 병 나은  사람들이 얼마더라? 이천 얼마야. 이천 얼마고? 종류는 얼마? 이백구십여섯  종류에, 병낫는 거 이백구십여섯 종류라. 병도 종류 많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렇게, 내가 이걸 자꾸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좀 믿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자꾸 이런 소리 합니다. 이것도 실상  '하나님이 믿게 하시면 믿고 안 믿게 하시면 안 믿으니까 그거 치워 버려라' 이럴  건데 그래도 이것이 믿음이. 모자라 그런지 자꾸 안타까와서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내게 대해서는 미친 소리라. 다른 사람이 '저거 또 저거' 비쭉거리기를 '저거  또 내것이 아닌데, '저거 또 제 자랑한다. 제 뭐 한다.' 비쭉거리는 줄 알면서도  그거 또 안타까와서 다문 이라면 조그마치라도 저거에게 믿어지는 믿음이  생겨질까 해서 이렇게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것도 또 자랑이 아니야. 우물 이거, 우물 이것을 물을 안 줘서  내가 삐꿨어. 내가 여기 대해서는 지금도 회개를 해요. 왜? 하도 물 달라고 내가  오랫 동안 내가 기도 했는데, 뭐 한 달 두 달이 아니라 몇 해를 두고 기도했는데  물 안 줘서 나중에는 내가 강단에서 선포를 했어.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식수  달라고 내가 기도 하지 않겠다. 하나님이 주시면 주시고 그렇지 나는 다시는 식수  달라고는 내가 기도하지 않겠다 그걸 내가 강단에서 선포를 했어. 그라고 난  다음에 한 달도 안 돼서 저 물을 줘 버렸어.

 이러니까, 나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고기 달라고 이래 하며 원망 불평하니까  고기는 실컷 먹였지마는 하나님이 그 뒤에 보니까 제가 믿지 안하고 그렇게 한  그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뭐 벌받고 징계 받았지 뭐 아무 좋은 게 없었어. 나는  장 저 우물을 볼 때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같이 원망해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내가 믿고 소망하고 있을 때 준 게 아니지 않느냐' 그게 장 내 마음에  가책이 돼요. 그것도 지금 우물이 저래 나와 가지고 뭐 부산 시내에 유명합니다.

또 저렇게 저래 자꾸 계속 나와요, 계속 나오는데 이제는 뭐 모르는 사람이 없어.

저 모두 음식점에도 가면은 제주 물보다 이 물이 낫다 하고 또 이래 가지고 이래,  그런 것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라 그거요.

 우리 진영을 하나님이 사랑하셔 이래 하기 때문에 그렇게 미혹받지 말고  어짜든지 여러분들이 힘있게 여게서 배운 교훈과, 정치가 이거 바로 된  정치입니다. 내가 하니까 잘못된 것도 있겠지마는 실은 자세히 따져보면 바로 된  정치요. 그걸 다 보면은, 하나만 볼 게 아니라, 저거 개적으로 볼 때는 좀  억울함이 있다 하지마는 이 전체를 자기 교회로 보고 자기 것으로 본다고 하면은  부득이 그렇게 안 할 수가 없어. 이리 저리 하는 데에는. 이러니까, 아들은 다  불평을 하지마는 아버지로 말하면 그 아들들이 불평하는 아들들이 있어도 어짤  수 없어. 전체를 다 볼 때는 그렇게 안 할 수 없다는 그런 거와 같은, 그래도 조금  전체를 보면은 조금 심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이해를 해 줘야 합니다.

 그러고, 그거는 오전에 이제, 여게서 장립 받은 목사님 장로님이나 그런 분들에  대해서 자꾸 이라니까 그분들에게도 도로 손해가겠어. 이래서 아마 어에 오늘  보니까 OOO목사님도 많이 거기서 증거를 했고 또 다른 분들도 증거를 했고 또  OOO조사님도 증거를 했고 이랬는데, 제 의견과 같애요. 이러니까 그 사람이  여게서 받았기 때문에 이 진영을 떠날 때에는 그분에게는 이 진영에서  나갔으니까 그래 제명 되는 사람이니까 제명을 하는 것이 옳겠고, 또 여게서 목사  시무를 안 하니까 시무 정지를 하는 게 옳고 그렇다고 해 가지고 다른 데 가서  뭐 목사노릇 못 하는 게 아니고 그거 안수한 것은 그뭐 우리는 손을 대지 안하고  인제 그런 데에는 이 사람은 여게서 탈퇴했기 때문에 우리 총공회에서는 이분은  제명을 했다 하는 그것은 신문에 내야 될 것이고, 또 그 사람이 만일 무슨 실수를  잘못해 가지고 무슨 치리받을 만한 죄가 있다 할지라도 그럴 때는 우리는 그것을  치리를 해야 되겠고, 그 치리 경중에 따라서 치리하는 데에다가 면직까지 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면직을 한다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어느 기한을 통해 가지고  또 그것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그건 길도 있어야 되겠고, 그런 사람은 여게서  탈퇴하지 안하는 사람에게 한해서는 무슨 범죄해서 치리를 받았든지 어째  받았든지 한다 해도 그거는 우리 안에서 할 일이지 그것을 신문에 공고할 펄요는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왜? 그거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고 있으니까 거게서 뭐 손해볼 것도 없고 다 그렇게 상대하지마는 이 사람은  우리 공희를 떠나서 갔기 때문에 어데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부득이 그거는 우리  책임상 그거는 광고를 해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돼지고,  또 하나는 우리 OO목사는 요번에 미국 갔어요. 미국 갔는데 미국 에서 좀  양사방 다니면서 순회를 하고 오라고 이랬었는데, 1A에도 가고 또 시카고도 가고  호주도 가고 그렇게 뭐, 빌라델비아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여러군에 다니면서  중간 중간에 전화가 왔는데 모두 다 재미 있다고 이렇게 하고 아마 내일 여게  도착하거나 오늘 도착하거나 그럴 겁니다. 언제 연락 왔어, 누가? 누가  연락받았습니까? 아마 내일 도착하거나 그럴 것 같습니다. 연락을 제가  받기로서는.

 그랬는데, 그걸 내가 생각하니까 '거게 대해서도 하나 해 놔야 되겠다.' 앞으로  우리는 그러면 여게서, 지금 자꾸 용이하게 될 터이니까 일반 그런 분들 모양으로  여게서 교회를 또 시무하고 또 거게 개척 교회 시무하고, 미국에 교회 하나 두고  여기 하나 두고 양쪽 시무할 수 있는 그런 거, 혹은 두 교회 세 교회 네 교회 열  교회 이래 두고서 시무할 수 있는 이 일을 우리가 허락을 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물론 여게 있으면서 시찰도 갈 수 있고 순회도 갈 수 있고 집회도 할 수  있고 이렇지마는 담임 목사로서는 한 군데 이상을 해야 되겠나 두 군데를 해야  되겠나 이걸 허락을 해야 되나 거기 대해서도 여러분들이 생각해서 미리부터  이리 해 놓으면 방비가 될 것이고, 그걸 만일 그래 해 놓지 안하면은 지금 앞으로  많이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그래 저는 생각하기를 그랬어요. 순회도 할 수 있다. 또 집회도 할 수 있다.

그러는 데에는 우리 총공회 허락을 맡아 가지고 그렇게 하되 그것도 어느 정도  하지 너무 무기한으로 그렇게 장기간은 안 되겠다. 왜? 교회를 누구든지 맡아  가지고 있는데 그 교회를 맡아 가지고 오래 동안 장기 동안 그래 가지고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고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도 그래서는 안 되지  않나 그렇게 싶어서 지금 사전에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결의하는 대로 해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하십시오.

 그라고 또 찬송가 이것은 모두 다 그때에 한 권썩 안 받았습니까, 이걸 그때  해석한 걸? 큰 거 안 받았습니까, 모두? 그걸 보고 가 해 보십시오. 보면은  이거는 보수 때문에 그렇다. 이거는 좀 더 성경에 가깝기 위해서 그래 했다 한  그게 전부 다 낱낱이, 그거 하나 하느라고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래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더 은혜가 돼지고 또 가사에 대해서 잘못이 없고 또  옛날 보수로 그래 돼 가지고 있고 뭐 교리와 신조에 위반됨이 없고 이런 것이면  그거 잘 모두 힘을 써서 수정을 해 가지고 뭐 다시 열 곡이든지 백 곡이든지 뭐  이렇게 더할 수가 있지요. 그 부록으로 더 할 수가 있고, 더해서 가질 수가 있고  이 런데, 실은 자기 전문가로서 뭐 가진 개 육백 칠백 하지마는 그저 이백 곡이면  우리가 하나님 찬송하는 데는 빠진 곡목은 없습니다. 빠진 제목은 없고 거의 다  들었어요. 한 면에 찬송을 두 가지 세 가지 아레 한 그런 것이 특 없어 그렇지  어느 면이라도 찬송하는 그 면에 아주 빠진 그런 것은 없습니다.

 지금 또 말 들으니까 통일 찬송은 이거 OOO씨가 지금 이걸, 뭐 아직도 몰라요.

그 사람은 머리가 좋고 범위가 넓어서 이게 뭐 어째 하는지? 정치가들도 뭐  그분이 다 돈 들여가지고 그래 많이 거석했어. 그러니까 그분이 돈 없는  교역자들에게는 돈 푹푹 집어 줘 가지고 협조하고, 또 거석한 목사들에게는 이거  관광하는 데 성지 순례 하는데 한번 갔다 오라고 이래 가지고 해서 단체 하는데  그만 얼마 돈 보조해 준다 하니까 공 거라 하면 좋으니까 이래 가 가지고 썩  갔다 와 보니까 내나 그 돈이라. 그래 가지고서 세계 일주도 보내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슬슬 해서 바람을 자꾸 집어 넣어 가지고 이와같이 하는데, 우리 나라도  선거 운동하는 그 사람들이, 후보자들이 그분의 뭐 돈을 안 쓴다 해도 다 돈을  썼어요, 안 쓴 게 아니라. 내게는 편지가 왔어. '아무것이는 아무 날 얼마를  썼습니다.' 나 모르는 사람이라. '내가 목사님한테 전하는 것은 목사님이 이를 알고  계셔야 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전합니다.' 그래 가지고 뭐 누구 누구 돈 쓴 거  누구 돈 쓴 거 한 걸 그걸 나한테 다 적어서 그렇게 해서 보냈어요. 그래 나는  그때 알았지. 그라고 난 다음에 그래 살살 더듬어서 이래 보니까 그런 문제들이  있는데,  이번에 통일 찬송도 그 OOO파에서 이 통일 찬송을 쓰고 저거 찬송이라 이렇게  한답니다. 그래서 하, 이 찬송이 통일 교회서 쓰는 찬송이니까 통일 교회  찬송이라고, 또 찬송 이름도 통일 찬송이니까 통일 교회서 이라니까 '이거 안됐다,  이거 찬송 우리가 새로 해야 된다' 하는 그런 말들이 많이 있는데 얼마 안 가서  또 새 찬송 또 나옵니다. 이러니까 그거 따라갈라 하면, 우리가 그거 따라가다  보면은 내나 새것 또, 그 사람 고친 것 또 익히고 또 익히고 할라 하면 언제  우리가 하겠습니까? 먼저 안 것 그만 그거 가지고 자꾸 이래 찬송하지.

 이래서 여러 면으로 생각해 가지고 이걸 이백일 곡 한 것이기 때문에 양이  적거들랑은 그것을 하되 자꾸 유행하지 말고 과거의 보수로써, 가사가 또 성경  도리에 위반되지 안 한 걸 그런 걸 해 보면 자기가 부록으로 뭐 백 곡을 하든지  이백 곡을 하든지 할 수 있지마는 그렇게 많은 걸 우리가 다 외우지 못해요.

그러니까 이백 곡만 외워 가지고 그것만 가지고 외워서 찬송한다면은 뭐  하나님을 얼마든지 찬송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찬송에는 오전에도 말했듯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자기 기쁘게  하느냐? 이 둘 중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면 우리도  기쁘지요. 기뻐해야 되지마는, 하나님 기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기쁨이 거게서  흘러내려 온 것이라면 좋지마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느냐 자기를 기쁘게 하느냐?  자기 기쁘게 하는 게 앞서고 하나님 기뻐하는 것이 다음으로 간다면 찬송이  아닙니다. 노래입니다. 이거는 노래, 유행가 노래요. 자꾸 시대 따라서 변해지는  그런 것이라. 잠깐 한번 기도합시다.

 주님 이 시간 주신 말씀 저들에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유일한 법칙이요 길인  것을 굳게 잡고 요동치 않고 이대로 그저 뿍뿍 자라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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